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93-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耽古樓主 2023. 8. 23. 10:06

 

韓信盧綰列傳은 韓王 韓信과 盧綰陳豨 세 사람의 合傳이다.
세 사람은 각각 흉노와 연합하여 漢에 반란을 일으킨 공통점이 있다.
韓王 韓信은 史記 92 淮陰侯列傳에서의 淮陰侯 韓信과 同名異人으로 같은 시기에 살았으므로 혼동되고 있어 회음후 韓信과 구별하기 위하여 韓王 信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韓王 韓信은 秦 말기에서 漢 초기 사이의 인물로 성은 씨는 이름은 信이다전국시대 韓襄王의 후손으로의 高祖 유방에 의해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하려고 함에 오해를 받자흉노의 군대를 이끌고 漢의 변경을 쳐들어갔다韓信은 기원전 196년 봄에 다시 흉노의 기병을 이끌고 參合을 점령하였으나柴武가 이끄는 漢軍에 패하고 붙잡혀 참수되었다.

 

 

1.韓信

 

韓王信者,故韓襄王孽孫也,長八尺五寸。
韓王 信은 본래 韓襄王의 첩이 낳은 孼孫이며키가 여덟 자 다섯 치나 되었다.

及項梁之立楚後懷王也,燕、齊、趙、魏皆已前王,唯韓無有後,故立韓諸公子橫陽君成為韓王,欲以撫定韓故地。
項梁이 楚後懷王을 세우자···도 모두 이전의 왕의 후계자로 왕을 세웠으나오직 만이 후사가 없어서의 公子들 가운데 橫陽君 韓成을 韓王으로 삼아의 옛 땅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項梁敗死定陶,成奔懷王。
項梁이 定陶에서 패하여 죽자한성은 楚懷王에게 달아났다.

沛公引兵擊陽城,使張良以韓司徒降下韓故地,得信,以為韓將,將其兵從沛公入武關。
沛公이 군사를 이끌고 陽城을 치고張良을 의 司徒로 삼아 의 옛 땅을 복속시켰으며이때 장량은 韓信을 만나 의 장수로 삼았고 韓信은 병사를 이끌고 패공을 따라 武關으로 들어갔다.

▶ 韓襄王 : 倉. 宣恵王의 아들.
▶ 孽孫 : 서출의 손자.
▶ 項梁 : 秦 말기의 반란군 지도자로, 項羽의 숙부이다. 반란을 이끌던 도중 秦軍의 기습 공격으로 전사하였다.
▶ 橫陽君成 : 韓成.
▶ 撫定 : 평정하다. 어루만지고 안정시킴.
▶ 沛公 : 漢 高祖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칭호. 劉邦.
▶ 張良 : 潁川 城父 사람으로 자는 子房이다. 韓 출신으로 劉邦을 도와 漢을 건국, 留侯에 봉해졌다.

 

沛公立為漢王,韓信從入漢中,乃說漢王曰:
「項王王諸將近地,而王獨遠居此,此左遷也。
士卒皆山東人,跂而望歸,及其鋒東鄉,可以爭天下。」
패공이 漢王으로 봉해지자韓信이 漢王을 따라 漢中으로 들어가서 漢王을 설득하였다.
項王은 장수들을 가까운 땅의 왕으로 봉하였는데 왕께서만 홀로 멀리 이곳에 있으니이것은 좌천입니다.
사졸이 모두 山東 출신으로 발돋움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으니劍鋒을 동쪽으로 향하신다면 천하를 다툴 수 있을 터입니다.”

漢王還定三秦,乃許信為韓王,先拜信為韓太尉,將兵略韓地。
漢王이 군사를 돌려 三秦을 평정하고韓信에게 韓王이 됨을 허락하고그에 앞서 을 韓太尉에 임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韓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 王諸將 : 장수들을 왕으로 봉하다. 王: 왕으로 봉하다.
▶ 跂 : 발돋움하다.
▶ 東鄉 : 동쪽으로 秦軍하다. 鄉은 向과 통한다.
▶ 定三秦 : 기원전 206년,劉邦이 韓信의 계책을 써서 몰래 陳倉으로 가서 함양의 章邯, 색왕 司馬欣, 척왕 董翳를 항복시켰다.

 

項籍之封諸王皆就國,韓王成以不從無功,不遣就國,更以為列侯。
項籍이 봉한 왕들이 모두 자신의 봉국으로 갔으나 韓王 成은 항우를 따라가지 않아 공이 없었으므로 봉국에 보내지 않고 다시 列侯로 삼았다.

及聞漢遣韓信略韓地,乃令故項籍游吳時吳令鄭昌為韓王以距漢。
이 韓信을 보내 의 옛 땅을 공략함을 듣고項籍은 옛날 에 머물 당시 오현의 현령이던 鄭昌을 韓王으로 삼아 을 막게 하였다.

漢二年,韓信略定韓十餘城。
漢王 2(기원전 205)에 韓信이 의 10여 성을 공략해 평정하였다.

漢王至河南,韓信急擊韓王昌陽城。
漢王이 河南에 이르자韓信이 급히 韓王 昌을 陽城에서 공격하였다.

昌降,漢王乃立韓信為韓王,常將韓兵從。
창이 항복하자漢王이 韓信을 韓王에 봉하니韓信은 늘 韓軍를 거느리고 隨從하였다.

三年,漢王出滎陽,韓王信、周苛等守滎陽。
漢王 3년에 漢王이 滎陽을 빠져나가자韓王 信과 周苛 등이 형양을 지켰다.

及楚敗滎陽,信降楚,已而得亡,復歸漢,漢復立以為韓王,竟從擊破項籍,天下定。
가 滎陽에서 패퇴시키자 韓信이 에 항복하였으나 얼마 후 달아나서 다시 으로 돌아가니 에서는 다시 韓王에 봉하였고 마침내 漢王을 따라서 항적을 격파하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五年春,遂與剖符為韓王,王潁川。
漢王 5년 봄에 마침내 부절을 쪼개어 韓王에 봉하니潁川의 왕이 되었다.

▶ 周苛 : 劉邦을 따라 內史가 되고, 御史大夫로 옮겼다. 초한전쟁 때 魏豹, 樅公과 함께 滎陽을 지켰다.
▶ 剖符 :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明年春,上以韓信材武,所王北近鞏、洛,南迫宛、葉,東有淮陽,皆天下勁兵處,乃詔徙韓王信王太原以北,備御胡,都晉陽。
이듬해(기원전 201봄에 高祖는 韓信처럼 재능과 용맹이 있는 사람이 북쪽으로는 과 에 가깝고남쪽으로는 과 에 가까우며동쪽으로는 淮陽이 있어서 모두 천하의 사나운 군대만 있는 곳에서 왕 노릇을 해야 한다고 하여 조서를 내려 韓王 信을 太原 북쪽으로 옯겨 오랑캐를 막도록 하고晉陽에 도읍하게 하였다.

信上書曰:
「國被邊,匈奴數入,晉陽去塞遠,請治馬邑。」
韓王 신이 글을 올렸다.
나라가 변경으로 둘러싸여 있어 匈奴가 자주 침입하는데진양은 변방의 요새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馬邑으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上許之,信乃徙治馬邑。
高祖가 허락하자韓信은 곧 마읍으로 도읍을 옮겼다.

▶ 材武 : 능력이 있고 용맹스럽고 위세가 있다.
▶ 勁兵 : 강한 병사.

秋,匈奴冒頓大圍信,信數使使胡求和解。
이해 가을흉노 冒頓이 대규모로 韓信을 포위하자韓信은 여러 차례 오랑캐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漢發兵救之,疑信數閒使,有二心,使人責讓信。
이 군대를 보내어 구원하려 했지만韓信이 자주 흉노에게 몰래 사자를 보냄을 두 마음을 품었다고 의심하여 사람을 보내 韓信을 책임을 따져 나무랐다.

信恐誅,因與匈奴約共攻漢,反,以馬邑降胡,擊太原。
韓信은 죽임을 두려워하여 흉노와 함께 을 공격하기로 약속하여 을 배반하고馬邑을 주고 오랑캐에 항복한 뒤 太原을 공격하였다.

▶ 匈奴冒頓 : 묵돌. [漢初 흉노의 한 單于의 이름]
▶ 責讓 : 책임을 따져 나무라다. 讓은 꾸짖다.
▶ 太原 : 山西省의 省都. 전국시대 趙의 국도.

七年冬,上自往擊,破信軍銅鞮,斬其將王喜。
高祖 7년 겨울에 高祖가 가서 공격하여 韓信의 군대를 銅鞮에서 격파하고장수 王喜를 참수하였다.

信亡走匈奴。
韓信은 흉노로 도망하였다.

其與白土人曼丘臣、王黃等立趙苗裔趙利為王,復收信敗散兵,而與信及冒頓謀攻漢。
韓王 信의 장수인 白土 출신 曼丘臣·王黃 등이 의 후예인 趙利를 趙王으로 세우고韓王 信의 패잔병을 수습해서 韓信 및 冒頓과 모의하여 을 공격하였다.

匈奴仗左右賢王將萬餘騎與王黃等屯廣武以南,至晉陽,與漢兵戰,漢大破之,追至于離石,復破之。
흉노는 左賢王과 右賢王에게 1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왕황 등과 함께 廣武 남쪽에 진을 치고진양에 도착하여 漢軍과 싸웠으나漢軍이 대파하고 離石까지 추격하여 다시 쳐부수었다.

▶ 亡走 : 도망가다. 달아나다.
▶ 苗裔 : 후예. 자손.
▶ 冒頓 : 묵돌. [漢初 흉노의 한 單于의 이름]

 

匈奴復聚兵樓煩西北,漢令車騎擊破匈奴。
흉노가 樓煩 서북쪽에 군대를 다시 모으자은 車騎를 보내어 흉노를 격파하였다.

匈奴常敗走,漢乘勝追北,聞冒頓居代谷,高皇帝居晉陽,使人視冒頓,還報曰「可擊」。
흉노가 번번이 敗走하자漢軍은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함에묵특이 代谷에 있음을 알고高祖가 진양에 있다가 사람을 시켜 묵특을 엿보게 하였는데 첩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공격하여도 되겠습니다.”

上遂至平城。
高祖가 이에 平城에 도착하였다.

上出白登,匈奴騎圍上,上乃使人厚遺閼氏。
高祖가 白登山으로 나가자 흉노 기병이 高祖를 포위하니高祖가 사람을 시켜 흉노의 왕후 閼氏에게 후한 예물을 보냈다.

閼氏乃說冒頓曰:
「今得漢地,猶不能居;且兩主不相緱」
그러자 연지가 묵특을 설득하였다.
지금 의 땅을 얻더라도 거주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두 군주가 서로 출로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居七日,胡騎稍引去。
7일이 지나자 흉노의 기병이 조금 물러났다.

時天大霧,漢使人往來,胡不覺。
그때 안개가 잔뜩 끼어 있으매 에서는 사자가 왕래하였지만 흉노는 알아채지 못하였다.

▶ 乘勝追北 : 승승장구하여 敗走하는 적을 추격하였다. 北는 달아날 ‘배’.
▶ 閼氏 : 漢代에 匈奴族이 君主의 正室을 일컫던 말. 閼은 흉노의 왕비.
▶ 相緱 : 서로 겹겹이 포위하다. 서로 출로를 막다.

護軍中尉陳平言上曰:
「胡者全兵,請令彊弩傅兩矢外向,徐行出圍。」
護軍中尉 陳平이 高祖에게 아뢰었다.
흉노의 모든 병사는 와 활 등 공격용 무기를 쓰니강한 쇠뇌에 화살을 두 개씩 매긴 후에 밖으로 향하게 하고천천히 걸어서 포위를 벗어나십시오.”

入平城,漢救兵亦到,胡騎遂解去。
평성으로 들어오자 의 구원병도 도착하였고흉노의 기병이 마침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漢亦罷兵歸。
漢 역시 군사를 거두고 돌아갔다.

韓信為匈奴將兵往來擊邊。
韓信이 흉노를 위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오가면서 변경을 공격하였다.

▶ 全兵 : 긴 창과 활과 화살 등 공격용 무기를 사용함을 말함.
▶ 傅 : 附와 통하여 부착하다.

漢十年,信令王黃等說誤陳豨。
漢 10(기원전 197)에 韓信이 王黃 등에게 陳稀를 설득하도록 하여 자신을 그르치게 하였다.

十一年春,故韓王信復與胡騎入居參合,距漢。
漢 11년 봄에 이전에 韓王이었던 이 다시 흉노 기병과 함께 參合城을 점거하고 에 대항하였다.

漢使柴將軍擊之,遺信書曰:
「陛下寬仁,諸侯雖有畔亡,而復歸,輒復故位號,不誅也。
大王所知。
今王以敗亡走胡,非有大罪,急自歸!」
은 柴將軍에게 그들을 치게 하자 韓信에게 글을 보냈다.
폐하께서는 너그럽고 어질며제후에 비록 배반하여 도망하는 자가 있더라도다시 돌아오면 번번이 예전의 지위와 칭호를 돌려주고 죽이지 않으십니다.
대왕께서도 아는 바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싸움에 패하여 흉노로 달아났을 뿐큰 죄가 있음이 아니니속히 스스로 돌아오십시오!”

▶ 陳豨 : 秦 말기, 전한 초의 인물이다. 전한 高祖의 개국공신이며 漢王 신 · 흉노와 연계한 반란으로 漢의 북방을 뒤흔들었다. 고제 10년(기원전 197년), 고제의 아버지 태상황이 죽자 漢王 신은 王黃과 曼丘臣을 보내 진희와 상의하여 8월에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 柴將軍 : 柴武. 전한 초기의 무장으로, 전한 고제의 개국 공신이다.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이전에 흉노에 항복해 漢을 계속 괴롭혀 온 漢王 신이 參合으로 쳐들어오자 맞싸우러 나가 漢王 신에게 항복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漢王 신이 받아들이지 않자 참합을 도륙하고 漢王 신을 참수했다
▶ 畔亡 : 배반하고 도망함. 畔은 叛과 통한다.

韓王信報曰:
漢王 신이 알려왔다.

「陛下擢仆起閭巷,南面稱孤,此仆之幸也。
폐하께서는 저를 閭巷에서 발탁하여 남면하여 왕이라 칭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나의 행운이었소.

滎陽之事,仆不能死,囚於項籍,此一罪也。
형양의 전투에서 저는 죽지 못하고 項籍에게 사로잡혔으니이것이 첫 번째 죄요.

及寇攻馬邑,仆不能堅守,以城降之,此二罪也。
흉노가 마읍을 공격함에 저는 굳게 지키지 못하고 성을 들어 항복했으니이것이 두 번째 죄요.

今反為寇將兵,與將軍爭一旦之命,此三罪也。
그런데 오히려 흉노를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장군과 하루아침의 목숨을 다투게 되었으니이것이 세 번째 죄요.

夫種、蠡無一罪,身死亡;
今仆有三罪於陛下,而欲求活於世,此伍子胥所以僨於吳也。
무릇 대부 文種과 范蠡는 한 가지 죄도 없으면서 죽거나 도망하였는데,
그러나 저에게는 폐하께 세 가지 죄가 있으므로 세상에 살아남으려 한다면이것이 伍子胥가 에서 쓰러져 죽은 이유이오.

今仆亡匿山谷閒,旦暮乞貸蠻夷,仆之思歸,如痿人不忘起,盲者不忘視也,勢不可耳。」
지금 저는 달아나서 산골짜기에 숨고아침저녁으로 흉노에게 구걸하며 지내니제가 귀국을 생각함은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서기를 잊지 못하고장님이 보기를 잊지 못함과 같으니 형세상 불가할 뿐이오.”

遂戰。
드디어 교전하였다.

柴將軍屠參合,斬韓王信。
시장군이 삼합성을 도륙하고漢王 신을 참수하였다.

▶ 擢 : 뽑다. 발탁하다.
▶ 閭巷 : 골목. 평민백성을 말한다.
▶ 仆 : 저. 자신의 겸칭.
▶ 滎陽之事 : 형양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에서 韓信이 항우에게 사로잡혔다.
▶ 種,蠡 : 월나라의 대부 文種과 책사 范蠡를 말한다.
▶ 僨 : 넘어지다. 쓰러지다.
▶ 痿人 : 앉은뱅이.

 

信之入匈奴,與太子俱;
韓信이 흉노에 의탁함에태자와 함께 갔다.

及至穨當城,生子,因名曰穨當。
頹當城에 도착함에 아들을 낳으니인하여 이름을 穨當이라고 하였다.

韓太子亦生子,命曰嬰。
의 태자도 아들을 낳고 이름을 이라 하였다.

至孝文十四年,穨當及嬰率其眾降漢。
孝文帝 14(기원전 166)에 이르러 한퇴당과 한영이 그 무리를 이끌고 에 항복하였다.

漢封穨當為弓高侯,嬰為襄城侯。
은 퇴당을 弓高侯로 봉하고영을 襄城侯로 봉하였다.

吳楚軍時,弓高侯功冠諸將。
오초칠국의 난 때궁고후의 공이 제후의 으뜸이었다.

傳子至孫,孫無子,失侯。
작위를 아들에게 전하여 손자에 이르렀지만손자는 아들이 없어 후작의 지위를 잃었다.

嬰孫以不敬失侯。
한영의 손자는 不敬罪로 후작의 지위를 잃었다.

穨當孽孫韓嫣,貴幸,名富顯於當世。
퇴당의 서출의 손자인 韓嫣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명성과 부귀를 당대를 떨쳤다.

其弟說,再封,數稱將軍,卒為案道侯。
그의 아우 은 다시 제후에 봉해졌는데여러 차례 장군을 일컫다가 마침내 案道侯가 되었다.

子代,歲餘坐法死。
아들이 대를 잇더니한 해 남짓 지나 죄를 저질러 죽임을 당하였다.

後歲餘,說孫曾拜為龍頟侯,續說後。
한 해 남짓 지나 한열의 손자 이 龍額侯에 임명되어 열의 뒤를 이었다.

▶ 太子 : 韓信의 아들을 말한다.
▶ 吳楚軍時 : 기원전 157년에 文帝가 죽었고, 漢景帝(:劉啓) 3년에 吳·楚 등의 7개 제후왕이 군사를 일으켜 반동한 것을 ‘吳楚七國之亂’이라 일컬었다.
▶ 坐法 : 죄에 의하여 처벌을 받다.

 

 

盧綰은 沛國 豊邑 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高帝 12년(기원전 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 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

 

 

2. 盧綰

盧綰者,豐人也,與高祖同里。
盧綰은 豐邑 사람으로 高祖와 같은 마을에 살았다.

盧綰親與高祖太上皇相愛,及生男,高祖、盧綰同日生,里中持羊酒賀兩家。
노관의 아버지는 高祖의 太上皇과 서로 친했으며아들을 낳음에 高祖와 노관이 같은 날에 태어나서 마을 사람들이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兩家를 축하해주었다.

及高祖、盧綰壯,俱學書,又相愛也。
高祖와 노관이 장성함에 함께 글을 배우고 서로 아꼈다.

里中嘉兩家親相愛,生子同日,壯又相愛,復賀兩家羊酒。
마을 사람들은 兩家의 아버지가 서로 친하고 같은 날에 아들을 낳은 데다 장성하여서도 서로 아낌을 아름답게 여겨다시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두 집을 축하해주었다.

高祖為布衣時,有吏事辟匿,盧綰常隨出入上下。
高祖가 평민이었을 때 관리의 사무로 피해 숨은 적이 있었는데노관이 늘 따르며 苦樂을 함께하였다.

▶ 高祖 : 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 묘호는 太祖, 시호는 高皇帝이며, 일반으로 高祖로 불린다.
▶ 太上皇 : 유방의 아버지. 황제의 아버지.
▶ 布衣 : 평민.
▶ 吏事 : 관리의 사무.
▶ 出入: 出进。往来。支出与收入。劳逸;作息。指所估计之数可能或上或下,接近而并不等同。谓或出或入,有相似处,亦有相异处。谓弯曲,不平直。犹言上报下达。谓朝廷内外。指出将入相。谓涉猎广博,融会贯通。或进或出。比喻变化无定。指女子嫁者与未嫁者。特指呼吸。

及高祖初起沛,盧綰以客從,入漢中為將軍,常侍中。
高祖가 沛縣에서 起兵한 초기에노관은 빈객으로서 따랐으며漢中에 들어가서는 장군이 되어 늘 궁중에서 모셨다.

從東擊項籍,以太尉常從,出入臥內,衣被飲食賞賜,群臣莫敢望,雖蕭曹等,特以事見禮,至其親幸,莫及盧綰。
동쪽으로 가서 항우를 공격함을 隨從함에 太尉로서 늘 따르며 침실까지도 드나들었고옷이나 음식을 상으로 내림에도 신하들은 감히 바라지 못하였다.
비록 蕭何와 曹參 등이라 하더라도 政事로써 禮遇를 받았을 뿐친밀함과 은총에 이르러서는 노관에 미칠 자가 없었다.

綰封為長安侯。。
노관은 長安侯로 봉해졌다.

長安,故咸陽也
장안은 옛 咸陽이다

▶ 蕭曹 : 蕭何와 曹參. 蕭何는 高祖 유방의 재상이며, 曹參은 高祖의 功臣이다. 조참은 소하와 더불어 高祖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

漢五年冬,以破項籍,乃使盧綰別將,與劉賈擊臨江王共尉,破之。
5(기원전 202겨울高祖가 항우를 쳐부수고 노관을 別將으로 삼아 劉賈와 함께 臨江王 共尉를 깨뜨렸다.

七月還,從擊燕王臧荼,臧荼降。
7월에 돌아와서 高祖를 따라 燕王 藏荼를 공격하자 장도가 항복하였다.

高祖已定天下,諸侯非劉氏而王者七人。
高祖가 천하를 평정하자제후 중 劉氏가 아니면서 왕이 된 사람이 일곱 명이었다.

欲王盧綰,為群臣觖望。
노관도 왕으로 봉하고 싶었지만신하들 때문에 희망대로 하지 못하였다.

及虜臧荼,乃下詔諸將相列侯,擇群臣有功者以為燕王。
연왕 장도를 사로잡음에將相과 열후에게 조서를 내려 신하들 가운데 有功者를 골라 연왕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 以 : 已와 통하여 이미. 허사 以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以

한문의 허사(虛詞) 以 以及 및 以至 ~까지 以至于 ~ 때문에 以是 그래서 以故 그러므로 以此 이리하여 以는 허사 중에서 가장 많은 용법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또한 실사적인 용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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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觖望 : 희망에 미흡하다. 觖은 서운해하다. 부족하다. 미흡하다 ‘결’.

群臣知上欲王盧綰,皆言曰:
「太尉長安侯盧綰常從平定天下,功最多,可王燕。」
신하들은 高祖가 노관을 왕으로 봉하려 함을 알고 모두 말하였다.
태위 장안후 노관이 늘 따라다니며 천하를 평정했으므로 공이 가장 많아 연왕으로 삼을 만합니다.”

詔許之。
조칙을 내려 허락하였다.

漢五年八月,乃立虜綰為燕王。
漢 5년 8월에 노관을 燕王으로 삼았다.

諸侯王得幸莫如燕王。
제후나 왕들 가운데 총애를 받음에 누구도 연왕과 같지 못하였다.

漢十一年秋,陳豨反代地,高祖如邯鄲擊豨兵,燕王綰亦擊其東北。
漢 11(기원전 194가을에 陳豨가 代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高祖가 邯鄲에 가서 진희의 을 공격했으며연왕 노관도 그 동북쪽을 쳤다.

當是時,陳豨使王黃求救匈奴。
이때 진희는 王黃으로 하여금 흉노에게 구원을 청하게 하였다.

燕王綰亦使其臣張勝於匈奴,言豨等軍破。
연왕 노관 역시 신하 張勝을 흉노에 사신으로 보내 진희 등의 군대가 이미 격파되었다고 말하게 하였다.

張勝至胡,故燕王臧茶子衍出亡在胡,見張勝曰:
장승이 흉노에 도착하니이전의 연왕 장도의 아들인 藏衍이 도망하여 흉노에 있다가장승을 보고 말하였다.

「公所以重於燕者,以習胡事也。
공이 에 중용됨은 흉노의 사정에 밝기 때문입니다.

燕所以久存者,以諸侯數反,兵連不決也。
연이 오래도록 존속함은 제후가 자주 배반하고 전쟁이 계속되어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今公為燕欲急滅豨等,豨等已盡,次亦至燕,公等亦且為虜矣。
지금 공은 을 위하여 빨리 진희 등을 없애려고 하나진희 등이 없어지면 다음으로 재앙이 에도 이르러서공들 또한 포로가 될 터입니다.

公何不令燕且緩陳豨而與胡和?
공은 어찌하여 진희를 공격함을 잠시 늦추고 흉노와 화친하지 않습니까?

事寬,得長王燕;
일이 느슨해지면 연에서 왕노릇 함을 장구하게 할 수 있습니다.

即有漢急,可以安國。」
만일 이 다급해지면나라를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張勝以為然,豨私令匈奴助豨等擊燕。
장승이 옳다고 여기니진희는 은밀히 흉노로 하여금 진희를 도와 을 공격하게 하였다.

燕王綰疑張勝與胡反,上書請族張勝。
연왕 노관은 장승이 흉노와 함께 배반했다고 의심하고글을 올려 장승의 일족을 멸하기를 요청하였다.

勝還,具道所以為者。
장승이 돌아와서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상세히 말하였다.

燕王寤,乃詐論它人,脫勝家屬,使得為匈奴閒,而陰使范齊之陳豨所,欲令久亡,連兵勿決。
연왕이 깨닫고 이에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처벌하고장승과 그 가족을 탈출시켜 흉노의 간첩이 되게 하고몰래 范齊를 진희에게 사신으로 보내어오랫동안 망명하여 전쟁을 계속하되 승패를 결하지 말자고 하였다.

漢十二年,東擊黥布,豨常將兵居代,漢使樊噲擊斬豨。
漢 12년에 高祖가 동쪽으로 가서 黥布를 쳤는데진희가 늘 군대를 거느리고 代 땅에 있으므로은 樊噲를 시켜 진희를 공격하여 참하였다.

其裨將降,言燕王綰使范齊通計謀於豨所。
그의 裨將이 항복하며 연왕 노관이 범제를 진희에게 보내어 내통하고 계책을 꾸몄습니다.’라고 말하였다.

高祖使使召盧綰,綰稱病。
高祖가 사자를 보내 노관을 불렀지만노관이 稱病하였다.

上又使辟陽侯審食其、御史大夫趙堯往迎燕王,因驗問左右。
高祖가 또 辟陽侯 審食其와 御史大夫 趙堯를 보내 연왕을 데려오게 하고 연왕의 측근을 심문하라고 하였다.

綰愈恐,閉匿,謂其幸臣曰:
「非劉氏而王,獨我與長沙耳。
往年春,漢族淮陰,夏,誅彭越,皆呂后計。
今上病,屬任呂后。
呂后婦人,專欲以事誅異姓王者及大功臣。」
노관이 더욱 두려워하며 문을 닫아걸고 숨으면서 자기의 총신에게 말하였다.
유씨가 아니면서 왕이 된 자는 오직 나와 長沙王뿐이다.
지난해 봄에 은 淮陰侯 韓信을 멸족하고여름에는 彭越을 죽였는데 모두 呂后의 계략이다.
지금 황상은 병들어 국사를 여후에게 맡기고 있다.
여후는 여인이라 오로지 異姓王과 大功臣을 죽임을 일삼고 있다.”

乃遂稱病不行。
그러고는 병을 핑계하고 가지 않았다.

其左右皆亡匿。
그의 측근도 모두 달아나 숨었다.

語頗泄,辟陽侯聞之,歸具報上,上益怒。
말이 자못 누설되어 벽양후가 알게 되었고돌아가서 高祖에게 자세히 아뢰자 高祖가 더욱 노하였다.

又得匈奴降者,降者言張勝亡在匈奴,為燕使。
또 흉노에서 투항한 자를 얻었는데그가 장승이 도망하여 흉노에 있는데 연의 사신입니다.’라고 말하였다.

於是上曰:
「盧綰果反矣!」
이에 高祖가 말하였다.
노관이 과연 배반했구나!”

使樊噲擊燕。
번쾌를 시켜서 연을 치게 하였다.

燕王綰悉將其宮人家屬騎數千居長城下,侯伺,幸上病愈,自入謝。
연왕 노관은 宮人과 家屬과 기병 수천을 거느리고 장성에 머물면서 기회를 엿보다가다행히 高祖의 병이 나으면 스스로 들어가서 사죄하려고 하였다.

四月,高祖崩,盧綰遂將其眾亡入匈奴,匈奴以為東胡盧王。
이해 4월에 高祖가 붕어하여 노관은 마침내 무리를 거느리고 도망하여 흉노로 가니흉노는 東胡의 盧王으로 삼았다.

綰為蠻夷所侵奪,常思復歸。
노관은 남쪽 오랑캐에게 侵奪을 당하자 늘 다시 돌아감을 생각하였다.

居歲餘,死胡中。
1년 남짓 지내다가 흉노 땅에서 죽었다.

▶ 如 : ~에 이르다.
▶ 伺 : 엿보다.
▶ 蠻夷 : 남쪽 오랑캐.

高后時,盧綰妻子亡降漢,會高后病,不能見,舍燕邸,為欲置酒見之。
高后 때 노관의 妻子가 흉노에서 도망하여 에 항복함에마침 高后가 으로 만날 수가 없어서 연왕의 관저에서 연회를 베풀어 만나고자 하였다.

高祖竟崩,不得見。
高祖가 마침내 붕어하자 만날 수가 없었다.

盧綰妻亦病死。
노관의 아내도 역시 병들어 죽었다.

孝景中六年,盧綰孫他之,以東胡王降,封為亞谷侯。
孝景帝 6년에 노관의 손자 他之가 東胡王으로써 항복하니은 亞谷侯로 봉하였다.

▶ 高后 : 本朝的开国君主。즉 漢高祖를 말한다
▶ 孝景 : 孝景皇帝 劉啓(기원전 188년 ~ 기원전 141년)는 전한의 제6대 황제로, 文帝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孝文皇后이다.

 

 

陳豨는 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漢高祖 劉邦을 따라 燕王 藏荼를 평정하여 陽夏侯에 봉해졌다.
고조 7년(기원전 200년)에 의 相國이 되어 趙·代의 군사를 관할하였다.
고조 10년(기원전 197년韓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고조 12년(기원전 196년漢의 진압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번쾌의 별장의 공격을 받아 당성에서 죽었다고도 하고혹은 주발의 공격을 받아 靈丘에서 격파되어 참수되었다고도 한다.



3.陳豨

 

陳豨者,宛朐人也,不知始所以得從。
陳豨는 宛胊 사람이며처음에 어떤 까닭으로 高祖를 따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及高祖七年冬,韓王信反,入匈奴,上至平城還,乃封豨為列侯,以趙相國將監趙、代邊兵,邊兵皆屬焉。
高祖 7년 겨울에 韓王 信이 모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高祖가 (韓信을 평정하러평성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진희를 列侯에 봉하여의 相國 자격으로 장수를 삼아 와 의 변경 군사를 감독하게 하니변경의 군사가 모두 그에게 배속되었다.

豨常告歸過趙,趙相周昌見豨賓客隨之者千餘乘,邯鄲官舍皆滿。
진희가 일찍이 休假로 에 들렀으며의 재상 周昌이 보니진희의 빈객으로 따르는 자가 천여 이나 되어 邯鄲의 관사가 모두 가득 찼다.

豨所以待賓客布衣交,皆出客下。
진희가 빈객을 대하는 태도는 평민의 예절로모두 빈객의 아래로 낮추었다.

豨還之代,周昌乃求入見。
진희가 로 돌아가자 주창이 입궐하여 高祖를 뵙기를 청하였다.

見上,具言豨賓客盛甚,擅兵於外數歲,恐有變。
高祖를 뵙자 자세히 말하기를진희의 빈객이 지나치게 많고 외지에서 몇 년 동안 병권을 擅斷하니변란이라도 있을까 두렵다고 했다.

▶ 趙相國 : 趙相國은 오류이며 代 相國으로 해야 한다. 王先謙<漢書補註>
▶ 常 : 嘗과 통하여 일찍이, 이전에.
▶ 告歸 : 告别回家。旧时官吏告老回乡或请假回家(늙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휴가를 청하여 집으로 돌아감)
▶ 周昌 : 沛縣 사람으로 성격이 강직하고 말을 몹시 더듬었으나 直諫을 잘하였으며, 漢 高祖를 따라 출전하여 군공을 세워 御史大夫가 되고 汾陰侯에 봉해졌다.
▶ 擅兵 : 병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다.

上乃令人覆案豨客居代者財物諸不法事,多連引豨。
高祖는 이에 사람을 시켜 진희의 빈객으로 에 사는 자의 재물과 제반 불법적인 일을 조사하게 했더니 진희와 관련된 일이 많았다.

豨恐,陰令客通使王黃、曼丘臣所。
진희가 두려워하며 은밀히 빈객을 왕황과 만구신이 있는 곳에 보내어 내통하였다.

及高祖十年七月,太上皇崩,使人召豨,豨稱病甚。
高祖 10(기원전 197) 7월에 태상황이 붕어하자高祖가 사람을 보내 진희를 불렀지만진희는 병이 심하다고 핑계를 댔다.

九月,遂與王黃等反,自立為代王,劫略趙、代。
9마침내 왕황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자립하여 代王이 되고와 의 땅을 강탈하였다.

上聞,乃赦趙、代吏人為豨所詿誤劫略者,皆赦之。
高祖가 알고 조와 대의 관리 중 진희에게 연루되거나 협박당한 자를 모두 사면하였다.

上自往,至邯鄲,喜曰:
「豨不南據漳水,北守邯鄲,知其無能為也。」
高祖가 몸소 가서 한단에 도착하더니 기뻐하였다.
진희가 남쪽으로 漳水에 의지하지 않고 북쪽으로 한단을 지키지도 않으니그가 큰일을 하지 못함을 알겠다.”

趙相奏斬常山守、尉,曰:
「常山二十五城,豨反,亡其二十城。」
趙相이 常山의 군수와 郡尉를 죽이자고 高祖에게 주청하였다.
상산의 25성 가운데 진희의 모반으로 인하여 20성을 잃었습니다.”

上問曰:
「守、尉反乎?」
高祖가 물었다.
군수와 군위가 모반했는가?”

對曰:
「不反。」
대답하였다.
모반하지는 않았습니다.”

上曰:
「是力不足也。」
高祖가 말하였다.
역부족이었다.”

赦之,復以為常山守、尉。
사면하고 다시 상산의 군수와 군위로 삼았다.

▶ 覆案 : 审察;查究。 审察;查究 추적 조사하다.
▶ 劫略 : 약탈하다. 강탈하다.
▶ 詿誤 : 연루되다. 처분을 받거나 손해를 입다.
▶ 郡尉 : 都尉와 같다. 秦有郡尉,汉景帝时更名为都尉,秩比二千石,掌佐助太守分管军事,维持境内治安。

上問周昌曰:
「趙亦有壯士可令將者乎?」
高祖가 주창에게 물었다.
에도 장수로 삼을 만한 장사가 있는가?”

對曰:
「有四人。」
대답하였다.
네 명이 있습니다.”

四人謁,上謾罵曰:
「豎子能為將乎?」
4인이 高祖를 알현하자 高祖가 그들을 마구 욕하며 말하였다.
풋내기들이 장수가 될 수 있겠느냐?”

四人慚伏。
네 사람이 부끄러워하여 땅에 엎드렸다.

上封之各千戶,以為將。
高祖는 그들에게 각각 1천 를 봉하고 장군으로 삼았다.

左右諫曰:
「從入蜀、漢,伐楚,功未遍行,今此何功而封?」
측근이 간하였다.
수종하며 까지 들어가거나를 친 공도 두루 行賞하지 못하였는데도 이들이 무슨 공을 세웠다고 封土하십니까?”

上曰:
「非若所知!
陳豨反,邯鄲以北皆豨有,吾以羽檄徵天下兵,未有至者,今唯獨邯鄲中兵耳。
吾胡愛四千戶封四人,不以慰趙子弟!」
高祖가 말하였다.
그대들이 알 바 아니오!
진희가 모반하니 한단 이북은 모두 진희의 소유가 되었으나내가 급한 격문을 띄워 천하의 군사를 징발하였으나 오는 자가 없으니지금은 오직 한단의 군사만 있을 뿐이오.
내가 어찌 4천 호를 네 사람에게 봉함을 아까워하여 의 子弟들을 위로하지 않겠소!”

皆曰:
「善。」
모두들 말하였다.
옳습니다.”

於是上曰:
「陳豨將誰?」
이에 高祖가 물었다.
진희의 장수가 누구인가?”

曰:
「王黃、曼丘臣,皆故賈人。」
말하였다.
王黃曼丘臣으로 모두 전에 장사꾼이었습니다.”

上曰:
「吾知之矣。」
高祖가 말하였다.
내가 알 만하오.”

乃各以千金購黃、臣等。
이에 왕황과 만구신 등에게 각각 천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十一年冬,漢兵擊斬陳豨將侯敞、王黃於曲逆下,破豨將張春於聊城,斬首萬餘。
高祖 11(기원전 196겨울漢軍이 공격하여 진희의 장수 侯敞과 왕황을 曲逆에서 베고진희의 장수 張春을 聊城에서 깨뜨리고만여 명을 참수하였다.

太尉勃入定太原、代地。
태위 周勃이 쳐들어가서 太原과 代 땅을 평정하였다.

十二月,上自擊東垣,東垣不下,卒罵上;
東垣降,卒罵者斬之,不罵者黥之。
12월에 高祖가 직접 東垣을 쳤지만동원은 항복하지 않았고 병졸들이 高祖를 욕하였는데.
동원이 항복하자 병졸 중 욕한 자들을 하고욕하지 않은 자들은 黥刑에 처하였다.

更命東垣為真定。
東垣을 眞正이라고 改名하였다.

王黃、曼丘臣其麾下受購賞之,皆生得,以故陳豨軍遂敗。
왕황과 만구신의 휘하가 상금을 받으려고 모두 산 채로 잡아왔으므로진희의 군은 마침내 패배하였다.

▶ 謾罵 : 謾은 漫과 통한다. 마구 욕설을 퍼붓다.
▶ 豎子 : 풋내기. 못난 자식.
▶ 羽檄 : 군사상 급하게 전하는 檄文. 새의 깃털을 꽂아 至急의 뜻을 나타내던 檄文.
▶ 賈人 : 장사꾼.
▶ 購 : 현상금을 걸다.
▶ 勃 : 周勃.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沛縣 사람으로 高祖에 봉사하여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 黥 : 墨刑. 이마에 죄인이라는 표시를 먹실로 새기는 고대 형벌의 일종.

上還至洛陽。
高祖는 낙양으로 돌아왔다.

上曰:
「代居常山北,趙乃從山南有之,遠。」
高祖가 말하였다.
대는 常山 북쪽에 위치하고 가 상산 남쪽에서 그것을 다스리니거리가 멀다.”

乃立子恒為代王,都中都,代、鴈門皆屬代。
이에 아들 을 세워서 代王으로 삼고 中都에 도읍하게 하니 대와 雁門이 모두 대에 귀속하였다.

高祖十二年冬,樊噲軍卒追斬豨於靈丘。
高祖 12년 겨울에 번쾌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여 靈丘에서 진희를 참수하였다.

 

太史公曰:
韓信、盧綰非素積德累善之世,徼一時權變,以詐力成功,遭漢初定,故得列地,南面稱孤。
태사공은 말한다.
韓王 信과 燕王 盧綰은 본래 조상 대대로 덕을 쌓고 선행을 한 집안이 아니며일시적인 임기응변을 만나 사기와 폭력으로 공을 이루고이 갓 천하를 평정함을 만났기 때문에 봉토를 받고 남면하여 稱王하였다.

內見疑彊大,外倚蠻貊以為援,是以日疏自危,事窮智困,卒赴匈奴,豈不哀哉!
안으로는 강대하다는 의심을 받고밖으로는 이민족을 원조자로 의지하매날마다 조정과 멀어지고 자신을 위태롭게 하여일이 하고 지혜가 모자라자 마침내 흉노로 달려갔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陳豨,梁人,其少時數稱慕魏公子;
진희는 梁 출신으로 젊었을 때 위공자(魏無忌)를 자주 칭송하며 사모하였다.

及將軍守邊,招致賓客而下士,名聲過實。
군사를 이끌고 변경을 지킴에 빈객을 불러 모으고선비에게 겸양하였으나 명성이 실제를 지나쳤다.

周昌疑之,疵瑕頗起,懼禍及身,邪人進說,遂陷無道。
주창이 그를 의심하매 잘못이 많이 드러나자 화가 몸에 미칠까 두려워하다가간사한 자가 진언하자 마침내 무도함에 빠졌다.

於戲悲夫!夫計之生孰成敗於人也深矣!
슬프다계책의 生孰과 成敗가 그 사람에 달려있음이 심하구나!”

▶ 徼 : 요행.
▶ 權變 : 임기응변하다.
▶ 詐力 : 사기와 폭력.
▶ 南面稱孤 : 임금이 됨을 이르는 말, 孤는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蠻貊 : 이민족. 타민족.
▶ 困 : 부족하다. 다하다. 모자라다
▶ 魏公子 : 전국시대 魏의 信陵君 無忌.
▶ 於戲 : 감탄사. 嗚呼와 통한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