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秦者, 東周雒陽人也.
소진( ? ~ BC 284)은 東周의 雒陽 사람이다.
東事師於齊, 而習之於鬼谷先生.
스승을 찾아 동으로 제에 가서 鬼谷先生에게서 배웠다.
出游數歲, 大困而歸.
제후에게 유세하기 몇 해, 큰 어려움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 鬼谷先生: 전국 때 제나라의 출신의 縱橫家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는 楚 출신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方城 부근의 穎川 陽城의 鬼谷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鬼谷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다. 鬼谷은 일설에는 지금의 섬서성 涇陽의 扶風의 池陽 부근이라고도 한다. 그의 사상은 黃老의 <心術>에서 출발하였다.
세상의 일을 논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反應> 단계를 거쳐,자기의 마음으로써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揣摩>에 이르러,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게하는 <俾闔>의 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여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祖宗이 되었다.
張儀와 蘇秦은 그의 제자이며 <鬼谷子> 3편이 隋書 經籍志에 실려있으나 일설에는 소진이 저술하고 신비감을 보태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고도 한다.
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 曰 :
「 周人之俗, 治産業, 力工商, 逐什二以爲務.
今子釋本而事口舌, 困, 不亦宜乎 ! 」
형제와 형수, 누이, 처첩 등이 모두 은근히 그를 비웃으며 말하였다.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농업을 주로하고 공업과 상업에 힘을 써서 2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지금 당신은 본업을 팽개치고 입과 혀를 놀리기를 일삼으니, 곤궁함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
蘇秦聞之而慙, 自傷, 乃閉室不出, 出其書徧觀之.
曰 :「 夫士業已屈首受書, 而不能以取尊榮, 雖多亦奚以爲 ! 」
蘇秦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상심하여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며, 책을 꺼내 두루 읽어보더니 말하였다.
“무릇 선비라는 자가 머리를 숙여가면서 글을 배우고서도, 높은 지위나 영예를 얻지 못하면 비록 많은 책을 읽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於是得周書《陰符》, 伏而讀之.
이에 《周書》의 〈陰符經〉을 얻어서 열심히 읽었다.
期年, 以出揣摩, 曰 :
「 此可以說當世之君矣.」
일 년이 지나서 남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법을 터득하고 말하였다.
“이것으로써 당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겠다.”
求說周顯王.
周顯王을 유세하기를 청하였다.
顯王左右素習知蘇秦, 皆少之. 弗信.
현왕의 측근은 평소에 蘇秦을 잘 알고 있어서, 모두 그를 대단치 않게 여기고 믿지 않았다.
▶ 陰符經: 戰國策에 太公 呂尙이 지은 병법서라고 전해지나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전해지는 음부경이라는 책은 황제가 저술하였다. 하며 후에 太公, 范蠡, 鬼谷子, 張良, 諸葛亮, 李筌 등의 주가 달려있는 병법서라기보다는 一種의 道家書이다.
李筌은 입산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당나라 때의 道家다.
▶ 周顯王: 기원전 396년부터 321년까지 재위한 전국시대 동주의 군주로서 周列王의 동생이고 이름은 扁이다.
乃西至秦.
이에 서쪽으로 秦에 갔다.
秦孝公卒. 說惠王曰 :
「秦四塞之國, 被山帶渭, 東有關河, 西有漢中, 南有巴蜀, 北有代馬, 此天府也.
以秦士民之衆, 兵法之敎, 可以呑天下, 稱帝而治.」
秦의 孝公이 죽었으므로 惠王을 유세하였다.
“秦은 사방이 막힌 나라로, 산이 둘러싸고 渭水가 띠를 둘러 동쪽에는 函谷關과 황하가 있고, 서쪽에는 漢中이 있으며, 남쪽에는 巴蜀이 있고, 북쪽에는 代邑과 馬邑이 있어 이는 천연의 府庫입니다.
秦의 백성과 선비에게 병법을 가르치면, 천하를 병탄하여 제왕이라 칭하며 다스릴 수 있을 터입니다. ”
▶ 秦惠王: 재위 기원전 337-311년이다. 진효공의 아들로 태자일 때 商鞅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가 효공이 죽고 진왕의 자리에 오르자 상앙을 반역으로 몰아 거열형에 처하였다.
▶ 馬: 지금의 산서성 朔縣이다.
秦王曰 :
「 毛羽未成, 不可以高蜚 ; 文理未明, 不可以幷兼.」
진왕이 대답하였다.
“새의 깃이 다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지 못하듯이,
우리도 문명의 이치가 밝지 못해 다른 나라를 병합할 수 없소. ”
方誅商鞅, 疾辯士, 弗用.
秦은 바야흐로 商鞅을 죽이고 辯士를 미워하던 터라, 蘇秦을 등용하지 않았다.
乃東之趙.
이에 동쪽의 趙로 갔다.
趙肅侯令其弟成爲相, 號奉陽君.
趙肅侯가 그 아우 成을 재상으로 삼고 奉陽君이라 불렀다.
奉陽君弗說之.
奉陽君도 그를 탐탁게 생각하지 않았다.
▶ 趙肅侯: 재위기간은 기원전 349-326년이다. 이름은 語다. 趙成侯의 태자로 성후가 죽자 공자 紲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워 이김으로써 기원전 349년 趙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齊와 魏 등의 나라와 빈번하게 싸움을 벌였고 북쪽의 雲中과 代를 잇는 장성을 축조하였다. 재위 24년 만에 죽고 아들 武寧王이 즉위하였다.
去游燕, 歲餘而後得見.
燕에 유세하러 간 蘇秦은 일 년여 후에 알현할 수 있었다.
說燕文侯曰 :
蘇秦이 燕文侯에게 유세하였다.
「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九原·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六百乘, 騎六千匹, 粟支數年.
“燕은 동쪽으로 朝鮮과 遼東이 있고, 북쪽으로는 林胡와 樓煩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雲中과 九原이 있고, 남쪽으로 九原와 易水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요, 甲兵은 수십 만에 달하고, 兵車 6백 乘, 騎兵 6천 騎, 몇 년 치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南有碣石鴈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佃作, 而足於棗栗矣.
남쪽으로는 碣石과 鴈門의 풍요함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의 수확이 있어서, 백성이 비록 밭 갈지 않아도 대추와 밤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습니다.
此所謂天府者也.
이것이 이른바 하늘이 준 府庫입니다.
夫安樂無事, 不見覆軍殺將, 無過燕者.
대체로 안락하고 변고가 없으며, 전쟁에 패하여 장수가 죽임을 당하지 않은 나라는 燕밖에 없습니다.
大王知其所以然乎 ?
대왕께서는 그 연유를 아십니까 ?
▶ 燕文侯: 기원전 361년에 즉위하여 333년까지 재위한 전국시대 때 燕 군주로 소진을 기용하여 합종을 행함으로써 秦에 대항하였다.
▶ 碣石: 원래 지금의 하북성 昌黎 북쪽에 있는 갈석산을 말하나, 소진이 말하는 갈석은 史記索隱에 의하면 常山 九門縣에 있다고 하였다. 구문현은 지금의 하북성 蒿城 서북에 있는 태항산맥 줄기에 해당한다.
▶ 應門: 지금의 산서성 북부지방의 대동 일대를 말한다.
夫燕之所以不犯寇被甲兵者, 以趙之爲蔽其南也.
무릇 燕이 외적을 겪지 않고 전화를 입지 않음은 趙가 그 남쪽을 막아주기 있기 때문입니다.
秦趙五戰, 秦再勝而趙三勝.
秦과 趙는 다섯 번 싸워 秦이 두 번 이기고 趙가 세 번 이겼습니다
秦趙相斃, 而王以全燕制其後, 此燕之所以不犯寇也.
秦과 趙는 서로 피폐해졌으므로, 왕께서는 온전한 燕의 국력에 의지하여 趙의 후방을 제압할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燕이 외적을 만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且夫秦之攻燕也, 踰雲中·九原, 過代·上谷, 彌地數千里, 雖得燕城, 秦計固不能守也.
또 秦이 燕을 공격함에 雲中과 九原을 넘고 代邑과 上谷을 통과하여야 하며, 燕까지 수천리나 되니 비록 燕의 城을 얻더라도 秦은 도저히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秦之不能害燕亦明矣.
秦이 燕을 침범하지 못함은 역시 분명합니다.
▶ 犯: 만나다. 겪다
▶ 소진이 燕에 들어가 燕文侯를 만난 해는 문후 즉위 28년 즉 기원전 334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秦이 본격적으로 東進을 추진하기 전으로서 趙와는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단지 秦이 魏와 河西와 河東의 땅을 다투는 과정에서 趙가 魏를 위하여 원군을 보내 진군을 퇴각시킨 일이 2번 정도 있었을 뿐이다. 기원전 364년 秦이 魏의 石門을 공격하여 魏軍 6만의 목을 벴다. 이에 趙가 군사를 일으켜 구원군을 보내자 秦軍이 퇴각하였다.
기원전 363년 秦이 魏의 少梁을 공격하자 趙가 다시 구원을 보내 도왔다.
즉 진과 조가 다섯 번 싸웠다는 소진의 말은 잘못이다.
今趙之攻燕也, 發號出令, 不至十日而數十萬之軍軍於東垣矣.
지금 趙가 燕을 공격함에는, 명령이 떨어지고 열흘도 못 되어 수십만의 군사가 東垣에 집주둔할 터입니다.
渡嘑沱, 涉易水, 不至四五日而距國都矣.
嘑沱河를 건너고 易水를 거쳐 4-5일이 못 되어 燕의 도성에 도달할 터입니다.
故曰
秦之攻燕也, 戰於千里之外 ;
趙之攻燕也, 戰於百里之內.
그러므로 秦이 燕을 공격함은 천리 밖에서 싸우는 것이고,
趙가 燕을 공격함은 백리 안에서 싸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夫不憂百里之患, 而重千里之外, 計無過於此者.
무릇 백리의 근심거리를 걱정하지 않고 천리 밖을 중요시함은, 계책으로서 이보다 더한 過誤는 없습니다.
是故願大王與趙從親, 天下爲一, 則燕國必無患矣.」
이러하므로 대왕께서는 趙와 합종으로 친교를 맺기를 청합니다. 천하가 합종책으로 하나가 되면, 燕에 틀림없이 근심거리가 없을 터입니다."
▶ 距: 도달하다. 상거하다. 거절하다
▶ 東垣: 지금의 하북성의 성도였던 石家庄市 경내에 있었던 고을로 中山國의 영토이었다.
文侯曰 :
「 子言則可, 然吾國小, 西迫彊趙, 南近齊.
齊·趙彊國也, 子必欲合從以安燕, 寡人請以國從. 」
燕文侯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지만 우리나라는 작으면서 서쪽으로 강한 趙에 가깝고, 남쪽은 齊에 근접해 있소.
齊와 趙는 모두 강대국으로, 그대가 합종책으로 燕을 꼭 안정시켜야만, 과인이 國事를 온통 그대를 따라 처리하겠소. ”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이에 蘇秦에게 車馬와 金帛을 주어 趙에 가게 하였다.
而奉陽君已死, 卽因說趙肅侯曰 :
「 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 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敎陳忠於前之日久矣.
雖然, 奉陽君妬而君不任事, 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舍, 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奉陽君이 이미 죽었으므로, 蘇秦은 趙肅侯를 유세하였다.
“천하의 卿相, 人臣, 布衣之士가 모두 대왕의 行義를 고상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모두가 대왕의 앞에서 가르침을 받들어 충성을 바치려고 원한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奉陽君이 어진 이를 질투하여 대왕께서 정사를 맡기지 않으니, 빈객이나 유세하는 선비가 감히 御前에서 자신의 의견을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봉양군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대왕께서 다시 士民과 친하게 되었으므로, 신이 감히 어리석은 의견을 올립니다.
竊爲君計者, 莫若安民無事, 且無庸有事於民也.
삼가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백성이 편안하고 무사함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백성을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安民之本, 在於擇交, 擇交而得則民安, 擇交而不得則民終身不安.
백성을 편안히 하는 근본은 외교입니다. 외교를 잘 하면 백성은 편안하지만, 외교를 잘못 하면 백성이 종신토록 평안하지 못할 터입니다.
請言外患, 齊秦爲兩敵而民不得安, 倚秦攻齊而民不得安, 倚齊攻秦而民不得安.
外患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齊와 秦이 趙의 두 敵國이 된다면 백성이 편안할 수 없고, 秦에 의지하여 齊를 공격하여도 백성이 편안할 수 없고, 齊에 의지하여 秦을 공격하여도 백성이 편안할 수 없습니다.
故夫謀人之主, 伐人之國, 常苦出辭斷絶人之交也.
그러므로 남의 군주를 도모하거나 남의 나라를 공격함에, 항상 말이 새어나가서 다른 사람과의 친교가 단절되어 고통을 겪습니다.
願君愼勿出於口.
그러니 입에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請別白黑, 所以異陰陽而已矣.
흑백을 분별하고 음양(합종과 연횡)으로 구분해 드리겠습니다.
君誠能聽臣, 燕必致旃裘狗馬之地, 齊必致魚鹽之海, 楚必致橘柚之園, 韓·魏·中山皆可使致湯沐之奉, 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충언을 들어주신다면, 燕은 반드시 모직과 갖옷, 개와 말을 생산하는땅을 바치고, 齊는 물고기와 소금을 생산하는 해안 지방을 바치고, 楚는 귤과 유자가 나는 동산을 바치고, 韓과 魏와 中山은 湯沐(황제와 그 일족의 私用)의 비용을 바칠 터이니, 대왕의 貴戚이나 父兄은 모두 제후로 봉해질 수 있을 터입니다.
夫割地包利,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 ;
封侯貴戚, 湯武之所以放弑而爭也.
무릇 땅을 빼앗고 이익을 거둠은, 오패가 적군을 무찌르고 적장을 사로잡아서 요구한 것이었고,
귀척을 제후로 봉함은, 탕왕과 무왕이 以前의 왕을 내쫓거나 죽이고서 쟁취한 것이었습니다.
今君高拱而兩有之, 此臣之所以爲君願也.
지금 대왕께서는 높은 신분으로 팔짱을 낀 채 두 가지를 취할 터이니, 이것이 신이 대왕께 합종하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 無庸: ~할 필요가 없다. 허사 庸참조
▶ 湯沐金: 황제와 그 일족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비를 말한다.
今大王與秦, 則秦必弱韓魏 ; 與齊, 則齊必弱楚魏.
지금 대왕이 秦과 함께하면 秦은 틀림없이 韓과 魏를 약화시킬 터이고, 齊와 함께하면 齊가 틀림업이 楚와 魏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魏弱則割河外, 韓弱則效宜陽, 宜陽效則上郡絶, 河外割則道不通, 楚弱則無援.
魏가 약해지면 황하 외곽의 땅을 秦에 떼어줄 터이고, 韓이 약해지면 宜陽을 秦에 바칠 터이니, 宜陽을 바치면 趙의 上郡이 두절되고, 황하 외곽의 땅을 떼어주면 도로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楚가 약해지면 趙의 救援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此三策者, 不可不孰計也.
이 세 가지 방책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夫秦下軹道, 則軹道危 ;
劫韓包周, 則趙氏自操兵 ;
據魏取卷, 則齊必入朝秦.
대체로 秦이 軹道(장안 동남쪽)로 내려오면 韓의 軹道가 위태롭고,
韓을 위협하고 주나라를 포위하면 趙는 스스로 무기를 들어야 하고,
魏를 점거하여 卷城을 취하면 齊는 틀림없이 秦에 입조할 터입니다.
秦欲已得乎山東, 則必擧兵而嚮趙矣.
秦이 산동에서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趙를 향해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秦甲渡河踰漳, 據番吾, 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
秦의 甲兵이 황하를 건너고 漳水를 넘어서 番吾에 웅거하면, 군대는 틀림없이 趙의 도성 邯鄲 부근에서 싸울 터입니다.
▶ 軹道: 지금의 하남성 濟源縣 경내에 있었던 고대 도로의 이름이다.
산서성 고원지대와 豫北 평원을 잇는 도로로써 옛날부터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또한 섬서성 서안 북쪽에 지도정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秦의 자영이 항복의 의식을 행한 곳이다.
▶ 券: 하남성 原陽縣 서북의 고을로 전국 때 魏 영토이다.
▶ 番吾: 지금의 하북성 磁縣에 있던 고을로 전국 때 趙 영토이다.
此臣之所爲君患也.
이것이 臣이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當今之時, 山東之建國莫彊於趙.
지금 산동의 封建國으로 趙보다 강대한 나라는 없습니다.
趙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數年.
趙의 땅은 사방 2천여 리이고, 갑병이 수십만에 달하며, 병거가 천 승, 騎馬가 만 필,
군량은 수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西有常山, 南有河漳, 東有淸河, 北有燕國.
서쪽에는 常山이 있고, 남쪽에는 황하와 漳水가 있으며, 동쪽에는 淸河가 있고, 북쪽에는 燕이 있습니다.
燕固弱國, 不足畏也.
燕은 본래 약한 나라로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 然而秦不敢擧兵伐趙者, 何也 ?
秦은 천하통일에 해롭기로 趙와 같은 나라가 없다고 여기는데, 그런데도 秦이 군대를 일으켜 감히 趙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畏韓·魏之議其後也.
韓과 魏가 그 배후를 노려 謀議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然則韓魏, 趙之南蔽也.
그러하니 韓과 魏는 趙의 남쪽의 엄폐물입니다.
秦之攻韓魏也, 無有名山大川之限, 稍蠶食之, 傅國都而止.
秦이 韓과 魏를 공격함에 명산이나 대천 같은 한계가 없으므로 서서히 그들을 잠식하여 都城에 이르러야 그칠 터입니다.
韓魏不能支秦, 必入臣於秦.
韓과 魏가 秦의 공격에 버틸 수 없으므로, 틀림없이 입조해서 秦의 신하 노릇을 할 터입니다.
秦無韓魏之規, 則禍必中於趙矣.
秦에 韓과 魏의 警戒가 사라지면, 재앙은 틀림없이 趙에 집중될 터입니다.
此臣之所爲君患也.
이것이 臣이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臣聞堯無三夫之分, 舜無咫尺之地, 以有天下 ;
禹無百人之聚, 以王諸侯 ;
湯武之士不過三千, 車不過三百乘, 卒不過三萬, 立爲天子 : 誠得其道也.
제가 듣기로, 요임금은 세 사람분의 땅인 삼백 畝도 없었고, 순임금은 그나마 지척의 땅도 없었지만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임금은 백 사람 정도 사는 작은 촌락도 없었으나 제후를 거느린 왕이 되었고,
탕왕과 무왕은 무사가 3천에 지나지 않고, 병거는 3백 乘에 지나지 않았으며, 병졸은 3만 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자가 되었습니다.
진실로 왕으로서의 도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 內度其士卒賢不肖, 不待兩軍相當, 而勝敗存亡之機固已形於胸中矣, 豈揜於衆人之言, 而以冥冥決事哉 !
그런 까닭으로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의 강약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자국의 사졸들의 賢不肖를 헤아려서 兩軍이 충돌하기도 전에 승패와 존망의 기미가 이미 가슴 속에 떠올라야 하나니, 어찌 대중의 여론에 가려 분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겠습니까 ?
臣竊以天下之地圖案之, 諸侯之地五倍於秦, 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 六國爲一, 幷力西鄕而攻秦, 秦必破矣.
臣이 삼가 천하의 지도를 보고 판단하건대 제후들의 땅은 秦보다 다섯 배이고, 제후들의 군졸을 헤아려 보니 秦보다 열 배입이니,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하여 서쪽을 향해 秦을 공격하면 秦을 틀림없이 깨뜨릴 터입니다.
今西面而事之, 見臣於秦.
지금 서쪽을 향해 섬긴다면 秦의 신하가 될 터입니다.
▶傅: 이르다. 도착하다
夫破人之與破於人也, 臣人之與臣於人也, 豈可同日而論哉 !
무릇 적을 쳐부숨과 적에게 파괴됨, 남을 신하로 삼음과 남에게 신하가 됨을 어찌 함께 취급하여 논하겠습니까?
夫衡人者, 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
대체로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쪼개어 秦에 바치려 합니다.
秦成, 則高臺榭, 美宮室, 聽竽瑟之音, 前有樓闕軒轅, 後有長姣美人, 國被秦患而不與其憂.
秦이 성공하면, 누대와 정자를 높이 짓고, 화려하게 꾸민 궁실에서 생황과 거문고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앞에는 누각과 수레가 있으며, 뒤에는 교태가 넘치는 미인들을 거느리되, 나라는 秦에 화를 입지만 근심을 함께하지 않습니다.
是故夫衡人, 日夜務以秦權恐愒諸侯以求割地, 故願大王孰計之也.
그래서 연횡론자는 秦의 권세에 기대어 제후들을 협박하여 땅을 떼어 바치도록 밤낮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께서 그 점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同日: 1. 함께 논하다 2. 함께 취급하여 이야기하다.
臣聞明主絶疑去讒, 屛流言之迹, 塞朋黨之門, 故尊主廣地彊兵之計臣得陳忠於前矣.
臣이 듣기에, 현명한 군주는 의혹을 끊고 참소를 물리치며 유언비어의 유포를 금지시키며,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임금을 높이고 영토를 넓히고 强兵하는 계책을 신하들이 어전에서 충성스럽게 開陳할 수 있습니다.
故竊爲大王計, 莫如一韓魏齊楚燕趙以從親以畔秦.
그래서 삼가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韓·魏·齊·楚·燕·趙가 합종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秦에 대항함보다 나은 방책은 없습니다.
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 通質, 刳白馬而盟.
천하의 將相에게 명을 내려 洹水에 모이게 하고, 서로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베어 맹세하게 하십시오.
要約曰 :
秦攻楚, 齊魏各出銳師以佐之, 韓絶其糧道, 趙涉河漳, 燕守常山之北.
요점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秦이 楚를 공격한다면 齊와 魏는 각각 정예를 출병하여 楚를 돕고, 韓은 秦軍의 糧道를 끊으며, 趙軍은 黃河와 漳水를 건너고, 燕은 常山의 북쪽을 굳게 지킨다.
秦攻韓魏, 則楚絶其後, 齊出銳師而佐之, 趙涉河漳, 燕守雲中.
秦이 韓과 魏를 공격하면 楚는 秦軍의 배후를 끊고, 齊는 정예군을 보내 韓과 魏를 돕고, 趙는 황하와 漳水를 건너며, 燕은 雲中을 지킨다.
秦攻齊, 則楚絶其後, 韓守城皐, 魏塞其道, 趙涉河漳·博關, 燕出銳師以佐之.
秦이 齊를 공격하면 楚는 秦軍의 배후를 끊고, 韓은 城皐를 지키며, 魏는 그 길을 막고, 趙는 군사를 일으켜 장수와 하수를 건너 博關으로 出兵하며, 燕은 정예를 내어 齊를 도운다.
秦攻燕, 則趙守常山, 楚軍武關, 齊涉勃海, 韓魏皆出銳師以佐之.
秦이 燕을 공격하면 趙는 常山을 지키고, 楚는 武關에 주둔하며, 齊는 발해를 건너고, 韓과 魏는 정예군을 보내 燕을 도운다.
秦攻趙, 則韓軍宜陽, 楚軍武關, 魏軍河外, 齊涉淸河, 燕出銳師以佐之.
秦이 趙를 공격하면, 韓은 宜陽에 진을 치고, 楚는 武關에 진을 치며, 魏는 황하 외곽에 주둔하고, 齊는 淸河를 건너고, 燕은 정예부대를 보내 趙를 도운다.
諸侯有不如約者, 以五國之兵共伐之.
제후 중에 맹약을 이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다섯 나라의 군대로써 공동으로 토벌한다.’
六國從親以賓秦, 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以害山東矣.
여섯 나라가 합종을 행하여 공동으로 秦에 대항하면, 秦軍은 필경 감히 函谷關을 나와 山東에 해를 끼치지 못할 터입니다.
如此, 則霸王之業成矣. 」
이와 같으면 패왕의 위업은 성취될 터입니다."
趙王曰 :
「 寡人年少, 立國日淺, 未嘗得聞社稷之長計也.
今上客有意存天下, 安諸侯, 寡人敬以國從. 」
조왕이 말하였다.
" 과인은 나이가 어리고,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므로 아직 사직을 지키는 장기 계획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상객께서 천하를 보존하고 제후를 안정시키려고 하시니, 과인은 擧國的으로 공경히 따르겠습니다.”
乃飾車百乘, 黃金千溢, 白璧百雙, 錦繡千純, 以約諸侯.
이에 장식한 수레 백 乘, 황금 천 溢, 백옥 백 쌍, 수를 놓은 비단 천 필을 주어 제후들에게도 맹약하게 하였다.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惠王.
이때 주나라 천자는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쓴 고기를 秦惠王에게 하사하였다.
惠王使犀首攻魏, 禽將龍賈, 取魏之雕陰, 且欲東兵.
惠王은 犀首를 시켜 魏를 공격하여 장군 龍賈를 사로잡고, 魏의 雕陰을 점령한 후 계속 동쪽으로 진군하려 하였다.
蘇秦恐秦兵之至趙也, 乃激怒張儀, 入之于秦.
蘇秦은 秦軍이 趙에 도착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張儀를 격분시켜 秦에 들어가게 하였다.
▶溢: =鎰
▶ 淸河: 산동성 館陶에서 출원하여 북으로 흘러 하북성 威縣을 경유하여 다시 동쪽으로 꺾여 흐르다 다시 산동성의 武城의 경계에서 황하로 합류했던 강으로 옛 하천명은 淇水다.
▶ 畝: 전한 시대 이전의 1묘는 지금의 약 60평에 해당한다. 즉 300묘란 18,000평을 의미한다.
▶ 咫尺: 주나라 때 길이를 재는 단위로 咫는 소척으로 8촌 즉 18cm의 길이를, 척은 대척으로 10촌 즉 22.5cm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 대단히 짧은 길이를 의미한다.
▶ 洹水: 지금의 하남성 북쪽의 林縣의 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安陽市를 지나 內黃縣 북쪽에서 황하에 유입되었던 하천을 말한다.
▶ 博關: 춘추 때 齊가 지금의 산동성 荏平縣인 博陵에 설치했던 관문이다.
▶ 鎰: 고대 중국의 중량의 단위로서 20량 혹은 24량에 해당한다. 춘추전국 시대 때의 한 량은 16g으로 1 鎰은 약 300g 혹은 400g에 해당함. 따라서 千鎰은 300㎏ 혹은 400㎏의 중량을 말한다.
▶ 犀首: 전국 때 魏의 禁衛(무관직) 이름이다. 후대에 이르러 왕의 근위대였던 虎奮將軍에 해당한다. 전국 때 대표적인 유세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公孫衍이 魏에 있을 때 역임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를 지칭한다.
공손연의 성은 姬이고, 씨는 公孫, 이름은 衍이다. 魏 陰晉(: 지금의 섬서성 華陰縣) 사람이며 魏 혹은 秦의 공족 출신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秦에 들어가 秦惠王에게 유세하여 신임을 얻어 중용되었다.
진혜왕 5년 기원전 333년 大良造에 임명되어 秦의 군사를 이끌고 魏를 공격하여 그 장군 龍賈를 사로잡고 雕陰을 점령하였다.
다시 秦을 위해 齊와 魏에 유세하여 세 나라가 힘을 합쳐 趙를 공격하여 蘇秦의 合縱策을 무너뜨렸다. 후에 張儀와 사이가 벌어져 魏로 들어가자 魏惠王은 그를 魏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는 韓, 趙, 魏, 燕, 中山 등의 5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을 이끌고 秦의 세력에 대항하였다. 이어서 魏惠王 後元年 16년 기원전 319년 魏, 趙, 韓, 燕, 楚 등의 5국의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秦을 공격하고 다시 秦의 서쪽에 자리잡은 義渠의 군주와 통하여 秦의 배후를 기습하도록 하여 동서 양쪽에서 秦을 공격하여 곤경에 처하도록 하였다. 새로 즉위한 秦武王은 張儀를 쫓아내어 죽도록 하고 공손연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공손연은 秦의 재상이 된 후에도 허리에는 5국의 재상인을 차고 다니며 連橫의 約長 노릇을 하였다. 진무왕 4년 기원전 307년 甘茂에 의해 참소당하여 秦에서 다시 쫓겨나 魏로 돌아갔다. 이어서 얼마 안 있어 어떤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여 위왕에게 살해당하였다.
▶ 雕陰: 지금의 섬서성 甘泉縣 남쪽에 있었던 고을로 魏가 황하 이서 지역에 설치한 上郡의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於是說韓宣王曰 :
蘇秦이 韓宣王에게 유세하였다.
「 韓北有鞏·成臯之固, 西有宜陽商阪之塞, 東有宛穰洧水, 南有陘山, 地方九百餘里, 帶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
" 韓은 북쪽에 鞏과 成臯라는 견고한 요새지가 있고, 서쪽에는 宜陽과 商阪 같은 요새가 있으며, 동쪽에는 宛과 穰 두 읍과 洧水가 있고, 남쪽에는 陘山이 있으며, 면적은 사방이 9백여 리에 달하고, 무장한 병사는 수십만에 이르며, 세상에서 강한 활과 쇠뇌는 모두 韓에서 나옵니다.
谿子·少府時力·距來者, 皆射六百步之外.
谿子族의 쇠뇌와 少府에서 생산되는 時力과 距來라는 쇠뇌는 모두 6백 보 밖을 쏠 정도로 성능이 좋습니다.
韓卒超足而射, 百發不暇止, 遠者括蔽洞胸, 近者鏑弇心.
韓의 군사는 발로 밟아서 100발의 화살을 쏘며 그칠 겨를이 없으며, 원거리에서도 화살이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히고, 근거리에서는 화살이 심장에 깊숙이 박힙니다.
▶ 韓宣王: 宣惠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332년에 즉위하여 312년에 죽은 전국 때 韓의 군주다.
재위 기간 중 합종과 연횡을 수시로 바꿔 秦으로부터 빈번히 침략을 받다가 만년에 秦과 함께 楚를 공격하여 楚를 대패시켰다.
▶ 溪子: 고대 남방의 蠻夷의 부족명으로 그곳에서 산출되는 산뽕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활은 강궁으로 이름이 있었다. 후에 강궁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 少府: 산과 바다, 땅과 소택지에서 산출되는 재화와 황실과 왕실의 수공업과 제조업을 관장하는 관청 이름이다. 전국시대에 설치되기 시작해서 진한시대로 이어져 9경에 포함되었다.
▶ 時力, 距來: 韓의 소부에서 생산되는 쇠뇌의 이름들이다. 모두 양궁의 명칭이다.
▶ 超足: 超足谓超腾用势,盖起足蹋之而射也. 발로 밟아서 쇠뇌를 발사함.
▶ 括: 뚫다.
▶ 洞: 통하다. 꿰뚫다
▶ 鏑(적): 화살촉.
▶ 弇(엄): 깊다
韓卒之劍戟, 皆出於冥山棠谿墨陽合賻鄧師宛馮龍淵太阿, 皆陸斷牛馬, 水截鵠鴈, 當敵則斬堅甲鐵幕, 革抉, 瞂芮, 無不畢具.
韓의 병사의 칼과 창은 冥山·棠谿·墨陽·合賻·鄧師·宛馮·龍淵·太阿에서 産出되는 것으로, 모두 육지에서는 소와 말을 자르고, 물에서는 고니나 기러기를 베며, 적병을 만나면 견고한 갑옷이나 쇠 방패를 쪼개고, 가죽 활걸이, 방패끈 등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以韓卒之勇, 被堅甲, 蹠勁弩, 帶利劍, 一人當百, 不足言也.
韓 병사의 용맹으로 견고한 갑옷을 입고 강력한 쇠뇌를 메고 예리한 칼을 차고 있으니, 한 사람이 백을 당함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 乃西面事秦, 交臂而服, 羞社稷而爲天下笑, 無大於此者矣.
韓의 강한 군사력과 대왕의 현명함을 가지고, 서쪽을 향해 秦을 섬겨 두 팔을 교차하여 복종함은, 사직에 대한 수치이며 천하의 웃음거리로서 이보다 큰 것은 없을 터입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
그러므로 대왕께서 깊이 헤아리기 바랍니다.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
대왕께서 秦을 섬긴다면, 秦은 틀림없이 宜陽과 成皐를 요구할 터입니다.
今玆效之, 明年又復求割地.
지금 이것을 바쳤는데, 내년에는 또다시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할 터입니다.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弃前功而受後禍.
땅을 주다 보면 줄 땅이 없어질 터이고, 주지 않으면 前功을 포기하여 뒷날의 재앙을 받을 터입니다.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또 대왕의 토지는 유한하고 秦의 요구는 끝이 없을 터입니다.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秦의 요구에 응함은 이것이 소위 원한을 사고 재앙을 맺는 일이라, 싸우지도 않고 땅만 줄어듭니다.
臣聞鄙諺曰 : ‘寧爲雞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 」
신이 俗諺을 듣기에,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라고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향해 팔을 교차하여 秦을 신하로서 섬김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대왕의 현명함과 韓의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소의 꼬리라는 오명을 씀을, 臣은 삼가 대왕을 위하여 부끄러워합니다."
於是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曰 :
「 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今主君詔以趙王之敎, 敬奉社稷以從. 」
이에 韓왕은 발끈하며 얼굴을 붉히고, 팔을 걷어부치고 눈을 부라리며, 칼을 어루만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과인이 비록 못났지만 결코 秦을 섬기지 않겠소.
지금 그대의 지도로써 趙王의 가르침을 헤아렸으니, 韓의 사직을 받들어 그대가 주창하는 합종을 따르겠소. ”
▶ 冥山: 지금의 하남성 信陽市 동남에 있었던 고을로 楚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국 때 견고한 철제품의 산지로 유명하였다.
▶ 墨陽: 하남성 淅川縣 북쪽으로 山의 남쪽으로 전국 때 명검의 산출지로 유명하였다.
▶ 合賻: 合伯이라고도 하며 역시 전국 때 韓의 철검 산지로 유명하였다. 지금의 하남성 서평현 서쪽에 있었다.
▶ 鄧師: 전국 때 등이라는 제후국의 고지였던 鄧 땅은 철검을 주조했던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등이라는 곳에서 산출되는 명검을 말한다.
▶ 宛馮: 馮池라는 곳에서 宛人이 주조했던 검의 명칭이다.
▶ 龍淵, 太阿: 모두 劍의 이름이다. 이상 冥山에서 太阿까지 모두 그 날이 예리한 검의 이름으로 산지의 이름이거나 혹은 만들었던 사람의 이름이다.
▶ 革抉: 활을 쏠 때 오른손의 손가락에 끼워 시위를 당기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골무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 㗶芮: 㗶은 방패를 예는 방패를 잇는 끈을 말한다.
▶ 主: 재다. 헤아리다.
▶ 詔: 지도하다
又說魏襄王曰 :
또 魏襄王에게 유세하였다.
「 大王之地, 南有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 東有淮潁煮棗無胥,
西有長城之界, 北有河外卷衍酸棗, 地方千里.
" 대왕의 땅은 남쪽으로 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가 있고, 동쪽으로는 淮水·潁水와 煮棗와 無胥가 있고, 서쪽으로는 長城을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河外, 卷, 衍, 酸棗에 이르러 그 넓이는 사방으로 천리입니다.
地名雖小, 然而田舍廬廡之數, 曾無所芻牧.
땅이 명의로는 비록 작지만, 마을과 집들이 밀집해 있어서 목축할 땅이 없을 정도입니다.
人民之衆, 車馬之多, 日夜行不絶, 輷輷殷殷, 若有三軍之衆.
백성이 많고 車馬가 많아서 밤낮으로 왕래하여 끊이질 않고, 지나가는 소리가 마치 삼군의 군사가 있는 듯합니다.
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
신이 삼가 헤아려보니 대왕의 나라는 楚의 아래가 아닙니다.
然衡人怵王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그러나 연횡론자가 호랑이나 이리 같은 秦과 교류하여 천하를 침략하자고 대왕을 유혹하여, 마침내 秦의 우환이 있는데도 그 재앙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夫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강성한 秦의 세력을 업고 안으로 자신의 군주를 위협하니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魏天下之彊國也 ; 王天下之賢王也.
魏는 천하의 강국이고 대왕은 천하의 어진 임금입니다.
今乃有意西面而事秦, 稱東藩, 築帝宮, 受冠帶, 祠春秋, 臣竊爲大王恥之.
지금 서쪽을 향하여 秦을 섬기고 東藩이 되어 황제의 궁궐을 짓고, 의관과 속대를 받아서, 秦의 춘추제사를 지낼 뜻을 가지고 있으니, 신이 삼가 대왕을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臣聞越王句踐戰敝卒三千人, 禽夫差於干遂 ;
武王卒三千人, 革車三百乘, 制紂於牧野 :
신이 듣기로는 월왕 구천은 전투에 지친 군졸 3천 명을 이끌고 오왕 夫差를 干遂에서 사로잡았고,
주무왕은 군사 3천 명과 兵車 3백 승을 가지고 은주왕을 牧野에서 제압하였다고 합니다.
豈其士卒衆哉, 誠能奮其威也.
그것이 어찌 士卒이 많아서이겠습니까? 참으로 자신의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今竊聞大王之卒, 武士二十萬, 蒼頭二十萬, 奮擊二十萬, 廝徒十萬, 車六百乘, 騎五千匹.
지금 삼가 대왕의 사졸에 대하여 듣기를, 무장한 군사가 20만, 창두군이 20만, 돌격부대가 20만, 잡역부가 10만이며, 병거가 6백 승이고 騎馬는 오천 필이라 합니다.
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
이것은 월왕 句踐이나 주무왕의 병력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今乃聽於羣臣之說而欲臣事秦.
그런데도 지금 대왕께서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신하가 되어 秦을 섬기려 하십니다.
夫事秦必割地以效實, 故兵未用而國已虧矣.
무릇 秦을 받듦에 필시 땅을 분할하여 성의를 표시해야 할 터이고, 따라서 군대를 쓰지도 않고 국토가 이지러집니다.
凡羣臣之言事秦者, 皆姦人, 非忠臣也.
신하 중 秦을 섬기자고 말하는 자는 모두 간신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夫爲人臣, 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偸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 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以求割地, 願大王孰察之.
무릇 신하로서 그 군주의 땅을 쪼개주고 외교를 구하는 이유는, 일시적인 공로를 훔치며 후환은 돌아보지 않으며, 공실을 무너뜨려 私門을 이루려고, 외부의 강력한 秦의 위세에 의지하여 안으로 자신의 임금을 위협하여 땅을 쪼개주자고 하니, 대왕께서는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周書曰 :
『 緜緜不絶, 蔓蔓柰何 ?
豪氂不伐, 將用斧柯. 』
《주서》에 이르기를,
‘미미할 때 끊지 않으면 덩굴진 후에 어찌하리?
터럭같이 작을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의 자루를 써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前慮不定, 後有大患, 將柰之何 ?
사전에 생각을 정하지 않으면 후에 큰 근심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어찌하시렵니까?
大王誠能聽臣, 六國從親, 專心幷力壹意, 則必無彊秦之患.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들으시어,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전심전력으로 한 뜻이 된다면 결코 강한 秦에 대한 걱정은 없을 터입니다.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之詔詔之. 」
그래서 우리 조왕께서 신을 보내어 어리석은 계책을 바치니, 맹약을 맺어 받듦은 대왕의 뜻을 밝힘에 있습니다."
▶ 魏襄王: 전국 때 魏 군주로 성은 姬고 魏씨에 이름은 嗣다.
惠王의 아들로 기원전 334년에 즉위하여 319년에 죽었다. 즉위 초에 제후들과 徐州에서 회맹을 행하고 왕호를 칭하기 시작하였다. 秦과의 싸움에서 계속 패한 결과 西河, 汾陰, 曲沃, 上郡 등을 모두 상실하고 다시 陰晉의 땅을 秦에 바쳤다. 楚를 공격하여 陘山의 땅을 점령했으나 얼마 후에 襄陵에서 楚軍과 싸워 패하였다. 名家 출신의 惠施를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아 親齊정책을 취하였다. 후에 혜시를 쫓아내고 장의를 대신 재상으로 삼았다.
장의가 秦을 받들라고 권하자 듣지 않고 다시 장의를 재상에서 파면하였다.
일설에는 기원전 319년에서 296년 사이에 재위했으며 그의 사적 중 일부는 위애왕의 것이라고도 한다.
▶ 鴻溝: 전국 때 魏가 건설한 운하로 지금의 하남성 滎陽市 북쪽에서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동쪽으로 흐르게 하였다. 魏의 도성인 大梁(: 지금의 開封)을 관통한 다음 남쪽으로 꺾어져 淮陽市에서 潁水와 합류시켰다. 홍구는 이후로 황하유역과 淮水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상교통로가 되었다.
▶ 陳: 춘추시대 陳의 옛 땅으로 대부분은 楚에 속하고 일부가 魏에 속하였다. 기원전 278년 秦의 장군 白起에 의해 郢城을 점령당한 楚가 나라를 이곳으로 옮겼다.
▶ 汝南: 汝水의 남쪽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 上蔡市 일대를 말한다. 참고로 汝水는 지금의 하남성 서쪽의 伏牛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안휘성 淮濱에서 회수와 합류한다.
▶ 許: 지금의 하남성 許昌市에 있던 고을로 춘추 때 許의 옛 땅으로 대부분의 영토는 楚에 병탄되었다.
▶ 昆陽: 지금의 하남성 葉縣에 있었던 고을로 후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이곳에서 王莽의 45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 召陵: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 동쪽 30리에 소릉채라고 있다. 기원전 656년 楚의 사자로 온 굴완이 제후의 군과 소릉에서 회맹을 행하였다(춘추 회공 4년조.)
사기 진본기에 기원전 311년 秦軍이 楚를 공격하여 소릉을 점령하였다(진본기 혜문왕 후원년 14년)
▶ 潁水: 지금의 하남성 嵩山에서 발원하여 許昌市와 周口市를 지나 안휘성 潁上縣에서 합류하는 회수의 가장 큰 지류이다.
▶ 干遂: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 북쪽으로 이곳에서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패한 오왕 부차가 자살하였다.
▶ 蒼頭軍: 전국 때 魏가 용맹한 무사를 뽑아 구성한 부대의 이름으로 그 표시로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둘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무적의 군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秦末 陳勝이 起義할 때 東陽의 젊은이들이 호응하니 무적의 군대라는 뜻으로 창두군이라고 칭하였다.
魏王曰 :
「 寡人不肖, 未嘗得聞明敎.
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 敬以國從. 」
[위왕이 말하였다.
" 과인이 불초하여 아직 훌륭한 가르침을 들어 본 적이 없었소.
지금 그대를 헤아려서 조왕의 지도를 받았으니, 공경히 거국적으로 따르겠소.”
因東說齊宣王曰 :
蘇秦은 동으로 가서 제선왕에게 유세하였다.
「 齊南有泰山, 東有琅邪, 西有淸河, 北有勃海, 此所謂四塞之國也.
" 齊의 남쪽에는 泰山이 있고, 동쪽에는 琅邪山이 있으며, 서쪽에는 淸河가 있고, 북쪽에는 勃海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사방이 요새인 나라입니다.
齊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粟如丘山.
齊의 땅은 사방 2천여 리이고, 甲兵이 수십 만이고, 군량은 산더미와 같습니다.
三軍之良, 五家之兵, 進如鋒矢, 戰如雷霆, 解如風雨.
三軍의 精銳兵과 五家의 병은 전진함에 화살처럼 빠르며, 싸움에 천둥과 번개 같고, 흩어짐에 비바람과 같습니다.
卽有軍役, 未嘗倍泰山, 絶淸河, 涉勃海也, 臨菑之中七萬戶.
즉각 전쟁이 나도 泰山을 넘거나 淸河와 勃海를 건넌 적이 없었으며, 도읍 臨菑에는 7만 호가 살고 있습니다.
臣竊度之, 不下戶三男子, 三七二十一萬, 不待發於遠縣, 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
신이 삼가 헤아려 보니, 매 호에 남자 세 명 이하는 아니므로 3 곱하기 7로 21만이 되어, 먼 縣에서 징발할 필요 없이 臨菑의 병졸로도 21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臨菑甚富而實, 其民無不吹竽鼓瑟, 彈琴擊筑, 鬪雞走狗, 六博蹋鞠者.
臨菑는 매우 부유하고 충실하여, 백성 중에 생황을 불고 비파를 타며, 거문고를 연주하고 축을 두들기며, 닭싸움과 개의 경주를 즐기며, 윷놀이와 공차기 등을 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臨菑之塗, 車轂擊, 人肩摩, 連衽成帷, 擧袂成幕, 揮汗成雨, 家殷人足, 志高氣揚.
임치의 거리는 수레의 바퀴통이 부딪치고, 사람의 어깨가 스칠 정도이며, 사람들의 옷깃이 이어져 휘장을 이루고, 옷소매를 들면 장막이 되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은 비오는 듯하며, 가정은 부유하고 사람은 풍족하여 사기가 올라 있습니다.
夫以大王之賢與齊之彊, 天下莫能當.
무릇 대왕의 현명함과 齊의 강성함을 천하에 능히 당할 자가 없습니다.
今乃西面而事秦, 臣竊爲大王羞之.
그런데도 대왕께서 서쪽을 바라보며 秦을 섬기려 함을, 신이 삼가 대왕을 위하여 부끄러워합니다.
且夫韓魏之所以重畏秦者, 爲與秦接境壤界也.
韓과 魏가 秦을 심히 두려워함은 秦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兵出而相當, 不出十日而戰勝存亡之機決矣.
군대를 출병하여 當敵하면, 열흘도 되지 않아 전쟁의 승부와 국가 존망의 轉機가 결정될 터입니다.
韓魏戰而勝秦, 則兵半折, 四境不守 ;
戰而不勝, 則國已危亡隨其後.
韓과 魏가 싸워서 승리하여도 병력의 절반이 꺾이어 四面의 國境을 지킬 수 없게 되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가 멸망이 뒤따를 터입니다.
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戰, 而輕爲之臣也.
그러므로 韓과 魏가 秦과 싸움에 신중하여 경솔히 秦의 신하가 되려 합니다.
今秦之攻齊則不然.
그러나 秦이 齊를 공격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倍韓·魏之地, 過魏陽晉之道, 徑乎亢父之險, 車不得方軌, 騎不得比行, 百人守險, 千人不敢過也.
秦은 韓과 魏의 땅을 빨리 달리고, 魏의 陽晉의 길을 지나, 亢父의 險地를 질러가야 하는데, 수레는 나란히 갈 수 없고 기병은 무리지어 행군할 수 없으므로, 백 명이 험지를 지킨다면 천 명도 감히 통과하지 못할 터입니다.
秦雖欲深入, 則狼顧, 恐韓魏之議其後也.
秦이 비록 깊숙이 침입하고 싶어도, 이리처럼 뒤를 돌아보며 韓과 魏가 그 배후 공격을 謀議할까 두려워합니다.
是故恫疑虛猲, 驕矜而不敢進, 則秦之不能害齊亦明矣.
그런 까닭에 두렵고 의심스러우면서도 허세로 겁을 주며, 교만하지만 감히 전진하지 못하니, 秦이 齊를 해치지 못함은 분명합니다.
夫不深料秦之無柰齊何, 而欲西面而事之, 是羣臣之計過也.
秦이 齊를 어찌할 수 없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쪽을 향해 秦을 섬기려 하니, 신하들의 계책은 잘못되었습니다.
今無臣事秦之名而有彊國之實, 臣是故願大王少留意計之. 」
이제 齊는 秦을 섬기는 오명을 없애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실리를 얻을 터이니, 신은 이 때문에 대왕께서 조금만 유의하시어 이해를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
齊王曰 :
「 寡人不敏, 僻遠守海, 窮道東境之國也, 未嘗得聞餘敎.
今足下以趙王詔詔之, 敬以國從.」
齊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어리석어 먼 벽지에서 바다만 지키며, 더 갈 길도 없는 동쪽의 나라이라, 다른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소.
지금 그대가 조왕의 지도를 말하여 주니, 공경히 거국적으로 권고를 따르겠소.”
▶ 五家之兵: 춘추 때 관중이 창시한 일종의 군제로써 그 내용은 五家를 軌, 10궤를 里,
4里를 連, 10連을 鄕, 3향에 1師를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뜻은 三軍의 경우는 정규군, 오가지병의 경우는 일종의 예비군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6국 중 齊를 제외한 나머지 5국의 군사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다.
乃西南說楚威王曰 :
蘇秦은 서남쪽으로 가서 楚威王에게 유세하였다.
「 楚, 天下之彊國也 ; 王, 天下之賢王也.
" 楚는 천하의 강국이며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임금이십니다.
西有黔中巫郡, 東有夏州海陽, 南有洞庭蒼梧, 北有陘塞郇陽.
서쪽에는 黔中과 巫郡이 있고, 동쪽에는 夏州와 海陽이 있으며, 남쪽에는 洞庭과 蒼梧가 있고, 북쪽에는 陘塞와 郇陽이 있습니다.
地方五千餘里, 帶甲百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十年.
영토는 사방 오천여 리이고, 帶甲은 백만이며, 병거는 천 승에다 기마는 만 필이고, 식량은
10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此霸王之資也.
이것은 패왕이 되는 자산입니다.
夫以楚之彊與王之賢, 天下莫能當也.
楚의 강성함과 대왕의 현명함 때문에, 楚를 당할 나라는 천하에 없습니다.
今乃欲西面而事秦, 則諸侯莫不西面而朝於章臺之下矣.
그런데 대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秦을 섬기려 하면, 제후 중에 서쪽을 향해 秦 함양의 章臺宮에 入朝하지 않을 자는 없을 터입니다.
秦之所害莫如楚, 楚彊則秦弱, 秦彊則楚弱, 其勢不兩立.
秦에 해가 됨에 楚와 같은 나라는 없으니, 楚가 강해지면 秦은 약해지고, 秦이 강해지면 楚는 약해지므로, 그 형세상 양립할 수 없습니다.
故爲大王計, 莫如從親以孤秦.
그러므로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합종의 친교를 맺어서 秦을 고립시킴만 한 것이 없습니다.
大王不從[親], 秦必起兩軍, 一軍出武關, 一軍下黔中, 則鄢郢動矣.
대왕께서 합종하지 않으시면, 秦은 틀림없이 兩軍을 일으켜 一軍은 武關으로 나오고, 一軍은 黔中으로 남하하여, 楚 도읍인 鄢郢이 동요할 터입니다.
臣聞治之其未亂也, 爲之其未有也.
신이 듣기에,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하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患至而后憂之, 則無及已.
우환이 닥친 후에 근심한들 미치지 못할 뿐입니다.
故願大王蚤孰計之.
그러므로 대왕께서 일찌감치 숙고하시어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大王誠能聽臣, 臣請令山東之國奉四時之獻, 以承大王之明詔, 委社稷, 奉宗廟, 練士厲兵, 在大王之所用之.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들으신다면, 신은 山東의 列國을 설득하여 사계절의 貢物을 바치게 하고, 대왕의 밝은 명령을 받들도록 하여, 그들의 종묘와 사직을 대왕께 맡기게 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대왕의 所用에 두겠습니다.
大王誠能用臣之愚計, 則韓魏齊燕趙衛之妙音美人必充後宮, 燕代橐駝良馬必實外廏.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어리석은 계책을 채용하신다면,
한·魏·제·연·조·衛의 훌륭한 음악과 미녀가 틀림없이 대왕의 후궁을 채울 터이고, 燕과 代의낙타와 좋은 말이 틀림없이 대왕의 바깥 마구간을 채울 터입니다.
故從合則楚王, 衡成則秦帝.
그러므로 합종하면 楚가 천하의 왕이 되고 연횡하면 秦이 천자가 됩니다.
今釋霸王之業, 而有事人之名, 臣竊爲大王不取也.
그런데 패왕의 대업을 버리고 남을 섬기는 오명을 얻음을, 신은 삼가 대왕께서 취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夫秦, 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무릇 秦은 호랑이나 이리처럼 흉악한 나라로, 천하를 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秦天下之仇讎也.
秦은 천하의 원수입니다.
衡人皆欲割諸侯之地以事秦, 此所謂養仇而奉讎者也.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떼어주고 秦을 섬기려 하니, 이것이 소위 원수를 길러서 원수를 받드는 것입니다.
夫爲人臣, 割其主之地以外交彊虎狼之秦, 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무릇 신하로서 주군의 땅을 쪼개서 외부의 사나운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秦에게 주어, 천하를 침범하여 끝내 秦의 우환이 생겨도, 그 재앙을 돌보지 않습니다.
夫外挾彊秦之威以內劫其主, 以求割地, 大逆不忠, 無過此者.
무릇 밖으로는 강한 秦의 위세를 끼고 안으로는 주군을 위협하여 땅을 쪼개어 주자고 요구하니, 大逆不忠도 이를 능가하지 않겠습니다.
故從親則諸侯割地以事楚, 衡合則楚割地以事秦, 此兩策者相去遠矣, 二者大王何居焉 ?
그러므로 합종으로 친교를 맺으면 제후가 땅을 쪼개어 楚를 섬기게 되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楚가 땅을 쪼개어 秦을 섬기게 되므로, 이 두 계책은 차이가 매우 큰데, 둘 중에서 대왕은 어느 쪽을 택하시렵니까?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詔之. 」
그래서 우리나라 趙왕께서 신을 사신으로 보내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려, 대왕의 밝은 맹약을 받들어 오라고 하셨으니 대왕의 명령에 달려 있습니다.“
▶ 楚威王: 기원전 339년 즉위하여 329년에 죽은 楚의 왕으로 이름은 熊商이다. 기원전 336년 齊를 공격하여 徐州에서 齊軍을 격파하였다.
▶ 夏州: 지금의 호북성 성도인 武漢 일대를 말하며 한수가 장강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 海陽: 장강이 황해로 유입되는 강어귀의 북안으로 지금의 강소성 泰州市 일대를 말한다.
▶ 蒼梧: 지금의 호남성 寧遠縣 남쪽에 있는 九疑山 일대를 말한다. 순임금이 순행을 나갔다가 죽어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 陘塞: 지금의 하남성 탑하시 동쪽에 있는 陘山에 건설한 관문을 말한다. 전국 때 韓 영토였다.
▶ 鄢郢: 鄢과 郢을 말한다. 鄢은 지금의 호북성 宜城縣이고 郢은 楚의 수도로 江陵市를 말한다. 기원전 278년 과연 소진의 예측대로 무관을 나온 秦의 장군 백기가 검중 및 巫郡 등에서 楚로 진격한 秦軍과 협동 작전을 펼쳐 楚의 鄢과 郢을 함락하고 그곳에 南郡을 설치하였다. 楚는 이에 하남성 陳城으로 나라를 옮겨야만 하였다.
楚王曰 :
초왕이 말하였다.
「 寡人之國西與秦接境, 秦有擧巴蜀幷漢中之心.
“과인의 나라는 서쪽으로 秦과 接境하는데, 秦은 巴蜀을 빼앗아 漢中의 심장부를 병탄하였소.
秦, 虎狼之國, 不可親也.
秦은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라 친할 수 없습니다.
而韓·魏迫於秦患, 不可與深謀, 與深謀恐反人以入於秦, 故謀未發而國已危矣.
韓·魏는 秦의 우환에 맞닥뜨려 있으므로, 함께 깊이 모의할 수 없고, 함께 깊이 모의하더라도 배반자로서 秦에 入朝할까 염려하나니, 그러면 계책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우리 楚는 위태로워질 터입니다.
寡人自料以楚當秦, 不見勝也 ;
內與羣臣謀, 不足恃也.
과인이 스스로 생각해 보니, 楚로써 秦에 당적하면 이기지 못하므로,
안으로 신하들과 모의해 보지만 믿기에 부족합니다.
寡人臥不安席, 食不甘味, 心搖搖然如縣旌而無所終薄.
과인은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며, 마음이 매달린 깃발처럼 흔들려 碇泊할 곳도 없었습니다.
今主君欲一天下, 收諸侯, 存危國, 寡人謹奉社稷以從. 」
그런데 그대가 천하를 하나로 여겨 제후를 거두고 위태로운 나라를 존속시키려 함을 알았으니, 과인은 사직을 산가 받들어 공경히 그대의 권고를 따르겠소.
於是六國從合而幷力焉, 蘇秦爲從約長, 幷相六國.
이에 여섯 나라가 합종의 맹약을 맺고 힘을 합치게 되었으니, 蘇秦은 합종 맹약의 長이 되고 六國의 재상을 겸하였다.
北報趙王, 乃行過雒陽, 車騎輜重, 諸侯各發使送之甚衆, 疑於王者.
조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다가 중도에 낙양을 들렀는데, 車騎와 輜重에 제후들이 사신을 통해 보내온 물건이 매우 많아서 임금의 행차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周顯王聞之恐懼, 除道, 使人郊勞.
周顯王이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도로를 청소하고, 사신을 보내 蘇秦을 교외에서 영접하고 위로하였다.
蘇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仰視, 俯伏侍取食.
蘇秦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으로 볼뿐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못하고, 부복하여 식사하기를 기다렸다.
蘇秦笑謂其嫂曰 :
「 何前倨而後恭也 ? 」
蘇秦이 웃으면서 그의 형수에게 말하였다.
" 어찌하여 예전엔 거만하고, 뒤에는 공손한 것이오?“
嫂委蛇蒲服, 以面掩地而謝曰 :
「 見季子位高金多也. 」
형수는 넙죽 업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였다.
" 季子(소진의 字)의 지위가 높고 부귀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 委蛇: 蛇行,俯伏爬行的样子 뱀처럼 기어가는 모습 司马贞索隐:“委虵谓以面掩地而进,若虵行也。”
▶ 蒲服: 跪姿坐于地上. 匍匐(포복)
蘇秦喟然歎曰 :
「 此一人之身,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 況衆人乎 !
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 ! 」
蘇秦은 길게 탄식하였다.
“이 한 사람의 몸이 부귀하면 친척이 두려워하고, 貧賤하면 업신여기니, 하물며 일반 백성이랴!
만약 내게 낙양 근처에 밭 두어 뙈기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장을 찰 수 있었으랴 !“
於是散千金以賜宗族朋友.
이에 蘇秦은 千金을 풀어서 종족과 벗에게 나누어 주었다.
初蘇秦之燕, 貸人百錢爲資, 及得富貴, 以百金償之.
처음 蘇秦이 燕으로 들어갈 때, 백전을 꾸어서 노자로 사용하였는데, 부귀를 얻자 백금으로 갚았다.
徧報諸所嘗見德者.
일찍이 그에게 은덕을 베푼 사람들에게 두루 보답하였다.
其從者有一人獨未得報, 乃前自言.
시종 한 사람이 유독 보답받지 못하자 찾아와서 그 사실을 말하였다.
▶負郭: 司马贞索隐:"负者,背也,枕也。近城之地,沃润流泽,最为膏腴,故曰'负郭'也。"后因以"负郭田"为典。亦泛指良田。城에 가까운 토지.
▶ 頃: 一頃은 백 畝에 해당하고 춘추전국시대의 1畝는 55평(약 180a)이다. 즉 1경은 5,500평이므로 2경의 단위는 지금의 평수로 계산하면 만 평 정도를 말한다.
▶ 전국시대의 1금은 만전에 해당한다. 소진이 갚은 100금을 전으로 환산하면 백만전에 해당한다. 즉 빌린 돈을 만 배로 갚았다는 뜻이다.
蘇秦曰 :
「 我非忘子.
子之與我至燕, 再三欲去我易水之上, 方是時, 我困, 故望子深, 是以後子.
子今亦得矣. 」
蘇秦이 말하였다.
“내가 너를 잊은 것이 아니다.
네가 나와 함께 燕으로 감에, 너는 易水에서 여러 번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였고, 그때 나는 처지가 곤란하여 너를 매우 원망했으므로 너를 가장 뒤로 미루었다.
이제 너에게도 보상하겠다.“
蘇秦旣約六國從親, 歸趙.
蘇秦이 육국의 합종의 맹약을 맺고 趙로 돌아왔다.
趙肅侯封爲武安君, 乃投從約書於秦.
趙肅侯가 봉하여 武安君이 되었다. 그리고 宗約書를 秦에 보냈다.
秦兵不敢闚函谷關十五年.
秦軍은 15년 동안 감히 函谷關을 넘보지 못하였다.
其後秦使犀首欺齊魏, 與共伐趙, 欲敗從約.
그 후에 秦은 犀首를 시켜 齊·魏를 속이고, 함께 趙를 공격하도록 하여 합종을 깨트리려 하였다.
齊魏伐趙, 趙王讓蘇秦.
齊·魏가 趙를 치니 조왕이 蘇秦을 추궁하였다.
蘇秦恐, 請使燕, 必報齊.
소진은 두려워서 燕에 사신으로 가기를 자청하여 기필코 齊에게 보복하겠다고 하였다.
蘇秦去趙而從約皆解.
蘇秦이 趙를 떠나자 종약은 모두 와해되었다.
秦惠王以其女爲燕太子婦.
秦惠王이 그의 딸을 燕의 태자비로 시집보냈다.
是歲, 文侯卒, 太子立, 是爲燕易王.
그 해에 燕文侯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여 燕易王이 되었다.
易王初立, 齊宣王因燕喪伐燕, 取十城.
易王이 막 즉위함에, 齊宣王은 燕이 喪中임을 틈타 燕을 공격하여 10城을 빼앗았다.
易王謂蘇秦曰 :
「 往日先生至燕, 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國從.
今齊先伐趙, 次至燕, 以先生之故爲天下笑, 先生能爲燕得侵地乎 ? 」
燕이왕이 蘇秦에게 말하였다.
“지난날 선생이 燕에 왔을 때, 선왕께서 선생에게 노자를 주어 趙왕을 뵙게 하여 드디어 여섯 나라의 종약을 맺게 했소.
그런데 齊가 먼저 趙를 공격하더니 다음으로 燕에 이르니, 燕은 선생 때문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선생은 燕을 위해 빼앗긴 땅을 찾을 수 있겠소?"
蘇秦大慙曰 :
「 請爲王取之. 」
蘇秦은 매우 수치스러워하며 말하였다.
“대왕을 위하여 빼앗긴 땅을 찾아오겠습니다. ”
蘇秦見齊王, 再拜, 俯而慶, 仰而弔.
蘇秦이 齊王을 뵙고 재배하고 허리를 굽혀 경하의 말을 올리고, 하늘을 보며 애도를 표시하였다.
齊王曰 :
「 是何慶弔相隨之速也 ?」
제왕이 말하였다.
" 어찌하여 경하와 애도를 연속해서 속히 행하시오?"
蘇秦曰 :
「 臣聞飢人所以飢而不食烏喙者, 爲其愈充腹而與餓死同患也.
今燕雖弱小, 卽秦王之少壻也.
大王利其十城而長與彊秦爲仇.
今使弱燕爲鴈行而彊秦敝其後, 以招天下之精兵, 是食烏喙之類也.」
蘇秦이 말하였다.
" 신이 들으니, 사람이 굶주려도 烏喙라는 독초를 먹지 않은 이유는, 그것으로 배를 채우면 餓死와 같은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燕이 비록 약소하지만 秦왕의 막내 사위의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燕의 10 城을 취하였으니 오랫동안 강대한 秦의 원수가 될 터입니다.
지금 약한 燕이 기러기 떼의 선두가 되고 강한 秦이 그 뒤를 지키게 하여 천하의 精兵을 불러들임은, 오훼를 먹는 따위입니다."
人有毁蘇秦者曰 :
「左右賣國反覆之臣也, 將作亂.」
蘇秦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어 말하였다.
“여기저기서 賣國하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신하이니, 장차 반란을 일으킬 터입니다."
蘇秦恐得罪歸, 而燕王不復官也.
蘇秦은 죄를 얻을까 우려하여 燕으로 돌아왔으나 연왕은 복직시키지 않았다.
蘇秦見燕王曰 :
蘇秦이 연왕을 뵙고 말하였다.
「臣東周之鄙人也, 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拜之於廟而禮之於廷.
“신은 東周의 鄙賤한 사람으로 조그만 공도 없으나, 대왕께서는 종묘에서 친히 관직을 수여하시고 조정에서는 예우하였습니다.
今臣爲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 宜以益親.
지금 신은 대왕을 위해 齊軍을 퇴각시켜 10성을 회수하였으니, 마땅히 더욱 친근하게 대하셔야 마땅합니다.
今來而王不官臣者, 人必有以不信傷臣於王者.
지금 왔는데도 신에게 관직을 내리지 않음은, 틀림없이 신을 믿을 수 없다며 대왕께 신을 중상모략한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臣之不信, 王之福也.
신을 불신함은 대왕께 복입니다.
臣聞忠信者, 所以自爲也 ;
進取者, 所以爲人也.
신이 듣건대 충성된 자는 자신을 위하는 자이고,
진취하는 자는 남을 위하는 자라고 합니다.
且臣之說齊王, 曾非欺之也.
또 신이 齊왕을 설복함이 결코 그를 속인 것은 아닙니다.
臣弃老母於東周, 固去自爲而行進取也.
제가 노모를 동주에 버려둠은 본래 自爲를 버리고 進取를 행하는 것입니다.
今有孝如曾參, 廉如伯夷, 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 何若 ?」
지금 증삼 같은 효자와 백이 같은 청렴한 인물과 미생 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어서, 이 세 사람을 얻어 대왕을 섬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王曰 :
「 足矣.」
왕이 말하였다.
“만족스럽겠소."
蘇秦曰 :
蘇秦이 말하였다.
「 孝如曾參, 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事弱燕之危王哉 ?
“증삼처럼 효성스러우면, 도의상 부모를 떠나 밖에서 하룻밤도 잠을 자지 못하는데, 대왕께서는 또 어떻게 그를 시켜 천리를 걸어가서 약한 燕의 위급한 대왕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廉如伯夷, 義不爲孤竹君之嗣, 不肯爲武王臣, 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
伯夷처럼 청렴한 사람은, 도의상 孤竹國의 후계자를 마다했으며, 주무왕의 신하가 됨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封侯도 받지 않은 채 首陽山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行進取於齊哉 ?
이렇게 청렴한데, 대왕께서 어떻게 그에게 천 리를 걸어가게 하여 제에서 進取를 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미생처럼 신의 있는 사람은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여자가 오지 않고 강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교각을 끌어안은 채 죽었습니다.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卻齊之彊兵哉 ?
이렇게 신의 있으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그에게 천 리를 걸어가게 하여 齊의 강한 군대를 물릴 수 있겠습니까?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 」
신은 소위 ‘충신 때문에 윗사람에게 죄를 얻음’에 해당합니다.”
燕王曰 :
「 若不忠信耳, 豈有以忠信而得罪者乎 ? 」
燕王이 말하였다.
“그대가 충성스럽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어찌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는데 죄를 얻을 까닭이 있겠소?“
蘇秦曰 :
蘇秦이 말하였다.
「 不然.
“그렇지 않습니다.
臣聞客有遠爲吏而其妻私於人者, 其夫將來, 其私者憂之,
妻曰
『勿憂, 吾已作藥酒待之矣』.
居三日, 其夫果至, 妻使妾擧藥酒進之.
신이 손(客)에게 들었습니다.
먼 지방에서 관리가 되어 그 처가 남과 사통한 자가 있었는데, 남편이 곧 돌아옴에, 사통한 자가 걱정하니, 처가 말하였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독약 넣은 술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흘이 지나 남편이 과연 돌아왔습니다. 처는 첩을 시켜서 독이 든 술을 남편에게 올렸습니다.
妾欲言酒之有藥, 則恐其逐主母也 ; 欲勿言乎, 則恐其殺主父也.
첩이 술에 독약이 들었음을 말하려 하니 본부인을 내쫓을까 두려웠고,
말하지 않으려 하니 주인이 죽을까 두려웠습니다.
於是乎詳僵而弃酒.
그래서 넘어지는 척하여 독주를 엎질러 버렸습니다.
主父大怒, 笞之五十.
주인은 크게 화를 내고, 매질하여 50대를 때렸습니다.
故妾一僵而覆酒, 上存主父, 下存主母, 然而不免於笞, 惡在乎忠信之無罪也 ?
그리하여 첩이 한번 넘어지는 척하며 독주를 엎어, 위로는 주인의 목숨을 보존하고, 아래로는 본부인을 보존하였으나, 매질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무죄가 충신에 달렸다고 하겠습니까 ?
夫臣之過, 不幸而類是乎 ! 」
신의 잘못은 불행하게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燕王曰 :
「 先生覆就故官. 」
연왕이 말하였다.
“선생은 다시 옛 관직에 복직하시오."
益厚遇之.
더욱 후하게 대우하였다.
易王母, 文侯夫人也, 與蘇秦私通.
燕이왕의 모친은 文侯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통하였다.
燕王知之, 而事之加厚.
이왕이 그것을 알고도, 그를 모심에 더욱 후대하였다.
蘇秦恐誅, 乃說燕王曰 :
「 臣居燕不能使燕重, 而在齊則燕必重. 」
蘇秦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燕왕을 설득하였다.
“신이 燕에 있으면 燕이 중시되게 만들 수 없으나, 신이 齊에 있으면 燕이 틀림없이 중시될 터입니다.”
燕王曰 :
「 唯先生之所爲. 」
燕왕이 말하였다.
“선생이 하는 대로 할 뿐이오."
於是蘇秦詳爲得罪於燕而亡走齊, 齊宣王以爲客卿.
이에 蘇秦은 燕에서 죄를 지었다고 속이고 齊로 도망가니, 齊宣王은 객경(다른 나라에서 와서 경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대우하였다.
▶ 烏喙: 烏頭 혹은 附子라는 한방의 약초로 쓰이는 독초의 이름이다. 그대로 말린 것을 生附子, 소금물에 담갔다가 석회가루를 뿌려서 말린 것을 白河附子, 약 120℃로 가열하여 다소 유효성분이 변질한 것을 炮附子라고 하며,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 尾生: 춘추 때 魯나라 사람이라 하는 신의로 유명한 전설상의 인물이다.
<莊子. 盜拓> 편에 ‘ 미생이 한 여인과 다리 밑에서 기한을 정해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여자는 오지 않고 강물이 불어났으나 미생은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밑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익사하고 말았다.’라는 기사가 있다.
齊宣王卒, 湣王卽位, 說湣王厚葬以明孝, 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 欲破敝齊而爲燕.
齊宣王이 죽고 湣王이 즉위하니, 蘇秦은 湣王을 설득하기를, 후한 장례로 효성을 밝히고 궁궐을 높이 짓고 苑囿를 넓게 조성하여 득의함을 밝히자고 하였으니, 齊를 피폐하게 하여 燕을 위함이었다.
燕易王卒, 燕噲立爲王.
燕이왕이 죽고 燕噲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其後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 不死, 殊而走.
그 후에 齊의 대부에 蘇秦과 함께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아, 사람을 시켜 蘇秦을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지 않으니, 자객이 결사적으로 달아났다.
齊王使人求賊, 不得.
제왕이 사람을 시켜 자객을 찾았으나 잡지 못하였다.
蘇秦且死, 乃謂齊王曰 :
「 臣卽死, 車裂臣以徇於市, 曰『 蘇秦爲燕作亂於齊 』, 如此則臣之賊必得矣. 」
蘇秦은 죽어 가면서 제왕에게 말하였다.
"신이 죽으면 신을 거열형에 처하여 저자거리에서 보이면서, ‘蘇秦은 燕을 위해 齊에서 난을 꾸몄다.’라고 하시면 신을 해친 자객을 틀림없이 잡을 터입니다."
於是如其言, 而殺蘇秦者果自出, 齊王因而誅之.
이에 제민왕이 그 말대로 하였더니 蘇秦을 죽인 자가 과연 스스로 나타났으므로, 제왕이 그를 죽였다.
燕聞之曰 :
「 甚矣, 齊之爲蘇生報仇也 ! 」
燕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참으로 심하구나, 齊가 蘇秦을 위해 원수를 갚다니 !”
蘇秦旣死, 其事大泄.
蘇秦이 죽은 뒤 蘇秦이 燕을 위해 齊를 피폐케 한 일이 널리 알려졌다.
齊後聞之, 乃恨怒燕, 燕甚恐.
齊에서 뒤늦게 알고 燕에 화를 내고 원한을 품으니, 연왕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 齊湣王: 기원전 300년부터 284년까지 재위한 전국 때 齊의 군주다.
田 성에 이름은 地이고 제선왕의 아들이다. 재위 기간 중, 진소왕과 함께 帝를 칭하다가 후에 제호를 버리고 왕호를 다시 사용하였다. 齊의 강한 군사력에 의지하여 빈번히 주위의 제후국을 침략하여 남쪽으로는 楚의 淮水 이북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三晋을 공격하여 다시 주나라의 영토를 병합하여 천자가 되려고 시도하였다. 다시 군사를 대거 일으켜 宋을 멸하여 병탄하니 진소왕의 분노를 샀다. 이에 진소왕은 燕·楚 및 삼진과 연합하여 齊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燕의 장수 樂毅를 5국 연합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臨淄에서 악의의 연합군에게 참패한 제민왕은 도주하여 莒城으로 달아났으나 楚ᄋힹ 장수 淖齒에게 살해되었다.
蘇秦之弟曰代, 代弟蘇厲, 見兄遂, 亦皆學.
蘇秦의 아우는 蘇代이고, 대의 아우는 蘇厲인데, 형제는 형의 뒤를 따라 역시 유세학을 공부하였다.
及蘇秦死. 代乃求見燕王, 欲襲故事曰 :
蘇秦이 죽고 蘇代가 연왕을 알현하고 蘇秦이 하던 일을 물려받고자 말하였다.
“臣東周之鄙人也.
" 신은 동주에서 태어난 천한 사람입니다.
竊聞大王義甚高, 鄙人不敏, 釋鉏耨而干大王.
삼가 듣기에 대왕께서 義氣가 매우 높으시다기에, 비루한 사람이 불민하오나, 호미와 괭이를 놓아두고 대왕을 섬기려 합니다.
至於邯鄲, 所見者絀於所聞於東周, 臣竊負其志.
及至燕廷, 觀王之羣臣下吏, 王天下之明王也. 」
趙의 邯鄲에 들렸습니다만, 눈에 띄는 것이 東周에서 듣던 소문과 달라서, 신은 마음속으로 근심하였습니다.
燕의 조정에 와서 대왕의 신하들과 하급 관리들을 관찰해 보니,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임금입니다.“
燕王曰 :
「 子所謂明王者何如也 ? 」
연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소위 현명한 왕이란 어떤 왕인가?“
對曰 :
소대가 대답하였다.
「 臣聞明王務聞其過, 不欲聞其善, 臣請謁王之過.
“신이 듣기에, 明王은 그 잘못을 듣기에 힘쓰고 그의 잘한 일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오니, 신은 대왕의 허물을 아뢰겠습니다.
夫齊趙者, 燕之仇讎也 ;
楚魏者, 燕之援國也.
무릇 齊와 趙는 燕의 원수이며, 楚와 魏는 燕을 지원하는 나라입니다.
今王奉仇讎以伐援國, 非所以利燕也.
그런데 대왕께서 원수를 받들고 지원국을 공격함은 燕에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王自慮之, 此則計過, 無以聞者, 非忠臣也. 」
대왕께서도 이 점을 고려해 보시면 계책이 잘못임을 아실 터인데, 그것을 아뢰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닙니다."
王曰 :
「 夫齊者固寡人之讎, 所欲伐也, 直患國敝力不足也.
子能以燕伐齊, 則寡人擧國委子. 」
연왕이 말하였다.
“무릇 齊는 본래 과인의 원수로서 정벌하고 싶으나, 국력이 피폐해져 역부족임을 근심할 뿐이다.
그대가 燕의 국력으로 齊를 정벌할 수 있다면 과인은 나라를 온통 그대에게 맡기겠다.“
對曰 :
소대가 대답하였다.
“凡天下戰國七, 燕處弱焉.
“천하에 전국이 모두 일곱인데, 燕은 약한 처지에 있습니다.
獨戰則不能, 有所附則無不重.
燕이 단독으로 전쟁을 하면 불가능하고, 다른 나라에 붙으면 나라의 지위가 무거워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南附楚, 楚重 ;
西附秦, 秦重 ;
中附韓魏, 韓魏重.
남으로 楚에 붙으면 楚의 지위가 무거워지고
서쪽으로 秦에 붙으면 秦의 지위가 무거워지고
중간의 韓과 魏에 붙으면 韓과 魏의 지위가 무거워집니다.
且苟所附之國重, 此必使王重矣.
또한 따르는 나라의 지위가 무거워지면, 거기에 따라 대왕의 지위도 필시 무거워질 터입니다.
今夫齊, 長主而自用也.
그런데 齊는 나이 많은 군주가 스스로 결정합니다.
南攻楚五年, 畜聚竭 ;
西困秦三年, 士卒罷敝 ;
北與燕人戰, 覆三軍, 得二將.
남쪽으로 楚를 공격하기 5년, 비축해 둔 군량과 재물이 모두 고갈되었고 ;
서쪽으로 秦을 괴롭히기 3년, 사졸이 피로에 지쳐있으며 ;
북쪽으로 燕과 싸워서 三軍을 뒤집고 두 장수를 사로잡았습니다.
然而以其餘兵南面擧五千乘之大宋, 而包十二諸侯.
그러고도 남은 병력을 가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병거 5천 승을 보유한 대국 宋을 격파하고, 열두 제후를 병합하였습니다.
此其君欲得, 其民力竭, 惡足取乎 !
이로써 그 군주는 원하는 바를 얻었으나 백성의 힘은 다했으니, 어찌 빼앗기에 만족하겠습니까!
且臣聞之, 數戰則民勞, 久師則兵敝矣. 」
또 신이 듣기에, 전쟁을 자주 일으키면 백성이 피로하고, 오래 싸우면 군사가 피폐하다고 합니다.“
燕王曰 :
「 吾聞齊有淸濟濁河可以爲固, 長城鉅防足以爲塞, 誠有之乎 ? 」
연왕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齊에는 淸河·齊水·濁河가 있어 견고한 방어가 되며, 長城과 鉅防은 요새지로 충분하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對曰 :
「 天時不與, 雖有淸濟濁河, 惡足以爲固 !
民力罷敝, 雖有長城·鉅防, 惡足以爲塞 !
且異日濟西不師, 所以備趙也 ;
河北不師, 所以備燕也.
今濟西河北盡已役矣, 封內敝矣.
夫驕君必好利, 而亡國之臣必貪於財.
王誠能無羞從子母弟以爲質, 寶珠玉帛以事左右, 彼將有德燕而輕亡宋, 則齊可亡已. 」
소대가 대답하였다.
“천시가 齊를 돕지 않으면 비록 청하·제수·탁하가 있으나 어찌 족히 견고하다고 하겠습니까 !
백성의 힘이 피폐해지면 비록 장성이나 거방이 있으나 어찌 족히 요새로 삼겠습니까!
또 일찍이 齊가 齊西에서 군사를 징발하지 않음은 趙에 대비한 것이고, 河北에서 군사를 징발하지 않음은 燕에 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濟西와 河北에서 군사를 모두 징발하여 나라 안이 피폐해졌습니다
대체로 교만한 군주는 틀림없이 이익을 좋아하고, 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틀림없이 재물을 탐합니다.
대왕께서 성의를 다하여 아들, 모친, 동생을 인질로 보내고, 보석과 비단을 선물하여 제왕의 측근을 섬김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들은 장차 燕에 은덕을 가지며 宋을 가벼이 여겨 멸망시킬 터이니, 齊를 멸망시킬 수 있을 터입니다.“
燕王曰 :
「 吾終以子受命於天矣. 」
연왕이 말하였다.
“나는 마침내 그대로 말미암아 하늘의 명을 받았구나."
燕乃使一子質於齊.
燕은 이에 왕의 아들 한 명을 齊에 인질로 보냈다.
而蘇厲因燕質子而求見齊王.
그리고 蘇厲는 인질을 이용하여 齊 왕을 뵈려고 하였다.
齊王怨蘇秦, 欲囚蘇厲.
齊왕은 蘇秦을 원망하였으므로 소려를 가두고자 하였다.
燕質子爲謝, 已遂委質爲齊臣.
燕에서 인질인 공자가 사죄하고, 소려 자신도 인질로 齊의 신하가 되었다.
燕相子之與蘇代婚, 而欲得燕權, 乃使蘇代侍質子於齊.
燕 재상 자지는 소대와 혼인으로 맺고, 燕의 실권을 차지하기 위해, 소대로 하여금 齊에 볼모로 간 왕자의 시종을 들게 하였다.
齊使代報燕, 燕王噲問曰 :
「 齊王其霸乎 ? 」
齊에서는 소대를 시켜 燕에서 온 인질이 무사하다고 보고하게 하니, 燕왕 쾌가 물었다.
“齊왕은 패왕이 될 수 있겠는가?”
曰 :
「 不能. 」
蘇代가 말하였다.
“불가능합니다”
曰 :
「 何也 」
연왕이 재차 물었다.
“어째서 그런가 ? ”
曰 :
「 不信其臣. 」
소대'가 대답하였다.
“신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於是燕王專任子之, 已而讓位, 燕大亂.
이에 燕왕은 子之에게 정사를 맡기고 얼마 후에 왕위까지 사양하였으므로 燕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齊伐燕, 殺王噲子之.
齊는 燕을 쳐서 연왕 쾌와 자지를 죽였다.
燕立昭王, 而蘇代蘇厲遂不敢入燕, 皆終歸齊, 齊善待之.
燕은 소왕을 옹립하였고, 소대와 소려는 끝내 감히 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齊에 귀순하니 齊는 이들을 잘 대접하였다.
蘇代過魏, 魏爲燕執代.
蘇代가 魏에 들림에 魏가 燕을 위해 蘇代를 붙잡아 두었다.
▶戰國: 영웅(英雄)이 할거(割據)하여 서로 싸우는 나라들
▶ 淸河: 전국 때 趙와 齊 사이에 흐르던 강 이름이다. 발원지는 하남성 內黃 남이나 하류는 미상이다.
▶ 濁河: 황하의 별칭이다.
▶ 長城: 춘추전국 때 齊가 태산 남쪽에 오와 초의 침략을 대비하여 건설한 장성을 말한다.제장성이다.
▶ 鉅防: 제수 강안에 건설한 관문으로 지금의 산동성 長淸縣에 있었다.
齊使人謂魏王曰 :
齊가 사신을 보내 魏王에게 말하였다.
「 齊請以宋地封涇陽君, 秦必不受.
“齊가 새로 차지한 宋 땅을 涇陽君(秦왕의 아우)의 봉지로 바치려 해도 秦은 필시 받지 않을 터입니다.
秦非不利有齊而得宋地也, 不信齊王與蘇子也.
秦이 齊와 우호하여 宋 땅을 얻음을 이익이라 여기지 않음이 아니라, 齊왕과 蘇代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今齊·魏不和如此其甚, 則齊不欺秦, 秦信齊.
지금 齊와 魏의 불화가 이처럼 심하면 齊는 秦을 속이지 않고 秦도 齊를 믿을 터입니다.
▶有:친하게 지내다
▶ 涇陽君: 秦공자 芾의 봉호다. 秦宣太后 羋八子의 아들로 진소양왕의 동모제다.
齊秦合, 涇陽君有宋地, 非魏之利也.
齊와 秦이 화합하고 涇陽君이 宋 땅을 차지함은 魏의 이익이 아닙니다.
故王不如東蘇子, 秦必疑齊而不信蘇子矣.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蘇代를 동쪽으로 보냄이 좋을 터이니, 그러면 秦은 틀림없이 齊를 의심하고 蘇代를 믿지 않을 터입니다..
齊秦不合, 天下無變, 伐齊之形成矣.」
齊와 秦이 화합하지 않으면 천하의 형세에 변화가 없고, 魏가 齊를 칠 기회가 생기게 되겠습니다.“
於是出蘇代.
이래서 魏는 蘇代를 풀어주었다.
代之宋, 宋善待之.
蘇代는 宋으로 갔는데, 宋은 그를 잘 대접하였다.
齊伐宋, 宋急, 蘇代乃遺燕昭王書曰 :
齊가 宋을 공격하여 宋이 위급해지니, 蘇代가 연소왕에게 서신을 보내어 일렀다.
夫列在萬乘而寄質於齊, 名卑而權輕 ;
奉萬乘助齊伐宋, 民勞而實費 ;
夫破宋, 殘楚淮北, 肥大齊, 讎彊而國害 : 此三者皆國之大敗也.
만승의 반열에 있으면서 齊에 인질을 보내니, 명성이 실추되고 권위가 가벼워졌습니다. 만승의 병거를 받들어 齊을 도와 宋을 치게 되면 백성은 피로에 지치고 재물은 낭비됩니다. 宋을 점령하고는 楚의 淮北을 차지하여 齊가 비대해질 터이고, 원수가 강해지면 燕에게는 해롭습니다. 이 세 가지 일은 모두 燕에게는 큰 재앙입니다.
然且王行之者, 將以取信於齊也.
그런데도 대왕께서 그것을 행함은 그것으로 齊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齊加不信於王, 而忌燕愈甚, 是王之計過矣.
제왕은 더욱 대왕을 믿지 않고, 燕을 꺼림이 더욱 심해질 터이니, 대왕의 계책이 잘못입니다.
夫以宋加之淮北, 强萬乘之國也, 而齊幷之, 是益一齊也.
宋땅을 회북에 더하면 강력한 만승의 나라가 되는데, 齊가 이를 병합하면 하나의 齊를 더하는 일입니다.
北夷方七百里, 加之以魯魏, 彊萬乘之國也, 而齊幷之, 是益二齊也.
북방 오랑캐의 땅은 사방 칠백 리인데, 여기에 魯와 魏를 더하면 만승의 강국이 될 터이고, 齊가 이를 병합하면 두 개의 齊를 더하는 일입니다.
夫一齊之彊, 燕猶狼顧而不能支, 今以三齊臨燕, 其禍必大矣.
하나의 齊도 강성하여 燕은 이리가 돌아보듯 지탱하기 어려운데, 세 개의 齊가 燕에 臨迫 한다면 그 재앙은 틀림없이 크겠습니다.
雖然, 智者擧事, 因禍爲福, 轉敗爲功.
비록 그러하나 지혜로운 자가 일하면, 화를 이어 복이 되게 하고 실패를 성공으로 돌립니다.
齊紫, 敗素也, 而賈十倍 ;
越王句踐棲於會稽, 復殘彊吳而霸天下 : 此皆因禍爲福, 轉敗爲功者也.
齊의 자주 비단은 못쓰는 흰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가격은 열 배나 비쌉니다.
월왕 구천은 회계산에 갇혀 살았지만, 다시 강한 吳를 깨트리고 천하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화를 이어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돌려서 성공을 만든 것입니다.
今王若欲因禍爲福, 轉敗爲功, 則莫若挑霸齊而尊之, 使使盟於周室, 焚秦符曰 :
「 其大上計, 破秦 ;其次, 必長賓之. 」
지금 대왕께서 만약 화를 복으로 돌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고 싶다면, 齊를 도와 패자를 만들고 높임만한 것이 없으니, 사신을 주나라 왕실에 보내 齊를 맹주로 받든다는 맹세를 하고, 秦과 맺은 맹약서를 태워버리며 말하기를, <상책은 秦을 깨트리는 것이고, 차선책은 길이 秦을 배척하는 것이다.> 라고 하십시오.
秦挾賓以待破, 秦王必患之.
秦이 배척당하여 파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 秦왕은 반드시 근심할 터입니다.
秦五世伐諸侯, 今爲齊下, 秦王之志苟得窮齊, 不憚以國爲功.
秦은 5대에 걸쳐 제후를 공격해왔으나 지금은 齊의 밑에 있게 되니, 秦왕의 뜻은 어떻게든지 齊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만 있다면, 국력을 다하여 성공하기를 꺼리지 않을 터입니다.
然則王何不使辯士以此言說秦王曰 :
「 燕趙破宋肥齊, 尊之爲之下者, 燕趙非利之也.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말 잘하는 유세객을 秦王에게 보내서 설득하지 않으십니까?
<燕과 趙가 宋을 깨트리고 齊를 비대하게 하여 齊를 높이고 그 아래 위치에 서는 것은 燕과 趙에게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燕·趙不利而勢爲之者, 以不信秦王也.
燕·趙에게 유리하지 않은데도 형세가 그렇게 됨은 秦왕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然則王何不使可信者接收燕趙, 今涇陽君高陵君先於燕趙, 秦有變, 因以爲質, 則燕趙信秦. 秦爲西帝, 燕爲北帝, 趙爲中帝, 立三帝以令於天下.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믿을 만한 자를 燕과 趙에 보내어 秦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涇陽君, 高陵君을 우선 燕과 趙에 보내어 秦이 변심할 경우를 대비하여 이들을 인질로 삼게 한다면 燕·趙는 秦을 믿을 것입니다.
秦은 서쪽의 제왕이 되고 燕은 북쪽의 제왕이 되며 趙는 중앙의 제왕이 되어 세 제왕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韓魏不聽則秦伐之, 齊不聽則燕趙伐之, 天下孰敢不聽 ?
韓과 魏가 듣지 않으면 秦이 정벌하고, 齊가 듣지 않으면 燕과 趙가 정벌하면 천하에 누가 감히 말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天下服聽, 因驅韓·魏以伐齊, 曰 『 必反宋地, 歸楚淮北. 』
천하가 복종하면 韓과 魏를 이끌고 齊를 정벌하면서 말하기를 '宋 땅을 반드시 돌려주고 淮北을 楚에 돌려주시오'라고 하십시오.
反宋地, 歸楚淮北, 燕趙之所利也 ;
並立三帝, 燕趙之所願也.
齊가 宋 땅을 돌려주고 淮北을 楚에 돌려줌은 燕과 趙에 이익이 되는 바이고
세 帝王이 병립함은 燕과 趙가 바라는 바입니다.
夫實得所利, 尊得所願, 燕趙弃齊如脫躧矣.
이익이 되는 실리를 얻고 원하는 존귀한 지위를 얻는다면 燕과 趙는 齊를 헌신짝처럼 버릴 터입니다.
今不收燕趙, 齊霸必成.
그런데 燕과 趙를 자기편으로 거두지 않으면, 齊의 패업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터입니다.
諸侯贊齊而王不從, 是國伐也 ;
諸侯贊齊而王從之, 是名卑也.
제후가 齊를 따르는데 대왕이 따르지 않으면 秦은 정벌당할 터입니다.
제후가 齊를 따르는데 대왕께서 따르면 명성이 낮아질 터입니다.
今收燕趙, 國安而名尊 ;
不收燕趙國危而名卑.
그런데 燕과 趙를 거두면 나라가 안정되고 명성도 높아지나,
燕과 趙를 거두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명성도 낮아질 터입니다.
夫去尊安而取危卑, 智者不爲也.」
존중과 안정을 버리고 위험과 비천을 취함은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秦王聞若說, 必若刺心然.
秦왕이 유세를 들으면 반드시 마음에 찔리는 바가 있을 터입니다.
則王何不使辯士以此若言說秦 ?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辯士를 시켜 이런 말로써 秦王에게 유세하지 않으십니까?
秦必取, 齊必伐矣.
유세하면 秦은 반드시 이를 취할 터이며 齊는 반드시 정벌을 당할 터입니다.
夫取秦, 厚交也 ;
伐齊, 正利也.
秦을 끌어들임은 견실한 외교이고,
齊를 공격함은 정당한 나라의 이익입니다.
尊厚交, 務正利, 聖王之事也.
견실한 외교를 존중하고 정당한 이익에 힘씀은 성왕의 사업입니다.
燕昭王善其書曰 :
「 先人嘗有德蘇氏, 子之之亂而蘇氏去燕.
燕欲報仇於齊, 非蘇氏莫可. 」
연소왕은 그 편지가 훌륭하다고 여겨 말하였다.
“선왕은 일찍이 소씨에게 은덕을 베풀었으나, 자지의 난이 있어 소씨는 燕을 떠났다.
燕이 齊에 복수하고자 함에, 소씨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乃召蘇代, 復善待之, 與謀伐齊.
이에 연왕이 蘇代를 불러 다시 그를 후대하고, 함께 齊를 정벌할 계획을 모의하였다.
竟破齊, 湣王出走.
마침내 齊를 격파하니 齊湣王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久之, 秦召燕王, 燕王欲往, 蘇代約燕王曰 :
오랜 후에 진왕이 연왕을 부르자, 연왕이 가려 하였으나 蘇代가 만류하여 말하였다.
「 楚得枳而國亡, 齊得宋而國亡, 齊楚不得以有枳宋而事秦者, 何也 ?
“楚는 枳을 얻어서 나라가 망했고, 齊는 宋을 얻은 후에 나라가 망했는데, 齊와 楚가 지와 宋을 차지하고도 秦을 섬기지 못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則有功者, 秦之深讎也.
戰功이 있는 자는 秦의 깊은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秦取天下, 非行義也, 暴也.
秦이 천하를 취함은 行義가 아니고 폭력입니다.
秦之行暴, 正告天下.
秦이 폭력을 행사함은 바로 천하에 알립니다.
告楚曰 :
秦이 楚에 고하기를,
『 蜀地之甲, 乘船浮於汶, 乘夏水而下江, 五日而至郢.
‘蜀 땅의 甲兵이 배를 타고 汶水를 떠나서, 여름의 물을 타고 장강으로 내려가면 닷새면 郢에 이를 터이오.
漢中之甲, 乘船出於巴, 乘夏水而下漢, 四日而至五渚.
漢中의 甲兵이 배를 타고 巴를 출발하여 여름의 물을 타고 漢水로 내려가면 나흘이면 五渚에 이를 터이오.
寡人積甲宛東下隨, 智者不及謀, 勇士不及怒, 寡人如射隼矣.
과인의 누적한 갑병이 宛縣의 동쪽에서 隨邑으로 내려가면, 智者도 미처 계책을 세울 수 없고, 勇士라도 미처 성내지 못할 때, 과인은 기회를 보아 공격할 터이오.
王乃欲待天下之攻函谷, 不亦遠乎!』
초왕은 그런데도 천하의 제후가 函谷關을 공격하기를 기다리니, 너무 요원하지 않소?'라고 하니,
楚王爲是故, 十七年事秦.
초왕은 이런 까닭으로 17년간 秦을 섬겼습니다.
秦正告韓曰 :
秦은 바로 韓에 경고하기를,
『 我起乎少曲, 一日而斷太行.
‘우리 군대가 少曲에서 출발하면 하루에 太行山의 길을 차단할 수 있소.
我起乎宜陽而觸平陽, 二日而莫不盡繇.
우리 군대가 宜陽에서 출병하여 韓의 平陽에 닿으니, 2일이면 韓은 동요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오.
我離兩周而觸鄭, 五日而國擧.』
나의 군대가 兩周를 통과하여 鄭에 닿으면, 5일 만에 韓을 점령할 터이오.’라고 하니,
韓氏以爲然, 故事秦.
韓은 그렇다고 여겨 秦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秦正告魏曰 :
秦이 바로 魏에 경고하기를,
『 我擧安邑, 塞女戟, 韓氏太原卷.
‘우리가 安邑을 점령하고, 女戟의 길을 막으면, 韓의 太原은 사방이 杜絶될 터이오.
我下軹, 道南陽, 封冀, 包兩周.
우리가 軹邑을 내려와 南陽을 지나 冀邑을 봉쇄하고 동주와 서주를 포위할 수 있소.
乘夏水, 浮輕舟, 彊弩在前, 錟戈在後, 決滎口, 魏無大梁 ;
決白馬之口, 魏無外黃濟陽 ;
여름에 불어난 물을 타고 빠른 배를 띄워, 강력한 쇠뇌부대를 앞세우고, 예리한 창을 든 부대를 뒤에 두고 滎澤의 제방 입구를 터 버리면, 魏의 大梁이 없어질 터이고
白馬津의 제방 임구를 터 버리면, 魏의 外黃과 濟陽은 없어질 터이오.
決宿胥之口, 魏無虛頓丘.
다시 宿胥의 제방을 터 버리면 虛와 頓丘는 없어질 터이오.
陸攻則擊河內, 水攻則滅大梁. 』
육지로 공격하면 河內를 칠 테고, 물길로 공격하면 大梁을 멸할 테요.'라고 하자,
魏氏以爲然, 故事秦.
魏는 그렇다고 여겨 秦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秦欲攻安邑, 恐齊救之, 則以宋委於齊. 曰 :
『 宋王無道, 爲木人以寫象寡人, 射其面.
寡人地絶兵遠, 不能攻也.
王苟能破宋有之, 寡人如自得之. 』
秦이 魏의 安邑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齊가 魏를 구원할까 염려하여, 宋을 齊에 맡기면서 일렀습니다
‘宋왕이 무도하여 나무 인형을 과인의 모양대로 만들고 그 얼굴을 쏜다고 합니다.
과인이 땅이 끊어져 출병하기에 멀어 공격할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宋을 깨뜨리고 땅을 차지한다면, 과인이 그것을 얻은 듯하겠습니다.’
已得安邑, 塞女戟, 因以破宋爲齊罪.
安邑을 얻고 女戟도 막고 나자, 宋을 쳐부숨을 齊의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秦欲攻韓, 恐天下救之, 則以齊委於天下. 曰 :
『 齊王四與寡人約, 四欺寡人, 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
有齊無秦, 有秦無齊, 必伐之, 必亡之. 』
또 秦은 韓을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천하의 제후가 韓을 도울까 염려하여 齊의 처리를 제후에게 맡기며 말하였습니다.
'齊왕은 과인과 네 번 약속하고 네 번 속였으며, 천하의 제후를 이끌고 과인을 공격한 일이 모두 세 번이나 있었소.
齊가 있으면 秦이 없고, 秦이 있으면 齊는 있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齊를 쳐서 반드시 멸망시켜야 하오.’
已得宜陽·少曲, 致藺·離石, 因以破齊爲天下罪.
韓의 宜陽·少曲을 얻고 藺邑과 離石을 빼앗고 나자, 齊를 정벌함을 천하 제후의 죄라고 말하였습니다.
秦欲攻魏重楚, 則以南陽委於楚. 曰 :
『 寡人固與韓且絶矣.
殘均陵, 塞鄳阨, 苟利於楚, 寡人如自有之.』
秦은 魏를 치려 함에 楚를 위험시하여 韓의 옛 땅 南陽을 楚에 맡기면서 일렀습니다.
‘과인은 본디 韓과 절교하려고 했습니다.
均陵을 쓸어버리고 鄳阨을 막음이 楚에 이익이 된다면, 과인이 그곳을 가진 듯이 여기겠습니다.’
魏弃與國而合於秦, 因以塞鄳阨爲楚罪.
魏가 합종했던 동맹국을 버리고 秦과 화합하자, 鄳阨을 막음을 楚의 죄로 돌렸습니다.
兵困於林中, 重燕趙, 以膠東委於燕, 以濟西委於趙.
秦軍이 魏를 공격하다가 林中에서 곤경에 처함에 燕과 趙를 위험시하여, 燕에는 膠東을 맡기고, 趙에는 濟西를 맡겼습니다.
已得講於魏, 至公子延, 因犀首屬行而攻趙.
魏와 강화하고 나자 秦은 魏의 公子 延을 인질로 잡고, 犀首에게 부탁하여 趙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兵傷於譙石, 而遇敗於陽馬, 而重魏, 則以葉蔡委於魏.
秦軍이 譙石에서 趙軍에게 다치고, 陽馬에서 趙군에 패하자, 魏를 염려하여 葉과 蔡를 맡겼습니다.
已得講於趙, 則劫魏, 魏不爲割.
趙와 강화하고 나자, 魏를 협박하니 魏는 땅을 割讓받지 못했습니다.
困則使太后弟穰侯爲和, 嬴則兼欺舅與母.
곤란해지면 태후의 아우 穰侯를 보내어 화친을 맺게 하고, 유리하면 모후와 외삼촌을 속였습니다.
適燕者曰 以膠東,
適趙者曰 以濟西,
適魏者曰 以葉·蔡,
適楚者曰 以塞鄳阨,
適齊者曰 以宋.
燕을 꾸짖음에 膠東 때문이라 하고,
趙를 꾸짖음에 濟西 때문이라 하고,
魏를 꾸짖음에 葉·蔡 때문이라 하고,
楚를 꾸짖음에 鄳阨을 막음 때문이라 하고
齊를 꾸짖음에 宋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此必令言如循環, 用兵如刺蜚, 母不能制, 舅不能約.
이렇게 言說은 둥근 고리 같아서 끝과 시작이 없으며, 用兵은 바퀴벌레를 찔러 죽이듯이 악랄하여, 모친도 제지하지 못하였으며, 외삼촌도 멈추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龍賈之戰, 岸門之戰, 封陵之戰, 高商之戰, 趙莊之戰,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魏의 장수 龍賈와의 전투, 韓 岸門의 전투, 魏 封陵의 전투, 高商의 전투, 趙의 장수 趙莊과의 전투 등 秦軍이 죽인 三晉의 백성의 수가 백만이고, 지금 생존자는 모두 秦에게 죽은 사람의 고아입니다.
西河之外, 上雒之地, 三川晉國之禍, 三晉之半, 秦禍如此其大也.
西河의 밖, 上雒 지방, 晉의 三川에 걸친 戰禍는 삼진의 영토 절반에 달하니, 秦으로 인한 재앙이 이처럼 큽니다.
而燕·趙之秦者, 皆以爭事秦說其主, 此臣之所大患也. 」
그런데도 燕과 趙에서 秦으로 간 유세가는 모두 그들의 군주에게 앞다투어 秦을 섬기라고 말하니, 이것이 신의 크게 근심하는 바입니다."
▶ 約: 말리다. 멈추다
▶ 汶江: 岷江의 별칭이다.
▶ 五渚: 湘水·沅水·資水·灃水 등의 네 줄기의 강물이 洞庭湖의 북쪽에서 만나 다섯 번째의 큰 물줄기를 이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 水經注 湘水.
일설에는 宛과 鄧 사이의 한수 강심에 있는 다섯 군데의 모래섬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였다.(사기색은 66 少曲: 少水之曲 즉 소수가 꺾이는 곳의 지명으로 지금의 하남성 濟源縣 서쪽, 태항산 서남이다.
▶ 射隼: 为待机歼敌之喻
▶ 卷: 단절하다(斷切ㆍ斷截--)
▶ 道: 가다.
▶ 必: 모두. 다
▶ 龍賈之戰: 기원전 314년에 일어난 秦과 魏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周赧王 원년 秦惠王이 장수 犀首와 公子卬을 시켜 魏를 공격하자 魏는 용가에게 4만 5천의 대군을 주어 막도록 하였다. 龍賈는 진군과 지금의 섬서성 甘泉 남쪽의 雕陰에서 싸워 대패하고 자신은 포로가 되었다.
▶ 岸門之戰: 기원전 338년 (周顯王 31년) 秦과 魏 사이에 지금의 산서성 河津 남쪽의 岸門에서 벌어진 전쟁. 이 싸움에서 위군은 대패하고 그 대장 魏錯는 진군의 포로가 되었다.
▶ 封陵之戰: 봉릉은 현 삼서성 芮城 남쪽으로 황하의 북안 도시다. 전국 때 魏 성읍으로 6국 연표에 魏哀王 16(기원전296년) “ 秦이 魏를 공격하여 蒲坂, 晉陽, 奉陵을 빼앗았.”라는 기사가 있다. 6국 연표의 위애왕은 魏襄王의 잘못이다.
▶ 趙莊之戰: 趙武靈王 13년 (기원전313년) 秦이 趙를 공격하여 藺을 점령하고 조군의 趙莊을 포로로 잡아간 싸움을 말한다. 藺은 지금의 산서성 離石 서쪽이다.
燕昭王不行.
연소왕이 가지 않았다.
蘇代復重於燕.
소대는 燕에서 다시 중용되었다.
燕使約諸侯從親如蘇秦時, 或從或不, 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
燕은 蘇秦이 살아있을 때처럼 제후들과 합종을 시도했으나, 어떤 자는 따르고 어떤 자는 따르지 않았으니, 이로 인하여 천하 사람들이 소씨의 합종책을 종주로 여겼다.
代·厲皆以壽死, 名顯諸侯.
蘇代와 소려는 모두 천수를 누리고 죽었으며, 명성이 제후 사이에 드러났다.
太史公曰 :
蘇秦兄弟三人, 皆游說諸侯以顯名, 其術長於權變.
而蘇秦被反閒以死, 天下共笑之, 諱學其術.
然世言蘇秦多異, 異時事有類之者皆附之蘇秦.
夫蘇秦起閭閻, 連六國從親, 此其智有過人者.
吾故列其行事, 次其時序, 毋令獨蒙惡聲焉.
태사공은 말한다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냈는데, 그들의 변론술은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뛰어났다.
그러나 蘇秦은 반간의 죄를 쓰고 죽었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비웃고, 그의 유세술 배우기를 꺼렸다.
그러나 세상에서 蘇秦을 말함에 다른 것이 많으니, 다른 시대의 일에 비슷한 것이 있으면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붙인 까닭이다.
蘇秦이 閭閻의 출신으로 六國을 연결하여 합종의 친교를 맺었으니, 이것은 그의 지혜에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行事를 열거하고, 그 때의 순서를 매겨서 유독 악평만을 입지 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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