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글 文章 (274)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G4gxL/btskiTzV3fN/YHKMoOJQ09CgxbrcwXsaqk/img.png)
리본은 육체나 정신, 정조나 절개를 봉쇄하는 여성의 무기이다. 리본의 미화 부위가 모두 남성의 사심이 파고들 함정인 데 예외가 없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리본 유행은 도덕 재무장의 표현이다. 여성들의 꾸밈새로 리본이 유행하고 있다 한다. 리본 하면 소녀들의 머리를 연상하게 되지만 지금은 노소(老少) 없이 머리며 목둘레, 젖가슴, 팔소매, 허리띠, 치마끈, 심지어 내복, 스타킹이며 들고 다니는 가방, 신발에까지 리본의 미화(美化) 부위가 전신으로 확대되고 있다. 리본을 우리말로 옮기면 매듭이다. 매듭은 뭣인가 묶어서 폐쇄시키는 실용적 가치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흐트러지기 쉬운 머리를 쪽을 찐다든지 댕기를 땋는다든지 하는 것도 매듭이요, 옷고름을 맨다든지 허리띠나 대님을 매는 것도 매듭..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OWSPq/btskfuasfSE/QZkAlidNcNAAgfPRLqlaW0/img.png)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진리는 세상이 좁아지면서 왕성해지고 있는 문물 교류에 중대한 슬기를 암시해 주고 있다. 적화(赤化) 이전의 사이공에서 한국의 고추씨를 뿌린 고추밭을 본 일이 있다. 놀랐던 것은 그것이 고추밭이 아니라 고추나무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땅에서는 겨우 한 자 남짓 자라는 풀에 불과하지만, 같은 씨앗인데도 기후 풍토가 다르면 키를 넘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무명(木棉)도 그렇다. 남방 작물인 무명은 목면(綿), 목화(木花)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사람이 올라가 따야 하는 나무였다. 그것을 기후와 풍토가 다른 한국 땅에 옮겨 심었을 때는 한 자 남짓밖에 자라지 않는 풀이 되고 만다. 강남의 귤을 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 진리는 세상이 좁아지면서 왕성..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9esxT/btskie5oiUB/28DpLfJfNuKTEKcAoYsrEK/img.png)
"만리풍파에 시달려 시장할 테니 약소하나마 거세한 소 세 마리와 닭 50마리, 달걀 1만 개를 주겠노라." 미군에게 선전통고를 하러 간 한국 사신의 말이다.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습속은 세계가 공통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인 사포의 시에 '제우스 크세니오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딴 도시 국가에서 온 손님이면 비록 거지나 도망쳐 온 죄인일지라도 환대하게끔 된 제도를 일컫는다. 이 이인환대(異人歡待)는 로마 시대에 전승되어 손님이면 귀천을 불문하고 목욕부터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며 식사를 대접할 때까지 그의 신분을 물어서는 안 되게끔 돼 있었다. 이 제도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로마 전도가 가능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온 낯선 손님은 악령을 몰고 올 수도 있기에 이를 환대하여 해코지를 하..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bp5ONi/btskeLwZjpU/vIc8D3aMt22qsUF8pB3qJk/img.png)
고려지를 질기다 하여 만지(蠻紙)라 하는데, 누에고치를 넣어 만들었기로 희기가 백설 같고 질기기가 비단 같다. 우리 옛 조선종이가 좋았던 것은 소문이 나 있었다. 중국 문헌인 《박물요람(博物要覽)》에 보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먹(墨)을 먹는 품이 고려지(高麗紙)만큼 겸손한 종이가 없다 했으니 종이에 대한 칭찬치고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송나라에서는 고려지를 제일로 쳐 이를 얻어 글을 쓰는 것이 상류 사회의 자랑이기까지 했다. 중국에 가는 사신들의 선물 가운데 조선종이가 빠지지 않았던 것도 그 명성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에 와 있던 각국 천주당이나 러시아 공관을 방문할 때도 예물로써 조선종이를 들고 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문필용(文筆用)으로뿐만 아니라 질기기로도 세계 제일이었..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EFNa0/btsj6kFz5Ls/h9IBy1iTxcUrlnwkrh1XAK/img.png)
유방을 통한 엄마와 아기의 피부접촉이 하루 4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으면 정서와 지능에 결함이 생긴다는 것을 선조들은 체험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고대 라틴말로 유방(乳房)은 맘마(mamma)였다. 이 맘마는 어머니란 뜻도 되고 또 그곳에서 나는 젖에서 연유하여 食事란 뜻도 된다.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한데 맘마란 말이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영어에 유방이란 말이 따로 없고 가슴(breast)이란 말로 대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젖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이 말랐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유방을 섹스의 일환으로 보았기에 섹스를 준엄했던 기독교 윤리에 저촉되어 이름마저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 있어선 유방을 모성(母性)의 일환으..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Oxrfs/btsj3mxytgr/X8jXaA1CTLxAy1pAuIet9k/img.png)
측문화(厠文化)를 뒤돌아보면 배설물을 멀리 처리하는 원측문화(遠厠文化)와 가깝게 처리하는 근측문화(近厠文化)로 대별할 수 있다. 1백여 년 전만 해도 수세식 변기가 있고 욕조(浴槽), 샤워기가 있으며 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지는 세면대가 갖추어진 화장실은 유럽의 왕후 귀족만이 누릴 수 있었던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수세식 변기가 특허권을 얻은 것은 1775년의 영국에서였는데 공공하수도가 돼 있질 않아 실용화되지 못하다가 1880년대에 들어서야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1백여 년 전 파리의 경우 수세식 변기의 보급률은 20퍼센트에 불과했으며, 그 80년 후인 1968년까지만 해도 겨우 55퍼센트에 불과했으니 의외로 느린 보급속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옛 한국에서처럼 요강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세..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UZXWw/btsj8XP9MF8/e6t123Ac3Brj0bstEyQ62k/img.png)
강에서 날아다니는 새나 산에서 달리는 짐승들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기심 때문이며, 기심을 갖지 않고 천연스러우면 금수와 친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莊子다. 옛날 강가에 한 어부가 살았다. 그는 고기잡이하면서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가까이 와서 놀고 어깨에 올라앉기까지 했다. 그는 해오라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 이튿날 어부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강가에 나갔더니 그토록 많이 날아오던 해오라기가 한 마리도 가까이 날아오질 않았다. 이것은 어부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機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심은 밖으로는 그러하지 않은 체하고 속으로 품는 사심이다. 강에서 날아다니는 새나 산에서 달리는 짐승들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기심 때문이며, 기심을 갖지 않..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eIvYaS/btsj7bIdtHU/tp8m53nccDnBxS7iJ7RBr1/img.png)
공동체로서의 구심력을 잃고 됫박에서 흩어져 나간 콩알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력(引力)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상황에서 백수문이라는 정신민속이 별나게 싱그럽고 새삼스럽기만 하다. 일심동체로 뜻을 모으고 그 뜻을 다지며 기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구심매체로서 '백수(白首文)'이라는 게 있었다. 어느 한 친지의 자제가 돌을 맞거나 서당에 입학을 하면 1천 명의 친지들이 각자 한 자씩 《천자문(千字文)》을 써서 책으로 엮어 그 아이에게 선물함으로써 면학(勉學)과 장수를 축원했던 것도 백수문의 하나다. 백수(白首)는 하얀 머리, 곧 장수(長壽)를 뜻하니 백수문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장수를 기원하는 글이란 뜻이다.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출판판매 주식회사 주최 희귀도서전에 1937년 3월 1일이 돌..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chpa6o/btsj508uQ4c/5vOurvCsdUbeSbwbury9FK/img.png)
지금 생각으로는 가장 가벼운 학대 같지만 선비사회에 있어 이름을 훼손한다는 것은 죽음에 버금가는 모독이요, 불명예요, 고통이었던 것이다. 옛날 관청에 첫 부임을 하면 고참(古參)들이 신참(新參)에게 갖은 학대를 가한 끝에 酒宴 강요하는 악습이 보편화돼 있었다.을이를 '면신례(免新禮)’ 또는 ‘신래침학(新來侵虐)’이라 했는데, 미친 계집의 오줌을 얼굴에 칠하기도 하고 성기를 노출시켜 먹칠을 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발뒤꿈치에 말굽쇠를 박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율곡(栗谷)선생도 이 '면신례'의 희생자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발령을 받았을 때 이 면신례의 학대에 분통을 터뜨리고 사직, 낙향해서 이 폐풍에 대해 상소를 올리고 있다.별의별 학대 가운데 가장 참을 수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webp.q85/?fname=https://blog.kakaocdn.net/dn/dcbgEI/btsj6RpES0L/bGBOH81NQxPGAwDwGdwOKK/img.png)
헌 불을 끄고 새 불로 가는 시간적 필요성에서 한식날만은 불을 써선 안 되도록 되어 있었기에 찬밥 먹는 날이 돼 버린 것이다. 고대 로마의 중심부에 베스터라 불리던 불의 신전(神殿)이 있었다. 그 신전의 복판에 성화대(聖火臺)가 있어 연중 불이 타올랐는데, 매년 정초마다 베스터리스라 불리던 여사제(女司祭)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킨 뒤 헌 불을 끄고 새 불로 갈았다. 그리고 이 새 불을 로마의 모든 귀족과 시민과 노예들이 반화(頻火)받아 오로지이 한 불을 나누어 쓰는 대가족으로 강한 공동체의식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기본의 《로마제국멸망사》에 보면 로마가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16세기까지 끊이질 않고 타올랐던 이 베스터의 성화를 나누어 쓰는 결속된 공동체요, 숙명체라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