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95-樊酈滕灌列傳(번역등관열전)

耽古樓主 2023. 8. 25. 18:08

 

樊酈滕灌列傳은 樊噲酈商滕公 夏侯嬰灌嬰 네 사람의 合傳이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유방의 휘하에서 武功을 세운 장수들이며, 미천한 신분이었다가 秦 말기의 혼란한 틈을 타서 영웅이 됨이 공통점이다
이편에서는 주로 네 사람의 공적을 기술하고 있다.

樊噲는 沛縣 출신으로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劉邦이 군사를 일으킬 때 무장으로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유방과 項羽의 鴻門의 연회에서 유방이 項羽에게 살해될 위기에서 극적으로 유방을 구해내었다
유방이 皇帝로 즉위한 뒤 左丞相相國이 되었으며 그 후 여러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舞陽侯에 봉해졌다.


1.樊噲

 

舞陽侯樊噲者,沛人也。
舞陽候 樊噲는 沛縣 사람이다.

以屠狗為事,與高祖俱隱。
개 도살을 생업으로 하면서 高祖와 함께 은둔하고 있었다.

初從高祖起豐,攻下沛。
처음에 樊噲는 高祖를 따라 豊縣에서 起兵하여 沛縣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高祖為沛公,以噲為舍人。
高祖가 沛公이 되자 樊噲를 舍人으로 삼았다.

從攻胡陵、方與,還守豐,擊泗水監豐下,破之。
沛公을 따라 胡陵과 方輿를 공격하고 돌아오다가 豊縣城을 지키면서泗水郡의 郡監을 풍현성에서 격파하였다.

復東定沛,破泗水守薛西。
다시 동쪽으로 패현을 평정하고 薛縣 서쪽에서 泗水 郡守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與司馬夷戰碭東,卻敵,斬首十五級,賜爵國大夫。
章邯의 부하 司馬夷와 碭縣 동쪽에서 싸워 적을 물리치고, 15을 참수하고 國大夫의 작위를 받았다.

常從,沛公擊章邯軍濮陽,攻城先登,斬首二十三級,賜爵列大夫。
늘 沛公을 隨從하였으며 沛公이 濮陽縣에서 章邯의 군대를 공격함에성을 공략함에 가장 먼저 올라서 23급을 참수하니 列大夫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復常從,從攻城陽,先登。
다시 항상 沛公을 따르며 城陽縣을 공략할 때도 가장 먼저 성에 올라갔다.

下戶牖,破李由軍,斬首十六級,賜上閒爵。
戶牖鄕을 함락하고李由의 군사를 격파하여 16급을 참수하니 上間爵의 벼슬을 내렸다.

從攻圍東郡守尉於成武,卻敵,斬首十四級,捕虜十一人,賜爵五大夫。
沛公을 따라 成武縣에서 東郡의 郡守와 郡尉를 공격하고 포위하여 적을 물리쳤으며, 14급을 참수하고, 11인을 捕虜하니 五大夫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從擊秦軍,出亳南。
沛公을 따라 秦軍를 공격하고땅 남쪽으로 나아갔다.

河閒守軍於杠里,破之。
杠里에 주둔하고 있던 河間郡 郡守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擊破趙賁軍開封北,以卻敵先登,斬候一人,首六十八級,捕虜二十七人,賜爵卿。
開封 북쪽에 주둔하던 趙賁의 군대를 쳐부숨에적을 물리치고 먼저 성에 올라가서 척후병 1인과 68급을 참수하고, 27인을 捕虜하니 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從攻破楊熊軍於曲遇。
沛公을 따라 曲遇에 주둔하고 있던 楊熊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攻宛陵,先登,斬首八級,捕虜四十四人,賜爵封號賢成君。
宛陵을 공격함에가장 먼저 성에 올라서 8급을 참수하고, 44명의 捕虜하니 賢成君의 봉호를 하사하였다.

從攻長社、轘轅,絕河津,東攻秦軍於尸,南攻秦軍於犨。
沛公을 따라 長社와 轘轅을 공격하고 황하의 나루를 봉쇄하였으며동쪽으로 에 주둔하고 있던 秦軍을 공격하였고남쪽으로 에 주둔하고 있던 秦軍을 공격하였다.

破南陽守齮於陽城。
남쪽으로 陽城縣에 있던 南陽郡守 呂齮를 격파하였다.

東攻宛城,先登。
동쪽으로 宛縣城을 공격하였는데 가장 먼저 성에 올랐다.

西至酈,以卻敵,斬首二十四級,捕虜四十人,賜重封。
서쪽으로 酈縣에 이르러 적을 물리치고, 24급을 참수하고 40명을 捕虜하여 재차 녹봉을 받았다.

攻武關,至霸上,斬都尉一人,首十級,捕虜百四十六人,降卒二千九百人。
武關을 공격하고覇上에 이르러 都尉 한 명과 10급을 참수하고 46명을 捕虜하고병사 2천 9백 명을 항복시켰다.

▶ 為事 : 생업으로 하다. 생계를 꾸려 나가다.
▶ 高祖 : 劉邦을 말한다. 자는 季이고, 廟號는 원래 太祖인데 司馬遷이 史記에서 高祖라 칭한 뒤로 통칭이 되었으며, 황제가 되기 전에는 漢王으로 황제가 된 뒤에는 高祖로 표현하였다.
▶ 沛公 : 漢 高祖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칭호. 劉邦.
▶ 舍人 : 측근. 시종.
▶ 從 : 본문 중에서는 劉邦을 따라가다는 의미.
▶ 卻敵 : 적을 물리치다.

項羽在戲下,欲攻沛公。
項羽가 戱下에 주둔하며 沛公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沛公從百餘騎因項伯面見項羽,謝無有閉關事。
沛公은 1백여 를 거느리고 項伯을 통하여 項羽를 만나서函谷關을 봉쇄하는 일이 없겠다고 사죄하였다.

項羽既饗軍士,中酒,亞父謀欲殺沛公,令項莊拔劍舞坐中,欲擊沛公,項伯常屏蔽之。
項羽가 병사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술자리가 무르익으면亞父가 沛公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며서項莊에게 명령하여 좌중에서 칼춤을 추다가 沛公을 죽이려고 하였지만항백이 항상 沛公을 막고 있었다.

時獨沛公與張良得入坐,樊噌在營外,聞事急,乃持鐵盾入到營。
당시에 沛公이 홀로 張良과 좌석에 들어갈 수 있었고樊噲는 군영 밖에 있다가 사태가 급박함을 듣고이에 철 방패를 들고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

營衛止噲,噲直撞入,立帳下。
군영의 衛士가 樊噲를 저지하자樊噲가 곧장 돌진하여 장막 아래에 섰다.

項羽目之,問為誰。
項羽가 눈짓하며 누구냐고 물었다.

張良曰:
「沛公參乘樊噲。」
張良이 말하였다.
沛公의 參乘 樊噲입니다.”

項羽曰:
「壯士。」
項羽가 말하였다.
장사로다.”

賜之卮酒彘肩。
술 한 대접과 돼지 넓적다리를 하사하였다.

噲既飲酒,拔劍切肉食,盡之。
樊噲는 술을 마신 뒤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서 다 먹어치웠다.
項羽曰:
「能復飲乎?」
項羽가 물었다.
더 마실 수 있는가?”

噲曰:
「臣死且不辭,豈特卮酒乎!
且沛公先入定咸陽,暴師霸上,以待大王。
大王今日至,聽小人之言,與沛公有隙,臣恐天下解,心疑大王也。」
樊噲가 대답하였다.
신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거늘어찌 단지 술 한 대접뿐이겠습니까!
그런데 沛公께서 먼저 入關하여 咸陽을 평정하였지만군사를 霸上에 노숙시키면서 대왕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대왕께서는 오늘 도착하여 小人의 말을 듣고 沛公과 사이가 벌어지게 하시니신은 천하가 분열되고 대왕을 의심할까 걱정됩니다.”

項羽默然。
項羽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沛公如廁,麾樊噲去。
沛公이 측간을 가면서 손짓하여 樊噲에게 가자고 하였다.

既出,沛公留車騎,獨騎一馬,與樊噲等四人步從,從閒道山下歸走霸上軍,而使張良謝項羽。
군영을 벗어나자 沛公은 車騎를 남겨둔 채 혼자 말을 탔고樊噲 등 4은 걸어서 뒤따르며산 아래 샛길을 따라 霸上의 군영으로 달려서 돌아오고張良을 시켜 項羽에게 사과하라 하였다.

項羽亦因遂已,無誅沛公之心矣。
項羽 역시 이미 지난 일이라 沛公을 죽이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是日微樊噲奔入營譙讓項羽,沛公事幾殆。
이날 樊噲가 군영에 달려들어 項羽를 꾸짖지 않았다면沛公의 대업은 위태로웠을 터이다.

▶ 項伯 : 秦 말기 下相 사람. 項羽의 숙부로, 이름은 纏이고, 伯은 자다. 일찍이 죄를 지었는데, 張良이 구해준 적이 있었다. 項羽를 따라 병사를 일으켜 秦을 공격하고, 楚 左令尹이 되었다. 劉邦이 咸陽에 들어온 뒤 范增의 계책에 따라 鴻門宴에서 項莊이 劍舞를 추면서 劉邦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가 전날 밤에 이 사실을 張良에게 알려주고, 당일 항장과 함께 춤을 추면서 몸으로 막아 유방이 달아나도록 도왔다. 나중에 高祖 7년(기원전 200년) 射陽侯에 봉해지고, 유씨 성을 받았다.
▶ 閉關事 : 유방이 함양으로 진입한 이후 관중의 왕이 되려고 군사를 보내 函谷關을 지키게 하였다. 項羽는 秦의 땅을 공략하여 평정하였으나 函谷關은 수비병이 지키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沛公이 이미 함양을 격파했다는 소식을 듣자 項羽는 크게 노하여 당양군에게 函谷關을 공격하게 하였다. 項羽가 函谷關에 들어가 희수 서쪽에 이르렀다. 沛公은 覇上에 주둔하고 있어 項羽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기 권7. 項羽本紀>
▶ 亞父 : 項羽의 군사고문인 范增의 존칭. 項羽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여 叔父와 비슷한 말로 ‘亞父’라 불렀다. 鴻門에서 項羽가 劉邦을 불러 잔치를 벌였을 때, 范增은 項羽의 삼촌 項莊을 사주하여, 술자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엿보아 유방을 찔러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 樊噲가 이를 알고 뛰어 들어와 큰소리치는 바람에 유방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 項莊拔劍舞坐中 : 項莊이 검을 뽑아 일어나 춤을 추자, 項伯 또한 검을 뽑아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항상 몸으로 沛公을 좌우에서 엄호하여 項莊이 유방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通鑑節要 卷之四 漢紀>
▶ 參乘 : 驂乘. 높은 사람을 모시고 陪乘. 경호원.
▶ 卮酒彘肩 : 큰 술잔과 돼지 넓적다리. 卮는 고대의 바닥이 둥근 술잔. 彘는 돼지.
▶ 暴師 : 군대가 비바람과 햇빛을 받음을 말한다. 暴은 曝과 같다.
▶ 如 : ~에 이르다.
▶ 麾 : 揮와 통하여 손짓을 하다.
▶ 微 : 하지 않다.
▶ 譙讓 : 꾸짖다. 비난하다.
▶ 幾殆 : 위태롭다.

明日,項羽入屠咸陽,立沛公為漢王。
다음날項羽는 함양에 입성하여 도륙하고 沛公을 漢王으로 삼았다.

漢王賜噲爵為列侯,號臨武侯。
漢王은 樊噲에게 列候의 작위를 내리고 臨武侯라고 하였다.

遷為郎中,從入漢中。
郎中으로 승진하였고漢王을 따라 漢中으로 들어갔다.

還定三秦,別擊西丞白水北,雍輕車騎於雍南,破之。
漢王이 회군하여 三秦을 평정함에樊噲는 단독으로 白水 북쪽에서 西縣 縣丞의 군대를 공격하였으며雍縣 남쪽에서 雍王의 경전차와 경기병을 격파하였다.

從攻雍、斄城,先登。
漢王을 따라 옹현과 斄城을 공격함에 가장 먼저 성에 올라갔다.

擊章平軍好畤,攻城,先登陷陣,斬縣令丞各一人,首十一級,虜二十人,遷郎中騎將。
好畤縣에서 章平의 군대를 공격할 때성을 공격함에 가장 먼저 올라가 진지를 함락하고현령과 현승 각각 한 사람적군 11명을 참수하였고, 20명을 사로잡아서 郎中騎將으로 승진하였다.

從擊秦車騎壤東,卻敵,遷為將軍。
樊噲가 漢王을 따라 壤鄕 동쪽에서 의 車騎를 공격하여 적을 물리치고 장군으로 승진하였다.

攻趙賁,下郿、槐裏、柳中、咸陽;
灌廢丘,最。
秦將 趙賁을 공격하여 ·槐里·柳中·咸陽을 함락하였고,
廢丘를 수몰시킴은 樊噲의 최고의 공적이었다.

至櫟陽,賜食邑杜之樊鄉。
櫟陽縣에 이르러 식읍으로 杜縣의 樊鄕을 받았다.

從攻項籍,屠煮棗。
漢王을 따라 項羽를 공격하여 煮棗 땅을 도륙하였다.

擊破王武、程處軍於外黃。
外黃縣에서 王武와 程處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攻鄒、魯、瑕丘、薛。
··瑕丘·을 공략하였다.

項羽敗漢王於彭城,盡復取魯、梁地。
項羽가 彭城에서 漢王을 무찌르고 와 梁 땅을 모두 수복하였다.

▶ 遷 : 승진하다.
▶ 西丞 : 西縣의 縣丞.
▶ 雍王 : 秦 趙高의 迫害를 피하여章邯은 병사들을 이끌고 項羽에게 투항하였으며, 項羽는 章邯을 雍王으로 삼았다. 雍은 雍縣.
▶ 食邑 :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
▶ 灌廢丘,最 : 기원전 205년 漢軍의 기습에 패한 章邯은 廢丘, 지금의 陝西省 興平로 물러나 城을 굳게 지켰으나, 아우인 章平이 사로잡히고, 漢軍이 강물을 끌어들여 水攻을 가해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噲還至滎陽,益食平陰二千戶,以將軍守廣武。
樊噲는 滎陽으로 돌아와서 平陰의 2천 를 식읍으로 더 받았고장군으로서 廣武山을 지켰다.

一歲,項羽引而東。
1년 뒤項羽가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從高祖擊項籍,下陽夏,虜楚周將軍卒四千人。
漢王을 따라 項籍을 공격하여 陽夏縣을 함락하키고 楚 周將軍의 군사 4천 명을 사로잡았다.

圍項籍於陳,大破之。
陳縣에서 項羽를 포위하여 대파하였다.

屠胡陵。
胡陵을 도륙하였다.

▶ 益食 : 食邑을 늘리다.
▶ 楚周將軍 : 周殷을 말한다. 주은은 楚에 반기를 들고, 구강의 병력을 바쳐 漢과 함께 楚를 쳐 垓下에서 격파하였으므로 楚 주장군이라 한 것이다.

項籍既死,漢王為帝,以噲堅守戰有功,益食八百戶。
項羽가 죽은 뒤 漢王은 황제가 되었으며樊噲는 견고한 수비와 戰功으로 8백 호의 식읍을 더하였다.

從高帝攻反燕王臧荼,虜荼,定燕地。
高祖를 따라 반란을 일으킨 燕王 藏荼를 공격하여 사로잡고 燕 땅을 평정하였다.

楚王韓信反,噲從至陳,取信,定楚。
楚王 韓信이 반란을 일으키자樊噲는 高祖를 따라 陳 땅에 도착하여 韓信을 체포하고 를 평정하였다.

更賜爵列侯,與諸侯剖符,世世勿絕,食舞陽,號為舞陽侯,除前所食。
다시 열후의 작위를 하사하고제후의 符節을 주어 대대로 세습하게 하였으며무양현을 식읍으로 주고 舞陽侯라고 불렀으며이미 책봉했던 식읍을 해제하였다.

以將軍從高祖攻反韓王信於代。
장군으로서 高祖를 따라 에서 모반한 韓王 信을 공격하였다.

自霍人以往至雲中,與絳侯等共定之,益食千五百戶。
霍人에서 雲中으로 가면서 絳侯등과 함께 를 평정하니식읍 5백 호를 더하였다.

因擊陳豨與曼丘臣軍,戰襄國,破柏人,先登,降定清河、常山凡二十七縣,殘東垣,遷為左丞相。
陳豨와 曼丘臣의 군대를 공격한 것 때문에 蘘國縣에서 전쟁하였고柏人縣을 격파할 때에는 가장 먼저 성에 올라 淸河와 常山등 모두 27개의 현을 함락시켜 평정하였고東垣縣을 멸하여 左丞相으로 승진하였다.

▶ 剖符 :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燕王臧荼 : 漢王 5년(기원전 202년) 겨울에 高祖가 項羽를 격파한 후 盧綰을 別將으로 삼아 劉賈와 함께 臨江王 共尉를 격파하였다. 7월에 돌아와 高祖를 따라 燕王 藏荼를 공격하자 臧荼가 항복하였다.<사기 권93 韓信盧綰列傳>
▶ 反韓王信 : 韓王 信은 淮陰侯 韓信과 同名異人이다. 漢의 高祖 유방에 의하여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하려고 하여 오해를 받아서, 흉노의 군대를 이끌고 漢의 변경을 쳐들어왔다.<사기 권93 韓信盧綰列傳>

 

列傳권93-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韓信盧綰列傳은 韓王 韓信과 盧綰, 陳豨 세 사람의 合傳이다. 세 사람은 각각 흉노와 연합하여 漢에 반란을 일으킨 공통점이 있다. 韓王 韓信은 史記 권92 淮陰侯列傳에서의 淮陰侯 韓信과 同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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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絳侯 : 周勃. 전한 초기의 무장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으로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秦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 陳豨 : 高祖 10년(기원전 197년) 韓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 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사기 권93 韓信盧綰열전>

 

破得綦毋卹、尹潘軍於無終、廣昌。
無終과 廣昌에서 綦毋卬과 尹潘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破豨別將胡人王黃軍於代南,因擊韓信軍於參合。
代 땅의 남쪽에서 진희의 別將인 匈奴族의 王黃의 군대를 격파하고그 기세로 參合에서 韓信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軍所將卒斬韓信,破豨胡騎橫谷,斬將軍趙既,虜代丞相馮梁、守孫奮、
大將王黃、將軍、太仆解福等十人。

의 士卒이 漢王 信을 참수하고橫谷에서 진희의 흉노 기병을 공격하여 장군 趙旣를 참수하였으며의 승상 馮梁·郡守 孫奮·대장군 王黃· 장군 太僕 解福 등 10명을 생포하였다.

與諸將共定代鄉邑七十三。
樊噲가 장군들과 함께 代 땅의 73개 鄉邑을 평정하였다.

其後燕王盧綰反,噲以相國擊盧綰,破其丞相抵薊南,定燕地,凡縣十八,鄉邑五十一。
그 후 燕王 盧綰이 반란을 일으키자樊噲는 재상의 신분으로 盧綰을 공격하여薊縣의 남쪽에서 승상인 를 격파하고燕 땅을 평정하니 모두 18현과 51향읍이었다.

益食邑千三百戶,定食舞陽五千四百戶。
1,300호의 식읍을 더하여 舞陽縣 5,400호를 식읍으로 정하였다

從,斬首百七十六級,虜二百八十八人。
樊噲가 수종하여 176급을 참수하고 288명을 생포하였다.

別,破軍七,下城五,定郡六,縣五十二,得丞相一人,將軍十二人,二千石已下至三百石十一人。
단독으로 7개의 군대를 격파하고, 5개의 성을 함락시켰으며, 6개 군과 52현을 평정하여승상 1장군 12, 2千石에서 3白石까지 관리를 모두 11명을 체포하였다.

噲以呂后女弟呂須為婦,生子伉,故其比諸將最親。
樊噲는 呂后의 여동생 呂須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을 낳으매다른 장군들에 비하여 高祖와 가장 가까웠다.

先黥布反時,高祖嘗病甚,惡見人,臥禁中,詔戶者無得入群臣。
앞서 黥布가 반란을 일으켜 高祖가 한동안 병이 깊어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매궁중에 누워 호위병에게 신하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명령하였다.

群臣絳、灌等莫敢入。
絳侯와 灌嬰 등의 신하들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十餘日,噲乃排闥直入,大臣隨之。
10여 일이 지나자樊噲가 궁중의 문을 열어젖히고 곧바로 들어갔고 대신들이 뒤를 따랐다.

上獨枕一宦者臥。
高祖는 홀로 환관 하나를 데리고 누워 있었다.

▶ 軍所將卒斬韓信 : 韓王 信은 기원전 196년 봄에 다시 흉노의 기병을 이끌고 參合을 점령하였으나, 柴武가 이끄는 漢軍에 패하고 붙잡혀 참수되었다. <사기 권93 韓信盧綰열전>
▶ 盧綰 : 沛國 豊邑 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高帝 12년(기원전 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 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 <사기 권93 韓信盧綰列傳>
▶ 呂后 : 前漢의 태조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 女弟 : 누이동생.
▶ 楚中 : 宮中.
▶ 排闥 : 문을 밀어 열다. 확 안겨 오다. 闥은 門.
▶ 黥布 : 劉邦을 도와 전한을 세운 장군이다. 漢이 세워진 뒤 韓信과 彭越 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강남으로 달아났다가 長沙王에게 유인되어 誅殺되었다. <史記 권91 黥布列傳>

 

 

列傳권91-黥布列傳(경포열전)

黥布는 본명이 英布(미상 ~ BC 195년)이며, 前漢 六安 六縣 사람으로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해 黥布로 불렸다. 劉邦을 도와 전한을 세운 장군이다. 秦 말 陳勝의 난이 일어나자 무리를 이끌고 番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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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絳灌 : 絳侯 周勃과 灌嬰.
▶ 周勃 : 전한 초기의 무장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이다.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秦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 灌嬰 : 전한 초기 雎陽 사람. 젊었을 때는 비단이나 명주를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秦 말 전쟁 중에 中涓으로 劉邦을 따라 碭에서 일어나서 入關한 뒤 執珪란 작위가 내려지고 昌文侯로 불렸다

噲等見上流涕曰:
「始陛下與臣等起豐沛,定天下,何其壯也!
今天下已定,又何憊也!
且陛下病甚,大臣震恐,不見臣等計事,顧獨與一宦者絕乎?
且陛下獨不見趙高之事乎?」
樊噲 등이 高祖를 알현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처음에 폐하께서 臣 等과 함께 沛縣의 豐邑에서 일어나 천하를 평정할 때 그 얼마나 씩씩하였습니까!
이제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는데 어찌 그리 지쳐 있습니까!
또 폐하의 병이 깊어 대신들이 놀라 크게 두려워하고 있는데신 등을 만나 국사를 논의하시지 않으시니그렇게 환관 하나와 함께 세상을 두절하시겠습니까?
오직 폐하만 趙高의 일을 모르십니까?”

高帝笑而起。
고제가 웃으며 일어났다.

▶ 憊 : 고단하다. 몹시 지치다.
▶ 顧 : “顧…乎?” [그런데 …은 어찌할까?]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顧

한문의 허사(虛詞) 顧 顧의 허사적 용법으로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사로서 “도리어”라는 뜻으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접속사로서 “다만”의 뜻으로 쓰인다. (1) 顧는 부사로서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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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盧綰反,高帝使噲以相國擊燕。
그 후 盧綰이 반란을 일으키자高祖는 樊噲에게 相國의 신분으로 을 공격하게 하였다.

是時高帝病甚,人有惡噲黨於呂氏,即上一日宮車晏駕,則噲欲以兵盡誅滅戚氏、趙王如意之屬。
당시 高祖의 병이 깊었는데 어떤 사람이 비방하기를樊噲가 呂氏와 作黨하여 高祖가 갑자기 붕어하면 樊噲가 군대를 동원하여 戚氏와 趙王 如意의 族屬을 몰살시키려 한다고 하였다.

高帝聞之大怒,乃使陳平載絳侯代將,而即軍中斬噲。
高祖가 듣고 震怒하여이에 陳平을 시켜 絳侯를 싣고 가서 樊噲를 대신하여 장수가 되게 하고樊噲를 즉시 군중에서 참수하라 하였다.

陳平畏呂后,執噲詣長安。
진평은 여후를 두려워하여 樊噲를 長安으로 압송하였다.

至則高祖已崩,呂后釋噲,使復爵邑。
도착하자 高祖가 이미 崩御하매여태후가 樊噲를 석방하고 작위와 식읍을 復舊하였다.

▶ 盧綰 : 高帝 12년(기원전 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 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사기 권92 韓信盧綰열전>
▶ 惡 : 비방하다.
▶ 黨 : 작당하다.
▶ 一日宮車晏駕 : 宮車一日晏駕. 제왕이 붕어하다. ‘궁의 수레가 아침에 늦게 나간다’ 함은 왕이 조회에 늦는다는 의미로 제왕이 붕어한다는 뜻. 晏駕는 수레가 늦게 나가다.
▶ 戚氏 : 戚夫人. 劉邦의 측실이며 劉如意의 생모이다.
▶ 趙王如意 : 趙隱王. 여의는 高祖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었는데, 高祖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하여 독살되었다.
▶ 陳平 : 전한의 정치가로 처음 項羽를 섬겼으나 후에 한 高祖 유방을 섬겨 都尉가 되었고 呂太后가 죽은 후 주발과 힘을 합하여 여씨 일족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孝惠六年,樊噲卒,謚為武侯。
漢惠帝 6(기원전 189), 樊噲가 죽자 武侯라고 諡號하였다.

子伉代侯。
아들 樊伉이 대신하여 侯爵이 되었다.

而伉母呂須亦為臨光侯,高后時用事專權,大臣盡畏之。
번항의 어머니 呂須 역시 臨光侯가 되어 高后 때 정권을 잡고 권한을 專斷하니대신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伉代侯九歲,高后崩。
번항이 후작을 세습한 지 9년 만에 高后가 죽었다.

大臣誅諸呂、呂須婘屬,因誅伉。
대신들이 여씨 자제와 여수의 가솔을 주살하매인하여 번항도 주살하였다.

舞陽侯中絕數月。
舞陽侯의 작위는 중간에 몇 달 동안 끊어졌다.

孝文帝既立,乃復封噲他庶子市人為舞陽侯,復故爵邑。
孝文帝가 즉위하자樊噲의 다른 庶子 樊巿人을 무양후로 책봉하였고옛 작위와 식읍을 복구하였다.

市人立二十九歲卒,謚為荒侯。
번불인은 후작이 된 지 29년 만에 죽었고시호는 荒侯였다.

▶ 孝惠 : 漢惠帝 劉盈. 전한의 제2대 황제. 高祖의 맏아들이다. 처음 태자가 되었을 때 高祖가 너무 착해 빠졌다고 여겨 폐위하고 戚夫人이 낳은 아들 趙王 如意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대신들과 張良의 계책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 謚 : 諡號. 고대 제왕이나 대신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하는 칭호.
▶ 呂須 : 여후의 여동생.
▶ 高后 : 呂后. 前漢의 시조 高祖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고 여씨 일족을 등용시켜 여씨 정권을 수립하였으며 동생을 후황으로 책봉하여 유씨 옹호파의 반발을 불렀다.
▶ 用事 : 정권을 잡다.

子他廣代侯。
번불인의 아들 樊他廣이 대를 이어 후작이 되었다.

六歲,侯家舍人得罪他廣,怨之,乃上書曰:
「荒侯市人病不能為人,令其夫人與其弟亂而生他廣,他廣實非荒侯子,不當代後。」
6년 뒤후작 집안의 舍人이 他廣에게 죄를 짓자원한을 품고 상서하였다.
荒侯 樊市人은 병으로 사람의 짓을 하지 못하자부인에게 동생과 간통하게 하여 他廣을 낳으매,
他廣은 실제로 荒侯의 아들이 아니므로 후작을 이음은 부당합니다.”

詔下吏。
조칙을 내려 관리에게 조사하라고 하였다.

孝景中六年,他廣奪侯為庶人,國除。
漢景帝 6(기원전 144), 他廣에게서 후작을 박탈하고 평민으로 삼았으며봉국도 제거하였다.

▶ 荒侯 : 樊市人의 諡號.
▶ 為人 : 인간의 도리를 하지 못하다. 즉, 생식능력이 없다.

 

 

2. 酈商

 

酈商(? ~ 기원전 180년)은 탕군 陳留縣 高陽鄕 사람으로, 酈食其의 아우이다.
秦 二世皇帝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 · 오광이 봉기할 당시에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느리고 있다가, 형 역이기가 유방에게 속해 陳留를 함락하자 자신도 유방에게 귀순했다.
長社 공격에서 가장 먼저 성에 올라 信成君의 작호를 받았고, 유방을 따라 관중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공을 세웠으며 별군을 거느리고 한중을 평정했다.
고황후가 죽자 周勃 등 대신들이 모의하여 呂氏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황실에 돌리려 하여, 주발이 酈商을 협박했고 역상은 아들 역기에게 呂祿을 속이게 하여, 주발이 북군을 여록에게서 빼앗아 여씨를 주멸하였다.
역상은 이 무렵에 죽었으며, 역상이 죽은 후 아들 역기가 뒤를 이었다.

曲周侯酈商者,高陽人。
曲周侯 酈商은 高陽縣 사람이다.

陳勝起時,商聚少年東西略人,得數千。
陳勝이 봉기하였을 때酈商이 사방으로 젊은 사람을 모아서 수천을 얻었다.

沛公略地至陳留,六月餘,商以將卒四千人屬沛公於岐。
沛公이 여러 곳을 공략하며 陳留縣에 이른 지 6개월여酈商은 병졸 4천 명을 데리고 岐縣에서 沛公에게 歸屬하였다.

從攻長社,先登,賜爵封信成君。
沛公을 따라 長社를 공격함에酈商이 성에 가장 먼저 올라가니信成君에 책봉하였다.

從沛公攻緱氏,絕河津,破秦軍洛陽東。
沛公을 따라 緱氏縣을 공격함에酈商이 황하의 나루터를 봉쇄하였으며洛陽 동쪽에서 秦軍을 격파하였다.

從攻下宛、穰,定十七縣。
沛公을 따라 과 을 공격함에酈商이 함락하고 17현을 평정하였다.

別將攻旬關,定漢中。
酈商이 別將으로 旬關을 공격하고 漢中을 평정하였다.

項羽滅秦,立沛公為漢王。
項羽가 을 멸망시키고 沛公을 漢王으로 세웠다.

漢王賜商爵信成君,以將軍為隴西都尉。
漢王은 酈商에게 信成君의 작위를 하사하고장군으로서 隴西 都尉로 삼았다.

別將定北地、上郡。
酈商이 別將으로 北地와 上郡을 평정하였다.

破雍將軍焉氏,周類軍栒邑,蘇駔軍於泥陽。
焉氏에서 의 장군을栒邑에서 周類의 군대를泥陽에서 蘇駔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賜食邑武成六千戶。
식읍으로 武成縣의 6천 를 하사하였다.

以隴西都尉從擊項籍軍五月,出鉅野,與鐘離眛戰,疾鬬,受梁相國印,益食邑四千戶。
隴西 都尉로서 漢王을 따라 項羽軍을 5개월 동안 공격하고鉅野로 출병하여 鍾離眛와 싸워서 격전을 벌인 공으로 의 相國의 인수를 받고식읍 4천 호를 더하였다.

以梁相國將從擊項羽二歲三月,攻胡陵。
의 相國으로서 漢王을 따라 項羽를 2년 3개월 공격하였고 胡陵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項羽既已死,漢王為帝。
項羽가 죽은 후 漢王은 황제가 되었다.

其秋,燕王臧荼反,商以將軍從擊荼,戰龍脫,先登陷陣,破荼軍易下,卻敵,遷為右丞相,賜爵列侯,與諸侯剖符,世世勿絕,食邑涿五千戶,號曰涿侯。
그해 가을燕王 臧荼가 반란을 일으키자酈商이 장군으로서 漢王을 따라 臧荼를 공격함에龍脫縣에서 전투하며 성에 먼저 올라가 적진을 함락하였고臧荼의 군대를 易縣 아래에서 격파하니右丞相으로 승진시키고열후의 작위를 내렸고제후의 부절을 주어 대대로 끊이지 않게 하였고식읍으로 涿縣의 5천 호를 주었고봉호는 涿侯였다.

▶ 雍將軍 : 雍王 章邯의 장군.
▶ 鐘離眛 : 楚 項羽의 장수로 지략과 병법에 뛰어나 유방의 진영을 괴롭혔다.
▶ 疾鬬 : 奮力拚殺。힘을 내서 목숨을 내걸고 돌격하다.
▶ 漢王為帝 : 漢太祖 高皇帝 劉邦은 기원전 202년 垓下에서 項羽를 토벌한 후 前漢을 세우고 초대 황제에 올랐다.
▶ 其秋 : 高祖 5년. 기원전 202년 가을.

以右丞相別定上谷,因攻代,受趙相國印。
右丞相 신분으로서 단독으로 上谷을 평정하였고그 기세로 代 땅을 공격하여 趙相國의 인수를 받았다.

以右丞相趙相國別與絳侯等定代、鴈門,得代丞相程縱、守相郭同、將軍已下至六百石十九人。
右丞相과 趙相國의 자격으로 단독으로 絳侯 등과 함께 와 雁門을 평정하고의 승상 程縱 · 임시 재상 郭同 · 장군 이하 6백석을 받는 관원 19명을 생포하였다.

還,以將軍為太上皇衛一歲七月。
귀국하여 장군으로서 太上皇을 1년 7개월 동안 호위하였다.

以右丞相擊陳豨,殘東垣。
右丞相으로 陳豨를 공격하여 東垣城을 짓밟았다.

又以右丞相從高帝擊黥布,攻其前拒,陷兩陳,得以破布軍,更食曲周五千一百戶,除前所食,凡別破軍三,降定郡六,縣七十三,得丞相、守相、大將各一人,小將二人,二千石已下至六百石十九人。
또 右丞相으로서 高祖를 따라 黥布를 공격함에黥布의 최전방을 공략하여 진지 두 개를 함락하여 黥布의 군대를 쳐부수게 하였고다시 곡주의 5,100호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앞서 받은 식읍은 회수하였으니別將으로 적군을 물리침이 모두 세 번이고항복시킨 군이 6군이요현이 73현이며승상·임시 재상·대장 각 1·小將 2·2천석 이하 6백석까지의 관원 19인을 생포하였다.

商事孝惠、高后時,商病,不治。
酈商가 효혜제와 고후를 섬길 때병들어서 정사를 돌보지 못하였다.

其子寄,字況,與呂祿善。
그 아들 酈寄는 가 으로 呂祿과 친하게 지냈다.

及高后崩,大臣欲誅諸呂,呂祿為將軍,軍於北軍。
고후가 붕어하자 대신들이 여씨 일족을 주살하려고 함에呂祿은 장군이 되어 北軍에 주둔하고 있었다.

太尉勃不得入北軍,於是乃使人劫酈商,令其子況紿呂祿,呂祿信之,故與出游。
太尉 周勃이 북군으로 들어갈 수 없자사람을 보내 酈商을 위협하여 그의 아들 酈況에게 여록을 기만하게 하니여록이 믿고 그와 함께 외출하였다.

而太尉勃乃得入據北軍,遂誅諸呂。
태위 주발이 이에 북군에 들어가 점령하고마침내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是歲商卒,謚為景侯。
이해에 酈商이 죽었고景侯라고 시호하였다.

子寄代侯。
아들 역기가 대를 이어 후작이 되었다.

天下稱酈況賣交也。
천하 사람들이 역기가 친구를 팔았다고 수군댔다.

▶ 太上皇 : 劉邦의 부친 太公.
▶ 前拒 : 진지의 최전방.
▶ 酈寄 : 酈商의 아들로 자는 況이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었을 때 대신들은 專橫을 일삼던 여록·여산 등 여씨 일족을 주멸하려 하였다. 마침내 제왕이 거병하였고, 여록 등은 관영을 보내 유양을 치게 하였으나 관영과 유양은 서로 모의하고 싸우지 않았다. 이때 태위 주발과 승상 진평이 역기의 아버지 酈商을 협박하니, 평소 여록과 친분이 있었던 역기는 여록에게 봉국으로 가라고 권하였다. 여록은 역기의 말을 옳게 여겼고, 자주 사냥을 나갔다. 이에 주발은 역기와 전객 유갈을 여록에게 보내서 皇命을 사칭하여 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가도록 하였다. 여록은 역기 등의 말대로 하였고, 결국 궁궐은 대신들이 장악하였다. 여산은 살해당하였고, 여록을 포함한 여씨 일족은 모두 주살되었다.
▶ 北軍 : 漢 장안을 지키는 부대. 呂后가 죽은 뒤, 長安의 군대는 남북 양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呂産과 呂祿 두 사람이 지휘를 맡아, 太尉인 周勃도 軍中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呂産과 呂祿은 呂后 오빠의 아들로, 이들 두 사람을 필두로 여씨 일족은 모두 왕후에 봉해지거나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 紿 : 기만하다. 속이다.
▶ 子況紿呂祿 : 제후가 呂氏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周勃은 陳平과 의논한 끝에 呂祿에게 첩자를 보내어 여록으로 하여금 자기 領地인 趙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면 여씨가 帝位를 탐내지 않음이 밝혀져 제후의 군대도 저절로 수그러질 터이라고 하였다. 呂祿은 그 말을 믿고 北軍의 지휘권을 즉시 내놓았다. 그러자 주발은 곧장 북군으로 들어가 군사를 선동하여 여씨 일족을 모두 죽여버렸다.
▶ 賣交 : 친구를 속임. 친구를 팔아 자기가 이익을 얻음.
▶ 酈寄賣友 : 역기가 여록을 속여 죽게 만든 것을 말하는 고사성어.

孝景前三年,吳、楚、齊、趙反,上以寄為將軍,圍趙城,十月不能下。
孝景帝 前元 3(기원전 154), ···가 반란을 일으키자高祖는 역기를 장군으로 삼아 의 성을 포위하게 하였지만열 달 동안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得俞侯欒布自平齊來,乃下趙城,滅趙,王自殺,除國。
兪侯 欒布가 를 평정하고 돌아와서 의 성을 함락하고 를 멸망시키니 왕은 자살하고 봉국이 취소되었다.

孝景中二年,寄欲取平原君為夫人,景帝怒,下寄吏,有罪,奪侯。
효경제 中元 2(기원전 148), 역기가 平原君 臧兒를 부인으로 삼으려고 하자景帝가 노하며 역기를 관리에게 넘겼고 죄가 드러나자 후작의 작위를 박탈하였다.

景帝乃以商他子堅封為繆侯,續酈氏後。
경제는 酈商의 다른 아들 酈堅을 繆侯로 책봉하여 酈氏侯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繆靖侯卒,子康侯遂成立。
繆靖侯가 죽자아들 康侯 遂成이 계승하였다.

遂成卒,子懷侯世宗立。
수성이 죽자아들 懷侯 世宗이 계승하였다.

世宗卒,子侯終根立,為太常,坐法,國除。
세종이 죽고 아들 終根이 후작을 계승하여 太常이 되었으나죄를 지어 봉국이 해제되었다.

▶ 孝景前三年 : 漢 景帝 前元 3년(기원전 154년). 漢 孝景皇帝 劉啓는 前漢의 제6대 황제이며, 황제 일족의 영지 삭감을 시도하였다. 이에 오·초 등 7국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하였다. 군국제 성격을 개정하고, 무제 이후의 중앙집권적 군현제도 확립의 기초를 닦았다.
▶ 吳楚齊趙反 : 吳楚七國의 반란.
경제 3년, 오왕 유비 등 일곱 나라의 제후왕이 반란을 일으켰다. 역기는 반란에 가담한 趙王 유수를 쳐 수도 邯鄲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趙王은 일곱 달을 항전하였고, 齊를 구원하고 돌아오던 난포가 합류하여 한단을 함락하였다.
▶ 王自殺 : 趙王 劉遂(유방의 손자).
▶ 平原君 : 漢 武帝가 처음으로 王太后의 어머니인 臧兒를 높여 平原君이라 하였으며 이것이 郡君을 봉한 시초이다.
▶ 景帝怒 : 역기는 平原君 臧兒를 아내로 삼으려 하였다. 장아는 연왕 臧荼의 손녀이자 효경황후의 생모로, 경제에게는 장모였다. 경제는 노하여 역기를 잡아들여 관리에게 넘겼고, 경제 8년(기원전 149년) 역기의 작위를 박탈하였다. 곧 역기의 형제 역견을 繆侯에 봉하여 가문을 잇게 하였다.
▶ 坐法 :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다.


3.夏侯嬰

 

夏侯嬰은 沛縣 사람으로 西漢의 開國功臣이다. 원래는 패현 관청의 마구간지기인데 패현의 사상정을 지나다니면서 亭長이었던 유방과 친분을 맺었다.
秦과 전투할 때 兵車를 질풍처럼 몰아쳐 용감히 싸워 滕公의 작위를 받았다. 滕令이 되어서 유방의 수레를 몰았기 때문에 滕公이라 호칭한 것이다.
유방을 따라 楚漢戰爭에서 큰 공을 세웠고, 뒤에 汝陰侯로 봉해졌으며, 惠帝와 文帝 때도 太仆을 지냈다.
고후가 죽자 하후영은 태복으로서 東牟侯와 함께 청리궁에 들어가 여씨의 잔당을 정리하고 少帝를 폐위시키고, 劉恆을 대신들과 함께 文帝로 세웠으며 다시 태복이 되었다.
그 8년 뒤에 죽었으니 시호는 文侯이다.

 

汝陰侯夏侯嬰,沛人也。
汝陰侯 夏侯嬰은 沛縣 사람이다.

為沛廄司御。
패현의 마구간 司御를 지냈다.

每送使客還,過沛泗上亭,與高祖語,未嘗不移日也。
매번 사신과 빈객을 전송하고 돌아올 때는 패현의 泗上亭에 들러劉邦과 대화를 나누느라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嬰已而試補縣吏,與高祖相愛。
오래지 않아 하후영이 縣吏의 試補가 되고서도 高祖와 서로 사랑하였다.

高祖戲而傷嬰,人有告高祖。
高祖가 장난을 치다가 하후영에게 상처를 입히자 어떤 자가 高祖를 고발하였다.

高祖時為亭長,重坐傷人,告故不傷嬰,嬰證之。
高祖는 당시에 亭長으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가중처벌되므로하후영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하후영도 이를 증언하였다.

後獄覆,嬰坐高祖系歲餘,掠笞數百,終以是脫高祖。
훗날 옥사가 번복되매하후영은 高祖의 죄에 연루되어 1년여 동안 옥살이를 하고 수백 대의 매질을 당함으로써 끝내 高祖를 벗어나게 하였다.

高祖之初與徒屬欲攻沛也,嬰時以縣令史為高祖使。
高祖가 처음 무리와 함께 패현을 공격함에하후영은 당시 현령의 영리로서 高祖의 사신 역할을 하였다.

上降沛一日,高祖為沛公,賜嬰爵七大夫,以為太仆。
高祖가 패현을 하루 만에 항복시키고 沛公이 되자하후영에게 七大夫의 작위를 하사하고 太僕으로 삼았다.

從攻胡陵,嬰與蕭何降泗水監平,平以胡陵降,賜嬰爵五大夫。
沛公을 따라 胡陵을 공격함에하후영이 蕭何와 함께 泗水郡의 郡監 平을 항복시키자평은 호릉을 바쳐 투항하매하후영에게 五大夫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 廄 : 마구간.
▶ 司御 : 말을 기르고 수레를 관장하는 관리.
▶ 移日 : 移动日影。指不很短的一段时间。긴 시간.
▶ 已而 : 그 후. 머지않아.
▶ 重坐傷人 : 관리가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 獄覆 : 소송사건이 번복되다. 하후영이 誣告罪로 오히려 처벌을 받게 되었다.
▶ 掠笞 : 채찍이나 몽둥이로 죄인을 다스림.
▶ 脫 : 죄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다.
▶ 徒屬 : 무리.
▶ 上 : 高祖. 즉 유방을 말한다.
▶ 太仆 : 太僕. 황제의 車馬를 관장하는 직책.

從擊秦軍碭東,攻濟陽,下戶牖,破李由軍雍丘下,以兵車趣攻戰疾,賜爵執帛。
沛公을 따라 碭縣 동쪽에서 秦軍을 공격함에濟陽縣을 공격하여 戶牖를 점령하였고雍丘 에서 李由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며전차로 질주하면서 치열하게 전투하매執帛의 작위를 내렸다.

常以太仆奉車從擊章邯軍東阿、濮陽下,以兵車趣攻戰疾,破之,賜爵執珪。
태복으로서 늘 전차를 받들어 隨從하며 동아현과 복양에서 章邯의 군대를 공격함에전차를 질주하며 치열하게 싸워 물리치매執珪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復常奉車從擊趙賁軍開封,楊熊軍曲遇。
다시 전차를 받들어 隨從하며 開封에서 趙賁의 군대를曲遇에서 楊熊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嬰從捕虜六十八人,降卒八百五十人,得印一匱。
하후영이 隨從하며 68명을 捕虜하고군졸 850명을 항복시켰으며인수 한 상자를 노획하였다.

因復常奉車從擊秦軍雒陽東,以兵車趣攻戰疾,賜爵封轉為滕公。
이어 다시 전차를 받들어 隨從하며 낙양 동쪽에서 秦軍을 공격함에전차로 질주하면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매藤公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因復奉車從攻南陽,戰於藍田、芷陽,以兵車趣攻戰疾,至霸上。
이어서 다시 전차를 받들어 隨從하며 南陽을 공격함에藍田縣과 芷陽縣에서 전투하며 전차로 질주하면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면서 霸上에 이르렀다.

項羽至,滅秦,立沛公為漢王。
項羽가 함양에 이르러 을 멸망시키고沛公을 漢王에 봉하였다.

漢王賜嬰爵列侯,號昭平侯,復為太仆,從入蜀、漢。
漢王은 하후영에게 열후의 작위를 내리고봉호를 昭平侯라고 하였으나다시 태복이 되어 漢王을 모시고 ·으로 들어갔다.

▶ 趣攻 : 빠르게 공격하다. 趣는 促과 통한다.
▶ 執帛 : 爵位名.
▶ 匱 : 상자.
▶ 霸上 : 地名. 長安의 동쪽 霸水 가에 있다.
▶ 沛公立為漢王 : 기원전 206년 項羽가 유방을 漢王으로 봉하였다.

還定三秦,從擊項籍。
돌아와서 三秦을 평정함에하후영이 漢王을 따라 項羽를 공격하였다.

至彭城,項羽大破漢軍。
팽성에 이르러 項羽의 군대가 漢軍을 대파하였다.

漢王敗,不利,馳去。
漢王이 패하여 이롭지 않으므로 급히 달아났다.

見孝惠、魯元,載之。
하후영이 孝惠왕자와 魯元공주를 발견하고 수레에 실었다.

漢王急,馬罷,虜在後,常蹶兩兒欲棄之,嬰常收,竟載之,徐行面雍樹乃馳。
漢王은 다급한데 말이 지쳐있고 적이 뒤에서 추격하여오자두 아이를 발로 차서 수레 밖으로 떨어뜨리려 할 때마다 하후영이 거두어 마침내 싣고천천히 달리면서 두 자녀가 마주하고 끌어안으면 치달렸다.

漢王怒,行欲斬嬰者十餘,卒得脫,而致孝惠、魯元於豐。
漢王이 노하여가면서 하후영을 참수하려 함이 10여 번이었으나마침내 탈출하여 효혜와 노원을 豐邑으로 데려갔다.

漢王既至滎陽,收散兵,復振,賜嬰食祈陽。
漢王이 滎陽에 도착하여 패잔병을 규합하고 다시 세력을 회복하자하후영에게 祈陽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復常奉車從擊項籍,追至陳,卒定楚,至魯,益食茲氏。
다시 늘 전차를 받들어 隨從하며 項羽를 공격하여 陳縣까지 추격하였고마침내 를 평정하자하후영은 魯 땅으로 돌아갔고玆氏縣의 식읍을 더하였다.

▶ 彭城 : 彭城大會戰. 기원전 203년 유방과 項羽가 楚 팽성에서 벌인 대규모 회전으로 項羽가 유방의 60만 군사를 거의 전멸시키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 孝惠 : 劉盈. 고제 유방의 차남이자 적장자로 어머니는 고후 여씨이다. 전한의 2대 황제가 된다.
▶ 魯元 : 유방의 딸. 魯元公主. 고제의 장녀이자 혜제의 누나.
▶ 罷 : 疲와 통하여 지치다.
▶ 虜 : 적. 項羽의 군대를 말한다.
▶ 蹶 : 발로 차다.
▶ 雍樹 : 抱小儿. 아이를 안다. 雍은 擁과 통한다.


漢王立為帝。
漢王이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다.

其秋,燕王臧荼反,嬰以太仆從擊荼。
그해 가을燕王 臧荼가 반란을 일으키자하후영은 태복으로서 高祖를 따라 臧荼를 공격하였다.

明年,從至陳,取楚王信。
다음해에 高祖를 따라 陣 땅에 도착하여 楚王 韓信을 체포하였다.

更食汝陰,剖符世世勿絕。
高祖는 하후영의 식읍을 汝陰縣으로 바꾸었고부절을 쪼개어 대대로 끊이지 말게 하였다.

以太仆從擊代,至武泉、雲中,益食千戶。
하후영은 태복의 자격으로 高祖를 따라 代 땅을 공격함에武泉과 雲中에 이르매식읍 1천 호를 더하였다.

因從擊韓信軍胡騎晉陽旁,大破之。
高祖를 따라 晉陽縣 부근에 있던 韓王 信의 군대인 흉노 기마병을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追北至平城,為胡所圍,七日不得通。
패주하는 적병을 추격하여 平城縣에 이르렀다가 흉노에게 포위되어 7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

高帝使使厚遺閼氏,冒頓開圍一角。
高祖가 사신을 보내 閼氏에게 후한 예물을 보내자冒頓이 포위망을 一角을 개방하였다.

高帝出欲馳,嬰固徐行,弩皆持滿外向,卒得脫。
高祖는 포위망을 나가서 내달리려 하였지만하후영은 고집스레 수레를 천천히 몰면서 쇠뇌를 마음껏 당겨 밖으로 향하도록 명령하여 마침내 탈출할 수 있었다.

益食嬰細陽千戶。
하후영에게 細陽縣의 1천 호를 식읍으로 더하였다.

復以太仆從擊胡騎句注北,大破之。
다시 태복으로 高祖를 隨從하며 句注山 북쪽에서 흉노의 기마병을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以太仆擊胡騎平城南,三陷陳,功為多,賜所奪邑五百戶。
태복으로 평성현 남쪽에서 흉노의 기마병을 공격하여 진지를 세 번 함락하여 공로가 많으므로빼앗은 읍 5백 호를 하사하였다.

以太仆擊陳豨、黥布軍,陷陳卻敵,益食千戶,定食汝陰六千九百戶,除前所食。
태복으로서 진희와 黥布의 군대를 공격하여 진지를 함락시키고 적을 물리치니, 1천 호의 식읍을 더하였으며汝陰縣의 6천 9백 호의 식읍을 확정하고 이전에 받은 식읍은 해제하였다.

嬰自上初起沛,常為太仆,竟高祖崩。
하후영은 高祖가 처음 패현에서 봉기할 때부터 항상 태복이 되어 高祖가 붕어할 때까지 계속하였다.

以太仆事孝惠。
태복으로서 孝惠帝도 섬겼다.

孝惠帝及高后德嬰之脫孝惠、魯元於下邑之閒也,乃賜嬰縣北第第一,曰 「近我」,以尊異之。
효혜제와 高后는 하후영이 효혜제와 노원공주를 下邑縣에서 탈출시킴에 감사하며하후영에게 縣의 북쪽에 제일 훌륭한 저택을 지어주면서 가깝게 지냅시다.”라고 말하고각별히 존중하였다.

孝惠帝崩,以太仆事高后。
효혜제가 붕어하자태복으로서 고후를 섬겼다.

高后崩,代王之來,嬰以太仆與東牟侯入清宮,廢少帝,以天子法駕迎代王代邸,與大臣共立為孝文皇帝,復為太仆。
고후가 붕어하고 代王이 옴에하후영은 태복으로서 東牟侯와 함께 청리궁에 들어가서궁내를 청소하고 少帝를 폐위하였으며천자의 어가로 代王을 대왕의 저택에서 영접하여 대신들과 함께 孝文皇帝로 세웠으며다시 태복이 되었다.

八歲卒,謚為文侯。
8년 뒤에 죽으니시호하여 文侯라 하였다.

▶ 追北 :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다.
▶ 閼氏 : 漢代에 匈奴族이 君主의 正室을 일컫던 말. 閼은 흉노의 왕비.
▶ 冒頓 : 冒頓單于를 匈奴로서 일컫는 이름. 匈奴의 冒頓單于는 일찍이 북방을 통일하고 秦將 蒙恬에게 빼앗긴 흉노의 옛 땅을 수복하며, 漢을 위협하였다.
▶ 冒頓開圍一角 : 이 내용은 史記 93 韓信盧綰列傳에도 기록되어 있다.

 

列傳권93-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韓信盧綰列傳은 韓王 韓信과 盧綰, 陳豨 세 사람의 合傳이다. 세 사람은 각각 흉노와 연합하여 漢에 반란을 일으킨 공통점이 있다. 韓王 韓信은 史記 권92 淮陰侯列傳에서의 淮陰侯 韓信과 同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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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德 : 은덕에 감격하다.
▶ 代王 : 劉邦의 넷째 아들 劉恆. 전한의 5대 文帝가 된다. 代王에 책봉되어 중도에 도읍하였다가 여씨의 난이 평정된 뒤 태위 주발과 승상 진평 등 대신의 옹립으로 황제에 올랐다.
▶ 東侔侯 : 劉興居. 高祖의 庶子인 齊 悼惠王 劉肥의 아들로, 처음에 東牟侯에 봉해졌다가 뒤에 齊王이 되었다.
▶ 清宮 : 궁을 청소하다. 여기서는 清理宮에 있는 여씨의 잔여 세력을 정리했다는 뜻.
▶ 少帝 : 劉弘. 惠帝의 서자로 漢의 제4대 황제( 재위 BC 183~BC 180). 성은 劉이고, 이름은 원래 山이었지만 常山王으로 봉해지면서 義로 바뀌었고, 즉위한 뒤에 다시 弘으로 바뀌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가 왕위에 오래 있지 못하고 폐위되었으므로 少帝라고 부른다.
▶ 法駕 : 천자의 어가.
▶ 代邸 : 代王의 저택.

子夷侯灶立,七年卒。
아들 夷侯 竈가 계승하였는데, 7년 뒤에 죽었다.

子共侯賜立,三十一年卒。
아들 共侯 賜가 작위를 계승하였고, 31년 뒤에 죽었다.

子侯頗尚平陽公主。
하후사의 아들 는 平陽公主와 결혼하였다.

立十九歲,元鼎二年,坐與父御婢姦罪,自殺,國除。
작위를 계승한 지 19년 뒤인 元鼎 2부친이 부리던 婢女와 간통죄에 연루되어 자살하였고 봉국도 취소되었다.

▶ 尚 : 신분·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다.
▶ 元鼎二年 : 기원전 115년. 漢武帝의 다섯 번째 年號.

 

 

4.灌嬰

 

灌嬰은 전한 초기 睡陽 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비단을 파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秦 말기 劉邦의 시종관으로 전공을 세워 執珪의 작위에 오르고 昌文侯로 불렸다. 郎中과 中謁者, 中大夫 등을 역임했다.
장군으로 齊를 평정하고, 항우를 무찔러 고조 6년(기원전 201) 潁陰侯에 봉해졌다.
그 후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과 함께 여씨 일족을 주살했다.
文帝를 옹립한 뒤 太尉가 되었다가 얼마 후 주발을 대신해 丞相에 올랐다.
시호는 懿侯이다.

潁陰侯灌嬰者,睢陽販繒者也。
潁陰侯 灌嬰은 睢陽縣에서 비단을 파는 사람이었다.

高祖之為沛公,略地至雍丘下,章邯敗殺項梁,而沛公還軍於碭.
高祖 유방이 沛公이 되어 각지를 공략하며 擁丘城에 이르럼에章邯이 項梁을 격파하고 죽이자沛公은 碭縣으로 회군하였다.

嬰初以中涓從擊破東郡尉於成武及秦軍於扛裏,疾鬬,賜爵七大夫。
관영이 당초 中涓으로서 沛公을 따라 成武에서 東郡尉杠里에서 秦軍을 격파할 때 치열하게 전투하매七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從攻秦軍亳南、開封、曲遇,戰疾力,賜爵執帛,號宣陵君。
沛公을 따라 의 남쪽·開封·曲遇에서 秦軍을 공격함에치열하게 전투하매 執帛의 작위를 내리고宣陵君으로 封號하였다.

從攻陽武以西至雒陽,破秦軍尸北,北絕河津,南破南陽守齮陽城東,遂定南陽郡。
沛公을 따라 양무 서쪽에서 낙양까지 공격함에秦軍을 屍鄉 북쪽에서 격파하고북쪽으로 황하의 나루를 봉쇄하였으며남쪽으로는 南陽 郡守인 呂齮를 陽城 동쪽에서 격파하여 마침내 남양군을 평정하였다.

西入武關,戰於藍田,疾力,至霸上,賜爵執珪,號昌文君。
서쪽으로 武關에 진입하여 藍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霸上에 이르매執珪의 작위를 내렸고昌文君이라 封號하였다.

沛公立為漢王,拜嬰為郎中,從入漢中,十月,拜為中謁者。
沛公이 漢王으로 즉위하자 관영을 郎中에 임명하니관영은 漢王을 따라 漢中으로 進軍하였으며, 10개월 사이에 다시 中謁者에 임명되었다.

從還定三秦,下櫟陽,降塞王。
漢王을 따라 회군하여 三秦을 평정하고櫟陽을 점령하였으며塞王을 항복시켰다.

還圍章邯於廢丘,未拔。
관영이 돌아와 廢丘에서 章邯을 포위하였으나 함락하지는 못하였다.

從東出臨晉關,擊降殷王,定其地。
漢王을 따라 동쪽으로 臨晉關을 秦軍하여 殷王을 공격하여 항복시키고 그 땅을 평정하였다.

擊項羽將龍且、魏相項他軍定陶南,疾戰,破之。
定陶 남쪽에서 項羽의 장군 龍且와 魏 재상 項他의 군대를 공격하였고치열한 전투를 벌여 이들을 격파하였다.

賜嬰爵列侯,號昌文侯,食杜平鄉。
열후의 작위를 내렸고昌文侯라고 부르고杜縣의 平鄕을 식읍으로 받았다.

▶ 繒 : 비단.
▶ 中涓 : 황제의 侍從官.
▶ 塞王 : 司馬欣을 말한다. 項羽가 秦을 점령한 다음 秦을 셋으로 나누어 三秦이 되었으며, 項羽에게 항복한 秦將 章邯을 雍王으로, 司馬欣을 塞王으로, 董翳를 翟王으로 봉하였다.
▶ 杜平鄉 : 杜縣의 平鄉.

 

 

復以中謁者從降下碭,以至彭城。
다시 中謁者로서 漢王을 따라 탕현을 항복시키고팽성에 도착하였다.

項羽擊,大破漢王。
項羽가 공격하여 漢王을 대파하였다.

漢王遁而西,嬰從還,軍於雍丘。
漢王이 서쪽으로 달아나자관영은 漢王을 따라 회군하여 雍丘에 주둔하였다.

王武、魏公申徒反,從擊破之。
王武와 魏公 信徒가 반란을 일으키자漢王을 따라 그들을 격파하였다.

攻下黃,西收兵,軍於滎陽。
外黃縣을 공격하여 항복시키고 서쪽으로 병사들을 거두어 滎陽에 주둔하였다.

楚騎來眾,漢王乃擇軍中可為騎將者,皆推故秦騎士重泉人李必、駱甲習騎兵,今為校尉,可為騎將。
의 기병대가 대거 몰려오매漢王이 軍中에서 기병장이 될 만한 자를 뽑으려고 하자모두가 옛 의 騎士로서 重泉 사람인 李必·駱甲이 익숙한 騎兵으로 현재 校尉로 있으매기병 장으로 삼을 만하다고 추천하였다.

漢王欲拜之,必、甲曰:
「臣故秦民,恐軍不信臣,臣願得大王左右善騎者傅之。」
漢王이 그들을 임명하려고 하니이필과 낙갑이 말하였다.
신들은 옛 의 백성이니아마도 병사들이 신들을 믿지 않을 터이니대왕의 측근에서 기마에 능한 사람을 택하여신들이 그를 보좌하겠습니다.”

灌嬰雖少,然數力戰,乃拜灌嬰為中大夫,令李必、駱甲為左右校尉,將郎中騎兵擊楚騎於滎陽東,大破之。
漢王은 관영이 비록 젊었으나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 경험이 있으매관영을 中大夫로 임명하였고이필과 노갑은 좌우 左右校尉를 맡도록 하니관영은 낭중의 기병을 거느리고 형양 동쪽에서 의 기병을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受詔別擊楚軍後,絕其餉道,起陽武至襄邑。
관영이 조서를 받고 단독으로 楚軍 후방을 공격하여그들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하고양무에서 출발하여 蘘邑에 이르렀다.

擊項羽之將項冠於魯下,破之,所將卒斬右司馬、騎將各一人。
관영이 魯 땅 일대에서 項羽의 장군 項冠을 공격하여 무찔렀고휘하의 사병이 右司馬와 기병장 각각 1명을 참수하였다.

擊破柘公王武,軍於燕西,所將卒斬樓煩將五人,連尹一人。
관영이 柘公 王武를 공격하고 燕 땅 서쪽에 주둔하였는데휘하의 사졸이 樓煩 장군 5명과 連尹 1명을 참수하였다.

擊王武別將桓嬰白馬下,破之,所將卒斬都尉一人。
白馬縣 일대에서 王武의 別將 桓嬰을 공격하여 무찔렀는데휘하의 사졸이 都尉 1명을 참수하였다.

以騎渡河南,送漢王到雒陽,使北迎相國韓信軍於邯鄲。
기마병을 이끌고 황하 남쪽을 건너 漢王을 낙양으로 전송한 후사신이 되어 북쪽 邯鄲에 도착하여 相國 韓信의 군대를 영접하였다.

還至敖倉,嬰遷為御史大夫。
敖倉으로 돌아오니 관영을 승진시켜 御史大夫로 삼았다.

▶ 遁 : 달아나다.
▶ 下黃 : 외향현을 항복시키다. 黃은 外黃縣을 말한다.
▶ 傅 : 보좌하다.
▶ 餉道 : 군량을 나르는 길.
▶ 樓煩將 : 樓煩은 흉노의 동쪽에 있는 부족으로 당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장수를 누번장이라고 칭하였다.

 

 

三年,以列侯食邑杜平鄉。
漢王 3(기원전 204관영이 열후로서 杜縣의 平鄕을 식읍으로 받았다.

以御史大夫受詔將郎中騎兵東屬相國韓信,擊破齊軍於歷下,所將卒虜車騎將軍華毋傷及將吏四十六人。
관영은 어사대부로서 조서를 받고 낭중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재상 韓信에 배속되어,
歷城에서 齊軍을 격파하였으며휘하의 사졸이 車騎將軍 華毋傷과 將吏 46명을 포로로 잡았다.

降下臨菑,得齊守相田光。
臨菑를 함락시키고 의 임시 재상 田光을 생포하였다.
追齊相田橫至嬴、博,破其騎,所將卒斬騎將一人,生得騎將四人。
의 재상 田橫을 추격하여 과 에 이르러 그의 기마부대를 격파하였으며휘하의 병사가 기병장 1명을 참수하고 기병장 4명을 생포하였다.

攻下嬴、博,破齊將軍田吸於千乘,所將卒斬吸。
영과 박을 공격하여 千乘縣에서 齊將 田吸을 격파하였고휘하 병사가 전흡을 참수하였다.

東從韓信攻龍且、留公旋於高密,卒斬龍且,生得右司馬、連尹各一人,樓煩將十人,身生得亞將周蘭。
동쪽으로 韓信을 따라 高密縣에서 용저와 留公 旋을 공격하였는데휘하의 병사가 용저를 참수하고 右司馬와 連尹 각각 1명과 樓煩將 10명을 생포하고자신은 부대장 周蘭을 생포하였다.

齊地已定,韓信自立為齊王,使嬰別將擊楚將公杲於魯北,破之。
齊 땅이 평정된 후 韓信은 스스로 齊王이 되고 관영을 別將으로 삼아 魯 북쪽에서 楚將 公杲를 공격하게 하니격퇴하였다.

轉南,破薛郡長,身虜騎將一人。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薛郡의 郡長을 격파하였으며자신은 기병대장 1명을 포로로 잡았다.

攻傅陽,前至下相以東南僮、取慮、徐。
傅陽을 공격하고더 전진하여 下相과 그 동남쪽으로 僮城·取慮·徐城에 이르렀다.

度淮,盡降其城邑,至廣陵。
淮水를 건너 그 城邑을 모두 항복시키고 廣陵에 이르렀다.

項羽使項聲、薛公、郯公復定淮北。
項羽는 項聲·薛公·郯公으로 하여금 다시 회수 북쪽을 평정하게 하였다.

嬰度淮北,擊破項聲、郯公下邳,斬薛公,下下邳,擊破楚騎於平陽,遂降彭城,虜柱國項佗,降留、薛、沛、酂、蕭、相。
관영이 淮北으로 건너가서 下邳에서 항성과 郯公을 격파하였고설공을 참수하였으며하비를 항복시켰으며平陽에서 초의 기마병을 격파하고 마침내 팽성을 함락시켰고楚 柱國인 항타를 포로로 잡고·····을 항복시켰다.

攻苦、譙,復得亞將周蘭。
관영이 와 를 공격하여 다시 亞將 주란을 생포하였다.

與漢王會頤鄉。
頤鄕에서 漢王과 합류하였다.

從擊項籍軍於陳下,破之,所將卒斬樓煩將二人,虜騎將八人。
漢王을 따라 陳縣 일대에서 項籍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는데휘하의 사졸이 누번장 2명을 참수하였고기병장 8명을 포로로 잡았다.

賜益食邑二千五百戶。
2천 5백 호의 식읍을 더하였다.

▶ 三年 : 漢王 3년. 기원전 204년.
▶ 亞將 : 副將.
▶ 韓信 : 淮陰侯 韓信. [史記列傳] 92 淮陰侯列傳

 

列傳권92-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韓信( ? ~ 기원전 196년)은 前漢의 장군이자 제후이다.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漢初三傑 중 하나로 꼽히며, 蕭何가 國士無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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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度 : 渡와 같다. 건너다.
▶ 益 : 더하다. 늘리다.


項籍敗垓下去也,嬰以御史大夫受詔將車騎別追項籍至東城,破之。
項羽가 垓下에서 패하고 달아나자관영은 어사대부로서 조서를 받고 단독으로 車騎를 동원하여 項羽를 東城까지 추격하여 격파하였다.

所將卒五人共斬項籍,皆賜爵列侯。
휘하의 병사 5명이 함께 項羽를 참수하니모두에게 열후의 작위를 내렸다.

降左右司馬各一人,卒萬二千人,盡得其軍將吏。
좌우사마 각 1명과 병졸 1만 2천 명을 항복시켰고楚軍의 장수와 관리를 모두 체포하였다.

下東城、歷陽。
東城과 歷陽을 함락시켰다.

渡江,破吳郡長吳下,得吳守,遂定吳、豫章、會稽郡。
長江을 건너 吳縣에서 吳郡長을 격파하고 吳郡의 郡守를 생포하였고마침내 吳郡·豫章郡·會稽郡을 평정하였다.

還定淮北,凡五十二縣。
회군하는 길에 淮北 지역을 평정하였는데 총 52현이었다.

漢王立為皇帝,賜益嬰邑三千戶。
漢王이 황제에 즉위하자관영에게 3천 호의 식읍을 더하여 하사하였다.

其秋,以車騎將軍從擊破燕王臧荼。
그해 가을(기원전 202관영은 거기장군으로서 高祖를 따라 연왕 藏荼를 공격하였다.

明年,從至陳,取楚王信。
이듬해高祖를 따라 陳縣에 이르러 楚王 韓信을 체포하였다.

還,剖符,世世勿絕,食潁陰二千五百戶,號曰潁陰侯。
귀국하자高祖가 符節을 쪼개어 대대로 끊이지 않게 하였으며潁陰 2천 5백 호의 식읍을 하사하고 潁陰侯로 불렀다.

以車騎將軍從擊反韓王信於代,至馬邑,受詔別降樓煩以北六縣,斬代左相,破胡騎於武泉北。
거기장군으로서 高祖를 따라 반란을 일으킨 韓王 信을 代 땅에서 공격함에馬邑에 이르러 조서를 받고 단독으로 樓煩 북쪽의 6개 현을 함락시켰고의 左相을 참수하였으며武泉 북쪽에서 흉노의 騎兵을 격파하였다.

復從擊韓信胡騎晉陽下,所將卒斬胡白題將一人。
다시 高祖를 따라 晉陽 일대에서 韓信의 흉노 기병을 공격하니휘하의 사졸이 흉노의 白題 장군 1명을 참수하였다.

受詔并將燕、趙、齊、梁、楚車騎,擊破胡騎於硰石。
조서를 받고 ····의 車騎를 병합하여 이끌고 硰石에서 흉노의 기마병을 격파하였다.

至平城,為胡所圍,從還軍東垣。
平城에 이르러 흉노에게 포위되었다가 高祖를 따라 東垣으로 회군하였다.

從擊陳豨,受詔別攻豨丞相侯敞軍曲逆下,破之,卒斬敞及特將五人。
高祖를 따라 陳豨를 공격함에조서를 받고 단독으로 曲逆 일대에서 진희의 승상인 侯敞의 군대를 공격하여 물리쳤는데휘하의 사졸이 후창과 特將 5명을 참수하였다.

降曲逆、盧奴、上曲陽、安國、安平。
曲逆·盧奴·上曲陽·安國·安平을 항복시켰다.

攻下東垣。
동원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黥布反,以車騎將軍先出,攻布別將於相,破之,斬亞將樓煩將三人。
黥布가 반란을 일으키자거기장군으로서 먼저 나아가 에서 黥布의 別將을 공격하여 무찔렀고亞將과 樓煩將 3명을 참수하였다.

又進擊破布上柱國軍及大司馬軍。
또 진격하여 黥布의 上柱國과 大司馬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又進破布別將肥誅。
또 진격하여 黥布의 별동대장 肥誅를 격파하였다.

嬰身生得左司馬一人,所將卒斬其小將十人,追北至淮上。
관영이 몸소 左司馬 1명을 생포하였고휘하의 사졸이 10명의 小將을 참수하면서 패주하는 적을 淮上까지 추격하였다.

益食二千五百戶。
식읍 2천 5백 호를 더하였다.

布已破,高帝歸,定令嬰食穎陰五千戶,除前所食邑。
黥布를 격파하고 나서高祖가 귀국하여 관영의 식읍 영음 땅 5천 호를 확정하고 이전의 식읍을 해제하였다.

凡從得二千石二人,別破軍十六,降城四十六,定國一,郡二,縣五十二,得將軍二人,柱國、相國各一人,二千石十人。
高祖를 따르며 2천 석 관원 2명을 체포하였고단독으로는 16개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46성을 함락시켰고, 1, 2, 52현을 평정하였으며장군 2柱國과 相國 각 1, 2천 석 관원 10명을 체포하였다.

▶ 所將卒五人共斬項籍 : 項羽는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왕예가 그 머리를 취하자 남은 기병들이 서로 項王을 짓밟으며 싸우니 서로 죽인 자가 수십 명이었다. 결국 郎中騎 楊喜, 騎司馬 呂馬童, 郎中 呂勝과 楊武가 각각 몸의 한 부분을 가져갔다. 다섯 사람이 모두 몸체를 맞추어 보니 다 있었다. 그래서 땅을 다섯으로 나누어 여마동을 中水侯, 왕예를 杜衍侯에, 양희를 赤泉侯에, 양무를 吳防侯에, 여승을 涅陽侯에 봉하였다.
(乃自刎而死. 王翳取其頭, 餘騎相蹂踐爭項王, 相殺者數十人. 最其後, 郎中騎楊喜, 騎司馬呂馬童, 郎中呂勝、楊武各得其一體. 五人共會其體, 皆是. 故分其地爲五:封呂馬童爲中水侯, 封王翳爲杜衍侯, 封楊喜爲赤泉侯, 封楊武爲吳防侯, 封呂勝爲涅陽侯.<史記 卷七. 項羽本紀>

 

 

본기7. 項羽本紀2(항우본기2)

漢之元年四月,諸侯罷戲下,各就國。 漢 원년(기원전206년) 4월, 제후들이 휘하 군사를 철수하여 각자의 封國으로 떠났다. 項王出之國,使人徙義帝,曰: 「古之帝者地方千里,必居上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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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其秋 : 高祖 5년. 기원전 202년 가을.
▶ 楚王信 : 楚王 韓信. 淮陰侯 韓信을 말한다.
▶ 凡 : 모두. 전부.

 

嬰自破布歸,高帝崩,嬰以列侯事孝惠帝及呂太后。
관영이 黥布를 격파하고 귀국하였을 때 高祖가 붕어하였고관영은 열후의 신분으로 孝惠帝와 呂太后를 섬겼다.

太后崩,呂祿等以趙王自置為將軍,軍長安,為亂。
태후가 붕어하자呂祿 등이 趙王의 신분으로 스스로 장군이 되어 장안에 주둔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齊哀王聞之,舉兵西,且入誅不當為王者。
齊哀王이 듣고군대를 동원하여 서쪽으로 진군하여우선 장안에 들어가서 부당하게 왕이 된 자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上將軍呂祿等聞之,乃遣嬰為大將,將軍往擊之。
上將軍 여록 등이 이 소문을 듣고관영을 대장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게 하였다.

嬰行至滎陽,乃與絳侯等謀,因屯兵滎陽,風齊王以誅呂氏事,齊兵止不前。
관영은 出行하여 형양에 이른 뒤 絳侯 周勃 등과 상의하여형양에서 병사를 주둔하며 齊王에게 여씨를 죽이겠다는 소문을 퍼트리자齊軍이 멈추고 전진하지 않았다.

絳侯等既誅諸呂,齊王罷兵歸,嬰亦罷兵自滎陽歸,與絳侯、陳平共立代王為孝文皇帝。
絳侯 등이 여씨 일족을 죽이자제왕은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고관영 역시 군사를 거두어 형양에서 돌아와서 絳侯·진평과 함께 代王을 효문황제로 세웠다.

孝文皇帝於是益封嬰三千戶,賜黃金千斤,拜為太尉。
효문황제는 이에 관영에게 3천 호를 더 책봉하고황금 1천 근을 하사하였으며太慰로 임명하였다.

▶ 齊 哀王 : 劉襄. 齊 悼惠王 劉肥의 아들.
▶ 不當為王者 : 呂祿 형제들을 말한다. 劉邦이 유언으로 劉씨가 아니면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한 것이다.
呂后가 권력을 독점한 후, 그 친척인 呂産‧呂祿 등 여러 呂氏의 권세가 막강하였다. 여후가 죽은 뒤, 여씨들은 국가의 대사를 장악하고 난을 일으키려고 하였지만, 周勃‧灌嬰 같은 유방의 옛 신하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거동하지 못하였다. 劉氏 姓의 제후인 劉章이 그 소식을 듣고 그의 형인 齊哀王에게 알리고 여씨를 토벌하고자 하였다. 齊王이 군대를 내자 당시 재상인 呂山이 灌嬰에게 명령하여 그를 토벌하게 하니, 灌嬰이 군대를 거느리고 滎陽에 이르러 거기에 주둔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관영은 齊王 등 劉氏 姓의 제후와 연합하여 여씨들이 반란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史記 卷9 呂太后本紀>

 

 

본기9. 呂太后本紀(여태후본기)

이篇은 漢나라의 태조 劉邦의 부인인 呂氏에 대한 기록이다. 呂太后는 유방이 죽은 뒤 혜제가 즉위하자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유방의 寵妃인 戚夫人의 수족을 자르고 변소에 가두어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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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風 : 諷과 통하여 암시하다.

 

三歲,絳侯勃免相就國,嬰為丞相,罷太尉官。
3년 후絳侯 周勃이 승상을 사직하고 봉국으로 돌아가서 관영이 승상이 되매태위 벼슬은 거두었다.

是歲,匈奴大入北地、上郡,令丞相嬰將騎八萬五千往擊匈奴。
이해흉노들이 대거 北地와 上郡으로 침입하자漢文帝는 승상 관영에게 명령하여 기병 8만 5천 명을 거느리고 흉노를 공격하게 하였다.

匈奴去,濟北王反,詔乃罷嬰之兵。
흉노가 퇴각하고 濟北王 劉興居가 반란을 일으키자조서를 내려 관영에게 병사를 거두어 돌아오라고 하였다.

後歲餘,嬰以丞相卒,謚曰懿侯。
1년여 뒤 관영이 승상 벼슬에 있다가 죽자懿侯라는 시호를 내렸다.

子平侯阿代侯。
아들 平侯 灌阿가 후작을 계승하였다.

二十八年卒,子彊代侯。
관아가 28년 뒤에 죽자아들 이 후작을 계승하였다.

十三年,彊有罪,絕二歲。
13년 뒤에 이 죄를 지어 2년 동안 작위가 단절되었다.

元光三年,天子封灌嬰孫賢為臨汝侯,續灌氏後,八歲,坐行賕有罪,國除。
元光 3(기원전 132), 천자가 관영의 손자 灌賢을 臨汝候로 봉하여 灌氏 후대를 계승하게 하였으며, 8년 뒤에 灌賢이 수뢰죄에 연루되어 봉국이 취소되었다.

▶ 是歲 : 1년 뒤. 漢文帝 前元 3년(기원전 177년).
▶ 濟北王 : 齊 悼惠王 劉肥의 아들 劉興居.
▶ 元光三年 : 기원전 132년. 元光은 漢武帝의 두 번째 年號이다.
▶ 賕 : 뇌물.

 

太史公曰:
吾適豐沛,問其遺老,觀故蕭、曹、樊噲、滕公之家,及其素,異哉所聞!
方其鼓刀屠狗賣繒之時,豈自知附驥之尾,垂名漢廷,德流子孫哉?
余與他廣通,為言高祖功臣之興時若此云。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沛縣의 豊邑에 가서 그곳에 살아 있는 노인들에게 묻고옛날 蕭何·曹參·樊噲·滕公의 집과 그들의 평소 행적을 살펴보니들은 바와 달랐도다!
그들이 칼을 휘둘러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어찌 준마의 꼬리에 붙어 한의 조정에 이름을 드리워은덕이 자손까지 내려갈 줄 알았겠는가?
나는 (樊噲의 손자인樊他廣과 왕래하였는데, (그는高祖의 공신들이 일어날 때의 일이 여기의 언급과 같았다고 말해주었다.”

▶ 適 : 가다.
▶ 遺老 : 살아 남은 노인.
▶ 素 : 평소. 평소의 사람됨을 말한다.
▶ 鼓刀 : 칼을 가지고 희롱하며 소리를 내다.
▶ 附驥之尾 : 파리가 말 꼬리에 붙어서 천리를 가다. 유명한 사람에 붙어서 이름을 내다.
▶ 通 : 교류하며 왕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