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풍파에 시달려 시장할 테니 약소하나마 거세한 소 세 마리와 닭 50마리, 달걀 1만 개를 주겠노라." 미군에게 선전통고를 하러 간 한국 사신의 말이다.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습속은 세계가 공통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인 사포의 시에 '제우스 크세니오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딴 도시 국가에서 온 손님이면 비록 거지나 도망쳐 온 죄인일지라도 환대하게끔 된 제도를 일컫는다. 이 이인환대(異人歡待)는 로마 시대에 전승되어 손님이면 귀천을 불문하고 목욕부터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며 식사를 대접할 때까지 그의 신분을 물어서는 안 되게끔 돼 있었다. 이 제도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로마 전도가 가능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온 낯선 손님은 악령을 몰고 올 수도 있기에 이를 환대하여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원시인의 사고방식이 이인환대를 있게 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손님'이라는 우리말도 바로 이 악령에 존칭을 붙인 말일 가능성이 높다. '손'이란 말은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 네 방위를 돌아다니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귀신이란 뜻이 있으며, 이사할 때나 먼길 떠날 때 손이 없는 날, 손이 들지 않는 방향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선지 우리나라의 이인환대는 별나게 융숭했다. 기마 민족으로 보이는 이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농경 민족으로 보이는 육촌장(六村長)이 받들어 임금으로 모신 것이라든지, 표류해 온 이인 석탈해(昔脫解)에게 공주를 여의어 왕위를 물린 것도 이 이인환대의 고대사적 나타남이다.
신미년(辛未年)에 강화(江華)의 광성포대(廣城砲臺)를 포위한 미군에게 宣戰을 통고하러 간 한국 사신은, "만리풍파에 시달려 시장할 터이니 약소하나마 去勢한 소 세 마리와 닭 50마리, 그리고 달걀 1만 개를 주겠노라." 하고 이 침략자마저도 이인으로서 환대하고 있으니 한국인의 손님 환대는 알아볼 만하다.
심지어는 손님에게 妻妾이나 딸을 제공하여 잠자리를 같이하게 하는 이부시숙(以婦侍宿)이라는 극진한 환대습도 있었다. 고려 태조비인 오(吳)씨도 왕건(王建)의 등극 이전에 시숙을 한 여인이요, '태산이 높다 하되………'의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도 바로 시숙을 한 여인이었다.
옛날에 노자 한 푼 없이 천리 유람길을 나설 수 있었고, 또 여관도 없는데 소금장수, 땜장이들이 숙식 걱정 없이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이 손님 환대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손님 맞을 때 평소에 먹던 것을 보다 정성스럽게 요리해 내놓는 것이 고작인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도배부터 시작하여 집안 단장을 하고 갈비·전골로 경가(傾家)의 대접을 하는 것도 이 전통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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