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지를 질기다 하여 만지(蠻紙)라 하는데, 누에고치를 넣어 만들었기로 희기가 백설 같고 질기기가 비단 같다.
우리 옛 조선종이가 좋았던 것은 소문이 나 있었다. 중국 문헌인 《박물요람(博物要覽)》에 보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먹(墨)을 먹는 품이 고려지(高麗紙)만큼 겸손한 종이가 없다 했으니 종이에 대한 칭찬치고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송나라에서는 고려지를 제일로 쳐 이를 얻어 글을 쓰는 것이 상류 사회의 자랑이기까지 했다. 중국에 가는 사신들의 선물 가운데 조선종이가 빠지지 않았던 것도 그 명성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에 와 있던 각국 천주당이나 러시아 공관을 방문할 때도 예물로써 조선종이를 들고 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문필용(文筆用)으로뿐만 아니라 질기기로도 세계 제일이었다. 중국의 고자(高子)는 '고려지를 질기다 하여 만지(蠻紙)라 하는데, 누에고치를 넣어 만들었기로 희기가 백설 같고 질기기가 비단 같다'고 했다. 얼마나 질겼으면 가죽과 비슷한 종이라 하여 고려지를 등피지(等皮紙)라고까지 불렀을까.
한말 러시아 대장성(大藏省)의 조사보고서인 《한국지(韓國誌)》를 보면 조선종이에 대해 이렇게 써놓고 있다.
한국의 종이는 섬유를 빼어 만들므로 지질이 서양종이처럼 유약하지 않으며 어찌나 질긴지 노끈을 만들어 별의별 공작을 다 한다. 종이에 결이 있어 그 결을 찾아 찢지 않고는 베처럼 찢어지질 않는다.
제지업은 한국에서 가장 발달한 공업에 속하며 중국도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옛부터 중국에 수출하고, 지금도 북경에는 조선종이로 벽을 바르고 사는 대관(大官)들이 많다.
그 질긴 특성 때문에 종이의 용도가 우리나라처럼 다양하게 발달한 나라도 없었다. 우산이나 우모(雨帽)나 부채를 만드는 정도는 약과다. 추위가 닥치면 선비들은 북변(北邊)에서 국경을 지키는 장졸들에게 읽고 난 책들을 모아 보내는 관례가 있었는데, 이 책장을 뜯어 내의, 곧 지의(紙衣)를 지어 입거나 그 종이의 섬유를 풀어 옷솜을 대신하면 그렇게 따스울 수 없다 했다. 紙鞋라 하여 종이로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면 서양 사람은 믿지 않을 것이다.
숙종 9년에 한성판윤(漢成判尹)이 올린 상소에 의하면 근래 한량들이 종이신 신는 것을 멋으로 알아 이를 만들어 파는 자가 많아지고 사대부집에서는 서책(書冊) 도둑질이 심하오니 이 폐단을 엄중히 단속하는 어명을 내려달라고까지 하고 있다. 조선종이로 노끈을 꼬아 만드는 종이세간은 종이신뿐만이 아니다. 불을 켜는 종이등잔도 있고, 물을 담는 종이물통, 종이대야, 종이요강까지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종이로 만들 수 없는 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된다. 이는 좁아지는 국제화 사회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또 우리가 과시할 수 있는, 망각하고 있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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