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申君은 전국시대 楚의 정치가이며, 성은 黃, 이름은 歇이다. 전국시대 戰國四君의 한 사람으로 식객 수천을 거느렸다. 楚의 태자 完과 秦에 볼모로 갔었으며, 뒤에 完이 돌아와 즉위하여 考烈王이 되자 春申君이 되었다. 기원전238년 고열왕이 병사하여 장례식에 가던 춘신군은 棘門에서 매복하고 있던 李園의 자객에게 종자와 함께 살해되어 그 목이 성 밖에 버려졌고, 일족과 따르던 무리도 모두 살해되었다.
春申君者,楚人也,名歇,姓黃氏。
春申君은 楚사람으로 이름은 歇이고 성은 黃氏이다.
游學博聞,事楚頃襄王。
돌아다니며 배우고 견문을 넓혔는데, 楚頃襄王을 섬겼다.
頃襄王以歇為辯,使於秦。
頃襄王은 황헐이 말을 잘하기 때문에 秦에 사신으로 보냈다.
秦昭王使白起攻韓、魏,敗之於華陽,禽魏將芒卯,韓、魏服而事秦。
秦昭王은 白起를 보내 韓·魏를 공격하여 華陽에서 물리치고 魏將 芒卯를 사로잡자 韓·魏는 항복하고 秦을 섬겼다.
秦昭王方令白起與韓、魏共伐楚,未行,而楚使黃歇適至於秦,聞秦之計。
秦昭王이 바야흐로 백기와 韓·魏가 함께 楚를 치게 하였는데, 떠나기 전에 楚의 사신 황헐이 마침 秦에 도착하여 秦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 楚頃襄王: ? ~기원전263년. 楚의 제38대 왕(재위: 기원전298년~기원전263년)이다. 이름은 橫이다. 楚懷王이 죽은 뒤 큰아들인 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子蘭이 令尹이 되었다.
▶ 辯: 말재주가 있다.
▶ 秦昭王: 기원전325년~기원전251년, 재위:기원전306년~기원전251년. 전국시대 秦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嬴, 휘는 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 白起: 秦의 장수. 楚의 鄢땅과 郢땅을 공격하였으며, 기원전278년 楚의 수도 郢都를 공격하였다
▶ 芒卯: 전국시대 魏將이다. 기원전273년 秦이 魏를 공격하자 韓·魏·趙의 軍을 통솔하여 秦에 대항하였으나, 화양에서 秦將 백기가 이끌던 진군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15만 대군이 참수되고 그는 달아났다. 달아난 후의 행적을 알 수 없다. 여기서는 망묘가 사로잡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當是之時,秦已前使白起攻楚,取巫、黔中之郡,拔鄢郢,東至竟陵,楚頃襄王東徙治於陳縣。
그 당시 秦은 이미 백기에게 楚를 공격하게 하여 巫·黔中을 빼앗고, 鄢, 郢을 함락하였으며, 동으로 竟陵까지 이르렀으므로 楚頃襄王은 동쪽의 陳縣으로 옮겨가서 다스리고 있었다.
黃歇見楚懷王之為秦所誘而入朝,遂見欺,留死於秦。
황헐은 楚懷王이 秦의 유인책에 넘어가 秦에 入朝하였다가, 마침내 속임을 당하여 秦에 억류되었다가 죽었음을 알았다.
頃襄王,其子也,秦輕之,恐壹舉兵而滅楚。
頃襄王은 초회왕의 아들이었는데, 秦에서 楚를 가볍게 여기고 한 번 병사를 일으켜 楚를 멸할까 두려웠다.
歇乃上書說秦昭王曰:
황헐은 이에 글을 올려 秦昭王을 유세하였다.
▶ 白起攻楚: 楚頃襄王 20년(기원전278년)에 秦將 白起가 楚 西陵을 점령하고 다시 鄢‧郢‧夷陵을 정복하여 楚先王의 묘까지 불태웠다. <戰國策1제6권秦策 四101. 頃襄王二十年>
▶ 鄢郢: 鄢은 鄢城. 지금의 호북성 宜城縣이며, 郢은 당시 楚의 도읍으로 지금의 胡北省江陵縣이다.
▶ 治於陳縣: 陳은 陳城으로 지금의 河南省淮陽縣. 楚가 秦과 싸울 때 이곳으로 피해 잠시 도읍으로 정하였었다. 治는 都邑.
▶ 楚懷王之為秦所誘而入朝: 기원전299년 진소왕이 회맹을 빙자하여 楚懷王을 秦에 억류하였다.
▶ 入朝: 拜訪. 예를 갖추어 방문하다.
天下莫彊於秦、楚。
“천하에 秦과 楚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今聞大王欲伐楚,此猶兩虎相與鬬。
지금 들으니, 대왕께서 楚를 치고자 하신다는데, 이는 두 호랑이가 서로 싸움과 같습니다.
兩虎相與鬬而駑犬受其獘,不如善楚。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둔한 개가 그들이 지친 틈에 이익을 얻으니, 楚와 親善하느니만 못합니다.
臣請言其說:
신이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臣聞物至則反,冬夏是也;
致至則危,累棋是也。
신이 듣기에, 사물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니, 겨울과 여름이 이것입니다.
극에 이르면 위태로우니, 바둑돌을 쌓음이 이것입니다.
今大國之地,遍天下有其二垂,此從生民已來,萬乘之地未嘗有也。
지금 大國의 땅은 천하에 두루 퍼져 동쪽과 서쪽의 두 변방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백성이 생긴 이래 萬乘의 땅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先帝文王、莊王之身,三世不妄接地於齊,以絕從親之要。
先帝이신 惠文王, 莊王, 대왕까지 3대에 걸쳐서 망녕되이 국토를 齊와 맞닿게 하여 제후들이 합종하는 요점을 끊지 않았습니다.
▶ 駑犬受其弊: 두 호랑이가 싸우다가 곤궁하여 피폐해진 틈에 둔한 개에게 당한다는 뜻. 여기서 駑犬은 韓·魏를 비유하며, 두 호랑이는 秦과 楚를 말한다. 駑는 재능이 없고 미련하다는 뜻. 獘는 곤하여짐.
▶ 累棋: 높이 쌓은 바둑돌.
▶ 二垂: 동쪽과 서쪽의 변방. 垂는 陲와 같으며 변방을 말한다.
▶ 萬乘: 일만 대의 兵車. 天子를 말한다.
▶ 先帝文王莊王之身:혜문왕, 무왕, 昭王을 말한다. 秦에는 장왕이 없으므로 장왕은 誤字로 보는 견해가 있다.
今王使盛橋守事於韓,盛橋以其地入秦,是王不用甲,不信威,而得百里之地。
지금 왕께서 盛橋를 韓에 주둔하게 하여, 성교가 韓의 땅을 秦에 들였으니, 왕께서 軍을 쓰지도 않고 위세를 떨치지도 않고 백 리의 땅을 얻었습니다.
王可謂能矣。
왕께서는 유능하다고 말할 만합니다.
王又舉甲而攻魏,杜大梁之門,舉河內,拔燕、酸棗、虛、桃,入邢,魏之兵雲翔而不敢捄。
왕께서는 또 軍隊를 일으켜 魏를 공격함에, 大梁의 성문을 막고 河內를 점거했으며, 燕, 酸棗, 虛, 桃를 점령하고, 邢땅으로 들어가자 魏軍은 구름이 날아오르듯이 흩어져 감히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王之功亦多矣。
왕의 공적이 또한 맣습니다.
王休甲息衆,二年而後復之;
又并蒲、衍、首、垣,以臨仁、平丘,黃、濟陽嬰城而魏氏服;
王又割濮磿之北,注齊秦之要,絕楚趙之脊,天下五合六聚而不敢救。
왕께서는 軍을 쉬게 하시기 2년, 다시 軍을 일으켜 또 蒲, 衍, 首, 垣을 병합하고, 仁, 平丘, 黃, 濟陽 嬰城을 공격하니 魏가 굴복하였습니다.
왕께서 또 濮水와 磿山의 북쪽을 나누어 가져서 齊와 秦의 허리와 楚와 趙의 등뼈를 끊으니, 천하의 제후들이 다섯 번 연합하고 여섯 나라가 모였음에도 감히 구하지 못했습니다.
王之威亦單矣。
왕의 위엄이 또한 극에 달했습니다.
▶ 盛橋: 진왕 政의 동생. 장안군 성교를 파견해 趙의 요충지인 상당 땅을 공격하게 하였다.
▶ 守事於韓: 한나라에 주둔하여 직무를 맡음.
▶ 甲: 갑옷을 입은 병사.
▶ 不信威: 위세를 떨치지 않음. 信은伸과 통하여 펼치다는 뜻.
▶ 杜大梁之門: 大梁은 魏惠王이 都邑한 곳이다. 杜는 가로막다.
▶ 河內: 황하의 북쪽.
▶ 嬰城: (황과 제양의성을 포위하다.
▶ 五合六聚: 다섯 번의 연합을 하고 여섯 나라가 모이다.
▶ 單: 殫(탄)과 통하여 다하다는 뜻.
王若能持功守威,絀攻取之心而肥仁義之地,使無後患,三王不足四,五伯不足六也。
왕께서 만약 능히 그 공적을 유지하고 위엄을 지키면서, 공격해 빼앗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인의의 본성을 넓혀, 후환을 방지하면 三王으로는 부족하여 四王이 될 터이고, 五覇로는 부족하여 六覇가 될 터입니다.
王若負人徒之衆,仗兵革之彊,乘毀魏之威,而欲以力臣天下之主,臣恐其有後患也。
만약 왕께서 민중이 많음을 믿고 군대의 강함에 의지하여, 魏를 무찌르던 위세를 타고, 무력으로 천하의 제후를 신하로 삼으려고 한다면, 臣은 아마 후환이 있으리라 걱정합니다.
▶地: 바탕, 本來의 性質.
▶ 三王: 중국 古代의 세 임금. 곧 夏의 禹王과 殷의 湯王과 周의 文王<또는 武王>을 일컫는 말
▶ 五伯: 春秋五覇를 말하며, 齊桓公, 晉文公, 宋襄公, 楚莊王, 秦穆公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負: 의지함.
▶ 人徒: 서민. 민중.
▶ 天下之主: 천하의 제후들.
《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
<詩經>에서 일렀습니다
“시작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드물다.”
《易》曰「狐涉水,濡其尾」。
<易經>에서 일렀습니다.
“여우가 물을 건너다가 꼬리를 적신다.”
此言始之易,終之難也。
이것은 시작은 쉬우나 끝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何以知其然也?
어떻게 그러함을 알겠습니까?
昔智氏見伐趙之利而不知榆次之禍,吳見伐齊之便而不知干隧之敗。
옛날 智氏는 趙氏를 치는 이익은 알되 榆次의 재앙은 알지 못하였고, 吳는 齊를 공격하는 이익을 알되 干隧의 패배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此二國者,非無大功也,沒利於前而易患於後也。
이 두 나라는 큰 공이 없지는 않았지만, 목전의 이익에 빠져서 뒤에 올 재앙을 쉽게 여겼습니다.
吳之信越也,從而伐齊,既勝齊人於艾陵,還為越王禽三渚之浦。
吳는 越을 믿고 병사를 이끌고 齊를 정벌하여 艾陵에서 齊軍을 이겼으나, 돌아오다 三渚의 포구에서 월왕에게 사로잡혔습니다.
▶ 靡不有初,鮮克有終: ≪詩經≫大雅˂蕩˃에 나오는 구절로‘
모두가 시작은 있었어도 유종의 미를 거둠은 적었다.’고 하였다. 靡는 없다, 鮮은 적다, 克은 ~할 수 있다.
▶ 狐涉水,濡其尾: ≪周易≫ ˂未濟˃卦에 나오는 말로
“새끼 여우가 거의 강을 다 건너다가 꼬리를 적신다. [小狐汔濟 濡其尾]”고 하였으며 잔재주로는 큰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혹은 처음은 쉽고 끝은 어렵다는 비유한 말이다. 濡는 적시다.
▶ 智氏見伐趙之利而不知榆次之禍: 지씨는 晉陽을 탐낼 줄만 알았을 뿐, 趙襄子가 韓‧魏와 더불어 음모를 꾸밈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鑿臺에서 죽임을 당하여 楡次에 묻히게 되었다는 뜻. 지씨는 智瑤를 말하며 晉 말기의 실권자이다. 지씨 가문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智伯瑤혹은 智伯이라고 불린다.
▶ 吳見伐齊之便而不知干隧之敗: 吳王 夫差가 기원전475년에 齊를 치니, 越王 勾踐이 3천 軍士로 吳를 돕는 척하면서 吳를 干隧에서 쳤는데 오왕은 포로로 잡히자 자살하고 말았다. <史記 吳太伯世家, 越王勾踐世家˃. 便은 利益.
▶ 沒利於前: 눈앞의 이익에 빠지다.
▶ 艾陵: 春秋時代齊의 邑. 지금의 山東省泰安縣.
▶ 三渚之浦: 戰國策에는 三江之浦로 되어 있으며 浦는 포구, 三江은 婁江, 東江, 松江을 일컫기도 한다.
智氏之信韓、魏也,從而伐趙,攻晉陽城,勝有日矣,韓、魏叛之,殺智伯瑤於鑿臺之下。
智氏는 韓·魏를 믿고 병사를 이끌고 趙를 정벌하여 晉陽城을 공격하여 승리의 날이 다가왔을 때, 韓·魏가 배반하여 智伯瑤를 鑿臺아래에서 살해하였습니다.
今王妒楚之不毀也,而忘毀楚之彊韓、魏也,臣為王慮而不取也。
그런데 왕께서는 楚가 망하지 않음을 시기하되, 楚를 무너뜨리면 韓·魏를 강화함을 잊고 계시니, 신은 왕께서 숙려하여 취하지 않으리라 여깁니다.
▶ 鑿臺: 지금의 산동성 楡次縣안에 있었던 臺이름. 지백이 땅을 파서 도랑을 만들어 이로써 晉陽城에 물을 댄 것으로 흙을 모아 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鑿臺라 이름하였다.
《詩》曰「大武遠宅而不涉」。
<시경>에서 일렀습니다.
“大軍은 멀리 나가지 않는다.”
從此觀之,楚國,援也;鄰國,敵也。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楚는 援軍이고, 이웃한 韓·魏는 敵입니다.
《詩》云「趯趯毚兎,還犬獲之。
他人有心,余忖度之」。
<시경>에서 일렀습니다.
“이리저리 날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내 마음에 비추어 알 수 있다.”
今王中道而信韓、魏之善王也,此正吳之信越也。
지금 왕께서 중도에 韓·魏가 왕과 친하다고 믿으니, 그것은 바로 吳가 越을 믿는 것입니다.
臣聞之,敵不可假,時不可失。
신이 듣기에, 적은 용서해서는 안 되고, 때는 놓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臣恐韓、魏卑辭除患而實欲欺大國也。
신은 韓·魏가 비천한 말로 근심거리를 덜어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대국을 속이려 할까 근심합니다.
何則?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王無重世之德於韓、魏,而有累世之怨焉。
왕에게는 韓·魏에 여러 세대에 걸쳐 베푼 은덕이 없으며, 대대로 쌓은 원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 大武遠宅而不涉: 지금의 ≪詩經≫에는 전하지 않는 시이다. 大武는 大軍, 遠宅은 遠地.
▶ 趯趯毚免, 還犬獲之: 시경의 원문은 ‘躍躍毚兔, 遇犬獲之’이며 免은 兎의 오류로 兎로 수정하였다. <시경> 小雅·巧言에 나오는 시이며 잘 뛰어 도망하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에게 잡힌다는 뜻. 즉 현명한 왕 앞에는 간신배가 없어진다는 뜻. 趯趯은 躍躍과 같으며 뛰어 도망하는 모양, 毚兎는 교활한 토끼. 還犬은 遇犬이며 사냥개를 만나다.
▶ 他人有心,余忖度之: <시경> 小雅·巧言. 忖度은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
▶ 中道: 中途.
▶ 敵不可假: 적은 용서해서는 안된다. 假는 용서하다. 너그럽다.
▶ 重世: 대대. 여러 세대. =累世
夫韓、魏父子兄弟接踵而死於秦者將十世矣。
무릇 韓·魏의 부자·형제가 잇달아 秦과 싸우다 죽음이 10世代입니다.
本國殘,社稷壞,宗廟毀。
본국은 황폐해지고 사직은 무너지고 종묘는 허물어졌습니다.
刳腹絕腸,折頸摺頤,首身分離,暴骸骨於草澤,頭顱僵仆,相望於境,父子老弱系脰束手為群虜者相及於路。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끊으며, 목을 꺽고 턱을 접으며, 머리와 몸을 분리하고, 풀밭과 늪지에 해골이 드러나고, 머리뼈는 쓰러지고 엎어져 국경에 보이고, 아비와 아들, 노인과 어린이의 머리를 묶고 손을 묶은 포로들이 길에 이었습니다.
鬼神孤傷,無所血食。
귀신은 외로이 서글퍼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人民不聊生,族類離散,流亡為仆妾者,盈滿海內矣。
백성이 살지 못하고 친척은 離散하여 흘러 다니다 종과 첩이 된 자가 나라에 가득합니다.
故韓、魏之不亡,秦社稷之憂也,今王資之與攻楚,不亦過乎!
그러므로 韓·魏가 망하지 않음은 秦 사직의 우환인데, 왕께서 그들에 기대어 함께 楚를 공격하시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 接踵: 발뒤꿈치를 맞대다. 잇따르다.
▶ 頭顱: 두개골. 머리.
▶ 僵仆: 엎어져 넘어짐.
▶ 脰: 목. 목줄기.
▶ 血食: 피 묻은 산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낸 데서, 제사를 지냄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 仆妾: 남자 종과 여자 종
▶ 資: ~의 힘을 빌리다.
且王攻楚將惡出兵?
왕께서는 楚를 공격한다면 어디로 출병하시겠습니까?
王將借路於仇讎之韓、魏乎?
왕께서는 원수인 韓·魏에서 길을 빌리겠습니까?
兵出之日而王憂其不返也,是王以兵資於仇讎之韓、魏也。
출병하는 날이 되면 왕께서는 軍隊가 되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하실 터이니, 왕의 軍隊가 원수인 韓·魏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王若不借路於仇讎之韓、魏,必攻隨水右壤。
왕께서 만약 원수인 韓·魏에 길을 빌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隨水의 오른쪽을 공격해야 합니다.
隨水右壤,此皆廣川大水,山林谿谷,不食之地也,王雖有之,不為得地。
隨水의 오른쪽은 모두 넓고 큰 강물과 산림과 계곡으로 이루어져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니, 왕께서 비록 그곳을 차지할지라도 땅을 얻음이 되지 못합니다.
是王有毀楚之名而無得地之實也。
그러므로 왕께서 楚를 해쳤다는 오명을 얻을 뿐 땅을 얻는 실속은 없습니다.
▶ 惡: 어느.
▶ 仇讎: 원수.
▶ 隨水: 楚의 강. 지금의 호북성 隨縣에 있다.
且王攻楚之日,四國必悉起兵以應王。
또, 왕께서 楚를 공격하는 날에는 4國이 틀림없이 모든 병사를 일으켜 왕에게 응전할 터입니다.
秦、楚之兵構而不離,魏氏將出而攻留、方與、铚、湖陵、碭、蕭、相,故宋必盡。
秦과 楚의 군대가 얽히어 떨어지지 않으면, 위씨가 곧 나와 留、方與、铚、湖陵、碭、蕭、相을 공격하여, 宋이 틀림없이 모두 차지할 터입니다.
齊人南面攻楚,泗上必舉。
齊가 남쪽으로 楚를 공격하고 泗水유역을 틀림없이 占據할 터입니다.
此皆平原四達,膏腴之地,而使獨攻。
그곳은 모두 평원이며 사방이 탁 트인 비옥한 땅이므로, 홀로 공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王破楚以肥韓、魏於中國而勁齊。
왕께서 楚를 깨뜨려서 중원의 韓·魏를 살찌우고, 齊를 강하게 합니다.
韓、魏之彊,足以校於秦。
韓·魏의 强盛은 秦에 맞서기에 충분합니다.
▶ 四國: 韓, 趙, 魏, 齊의 네 나라.
▶ 應: 맞서다.
▶ 構而不離: 쉬지 않고 교전하다. 構는 잇닿다.
▶ 故宋: 원래의 宋의 땅.
▶ 泗水: 지금의 산동성 서남부에 있는 강.
▶ 中國: 中原.
▶ 校: 대항.
齊南以泗水為境,東負海,北倚河,而無後患,天下之國莫彊於齊、魏,齊、魏得地葆利而詳事下吏,一年之後,為帝未能,其於禁王之為帝有餘矣。
齊가 남쪽으로 泗水를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 바다를 등지고 북으로 황하에 의지하여 뒤쪽의 근심을 없애면 천하의 나라 중에 齊、魏보다 강한 것은 없을 터이니, 齊、魏가 땅을 얻고 이익을 넓히면서 거짓으로 섬기기를 하급 관리처럼 한다면, 1년이 지난 후 천자가 됨은 불가능할지라도, 왕께서 천자가 됨을 막는 데는 남음이 있을 터입니다.
▶ 葆: 保와 통하여 보호하다.
▶ 詳: 佯과 통하여 거짓으로 꾸미다.
▶ 下吏: 하급 관리.
夫以王壤土之博,人徒之衆,兵革之彊,壹舉事而樹怨於楚,遲令韓、魏歸帝重於齊,是王失計也。
대저 왕의 땅이 넓음, 인구가 많음, 군대의 강함을 가지고, 한 번 擧事하여 초에 원한을 심음은, 韓、魏로 하여금 齊에 천자의 重位를 맡기게 함이니, 왕의 잘못된 계책입니다.
臣為王慮,莫若善楚。
신이 왕을 위하여 생각해 보니 楚나 좋게 지냄 만한 것이 없습니다.
秦、楚合而為一以臨韓,韓必斂手。
진과 초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 韓을 공격하면 韓은 틀림없이 손을 뗄 터입니다.
王施以東山之險,帶以曲河之利,韓必為關內之侯。
왕께서 동쪽 산의 험함에 기대고 굽은 황하의 이로움을 두르면 韓은 반드시 관내의 제후가 될 터입니다.
若是而王以十萬戍鄭,梁氏寒心,許、鄢陵嬰城,而上蔡、召陵不往來也,如此而魏亦關內侯矣。
이같이 하고 왕께서 10만의 군대를 가지고 鄭(韓의 수도)을 지키면 梁氏는 마음이 서늘할 터이며, 許、鄢陵에서 농성하면 上蔡、召陵이 왕래하지 못할 터이니, 이와 같이하면 魏 또한 관내후가 될 터입니다.
▶ 遲: 集解徐廣曰:「遲,一作『還』。」 索隱遲音值。值猶乃也。今音力呈反。
▶ 斂手: 손을 떼다.
▶ 曲河: 河曲. 지금의 山西省永濟縣.
▶ 戍鄭: 鄭은 당시 韓의 屬地로 지금의 河南省新鄭縣이다.
▶ 關內之侯: 關內侯. 秦의 爵位의 하나. 여기에서는 秦의 屬國이 된다는 뜻.
王壹善楚,而關內兩萬乘之主, 注地於齊,齊右壤可拱手而取也。
왕께서 한 번 楚와 잘 지내시면 두 萬乘의 군주를 관내후로 삼을 터이고, 齊에서 땅을 끊으면 齊의 오른쪽 땅을 팔짱을 끼고도 취할 수 있습니다.
王之地一經兩海,要約天下,是燕、趙無齊、楚,齊、楚無燕、趙也。
왕의 땅은 하나로 두 바다를 지나며 천하를 묶어서, 이 때문에 燕·趙에는 齊·楚의 도움이 없고, 齊·楚에는 燕·趙의 도움이 없을 터입니다.
然後危動燕、趙,直搖齊、楚,此四國者不待痛而服矣。
그런 후에 燕·趙를 위태로워 동요하게 하고, 곧바로 齊·楚를 흔들면, 이 네 나라는 힘을 다할 필요 없이 복종할 터입니다.”
▶ 梁氏: 魏를 말한다.
▶ 關內兩萬乘之主: 韓나라와 魏를 말한다.
▶ 一經: 가로지르다.
▶ 兩海: 서해와 동해.
▶ 不待痛: 尽力;竭力[do one’s utmost;try one’s best]。如:痛贬(极力贬低);痛诋(竭力诋毁、辱骂);痛毁(竭力诋毁)
昭王曰:
「善。」
진소왕이 말하였다.
“좋소.”
於是乃止白起而謝韓、魏。
이에 백기를 멈추게 하고, 韓、魏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發使賂楚,約為與國。
楚에 사신을 보내 예물을 주며 동맹국이 되기로 약속하였다.
▶ 謝: 거절하다. 그만두다.
▶ 與國: 우호국. 동맹국.
黃歇受約歸楚,楚使歇與太子完入質於秦,秦留之數年。
황헐이 조약을 맺고 楚로 돌아가자, 楚는 황헐과 태자 完을 秦에 인질로 보내었고, 秦은 두 사람을 수년간 억류하였다.
楚頃襄王病,太子不得歸。
楚頃襄王이 병들었으나 태자는 귀국할 수 없었다.
而楚太子與秦相應侯善,於是黃歇乃說應侯曰:
「相國誠善楚太子乎?」
楚태자와 秦의 재상 應侯는 친했으므로, 황헐이 응후에게 말하였다.
“相國께서는 정말로 楚의 태자와 친하십니까?”
應侯曰:
「然。」
응후가 말하였다.
“그렇소.”
▶ 太子完入質: 기원전272년에 楚태자 完이 秦에 인질이 되었다. [楚太子完質於秦]
▶ 應侯: 秦의 재상인 范睢를 말한다.
歇曰:
황헐이 말하였다.
「今楚王恐不起疾,秦不如歸其太子。
“지금 초왕께서 병들어 일어나지 못할 듯한데, 秦은 태자를 귀국시킴이 낫겠습니다.
太子得立,其事秦必重而德相國無窮,是親與國而得儲萬乘也。
태자가 즉위하시면 그가 秦을 섬김이 정중할 터이고, 상국의 은덕에 고마워함이 무궁할 터이니, 이는 동맹국을 친하게 여겨서 萬乘의 나라에 동맹을 얻는 것입니다.
若不歸,則咸陽一布衣耳;
楚更立太子,必不事秦。
만약 귀국시키지 않으면 태자는 咸陽의 일개 백성이 되고,
楚가 사람을 바꾸어 태자로 즉위시키면 틀림없이 秦을 섬기지 않을 터입니다.
夫失與國而絕萬乘之和,非計也。
무릇 동맹국을 잃고 만승의 대국과 화친을 끊음은 계책이 아닙니다.
願相國孰慮之。」
부디 상국께서는 熟慮하십시오.”
應侯以聞秦王。
응후가 진소왕에게 보고하였다.
▶ 儲: 마련해두다.
▶ 布衣: 평민. 서민.
▶ 孰: 熟과 같다. 깊이. 곰곰이.
▶ 聞: 보고하다. 전달하다.
秦王曰:
「令楚太子之傅先往問楚王之疾,返而後圖之。」
秦昭王이 말하였다.
“楚태자의 스승을 먼저 보내서 楚王을 문병하고, 돌아온 뒤에 처리하시오.”
黃歇為楚太子計曰:
황헐이 楚태자를 위하여 계책을 말하였다.
「秦之留太子也,欲以求利也。
“秦이 태자를 억류함은 그것으로 이익을 얻으려 함입니다.
今太子力未能有以利秦也,歇憂之甚。
지금 태자의 능력으로는 秦에 이익을 주지 못하니, 저는 그것을 크게 우려합니다.
而陽文君子二人在中,王若卒大命,太子不在,陽文君子必立為後,太子不得奉宗廟矣。
그리고 陽文君의 아들 두 사람이 궁중에 있는데, 왕께서 만약 大命을 마침에 태자께서 不在中이면, 양문군의 아들을 틀림없이 후사로 삼아 옹립할 터이니, 태자께서는 종묘를 받들지 못할 터입니다.
不如亡秦,與使者俱出;
臣請止,以死當之。」
秦에서 도망쳐서 사자와 함께 탈출함이 나으니, 신이 남아서 목숨을 걸고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 傅: 스승.
▶ 陽文君: 楚頃襄王의 형제.
楚太子因變衣服為楚使者御以出關,而黃歇守舍,常為謝病。
楚태자는 楚사자의 마부로 變服하여 函谷關을 나갔고, 황헐은 숙소를 지키며 항상 병을 핑계하였다.
度太子已遠,秦不能追,歇乃自言秦昭王曰:
「楚太子已歸,出遠矣。
歇當死,願賜死。」
태자가 이미 멀리 가서 秦이 추격할 수 없으리라 계산하고, 황헐은 스스로 秦昭王에게 말하였다.
“楚태자는 이미 귀국하여 멀리 나갔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하니, 부디 죽음을 내리십시오.”
昭王大怒,欲聽其自殺也。
秦昭王이 크게 노하여 그의 자살을 허락하려 하였다.
應侯曰:
「歇為人臣,出身以徇其主,太子立,必用歇,故不如無罪而歸之,以親楚。」
응후가 말하였다.
“황헐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위해 죽음으로써 벼슬하는 도리를 실행한 것이고, 태자가 즉위하면 틀림없이 황헐을 기용할 터이니, 죄를 묻지 마시고 귀국시켜 楚와 善交함이 낫습니다.”
秦因遣黃歇。
秦은 그리하여 황헐을 楚로 보내주었다.
▶ 御: 마부.
▶ 謝病: 병을 구실삼아 사절하다.
▶ 出身: 헌신. 入仕之途(벼슬하는 도리)
▶ 徇: 殉과 통하여 목숨을 바치다.
歇至楚三月,楚頃襄王卒,太子完立,是為考烈王。
황헐이 楚에 도착하고 석 달, 楚頃襄王이 죽고 태자 웅완이 즉위하여 楚考烈王이 되었다.
考烈王元年,以黃歇為相,封為春申君,賜淮北地十二縣。
고열왕 원년(기원전262년),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春申君에 봉하여 淮水북쪽 12 縣을 하사하였다.
後十五歲,黃歇言之楚王曰:
「淮北地邊齊,其事急,請以為郡便。」
15년 후에 황헐이 楚王에게 말하였다.
“회수 북쪽은 땅이 齊와 접하여 사정이 긴박하니, 郡으로 삼음이 편할 것입니다.”
因并獻淮北十二縣。
그리고는 회수 북쪽의 12현을 바쳤다.
請封於江東。考烈王許之。
강동에 봉하기를 청하니, 고열왕이 허락하였다.
春申君因城故吳墟,以自為都邑。
춘신군은 옛날 吳의 터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으로 삼았다.
▶ 楚考烈王: ? ~기원전238년. 楚의 제39대 왕(재위: 기원전262년~기원전238년)이다. 이름은 完이다. 경양왕의 아들이다. 아들인 유왕이 뒤를 이었다.
▶ 邊齊: 齊와 가깝다.
▶ 吳墟: 吳의 舊都.
春申君既相楚,是時齊有孟嘗君,趙有平原君,魏有信陵君,方爭下士,招致賓客,以相傾奪,輔國持權。
춘신군이 楚의 재상이 됨에, 이때 齊에는 孟嘗君이 있고, 趙에는 平原君이 있고, 魏에는 信陵君이 있어서, 바야흐로 다투어 선비에게 자신을 낮추고, 빈객을 불러 모아 서로 다투어 빼앗고 국정을 도우며 권세를 장악하였다.
▶ 下士: 선비들에게 겸손하게 대함
▶ 傾奪: 爭奪. 서로 다투어 빼앗음.
春申君為楚相四年,秦破趙之長平軍四十餘萬。
춘신군이 楚의 재상이 되고 4년, 秦이 趙의 長平軍 40여 만을 깨뜨렸다.
五年,圍邯鄲。
5년 되던 해에 秦이 趙의 邯鄲을 포위하였다.
邯鄲告急於楚,楚使春申君將兵往救之,秦兵亦去,春申君歸。
한단에서 楚에 위급함을 알리자 楚는 춘신군을 시켜 병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보내니, 秦軍이 또한 물러가므로 춘신군이 돌아왔다.
春申君相楚八年,為楚北伐滅魯,以荀卿為蘭陵令。
춘신군이 楚의 재상이 되고 8년, 楚는 북쪽으로 魯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荀卿을 蘭陵의 현령으로 삼았다.
當是時,楚復彊。
당시 楚는 다시 강성해졌다.
▶ 長平: 地名. 趙 上黨郡의 읍. 長平大戰은 기원전262년에서 기원전260년에 걸쳐 秦과 趙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로서 전국시대의 판도를 변하게 만든 전투이다. 장평의 승리는 秦이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패전국인 趙의 몰락을 가져왔다.
趙平原君使人於春申君,春申君捨之於上舍。
趙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내자 춘신군은 그를 상등급 객사에 머물게 하였다.
趙使欲夸楚,為瑁簪,刀劍室以珠玉飾之,請命春申君客。
趙 사신은 楚에 자랑하고자 玳瑁로 만든 비녀를 꽂고, 진주와 옥으로 꾸민 칼집을 차고 춘신군의 빈객과 만나기를 청하였다.
春申君客三千餘人,其上客皆躡珠履以見趙使,趙使大慚。
춘신군의 빈객은 3천여 명이었는데, 그중 上客은 모두 진주로 장식한 신발을 신고 趙의 사신을 만나니, 趙의 사신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 上舍: 상등급 객사.
▶ 誇: 자랑하다. 뽐내다.
▶ 玳瑁: 바다거북의 껍데기로 만든 장식품.
▶ 刀劍室: 칼집.
▶ 躡: 신을 신다.
春申君相十四年,秦莊襄王立,以呂不韋為相,封為文信侯。
춘신군이 재상이 되고 14년, 秦莊襄王이 즉위하여 呂不韋를 재상으로 삼고 文信侯에 봉하였다.
取東周。
秦이 東周를 빼앗았다.
▶ 秦莊襄王: 기원전281년~기원전246년. 전국시대 秦의 왕으로 정식 시호는 莊襄太上王 또는 莊襄太上皇帝이다. 초명은 嬴異人이었지만, 楚의 후예라는 뜻의 子楚로 개명하여 嬴子楚로 불렸다. 진왕 영정의 아버지이다. 주나라를 정복, 병합하였다. 진왕 영정이 장양태상황제의 시호로 추존하였다
春申君相二十二年,諸侯患秦攻伐無已時,乃相與合從,西伐秦,而楚王為從長,春申君用事。
춘신군이 재상이 되고 22년, 제후들은 秦의 공격이 다할 날이 없음을 걱정하여 서로 합종하여 서쪽으로 秦을 치기로 하였는데, 楚王이 합종의 맹주가 되고 춘신군이 권한을 행사하였다.
至函谷關,秦出兵攻,諸侯兵皆敗走。
函谷關에 이름에 秦軍이 공격하자 제후의 연합군은 모두 패주하였다.
楚考烈王以咎春申君,春申君以此益疏。
楚考烈王이 춘신군을 탓하였으므로, 춘신군은 이 일로 더욱 소원해졌다.
▶ 無已時: 끊이지 않음. 已는 停止.
▶ 咎: ~의 탓으로 돌리다.
客有觀津人朱英,謂春申君曰:
빈객 중에 觀津 사람 朱英이 춘신군에게 말하였다.
「人皆以楚為彊而君用之弱,其於英不然。
“사람들이 모두 楚는 강했으나 군께서 다스리자 약해졌다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先君時善秦二十年而不攻楚,何也?
선왕 때 秦과 20년이나 善交하여 楚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秦踰黽隘之塞而攻楚,不便;
假道於兩周,背韓、魏而攻楚,不可。
秦이 黽隘의 요새를 넘어서 楚를 공격함이 불편하였고,
兩周(서주와 동주)에 길을 빌려, 漢·魏를 뒤에 두고 楚를 공격함이 불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今則不然,魏旦暮亡,不能愛許、鄢陵,其許魏割以與秦。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魏가 조만간 망할 지경이라 許와 鄢陵을 아낄 수 없어서, 그중 許를 떼어 秦에 줄 터입니다.
秦兵去陳百六十里,臣之所觀者,見秦、楚之日斗也。」
秦軍과 楚 陳縣의 거리는 160리이니, 제가 보기에는 秦과 楚는 날마다 싸울 터입니다.”
楚於是去陳徙壽春;
而秦徙衛野王,作置東郡。
楚는 이에 진현을 떠나 壽春으로 도읍을 옮겼고, 秦은 衛의 食邑을 野王으로 옮기고 東郡을 설치하였다.
春申君由此就封於吳,行相事。
춘신군은 이 때문에 吳에 봉해져 재상의 일을 수행하였다.
▶ 用: 다스리다.
▶ 黽隘: 요새의 이름으로 黽阨라고도 부른다. 黽은 鄳과 통용하여 쓰이고, 혹 冥이라고 쓰이는데, 모두 음이 盲이다.
▶ 兩周: 서주와 동주. 낙양 근처에 위치했던 西周와 東周를 가리킨다.
▶ 愛: 내놓기를 아까워하다.
▶ 日斗: 날마다 싸움. 斗는 싸울 ‘투’.
▶ 壽春: 당시에 河東郡 경내에 있던 지명인데 자세하지 않다. 楚가 수춘으로 도읍을 옮겨 郢이라고 명명하였다
▶ 秦徙衛野王衛: 당시 衛는 이미 秦의 속국이 되었으므로 衛 元君이 그 종족을 거느리고 野王으로 옮겨가 살았다. <自治通監>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衆,卒無子。
초고열왕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춘신군이 이를 걱정하여, 아들을 낳을 만한 부인을 구해서 바친 적이 매우 많았으나, 끝내 아들이 없었다.
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久毋寵。
趙 사람 李園이 자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楚王에게 바치려고 했으나, 왕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듣고, (아들을 낳지 못하여) 훗날 사랑받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
이원은 춘신군을 섬기려 舍人이 되기를 구하여, 사인이 되자 청하여 歸鄕하였다가 일부러 기일을 어겼다.
還謁,春申君問之狀,對曰:
「齊王使使求臣之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
돌아와 알현함에 춘신군이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帝王이 사신을 보내 臣의 여동생을 요구하기에 그 사신과 술을 마시다가 기일을 놓쳤습니다.”
▶ 女弟: 누이동생. 李園의 여동생.
▶ 舍人: 측근. 시종.
▶ 謁: 청하다.
▶ 故失期: 일부러 기일을 어기다. 故는 故意. 문장의 뒤에 나오는 故는 ~까닭에.
▶ 狀: 사실에 의한 근거(根據)
春申君曰:
「娉入乎?」
춘신군이 말하였다.
“혼인은 정하였소?”
對曰:
「未也。」
이원이 대답하였다.
“아직 못하였습니다.”
春申君曰:
「可得見乎?」
춘신군이 말하였다.
“만나볼 수 있겠소?”
曰:
「可。」
이원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於是李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
이에 이원이 여동생을 바치니 곧 춘신군의 총애를 받았다.
知其有身,李園乃與其女弟謀。
그녀가 임신하였음을 알고 이원은 그의 여동생과 謀議하였다.
▶ 娉: 聘과 통하여 혼인을 정함. 定婚하다.
▶ 幸: 총애.
▶ 有身: 임신.
園女弟承閒以說春申君曰:
이원의 여동생은 한가한 틈에 춘신군을 설득하였다.
「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也。
“초왕께서 당신을 귀하게 여기고 총애함은, 비록 형제라도 그만 못할 터입니다.
今君相楚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則楚更立君後,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
지금 군께서 楚의 재상이 된 지 20여 년에 왕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만약 돌아가시면 형제를 왕으로 세울 터이고, 楚가 군주를 바꾸어 옹립한 후에도 각기 예전에 친하던 자를 중하게 여길 것인데, 군께서도 어찌 길이 총애를 받겠습니까?
非徒然也,君貴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
그럴 뿐만 아니라, 군께서는 귀한 신분으로 권력을 잡은 지 오래이므로, 왕의 형제에게 실함이 많아서, 형제들이 만약 즉위하면 일신에 화가 곧 미칠 터이니, 어찌 재상의 印綬와 강동의 봉토를 보전하겠습니까?
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
지금 첩만이 임신을 알고 있으며, 남은 아는 자가 없습니다.
妾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
妾賴天有子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盡可得,孰與身臨不測之罪乎?」
첩이 군의 총애를 받고 오래되지 않았으니, 만약 군의 鄭重함을 가지고 초왕에게 첩을 바친다면 왕께서는 틀림없이 첩을 총애할 터입니다.
첩이 하늘의 도움으로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군의 아들이 왕이 되어 楚를 모두 얻을 터이니, 일신이 헤아릴 수 없는 죄에 직면함과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 承閒: 한가한 틈을 이용하다. 承은 乘과 통하여 이용하다.
▶ 即百歲後: 만약 죽은 뒤. 百歲後는 百歲之後로 지체 높은 사람이 죽은 뒤의 뜻. 即은 만약.
▶ 子男: 아들.
春申君大然之,乃出李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
춘신군은 매우 옳다고 여기고 이원의 여동생을 내보내어 근신하며 지내게 하고, 楚王에게 말하였다.
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為王后。
楚王이 불러들여 총애하고 마침내 사내아이를 얻어 태자로 세우고 이원의 여동생은 왕후가 되었다.
楚王貴李園,園用事。
楚왕이 이원을 중하게 여기자 이원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李園既入其女弟,立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
이원은 여동생을 입궁시켜 왕후가 되고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이 누설하거나 더욱 교만해질까 염려하여 은밀히 죽음을 각오한 병사를 길러 춘신군을 죽여 滅口하려 했으나, 도성사람 중에 이 사실을 아는 자가 꽤 있었다.
▶ 用事: 권력을 장악하다.
▶ 死士: 죽음을 각오한 병사.
春申君相二十五年,楚考烈王病。
춘신군이 재상이 되고 25년, 楚考烈王이 병들었다.
朱英謂春申君曰:
「世有毋望之福,又有毋望之禍。
今君處毋望之世,事毋望之主,安可以無毋望之人乎?」
주영이 춘신군에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뜻밖의 복이 있고, 또 뜻밖의 화가 있습니다.
지금 군께서 희망이 없는 세상에 살고 희망이 없는 군주를 섬기면서, 어찌 뜻밖에 도와줄 사람을 곁에 두지 않으십니까?”
春申君曰:
「何謂毋望之福?」
춘신군이 말하였다.
“뜻밖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이오?”
曰:
주영이 말하였다.
「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相國,實楚王也。
“군께서 楚의 재상이 된 지 20여 년, 비록 이름은 相國이지만 실제로는 楚王입니다.
今楚王病,旦暮且卒,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而有楚國?
지금 초왕이 병들어 머지않아 죽을 터이고, 군께서는 어린 임금의 상국이 되어 국정을 장악하게 될 터인데, 옛날 伊尹·周公처럼 왕이 장성하면 정권을 돌려주거나, 아니면 南面하고 稱王하여 楚나라를 차지하지 않겠습니까?
此所謂毋望之福也。」
이것이 소위 뜻밖의 복입니다.”
▶ 朱英: 趙 觀津사람으로 春申君의 식객.
▶ 毋望之福: 뜻하지 않은 복. 우연한 복.
▶ 毋望之世: 생사가 수시로 변하는 세상을 말한다.
▶ 毋望之主: 매우 변덕스러운 군주.
▶ 毋望之人: 困境에 처했을 때에 청하지 않아도 구원해 주는 사람
▶ 代立當國: 어린 군주 대신 국정을 장악하다.
▶ 伊尹‧周公: 伊尹은 은나라 湯임금을 도운 명재상으로 湯이 죽자 그 손자 太甲을 도왔다. 周公은 周나라 武王의 아우로 武王이 죽자 封地인 魯로 가지 않고, 무왕의 아들인 어린 成王을 보필하다가 7년 후 정권을 돌려주었다.
▶ 反政: 정권을 돌려줌. 反은 返과 같으며 돌려줌.
▶ 南面稱孤: 임금이 됨을 이르는 말. 孤는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春申君曰:
「何謂毋望之禍?」
춘신군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뜻밖의 화는 무엇이오?”
曰:
「李園不治國而君之仇也,不為兵而養死士之日久矣,楚王卒,李園必先入據權而殺君以滅口。
此所謂毋望之禍也。」
주영이 말하였다.
“이원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에 상공의 원수이며, 군사를 부리지는 않지만, 죽음을 각오한 병사를 기른 시일이 오래되었으니, 초왕이 薨逝하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입궁하여 정권을 잡고 군을 죽여서 滅口할 터입니다.
이것이 소위 뜻밖의 화입니다.”
春申君曰:
「何謂毋望之人?」
춘신군이 말하였다.
“누구를 뜻밖에 도와줄 사람이라 이르오?”
對曰:
「君置臣郎中,楚王卒,李園必先入,臣為君殺李園。
此所謂毋望之人也。」
주영이 대답하였다.
“군께서 신을 郎中에 임명하시면, 초왕이 훙서함에 이원은 필시 먼저 입궁할 터인데, 신이 상공을 위해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소위 뜻밖에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春申君曰:
「足下置之,李園,弱人也,仆又善之,且又何至此!」
춘신군이 말하였다.
“그대는 내버려 두시오. 이원은 나약한 사람이며, 내가 또 잘 대해 주는데도 어찌 거기에 이르겠소!”
朱英知言不用,恐禍及身,乃亡去。
주영은 자신의 말을 채용하지 않음을 알자 화가 자신에게 미치리라 여기고 달아나버렸다.
▶ 仆: 저. 남자가 자기를 낮추어 하던 말
▶ 且: 연관을 나타내는 접속사. 여기서는 역접으로 쓰였다. “그런데도”. 허사 且 참조
後十七日,楚考烈王卒,李園果先入,伏死士於棘門之內。
17일 후에 楚考烈王이 죽자 이원은 과연 먼저 입궁하여 棘門 안에 결사대를 매복하였다.
春申君入棘門,園死士俠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
춘신군이 극문에 들어오자 이원의 병사들이 춘신군을 끼고 찔러 참수하여 극 참조문 밖으로 던졌다.
於是遂使吏盡滅春申君之家。
마침내 관리를 보내 춘신군의 일가를 모조리 죽였다.
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是為楚幽王。
이원의 여동생이 처음에 춘신군의 총애를 받아 임신한 후, 들여보낸 왕의 소생 아들이 마침내 즉위하여 楚幽王이 되었다.
是歲也,秦始皇帝立九年矣。
이 해에 秦의 始皇帝가 즉위한 지 9년이었다.
嫪毐亦為亂於秦,覺,夷其三族,而呂不韋廢。
嫪毐 역시 秦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삼족을 멸하였고 여불위가 쫓겨났다.
▶ 棘門: 壽州의 宮門. 옛날 궁문에는 戟을 꽂아 두어서 생긴 말로 戟은 棘과 통한다.
▶ 楚幽王: ? ~기원전228년. 楚의 제40대 왕(재위: 기원전237년~기원전228년)이다. 이름은 悍이다. 고열왕의 아들이다. 아들이 없어 동생인 애왕이 뒤를 이었다. 유왕은 사실 고열왕의 아들이 아닌 춘신군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 嫪毐 : ? ~기원전238년. 전국시대 秦의 가짜 환관이며 정치가이다. 작위는 長信侯이다. 큰 음경을 지니고 있어 秦의 재상 呂不韋에게 발탁되었으며, 이후 진시황제의 어머니인 趙姬와 간통하여 권세를 누렸다.
▶ 夷: 滅族.
▶ 三族: 父族, 母族, 妻族.
太史公曰:
吾適楚,觀春申君故城,宮室盛矣哉!
初,春申君之說秦昭王,及出身遣楚太子歸,何其智之明也!
後制於李園,旄矣。
語曰:
「當斷不斷,反受其亂。」
春申君失朱英之謂邪?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楚에 갔다가 춘신군의 옛 성을 관찰하니, 宮室이 얼마나 화려했던지!
처음에 춘신군이 秦昭王을 설득하고, 신하의 도리로 楚태자를 귀국시켰으니, 얼마나 지혜가 명철하였던가!
후에 李園에게 제압당하였으니 늙었기 때문이리라.
옛말에 일렀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危害를 입는다.’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놓친 것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 旄: 耄와 통하여 늙어 빠지다. 늙다.
▶ 亂: 재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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