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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8. 마당바위

耽古樓主 2023. 6. 16. 03:28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정치란 하늘이 두렵지 않고 또한 백성이 두렵지 않은 공개 정치여야 한다는 원리를 이 암대정치와 합문정치가 훌륭하게 수행해 주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황금빛 나는 바위의 성전(聖殿)이다. 기독교도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희생한 신단(神壇)이 바로 그 바위라 하고, 유대교도들은 솔로몬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가 바로 그 바위라 하고, 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승천한 자리가 바로 그 바위라 한다. 하지만 사가(史家)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신정(神政)을 베풀던 현장으로 못박고 있다.

 

이처럼 노천(露天)의 바위에서 신이 내려다보고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정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신전 아래에 있는 아고라도 중인(衆人)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치를 베풀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아고라는 널펀한 바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아테네의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살라미스 해전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강조한 명연설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대 민주주의도 바로 백성들에게 공개된 신성한 바위 위나 신성한 냇가에서 베풀어졌었다. 신라의 육촌장(六村長)들이 군왕(君王)을 민주적으로 추대코자 모인 현장은 알천이라는 냇가였다. 백제 민주주의의 의사당이 바로 政事巖으로 불리는 노천의 바위였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정사암에서 만인이 보고 듣는 가운데 재상들을 선출하고 중대한 국사를 의결했던 것이다.

 

공주(公州) 就利山에 있는 天政臺도 바로 백제시대의 정사암 가운데 하나였다. 백제가 망했을 때 왕족인 부여융(夫餘隆)은 백성이 통곡하는 가운데 천정대에서 신명에게 服屬을 맹세하고 있다.

 

비단 국사뿐 아니라 조그마한 마을을 다스릴 때도 '마당바위'나 '너벙바위'로 불리는 암대(巖臺)에서 민회(民會)를 열었고, 또 그곳에서 임금을 향해 망배(望拜)를 했으며, 또 그곳에서 의병을 모으고 그곳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그곳에다 공금을 횡령한 아전이나 불효자나 간부(姦夫)를 세워놓고 규탄을 하고 재판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도처에 널려 있는 마당바위는 민의를 수렴하던 한국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자랑스런 증거인 것이다.

 

정사를 주무르는 내각(內閣)의 어원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그 역시 공개(開) 정치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정사를 의논하고 결정할 때는 宮門의 다락에서 閤門을 열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진행했었다.그 합(閤)이 각(閣)이 되고 내각이란 말이 그에서 비롯된 것이다. 궁문이나 관문마다 문루, 곧 넓은 다락이 있는 것은 이 오랜 공개정치의 아쉬운 흔적인 것이다.

 

정치란 이처럼 하늘이 두렵지 않고 또한 백성이 두렵지 않은 공개정치여야 한다는 원리를 이 암대정치와 합문정치가 훌륭하게 수행해 주었던 것이다. 다만 원시 민주주의가 군주주의로 옮겨지면서 하늘과 백성을 등지고 구중궁궐 속에 은폐된 정치로 퇴보한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에서 이 공개 원리가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공청회 또는 청문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