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67.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

耽古樓主 2023. 7. 20. 00:12

 

孔子(기원전551년~기원전479년)는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이다. 본명은 孔丘이며 춘추시대 魯의 사람으로 유교의 始祖이다. 춘추시대의 정치가·사상가·교육자이고, 魯의 문신이자 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공자는 제자 중 六藝에 통달한 자가 77명이라고 하였으며, 사마천은 論語 및 孔子世家, 春秋左氏傳 등을 인용하여 제자들을 낱낱이 설명하여 장문의 형식을 취하였다.
사마천은
“나는 공자의 제자들의 이름과 언행을 모두 ‘논어’에 나오는 사제 사이의 문답에서 취한 뒤 이를 차례로 정리하여 중니제자열전을 만들었다. 의심나는 것은 싣지 않았다.”
라고 기술하였다.

列傳권67.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

 

孔子曰
「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공자가 말하였다.
학업에 힘써 六藝에 통달한 자는 77명이다.”

皆異能之士也。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비이다.

德行:顏淵,閔子騫,冉伯牛,仲弓。
덕행에는 顔淵(: 안회), 閔子騫(: 민손), 冉伯牛(: 염경), 仲弓(: 염옹)이 뛰어났다.

政事:冉有,季路。
정치에는 冉有(: 염구), 季路(: 중유)가 뛰어났다.

言語:宰我,子貢。
언변에는 宰我(: 재여), 子貢(: 단목사)이 뛰어났다.

文學:子游,子夏。
문학에는 子游(: 언언), 子夏(: 복상)가 뛰어났다.

師也辟,參也魯,柴也愚,由也喭,回也屢空。
顓孫師는 치우친 데가 있고曾參은 노둔하고高柴는 우둔하고仲由(: 자로)는 거칠며顔回는 매우 가난하였다.

賜不受命而貨殖焉,億則屢中。
端木賜는 천명에 얽매이지 않고 재물을 불렸지만 예측이 자주 들어맞았다.

▶ 受業身通者:문하에서 학습하여 육예에 통달한 자. 六藝는 六經을 말하며, <詩經>·<書經>·<禮記>·<易經>·<樂經>·<春秋> 등 여섯 종의 유가의 고대 경전을 가리킨다.
▶ 德行~: 孔門四科는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이다.
“德行: 顏淵,閔子騫,冉伯牛,仲弓。言語:宰我,子貢。政事:冉有,季路。文學:子游,子夏。” <論語 先進>
▶ 師也辟: 顓孫師는 치우친 데가 있다. 辟은 과격함. 편벽되다.
전손사는 춘추시대 陳 사람으로 字는 자장이며, 공자의 제자로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너그러워서 남과 잘 사귀었으며 의협심이 강하였다. 공자보다 48세 아래였다.
▶ 參也魯: 曾參은 어리석은 바가 있다. 魯는 둔하다. 굼뜨다.
▶ 柴也愚: 高柴는 우둔하다. 愚는 어리석다. 우둔하다.
▶ 由也喭: 중유는 거칠다. 喭은 거칠다. 경솔하다는 뜻.
▶ 屢空: 어려운 처지. 매우 가난함.
▶ 不受命: 천명을 받지 않다. 천명에 얽매이지 않다.
▶ 億則屢中: 예측이 들어맞음. 億은=臆과 같으며 추측. 中은 부합함.
※孔門十哲: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열 명을 이른다. 論語先進편에
“陳과 蔡에서 날 따르던 이들이 이제는 문하에 아무도 없구나. 덕행으로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뛰어났고, 언변은 재아와 자공이 뛰어났고,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뛰어났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뛰어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의 적통을 이은 증삼의 이름은 없고, 공야장편 제9장에서 썩은 나무와 썩은 흙에 빗대어진 재아가 꼽혀 있는 등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또 공자는 제자를 字가 아닌 휘으로 부르는데, 상술한 목록에서는 하나같이 字를 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꼽은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孔子之所嚴事:
於周則老子;
於衛,蘧伯玉;
於齊,晏平仲;
於楚,老萊子;
於鄭,子產;
於魯,孟公綽。
공자가 존경한 사람들은
주나라의 老子
의 蘧伯玉,
의 晏平仲,
의 老萊子,
의 子産,
의 孟公綽 등이 있었다.

數稱臧文仲、柳下惠、銅鞮伯華、介山子然,孔子皆後之,不并世。
자주 칭송하는 인물은 대부 臧文仲대부 柳下惠銅鞮의 伯華介山子然이었으며 공자보다 앞 시대의 사람들로 같은 시대의 사람은 아니다.

▶ 所嚴事: 존경한 사람. 嚴은 존경하다.
▶ 老萊子: 莊子에는 老聃과 老萊子가 나오는데, 老聃이 바로<道德經>의 작자인 노자라는 주장이 많지만, 사마천의 <史記>에서는 老萊子 또는 周의 太史儋을 노자와 동일인이라고 보고 있으며, 李耳, 老聃과 함께 세 명의 노자 중 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 數: 누차. 자주.
▶ 稱: 칭송.
▶ 不並世: 동일 시대에 존재하지 않음.



​1.顏回<字 子淵>

顏回者,魯人也,字子淵。少孔子三十歲。
顏回는 사람이며는 子淵이고 공자보다 나이가 30세 적다.

顏淵問仁,孔子曰:
「克己復禮,天下歸仁焉。」
안연이 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자기를 이겨내고 로 돌아가는 것이 이며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귀의할 터이다.”

孔子曰:
「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飲,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
공자가 말하였다.
어질도다!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골목에 살고 있으니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回也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
안회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듯하더니물러간 뒤에 행동을 보면 내게서 들은 바를 그대로 옮기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다.”

「用之則行,捨之則藏,唯我與爾有是夫!」
세상이 써주면 도를 행하고 세상이 저버리면 조용히 도를 지킴은 오직 나와 너만이 지니고 있을 뿐이다!”

▶ 顔回(기원전521년? ~기원전491년?) 춘추시대 魯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子淵이다. 자를 따서 顏淵이라고도 부른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그러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빈곤하고 불우하였으나 개의치 않고 성내거나 잘못한 일이 없으므로,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졌다. 그래서 顔子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 克己復禮,天下歸仁焉. : “자기를 이겨내고 禮로 돌아가는 것이 仁이다. 하루만이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이야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달린 것이겠느냐?
(顏淵問仁。子曰:
「克己復禮為仁。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為仁由己,而由人乎哉?」)”<論語 顔淵>
▶ 賢哉回也: 어질도다. 회여!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골목에 살고 있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論語 雍也>
▶ 回也如愚~:
“子曰:
「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를 하였으나, “안회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인 듯하더니, 물러간 뒤에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게서 들은 바를 그대로 옮기니 안회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論語 爲政>
▶ 用之則行:
“子謂顏淵曰:
「用之則行,舍之則藏,唯我與爾有是夫!」
공자께서 顔淵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써주면 도를 행하고 세상이 저버리면 조용히 도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와 너만이 지니고 있을 뿐이다!”<論語 述而>
즉, 나를 써주거나 나를 버리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으며, 행하고 은둔하는 것은 만나는 환경에 따라 편안히 여기니, 運命은 말할 것이 못 된다. 顔子는 聖人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역시 이에 능할 수 있었다.

 

回年二十九,髮盡白,蚤死。
안회는 29세에 머리털이 모두 희어졌고 요절하였다.

孔子哭之慟,曰:
「自吾有回,門人益親。」
이때 공자는 큰 소리로 섧게 울며 말하였다.
내가 회를 제자로 삼은 뒤부터는 다른 제자들이 더욱 친숙해졌다.”

魯哀公問:
「弟子孰為好學?」
魯哀公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孔子對曰:
「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
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그리하여 지금은 없습니다.”

▶ 蚤死: 요절하였다. 蚤(벼룩 조는 早와 통하여 夭折함의 뜻. 안연은 29세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32세에 삶을 마쳤다.
▶ 孔子哭之慟:
“顏淵死。子曰:
「噫!天喪予!天喪予!」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論語 先進>慟은 통곡하다.
▶ 弟子孰為好學?:
“哀公問:
「弟子孰為好學?」孔子對曰:
「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顔回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論語 雍也>
季康子問:
「弟子孰為好學?」
孔子對曰:
「有顏回者好學,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論語 先進>
▶ 貳過: 같은 잘못을 범하다. 貳는 再의 뜻.


2. 閔損<字 子騫>

閔損字子騫。少孔子十五歲。
閔損은 가 子騫이며 공자보다 나이가 15살 적다.

孔子曰:
「孝哉閔子騫!
人不閒於其父母昆弟之言。」
공자가 말하였다.
효성스럽다閔子騫이여!
사람들은 그의 부모 형제들이 칭찬하는 말에 트집 잡지 못하는구나.”

不仕大夫,不食汙君之祿。
「如有復我者,必在汶上矣。」
자건은 대부 벼슬을 하지 않아서 옳지 못한 군주의 녹을 받지 않았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는 일이 있으면나는 반드시 를 떠나 의 汶水가에 있을 터이오.”

▶ 閔損: 춘추시대 魯의 유학자(?~?). 이름은 損. 자는 子騫. 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효행이 뛰어났다.
▶ 閒: =間. 離間하다. 트집을 잡다.
▶ 昆弟: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제. 昆은 맏 ‘곤’.
▶ 孝哉閔子騫: “子曰:
「孝哉閔子騫!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효성스럽다. 閔子騫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 형제의 칭찬하는 말에 트집 잡지 못하는구나!”<論語 先進>
부모, 형제가 그의 효도와 우애를 칭찬함에 사람들이 모두 믿고 딴말이 없었으니, 이는 그 효도와 우애의 실제가 심중에 쌓여 밖에 드러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감탄하고 찬미하신 것이다.
▶ 如有復我者,必在汶上矣. :
“季氏使閔子騫為費宰。閔子騫曰:
「善為我辭焉。如有復我者,則吾必在汶上矣。」:
季氏가 閔子騫을 費邑의 邑宰로 삼으려 하자, 閔子騫이 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말하여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魯를 떠나 齊의 汶水가에 있겠다.”』<論語;雍也>
費는 季氏의 食邑이다. 汶은 물 이름이니, 齊 남쪽과 魯 북쪽의 경계에 있다. 閔子는 季氏에게 신하노릇하고 싶지 않아서 심부름 온 사람에게 자기를 위해 잘 말하도록 당부한 것이다. 만일 다시 자신을 부르러 온다면 나는 마땅히 魯를 떠나 齊로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3. 冉耕字 伯牛>

冉耕字伯牛。
冉耕은 가 伯牛이다.

孔子以為有德行。
공자는 그가 덕행이 뛰어났다고 생각하였다.

伯牛有惡疾,孔子往問之,自牖執其手,曰:
「命也夫!
斯人也而有斯疾,命也夫!」
백우가 몹쓸 병에 걸리자 공자는 문병가서 창 너머로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천명이야!
이 사람에게 이런 병에 걸리다니천명이야!”

 冉耕: ( ? ~ BC 544년?). 춘추시대 말 魯 사람. 자는 伯牛고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며 德行으로 이름이 났다. 공자가 魯 司寇로 있을 때 中都宰로 삼았다. 질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공자가 문병하며 손을 잡고 슬퍼하면서 “이런 사람에게 이런 병이 걸리다니, 운명이로구나.”하였다.
▶ 伯牛有惡疾:
“伯牛有疾,子問之,自牖執其手,曰:
「亡之,命矣夫!斯人也而有斯疾也!斯人也而有斯疾也!」
伯牛가 병을 앓자, 공자께서 문병하실 적에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천명인가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論語 雍也>
伯牛가 걸린 병은 先儒들이 문둥병이라고 하였다. 牖는 남쪽 창이다. 禮에
“病者는 북쪽 창 아래에 있는데, 임금이 문병하러 오면 남쪽 창 아래로 옮겨 임금으로 하여금 남쪽을 향하여 자신을 볼 수 있게 한다.”하였다. 당시 伯牛의 집에서 이 禮로 공자를 높이자, 공자는 감히 감당할 수 없으므로,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창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으셨으니, 이는 아마도 그와 永訣한 것인 듯하다. 命은 天命을 말한다.
“이 사람은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지금 걸렸으니, 이는 곧 하늘이 명한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병을 삼가지 못해 병에 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 冉雍<字 仲弓>

冉雍字仲弓。
冉雍은 가 仲弓이다.

仲弓問政,孔子曰:
「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
在邦無怨,在家無怨。」
중궁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뵈온 듯이 하며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여야 한다.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자가 없고대부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자가 없을 터이다.”

孔子以仲弓為有德行,曰:
「雍也可使南面。」
공자는 중궁의 덕행이 뛰어나다고 여겨 말하였다.
옹은 가히 임금 자리에도 앉힐 만하다.”

仲弓父,賤人。
중궁의 아버지는 미천한 사람이었다.

孔子曰:
「犁牛之子騂且角,雖欲勿用,山川其舍諸?」
중궁을 논평하여 말하였다.
얼룩소 새끼가 빛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제사를 받는 산천 신령이야 어찌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 冉雍: (기원전522년~미상). 魯사람으로, 자는 仲弓이다. 춘추시대 말기 공자의 제자로 주문왕의 열 번째 아들 冉季載의 후예다. 菏澤에 거주했고, ‘犁牛氏’로 불렸다. 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顔淵, 閔子騫 등과 함께 德行에 뛰어났다. 季孫氏의 家臣을 지냈지만 자신을 낮추었고, 정치적 수단이 있어 공자로부터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寒微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매우 어질어 공자에게 칭찬을 받았다.
▶ 仲弓問政:
“仲弓問仁。子曰:
「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己所不欲,勿施於人。在邦無怨,在家無怨。」仲弓曰:
「雍雖不敏,請事斯語矣。」
仲弓이 仁을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뵈온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祭祀를 받들 듯이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자가 없으며, 대부의 집에 있어서도 원망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仲弓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을 종사하겠습니다.”<論語 顔淵>
邦은 제후에게 봉해지는 國을 말하며 경대부가 통치하는 지방을 家라고 칭한다.
▶ 雍也可使南面:
“子曰:
「雍也可使南面。」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雍은 임금 자리에도 앉힐 만하다.”<論語 雍也1>
南面은 君主가 정사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仲弓은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크며 대범 소탈하고 重厚하여 인군의 도량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 犁牛之子騂且角:
“子謂仲弓曰:
「犂牛之子騂且角,雖欲勿用,山川其舍諸?」
공자께서 仲弓을 평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山川의 神이야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論語 雍也>
舍는捨와 같으며 버리다는 뜻.
犁는 여러 가지 무늬가 섞인 것이다. 騂은 붉은 색이니, 周나라 사람은 赤色을 숭상하여 犧牲에 붉은 것을 썼다. 角은 뿔이 완전하고 단정하여 희생의 규격에 알맞은 것이다. 用은 써서 제사함이다. 山川은 山川의 神이니, 사람이 비록 제사에 쓰지 않으려 하더라도 神은 반드시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仲弓은 아버지가 미천하고 行實이 惡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이로써 비유하여
“아버지의 惡함 때문에 그 자식의 善함을 버릴 수 없으니, 仲弓과 같이 어진 인물은 스스로 마땅히 세상에 쓰여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仲弓의 인물됨을 논평한 것일 뿐이요, 仲弓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니다.


5. 冉求<字 子有>

冉求字子有,少孔子二十九歲。
염구는가 子有이며공자보다 스물아홉 살 적다.

為季氏宰。
대부 季氏의 총관리인이 되었다.

季康子問孔子曰:
「冉求仁乎?」
季康子가 공자에게 물었다.
염구는 합니까?”

曰:
「千室之邑,百乘之家,求也可使治其賦。仁則吾不知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천 호의 고을과 백 의 대부 집안의 총관리인을 맡길 만하나 그가 한지는 모르겠소.”

復問:
「子路仁乎?」
계강자가 다시 물었다.
子路는 합니까?”

孔子對曰:
「如求。」
공자가 대답하였다.
염구와 마찬가지로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소.”

求問曰:
「聞斯行諸?」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옳은 일을들었을 때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子曰:
「行之。」
공자가 대답하였다.
실행해야 한다.”

子路問:
「聞斯行諸?」
자로가 물었다.
“(옳은 일을)들었을 때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子曰:
「有父兄在,如之何其聞斯行之!」
공자가 대답하였다.
부형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상의도 없이 듣고 곧바로 행하겠는가!”

子華怪之,「敢問問同而答異?」
公西赤가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감히 여쭙건대질문은 같은데 어찌해서 대답은 다릅니까?”

孔子曰:
「求也退,故進之。
由也兼人,故退之。」
공자가 대답하였다.
염구는 사람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나아가게 하였고,
자로는 남보다 앞서가는 까닭에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 冉求: (기원전522년~ ?). 魯의 정치가이며 字는 子有이다. 冉有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는 공자의 제자로 자로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여겨진다. 그는 화술에도 능란하였고 유능한 행정가요 장군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추천으로 魯의 실세였던 계씨가의 가신으로 등용되었다.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계씨의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여 공자가 반대하는 중과세 정책을 실행하여 공자의 미움을 받았다. 자로는 衛에서 승산이 없음에도 충성스러워 목숨을 잃었지만, 염구는 오랫동안 권력을 누렸다. <위키백과>
▶ 宰: 현령. 읍의 수장. 여기서는 총관리인을 말한다.
▶ 季康子: 魯의 대부, 季孫氏의 아들이며 여러 나라를 편력하고 있는 孔子를 조국으로 다시 불러들인 魯의 上卿이다
▶ 冉求仁乎?:
“孟武伯問:
「子路仁乎?」子曰:
「不知也。」又問。子曰:
「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 「求也何如?」子曰:
「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不知其仁也。」
孟武伯이 “子路: 仲由는 仁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알지 못하겠다.”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由는 千乘의 나라에 그 軍政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求: 염구는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求는 千戶의 큰 邑과 百乘의 집안에 宰가 되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論語 公冶長>
▶ 千室은 큰 邑이며 百乘은 卿大夫의 집안이다. 家는 제후가 통치하는 지방을 國이라 하며 경대부가 통치하는 지방을 家라고 칭한다. 宰는 邑長과 家臣의 통칭이다.
▶ 賦:兵賦. 賦는 軍. 옛날에는 토지의 세금을 따져 軍을 내었으므로, 軍을 일러 賦라 하였다.
▶ 斯: ~하면 즉. 곧.
▶ 求問曰:
「聞斯行諸?」: “子路問:
「聞斯行諸?」子曰:
「有父兄在,如之何其聞斯行之?」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有父兄在』;求也問聞斯行諸,子曰『聞斯行之』。赤也惑,敢問。」子曰:
「求也退,故進之;由也兼人,故退之。」”
子路가 “옳은 것을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父兄이 계시니, 어찌 들으면 실행할 수 있겠는가?”하고 대답하셨다.
冉有가 “옳은 것을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들으면 실행하여야 한다.”하고 대답하셨다.
公西華가 물었다.
“由(: 子路)가‘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선생님께서 ‘父兄이 계시다.’하셨고, 求(: 冉有)가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선생님께서 ‘들으면 실행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시니, 저는 의혹 되어 감히 묻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求는 물러나므로 나아가게 한 것이요, 由는 일반인보다 나으므로 물러가게 한 것이다.”<論語 先進>
義를 들으면 진실로 마땅히 용감하게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父兄이 계시면 독단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父兄의 명령을 받지 않고 행한다면 도리어 義를 해치게 된다. 子路는 들음이 있으나 아직 다 행하지 못했으면 행여 들음이 있을까 두려워하였으니, 그렇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있어 실행할 수 없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요, 다만 실행하려는 뜻이 혹 지나쳐서 마땅히 명령을 받아야 할 것에 빠뜨림이 있을까 근심할 뿐이다. 염구의 資稟으로 말하면 나약함에 결함이 있으니, 父兄의 명령을 받지 않을까를 근심할 것이 아니요,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일에 있어 머뭇거리고 위축되어 그것을 실행하는 데 용감하지 못함을 근심할 뿐이다. 聖人이 한 사람은 나아가게 하시고 한 사람은 물러나게 하셨으니, 義理의 中道에 요약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병통이 없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子華: 公西赤. 字자 子華. 子赤은 공자의 제자로 성은 公西이다.


6. 仲由<字 子路/季路>

仲由字子路,卞人也。少孔子九歲。
중유의 자는 자로이며의 사람으로 공자보다 9살 적다.

子路性鄙,好勇力,志伉直,冠雄雞,佩豭豚,陵暴孔子。
자로는 천성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했으며 자존심이 강하였다수탉의 꼬리로 관을 만들어 쓰고수퇘지의 가죽 장식의 검을 허리에 차고공자를 업신여기며 난폭하게 굴었다.

孔子設禮稍誘子路,子路後儒服委質,因門人請為弟子。
그러나 공자가 예를 베풀고 조금씩 바른길로 이끌었으므로후에는 자로가 孺子의 옷을 입고 제자의 예물을 올리고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 仲由: 기원전542년~기원전480년. 춘추시대 魯의 학자이자 관료로 자는 子路또는 季路이며 卞사람이다. 자로는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자로는 공자가 살아 있을 때 염구와 함께 魯의 유력한 정치가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魯로 돌아갈 때 衛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 伉直: (성질, 행동 등이) 곧고 굳셈.
▶ 豭豚: 수퇘지.
▶ 陵暴: =凌暴. 모욕을 주고 학대하다.
▶ 儒服委質: 儒生의 옷을 입고 학생이 선생을 뵙는 예물을 올리다. 質은 예물.

子路問政,孔子曰:
「先之,勞之。」
자로가 政事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솔선할 것이며 부지런히 해야 한다

請益。曰:
「無倦。」
더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지금 말한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

子路問:
「君子尚勇乎?」
자로가 물었다.
군자가 용맹을 숭상합니까?”

孔子曰:
「義之為上。
君子好勇而無義則亂,小人好勇而無義則盜。」
공자가 대답하였다.
를 상위에 둔다.
군자가 용기를 좋아하되 를 모르면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소인이 용기를 좋아하되 를 모르면 도둑질할 터이다.”

子路有聞,未之能行,唯恐有聞。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였는데또다시 좋은 말을 듣게 될까 걱정하였다.

▶ 子路問政: “子路問政。子曰:
「先之,勞之。」請益。曰:
「無倦。」
子路가 政事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솔선할 것이며 부지런히 해야 한다.”
더 가르쳐 달라고 청하니 공자가 이르기를“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論語 子路>
子路가 政事를 묻자, 공자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고,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자, ‘게을리하지 말라.’ 하셨을 뿐이요, 일찍이 다시 말씀해 주신 것이 없었으니, 이것은 우선 깊이 생각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君子尚勇乎?: “子路曰:
「君子尚勇乎?」子曰:
「君子義以為上。君子有勇而無義為亂,小人有勇而無義為盜。」
子路가 말하기를“君子도 용맹을 숭상하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義를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勇만 있고 義가 없으면 亂을 일으키고, 小人이 勇만 있고 義가 없으면 도적질할 것이다.”<論語 陽貨>
義를 숭상하면 그 勇이 크다 할 것이다. 子路가 용맹을 좋아하므로 孔子께서 이것으로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셨다.

 

孔子曰:
공자가 말하였다.

「片言可以折獄者,其由也與!」
일방적인 말로서 獄事를 판결하는 자는 가 아니겠는가!”

「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나으나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다.”

「若由也,不得其死然。」
중유와 같은 사람은 제 명에 죽기가 어렵다.”

「衣敝縕袍,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其由也與!」
해진 베옷을 입고 여우나 담비 옷을 입은 사람과 같이 있더라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아마 중유일 것이다!”

「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
중유의 학문은 대청까지 올라왔으나 아직 방안까지 들어오지 못하였다.”

片言可以折獄者: “子曰

「片言可以折獄者,其由也與?」子路無宿諾。”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일방적인 말로서 獄事를 판결하는 자는 由가 아니겠는가?”<論語 顔淵>
片言은 원고 또는 피고를 만나 하는 말로 일방적인 말이다. 折은 결단함이다. 子路는 忠信하고 밝고 결단하였다. 그러므로 말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복종하여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은 것이다.
▶ 由也好勇過我: “子曰:
「道不行,乘桴浮于海。從我者其由與?」子路聞之喜。子曰:
「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이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由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路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께서는“由는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나으나, 사리를 헤아려 맞게 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論語 公冶長>
桴는 뗏목이다. 바다를 향해하겠다는 탄식은 천하에 어진 임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子路는 義理에 용감하였으므로 그가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고 하신 것이니, 이는 모두 假設해서 하신 말씀일 뿐이다. 그런데 子路는 이것을 실제라고 생각하여 공자께서 자기를 마음으로 칭찬해 주심을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의 용맹을 찬미하시고, 그 사리를 헤아려 義에 맞게 하지 못함을 기롱하신 것이다.
▶ 若由也,不得其死然:
“閔子侍側,誾誾如也;子路,行行如也;冉有、子貢,侃侃如也。子樂。「若由也,不得其死然。」
閔子騫은 옆에서 모시는데 온화하였고, 子路는 굳세었으며, 冉有•子貢은 강직하니 공자께서 즐거워하셨다.
“由로 말하면 온당한 죽음을 얻지 못할 듯하구나.”<論語 先進>
行行은 굳세고 강한 모양이다. 孔子께서 즐거워하심은 英才를 얻어 교육함을 즐거워하신 것이다. 子路는 剛强하여 온당한 죽음을 얻지 못할 이치가 있었다. 그러므로 인하여 경계하셨던 것인데, 그 뒤 子路는 마침내 衛 蕢聵의 難에 죽었다.
▶ 衣敝縕袍: 子曰:
「衣敝縕袍,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其由也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해진 솜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같이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그 由일 것이다.”<論語 子罕>
敝는 해짐이다. 縕은 수삼으로 둔 솜이다. 袍는 옷에 솜을 둔 것이니, 이는 옷의 천한 것이다. 狐貉은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갖옷을 만든 것이니, 옷의 귀한 것이다. 子路의 뜻이 이와 같았으니, 그 貧富로써 마음을 동요하지 않아서 道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를 칭찬하신 것이다.
▶ 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 : “子曰:
「由也升堂矣,未入於室也。」
門人들이 子路를 공경하지 않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由는 堂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論語 先進15>
門人들이 공자의 말씀으로 인해 마침내 子路를 공경하지 않았으므로, 공자께서 해석해 주신 것이다. 堂에 오르고 방에 들어감은 道에 들어가는 차례를 비유한 것이다. 子路의 학문이 이미 正大하고 高明한 경지에 이르렀고, 다만 精微의 깊은 곳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니 한가지 일의 잘못으로 대번에 경홀히 해서는 안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季康子問:
「仲由仁乎?」
계강자가 물었다.
중유는 합니까?”

孔子曰:
「千乘之國可使治其賦,不知其仁。」
공자가 대답하였다.
천승의 나라 軍政을 다스릴 수 있지만 그가 한지는 알지 못하겠소.”

子路喜從游,遇長沮、桀溺、荷蓧丈人。
자로는 공자를 수행하고 周遊하기를 좋아하여 長沮·桀溺·荷蓧丈人 등을 만났다.

子路為季氏宰,季孫問曰:
「子路可謂大臣與?」
자로가 魯 계씨의 총관리인이 되었을 때 계손씨가 공자에게 물었다.
자로는 대신이라고 이를 만합니까?”

孔子曰:
「可謂具臣矣。」
공자가 대답하였다.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말할 수 있지요.”

▶ 季康子問:
「仲由仁乎?」: “孟武伯問:
「子路仁乎?」子曰:
「不知也。」又問。子曰:
「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
孟武伯이“子路는 仁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알지 못하겠다.”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由는 千乘의 나라에 그 軍政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仁한지는 알지 못하겠다.”<論語 公冶長>
子路는 仁에 있어 하루에 한 번이나 1개월에 한 번 이르는 자이니, 혹은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하여 그 유무를 기필할 수 없으므로, “알지 못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子路可謂大臣與?: “季子然問:
「仲由、冉求可謂大臣與?」子曰:
「吾以子為異之問,曾由與求之問。所謂大臣者:以道事君,不可則止。今由與求也,可謂具臣矣.” :
季子然이 물었다.
“중유, 염구는 大臣이라고 이를만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가 특이한 질문을 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침내 由와 求에 대한 질문이로구나! 이른바 大臣이란 道로써 君主를 섬기다가 불가능하면 그만두는 것이다. 지금 由와 求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말할 만하다.”<論語 先進>
子然은 季氏의 子弟이다. 그의 집안에서 두 사람을 신하로 삼은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으므로 물은 것이다. 異는 보통이 아닌 것이다. 曾은 乃(: 마침내)와 같다. 두 사람을 경시하여 季子然을 억제하신 것이다. 道로써 君主를 섬긴다는 것은 君主의 욕망을 따르지 않음이요, 불가능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具臣은 신하의 숫자만 채울 뿐임을 말한다.
▶ 遇長沮、桀溺、荷蓧丈人. : 공자와 자로가 蔡로 가는 길에 장저와 걸익을 만나 나루터를 물었으며, 은자인 망태기를 진 노인을 만났다. <史記 卷47孔子世家>

 

子路為蒲大夫,辭孔子。
자로가 의 蒲邑의 大夫가 되어 공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孔子曰:
「蒲多壯士,又難治。
然吾語汝:
恭以敬,可以執勇;
寬以正,可以比衆;
恭正以靜,可以報上。」
공자가 말하였다.
포 지방은 장사들이 많아 다스리기가 힘든 곳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 두어라:
몸가짐을 공경하게 하면 장사들을 거느릴 수 있다.
너그럽고 올바르면 백성들이 따르게 할 수 있다.
공손하고 바른 자세로 정사를 펼쳐 편안히 지내게 하면 윗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 執勇: 장사들을 거느림. 執은 제압하다. 제어하다.
▶ 比衆: 백성들이 따르다. 比는 친하다. 따르다는 뜻.

 

初,衛靈公有寵姬曰南子。
당초 衛靈公에게 寵姬가 있었으니 南子라고 하였다.

靈公太子蕢聵得過南子,懼誅出奔。
영공의 태자 蕢聵는 南子에게 죄를 범하고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及靈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
영공이 죽자 부인은 공자 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郢不肯,曰:
「亡人太子之子輒在。」
영이 듣지 않고 말하였다.
망명한 태자의 아들 이 있습니다.”

於是衛立輒為君,是為出公。
이에 에서는 을 임금으로 세웠으니 그가 出公이다.

出公立十二年,其父蕢聵居外,不得入。
출공이 즉위한 지 12년이 되도록 그의 아버지인 괴외는 망명지에서 입국하지 않았다.

▶ 衛靈公(기원전540~493). 衛의 28번째 군주. 혼군으로 이름 높았으며, 남색을 즐겼고 부인 南子는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므로 아들인 태자 괴외가 어머니인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해 망명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 蕢聵得過南子: 태자 蒯聵가 영공의 부인인 南子를 미워하여 그녀를 죽이려 하였다. 괴외가 그 무리 戱陽遫과 모의하여 조회 때 부인을 죽이라고 하였다. 희양속이 후회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괴외가 여러 차례 눈짓하자 부인이 이를 알아채고는 두려워하며 “태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영공이 노하였고, 태자 괴외는 宋으로 도망쳤다가 바로 晉의 趙簡子에게로 갔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 出公: 여름에 영공이 죽자 부인은 자영을 태자로 삼으면서
“이는 영공의 명령이오.”라고 하자 자영은
“망명간 태자 괴외의 아들 輒이 이곳에 있으니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衛가 輒을 국군으로 삼으니 이가 出公이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子路為衛大夫孔悝之邑宰。
이 무렵 子路는 의 대부 孔悝의 邑宰로 있었다.

蕢聵乃與孔悝作亂,謀入孔悝家,遂與其徒襲攻出公。
蕢聵는 孔悝를 협박하여 반란을 일으킬 생각으로 몰래 공회의 집으로 숨어 들어가
마침내 그 무리와 함께 出公을 습격하였다.

出公奔魯,而蕢聵入立,是為莊公。
출공은 로 달아나고 괴외가 임금 자리에 오르니 그가 莊公이다.

方孔悝作亂,子路在外,聞之而馳往。
공리가 난을 일으켰을 때 자로는 성안에 없었는데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遇子羔出衛城門,謂子路曰:
「出公去矣,而門已閉,子可還矣,毋空受其禍。」
의 성문을 나오는 子羔와 마주치자 자고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출공은 이미 달아나고 성문도 이미 닫혔으니 그냥 돌아가는 편이 좋겠소공연히 화를 당하게 되오.”

▶ 孔悝(공리): 孔文子의 아들로 出公輒의 재상이었으나 괴외의 압박에 출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괴외가 즉위하자 추방당해 宋으로 망명하였다.
▶ 遇子羔出衛城門: 子路가 공회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子羔와 만났다. 자고가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라고 하자 자로는“내가 가서 살펴보겠소.”라고 하였다. 자고가 “늦었습니다. 난리에 휘말리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자로가 “이 집 밥을 얻어먹고 있는 이상 난리를 피할 수는 없지!”라고 하였다. 자고는 나가 버렸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子路曰:
「食其食者不避其難。」
자로가 대답하였다.
녹봉을 받는 자로서 난리를 피할 수는 없다.”

子羔卒去。
자고는 어쩔 수 없어 떠나 버렸다.

有使者入城,城門開,子路隨而入。
入城하는 심부름꾼이 있어 성문이 열렸으므로자로는 따라서 入城하였다.

造蕢聵,蕢聵與孔悝登臺。
괴외가 있는 곳으로 가니괴외는 공회와 함께 누대에 올라가 있었다.

子路曰:
「君焉用孔悝?
請得而殺之。」
자로가 말하였다.
태자께서는 어찌하여 공회를 이용하려 하십니까그를 죽이게 해주십시오.”

蕢聵弗聽。
괴외가 듣지 않았다.

於是子路欲燔臺,蕢聵懼,乃下石乞、壺黶攻子路,擊斷子路之纓。
이에 자로가 누대를 불태우려 하자괴외는 두려워하여 石乞와 壺黶을 내려보내 자로를 공격하게 하니그들의 칼이 자로의 갓끈을 잘랐다.

子路曰:
「君子死而冠不免。」
자로가 말하였다.
군자는 죽을지라도 관은 벗지 않는다.”

遂結纓而死。
이어 끈을 다시 매고 죽었다.

▶ 有使者入城: 심부름꾼 하나가 들어가는 틈에 자로가 안으로 들어가서는
“태자께서는 어찌하여 하필 공회를 이용하려 하십니까? 그를 죽인다 해도 다른 사람이 그를 이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로가 이어 “태자께서는 용기가 없다. 누대에다 불을 지르면 분명 공회를 놓아주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태자가 이 말을 듣고는 겁이 나 石乞와 盂黶을 보내 자로에게 맞서게 하니 창으로 자로를 공격하여 갓끈을 잘랐다.
자로는“군자는 죽을지언정 관은 벗지 않는다!”라며 갓끈을 다시 매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孔子聞衛亂,曰:
「嗟乎,由死矣!」
공자는 에 난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말하였다.
슬프다중유는 죽고 말리라!”

已而果死。
얼마 안 되어 과연 자로가 죽었다.

故孔子曰:
「自吾得由,惡言不聞於耳。」
그래서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중유를 제자로 둔 뒤로 세상 사람들의 험담을 듣지 않았다.”

是時子貢為魯使於齊。
당시 子貢은 를 위해 에 사자로 가 있었다.

▶ 孔子聞衛亂: 공자가 衛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허! 柴(자고)는 돌아오겠지만 중유는 죽겠구나!”라고 탄식하였다. 공회가 끝내 태자 괴외를 세우니 이가 莊公이다.
孔子聞衛亂, 曰:
「嗟乎!柴也其來乎?由也其死矣. 」孔悝竟立太子蒯聵, 是為荘公.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7. 宰予<字 子我>

宰予字子我。
재여의 가 子我이다.

利口辯辭。
언변에 능하였다.

既受業,問:
「三年之喪不已久乎?
君子三年不為禮,禮必壞;
三年不為樂,樂必崩。
舊穀既沒,新穀既升,鉆燧改火,期可已矣。」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이렇게 물었다.
부모의 상을 3년이나 치름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3년 동안이나 를 행하지 않으면 예는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이나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터입니다.
(1년이 지나면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익으며불씨를 만드는 나무도 바꾸어야 하니 1년이면 마칠 만합니다.”

子曰:
「於汝安乎?」
공자는 반문하였다.
그것으로 네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曰:
「安。」
재여가 대답하였다.
편안합니다.”

「汝安則為之。
君子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故弗為也。」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라군자는 부모의 상을 치르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다그래서 그리하지 않는 것이다.”

宰我出,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天下之通義也。」
자아가 나가자 공자는 말하였다.
재여는 참으로 하지 않다!
자식이 태어나 3년이 지난 뒤라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무릇 3년상은 온 천하에 두루 적용되는 의리이다.”

▶ 宰予: 춘추시대 魯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학행이 뛰어난 十哲 중 한 사람. 字는 子我·宰我이다. 일찍이 齊에서 벼슬하여 임치의 대부가 되었으나 그와 뜻을 같이하지 않았던 원항에 의해 살해된다. 원항도 공자의 제자이다.
▶ 利口: 말주변이 있다. 말을 교묘하게 잘함.
▶ 三年之喪不已久乎?: “宰我問:
「三年之喪,期已久矣。君子三年不為禮,禮必壞;三年不為樂,樂必崩。舊穀既沒,新穀既升,鑽燧改火,期可已矣。」子曰:
「食夫稻,衣夫錦,於女安乎?」曰:
「安。」「女安則為之!夫君子之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居處不安,故不為也。今女安,則為之!」宰我出。子曰:
「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夫三年之喪,天下之通喪也。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論語 陽貨>
宰我가 말하였다.
“三年喪은 일 期年만 하더라도 너무 길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3년 동안 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音樂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마칠 만합니다.”
공자께서 말하였다.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宰我가 대답하기를
“편안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군자가 居喪할 때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宰我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宰我의 仁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三年喪은 온천하의 공통된 喪이니, 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父母에게 있었는가?”<論語 陽貨21>
▶ 升: 익다.
▶ 鉆燧改火: =鑽燧改火. 고대의 나무를 서로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나무가 다르다. 燧는 부싯돌.
▶ 期可已矣: 1년이면 그칠 만하다. 期는 1주년. 已는 멈추다.
▶ 食旨: 맛있는 음식.

宰予晝寢。
宰予가 낮잠을 잤다.

子曰:
「朽木不可雕也,糞土之墻不可圬也。」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으로 고쳐 바를 수 없다.”

宰我問五帝之德,子曰:
「予非其人也。」
재아가 五帝의 덕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너는 그런 것을 물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宰我為臨菑大夫,與田常作亂,以夷其族,孔子恥之。
재아가 齊 臨菑의 대부가 되어 田常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멸족당하였으므로공자는 부끄러워하였다.

▶ 宰予晝寢:
“宰予晝寢。子曰:
「朽木不可雕也,糞土之牆不可杇也,於予與何誅。」”
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 宰予에 대하여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論語 公冶長>
晝寢은 낮에 잠자는 것을 말한다. 朽는 썩은 것이요, 雕는 조각이요, 朽는 흙손질이다. 그 뜻과 기운이 흐리고 게을러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與는 어조사이다. 誅는 꾸짖음이니, 꾸짖을 것이 없다고 말씀한 것은 바로 그를 깊이 꾸짖으신 것이다.
▶ 夷: 멸하다. 죽이다.


8. 端木賜<字 子貢>

端木賜,衛人,字子貢。少孔子三十一歲。
端木賜는 衛 사람으로 는 子貢이며공자보다 31세 적었다.

子貢利口巧辭,孔子常黜其辯。
자공은 언변이 뛰어났으되공자는 항상 그의 언변을 지적곤 하였다.

問曰:
「汝與回也孰愈?」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너는 안회와 비교해서 누가 나으냐?”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
자공이 대답하였다.
가 어떻게 안회를 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 黜: 내치다. 물리치다.
▶ 孰愈: 누가 더 나은가. 愈는 낫다. 뛰어나다.
▶ 汝與回也孰愈?: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對曰:
「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子曰:
「弗如也!吾與女弗如也。」
孔子께서 子貢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顔回와 누가 나으냐?”라고 하셨다. 대답하기를“제가 어떻게 감히 顔回를 넘보겠습니까? 顔回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顔回만 못하다. 나는 네가 그만 못함을 인정한다.”<論語 公冶長>

 

子貢既已受業,問曰:
「賜何人也?」
자공은 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공자에게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孔子曰:
「汝器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너는 쓰임이 있는 그릇이다.”

曰:
「何器也?」
물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曰:
「瑚璉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瑚璉과 같다.”

陳子禽問子貢曰:
「仲尼焉學?」
陳子禽이 자공에게 물었다.
중니는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子貢曰:
「文武之道未墜於地,在人,賢者識其大者,不賢者識其小者,莫不有文武之道。
夫子焉不學,而亦何常師之有!」
자공이 대답하였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에 남아 있으미현명한 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현명하지 못한 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하여문왕과 무왕의 도를 갖추지 않은 자가 없소.
선생님께서 배우지 않았을 리 있겠소그러나 어찌 일정한 스승이 계셨겠는가!”

又問曰:
「孔子適是國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진자금이 또 물었다.
공자께서 방문하는 나라마다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에 관해 듣습니다.
이는 공자께서 청해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그 나라가 청해 그런 것입니까?”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其諸異乎人之求之也。」
자공이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온화·선량·공경·절제·겸양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夫子께서 구하심은 일반인이 구하는 바와 다르다.”

▶ 賜何人也?:
“子貢問曰:
「賜也何如?」子曰:
「女器也。」曰:
「何器也?」曰:
「瑚璉也。」:
子貢이 “저는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너는 그릇이다.”라고 하셨다.
“어떤 그릇입니까?”하고 다시 묻자, “瑚•璉이다.”하고 대답하셨다. <論語 公冶長>
器란 쓰임이 있는 완성된 재질이다. 夏나라에서는 瑚라 하였고, 商나라에서는 璉이라 하였으니 모두 宗廟에서 黍稷: 찰기장과 메기장을 담는 그릇인데, 玉으로 장식하였으므로 그릇 중에 귀중하고 화려한 것이다.
▶ 陳子禽問子貢曰:「仲尼焉學?」:
“衛公孫朝問於子貢曰:
「仲尼焉學?」子貢曰:
「文武之道,未墜於地,在人。賢者識其大者,不賢者識其小者,莫不有文武之道焉。夫子焉不學?而亦何常師之有?」:
衛 公孫朝가 子貢에게 물었다.
“仲尼는 누구에게 배웠는가?” 子貢이 말하였다.
“文王·武王의 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그리하여 賢者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어질지 못한 자들은 작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文王·武王의 道를 갖고 있지 않음이 없으니, 夫子께서 어찌 배우지 않으시며 또 어찌 일정한 스승이 계시겠는가?”<論語 子張22>
公孫朝는 衛 大夫이다. 文武의 道는 文王·武王의 훈계와 功烈, 그리고 모든 周나라의 禮樂과 文章이 모두 그것이다. 사람에게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기억하는 자가 있음을 말한다. 識는 기억함이다.
▶ 孔子適是國必聞其政: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必聞其政,求之與?抑與之與?」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夫子之求之也,其諸異乎人之求之與?」: 子禽이 子貢에게 물었다.
“夫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셔서는 반드시 그 政事를 들으실 것이니,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아니면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子貢이 말하였다.
“夫子는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여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夫子의 구하심은 일반인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論語 學而10>
子禽의 姓은 陳이요 이름이 亢이며 공자의 제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陳亢은 子貢의 弟子라 하니,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抑은 反語辭(: 말을 뒤집는 말)이다. 溫은 和하고 厚함이요, 良은 마음이 평탄하고 곧은 것이요, 恭은 莊敬함이요, 儉은 節制함이요, 讓은 謙遜함이다. 이 다섯 가지는 夫子의 훌륭한 德이 빛나서 사람들에게 접하는 것이다. 其諸는 語助辭이다. 人은 他人이다. 夫子는 일찍이 구하지 않았으나 다만 그 덕스러운 모양이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人君이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그 政事를 가지고 찾아와 물었을 뿐이요, 他人이 반드시 구한 뒤에 얻는 것과는 같지 않다.

 

子貢問曰:
「富而無驕,貧而無諂,何如?」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가난한데도 아첨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孔子曰:
「可也;不如貧而樂道,富而好禮。」
공자가 대답하였다.
괜찮다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田常欲作亂於齊,憚高、國、鮑、晏,故移其兵欲以伐魯。
齊 대부 田常이 에서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의 세족인 ···씨의 세력이 두려워 이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를 치려 하였다.

孔子聞之,謂門弟子曰:
「夫魯,墳墓所處,父母之國,國危如此,二三子何為莫出?」
공자는 그런 사실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무릇 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부모의 나라로서 나라의 위기가 이러한데 너희들은 어찌해서 나서지 않는가?”

子路請出,孔子止之。
자로가 나서 보겠다고 청했으나 공자는 그를 말렸다.

子張、子石請行,孔子弗許。
子張과 子石이 나가 보겠다고 청했으나 공자는 허락하지 않았다

子貢請行,孔子許之。
자공이 나가겠다고 청하자 공자는 비로소 허락하였다.

▶ 富而無驕: “子貢曰:
「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子曰:
「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子貢曰:
「《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子曰:
「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 子貢이 말하였다.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禮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子貢이 말하였다.
“<詩經>에 ‘切斷해 놓은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賜는 비로소 더불어 詩를 말할 만하구나! 지나간 것을 말하자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구나.”<論語 學而15>
詩는 《詩經》〈衛風淇奧篇〉의 내용이다. 뼈와 뿔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절단한 다음 다시 그것을 갈고, 玉과 寶石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쪼아놓은 다음 다시 그것을 가니, 다스림이 이미 精한데 더욱 그 精함을 구함을 말한다. 子貢은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夫子의 말씀을 듣고는 또 義理가 無窮하여 비록 얻음이 있으나 대번에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詩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 田常欲作亂於齊: 이후의 문장은 孔子家語屈節解에 실려 있는 내용과 유사하다.
▶ 二三子: 諸君.



遂行,至齊,田常曰:
「君之伐魯過矣。
夫魯,難伐之國,其城薄以卑,其地狹以泄,其君愚而不仁,大臣偽而無用,其士民又惡甲兵之事,此不可與戰。君不如伐吳。
夫吳,城高以厚,地廣以深,甲堅以新,士選以飽,重器精兵盡在其中,又使明大夫守之,此易伐也。」
자공이 길을 떠나 로 가서 전상에게 유세하였다.
상공께서 를 공격함은 잘못입니다.
무릇 는 치기 힘든 나라이니그 성벽은 얇고 낮으며 그 해자는 좁고 얕으며 군주는 어리석고 어질지 못하며대신들은 거짓되고 무능하며그 과 백성들은 전쟁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나라는 싸울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군주께서는 를 치느니만 못합니다.
무릇 는 성벽은 높고 두터우며 해자는 넓고 깊으며 무기는 튼튼하고 새것이며 병사들은 정예이고 식량도 충분하며 중무기와 정병이 모두 그 성안에 있으며 또 훌륭한 대부가 그곳을 지키니 이런 나라는 치기가 쉽습니다.”

田常忿然作色曰:
「子之所難,人之所易;
子之所易,人之所難:
而以教常,何也?」
전상은 벌컥 성을 내어 상기한 채 말하였다.
그대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다고 하는 것이며,
그대가 쉽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오.
이런 것을 진리라 가르치니 무슨 까닭이오?”

▶ 田常: 齊 대부 田成子. 陳에서 齊로 도망친 田完의 손자로 당시 齊의 군주였던 簡公을 죽이고 간공의 아우였던 鷔를 추대하여 평공을 세우고 국정을 전횡하였다. 田常의 증손인 田和에 이르러 결국 군주를 내쫓고 스스로 齊의 군주가 되었다. ≪論語≫등의 문헌에는 陳恒 또는 陳成子로 표기되어 있고 ≪史記≫ 등의 문헌에는 田常 또는 田成子로 표기되어 있는데 陳과 田의 음이 같고 常과 恒의 뜻이 같기 때문에 통용한 듯하다.
▶ 其地狹以泄: 그 해자는 좁고 얕다. 吳越春秋地는 池라 하였으며 泄은 淺이라 하였다. 池는 垓子. 성을 지키기 위해 성 주위에 둘러 판 못.

 

子貢曰:
자공이 말하였다.

「臣聞之,憂在內者攻彊,憂在外者攻弱。
신이 듣기에, ‘우환이 내부에 있는 사람은 강한 나라를 치고우환이 외부 있는 사람은 약한 나라를 친다.’라고 합니다.

今君憂在內。
지금 상공의 우환은 내부에 있습니다.

吾聞君三封而三不成者,大臣有不聽者也。
제가 듣기에왕이 상공을 세 번이나 군에 봉하려 했으나 세 번 다 실패했다고 하는데 齊 대신들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今君破魯以廣齊,戰勝以驕主,破國以尊臣,而君之功不與焉,則交日疏於主。
이제 상공께서 를 쳐서 齊 영토를 넓히면戰勝으로 인하여 齊 군주를 교만하게 하고를 깨뜨림으로 인하여 대신들의 위세를 더욱 높일 터이며상공의 공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군주와의 거리만 멀어질 터입니다.

是君上驕主心,下恣群臣,求以成大事,難矣。
위로는 군주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고 아래로는 신하들을 방자하게 만들어대사를 이루어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夫上驕則恣,臣驕則爭,是君上與主有卻,下與大臣交爭也。
무릇 군주가 교만해지면 방자하고 신하가 교만하면 권력을 다투나니,. 상공은 위로는 군주와 사이가 벌어지고 아래로는 대신과 맞서 다투게 됩니다.

如此,則君之立於齊危矣。
이렇게 되면 상공께서 에서의 立地가 위태로울 터입니다.

故曰不如伐吳。
그래서 를 치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伐吳不勝,民人外死,大臣內空,是君上無彊臣之敵,下無民人之過,孤主制齊者唯君也。」
를 쳐서 이기지 못하면 백성은 밖에서 죽고 대신들은 안에서 세력을 잃게 되니상공에게는 위로 강한 신하라는 적이 없어지고 아래로는 백성의 비난을 받지 않으며군주를 고립시켜 를 통제할 사람은 상공 뿐일 터입니다.”

 

田常曰:
「善。
雖然,吾兵業已加魯矣,去而之吳,大臣疑我,柰何?」
전상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은 벌써 에 닿았으니를 떠나 로 가면 대신들은 나를 의심할 테니 어찌하면 좋소?”

子貢曰:
「君按兵無伐,臣請往使吳王,令之救魯而伐齊,君因以兵迎之。」
자공이 말하였다.
상공께서 을 멈추고 를 공격하지 마십시오제가 왕에게 가서 를 도와 를 치게 할 터이니상공께서는 을 이끌고 를 맞아 싸우면 됩니다.”

田常許之,使子貢南見吳王。
전상은 허락하고 자공을 남쪽으로 보내 오왕을 만나게 하였다.

▶ 業已: 이미. 業은 이미, 벌써.
▶ 按兵:軍을 진군하지 않고 멈추다.

說曰:
자공은 오왕에게 유세하였다.

「臣聞之,王者不絕世,霸者無彊敵,千鈞之重加銖兩而移。
신이 듣기에, ‘王道로 다스리는 자는 다른 나라의 후사를 끊지 않고霸道로 다스리는 자는 적국을 강하게 만들지 않으며千鈞의 무거운 것에 적은 것만 보태어도 저울이 이동한다.’라고 합니다.

今以萬乘之齊而私千乘之魯,與吳爭彊,竊為王危之。
지금 萬乘의 가 千乘의 를 공격함은 와 강대함을 다투려는 것이니생각하건대 왕을 위태롭게 할 터입니다.

且夫救魯,顯名也;伐齊,大利也。
또 를 구원함은 명분을 드높이는 일이고를 공격함은 큰 이익입니다.

以撫泗上諸侯,誅暴齊以服彊晉,利莫大焉。
泗水 주변의 제후를 慰撫하여 포악한 를 무찌르고 강한 을 굴복시킨다면 이보다 큰 이익이 없습니다.

名存亡魯,實困彊齊。
명분상 망해가는 를 보존하고실리상 강한 를 곤란하게 합니다.

智者不疑也。」
지혜로운 자라면 이를 의심치 않고 결행할 터입니다.”

吳王曰:
「善。雖然,吾嘗與越戰,棲之會稽。
越王苦身養士,有報我心。
子待我伐越而聽子。」
왕 부차가 말하였다.
좋소.
비록 그러하나 나는 일찍이 과 싸워 월왕을 會稽山으로 몰아넣은 일이 있었소.
그 뒤로 월왕은 자신을 괴롭히고 軍士릏 기르며 우리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을 칠 때까지 기다려주면그대의 말을 따르리다.”

▶ 王者: 王道로 다스리는 자. 덕으로 다스리는 德治.
▶ 霸者: 霸道로 다스리는 자.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림.
▶ 千鈞: 삼만 근으로 아주 무거운 것을 비유한다. 1鈞은 30斤에 해당됨. 鈞은 서른 근‘균’
▶ 銖兩: 미세한 것. 사소한 것. 기장 알 1백 개의 무게를 1銖라 한다.
▶ 棲之會稽: 기원전494년,월왕 句踐은 패잔병 5천 명을 이끌고 會稽山꼭대기에 머물렀다. <史記 卷41越王勾踐世家>

子貢曰:
자공이 말하였다.

「越之勁不過魯,吳之彊不過齊,王置齊而伐越,則齊已平魯矣。
의 국력은 보다도 더 낫지 않으며의 강함은 보다 낫지 않은데왕께서 를 내버려 두고 을 치면 는 를 평정할 터입니다.

且王方以存亡繼絕為名,夫伐小越而畏彊齊,非勇也。
또 왕께서 곧 망할 를 존속시켜 끊어진 후사를 이음을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데도작은 을 치고 강한 를 두려워함은 용기가 아닙니다.

夫勇者不避難,仁者不窮約,智者不失時,王者不絕世,以立其義。
무릇 용감한 자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어진 자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지혜 있는 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왕도로 다스리는 자는 남의 나라의 후사를 끊지 않음으로서 그 를 세웁니다.

今存越示諸侯以仁,救魯伐齊,威加晉國,諸侯必相率而朝吳,霸業成矣。
지금 을 그대로 둠으로써 제후에게 을 보여주고를 구하고 를 쳐서 에 의 위세를 떨치면제후는 필시 솔선하여 에 조회할 터이니패업이 이루어질 터입니다.

且王必惡越,臣請東見越王,令出兵以從,此實空越,名從諸侯以伐也。」
그래도 왕께서 굳이 을 미워하신다면 제가 동으로 가서 월왕을 만나 로 하여금 응원군을 보내게 하겠습니다이것은 실제로는 에 군대를 텅 비우고 명분으로는 제후를 이끌고 를 친는 것입니다.”

吳王大說,乃使子貢之越。
오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공을 에 사신으로 보냈다.

▶ 存亡繼絕: 망해가는 나라를 존속시켜 끊어진 후사를 잇게 하다.
▶ 窮約: 곤궁하다. 난처하다. 約: 고생. 곤궁
▶ 大說: 크게 기뻐함. 說은 悅과 같다.

 

越王除道郊迎,身御至舍而問曰:
「此蠻夷之國,大夫何以儼然辱而臨之?」
월왕 구천은 길을 청소하고 교외에서 영접하여 몸소 수레를 몰아 숙사에 이른 뒤 자공에게 물었다.
이 오랑캐의 나라에 대부께서는 어찌하여 욕되게도 오셨소?”

子貢曰:
자공이 대답하였다.

「今者吾說吳王以救魯伐齊,其志欲之而畏越,曰『待我伐越乃可』。
이번에 저는 오왕에게 를 도와 를 치자고 설득하였습니다오왕은 그것을 원하지만 을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내가 을 칠 때까지 기다리면 그렇게 하마.’라고 하였습니다.

如此,破越必矣。
이러하므로는 을 틀림없이 공격할 터입니다.

且夫無報人之志而令人疑之,拙也;
有報人之志,使人知之,殆也;
事未發而先聞,危也。
三者舉事之大患。」
그런데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 남이 의심하도록 함은 못난 짓입니다.
남에게 보복할 뜻을 가졌다면 남이 알아차리게 함은 위태로운 짓입니다.
일이 발생하기도 전에 계획이 먼저 알려짐은 위험합니다.
이 세 가지는 거사하는 데 큰 우환입니다.”

句踐頓首再拜曰:
「孤嘗不料力,乃與吳戰,困於會稽,痛入於骨髓,日夜焦脣乾舌,徒欲與吳王接踵而死,孤之願也。」
월왕 구천은 머리를 조아리며 재배하고 말하였다.
과인은 일찍이 내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와 싸우다 패하여 회계에서 곤욕을 치름에그때의 통분함이 뼛속에까지 사무쳐 밤낮으로 입술이 타들어 가고 혀가 바싹 마르고 있으니오왕과 끝까지 싸워 죽는 것이 과인의 소원입니다.”

▶ 身御: 몸소 수레를 몰다.
▶ 蠻夷: 오랑캐. 고대 중원 밖의 소수민족.
▶ 儼然: ~과 같다.
▶ 且夫:그런데. 한편. [문맥을 다른 데로 돌릴 때 쓰이는 발어사(發語詞)]
▶ 頓首: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절을 하다.
▶ 孤嘗: 과인은 일찍이. 孤는 옛날 王侯의 겸칭.
▶ 接踵: 잇따르다. 뒷사람의 발끝이 앞사람의 발꿈치에 닿다.

遂問子貢。子貢曰:
그리하여 자공에게 물으니자공이 말하였다.

「吳王為人猛暴,群臣不堪;
國家敝以數戰,士卒弗忍;
百姓怨上,大臣內變;
子胥以諫死,太宰嚭用事,順君之過以安其私:是殘國之治也。
오왕은 사람됨이 사납고 억세어서 신하들이 견디지 못하고,
나라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하고 사졸은 더 이상 참지 못합니다.
백성은 윗사람을 원망하고 대신에게 속으로 변고가 있습니다.
伍子胥는 간하다가 죽었고 태재 伯嚭가 정권을 잡고 있으나군주의 잘못을 그대로 따를 뿐이고 다만 자신의 사욕에 안주하니 나라를 망치는 정치입니다.

今王誠發士卒佐之徼其志,重寶以說其心,卑辭以尊其禮,其伐齊必也。
지금 왕께서 정말로 응원군을 보내어 오왕의 뜻을 차단함을 돕고귀중한 보물을 바쳐 마음을 기쁘게 하고겸손한 언사로 그를 예우함을 높이면그가 를 공격함은 틀림없을 터입니다.

彼戰不勝,王之福矣。
그가 싸워서 이기지 못함은 왕의 복입니다.

戰勝,必以兵臨晉,臣請北見晉君,令共攻之,弱吳必矣。
전쟁에 이기면 틀림없이 을 이끌고 으로 향할 터이니 신이 북으로 가서 晉君을 뵙고 와 함께 를 치도록 하겠습니다를 약하게 만들 것이 뻔합니다.

其銳兵盡於齊,重甲困於晉,而王制其敝,此滅吳必矣。」
의 정예부대는 와의 싸움에서 다 꺾이고 중무장을 한 軍隊는 에서 곤경에 처할 터이니왕께서 그 피폐함을 제압하여 를 멸망시킴은 분명합니다.”

越王大說,許諾。
월왕 구천은 크게 기뻐하며 허락하였다.

送子貢金百鎰,劍一,良矛二。
자공에게 황금 이천 량과 명검 한 자루좋은 창 두 개를 선사하였다.

子貢不受,遂行。
자공은 받지 않고 떠났다.

▶ 子胥以諫死:오자서는 간하다가 죽었다. 오자서는 오왕 부차에게 “바라건대 왕께서는 齊를 단념하고 먼저 越을 처치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뒷날 후회를 하셔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願王釋齊而先越, 若不然,後將悔之無及”)라고 간하였다. <伍子胥列傳>

 

 

列傳권66.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伍子胥(? ~기원전484년)는 춘추시대의 정치가로, 이름은 員이며 子胥는 字이다. 楚출신으로 아버지가 費無忌의 흉계로 인하여 楚平王의 노여움을 샀다. 아버지와 형이 처형되자 楚를 탈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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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用事: 집권하다. 정권을 잡다.
▶ 殘國: 나라를 망치다.
▶ 徼: 邀(맞을 요와 통하여 구하다. 맞이하다.
▶ 鎰: 고대 중량의 단위로 1일은 20량 또는 24량이다.

報吳王曰:
「臣敬以大王之言告越王,越王大恐,曰:
『孤不幸,少失先人,內不自量,抵罪於吳,軍敗身辱,棲于會稽,國為虛莽,賴大王之賜,使得奉俎豆而修祭祀,死不敢忘,何謀之敢慮!』」
오왕에게 보고하였다.
신이 삼가 대왕의 말씀을 월왕에게 고하자 월왕은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과인은 불행하게도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 채 에 죄를 범하여군대가 패하고 몸은 욕을 보고 회계산에 깃들어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나대왕의 은혜를 입어 제물을 받들어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으니 죽어도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음모를 감히 생각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 抵罪: 죄를 지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다.
▶ 虛莽: 폐허가 됨. 虛는 墟와 같음.
▶ 俎豆: 고대 제사용 禮器.

 

後五日,越使大夫種頓首言於吳王曰:
「東海役臣孤句踐使者臣種,敢修下吏問於左右。
今竊聞大王將興大義,誅彊救弱,困暴齊而撫周室,請悉起境內士卒三千人,孤請自被堅執銳,以先受矢石。
因越賤臣種奉先人藏器,甲二十領,鈇屈盧之矛,步光之劍,以賀軍吏。」
닷새 후은 대부 文種을 보내니吳王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고하였다.
동해의 役臣 구천의 사자 臣 種은 감히 사자로서의 예를 대왕의 신하들에게 갖추고 대왕을 문안합니다.
지금 삼가 듣건대대왕께서 大義의 을 일으켜 강국을 무찌르고 약소국을 구원하고포악한 를 곤경에 빠뜨려 주나라 왕실을 편안하게 하신다 하니우리 은 국내에 있는 軍 士 3천 명을 모두 동원하고 구천이 직접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앞장서서 적의 화살과 돌을 받고자 합니다.
의 賤臣 종은 先人이 남긴 기물 중 갑옷 스무 벌과 도끼와 屈盧가 만든 창과 보광의 칼을 헌상하여 군관을 위로하겠습니다.”

▶ 鈇: =斧. 도끼.
▶ 屈盧: 창을 잘 만들었던 전설상의 名匠이다. 후에 좋은 창을 부르는 일반 명칭이 되었다.
▶ 步光: 고대 劍의 이름.

 

吳王大說,以告子貢曰:
「越王欲身從寡人伐齊,可乎?」
오왕 부차가 크게 기뻐하며 자공에게 물었다.
월왕이 몸소 과인을 따라 를 치려 하는데그리해도 되겠소?”

子貢曰:
「不可。
夫空人之國,悉人之衆,又從其君,不義。
君受其幣,許其師,而辭其君。」
자공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남의 나라를 텅 비게 만들고 을 모두 동원하고도그 군주마저 데리고 감은 옳지 못합니다.
대왕께서 의 예물을 거두시고 軍隊만 허락하시되 군주만은 사양하십시오.”

吳王許諾,乃謝越王。
오왕이 허락하되 월왕의 종군은 사양하였다.

於是吳王乃遂發九郡兵伐齊。
이리하여 오왕은 마침내 아홉 고을의 병사를 동원하여 를 쳤다.

子貢因去之晉,謂晉君曰:
「臣聞之,慮不先定不可以應卒,兵不先辨不可以勝敵。
今夫齊與吳將戰,彼戰而不勝,越亂之必矣;
與齊戰而勝,必以其兵臨晉。」
자공은 를 떠나 으로 가서 晉君에게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생각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급한 일에 대처할 수 없고군사를 먼저 정비하지 않으면 적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지금 와 가 싸우려 함에가 패하면 이 를 어지럽게 만들 것이 틀림없지만와 싸워 이기면 틀림업이 을 몰고 으로 쳐들어올 터입니다.”

晉君大恐,曰:
「為之柰何?」
진왕은 크게 두려워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子貢曰:
「修兵休卒以待之。」
자공이 대답하였다.
군비를 갖추어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하고 기다리십시오,”

晉君許諾。
진왕은 허락하였다.

▶ 辨: =辦. 준비하다. 정돈하다.

子貢去而之魯。
자공은 을 떠나 로 갔다.

吳王果與齊人戰於艾陵,大破齊師,獲七將軍之兵而不歸,果以兵臨晉,與晉人相遇黃池之上。
오왕 부차는 과연 齊君과 艾陵에서 싸워 齊軍을 대파하여일곱 명의 장수의 軍士를 사로잡았으나 철군하지 않고 진으로 진군하여 晉君과 黃池가에서 마주쳤다.

吳晉爭彊。
와 이 겨루었다.

晉人擊之,大敗吳師。
晉軍이 공격하여 吳軍을 패퇴시켰다.

越王聞之,涉江襲吳,去城七里而軍。
월왕은 소식을 듣고 강을 건너 를 습격하여 吳 도성에서 7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吳王聞之,去晉而歸,與越戰於五湖。
오왕은 소식을 듣자 을 떠나서 돌아와 과 五湖에서 싸웠다.

三戰不勝,城門不守,越遂圍王宮,殺夫差而戮其相。
세 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여 성문을 지켜 내지 못하니마침내 이 왕궁을 포위하여,夫差를 죽이고 재상인 백비를 戮尸하였다.

破吳三年,東向而霸。
에 승리한 지 3동쪽으로 진군하니 霸者가 되었다.

 

故子貢一出,存魯,亂齊,破吳,彊晉而霸越。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를 보존하고 를 뒤흔들었으며 를 격파하고 를 강하게 만들었고 을 패자로 만들었다.

子貢一使,使勢相破,十年之中,五國各有變。
즉 자공이 한번 사신이 되자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동안 5개국에 각각 변화가 생긴 것이다.

子貢好廢舉,與時轉貨貲。
자공은 買占賣惜을 좋아하여 때에 맞추어 재화를 굴려서 재산을 모았다.

喜揚人之美,不能匿人之過。
또 남의 장점을 闡揚함을 좋아했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주지 못하였다.

常相魯衛,家累千金,卒終于齊。
일찍이 와 의 재상이 되어집안에 천금을 쌓기도 했었는데결국 에서 생을 마쳤다.

▶ 與時: 시대와 더불어. 때를 보아

▶ 廢舉: 囤積貨物,價賤時買進,價貴時賣出。舉,通“ 貯 ”。
▶ 轉貨: 값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뜻.
▶ 貲: 資와 통하여 재물, 재화.



9. 言偃(字 子游)

言偃,吳人,字子游。
言偃은 吳 사람으로 자는 子游이다.

​少孔子四十五歲。
공자보다 45세 적었다.

子游既已受業,為武城宰。
자유는 가르침을 받은 후에 魯 武城의 읍재가 되었다.

孔子過,聞弦歌之聲。
공자가 무성을 지나다가 현악에 맞춘 노랫소리를 들었다.

孔子莞爾而笑曰:
「割雞焉用牛刀?」
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子游曰:
「昔者偃聞諸夫子曰,君子學道則愛人,小人學道則易使。」
자유는 대답하였다.
전에 제가 선생님에게 들으니,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孔子曰:
「二三子,偃之言是也。
前言戲之耳。」
공자가 말하였다.
얘들아言偃이 한 말이 옳다.
먼저 한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다.”

孔子以為子游習於文學。
공자는 子游가 문학에 뛰어남을 인정하였다.

▶ 言偃: 常熟사람으로 자는 子遊, 叔氏이다. 春秋말기 공자의 제자이자 정치가·교육자·학자이다. 魯 武城宰를 지냈다.
▶ 孔子過,聞弦歌之聲: 子之武城,聞弦歌之聲。夫子莞爾而笑,曰:
「割雞焉用牛刀?」子游對曰:
「昔者偃也聞諸夫子曰:『君子學道則愛人,小人學道則易使也。』」子曰:
「二三子!偃之言是也。前言戲之耳。」: 공자께서 武城에 가시어 弦樂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子游가 대답하였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자오니 ‘君子가 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小人이 道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偃(: 子游)의 말이 옳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니라.”<論語 陽貨4>
弦은 거문고와 비파이다. 이때 子游가 武城의 邑宰가 되어 禮樂을 가르쳤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이 모두 弦樂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 것이다. 莞爾는 빙그레 웃는 모습이니, 기뻐하신 것이다. 인하여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어찌 이런 大道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君子와 小人은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子游가 말한 것은 아마도 孔子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일 것이니, 君子와 小人이 모두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되므로 武城이 작은 고을이지만 반드시 禮樂으로써 가르친다는 것이다. 子游가 독실히 믿고 있는 것을 가상히 여기시고, 또 門人의 의혹을 풀어주신 것이다.



10. 卜商(字 子夏)

卜商字子夏。
卜商은 가 子夏이다.

少孔子四十四歲。
공자보다 44세 적었다.

子夏問:
「『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何謂也?」
자하가 물었다.
“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흰 비단으로 채색을 하네.’라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子曰:
「繪事後素。」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曰:
「禮後乎?」
자하가 또 물었다.
와 과 보다 뒤이겠군요?”

孔子曰:
「商始可與言詩已矣。」
공자가 대답하였다.
이젠 너와 함께 를 말할 만하하구나.”

▶ 卜商: 성은 卜, 이름은 商, 字는 子夏이다. 文學에 있어서 자유와 함께 공자의 중요한 제자였다.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근면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평가된다. BC483년 그는 魯로 건너와 공자에게서 수학하였다. 공자가 죽은 뒤 복상은 魏에 가서 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 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 “子夏問曰:
「『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何謂也?」子曰:
「繪事後素。」曰:
「禮後乎?」子曰:
「起予者商也!始可與言詩已矣。」
子夏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子夏가 “禮忠信보다 뒤이겠군요?”하고 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興起시키는 자는 商(: 子夏)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詩를 말한 만하다.”
<巧笑倩兮,美目盼兮>는 詩經 衛風 碩人시로, 衛莊公의 부인 莊姜을 찬미한 시의 일부분이다.
倩은 口輔: 보조개가 예쁜 것이다. 盼은 눈동자에 黑白이 분명한 것이다. 素는 분칠을 하는 자리이니, 그림의 바탕이며, 絢은 채색이니, 그림의 꾸밈이다. 사람이 이러한 아름다운 보조개와 선명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고 또 화려한 채색의 꾸밈을 더하는 것이니, 마치 흰 바탕이 있고 채색을 더하는 것과 같음을 말씀한 것이다. 子夏는 그 도리어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물은 것이다.
繪事는 그림 그리는 일이다. 後素는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周禮考工記에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하였으니, 먼저 흰 비단으로 바탕을 삼은 뒤에 五色의 채색을 칠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뒤에야 文飾을 加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

子貢問:
「師與商孰賢?」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 자장)와 (: 자하가운데 누가 더 낫습니까?”

子曰:
「師也過,商也不及。」
공자가 대답하였다.
사는 지나치고상은 미치지 못한다.”

「然則師愈與?」
그렇다면 단목사가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

曰:
「過猶不及。」
공자가 대답하였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子謂子夏曰:
「汝為君子儒,無為小人儒。」
공자는 또 자하에게 일렀다.
너는 군자의 유학자가 되어야지, (명예를 얻기 위해소인의 유학자가 되지 말아라.”

孔子既沒,子夏居西河教授,為魏文侯師。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자하는 西河의 교수로 있다가 魏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其子死,哭之失明。
그의 아들이 죽자곡하다가 失明하였다.

▶ 師與商孰賢?: “子貢問:
「師與商也孰賢?」子曰:
「師也過,商也不及。」曰:
「然則師愈與?」子曰:
「過猶不及。」:
子貢이
“顓孫師(: 子張)와 卜商(: 子夏)은 누가 낫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師는 지나치고, 商은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子貢이 물었다.
“그러면 師가 낫습니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論語 先進16>
子張은 재주가 높고 뜻이 넓었으나 구차히 어려운 일을 하기 좋아했으므로 항상 中道에 지나쳤고, 子夏는 독실히 믿고 삼가 지켰으나 규모가 협소했으므로 항상 미치지 못하였다. 愈는 勝(: 낫다)의 뜻이며, 道는 中庸을 극치로 삼으니, 賢者와 智者의 지나침이 비록 愚者와 不肖한 者의 미치지 못함보다 나을 것 같으나, 그 中道를 잃음은 똑같다는 뜻이다.
▶ 汝為君子儒,無為小人儒: 子謂子夏曰:
「女為君子儒,無為小人儒。」: 공자께서 子夏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君子의 學者가 되고 小人의 學者가 되지 말라.”<論語 雍也13>
儒는 學者의 칭호이다. 君子의 學者는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요, 小人의 學者는 남을 위하여 즉 남에게 名譽를 얻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11. 顓孫師字 子張)

顓孫師,陳人,字子張。
顓孫師는 陳 사람으로 가 子張이다.

少孔子四十八歲。
공자보다 48세 적었다.

子張問干祿,孔子曰:
「多聞闕疑,慎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慎行其餘,則寡悔。
言寡尤,行寡悔,祿在其中矣。」
자장이 벼슬하는 자의 녹봉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고,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터이다.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후회가 적으면 祿은 거기에 있다.”

他日從在陳蔡閒,困,問行。
훗날 공자 일행이 과 蔡 사이에서 곤욕을 겪을 때 子張이 에 대하여 물었다.

孔子曰:
「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國行也;
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裏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夫然後行。」
공자가 대답하였다.
말이 충직하고 믿음직하며행실이 돈독하고 공경하면비록 오랑캐의 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
말이 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篤敬하지 못하면 중원의 州里라 하더라도 행할 수 있겠는가!
수레에서 일어서면 끌채 끝의 멍에를 메는 부분을 보고수레에 앉으면 멍에의 가로 나무 연결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후에야 치도를 행할 수 있다.”

子張書諸紳。
子張이 이 말을 잊지 않기 위해 허리띠에 적어두었다.

▶ 子張問干祿: 子張學干祿。子曰:
「多聞闕疑,慎言其餘,則寡尤;多見闕殆,慎行其餘,則寡悔。言寡尤,行寡悔,祿在其中矣。」: 子張이 祿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지며,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祿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논어為政>
干은 구하는 것이다. 祿은 벼슬하는 자의 祿俸이다.
“尤는 죄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요, 悔는 이치가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 他日從在陳蔡閒: 子張問行。子曰:
「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里行乎哉?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子張書諸紳. :
子張이 행해짐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忠信하고 행실이 篤敬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이 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篤敬하지 못하면 州里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일어서면 그것이 앞에 참여함을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에 기댐을 볼 수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은 뒤에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子張이 <이 말씀을> 띠에 썼다. <論語 衛靈公>
子張의 뜻은 밖에서 행해짐을 얻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자신에게 돌이켜 말씀하셨으니, 干祿과 問達에 답한 뜻과 같다. 篤은 厚함이다. 蠻은 南蠻이요, 貊은 北狄이다. 2천 5백 家를 州라 한다.
參은 “가서 끼어들지 말라 毋往參焉.”는 말의 參과 같이 읽으니, 나와 서로 참여함을 말한다. 衡은 멍에이다. 忠信·篤敬에 있어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서 있는 곳에 따라 항상보이는 듯하여, 비록 잠시 떠나려 하여도 떠날 수 없는 뒤에야 한마디 말, 한 가지 행동이 모두 저절로 忠信과 篤敬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여 오랑캐 나라에서라도 행해질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자장은 또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는 어떻게 해야만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孔子曰:
「何哉,爾所謂達者?」
공자가 반문하였다.
무엇이냐네가 말하는 그 통달이란?”

子張對曰:
「在國必聞,在家必聞。」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에 있으면 필시 알려지고집에 있어도 필시 알려지는 것입니다.”

孔子曰:
「是聞也,非達也。
夫達者,質直而好義,察言而觀色,慮以下人,在國及家必達。
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在國及家必聞。」
공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소문이지 통달이 아니다.
무릇 통달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를 좋아하며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나라나 집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이 된다.
무릇 소문이란 얼굴빛은 을 취하나 행실은 어긋나되 살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나라나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

▶ 士何如斯可謂之達矣?: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子曰:
「何哉,爾所謂達者?」子張對曰:
「在邦必聞,在家必聞。」子曰:
「是聞也,非達也。夫達也者,質直而好義,察言而觀色,慮以下人。在邦必達,在家必達。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在邦必聞,在家必聞。」: 子張이 물었다.
“선비가 어떠하여야 이 達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인가? 네가 말하는 達이란 것이.”子張이 대답하였다.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達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達이 되며, 집안에 있어서도 반드시 達이 되는 것이다. 聞이란 얼굴빛은 仁을 취하나 행실은 실제 위배되며 그대로 머물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論語 顏淵>
達이란 德이 남에게 믿어져서 행함에 얻지 못함이 없음을 이른다. 안으로 忠信을 주장하고 행하는 바가 義에 합하며 남을 대하는 데에 살펴하고 겸손함으로써 자신을 기름은, 다 스스로 안을 닦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德이 자기에게 닦아져서 남들이 믿는다면 행하는 바가 저절로 막힘이 없게 될 것이다.



12. 曾參(字 子輿)

曾參,南武城人,字子輿。
曾參은 魯 南武城사람으로 가 子輿이다.

少孔子四十六歲。
공자보다 46세 적다.

孔子以為能通孝道,故授之業。
공자는 증삼이 효도에 능통하다고 여겼으므로 그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作《孝經》。
그리하여 孝經을 짓게 하였다.

死於魯。
증삼은 에서 죽었다.

▶ 曾參: 曾子의 이름. 曾點의 아들로 山東省출신이며, 字는 子輿이고,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공자의 손자 子思에게 전하였고, 자사가 孟子에게 그 도를 전하였다. 그는 행동함에 일정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狂者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회남자>에 증자는14세 때에 “태산 기슭에서 농사를 하다가 눈과 비가 내려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부모를 생각하고 梁山의 노래를 지었다”고 하고, 지극한 효자로서 효심이 지극하여 멀리 있어도 모친이 전하는 바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孝經의 작자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孝經은 공자와 그의 제자 曾參이 문답한 것 중에서 효도에 관한 것을 추린 책이다.



13. 澹台滅明字 子羽)

澹臺滅明,武城人,字子羽。
澹臺滅明은 武城사람으로 가 子羽이다.

少孔子三十九歲。
공자보다 39세 적다.

狀貌甚惡。
얼굴이 매우 못생겼다.

欲事孔子,孔子以為材薄。
공자를 섬기려 하자 공자는 그의 재능이 보잘것없으리라 여겼다.

既已受業,退而修行,行不由徑,非公事不見卿大夫。
수업을 마친 뒤 물러 나와 행실을 닦았는데길을 감에 지름길로 가지 않고 公事가 아니면 경대부를 만나지 않았다.

南游至江,從弟子三百人,設取予去就,名施乎諸侯。
남쪽에서 노닐어 장강에 이르니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었고주고받음과 거취를 바로 세우니 그의 명성이 제후에 퍼졌다.

孔子聞之,曰:
「吾以言取人,失之宰予;
以貌取人,失之子羽。」
공자가 알고 말하였다.
내가 말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宰予에게 실수를 했고얼굴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子羽에게 실수를 하였다.”

▶ 行不由徑: 子游為武城宰。子曰:
「女得人焉爾乎?」曰:
「有澹臺滅明者,行不由徑。非公事,未嘗至於偃之室也。」: 子游가 武城의 邑宰가 되었다. 공자께서“너는 人物을 얻었느냐?”라고 묻자, 子游가 대답하였다.
“澹臺滅明이라는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적에 지름길을 따르지 않으며, 公的인 일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論語 雍也14>
武城은 魯 都城밑에 있는 邑이다. 澹臺는 姓이요, 滅明은 이름이며, 字는 子羽이다. 徑은 길이 작으면서 빠른 것이다. 公事는 鄕飮酒·鄕射禮와 讀法 따위와 같은 것이다. 지름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행동을 반드시 바르게 해서, 작은 것을 보고 빨리하려고 하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으며, 公的인 일이 아닐 경우에는 邑宰를 만나보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지킴이 있어, 자기를 굽혀 남을 따르려는 사사로움이 없음을 볼 수 있다.

 

 

14. 宓不齊(字 子賤)

宓不齊字子賤。
宓不齊는 자가 子賤이다.

少孔子三十歲。
공자보다 30세 젊었다.

孔子謂子賤,
「君子哉!
魯無君子,斯焉取斯?」
공자가 子賤을 두고 평하셨다.
君子답다이 사람이여!
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을 취했겠는가?”

子賤為單父宰,反命於孔子,曰:
「此國有賢不齊者五人,教不齊所以治者。」
자천이 선보의 읍재로 있을 때 공자에게 復命하였다.
이곳에는 저보다 현명한 자가 다섯 명이나 있어 저에게 治道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孔子曰:
「惜哉不齊所治者小,所治者大則庶幾矣。」
이를 듣고 공자가 탄식하였다.
아깝다네가 다스리는 곳이 작구나다스리는 곳이 크면 이상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있을 터인데.”

▶ 宓不齊: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 성은 宓이고, 이름은 不齊이며, 자는 子賤이다. 孔子의 제자로, 30살 연하이다. 單父의 수령을 지냈다. 單父(:지금의 山東省 單縣)의 재상 벼슬을 지냈는데 백성들이 그를 몹시 존경하였다. 그가 스승 공자에게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하자 공자는 복부제는 더 큰 지방도 다스릴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孔子謂子賤: 子謂子賤,「君子哉若人!魯無君子者,斯焉取斯?」:
공자께서 子賤을 두고 평하셨다.
“君子답다, 이 사람이여! 魯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德을 취했겠는가?”<論語 公冶長3>
子賤은 공자의 제자이니, 姓은 宓이고, 이름은 不齊이다. ‘斯焉取斯’의 위 斯字는 이 子賤이고, 아래 斯字는 이러한 德이다. 子賤은 아마도 어진 이를 존경하고 훌륭한 벗을 취하여 德을 이룬 사람인 듯하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이미 그의 어짊을 讚嘆하시고, 다시“魯에 君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취하여 이러한 德을 이루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로 인하여 魯에 君子가 많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 此國有賢不齊者五人: 다음 내용은 공자가어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孔子謂宓子賤曰:
「子治單父,衆悅,子何施而得之也?子語丘所以為之者。」對曰:
「不齊之治也,父恤其,子其子,恤諸孤而哀喪紀。」孔子曰:
「善,小節也,小民附矣,猶未足也。」曰:
「不齊所父事者三人,所兄事者五人,所友事者十一人。」孔子曰:
「父事三人,可謂教孝矣;兄事五人,可以教悌矣;友事十一人,可以舉善矣。中節也,中人附矣;猶未足也。」曰:
「此地民有賢於不齊者五人,不齊事之而稟度焉,皆教不齊之道。」孔子歎曰:
「其大者乃於此乎有矣!昔堯、舜聽天下,務求賢以自輔。夫賢者、百福之宗也,神明之主也,惜乎不齊之所以治者小也。」<孔子家語 辯政>
공자가 宓子賤에게 물었다.
“네가 單父땅을 다스릴 때, 사람들이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너는 무엇을 베풀었기에 그렇게 되었느냐? 너는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말해 주지 않겠느냐?”
복자천이 대답하였다.
“저의 다스림은 아버지는 그 아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고, 그 자식은 여러 고아를 긍휼히 여기게 하였으며, 그 어느 집이라도 喪事가 있게 되면 이를 슬프게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그러나 이는 작은 절차로서 하찮은 백성들이나 고맙다고 가까이 따른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오히려 부족한 것이다.”
복자천이 말하였다.
“저에게는 單父에 아버지처럼 받드는 분이 세 사람이 있고, 형처럼 섬기는 이가 다섯 사람이 있으며, 친구처럼 받드는 이가 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처럼 섬기는 자가 세 사람이 있다면 가히 효를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며, 형처럼 섬기는 자가 다섯 사람이 있다면 가히 孝悌를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며, 친구로 받드는 자가 열 한 사람이 있다면 가히 착한 일을 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간 정도의 절차로서 중류층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정도이다. 그러니 아직은 오히려 부족한 것이다.”
복자천이 또 말하였다.
“이 땅의 백성 중에 저보다 어진 사람이 다섯이나 있어서 저는 그들을 모시면서 무슨 일이든 물어보고 행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저에게 道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공자는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 큰 것이, 이런 면이 있었던 것이로구나! 옛날 堯舜도 천하의 의견을 들어서, 자신을 보필할 어진 사람을 구하기에 힘을 썼었다. 무릇 어진 자라고 하는 것은 백 가지 복의 근본이요, 신명함의 주인인 것이다. 안타깝구나! 그 땅은 네가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좁은 곳이로구나!”


15. 原憲(字 子思)

原憲字子思。
原憲가 子思이다.

子思問恥。
자사가 수치스러운 일에 대해 물었다.

孔子曰:
「國有道,穀。國無道,穀,恥也。」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라에 가 있을 때 녹만 먹으며나라에 가 없을 때 녹만 먹는 것 모두 수치스러운 일이다.”

子思曰:
「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乎?」
자사가 물었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공로를 자랑하는 것·남을 원망하는 것·탐욕스러운 것을 행하지 않으면 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孔子曰:
「可以為難矣,仁則吾弗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어렵다고 할 수는 있으나 인지는 내 알지 못하겠다.”

▶ 子思問恥: “憲問恥。子曰:
「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矣?」子曰:
「可以為難矣,仁則吾不知也。」:
原憲이 수치스러운 일을 물으니,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나라에 道가 있을 때 祿만 먹으며, 나라에 道가 없을 때 祿만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 함을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렵다고 할 수는 있으나, 仁인지는 내 알지 못하겠다.”<論語 憲問1>
穀은 祿이다. 나라에 道가 있을 때에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하고, 나라에 道가 없을 때에 홀로 善하게 하지 못하면서, 다만 祿을 먹을 줄만 아는 것은 모두 수치스러울 만한 일이다. 原憲의 志操는 나라에 道가 없을 때에 祿을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알고 있었으나, 나라에 道가 있을 때에 祿만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의 질문을 인하여 이것까지 아울러 말씀하여, 그의 뜻을 넓혀서 스스로 힘쓸 바를 알게 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데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사람으로서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오직 仁者만이 능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데도 그 情을 제어하여 행해지지 못하게 한다면 이 또한 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한 것이다.

孔子卒,原憲遂亡在草澤中。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原憲은 풀이 우거진 늪지대에 숨어 살았다.

子貢相衛,而結駟連騎,排藜藿入窮閻,過謝原憲。
子貢이 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 호위병과 함께 명아부와 콩잎을 헤치고 빈궁한 집에 들어와 자사에게 들러 인사하였다.

憲攝敝衣冠見子貢。
원훤은 해어진 옷과 의관을 단정히 차려 입고 자공을 맞이하였다.

子貢恥之,曰:
「夫子豈病乎?」
자공이 부끄럽게 여겨 말하였다.
선생은 어찌 병들어 보이십니까?”

原憲曰:
「吾聞之,無財者謂之貧,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
若憲,貧也,非病也。」
원훤이 말하였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재물이 없음을 가난이라 말하고 도를 배우고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함을 병이라고 한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가난하지 병든 것은 아닙니다.”

子貢慚,不懌而去,終身恥其言之過也。
자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언짢은 표정으로 떠났다이후 평생토록 자신의 말이 지나침을 부끄러워하였다.

▶ 子貢: 공자 제자 端木賜의 字. 이른바 孔門十哲중의 一人으로 공자가 언어에 능통하다고 인정하였다.
▶ 原憲遂亡在草澤中: “原憲居魯,環堵之室,茨以生草,蓬戶不完,桑以為樞而甕牖,二室,褐以為塞,上漏下溼,匡坐而弦。子貢乘大馬,中紺而表素,軒車不容巷,往見原憲。原憲華冠縰履,杖藜而應門。子貢曰:
「嘻!先生何病?」原憲應之曰:
「憲聞之:『無財謂之貧,學而不能行謂之病。』今憲,貧也,非病也。」子貢逡巡而有愧色。原憲笑曰:
「夫希世而行,比周而友,學以為人,教以為己,仁義之慝,輿馬之飾,憲不忍為也。」:
공자의 제자 原憲이 魯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상하 사방이 101丈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집인 데다 지붕은 푸른 풀로 이었으며 쑥 풀을 묶어 만든 房門도 완전치 않은데, 뽕나무 가지를 깎아 지도리로 삼고 밑 빠진 항아리를 창으로 삼은 두 방을 거친 갈포로 막았는데 위에서 비가 새어 아래 바닥은 축축한데, 原憲은 그 가운데에 똑바로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역시 공자의 제자였던 子貢이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紺色속옷에다 흰색 겉옷을 입고 찾아왔는데, 軒車가 좁은 뒷골목에 들어올 수 없어서 걸어가서 原憲을 만났다. 이때 原憲은 머리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뒤꿈치 없는 신을 신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가 마중하였다.
子貢이 말하였다.
“아아!선생은 어찌 이렇게 병들어 보이십니까?”
原憲이 이에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말하고 道를 배우고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저는 가난한 것일지언정 병든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자공이 뒷걸음질 치며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자, 원헌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세상에 명성을 얻기를 바라면서 행동하고, 附和雷同작당해서 친구를 사귀어서, 남에게 칭찬듣기 위해 학문을 하며, 남을 가르치면서 자기의 이익만을 좇으며, 仁義를 내걸고 나쁜 짓을 자행하며, 수레와 말로 자신을 꾸미는 짓을 나는 차마 하지 못합니다.”
<莊子 雜篇 讓王>


16. 公冶長(字 子長)

公冶長,齊人,字子長。
公冶長은 齊 사람으로 가 子長이다.

孔子曰:
「長可妻也,雖在累紲之中,非其罪也。」
공자가 말하였다.
자장은 사위 삼을 만하다비록 포승으로 묶여 옥중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

以其子妻之。
그를 자기 사위로 삼았다.

▶ 公冶長: 성은 公冶, 이름은 長이며, 자는 子長, 子芝이다. 공자의 제자이자 사위이며 孔門七十二賢 중의 한 명이다.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했으나 근검절약하고 총명하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박학다식하고 才德을 겸비하였다. 평생 동안 벼슬을 살지 않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새와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며 이로 인해 무고한 죄를 얻기도 하였다. 魯 군주가 여러 차례 大夫로 청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공자의 유지를 계승하여 교육에 전념하였다.
▶ 長可妻也: 子謂公冶長,「可妻也。雖在縲絏之中,非其罪也」。以其子妻之. : 공자께서 公冶長을 두고 평하시기를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포승으로 묶여 獄中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하시고,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論語 公冶長>
妻는 <딸을 시집보내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하는 것이다. 縲는 검정색의 포승이고, 絏은 결박이다. 옛날 獄中에서는 검정색의 포승으로 罪人을 결박하였다. 公冶長의 사람됨은 상고할 곳이 없으나, 夫子께서 ‘사위 삼을 만하다.’라고 칭찬하셨으니, 그에게 반드시 취할 만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 사람이 비록 일찍이 獄中에 갇혀 있었으나 그 사람의 죄가 아니었으니, 참으로 사위 삼는 데에 나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죄가 있고 없음은 자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니, 밖으로부터 이르른 것을 가지고 榮辱을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17. 南宮括(: 字 子容)

南宮括字子容。
남궁괄은 가 子容이다.

問孔子曰:
「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자용이 공자에게 물었다.
羿는 활을 잘 쏘았고 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임금과 주나라 后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孔子弗答。
공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容出,孔子曰:
「君子哉若人!上德哉若人!」
子容이 나가자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로구나저 사람은덕을 숭상하는구나저 사람이여!”

「國有道,不廢;
國無道,免於刑戮。」
나라에 가 있을 때에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요,
나라에 가 없을 때에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

三復「白珪之玷」,以其兄之子妻之。
자용은 詩經白珪의 시를 세 번 반복해 외우니 공자가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 羿善射,奡盪舟: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夫子不答,南宮适出。子曰:
「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 南宮适이 孔子께 묻기를“羿는 활을 잘 쏘았고, 奡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禹王과 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소유하셨습니다.”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南宮适이 밖으로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로구나, 이 사람이여!德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論語 憲問5>
南宮适은 공자의 제자로 성은南宮이고, 이름은适이다. 韜라고도 불렀으며, 字는 子容으로 자신의 조카를 시집보낼 만큼 신망 받는 제자였다. 羿는夏나라 때東夷족 국가인有窮국의 제후였다. 천자국인夏나라太康왕의 실정이 이어지자 태강을 축출하고 끝내 왕위에 오르지만 후에 심복인寒浞에 의해 암살당한다. 奡는 한착의 아들이다. 왕위에 오른 한착도 민심을 얻지 못하던 중 숨어서 세력을 키우던 小康이 쿠데타를 일으켜 夏왕조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盪舟는 물이 아닌 땅 위에서 배를 끌만큼 힘이 세다는 뜻이다.
禹王은 水土를 다스리고 稷과 함께 씨앗을 뿌려 몸소 농사짓는 일을 하였는데, 禹王은 舜帝의 禪位를 받아 天下를 소유하였고, 稷의 후손도 周나라 武王에 이르러 또한 천하를 소유하였다.
南宮适의 뜻은 羿와 奡를 당시의 권력가에게 비유하고, 禹王과 稷을 孔子에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南宮适의 말이 이와 같으니, 君子다운 사람이어서 德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만하니,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려 贊美하신 것이다.
▶ 國有道,不廢: 子謂南容,「邦有道,不廢;邦無道,免於刑戮。」以其兄之子妻之。: 공자께서 南容을 두고 평하시기를“나라에 道가 있을 때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요, 나라에 道가 없을 때에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하시고,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論語 公冶長2>
不廢는 반드시 쓰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남용은 言行을 삼가였으므로, 잘 다스려지는 조정에서는 쓰임을 당하고, 亂世에는 禍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三復白珪之玷: 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 : 南容이 白圭란 내용의 詩를<하루에>세 번 반복해 외우니, 孔子께서 그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論語 先進6>
<詩經>大雅抑篇〉에 白圭: 白玉으로 만든 圭의 홈은 오히려 갈면 될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아낼 수 없다.”하였는데, 南容이 하루에 세 번 이 내용을 반복하였다. 이는 말을 삼가는 데 깊이 뜻을 둔 것이다.


18. 公皙哀(: 字 季次)

公皙哀字季次。
公皙哀는 가 季次이다.

孔子曰:
「天下無行,多為家臣,仕於都;
唯季次未嘗仕。」
공자가 말하였다.
천하 사람들은 도를 행하지 않고 대부분 대부집 가신이 되어 도성에서 벼슬을 하며 지내건만 오직 계차만은 지조를 지키며 벼슬하지 않는다.”

▶ 公皙哀: 孔子家語에는 공석애의 자가 季沉으로 되어 있다.
“公析哀,齊人,字季沉。鄙天下多仕於大夫家者,是故未嘗屈節人臣。孔子特歎貴之。: 공석애는 齊 사람으로 자가 季沉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대부에게 가서 벼슬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다. 그래서 남의 신하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다. 공자는 이을 특별히 귀하게 여겨 감탄하였다.” <孔子家語 72七十二弟子解>

 

 

19. 曾蒧(: 字 皙)

曾蒧字皙。
曾蒧은 가 이다.

侍孔子,孔子曰:
「言爾志。」
증점이 공자를 모시는데 공자가 말하였다.
너의 뜻을 말해 보아라.”

蒧曰:
「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증점이 대답하였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을 쓴 어른 56명과 童子 6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의 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孔子喟爾嘆曰:
「吾與蒧也!」
공자가 아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의 뜻과 같다!”라고 하였다.

▶ 曾蒧: 曾參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點이며 字가 晳이다.
▶ 言爾志: 「點!爾何如?」鼓瑟希,鏗爾,舍瑟而作。對曰:
「異乎三子者之撰。」子曰:
「何傷乎?亦各言其志也。」曰:
「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 “點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하시자, 그는 비파를 타기를 드문드문 하더니, 쨍그렁하고 비파를 놓으며 일어나 대답하였다.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무엇이 나쁘겠는가?”또한 각기 자기의 포부를 말하는 것이다.”하시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冠을 쓴 어른5∼6명과 童子 6∼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孔子께서 아!하고 감탄하시며“나는 點을 許與한다.”하셨다. <論語 先進26>
네 사람이 모시고 앉음에 年齒로 차례를 한다면 曾點이 마땅히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 비파를 타고 있었으므로 孔子께서 먼저 求와 赤에게 물으신 뒤에 點에게 미치신 것이다. 希는 間歇이요, 作은 일어남이다. 撰은 갖춤이다. 暮春은 온화하고 따스한 시절이다. 春服은 홑옷과 겹옷이다. 浴은 세수하고 씻는 것이니, 오늘날3월 삼짇날에 한 해의 액을 씻어내는 의식이 그것이다. 沂는 물 이름이니, 魯 都城남쪽에 있다. 風은 시원한 바람을 쏘이는 것이다. 舞雩는 하늘에 제사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니, 祭壇과 터를 닦아놓은 자리와 수목이 있다. 詠은 노래하는 것이다.

 

20. 顏無繇(字 路)

顏無繇字路。
顏無繇는 자가 이다.

路者,顏回父,父子嘗各異時事孔子。
로는 顏回의 아버지인데 父子가 각각 다른 시기에 공자를 섬겼다.

顏回死,顏路貧,請孔子車以葬。
안회가 죽자 안로는 가난하여 공자의 수레를 팔아 그것으로 을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孔子曰:
「材不材,亦各言其子也。
鯉也死,有棺而無槨,吾不徒行以為之槨,以吾從大夫之後,不可以徒行。」
공자가 말하였다.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 간에 각각 자기의 아들을 위한다.
가 죽었을 때 만 있었고 은 없었다.
내가 도보로 걸어 다니며 을 만들어주지 못함은 내가 大夫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도보로 걸어 다닐 수 없어서이다.”

▶ 顔路: 顔回의 아버지이며 이름은 無繇이고 공자보다 6세가 적다. 공자가 처음 가르칠 적에 가르침을 받았다.
▶ 顏回死: “顏淵死,顏路請子之車以為之椁。子曰:
「才不才,亦各言其子也。鯉也死,有棺而無椁。吾不徒行以為之椁。以吾從大夫之後,不可徒行也。」: 顔淵이 죽자 顔路가 孔子의 수레를 팔아 槨을 만들 것을 청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 간에 각각 자기의 아들을 위한다. <내 아들>鯉가 죽었을 때에 棺만 있었고 槨은 없었다. 내가 수레를 팔아 도보로 걸어다니며 槨을 만들어주지 못함은 내가 大夫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도보로 걸어다닐 수 없어서이다.”<論語 先進8>
槨은 外棺이다. 槨을 만들 것을 청함은 수레를 팔아 槨을 사려고 한 것이다. 』
鯉는 孔子의 아들 伯魚인데 孔子보다 먼저 죽었다. 鯉의 재주가 비록 顔淵에게 미치지 못하나 자기와 顔路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자식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孔子가 이때 이미 벼슬을 내놓았으나 아직도 大夫의 班列을 따랐는데, 뒤라고 말씀한 것은 겸사이다. 徒行은 걸어서 감.
공자는 제자 중 육예에 통달한 자는 77명이라고 하였으며, 사마천은 論語 및 孔子世家, 春秋左氏傳등을 인용하여 제자들을 낱낱이 설명하여 장문의 형식을 취하였다. 사마천은“나는 공자의 제자들의 이름과 언행을 모두 ‘논어’에 나오는 사제 사이의 문답에서 취한 뒤 이를 차례로 정리하여 중니제자열전을 만들었다. 의심나는 것은 싣지 않았다.”라고 기술하였다.


 

21. 商瞿(字 子木)

商瞿,魯人,字子木。
商瞿는 사람으로 가 子木이다.

少孔子二十九歲。
공자보다 29세 젊다.

孔子傳易於瞿,瞿傳楚人馯臂子弘,弘傳江東人矯子庸疵,疵傳燕人周子家豎,豎傳淳于人光子乘羽,羽傳齊人田子莊何,何傳東武人王子中同,同傳菑川人楊何。
공자는 周易을 商瞿에게 전했고상구는 사람 馯臂子弘에게 전했고子弘은 강동 사람 矯子庸疵에게 전했으며庸疵는 사람 周子家豎에게 전했으며家豎는 순우사람 光子乘羽에게 전했고乘羽는 사람 田子莊何에게 전했고莊何는 동무사람 王子中同에게 전했고中同은 또 치천사람 楊何에게 전하였다.

何元朔中以治易為漢中大夫。
楊何는 元朔연간에 주역에 능통하여 한나라 중대부가 되었다.

▶ 易: 易經. 周易. 儒學에서 삼경 중 하나로 삼은 경전으로, 세계의 변화에 관한 원리를 기술한 책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쓰여진 연대는 대략 동주 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 元朔: 前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이다. 기원전128년에서 기원전123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하였다.

 

22. 高柴(字 子羔)

高柴字子羔。
高柴는 가 子羔이다.

少孔子三十歲。
공자보다 30세 젊었다.

子羔長不盈五尺,受業孔子,孔子以為愚。
자고는 신장이 5척에 미치지 못했으며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공자는 그를 우직하다고 생각하였다.

子路使子羔為費郈宰,孔子曰:
「賊夫人之子!」
子路가 子羔를 계씨의 근거지인 費邑의 邑宰로 삼자 공자가 말하였다.
남의 아들을 해치는구나!”

子路曰:
「有民人焉,有社稷焉,何必讀書然後為學!」
자로가 말하였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어찌 꼭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孔子曰:
「是故惡夫佞者。」
공자가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말만 잘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 子路使子羔為費郈宰: 子路使子羔為費宰。子曰:
「賊夫人之子。」子路曰:
「有民人焉,有社稷焉。何必讀書,然後為學?」子曰:
「是故惡夫佞者。」:
子路가 子羔를 費邑의 邑宰를 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아들을 해치는구나!”
子路가 말하였다.
“백성이 있고 社稷이 있으니, 하필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論語 先進25>
子路가 季氏의 家臣이 되어 자고를 추천한 것이다. 賊은 해침이다. 子羔는 자질은 아름다우나 아직 배우지 않았는데, 갑자기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다만 그를 해칠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섬기는 것이 모두 學問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백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섬기는 것은 진실로 배우는 자의 일이다. 그러나 學問이 이루어진 뒤에야 벼슬하여 그 배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약 애초에 일찍이 학문하지 않고서 그로 하여금 벼슬에 나아가 학문을 하게 한다면 귀신을 輕忽히 하고 백성을 학대함에 이르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子路의 말은 그의 本意가 아니요, 다만 논리가 굽히고 말이 궁하여 입으로만 변론을 취하여 남의 입을 막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孔子께서 그의 그름을 배척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말재주만을 미워하신 것이다.


23. 漆彫開(字 子開)

漆彫開字子開。
漆彫開는 자가 子開이다.

孔子使開仕,對曰:
「吾斯之未能信。」
공자가 子開에게 벼슬길에 나서라고 권하니 자개가 대답하였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孔子說。
공자가 기뻐하셨다.

▶ 孔子使開仕: 子使漆雕開仕。對曰:
「吾斯之未能信。」子說。:
공자께서 漆雕開에게 벼슬을 하게 권하시자,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論語 公冶長>
漆雕開는 공자의 弟子이니, 字는 子若이다. 斯는 이 이치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信은 참으로 그러함을 알아 털끝만한 의심도 없음을 말한다. 漆雕開는 스스로 말하기를
“아직 자신할 수 없어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의 뜻이 돈독함을 기뻐하신 것이다.


24. 公伯繚(字 子周)

公伯繚字子周。
公伯繚는 가 子周이다.

周訴子路於季孫,子服景伯以告孔子,曰:
「夫子固有惑志,繚也,吾力猶能肆諸市朝。」
자주가 계손씨에게 子路를 참소하자 子服景伯이 공자에게 고하였다.
계손께서 본래 공백료의 말에 마음에 의혹됨이 있었으니공백료는 내 힘으로도 죽여 시체를 시장바닥에 버릴 수 있습니다.”

孔子曰:
「道之將行,命也;道之將廢,命也。
公伯繚其如命何!」
공자가 말하였다.
도가 장차 행하여지는 것은 천명이고 도가 장차 없어지는 것도 천명이다.
공백료 따위가 천명에 어떻게 할 것인가!”

▶ 周訴子路於季孫: 公伯寮愬子路於季孫。子服景伯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吾力猶能肆諸市朝。」子曰:
「道之將行也與?命也。道之將廢也與?命也。公伯寮其如命何!」
公伯寮가 子路를 季孫에게 참소하니, 子服景伯이 孔子께 아뢰기를
“季孫께서 진실로 公伯寮의 말에 마음을 의혹하고 계시니, 내 힘이 그래도 公伯寮의 시신을 거리에 널어놓을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命이며 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命이니, 公伯寮가 그 命에 어떻게 하겠는가?”<論語 憲問>
公伯寮는 魯 사람이다. 愬는 참소함이다. 子服景伯은 子服이 姓이고 景은 시호이며 伯은 字이니, 魯 大夫 子服何이다. 夫子는 季孫을 가리키니, 그가 公伯寮의 말에 의혹을 두었다는 말이다. 肆는 시신을 늘어놓은 것이니, 公伯寮를 목 베고자 함을 말한다.
비록 公伯寮의 참소가 행해진다 하더라도 이 또한 命이니, 실상은 公伯寮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는 子路를 안심시키고 公伯寮를 깨우쳐 주셨을 뿐이다. 聖人이 利害의 사이에 있어서 命에 결정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泰然해지는 것은 아니다.


25. 司馬耕(字 子牛)

司馬耕字子牛。
司馬耕은 자가 子牛이다.

牛多言而躁。
자우는 말이 많고 성질이 조급하였다.

問仁於孔子,孔子曰:
「仁者其言也訒。」
공자에게 을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하였다.
仁者는 그 말을 참아서 하는 것이다.”

曰:
「其言也訒,斯可謂之仁乎?」
사마우가 다시 물었다.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子曰:
「為之難,言之得無訒乎!」
공자가 대답하였다.
행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말하는 것을 참지 않을 수 있겠는가!”

問君子,子曰:
「君子不憂不懼。」
사마우가 君子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曰:
「不憂不懼,斯可謂之君子乎?」
사마우가 물었다.
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군자라 할 수 있습니까?”

子曰:
「內省不疚,夫何憂何懼!」
공자가 대답하였다.
스스로 자신을 살펴 조그마한 허물도 없는데 어찌 근심하고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 問仁於孔子: 司馬牛問仁。子曰:
「仁者其言也訒。」曰:
「其言也訒,斯謂之仁已乎?」子曰:
「為之難,言之得無訒乎?」:
司馬牛가 仁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仁者는 그 말함이 참아서 하는 것이다.”
司馬牛가 말하였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仁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論語 顏淵>
司馬牛는 宋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며 나무를 뽑아 공자를 죽이려고 했던 司馬桓魋의 동생이다. 이름이 耕 또는 犁이고 자가 子牛이며 말이 많고 성질이 조급한 사람이었다.
訒은 참는 것이며 어려워하는 것이다. 仁者는 마음이 보존되어 방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말이 마치 참는 바가 있어서 쉽게 발하지 않는 듯하니, 이는 그 德의 一端인 것이다. 공자께서는 司馬牛가 말이 많고 조급하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말씀해 주어서 그 말을 삼가게 하신 것이니, 그렇다면 仁을 하는 방법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 問君子: 司馬牛問君子。子曰:
「君子不憂不懼。」曰:
「不憂不懼,斯謂之君子已乎?」子曰:
「內省不疚,夫何憂何懼?」:
司馬牛가 君子를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司馬牛가 말하였다.
“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君子라 이를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으로 반성하여 조그마한 하자도 없으니, 어찌 근심하며 어찌 두려워하겠는가?”<論語 顏淵>
司馬桓魋가 亂을 일으키니, 司馬牛가 항상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疚는 瑕疵이다. 평소에 행하는 바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능히 안으로 반성하여 아무런 하자가 없어서 스스로 근심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 대번에 쉽게 여겨 이것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26. 樊須(字 子遲)

樊須字子遲。
樊須는 가 子遲이다.

少孔子三十六歲。
공자보다 36세 젊다.

樊遲請學稼,孔子曰:
「吾不如老農。」
樊遲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청하자 공자는 말하였다.
나는 익숙한 늙은 농부만 못하다.”

請學圃,曰:
「吾不如老圃。」
채소 농사에 관한 가르침을 청하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채소를 가꾼 늙은 농부만 못하다.”

樊遲出,孔子曰:
「小人哉樊須也!
上好禮,則民莫敢不敬;
上好義,則民莫敢不服;
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焉用稼!」
번지가 물러가자 공자가 말하였다.
소인이구나번수여!
윗사람이 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실정대로 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방의 백성들이 포대기로 아이를 싸서 업고 올 터인데어찌해서 농사지으려는 것인가!”

樊遲問仁,子曰:
「愛人。」
번지가 에 관해 묻자 공자는 대답하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問智,曰:
「知人。」
또 번지가 를 묻자 대답하였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 樊遲請學稼: 樊遲請學稼,子曰:
「吾不如老農。」請學為圃。曰:
「吾不如老圃。」樊遲出。子曰:
「小人哉,樊須也!上好禮,則民莫敢不敬;上好義,則民莫敢不服;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夫如是,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焉用稼?」
樊遲가 농사일을 배우기를 청하자, 공자께서는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하셨다.
菜田을 가꾸는 것을 배우기를 청하자,
“나는 늙은 원예사만 못하다.”하셨다.
樊遲가 나가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小人이구나! 樊須여!윗사람이 禮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義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信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情대로 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四方의 백성들이 자식을 포대기에 업고 올 것이니, 어찌 농사짓는 것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論語 子路>
五穀을 심는 것을 稼라 하고, 채소를 심는 것을 圃라 한다. 小人은 벼슬이 없는 일반 庶民들을 이르니, 孟子가 말한 ‘小人의 일’이란 것이다.
禮·義·信은 大人(: 爲政者)의 일이다. 義를 좋아하면 일이 마땅함에 합한다. 情은 誠實함이다. 백성들이 공경하고 복종하고 실정대로 하는 것은 각기 그 類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襁은 실로 짜서 만들어 어린아이를 등에 묶는 것이다.
樊須가 聖人의 門下에 있으면서 농사짓는 법과 菜田 가꾸는 것을 물었으니, 뜻이 비루하다. 공자께서 말하여 물리치심이 옳았을 터인데, 그가 나가기를 기다린 뒤에 그의 잘못을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인가? 그의 물음에 대해서 스스로 늙은 농부와 원예사만 못하다고 말씀하셨으니, 거절하기를 지극히 하신 것이다. 樊須의 학문은 의심컨대 이에 미치지 못하여 능히 묻지 못하였으니, 이는 한 귀퉁이를 들어 일러줌에 세 모퉁이를 반증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주지 않으신 것이다. 그가 이미 밖으로 나감에 미쳐서는 끝내 깨닫지 못하고 늙은 농부와 늙은 원예사를 찾아가 배우게 된다면 그 잘못됨이 더욱 커질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하시어 앞에서 말한 것은 뜻이 다른 데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 樊遲問仁: 樊遲問仁。子曰:
「居處恭,執事敬,與人忠。雖之夷狄,不可棄也。」:
樊遲가 仁을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충성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비록 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論語 子路>
恭은 용모를 위주로 말한 것이요, 敬은 일을 위주로 말한 것이니, 恭은 외모에 드러나고 敬은 속마음을 주장한다. 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굳게 지키어 잃지 않도록 면려한 것이다.
樊遲가 仁을 물은 것이 세 번인데, 이것이 맨 처음이고, 雍也篇의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先難後獲.’는 것이 다음이고, 顔淵篇의 ‘사람을 愛人.’는 것이 맨 나중일 것이다.


27. 有若(字 子有)

有若少孔子四十三歲。
有若은 공자보다 43세 젊다.

有若曰:
「禮之用,和為貴,先王之道斯為美。
小大由之,有所不行;
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信近於義,言可復也;
恭近於禮,遠恥辱也;
因不失其親,亦可宗也。」
유약이 말하였다.
를 운용하는 데는 조화를 귀하게 여기며先王의 는 이를 아름답다고 여겼다.
작은 일과 큰일에 모두 이를 따르는 것이나 예가 행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화의 취지만 알아 조화 자체에만 힘쓰고 예로써 이를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이 에 가까우면 약속한 말을 실행할 수 있다.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여기에 친근함을 잃지 않으면 가히 받들어 모실만하다.”

▶ 有若: 字는 子有로 魯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 등문공 滕文公 上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有若이 여러모로 행실을 따라 닮았기에 공자의 사후 子夏, 子張, 子游 등이 공자 대신 有若을 모시려고 했지만, 子舆가 이를 비판했다고 한다. 사기에도 다른 제자가 생전의 공자 언행에 대해 有若에게 질문했지만 유약이 대답할 수 없기에 공자를 대신할 수 없는 바를 거론하였다.
▶ 禮之用: 有子曰:
「禮之用,和為貴。先王之道斯為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有子가 말하였다.
“禮의 用은 和가 귀함이 되니, 先王의 道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리하여 작은 일과 큰 일에 모두 이것을 따른 것이다.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和를 알아서 和만 하고, 禮로써 節制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論語 學而>
禮는 天理의 節文이요, 人事의 儀則이다. 和는 從容하여 急迫하지 않은 뜻이다. 禮의 體됨은 비록 엄하나, 그러나 모두 自然의 이치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 用됨은 반드시 從容하여 급박하지 않아야 귀할 만한 것이 된다. 先王의 道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일에 이것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다시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다만 和가 귀하다는 것만 알아서 和에 한결같이 하고, 다시 禮로써 節制하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禮의 本然이 아니게 된다. 이 때문에 방탕한 데로 흐르고 돌아올 것을 잊어서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孔子既沒,弟子思慕,有若狀似孔子,弟子相與共立為師,師之如夫子時也。
공자가 죽은 뒤에도 제자들은 공자를 사모하였는데有若의 얼굴이 공자를 많이 닮았으므로 제자들이 상의여 스승으로 추대하고공자 때와 같이 스승으로 모셨다.

他日,弟子進問曰:
「昔夫子當行,使弟子持雨具,已而果雨。
弟子問曰:『夫子何以知之?』
夫子曰:『《詩》不云乎「月離于畢,俾滂沱矣。」
昨暮月不宿畢乎?』
他日,月宿畢,竟不雨。
훗날 제자 한 사람이 유약에게 물었다.
옛날에 공자께서는 외출하실 때 제게 우산을 지니라고 시켰는데얼마 뒤 과연 비가 내렸습니다.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 이르시기를 詩經에 <달이 畢星에 걸리면 큰 비가 내린다.>라고 하지 않았느냐어제 밤에 달이 필성에 걸리지 않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훗날 달이 필성에 걸려 있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소.

▶ 昔夫子當行: 巫馬施,陳人,字子期。少孔子三十歲,孔子將近行,命從者皆持蓋。已而果雨,巫馬期問曰:
「旦無雲,既日出,而夫子命持雨具。敢問何以知之?」孔子曰:
「昨暮月宿于畢。《詩》不云乎?『月離於畢,俾滂沱矣。』以此知之。」
巫馬施는 陳 사람으로 字는 子期이다. 공자보다 30세가 적었다. 공자가 가까운 들로 놀이를 나섰을 때 공자는 수행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우산을 가지고 가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그날 과연 비가 내리자 이를 보고 무마기가 선생님께 물었다.
“아침에는 구름도 없었고, 나설 때는 해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우산을 챙기라고 하셨는데 감히 여쭙습니다만 어떻게 비가 올 줄 아셨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젯밤 나는 달이 畢星에 걸린 것을 보았다. <詩經>에 이르지 않았더냐? ‘달이 필성에 걸리면 큰 비가 내린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비가 올 줄을 안 것이다.”<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31>
▶ 月離于畢,俾滂沱矣: “떠오른 달이 필성에 걸렸으니, 이는 큰비가 내릴 조짐이네.”詩經小雅漸漸之石의 시에서 나오는 말이다.
고향을 떠나서 머나먼 이국땅으로 원정을 나간 병사들이 큰비가 내리는 가운데 험준한 산악지대에 갇혀서 크게 고생을 하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月離于畢은 달이 비를 좋아하는 畢星에 걸렸다는 뜻으로 비가 올 조짐을 이르는 말이다. 離는 ‘걸리는 것’ 畢은 별의 이름이다. 主星은 황소자리이다. 俾는 ~하게 하다. 滂沱는 큰 비가 죽죽 내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擬態語이다.

 

商瞿年長無子,其母為取室。
商瞿는 나이 많도록 자식이 없었으므로 그의 어머니가 재혼을 권했소.

孔子使之齊,瞿母請之。
공자께서 상구를 로 심부름을 보내려고 하셨으므로 상구의 어머니는 그런 사정을 말하고 연기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孔子曰:
『無憂,瞿年四十後當有五丈夫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조금도 걱정할 것 없소구는 마흔이 넘어서야 다섯 아들을 둘 것입니다.’라고 했소.

已而果然。
그 뒤 과연 그대로 되었소.

問夫子何以知此?」
묻건대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었을까요?”

有若默然無以應。
유약은 대답할 수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弟子起曰:
「有子避之,此非子之座也!」
질문한 제자가 일어나 말하였다.
有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시오그 자리는 그대가 앉을 자리가 아니오!”

▶ 商瞿年長無子: 梁鱣,齊人,字叔魚。少孔子三十九歲,年三十,未有子,欲出其妻。商瞿謂曰:
「子未也。昔吾年三十八無子,吾母為吾更取室。夫子使吾之齊,母欲請留吾。夫子曰:『無憂也。瞿過四十,當有五丈夫。』今果然。吾恐子自晚生耳,未必妻之過。」從之,二年而有子。
梁鱣은 齊 사람으로 字는 叔魚이다. 공자보다 39세가 적었다. 나이 서른이 되어도 아들이 없자 그가 아내를 내쫓고자 하였다. 그러자 商瞿가 말하였다.
“자네는 그러지 말게. 옛날 내가 서른여덟 살이 되도록 아들이 없어서 우리 어머니께서 나를 위하여 다시 장가를 들도록 하셨으나 선생님께서 나를 齊로 보내셨지. 어머니가 나를 남아 있도록 청하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걱정하지 말라. 상구 너는 마흔이 넘어서 다섯 장부의 아들을 낳게 되리라.’고 하셨다. 지금 과연 그 말씀대로 되었다. 나는 자네가 아들을 늦게 낳는 것을 걱정할 뿐이지 그대 아내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양전이 이 말을 쫓았더니 그 후 2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32>


28. 公西赤(字 子華)

公西赤字子華。
公西赤가 子華이다.

少孔子四十二歲。
공자보다 42세 젊다.

子華使於齊,冉有為其母請粟。
자화가 로 심부름을 감에冉有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해 그가 없는 동안 먹을 양식을 청하였다.

孔子曰:
「與之釜。」
공자는 말하였다.
“1 를 주어라.”

請益,曰:
「與之庾。」
염유가 더 주면 좋겠다고 청하자 공자는 말하였다.
“1 를 주어라.”

冉子與之粟五秉。
염자는 곡식 다섯 을 자화의 어머니에게 주었다.

孔子曰:
「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
吾聞君子周急不繼富。」
그러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서적이 로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듣기를 군자는 궁박한 자를 돌봐주되 부자에게는 보태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子華使於齊: 子華使於齊,冉子為其母請粟。子曰:
「與之釜。」請益。曰:
「與之庾。」冉子與之粟五秉。子曰:
「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
子華가 공자를 위하여 齊에 심부름을 가자, 冉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달라고 요청하니, 공자께서
“釜를 주어라.”하셨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공자께서
“庾를 주어라.”하셨는데, 이보다 많은 5秉을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赤(: 子華)이 齊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君子는 窮迫한 자를 돌봐주되 부유한 자를 계속 대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論語 雍也>
子華는 公西赤이다. 使는 孔子를 위하여 심부름을 간 것이다. 釜는 6斗 4升이고, 庾는16斗이며, 秉은 16섬이다.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는 것은 부유함을 말한 것이다. 急은 窮迫한 것이다. 周는 不足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요, 繼란 여유가 있는 이를 계속 대주는 것이다.


29. 巫馬施(字 子旗)

巫馬施字子旗。
巫馬施는 자가 子旗이다.

少孔子三十歲。
공자보다 30세 젊다.

陳司敗問孔子曰:
「魯昭公知禮乎?」
陳 司敗가 공자에게 물었다.
魯昭公은 를 알았습니까?”

孔子曰:
「知禮。」
공자가 대답하였다.
예를 아셨다.”

退而揖巫馬旗曰:
「吾聞君子不黨,君子亦黨乎?
魯君娶吳女為夫人,命之為孟子。
孟子姓姬,諱稱同姓,故謂之孟子。
魯君而知禮,孰不知禮!」
공자가 떠나자 사패는 巫馬旗에게 읍하고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군자는 偏黨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군자도 편당을 하는가?
昭公께서 오왕의 딸을 부인으로 맞은 다음 부인을 吳孟子라고 불렀소.
그것은 맹자의 성이 였으므로 동성인 것을 꺼리어 바꾸어 부른 것이오.
그런 임금이 만일 예를 안다고 한다면 세상에 누가 예를 모르겠소!”

施以告孔子,孔子曰:
「丘也幸,茍有過,人必知之。
臣不可言君親之惡,為諱者,禮也。」
巫馬施가 공자에게 그 말을 고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는 다행이구나만약 나에게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이를 알아채는구나.
그러나 신하는 군주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법이니숨겨주는 것이 예이다.”

▶ 陳司敗問孔子曰: 陳司敗問昭公知禮乎?孔子曰:
「知禮。」孔子退,揖巫馬期而進之,曰:
「吾聞君子不黨,君子亦黨乎?君取於吳為同姓,謂之吳孟子。君而知禮,孰不知禮?」巫馬期以告。子曰:
「丘也幸,苟有過,人必知之。」:
陳 司敗가
“昭公이 禮를 알았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禮를 아셨다.”하고 대답하셨다. 孔子께서 나가시자, 司敗가 巫馬期에게 揖하고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君子는 偏黨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君子도 편당을 하는가?
昭公께서는 吳에서 장가드셨으니, 同姓이 된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吳孟子라고 불렀으니, 임금께서 禮를 아셨다면 누가 禮를 알지 못하겠는가?”
巫馬期가 이것을 아뢰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丘는 다행이다. 만일 잘못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 <論語述而>
陳은 나라 이름이다. 司敗는 官名이니 곧 司寇이다. 昭公은 魯 임금으로 이름은 稠이니, 威儀의 禮節에 익숙하여 당시 사람들이 禮를 잘 안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司敗가 이것을 가지고 질문하자, 孔子께서 대답을 이렇게 하신 것이다.
巫馬는 姓이요, 期는 字이니,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施이다. 司敗가 그에게 읍하여 나오게 한 것이며, 서로 도와 나쁜 짓을 숨겨주는 것을 黨이라 한다. 禮에 “同姓에게는 장가들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魯와 吳는 다 姬姓이었다. 吳姬로 하지 않고 吳孟子라 칭한 것은 그 사실을 숨겨 마치 宋 여자인 子姓(: 子氏姓)인 것처럼 한 것이다.
공자는 임금의 불미스러운 일을 숨긴 것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도 없고, 또 同姓에게 장가든 것을 禮를 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받아들여 허물로 삼고 사양하지 않으신 것이다. 茍는 진실로.


30. 梁鱣

梁鱣字叔魚。少孔子二十九歲。
양전은 자가 숙어이다공자보다 29세 젊다.

 

31. 顏幸

顏幸字子柳。少孔子四十六歲。
안행은 자가 자류이다공자보다 46세 젊었다.


32. 冉孺

冉孺字子魯,少孔子五十歲。
염유는 자가 자로이며공자보다 50세 젊었다.

 

33. 曹卹

曹卹字子循。少孔子五十歲。
조휼은 자가 자순이다공자보다 50세 젊었다.


34. 伯虔

 

伯虔字子析,少孔子五十歲。
백건은 자가 자석으로 공자보다 50세 젊었다.

 

35. 公孫龍

公孫龍字子石。少孔子五十三歲。
공손룡은 자가 자석이다공자보다 53세 젊었다.

 


36. 其他弟子

自子石已右三十五人,顯有年名及受業見于書傳。
자석부터 위의 35인은 나이와 성명이 분명하며 가르침을 받은 내용이 글로 전한다.

其四十有二人,無年及不見書傳者紀于左:
나머지 42명은 나이도 분명하지 않고 글로 전해진 것도 보이지 않아 아래와 같이 적는다.

冉季字子產。
염계는 자가 자산이다.


公祖句茲字子之。
공조구자는 자가 자지이다.

秦祖字子南

진조는 자가 자남이다.

漆雕哆字子斂。

칠조치는 자가 자렴이다.

顏高字子驕。
안고는 자가 자교이다.

漆雕徒父。
칠조도보.

壤駟赤字子徒。
양사적은 자가 자도이다.



商澤。
상택.


石作蜀字子明。
석작촉은 자가 자명이다.

任不齊字選。
임부제는 자가 선이다.


公良孺字子正。

공량유는 자가 자정이다.

后處字子裏。

후처는 자가 자리이다.

 

秦冉字開。
진염은 자가 개다.

公夏首字乘。

공하수는 자가 승이다.

奚容箴字子皙。
해용잠은 자가 자석이다.

公肩定字子中。

공견정은 자가 자중이다.

顏祖字襄。
안조는 자가 양이다.

鄡單字子家。
교단은 자가 자가이다.


句井疆。

구정강.

罕父黑字子索。

한보흑은 자가 자색이다.

秦商字子丕。
진상은 자가 자비이다.

申黨字周。

신당은 자가 주이다.

顏之仆字叔。
안지복은 자가 숙이다.


榮旂字子祈。
영기는 자가 자기이다.

縣成字子祺。

현성은 자가 자기이다.

左人郢字行。
좌인영은 자가 행이다.

燕伋字思。
연급은 자가 사이다.

鄭國字子徒。

정국은 자가 자도이다.

秦非字子之。
진비는 자가 자지이다.

施之常字子恒。
시지상은 자가 자항이다.

顏噲字子聲。

안쾌는 자가 자성이다.

步叔乘字子車。
보숙승은 자가 자거이다.

原亢籍。
원항적.

樂欬字子聲。

악해는 자가 자성이다.

廉絜字庸。
염혈은 자가 용이다.

叔仲會字子期。
숙중회는 자가 자기이다.

顏何字冉。

안하는 자가 염이다.

狄黑字皙。
적흑은 자가 석이다.

邦巽字子斂。
방손은 자가 자렴이다.

孔忠。

공충.

公西輿如字子上。
공서여여는 자가 자상이다.

公西葴字子上。
공서침은 자가 자상이다.

 

太史公曰:
學者多稱七十子之徒,譽者或過其實,毀者或損其真,鈞之未睹厥容貌,則論言弟子籍,出孔氏古文近是。
余以弟子名姓文字悉取論語弟子問并次為篇,疑者闕焉。
태사공은 말한다.
學者에 70여 명의 공자의 제자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이 많으나칭찬하는 사람 중 혹자는 실제보다 지나치고비방하는 사람 중 혹자는 사실보다 더 나쁘게 평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나 내용을 알지 못함은 같다제자들의 명부는 (공자의 옛집 벽속에서 나온古文의 기록이므로 거의 옳을 터이다.
나는 제자들의 성명과 말을 모두 <논어>에 있는 제자의 문답에서 취하고 함께 이을 엮었고의심나는 것은 싣지 않았다.”

▶ 鈞之未睹厥容貌: 鈞은 均과 통하여 어느 쪽이나. 厥은 其.
▶ 孔氏古文: 孔壁古文이라고도 하며, 孔子의 옛집에서 나온 고문을 말한다. 漢나라 武帝말년에 魯恭王이 궁궐 확장을 위해 공자가 살던 집을 헐었다가 벽 안에서 과두문으로 쓰인 상서·예·논어·효경 등 여러 고서를 발견하였다. 당시에는 과두문을 읽고 해독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孔安國(: 공자의11대손)은 古文尙書가 금문상서보다 16편 많은 내용이 있음을 알아냈고, 종래의 금문보다 고문을 중시하는 학풍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