刺客列傳에서는 魯의 曹沫, 吳의 專諸, 晉의 豫讓, 韓의 聶政, 燕의 荊軻 다섯 명의 刺客을 다루었다.
司馬遷은 “조말로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자객은 그 의행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뚜렷하였으며 자신의 뜻을 욕되게 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이름을 후세에 전함이 어찌 망령되겠는가!”라고 평하였다.
曹沫은 曹劌, 曹翽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魯 大夫로 지략과 의리가 뛰어났다고 하며 魯의 莊公을 섬긴 장군이다.
魯와 인접하여 있던 강국 齊는 번번이 노를 침략했고, 조말은 노의 장군으로 이를 막았으나 세 번이나 패하고 노는 영토를 잃게 되었다.
제환공 5년에 불리해진 魯는 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齊와 회맹을 맺게 되었는데, 맹약하는 자리에서 장공이 바치는 수읍을 헌상한다는 내용이 담긴 맹약서를 쓰는 도중에, 조말이 난입해서 비수로 환공을 위협하며 자신의 패전을 보상하기 위하여 앞서 자신이 세 번의 전투에서 빼앗아간 魯의 땅을 돌려달라고 협박하였고, 환공은 마지못해 서약서를 썼다.
환공은 협박으로 맺어진 계약은 무효하다며 臨淄로 돌아온 뒤 수읍 등을 다시 빼앗기 위하여 군을 일으켰지만, 相國 管仲이
“협박 때문에 허락하였더라도 믿음을 저버리고 죽이는 것은 소소한 분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후의 믿음을 저버리고 천하의 지지를 잃는 것이니 안 됩니다.”
라고 환공을 설득하였고 환공은 이에 魯를 치지 않았다. <齊太公世家>
1. 曹沫
曹沫者,魯人也,以勇力事魯莊公。
曹沫은 魯의 사람이며 勇力을 가지고 魯莊公을 섬겼다.
莊公好力。
장공은 力士를 좋아하였다.
曹沫為魯將,與齊戰,三敗北。
조말은 魯의 장군이 되어 齊와 세 번 싸웠으나 세 번 다 패하였다.
魯莊公懼,乃獻遂邑之地以和。
장공이 두려워하여 遂邑을 바치고 화친하고자 하였다.
猶復以為將。
그럼에도 계속하여 조말을 장군의 자리에 두었다.
齊桓公許與魯會于柯而盟。
齊桓公이 허락하고 魯와 柯땅에서 회맹하게 되었다.
桓公與莊公既盟於壇上,曹沫執匕首劫齊桓公,桓公左右莫敢動,而問曰:
「子將何欲?」
桓公이 莊公과 단상에서 맹약을 맺고 나서, 조말이 비수를 쥐고 齊桓公을 협박하였는데, 환공의 측근들이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曹沫曰:
「齊彊魯弱,而大國侵魯亦甚矣。
今魯城壞即壓齊境,君其圖之。」
조말이 대답하였다.
“齊는 강하고 魯는 약한데 대국이 魯를 침략함이 심합니다.
지금 魯의 성벽이 무너져 齊 국경에 떨어질 정도이니, 군주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桓公乃許盡歸魯之侵地。
齊桓公은 이에 魯를 침략한 땅을 모두 돌려주기로 허락하였다.
既已言,曹沫投其匕首,下壇,北面就群臣之位,顏色不變,辭令如故。
말이 끝나자 조말은 비수를 버리고 단을 내려가서 신하의 자리로 돌아가 북면하였는데, 얼굴빛이 변함이 없었고 음성도 전과 같았다.
桓公怒,欲倍其約。
桓公이 노하여 그 약속을 어기려 하였다.
管仲曰:
「不可。
夫貪小利以自快,棄信於諸侯,失天下之援,不如與之。」
管仲이 말하였다.
“안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여 스스로 만족하여, 제후에게 신의를 저버리고 천하의 지지를 잃음이니 주느니만 못합니다.”
於是桓公乃遂割魯侵地,曹沫三戰所亡地盡復予魯。
이리하여 桓公이 결국 노에서 빼앗은 땅을 떼어주니, 조말은 세 번의 싸움에서 잃은 땅을 모두 魯에 돌려주었다.
▶ 魯莊公: 기원전706 ~기원전662년. 魯의 제16대 임금으로 이름은 同이다. 장공13년(기원전681년), 齊의 공격에 魯가 패했고, 장공은 遂邑을 바쳐 齊와 화평하였다. 齊와 魯는 柯에서 맹약했는데 曹沫이 단상에서 제환공을 비수로 위협하여 齊가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게 하였다. 제환공은 이를 후회하여 나중에 맹약을 배반하고자 했으나, 管仲의 간언으로 맹약을 지켰다.
▶ 齊桓公: 기원전720년? ~기원전643년. 춘추시대 齊의 제16대 후작이다. 성은 姜, 휘는 小白, 시호는 桓公. 춘추시대의 패자이다. 포숙아의 활약에 의하여 공자 규와의 공위계승 분쟁에서 승리하여 齊의 군주가 되었다. 관중을 相國으로 삼고 齊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중국 동주 왕실을 대신하여 회맹을 거행하였다.
▶ 柯: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黃縣의 경내 안에 있었다.
▶ 倍: 背와 통하여 파기하다. 위배하다.
2. 專諸
專諸는 춘추시대 吳 사람으로 楚 伍子胥가 왕위 승계에 불만을 가진 오나라 공자 光에게 추천한 사람으로 공자 광을 위해 吳王 僚를 죽이고자 비수를 구운 생선 뱃속에 숨겨 가지고 들어가 그를 찔러 죽였으나, 자기도 그 자리에서 잡혀 죽음을 당했고 공자 광은 왕에 오르니 곧 吳王 闔閭이다. 闔閭는 왕이 된 뒤에 그의 공을 잊지 않고 專諸의 아들을 上卿으로 중용하였다.
其後百六十有七年而吳有專諸之事。
그로부터 167년 후에 吳에 專諸의 사건이 있었다.
專諸者,吳堂邑人也。
專諸는 吳의 堂邑 사람이다.
伍子胥之亡楚而如吳也,知專諸之能。
伍子胥가 楚에서 도망쳐서 吳로 감에, 전제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伍子胥既見吳王僚,說以伐楚之利。
오자서는 오왕 僚를 만나서, 楚를 정벌함의 이로움을 설명하였다.
吳公子光曰:
「彼伍員父兄皆死於楚而員言伐楚,欲自為報私讎也,非能為吳。」
吳公子 光이 말하였다.
“저 伍員의 父兄이 모두 楚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伍員이 楚를 치자고 말함은 자신의 사사로운 원한을 갚기 위함이지 吳를 위함이 아닙니다.”
吳王乃止。
오왕이 이에 중지하였다.
伍子胥知公子光之欲殺吳王僚,乃曰:
「彼光將有內志,未可說以外事。」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죽이려 함을 알고 생각하였다.
“저 공자 광은 내란을 일으키려는 뜻을 가졌으니 나라 밖의 일은 말해서는 안 되겠다.”
乃進專諸於公子光。
이에 전제를 공자 광에게 추천하였다.
光之父曰吳王諸樊。
공자 광의 아버지는 오왕 諸樊이다.
諸樊弟三人:次曰餘祭,次曰夷眛,次曰季子札。
제번의 아우가 셋인데, 바로 밑의 동생은 餘祭이고, 그다음은 夷眛이며, 맨 끝의 동생이 季子札이다.
諸樊知季子札賢而不立太子,以次傳三弟,欲卒致國于季子札。
제번은 계자 찰이 현명함을 알았지만 태자로 세우지 않았으니, 차례대로 세 아우에게 전하여, 결국에는 계자 찰에게 나라를 주려고 하였다.
諸樊既死,傳餘祭。餘祭死,傳夷眛。
제번이 죽자 여채에게 전했고, 여채가 죽자 이말에게 전하였다.
夷眛死,當傳季子札;
季子札逃不肯立,吳人乃立夷眛之子僚為王。
이말이 죽음에, 응당 계자 찰에게 전해야 하였으나 계자찰이 달아나서 즉위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吳 사람들은 결국 이말의 아들 僚를 옹립하였다.
公子光曰:
「使以兄弟次邪,季子當立;
必以子乎,則光真適嗣,當立。」
공자 광이 말하였다.
“형제의 순서대로 한다면 계자가 당연히 즉위해야 하며,
아들을 세워야 한다면 내가 진정한 適嗣이니, 당연히 즉위하여야 한다.”
故嘗陰養謀臣以求立。
그래서 항상 은밀히 謀臣을 길러 왕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光既得專諸,善客待之。
공자 광이 專諸를 얻고 나서 賓客으로 잘 대우하였다.
九年而楚平王死。
오왕 요 9년에 楚平王이 죽었다.
春,吳王僚欲因楚喪,使其二弟公子蓋餘、屬庸將兵圍楚之灊;
使延陵季子於晉,以觀諸侯之變。
봄에 오왕 요가 楚의 국상을 틈타 그의 두 아우인 공자 蓋餘와 屬庸에게 軍을 이끌고 楚의 潛땅을 포위하게 하고,
延陵季子를 晉에 보내서 제후의 반응을 살피게 하였다.
楚發兵絕吳將蓋餘、屬庸路,吳兵不得還。
楚가 軍을 보내 吳將 蓋餘와 屬庸의 퇴로를 차단하자 吳軍는 돌아올 수 없었다.
於是公子光謂專諸曰:
「此時不可失,不求何獲!
且光真王嗣,當立,季子雖來,不吾廢也。」
이에 공자 광이 전제에게 말하였다.
“이때를 놓쳐서는 아니 되오. 구하지 않고 무엇을 얻겠소!
또한 나는 진정한 왕의 계승자이니 마땅히 즉위해야 하오,
계자가 오더라도 나를 폐하지 않을 터이오.”
專諸曰:
「王僚可殺也。
母老子弱,而兩弟將兵伐楚,楚絕其後。
方今吳外困於楚,而內空無骨鯁之臣,是無如我何。」
전제가 말하였다.
“왕 요를 죽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늙었고 아들은 어립니다. 두 아우가 軍을 거느리고 楚를 치러 갔으나 楚가 그 퇴로를 끊어버렸습니다.
지금 吳는 밖으로 楚에게 곤란하고, 안으로는 강직한 신하가 전혀 없으니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公子光頓首曰:
「光之身,子之身也。」
공자 광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나의 몸이 곧 그대의 몸이오.”
四月丙子,光伏甲士於窟室中,而具酒請王僚。
4월 丙子日에 광이 甲士를 지하실에 숨겨두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왕 요를 초청하였다.
王僚使兵陳自宮至光之家,門戶階陛左右,皆王僚之親戚也。
왕 요는 병사를 보내 왕궁으로부터 공자 광의 집까지 진을 치게 하였고, 문과 계단 좌우에는 모두 왕 요의 친척이었다.
夾立侍,皆持長鈹。
길 양쪽을 따라 立侍함에, 모두 긴 칼을 지니고 있었다.
酒既酣,公子光詳為足疾,入窟室中,使專諸置匕首魚炙之腹中而進之。
술자리가 무르익자, 공자 광은 거짓으로 발이 아프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들어가서, 전제에게 비수를 구운 물고기의 뱃속에 넣어 올리라고 하였다.
既至王前,專諸擘魚,因以匕首刺王僚,王僚立死。
왕 앞에 이르자 전제가 물고기를 가르고, 인하여 비수로 왕 요를 찌르자 왕 요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左右亦殺專諸,王人擾亂。
측근이 또한 전제를 죽였으나 요왕의 신하들은 혼란스러웠다.
公子光出其伏甲以攻王僚之徒,盡滅之,遂自立為王,是為闔閭。
공자 광은 伏甲을 나오게 하여 왕 요의 무리를 공격하여 모두 없앤 뒤,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니, 闔閭이다.
闔閭乃封專諸之子以為上卿。
합려는 전제의 아들을 봉하여 上卿으로 삼았다.
▶ 其後: 앞의 장에서 조말의 사건이 있은 이후를 말한다.
▶ 伍子胥之亡楚: 오자서가 楚에서 吳로 도망쳐 온 일은 사기 楚世家및 伍子胥列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如: 가다. 이르다.
▶ 說: 유세하다. 설득하다.
▶ 吳王 僚: ? ~기원전515년. 춘추시대 吳의 제21대 왕(재위: 기원전526년~기원전515년)이다. 성은 姬. 휘는 僚 또는 州于이다.
▶ 公子 光: 오왕 諸樊의 아들로 후일 吳의 왕 闔廬가 된다.
▶ 私讎: 개인의 사사로운 원수.
▶ 內志: 국내적으로 왕위를 탈취하려는 의도. 志는 의도.
▶ 進: 추천.
▶ 季子札: 季札. 계찰은 춘추시대 吳王 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다.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원래 수몽이 오왕의 자리를 계찰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형이 있어서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수몽이 그 자리를 장자인 諸樊에게 물려주면서 이후로는 吳의 군주 자리는 부자상속 대신에 형제상속을 행하여 계찰에게 왕위가 돌아가도록 유언을 하고 죽었다. 제번이 그 부왕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史記권31. 吳太伯世家>
▶ 適嗣: 正妻소생의 長子. 適은 嫡과 같다.
▶ 嘗: 常과 통하여 항상. 늘.
▶ 九年而楚平王死: 사기 吳太伯世家에는 오 요왕12년 겨울에 초평왕이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 變: 動態. 반응.
▶ 骨鯁之臣: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 骨鯁은 생선의 뼈.
▶ 頓首: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절하다.
▶ 甲士: 무장한 병사. 사병.
▶ 窟室: 지하실.
▶ 具酒: 술자리를 마련하다.
▶ 階陛: 계단.
▶ 親戚: 여기서는 심복을 말한다.
▶ 長鈹: 긴 창. 일설에는 양쪽에 날을 낸 칼이라고도 한다.
▶ 詳為足疾: 거짓으로 발이 아프다고 함. 詳은 佯과 통하여 거짓.
▶ 魚炙: 물고기에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운 것
▶ 進: 헌상하다. 임금께 바침.
▶ 擘: 쪼개다. 찢다.
3. 豫讓
豫讓은 春秋 말기 晉나라 智氏의 가신이다.
처음에 范氏와 中行氏를 섬기다가 뒤에 智伯을 주인으로 섬겼는데, 지백이 그를 매우 존경하고 총애하였다.
趙襄子가 智伯을 살해하자,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는다.”하고 보복을 맹세한 뒤 죄인으로 가장하여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변소에 잠입하여 그를 죽이려다가 발각되었다.
조양자는 그를 義人이라 생각하고 석방하였다.
그 뒤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나환자로 변장하고, 벙어리·거지의 행세를 하며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가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었다가 그를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다시 붙들렸다.
조양자가 이번에는 그를 용서하지 않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을 받아 칼로 3번 친 뒤, “내가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말하고, 칼에 엎어져 자결했다.
其後七十餘年而晉有豫讓之事。
그 후 칠십여 년, 晉에 예양의 사건이 있었다.
豫讓者,晉人也,故嘗事范氏及中行氏,而無所知名。
예양은 晉 사람으로 일찍이 范氏와 中行氏를 섬겼으나, 명성이 알려진 바가 없었다.
去而事智伯,智伯甚尊寵之。
떠나서 智伯을 섬겼는데 지백은 예양을 매우 존중하고 총애하였다.
及智伯伐趙襄子,趙襄子與韓、魏合謀滅智伯,滅智伯之後而三分其地。
지백이 趙襄子를 침에, 조양자는 韓·魏와 연합하여 지백을 멸하고, 지백을 멸한 뒤에 그의 땅을 셋으로 나누어 가졌다.
趙襄子最怨智伯,漆其頭以為飲器。
조양자는 지백에게 원한이 많아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하여 술잔으로 사용하였다.
豫讓遁逃山中,曰:
「嗟乎!士為知己者死,女為說己者容。
今智伯知我,我必為報讎而死,以報智伯,則吾魂魄不愧矣。」
예양이 산속으로 도피하며 말하였다.
“아!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인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한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반드시 원수를 갚고 죽음으로써 지백에게 보답한다면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않을 터이다.”
乃變名姓為刑人,入宮涂廁,中挾匕首,欲以刺襄子。
이에 성명을 바꾸고 죄수가 되어 趙의 궁에 들어가 변소의 벽을 발랐는데, 몸에 비수를 품고 양자를 찔러 죽이려 하였다.
▶ 其後: 앞 장에서의 吳의 專諸의 사건을 말한다.
▶ 趙襄子與韓、魏合謀滅智伯: 기원전453년에 晉의3 卿인 韓虎 韓康子, 魏駒 魏桓子, 趙孟 趙襄子가 당시 晉의 최대 실권자이자 최대의 영토를 보유한 智伯 瑤를 죽이고 智氏일문을 멸문시킨 다음 그 영토를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사실상 晉을 삼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趙襄子最怨智伯: 조양자가 일찍이 아버지 簡子를 대신해서 軍을 거느릴 때 知伯과 같은 소속이었는데 知伯이 襄子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려 하였으나 먹지 않자 뺨을 때리고 돌아와서 아버지 簡子에게 襄子를 후계자로 삼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세우라고 한 적이 있었다.
▶ 士為知己者死,女為說己者容: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한다. 이 문장은 고사성어가 되었다. 說은 悅과 같으며 즐겁다. 容은 단장하다. 화장하다의 뜻.
▶ 刑人: 형벌을 받아 신체의 불구가 된 사람.
襄子如廁,心動,執問涂廁之刑人,則豫讓,內持刀兵,曰:
「欲為智伯報仇!」
양자가 변소에 가다가 가슴이 두근거려 변소의 벽을 바르는 죄수를 잡아다 심문하니, 예양이 옷 속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예양이 말하였다.
“지백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오!”
左右欲誅之。
측근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襄子曰:
「彼義人也,吾謹避之耳。
且智伯亡無後,而其臣欲為報仇,此天下之賢人也。」
양자가 말하였다.
“저 자는 의로운 자이고, 내가 조심하여 피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지백은 죽고 후손도 없는데, 그의 신하가 원수를 갚겠다고 하니, 이 자야말로 천하의 현인이다.”
卒醳去之。
마침내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였다.
▶ 心動: 가슴이 설레다. 가슴이 두근거리다.
▶ 卒醳去之: 醳은 釋의 오자로 보인다. 釋: 놓아주다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居頃之,豫讓又漆身為厲,吞炭為啞,使形狀不可知,行乞於市。
얼마 후 예양은 다시 몸에 옻칠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삼켜 목을 쉬게 만들고,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하고 저자에서 구걸하였다.
其妻不識也。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行見其友,其友識之,曰:
「汝非豫讓邪?」
그의 친구에게 가서 만나니 친구가 알아보고 말하였다.
“자네는 예양이 아닌가?”
曰:
「我是也。」
예양이 말하였다.
“내가 맞네.”
其友為泣曰:
「以子之才,委質而臣事襄子,襄子必近幸子。
近幸子,乃為所欲,顧不易邪?
何乃殘身苦形,欲以求報襄子,不亦難乎!」
그의 친구가 울면서 말하였다.
“자네의 재능으로 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어 양자를 섬긴다면, 양자는 틀림업이 자네를 가까이하고 총애할 터일세.
자네를 가까이하고 총애하게 하여 원하는 바를 행하면, 오히려 쉽지 않겠는가?
왜 자기 몸을 해치고 얼굴을 추하게 만들어 양자에게 보복하려고 하는가?
어렵기도 하지 않겠는가!”
豫讓曰:
「既已委質臣事人,而求殺之,是懷二心以事其君也。
且吾所為者極難耳!
然所以為此者,將以愧天下後世之為人臣懷二心以事其君者也。」
예양이 말하였다.
“기왕 예물을 바치고 신하로서 섬기면서, 그를 죽이려 한다면, 두 마음을 품고서 군주를 섬기는 짓이네.
내가 행하는 바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네!
그러나 이를 행하는 까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군주를 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함이네.”
既去,頃之,襄子當出,豫讓伏於所當過之橋下。
떠나버린 얼마 후 양자가 외출할 때, 예양은 양자가 지나야 하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襄子至橋,馬驚,襄子曰:
「此必是豫讓也。」
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니 양자가 말하였다.
“이는 틀림없이 예양일 터이다.”
使人問之,果豫讓也。
사람을 시켜 심문하니 과연 예양이었다.
於是襄子乃數豫讓曰:
「子不嘗事范、中行氏乎?
智伯盡滅之,而子不為報讎,而反委質臣於智伯。
智伯亦已死矣,而子獨何以為之報讎之深也?」
이에 양자가 예양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과거에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모조리 멸망시켰으나 그대는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예물을 바쳐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백도 이미 죽었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지백을 위한 복수심이 유달리 깊은가?”
豫讓曰:
「臣事范、中行氏,范、中行氏皆衆人遇我,我故衆人報之。
至於智伯,國士遇我,我故國士報之。」
예양이 말하였다.
“신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김에,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보통 사람으로 저를 대하였기에, 저 또한 보통 사람으로 그들에게 보답했습니다.
지백에 대하여는, 國士로 저를 대우하였고 저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려 합니다.”
襄子喟然嘆息而泣曰:
「嗟乎豫子!子之為智伯,名既成矣,而寡人赦子,亦已足矣。
子其自為計,寡人不復釋子!」
조양자가 한숨 쉬며 탄식하고 울면서 말하였다.
“아, 豫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함에 명분이 이미 이루어졌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함도 이미 충분하였네.
그대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라. 과인은 다시 그대를 놓아주지 않으리라!”
使兵圍之。
병사들에게 그를 포위하게 하였다.
豫讓曰:
「臣聞明主不掩人之美,而忠臣有死名之義。
前君已寬赦臣,天下莫不稱君之賢。
今日之事,臣固伏誅,然願請君之衣而擊之,焉以致報讎之意,則雖死不恨。
非所敢望也,敢布腹心!」
예양이 말하였다.
“신이 듣기로 현명한 군주는 남의 훌륭함을 가리지 않고, 충신은 명예를 위하여 죽는 義氣가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군께서 이미 신을 관대히 용서하셨기에 천하에 군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오늘의 일로 신은 필시 형벌을 받아 죽을 터이나, 부디 군의 옷을 청하여 그것을 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룬다면, 비록 죽어도 한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바랄 바가 아니오나, 감히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於是襄子大義之,乃使使持衣與豫讓。
이에 양자가 그를 크게 의롭다고 여기고, 사람을 시켜 옷을 가져다 예양에게 주게 하였다.
豫讓拔劍三躍而擊之,曰:
「吾可以下報智伯矣!」
예양이 칼을 뽑아 들고 세 번 뛰어, 옷을 내려치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로써 지하의 지백에게 보답하였다!”
遂伏劍自殺。
이어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死之日,趙國志士聞之,皆為涕泣。
죽던 날, 趙의 志士들이 이를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 漆身為厲: 몸에 옷칠을 하고 피부에 종기를 만들어 나병환자처럼 하다. 厲는 癩(나환자 나)와 같다.
▶ 吞炭為啞: 숯을 삼겨 목소리를 쉬게 만들다.
※漆身呑炭: 숯을 삼키고 몸에 옷칠을 하는 고난을 견디며 복수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 委質: 고대 신하가 군주에게 헌신의 표시로 바치는 예물. 質은 贄(폐백‘지’)와 통한다.
▶ 近幸: 가까이하고 총애하다.
▶ 殘身苦形: 몸을 학대하고 얼굴을 추하게 함.
▶ 數(수): 責望하다.
▶ 國士: 나라에서 걸출한 인물. 온 나라에서 받들어 추앙하는 사람.
※國士遇之國士報之: “국사로 대우하면 국사로 갚는다.”는 고사성어.
▶ 喟然: 탄식하는 모양.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함.
▶ 伏誅: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함.
▶ 腹心: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깊은 속마음.
▶ 使使: 사람을 보냄. 앞의使는 보낼‘시’. 뒤의使는 사신의 뜻.
※三躍擊之: 예양이 조양자 암살에 실패하고 자결하기에 앞서 조양자의 옷을 벨 기회를 달라 청한다. 예양의 의리에 감동한 조양자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자 예양은 칼을 뽑아 껑충 뛰어오르며 세 번 옷을 찌른 다음 스스로 칼을 찌르고 자결한다.
4. 聶政
聶政은 魏 사람으로 일찍이 사람을 죽여 도망 끝에 어머니를 모시고 齊에서 백정이 되었다. 자신을 후대한 한의 卿인 嚴仲子가 엄중자의 원수인 韓 재상 俠累를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거절하였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의리를 지켜 협루를 죽이고 자살하였다.
섭정이 죽은 후 그의 누나가 섭정의 시체를 안고 따라 죽었다.
其後四十餘年而軹有聶政之事。
그 후 40여 년이 지나서 軹땅에서 聶政의 사건이 있었다.
聶政者,軹深井里人也。
聶政은 軹의 深井里사람이다.
殺人避仇,與母、姊如齊,以屠為事。
사람을 죽이고 원수를 피해서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齊로 가서 도축에 종사하였다.
久之,濮陽嚴仲子事韓哀侯,與韓相俠累有卻。
오랜 후에 濮陽의 嚴仲子가 韓哀侯를 섬겼는데, 韓의 相國 俠累와 원한이 있었다.
嚴仲子恐誅,亡去,游求人可以報俠累者。
엄중자는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달아나서, 交遊하며 협루에게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구하였다.
至齊,齊人或言聶政勇敢士也,避仇隱於屠者之閒。
齊에 이르자 齊 사람이 말하기를, 섭정은 勇士인데, 원수를 피해서 백정 사이에 숨어 산다고 하였다.
嚴仲子至門請,數反,然後具酒自暢聶政母前。
엄중자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다가 여러 차례 돌아갔는데, 그 후에 술을 준비하여 손수 섭정의 어머니 앞에서 술잔을 올렸다.
酒酣,嚴仲子奉黃金百溢,前為聶政母壽。
술자리가 무르익자 엄중자는 황금 100鎰을 들고 섭정 어머니 앞으로 나아가 祝壽하였다.
聶政驚怪其厚,固謝嚴仲子。
섭정은 예물의 후함에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고 엄중자에게 완고히 사양하였다.
嚴仲子固進,而聶政謝曰:
「臣幸有老母,家貧,客游以為狗屠,可以旦夕得甘毳以養親。
親供養備,不敢當仲子之賜。」
엄중자가 억지로 주려고 하자, 섭정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신에게는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고, 집이 가난하지만, 객지를 떠돌며 개백정 노릇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신이 봉양할 음식을 마련할 수 있으니 중자께서 내리시는 예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嚴仲子辟人,因為聶政言曰:
「臣有仇,而行游諸侯衆矣;
然至齊,竊聞足下義甚高,故進百金者,將用為大人麤糲之費,得以交足下之驩,豈敢以有求望邪!」
엄중자가 사람들을 물리친 후 섭정에게 말하였다.
“내게 원수가 있어 제후국에 다니며 교유함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齊에 와서 삼가 足下의 義氣가 매우 높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래서 황금 100일을 바쳐 어머니의 거친 식량 비용에나 쓰게 하여, 그대와 좋게 지내려 함이지 어찌 감히 그것으로 그대에게 바람이 있겠습니까?”
聶政曰:
「臣所以降志辱身居市井屠者,徒幸以養老母;
老母在,政身未敢以許人也。」
섭정이 말하였다.
“제가 뜻을 낮추고 신분을 낮추면서 시장에서 백정으로 사는 까닭은 단지 老母를 봉양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노모가 살아 계신 동안에는 제 몸을 감히 남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嚴仲子固讓,聶政竟不肯受也。
엄중자가 완고히 주려 해도 섭정은 끝내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然嚴仲子卒備賓主之禮而去。
그러나 엄중자는 끝까지 빈객과 주인의 예를 다하고 돌아갔다.
久之,聶政母死。
오랜 후에 섭정의 어머니가 죽었다.
既已葬,除服,聶政曰:
장례를 마치고 상복을 벗은 뒤 섭정이 말하였다.
「嗟乎!政乃市井之人,鼓刀以屠;
而嚴仲子乃諸侯之卿相也,不遠千里,枉車騎而交臣。
“아! 나는 그저 시장의 사람으로 칼을 휘둘러 도축하는데,
엄중자는 제후의 卿相임에도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수레를 몰고 찾아와 나와 사귀었다.
臣之所以待之,至淺鮮矣,未有大功可以稱者,而嚴仲子奉百金為親壽,我雖不受,然是者徒深知政也。
내가 그를 대우함은 가볍고 대수롭지 않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큰 공도 없으나, 엄중자는 황금 100일을 받들어 어머니에게 축수하였으며, 내가 비록 받지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함은 오로지 나를 깊이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夫賢者以感忿睚眦之意,而親信窮僻之人,而政獨安得嘿然而已乎!
且前日要政,政徒以老母;
老母今以天年終,政將為知己者用。」
저 현명한 사람이 원한을 분하게 느끼는 뜻을 가지고, 궁벽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믿어주니, 내가 어찌 가만히 있고 말겠는가!
지난번 나를 원했지만 나는 단지 노모를 이유로 삼았는데,.
노모께서 이제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으니, 나는 장차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쓰이겠다.”
乃遂西至濮陽,見嚴仲子曰:
「前日所以不許仲子者,徒以親在;
今不幸而母以天年終。
仲子所欲報仇者為誰?
請得從事焉!」
이에 서쪽으로 가서 복양으로 이르러 엄중자를 만나서 말하였다.
“지난날 중자께 허락하지 않음은 단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불행히도 모친께서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중자께서 원수를 갚으려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에 종사도록 해주십시오!”
嚴仲子具告曰:
「臣之仇韓相俠累,俠累又韓君之季父也,宗族盛多,居處兵衛甚設,臣欲使人刺之,衆終莫能就。
今足下幸而不棄,請益其車騎壯士可為足下輔翼者。」
엄중자가 자세히 말해주었다.
“나의 원수는 韓의 相國 협루이며, 협루는 또한 韓 군주의 季父입니다.
그 일족이 번성하여 많고 거처의 경비가 대단히 삼엄하니 내가 사람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려고 했지만, 사람들 중에 끝내 성공하는 자가 없었소.
지금 귀하가 다행히 나를 버리지 않으니, 車騎와 壯士로서 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을 더 보태주겠소.”
聶政曰:
「韓之與衛,相去中閒不甚遠,今殺人之相,相又國君之親,此其勢不可以多人,多人不能無生得失,生得失則語泄,語泄是韓舉國而與仲子為讎,豈不殆哉!」
섭정이 말하였다.
“韓이 衛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지금 韓의 相國을 죽이려고 함에 相國도 國君의 친족인지라 이러한 형세상 많은 사람을 쓰면 안 되며, 사람이 많다 보면 利害가 생기지 않을 수 없으며, 이해가 생기면 말이 새어나갈 터이고 말이 새어나가면 한은 온 나라가 중자를 원수로 여길 터이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遂謝車騎人徒,聶政乃辭獨行。
마침내 車騎와 장사들을 사양하고 섭정이 작별하고 홀로 떠났다.
杖劍至韓,韓相俠累方坐府上,持兵戟而衛侍者甚衆。
섭정이 칼을 차고 韓에 이르니, 한의 相國 협루가 마침 관아에 앉아 있었는데, 무기를 들고 호위하는 자가 아주 많았다.
聶政直入,上階刺殺俠累,左右大亂。
섭정이 바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서 협루를 찔러 죽이니 측근이 크게 혼란하였다.
聶政大呼,所擊殺者數十人,因自皮面決眼,自屠出腸,遂以死。
섭정이 크게 부르짖으며 쳐 죽인 자가 수십 명에 달하자, 스스로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어, 마침내 이 때문에 죽었다.
韓取聶政尸暴於市,購問莫知誰子。
韓은 섭정의 시체를 저자에 드러내놓고, 누구인지 현상수배하였으나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於是韓購縣[購]之,有能言殺相俠累者予千金。
그리하여 韓은 상금을 내걸고, 相國 협루를 죽인 자를 말하는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久之莫知也。
오래되도록 아무도 몰랐다.
政姊榮聞人有刺殺韓相者,賊不得,國不知其名姓,暴其尸而縣之千金,乃於邑曰:
「其是吾弟與?嗟乎,嚴仲子知吾弟!」
섭정의 누나 聶榮이 듣기에, 누군가 한의 相國을 찔러 죽였는데 자객을 알 수 없어서, 나라에서 그 성명을 몰라 범인의 시체를 드러내어 천금을 걸었다고 하니, 목메어 울며 말하였다.
“그는 내 동생일 터이다. 아,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
立起,如韓,之市,而死者果政也,伏尸哭極哀,曰:
「是軹深井里所謂聶政者也。」
당장 일어나 한의 시장으로 가보니 죽은 자는 과연 섭정이었으므로 시체에 엎드려 매우 슬피 곡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지 땅 심정리의 섭정이라는 사람입니다.”
市行者諸衆人皆曰:
「此人暴虐吾國相,王縣購其名姓千金, 夫人不聞與?
何敢來識之也?」
시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이 자가 우리나라 相國에게 포학한 짓을 하여 왕께서 그 성명에 천금을 걸었는데, 부인은 듣지 못했소?
어찌 감히 와서 안다고 하시오?”
榮應之曰:
섭영이 이에 대답하였다.
「聞之。
“그 말을 들었습니다.
然政所以蒙污辱自棄於市販之閒者,為老母幸無恙,妾未嫁也。
그러나 섭정이 오욕을 무릅쓰고 저자거리에 몸을 던진 것은 노모가 다행스럽게 병이 없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親既以天年下世,妾已嫁夫,嚴仲子乃察舉吾弟困污之中而交之,澤厚矣,可柰何!
어머니께서 이미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셨고, 저도 이미 시집을 갔습니다.
엄중자는 내 동생의 인물됨을 알고 곤궁하고 천한 형편에 있는 제 동생과 교제하며, 은택이 두터웠으니 어찌하겠습니까!
士固為知己者死,今乃以妾尚在之故,重自刑以絕從,妾其柰何畏歿身之誅,終滅賢弟之名!」
남자는 본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고 했으나, 제가 아직 살아 있으므로 자신의 몸을 심하게 훼손하여 所從來를 없앴으니. 제가 어찌 죽음이란 형벌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어진 동생의 이름을 사라지게 하겠습니까!”
大驚韓市人。
漢의 시장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
乃大呼天者三,卒於邑悲哀而死政之旁。
하늘을 크게 외치기를 세 번, 마침내 嗚咽하며 슬퍼하다가 섭정의 곁에서 죽었다.
晉、楚、齊、衛聞之,皆曰:
晉·楚·齊·衛에서 그것을 듣고 모두 말하였다.
「非獨政能也,乃其姊亦烈女也。
“섭정만이 능함이 아니라 그의 누나 또한 열녀이다.
鄉使政誠知其姊無濡忍之志,不重暴骸之難,必絕險千里以列其名,姊弟俱僇於韓市者,亦未必敢以身許嚴仲子也。
접때 가령, 섭정이 진실로 그의 누나에게 참고 견디는 성격이 없어서, 죽어 시신을 드러내는 재난을 마다하지 않고, 絕險千里에 반드시 그 이름을 나열하며, 누나와 동생이 함께 한의 시장에서 죽을 줄 알았더라면, 감히 그의 몸을 엄중자에게 허락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嚴仲子亦可謂知人能得士矣!」
엄중자 또한 사람을 알아보았으므로 賢士를 얻을 수 있었다고 이를 만하다!”
▶ 其後: 晉의 豫讓이 지백의 복수를 위하여 조양자를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일을 말한다.
▶ 軹深井里: 軹는 魏의 地名. 지금의 河南省濟源縣. 深井里는 軹邑의 마을.
▶ 屠: 백정.
▶ 濮陽: 衛의 도읍. 河北省濮陽縣.
▶ 嚴仲子: 嚴遂. 字는 仲子. 魏의 복양사람으로 춘추시대 韓나라의 大夫.
▶ 韓 哀侯(한 애후: 전국시대 韓나라의 제4대 군주. 휘는 屯蒙. 아버지인 한문후가 죽고, 그 뒤를 이었다. 이 당시에 鄭을 멸망시켰다.
▶ 韓相俠累: 한나라의 相國 협루. 한 애후 때의 相國으로 전국책에는 韓傀로 기록되어 있다.
▶ 韓相俠累有卻: 俠累: 韓傀가 韓나라 相國이 되고 嚴遂가 임금에게 총애를 받게 되자 둘은 서로를 害를 끼쳤다. 엄수가 정사를 토론할 때 손가락질을 하면서 협루의 과실을 거론하자, 협루는 이 때문에 조정에서 심하게 질책하였다. 엄수가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었으나 주위 사람들이 구해주었다. 이에 엄수는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국외로 도망하였다. <戰國策 韓策>
▶ 有郤: 원한이 있음.
▶ 數反: 여러 차례 왕래하다. 反은返과 같다.
▶ 暢: 술을 권하다.
▶ 溢: 鎰과 통한다. 옛날의 중량 단위로20냥, 또는24냥을 말한다.
▶ 壽: 술을 올리거나 예물을 주어 長壽를 축하하다.
▶ 甘毳: 맛이 달고 바삭바삭한 식물. 毳는 脆(연할‘취’)와 통한다.
▶ 辟: 물리치다.
▶ 竊聞: 몰래 듣다. 풍문에 듣다.
▶ 足下: 귀하.
▶ 大人: 부모의 경칭.
▶ 麤糲之費: 麤는 조미쌀‘추’, 糲는 현미. 즉, 거친 밥값을 말한다.
▶ 降志辱身: 뜻을 낮추고 신분을 낮춤. 세속에 물듦을 말함.
▶ 市井: 시장.
▶ 鼓刀: 칼을 가지고 희롱하며 소리를 내다.
▶ 枉: 굽히다.
▶ 淺鮮: 경미하다. 얕고 적다.
▶ 稱: 비교하다.
▶ 睚眦: 화난 눈초리. 사소한 원한.
▶ 嘿: 默과 통하여 침묵.
▶ 季父: 막내 삼촌.
▶ 輔翼: 돕다. 보좌하다.
▶ 杖劍: 칼을 차다.
▶ 皮面決眼: 남이 자기를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빼다.
▶ 暴於市: 큰 길에 드러내 놓다.
▶ 購問: 현상금을 걸고 물어보다.
▶ 賊不得: 역적을 알아내지 못함.
▶ 於邑: 嗚咽과 같다. 목매어 울다. 흐느끼다.
▶ 蒙: 무릅쓰다.
▶ 無恙: 병이 없음. 평안무사.
▶ 鄉使: 만약 이전에~하게 하다. 鄉은向과 통하여 지난 번. 이전.
▶ 濡忍: 참고 견디다.
▶ 不重: 중하게 여기지 않다.
▶ 暴骸:시신을 외부에 드러내다.
▶ 絕險: 아주 험함.
▶ 列: 드러내다.
▶ 僇: 戮과 통하여 죽이다.
5. 荊軻
荊軻(?~기원전 227년)는 전국시대 말기의 자객이며 衛 사람이다. 秦始皇帝를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다.
秦나라 政(후일 진시황제)은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燕 태자 丹과 함께 趙에 볼모로 있으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귀국하여 즉위한 다음 태자 단을 무시하자, 태자 丹은 진왕 政에게 복수할 것을 꾀하면서 荊軻가 용감한 자객이라는 말을 듣고 그에게 복수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荊軻는 燕의 사신으로 위장하여 값진 보물과 함께 땅을 바치겠다는 뜻으로 督亢이란 지역의 지도를 바치기로 하였다. 진왕 정이 백관들을 모아놓고 사신을 접견하였는데, 이때 荊軻가 지도 속에 감춰둔 단검을 빼 들고 진왕 정을 죽이려고 하다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형가가 암살에 실패하고 죽은 후, 고점리가 황제로 즉위한 진시황제 앞에서 축을 연주할 때 축 속에 납덩이를 숨기고 있다가 황제를 내려쳤으나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其後二百二十餘年秦有荊軻之事。
그 후 220여 년, 秦에 荊軻의 사건이 있었다.
荊軻者,衛人也。
荊軻는 衛 사람이다.
其先乃齊人,徙於衛,衛人謂之慶卿。
그의 선조는 齊 사람이었으나 衛로 옮겨가자 衛 사람들이 慶卿이라고 불렀다.
而之燕,燕人謂之荊卿。
燕으로 가자 燕 사람들이 형가를 荊卿이라고 불렀다.
荊卿好讀書擊劍,以術說衛元君,衛元君不用。
형경이 독서와 검술을 좋아하며 그 재주로 衛元君에게 유세했으나 위원군이 등용하지 않았다.
其後秦伐魏,置東郡,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그 후에 秦이 魏를 침공하고 東郡을 둠에 衛元君의 일족을 野王縣으로 옮겼다.
荊軻嘗游過榆次,與蓋聶論劍,蓋聶怒而目之。
형가가 일찍이 유람하며 榆次를 지나다가 蓋聶과 검술을 논하다가 갑섭이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다.
荊軻出,人或言復召荊卿。
형가가 나가자 어떤 사람이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 말하였다.
蓋聶曰:
「曩者吾與論劍有不稱者,吾目之;
試往,是宜去,不敢留。」
갑섭이 말하였다.
“지난번에 나는 그와 검술을 논하다가 같지 않은 견해를 가졌기에 내가 그를 노려보았소.
시험 삼아 가보시오, 의당 떠나고 감히 머무르지 못할 터이오.”
使使往之主人,荊卿則已駕而去榆次矣。
사람을 시켜 그의 주인집에 가보게 하니 형경이 이미 수레를 몰고 유차를 떠난 뒤였다.
使者還報,蓋聶曰:
「固去也,吾曩者目攝之!」
사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갑섭이 말하였다.
“당연히 떠났을 테지, 내가 지난번에 노려보고 혼내줬으니까!”
荊軻游於邯鄲,魯句踐與荊軻博,爭道,魯句踐怒而叱之,荊軻嘿而逃去,遂不復會。
형가가 邯鄲을 유람함에, 魯句踐과 형가가 쌍륙을 하였는데 규칙을 다투다가 노구천이 성을 내며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도망쳐 달아나니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 其後: 聶政이 嚴仲子의 부탁으로 한나라 相國 俠累를 죽인 일을 말한다.
▶ 先;先祖.
▶ 慶卿: 형가의 선조는 齊의 名族이었던 慶氏이며, 魏의 사람들이 형가를 「慶卿」이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 擊劍: 검술.
▶ 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衛元君 14년에 秦이 魏의 동쪽 땅을 차지하고 東郡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衛의 국군을 다시 野王縣으로 옮기게 하고, 복양을 동군에 합병시켰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 怒目: 눈을 부라리다. 눈을 부릅뜨다.
▶ 曩者: 지난번. 예전.
▶ 不稱: 적합하지 않다. 맞지 않다.
▶ 攝: 懾(두려워할 ‘섭’)과 통하여 위협하다.
▶ 魯句踐: 魯출신으로 邯鄲에서 荊軻가 魯句踐과 쌍륙을 하다가 그 규칙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였고, 노구천이 위협적인 태도로 荊軻에게 소리치자 형가는 그냥 물러났다. 魯句踐은 주나라 제후국 魯출신으로, 기원전2세기 인물로서 주공단의 후손이다. 사람들이 형가를 겁쟁이라며 비웃었지만 형가는 굳이 사소한 일로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李白의 시 소년행2수에서는 이 부분을 인용하였다.
▶ 博: 고대 일종의 도박. 博은 ≪論語≫ 〈陽貨〉에 나오는 博奕의 博과 같이 장기놀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荊軻既至燕,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
형가가 燕으로 간 후 燕의 개백정과 筑을 잘 타는 高漸離와 친밀하였다.
荊軻嗜酒,日與狗屠及高漸離飲於燕市,酒酣以往,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於市中,相樂也,已而相泣,旁若無人者。
형가는 술을 즐겨 날마다 개백정, 고점리와 燕의 시장에서 술을 마셨으며, 술이 거나해진 후에는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그에 맞춰 시장에서 노래하며 서로 즐겼는데, 마치면 서로 울며 旁若無人하였다.
荊軻雖游於酒人乎,然其為人沈深好書;
其所游諸侯,盡與其賢豪長者相結。
형가는 비록 술꾼들과 사귀었으나 사람됨이 침착하고 신중하고 독서를 좋아했으며,
그가 제후에게 교유함에 현자, 호걸, 덕망 있는 사람들과 모두 結交하였다.
其之燕,燕之處士田光先生亦善待之,知其非庸人也。
그가 燕에 가자 燕의 처사 田光선생 역시 그를 잘 대우했으니,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居頃之,會燕太子丹質秦亡歸燕。
얼마 후에 마침 燕 태자 丹이 秦에 볼모로 있다가 도망쳐 燕으로 돌아왔다.
燕太子丹者,故嘗質於趙,而秦王政生於趙,其少時與丹驩。
燕 태자 단은 일찍이 趙에 볼모가 되었는데, 秦王 嬴政이 趙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태자 단과 사이좋게 지냈었다.
及政立為秦王,而丹質於秦。
영정이 즉위하여 秦王이 되자 연단이 秦에 볼모로 갔다.
秦王之遇燕太子丹不善,故丹怨而亡歸。
秦王이 燕 태자 단을 대우함이 좋지 못하니, 연단이 원망하여 도망쳐 돌아온 것이다.
歸而求為報秦王者,國小,力不能。
돌아와서 秦王에게 보복할 사람을 구했으나 나라는 작고 역부족이었다.
其後秦日出兵山東以伐齊、楚、三晉,稍蠶食諸侯,且至於燕,燕君臣皆恐禍之至。
그 후 秦이 날마다 山東으로 출병하여 齊, 楚, 三晉을 침공하고 제후을 점점 잠식하더니 이윽고 燕에 이르니 燕의 군주와 신하들이 모두 재앙이 미칠까 두려워하였다.
太子丹患之,問其傅鞠武。
태자 단이 근심하여 사부인 鞠武에게 물었다.
武對曰:
「秦地遍天下,威脅韓、魏、趙氏,北有甘泉、谷口之固,南有涇、渭之沃,擅巴、漢之饒,右隴、蜀之山,左關、殽之險,民衆而士厲,兵革有餘。
意有所出,則長城之南,易水以北,未有所定也。
柰何以見陵之怨,欲批其逆鱗哉!」
국무가 말하였다.
“秦의 땅이 천하에 두루 걸쳐 있어 韓, 魏, 趙를 위협하며, 북쪽으로 甘泉山·谷口의 險固함이 있고 남쪽으로 涇水·渭水의 비옥함이 있으며, 巴·漢의 풍요를 차지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隴、蜀의 산악지대가 있고, 왼쪽으로 潼關과 殽山의 험준함이 있으며, 백성이 많고 병사는 사나우며 무기도 넉넉합니다.
秦에 출병할 뜻이 있다면 長城의 남쪽과 易水의 북쪽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능멸당한 원한으로 逆鱗을 건드리려 하십니까!”
丹曰:
「然則何由?」
태자 단이 말하였다.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對曰:
「請入圖之。」
국무가 대답하였다.
“들어가서 대책을 세워보겠습니다.”
▶ 擊筑: 筑을 연주함. 筑은 爭과 같은 모양과 구조에 가늘고 긴 봉 모양의 몸체 위에 5줄의 현을 달아 죽편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다.
▶ 長者: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
▶ 處士: 벼슬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
▶ 庸人: 평범한 사람.
▶ 會: 마침. 만나다.
▶ 質: 人質. 볼모.
▶ 燕太子 丹: 燕의 마지막 태자이다. 燕王 喜의 아들이다. 성이 姬, 휘는 丹이다. 태자 丹이 어린 시절 趙에 보내졌다. 그 뒤에 秦의 볼모로 가게 된다. 태자 단이 秦에 볼모 생활에 반감을 품다가 燕으로 도망쳐 온다.
▶ 秦王 政: 嬴政. 후일의 秦始皇. 통일 秦의 開國皇帝이자 탁월한 정치가, 전략가, 개혁가이다.
秦莊襄王의 아들로 趙의 수도인 邯鄲에서 출생하였다. 13세에 王位를 계승했고, 39세에 皇帝를 칭하였다.
▶ 三晉: 韓, 趙, 魏의 3국을 말한다.
▶ 稍: 점점.
▶ 鞠武: 태자 단의 사부.
▶ 厲: 사납다.
▶ 兵革: 전쟁. 무기의 총칭.
▶ 見陵: 업신여기다. 見은 당하다.
▶ 批: 거스르다. 批: 거스를 ‘별’.
▶ 逆鱗: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란 뜻으로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居有閒,秦將樊於期得罪於秦王,亡之燕,太子受而捨之。
얼마 후에 秦將 樊於期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燕으로 망명하여 오자 태자가 그를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
鞠武諫曰:
국무가 간언하였다.
「不可。
“안 됩니다.
夫以秦王之暴而積怒於燕,足為寒心,又況聞樊將軍之所在乎?
저 흉포한 秦王이 燕에 분노를 쌓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기에 족한데, 하물며 번장군의 소재를 앎이겠습니까?
是謂『委肉當餓虎之蹊』也,禍必不振矣!
이것을 일러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 고기를 던져 놓는다.’
라고 하니 재앙을 틀림없이 떨치지 못할 터입니다!
雖有管、晏,不能為之謀也。
비록 管仲과 晏嬰이 있다 해도 그것을 도모하지 못할 터입니다.
願太子疾遣樊將軍入匈奴以滅口。
태자께서는 속히 번장군을 匈奴에 보내어 秦의 침략 구실을 없애십시오.
請西約三晉,南連齊、楚,北購於單于,其後乃可圖也。」
청하건대 서쪽으로 삼진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 齊 및 楚와 연합하고, 북쪽으로 單于와 강화하면 그 후에 비로소 도모할 수 있습니다.”
太子曰:
「太傅之計,曠日彌久,心惛然,恐不能須臾。
且非獨於此也,夫樊將軍窮困於天下,歸身於丹,丹終不以迫於彊秦而棄所哀憐之交,置之匈奴,是固丹命卒之時也。
願太傅更慮之。」
태자가 말하였다.
“태부의 계책은 헛되이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제 마음이 어지러우니, 두려워 잠시도 견디지 못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저 번장군이 천하에 곤궁한 처지가 되어 내게 몸을 맡겼는데, 나는 끝까지 강성한 秦의 핍박 때문에 애처롭고 불쌍한 친구를 저버리고 흉노로 보내지 않을 터이니, 그것은 내 목숨이 끝날 때일 터입니다.
태부께서는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鞠武曰:
「夫行危欲求安,造禍而求福,計淺而怨深,連結一人之後交,不顧國家之大害,此所謂『資怨而助禍』矣。
국무가 말하였다.
“무릇 위태로움을 행하며 안전을 찾고, 재앙을 만들며 복을 구하고, 계책이 얕게 하여 원망이 깊게 하고, 한 사람과 뒤늦은 교제를 맺기 위하여 국가의 큰 피해를 돌보지 않음이 소위 ‘원망을 쌓아 재앙을 도움’입니다.
夫以鴻毛燎於爐炭之上,必無事矣。
화로의 숯불 위에 기러기의 털을 태우면 틀림없이 아무 일도 없을 터입니다.
且以鵰鷙之秦,行怨暴之怒,豈足道哉!
그러나 사나운 독수리 같은 秦이 원망과 사나움의 분노를 행사하면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燕有田光先生,其為人智深而勇沈,可與謀。」
燕에 전광 선생이 계시는데 그 사람됨이 지혜가 깊고 용감하며 침착하니 함께 의논할 만합니다.”
太子曰:
「願因太傅而得交於田先生,可乎?」
태자가 말하였다.
“태부의 소개로 전광 선생과 사귀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鞠武曰:
「敬諾。」
국무가 대답하였다.
“삼가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出見田先生,道「太子願圖國事於先生也」。
나가서 전선생을 만나 ‘태자께서 선생과 국가의 일을 도모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하였다.
田光曰:
「敬奉教。」
전광이 말하였다.
“삼가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乃造焉。
전광이 태자를 만나러 갔다.
太子逢迎,卻行為導,跪而蔽席。
태자가 田光을 영접함에 뒷걸음치며 인도하고 무릎을 꿇고 자리의 먼지를 털었다.
田光坐定,左右無人,太子避席而請曰:
「燕秦不兩立,願先生留意也。」
전광이 자리에 앉자 좌우에는 사람이 없었으며 태자가 자리를 양보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燕과 秦이 양립할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유의하여 주십시오.”
田光曰:
「臣聞騏驥盛壯之時,一日而馳千里;
至其衰老,駑馬先之。
今太子聞光盛壯之時,不知臣精已消亡矣。
雖然,光不敢以圖國事,所善荊卿可使也。」
전광이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준마는 기운이 왕성할 때 하루에 천 리를 달리나,
늙고 쇠약해지면 둔한 말이 준마를 앞선다고 합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제가 기운이 왕성할 때의 일을 들었으나 신의 정력이 이미 소진되었음을 알지 못하십니다.
비록 그렇지만 제가 감히 국사를 도모할 수는 없어도, 잘 지내는 형경은 부릴 만합니다.”
太子曰:
「願因先生得結交於荊卿,可乎?」
태자가 말하였다.
“선생을 통하여 형경과 交遊를 맺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田光曰:
「敬諾。」
전광이 대답하였다.
“삼가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即起,趨出。
즉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太子送至門,戒曰:
「丹所報,先生所言者,國之大事也,願先生勿泄也!」
태자가 문까지 나와 전송하며 주의시켰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선생께서 말한 것은 국가의 대사이니 선생께서는 누설하지 마십시오!”
田光俛而笑曰:
「諾。」
전광이 머리를 숙이고 웃으며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僂行見荊卿,曰:
「光與子相善,燕國莫不知。
今太子聞光壯盛之時,不知吾形已不逮也,幸而教之曰『燕秦不兩立,願先生留意也』。
光竊不自外,言足下於太子也,願足下過太子於宮。」
전광이 구부정한 몸으로 가서 형경을 만나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와 서로 친함을 燕에 모르는 사람이 없소.
지금 태자께서 내가 壯盛할 때의 일만 듣고, 내 몸이 이미 미치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 영광스럽게도 내게 ‘燕과 秦이 양립할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유의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소.
나는 삼가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지 않고 태자에게 귀하를 추천했으니, 귀하는 궁궐로 가서 태자를 만나보시오.”
荊軻曰:
「謹奉教。」
형가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田光曰:
「吾聞之,長者為行,不使人疑之。
今太子告光曰:『所言者,國之大事也,願先生勿泄』,是太子疑光也。
夫為行而使人疑之,非節俠也。」
전광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長者가 일함에, 남이 의심하지 않게 한다고 하였소.
그런데 태자께서 내게 고하기를 ‘우리가 말한 것은 국가의 대사이니 선생께서는 누설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했으니, 태자가 나를 의심하였소.
무릇 행동함에 남을 의심하게 함은 절조 있는 俠行이 아니오.”
欲自殺以激荊卿,曰:
「願足下急過太子,言光已死,明不言也。」
자살하여 형경을 격려하고자 하며 말하였다.
“귀하는 속히 태자를 찾아가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누설하지 않음을 밝혀 주시오.”
因遂自刎而死。
마침내 自刎하여 죽었다.
荊軻遂見太子,言田光已死,致光之言。
형가가 태자를 만나서 전광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며 전광의 말을 전하였다.
太子再拜而跪,膝行流涕,有頃而後言曰:
「丹所以誡田先生毋言者,欲以成大事之謀也。
今田先生以死明不言,豈丹之心哉!」
태자가 재배하고 무릎을 꿇고 기면서 눈물을 흘리더니 잠시 후에 말하였다.
“내가 전광 선생에게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이유는 대사의 계책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광 선생께서 죽음으로 누설하지 않음을 밝혔으니 어찌 제 본심이겠습니까!”
▶ 樊於期: 秦將으로 평소 丞相 呂不韋를 미워하여 모반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燕으로 도망왔다. 번오기는 자결하여 형가에게 자신의 목을 秦王에게 바치게 하고 그 틈을 타서 秦王을 찔러 죽이도록 하였다.
▶ 舍: 와서 살게 하다.
▶ 寒心: 소름이 끼치다. 오싹하다.
▶ 委肉當餓虎之蹊: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 고기를 던져 놓는다.’委는 내던지다. 蹊는 좁은 길. 餓虎之蹊는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로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뜻.
▶ 滅口: 구실을 없애다.
▶ 管晏: 管仲과 晏子. 管仲은 춘추시대 때 齊桓公을 도와 霸者가 되게 하였다. 晏子는 齊景公을 도운 賢相. <晏子春秋>를 남겼다. <史記 管仲晏子列傳>
▶ 單于: 한 나라 때 흉노의 군주를 부르던 말.
▶ 購: 媾와 통하여 강화하다. 화친하다.
▶ 曠日彌久: 헛되이 세월만 오랫동안 보냄.
▶ 惛然: 골머리를 앓다. 근심하고 번민함. 惛은 어리둥절하다. 얼떨떨하다.
▶ 鴻毛: 큰 기러기의 털. 燕의 역량이 박약함을 비유.
▶ 雕鷙: 사나운 독수리. 秦의 사나움을 비유한 것.
▶ 勇沉: 용감하고 침착하다.
▶ 田光: 태자 단이 鞠武의 소개로 田光을 만나 秦王을 찔러 죽일 대책을 논의하자, 전광이 노쇠하다는 핑계로 사양하고 荊軻를 추천해주었으며, 태자가 ‘선생께서는 이 일을 누설하지 마시오.’라고 하니, 전광이 응낙하고 나와서 탄식하기를 ‘행위가 남을 의심하게 함은 節俠이 아니다.’라고 하며 자결함으로써 형가를 격려하였다.
▶ 圖國事於先生: 于(於)는 “…으로부터” “…을 기점으로” 라는 의미로 쓰인다. 허사 于 참조
▶ 乃造焉: 곧 태자를 방문하러 가다. 造는 예를 갖추어 방문하다.
▶ 逢迎: 영접하다.
▶ 卻行: 뒷걸음치다.
▶ 蔽席: 자리의 먼지를 털고 닦다. 蔽는 닦을 ‘별’.
▶ 避席而請: 자기의 자리를 전광에게 양보하고 가르침을 청함. 避席은 윗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여 자리를 양보하다.
▶ 騏驥: 준마. 천리마.
▶ 駑馬: 둔한 말. 걸음이 느린 말.
▶ 趨: 종종걸음 치다.
▶ 俛: 俯와 같다. 숙이다. 굽히다.
▶ 僂行: 구부정한 모습으로 가다.
▶ 不逮: 미치지 못하다. 이르지 못하다.
▶ 竊: 저의 의견.
▶ 節俠: 절조가 있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
▶ 自刎: 스스로 목을 베어 죽다.
▶ 膝行: 무릎을 꿇고 나아가다.
荊軻坐定,太子避席頓首曰: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자리를 양보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田先生不知丹之不肖,使得至前,敢有所道,此天之所以哀燕而不棄其孤也。
“전선생이 제가 못났음을 모르고 그대 앞에 가서 감히 말할 기회를 주었으니, 이는 하늘이 燕을 불쌍히 여기고 그 아들을 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今秦有貪利之心,而欲不可足也。
지금 秦은 이익을 탐내는 마음을 가져, 욕심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非盡天下之地,臣海內之王者,其意不厭。
천하의 땅을 모두 빼앗지 아니하고 온 세상의 왕을 신하로 삼지 않고서는 그 뜻이 충족되지 않을 터입니다.
今秦已虜韓王,盡納其地。
지금 秦은 이미 韓王을 사로잡고 그 땅을 모두 거두어들였습니다.
又舉兵南伐楚,北臨趙;
王翦將數十萬之眾距漳、鄴,而李信出太原、雲中。
또 軍을 일으켜 남쪽으로 楚를 침공하고 북쪽으로 趙릉 공격하여, 王翦이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漳水와 鄴에서 대치하고, 李信이 太原과 雲中에 출병했습니다.
趙不能支秦,必入臣,入臣則禍至燕。
趙는 秦을 막아내지 못하고 틀림없이 入朝하여 신하가 될 터이며, 신하가 되어 섬기면 재앙이 燕에 미칠 터입니다.
燕小弱,數困於兵,今計舉國不足以當秦。
燕은 작고 약해서 자주 전쟁에 시달려서, 지금 온 나라의 힘을 계산하여도 秦을 당해내기에 부족합니다.
諸侯服秦,莫敢合從。
제후는 秦에 복종하여 감히 합종하지 못합니다.
丹之私計愚,以為誠得天下之勇士使於秦,闚以重利;
秦王貪,其勢必得所願矣。
저의 사견은 어리석으나, 진실로 천하의 용사를 얻어 秦에 사신으로 보내고 커다란 이익으로 유인하려 합니다.
진왕이 이익을 탐하면 그 형세상 틀림없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터입니다.
誠得劫秦王,使悉反諸侯侵地,若曹沫之與齊桓公,則大善矣;
則不可,因而刺殺之。
만약 진왕을 위협하여 제후에게 침범한 땅을 모두 돌려주게 한다면, 曹沫이 齊桓公에게 한 것처럼 가장 좋은 방법이며,
할 수 없다면 기회를 봐서 그를 찔러서 죽입니다.
彼秦大將擅兵於外而內有亂,則君臣相疑,以其閒諸侯得合從,其破秦必矣。
저 秦將들은 외지에서 멋대로 군대를 부리니 내부에서 난이 일어나면, 군주와 신하가 서로 의심할 터이므로, 그 틈에 제후들이 합종하면, 秦을 무찌름을 기필하겠습니다.
此丹之上願,而不知所委命,唯荊卿留意焉。」
이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이지만, 목숨을 맡길 사람을 알지 못하니 형경은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不肖: 무능하다.
▶ 不棄其孤: 無父稱孤。時燕王尚在,而丹稱孤者,或記者失辭,或諸侯嫡子時亦僭稱孤也。
아비가 없는 것을 ‘孤’라 한다. 이 때 연나라 왕이 오ㄹ히려 생존해 있었는데도 단이 ‘孤’라 말한 것은 혹 기록한자가 잘못 말한 것이거나 혹은 제후의 적자 때 또한 ‘孤’를 참칭한 때문일 것이다.
▶ 非: 옳지 않다고 여기다.
▶ 厭; 마음에 차다. 만족하다.
▶ 虜韓王: 秦始皇 17년에 內史 勝을 보내 韓을 멸하고 韓王 安을 사로잡았다.
▶ 李信: 秦의 장군.
▶ 太原雲中: 太原은 山西省 중‧북부 일대. 雲中은 내몽골의 동‧남부.
▶ 入臣: 秦에 들어가 신하로 자칭하다.
▶ 合從: 즉 合縱. 동쪽의 6개국이 연합하여 秦에 대항하는 정책.
▶ 誠: 만약.
▶ 闚: 꾀다. 유인하다.
▶ 曹沫: 魯의 장군으로 齊桓公과 魯가 맹약하는 자리에서 齊桓公을 칼로 위협하여 魯가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 <사기 권86자객열전>
▶ 擅: 멋대로 하다. 장악하다.
久之,荊軻曰:
「此國之大事也,臣駑下,恐不足任使。」
한참 후 형가가 말하였다.
“이것은 나라의 대사인데 신은 노둔하고 낮아서, 使臣을 맡기에는 아마 부족할 터입니다.”
太子前頓首,固請毋讓,然後許諾。
태자가 앞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하지 말라고 완고히 청한 뒤에야 허락하였다.
於是尊荊卿為上卿,舍上舍。
이에 형가를 높여 上卿으로 삼고 상등급의 객사에 머물게 하였다.
太子日造門下,供太牢具,異物閒進,車騎美女恣荊軻所欲,以順適其意。
태자는 날마다 문 앞에 가서 太牢의 음식을 대접하고 기이한 물건을 틈틈이 올리며, 수레와 미인으로 형가가 원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게 하여, 그의 뜻에 따르고 맞추어 주었다.
▶ 駑下: 재능이 모자라 남에게 뒤떨어짐. 천하고 둔함.
▶ 太牢: 太牢의 음식. 牛‧羊‧豕의 三牲을 모두 사용한 요리. 또는牛‧羊‧豕중에서 쇠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 恣: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하다.
▶ 順適: 거스르지 않고 좇음.
久之,荊軻未有行意。
오래되어도 형가에게 출발할 뜻이 없었다.
秦將王翦破趙,虜趙王,盡收入其地,進兵北略地至燕南界。
秦將 王翦이 趙를 무찌르고 조왕을 포로로 잡아 영토를 모두 거두어들이고, 進軍하여 북쪽으로 땅을 탈취하고 燕의 남쪽 경계에 이르렀다.
太子丹恐懼,乃請荊軻曰:
「秦兵旦暮渡易水,則雖欲長侍足下,豈可得哉!」
태자 단은 두려워하여 형가에게 청하였다.
“秦軍이 조만간에 역수를 건너오면, 비록 그대를 오래 모시고 싶어도 어찌 가능하겠소!”
荊軻曰:
형가가 말하였다.
「微太子言,臣願謁之。
“태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신이 아뢰기를 원했습니다.
今行而毋信,則秦未可親也。
지금 가더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진과 친할 수가 없습니다.
夫樊將軍,秦王購之金千斤,邑萬家。
저 번오기 장군은 진왕이 1천 근의 황금과 1만 호의 식읍을 내걸었습니다.
誠得樊將軍首與燕督亢之地圖,奉獻秦王,秦王必說見臣,臣乃得有以報。」
만약 번장군의 수급과 燕 督亢의 지도를 얻어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쁘게 신을 만날 터이니, 신은 비로소 태자께 보답할 수 있겠습니다.”
太子曰:
「樊將軍窮困來歸丹,丹不忍以己之私而傷長者之意,願足下更慮之!」
태자가 말하였다.
“번장군은 곤궁하여 나에게 와서 몸을 맡겼는데, 내 사사로움으로 長者의 뜻을 차마 해치지 못하니, 선생은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 王翦: 秦의 名將. 秦始皇의 천하통일 때 趙와 燕을 공격하였다.
▶ 北略地: 북쪽 땅을 탈취하다. 略은 탈취하다.
▶ 旦暮: 조만간. 단시간.
▶ 微太子言: 태자가 말하지 않아도. 微는 없다의 뜻.
▶ 謁: 알현하다. 설명하다.
▶ 樊於期: 秦將으로 평소 丞相 呂不韋를 미워하여 모반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燕으로 도망왔다.
▶ 購: 걸다.
▶ 督亢: 戰國時代 燕의 가장 좋은 沃士. 하북성 河北省 涿縣 동남쪽의 비옥한 땅.
▶ 不忍: 차마 하기가 어려움.
荊軻知太子不忍,乃遂私見樊於期曰:
「秦之遇將軍可謂深矣,父母宗族皆為戮沒。
今聞購將軍首金千斤,邑萬家,將柰何?」
형가는 태자가 차마 하지 못함을 알았으므로 사적으로 번오기를 만나 말하였다.
“秦이 장군을 대우함이 잔혹하다고 이를 만하여, 부모와 종족은 모두 몰살당하였습니다.
지금 듣기에, 장군의 수금에 1천 근의 금과 1만 호의 식읍을 내걸었다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실 겁니까?”
於期仰天太息流涕曰:
「於期每念之,常痛於骨髓,顧計不知所出耳!」
번오기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골수에 사무치도록 괴로운데, 돌아보아도 계책이 나올 바를 모를 뿐이오!”
荊軻曰:
「今有一言可以解燕國之患,報將軍之仇者,何如?」
형가가 말하였다.
“지금 단 한마디로 燕의 근심을 해결하고 장군의 원한을 갚을 방법이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於期乃前曰:
「為之柰何?」
번오기가 앞으로 다가서며 말하였다.
“어찌해야 합니까?”
荊軻曰:
「願得將軍之首以獻秦王,秦王必喜而見臣,臣左手把其袖,右手揕其匈,然則將軍之仇報而燕見陵之愧除矣。
將軍豈有意乎?」
형가가 말하였다.
“장군의 수급을 얻어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은 분명 기뻐하여 신을 만날 테니, 신이 왼손으로 그의 옷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燕이 능멸당한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장군은 뜻이 있습니까?”
樊於期偏袒搤捥而進曰:
「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乃今得聞教!」
번오기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한 손으로 다른 쪽 팔뚝을 움켜잡고 나서며 말하였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切齒腐心함인데, 이제야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遂自剄。
그리고는 自刎하였다.
太子聞之,馳往,伏尸而哭,極哀。
태자가 듣고 달려와서 시체에 엎드려 곡하며 매우 슬퍼하였다.
既已不可柰何,乃遂盛樊於期首函封之。
이미 어쩔 수 없어서 마침내 번오기의 수급을 상자에 담고 봉하였다.
於是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得趙人徐夫人匕首,取之百金,使工以藥焠之,以試人,血濡縷,人無不立死者。
이에 태자는 미리 천하의 예리한 匕首를 구하다가, 趙 사람 徐夫人의 비수를 찾아 백금으로 얻고, 匠人을 시켜 독약을 바르고 사람에게 시험하니, 피가 배어 나오며 선 채로 죽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乃裝為遣荊卿。
이에 행장을 갖추어 형경을 보내기로 하였다.
燕國有勇士秦舞陽,年十三,殺人,人不敢忤視。
燕에 勇士 秦舞陽이 있었는데 열세 살에 살인하니, 사람들이 감히 흘겨보지도 못하였다.
乃令秦舞陽為副。
이에 진무양을 副使로 삼았다.
荊軻有所待,欲與俱;
其人居遠未來,而為治行。
형가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함께 가려고 했는데,
그 사람의 거처가 멀어 아직 오지 못했으나 행장은 준비하였다.
頃之,未發,太子遲之,疑其改悔,乃復請曰:
「日已盡矣,荊卿豈有意哉?
丹請得先遣秦舞陽。」
얼마 동안 출발하지 않자, 태자는 지체됨이 그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한다고 의심하여 거듭 청하였다.
“날짜가 이미 다했거늘 형경은 출발할 뜻이 있으십니까?
저는 진무양을 먼저 보냈으면 합니다.”
荊軻怒,叱太子曰:
「何太子之遣?
往而不返者,豎子也!
且提一匕首入不測之彊秦,仆所以留者,待吾客與俱。
今太子遲之,請辭決矣!」
형가가 노하여 태자를 꾸짖었다.
“태자께서는 누구를 보낸단 말씀입니까?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데 풋내기라니요!
비수 한 자루를 들고 不測의 강한 秦에 들어감에, 제가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제 손님을 기다려 함께 가려 함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지체한다고 하시니 이만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
遂發。
그리고는 마침내 출발하였다.
太子及賓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
태자와 빈객 중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모두 흰 衣冠을 하고 형가를 배웅하였다.
至易水之上,既祖,取道,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士皆垂淚涕泣。
易水에 이르러서 路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길에 오르니,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며 變徵調로 노래를 하자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又前而為歌曰:
「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노래하였다.
“바람은 쓸쓸함이여, 易水가 차도다, 壯士가 한 번 감이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復為羽聲慨,士皆瞋目,發盡上指冠。
다시 강개한 羽調로 변하니 듣는 선비들은 모두 눈을 부릅뜨니 머리카락이 관을 찌를 정도였다.
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
이에 형가가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 深: 잔혹함.
▶ 揕其匈: 가슴을 찌르다. 揕은 찌르다. 匈은 胸과 같다.
▶ 偏袒搤捥: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한쪽 손으로 한쪽 팔뚝을 잡다. 매우 분하여 벼르는 모습을 말한다. 搤은 扼(잡을 ‘액’)과 같다. 捥은 腕(팔뚝 ‘완’)과 같다.
▶ 切齒腐心: 복수에 뜻을 두고 이를 갈며 속을 썩이다.
▶ 函封: 상자에 넣고 봉하다.
▶ 盛: 넣다. 수용하다.
▶ 徐夫人: 칼 만들던 남자 대장장이. 徐는 姓, 夫人은 이름.
▶ 以藥焠之: 비수에 독성액체를 묻히다. 焠는 담금질 ‘쉬’.
▶ 血濡縷: 핏발이 배어 나오다.
▶ 秦舞陽: 燕의 명장. 舞는 武로도 쓴다.
▶ 忤視: 흘겨 봄. 거슬러 봄. 忤는 거스르다.
▶ 治行: 행장을 준비하다.
▶ 豎子: 나이 어린 종. 풋내기.
▶ 仆: 저.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
▶ 辭決: 오래도록 헤어지다.
▶ 易水: 河北省의 易縣에서 흐르는 강.
▶ 祖: =祖餞. 송별하다. 출행 때 路神에게 제사하는 것을 祖, 飮杯하는 것을 餞이라 한다.
▶ 變徵: 7음의 하나. 오음 宮‧商‧角‧徵‧羽에 變徵와 變宮을 합해 7음이 된다. 徵의 變調
▶ 羽聲: 7음의 하나로 느낌이 격앙되고 비장하다.
▶ 瞋目: 눈을 부라리다. 두 눈을 부릅뜸.
▶ 發盡上指冠: 머리카락이 관으로 치솟다는 뜻으로 과장된 표현이다.
遂至秦,持千金之資幣物,厚遺秦王寵臣中庶子蒙嘉。
마침내 秦에 도착하여 천금의 예물을 가지고 진왕의 총신 中庶子 蒙嘉에게 후하게 주었다.
嘉為先言於秦王曰:
「燕王誠振怖大王之威,不敢舉兵以逆軍吏,願舉國為內臣,比諸侯之列,給貢職如郡縣,而得奉守先王之宗廟。
恐懼不敢自陳,謹斬樊於期之頭,及獻燕督亢之地圖,函封,燕王拜送于庭,使使以聞大王,唯大王命之。」
몽가가 미리 진왕에게 말하였다.
“燕王이 참으로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하며 감히 軍을 일으켜 우리 軍에 거스르지 못하고 온 나라를 들어 內臣이 되어 제후의 행렬에 나란히 하고, 郡縣처럼 공물을 바치며 선왕의 종묘를 받들어 지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려운 나머지 감히 스스로 아뢰지 못하고, 삼가 樊於期의 머리를 베고 燕 독항의 지도를 바침에 미쳐, 상자에 봉하고 燕王이 조정에서 拜送하며 사신을 보내어 대왕에게 아뢰게 하였으니, 대왕께서 하명하시기 바랍니다.”
秦王聞之,大喜,乃朝服,設九賓,見燕使者咸陽宮。
진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며 朝服을 갖춰 九賓의 예를 베풀며 燕 사자를 咸陽宮에서 만났다.
荊軻奉樊於期頭函,而秦舞陽奉地圖柙,以次進。
형가는 번오기의 머리가 든 상자를 받들고 진무양은 지도가 든 상자를 받들며 차례로 앞으로 나아갔다.
至陛,秦舞陽色變振恐,群臣怪之。
계단에 이르러 진무양의 얼굴빛이 변하며 두려움에 떨자 신하들이 괴이하게 여겼다.
荊軻顧笑舞陽,前謝曰:
「北蕃蠻夷之鄙人,未嘗見天子,故振慴。
願大王少假借之,使得畢使於前。」
형가가 진무양을 돌아보고 웃으며 나아가 사죄하였다.
“북쪽 藩屛 오랑캐의 천한 사람이라 아직 천자를 뵌 적이 없으므로 두려워하며 벌벌 떱니다.
부디 대왕께서는 조금 용서하시어 대왕 앞에서 사신의 임무를 마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資: 가치.
▶ 蒙嘉: 진왕 정의 中庶子로, 秦의 명장인 蒙恬의 동생. 형가가 1천금의 값진 예물을 진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 中庶子 蒙嘉에게 뇌물로 바쳐 몽가는 형가에게 유리한 말로 진왕에게 형가를 소개하였다. 中庶子는 관직명.
▶ 振怖: 내심으로 두려워하다.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다. 怖는 두려워하다.
▶ 比諸侯之列: 제후의 행렬에 동참하다. 比는 서다. 견주다.
▶ 貢職: 貢物.
▶ 九賓: 외교상의 최고의 예우를 말함. 구빈은 임금이 우대하는 아홉의 손님. 公ㆍ侯ㆍ伯ㆍ子ㆍ男ㆍ孤ㆍ卿ㆍ大夫ㆍ士를 일컬음
▶ 咸陽宮: 秦孝公이 咸陽으로 천도하여 商鞅의 건의로 지금의 陝西省 咸陽縣에 지은 궁궐.
▶ 色變: 안색이 변하다.
▶ 顧笑: 돌아보며 웃다.
▶ 北蕃蠻夷: 북쪽 변방의 오랑캐.
▶ 假借: 관용을 베풀다. 구실 삼다.
秦王謂軻曰:
「取舞陽所持地圖。」
진왕이 형가에게 말하였다.
“진무양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가져오시오.”
軻既取圖奏之,秦王發圖,圖窮而匕首見。
형가가 지도를 가져다 바치자 진왕이 지도를 펼쳤고, 지도를 펼친 끝에 비수가 나타났다.
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
이에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쥐고 진왕을 찔렀다.
未至身,秦王驚,自引而起,袖絕。
비수가 몸에 닿기 전에 진왕이 놀라서 몸을 당겨 일어나자 소매가 잘렸다.
拔劍,劍長,操其室。
진왕이 칼을 뽑으려고 했으나 칼이 길어 칼집을 잡았다.
時惶急,劍堅,故不可立拔。
때는 황급한 데 칼이 꽉 꽂혀있었으므로 즉시 칼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荊軻逐秦王,秦王環柱而走。
형가가 진왕을 쫓자 진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群臣皆愕,卒起不意,盡失其度。
신하들이 모두 놀랐으나 뜻밖의 일이 갑자기 일어났기에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而秦法,群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
諸郎中執兵皆陳殿下,非有詔召不得上。
秦의 법에, 궁전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사소한 무기조차 지녀서는 안 되며,
郎中들이 무기를 가지고 궁전 아래에 늘어서 있으나 왕의 부름이 있지 않으면 올라올 수 없었다.
▶ 發圖: 지도를 펼치다.
▶ 窮: 끝.
▶ 室: 칼집을 말한다.
▶ 卒: 猝(갑자기‘졸’)과 통하여 갑자기. 돌연히.
▶ 度: 상태.
方急時,不及召下兵,以故荊軻乃逐秦王。
바야흐로 다급한 때이라서, 아래에 있는 병사를 부르지 못하였으므로, 형가가 진왕을 쫓았다다.
而卒惶急,無以擊軻,而以手共搏之。
갑자기 황급하니, 신하들이 형가를 공격할 것이 없어서 맨손으로 형가를 공격하였다.
是時侍醫夏無且以其所奉藥囊提荊軻也。
이때 侍醫 夏無且가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秦王方環柱走,卒惶急,不知所為,左右乃曰:
「王負劍!」
진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나며 갑작스럽고 황급하여 할 바를 알지 못했는데 측근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
負劍,遂拔以擊荊軻,斷其左股。
칼을 등에 져서 칼을 뽑아 형가를 쳐서 그 왼쪽 허벅지를 끊었다.
荊軻廢,乃引其匕首以擿秦王,不中,中桐柱。
형가가 쓰러지며 그 비수를 당겨 진왕에게 던졌으나 적중하지 않았고 오동나무 기둥을 맞혔다.
秦王復擊軻,軻被八創。
진왕이 다시 형가를 치니 형가는 여덟 군데의 상처를 입었다.
▶ 提: 던지다. 던져서 때리다.
▶ 負劍: 긴 칼을 차고 있을 때 쉽게 빼기 위하여 등에 지는 것을 말함.
▶ 股: 넓적다리. 허벅지.
▶ 擿: 던지다.
軻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踞以罵曰:
「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
형가가 일이 실패함을 스스로 알고 기둥이 기대어 웃다가 다리를 뻗고 앉아 꾸짖었다.
“일을 이루지 못함은, 너를 생포하고 협박하여 반드시 약속을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기 때문이다.”
於是左右既前殺軻,秦王不怡者良久。
이에 측근이 몰려가서 형가를 죽였으나 진왕은 오래도록 불쾌해하였다.
已而論功,賞群臣及當坐者各有差,而賜夏無且黃金二百溢,曰:
「無且愛我,乃以藥囊提荊軻也。」
그 후에 공을 논하여, 신하들에게 상을 줌과 죄지은 자에게 벌을 줌에 각각 차이가 있었는데, 하무저에게는 황금 2백 溢을 하사하며 말하였다.
“무저는 나를 사랑한 나머지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 箕踞: 두 다리를 뻗고 앉다.
▶ 坐: 벌을 주다.
於是秦王大怒,益發兵詣趙,詔王翦軍以伐燕。
이에 진왕이 크게 노하여 더욱 출병하여 趙로 보내고 왕전의 軍에 명령하여 燕을 치게 하였다.
十月而拔薊城。
10월이 되자 燕의 도성 薊城을 함락하였다.
燕王喜、太子丹等盡率其精兵東保於遼東。
燕王 喜와 태자 단 등은 정예병을 모두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遼東을 지켰다.
秦將李信追擊燕王急,代王嘉乃遺燕王喜書曰:
「秦所以尤追燕急者,以太子丹故也。
今王誠殺丹獻之秦王,秦王必解,而社稷幸得血食。」
秦將 이신이 연왕을 급히 추격하자 代王 趙嘉는 연왕 희에게 서신을 보냈다.
“秦이 燕을 다급하게 추격함은 태자 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만약 단을 죽여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이 반드시 노여움을 풀어서, 사직은 다행히 제물을 받을 수 있을 터입니다.”
其後李信追丹,丹匿衍水中,燕王乃使使斬太子丹,欲獻之秦。
그 후에 이신이 태자 단을 추격하자 태자 단은 衍水에 숨었는데, 燕왕은 사신을 보내서 태자 단을 참수하여 秦에 바치고자 하였다.
秦復進兵攻之。
그러나 秦은 다시 軍을 보내 燕을 공격하였다.
後五年,秦卒滅燕,虜燕王喜。
5년 뒤 秦은 마침내 燕을 멸망시키고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
其明年,秦并天下,立號為皇帝。
이듬해에 秦은 천하를 통일하고 皇帝라고 칭하였다.
於是秦逐太子丹、荊軻之客,皆亡。
이에 秦이 태자 단과 형가의 빈객을 뒤쫓자 모두 도망쳤다.
高漸離變名姓為人庸保,匿作於宋子。
고점리는 성명을 고치고 남의 머슴이 되어 宋子縣에 숨어서 일하였다.
久之,作苦,聞其家堂上客擊筑,傍偟不能去。
오랫동안 괴롭게 일했는데, 그 집 마루 위에서 손님이 축을 타는 소리를 듣고 방황하며 떠나지를 못하였다.
每出言曰:
「彼有善有不善。」
매번 말하였다.
“저건 잘했는데 저건 못하는군.”
從者以告其主,曰:
「彼庸乃知音,竊言是非。」
종자가 그 주인에게 고하였다.
“저 머슴은 음을 아는지 남몰래 옳고 그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家丈人召使前擊筑,一坐稱善,賜酒。
집 주인이 고점리를 불러서 그의 앞에서 축을 타게 하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칭찬하며 술을 주었다.
而高漸離念久隱畏約無窮時,乃退,出其裝匣中筑與其善衣,更容貌而前。
고점리는 오랫동안 숨어서 두려워하고 검약하여도 다하는 때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물러가서 자신의 짐짝 속에서 축과 좋은 옷을 꺼내 차림새를 고치고 앞으로 갔다.
舉坐客皆驚,下與抗禮,以為上客。
자리에 있던 객들이 모두 놀라며 자리에서 내려와서 대등한 예를 나누고 상객으로 모셨다.
▶ 薊城: 燕의 도읍. 河北省大興縣.
▶ 代王 嘉: 趙가 망하자 趙의 公子嘉가 자립하여 代王이 되었다. 그 후 계속 秦에 항거하였다.
▶ 血食: 피 묻은 산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어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 秦并天下: 秦은 三晉 및 楚를 멸한 후 始皇 25년(기원전222년)에 燕과 趙의 代王 嘉를 멸하고 이듬해 齊를 멸하여 천하통일을 이룩하였다. 진시황26년(기원전221년)
▶ 庸保: 피고용인. 庸은 佣과 같다.
▶ 家丈人: 主人。
▶ 抗禮: 한 편이 기울지 아니한 대등한 예.
使擊筑而歌,客無不流涕而去者。
축을 타고 노래하게 하자, 손님 중에 눈물을 흘리며 떠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宋子傳客之,聞於秦始皇。
宋子에서 그를 서로 손님으로 모시니 진시황에게 알려졌다.
秦始皇召見,人有識者,乃曰:
「高漸離也。」
진시황이 불러서 만나자 어떤 사람이 알아보고 말하였다.
“고점리입니다.”
秦皇帝惜其善擊筑,重赦之,乃矐其目。
진 시황은 그가 축을 잘 탐을 애석히 여기고 죽을죄를 용서하고 그의 눈을 멀게 하였다.
使擊筑,未嘗不稱善。
그리고는 축을 타게 하였는데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稍益近之,高漸離乃以鉛置筑中,復進得近,舉筑樸秦皇帝,不中。
점점 진시황과 친근해지자 고점리는 축속에 납을 넣고, 다시 진시황에게 가까이 갔을 때 축을 들어 진황제를 쳤으나 적중하지 않았다.
於是遂誅高漸離,終身不復近諸侯之人。
이에 결국 고점리를 죽이고 종신토록 제후의 사람과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魯句踐已聞荊軻之刺秦王,私曰:
「嗟乎,惜哉其不講於刺劍之術也!
甚矣吾不知人也!
曩者吾叱之,彼乃以我為非人也!」
魯句踐이 형가가 진왕을 찔렀다는 소문을 듣고는 혼자 말하였다.
“아, 애석하다, 그는 칼로 찌르는 검술을 익히지 못했구나!
심하다, 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함이여!
접때 내가 꾸짖었을 때, 그는 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 터이다!”
▶ 矐其目: 눈을 멀게 하다. 矐(겹눈동자 ‘학’)은 눈을 멀게 하다. 진시황은 고점리를 사면하되 말똥을 태워 눈을 지져 장님이 되게 하였다.
▶ 樸: 치다. 때리다.
▶ 講: 정통하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世言荊軻,其稱太子丹之命,
「天雨粟,馬生角」也,太過。
“세상에서 형가를 말함에 태자 단의 운명을 일컬으며,
‘하늘에서 곡식을 뿌리고 말의 머리에 뿔이 났다.’라고 하는데 과장된 말이다.
又言荊軻傷秦王,皆非也。
또 형가가 진왕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함도 모두 거짓이다.
始公孫季功、董生與夏無且游,具知其事,為余道之如是。
일찍이 公孫季功과 董生은 夏無且와 사귀어서, 그 일을 자세히 아는데 나를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해주었다.
自曹沫至荊軻五人,此其義或成或不成,然其立意較然,不欺其志,名垂後世,豈妄也哉!
曹沫부터 형가에 이르는 다섯 명은 그 義行이 혹은 이루어지고 혹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 목적은 뚜렷했으며 그 뜻을 위배하지도 않았으니, 이름을 후세에 전함이 어찌 망령되겠는가!”
▶ 命: 운명.
▶ 天雨粟,馬生角: <燕丹子>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내가 秦에 볼모로 있을 때 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진왕 정이 말하기를 ‘까마귀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고 말머리에서 뿔이 생겨야 너를 돌아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烏頭白,馬生角,乃許耳.)’라고 하였다. 내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니 까마귀 머리가 휘어지고 말에 또한 뿔이 났다.’”라고 하여 불가능한 일을 비유한 말이다. 雨는 비가 내리다.
▶ 義: 義舉.
▶ 較: 환하다. 명백하다.
▶ 欺: 違背하다.
▶ 妄: 망령되다.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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