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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74. 장인 정신

耽古樓主 2023. 6. 16. 03:22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장인정신이란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자랑을 갖고 또 숙련과 연마의 고된 시련에 긍지를 가지며 자기가 하는 일이나 도구기계에 애착심을 가지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높은 다락에 기대어 독서를 하고 있는데, 수레바퀴를 만드는 편(扁)이란 노인이 다락 아래로 지나가면서 물었다.

 

"환공께서는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옛날 성인들의 책이네."

하고 환공이 대꾸하자,

 

"옛날 사람들의 찌꺼기 같은 걸 읽고 계십니까?"

하고 당돌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환공은 옛 성인에 대해 모독하는 것이 이에 더할 수 있으며, 임금에게 대한 불손이 이에 더할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에 편(扁)은 엎드려 다음과 같이 여쭈었던 것이다.

 

“신은 평생 수레바퀴를 깎아 벌어먹어 온 장인(匠人)이올시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완만하게 깎으면 바퀴가 느슨하고 반대로 급히 깎으면 고정되지 않아 좋은 수레바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손재간에 응하여 마음에 통하는, 그런 감이 잡혔을 때 훌륭한 수레바퀴가 되는 것으로 말이나 글로 나타내고 또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臣)은 이 감을 신의 아들에게 별의별 말을 하고 형용을 했지만 끝내 깨우쳐 줄 수 없었으며 신의 아들은 끝내 전수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서 지금 70이 넘도록 수레바퀴를 깎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 성인들은 그것을 전수하지 못하고 이미 죽고 없는 것이 되며 그렇다면 지금 임금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 성인들의 찌꺼기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로 장인(匠人)만이 가능한 특유한 영역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곧 오랜 체험과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장인의 감(勘)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글로나 말로써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글이나 말은 그 감을 얻는데, 지침(指針)일 수는 있으나 그것 자체는 아니다.

 

감은 많은 시간과 되풀이로 숙련되어 마음과 통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장인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요, 훈장인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전국시대의 명궁(名弓) 기창(起昌)이 명궁으로 감을 잡을 때까지의 숙련 과정을 살펴보자.

그는 아내가 베를 짜는 베틀 아래 누워서 좌우로 부산히 오가는 북을 보고 있기를 2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 북이 움직여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또 그 북이 부산히 움직이는 어느 한 점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게 보이기까지 그만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머리카락에 이 한 마리를 묶어 놓고 하루 종일 그이를 바라보길 3년을 수행했다. 그러고 나니까 감이 잡혀 그 작은 이가 큰 말(馬) 만하게 보였고 활을 쏘면 그 위 적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궁술(弓術)은 글과 말로 통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명궁이 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의 수련으로 마음과 손끝이 민감하게 연결되고 감이 잡혀야 만이 명궁이 되듯이 장인의 기량도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장인정신이란 바로 이 감에서 얻어진 자부심이랄 수가 있다. 상인들처럼 돈만 벌면 된다는 그런 직업의식과는 달리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자랑을 갖고 또 숙련과 연마의 고된 시련에 긍지를 가지며 따라서 자기가 하는 일이나 도구, 기계에 여느 사람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애착심을 갖게 된다.

 

또한 자기 일에 긍지를 갖기에 그 분에 맞는 보상을 주고 안 주고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장인정신이기도 하다. 만약 분에 맞지 않는 보상일 경우에 자신의 보람과 긍지를 훼손하고 모독하는 것으로 여겨 여느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곧 장인이라는 플러스 알파에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임금의식(賃金意識)이 생겨난다.

 

고려자기의 비법(秘法)이 단절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러한 식을 들 수가 있다. 조선조에 들어, 만드는 데 숙련이나 비결이 덜한 백자(白磁)가 생활화되기 시작하자 고려청자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청자의 값을 합리화시켜 시장에서 백자와 경쟁을 했던들 청자의 전통이 단절된다는 법이 없었을 텐데 청자를 만든 장인들의 강한 긍지와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 의식 때문에 몰락하고 굶어가면서까지도 청자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 장인정신이란 그 장인의 테크닉을 전수시켜 준 도제(徒弟) 관계를 중요시하는 정신이다. 기술을 전승시켜 준 사제(師弟) 관계는 의사가족(擬似家族)으로 오히려 親父子 관계보다 심정적으로 도덕적으로 결속되어 있다. 옛날 도제는 스승이 죽으면 삼 년간 心喪을 입는 것이 상식이었다.

 

또한 장인들은 서로의 영역이나 텃세를 존중하여 절대로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곧 신의가 장인정신의 요인이기도 하다. 어느 한 동네에 사는 목수가 다른 동네에 사는 목수보다 재간이 좋다 하여 다른 동네에서 요청이 있더라도 절대로 그 다른 동네에 가서 일한다는 법이 없었다. 서로의 텃세를 존중해 주는 장인정신 때문이다.

 

오지그릇 굽는 장인은 기와도 구울 수 있다. 하지만 기와를 구워서도 안 되고 구워달라고 부탁해서도 안 된다. 또 도배하는 장인에게 문짝을 고쳐달라고 하는 것은 이 장인의 텃세를 침범케 하는 것으로 장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장인끼리의 신의를 침범하는 것이 된다.

 

이 상호 유대를 위해 장인들은 강력한 크래프트 유니온, 곧 조합정신을 발휘했다. 한말 러시아 대장성(大藏省)이 조사 편찬한 <한국지(韓國誌)>에 한국의 장인들 조합 기능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의 장인은 단독으로 종사하질 않고 조합을 만들어 그 우두머리를 두고 이에 특권을 주는 것을 상례로 하고 있다. 그 우두머리는 공동자금을 관리하고 각 장인이 바치는 일정의 장인세를 거두어 정부에 상납함으로써 정부의 횡포나 과다한 요구를 막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 조합의 특색은 상부상조와 협동 연대책임을 조정하는 한편 장인들의 불이익에 집단 저항을 하여서 산업이나 상업에 불황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장인정신에는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 또한 적지 않았다.

 

첫째,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오랜 사회의식 때문에 생겨난 열등감이 그것이다.

둘째, 장인들을 국가기관이나, 세력가나, 지방의 토호(土豪)들이 예속화하였기로 예속 산업을 못 벗어나 자유로운 기량의 발전이나 다양화를 이루는 창조 정신이 결여되고

셋째, 기량에 대한 폐쇄성으로 그 전수에 대한 인색함이며

넷째, 성장하는 산업자본에 대항할 역량이 없어 그에 예속화되므로써 영세성을 면하지 못한 것들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