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74.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耽古樓主 2023. 7. 30. 20:22

 

 

본 편은 孟子와 荀卿의 合傳이며 전국시대의 음양가도가법가명가묵가의 대표적인 인물 12명에 대하여도 기술하였다사마천은 <맹자>를 읽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하는 자가 많다.”라고 기술하였다.

 

1. 論評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余讀孟子書,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未嘗不廢書而嘆也。
曰:嗟乎,利誠亂之始也!
내가 <孟子>를 읽다가 梁惠王
어찌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소.
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로움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구나!’

夫子罕言利者,常防其原也。
무릇 공자가 이로움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음은 언제나 혼란의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故曰
「放於利而行,多怨」。
그러므로 말하였다.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하는 자가 많다.”

自天子至於庶人,好利之獘何以異哉!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로움을 좋아해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 孟子書: 儒家의 경전의 하나인 <孟子>를 말한다. <맹자> 7편은 만년의 저술이라고 하나 일반적으로 맹가와 그의 제자 萬章 등이 공동으로 저술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 梁惠王: 魏의 惠王(기원전400년~기원전334년)을 말하며, 전국시대 魏의 제3대 군주이다. 惠成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梁惠王으로 기록되었고, 장자에는 文惠君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340년 魏는 齊와의 馬稜戰鬪에 패하여 국력이 쇠퇴하였고 秦에 누차 침략당하여 安邑을 빼앗기고 동쪽인 大梁으로 천도하게 되며, 그 이후 魏는 梁으로 불리게 되었다.
▶ 何以利吾國: “무엇으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소.”라는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만을 취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터입니다.”라고 답하였다. <孟子 梁惠王章句 上>
▶ 廢: 내려놓다.
▶ 夫子罕言利者: “「子罕言利與命與仁。」: 공자께서는 利와 命과 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論語 子罕>
▶ 放於利而行: 子曰:
「放於利而行,多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利益에 따라 행동하면 怨望이 많다.”<論語 里仁12> 자신에게 利롭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害를 끼친다. 그러므로 怨望이 많은 것이다.

 

2. 孟軻(孟子)

 

孟軻,騶人也。
孟軻는 의 사람이다.

受業子思之門人。
子思의 門人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道既通,游事齊宣王,宣王不能用。
孔子의 에 통달하고 나서 齊宣王을 섬기려고 유세했으나제선왕이 기용하지 않았다.

適梁,梁惠王不果所言,則見以為迂遠而闊於事情。
으로 갔으나 梁惠王도 그 말을 신임하지 않았으니주장이 현실의 사정과 거리가 멀고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當是之時,秦用商君,富國彊兵;
楚、魏用吳起,戰勝弱敵;
齊威王、宣王用孫子、田忌之徒,而諸侯東面朝齊。
당시에 은 商君商鞅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와 는 吳起를 등용하여 전쟁에서 이겨 적을 약화시켰고,
齊威王과 齊宣王은 孫子(孫臏)과 田忌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제후들이 東面하며 에 朝見하였다.

▶ 孟軻: 孟子(기원전372년?~기원전289년?). 전국시대 鄒 사람으로 이름은 軻이고, 자는 子輿 또는 子車이다. 어릴 때부터 공자를 숭상하고,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학을 후세에 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생몰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나 공자가 죽은 지 100년쯤 뒤에 鄒(현 산동성 추현 동남)에서 태어났다. 제자백가 시대에 묵적과 양주의 사상과 경쟁하며 유가 사상을 확립하였다.
▶ 騶: 춘추시대에 山東省 鄒城市 일대에 있던 나라.
▶ 子思: 성은 孔, 이름은 伋, 자는 子思. 맹자의 선생.
▶ 門人: 제자.
▶ 道: 孔子의 道.
▶ 游事: 遊說.
▶ 齊宣王(? ~기원전301년). 전국시대 齊(田齊)의 제5대 국왕이다. 성은 嬀, 씨는 田, 휘는 辟彊이다. 사회 계급 질서의 안정과 봉건적 지배 체제의 확립을 理想으로 삼은 맹자는 梁惠王, 齊宣王, 滕文公에게 제창한 정치이론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 不果所言: 그 말을 믿지 않음. 果는 신임하다.
▶ 迂遠: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 朝齊: 齊를 國君으로 받들고 알현함.

列傳권74.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天下方務於合從連衡,以攻伐為賢,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是以所如者不合。
천하는 바야흐로 合從連橫에 힘을 쏟고 있었기에공격하여 정벌함을 현명하다 여기는데맹가는 요순시대와 三代의 덕을 진술하였으므로 가는 곳마다 부합하지 않았다.

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述仲尼之意,作孟子七篇。
유세를 그만두고 萬章 등의 제자들과 함께 <詩經>과 <書經>을 정리하고孔子의 뜻을 서술하여 <맹자> 7편을 지었다.

其後有騶子之屬。
그 후에 騶子의 무리가 나타났다.

▶ 合從連衡: =合從連橫. 戰國時代의 최강국인 秦과 燕·齊·楚·韓·魏·趙의6국 사이의 외교 전술. 秦을 제외한 6개국의 제후가 秦에 대항함을 合從이라 하고 魏의 장의가 秦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秦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은 것을 連橫이라 한다.
▶ 唐虞: 전설의 상고시대. 당은 요임금, 우는 순임금이 군주였다.
▶ 三代: 夏, 商(: 殷), 周.
▶ 所如者: 맹자가 유세하러 다닌 제후국. 如는 往.
▶ 騶子: 騶는 姓이며 鄒와 통한다. 子는 전국시대 학자나 스승의 존칭으로 騶忌, 騶衍, 騶奭 등을 일컫는다.

 

 

3. 騶忌

 

齊有三騶子。
에는 세 명의 騶子가 있었다.

其前騶忌,以鼓琴干威王,因及國政,封為成侯而受相印,先孟子。
맨 앞은 騶忌로 거문고를 타는 것으로 齊威王에게 벼슬을 구해국정에 참여하여 成侯에 봉해지고 재상의 官印을 받으니 맹자보다도 선대의 사람이다.

▶ 三騶子: 騶忌, 騶衍, 騶奭을 말한다.
▶ 騶忌: (? ~ BC 344?) 전국시대 齊 사람으로 키가 8척이나 되는 거구로 용모가 수려했다고 한다. 기원전370년에 제위왕에게 거문고를 뜯으면서 유세했으며, 순우곤에게서 군주를 섬기는 것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宰相에 등용되었고 기원전369년에 下邳땅에 봉해져 成侯로 불리웠다.
▶ 干: 구하다.
▶ 及: 참여.
▶ 相印: 재상의 官印.


4. 騶衍

 

其次騶衍,後孟子。
그 다음은 騶衍으로 맹자보다 후대의 사람이다.

騶衍睹有國者益淫侈,不能尚德,若大雅整之於身,施及黎庶矣。
추연은 제후들이 갈수록 음란하고 사치하여 덕을 숭상할 수 없게 되니, <大雅>에서 말했듯이 자신을 가지런히 정돈해야 백성에게 덕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乃深觀陰陽消息而作怪迂之變,終始、大聖之篇十餘萬言。
이에 음양의 소멸과 성장을 깊이 관찰하고괴상하고 虛誕함의 변화를 기술하고, ‘終始’, ‘大聖편 등의 십여만 자를 지었다.

其語閎大不經,必先驗小物,推而大之,至於無垠。
그의 학설은 광대하여 종잡을 수 없고반드시 먼저 작은 일을 살핀 후에 이것을 추론하고 확대해서 무한한 곳까지 이르렀다.

▶ 鄒衍 또는 騶衍: 戰國時代의 齊의 제자백가 중 陰陽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맹자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여 陰陽五行說을 제창하였다. 세상의 모든 事象은 土·木·金·火·水의 五行相勝의 원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라 하였고, 이에 의하여 역사의 推移나 미래에 대한 豫見을 하였다. 이것은 五行相生說과 더불어 중국의 전통적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추연의 저서라고 하여 <鄒衍> 49편, <騶子終始> 56편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추연의 철학으로 유명한 것은 소위 五德終始說과 赤縣神洲說이다.
▶ 有國者: 封地를 가진 제후.
▶ 大雅:詩經六義의 하나. 대부분 서주 왕실 귀족의 작품이다.
▶ 黎庶: 백성.
▶ 陰陽: 陰陽家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파로, 陰陽二元과 五行을 조합하여 신비적인 종교철학을 주창한 학파이다. 음양과 5행을 조합하여 하나의 철학 체계로 만든 사람은 齊의 鄒衍이라고 한다. 그와 더불어 齊의 鄒奭이 음양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消息: 소멸과 성장
▶ 怪迂:괴상하고 바르지 않음.
▶ 終始: <鄒子終始>. 추연의 저서에 추자49편과 추자종시56편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漢書·藝文志>
▶ 不經: 이치에 맞지 않다. 근거없다.
▶ 無垠(무은): 무한하다. 끝없다.

 

내쉬는 숨날숨은 호(呼)다들이마시는 숨들숨은 흡(吸)이다.
내쉬면서 들이마시면 호흡(呼吸)이다.
이 한 번의 호흡이 식(息)이다호흡이라는 동작을 통해 들고 나는 기운을 말할 때는 기식(氣息)이라는 단어를 쓴다.
일부러 숨을 들이쉬거나 내뱉지 않는 행위는 병식(屛息)이다불가항력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는 질식(窒息)이다.

息은 높이 치솟은 것이 가라앉아 평온함을 되찾는다는 뜻이 있다.
쉬어서 안정을 찾는 행위가 휴식(休息)이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군자는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다(自强不息)”는 말도 그의 좋은 용례다.

息은 생장(生長), ‘생겨나고 자라남’의 뜻도 지닌다.
아들딸을 뜻하는 자식(子息)이 대표적인 경우다.
돈을 빌려줘 생기는 이자(利子)를 이식(利息)이라고 부르거나그런 돈을 식전(息錢)으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消라는 글자는 소멸(消滅)과 소실(消失)을 뜻한다.

와 息을 합치면 소식(消息)으로 원래의 뜻은 ‘사라짐과 생겨남’이다.
나중에는 사람 또는 사물이 스러지거나 자라나는 상황에 대한 정보의 뜻으로 진화한다.

 

先序今以上至黃帝,學者所共術,大并世盛衰,因載其禨祥度制,推而遠之,至天地未生,窈冥不可考而原也。
먼저 지금을부터 黃帝에 거슬러 가며 학자들이 공히 말한 바를 서술하고시대의 성쇠를 논하며 길흉의 조짐과 법령제도를 싣고멀리 추론하여 천지가 생기기 전에 이르고고요하고 어두워 상고할 수 없는 것을 규명하였다.

先列中國名山大川,通谷禽獸,水土所殖,物類所珍,因而推之,及海外人之所不能睹。

먼저 중원의 명산대천계곡의 짐승물과 땅에서 생장하는 것온갖 진귀한 물건을 열거하고그것으로 다른 것을 유추하여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해외에까지 미쳤다.

▶ 大並: 대체로 따르다. 大는 대체로.
▶ 禨祥: 길흉의 조짐. 귀신의 화복.
▶ 度制: 法度, 制度.
▶ 窈冥: 깊숙하고 컴컴하다.

 

稱引天地剖判以來,五德轉移,治各有宜,而符應若茲。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五德의 움직임에 따라서 각 시대가 상응하는 정치제도와 길흉의 조짐이 이에 상응함을 설명하였다.

以為儒者所謂中國者,於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
儒家에서 말하는 중국이란천하 81분 중에 그 1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여겼다.

中國名曰赤縣神州。
그는 중국을 赤縣神州라고 불렀다.

赤縣神州內自有九州,禹之序九州是也,不得為州數。
적현신주 안에는 9가 있어 임금이 정리한 九州가 그것이지만, (추연이 말한주의 수가 될 수는 없다.

中國外如赤縣神州者九,乃所謂九州也。
중국 밖에도 적현신주와 같은 것이 아홉 개 있는데이것이 바로 구주이다.

▶ 剖判: 開闢. 둘로 갈라져 열림.
▶ 五德轉移: 五德終始라고도 하며 鄒衍의 학설이다. 즉, 金, 木, 水, 火, 土의 다섯종류의 물질이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는 변화를 살펴 왕조의 흥망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五德終始說은 王朝는 그 왕조에 附與된 오행의 덕의 運行論理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흥폐가 교체된다고 하는 일종의 신비적 역사철학이다.
▶ 符應若茲: 길흉의 조짐이 이에 상음함. 符應은 고대 미신으로 天命과 인사가 서로 일치함을 말한다. 茲는 此와 같은 의미.
▶ 赤縣神州: 중국의 별칭. 赤縣神洲說은 우주 전체는 81洲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의 9분의 1인 9주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 赤縣神洲 또는 간단히 神洲인데, 이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주장이다. 일종의 신비적인 우주철학이다. 九洲說은 《書經》 〈禹貢篇〉에 쓰인 것이다. 九는 窮으로 통한다. 적현신주설은 그 九와 九를 곱하여 우주를 설명하려는 단순한 관념론이다. 그러나 그 말하는 바는 역시 신비적 呪說이다. <위키백과>
▶ 九州: 고대 하나라의 禹임금이 나라를 冀ㆍ兗ㆍ靑ㆍ徐ㆍ荊ㆍ揚ㆍ豫ㆍ梁ㆍ雍의 九州로 구별하였으며,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於是有裨海環之,人民禽獸莫能相通者,如一區中者,乃為一州。
거기에 작은 바다가 있어 이 구주를 두르고 있고백성과 짐승들이 서로 통할 수 없는 하나의 구역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이다.

如此者九,乃有大瀛海環其外,天地之際焉。
이와 같은 주가 아홉 개 있으며 끝없이 넓은 바다가 고리처럼 그 밖을 두르고 있는데하늘과 땅의 끝이다.

其術皆此類也。
추연이 기술한 것은 모두 이와 같은 부류이다.

然要其歸,必止乎仁義節儉,君臣上下六親之施,始也濫耳。
그 결론을 요약하면 반드시 仁義節儉과 군신상하와 육친 사이의 일로 귀결되므로시작이 너무나 크고 넘칠 뿐이다.

王公大人初見其術,懼然顧化,其後不能行之。
신분이 높은 귀족은 그 학설을 처음 접하면 깜짝 놀라 감화되는 듯하지만,
나중에는 이를 실행할 수는 없었다.

▶ 裨海: 작은 바다.
▶ 瀛海: 큰 바다.
▶ 王公大人: 신분이 아주 높은 귀족.
▶ 懼然: 깜짝 놀라는 모양. 懼는 瞿와 통하여 놀라는 모습.

 

 

5. 騶衍

 

是以騶子重於齊。
이 때문에 騶衍은 에서 존중을 받았다.

適梁,惠王郊迎,執賓主之禮。
으로 감에양혜왕은 교외에서 영접하여 빈객의 예로 대접하였다.

適趙,平原君側行撇席。
로 감에平原君이 곁에서 앉을 자리의 먼지를 닦아주었다.

如燕,昭王擁彗先驅,請列弟子之座而受業,筑碣石宮,身親往師之。
에 감에燕昭王은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며 앞에서 인도하였고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청했으며碣石宮을 지어주고 몸소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겼다.

作主運。
여기서 <主運篇>을 지었다.

其游諸侯尊禮如此,豈與仲尼菜色陳蔡,孟軻困於齊梁同乎哉!
그가 제후들을 유세하며 받은 존경과 예우가 이와 같으니어찌 공자가 과 에서의 굶주린 얼굴빛맹가가 와 에서의 곤욕과 같겠는가!

▶ 撇席:자리의 먼지를 털고 닦다.
▶ 見:당하다. 받다.
▶ 仲尼菜色陳蔡: 孔子가 陳와 蔡의 사이에서 궁지에 빠져 7일간 불로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명아주 국에 쌀을 섞어 넣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공자의 얼굴이 굶주린 얼굴빛이 되었다.
▶ 困: 곤란하고 고달픔.

笔武王以仁義伐紂而王,伯夷餓不食周粟;
衛靈公問陳,而孔子不答;
梁惠王謀欲攻趙,孟軻稱大王去邠。
周武王이 인의를 내세워 紂王을 정벌하고 왕이 되자伯夷가 굶을지언정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고,
衛靈公이 戰陣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대답하지 않았고,
양혜왕이 모의하여 를 공격하려 하니 맹자는 太王이 을 떠난 고사를 일컬었다.

此豈有意阿世俗茍合而已哉!
이런 일들이 어찌 세속에 아부하고 구차하게 영합하려는 뜻일 뿐이라고 하겠는가!

持方枘欲內圜鑿,其能入乎?
네모진 자루를 둥근 구멍에 넣으려고 한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 伯夷餓不食周粟:伯夷가 굶어 죽을지언정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다. <史記·伯夷列傳>
▶ 衛靈公問陳:
[衛靈公問陳於孔子。孔子對曰:‘俎豆之事,則嘗聞之矣;軍旅之事,未嘗學也.’明日遂行.]
衛靈公이 孔子에게 陳法을 묻자, 공자께서는 “俎豆 (祭器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거니와, 軍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다.”라고 하시고, 다음날 마침내 떠나셨다. <論語 衛靈公> 陳은 陣과 같으며 교전시 전투대형을 말한다.
▶ 孟軻稱大王去邠:
[滕文公問曰:
「齊人將築薛,吾甚恐。如之何則可?」孟子對曰:昔者大王居邠,狄人侵之,去之岐山之下居焉。] 등문공이 맹자께 물었다.
“齊 사람들이 설 땅에다 성을 쌓으려 합니다. 저는 무척 겁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왕이 빈에서 살 때 오랑캐들이 침입해 오자 그 곳을 버리고 기산 밑에 가서 살았습니다.”<孟子 梁惠王下>
大王은 周文王의 祖父인 古公亶父를 말하며, 大는 太와 같다.
去邠은 임금이 난을 피하여 首都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하며, 周나라 太王이 오랑캐의 침입을 피하여 邠을 버리고 岐山밑으로 옮겨 간 故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 阿: 영합하다.
▶ 苟合: 형편대로 부합하다. 구차하게 부합하다.
▶ 方枘: 네모진 자루.
▶ 圜鑿: 둥근 구멍. 鑿는 구멍 ‘조’.

或曰,伊尹負鼎而勉湯以王,百里奚飯牛車下而繆公用霸,作先合,然後引之大道。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伊尹은 솥을 짊어지고 요리사가 되어 湯王을 왕노릇하도록 힘썼으며百里奚는 수레 밑에서 소를 먹이다가 繆公을 만나 패자가 되게 하였으니먼저 뜻에 영합한 후 대도로 인도한 것이라고 하였다.

騶衍其言雖不軌,儻亦有牛鼎之意乎?
추연의 말은 비록 궤도에서 벗어났으나 그 또한 소를 치던 백리해나 솥을 짊어진 이윤와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아닌가?

▶ 伊尹負鼎而勉湯以王: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이윤의 이름은 阿衡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했으나 구실이 없었다. 이에 有莘氏의 媵臣이 되어 솥과 도마를 메고 와서는 음식의 맛으로 유세하여 왕도에 이르게 하였다. <史記 卷3殷本紀>
▶ 百里奚飯牛車下而繆公用霸: [萬章問曰:
「或曰:『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五羊之皮,食牛,以要秦穆公。』信乎?」[
만장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백리해는 스스로 秦의 희생을 기르는 사람에게 다섯 마리의 羊의 가죽을 받고 자기를 팔아, 소먹이는 자가 되어 가지고, 秦穆公에게 벼슬을 구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孟子 萬章上9>
百里奚는 중국 춘추시대 秦의 재상으로, 자는 井伯이며 宛사람이다.
▶ 不軌: 궤도에서 벗어나다. 법도에서 벗어나다.
▶ 牛鼎之意: 소를 치던 백리해와 솥을 짊어진 이윤이 벼슬을 구한 것을 말한다.


6. 騶衍

 

自騶衍與齊之稷下先生,如淳于髡、慎到、環淵、接子、田駢、騶奭之徒,各著書言治亂之事,以干世主,豈可勝道哉!
추연으로부터 의 稷下先生들인 淳于髡·慎到·環淵·接子·田駢·騶奭과 같은 무리도 각각 글을 지어 혼란을 다스리는 일을 말하며 당대의 군주들에게 등용되기를 구하였으니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 稷下先生: 齊의 도성 임치성의 西門을 稷門이라 하였다. 齊를 찾아온 학사들을 서문 밖에 모여 살게 하였기 때문에 이곳의 학사들을 직하학사라 하였다. <史記, 田敬仲完世家>
▶ 世主: 당대의 군주.


7. 淳于髡

 

淳于髡,齊人也。
淳于髡은 齊 사람이다.

博聞彊記,學無所主。
널리 듣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나 위주로 하는 학문이 없었다.

其諫說,慕晏嬰之為人也,然而承意觀色為務。
그가 간언하고 설득함에晏嬰의 사람됨을 본받았으며그러므로 군주의 뜻을 받들고 얼굴색을 살피기에 힘썼다.

客有見髡於梁惠王,惠王屏左右,獨坐而再見之,終無言也。
어떤 손님이 순우곤에게 양혜왕을 알현하도록 하자양혜왕이 측근을 물리치고 홀로 앉아 두 번이나 그를 만났으나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惠王怪之,以讓客曰:
「子之稱淳于先生,管、晏不及,及見寡人,寡人未有得也。
豈寡人不足為言邪?
何故哉?」
양혜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빈객을 꾸짖었다.
그대가 순우선생은 管仲과 晏嬰도 따르지 못한다고 칭찬했는데과인을 만나고도과인은 아직 들은 것이 없소.
과인이 말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오?
무슨 까닭이오?”

客以謂髡。
손님이 순우곤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 諫說: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다.
▶ 晏嬰: ? ~기원전500년. 춘추시대 齊의 명재상이다. 자는 仲, 시호는 平. 齊의 靈公, 莊公, 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晏平仲 혹은 晏子라는 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 客有見髡: 어떤 손님이 순우곤을 소개하다. 見은 소개하다.
▶ 屏: 물리치다.
▶ 讓: 꾸짖다.

 

髡曰:
순우곤이 말하였다.
「固也。
吾前見王,王志在驅逐;
後復見王,王志在音聲:吾是以默然。」
그렇습니다.
제가 전에 왕을 뵈었을 때 왕의 뜻은 달리는 말에 있었으며,
후에 다시 왕을 뵈었을 때 왕의 뜻이 음악 소리에 있었으니제가 이 때문에 침묵하였습니다.”


客具以報王,王大駭,曰:
빈객이 이 말을 자세히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매우 놀라며 말하였다.

「嗟乎,淳于先生誠聖人也!
순우선생은 참으로 聖人이로다!

前淳于先生之來,人有獻善馬者,寡人未及視,會先生至。
전에 순우선생이 옴에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바쳤는데과인이 그 말을 보기도 전에 마침 선생께서 오셨소.

後先生之來,人有獻謳者,未及試,亦會先生來。
후에 선생이 옴에어떤 사람이 노래 잘하는 사람을 바쳤는데그를 시험해보기도 전에 역시 선생께서 오셨소.

寡人雖屏人,然私心在彼,有之。」
과인이 비록 사람들을 물리쳤으나 내 마음은 그쪽으로 쏠려 있었으니그런 일이 있었소.”

▶ 獻謳者: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바침.

 

後淳于髡見,壹語連三日三夜無倦。
그 뒤에 순우곤을 만나서 한번 대화함에 3일 밤낮을 이어갔으나 싫증내지 않았다.

惠王欲以卿相位待之,髡因謝去。
혜왕이 卿相의 지위를 주고 대우하려고 했으나순우곤은 사양하고 떠났다.

於是送以安車駕駟,束帛加璧,黃金百鎰。
이에 혜왕은 사두마차인 安車와 비단 다섯 필에 벽옥을 더하고황금 백일을 주어 전송하였다.

終身不仕。
순우곤은 평생토록 벼슬을 하지 않았다.

▶ 束帛: 고대에 비단 다섯 필을 한데 묶은 것으로 禮幣로 쓰였다.
▶ 鎰: 고대 중량의 단위로 1일은 20량 또는 24량이다.



8. 慎到·田駢·接子·環淵

 

慎到,趙人。
慎到는 趙 사람이다.

田駢、接子,齊人。
田駢과 接子는 齊 사람이다.

環淵,楚人。
環淵은 사람이다.

皆學黃老道德之術,因發明序其指意。
모두 黃老의 도덕에 관한 학술을 배워서 그 뜻을 기술하고 천명하였다.

故慎到著十二論,環淵著上下篇,而田駢、接子皆有所論焉。
그리하여 신도는 12론을 저술하였고環淵은 상하편을 저술했으며전병과 접자에게도 모두 논한 바가 있었다.

▶ 愼到: 전국시대 趙 사람. 黃老術을 배워 법치를 주장하고,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의론을 모두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함께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원전4세기 무렵 齊宣王과 涽王때 稷下의 학사가 되었는데, 鄒衍, 淳于髡, 接予, 環淵등과 함께 上大夫가 되었다. <慎子> 42편을 저술하였으나 7편만 전해진다.
▶ 田騈: 陳騈으로도 불린다. 전국시대 齊 사람으로 黃老之學을 익혔다. 齊宣王때 稷下에 와서 講學했는데, 논변이 뛰어나 ‘天口騈’으로 불렸다. 愼到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漢書·藝文志에 田子 25편이 저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 黃老道德之術: 黃老學派의 학설. 황로학파는 전국시대와 漢나라 때에 성행했던 도가 사상의 한 유파로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묵가, 명가, 법가 등의 사상을 흡수하여 淸淨無爲의 정치사상을 내세웠으며, 노자의 道개념을 발전시켜 氣一元論의 철학적 전통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황로학파의 사상은 齊의 교육기관이었던 稷下에서 학문을 강론했던 環淵·田騈·愼到·接子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 發明: 해명하여 드러냄.
▶ 序: 진술하다.


9. 騶奭외

 

騶奭者,齊諸騶子,亦頗采騶衍之術以紀文。
騶奭은 의 추자 중 한 명으로 그 역시 추연의 학술을 많이 받아들이고 저술하였다.

於是齊王嘉之,自如淳于髡以下,皆命曰列大夫,為開第康莊之衢,高門大屋,尊寵之。
이에 왕이 그들을 칭찬하며 순우곤부터 이하 모두에게 列大夫 작위를 내리고번화한 거리에 저택과 높은 문이 달린 큰 집을 마련하여 주고 존경하고 총애하였다.

覽天下諸侯賓客,言齊能致天下賢士也。
천하의 제후와 빈객에게 보이며 는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왔다고 자랑하였다.

▶ 頗: 꽤, 상당히.
▶ 紀文: 저술하다. 저작하다.
▶ 開第: 저택을 지음. 第는 大住宅.
▶ 康莊之衢: 번화한 거리. 막힘없이 통해진 거리.


11. 荀卿(荀子)

 

荀卿,趙人。
荀卿은 趙 사람이다.

年五十始來游學於齊。
나이 50이 되어서야 비로소 에 와서 학문을 유세하였다.

騶衍之術迂大而閎辯;
奭也文具難施;
淳于髡久與處,時有得善言。
騶衍의 학술은 복잡하고도 廣大한 변론이었으며,
騶奭의 학설은 글이 완벽하나 실행하기 어려웠고,
淳于髡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 때때로 유익한 말을 듣기도 했다.

故齊人頌曰:
「談天衍,雕龍奭,炙轂過髡。」
그러므로 齊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하늘을 말하는 자는 騶衍이요용을 새기는 자는 騶奭이요지혜가 끝없이 넘치는 자는 淳于髡이다.”

▶ 荀卿: 荀子. 기원전298년? ~기원전238년?. 戰國時代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학자로, 이름은 荀況이다. 前漢宣帝의 劉詢과 이름이 비슷한 것을 피하기를 위해서 孫況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荀卿 또는 孫卿子로도 불린다. 공자의 사상 중 禮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는데,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性善說에 반대하여, 악한 본성을 禮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性惡說을 주장하였다
▶ 始: 才.
▶ 閎辯: =宏辯. 대단한 변론.
▶ 談天:고상하고 오묘한 의론을 끊임없이 주고받다.
▶ 雕龍奭: 騶奭은 용을 아로새긴 듯 문장을 꾸민다.
※談天彫龍: 天象을 이야기하고 용을 조각한다는 뜻으로, 辯論이나 문장이 원대하고 高尙함을 이르는 말.
▶ 炙轂過髡: 순우곤은 지혜가 많고 議論이 끊이지 않는다.
轂은 수레 중심의 둥그런 나무. 過는 鍋와 통하여 기름통의 뜻.

田駢之屬皆已死齊襄王時,而荀卿最為老師。
田駢의 무리는 齊襄王 때 이미 모두 죽었으므로荀卿이 가장 나이 많은 스승이었다.

齊尚修列大夫之缺,而荀卿三為祭酒焉。
에서는 항상 列大夫에 결원이 생기면 채워 넣었는데순경은 세 번이나 祭酒가 되었다.

齊人或讒荀卿,荀卿乃適楚,而春申君以為蘭陵令。
齊 사람 중에 어떤 자가 순경을 참소하자 순경은 로 갔는데春申君이 蘭陵의 현령으로 삼았다.

春申君死而荀卿廢,因家蘭陵。
춘신군이 죽자 순경도 면직되었으나 계속 난릉에서 살았다.

李斯嘗為弟子,已而相秦。
李斯는 일찍이 순경의 제자였는데후에 의 재상이 되었다.

▶ 老師: 연로한 스승.
▶ 修: 보충. 정비.
▶ 祭酒: 중국 고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는 일을 담담한 연장자. 좨주로 읽는다.
▶ 春申君: 黃歇을 말한다.
▶ 蘭陵: 지금의 山東省棗荘市.
▶ 李斯: 楚의 上蔡(지금의河南省 汝南縣북쪽) 사람이다. 荀卿을 좇아 배우다가 공부를 끝마치자 서쪽으로 秦에 들어가 呂不韋의 舍人이 되었다. 훗날 秦王에게 등용되었는데, 秦 시황제가 천하를 평정한 뒤에 李斯를 丞相으로 삼으니 법령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荀卿嫉濁世之政,亡國亂君相屬,不遂大道而營於巫祝,信禨祥,鄙儒小拘,如莊周等又猾稽亂俗,於是推儒、墨、道德之行事興壞,序列著數萬言而卒。
순경은 어지러운 정치가 행해지는 것과 나라를 망치는 문란한 군주가 계속 이어지는 것과 大道를 따르지 않고 무속에 미혹되어 길흉화복의 징조를 믿는 것천박한 선비가 하찮은 일에 얽매이며莊周와 같은 무리가 교활한 말로 세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증오하였으며이에 儒家墨家道家의 행실과 흥망을 연구하고 차례대로 정리하여 수만 자의 저술을 남기고 죽었다.

因葬蘭陵。
그는 蘭陵땅에 묻혔다.

▶ 嫉: 미워하다. 증오하다.
▶ 濁世: 亂世.
▶ 屬: 계속 이어짐.
▶ 營: 熒과 통하여 迷惑되다.
▶ 巫祝: 무당.
▶ 鄙儒: 견식이 천박한 유생.
▶ 猾稽: 교활하고 말이 많음.


12. 公孫龍외

 

而趙亦有公孫龍為堅白同異之辯,劇子之言;
魏有李悝,盡地力之教;
楚有尸子、長盧;
阿之吁子焉。
에 公孫龍이 있어서 堅白同異라는 궤변을 주장하였으며또 劇子의 말이 있었고,
에서는 李悝가 있어서 땅의 힘을 다하도록 가르쳤으며,
에는 尸子와 長盧가 있었고,
에는 吁子가 있었다.

自如孟子至于吁子,世多有其書,故不論其傳云。
맹자에서 우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그들의 저술이 많기 때문에그들의 전기는 논하지 않는다.

▶ 堅白同異之辯: 堅白論과 同異論. 쓸데없이 논리나 따지고 궤변을 일삼는 이론. 堅白論은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는 公孫龍의 주장이고, 同異論은 다른 것을 같다고 하는 惠施의 주장이다.
▶ 李悝: 戰國時代 魏의 정치가로 法家의 대표적인 인물로 濃法에 정통하였으며, 개척 기술을 가르치고, 곡물을 사서 저장하여 穀價를 조절하는 平翟法을 創始하는 등 魏의 富强에 貢獻하였다.



13. 墨翟(墨子)

 

蓋墨翟,宋之大夫,善守御,為節用。
墨翟은 의 대부로 성을 지키는 기술에 능하였으며비용을 절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或曰并孔子時,或曰在其後。
어떤 이는 그를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고 말하고혹은 후대의 사람이라고도 한다.

▶ 墨翟: 墨子.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며 목수 출신으로 기계를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묵자가 공수반을 만나 楚와 宋의 가상의 전쟁을 하는데 공수반이 성을 공격하는 방법을 아홉 번이나 바꾸면서 기계로 공격하였으나 묵자가 모두 이를 막아냈다. <墨翟之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