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丞相列傳은 西漢 초의 대신 張蒼, 周昌, 任敖, 申屠嘉 네 명에 대한 合傳이다. 사마천이 서한의 사학가였으므로 서한의 재상들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魏相, 邴吉, 黃霸, 匡衡에 대하여 추가로 실려 있다. 이것은 사마천의 기록이 아니고, 나중에 褚小孫이 덧붙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征和(漢武帝의 열 번째 年號) 시기 이후의 기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태사공 사마천은 張蒼은 문학·음률·역법에 뛰어난 漢의 명재상이었으며, 周昌은 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任敖는 옛날의 은덕으로 인해 등용되었으며, 申屠嘉는 강직해 절조를 지켰다고 하였다.
1.張蒼
張丞相蒼者,陽武人也。
승상 張蒼은 陽武 사람이다.
好書律歷。
圖書·音律·曆法을 좋아하였다.
秦時為御史,主柱下方書。
秦 때 御史가 되어 황궁에서 方術을 적은 책을 맡아보았다.
有罪,亡歸。
죄를 짓자 고향으로 달아났다.
及沛公略地過陽武,蒼以客從攻南陽。
沛公이 여러 지역을 공략하면서 過陽에 들림에, 張蒼은 賓客으로서 隨從하여 南陽郡을 공격하였다.
蒼坐法當斬,解衣伏質,身長大,肥白如瓠.
張蒼이 죄를 범하여 참형에 해당하여, 옷을 벗기고 形具에 엎어놓으니 몸집이 크고 살이 찌고 피부가 하얗기가 표주박 같았다.
時王陵見而怪其美士,乃言沛公,赦勿斬。
이때 王陵이 보고, 그가 체격이 아름다운 선비임을 기이하게 여겨, 沛公에게 말하기를, 참수하지 말고 사면하자고 하였다.
遂從西入武關,至咸陽。
이리하여 沛公을 따라 서쪽으로 武關에 진입하여 咸陽에 이르렀다.
沛公立為漢王,入漢中,還定三秦。
沛公이 漢王에 오르자 漢中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三秦을 평정하였다.
陳餘擊走常山王張耳,耳歸漢,漢乃以張蒼為常山守。
陳餘가 常山王 張耳를 공격하자 張耳는 漢으로 귀순하였고, 漢은 이에 張蒼을 常山太守로 삼았다.
從淮陰侯擊趙,蒼得陳餘。
淮陰侯가 趙를 공격할 때 따라가서 陳餘를 사로잡았다.
趙地已平,漢王以蒼為代相,備邊寇。
조 땅이 평정된 후 漢王은 張蒼을 代의 정승으로 삼아 변방의 외적에 대비하였다.
已而徙為趙相,相趙王耳。
머지않아 轉任되어 趙의 相國이 되어 趙王 張耳를 보좌하였다.
耳卒,相趙王敖。
張耳가 죽은 뒤에는 趙王 敖를 보좌하였다.
復徙相代王。
다시 전임되어 代王을 보좌하였다.
燕王臧荼反,高祖往擊之。
燕王 臧荼가 반란을 일으키자 高祖가 가서 공격하였다.
蒼以代相從攻臧荼有功,以六年中封為北平侯,食邑千二百戶。
張蒼은 대의 相國으로서 漢王을 따라가서 臧荼를 곤격함에 공을 세우매, 高祖 6년(기원전 201년)에 北平侯에 봉하였고 1천 2백 호의 食邑을 하사하였다.
▶ 好書律歷 : 서적, 음률, 역법을 좋아하다.
▶ 主柱下方書 : 황궁에서 각종 문서를 담당하다. 柱下는 궁전의 기둥 밑.
▶ 坐法 :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다.
▶ 質 : 鑕과 같다. 고대 형구의 하나로 허리를 자를 때 밑에 대는 받침대.
▶ 瓠 : 표주박.
▶ 美士 : 몸매가 아름답거나 또는 才德을 겸비한 사람.
▶ 王陵 : 유방이 패에서 일어나자 사람 수천 명을 모아 귀의하여 유방을 따라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高祖 6년(기원전 201년) 安國侯에 봉해졌다. 右丞相이 되었다. 直言을 잘하였다.
▶ 陳餘擊走常山王張耳 : 張耳와 陳餘는 사이가 벌어져 陳餘가 張耳를 공격하자 張耳는 劉邦에게 투항하였고, 陳餘는 趙王 헐을 도와 趙王으로 세웠으나 漢將 회음후 韓信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史記 권89 張耳陳餘列傳>
▶ 淮陰侯 : 韓王 信을 말한다.
▶ 徙 : 轉任시키다.
遷為計相,一月,更以列侯為主計四歲。
재정을 관리하는 計相으로 승진한 지 한 달 후에 다시 列侯의 신분으로 4년 동안 主計가 되었다.
是時蕭何為相國,而張蒼乃自秦時為柱下史,明習天下圖書計籍。
이때 蕭何가 相國이었고, 張蒼은 秦 때부터 柱下史가 되어 천하의 도서·호적·재정에 밝았다.
蒼又善用算律歷,故令蒼以列侯居相府,領主郡國上計者。
張蒼은 또 수학·음률·역법을 정통하였기에, 張蒼에게 열후의 신분으로 相府에 있으면서 郡國의 회계를 감독하게 하였다.
黥布反亡,漢立皇子長為淮南王,而張蒼相之。
黥布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멸망하자, 漢은 皇子 長을 淮南王으로 세우고 張蒼을 그의 相國으로 삼았다.
十四年,遷為御史大夫。
14년 후에 御史大夫로 승진하였다.
▶ 遷 : 昇職하다. 자리를 옮기다.
▶ 主計 : 국가 재정책임자
▶ 蕭何 : 高祖 유방의 재상.
▶ 御史大夫 : 관리의 비행에 대한 감찰과 탄핵 임무와 승상을 보좌하는 부승상 및 황제의 비서역할을 하는 직책.
※ 張蒼은 任敖에 이어 어사대부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치적은 장승상열전 중 임오 이후에 추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장에 이어서 周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2. 周昌
周昌은 漢 沛縣 사람으로 周苛의 從弟이다.
秦 때 泗水의 말단관리였다가 劉邦을 따라 패현에서 봉기하여 秦을 격파하여 中尉가 되었다.
內史로 敖倉을 견고하게 방어하여 御史大夫가 되고, 項羽를 격파했다.
유방이 제위에 오르자 6년(기원전 201년) 汾陰侯에 봉해졌다.
사람됨이 고집이 세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말을 더듬었다.
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如意를 세우려고 하자 한사코 이를 막았다.
呂后가 趙王을 독살하자 병이라 하여 入朝하지 않았다.
周昌者,沛人也。
周昌은 沛縣 사람이다.
其從兄曰周苛,秦時皆為泗水卒史。
그의 從兄은 周苛라고 하는데, 秦 때 모두 泗水의 말단 관리였다.
及高祖起沛,擊破泗水守監,於是周昌、周苛自卒史從沛公,沛公以周昌為職志,周苛為客。
高祖가 沛縣에서 起兵하여 사수의 郡守와 郡監을 공격하여 격파함에 미쳐, 周昌과 주가는 스스로 卒史로서 沛公을 따르니, 沛公은 周昌을 군중의 깃발을 관리하는 職志로 삼고 주가를 빈객으로 삼았다.
從入關,破秦。
沛公을 따라 關中에 들어가서 秦을 무너뜨렸다.
沛公立為漢王,以周苛為御史大夫,周昌為中尉。
沛公은 漢王이 되자, 주가를 어사대부로 삼고 周昌을 中尉로 삼았다.
▶ 從兄 : 堂兄. 사촌형.
▶ 周苛 : 미상 ~ BC 204년. 전한 泗水 沛縣 사람. 劉邦을 따라 內史가 되고, 御史大夫로 옮겼다. 초한전쟁 때 魏豹, 樅公과 함께 滎陽을 지켰다. 楚가 형양을 포위하자 위표가 일찍이 漢에 배반했다면서 먼저 그를 살해하였다. 나중에 項羽가 형양을 함락하자 포로로 잡혔다. 項羽가 항복을 권하면서 上將軍으로 임명하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다가 烹死되었다.
▶ 卒史 : 말단관리. 属吏.
漢王四年,楚圍漢王滎陽急,漢王遁出去,而使周苛守滎陽城。
漢王 4년, 楚가 漢王을 滎陽에서 포위하여 위급해지자, 漢王은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면서 주가에게 형양성을 지키게 하였다.
楚破滎陽城,欲令周苛將。
楚가 형양성을 점령하고 주가를 楚의 장수로 삼으려 하였다.
苛罵曰:
「若趣降漢王!
不然,今為虜矣!」
주가가 꾸짖었다.
“너는 빨리 漢王에게 항복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터이다!”
項羽怒,亨周苛。
項羽가 노하여 주가를 삶아 죽였다.
於是乃拜周昌為御史大夫。
이리하여 漢王이 周昌을 어사대부에 임명하였다.
常從擊破項籍。
周昌이 항상 漢王을 따르며 項籍을 격파하였다.
以六年中與蕭、曹等俱封:封周昌為汾陰侯;
周苛子周成以父死事,封為高景侯。
漢王 6년(기원전 201년)에 蕭何·曹參 등과 함께 후에 봉함에, 周昌을 汾陰侯에 봉하였고,
주가의 아들 周成을 아버지가 죽은 일로 高景侯에 봉하였다.
昌為人彊力,敢直言,自蕭、曹等皆卑下之。
周昌은 사람됨이 屈强하여 과감하게 직언하니, 소하와 조참 등도 자신을 낮추었다.
昌嘗燕時入奏事,高帝方擁戚姬,昌還走,高帝逐得,騎周昌項,問曰:
「我何如主也?」
周昌이 어느 날 高帝가 휴식을 취함에 들어가서 일을 아뢰고자 하였는데, 高帝가 마침 戚姬를 껴안고 있었는데, 周昌이 돌아서서 달아나니 高帝가 뒤쫓아 와서 붙잡고 周昌의 목에 걸터앉아 물었다.
“나는 어떤 군주냐?”
昌仰曰:
「陛下即桀紂之主也。」
周昌이 고개를 쳐들고 대답하였다.
“폐하는 傑紂 같은 군주입니다.”
於是上笑之,然尤憚周昌。
이에 高帝는 웃었지만 周昌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 漢王四年 : <漢書>에는 漢王三年으로 기록되어 있다.
▶ 若 : 너.
▶ 趣 : 빨리. 얼른.
▶ 亨 : 烹과 통함. 삶아 죽이는 형벌.
▶ 六年 : 高祖 6년을 말한다. 기원전 201년.
▶ 蕭曹 : 蕭何와 曹參. 蕭何는 高祖 유방의 재상이며, 曹參은 高祖의 功臣이다. 조참은 소하와 더불어 高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
▶ 卑下 : 자신을 낯춤.
▶ 強力 : 강직하고 굴복하지 않다. 屈强, 倔强
▶ 燕時 : 한가하게 휴식하고 있을 때.
▶ 戚姬 : 高祖의 寵姬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高祖가 태자를 폐하고 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高祖가 죽자 여후가 趙王을 독살하고 척부인을 투옥한 뒤 手足을 모두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 넣었으며, 벙어리 약을 먹여 변소에 던져두었다. 그런 뒤 인간돼지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 還走 : 돌아서서 달아나다.
▶ 項 : 목.
▶ 憚 : 꺼리다. 기피하다.
▶ 桀紂 : 하나라 桀왕과 은나라 紂왕. 폭군.
及帝欲廢太子,而立戚姬子如意為太子,大臣固爭之,莫能得;
上以留侯策即止。
황제가 태자를 폐하고 戚姬의 아들 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 함에, 대신들이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누구도 황제의 허락을 얻지 못하다가, 황제는 留侯 張良의 계책으로 인하여 중지하였다.
而周昌廷爭之彊,上問其說,昌為人吃,又盛怒,曰:
「臣口不能言,然臣期期知其不可。
陛下雖欲廢太子,臣期期不奉詔。」
周昌이 조정에서 강경하게 간하자 황제가 그의 의견을 물으매, 周昌은 본래 말을 더듬는 데다가 몹시 화가 났기 때문에 더듬으며 말하였다.
“신의 입은 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신은 분명 기...기필코 불가함을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태자를 폐하려 하신다면 신은 기...기필코 조서를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上欣然而笑。
황제는 흔연히 웃고 말았다.
既罷,呂后側耳於東箱聽,見周昌,為跪謝曰:
「微君,太子幾廢。」
그 일이 끝나자 呂后가 동쪽 측실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周昌을 보고 무릎을 꿇고 감사하였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태자는 거의 폐위되었을 터이오.”
▶ 帝欲廢太子 : 황제가 태자는 인자하고 나약하며 如意는 자신을 닮았다고 하여, 항상 그를 도성인 장안에 머물게 하여 태자를 폐하고 趙王을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대신들이 이를 간쟁하였으나 모두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 如意 : 趙隱王. 高祖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었는데, 高祖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하여 독살되었다.
▶ 留侯策 : 張良의 계책.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 廷爭 : 조정에서 간쟁함.
▶ 吃 : 말을 더듬음.
※ 期期艾艾 : 말할 때 몹시 더듬거림을 비유하는 말이다. 漢의 장군인 周昌은 말할 때 심하게 더듬거렸다. 漢의 高祖가 정부인 呂后가 낳은 태자를 폐하고 총애하는 戚夫人의 아들인 如意를 황태자로 세우려 하자 대신들을 비롯하여 周昌도 크게 반대하였다. 반벙어리인 周昌은 高祖에게 “폐하는 태자를 폐하려고 하시는데 저는 결코 명령에 따르지 못합니다.”라고 말함에, '期'자를 되풀이하여 말함으로써 '기기'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중국의 삼국시대 蜀을 멸망시킨 魏의 뛰어난 將帥인 鄧艾도 말더듬이였는데, 말할 때 '艾艾'를 되풀이하였다는 이야기가 世說新語에 전해진다. 周昌이 말한 '기기'와 등애가 말한 '애애'가 합해져서 말을 더듬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 微 : 만약 ~이 아니라면.
▶ 幾 : 거의.
是後戚姬子如意為趙王,年十歲,高祖憂即萬歲之後不全也。
그 후 戚姬의 아들 如意가 趙王이 됨에 나이가 열 살이었으므로, 高祖는 자신이 죽은 후에 如意가 몸을 보전하지 못할까 근심하였다.
趙堯年少,為符璽御史。
趙堯가 어린 나이로 符璽御史가 되었다.
趙人方與公謂御史大夫周昌曰:
「君之史趙堯,年雖少,然奇才也,君必異之,是且代君之位。」
趙人 方與公이 어사대부 周昌에게 말하였다.
“상공의 어사 趙堯는 나이가 비록 어리나 비범한 인재이니, 상공께서는 꼭 남다르게 보십시오, 그는 장차 그대의 지위를 대신할 터입니다.”
周昌笑曰;
「堯年少,刀筆吏耳,何能至是乎!」
周昌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趙堯는 나이 어린 刀筆吏일 뿐이니,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겠소!”
居頃之,趙堯侍高祖。
얼마 지나지 않아 趙堯가 高祖를 모시게 되었다.
高祖獨心不樂,悲歌,群臣不知上之所以然。
高祖가 홀로 마음이 즐겁지 않아 슬프게 노래하였으나, 신하들은 황제가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趙堯進請問曰:
「陛下所為不樂,非為趙王年少而戚夫人與呂后有卻邪?
備萬歲之後而趙王不能自全乎?」
趙堯가 나아가 공손히 물었다.
“폐하께서 즐거워하지 않는 이유는 趙王이 나이가 어리고 戚姬이 여후와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폐하의 萬歲之後에 趙王이 자신을 보전하지 못함을 대비하십니까?”
高祖曰:
「然。
吾私憂之,不知所出。」
高祖가 말하였다.
“그렇다.
내가 마음속으로 염려하나,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堯曰:
「陛下獨宜為趙王置貴彊相,及呂后、太子、群臣素所敬憚乃可。」
趙堯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趙王을 위하여, 지위가 높고 강직한 相國을 두시되, 여후·태자·신하들이 평소에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에 미치기만 하면 됩니다.”
高祖曰:
「然。
吾念之欲如是,而群臣誰可者?」
高祖가 말하였다.
“그렇구나.
짐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는데 신하 중에 누가 좋겠는가?”
堯曰:
「御史大夫周昌,其人堅忍質直,且自呂后、太子及大臣皆素敬憚之。
獨昌可。」
趙堯가 말하였다.
“어사대부 周昌은 사람됨이 굳게 참으며 정직하고, 또 여후·태자·대신들이 모두 평소에 존경하고 두려워합니다.
오직 周昌이 적임자입니다.”
高祖曰:
「善。」
高祖가 말하였다.
“좋다.”
於是乃召周昌,謂曰:
「吾欲固煩公,公彊為我相趙王。」
이에 周昌을 불러 말하였다.
“짐이 공을 굳이 번거롭게 하고자 하니, 공에게 무리지만 나를 위하여 趙王의 相國이 되어주시오.”
周昌泣曰:
「臣初起從陛下,陛下獨柰何中道而棄之於諸侯乎?」
周昌이 울며 말하였다.
“신은 처음부터 폐하를 모셔왔는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중도에 저를 제후에게 보내버리십니까?”
高祖曰:
「吾極知其左遷,然吾私憂趙王,念非公無可者。
公不得已彊行!」
高祖가 말하였다.
“짐도 그것이 좌천임을 잘 알지만, 사사로이 趙王을 걱정하다 보니, 공이 아니고는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하오.
어쩔 수 없으니, 공은 무리이어도 가주시오!”
於是徙御史大夫周昌為趙相。
이리하여 어사대부 周昌이 趙의 相國이 되었다.
既行久之,高祖持御史大夫印弄之,曰:
「誰可以為御史大夫者?」
周昌이 간 지 한참 뒤, 高祖가 어사대부의 관인을 손에 쥐고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누구를 어사대부로 임명하여야 하는가?”
孰視趙堯,曰:
「無以易堯。」
趙堯를 자세히 보다가 말하였다.
“趙堯와 맞바꿀 사람이 없구나.”
遂拜趙堯為御史大夫。
그리고는 마침내 趙堯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堯亦前有軍功食邑,及以御史大夫從擊陳豨有功,封為江邑侯。
趙堯는 전에 軍功으로 받은 식읍이 있었고, 또 어사대부가 된 뒤에 隨從하여 陳豨를 공격함에 공을 세우매, 江邑侯에 봉하였다.
▶ 即 : 即은 부사로 쓰여 긍정이나 강조를 나타내는 “곧…이다” “…하면 곧”을 뜻한다.
▶ 萬歲之後 : 황제가 죽은 후.
▶ 符璽御史 : 어사로서 옥새를 담당하는 직책.
▶ 趙堯 : 高祖의 공신이며, 어사대부를 지냈다. 高祖가 혜제 대신 如意를 태자로 삼으려다 결국 포기하고 趙隱王에 봉하였으나, 나중에 조은왕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였다. 趙堯는 高祖를 모시다가 高祖가 즐거워하지 않고 슬픈 노래를 부르자, 신하 중에서 홀로 高祖의 근심의 원인을 지적하였다. 高祖가 해결책을 묻자 귀하고 강한 신하를 趙 승상으로 삼도록 진언하면서 어사대부 周昌을 추천하였다. 高祖는 周昌 대신에 趙堯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로 섬겼다. 혜제가 죽고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황후가 정권을 쥐자, 조은왕을 위하여 계책을 세웠음을 고황후가 원망하였으므로, 처벌을 받고 어사대부에서 면직됐고 작위를 잃었다.
▶ 刀筆吏 : 刀筆은 대쪽에 글씨를 쓰는 붓과 잘못된 글씨를 깎아내는 칼을 가리킨 것으로, 도필리는 낮은 벼슬아치를 가리킨다.
▶ 居頃之 : 얼마 지나지 않아.
▶ 郤 : 隙과 같다. 틈. 사이가 좋지 않다.
▶ 孰視 : 孰은 熟과 같다. 눈여겨 자세히 보다.
▶ 無以易堯 : 趙堯가 적합하여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없다. 易은 바꾸다.
高祖崩,呂太后使使召趙王,其相周昌令王稱疾不行。
高帝가 붕어하니 여태후가 사신을 보내 趙王을 불러오게 하매, 相國 周昌은 趙王에게 병을 핑계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使者三反,周昌固為不遣趙王。
사자가 세 번이나 거듭 왕래하였으나 周昌은 완고히 趙王을 보내지 않았다.
於是高后患之,乃使使召周昌。
이에 高后가 그것을 근심하여 사자를 보내 周昌을 불렀다.
周昌至,謁高后,高后怒而罵周昌曰:
「爾不知我之怨戚氏乎?
而不遣趙王,何?」
周昌이 입궐하여 고후를 뵈니 고후가 화를 내며 周昌을 꾸짖었다.
“그대는 내가 戚氏를 원망함을 모르시오?
그런데도 趙王을 보내지 않으니, 무엇 때문이오?”
昌既徵,高后使使召趙王,趙王果來。
周昌이 불려온 뒤에 고후는 사자를 보내 趙王을 부르니 趙王이 과연 왔다.
至長安月餘,飲藥而死。
趙王이 장안에 도착한 지 한 달여,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周昌因謝病不朝見,三歲而死。
周昌이 그로 인하여 병을 핑계로 조현하지 않다가 3년 후에 죽었다.
後五歲,高后聞御史大夫江邑侯趙堯高祖時定趙王如意之畫,乃抵堯罪,以廣阿侯任敖為御史大夫。
周昌이 죽은 지 5년 후에, 고후가 듣기에, 어사대부 江邑侯 趙堯가 高祖 때에 趙王 如意를 위한 계책을 도모하였다고 하므로, 趙堯를 처벌하였으며, 廣阿侯 任敖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 三反 : 세 번을 왕래하다. 反은 返과 같다.
▶ 後五歲 :周昌이 죽은 지 5년 후. 즉 高後 元年,기원전 184年。
▶ 畫 : 꾀하다. 계책.
▶ 抵堯罪 : 抵罪는 죄를 지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다.
3.任敖
任敖는 沛縣 사람으로 젊어서 獄吏가 되었는데 평소 劉邦과 친했다.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를 좇아 御史가 되어 豊邑을 2년 동안 지켰다.
유방이 漢王에 봉해지자 그를 上黨守로 삼았으며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매 상당을 굳게 지킨 공으로 廣阿侯에 봉해졌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조요의 후임으로 어사대부가 됐다. 3년 후 면직됐고, 문제 원년(기원전 179년)에 죽었다.
이 장의 任敖에 대한 기록은 간단하고, 임오의 뒤를 이은 張蒼의 치적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
任敖者,故沛獄吏。
임오는 본래 패현의 獄吏였다.
高祖嘗辟吏,吏系呂后,遇之不謹。
高祖가 일찍이 관리를 피할 때, 옥리가 呂后를 잡아가서 대우함이 무례하였다.
任敖素善高祖,怒,擊傷主呂后吏。
임오는 평소에 高祖와 사이가 좋으매, 화가 나서 여후의 옥리를 때려 상처를 입혔다.
及高祖初起,敖以客從為御史,守豐二歲.
高祖가 처음 起兵함에, 임오는 빈객으로서 高祖를 따르며 어사가 되어 2년 동안 豐邑을 지켰다.
高祖立為漢王,東擊項籍,敖遷為上黨守。
高祖가 漢王이 되고 나서 동쪽으로 項籍을 칠 때, 임오는 上黨의 郡守로 벼슬을 옮겼다.
陳豨反時,敖堅守,封為廣阿侯,食千八百戶。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임오가 상당을 굳게 지키매, 廣阿侯에 봉하고 1천 8백 호의 식읍을 하사하였다.
高后時為御史大夫。
高后 때 어사대부가 되었다.
三歲免,以平陽侯曹窋為御史大夫。
3년 후에 면직되었고, 平陽侯 曹窋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高后崩,與大臣共誅呂祿等。
고후가 붕어하자 조줄은 대신들과 함께 呂祿 등을 함께 주멸하였다.
免,以淮南相張蒼為御史大夫。
파면되자, 淮南의 相國 張蒼이 어사대부가 되었다.
▶ 高祖 : 劉邦.
▶ 辟吏 : 죄를 저질러 관리의 체포를 피하여 다니다. 辟는 避와 같다.
▶ 呂后 : 高祖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고, 자는 娥姁며, 高后로도 불린다.
▶ 不謹 : 무례함.
▶ 曹窋 : 高祖의 공신인 趙參의 아들.
1-2.張蒼의 치적
蒼與絳侯等尊立代王為孝文皇帝。
張蒼은 絳侯 등과 함께 代王을 옹립하니 孝文皇帝가 되었다.
四年,丞相灌嬰卒,張蒼為丞相。
한문제 4년에 승상 灌嬰이 죽으니 張蒼이 승상이 되었다.
自漢興至孝文二十餘年,會天下初定,將相公卿皆軍吏。
漢이 건립되어 효문황제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이 지나서,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었고, 將相, 公卿이 모두 軍吏이었다.
張蒼為計相時,緒正律歷。
張蒼은 재정을 관리하는 計相으로 있으면서 음률과 역법을 정리하고 바로잡았다.
以高祖十月始至霸上,因故秦時本以十月為歲首,弗革正初。
高祖가 10월에 처음 霸上에 이르러 秦을 멸하였으매, 원래 秦 때 10월을 歲首로 삼았음을 고치지 않았다.
推五德之運,以為漢當水德之時,尚黑如故。
五德의 운행에 근거하여 漢은 水德의 시대라고 여기고, 검은색을 숭상함을 예전과 같게 하였다.
吹律調樂,入之音聲,及以比定律令。
12律의 음계를 바로잡고 음의 곡조를 조정하여 五聲八音에 맞게 하였으며, 경중대소의 비례로 법령을 정하였다.
若百工,天下作程品。
모든 장인들의 규범에 맞게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至於為丞相,卒就之,故漢家言律歷者,本之張蒼。
張蒼이 승상이 됨에 이르러 마침내 완성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漢代에 율력을 말하는 자는 張蒼의 설에 근본을 두었다.
蒼本好書,無所不觀,無所不通,而尤善律歷。
張蒼은 본래 책을 좋아하여 보지 않은 책이 없고,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음률과 역법에 더욱 능하였다.
▶ 孝文皇帝 : 漢文帝.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태후가 죽고 주발 · 진평 · 제애왕 · 당시 주허후 등이 여씨 세력을 토벌하고 代王 劉恆을 효문제로 세웠다.
▶ 四年 : 漢文帝 前元 4년. 기원전 176년.
▶ 緒正 : 근본을 찾아 바로잡음.
▶ 歲首 : 年初. 正初
▶ 五德 : 五行. 金木水火土.
▶ 運 : 운행변화.
▶ 水德 : 오행상 水는 검은색이며 북쪽을 의미한다.
▶ 吹律調樂 : 律은 관악기의 열두 가지 음계. 樂調는 음악의 곡조.
▶ 音聲 : 五聲八音.
▶ 百工 : 모든 匠人.
▶ 程品 : 규칙.
張蒼德王陵。
張蒼은 王陵에게 은덕을 입었다.
王陵者,安國侯也。
왕릉은 安國侯이다.
及蒼貴,常父事王陵。
張蒼은 귀하게 된 후에도 항상 왕릉을 아버지처럼 섬겼다.
陵死後,蒼為丞相,洗沐,常先朝陵夫人上食,然後敢歸家。
왕릉이 죽은 뒤에 張蒼이 승상이 되자, 휴일에는 항상 먼저 왕릉의 부인을 뵙고 음식을 올린 후 집으로 돌아갔다.
蒼為丞相十餘年,魯人公孫臣上書言漢土德時,其符有黃龍當見。
張蒼이 승상이 된 지 10여 년, 魯 사람 公孫臣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漢은 土德의 시대이니 그 조짐으로 黃龍이 나타나겠다고 하였다.
詔下其議張蒼,張蒼以為非是,罷之。
황제가 조서로 그의 주장을 張蒼에게 내리니 張蒼은 옳지 않다고 하여 폐지하였다.
其後黃龍見成紀,於是文帝召公孫臣以為博士,草土德之歷制度,更元年。
그 뒤에 황룡이 成紀縣에 나타나자 문제는 공손신을 불러 博士로 삼고, 토덕의 시대에 맞는 역법제도를 기초하게 하고 나라의 元年을 바꾸었다.
▶ 王陵 : 유방이 패에서 일어나자 사람 수천 명을 모아 귀의하여 유방을 따라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高祖 6년(기원전 201년) 安國侯에 봉해졌으며, 右丞相이 되었다. 直言을 잘하였다.
▶ 德王陵 : 왕릉이 베풀어준 은덕에 감격하다.
▶ 洗沐 : 휴식일. 漢 제도에 관원들은 5일에 한 번 목욕하고 쉬도록 하였다.
▶ 土德 : 천자의 덕이 왕성한 시기.
▶ 見 : 現과 같다. 나타나다.
▶ 更元年 : 연호를 바꾸는 해를 원년이라 하며, 文帝 前元 16년(기원전 164년)을 개칭하여 원년으로 바꾸었다.
張丞相由此自絀,謝病稱老。
장승상은 이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고, 병을 핑계하며 늙었다며 쉬기를 청하였다.
蒼任人為中候,大為姦利,上以讓蒼,蒼遂病免。
張蒼이 추천하여 中候가 된 사람이 크게 부당한 이득을 취하여, 황제가 그 일로 張蒼을 책망하자 張蒼은 마침내 병을 핑계 삼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蒼為丞相十五歲而免。
張蒼은 승상이 된 지 15년 만에 물러난 것이다.
孝景前五年,蒼卒,謚為文侯。
孝景帝 5년(기원전 152년)에 張蒼이 죽으니 시호를 文侯라 하였다.
子康侯代,八年卒。
아들 康이 후를 이었다가 8년 만에 죽었다.
子類代為侯,八年,坐臨諸侯喪後就位不敬,國除。
아들 類가 이어서 후가 되었으며, 8년 후에 제후의 장례에 참석한 뒤에 御前에 나간 일이 불경하다고 하여 봉국을 해제하였다.
初,張蒼父長不滿五尺,及生蒼,蒼長八尺餘,為侯、丞相。
본래 張蒼의 아버지는 신장이 五尺도 못 되었는데, 張蒼을 낳으니 張蒼은 신장이 8척 남짓이었고 侯가 되고 승상이 되었다.
蒼子復長。
張蒼의 아들 또한 키가 컸다.
及孫類,長六尺餘,坐法失侯。
손자 張類에 이르러서는 키가 6척 남짓하였으며, 법을 어겨 후의 작위를 상실하였다.
蒼之免相後,老,口中無齒,食乳,女子為乳母。
張蒼은 승상을 그만둔 뒤 늙어서 치아가 없어서 젖을 먹고 살았는데, 여인을 유모로 두었다.
妻妾以百數,嘗孕者不復幸。
처첩이 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한 번 임신한 여자는 다시 총애하지 않았다.
蒼年百有餘歲而卒。
張蒼의 나이가 100여 세가 되어 죽었다.
▶ 絀 : 黜과 통하여 내쫓다.
▶ 讓 : 책망하다. 꾸짖다.
▶ 孝景前五年 : 漢景帝 前元 5년. 기원전 152년.
▶ 不敬 : 무례함.
▶ 尺 : 자. 약 30.3cm
4. 申屠嘉
申屠嘉는 前漢 梁 사람으로 처음에 劉邦을 따라 項羽를 공격하여 都尉가 되었다.
惠帝 때 淮陽守를 지냈다.
文帝 때 御史大夫로 옮기고 丞相에 임명되어 故安侯에 봉해졌다.
사람됨이 청렴하고 강직하였다.
文帝의 寵臣 鄧通이 어전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자 죄를 물어 참수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급히 사면해 모면하였다.
景帝 초에 晁錯가 法令을 고쳤을 때 전례를 근거로 참수하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시호는 節이다.
申屠丞相嘉者,梁人,以材官蹶張從高帝擊項籍,遷為隊率。
승상 申屠嘉는 梁의 사람인데, 용감한 强弓의 射手로서 高帝를 따라 項籍을 공격하여 隊率가 되었다.
從擊黥布軍,為都尉。
高帝를 따라 黥布의 군대를 공격함에 都尉가 되었다.
孝惠時,為淮陽守。
孝惠帝 때 淮陽郡守가 되었다.
孝文帝元年,舉故吏士二千石從高皇帝者,悉以為關內侯,食邑二十四人,而申屠嘉食邑五百戶。
孝文帝 원년(기원전 179년), 예전에 高皇帝를 수행하여 2천석의 녹봉을 받았던 관리를 모두 다 關內侯로 삼았고, 식읍을 준 사람은 24명이었는데, 申屠嘉는 5백 호의 식읍을 받았다.
張蒼已為丞相,嘉遷為御史大夫。
張蒼이 승상이 된 후에 申屠嘉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張蒼免相,孝文帝欲用皇后弟竇廣國為丞相,曰:
「恐天下以吾私廣國。」
張蒼이 승상에서 파면되었을 때, 孝文帝는 황후의 아우 竇廣國을 승상으로 삼으려 하여 말하였다.
“천하 사람들은 아마 내가 그를 편애한다고 하겠구나.”
廣國賢有行,故欲相之,念久之不可,而高帝時大臣又皆多死,餘見無可者,乃以御史大夫嘉為丞相,因故邑封為故安侯。
竇廣國은 현명하고 덕행이 있으므로 그를 승상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오래 생각해보아도 불가하매, 高帝 때의 대신들이 거의 다 죽었고 나머지에는 적합한 자가 보이지 않아, 어사대부 申屠嘉를 승상으로 삼고, 원래의 식읍대로 하여 故安侯에 봉하였다.
嘉為人廉直,門不受私謁。
申屠嘉는 사람됨이 청렴하고 강직하여, 집에서 사사로운 청탁을 받지 않았다.
是時太中大夫鄧通方隆愛幸,賞賜累巨萬。
이 무렵 太中大夫 鄧通이 한창 융숭한 사랑을 받아서 하사받은 재물이 累萬金이었다.
文帝嘗燕飲通家,其寵如是。
文帝가 항상 등통의 집에서 연회를 즐길 정도로 그를 총애하였다.
是時丞相入朝,而通居上傍,有怠慢之禮。
이때 승상이 入朝함에, 등통이 황제의 곁에 있다가 태만한 예절을 보였다.
丞相奏事畢,因言曰:
「陛下愛幸臣,則富貴之;
至於朝廷之禮,不可以不肅!」
승상이 보고하는 일을 마치고, 인하여 말하였다.
“폐하께서 신하를 총애하시어, 그를 부귀하게 만들지만,
조정의 예법에 있어서는, 엄격하지 않아서는 아니 되옵니다!”
上曰:
「君勿言,吾私之。」
황제가 말하였다.
“그대는 말하지 마시오.
나의 개인적인 일이오!”
罷朝坐府中,嘉為檄召鄧通詣丞相府,不來,且斬通。
조회를 마치고 승상부에 앉아서, 申屠嘉가 檄書를 써서 승상부로 등통을 부르며, 오지 않으면 즉각 참수하겠다고 하였다.
通恐,入言文帝。
등통이 두려워하고 들어가서 문제에게 아뢰었다.
文帝曰:
「汝第往,吾今使人召若。」
문제가 말하였다.
“너는 마음 놓고 가거라. 짐이 사람을 보내 너를 부르겠다.”
通至丞相府,免冠,徒跣,頓首謝。
등통이 승상부에 이르자 관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였다.
嘉坐自如,故不為禮,責曰:
「夫朝廷者,高皇帝之朝廷也。
通小臣,戲殿上,大不敬,當斬。
吏今行斬之!」
申屠嘉가 태연하게 앉은 채 고의로 예의를 갖추지 않고 꾸짖었다.
“무릇 조정은 高皇帝의 조정이다.
너 등통은 보잘것없는 신하로서 어전을 희롱하여 크게 불경하였으니 참형을 받아 마땅하다. 형리는 지금 당장 저놈을 참하라!”
通頓首,首盡出血,不解。
등통이 머리를 땅에 찧으매 머리에 온통 피가 났지만, 申屠嘉는 풀어주지 않았다.
文帝度丞相已困通,使使者持節召通,而謝丞相曰:
「此吾弄臣,君釋之。」
문제는 승상이 등통을 충분히 혼냈으리라 판단하고, 사자에게 符節을 주어 등통을 부르며, 승상에게 사과하였다.
“그는 나의 놀잇감 신하이니, 그대는 풀어주시오.”
鄧通既至,為文帝泣曰:
「丞相幾殺臣。」
등통이 도착하여 문제에게 울면서 말하였다.
“승상이 신을 거의 죽이려고 했사옵니다.”
▶ 材官蹶張 : 용감하고 힘이 센 재관 부대의 弓弩手. 材官은 용감하고 힘이 센 병사로 구성된 부대. 蹶張은 蹶張路라는 발로 밟는 노를 다루는 무관.
▶ 隊率 : 隊長. 率(우두머리 ‘수’는 帥와 통한다.)
▶ 私 : 偏愛.
▶ 私謁 : 사사로이 만나다.
▶ 鄧通 : 당시 文帝의 총애를 받았지만, 무능하였다고 한다. 문제가 총애하여 벼슬이 上大夫에 이르렀으며, 銅山을 하사받고 鑄錢을 허가받아 그가 주조한 鄧氏殿이 세상에 유포되었다. 나중에 ‘등통’은 동전의 代稱이 되었다. 관상을 보니 평생 가난할 팔자라고 하여 문제가 동전을 주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지만, 결국 가난하게 살다 죽었다고 한다. (不名一錢의 고사 참조)
▶ 愛幸 : 총애.
▶ 巨萬 : 막대하다. 엄청나다.
▶ 燕飲 : 연회를 베풀다. 燕은 宴과 통한다.
▶ 吾私之 : 내가 그를 편애한 것이다.
▶ 檄 : 격문. 서면 명령.
▶ 第 : 마음껏 ~ 하라 <허사 弟 참조>
▶ 今 : 즉시. 당장.
▶ 徒跣 : 맨발로 보행하다.
▶ 大不敬 : 황제에게 대한 불경죄. 즉, 죽을 죄.
▶ 度 : 헤아리다. 추측하다.
▶ 節 : 符節. 신표. 위임장.
▶ 弄臣 : 군주의 놀이 상대가 되는 신하.
嘉為丞相五歲,孝文帝崩,孝景帝即位。
申屠嘉가 승상이 되고 5년, 孝文帝가 붕어하고 孝景帝가 즉위하였다.
二年,晁錯為內史,貴幸用事,諸法令多所請變更,議以謫罰侵削諸侯。
효경제 2년(기원전 155년)에 晁錯가 內史가 되어 총애를 받고 정권을 장악하자, 여러 법령 제도에 고치자고 주청함이 많았는데, 잘못을 찾아 처벌하여 제후의 권력을 삭감하자는 의론이었다.
而丞相嘉自絀所言不用,疾錯。
이에 승상은 자신의 의견이 채용되지 않아 조조를 미워하였다.
錯為內史,門東出,不便,更穿一門南出。
조조가 내사가 되자, 문이 동쪽으로 나가매 불편하다며, 남쪽으로 나가도록 문을 바꾸어 뚫었다.
南出者,太上皇廟堧垣。
남쪽으로 나오면 太上皇 사당의 바깥 낮은 담장이 있었다.
嘉聞之,欲因此以法錯擅穿宗廟垣為門,奏請誅錯。
申屠嘉가 듣고 조조가 멋대로 종묘의 담을 뚫어 문을 낸 죄를 법으로 다스려, 조조를 죽이라고 주청하려 하였다.
錯客有語錯,錯恐,夜入宮上謁,自歸景帝。
晁錯의 문객이 알려주자, 조조가 두려워하여 밤에 입궁하여 황제를 뵙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였다.
至朝,丞相奏請誅內史錯。
조정에 나가니, 승상이 내사 조조를 주살하자고 주청하였다.
景帝曰:
「錯所穿非真廟垣,乃外堧垣,故他官居其中,且又我使為之,錯無罪。」”
景帝가 말하였다.
“조조가 뚫은 곳은 진짜 종묘의 담이 아니고 바깥의 낮은 담이다. 그러므로 다른 관리가 그 안에 살고 있고, 또 내가 시켜서 하였으니 조조에게는 죄가 없다.
罷朝,嘉謂長史曰:
「吾悔不先斬錯,乃先請之,為錯所賣。」
조회를 마치고 申屠嘉가 長史에게 말하였다.
“조조를 죽임을 먼저 하지 않고, 죽이자고 주청을 먼저 하매, 조조에게 기만당하였으니, 내 참으로 후회스럽소.”
至舍,因歐血而死。
집에 이르러 이 때문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謚為節侯。
시호를 節侯라 하였다.
子共侯蔑代,三年卒。
아들 共侯 蔑이 작위를 이었으나 3년 만에 죽었다.
子侯去病代,三十一年卒。
멸의 아들 去病이 작위를 이어받고 31년 만에 죽었다.
子侯臾代,六歲,坐為九江太守受故官送有罪,國除。
아들 臾가 작위를 이어받고 6년, 九江 태수일 때 전임 태수의 예물을 받음에 연좌되어 봉국도 해제되었다.
▶ 晁錯 : 潁川 출신으로 漢景帝 때 謀士였다. 그는 일찍이 軹縣에서 張恢를 스승으로 모시고 신불해와 상앙의 刑名 이론을 배웠다.
▶ 用事 : 권력을 장악하다.
▶ 謫罰 : 잘못을 찾아 처벌하다.
▶ 侵削 : (권리, 영토를) 잠식하다.
▶ 堧垣 : 궁 밖의 작은 담.
▶ 歐血 : 피를 토하다.
自申屠嘉死之後,景帝時開封侯陶青、桃侯劉舍為丞相。
申屠嘉가 죽은 뒤 景帝 때 開封侯 陶靑과 桃侯 劉舍가 승상이 되었다.
及今上時,柏至侯許昌、平棘侯薛澤、
武彊侯莊青翟、高陵侯趙周等為丞相。
지금의 황제에 이르러서는 柏至侯 許昌·平棘侯 薛澤·武疆侯 莊靑翟·高陵侯 趙周 등이 승상이 되었다.
皆以列侯繼嗣,娖娖廉謹,為丞相備員而已,無所能發明功名有著於當世者。
모두 세습받은 列侯로서, 조심하고 경계하기는 하였지만, 승상의 자리를 채우기만 하고 세상에 功名을 발명함에 그 시대에 현저하지 못한 자들이다.
▶ 繼嗣 : 후계자. 계승자.
▶ 娖娖 :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모습. 삼가다.
▶ 廉謹 : 청렴하고 조심성이 있음.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소심하게까지 되다.
▶ 備員 : 예비 인원. 숫자를 채우다.
▶ 發明 : 더욱 확대 발전시키다.
太史公曰:
「張蒼文學律歷,為漢名相,而絀賈生、公孫臣等言正朔服色事而不遵,明用秦之顓頊歷,何哉?
周昌,木彊人也。
任敖以舊德用。
申屠嘉可謂剛毅守節矣,然無術學,殆與蕭、曹、陳平異矣。
태사공은 말한다.
“張蒼은 문장과 학문·음률·역법에 뛰어난 漢의 명재상으로서, 賈生과 公孫臣 등이 건의한 曆法·服色의 개혁을 채택하지 않고, 秦의 顓頊曆의 사용을 고집함은 무슨 까닭인가?
周昌은 강직한 사람이었다.
任敖는 옛날의 덕행으로 인하여 등용되었다.
申屠嘉는 강직하여 절조를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天文·曆法 등의 學藝가 없어서 蕭何·曹參·陳平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 文學 : 문장과 학문.
▶ 賈生 : 賈誼.
▶ 正朔 : 일 년의 첫날.
▶ 顓頊歷 : 秦에서 사용한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하는 曆法.
▶ 木彊 : 강직하다. 융통성이 없다.
▶ 舊德 : 옛날의 덕행. 젊은 시절 옥리였을 때 呂后를 보호했던 일을 말한다.
▶ 術學 : 古代關於天文、曆法等方面的學問
孝武時丞相多甚,不記,莫錄其行起居狀略,且紀征和以來。
孝武帝 때의 승상이 매우 많으나 기록하지 않았고, 또 그들의 출신과 생활 상황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우선 征和 이후의 것을 기록하였다.
▶ 孝武 : 漢武帝 劉徹. 전한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 景帝의 열한 번째 아들로, 시호는 世宗이다
▶ 起居 : 일상생활.
▶ 征和 : 漢武帝의 10번째 年號. 기원전 92년부터 기원전 89년까지 사용되었다.
5.韋丞相 韋賢
有車丞相,長陵人也。
車丞相은 長陵 사람이다.
卒而有韋丞相代。
그가 죽고 韋丞相이 승상을 이었다.
韋丞相賢者,魯人也。
韋丞相 賢은 魯 사람이다.
以讀書術為吏,至大鴻臚。
讀書術로써 하급 관리가 되어 大鴻臚에 이르렀다.
有相工相之,當至丞相。
관상을 보는 사람이 관상을 보더니, 마땅히 승상에 이르겠다고 말하였다.
有男四人,使相工相之,至第二子,其名玄成。
아들 넷이 있었는데, 관상가에게 관상을 보게 하여, 둘째 아들 순서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玄成이었다.
相工曰:
「此子貴,當封。」
관상가가 말하였다.
“이 아들은 貴象이니 제후에 봉해지겠습니다.”
韋丞相言曰:
「我即為丞相,有長子,是安從得之?」
“내가 승상이 되면 맏아들이 있는데, 그가 어찌 그렇게 되겠소?”
後竟為丞相,病死,而長子有罪論,不得嗣,而立玄成。
그 후 마침내 韋賢이 승상이 되어 병으로 죽었으나, 맏아들은 죄에 논란이 있어서 작위를 잇지 못하매, 玄成이 승상에 올랐다.
玄成時佯狂,不肯立,竟立之,有讓國之名。
현성이 그때 미친 척하며 작위를 잇지 않으려고 하다가, 마침내 작위를 이어받으매, 나라를 사양했다는 명성이 있었다.
後坐騎至廟,不敬,有詔奪爵一級,為關內侯,失列侯,得食其故國邑。
뒤에 말을 타고 종묘에 감이 불경죄가 되매, 조칙으로 작위를 1등급 떨어뜨려 관내후로 삼았다. 열후의 작위는 잃었으나 본래의 봉읍을 식읍으로 받았다.
韋丞相卒,有魏丞相代。
韋丞相 현성이 죽자 魏丞相이 직위를 이었다.
▶ 車丞相 : 車千秋.
▶ 韋丞相 韋賢 : 前漢 魯國 鄒縣 사람. 字는 長孺이고, 시호는 節侯이다. 사람됨이 질박하고 욕심이 없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武帝 때 經學博士에 임명되고, 給事中에 올랐다. 本始 3년(기원전 71년), 채의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고 扶陽侯에 봉해져 식읍 7백 호를 받았다. 神爵 원년(기원전 61년)에 죽었다.
▶ 封 : 제후에 봉해짐을 말한다.
▶ 大鴻臚 : 귀순한 이민족의 관리를 맡은 직책.
▶ 相工 : 관상을 보는 사람.
▶ 即 : 만약.
6.魏相
魏丞相相者,濟陰人也。
魏丞相 相은 濟陰 사람이다.
以文吏至丞相。
문서를 관리하는 하급관리에서 승상에 올랐다.
其人好武,皆令諸吏帶劍,帶劍前奏事。
爲人이 무예를 좋아하여, 관리들에게 모두 칼을 차게 하고, 칼을 차고 앞에 나와서 일을 아뢰게 하였다.
或有不帶劍者,當入奏事,至乃借劍而敢入奏事。
혹 칼을 차지 않은 자가 들어가서 아뢰고자 함에는, 남의 칼을 빌려 찬 다음에야 감히 들어가서 일을 아뢸 정도였다.
其時京兆尹趙君,丞相奏以免罪,使人執魏丞相,欲求脫罪而不聽。
당시 京兆尹 趙廣漢이 죄를 지으매, 승상이 파면해야 한다고 주청하자, 趙廣漢은 사람을 시켜 위승상을 붙잡고 죄를 벗게 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復使人脅恐魏丞相,以夫人賊殺待婢事而私獨奏請驗之,發吏卒至丞相舍,捕奴婢笞擊問之,實不以兵刃殺也。
다시 사람을 시켜 위승상을 협박하며, 승상의 부인이 侍婢를 찔러 죽인 일을 몰래 조사하기를 주청하고, 관리를 위승상의 집에 파견하여 노비를 잡아다가 매를 치면서 심문하였으나, 칼로 찔러 죽이지 않았음이 사실이었다.
而丞相司直繁君奏京兆尹趙君迫脅丞相,誣以夫人賊殺婢,發吏卒圍捕丞相舍,不道;
又得擅屏騎士事,趙京兆坐要斬。
그리하여 승상의 司直 繁君이 아뢰기를, 경조윤 조군이 승상을 협박하고, 승상의 부인이 노비를 賊殺하였다고 무고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승상의 집을 포위하고 사람을 체포하였으니,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였다.
또 제 마음대로 騎士를 파면한 죄를 얻으매, 조경조윤을 腰斬에 처하였다.
又有使掾陳平等劾中尚書,疑以獨擅劫事而坐之,大不敬,長史以下皆坐死,或下蠶室。
또 魏丞相은 아전 陳平 등을 시켜서 中尙書를 탄핵한 사건이 있었는데, 승상이 멋대로 협박하여 죄를 씌웠다고 의심받으니 불경죄에 해당하였다.
長史 이하 관련자들이 사형에 처해지거나, 혹은 宮刑을 받고 蠶室에 갇혔다.
而魏丞相竟以丞相病死。
그러나 위승상은 끝내 승상으로 있다가 병사하였다.
子嗣。
아들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後坐騎至廟,不敬,有詔奪爵一級,為關內侯,失列侯,得食其故國邑。
후에, 말을 타고 종묘에 감이 불경죄가 되매, 조칙으로 작위를 1등급이 떨어뜨려 관내후로 삼으니, 열후의 지위는 잃었으나 본래의 봉읍을 식읍으로 받았다.
魏丞相卒,以御史大夫邴吉代。
魏丞相이 죽자, 어사대부 邴吉이 승상을 잇게 하였다.
▶ 魏相 : 濟陰 定陶 사람으로 자는 弱翁이다. 西漢 시대의 大臣으로 벼슬은 茂陵令, 揚州刺史, 河南太守, 大司農,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霍光 사후에 丞相이 되었다. 高平侯로 봉해졌다.
▶ 趙君 : 趙廣漢.
▶ 免罪 : 파면되는 죄에 해당함을 말함.
▶ 執 : 억누르다. 협박하다.
▶ 賊殺 : 잔인하게 죽임.
▶ 不道 : 도리에 어긋나다. 당시에는 사형에 처하는 중죄였다.
▶ 要斬 : 즉 腰斬. 고대 허리를 자르는 옛 형벌의 하나. 要는 腰와 같다.
▶ 掾 : 고대, 屬官의 통칭. 掾은 衙前.
▶ 蠶室 : 감옥명. 宮刑을 받은 자가 있는 곳.
7.邴吉
邴丞相吉者,魯國人也。
승상 邴吉은 魯國 사람이다.
以讀書好法令至御史大夫。
독서와 법령을 좋아하여 어사대부에 올랐다.
孝宣帝時,以有舊故,封為列侯,而因為丞相。
孝宣帝 때 예전의 연고로 열후에 봉하여지고, 인하여 승상이 되었다.
明於事,有大智,後世稱之。
사무의 처리에 밝고 큰 지혜가 있어서 후세 사람이 칭찬하였다.
以丞相病死。子顯嗣。
승상으로 病死하자 아들 顯이 뒤를 이었다.
後坐騎至廟,不敬,有詔奪爵一級,失列侯,得食故國邑。
훗날, 말을 타고 종묘에 감이 불경죄가 되매, 조칙을 내려 작위를 1등급 떨어뜨리니, 열후의 지위는 상실하였으나 본래의 봉읍을 식읍으로 받았다.
顯為吏至太仆,坐官秏亂,身及子男有姦贓,免為庶人。
邴顯은 벼슬이 太僕에 이르렀으나, 관직에서 부패하고 타락하고, 자신과 아들이 남몰래 뇌물을 받은 죄로 파면되어 평민이 되었다.
邴丞相卒,黃丞相代。
병승상이 죽고 黃丞相이 뒤를 이었다.
長安中有善相工田文者,與韋丞相、魏丞相、邴丞相微賤時會於客家,田文言曰:
「今此三君者,皆丞相也。」
長安에 관상을 잘 보는 田文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韋승상·魏승상·邴승상이 아직 미천하였을 때, 어떤 빈객의 집에서 만남에, 전문이 말하였다.
“지금 여기에 계신 세 분은 모두 승상이 되겠습니다.”
其後三人竟更相代為丞相,何見之明也。
그 뒤 세 사람은 마침내 서로 번갈아서 승상을 이었으니, 선견지명이 어떠한가!
▶ 邴吉 : 前漢 魯國 사람. 자는 少卿이다. 律令을 배워 처음에는 獄吏가 되고, 나중에 廷尉監에 올랐다. 征和 2년(기원전 91년) 巫蠱의 옥사 때 크게 활약하여 戾太子의 손자인 劉詢, 宣帝의 목숨을 구하였다. 유순이 제위에 오르자 太子太傅와 御史大夫를 거쳐, 之節 3년(기원전 67년) 丞相이 되었다. 시호는 定이다.
▶ 孝宣帝: 宣帝. 前漢의 9대 황제. 武帝의 증손자. 지방 백성의 사정을 밝게 알고 전한의 여러 황제 가운데 가장 어진 황제로 손꼽히고 있다
▶ 以有舊故 :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霍光에 의하여 昌邑王이 겨우 27일 만에 제위를 박탈당한 뒤, 후에 재상을 지낸 丙吉이 민간에서 자라고 있던 病已, 즉 훗날의 선제를 추천하니,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漢書 卷8, 宣帝本紀>
▶ 秏亂 : 부패하고 타락함.
▶ 姦贓 : 남모르게 은밀히 주고받은 뇌물.
8. 黃霸
黃丞相霸者,淮陽人也。
승상 黃霸는 淮陽 사람이다.
以讀書為吏,至潁川太守。
讀書로써 관리가 되었으며 穎川 태수에 이르렀다.
治潁川,以禮義條教喻告化之。
영천을 다스릴 때 예의와 법령으로써 가르치고 깨우쳐서 교화하였다.
犯法者,風曉令自殺。
중죄를 범한 자는 에둘러 말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化大行,名聲聞。
교화가 크게 행하여지고 명성이 알려졌다.
孝宣帝下制曰:
「潁川太守霸,以宣布詔令治民,道不拾遺,男女異路,獄中無重囚。
賜爵關內侯,黃金百斤。」
孝宣帝가 칙서를 내려 말하였다.
“영천태수 黃霸가 법령을 선포하여 백성을 다스리니,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고, 남자와 여자가 다른 길로 다니며, 옥 안에는 중죄를 지은 죄수가 없다.
關內侯의 작위와 황금 1백 근을 하사한다.”
徵為京兆尹而至丞相,復以禮義為治。
황폐를 불러 京兆尹으로 삼았다가 승상이 되게 하니, 또다시 예의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以丞相病死。子嗣,後為列侯。
승상이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아들이 이어서 열후에 올랐다.
黃丞相卒,以御史大夫于定國代。
황승상이 죽자 어사대부 于定國으로 잇게 하였다.
于丞相已有廷尉傳,在張廷尉語中。
右丞相은 이미 ‘廷尉傳’에 실려 있으니, ‘張廷尉’의 記事에 있다.
于丞相去,御史大夫韋玄成代。
右丞相이 죽자 어사대부 韋玄成이 대신하였다.
▶ 黃霸 : ? ~ 기원전 51년. 前漢 후기의 명신이며 자는 次公이며 회양군 양가현 사람이다.
▶ 教喻 : 가르치고 깨우침.
▶ 風曉 :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여 깨우치게 만듦.
▶ 化 : 教化.
▶ 孝宣帝 : 宣帝. 前漢의 9대 황제(재위 : B.C. 74~49). 武帝의 증손자. 지방 백성의 사정을 밝게 알고 전한의 여러 황제 가운데 가장 어진 황제로 손꼽히고 있다.
▶ 下制 : 칙서를 내림.
▶ 韋玄成 : 韋賢의 아들. 韋丞相 韋賢 참고.
9. 丞相 韋玄成
韋丞相玄成者,即前韋丞相子也。
韋丞相 玄成은 前 韋丞相 韋賢의 아들이다.
代父,後失列侯。
아버지를 이었으나 후에 열후의 작위를 잃었다.
其人少時好讀書,明於詩、論語。
그의 爲人이 젊었을 때 독서를 좋아하여 <詩經>과 <論語>에 밝았다.
為吏至衛尉,徙為太子太傅。
아전으로 시작하여 衛尉에 오르고 太子太傅로 승진하였다.
御史大夫薛君免,為御史大夫。
어사대부인 薛廣德이 면직되자 어사대부가 되었다.
于丞相乞骸骨免,而為丞相,因封故邑為扶陽侯。
右丞相이 스스로 사직을 청하여 해직되니, 위현성이 승상이 되었고 인하여 예전의 식읍을 봉하고 扶陽侯가 되었다.
數年,病死。
몇 년 뒤에 병으로 죽었다.
孝元帝親臨喪,賜賞甚厚。
孝元帝가 친히 문상하고,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子嗣後。
아들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其治容容隨世俗浮沈,而見謂諂巧。
그의 정치는 지나치게 세상의 변화에 따라 흔들려서, 아첨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而相工本謂之當為侯代父,而後失之;
復自游宦而起,至丞相。
관상을 보는 사람이 원래 마땅히 열후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지만, 나중에 작위를 잃겠다고 말했는데, 다시 떠도는 벼슬아치로부터 재기하여 승상이 되었다.
父子俱為丞相,世閒美之,豈不命哉!
父子가 모두 승상이 되고 세상에서 아름답게 여겼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
相工其先知之。
관상을 보는 사람이 미리 알았던 것이다.
韋丞相卒,御史大夫匡衡代。
위승상이 죽자 어사대부 匡衡이 대신하였다.
▶ 薛君 : 薛廣德. 전한 沛郡 相縣 사람. 자는 長卿이다. 龔勝, 龔舍 등에게 <魯詩>를 가르쳤다. 宣帝 때 蕭望之의 천거로 經學博士가 되고, 일찍이 石渠閣 회의에 참여하였다. 諫議大夫와 長信少府,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사람됨이 온아하고 침착하였는데 三公에 올라서도 직언으로 諫爭하여, 결국 나중에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 乞骸骨 : 높은 벼슬아치가 사직을 청함. 원말은 願賜骸骨로서 ‘骸骨을 빌다’라는 뜻으로, 늙은 宰相이 연로하여 朝廷에 나오지 못함에, 왕에게 辭職을 奏請함이다.
▶ 孝元帝 : 前漢의 제11대 황제. 유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폈으나 재정을 악화시켜 황후 왕씨의 일족 왕망의 찬탈요인을 제공하였다. 이름은 劉奭이다
▶ 容容 : 庸庸과 같다. 세상과 화합하다. 평범하고 보잘것없음.
▶ 諂巧 : 아첨하다. 알랑거리다.
▶ 而後失之 : 위현성은 말을 타고 종묘에 간 것이 불경죄가 되어 조칙으로 작위가 일등급 떨어지고 관내후가 되었으며, 열후의 직위는 잃었으나 본래의 봉읍을 식읍으로 이어받았다.
▶ 游宦 : 타향에서 벼슬을 하다.
10.匡衡
丞相匡衡者,東海人也。
승상 匡衡은 東海郡 사람이다.
好讀書,從博士受詩。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박사를 따르며 <詩經>을 배웠다.
家貧,衡傭作以給食飲。
집이 가난하여 광형은 품팔이로 먹고 살았다.
才下,數射策不中,至九,乃中丙科。
재주가 뛰어나지 못하여, 수차 시험에 응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으며, 아홉 번 만에 겨우 丙科에 급제하였다.
其經以不中科故明習。
경서 실력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자, 분명해질 때까지 익혔다.
補平原文學卒史。
平原郡의 文學卒史로 보직을 받았다.
數年,郡不尊敬。
여러 해 동안 郡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였다.
御史徵之,以補百石屬薦為郎,而補博士,拜為太子少傅,而事孝元帝。
어사가 그를 불러 녹봉 1백석의 관리로 삼았고 이어 추천하여 郎中이 되게 하였다. 박사에 보직되고 太子少傅에 임명되어 孝元帝를 섬겼다.
孝元好詩,而遷為光祿勳,居殿中為師,授教左右,而縣官坐其旁聽,甚善之,日以尊貴。
孝元帝가 <시경>을 좋아하매, 광형을 光祿勳으로 삼으니, 궁궐에 거주하면서 스승이 되어 황제 측근을 가르쳤으며, 황제가 그 곁에 앉아 듣기를 매우 좋아하여 날로 존귀하게 되었다.
御史大夫鄭弘坐事免,而匡君為御史大夫。
어사대부 鄭弘이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자 광형이 어사대부가 되었다.
歲餘,韋丞相死,匡君代為丞相,封樂安侯。
1년여 만에 위승상이 죽자, 광형이 대신하여 승상이 되고 樂安侯에 봉해졌다.
以十年之閒,不出長安城門而至丞相,豈非遇時而命也哉!
10년 동안 장안의 성문을 나가지 않고 승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어찌 때를 잘 만난 운명이 아니겠는가!
▶ 佣作 : 품팔이.
▶ 數射策不中 : 여러 차례 조정의 고시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射策은 고대의 考試의 하나로 출제자가 시험문제를 내면 죽간에 답을 쓰는 방식이다.
▶ 丙科 : 等外로 합격함. 예비합격자.
▶ 縣官 : 皇帝를 말하다. 縣의 우두머리라는 뜻.
▶ 鄭弘 : ? ~ 기원전 37년. 전한 후기의 관료로 자는 稺卿이다. 영광 2년(기원전 42년), 승상으로 승진한 위현성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승상 위현성을 내쫓도록 진언한 것에 연루되어 파면되어 서인이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深惟士之游宦所以至封侯者,微甚。
“깊이 생각해보니 선비가 타향에서 벼슬하여 封侯된 사람은 매우 적다.
然多至御史大夫即去者。
대부분 어사대부에 이르러서 그만둔다.
諸為大夫而丞相次也,其心冀幸丞相物故也。
모두 어사대부가 되면 승상이 될 차례이매, 그들은 마음속으로 승상으로 생을 마치기를 바란다.
或乃陰私相毀害,欲代之, 然守之日久不得,或為之日少而得之,至於封侯,真命也夫!
어떤 사람은 몰래 승상을 헐뜯고 해쳐서 그를 대신하려 하나, 오랫동안 있어도 승상이 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승상의 지위를 얻고, 封侯되기도 하니 참으로 운명이 아니겠는가!
御史大夫鄭君守之數年不得,匡君居之未滿歲,而韋丞相死,即代之矣,豈可以智巧得哉!
어사대부 鄭君은 몇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으나 승상의 직위를 얻지 못하였고, 匡衡은 어사대부에 오른 지 1년도 못 되어서 韋丞相이 죽어서 곧 승상에 올랐으니, 어찌 지혜와 기교로 얻을 수 있는가!
多有賢聖之才,困妯囡者眾甚也。
성현의 재주를 지니고도 곤궁하게 지내며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 太史公曰 : 이편에서 중복되어 나오며 이름을 빌린 것으로 실제로 司馬遷이 아닌 褚小孫의 기술로 추정된다.
▶ 冀幸 : 희망하다.
▶ 物故 : 사망하다.
▶ 鄭君 : 鄭弘을 말한다.
▶ 妯囡 : 의욕을 잃다. 자포자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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