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公子列傳은 魏의 공자 魏無忌에 대한 전기로 위무기는 전국시대 魏의 저명한 軍略家로 기원전276년 信陵에 봉해지면서 信陵君으로 불리었다. 齊의 孟嘗君 田文, 趙의 平原君 趙勝, 楚의 春申君 黃歇과 함께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불린다. 4공자 중 가장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로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趙 평원군이 매형이었으며 趙를 도와 楚·趙·韓과 연합하여 秦軍을 크게 격퇴하였다. 위공자병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秦의 이간으로 魏王의 미움을 사서 술을 마시며 지내다 술병으로 죽었다.
魏公子無忌者,魏昭王子少子而魏安釐王異母弟也。
魏의 공자 魏無忌는 魏昭王의 막내아들이며, 魏安釐王의 이복동생이다.
昭王薨,安釐王即位,封公子為信陵君。
昭王이 薨逝하고 安釐王이 즉위하면서 공자를 信陵君에 봉하였다.
是時范睢亡魏相秦,以怨魏齊故,秦兵圍大梁,破魏華陽下軍,走芒卯。
이때 范睢가 魏에서 망명하여 秦의 재상이 되고, 魏齊에 대한 원한으로 인하여 秦軍이 大梁을 포위하였다.
華陽에서 주둔하던 魏軍을 격파하여 芒卯를 달아나게 하였다.
魏王及公子患之。
위왕과 공자 위무기는 이를 근심하였다.
▶ 魏의 安釐王: ?~기원전243년. 釐는 僖로도 쓴다. 성은 姬. 씨는 魏,이름은 圉이다. 魏의 昭王의 아들이며, 전국시대 魏의 6대 군주이다.
▶ 薨: 薨逝하다. 임금이나 왕족 등을 높이어 그의 죽음을 이르는 말.
▶ 范睢: ? ~기원전255년. 전국시대 秦의 정치가로, 자는 叔이며 魏의 사람이다.
▶ 魏齊: 魏齊가 魏의 丞相으로 있을 때 范睢를 심하게 매질을 가해 거의 죽게 하였다. 후에 범수는 秦으로 달아나 丞相이 되고 應侯에 봉해지자 위제에게 복수하려 하였으며, 위제는 범수의 보복을 피해 虞卿과 함께 信陵君을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자 부끄러워하고 자살하였다.
▶ 芒卯: 전국시대 魏의 장수이다. 기원전273년 秦이 魏를 공격하자 위, 한, 趙의 軍을 통솔하여 秦에 대항하였으나, 화양에서 秦將 백기와의 싸움에 패하여 15만 대군이 참수되고 그는 달아났다. 달아난 후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
公子為人仁而下士,士無賢不肖皆謙而禮交之,不敢以其富貴驕士。
공자는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에게 자신을 낮추었으며, 선비가 현명하지 않거나 어리석어도 모두에게 겸손하고 예의를 갖추고 사귀었으며, 자신이 부귀하다고 선비에게 교만하지 않았다.
士以此方數千里爭往歸之,致食客三千人。
이에 선비들이 四方 수천 리에서 앞다투어 와서 몸을 의탁하니 식객이 3천 명에 달하였다.
當是時,諸侯以公子賢,多客,不敢加兵謀魏十餘年。
당시 제후는 공자가 현명하고 식객이 많아 10여 년간 감히 軍을 일으켜 魏를 도모하지 못하였다.
▶ 禮交: 예의를 갖추고 사귐.
公子與魏王博,而北境傳舉烽,言「趙寇至,且入界」。
공자와 위왕이 博을 함에, 북쪽 국경에서 봉화를 올랐다고 보고하며 말하였다.
“趙의 外賊이 침략하여 국경으로 들어오려 합니다.”
魏王釋博,欲召大臣謀。
위왕이 博을 놓고 대신들을 불러 상의하려고 하였다.
公子止王曰:
「趙王田獵耳,非為寇也。」
공자가 왕을 만류하였다.
“趙왕은 사냥할 뿐, 침략함이 아닙니다.”
復博如故。
다시 이전처럼 博을 하였다.
王恐,心不在博。
왕은 두려워 博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居頃,復從北方來傳言曰:
「趙王獵耳,非為寇也。」
조금 뒤에 다시 북쪽 국경에서 傳言이 왔다.
“趙왕은 사냥할 뿐, 침략함이 아닙니다.”
魏王大驚,曰:
「公子何以知之?」
위왕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공자는 어찌 알았소?”
公子曰:
「臣之客有能深得趙王陰事者,趙王所為,客輒以報臣,臣以此知之。」
위공자가 말하였다.
“신의 식객 중에 趙왕의 은밀한 일까지 깊이 아는 사람이 있어서, 조왕이 하는 일을 그때그때 신에게 보고하기에, 신은 이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是後魏王畏公子之賢能,不敢任公子以國政。
그 뒤로 위왕은 위공자의 현명함과 재능을 두려워하여 감히 공자에게 국정을 맡기지 않았다.
▶ 博: 樗蒲와 한 가지로 중국에서 전하여진 가장 오랜 노름의 한 가지. 5木으로 새를 삼아 그것을 던지어 엎어지고 자빠지는 모양에 따라 梟ㆍ盧ㆍ雉ㆍ犢ㆍ塞의 等級을 매기고 局위의 말을 움직여 勝負를 定하던 것.
▶ 田獵: 사냥하다.
▶ 陰事: 비밀스러운 일. 은밀한 일.
▶ 輒: 늘, 항상.
魏有隱士曰侯嬴,年七十,家貧,為大梁夷門監者。
魏에 隱士가 있어 侯嬴이라 하는데 나이 70에 집이 가난하여 대량성 夷門(東門)의 문지기였다.
公子聞之,往請,欲厚遺之。
공자가 소문을 듣고 오라고 청하며 후한 예물을 보냈다.
不肯受,曰:
「臣修身絜行數十年,終不以監門困故而受公子財。」
후영이 이를 받지 않고 말하였다.
“신은 몸을 닦고 행실을 깨끗이 하면서 수십 년을 지내다가, 문지기로서 곤궁할지라도 공자의 재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公子於是乃置酒大會賓客。
공자는 이에 주연을 열고 빈객을 대거 모았다.
坐定,公子從車騎,虛左,自迎夷門侯生。
坐定하고 나서, 공자는 車騎를 거느리고 상석인 왼쪽 자리를 비우고 몸소 이문으로 후생을 맞으러 갔다.
侯生攝敝衣冠,直上載公子上坐,不讓,欲以觀公子。
후생은 다 해진 衣冠을 하고 곧장 수레에 올라 공자의 상석에 앉으며, 사양하지 않고 공자의 태도를 살펴보려고 하였다.
公子執轡愈恭。
공자는 말고삐를 잡고 더욱 공손하였다.
▶ 侯嬴: ?∼BC 257. 전국시대 魏의 隱士. 집안이 가난해 나이 일흔에 大梁의 夷門의 문지기가 되었는데, 魏의 信陵君이 맞아 上客으로 삼았다. 侯生은 후선생으로 후영을 높인 말이다. 秦이 趙를 공격하자 신릉군에게 계책을 올려 趙를 구하였다.
▶ 終: 비록 허사 終 참조
侯生又謂公子曰:
「臣有客在市屠中,願枉車騎過之。」
후생이 또 공자에게 말하였다.
“신에게는 시장 푸줏간에 친구가 있는데, 車騎를 돌려 그곳에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公子引車入市,侯生下見其客朱亥,俾倪故久立,與其客語,微察公子。
공자가 수레를 몰아 시장에 들어갔는데, 후생은 수레에서 내려 그의 친구 朱亥를 만나 곁눈질하면서 일부러 오랫동안 서서 친구와 대화하며 은밀히 공자를 살폈다.
公子顏色愈和。
공자의 안색은 더욱 온화하였다.
當是時,魏將相宗室賓客滿堂,待公子舉酒。
그때 魏의 장수·재상·왕족·빈객이 방을 가득 채우고, 공자가 술잔을 들기를 기다렸다.
市人皆觀公子執轡。
시장 사람들이 모두 공자가 말고삐를 잡고 있음을 보았다.
從騎皆竊罵侯生。
따라온 기마병은 모두 마음속으로 후생을 욕하였다.
侯生視公子色終不變,乃謝客就車。
후생이 공자의 얼굴빛이 끝내 변하지 않음을 보고, 친구와 작별하고 수레에 올랐다.
至家,公子引侯生坐上坐,遍贊賓客,賓客皆驚。
집에 이르자 공자는 후생을 상석으로 이끌고 빈객에게 두루 칭찬하니 빈객이 모두 놀랐다.
▶ 屠: 白丁. 푸줏간.
▶ 俾倪: 곁눈으로 보다.
▶ 竊罵: 마음속으로 욕하다.
酒酣,公子起,為壽侯生前。
술자리가 무르익자 공자가 일어나 후생의 앞에서 축수하였다.
侯生因謂公子曰:
그러자 후생이 위공자에게 말하였다.
「今日嬴之為公子亦足矣。
“오늘 제가 공자를 대한 행위도 만족스러웠습니다.
嬴乃夷門抱關者也,而公子親枉車騎,自迎嬴於衆人廣坐之中,不宜有所過,今公子故過之。
저는 이문의 문지기인데, 공자께서 친히 車騎로 枉臨하시어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저를 맞으셨으며, 들르지 않아도 좋은 곳에 오늘 공자께서 일부러 들러주셨습니다.
然嬴欲就公子之名,故久立公子車騎市中,過客以觀公子,公子愈恭。
그래서 저는 공자의 명성을 높이고자 일부러 오랫동안 서서 공자의 車騎를 시장 에 세워두고 친구를 방문하며 공자를 살펴보았는데 공자께서 더욱 공손하셨습니다.
市人皆以嬴為小人,而以公子為長者能下士也。」
시장 사람들이 모두 저를 소인배라 여기고, 공자는 長者로서 선비에 자신을 낮추는 분이라고 여겼습니다.”
於是罷酒,侯生遂為上客。
이윽고 주연이 끝나자 후생은 마침내 上客이 되었다.
▶ 抱關: 문지기.
▶ 秦昭王: 秦昭襄王. 기원전325년~기원전251년, 재위:기원전306년~기원전251년. 전국시대 秦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嬴, 휘는 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 晉鄙: ?-기원전257년. 魏에서 晉鄙를 보내 趙를 구하게 했지만 병사를 주둔시켜 둔 채 사태를 관망하기만 하였다. 이에 信陵君이 侯生의 계책을 써서 如姬를 통해 虎符를 훔치고 力士 朱亥를 시켜 그를 살해하고, 병권을 빼앗아 趙를 구원하러 갔다.
秦王使使者告魏王曰:
「吾攻趙旦暮且下,而諸侯敢救者,已拔趙,必移兵先擊之。」
秦昭王은 사자를 보내 魏王에게 경고하였다.
“내가 趙를 공격하여 짧은 시간 내에 함락하려 함에, 제후 중에 감히 趙를 구원하는 자는 趙를 함락하고 나서 틀림없이 軍을 이동하여 먼저 공격하겠다.”
魏王恐,使人止晉鄙,留軍壁鄴,名為救趙,實持兩端以觀望。
魏王이 두려워하며 사람을 보내 晉鄙의 進軍을 멈추고, 鄴城에 주둔하여 堡壘를 쌓으며, 명분은 趙를 구원하나 실제로는 두 나라의 형세를 관망하라고 하였다.
平原君使者冠蓋相屬於魏,讓魏公子曰:
평원군이 魏에 사자를 끊임없이 보내면서 위공자를 꾸짖었다.
「勝所以自附為婚姻者,以公子之高義,為能急人之困。
“내가 자신을 그대에게 의탁하고 누이와 혼인한 것은, 공자가 의로움을 숭상하니 위급한 사람의 곤란을 구함에 능하겠다고 여겼기 때문이오.
今邯鄲旦暮降秦而魏救不至,安在公子能急人之困也!
지금 한단이 朝夕間 秦에 항복할 지경인데 魏의 구원이 이르지 않으니, 공자가 위급한 사람이 곤란할 때 구원에 능함은 어디 있소!
且公子縱輕勝,棄之降秦,獨不憐公子姉邪?」
공자가 설사 나를 경시하여 秦에 항복하도록 내버려 두더라도, 어찌 공자의 누이를 불쌍해하지도 않소?”
▶ 旦暮: 아침과 저녁. 짧은 시간.
▶ 冠蓋:관모와 수레 덮개. 높은 벼슬아치.
▶ 讓: 꾸짖다.
▶ 急人之困: 남의 곤란에 열성껏 도와주다.
▶ 且 A 獨 B : A하더라도 어찌 B하느냐? A는 그렇다손쳐도 B도 하느냐?
‘且 A 安 B’, ‘且 A 猶 B’, ‘且 A 況 B’도 비슷한 용법이다. 허사 且 참조
公子患之,數請魏王,及賓客辯士說王萬端。
공자는 이를 근심하며 몇 번이나 魏王에게 청했으며, 賓客과 辯士가 갖은 방법으로 왕을 설득하였다.
魏王畏秦,終不聽公子。
魏王이 秦을 두려워하며 끝내 공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公子自度終不能得之於王,計不獨生而令趙亡,乃請賓客,約車騎百餘乘,欲以客往赴秦軍,與趙俱死。
공자는 끝내 왕의 허락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홀로 살고 趙를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빈객에게 청하기를, 車騎 백여 乘을 마련하여 빈객들과 秦軍으로 달려가 趙軍과 함께 다 같이 죽자고 하였다.
▶ 萬端: 여러 가지. 갖가지.
▶ 自度: 스스로 헤아리다. 度는 헤아릴‘탁’.
▶ 計: 생각하다
▶ 約: 갖추다.
行過夷門,見侯生,具告所以欲死秦軍狀。
일행이 夷門에 들러 후생을 만나 秦軍과 死戰하기로 한 정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辭決而行,侯生曰:
「公子勉之矣,老臣不能從。」
작별하고 떠남에 후생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힘쓰시오. 노신은 따라갈 수 없습니다.”
公子行數里,心不快,曰:
「吾所以待侯生者備矣,天下莫不聞,今吾且死而侯生曾無一言半辭送我,我豈有所失哉?」
공자가 몇 리를 가다가 마음속으로 불쾌하여 말하였다.
“내가 후생을 대우함에 빠진 것이 없이 구비하였음은, 천하에 알지 못하는 자가 없다. 그런데도 내가 곧 죽을 판에 후생이 한마디의 말도 없이 나를 전송하니, 내가 빠뜨린 것이 있는가?”
復引車還,問侯生。
다시 수레를 이끌고 돌아와서 후생에게 물었다.
侯生笑曰:
「臣固知公子之還也。」
曰:
「公子喜士,名聞天下。
今有難,無他端而欲赴秦軍,譬若以肉投餒虎,何功之有哉?
尚安事客?
然公子遇臣厚,公子往而臣不送,以是知公子恨之復返也。」
후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신은 공자께서 돌아오시리라 확신하였습니다.
“공자께서 선비를 좋아하여 명성이 천하에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하여 아무런 까닭 없이 秦軍에 달려가 싸우려 하시니, 비유하자면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격인데 무슨 공을 세우겠습니까?
무엇 하러 항상 빈객을 모셨겠습니까?
공자께서 신을 후대하셨는데, 공자께서 가시는데도 신이 전송하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공자께서 한스러워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 辭決: 작별인사를 하다.
▶ 備: 빠짐없이 갖추다
▶ 一言半辭: 一言半句. 극히 짧은 말.
▶ 端: 까닭
▶ 肉投餒虎: 굶주린 호랑이에 고기를 던지다, 대책 없이 행동한다는 뜻. 餒는 주릴 ‘뇌’.
公子再拜,因問。
공자가 재배하며 계책을 물었다.
侯生乃屏人閒語,曰:
후생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슬며시 말하였다.
「嬴聞晉鄙之兵符常在王臥內,而如姬最幸,出入王臥內,力能竊之。
“제가 들으니, 진비의 兵符가 언제나 왕의 침실에 있다고 하며, 如姬는 왕에게 최고의 총애를 받아 왕의 침실에 드나드니, 그녀의 힘으로 병부를 훔칠 수 있겠습니다.
嬴聞如姬父為人所殺,如姬資之三年,自王以下欲求報其父仇,莫能得。
제가 들으니 여희의 아버지가 남에게 살해당함에, 여희가 3년 동안 재물을 써니, 왕과 아랫사람들이 그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하였습니다.
如姬為公子泣,公子使客斬其仇頭,敬進如姬。
여희가 공자께 눈물로 호소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빈객을 시켜 원수의 목을 베어서 여희에게 바치셨다지요.
如姬之欲為公子死,無所辭,顧未有路耳。
여희는 공자를 위해서라면 죽기도 할 터인데, 말씀이 없음은 단지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公子誠一開口請如姬,如姬必許諾,則得虎符奪晉鄙軍,北救趙而西卻秦,此五霸之伐也。」
공자께서 만약 진정으로 한 번 입을 열어 여희에게 청하면, 여희는 틀림없이 허락할 터이고, 그리하여 병부를 얻어 晉鄙의 軍隊를 빼앗아 북쪽으로 趙를 구원하고 서쪽으로 秦을 물리치면, 이것은 春秋五霸의 공로에 해당합니다.”
公子從其計,請如姬。
공자는 그 계략을 따라 여희에게 요청하였다.
如姬果盜晉鄙兵符與公子。
여희가 과연 진비의 병부를 훔쳐 공자에게 주었다.
▶ 閒: 남몰래. 살며시.
▶ 兵符: 軍을 동원하는 標識로 쓰이는 나무패인데, 한 면에는 “發兵” 또 다른 한 면에는 觀察使, 節度使, 陣營의 이름을 기재하여 가운데를 쪼개어 오른쪽은 책임자가, 왼쪽은 임금이 가진다. 軍을 동원함에 임금이 敎書와 함께 내리면 맞추어 보고 軍을 동원하였다. 虎符는 호랑이 모양의 병부를 말한다.
▶ 臥內: 침실 안.
▶ 如姬: 魏安釐王의 부인. 侯嬴의 계책에 따라 안리왕의 兵符를 훔쳐 信陵君에게 주어 秦軍을 물리치게 하였다.
▶ 幸: 총애
▶ 顧: “顧…耳” [단지 …일 따름이다.] 허사 顧 참조
▶ 誠: 진정으로, 만약. 복합문의 條件分句에 誠자가 쓰이면 여전히 “진정으로”라는 뜻을 가지지만, 假說的 기능도 겸하여 가진다. 허사 誠 참조
▶ 春秋五霸: 春秋時代 5인의 覇者를 말한다. 춘추오패는 齊의 환공, 秦의 문공, 楚의 장왕, 吳 王 합려, 越王 구천을 가리키며, 기록에 따라서 秦의 목공, 宋의 양공 또는 吳 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 伐: 공로. (공로를) 자랑하다
公子行,侯生曰:
공자가 떠나려 함에 후생이 말하였다.
「將在外,主令有所不受,以便國家。
“장수가 전쟁터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령에도 듣지 않는 것이 있으니, 나라에 이롭기 때문입니다.
公子即合符,而晉鄙不授公子兵而復請之,事必危矣。
공자께서 병부를 맞추어도 진비가 공자에게 軍隊을 넘겨주지 않고, 다시 왕에게 청하면, 일이 틀림없이 위태로워질 터입니다.
臣客屠者朱亥可與俱,此人力士。
신의 친구 백정 朱亥와 함께 갈 만하오니, 그는 力士입니다.
晉鄙聽,大善;
不聽,可使擊之。」
진비가 말을 따르면 매우 좋으나,
듣지 않으면 주해를 시켜 때려죽여야 합니다.”
於是公子泣。
이에 공자가 눈물지었다.
侯生曰:
「公子畏死邪?
何泣也?」
후생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우십니까?”
公子曰:
「晉鄙嚄唶宿將,往恐不聽,必當殺之,是以泣耳,豈畏死哉?」
공자가 말하였다.
“진비는 용맹스러운 老將이므로 내가 가도 아마 명령을 듣지 않을 터이라서, 그를 죽여야만 하기에 울 뿐, 어찌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겠소?”
▶ 力士: 뛰어나게 힘이 센 사람.
▶ 嚄唶: 크게 소리치다. 용맹스럽다.
▶ 宿將: 老將.
於是公子請朱亥。
이리하여 공자가 주해를 청하였다.
朱亥笑曰:
「臣乃市井鼓刀屠者,而公子親數存之,所以不報謝者,以為小禮無所用。
今公子有急,此乃臣效命之秋也。」
주해가 웃으며 말하였다.
“신은 시장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죽이는 자로서, 공자께서 친히 몇 번이고 찾아와주셨는데, 謝禮하지 않음은 자잘한 예절은 소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자께 위급한 일이 생겼으니, 이때가 신이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遂與公子俱。
이리하여 공자와 동행하였다.
公子過謝侯生。
공자가 후생에게 들러서 사례하였다.
侯生曰:
「臣宜從,老不能。
請數公子行日,以至晉鄙軍之日,北鄉自剄,以送公子。」
후생이 말하였다.
“신도 따라가야 하지만, 늙어서 가지 못합니다.
공자의 일정을 계산하여 진비의 군영에 도착하는 날에, 북쪽을 바라보며 自刎함으로써 공자를 전송하겠습니다.”
公子遂行。
공자가 마침내 떠났다.
▶ 鼓: 휘두르다.
▶ 效命之秋: 목숨을 바칠 때. 效命은 목숨을 바치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 秋는 때, 시기.
▶ 自剄: = 自刎.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함
至鄴,矯魏王令代晉鄙。
鄴城에 도착하여 魏王의 명이라고 속이고 진비를 대체한다고 하였다.
晉鄙合符,疑之,舉手視公子曰:
「今吾擁十萬之衆,屯於境上,國之重任,今單車來代之,何如哉?」
진비가 병부를 맞춰보고도 의심스러워 손을 들고 공자를 보며 말하였다.
“지금 저는 10만의 병사를 데리고 국경에 주둔하니 나라의 막중한 임무인데, 수레 한 대로 와서 대신하겠다고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欲無聽。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朱亥袖四十斤鐵椎,椎殺晉鄙,公子遂將晉鄙軍。
주해가 소매 속의 40근 철퇴로 진비를 쳐서 죽이자, 공자는 마침내 진비의 軍을 거느리게 되었다.
勒兵下令軍中曰:
「父子俱在軍中,父歸;
兄弟俱在軍中,兄歸;
獨子無兄弟,歸養。」
병사를 점검하고 군중에 명령을 내렸다.
“부자가 함께 군중에 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고,
형제가 함께 군중에 있다면 형이 돌아가고,
獨子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서 부모를 모셔라.”
得選兵八萬人,進兵擊秦軍。
그리하여 병사 8만 명을 선발할 수 있었고, 進軍하여 秦軍을 공격하였다.
秦軍解去,遂救邯鄲,存趙。
秦軍는 포위를 풀고 물러갔으며, 마침내 한단을 구하고 趙를 보존하였다.
▶ 擁: 끼다. 가지다. 호위하다. 안다(포옹)
▶ 鐵椎(철추): 철퇴 = 鐵槌
▶ 勒兵: 軍의 隊伍를 정돈하고 점검하다. 勒은 통솔의 의미.
趙王及平原君自迎公子於界,平原君負韊矢為公子先引。
조왕과 평원군이 몸소 국경까지 공자를 마중하였으며, 평원군은 箭筒에 화살을 채우고 앞에서 이끌었다.
趙王再拜曰:
「自古賢人未有及公子者也。」
조왕이 재배하며 말하였다.
“예부터의 賢人에 공자께 미칠 자는 없을 터입니다.”
當此之時,平原君不敢自比於人。
이때를 당함에, 평원군은 감히 자신을 남에게 견주지 않았다.
公子與侯生決,至軍,侯生果北鄉自剄。
공자가 후생과 작별하고 군영에 이르렀을 때, 후생은 과연 北向하여 自剄하였다.
▶ 負韊矢: 韊盛弩矢. 箭筒에 화살을 담다.
魏王怒公子之盜其兵符,矯殺晉鄙,公子亦自知也。
위왕은 공자가 병부를 훔치고 진비를 속여서 죽임에 노하였으며, 공자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다.
已卻秦存趙,使將將其軍歸魏,而公子獨與客留趙。
秦을 물리쳐서 趙를 보존하고 나서, 장수들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魏로 돌아가게 하고, 공자는 홀로 빈객들과 趙에 머물렀다.
趙孝成王德公子之矯奪晉鄙兵而存趙,乃與平原君計,以五城封公子。
趙孝成王은 공자가 晉鄙軍을 속이고 빼앗아서 趙를 보존함을 은덕으로 여기고, 평원군과 상의하여 5城을 공자에게 봉하기로 했다.
公子聞之,意驕矜而有自功之色。
공자가 알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기색이 있었다.
▶ 趙孝成王: 전국시대 趙의 제8대 군주. 趙의 제3대 왕이자, 趙氏 宗主로서는 제17대 종주. 이때까지는 趙의 국력이 꽤 유지되었지만, 장평대전에서 패하여 趙의 45만 정병을 잃었으므로 국력이 쇠퇴하였다.
客有說公子曰:
어느 빈객이 공자에게 권하였다.
「物有不可忘,或有不可不忘。
“일에는 잊어서 안 될 것이 있고, 혹은 잊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夫人有德於公子,公子不可忘也;
公子有德於人,願公子忘之也。
무릇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공자께서 잊어선 안 되며,
공자가 남에게 베푼 은혜는 부디 공자께서 잊기 바랍니다.
且矯魏王令,奪晉鄙兵以救趙,於趙則有功矣,於魏則未為忠臣也。
위왕의 명령을 날조하고 진비의 軍을 빼앗아 趙를 구한 일은 趙에는 공로가 있으나, 魏에는 충신이 아닙니다.
公子乃自驕而功之,竊為公子不取也。」
이런데도 공자께서 교만하여 공을 세웠다고 여기니, 삼가 공자께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於是公子立自責,似若無所容者。
이에 공자는 즉시 자신을 꾸짖고, 표정을 짓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 說: 권고하다.
▶ 無所容: 얼굴색을 짓지 못함.
▶ 立: 곧. 즉시.
趙王埽除自迎,執主人之禮,引公子就西階。
趙王은 길을 청소하고 친히 공자를 맞이하되 주인의 예로 대하여, 공자를 서쪽 계단으로 오르게 하였다.
公子側行辭讓,從東階上。
공자는 옆으로 비켜 걸으며 사양하고 동쪽 계단을 따라 올랐다.
自言罪過,以負於魏,無功於趙。
스스로 말하기를, 죄를 짓고 魏를 저버려 趙에 세운 공이 없다고 하였다.
趙王侍酒至暮,口不忍獻五城,以公子退讓也。
趙王은 저물녘까지 술 시중을 들었으나 다섯 성을 주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는데, 공자가 사양했기 때문이었다.
公子竟留趙。
공자는 결국 趙에 머물렀다.
趙王以鄗為公子湯沐邑,魏亦復以信陵奉公子。
趙王은 鄗땅을 공자의 湯沐邑으로 주었으며, 魏 역시 다시 신릉군으로 받들었다.
公子留趙。
공자는 趙에 머물렀다.
▶ 西階:객은 서계로 오르고 주인은 阼階(동계)로 오른다
▶ 側行: 모로 걸음. 옆으로 걸음. 공손한 모습을 말함.
▶ 侍酒: 侍奉饮酒。
▶ 退讓: 남에게 사양하고 물러남.
▶ 湯沐邑: 周나라 때 생긴 제도로 제후의 사유 영지를 하사하여 그 읍의 수입으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목욕재계하는 비용을 충당하게 한 것이다.
公子聞趙有處士毛公藏於博徒,薛公藏於賣漿家,公子欲見兩人,兩人自匿不肯見公子。
공자가 소문을 들으니 趙에 處士가 있어, 毛公은 노름꾼 사이에 숨어 있고 薛公은 술집에 숨어 있다고 하되, 공자가 두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두 사람은 몸을 감추고 공자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公子聞所在,乃閒步往從此兩人游,甚歡。
공자가 所在를 수소문하고, 은밀히 가서 그 두 사람을 좇아 노닐자 매우 즐거워하였다.
平原君聞之,謂其夫人曰:
「始吾聞夫人弟公子天下無雙,今吾聞之,乃妄從博徒賣漿者游,公子妄人耳。」
평원군이 알고 그의 부인에게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부인의 동생인 공자가 천하에 견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내가 듣기에 망령되게도 노름꾼이나 술 파는 자와 사귄다고 하니, 공자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구려.”
夫人以告公子。
부인이 이것을 공자에게 고하였다.
公子乃謝夫人去,曰:
공자가 부인을 작별하고 떠나며 말하였다.
「始吾聞平原君賢,故負魏王而救趙,以稱平原君。
“처음에 저는 평원군이 현명함을 알았기 때문에, 魏王을 저버리면서 趙를 구원하여 평원군을 드러내었습니다.
平原君之游,徒豪舉耳,不求士也。
평원군이 사람을 사귐에 헛되이 호방하게 행동할 뿐, 선비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無忌自在大梁時,常聞此兩人賢,至趙,恐不得見。
제가 대량에 있을 때부터 언제나 이 두 사람이 현명함을 들었으므로, 趙에 와서 만나지 못할까 염려하였습니다.
以無忌從之游,尚恐其不我欲也,今平原君乃以為羞,其不足從游。」
저는 그들을 좇아 사귐에, 오히려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그런데도 평원군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니, 그는 좇아 사귀기에 부족합니다.”
乃裝為去。
이에 짐을 꾸려서 떠났다.
夫人具以語平原君。
부인이 평원군에게 이것을 자세히 말하였다.
平原君乃免冠謝,固留公子。
평원군은 관을 벗고 사과하며 한사코 공자를 머물게 했다.
平原君門下聞之,半去平原君歸公子,天下士復往歸公子,公子傾平原君客。
평원군 문하생이 이를 알고 절반이 평원군을 떠나 공자에게 갔으며, 천하의 선비들도 다시 공자에게 돌아오니, 공자는 평원군 식객의 마음을 기울게 하였다.
▶ 博徒: 노름꾼.
▶ 賣漿家: 술집. 漿은 음료. 酒漿.
▶ 妄人: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 황당무계한 사람.
※引車賣漿: 신릉군이 행했던 두 사건을 합쳐서 만들어진 말로, 引車는 侯贏을 모시기 위해 수레를 몰고 간 행위를 말하며 賣漿은 시정의 장사꾼들 속에 몸을 숨겨 살고 있던 薛公이라는 은사를 찾았던 행위를 말한다.
▶ 稱: 드러내다.
公子留趙十年不歸。
공자는 趙에 10년을 머물면서 돌아가지 않았다.
秦聞公子在趙,日夜出兵東伐魏。
秦는 공자가 趙에 있음을 알고 밤낮으로 출병하여 동쪽으로 魏를 공격하였다.
魏王患之,使使往請公子。
魏王이 이를 걱정하며 사신을 보내 공자를 청하게 하였다.
公子恐其怒之,乃誡門下:
「有敢為魏王使通者,死。」
공자는 魏王의 노여워함이 두려워서 문하에 경계시켰다.
“감히 魏王의 사신을 알리는 자는 죽는다.”
賓客皆背魏之趙,莫敢勸公子歸。
빈객은 모두 魏를 배신하고 趙에 간 사람들이라 감히 공자에게 돌아가자고 권하는 자가 없었다.
毛公、薛公兩人往見公子曰:
모공과 설공 두 사람이 와서 공자를 만나서 말했다.
「公子所以重於趙,名聞諸侯者,徒以有魏也。
“공자께서 趙에서 중시되고 제후에게 이름을 떨친 이유는 오로지 魏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秦攻魏,魏急而公子不恤,使秦破大梁而夷先王之宗廟,公子當何面目立天下乎?」
지금 秦이 魏를 공격하여 魏가 위급한데도 공자는 근심하지 않으니, 秦이 대량을 무찌르고 선왕의 종묘를 폐허로 만든다면 공자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천하에 나서렵니까?”
語未及卒,公子立變色,告車趣駕歸救魏。
말이 미처 끝나지 않았는데, 공자는 즉시 안색이 변하더니, 수레에 멍에 지우기를 재촉하며 돌아가서 魏를 구원하겠다고 말하였다.
魏王見公子,相與泣,而以上將軍印授公子,公子遂將。
魏王이 공자를 만나 함께 울면서, 상장군의 인장을 공자에게 주니, 공자가 이에 장군이 되었다.
魏安釐王三十年,公子使使遍告諸侯。
魏安釐王30년(기원전247년), 공자가 사신을 보내 제후에게 두루 알렸다.
諸侯聞公子將,各遣將將兵救魏。
제후들은 공자가 장군이 되었음을 알고, 각기 장수를 보내어 병사를 이끌고 魏를 구원하게 하였다.
公子率五國之兵破秦軍於河外,走蒙驁。
공자가 5國의 병사를 거느리고 황하 남쪽에서 秦軍을 무찌르고, 秦將 蒙驁를 달아나게 하였다.
遂乘勝逐秦軍至函谷關,抑秦兵,秦兵不敢出。
승세를 몰아 秦軍을 추격하여 函谷關에 이르러 秦軍을 압박하니, 秦軍는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當是時,公子威振天下,諸侯之客進兵法,公子皆名之,故世俗稱魏公子兵法。
당시 공자의 위엄이 천하를 진동하고, 제후의 빈객들이 병법을 올리자, 공자가 모두 이름을 붙여주니, 세속에서 魏公子兵法이라고 일컬었다.
▶ 夷: 평정하다. 멸하다
▶ 蒙驁: ?—公元前240年. 전국시대 말기 秦의 장수. 본래 齊의 사람이었는데, 秦昭王을 섬겨 벼슬이 上卿에 이르렀고, 후에 장수가 되어 여러 번 韓, 趙, 魏를 쳐서 전공을 세웠다.
▶ 魏公子兵法: 漢書·藝文志에는 <魏公子>로 실려 있으며 魏公子兵法으로 칭하고 21편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秦王患之,乃行金萬斤於魏,求晉鄙客,令毀公子於魏王曰:
「公子亡在外十年矣,今為魏將,諸侯將皆屬,諸侯徒聞魏公子,不聞魏王。
公子亦欲因此時定南面而王,諸侯畏公子之威,方欲共立之。」
秦昭王은 이를 근심하여, 魏에 금 1만 근을 풀어 晉鄙의 빈객들을 구하여 魏王에게 공자를 헐뜯게 하였다.
“공자가 도망쳐서 나라 밖에서 10년을 있었는데 지금 魏의 장군이 되어 제후의 장군들까지 모두 거느리고 있으니, 제후들은 공자가 있음만 알 뿐, 위왕이 있음은 알지 못합니다.
공자 역시 이때를 기회로 南面을 定하여 왕이 되려고 하니, 제후들도 공자의 위세가 두려워서 모두 그를 옹립하려 합니다.”
▶ 秦昭王: 秦昭襄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325년~기원전251년. 전국시대 秦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 南面: 예전에 임금이 남쪽을 향하여 앉아서 신하의 朝禮를 받았던 데서 君主가 됨을 말한다.
秦數使反閒,偽賀公子得立為魏王未也。
秦이 누차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여, 거짓으로 공자가 魏王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물으며 축하하였다.
魏王日聞其毀,不能不信,後果使人代公子將。
魏王은 매일 헐뜯는 말을 듣자 믿지 않을 수 없었는데, 후에 과연 사람을 시켜 공자를 대신하여 장군으로 삼았다.
公子自知再以毀廢,乃謝病不朝,與賓客為長夜飲,飲醇酒,多近婦女。
공자는 두 번이나 모함을 받아 쫓겨났음을 알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빈객과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독한 술을 마시고 여자와 가까이하는 일이 많았다.
日夜為樂飲者四歲,竟病酒而卒。
밤낮으로 술 마시기를 즐기기 4년, 결국 술병이 들어 죽었다.
其歲,魏安釐王亦薨。
그 해에 魏安釐王 또한 薨逝하였다.
秦聞公子死,使蒙驁攻魏,拔二十城,初置東郡。
秦은 공자가 죽었음을 듣고 蒙驁를 보내 魏를 공격하여 20城을 함락하고, 처음 東郡을 두었다.
其後秦稍蠶食魏,十八歲而虜魏王,屠大梁。
그 후에 秦은 魏를 점점 잠식하다가 18년 후에 위왕을 포로로 잡고 대량 사람들을 도륙하였다.
▶ 反閒: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다. 이간시키다.
▶ 毀廢: 쫓겨나다.
▶ 醇酒: 독한 烈性酒.
▶ 病酒: 술병이 들다.
▶ 薨: 薨逝하다. 임금이나 왕족 등을 높이어 그의 죽음을 이르는 말.
高祖始微少時,數聞公子賢。
漢高祖가 처음에 미천하였을 때, 몇 번이나 공자가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及即天子位,每過大梁,常祠公子。
천자로 즉위하여 대량에 들를 때마다 언제나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다.
高祖十二年,從擊黥布還,為公子置守冢五家,世世歲以四時奉祠公子。
고조12년(기원전195년), 黥布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자를 위해 묘지기의 집 5채를 짓고는, 대대로 해마다 사계절에 공자에게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 高祖: 漢高祖.
▶ 世世: 대대로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吾過大梁之墟,求問其所謂夷門。
“내가 大梁의 폐허를 지나다가 소위 夷門을 물어서 찾아보았다.
夷門者,城之東門也。
이문이란 대량성의 동문이었다.
天下諸公子亦有喜士者矣,然信陵君之接巖穴隱者,不恥下交,有以也。
천하의 공자들 또한 선비를 좋아했지만, 信陵君이 巖穴의 隱士와 접촉하고, 아랫사람과 사귐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名冠諸侯,不虛耳。
명예가 제후들 가운데 으뜸임은 빈말이 아니다.
高祖每過之而令民奉祠不絕也。
高祖가 매번 지나면서 백성에게 제사를 받듦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 巖穴隱者: 산속에 은거하는 사람. 세속에 숨어 지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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