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97-酈生陸賈列傳(역생육가열전)

耽古樓主 2023. 9. 2. 21:53

 

이篇은 酈生 酈食其陸生 陸賈平原君 朱建 세 사람의 합전이다.
세 사람은 秦 말기 및 전한 초기의 達辯家임이 공통점이다.
酈生의 이름은 食其이며陳留 高陽 출신이다.
秦 말기에 가난하고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유방을 설득하여 참모이자 說客이 되었으며漢高祖를 도와 제후를 설득하여 끌어들이는 외교 활동에서 큰 공을 세웠다.
齊王 田廣에게 에 복속하라고 설득하기 위하여 齊에 머물다가공을 탐한 韓信이 를 침공하자 역이기에게 속았다고 분노한 齊王에게 烹殺되었다.
이편의 마지막 부분에는 酈生과 高祖 유방이 만나는 모습을 재차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 酈食其

 

酈生食其者,陳留高陽人也。
酈生 食其는 陳留 高陽 사람이다.

好讀書,家貧落魄,無以為衣食業,為里監門吏。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衣食을 해결할 생업이 없으매마을의 監門吏가 되었다.

然縣中賢豪不敢役,縣中皆謂之狂生。
그러나 의 賢人豪傑은 감히 그를 부리지 못하였고에서 모두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及陳勝、項梁等起,諸將徇地過高陽者數十人,酈生聞其將皆握齱好苛禮自用,不能聽大度之言,酈生乃深自藏匿。
陳勝과 項梁 등이 일어나자장수들이 땅을 점령하며 고양을 지나간 사람이 수십 명이었으나酈生은 그 장수들이 모두 도량이 작고 번거로운 예절을 좋아하며 자기만 옳다고 여길 뿐局量이 큰 말을 듣지 않음을 알고자신을 깊이 감추고 있었다.

後聞沛公將兵略地陳留郊,沛公麾下騎士適酈生裏中子也,沛公時時問邑中賢士豪俊。
뒤에 沛公이 군사를 거느리고 陳留의 교외를 공략한다고 들었다沛公 휘하의 한 騎兵이 마침 酈生의 마을 사람이매沛公은 때때로 읍의 어진 선비와 호걸을 물었다.

騎士歸,酈生見謂之曰:
「吾聞沛公慢而易人,多大略,此真吾所願從游,莫為我先。
若見沛公,謂曰
『臣里中有酈生,年六十餘,長八尺,人皆謂之狂生,生自謂我非狂生』。」
기병이 마을로 돌아오자酈生이 그를 만나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沛公은 거만하고 남을 깔보지만 원대한 뜻을 가졌다고 하네.
그가 참으로 내가 따르고 싶은 사람이지만나를 소개해주는 사람이 없었네.
그대가 沛公을 만나거든 이렇게 말해주게.
의 고향에 酈生이란 사람이 있는데나이는 60세 남짓이고키는 8척이고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라고 부르지만酈生이 스스로 이르기를자신은 미치광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騎士曰:
「沛公不好儒,諸客冠儒冠來者,沛公輒解其冠,溲溺其中。
與人言,常大罵。未可以儒生說也。」
기병이 말하였다.
沛公은 儒生을 좋아하지 않으매빈객 중 儒冠을 쓰고 오는 자에게서 沛公은 언제나 관을 벗기고 그 안에 오줌을 싸버립니다.
남과 이야기할 때 늘 큰 소리로 욕하곤 하니유생으로서 유세함은 좋지 못합니다.”

酈生曰:
「弟言之。」
酈生이 말하였다.
단지 말하기만 하게.”

騎士從容言如酈生所誡者。
기사가 酈生이 부탁한 대로 침착하게 沛公에게 고하였다.

 

沛公至高陽傳舍,使人召酈生。
沛公이 高陽의 驛館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酈生을 불렀다.

酈生至,入謁,沛公方倨床使兩女子洗足,而見酈生。
酈生이 도착하여 알현하러 들어가니沛公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아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고 있다가酈生을 만났다.

酈生入,則長揖不拜,曰:
「足下欲助秦攻諸侯乎?
且欲率諸侯破秦也?」
酈生이 들어가서 길게 할 뿐 절하지 않고 말하였다.
족하께서는 을 도와 제후를 치려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를 이끌고 을 치려 하십니까?”

沛公罵曰:
「豎儒!
夫天下同苦秦久矣,故諸侯相率而攻秦,何謂助秦攻諸侯乎?」
沛公이 꾸짖었다.
유생 놈아!
천하가 함께 진에게 고통을 받은 지가 오래되매제후가 서로 협력하여 을 공격하거늘무엇 때문에 을 도와 제후를 친다고 말하느냐?

▶ 酈生食其者 : 酈食其. 이름은 食其이다. 生은 선생과 같다. 食은 사람 이름으로 쓰일 때는 ‘이’로 읽는다.
▶ 落魄(낙탁) : 勢力이나 살림이 줄어들어 보잘것없음. 魄은 영락할 ‘탁’.
▶ 家貧落魄 : ‘집안이 가난하여 魂魄이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뜻을 얻지 못하고 실의에 빠짐.
▶ 狂生 : 미친 사람. 방탕한 사람.
▶ 徇地 : 군대를 인솔하여 점령한 땅을 순시함. 徇은 奪取.
▶ 握齱 : 齷齪과 같다. 악착같다. 도량이 좁다.
▶ 苛禮 : 까다로운 예절. 지나치게 번거로운 예의.
▶ 自用 : 스스로 옳다고 여기다.
▶ 大度 : 국량이 큼.
▶ 麾下 : 부하.
▶ 慢而易人 : 거만하고 남을 깔보다. 易人은 사람을 깔보다. 易는 경시하다.

▶ 莫為我先 : 소개해주는 사람이 없다. 先은 소개하다.
▶ 若 : 너.(2인칭)
▶ 儒冠 : 유학자들이 쓰던 관.
▶ 溲溺(수뇨) : 오줌을 누다. 溲(수):오줌 수 溺(뇨): 오줌 뇨. 둘 다 尿와 같다.
▶ 弟 : 다만. 단지.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第

한문의 허사(虛詞) 第 弟 아우 第令~ 일지라도 藉第令 설사~일지라도 第자와 弟는 동음이다. 고대인들은 이 두 개의 글자를 임의로 바꿔 썼다. (다만, 兄弟의 弟는 第자로 쓸 수 없고, 第宅[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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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從容 : 침착하고 덤비지 않음.
▶ 誡 : 고하다.
▶ 傳舍 : 객사.
▶ 倨 : 踞와 통하여 걸터앉다. 침상의 가에 앉는 것을 踞라고 한다
▶ 長揖 : 두 손을 마주 잡고 높이 들어서 허리를 굽히는 禮.
▶ 足下 : 옛날에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
▶ 豎儒 : 식견이 없는 유생. 못난 선비.

酈生曰:
「必聚徒合義兵誅無道秦,不宜倨見長者。」
酈生이 말하였다.
꼭 무리를 모으고 의병을 합쳐서 무도한 을 誅罰하려면거만하게 나이 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於是沛公輟洗,起攝衣,延酈生上坐,謝之。
이에 沛公이 발을 씻음을 중지하고일어나서 옷을 단정히 하고酈生을 윗자리로 안내하고사과하였다.

酈生因言六國從橫時。
酈生이 인하여 6국이 合縱連橫했던 형세에 관하여 말하였다.

沛公喜,賜酈生食,問曰:
「計將安出?」
沛公이 기뻐하고 酈生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물었다.
장차 계책을 어떻게 내어야 하겠소?”

酈生曰:
酈生이 말하였다.

「足下起糾合之眾,收散亂之兵,不滿萬人,欲以徑入彊秦,此所謂探虎口者也。
족하는 규합한 무리에서 시작하여 뿔뿔이 흩어진 병사를 거두었으나, 1만 명이 되지 않는데도 곧바로 강한 으로 들어가려 하니이것이 소위 호랑이의 입을 더듬는 것입니다.

夫陳留,天下之衝,四通五達之郊也,今其城又多積粟。
무릇 陳留는 천하의 要處이고 四通五達의 要衝地이며지금 성에는 또 쌓인 식량이 많습니다.

臣善其令,請得使之,令下足下。
이 그곳의 현령과 친분이 있으니사신으로 보내주십시오족하께 항복하게 만들겠습니다.

即不聽,足下舉兵攻之,臣為內應。」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족하께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십시오이 內應하겠습니다.”

於是遣酈生行,沛公引兵隨之,遂下陳留。
이에 酈生을 사신으로 보내고沛公이 군대를 이끌고 뒤따라가서 마침내 진류를 항복시켰다.

號酈食其為廣野君。
역이기를 廣野君이라 호칭하였다.

▶ 攝衣 : 의복을 단정히 하다.
▶ 延 : 안내하다. 인도하다.
▶ 六國 : 전국시대 山東의 6국인 燕·趙·韓·魏·齊·楚.
▶ 從橫 : 縱橫을 말한다. 合從連橫. 戰國時代의 최강국인 秦과 燕·齊·楚·韓·魏·趙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 秦을 제외한 6개국의 제후가 秦에 대항함을 合從이라 하고, 魏 장의가 秦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을 설득하여 秦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은 것을 連橫이라 한다.
▶ 徑 : 곧장. 지름길
▶ 探虎口 : 比喻深入险境
▶ 陳留 : 留는 鄭나라의 고을인데, 뒤에 陳나라에서 병합하였으므로, 陳留라고 한다.

 

[참고 梁甫吟 李白]의 일부

君不見 高陽酒徒起草中,長揖山東隆準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고양 땅 술주정뱅이가 초야에서 일어나 산동에서 코가 큰 유방에게 길게 읍하고

入門不拜騁雄辯,兩女輟洗來趨風。
문에 들어가서 절하지 않고 웅변을 토하니두 여인이 발 씻기를 그치고 바람처럼 물러난 일을.

東下齊城七十二,指揮楚漢如旋蓬。
동쪽 齊 72을 항복받고와 을 마치 바람에 넘어지는 쑥대처럼 휘둘렀다.
狂客落魄尚如此,何況壯士當羣雄。
미치광이가 落魄하여도 이러하였으니 군웅에 해당하는 장사는 오죽하였겠는가?

 

酈生言其弟酈商,使將數千人從沛公西南略地。
酈生이 동생 酈商에게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沛公을 따라 서남쪽에서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酈生常為說客,馳使諸侯。
酈生이 언제나 유세객이 되어 제후에게 使臣으로 왕래하였다.

漢三年秋,項羽擊漢,拔滎陽,漢兵遁保鞏、洛。
漢王 3(기원전 204가을에 項羽가 을 공격하여 滎陽을 함락하니漢軍은 퇴각하여 鞏縣과 洛陽을 지키고 있었다.

楚人聞淮陰侯破趙,彭越數反梁地,則分兵救之。
가 듣기에淮陰侯가 를 깨뜨리고彭越이 여러 차례 에서 배반하였다고 하므로군대를 나누어 와 을 구원하였다.

淮陰方東擊齊,漢王數困滎陽、成皋,計欲捐成皋以東,屯鞏、洛以拒楚。
淮陰侯가 바야흐로 동쪽으로 를 공격함에漢王이 여러 차례 형양과 成皐에서 곤란을 당하니成皋 동쪽을 포기하고 鞏縣과 洛陽 사이에 주둔하며 와 대치하고 있었다.

酈生因曰:
酈生이 인하여 말하였다.

「臣聞知天之天者,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王事不可成。
신이 듣기에, ‘하늘의 하늘을 아는 사람이 왕업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의 하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王者以民人為天,而民人以食為天。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습니다.

夫敖倉,天下轉輸久矣,臣聞其下乃有藏粟甚多。
저 敖倉에 천하의 곡식을 실어다 놓은 지 오래되었고신은 거기에 쌓아놓은 식량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楚人拔滎陽,不堅守敖倉,乃引而東,令適卒分守成皋,此乃天所以資漢也。
楚軍이 형양을 함락하고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군대를 이끌고 동진하며 죄를 지은 병사를 나누어 成皋를 지키게 하니이것이 바로 하늘이 을 돕는 까닭입니다.

方今楚易取而漢反卻,自奪其便,臣竊以為過矣。
지금 를 쉽게 취할 수 있는데도 이 반대로 퇴각함은자신에게서 좋은 기회를 뺏는 것이매신은 삼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且兩雄不俱立,楚漢久相持不決,百姓騷動,海內搖蕩,農夫釋耒,工女下機,天下之心未有所定也。
또 두 영웅이 함께 설 수는 없으니와 이 오랫동안 대치하며 결판을 내지 않으면백성이 수선거리며 동요하고천하가 불안해하며농민들이 쟁기를 버리고베 짜는 여인들이 베틀에서 내려올 터이매천하의 민심이 안정되지 못할 터입니다.

願足下急復進兵,收取滎陽,據敖倉之粟,塞成皋之險,杜大行之道,距蜚狐之口,守白馬之津,以示諸侯效實形制之勢,則天下知所歸矣。
족하는 급히 다시 進軍하여 滎陽을 수복하고 敖倉의 식량을 차지한 뒤成皋의 요새를 막고 太行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며蜚狐의 입구를 가로막고白馬의 나루터를 지키십시오.
이렇게 하여 제후에게 실제로 나타난 형상과 구조의 威勢를 보이면천하는 歸附할 곳을 알 터입니다.

方今燕、趙已定,唯齊未下。
지금 과 는 이미 평정되었으나오직 가 服屬하지 않고 있습니다.

今田廣據千里之齊,田閒將二十萬之眾,軍於歷城,諸田宗彊,
負海阻河濟,南近楚,人多變詐,足下雖遣數十萬師,未可以歲月破也。
지금 田廣이 千里의 齊 땅을 차지하고田間이 20만의 군대를 이끌고 歷城에 주둔하고 있으니전씨 일족의 세력이 강합니다.
바다를 등지고 황하와 濟水가 가로막고남쪽으로는 에 가깝고사람들이 권모술수에 능하니족하께서 비록 수십만의 군사를 보내어도 짧은 시일에 깨뜨릴 수 없습니다.

臣請得奉明詔說齊王,使為漢而稱東藩。」
신이 조서를 받들어 齊王을 설득하도록 해주십시오에 귀속하여 동쪽의 藩國을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上曰:
「善。」
漢王이 말하였다.
좋다.”

▶ 漢三年 : 漢王 3년. 기원전 204년.
▶ 鞏.洛 : 鞏은 縣 이름. 河南郡에 속하였으며, 洛은 지금의 洛陽縣 동북쪽에 있다.
▶ 淮陰侯 : 韓信을 말한다. <사기 권92. 淮陰侯열전 참조>

 

 

列傳권92-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韓信( ? ~ 기원전 196년)은 前漢의 장군이자 제후이다.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漢初三傑 중 하나로 꼽히며, 蕭何가 國士無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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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臯 : 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지형이 험고하여 전략적으로 요충지였다.
▶ 捐 : 버리다. 포기하다.
▶ 以食爲天 :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백성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소중함을 이른다.
▶ 敖倉 : 秦 때 敖山(:現 河南省 滎陽 북쪽)에 설치했던 곡식창고인 敖倉을 이르는데, 뒤에는 창고의 汎稱으로 쓰였다.
▶ 適卒 : 죄로 인하여 邊方에 수자리 보낸 군사. 適은 謫과 통하여 귀양가다.
▶ 資 : 돕다.
▶ 便 : 기회.
▶ 釋耒 : 쟁기를 내버리다. 耒는 쟁기.
▶ 工女 : 베를 짜는 여인.
▶ 白馬之津 : 黎陽津. 白馬城은 衛의 옛 曹邑
▶ 形制 : 形勝과 같다. 형세의 좋음을 얻는 것. 지형이 험고하기 때문에 적을 이길 수 있으니, 지형을 따라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 田廣 : ? ~ 기원전 204년. 초한전쟁 시기 齊의 왕이다. 전국시대 齊의 왕족이자, 齊王 田榮의 아들이다. 田橫은 田榮의 아들 田廣을 齊王으로 세웠다.<사기열전 권 94. 田儋列傳 참조>

 

 

列傳권94-田儋列傳(전담열전)

田儋列傳은 초한전쟁시 齊의 田氏 일가의 合傳이다. 齊 狄縣 출신인 田儋은 옛 齊의 왕족으로 齊가 秦에 의해 패망한 후 사촌동생 田榮, 田橫과 狄縣으로 이주하여 강성한 종족을 거느리며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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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藩 : 동쪽의 屬國.

乃從其畫,復守敖倉,而使酈生說齊王曰:
「王知天下之所歸乎?」
酈生의 계획을 따라 다시 오창을 지키고酈生을 에 사신으로 보내어 齊王을 설득하게 하였다.
왕께서는 천하가 돌아갈 곳을 알고 계십니까?”

王曰:
「不知也。」
齊王이 말하였다.
모르오.”

曰:
「王知天下之所歸,則齊國可得而有也;
若不知天下之所歸,即齊國未可得保也。」
酈生이 말하였다.
왕께서 천하가 돌아갈 곳을 아신다면 를 보전하실 수 있겠지만,
천하가 돌아갈 곳을 모르신다면 를 보전하실 수 없겠습니다.”

齊王曰:
「天下何所歸?」
齊王이 물었다.
천하가 돌아갈 곳이 어느곳이오?”

曰:
「歸漢。」
酈生이 말하였다.
에게 돌아갑니다.”

曰:
「先生何以言之?」
齊王이 말하였다.
선생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오?”

曰:
酈生이 말하였다.

「漢王與項王力西面擊秦,約先入咸陽者王之。
漢王이 項王과 힘껏 서쪽으로 을 공격하되咸陽에 먼저 드는 자가 왕이 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漢王先入咸陽,項王負約不與而王之漢中。
漢王이 먼저 함양에 들자項王이 약속을 저버리고 함양을 주지 않고漢中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項王遷殺義帝,漢王聞之,起蜀漢之兵擊三秦,出關而責義帝之處,收天下之兵,立諸侯之後。
項王이 義帝를 내쫒아 죽임에漢王이 알고 蜀漢의 을 동원하여 三秦을 공격하고出關하여 의제를 살해한 죄를 따졌으며천하의 병사를 수습하고 각 제후의 후예를 세웠습니다.

降城即以侯其將,得賂即以分其士,與天下同其利,豪英賢才皆樂為之用。
성을 항복시키면 즉각 그 장수를 로 봉하고재물을 얻으면 바로 병사에게 나누어주어천하와 그 이익을 함께 하니영웅·호걸·현인·재사가 모두 漢王에게 기꺼이 기용되고자 합니다.

諸侯之兵四面而至,蜀漢之粟方船而下。
제후의 군대가 사방에서 왔으며촉한의 곡식이 지금 배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項王有倍約之名,殺義帝之負;
於人之功無所記,於人之罪無所忘;
戰勝而不得其賞,拔城而不得其封;
非項氏莫得用事;為人刻印,刓而不能授;
攻城得賂,積而不能賞:
天下畔之,賢才怨之,而莫為之用。
項王에게는 약속을 배반했다는 汚名과 의제를 살해했다는 배은망덕을 얻었으며,
남의 공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남의 죄는 잊어버리지 않고,
싸워서 이겨도 상을 받지 못하고성을 함락시켜도 봉토를 받지 못합니다.
항씨가 아니면 권력을 잡을 수가 없으며남을 위하여 侯印을 새기지만 그것이 닳도록 아까워서 주지 못합니다.
성을 공격하여 재물을 얻어도 쌓아둘 뿐 상으로 주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천하의 사람들이 배반하고현인과 재사들이 원망하매그에게 기용되려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故天下之士歸於漢王,可坐而策也。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가 漢王께 돌아감은 앉아서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夫漢王發蜀漢,定三秦;
涉西河之外,援上黨之兵;
下井陘,誅成安君;
破北魏,舉三十二城:
此蚩尤之兵也,非人之力也,天之福也。
漢王은 蜀漢에서 군대를 일으켜서 삼진을 평정하셨고,
西河를 건너 上黨의 군대를 지원하였고,
井陘을 점령하고 成安君 陳餘를 죽였으며,
北魏를 격파하여 32성을 함락하였습니다.
이것은 蚩尤의 군대와 같은 것으로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복입니다.

今已據敖倉之粟,塞成皋之險,守白馬之津,杜大行之阪,距蜚狐之口,天下後服者先亡矣。
지금 이미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시고成皋의 요새를 막으시고백마진을 지키고태행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시고비호의 입구를 장악하셨으니천하에서 나중에 복속하는 자는 먼저 멸망할 터입니다.

王疾先下漢王,齊國社稷可得而保也;
不下漢王,危亡可立而待也。」
왕께서 서둘러 漢王에게 항복하면 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漢王에게 항복하지 않음은 멸망을 서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田廣以為然,乃聽酈生,罷歷下兵守戰備,與酈生日縱酒。
田廣이 옳다고 여기고 酈生의 말을 따라서歷下軍의 수비를 풀고 酈生과 날마다 마음껏 술을 마셨다.

▶ 畫 : 계책.
▶ 義帝 : 楚義帝( ? ~ 기원전 206년). 서초의 황제. 秦 말기 시대 사람이며, 춘추전국시대 楚 懷王의 서얼 후손이었다. 기원전 206년에 項羽가 암살하였다.
▶ 責義帝之處 : 項羽가 강 가운데에서 義帝를 시해하였는데, 그 시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므로 漢王이 힐문한 것이다
▶ 遷殺 : 옮겨가는 도중에 암살하다.
▶ 賂 : 재물.
▶ 倍約 : 약속을 위배하다. 倍는 背와 통한다.
▶ 刓 : 모서리가 닳는 것이다. 封爵하는 印章을 비록 이미 새겨 놓았으나 손으로 만지작거려 모서리가 닳아도 차마 주지 못한 것이다. 刓은 玩과 통한다.
▶ 畔 : 叛과 통하여 배반하다. 반기를 들다.
▶ 坐而策 : 앉아서도 따져볼 수 있다.
▶ 蚩尤 : 중국의 여러 기록과 전설에서 헌원과 함께 탁록의 전투에서 싸웠다고 전해지는 전쟁의 신.
▶ 縱酒 : 술을 마구 마시다.

淮陰侯聞酈生伏軾下齊七十餘城,乃夜度兵平原襲齊。
淮陰侯가 酈生이 수레에 기댄 채로 의 70여 성을 항복시켰음을 듣고밤에 군대를 平原에 보내 를 급습하였다.

齊王田廣聞漢兵至,以為酈生賣己,乃曰:
「汝能止漢軍,我活汝;
不然,我將亨汝!」
齊王 田廣은 漢軍이 쳐들어옴을 듣고 酈生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말하였다.
네가 漢軍을 멈출 수 있다면 너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를 삶아 죽일 터이다!”

酈生曰:
「舉大事不細謹,盛德不辭讓。
而公不為若更言!」
酈生이 말하였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큰 덕을 가진 사람은 남의 비난을 사양하지 않는다.
공은 (한신에게 가서 그대를 위하여다시 유세한다고 여기지 말라!”

齊王遂亨酈生,引兵東走。
齊王은 결국 酈生을 삶아 죽이고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 伏軾 : 수레에 기댐. 伏은 기대는 것이고, 軾은 수레 앞턱의 횡목.
▶ 細謹 : 작은 일에 얽매이다.
▶ 亨 : 烹과 같다. 삶다. 큰 솥에 삶아 죽이는 혹형.
▶ 公不為若更言: 老子不会再为你去游说(韩信)了
▶ 引兵東走 : 제왕 田廣은 동쪽 高密로 달아났다. <사기 권 94. 田儋열전>

漢十二年,曲周侯酈商以丞相將兵擊黥布有功。
漢 12(기원전195)에 曲周侯 酈商이 승상으로서 군대를 거느리고 黥布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高祖舉列侯功臣,思酈食其。
高祖는 列侯와 공신을 선발함에역이기를 생각하였다.

酈食其子疥數將兵,功未當侯,上以其父故,封疥為高梁侯。
역이기의 아들 가 여러 차례 군대를 이끌었으되 戰功이 봉후에 해당하지 않았으나高祖는 그의 아버지 역이기 때문에 를 高梁侯에 봉하였다.

後更食武遂,嗣三世。
그 뒤에 다시 武遂를 식읍으로 주어 3대까지 계승하였다.

元狩元年中,武遂侯平坐詐詔衡山王取百斤金,當棄市,病死,國除也。
元狩 원년(기원전 122), 武遂侯 平이 조칙을 위조하여 衡山王에게 황금 100을 사취하는 죄에 연루되어棄市에 해당하였으나 병으로 죽으매봉국이 취소되었다.

▶ 漢十二年 : 漢高祖 12년. 기원전 195년.
▶ 舉 : 등용하다. 여기서는 토지를 分封한다는 뜻.
▶ 嗣 : 계승하다.
▶ 元狩元年 : 기원전 122년. 元狩는 漢武帝의 네 번째 年號이다.
▶ 坐詐詔 :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는 범죄에 연루되다.
▶ 棄市 : 고대 死刑의 일종으로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여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

 

 

2. 陸賈

 

 

陸賈(기원전 240년 ~ 기원전 170년)는 楚나라 사람으로 西漢 시기의 정치가이자 문학가, 사상가이다.
웅변에 능한 외교가로서도 역할을 감당하였는데, 南越王 尉他를 뛰어난 달변으로 漢나라에 복속시켰다.
유방에게도 문과 무가 조화를 이루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음을 설득하였고, <新語> 12편을 저술하여 국가 존망의 갖가지 모습을 약술하여 유방의 통치를 도왔다.
한 고조 유방의 사후에는 여태후의 전횡에 칭병하여 은퇴하고, 태위 강위와 승상 진평이 힘을 합하도록 주선하여 여태후 사후에 여씨로부터 유씨 황실을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陸賈者,楚人也。
陸賈는 楚 사람이다.

以客從高祖定天下,名為有口辯士,居左右,常使諸侯。
빈객의 신분으로 高祖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였으며이름이 有口辯士(말재간이 좋은 辯士)’로서 고조의 곁에 있으면서 늘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다.

及高祖時,中國初定,尉他平南越,因王之。
高祖 때에 이르러 천하가 막 평정되었을 때尉他가 南越을 평정하고 인하여 왕이 되었다.

高祖使陸賈賜尉他印為南越王。
高祖는 陸賈를 보내 위타에게 옥새를 주고 남월왕으로 삼으려 하였다.

陸生至,尉他魋結箕倨見陸生。
陸生이 남월에 도착하자 위타는 상투를 틀고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 陸生을 만났다.

▶ 有口 : 말재간. 말솜씨가 좋음.
▶ 辯士 : 입담이 좋아서 아주 능란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
▶ 尉他 : 趙佗. 기원전 257년? ~ 기원전 137년. 南越의 초대 왕으로, 秦의 항산군 眞定縣 사람이다. 秦 말기의 혼란기에 南海郡尉를 대행한 龍川縣令이었는데 남해군과 그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秦의 멸망과 함께 계림·상의 2군을 합쳐 南越國을 창건하고 武王이라 칭하였다.
▶ 南越 : 趙陀가 廣東·廣西의 省을 병합하여 베트남 북부지역에 세운 나라(기원전 203∼기원전 111)
▶ 魋結 : 상투. 椎髻(魋結)은 한 줌으로 묶은 상투의 모양이 椎와 같은 것이다. 오랑캐의 풍속은 본래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는데, 趙佗도 오랑캐의 풍속에 동화되었으나 머리털을 망치처럼 한 줌으로 묶은 것이다.
▶ 箕倨 : 두 다리를 뻗어 箕 모양으로 하다. 즉, 무례한 자세를 말한다.

 

陸生因進說他曰:
陸賈가 위타에게 유세하였다.

「足下中國人,親戚昆弟墳在真定。
족하께서는 中原人이어서 친척과 형제의 무덤이 眞定縣에 있습니다.

今足下反天性,棄冠帶,欲以區區之越與天子抗衡為敵國,禍且及身矣。
그런데 족하는 天性에 어긋나게 冠帶를 팽개치고보잘것없는 로 천자에게 대항하여 적국이 되려고 하니재앙이 곧 몸에 미칠 터입니다.

且夫秦失其政,諸侯豪桀并起,唯漢王先入關,據咸陽。
한편이 정치를 잘못하매 제후와 호걸이 함께 일어났지만오직 漢王께서 먼저 入關하여 함양을 점거하셨습니다.

項羽倍約,自立為西楚霸王,諸侯皆屬,可謂至彊。
項羽가 약속을 저버리고 스스로 西楚의 霸王이 되자 제후가 모두 복속하였으니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然漢王起巴蜀,鞭笞天下,劫略諸侯,遂誅項羽滅之。
그러나 漢王께서 巴蜀에서 일어나 천하를 채찍질하고 제후를 위협하여 마침내 項羽를 죽여 멸망시켰습니다.

五年之閒,海內平定,此非人力,天之所建也。
5년 사이에 천하를 평정하였으니이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세운 바입니다.

天子聞君王王南越,不助天下誅暴逆,將相欲移兵而誅王,天子憐百姓新勞苦,故且休之,遣臣授君王印,剖符通使。
천자께서는 군왕께서 남월의 왕이 되었음을 아십니다.
군왕께서는 천하가 난폭한 반역의 무리를 誅罰함을 돕지 않았으매將相이 군대를 움직여 君王을 주벌하려 하였습니다.
천자께서는 백성이 또다시 고생할까 가엽게 여기시어우선 그들을 만류하고신을 보내어 군왕에게 印綬를 주라고 符節을 나누어 사신으로 통하게 하였습니다.

君王宜郊迎,北面稱臣,乃欲以新造未集之越,屈彊於此。
君王께서는 교외에 나와서 영접하고 북면하여 稱臣하여야 하는데새로 세워져 아직 안정되지도 않은 월나라를 가지고 이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漢誠聞之,掘燒王先人冢,夷滅宗族,使一偏將將十萬眾臨越,則越殺王降漢,如反覆手耳。」
에서 이것을 안다면왕의 조상 무덤을 파헤쳐 불태우고 종족을 모두 죽일 터입니다.
偏將 한 사람에게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을 공격하게 하면은 왕을 죽이고 에 항복할 터이니손바닥을 뒤집음과 같을 뿐입니다.”

▶ 反天性 棄冠帶 : 부모의 나라를 배반하고 골육의 은혜를 무시하니 이것이 天性을 배반한 것이요, 머리털을 하나로 묶고서 蠻夷의 풍속을 따르니 이것이 冠帶를 버린 것이다.
▶ 區區之越 : 보잘것없는 월나라. 區區는 작다. 사소하다.
▶ 抗衡 : 抗은 마주 대한다는 뜻이고 衡은 수레 멍에 위의 가로 댄 나무이니, ‘抗衡’은 멍에 위의 두 가로 댄 나무가 서로 버티어 어느 한쪽도 피하거나 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 鞭笞 : 채찍 또는 곤장으로 때리다.
▶ 劫略 : =劫掠. 약탈하다. 위협이나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음.
▶ 剖符 :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져서 信標로 사용하였다.
▶ 北面 : 신하로서 임금을 섬김. 군주는 남면하고 신하는 북면한다.
▶ 屈強 : 倔強과 통하여 고집이 세다. 순순히 복종하지 않음을 말한다.
▶ 夷滅 : 멸하다.

於是尉他乃蹶然起坐,謝陸生曰:
「居蠻夷中久,殊失禮義。」
그러자 위타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陸賈에게 사과하며 말하였다.
오랑캐의 땅에 산 지 오래되어 예의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因問陸生曰:
「我孰與蕭何、曹參、韓信賢?」
인하여 陸賈에게 질문하였다.
나를 蕭何·曹參·韓信과 비교한다면 누가 더 현명합니까?”

陸生曰:
「王似賢。」
陸賈가 말하였다.
왕께서 현명한 듯합니다.”

復曰:
「我孰與皇帝賢?」
위타가 다시 물었다.
나를 황제와 비교한다면 누가 더 현명합니까?”

▶ 蹶然 : 놀라서 일어나는 모양.
▶ 蠻夷 : 남쪽 오랑캐. 고대 중원 밖의 소수민족.
▶ 蕭何、曹參、韓信 : 蕭何는 高祖 유방의 재상이며, 曹參은 高祖의 功臣이다. 조참은 소하와 더불어 高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 韓信은 前漢將인 淮陰侯 韓信을 말한다.

陸生曰:
「皇帝起豐沛,討暴秦,誅彊楚,為天下興利除害,繼五帝三王之業,統理中國。
陸賈가 대답하였다.
황제께서는 沛縣 豐邑에서 일어나시어 포악한 을 토벌하고 강성한 를 무찌르고천하를 위하여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없앴으며五帝와 三王의 대업을 계승하여 중국을 통일하여 다스립니다.

中國之人以億計,地方萬里,居天下之膏腴,人眾車轝,萬物殷富,政由一家,自天地剖泮未始有也。
중원은 인구가 수억이며영토가 사방 만 리이며천하의 기름진 땅에 위치하여 인구도 많고 수레도 많고 물산이 풍부하며정치가 황제의 집안에서 연유하매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今王眾不過數十萬,皆蠻夷,崎嶇山海閒,譬若漢一郡,王何乃比於漢!」
지금 왕의 인구가 수십만 명에 불과하며그나마 모두 오랑캐들이고영토는 험한 산과 바다 사이에 끼어 있어 의 一郡으로 비유되는데어찌 왕을 의 황제와 비교하겠습니까!”

尉他大笑曰:
「吾不起中國,故王此。
使我居中國,何渠不若漢?」
위타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중원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매이곳에서 왕노릇할 뿐이오.
내가 중원에 산다면 어찌 의 황제만 못하겠소?”

乃大說陸生,留與飲數月。
위타는 陸賈가 탐탁하여머무르게 하고 몇 달 동안 함께 술을 마셨다.

曰:
「越中無足與語,至生來,令我日聞所不聞。」
위타가 말하였다.
에는 그대가 올 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는데내가 듣지 못했던 것을 매일 듣게 하였소.”

賜陸生橐中裝直千金,他送亦千金。
陸生에게 자루에 천금 나가는 보물을 넣어주고 따로 천금을 보냈다.

陸生卒拜尉他為南越王,令稱臣奉漢約。
陸生이 마침내 위타를 남월왕에 제수하고稱臣하면서 의 制約을 받들게 하였다.

歸報,高祖大悅,拜賈為太中大夫。
돌아와서 보고하자 高祖가 매우 기뻐하며 陸賈를 太中大夫에 임명하였다.

▶ 五帝 : <史記>의 五帝本記에서는 黃帝, 顓頊, 帝嚳, 堯, 舜을 들고, 帝王世記에서는 少昊, 顓頊, 帝嚳, 堯, 舜을 들고, 周易에서는 伏羲, 神農, 黃帝, 堯, 舜을 가리킨다.
▶ 三王 : 중국 古代의 세 임금. 곧 夏의 禹王과 殷의 湯王과 周의 文王<또는 武王>을 일컫는 말.
▶ 膏腴 : 기름짐. 비옥함.
▶ 人衆車轝 : 사람도 많고 수레도 많다. 轝는 輿와 같으며 많다는 뜻.
▶ 殷富 : 풍성하고 넉넉함.
▶ 天地剖泮 : 천지개벽. 泮(반): 녹다. 흩어지다
▶ 橐中裝 : 밑이 있는 것이 囊(낭:자루)이고 밑이 없는 것이 橐(탁:전대)이다. 裝은 싼다는 뜻이다. 寶物은 가벼우나 값이 많이 나가므로 囊橐에 넣어 가지고 가기 때문에 “橐中裝”이라고 한 것이다.
▶ 太中大夫 : 郎中令은 궁중과 황실 내의 여러 官을 감독하고 통솔하는 직책이다. 그 아래에는 太中大夫, 中大夫, 諫大夫 등 3인의 대부가 있다. 이들은 모두 황제에 대한 자문의 역할을 하였다.

陸生時時前說稱詩書。
陸生은 때때로 황제 앞에서 <詩經>과 <尙書>를 말하고 인용하였다.

高帝罵之曰:
「乃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
高祖가 꾸짖었다.
내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어찌 시경과 상서를 일삼겠는가!”

陸生曰;
「居馬上得之,寧可以馬上治之乎?
陸生이 말하였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으셨지만 어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且湯武逆取而以順守之,文武并用,長久之術也。
또 湯王과 武王은 으로 취하여 으로 지켰으니文武를 병용함이 나라를 길이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昔者吳王夫差、智伯極武而亡;
秦任刑法不變,卒滅趙氏。
옛날에 吳王 夫差와 智伯은 무력을 지나치게 사용하여 멸망하였고,
은 형법에 맡겨 변화하지 않으매그것이 결국 趙氏를 멸망시켰습니다.

鄉使秦已并天下,行仁義,法先聖,陛下安得而有之?」
당시에 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仁義를 행하고 옛 성인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 어떻게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 時時 : 때때로.
▶ 詩書 : <詩經>과 <尚書>를 말한다.
▶ 乃公 : 이 어르신. 高祖 자신을 말한다.
▶ 湯武逆取而以順守之 : 탕왕과 무왕이 무력으로 정복하고 인의의 도를 행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 趙氏 : 秦王朝를 말한다. 진시황의 선조가 趙城을 봉읍으로 받았기에 조씨라 한 것이다. 史記 卷六. 秦始皇本紀에 성을 趙라 生始皇. 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生於邯鄲. 及生, 名爲政, 姓趙氏..
▶ 智伯 : 春秋時代 晉나라 六卿의 하나인 智瑤로 시호는 襄子이다. 趙氏․韓氏․魏氏와 함께 中行氏와 范氏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가장 강성한 세력을 보유하였으나, 趙襄子를 공격하다가 魏桓子와 韓康子의 협공을 받고 결국 패망하였다.

高帝不懌而有慚色,乃謂陸生曰:
「試為我著秦所以失天下,吾所以得之者何,及古成敗之國。」
高祖는 기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며 陸賈에게 말하였다.
시험 삼아 나를 위하여 이 천하를 잃은 까닭과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 무엇인지그리고 옛날에 성공하고 실패한 나라에 대하여 저술하시오.”

陸生乃粗述存亡之徵,凡著十二篇。
陸生이 이에 국가의 존망의 징후를 대략 기술하여 모두 12편을 지었다.

每奏一篇,高帝未嘗不稱善,左右呼萬歲,號其書曰
「新語」。
한 을 상주할 때마다 高帝가 좋다고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좌우의 사람들도 모두 만세를 외쳤는데그 책을 <新語>라고 하였다.

▶ 不懌 : 불유쾌함. 懌은 기뻐하다.
▶ 新語 : 前漢의 陸賈가 쓴 정치이론서. 高祖 유방이 평소에 이러한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新語>라고 한 것이다. 道基·術事·輔政·無爲·辨惑·愼微·資執·至德·懷慮·本行·明誡·思務 등 1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덕에 의한 王道政治를 존중하고 힘에 의한 覇道政治를 배격해야 하며 정치의 핵심은 修身에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옛 저서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 왔고, 특히 典例와 고사를 많이 사용하였다.

孝惠帝時,呂太后用事,欲王諸呂,畏大臣有口者,陸生自度不能爭之,乃病免家居。
孝惠帝 때 呂太后가 정권을 잡고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대신으로 말주변이 뛰어난 자를 두려워하였다陸生은 스스로 여태후와 논쟁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집에서 지냈다.

以好畤田地善,可以家焉。
好峙에 있는 전답이 肥沃하매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有五男,乃出所使越得橐中裝賣千金,分其子,子二百金,令為生產。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에 사신으로 갔을 때 얻은 자루 속의 보물을 팔아 천금을 만들어 아들에게 나누어 주되一人 당 2백 금으로 하여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다.

陸生常安車駟馬,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寶劍直百金,謂其子曰:
「與汝約:過汝,汝給吾人馬酒食,極欲,十日而更。
所死家,得寶劍車騎侍從者。
一歲中往來過他客,率不過再三過,數見不鮮,無久慁公為也。」
陸賈는 항상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탔으며歌舞를 하고 거문고를 타는 시종 10명을 거느리고, 1백 금의 값이 나가는 보검을 차고 다니며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과 약속하겠다.
너희에게 들르면 너희는 나의 人馬에게 술과 먹을 것을 공급해라욕심대로 하다가 열흘이 되면 옮겨가겠다내가 죽는 집에서 보검수레와 말시종들을 가져라.
1년 중에 왕래하며 다른 손님에게도 들르매대략 두세 번 訪問을 넘지 않을 터이다자주 보면 반갑지 않을 테니오래 묵어서 귀찮게 하는 늙은이가 되지 않겠다.”

▶ 孝惠帝 : 漢惠帝 劉盈. 전한의 제2대 황제. 高祖의 맏아들.
▶ 有口 : 말주변이 뛰어남.
▶ 橐中裝 : 寶物은 가벼우나 값이 많이 나가서 囊橐에 넣어 다니기 때문에 橐中裝이라고 한 것이다.
▶ 安車 : 앉아서 타고 가는 수레.
▶ 駟馬 :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 汝 : 너.
▶ 率 : 대략.
▶ 慁(흔) : 근심하다. 귀찮게 하다.

呂太后時,王諸呂,諸呂擅權,欲劫少主,危劉氏。
여태후 때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니 여씨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부리고어린 황제를 협박하여 유씨를 위태롭게 하였다.

右丞相陳平患之,力不能爭,恐禍及己,常燕居深念。
右丞相 陳平이 이것을 근심하였으나힘으로 싸울 수 없었고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늘 한가로이 지내면서 깊이 염려하였다.

陸生往請,直入坐,而陳丞相方深念,不時見陸生。
陸生이 부르기에 가서 곧장 들어가서 앉았지만陳丞相은 마침 깊이 생각에 잠겨陸生을 바로 발견하지 못하였다.

陸生曰:
「何念之深也?」
陸賈가 말하였다.
생각함이 어찌 그리 깊습니까?”

陳平曰:
「生揣我何念?」
진평이 말하였다.
선생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헤아려보시겠습니까?”

陸生曰:
「足下位為上相,食三萬戶侯,可謂極富貴無欲矣。
然有憂念,不過患諸呂、少主耳。」
陸生이 대답하였다.
족하의 지위가 右丞相이고 식읍이 3만 호인 열후이니부귀를 다하여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근심거리가 있다면 여씨와 어린 군주를 근심함에 불과하겠습니다.”

▶ 擅權 :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다.
▶ 陳平 : 前漢의 정치가로 처음에는 項羽를 섬겼으나 후에 한 高祖 유방을 섬겨 都尉가 되었고, 呂太后가 죽은 후 주발과 힘을 합하여 여씨 일족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 燕居 : 閑居하다.
▶ 揣(췌) : 헤아리다.

陳平曰:
「然。
為之柰何?」
진평이 말하였다.
그렇소.
그것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陸生曰:
「天下安,注意相;
天下危,注意將。
陸賈가 말하였다.
천하가 평안할 때는 재상을 주시하고,
천하가 위태로울 때는 장군을 주시합니다.

將相和調,則士務附;
士務附,天下雖有變,即權不分。
將相이 화목하고 협력한다면 사대부들이 따르려 힘쓰고,
사대부들이 따르려 힘쓰면 천하에 변란이 있더라도 권력이 분산되지 않을 터입니다.

為社稷計,在兩君掌握耳。
사직을 위한 계책은 두 분의 손바닥 한 줌에 있을 뿐입니다.

臣常欲謂太尉絳侯,絳侯與我戲,易吾言。
신은 항상 太尉 絳侯에게 말하고자 하였으나絳侯는 저와 농담하는 사이이매제 말을 가볍게 여깁니다.

君何不交驩太尉,深相結?」
그대는 어찌 태위와 친교를 맺어서 서로 깊이 단결하지 않으십니까?”

為陳平畫呂氏數事。
진평을 위하여 여씨에 대처하는 계책 몇 건을 일러주었다.

陳平用其計,乃以五百金為絳侯壽,厚具樂飲;太尉亦報如之。
진평이 그 계책에 써서 5백 금으로 絳侯를 祝壽하고가무 연회를 열어 후하게 대접하였고,
태위 역시 이와 같이 대접하였다.

此兩人深相結,則呂氏謀益衰。
이 두 사람이 깊이 結交하자여씨들의 음모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陳平乃以奴婢百人,車馬五十乘,錢五百萬,遺陸生為飲食費。
진평은 이에 노비 1백 명과 車馬 50, 5백만 을 음식비용으로 陸生에게 주었다.

陸生以此游漢廷公卿閒,名聲藉甚。
陸生는 이것으로써 漢 조정 公卿 사이에 교유하여 명성이 藉甚하였다.

▶ 務附 : 친근하게 따르다.
▶ 太尉降侯:周勃을 말한다. 周勃은 전한 초기의 武將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이다.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秦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呂后가 죽은 뒤 陳平 등과 함께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 戲 : 농담.


及誅諸呂,立孝文帝,陸生頗有力焉。
여씨 일족을 죽이고 孝文帝를 옹립함에陸生이 상당한 공을 세웠다.

孝文帝即位,欲使人之南越。
孝文帝가 즉위하자 南越에 사신을 보내려고 하였다.

陳丞相等乃言陸生為太中大夫,往使尉他,令尉他去黃屋稱制,令比諸侯,皆如意旨。
陳丞相 등이 추천하여 陸賈를 태중대부로 삼아 尉他에게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위타에게 黃屋과 稱制를 버리게 하여 제후와 동등하게 하니모두 황제의 뜻과 같았다.

語在南越語中。
이야기가 南越列傳에 있다.

陸生竟以壽終。
陸生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 孝文帝 : 漢文帝.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태후가 죽고 주발 · 진평 · 제애왕 · 성양경왕 등이 여씨 세력을 토벌하고 代王 劉恆을 한문제로 세웠다.
▶ 黃屋稱制 : 황제를 칭하며 분수에 넘는 행위. 黃屋은 황색비단으로 수레 덮개로 사용하는 것. 制는 황제의 명령을 말하며 황제가 직접 임석하여 그 의논을 보고 가부를 결단하는 것이다.
▶ 比 : 동등하다.
▶ 南越語中 : 史記 권113 南越列傳을 말한다.

 

 

3. 朱建

 

朱建(? ~ 기원전 177년)은 前漢 초의 정치가로, 楚나라 사람이다. 말재주가 뛰어나고 청렴 강직했다.
한때 淮南王 黥布의 재상으로 있었으며 경포가 반란에 실패한 후 고조 유방이 平原君으로 임명했다.
辟陽侯 審食其와 친교를 맺었으나 심이기가 여태후의 총애를 받다가 여태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죽임을 당하자 文帝 3년 淮南 麗王이 심이기를 죽였으며, 주건이 예전에 심이기가 죽임을 당할 것을 구할 계책을 세웠다고 문제가 체포하려고 하자 자살하였다.

平原君朱建者,楚人也。
平原君 朱建사람이다.

故嘗為淮南王黥布相,有罪去,後復事黥布。
일찍이 淮南王 黥布의 재상이었는데, 죄를 지어 떠났다가 뒤에 다시 黥布를 섬겼다.

布欲反時,問平原君,平原君非之,布不聽而聽梁父侯,遂反。
黥布謀反하려 할 때 평원군에게 물음에 평원군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으나, 黥布가 듣지 않고 梁父侯의 말을 듣고 마침내 모반하였다.

漢已誅布,聞平原君諫不與謀,得不誅。
黥布를 죽이고 나서, 평원군이 黥布에게 간언하고 모반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므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語在黥布語中。
이야기가 <黥布列傳>에 있다.

▶ 黥布 : 黥布는 본명이 英布( 미상 ~ BC 195년)이며, 前漢 六安 六縣 사람으로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하여 黥布로 불렸다. <사기 권91 黥布열전>

 

 

列傳권91-黥布列傳(경포열전)

黥布는 본명이 英布(미상 ~ BC 195년)이며, 前漢 六安 六縣 사람으로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해 黥布로 불렸다. 劉邦을 도와 전한을 세운 장군이다. 秦 말 陳勝의 난이 일어나자 무리를 이끌고 番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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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語在黥布語中 : 주건의 이야기가 黥布열전에 실려 있다고 하였지만, 黥布열전에는 朱建에 대한 기록은 없다.

 

平原君為人辯有口,刻廉剛直,家於長安。
평원군은 사람됨이 말재주가 좋았으며 엄격하고 청렴하며 강직하였고집이 長安에 있었다.

行不茍合,義不取容。
행동함에 구차하게 남에게 맞추지 않았고의리상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辟陽侯行不正,得幸呂太后。
辟陽侯 審食其의 행실이 바르지 않았지만 呂太后의 총애를 받았다.

時辟陽侯欲知平原君,平原君不肯見。
당시 벽양후가 평원군과 교제하려 하였으나 평원군은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及平原君母死,陸生素與平原君善,過之。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음에陸生은 평소에 평원군과 사이가 좋았으므로 문상하러 갔다.

平原君家貧未有以發喪方假貸服具陸生令平原君發喪
평원군은 집이 가난하여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마침 상복과 장례도구를 빌리려던 참이어서陸生은 평원군이 장례를 치르게 해주었다.

▶ 辟陽侯 : 審食其( ? ~ 기원전 177년) 劉邦과 동향인으로, 漢의 개국공신이 되어 辟陽侯에 봉해졌다. 유방이 기원전 205년 彭城에서 패배하였을 때 유방의 가족인 太公과 呂后를 호송하다가 함께 사로잡혀 인질이 되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여후의 신임을 받았다. 高帝가 붕어하자 여후와 함께 發喪을 막고 공신들을 제거하려 도모하기도 하였다. 여후가 聽政하자 좌승상에 임명되었으며, 詔令의 출납을 장악하여 공경대신들이 모두 그를 통하여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로 인하여 심이기와 여후를 내연의 관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文帝 때 淮南 厲王 劉長에게 피살되었다.
▶ 苟合 : 구차스레 남의 비위에 맞게 행동함. 부화뇌동하다.
▶ 取容 : 비위를 맞추다.
▶ 呂太后 : 高祖의 황후.
▶ 知 : 교제하다. 친교를 맺다.

 

陸生往見辟陽侯,賀曰:
「平原君母死。」
陸生이 벽양후를 찾아가서 축하하였다.
평원군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소.”

辟陽侯曰:
「平原君母死,何乃賀我乎?」
벽양후가 말하였다.
평원군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왜 나에게 축하하시오?”

陸賈曰:
「前日君侯欲知平原君,平原君義不知君,以其母故。
今其母死,君誠厚送喪,則彼為君死矣。」
陸賈가 말하였다.
예전에 君侯께서 평원군과 사귀려 하였지만평원군이 의리를 지켜 君侯와 사귀지 않았음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소.
그런데 그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그대가 진실로 후하게 조문하면그는 君侯를 위하여 죽을 터이오.”

辟陽侯乃奉百金往稅。
이에 벽양후가 100금을 받들고 가서 조의금을 냈다.

列侯貴人以辟陽侯故,往稅凡五百金。
열후와 귀인들이 벽양후로 인하여 가서 조의금을 내니 모두 5백 금이었다.

▶ 往稅 : 찾아가 조의금을 내다.

辟陽侯幸呂太后,人或毀辟陽侯於孝惠帝,孝惠帝大怒,下吏,欲誅之。
벽양후가 여태후의 총애를 받자누군가 효혜제에게 벽양후를 (여태후와 사통하고 있다고헐뜯으매효혜제가 크게 노하여 형리에게 넘겨 죽이려 하였다.

呂太后慚,不可以言。
여태후는 부끄러워 말을 할 수 없었다.

大臣多害辟陽侯行,欲遂誅之。
대신 중에 벽양후의 추행을 꺼리는 자가 많으매마침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辟陽侯急,因使人欲見平原君。
벽양후가 다급하였으므로 사람을 보내 평원군을 만나려고 하였다.

平原君辭曰:
「獄急,不敢見君。」
평원군이 사양하였다.
재판이 臨迫하매 감히 그대를 만나지 못합니다.”

乃求見孝惠幸臣閎籍孺,說之曰:
평원군은 효혜제의 총신 閎籍襦를 만나자고 하여 설득하였다.

「君所以得幸帝,天下莫不聞。
그대가 황제의 총애를 받음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소.

今辟陽侯幸太后而下吏,道路皆言君讒,欲殺之。
지금 벽양후가 태후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하여 형리에게 넘겼는데사람들이 모두 그대가 참소하여 그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오.

今日辟陽侯誅,旦日太后含怒,亦誅君。
오늘 벽양후를 죽이면내일 태후께서 분노를 머금고 그대도 죽일 터이오.

何不肉袒為辟陽侯言於帝?
어찌하여 肉袒하고 벽양후를 위하여 황제께 말하지 않소?

帝聽君出辟陽侯,太后大驩。
황제께서 그대의 청을 듣고 벽양후를 풀어준다면 태후께서 크게 기뻐하실 터이오.
兩主共幸君,君貴富益倍矣。」
두 주군께서 함께 그대를 총애하여그대의 부귀가 배가될 터이오.

於是閎籍孺大恐,從其計,言帝,果出辟陽侯。
이에 굉적유가 크게 두려워하여 그의 계책을 따라 황제에게 진언하니 과연 벽양후를 풀어주었다.

辟陽侯之囚,欲見平原君,平原君不見辟陽侯,辟陽侯以為倍己,大怒。
벽양후는 감옥에 끌려갈 때 평원군을 만나려 하였으나 평원군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평원군이 자기를 배반하였다고 여기고 크게 노하였다.

及其成功出之,乃大驚。
그가 성공하여 구출해 주자크게 놀랐다.

▶ 害 : 분하게 여기다. 꺼리다
▶ 閎籍孺 : 高祖 劉邦의 男寵(남색으로 총애를 받는 남자)이었다.
▶ 道路 :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즉 사람들.
▶ 肉袒 :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旦日 : 내일 아침.

呂太后崩,大臣誅諸呂,辟陽侯於諸呂至深,而卒不誅。
여태후가 붕어하자 대신들이 여씨 일족을 죽임에벽양후는 여씨 일족과 매우 깊은 관계였으나 끝내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計畫所以全者,皆陸生、平原君之力也。
계획으로써 벽양후를 온전하게 함은 모두 陸生과 평원군의 힘이었다.

孝文帝時,淮南厲王殺辟陽侯,以諸呂故。
孝文帝 때 淮南의 厲王은 벽양후를 죽였는데 여씨들 때문이었다.

文帝聞其客平原君為計策,使吏捕欲治。
孝文帝가 벽양후의 빈객인 평원군이 계책을 세웠음을 알고刑吏에게 체포하게 하여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다.

聞吏至門,平原君欲自殺。
형리가 집에 도착했음을 알고 평원군이 자살하려고 하였다.

諸子及吏皆曰:
「事未可知,何早自殺為?」
아들들과 관리가 모두 말하였다.
일을 아직 알 수 없는데 어찌하여 일찍 자살하려 하십니까?”

平原君曰:
「我死禍絕,不及而身矣。」
평원군이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재앙이 끊어져화가 몸에 미치지 않을 터이다.”

遂自剄。
이어 自刎하였다.

▶ 淮南厲王殺辟陽侯 : 淮南 厲王 劉長(기원전 199년 ~ 기원전 174년)은 전한 초기의 제후왕으로 高帝의 7남이다. 高帝 8년(기원전 199년), 高帝는 趙를 들렀다. 趙王 장오는 자신의 측실 趙씨를 高帝에게 바쳤고, 조씨는 총애를 받아 아이를 배었다. 그러나 그때 장오의 신하 관고 등이 高帝를 암살하려 함이 발각되었고, 장오와 조씨도 체포되었다. 조씨는 高帝의 아들을 임신했음을 말하였으나, 高帝는 풀어주지 않았다. 이에 조씨의 남동생 趙兼이 심이기를 통하여 여후에게 목숨을 구걸하였으나, 여후는 질투심을 품어 高帝에게 말하지 않았고 심이기 또한 그다지 애쓰지 않았다. 결국 조씨가 노하여 유장을 출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高帝는 이를 후회하여 여후로 하여금 유장을 친자식처럼 키우게 하였다.
문제 3년(기원전 177년) 회남왕이 입조하여 평소 심이기를 어머니의 원수로 여겨 원망하던 심이기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심이기는 뵈러 나왔다가 회남왕이 휘두른 철추에 맞았고, 회남왕의 종자 魏敬이 목을 베었다.<사기 권 118. 淮南衡山列傳>
▶ 治 : 治罪. 죄를 다스리다.
▶ 自剄 : 칼로 자기 목을 찌르다. 자결하다.

孝文帝聞而惜之,曰:
「吾無意殺之。」
孝文帝가 듣고 애석해하며 말하였다.
나에게 그를 죽일 뜻이 없었다.”

乃召其子,拜為中大夫。
이에 그의 아들을 불러서 中大夫에 임명하였다.

使匈奴,單于無禮,乃罵單于,遂死匈奴中。
그의 아들은 匈奴에 사신으로 가니 單于가 무례하게 대하매선우를 꾸짖었다가 결국 흉노 땅에서 죽었다.

▶ 單于 : 흉노가 자기 군주를 높이어 부르던 칭호.


4. 高陽酒徒 酈食其

 

初,沛公引兵過陳留,酈生踵軍門上謁曰:
「高陽賤民酈食其,竊聞沛公暴露,將兵助楚討不義,敬勞從者,願得望見,口畫天下便事。」
당초 沛公 군대를 이끌고 陳留를 들리니酈生이 軍門에 이르러 명함을 올리며 말하였다.
高陽의 천민 酈食其는 삼가 沛公께서 비바람에 노출되며 군대를 이끌고 를 도와 불의를 토벌함을 들었으매삼가 따르는 사람을 위로하고沛公을 멀리서 뵙고서 천하를 이롭게 할 일을 劃定하고자 합니다.”

使者入通,沛公方洗,問使者曰:
「何如人也?」
사자가 들어가서 통보하니 沛公은 마침 발을 씻고 있다가 사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냐?”

使者對曰:
「狀貌類大儒,衣儒衣,冠側注。」
사자가 대답하였다.
용모는 대학자 따위로선비의 옷을 입고側注冠을 쓰고 있습니다.”

沛公曰:
「為我謝之,言我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
沛公이 말하였다.
나 대신 그에게 사과하고 말하기를내가 지금 천하를 도모하매선비를 만날 겨를이 없다고 하라.”

使者出謝曰:
「沛公敬謝先生,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
사자가 나와서 사과하였다.
沛公께서 선생께 삼가 사죄하시며지금은 천하를 도모하기 때문에 선비를 만날 겨를이 없다고 하십니다.”

酈生瞋目案劍叱使者曰:
「走!
復入言沛公,吾高陽酒徒也,非儒人也。」
酈生이 눈을 부릅뜨고 검을 잡고 사자를 꾸짖었다.
달려가시오!
다시 들어가서 沛公께 말하기를,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선비가 아니오.’라고 하시오.”

▶ 陳留 : 留는 鄭의 고을인데, 뒤에 陳에서 병합하였으므로, 陳留라고 한다.
▶ 踵軍門 : 군문 앞에 이르다. 踵은 이르다.
▶ 上謁 : 알현하다. 여기서의 謁은 名片.
▶ 暴露 : 비바람에 露出됨. 따가운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野營함을 말한다.
▶ 便事 : 大事.
▶ 冠側註 : 側注冠. 유생들이 쓰는 관으로 高山冠이라고도 한다.
▶ 瞋目 : 두 눈을 부릅뜸.
▶ 高陽酒徒 : 高陽의 술꾼이라는 뜻으로, 酈易其가 자신을 이른 말로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하게 되었다.

使者懼而失謁,跪拾謁,還走,復入報曰:
「客,天下壯士也,叱臣,臣恐,至失謁。

『走!
復入言,而公高陽酒徒也』。」
사자가 두려워하여 명함을 놓쳤다가 허리를 굽혀 명함을 줍고돌아서서 달려다시 들어가서 아뢰었다.
손님은 천하의 장사입니다을 꾸짖었는데 저는 두려운 나머지 명함을 떨어뜨렸습니다.
달려가시오!
다시 들어가서고양의 술꾼이라고 전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沛公遽雪足杖矛曰:
「延客入!」
沛公이 황급히 맨발로 창을 잡고서 말하였다.
손님을 인도하여 들여라!”

酈生入,揖沛公曰:
「足下甚苦,暴衣露冠,將兵助楚討不義,足不何不自喜也?
酈生이 들어와서 沛公에게 하고 말하였다.
족하께서 몹시 고생하기를 옷은 햇빛에 쏘이고 관은 이슬에 젖으며군대를 이끌고 를 도와 불의를 정벌하시는데족하께서 어찌 스스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臣願以事見,而曰
『吾方以天下為事,未暇見儒人也』。
이 일 때문에 뵙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지금 천하를 도모하기 때문에선비를 만날 겨를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夫足下欲興天下之大事而成天下之大功,而以目皮相,恐失天下之能士。
무릇 족하께서 천하의 대업을 일으켜 천하의 큰 공을 세우려 하시면서눈으로 겉모습만 보시니천하의 유능한 선비를 놓칠까 염려됩니다.

且吾度足下之智不如吾,勇又不如吾。
또 제가 판단하기에족하의 지혜가 저만 못하고용기 또한 저만 못합니다.

若欲就天下而不相見,竊為足下失之。」
만약 족하께서 천하의 대업을 이루려 하면서 저를 만나 주시지 않으면삼가 족하께서 실수한다고 여깁니다.”

沛公謝曰:
「鄉者聞先生之容,今見先生之意矣。」
沛公이 사과하였다.
아까는 선생의 용모를 들었을 뿐이나지금은 선생의 뜻을 알았소.”

乃延而坐之,問所以取天下者。
그리고 酈生을 이끌어 자리에 앉히고 천하를 취할 방법을 물었다.

▶ 雪足 : 맨발. 물기를 닦은 발을 말한다.
▶ 自喜 : 스스로 기쁨에 젖다.
▶ 鄉 : 向과 같다. 지난 번. 아까.

 

酈生曰:
「夫足下欲成大功,不如止陳留。
酈生이 말하였다.
무릇 족하께서 큰 공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陳留에 머무르심이 낫습니다.

陳留者,天下之據衝也,兵之會地也,積粟數千萬石,城守甚堅。
진류는 천하의 요충지이며군사들이 모이는 땅이며쌓아둔 양곡이 수천만 석이고성의 수비가 대단히 견고합니다.

臣素善其令,願為足下說之。
제가 평소에 그곳의 현령과 친분이 있으니 족하를 위하여 그를 설득하겠습니다.

不聽臣,臣請為足下殺之,而下陳留。
제 말을 듣지 않는다면제가 족하를 위하여 그를 죽여 진류를 항복시키겠습니다.

足下將陳留之眾,據陳留之城,而食其積粟,招天下之從兵;
從兵已成,足下橫行天下,莫能有害足下者矣。」
족하는 진류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류성을 점거한 후에그곳에 쌓아놓은 식량을 먹으면서 천하에서 따르는 군사를 모집하십시오.
군사를 모집하신 후에 족하께서 천하를 횡행하시면능히 족하를 방해할 자는 아무도 없겠습니다.”

沛公曰:
「敬聞命矣。」
沛公이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깨우쳤소.”

於是酈生乃夜見陳留令,說之曰:
「夫秦為無道而天下畔之,今足下與天下從則可以成大功。
今獨為亡秦嬰城而堅守,臣竊為足下危之。」
이에 酈生은 그날 밤 진류 현령을 만나 그를 설득하였다.
무릇 이 무도하여 천하가 배반하니지금 그대가 천하의 제후와 더불어 따른다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터이오.
그런데도 혼자서 망해가는 을 위하여 성을 둘러싼 채 굳게 지킨다면은 삼가 그대가 위태로울 터이라고 생각하오.”

陳留令曰:
「秦法至重也,不可以妄言,妄言者無類,吾不可以應。
先生所以教臣者,非臣之意也,願勿復道。」
진류 현령이 말하였다.
의 법은 매우 엄하여 망언하지 못하게 하여망언하는 사람은 멸족당할 터이매나는 응할 수 없소.
그대가 나에게 가르친 바는 나의 뜻이 아니니 다시는 말하지 마시오.”

酈生留宿臥,夜半時斬陳留令首,踰城而下報沛公。
酈生은 그곳에 머물러 자다가 한밤중에 진류 현령의 머리를 베고 성을 넘어와서 沛公에게 보고하였다.

沛公引兵攻城,縣令首於長竿以示城上人,曰:
「趣下,而令頭已斷矣!
今後下者必先斬之!」
沛公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고진류 현령의 머리를 장대에 매달아서 성 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빨리 항복하라너희 縣令의 머리는 이미 잘렸다!
그런데도 뒤늦게 항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베겠다!”

於是陳留人見令已死,遂相率而下沛公。
이에 진류현 사람들은 현령이 이미 죽었음을 보고 서로 이끌며 沛公에게 항복하였다.

沛公舍陳留南城門上,因其庫兵,食積粟,留出入三月,從兵以萬數,遂入破秦。
沛公은 진류 남쪽 성문 위에 주둔하면서그 부고의 병기를 이용하고축적된 식량을 먹으며머무르고 출입하기를 3개월모인 군사가 만 명에 달하였고마침내 에 들어가서 깨뜨렸다.

▶ 嬰城而堅守 : 성을 둘러싸고 항복하지 않고 굳게 지킴.
▶ 無類 : 하나도 남기지 않음. 滅族하다.
▶ 縣 : 懸과 같다. 매달다.

▶ 趣下 : 빨리 항복하다. 趣는 재촉할 ‘촉’. 빨리.
▶ 相率 : 잇따르다.

太史公曰:
世之傳酈生書,多曰漢王已拔三秦,東擊項籍而引軍於鞏洛之閒,酈生被儒衣往說漢王。
乃非也。
自沛公未入關,與項羽別而至高陽,得酈生兄弟。
余讀陸生新語書十二篇,固當世之辯士。
至平原君子與余善,是以得具論之。
태사공은 말한다.
세상에 전하는 酈生에 관한 책에는 대부분 말하기를, ‘漢王이 이미 三秦을 함락시킨 뒤 동쪽으로 項籍을 공격하고군대를 이끌고 鞏縣과 洛陽 사이에 물러나 있을 때酈生이 유생의 옷을 입고 漢王에게 가서 유세하였다.’라고 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沛公이 아직 入關하지 않고項羽와 별도로 高陽에 이르렀을 때 酈生 형제를 얻었다.
내가 陸賈의 <新語> 12편을 읽어보니 과연 당시의 辯士였다.
平原君의 아들에 이르러나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朱建을 상세하게 거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