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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88. 리본과 매듭

耽古樓主 2023. 6. 17. 05:36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리본은 육체나 정신정조나 절개를 봉쇄하는 여성의 무기이다리본의 미화 부위가 모두 남성의 사심이 파고들 함정인 데 예외가 없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리본 유행은 도덕 재무장의 표현이다.

 

여성들의 꾸밈새로 리본이 유행하고 있다 한다. 리본 하면 소녀들의 머리를 연상하게 되지만 지금은 노소(老少) 없이 머리며 목둘레, 젖가슴, 팔소매, 허리띠, 치마끈, 심지어 내복, 스타킹이며 들고 다니는 가방, 신발에까지 리본의 미화(美化) 부위가 전신으로 확대되고 있다.

 

리본을 우리말로 옮기면 매듭이다. 매듭은 뭣인가 묶어서 폐쇄시키는 실용적 가치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흐트러지기 쉬운 머리를 쪽을 찐다든지 댕기를 땋는다든지 하는 것도 매듭이요, 옷고름을 맨다든지 허리띠나 대님을 매는 것도 매듭이다.

 

이 매듭이 실용적 가치에서 상징적 가치로 발전한다. 외계(外界)의 침입자로부터 내계(內界)를 봉쇄 · 방호하는 상징적 의미가 실용적 가치보다 커진 것이다. 이를테면 옛 부녀자들의 주머니끈에는 반드시 장식 매듭이 주렁주렁 달려 있게 마련이다. 그 주머니 매듭은 실용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돈이나 은밀한 사유물을 봉쇄한다는 상징적 가치의 장식이다. 첫날밤 신랑이 신부의 옷고름을 풀어주는 관례도 폐쇄돼 왔던 처녀성을 개방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였다. 부부가 동침을 할 때 반드시 쪽을 풀고 베개를 더불어 하는 것이며, 기방(妓房)에서 비녀를 뽑느냐 마느냐가 수청의 가부를 알리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됐던 것도 바로 매듭이 정조의 봉쇄를 뜻한 때문이다.

 

남자의 리본이랄 넥타이의 기원도 예외는 아니다. 루이 14세에 고용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매듭을 지어 늘어뜨린 목수건이 그 시작인데, 생명을 해치는 마귀를 목으로부터 막아 몸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패였다. 그래서 리본이 여성의 여성다움을 뜻하듯이 넥타이도 남성의 남성다움을 뜻하게 되었다. 파리의 나이트클럽에서는 호스티스로부터 지명받은 남자 손님이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오랜 관습이 돼 있다는데, 만약 노래 부르기를 거절하거나 부끄러워하면 호스티스가 가위를 들고 가 그 손님의 넥타이를 싹둑 잘라버린다. 그럼 손님들의 조소가 터지고 이 손님은 사교계에서 매장당한다.

 

이집트에서 발굴되는 미라의 가슴팍에는 금으로 만든 매듭이 놓여 있게 마련이라는데, 영혼이 시신으로부터 떠나가지 못하게 하는 봉쇄 주술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신을 친친 감아대는 것도 그 봉쇄 주술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전쟁 때 오지에 사는 묘족(苗族) 여인들이 수백 개의 매듭을 맺은 줄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전쟁에 나간 약혼자가 돌아올 날을 하루에 그 매듭 하나씩을 풀어가며 기다린다고 했다. 그 매듭이 다 풀리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딴 남자에게 시집을 가도 된다고 했다.

 

리본은 육체나 정신, 정조나 절개를 봉쇄하는 여성의 무기인 것이다. 이렇게 발생학적으로 보면 여성들의 리본 미화 부위인 머리, 목둘레, 젖가슴, 팔소매, 허리띠, 치마끈, 스타킹, 신발은 그 모두 남성의 사심(邪心)이 파고들 함정인 데 예외가 없음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리본 유행은 그래서 도덕 재무장이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