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전국시대 말기 秦의 相國을 지냈던 范睢와 蔡澤의 合傳이다. 범수는 魏의 사람으로 魏相 魏齊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벗어나 秦으로 들어가 秦昭王에게 遠交近攻策을 유세하여 秦의 相國이 되었다.
채택은 燕 사람으로 범수가 진소왕에게 추천하여 客卿이 되었으며 범수에 이어 秦의 相國이 되었다.
1. 范睢
范睢者,魏人也,字叔。
范睢는 魏의 사람으로 자는 叔이다.
游說諸侯,欲事魏王,家貧無以自資,乃先事魏中大夫須賈。
제후에게 유세하여 魏王을 섬기려고 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경비를 마련할 수 없었으므로 우선 魏의 中大夫 須賈를 섬겼다.
須賈為魏昭王使於齊,范睢從。
수가가 魏昭王의 사자가 되어 齊에 갈 때, 범수도 따라갔다.
留數月,未得報。
몇 달을 머물렀으나 회답을 받지 못하였다.
齊襄王聞睢辯口,乃使人賜睢金十斤及牛酒,睢辭謝不敢受。
齊襄王이 범수가 말재주가 뛰어남을 알고 사람을 보내서 범수에게 금 10근과 쇠고기와 술을 하사했으나 범수는 사양하고 감히 받지 않았다.
須賈知之,大怒,以為睢持魏國陰事告齊,故得此饋,令睢受其牛酒,還其金。
수가가 이를 알고 크게 노했는데, 범수가 魏의 비밀스러운 일을 齊에 고하였기 때문에 이런 예물을 받았다고 여기고, 범수에게 그 쇠고기와 술만 받고 금은 돌려주도록 하였다.
▶ 范睢: ? ~기원전255년. 전국시대 魏의 사람으로 秦의 정치가가 되었다. 자는 叔이며 이름은 雎, 且라고도 한다. 다른 이름은 張祿이다.
▶ 須賈: 수고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魏의 中大夫. 문객 范睢를 죽이려 했으나, 범수가 秦으로 망명하여 相國이 된 뒤에 무릎으로 기어가서 용서를 빌었다.
▶ 報: 회답. 응답.
▶ 辯口: 말을 잘하는 재주.
▶ 陰事: 비밀스러운 일.
▶ 饋: 예물을 선사하다.
既歸,心怒睢,以告魏相。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범수에게 노여움을 품고 魏의 相國에게 알렸다.
魏相,魏之諸公子,曰魏齊。
魏相은 魏의 공자로 魏齊라고 하였다.
魏齊大怒,使舍人笞擊睢,折脅摺齒。
魏齊가 크게 노하여 舍人을 시켜서 범수를 매질하자 갈비뼈가 꺾이고 이빨이 부러졌다.
睢詳死,即卷以簀,置廁中。
범수가 죽은 척하자 대자리로 둘둘 말아서 측간에 버렸다.
賓客飲者醉,更溺睢,故僇辱以懲後,令無妄言者。
빈객 중 술에 취한 자는 범수에게 번갈아 오줌을 눴는데, 욕보임으로써 징계하여 후에 망언하는 자가 없도록 하였다.
睢從簀中謂守者曰:
「公能出我,我必厚謝公。」
범수가 대자리 속에서 지키는 자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나를 나가게 해주시면 내가 반드시 공에게 후하게 사례하겠소.”
守者乃請出棄簀中死人。
지키는 자가 대자리 안의 시체를 내다 버리자고 청하였다.
魏齊醉,曰:
「可矣。」
위제가 술에 취하여 말하였다.
“그렇게 해라.”
范睢得出。
범수가 탈출할 수 있었다.
後魏齊悔,復召求之。
후에 위제가 후회하면서 다시 범수를 불렀다.
魏人鄭安平聞之,乃遂操范睢亡,伏匿,更名姓曰張祿。
魏의 사람 鄭安平이 알고, 범수를 데리고 도망쳐서 숨겨주고 성명을 張祿으로 고쳤다.
▶ 魏齊: 魏齊가 魏의 丞相으로 있을 때 范睢를 심하게 매질을 가해 거의 죽게 하였다. 후에 범수는 秦으로 달아나 丞相이 되고 應侯에 봉해지자 위제에게 복수하려 하였으며, 위제는 범수의 보복을 피해 虞卿과 함께 信陵君을 찾아갔으나 신릉군이 만나주지 않자 부끄럽고 분해서 자살하였다.
▶ 笞擊: 때리다. 매질하다.
▶ 摺齒: 이를 부러뜨림.
▶ 詳: 佯과 통하여 假裝하다.
▶ 簀: 평상. 대자리.
▶ 更溺: 번갈아 오줌을 누다. 溺은 오줌‘尿’
▶ 僇(륙)辱: 모욕하다. 僇은 戮(죽일 ‘육’과 통하여 욕보이다.)
▶ 鄭安平: 범수의 친구.
▶ 操: 인솔하다.
▶ 伏匿: 엎드려 숨다. 세상을 피하다.
當此時,秦昭王使謁者王稽於魏。
당시에 秦昭王은 謁者 王稽를 魏에 사신으로 보냈다.
鄭安平詐為卒,侍王稽。
정안평은 병졸로 위장하여 왕계를 모셨다.
王稽問:
「魏有賢人可與俱西游者乎?」
왕계가 물었다.
“魏의 賢人으로 함께 서쪽으로 유세하러 갈 만한 자가 있는가?”
鄭安平曰:
「臣里中有張祿先生,欲見君,言天下事。
其人有仇,不敢晝見。」
정안평이 말하였다.
“신의 동리에 張祿先生이 있는데, 군을 뵙고 천하의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에게 원수가 있어서 감히 낮에는 뵙지 못합니다.”
王稽曰:
「夜與俱來。」
왕계가 말하였다.
“밤에 함께 오게.”
鄭安平夜與張祿見王稽。
정안평이 밤에 장록과 함께 왕계를 만났다.
語未究,王稽知范睢賢,謂曰:
「先生待我於三亭之南。」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왕계는 범수가 현명함을 알아차리고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三亭 남쪽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與私約而去。
함께 개인적으로 약속하고 떠났다.
▶ 謁者: 빈객을 주인에게 인도하는 사람.
▶ 王稽: 秦의 신하로 당시 魏에 사신으로 와 있다가 范雎를 만나 昭王에게 추천하였다.
▶ 詐: 가장하다. 위장하다.
▶ 語未究: 말이 끝나기 전에. 究는 끝.
▶ 三亭南: 三亭岡의 남쪽. 魏의 변경.
王稽辭魏去,過載范睢入秦。
왕계가 魏에 작별하고 떠남에, 지나가다 범수를 태우고 秦으로 들어갔다.
至湖,望見車騎從西來。
湖에 이르러 멀리서 보니 車騎가 서쪽에서 오고 있었다.
范睢曰:
「彼來者為誰?」
범수가 말하였다.
“저기 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王稽曰:
「秦相穰侯東行縣邑。」
왕계가 말하였다.
“秦相 穰侯가 동으로 縣邑을 巡行합니다.”
范睢曰:
「吾聞穰侯專秦權,惡內諸侯客,此恐辱我,我寧且匿車中。」
범수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양후는 秦의 권력을 專斷하며 제후의 유세객을 들이기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저를 욕보일까 두려우니 저는 차라리 수레 안에 숨어있겠습니다.”
▶ 湖: 函谷關 서쪽의 성읍 이름.
▶ 穰侯: 穰侯는 魏冉으로, 전국시대 秦의 大臣이며 秦昭王의 외숙이다. 惠王 때 관직을 맡아 집정하였다. 昭王이 즉위하자 장군이 되었으며, 食邑을 穰에 두었기 때문에 ‘穰侯’라 불렸다
有頃,穰侯果至,勞王稽,因立車而語曰:
「關東有何變?」
이윽고 양후가 과연 다가와서 왕계의 위로하며 수레를 멈추게 하고 말하였다.
“관동에 무슨 변화가 있소?”
曰:
「無有。」
왕계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又謂王稽曰:
「謁君得無與諸侯客子俱來乎?
無益,徒亂人國耳。」
또 왕계에게 말하였다.
“謁君은 제후의 유세객과 함께 오지는 않겠지요?
도움이 안 되고 백성과 나라를 어지럽힐 뿐입니다.”
王稽曰:
「不敢。」
왕계가 말하였다.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即別去。
곧 작별하고 떠났다.
范睢曰:
「吾聞穰侯智士也,其見事遲,鄉者疑車中有人,忘索之。」
범수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양후는 현명한 선비라고 하였는데, 그가 일함에 躊躇하므로 방금 수레 안에 사람이 있다고 의심하면서도 수색함을 잊었습니다.”
於是范睢下車走,曰:
「此必悔之。」
이에 범수가 수레에서 내려 달아나면서 말하였다.
“그는 틀림없이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行十餘里,果使騎還索車中,無客,乃已。
10여 리쯤 갔을 때, 과연 기마를 돌려보내서 수레 안을 수색하였으나 나그네가 없자 그만두었다.
王稽遂與范睢入咸陽。
왕계는 마침내 범수와 함께 咸陽에 들어갔다.
▶ 有頃: 잠시. 이윽고.
▶ 得無: 得은 부정을 표시하는 微, 毋, 無, 非 등과 결합하여, 추측이나 의문 또는 반문을 표시한다. “…이 아닌가” 허사 得 참조
▶ 關東: 함곡관의 동쪽.
▶ 勞: 위로하다. 치사하다.
▶ 立車: 수레를 멈추다.
▶ 見事遲: 일을 함에 주저한다. 遲는 머뭇거리다. 주저하다.
▶ 鄉者: 지금 막. 방금. 鄉은 向과 같다.
已報使,因言曰:
「魏有張祿先生,天下辯士也。
曰『秦王之國危於累卵,得臣則安。
然不可以書傳也』。
臣故載來。」
왕계가 사신의 일을 보고하며 말하였다.
“魏에 장록 선생이 있었는데 천하의 변사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진왕의 나라는 累卵보다 위태로우나 신을 얻으면 안정될 터입니다.
그러나 글로 전함은 불가능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수레에 태워 데려왔습니다.”
秦王弗信,使舍食草具。
秦昭王은 믿지 않고 객사로 보내 거친 음식을 먹게 하였다.
待命歲餘。
명령을 기다리다가 1년이 지났다.
▶ 危於累卵: 累卵之危. 여러 개의 알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 위태위태한 형편이라는 뜻.
▶ 食草具: 하찮은 음식. 草具는 험한 음식물. 具는 음식.
當是時,昭王已立三十六年。
당시 秦昭王 즉위 36년(기원전271년)이었다.
南拔楚之鄢郢,楚懷王幽死於秦。
秦은 남쪽으로 楚의 鄢과 郢을 점령하고, 楚懷王을 秦의 유폐하여 죽였다.
秦東破齊。
秦은 동쪽으로 齊를 격파하였다.
湣王嘗稱帝,後去之。
齊湣王은 稱帝한 적이 있으나, 후에 버렸다.
數困三晉。
秦은 三晉에게 여러 번 곤경에 빠졌었다.
厭天下辯士,無所信。
천하의 변사를 싫어하여 믿지 않았다.
▶ 幽: 감옥에 가두다.
▶ 三晉: :韓, 趙, 魏 세 나라를 말한다.
穰侯,華陽君,昭王母宣太后之弟也;
而涇陽君、高陵君皆昭王同母弟也。
穰侯와 華陽君은 秦昭王의 어머니인 선태후의 동생이었으며,
涇陽君과 高陵君은 모두 소왕의 同母弟이었다.
穰侯相,三人者更將,有封邑,以太后故,私家富重於王室。
양후는 상국이 되고 세 사람은 번갈아 장수가 되어 봉읍을 갖고, 태후 덕분에 개인 재산이 왕실보다도 부유하였다.
及穰侯為秦將,且欲越韓、魏而伐齊綱壽,欲以廣其陶封。
양후가 秦의 장군이 됨에, 장차 韓·魏를 넘어 齊의 剛과 壽를 정벌하여 陶의 봉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范睢乃上書曰:
범수가 이에 글을 올렸다.
▶ 華陽君: 羋戎. 宣太后의 남동생이다.
▶ 涇陽君: 宣太后의 아들이며 昭王의 아우.
▶ 宣太后: 秦惠王의 후비이며, 昭王의 어머니. 楚출신이며, 羋八子라 불리었다. 어린 昭王이 즉위하자 섭정하였다.
▶ 陶: 魏冉이 穰에 봉해진 후, 다시 陶에 봉해졌다.
臣聞明主立政,有功者不得不賞,有能者不得不官,勞大者其祿厚,功多者其爵尊,能治衆者其官大。
“신이 듣기로, 현명한 군주가 다스리면, 유공자가 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고, 유능자가 관직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노고가 큰 자는 봉록도 후하고, 공적이 많을수록 작위도 높으며, 백성을 잘 다스리는 자는 관직도 높다고 합니다.
故無能者不敢當職焉,有能者亦不得蔽隱。
그래서 무능자가 감히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능자도 은폐될 수 없습니다.
使以臣之言為可,願行而益利其道;
以臣之言為不可,久留臣無為也。
신의 말이 옳다고 여기시면, 부디 행하시어 더욱 그 도리를 이롭게 하시고
신의 말이 옳지 않다고 여기시면, 신을 하는 일 없이 오래 머물게 하십시오.
語曰:
「庸主賞所愛而罰所惡;明主則不然,賞必加於有功,而刑必斷於有罪。」
今臣之胸不足以當椹質,而要不足以待斧鉞,豈敢以疑事嘗試於王哉!
雖以臣為賤人而輕辱,獨不重任臣者之無反復於王邪?
옛말에 일렀습니다.
‘용렬한 군주는 좋아하면 상을 주고 미워하면 벌을 주나,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서 상을 반드시 유공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유죄자에게 내린다.’
지금 저의 가슴은 椹質의 刑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고, 허리는 斧鉞의 刑을 감당하기에 부족한데, 어찌 의심되는 일을 왕께 시험 삼아 말씀드리겠습니까!
비록 신을 천하게 여겨 경멸하시더라도, 어찌 저를 추천한 자가 왕에게 이랬다저랬다 함이 없음을 중시하지 않으십니까?
且臣聞周有砥砨,宋有結綠,梁有縣藜,楚有和樸,此四寶者,土之所生,良工之所失也,而為天下名器。
또, 신이 듣기에, 주나라에는 砥砨, 宋에는 結綠, 魏에는 縣藜, 楚에는 和樸이 있어, 이 네 보물은 흙에서 난 것으로 뛰어난 옥공도 놓쳤다가 천하의 이름난 보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然則聖王之所棄者,獨不足以厚國家乎?
그렇다면 성왕께서 버린 자라고 어찌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에 부족하다고 하겠습니까?
臣聞善厚家者取之於國,善厚國者取之於諸侯。
신이 듣기에, 집안을 부유하게 잘하는 자는 나라에서 방법을 찾고, 나라를 부유하게 잘하는 자는 제후에서 방법을 찾는다고 합니다.
天下有明主則諸侯不得擅厚者,何也?
천하에 현명한 군주가 있으면 제후가 이익을 독점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為其割榮也。
그 영화를 분할하여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良醫知病人之死生,而聖主明於成敗之事,利則行之,害則捨之,疑則少嘗之,雖舜禹復生,弗能改已。
良醫는 환자의 생사를 알고, 聖君은 일의 성패에 밝으므로, 이로우면 실행하고 해로우면 버려두며, 의심스러우면 조금 시험하니, 비록 순임금이나 우임금이 다시 살아나도 바꾸지 못합니다.
▶ 椹質: 고대에 참수하는 刑具의 일종.
▶ 要: 腰와 같다. 허리.
▶ 斧鉞: 작은 도끼와 큰 도끼인데, 古代의 목을 베는 도구이다. 刑罰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疑事: 의심스러운 일.
▶ 獨: 어찌.
▶ 任臣者: 나를 추천한 자. 王稽를 말한다.
▶ 無反復: =無反覆. 줏대가 없이 언행을 이랬다저랬다 하며 자꾸 고침.
▶ 砥砨, 結綠, 縣藜:모두 아름다운 玉의 이름이다.
▶ 和樸: 和氏之璧. 화씨의 구슬이라는 뜻으로, 천하의 名玉을 이르는 말. 楚 화씨가 옥돌 원석을 厲王에게 바쳤으나 돌로 판정되어 왼쪽 다리와 오른발을 잘려 사흘 밤낮을 운다는 소문을 문왕이 듣고 그 원석을 다듬게 하여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 된 데서 유래한다. <韓非子 和氏篇>
▶ 擅厚: 홀로 부유하고 권세가 있음. 이익을 독점함.
▶ 割榮: 영화와 권위를 분할하다.
語之至者,臣不敢載之於書,其淺者又不足聽也。
말 중에 지극한 것은 신이 감히 글로 적을 수가 없고, 천박한 말은 들으실 가치가 없습니다.
意者臣愚而不概於王心邪?
혹시 신이 어리석어 왕의 마음에 관심을 끌지 못합니까?
亡其言臣者賤而不可用乎?
아니면 신을 추천한 자가 미천하여 쓸 만하지 않습니까?
自非然者,臣願得少賜游觀之閒,望見顏色。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부디 유람하는 한가한 틈을 조금만 내리셔서 멀리서 안색을 뵙게 해주십시오.
一語無效,請伏斧質。
한마디 말이라도 효험이 없으면 斧質의 아래에 엎드리겠습니다.”
▶ 概: 【集解】 서광이 말하기를 “한편 ‘漑’라고도 쓰는데 음은 같다.” 했다. 【索隱】 살펴보니 『戰國策』에 ‘慨’는 ‘關’이라 썼는데 ‘關涉於於王心也 왕의 마음에 참경하고 간섭한다.’는 말이다.
▶ 亡: 不然(그렇지 않다면) 《庄子‧大宗师》:“子祀曰:‘女恶之乎?’曰:‘亡,予何恶!’”
▶ 自: 진실로(眞實-)
▶ 望見顏色: 정면으로 알현하다.
▶ 斧質: 刑具. 斧鉞의 형과 椹質의 형을 말한다.
於是秦昭王大說,乃謝王稽,使以傳車召范睢。
秦昭王이 크게 기뻐하며 왕계에게 사과하고 수레를 보내 범수를 불렀다.
於是范睢乃得見於離宮,詳為不知永巷而入其中。
이에 범수는 離宮에서 왕을 뵙게 되었는데, 모르는 척하고 永巷에 들어갔다.
王來而宦者怒,逐之,曰:
「王至!」
왕이 오자 환관이 화를 내고 내쫓으며 말하였다.
“왕께서 납시오!”
范睢繆為曰:
「秦安得王?
秦獨有太后、穰侯耳。」
범수가 함부로 말하였다.
“秦에 무슨 왕이 있는가?
秦에는 단지 태후와 양후가 있을 뿐이다.”
欲以感怒昭王。
이로써 秦昭王을 노하게 하고자 하였다.
▶ 說: 기뻐하다. 悅과 같다.
▶ 謝: 사과하다.
▶ 離宮: 別宮.
▶ 永巷: 궁중의 긴 복도. 죄 있는 궁녀를 가둔 곳.
▶ 繆為: 함부로 지껄이다. 繆는 謬와 통하여 사리에 맞지 않다는 뜻. 為는 謂와 통한다.
昭王至,聞其與宦者爭言,遂延迎,謝曰:
「寡人宜以身受命久矣,會義渠之事急,寡人旦暮自請太后;
今義渠之事已,寡人乃得受命。
竊閔然不敏,敬執賓主之禮。」
秦昭王이 도착하여 그가 환관과 다툼을 듣고 영접하며 사과하였다.
“과인이 몸을 뽑아 가르침을 받아야 함이 오래되었으나, 마침 義渠의 일이 다급하여 과인은 밤낮으로 태후에게 의논을 드려야 하였소.
이제 의거의 일이 끝났으니 과인은 비로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소.
사리에 어둡고 총명하지 못하니 빈객의 예로 가르침을 받겠소.”
范睢辭讓。
범수가 사양하였다.
是日觀范睢之見者,群臣莫不灑然變色易容者。
이날 범수가 왕을 알현함을 봄에, 신하 중에 엄숙히 안색을 바꾸지 않는 자가 없었다.
▶ 延迎: 불러들이다. 영접하다. 延은 끌어들임.
▶ 受命: 가르침을 받다.
▶ 義渠之事: 義渠는 고대 西戎國의 이름. 당시 宣太后가 義渠戎王과 사통하여 두 아들까지 낳았다. 선태후가 秦昭王을 살해하려 하였기 때문에 昭王이軍을 일으켜 義渠를 쳐 멸망시켜 縣을 설치하였다.
▶ 閔然: 어리석고 사리에 어둡다.
▶ 賓主之禮: 손님과 주인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
▶ 見: 謁見.
▶ 灑然: 깜짝 놀라는 모양.
▶ 易容: 외모를 바꾸다.
秦王屏左右,宮中虛無人。
秦昭王이 주위를 물리치니 궁중이 텅 비고 아무도 없었다.
秦王跽而請曰:
「先生何以幸教寡人?」
秦昭王이 무릎을 꿇고 청하였다.
“선생께서는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소?”
范睢曰:
「唯唯。」
범수가 말하였다.
“네, 네.”
有閒,秦王復跽而請曰:
「先生何以幸教寡人?」
잠시 후 秦昭王이 다시 무릎을 꿇고 청하였다.
“선생께서는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소?”
范睢曰:
「唯唯。」
범수가 말하였다.
「네, 네.」
若是者三。
이렇게 함이 세 번이었다.
秦王跽曰:
「先生卒不幸教寡人邪?」
秦昭王이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께서 끝내 과인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터입니까?”
范睢曰:
범수가 말하였다.
「非敢然也。
“감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臣聞昔者呂尚之遇文王也,身為漁父而釣於渭濱耳。
신이 듣기에, 옛날 呂尚이 周文王을 만남에, 자신은 어부가 되어 渭水 가에서 낚시하였을 뿐입니다.
若是者,交疏也。
이와 같을 때 사귐은 소원했습니다.
已說而立為太師,載與俱歸者,其言深也。
대화하고 나서 등용하여 太師로 삼고, 수레를 함께 타고 돌아옴은, 그의 말이 深遠하였기 때문입니다.
故文王遂收功於呂尚而卒王天下。
그래서 문왕은 마침내 여상에 의지하여 공을 거두고 마침내 천하의 왕이 되었습니다.
鄉使文王疏呂尚而不與深言,是周無天子之德,而文武無與成其王業也。
그때 만약 문왕이 여상을 멀리하여 여상이 깊은 말을 주지 않았으면, 주나라에 천자의 덕이 없어서 문왕과 武王이 여상과 더불어 그 왕업을 이룰 수 없었을 터입니다.
▶ 屏: 물리치다.
▶ 跽: 윗몸을 꼿꼿이 세우고 무릎을 꿇다.
▶ 唯唯: 네, 네 하고 공손히 대답하는 소리.
▶ 呂尙之遇文王: 呂尙은 周나라 때 東海人. 본성은 姜. 그 선조가 呂에 봉해졌기 때문에 呂尙이라 한다. 늙도록 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文王이 사냥을 나가서 만나 말을 해보고“우리 할아버지 太公께서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다. [吾太公望子久矣]”라 하고는 太公望이라 이름 짓고 함께 돌아와 師를 삼았다. 그 후 武王때 폭군 紂를 멸하고 천하를 장악하여 武王이 師尙父로 삼았으며, 齊에 봉해져 齊의 시조가 되었다. <史記 齊太公世家‧周本紀˃
▶ 渭陽: 渭水의 북쪽.
“강의 북쪽, 산의 남쪽을 陽이라 한다. [江北山南曰陽]” 지금의 陝西省岐山縣城南河.
▶ 鄉使: 만약 이전에~하게 하다. 鄉은 向과 통하여 지난 번. 이전.
今臣羈旅之臣也,交疏於王,而所願陳者皆匡君之事,處人骨肉之閒,願效愚忠而未知王之心也。
지금 신은 羈旅之臣으로 왕에게 교류가 소원한데, 말하려는 바는 모두 왕의 정사를 바로잡는 것이며, 남의 골육 간에 처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충성을 바치려 하나 왕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此所以王三問而不敢對者也。
이것이 왕께서 세 번이나 물었음에도 감히 대답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臣非有畏而不敢言也。
신이 두려움을 가지고 감히 말씀드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臣知今日言之於前而明日伏誅於後,然臣不敢避也。
신은 오늘 앞에서 말씀드리고 내일 뒤에서 죽임을 당할 줄 알고 있으나, 신은 감히 피하지 않겠습니다.
大王信行臣之言,死不足以為臣患,亡不足以為臣憂,漆身為厲被髪為狂不足以為臣恥。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행하신다면 죽음도 신의 걱정거리가 되기에 부족하고, 도망함도 신의 근심거리가 되기에 부족하고, 몸에 옻칠하여 문둥병 환자처럼 되고 머리를 풀어헤쳐 미치광이가 되어도 신의 치욕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且以五帝之聖焉而死,三王之仁焉而死,五伯之賢焉而死,烏獲、任鄙之力焉而死,成荊、孟賁、王慶忌、夏育之勇焉而死。
대저 五帝와 같은 성인도 죽었고, 三王과 같은 仁者도 죽었으며, 五覇과 같은 현군도 죽었고, 烏獲과 任鄙와 같은 力士도 죽었으며, 成荊, 孟賁, 王慶忌, 夏育과 같은 勇士도 죽었습니다.
死者,人之所必不免也。
죽음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處必然之勢,可以少有補於秦,此臣之所大願也,臣又何患哉!
필연의 형세에 살면서 秦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것은 신의 큰 소원이니, 신이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伍子胥橐載而出昭關,夜行晝伏,至於陵水,無以糊其口,厀行蒲伏,稽首肉袒,鼓腹吹篪,乞食於吳市,卒興吳國,闔閭為伯。
伍子胥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昭關을 탈출하여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숨어가며 陵水에 이르렀으나, 먹을 것이 없어 무릎으로 다니고 엎드려 기며 머리를 조아리고 웃통을 벗은 채로 배를 두드리고 피리를 불며 吳의 시장에서 乞食하다가, 마침내 吳를 일으켜서 闔閭를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使臣得盡謀如伍子胥,加之以幽囚,終身不復見,是臣之說行也,臣又何憂?
신이 오자서처럼 계책을 다하게 해주시면, 옥에 가두어 종신토록 다시는 왕을 뵙지 못할지라도 신은 즐거이 행할 터이니, 신이 또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 羈旅: 오랫동안 타향에서 머물다. 객지생활을 하다.
▶ 匡君之事: 왕의 정사를 바로잡다. 匡은 바로잡다.
▶ 骨肉之間: 宣太后와 穰侯가 모두 昭王의 골육관계이다.
▶ 亡: 유랑하다.
▶ 漆身為厲: 몸에 옻칠하여 癩患者처럼 가장한다는 뜻, 厲는 癩(나환자‘라’)와 같다.
▶ 被發為狂: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치광이가 되다. 일부러 미친 척하다. 被는 披(헤칠 ‘피’)와 같다.
▶ 五帝: 史記>의 五帝本記에서는 黃帝, 顓頊, 帝嚳, 堯, 舜을 들고, 帝王世記에서는 少昊, 顓頊, 帝嚳, 堯, 舜을 들고, 周易에서는 伏羲, 神農, 黃帝, 堯, 舜을 가리킨다.
▶ 三王: 중국 古代의 세 임금. 곧 夏의 禹王과 殷의 湯王과 周의 文王<또는 武王>을 일컫는 말
▶ 五伯: 春秋五覇를 말하며, 齊桓公, 晉文公, 宋襄公, 楚莊王, 秦穆公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烏獲: 전국시대 때의 秦의 力士. 武王과 洛陽에 가서 鼎을 들었던 인물이다.
▶ 孟賁: 力士. 일명 孟說. 맨손으로 산 소의 뿔을 뽑았다고 하는데 烏獲과 함께 武王을 따라 洛陽에 갔다.
▶ 夏育: 衛 사람으로 1천 鈞을 들 수 있고 소꼬리를 뽑을 수 있었다고 함.
▶ 橐: 주머니의 일종.
▶ 厀行蒲伏: 무릎으로 다니고 엎드려 기다. 蒲伏은匍匐과 같으며 기다.
▶ 稽首: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림.
▶ 肉袒: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냄
▶ 吹篪: 피리를 불다. 篪는 피리.
▶ 伯: 諸侯盟主.
箕子、接輿漆身為厲,被髪為狂,無益於主。
箕子와 接輿는 몸에 옻칠해서 문둥병자가 되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미치광이가 되었으나, 군주에게 이익은 없었습니다.
假使臣得同行於箕子,可以有補於所賢之主,是臣之大榮也,臣有何恥?
만약 신이 箕子처럼 행동해서 현명한 군주를 도울 수 있다면, 신의 큰 영예인데 신에게 무슨 치욕이 있겠습니까?
臣之所恐者,獨恐臣死之後,天下見臣之盡忠而身死,因以是杜口裹足,莫肯鄉秦耳。
신이 근심하는 것은, 단지 신이 죽은 후에 천하 사람들은 신이 충성을 다하고도 죽음을 보고 이 때문에 입을 다물고 발을 싸매어 秦으로 향하려는 자가 없을까 근심할 뿐입니다.
▶ 箕子: 商나라 말의 폭군 紂의 숙부. 이름은 胥餘. 太師였으며 子爵, 箕땅에 봉해져 기자라 하였다. 紂가 무도하여 충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숨었다.
▶ 接輿: 춘추시대 때 孔子와 같은 시기 楚사람. 이름은 陸通. 楚昭王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면서 벼슬하지 않았다. 昭王이 雙駟와 百金으로 초빙하였으나 거절하고 부부가 성명을 바꾸고 蜀의 峨嵋山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 杜口裹足: 담이 작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 杜는 ‘막을 두’
▶ 鄉: 向과 같으며 향하다.
足下上畏太后之嚴,下惑於姦臣之態,居深宮之中,不離阿保之手,終身迷惑,無與昭姦。
왕께서 위로 태후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 간신의 作態에 미혹되고, 궁궐의 깊은 곳에 살면서 가까운 신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신토록 미혹되어 간사한 자를 분별하지 못할 터입니다.
大者宗廟滅覆,小者身以孤危,此臣之所恐耳。
크게는 종묘가 뒤집혀 멸망하고 작게는 몸이 고립되어 위태로워지니,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바일 뿐입니다.
若夫窮辱之事,死亡之患,臣不敢畏也。
곤궁하거나 욕을 보는 일, 죽거나 도망칠 근심을 신은 감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臣死而秦治,是臣死賢於生。」
신이 죽되 秦이 잘 다스려지면, 신의 삶보다는 죽음이 낫습니다.”
▶ 足下: 귀하.
▶ 阿保: 1.保护养育。 2.古代教育抚养贵族子女的妇女。 3.指一般的保姆。 4.指左右近幸之臣。
▶ 昭奸: 간사한 자를 분별하다. 昭는 명백하다.
▶ 死賢於生: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賢은 ~보다 낫다.
秦王跽曰:
秦昭王이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先生是何言也!
夫秦國辟遠,寡人愚不肖,先生乃幸辱至於此,是天以寡人慁先生而存先王之宗廟也。
“선생께서 이 무슨 말씀이오!
무릇 秦은 궁벽하여 멀리 떨어졌으며, 과인은 어리석고 불초한데도, 다행히 선생께서 여기에 왕림하시니, 하늘이 과인을 시켜 선생을 수고롭게 함으로써 先王의 종묘를 보존하는 것이오.
寡人得受命於先生,是天所以幸先王,而不棄其孤也。
과인이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음은, 하늘이 선왕을 사랑하여 그 아들을 버리지 않은 것이오.
先生柰何而言若是!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그 같은 말씀을 하시오!
事無小大,上及太后,下至大臣,願先生悉以教寡人,無疑寡人也。」
일에 크고 작고 없이, 위로 태후에 미치고 아래로 대신에 이르도록, 부디 선생께서 과인에게 모두 가르치시되, 과인을 의심하지 마시오.”
范睢拜,秦王亦拜。
범수가 절하자 秦昭王도 역시 절하였다.
▶ 辟: 멀리 떨어져 있다.
▶ 不肖: 현명하지 않다. 못나다.
▶ 辱: [문어,겸칭·겸손어] 욕되게 하다. [받은 호의를 욕되게 한다는 뜻으로, 너무나 분에 넘치는 일이라 겸사하여 이르는 말]
▶ 慁: 수고를 끼치다.
范睢曰:
범수가 말하였다.
「大王之國,四塞以為固,北有甘泉、谷口,南帶涇、渭,右隴、蜀,左關、阪,奮擊百萬,戰車千乘,利則出攻,不利則入守,此王者之地也。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요새로 견고하고, 북으로 甘泉山과 谷口가 있고, 남쪽으로는 涇水와 渭水를 띠처럼 두르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隴과 蜀, 왼쪽으로는 函谷關, 商阪이 있으며, 용맹한 軍士가 100만이고 전차가 천 승으로, 이로우면 나가서 공격하고 불리하면 들어와서 지키니 이것이 王者의 땅입니다.
民怯於私鬬而勇於公戰,此王者之民也。
백성은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이 많으나, 공공의 싸움에는 용감하니 이것이 王者의 백성입니다.
王并此二者而有之。
왕께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계십니다.
▶ 甘泉: 산 이름. 지금의 陝西省淳化縣.
▶ 谷口: 지금의 陝西省涇陽縣古寒門.
▶ 涇‧渭: 황하의 상류. 甘肅省에서 陝西省을 거쳐 흐르는 황하의 지류인 涇水와 渭水. 涇水는 흐리고 渭水는 맑음.
▶ 隴‧蜀: 隴은 隴坡라고도 하며 甘肅省 동남부. 蜀은 四川省 북부 劍閣 일대.
▶ 關‧阪: 關은 函谷關, 阪은 지금의 섬서성 商縣 동쪽의 商山.
▶ 奮擊: 힘내어 싸우다. 용맹한 軍을 말한다.
▶ 二者: 지리적인 여건과 인적인 여건을 말한다.
夫以秦卒之勇,車騎之衆,以治諸侯,譬若施韓盧而搏蹇兔也,霸王之業可致也,而群臣莫當其位。
무릇 秦軍의 용맹함과 거기의 많음으로 제후를 다스릴 수 있으니, 비유하자면 名犬 韓盧를 풀어 절름발이 토끼를 잡음과 같아서, 패왕의 업을 이룰 수 있으나, 신하들에 그 지위를 감당할 자가 없습니다.
至今閉關十五年,不敢窺兵於山東者,是穰侯為秦謀不忠,而大王之計有所失也。」
지금까지 관문을 닫고 15년, 감히 산동에 출병하여 엿보지 못함은, 양후의 秦을 위한 계책이 충실하지 못하고, 대왕의 계책에도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秦王跽曰:
「寡人願聞失計。」
秦昭王이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과인의 잘못된 계책을 듣고 싶소.”
▶ 譬若: 비유하건대.
▶ 韓盧: 韓에서 생산되는 좋은 사냥개. 韓獹라고도 쓴다. 韓盧逐兔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억누름을 이르는 말이다.
▶ 蹇兔: 절름발이 토끼.
然左右多竊聽者,范睢恐,未敢言內,先言外事,以觀秦王之俯仰。
그러나 주변에 엿듣는 자가 많아서 범수가 두려웠으므로, 감히 나라 안의 문제를 말하지 않고 먼저 나라 밖의 일을 말하여 秦王의 擧止를 살피기로 하였다.
因進曰:
범수가 進言하였다.
「夫穰侯越韓、魏而攻齊綱壽,非計也。
“무릇 양후가 韓·魏를 넘어서 齊의 綱壽를 공격함은 좋은 계략이 아닙니다.
少出師則不足以傷齊,多出師則害於秦。
병사를 적게 보내면 齊를 상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병사를 많이 보내면 秦에 해롭습니다.
臣意王之計,欲少出師而悉韓、魏之兵也,則不義矣。
신이 왕의 계획을 헤아려 보니, 병사를 적게 보내되 韓·魏의 병사로 補充하려 하는데 옳지 못한 일입니다.
▶ 未敢言內: 궁궐 내부에서 태후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름을 감히 말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先言外事: 양후가 대외적으로 용병하는 계책을 먼저 말한다는 말이다.
▶ 俯仰 : 아래를 굽어봄과 위를 쳐다봄. 행동거지.
今見與國之不親也,越人之國而攻,可乎?
지금 보면 동맹국과 친하지 않으면서 멀리 떨어진 나라를 공격함이니 가능하겠습니까?
其於計疏矣。
그것은 계책으로는 소홀합니다.
且昔齊湣王南攻楚,破軍殺將,再辟地千里,而齊尺寸之地無得焉者,豈不欲得地哉,形勢不能有也。
옛날 齊湣王은 남으로 楚를 공격하여 軍隊를 격파하고 장수를 죽여 다시 강토를 일천 리나 넓혔지만, 齊는 거기에서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齊가 땅을 얻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형세상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諸侯見齊之罷獘,君臣之不和也,興兵而伐齊,大破之。
제후는 齊가 피로하여 지치고 군신 화목하지 못함을 보자, 군사를 일으켜 齊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습니다.
士辱兵頓,皆咎其王,曰:
『誰為此計者乎?』
병사는 치욕을 당하고 軍隊는 꺾이니, 모두 왕에게 책임을 물었다.
‘누가 이런 계책을 세웠습니까?’
王曰:
『文子為之。』
왕이 말하였습니다.
‘맹상군이요.’
▶ 與國: 동맹국.
▶ 疏: 소홀.
▶ 辟: 개척하다. 확대하다.
▶ 罷獘: 피로하고 지치다. 罷는 疲와 통하여 고달프다.
▶ 士辱兵頓: 燕昭王 28년에 燕 장수 樂毅가 秦, 楚, 韓, 魏, 趙와 연합하여 齊의 70여 성을 빼앗고 齊湣王을 莒로 도망쳐 죽게 한 일을 말한다.
▶ 文子: 孟嘗君 田文.
大臣作亂,文子出走。
대신들이 난을 일으키자 田文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攻齊所以大破者,以其伐楚而肥韓、魏也。
齊를 공격하여 크게 무찌른 이유는 그가 楚를 정벌하여 韓·魏를 살찌웠기 때문입니다.
此所謂借賊兵而齎盜糧者也。
이것이 소위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강도에게 식량을 준다.’입니다.
王不如遠交而近攻,得寸則王之寸也,得尺亦王之尺也。
왕께서 遠交近攻함이 좋으니,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한 치이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역시 왕의 한 척이기 때문입니다.
今釋此而遠攻,不亦繆乎!
지금 이것을 버리고 遠攻함은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且昔者中山之國地方五百里,趙獨吞之,功成名立而利附焉,天下莫之能害也。
또 지난번에 중산국은 땅이 사방 5백 리였는데 趙 혼자서 삼켜 공을 이루고 이름을 떨치며 이익을 얻었으나, 천하의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 借賊兵而齎盜糧: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강도에게 식량을 주다. 齎는 주다.
▶ 中山: 지금의 하북성 定縣과 唐縣 일대에 있던 나라.
▶ 趙獨吞之: 趙武靈王때 趙가 독자적으로 中山國을 멸망시킨 일을 말한다.
今夫韓、魏,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王其欲霸,必親中國以為天下樞,以威楚、趙。
지금 韓·魏는 중원에 자리 잡아 천하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데, 왕께서 패자가 되려 하시면 반드시 중원과 가깝고 천하의 중추가 되어서 楚、趙를 위협해야 합니다.
楚彊則附趙,趙彊則附楚,楚、趙皆附,齊必懼矣。
楚가 강성하면 趙가 秦을 따르고, 趙가 강성하면 楚가 秦을 따르며, 楚、趙가 모두 秦을 따르게 되면 齊는 틀림없이 두려워할 터입니다.
齊懼,必卑辭重幣以事秦。
齊가 두려워하면 반드시 겸손한 말과 중한 예물로 秦을 섬길 터입니다.
齊附而韓、魏因可虜也。」
齊가 따르게 되면 韓、魏는 빼앗을 수 있습니다.”
▶ 中國: 中原을 말한다.
▶ 樞: 가장 중요한 부분.
▶ 楚強則附趙: 楚가 강대하면 趙가 따른다. 附는 친하여 가까워짐. 따르다.
▶ 虜: 搶奪、掠取。
《史記·卷一○八·韓長孺傳》:「匈奴虜略千餘人及畜產而去。」
晉·張載〈七哀詩〉二首之一:「珠柙離玉體,珍寶見剽虜。」
昭王曰:
「吾欲親魏久矣,而魏多變之國也,寡人不能親。
請問親魏柰何?」
秦昭王이 말하였다.
“내가 魏와 가깝게 지내려고 한 지 오래였으나, 魏는 매우 변덕스러운 나라여서 과인은 가까이할 수 없었소.
魏와 가깝게 지내려면 어찌해야 하오?”
對曰:
「王卑詞重幣以事之;
不可,則割地而賂之;
不可,因舉兵而伐之。」
범수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겸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 그들을 섬기시고,
안 된다면 땅을 나누어 뇌물로 주시고,
그래도 안 된다면 擧兵하여 魏를 정벌하십시오.”
王曰:
「寡人敬聞命矣。」
秦昭王이 말하였다.
“과인이 삼가 가르침을 듣겠소.”
乃拜范睢為客卿,謀兵事。
이에 범수를 客卿으로 삼고 兵事을 모의하였다.
卒聽范睢謀,使五大夫綰伐魏,拔懷。
드디어 범수의 계략을 듣고 五大夫 綰으로 하여금 魏를 공격케하여 懷를 점령하였다.
後二歲,拔邢丘。
2년 후에는 邢丘를 점령하였다.
▶ 客卿: 타국 출신으로 그 나라에서 卿相의 자리에 오른 사람.
▶ 邢丘: 처음에는 魏의 땅이었으나 후에 秦이 빼앗았다. 지금의 河南省溫縣.
客卿范睢復說昭王曰:
客卿 범수가 다시 昭王에게 유세하였다.
「秦韓之地形,相錯如繡。
“秦과 韓의 지형은 수놓은 듯이 서로 얽혀있습니다.
秦之有韓也,譬如木之有蠹也,人之有心腹之病也。
秦에 있어 韓이 있음은 비유하자면 나무에 좀이 있음이고, 사람의 심장과 배에 병이 있음과 같습니다.
天下無變則已,天下有變,其為秦患者孰大於韓乎?
천하에 변고가 없으면 그만이나,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秦의 걱정거리로 韓보다 큰 것이 있겠습니까?
王不如收韓。」
왕께서 韓을 거둠이 낫습니다.”
▶ 蠹: 좀.
▶ 心腹: 속내. 속마음.
昭王曰:
「吾固欲收韓,韓不聽,為之柰何?」
昭王이 말하였다.
“나는 본래 韓을 거두고자 했으나 韓이 듣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對曰:
「韓安得無聽乎?
王下兵而攻滎陽,則鞏、成皋之道不通;
北斷太行之道,則上黨之師不下。
王一興兵而攻滎陽,則其國斷而為三。
夫韓見必亡,安得不聽乎?
若韓聽,而霸事因可慮矣。」
범수가 대답하였다.
“韓이 어찌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왕께서 軍을 보내 滎陽을 공격하면 鞏, 成皋의 길이 막히고,
북쪽으로 太行山의 길을 끊으면 上黨의 軍隊는 내려오지 못합니다.
왕께서 일거에 軍을 일으켜 滎陽을 공격하면 韓은 잘려 세 조각이 됩니다.
韓은 필시 멸망될 터인데, 어찌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만약 韓이 말을 듣는다면 패업도 고려할 만합니다.”
王曰:
「善。」
秦昭王이 말하였다.
“좋소.”
且欲發使於韓。
韓에 사신을 보내려고 하였다.
范睢日益親,復說用數年矣,因請閒說曰:
범수가 날이 갈수록 친하여져 다시 유세하고 등용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한가할 때 말하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臣居山東時,聞齊之有田文,不聞其有王也;
聞秦之有太后、穰侯、華陽、高陵、涇陽,不聞其有王也。
“신이 山東에 살 때, 齊에 田文이 있음을 들었으나 왕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으며,
秦에 太后、穰侯、華陽、高陵、涇陽이 있음을 들었으나 왕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夫擅國之謂王,能利害之謂王,制殺生之威之謂王。
무릇 나라를 오로지 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할 수 있는 자를 왕이라 하고, 생사를 결정하는 권위를 지닌 자를 왕이라 합니다.
今太后擅行不顧,穰侯出使不報,華陽、涇陽等擊斷無諱,高陵進退不請。
그런데 태후가 전단하면서도 거리낌이 없고, 양후는 사신을 파견하고도 보고하지 않으며, 華陽、涇陽 等은 사람을 처벌하고도 꺼림이 없으며, 高陵은 進退를 奏請하지 않습니다.
四貴備而國不危者,未之有也。
네 명의 귀인을 갖추고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경우란 없습니다.
為此四貴者下,乃所謂無王也。
이 네 귀인을 신하로 둠이 소위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然則權安得不傾,令安得從王出乎?
그런즉 어찌 권세가 기울지 않겠으며, 명령이 어찌 왕에게서 나오겠습니까?
▶ 滎陽: 戰國時代韓나라의 邑. 榮陽이라고도 쓴다.
▶ 田文: 齊 孟嘗君
▶ 華陽君: 羋戎. 宣太后의 남동생.
▶ 涇陽君: 宣太后의 아들이며 昭王의 아우.
▶ 宣太后: 秦惠文王의 후비이며, 昭襄王의 어머니. 楚출신이며, 羋八子라 불리었다. 어린 昭王이 즉위하자 섭정하였다.
▶ 說用: 신용을 얻다. 說은悅과 같다. 悅服: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다.
▶ 擅國: 국정을 제멋대로 하다. 국정을 한 손에 장악하다.
▶ 擅行: =專行. 마음대로 결단하여 행함.
▶ 擊斷無諱: 함부로 사람을 처벌하고 꺼려하지 않음.
▶ 進退: 관리를 추천하거나 면직시킴.
臣聞善治國者,乃內固其威而外重其權。
신이 듣기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안으로 그 위엄을 견고히 하고, 밖으로 그 권세를 무겁게 한다.’라고 합니다.
穰侯使者操王之重,決制於諸侯,剖符於天下,政適伐國,莫敢不聽。
양후의 사자는 왕의 권위를 쥐고 제후를 결단하며 제재하고, 천하에 符節을 쪼개어 적을 치고 나라를 정벌하니 감히 말을 듣지 않음이 없습니다.
戰勝攻取則利歸於陶,國獘御於諸侯;
戰敗則結怨於百姓,而禍歸於社稷。
싸워서 이기고 공격해서 빼앗으면 이익을 陶로 돌리되, 나라가 피폐해지도록 제후를 다스립니다.
싸워서 지면 백성에게 원한을 품고 재앙을 사직에 돌립니다.
▶ 剖符: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주로 사신이 가지고 다니던 물건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政適: 적을 정벌하다. 政은 征과 통하여 정벌하다. 適은 敵과 통한다.
《詩》曰
『木實繁者披其枝,披其枝者傷其心;
大其都者危其國,尊其臣者卑其主』。
<詩經>에서 일렀습니다.
‘나무에 열매가 많으면 그 가지를 부러뜨리고, 가지가 부러지면 그 근본을 해친다.
도성을 크게 하는 자는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그 신하를 높이는 자는 그 군주를 낮춘다.’
崔杼、淖齒管齊,射王股,擢王筋,縣之於廟梁,宿昔而死。
崔杼와 淖齒가 齊를 다스림에, 최저는 齊莊公의 넓적다리를 쏘고 요치는 齊湣王의 힘줄을 뽑아 종묘의 대들보에 매다니 오래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李兌管趙,囚主父於沙丘,百日而餓死。
李兌가 趙를 다스림에, 沙丘에서 主父를 가두고 백일이 지나자 굶어 죽었습니다.
今臣聞秦太后、穰侯用事,高陵、華陽、涇陽佐之,卒無秦王,此亦淖齒、李兌之類也。
그런데 신이 듣기에 秦에는 태후와 양후가 정사를 처리하고, 고릉군, 화양군, 경양군이 도와 마침내 진왕을 무시하니, 이들이 또한 요치와 이태의 부류입니다.
且夫三代所以亡國者,君專授政,縱酒馳騁弋獵,不聽政事。
또한, 三代에 나라를 망친 이유는 군주들이 오로지 정사를 신하에게 주고, 술에 방종하거나 말을 달리거나 사냥하며 정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詩》曰: 지금의 詩經에 없는 佚詩(: 전해 내려오지 않은 시)이다.
▶ 木實: 나무의 열매.
▶ 披其枝: 가지를 부러뜨리다. 披는 折.
▶ 崔杼: 齊靈公(기원전581~554재위), 莊公(기원전553~548재위)시기의 권신.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장공이 자신의 후처인 棠姜을 계속 농락하는 데 대해 원한을 품은 나머지 기원전548년에 난을 일으켜 장공을 시해하였다.
▶ 淖齒: 楚장수. 燕將 樂毅가 五國을 연합해서 齊에 쳐들어오자 齊湣王이 莒로 도망쳐서 楚에 구원을 청하니, 楚는 장군 淖齒를 보내 구원하였다. 민왕이 감격해서 요치를 相國으로 삼았으나 요치는 齊 땅을 燕과 반분할 셈으로 莒에서 민왕을 죽여 그 筋骨을 뽑아 대들보에 다는 만행을 저질렀다.
▶ 宿昔: 잠깐 사이. 짧은 시간.
▶ 李兌: 趙의 大夫. 趙武靈王은 秦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만 전념하겠다고 왕위를 태자인 何에게 물려주니 하가 바로 惠文王이다. 그리고 자신은 主父(: 太上王과 같음)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애초 태자를 정할 때 長子인 章을 삼았으나 뒤에 첩인 何(惠文王의 어머니)를 총애한 끝에 태자 자리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장자 章이 원한을 품게 되었다. 마침 惠王 4년에 父子 세 사람이 沙丘의 행궁으로 놀러 갔을 때 태자 장이 난을 일으켰다. 그때 서울에 있던 다른 公子成과 대부인 李兌가 동조하여 主父(: 武靈王)를 행궁에 석 달 남짓 가두었는데 후에 문을 열어 보았더니 이미 마른 해골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 主父: 趙의 武靈王을 말한다.
▶ 三代: 夏, 殷, 周의 삼대를 말한다.
▶ 馳騁: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님.
▶ 弋獵: 사냥.
其所授者,妒賢嫉能,御下蔽上,以成其私,不為主計,而主不覺悟,故失其國。
그 정사를 받은 자가 현명하고 재능 있는 이를 질투하며, 아랫사람은 다스리고 윗사람을 가림으로써 사사로운 이익을 이루며, 임금을 위한 계책을 세우지 않아도 임금이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나라를 잃었습니다.
今自有秩以上至諸大吏,下及王左右,無非相國之人者。
지금 有秩(5000호 이상의 봉읍 소유자)으로부터, 위로는 높은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는 왕의 측근에 이르기까지, 相國의 사람이 아님이 없습니다.
見王獨立於朝,臣竊為王恐,萬世之後,有秦國者非王子孫也。」
왕께서 홀로 조정에 섬을 보면, 신은 삼가 왕을 위하여 근심하는데, 만세의 뒤에 진을 소유한 자는 왕의 자손이 아닐 터입니다.”
昭王聞之大懼,曰:
「善。」
秦昭王이 듣고 매우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알겠소.”
於是廢太后,逐穰侯、高陵、華陽、涇陽君於關外。
이에 태후를 폐하고 양후, 고릉군, 화양군, 경양군을 함곡관 밖으로 내쫓았다.
秦王乃拜范睢為相。
秦昭王은 범수를 相國으로 삼았다.
收穰侯之印,使歸陶,因使縣官給車牛以徙,千乘有餘。
양후의 印綬를 거두고 陶로 돌려보냄에, 縣官을 시켜 수레와 소를 주고 물건을 옮기니 천 대가 넘었다.
到關,關閱其寶器,寶器珍怪多於王室。
함곡관에 이르러 關에서 그 보물을 검열하니 진귀하고 괴이한 보물들이 왕실보다 많았다.
秦封范睢以應,號為應侯。
秦은 범수를 應에 봉하고 應侯라고 호칭하였다.
當是時,秦昭王四十一年也。
당시 진소왕41년(기원전266년)이었다.
▶ 有秩: 古代乡官名。汉承秦制﹐乡五千户则置有秩﹐秩百石﹐掌管一乡。
▶ 大吏: 옛날 지방 장관
范睢既相秦,秦號曰張祿,而魏不知,以為范睢已死久矣。
범수가 秦의 相國이 되고 나서도 秦에서는 張祿으로 부르니, 魏는 몰랐고 범수가 죽은 지 오래라고 생각하였다.
魏聞秦且東伐韓、魏,魏使須賈於秦。
魏는 秦이 동으로 韓、魏를 정벌하려 함을 듣자, 須賈를 秦에 사신으로 보냈다.
范睢聞之,為微行,敝衣閒步之邸,見須賈。
범수가 듣고 微行하여 닳아 떨어진 옷을 입고 한가하게 걸어서 숙소로 가서 수가를 만났다.
須賈見之而驚曰:
「范叔固無恙乎!」
수가가 보고 놀라서 말하였다.
“范叔은 원래 탈이 없었는가!”
范睢曰:
「然。」
범수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須賈笑曰:
「范叔有說於秦邪?」
수가가 웃으며 말하였다.
“범숙은 秦에서 유세하고 있는가?”
曰:
「不也。
睢前日得過於魏相,故亡逃至此,安敢說乎!」
범수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예전에 魏相에게 죄를 지어 도망쳐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감히 유세하겠습니까!”
須賈曰:
「今叔何事?」
수가가 말하였다.
“지금 범숙은 무슨 일을 하는가?”
范睢曰
「臣為人庸賃。」
범수가 말하였다.
“신은 남의 품팔이를 하고 있습니다.”
須賈意哀之,留與坐飲食,曰:
「范叔一寒如此哉!」
수가가 불쌍하게 생각하여 머물게 하고 같이 앉아서 식사하며 말하였다.
“범숙이 어찌 이렇게 가난한가!”
乃取其一綈袍以賜之。
이에 두꺼운 비단옷 하나를 가져다 주었다.
▶ 且: 장차~하려 하다.
▶ 須賈: 수고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魏의 中大夫. 范睢와 魏에 사신으로 가서 범수의 행동을 오해하고 위제로 하여금 범수를 죽이려 하였다.
▶ 范叔: 범수의 字가 叔이다.
▶ 無恙: 몸에 탈이 없다. 恙은 근심 ‘양’.
▶ 得過:죄를 짓다.
▶ 一寒如此: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
▶ 綈袍: 두꺼운 비단옷. 명주 솜옷.
※绨袍之義: 명주 솜옷의 의리라는 뜻으로, 옛정을 잊지 않는 의리 있는 행동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전국시대 范雎와 須賈의 故事에서 유래하였다.
須賈因問曰:
「秦相張君,公知之乎?
吾聞幸於王,天下之事皆決於相君。
今吾事之去留在張君。
孺子豈有客習於相君者哉?」
수가가 이에 물었다.
“秦의 相國은 張君이라는데 공도 아는가?
내가 들으니 왕에게서 총애를 받아 천하의 일은 모두 相國에게서 결정된다고 하네.
지금 내 일의 성패는 張君에게 달려있네.
자네에게 張君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范睢曰:
「主人翁習知之。
唯睢亦得謁,睢請為見君於張君。」
범수가 말하였다.
“주인마님께서 잘 아십니다.
저 역시 뵌 적이 있는데, 제가 張君께 상공을 만나도록 청해보겠습니다.”
須賈曰:
「吾馬病,車軸折,非大車駟馬,吾固不出。」
수가가 말하였다.
“내 말은 병들고 수레의 축이 부러졌으며, 駟馬라는 큰 수레도 아니기에 나는 나갈 수가 없다네.”
范睢曰:
「願為君借大車駟馬於主人翁。」
범수가 말하였다.
“제가 상공을 위하여 주인마님께 大車駟馬를 빌리겠습니다.”
范睢歸取大車駟馬,為須賈御之,入秦相府。
범수는 돌아가서 大車駟馬를 가져다 수가를 위하여 수레를 몰고 秦의 相府로 들어갔다.
府中望見,有識者皆避匿。
府中에서 바라보다가 범수를 아는 자는 모두 피하여 숨었다.
須賈怪之。
수가가 괴이하게 여겼다.
至相舍門,謂須賈曰:
「待我,我為君先入通於相君。」
相國의 관저 문에 이르러 수가에게 말하였다.
“저를 기다리시면 제가 상공을 위해 먼저 들어가서 相國에게 알리겠습니다.”
須賈待門下,持車良久,問門下曰:
「范叔不出,何也?」
수가는 문앞에서 기다리며 수레를 지킨 지 한참 지나서 문지기에게 물었다.
“범숙이 나오지 않는데 무엇 때문인가?”
門下曰:
「無范叔。」
문지기가 말하였다.
“범숙이란 사람은 없습니다.”
須賈曰:
「鄉者與我載而入者。」
수가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나와 함께 수레를 타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 말일세.”
門下曰:
「乃吾相張君也。」
문지기가 말하였다.
“우리 相國인 張君입니다.”
須賈大驚,自知見賣,乃肉袒厀行,因門下人謝罪。
수가가 매우 놀라며 스스로 속았음을 알고 웃통을 벗고 무릎으로 걸어 문지기를 통해 사죄하였다.
於是范睢盛帷帳,待者甚衆,見之。
이에 범수가 장막을 치고 시종을 매우 많이 거느리고 수가를 만났다.
須賈頓首言死罪,曰:
「賈不意君能自致於青雲之上,賈不敢復讀天下之書,不敢復與天下之事。
賈有湯鑊之罪,請自屏於胡貉之地,唯君死生之!」
수가가 머리를 조아리고 죽을죄를 지었다며 말하였다.
“저는 군께서 자력으로 青雲之上에 오르리라 생각하지 못하였으니, 저는 감히 다시는 천하의 서적을 읽지 않겠으며, 감히 다시는 천하의 정사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끓는 물에 삶아 죽여야 할 죄가 있으나, 스스로 오랑캐의 땅에 숨어 살기를 청하오니, 오직 군께서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십시오!”
范睢曰:
「汝罪有幾?」
범수가 말하였다.
“네 죄가 몇이냐?”
曰:
「擢賈之發以續賈之罪,尚未足。」
수가가 말하였다.
“제 머리카락을 뽑아 저의 죄를 셀지라도 오히려 부족하겠습니다.”
范睢曰:
「汝罪有三耳。
범수가 말하였다.
“네 죄는 셋일 뿐이다.
昔者楚昭王時而申包胥為楚卻吳軍,楚王封之以荊五千戶,包胥辭不受,為丘墓之寄於荊也。
옛날 楚昭王때 申包胥가 楚를 위하여 吳軍을 물리치자 초왕이 그에게 荊땅의 5천 호를 봉하려고 했으나, 신포서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니 조상의 무덤이 荊땅에 있었기 때문이다.
今睢之先人丘墓亦在魏,公前以睢為有外心於齊而惡睢於魏齊,公之罪一也。
지금 내 선조의 무덤 역시 魏에 있으나, 그대가 예전에 내가 齊에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여기고 위제에게 나를 모함하였으니, 그대의 죄 하나이다.
當魏齊辱我於廁中,公不止,罪二也。
위제가 측간에서 나를 욕보임에, 그대가 말리지 않았으니 죄가 둘이다.
更醉而溺我,公其何忍乎?
罪三矣。
번갈아 취하며 나에게 오줌을 눌 때, 그대는 어찌 모른 척하였는가?
죄가 셋이다.
然公之所以得無死者,以綈袍戀戀,有故人之意,故釋公。」
그러나 그대를 죽이지 않음은 두꺼운 비단옷으로 안타까워하는 옛사람의 뜻이 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그대를 석방하겠다.”
乃謝罷。
이에 죄를 면하여 주었다.
入言之昭王,罷歸須賈。
범수가 궁궐로 들어가서 昭王에게 말하고 수가를 돌려보냈다.
▶ 去留: 떠남과 머뭄. 즉 일의 성공과 실패를 말함.
▶ 孺子: 젊은이. 자네.
▶ 習: 익히 알다. 상세히 알다.
▶ 主人翁: 주인.
▶ 駟馬: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
▶ 見賣: 속임을 당함. 賣는 속이다.
▶ 肉袒: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냄
▶ 帷帳: 휘장과 장막.
▶ 青雲之上: 지극히 높은 벼슬을 비유함.
▶ 湯鑊: 고대의 삶아 죽이는 형벌. 鑊은 큰 가마솥.
▶ 胡貉: 오랑캐. 胡는 고대 서북부 민족이며貊은 동북부의 민족을 말한다.
▶ 申包胥: 춘추시대 楚의 정치가. 성은 羋, 씨는 申, 이름은 包胥이다. 또한 王孫包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楚평왕, 楚소왕, 楚혜왕등 楚3대 임금을 섬겼으며, 吳의 침공으로 楚가 위태로울 때 옛 친구 오자서에게 저항하였다.
▶ 丘墓: 묘. 선조의 묘를 말함.
▶ 惡: 비방하다. 모함하다.
須賈辭於范睢,范睢大供具,盡請諸侯使,與坐堂上,食飲甚設。
須賈가 범수에게 작별하자 범수는 크게 잔치를 열고 각국의 사신을 모두 초청하여 대청 위에 함께 앉으니, 음식이 매우 성대하였다.
而坐須賈於堂下,置莝豆其前,令兩黥徒夾而馬食之。
그러나 수가를 대청 아래에 앉히고 그 앞에 말먹이를 놓아두고, 墨刑을 받은 두 사람을 시켜 말처럼 먹게 하였다.
數曰:
「為我告魏王,急持魏齊頭來!
不然者,我且屠大梁。」
꾸짖었다.
“나를 대신해 魏王에게 고하라.
‘급히 魏齊의 머리를 가지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장차 大梁을 도륙하겠다.’”
須賈歸,以告魏齊。
수가가 돌아가서 이것를 위제에게 고하였다.
魏齊恐,亡走趙。匿平原君所。
魏齊는 두려워서 趙로 달아났고 平原君의 집에 숨었다.
▶ 大供具: 큰 잔치를 열다. 供具는 부처에게 공양하는 데 쓰는 그릇.
▶ 甚設: 성대히 베풀다.
▶ 莝豆: 말먹이. 풀과 콩을 사료로 쓰기 위해 작도로 잘게 부순 것.
▶ 黥徒: 묵형을 당한 죄인들. 墨刑은 죄인의 이마나 팔뚝 따위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
▶ 數: 責望하다.
▶ 魏齊: 魏의 丞相으로 范睢를 심하게 매질을 가해 거의 죽게 하였던 사람.
▶ 平原君: 戰國時代趙의 公子이며 정치가이다. 氏는 趙, 諱는 勝이다. <史記. 권76平原君虞卿列傳>
范睢既相,王稽謂范睢曰:
범수가 相國이 되자 왕계가 범수에게 말하였다.
「事有不可知者三,有不柰何者亦三。
“일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고, 어찌할 수 없는 것 역시 세 가지가 있습니다.
宮車一日晏駕,是事之不可知者一也。
왕께서 하루아침에 薨逝하심이 알 수 없는 일 첫 번째입니다.
君卒然捐館舍,是事之不可知者二也。
상국께서 돌연 館舍를 버림이 알 수 없는 일 두 번째입니다.
使臣卒然填溝壑,是事之不可知者三也。
신이 돌연 객사함이 알 수 없는 일 세 번째입니다.
宮車一日晏駕,君雖恨於臣,無可柰何。
임금께서 하루아침에 훙서하면 상국께서 신에게 한탄해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君卒然捐館舍,君雖恨於臣,亦無可柰何。
그대가 돌연 관사를 버리면 상국께서 신에게 한탄해도 역시 어찌할 수 없습니다.
使臣卒然填溝壑,君雖恨於臣,亦無可柰何。」
신이 돌연 객사하면 상국께서 신에게 한탄해도 역시 어찌할 수 없습니다.”
▶ 王稽: 秦의 신하로 魏에 사신으로 와 있다가 范雎를 만나 昭王에게 추천하였다.
▶ 宮車一日晏駕: 제왕이 붕어하다. 궁의 수레가 아침에 늦게 나간다 함은 왕이 조회에 늦는다는 의미로 제왕이 붕어한다는 뜻. 晏駕 궁의 수레가 늦게 나가다.
▶ 卒然: 突然. 卒은猝과 통한다.
▶ 捐館舍: 관사를 내버려두다. 즉, 죽는다는 뜻.
▶ 填溝壑: 구덩이나 골짜기를 메우다. 즉, 객사한다는 뜻.
范睢不懌,乃入言於王曰:
「非王稽之忠,莫能內臣於函谷關;
非大王之賢聖,莫能貴臣。
今臣官至於相,爵在列侯,王稽之官尚止於謁者,非其內臣之意也。」
범수는 불쾌했으나 이내 조정에 들어가서 왕에게 말하였다.
“왕계의 충성심이 아니었으면 함곡관에 신을 들이지 못하였을 터이고,
대왕의 현명함과 거룩함이 아니었으면 신을 귀하게 만들지 못하였을 터입니다.
지금 신의 관직은 相國에 이르렀고 작위는 列侯에 들었는데, 왕계의 관직은 아직 謁者에 그치고 있으니, 그가 신을 들인 뜻이 아닐 터입니다.”
昭王召王稽,拜為河東守,三歲不上計。
秦昭王은 왕계를 불러 하동태수의 벼슬을 내리고, 3년 동안 上計하지 않게 하였다.
又任鄭安平,昭王以為將軍。
또 鄭安平을 보증하자 昭王이 장군으로 삼았다.
范睢於是散家財物,盡以報所嘗困戹者。
범수는 집안의 재물을 풀어, 일찍이 곤궁함을 남김없이 보답하였다.
一飯之德必償,睚眥之怨必報。
한 끼의 밥을 얻어먹은 은혜도 반드시 보상하였고, 눈을 흘겨보는 원한이라도 반드시 보복하였다.
▶ 不懌 : 불유쾌함. 懌은 기뻐하다.
▶ 上計: 지방관리가 매년 회계 담당 관리를 중앙으로 파견하여 회계 보고를 하는 제도.
▶ 任: 천거.
▶ 睚眥: 사소한 원한. 흘겨보는 눈초리. 眥는 흘길‘자’.
范睢相秦二年,秦昭王之四十二年,東伐韓少曲、高平,拔之。
범수가 秦의 相國이 되고 2년이 되던 진소왕42년(기원전265년), 동으로 韓의 少曲、高平을 정벌하여 점령하였다.
秦昭王聞魏齊在平原君所,欲為范睢必報其仇,乃詳為好書遺平原君曰;
「寡人聞君之高義,願與君為布衣之友,君幸過寡人,寡人願與君為十日之飲。」
秦昭王은 위제가 평원군의 처소에 있음을 알고, 범수를 위하여 반드시 그 원수를 갚고자 거짓으로 우호의 편지를 평원군에게 보냈다.
“과인은 그대의 높은 義氣를 듣고, 그대와 布衣의 교우를 맺고 싶어 그대가 과인에게 들리기를 바라니, 과인은 그대와 열흘 동안의 주연을 열고 싶소.”
平原君畏秦,且以為然,而入秦見昭王。
평원군은 秦을 두려워하였지만, 한편 그럴듯하게 생각하여, 秦에 들어가서 昭王을 만났다.
昭王與平原君飲數日,昭王謂平原君曰:
「昔周文王得呂尚以為太公,齊桓公得管夷吾以為仲父,今范君亦寡人之叔父也。
范君之仇在君之家,願使人歸取其頭來;
不然,吾不出君於關。」
秦昭王이 평원군과 며칠 동안 술을 마시다가 평원군에게 말하였다.
“옛날 周文王은 呂尚을 얻어 太公이라 하였고, 齊桓公은 管夷吾를 얻어 仲父라 하였으며, 지금 范君 역시 과인의 叔父라 부르오.
范君의 원수가 그대의 집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 그의 머리를 가져오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를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소.”
▶ 詳為好: 거짓으로 친분을 맺다. 詳은 거짓 ‘양’.
▶ 布衣之友:베옷을 입고 다닐 때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신분, 지위를 떠난 순수한 벗을 말한다.
▶ 幸過: 방문하기를 바라다. 幸은 바라다. 過는 방문.
▶ 仲父: 제환공이 관중을 존대하여 부른 호칭. 父는 어버이와 같이 섬긴다는 뜻으로 ‘보’로 읽는다.
▶ 叔父: 범수의 字가 叔이므로 존대하여 숙보로 칭하였다.
▶ 關: 함곡관.
平原君曰:
「貴而為交者,為賤也;
富而為交者,為貧也。
夫魏齊者,勝之友也,在,固不出也,今又不在臣所。」
평원군이 말하였다.
“귀하여 사귐은 미천할 때를 위함이며,
부유하여 사귐은 가난할 때를 위함입니다.
무릇 위제는 저의 벗으로, 있다 한들 절대 내놓을 수 없으며, 더구나 신의 집에 있지도 않습니다.”
昭王乃遺趙王書曰:
「王之弟在秦,范君之仇魏齊在平原君之家。
王使人疾持其頭來;不然,吾舉兵而伐趙,又不出王之弟於關。」
昭王은 이에 趙王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의 아우는 秦에 있고 范君의 원수 위제는 평원군의 집에 있소.
왕은 사람을 보내 신속히 그의 머리를 가져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舉兵하여 趙를 정벌하고, 또한 왕의 아우를 함곡관에서 내보내지 않겠소.”
趙孝成王乃發卒圍平原君家,急,魏齊夜亡出,見趙相虞卿。
趙孝成王은 이에 병사를 보내 평원군의 집을 포위했으며, 다급해진 위제는 밤에 도망쳐 나가 趙의 相國 虞卿을 만났다.
虞卿度趙王終不可說,乃解其相印,與魏齊亡,閒行,念諸侯莫可以急抵者,乃復走大梁,欲因信陵君以走楚。
우경은 趙王을 끝내 설득할 수 없다고 여기고, 相國의 인수를 풀어놓고 위제와 함께 도망쳤는데, 사잇길로 가다가 제후 중에 당장 갈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대량으로 달아나서 信陵君을 통하여 楚로 달아나려고 하였다.
▶ 王之弟: 평원군은 혜문왕의 동생으로 효성왕의 숙부이므로 여기서 왕의 아우라 함은 잘못이라는 견해가 있다.
▶ 疾: 신속히.
▶ 度: 헤아리다. 추측하다.
▶ 閒行: 사잇길로 감.
▶ 信陵君: 魏의 공자 魏無忌. 전국시대 魏의 저명한 軍略家로 信陵에 봉해지면서 信陵君으로 불리었다. <史記. 권77魏公子列傳>
信陵君聞之,畏秦,猶豫未肯見,曰:
「虞卿何如人也?」
신릉군이 들었으나 秦이 두려워서 주저하며 만나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우경은 어떤 인물이오?”
時侯嬴在旁,曰:
당시 侯嬴이 곁에 있다가 말하였다.
「人固未易知,知人亦未易也。
“사람은 본래 알기가 힘들며, 남을 알기 또한 쉽지 않습니다.
夫虞卿躡屩檐簦,一見趙王,賜白璧一雙,黃金百鎰;
再見,拜為上卿;
三見,卒受相印,封萬戶侯。
우경은 짚신을 신고 긴 삿갓을 썼지만, 趙王을 한 번 만나 白璧 한 쌍과 황금 백 鎰을 하사하였고, 두 번 만나 上卿에 임명하였고, 세 번 만나 마침내 相國의 인수를 받고 萬戶侯에 봉하였습니다.
當此之時,天下爭知之。
당시에 천하가 다투어 그를 알고자 했습니다.
夫魏齊窮困過虞卿,虞卿不敢重爵祿之尊,解相印,捐萬戶侯而閒行。
지금 위제가 곤궁에 처해 우경을 찾아가자, 우경은 爵祿의 높음을 중시하지 않고, 相國의 인수도 풀고, 萬戶侯의 지위도 버린 채, 몰래 떠났습니다.
急士之窮而歸公子,公子曰『何如人』。
선비의 곤궁에 다급하여 공자에게 귀부하는데, 공자께서 말하기를 ‘어떤 인물이오?’라고 하셨습니다.
人固不易知,知人亦未易也!」
사람은 본래 알기가 쉽지 않고, 남을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信陵君大慚,駕如野迎之。
신릉군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수레를 몰고 성 밖까지 가서 맞이하였다.
魏齊聞信陵君之初難見之,怒而自剄。
위제는 신릉군이 처음에 만나기를 꺼렸음을 알고 노하여 自剄하였다.
趙王聞之,卒取其頭予秦。
趙王이 이를 듣고 마침내 그의 목을 가져다 秦에 보내었다.
秦昭王乃出平原君歸趙。
秦昭王은 비로소 평원군을 내보내 趙로 돌려보냈다.
▶ 猶豫: 주저하다. 망설이다.
▶ 虞卿: 유세객, 姓은 虞, 이름은 未詳. 著書에≪虞氏春秋≫가 있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史記列傳]권76平原君虞卿列傳
▶ 侯嬴: ?∼BC 257. 전국시대 魏의 隱士. 집안이 가난해 나이 일흔에 大梁의 夷門의 문지기가 되었는데, 魏의 信陵君이 맞아 上客으로 삼았다. 秦이 趙를 공격하자 신릉군에게 계책을 올려 趙를 구하였다. <사기, 권77魏公子列傳>
▶ 躡蹻: 짚신을 신다. 躡은 짚신으로 고대에 먼길을 갈 때 신었다.
▶ 檐簦: 어깨까지 걸치는 긴 삿갓. 檐은 擔과 통하여 어깨에 걸머짐. 簦은 고대의 삿갓.
▶ 趙王: 趙孝成王. 이름은 丹, 惠文王의 아들, 재위21년.
▶ 鎰: 중량의 단위로 스무 냥 또는 스물넉 냥에 해당한다.
▶ 白璧: 白玉.
▶ 如野: 성 밖에 이르다. 如는 이르다. 가다. 野는 성 밖, 교외.
昭王四十三年,秦攻韓汾陘,拔之,因城河上廣武。
秦昭王43년(기원전264년), 秦이 韓의 汾水와 陘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黃河 근처인 廣武山에 성을 쌓았다.
後五年,昭王用應侯謀,縱反閒賣趙,趙以其故,令馬服子代廉頗將。
5년 후에 秦昭王이 응후의 계략을 써서 반간계로 趙를 속이자, 趙가 이로 인해 馬服君의 아들 趙括을 廉頗를 대신하여 장수로 삼았다.
秦大破趙於長平,遂圍邯鄲。
秦은 長平에서 趙를 대파하고 마침내 邯鄲을 포위하였다.
已而與武安君白起有隙,言而殺之。
일을 마치자 범수는 武安君白起와 원한이 있었는데 참언하여 그를 죽였다.
任鄭安平,使擊趙。
정안평에게 위임하여 趙를 치게 하였다.
鄭安平為趙所圍,急,以兵二萬人降趙。
정안평은 趙에 포위당해 위급해지자 병사 2만을 데리고 趙에 투항하였다.
▶ 城: 성을 쌓다.
▶ 反閒: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다. 이간시키다. =反間.
▶ 賣: 속이다.
▶ 馬服子代廉頗將: 趙 염파가 秦과 전투 중에 보루를 쌓고 싸움에 응하지 않자 범수가 趙에 사람을 보내 반간계를 펼첬다.
“秦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馬服君趙奢의 아들 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이며, 염파는 쉬운 상대이기에 장차 싸움에 지고 秦에 항복할 것이다.” 趙孝成王은 염파의 軍에 죽은 자나 도망친 자가 많고, 싸움에서 여러 번 졌는데 도리어 굳게 지킬 뿐 감히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노하였는데, 또 秦의 반간계를 듣자 조괄을 염파 대신 장수로 삼고 秦을 쳤다. <史記 卷73白起王翦列傳>
▶ 馬服子:趙括을 말한다. 조괄은 趙 장군 趙奢의 아들이다. 性情이 경망하여 병법을 배운 뒤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늘 자부하였으므로 아버지로부터 趙軍을 망칠 사람은 틀림없이 括일 것이라는 경계를 받았다. 秦이 趙를 공격하여 장평에서 대치하였는데, 秦의 反間計에 따라 조괄이 廉頗대신 장수가 되었으나 秦軍을 경시하다가 결국 秦將 白起에게 크게 패하여 자신은 죽고 趙軍 40만은 항복했다가 모두 구덩이에 묻혀 죽었다. <史記 卷81廉頗藺相如列傳>
▶ 白起: 전국시대 秦의 장군이다. 王翦과 더불어 전국시대 秦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秦昭王때 趙, 魏, 韓, 楚 등을 공격하여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秦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전국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公孫起라고도 하였다. 武安君의 칭호를 받았다.
▶ 隙: 틈. 원한.
▶ 言而殺之: 범수가 昭王에게 참언하여 백기를 죽게 하였다. 昭王이 백기에게 출전할 것을 명하였으나 백기가 가지 않아, 昭王은 백기를 파면하여 士伍(병졸)로 강등시키고는 陰密로 유배 보냈으나 이때 백기는 병이 들어서 가지 못하였다. 범수와 신하들이 ‘백기가 유배를 가면서도 오히려 원망을 품고 복종치 아니하며 불손한 말을 한다.’라고 참언하여 그 말을 들은 昭王은 11월에 백기에게 검을 보내 자결할 것을 명하였다. 백기는 검을 받아들고 스스로 목을 베려다가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라 하였다. 백기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 때에 趙 병졸로서 항복한 자들 수십만 명을 내가 속여서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버렸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을만하다."라 하고는 자살하였다. <史記 卷73白起王翦列傳>
▶ 鄭安平: 魏에서 죽을 처지에 놓였던 范睢를 구해준 인물이며, 범수가 秦에서 승상이 되고 나서 은혜를 갚고자 천거하여 장군이 되었다. 정안평은 趙를 공격하였으나 趙軍에 포위되어 투항하였다.
應侯席槁請罪。
응후는 席槁請罪하였다.
秦之法,任人而所任不善者,各以其罪罪之。
秦의 법에는 사람을 천거하여 천거된 자가 죄를 지으면, 각각 그 벌을 받게 되어있었다.
於是應侯罪當收三族。
응후의 죄는 收三族에 해당하였다.
秦昭王恐傷應侯之意,乃下令國中:
「有敢言鄭安平事者,以其罪罪之。」
秦昭王은 응후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며 나라에 명령을 내렸다.
“감히 정안평의 일을 말하는 자가 있다면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
而加賜相國應侯食物日益厚,以順適其意。
그리고는 相國 응후에게 음식을 더하여 하사하기를 날로 후하게 하여 그 마음을 달래주었다.
後二歲,王稽為河東守,與諸侯通,坐法誅。
2년 후, 왕계가 하동 태수이었는데, 제후과 내통하여 법에 걸려 처형당하였다.
而應侯日益以不懌。
응후는 날이 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昭王臨朝嘆息,應侯進曰:
「臣聞『主憂臣辱,主辱臣死』。
今大王中朝而憂,臣敢請其罪。」
秦昭王이 조회에서 탄식하자 응후가 진언하였다.
“신이 듣기에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자처하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신하는 죽음을 자처한다.’라고 합니다.
지금 왕께서 조회하는 중에 근심하시니, 신은 감히 그 죄를 청하옵니다.”
昭王曰:
秦昭王이 말하였다.
「吾聞楚之鐵劍利而倡優拙。
“내가 듣기에, 楚의 철검은 예리하나 광대들의 연기는 졸렬하다고 하오.
夫鐵劍利則士勇,倡優拙則思慮遠。
무릇 철검이 예리하면 병사가 용맹하고, 광대들의 연기가 졸렬하면 생각이 깊소.
夫以遠思慮而御勇士,吾恐楚之圖秦也。
楚가 심원한 사려로 용맹한 병사를 거느리니, 나는 楚가 秦을 도모할까 두렵소.
夫物不素具,不可以應卒,今武安君既死,而鄭安平等畔,內無良將而外多敵國,吾是以憂。」
일이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변고에 대응할 수 없는데, 무안군이 이미 죽고 정안평 등은 배반하여, 안에 良將이 없고 밖에 적국이 많으니 내가 이를 걱정하고 있소.”
欲以激勵應侯。
이것으로 응후를 격려하려고 하였다.
應侯懼,不知所出。
응후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蔡澤聞之,往入秦也。
蔡澤이 이를 듣고 秦에 들어왔다.
▶ 席稿請罪: 짚으로 된 멍석에 꿇어 앉아 벌을 청하다. 稿는 짚으로 된 방석.
▶ 收: 逮捕. 收三族:삼족을 적몰하다. 籍沒: 重罪人의 財産을 沒收하고 家族까지 罰하던 일.
▶ 三族: 父族, 母族, 妻族.
▶ 坐法: 죄에 의하여 처벌을 받다.
▶ 倡優: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倡이라 하고, 해학과 유희를 하는 사람을 優라 한다.
▶ 素具: 미리 준비하다.
▶ 卒: 猝과 통하여 갑작스러움.
▶ 不知所出: 不知道从哪里来的。不知道该怎么办。
▶ 蔡澤: 燕 출신의 辯士로 秦에 들어와 范雎의 뒤를 이어 相國이 되었다. 秦에 와서 昭襄王, 孝文王, 莊襄王, 始皇을 섬겼다.
2. 蔡澤
蔡澤者,燕人也。
채택은 燕 사람이다.
游學干諸侯小大甚衆,不遇。
고향을 떠나 공부하였고, 크고 작은 제후에게 벼슬을 구함이 심히 많았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였다.
而從唐舉相,曰:
「吾聞先生相李兌,曰『百日之內持國秉』,有之乎?」
唐舉에게 相을 보며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선생이 李兌의 관상을 보며 ‘백일 내에 정권을 잡겠다.’라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소?”
曰:
「有之。」
당거가 말하였다.
“있었습니다.”
曰:
「若臣者何如?」
채택이 말하였다.
“나 같은 사람은 어떻소?”
唐舉孰視而笑曰:
「先生曷鼻,巨肩,魋顏,蹙齃,膝攣。
吾聞聖人不相,殆先生乎?」
당거가 채택을 한참 보다가 웃으며 말하였다.
“선생은 들창코에다가 어깨가 목보다 높고 이마는 튀어나오고 콧마루가 내려앉았고 다리가 활처럼 휘었소.
내가 듣기에 성인은 관상을 보지 않는다고 하던데, 아마 선생이겠소.”
蔡澤知唐舉戲之,乃曰:
「富貴吾所自有,吾所不知者壽也,願聞之。」
채택은 당거가 자신을 놀림을 알고 이에 말하였다.
“부귀는 내가 스스로 가진 것이고, 내가 모르는 것은 수명이니 그것을 들려주시오.”
▶ 遊學: 선생을 찾아 공부하다. 타향에 가서 공부함.
▶ 干: 구하다.
▶ 遇: 만나다. 신임을 얻다.
▶ 唐舉: 魏의 관상가.
▶ 李兌: 趙의 大夫.
▶ 持國秉:국가의 정권을 잡음. 國秉은 정권. 秉은 柄과 통하여 권력의 뜻.
▶ 孰視: 자세히 보다. 孰은 熟과 같다.
▶ 曷鼻: 들창코. 코모양이 전갈과 같다는 뜻.
▶ 巨肩: 어깨가 높이 솟아 있다. .
▶ 魋顏: 이마가 튀어나오다.
▶ 蹙齃: 납작코. 콧마루가 내려앉다.
▶ 膝攣: 양 무릎이 꾸부러지다.
▶ 殆: 대개.
唐舉曰:
「先生之壽,從今以往者四十三歲。」
당거가 말하였다.
“선생의 수명은 지금부터 계산하여 43년이오.”
蔡澤笑謝而去,謂其御者曰:
「吾持粱刺齒肥,躍馬疾驅,懷黃金之印,結紫綬於要,揖讓人主之前,食肉富貴,四十三年足矣。」
채택은 웃으며 작별하고 떠나며 그의 마부에게 말하였다.
“내가 쌀밥과 고기반찬을 먹으며 말에 올라 질주하면서, 황금 인을 품고 자주색 인끈을 허리에 매고, 군주 앞에서 揖讓하며 고기를 먹으며 부귀를 누린다면 43년으로 충분하다.”
去之趙,見逐。
趙로 갔으나 쫓겨났다.
之韓、魏,遇奪釜鬲於涂。
韓、魏로 갔으나 도중에 취사도구를 탈취당하였다.
聞應侯任鄭安平、王稽皆負重罪於秦,應侯內慚,蔡澤乃西入秦。
응후가 정안평과 왕계를 천거했다가 모두 秦에 중죄를 지으니, 응후가 내심 부끄러워한다는 말을 듣고, 채택은 서쪽의 秦으로 들어갔다.
將見昭王,使人宣言以感怒應侯曰:
「燕客蔡澤,天下雄俊弘辯智士也。
彼一見秦王,秦王必困君而奪君之位。」
채택은 秦昭王과 만나려 사람을 시켜 떠벌려서 응후를 노하게 하였다.
“燕 유세객 채택은 천하의 호걸로 뛰어난 말재주를 지닌 현명한 선비입니다.
그가 진왕을 한 번 알현하면 진왕은 틀림없이 상국을 곤궁하게 하고 상국의 지위를 빼앗을 터입니다.”
應侯聞,曰:
「五帝三代之事,百家之說,吾既知之,衆口之辯,吾皆摧之,是惡能困我而奪我位乎?」
응후가 듣고 말하였다.
“五帝와 三代의 일과 제자백가의 학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衆口의 변론을 모두 꺾어 놓았거늘, 어떻게 나를 곤궁하게 만들어 내 지위를 빼앗겠단 말인가?”
使人召蔡澤。
사람을 시켜 채택을 불렀다.
蔡澤入,則揖應。
채택이 들어와 응후에게 읍하였다.
應侯固不快,及見之,又倨,應侯因讓之曰:
「子嘗宣言欲代我相秦,寧有之乎?」
응후가 본래 불쾌하였는데, 그를 만나니 또 거만하기에 그를 꾸짖었다.
“그대가 일찍이 나를 대신하여 秦의 相國이 되겠다고 큰소리쳤다던데, 설마 그런 일이 있었는가?”
對曰:
「然。」
채택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應侯曰:
「請聞其說。」
응후가 말하였다.
“그 말이나 들어보자.”
蔡澤曰:
「吁,君何見之晚也!
夫四時之序,成功者去。
夫人生百體堅彊,手足便利,耳目聰明而心聖智,豈非士之願與?」
채택이 말하였다.
“아아, 군께서는 어찌 그리 알아봄이 늦습니까!
무릇 사계절의 순서가 듯이, 공을 이룬 것은 떠납니다.
무릇 사람이 태어나서 신체가 굳고 강하며, 손발이 편리하며, 耳目이 聰明하며, 마음이 성스럽고 지혜로움은 선비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應侯曰:
「然。」
응후가 말하였다.
“그렇네.”
蔡澤曰:
「質仁秉義,行道施德,得志於天下,天下懷樂敬愛而尊慕之,皆願以為君王,豈不辯智之期與?」
채택이 말하였다.
“仁을 바탕으로 義를 지키며, 도를 행하고 덕을 베풀어서, 천하에 자신의 뜻을 이루고, 천하가 따르고 경애하며 존경하고 흠모하여, 모두 군왕으로 모시려 한다면 어찌 말재주가 뛰어나고 지혜로운 선비의 바라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應侯曰:
「然。」
응후가 말하였다.
“그렇네.”
蔡澤復曰:
「富貴顯榮,成理萬物,使各得其所;
性命壽長,終其天年而不夭傷;
天下繼其統,守其業,傳之無窮;
名實純粹,澤流千里,世世稱之而無絕,與天地終始:
豈道德之符而聖人所謂吉祥善事者與?」
채택이 다시 말하였다.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만물을 잘 다스려 각각 제자리를 찾게 하고,
타고난 운명과 하늘이 내린 수명을 다하여 끝내 천수를 누려 요절하지 않고,
천하가 선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 업을 지켜 끝없이 전해지게 하고,
명성과 실제가 완전무결하여 은혜가 천 리까지 전해지고, 대대로 칭송하여 끊이지 않게 하여 천지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하면
이것이 도덕의 증거로서, 성인이 말하는 상서롭고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應侯曰:
「然。」
응후가 말하였다.
“그렇네.”
▶ 刺齒肥: 기름진 고기를 먹다.
▶ 紫綬: 자줏빛 끈. 官印에 묶은 끈.
▶ 揖讓: 예를 다하여 사양함. 겸손한 태도를 가짐.
▶ 釜鬲: 취사도구. 鬲은 솥.
▶ 宣言:큰소리치다. 떠벌리다.
▶ 雄俊: =雄傑. 호걸.
▶ 五帝: 중국 전설의 다섯 제왕.
▶ 惡:어찌.
▶ 倨: 오만함. 거만함.
▶ 讓: 꾸짖다.
▶ 成功者去: 사계절이 임무를 다하면 자동적으로 물러감.
▶ 百體: 몸의 온갖 곳. 신체.
▶ 質仁秉義: 仁을 근본으로 하려 正義를 주관하다. 質은 근본.
▶ 成理萬物: 일체사물을 다스리다.
▶ 天年: 사람의 자연적 수명.
▶ 繼其統: 先人의 전통을 계승하다.
▶ 名實純粹: 명성과 실제가 완전무결하다.
▶ 吉祥善事: 상서롭고 좋은 일.
蔡澤曰:
「若夫秦之商君,楚之吳起,越之大夫種,其卒然亦可願與?」
채택이 말하였다.
“그런데 秦의 商君, 楚의 吳起, 越의 대부 文種은 과연 흠모할 만하다고 여기십니까?”
應侯知蔡澤之欲困己以說,復謬曰:
응후는 채택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 설득하려 함을 알고 다시 궤변으로 말하였다.
「何為不可?
“어째서 안 되겠는가?
夫公孫鞅之事孝公也,極身無貳慮,盡公而不顧私;
設刀鋸以禁姦邪,信賞罰以致治;
披腹心,示情素,蒙怨咎,欺舊友,奪魏公子卬,安秦社稷,利百姓,卒為秦禽將破敵,攘地千里。
公孫鞅이 孝公을 섬김에, 종신토록 두 마음을 품지 않았고, 公事에 진력하여 私事를 돌보지 않았으며,
형벌을 만들어 간사한 행위를 금지하고 상벌을 믿게 행하여 훌륭하게 다스렸으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실을 보여서 원망을 받음도 무릅쓰고, 옛 친구마저 속여서 魏의 공자 卬을 사로잡아서, 秦의 사직을 편안케 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고, 결국 秦을 위해 장수를 사로잡고 적을 격파해 땅을 천 리나 빼앗았네.
吳起之事悼王也,使私不得害公,讒不得蔽忠,言不取茍合,行不取茍容,不為危易行,行義不辟難,然為霸主彊國,不辭禍凶。
오기는 楚悼王을 섬김에, 私利가 공익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讒言이 忠心을 가리지 못하게 하고, 말함에 구차하게 영합함을 취하지 않고, 행동함에 구차하게 모습 짓지 않으며, 위험하다고 행동을 바꾸지 않고, 의를 행함에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네. 그러나 군주를 패자로 만들고 나라를 강하게 함에는 재앙과 불길함도 마다하지 않았네.
▶ 若夫: 그런데. ~에 대하여는.
▶ 商君: 商鞅. 전국시대 秦의 법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정치가였다. 상나라를 분봉받아 후작이 되어 상앙으로 부르며 본래의 姓은 姬, 氏는 公孫, 이름은 鞅이다. 또 다른 별칭으로 魏의 公族출신이라서 衛鞅이라 불렸다. 진효공이 죽자 그에게 증오를 품고 있는 태자 영사가 즉위하자, 영사가 상앙의 변법을 반대하는 반대파들을 모아 상앙을 탄핵했고, 상앙은 반역자가 되어 거열형에 처해진다. <史記 卷68商君列傳>
▶ 大夫種:文種. 춘추시대 越의 관료 겸 정치가로, 字는 子禽이다. 범려와 함께 구천을 보좌하여 吳를 멸망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끝끝내 구천의 의심을 사서 숙청되었다.
▶ 謬: 사리에 맞지 않다. 교활하게 궤변을 하다.
▶ 極身: 종신.
▶ 貳慮: 두 마음.
▶ 刀鋸: 형벌. 칼과 톱.
▶ 情素: 본심. 진심.
▶ 欺舊友: 공손앙은 효공22년에 魏를 공격하였는데, 지난날의 친구인 公子驩과 친분을 내세워서 魏將인 公子卬을 꾀어서 사로잡게 하고 魏軍을 대파하였다.
▶ 攘: 빼앗다.
大夫種之事越王也,主雖困辱,悉忠而不解,主雖絕亡,盡能而弗離,成功而弗矜,貴富而不驕怠。
대부 문종이 越王 勾踐을 섬김에, 군주가 비록 곤욕을 당하여도 충성하며 게으르지 않았고, 군주가 비록 대가 끊기고 망할 처지가 되어도 능력을 다하여 떠나지 않았으며, 공을 이루었으나 자랑하지 않았고, 부귀하게 되어도 교만하고 게으르지 않았네.
若此三子者,固義之至也,忠之節也。
이와 같은 세 사람은 진실로 義의 지극함이요, 충의 節目이오.
是故君子以義死難,視死如歸;
生而辱不如死而榮。
그러므로 군자는 의를 지키고자 죽음으로 어려움에 대처하되, 죽음을 歸鄕하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서의 치욕이 죽어서의 영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오.
士固有殺身以成名,雖義之所在,雖死無所恨。
선비는 본래 자신을 죽여서 명예를 이루는 법이니, 의리가 있는 곳에는 죽음에도 원한이 없는 것일세.
何為不可哉?」
무엇 때문에 이들처럼 됨이 불가한가?”
蔡澤曰:
채택이 말하였다.
「主聖臣賢,天下之盛福也;
君明臣直,國之福也;
父慈子孝,夫信妻貞,家之福也。
“군주가 성스럽고 신하가 현명함은 천하의 성대한 복이며,
군주가 현명하고 신하가 정직함은 나라의 복이며,
아버지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움과 남편이 미덥고 아내가 정절이 있으면 집안의 복입니다.
故比干忠而不能存殷,子胥智而不能完吳,申生孝而晉國亂。
그러므로 比干은 충성스러웠으나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伍子胥는 지혜로웠으나 吳를 보전하지 못했고, 申生은 효성스러웠으나 晉은 어지러웠습니다.
是皆有忠臣孝子,而國家滅亂者,何也?
이처럼 모두 충신 또는 효자이었으나 나라와 집안이 망하고 어지러웠음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無明君賢父以聽之,故天下以其君父為僇辱而憐其臣子。
현명한 군주와 어진 아버지가 없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천하는 그 군주와 아버지를 욕보이고 그 신하와 자식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今商君、吳起、大夫種之為人臣,是也;
其君,非也。
그렇게 商君、吳起、大夫 文種은 남의 신하로 훌륭했으나,
그 군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故世稱三子致功而不見德,豈慕不遇世死乎?
그러므로 世人은 세 사람이 공을 세우고도 덕을 드러내지 않음을 칭송하지만 어찌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흠모하겠습니까?
夫待死而後可以立忠成名,是微子不足仁,孔子不足聖,管仲不足大也。
죽은 후에 충성을 지켜 명예를 이루기를 기다린다면, 微子는 어짊에는 부족하고, 孔子는 성인에 부족하고, 管仲도 위대함에 부족합니다.
夫人之立功,豈不期於成全邪?
무릇 사람이 공을 세움에 어찌 온전하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身與名俱全者,上也。
몸과 이름이 모두 온전한 자가 최상입니다.
名可法而身死者,其次也。
이름은 모범이 되었으나 몸이 죽은 자가 그다음입니다.
名在僇辱而身全者,下也。」
이름은 치욕에 있되 몸을 보전한 자가 가장 아래입니다.”
於是應侯稱善。
이에 응후는 옳다고 칭찬하였다.
▶ 解: 懈와 같으며 게으르다.
▶ 矜: 거만하다. 교만하다.
▶ 視死如歸: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말한다.
▶ 比干: 은나라 紂王의 叔父. 紂王이 음란한 행동을 자행하는 것을 보고 강력하게 간하자, 주왕이 노하여
“나는 聖人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 심장을 갈라 죽였다. <史記권38宋微子世家>
▶ 申生: 진헌공의 맏아들이며, 진혜공과 진문공의 맏형이다. 여희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자신을 사살하려고 하자 자결하였다.
▶ 微子: 이름은 啓로, 商王武乙의 맏아들이자 紂王의 이복형제이다. 紂王이 嫡子였기 때문에 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紂王에게 여러 번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나라를 떠났다가 周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周나라 신하가 되었다. 周公旦이 紂의 아들 武庚을 죽인 다음 微子에게 殷나라 종족을 통솔하라 명령하고 宋에 책봉하여 宋의 시조가 되었다. <史記 卷38宋微子世家>
蔡澤少得閒,因曰:
「夫商君、吳起、大夫種,其為人臣盡忠致功則可願矣,閎夭事文王,周公輔成王也,豈不亦忠聖乎?
以君臣論之,商君、吳起、大夫種其可願孰與閎夭、周公哉?」
채택이 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하였다.
“무릇 상군, 오기, 대부 문종은 남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여 공을 이룸이 본받을 만하다면, 閎夭가 문왕을 섬기고 周公이 成王을 보좌함은 어찌 극히 충성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君臣으로서 논하자면 상군, 오기, 대부 문종과 굉요, 주공 중에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應侯曰:
「商君、吳起、大夫種弗若也。」
응후가 말하였다.
“상군, 오기, 대부 문종이 못하오.”
▶ 得間: 짬을 얻다. 빈틈을 찾다.
▶ 願: 흠모하다. 사모하다.
▶ 商君吳起大夫種: 상앙은 진 효공, 오기는 楚도왕, 문종은 월왕 구천을 섬겼다.
▶ 閎夭: 周나라의 文王과 武王때의 명신. 殷나라의 紂가 문왕을 가두었을 때 有莘氏의 미녀와 驪戎의 명마, 기타 귀중한 물품을 구하여 주에게 헌납하고 문왕을 구해내었으며, 그 후에 무왕을 따라 주왕을 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弗若: =不若. ~만 못함.
蔡澤曰:
「然則君之主慈仁任忠,惇厚舊故,其賢智與有道之士為膠漆,義不倍功臣,孰與秦孝公、楚悼王、越王乎?」
채택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상국의 군주는 자애롭고 인자로워 충신을 신임하며, 옛 친구와 인정이 두텁고 후하며, 현명하고 지혜로워 도를 행하는 선비와 친밀하며, 의리상 공신을 저버리지 않으니, 秦효공, 楚도왕, 월왕 구천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습니까?”
應侯曰:
「未知何如也。」
응후가 말하였다.
“어떤지 모르겠소.”
蔡澤曰:
「今主親忠臣,不過秦孝公、楚悼王、越王,君之設智,能為主安危修政,治亂彊兵,批患折難,廣地殖穀,富國足家,彊主,尊社稷,顯宗廟,天下莫敢欺犯其主,主之威蓋震海內,功彰萬里之外,聲名光輝傳於千世,君孰與商君、吳起、大夫種?」
채택이 말하였다.
“지금 그대의 군주께서 충신과 가까움이 秦孝公、楚悼王、越王만 못하지만, 상국은 지혜와 재능을 발휘해 군주를 위해 위태로움을 안정시키고 정사를 바로잡고,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병사를 강하게 하고, 근심을 물리치고 어려움을 꺾어, 영토를 넓히고 곡식을 불려,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으며, 군주를 강하게 하고 사직을 높이고 종묘를 빛내니, 천하에 감히 군주를 속이고 범하는 자가 없으며 군주의 위엄이 천하를 뒤덮어 진동시키고, 공적이 만 리 밖까지 밝고, 명성의 광휘가 천세까지 전할 터이니, 상국을 상군, 오기, 대부 문종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應侯曰:
「不若。」
응후가 말하였다.
“그들만 못하오.”
蔡澤曰:
「今主之親忠臣不忘舊故不若孝公、悼王、句踐,而君之功績愛信親幸又不若商君、吳起、大夫種,然而君之祿位貴盛,私家之富過於三子,而身不退者,恐患之甚於三子,竊為君危之。
채택이 말하였다.
“지금의 군주께서 충신과 가까이하고 옛 친구를 잊지 않음이 진효공, 楚도왕, 월왕 구천만 못하고, 상국의 공적이나 신임과 총애를 받음이 또 상군, 오기, 대부 문종만 못한데도, 상국의 봉록과 지위는 높고 많으며, 사사로운 재산은 세 사람보다 많은데도 물러나지 않는 자에게는 아마 재앙이 세 사람보다 심할 터이라서, 삼가 상국을 위하여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語曰『日中則移,月滿則虧』。
옛말에 일렀습니다.
‘해가 중천에 이르면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物盛則衰,天地之常數也。
만물이 성하면 쇠함은 천지만물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進退盈縮,與時變化,聖人之常道也。
나아가고 물러나며 차고 쪼그라듦이 때와 더불어 변화함은 성인의 불변하는 도리입니다.
故『國有道則仕,國無道則隱』。
그러므로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몸을 숨긴다.’라고 합니다.
聖人曰
『飛龍在天,利見大人』。
『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
성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날아오르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대인을 만나 이롭다.’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今君之怨已讎而德已報,意欲至矣,而無變計,竊為君不取也。
그런데 상국의 원한을 이미 갚았고, 은혜도 보답했으니 원했던 바를 이루었는데 ,변화된 계책이 없으니, 삼가 취할 바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且夫翠、鵠、犀、象,其處勢非不遠死也,而所以死者,惑於餌也。
물총새, 고니, 코뿔소, 코끼리는 그들이 처한 형세가 죽음과 멀지 않음은 아니나, 죽는 이유는 미끼에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蘇秦、智伯之智,非不足以辟辱遠死也,而所以死者,惑於貪利不止也。
蘇秦과 智伯의 지혜가 치욕을 피하고 죽음을 멀리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는데도 죽은 이유는 이익을 탐함에 미혹되어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是以聖人制禮節欲,取於民有度,使之以時,用之有止,故志不溢,行不驕,常與道俱而不失,故天下承而不絕。
이에 성인은 예법을 만들어 욕심을 누르고, 백성에게 賦稅함에 한도를 두었으며, 백성을 부림에 때를 고려하였고, 백성을 씀에 멈춤이 있었으므로, 생각이 지나치지 않고 행동이 교만하지 않으며, 언제나 원칙과 함께하여 실수하지 않았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계승하여 끊지 않았습니다.
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至於葵丘之會,有驕矜之志,畔者九國。
옛날 제환공이 제후와 아홉 번 회합하여 천하를 바로 잡았으나, 葵丘의 회맹에 이르러 교만과 과시의 뜻을 보이자, 배반한 자가 9國이었습니다.
吳王夫差兵無敵於天下,勇彊以輕諸侯,陵齊晉,故遂以殺身亡國。
오왕 夫差의 군대는 天下無敵이었으나, 용맹함과 강함을 내세워 제후를 경시하고 齊와 晉을 업신여겼으므로, 결국 그 때문에 자신을 죽이고 나라를 망쳤습니다.
夏育、太史噭叱呼駭三軍,然而身死於庸夫。
夏育과 太史噭는 고함을 질러 삼군을 놀라게 했으나, 하찮은 사내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此皆乘至盛而不返道理,不居卑退處儉約之患也。
이것은 모두 성함에 이름을 타서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물러나지 않고 검약하지 않은 재앙입니다.
▶ 膠漆: 정이 깊고 두텁다. 아교와 옻.
▶ 倍: 배반.
▶ 設智: 지혜와 재능을 발휘함.
▶ 蓋震: 압도하다. 진동하다.
▶ 常數: 변하지 않는 규칙.
▶ 盈縮: 남음과 모자람.
▶ 常道: 항상 지켜야 할 도리. 당연한 이치.
▶ 國有道則仕:논어 위령공편에 “邦有道則仕,邦無道則可卷而懷之. : 나라에 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道가 없으면 거두어 몸을 숨긴다.”라고 하였다. <論語·衛靈公>
▶ 飛龍在天: 易經乾卦에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 ‘날아오르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대인을 만나 이롭다.’라고 하였다. <易經乾卦>
▶ 不義而富且貴: 論語 述而에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함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 蘇秦: 전국시대의 策士. 秦에 대항하여 山東의6국인 燕·趙·韓·魏·齊·楚의 合縱을 설득하여 성공함. 뒤에 張儀에 의해 합종의 약속이 무너져 齊를 섬겼으나 암살됨.
▶ 智伯: 춘추전국시대 晉의 卿. 趙襄子를 공격하려다가, 趙ㆍ韓ㆍ魏의 연합군에게 멸망당함.
▶ 一匡天下: 혼란스러운 천하를 안정시킴. 천하를 바로잡다.
▶ 葵丘之會: 제환공은 기원전651년 葵丘에서 제후을 불러 모아 會盟하였다.
▶ 夏育: 衛의 전설상의 역사다. 千鈞의 무게를 들 수 있다고 하였으며, 후에 魯대부 申繻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 太史噭: 전국시대의 齊 출신 역사로 진무왕을 모신 孟賁이라고 한다.
夫商君為秦孝公明法令,禁姦本,尊爵必賞,有罪必罰,平權衡,正度量,調輕重,決裂阡陌,以靜生民之業而一其俗,勸民耕農利土,一室無二事,力田稸積,習戰陳之事,是以兵動而地廣,兵休而國富,故秦無敵於天下,立威諸侯,成秦國之業。
商君은 진효공을 위해 법령을 정비하여 간사한 근원을 금지하며, 지위를 높여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주며, 도량형을 통일해 도량을 바르게 하고 경중을 조절했으며, 논밭 사이의 길을 열어,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풍속을 하나로 하였으며, 백성에게 농경을 권하여 생산력을 높이고, 한 집에서 두 가지 생업을 할 수 없게 했으며, 농업에 힘써서 식량을 비축하고 軍事 훈련을 익히게 하니, 이 때문에 군사를 출동할 때마다 영토가 넓어지고 병사가 쉴 때는 나라가 부유해지니, 秦은 천하에 적이 없었으며, 제후에게 위엄을 세우고 秦의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功已成矣,而遂以車裂。
공적을 이루고 나서 결국 그것 때문에 車裂되었습니다.
▶ 商君: 商鞅. 전국시대 秦의 법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정치가였다. 상나라를 분봉받아 후작이 되어 상앙으로 부르며 본래의 姓은 姬, 氏는 公孫, 이름은 鞅이다. 또 다른 별칭으로 魏의 公族출신이라서 衛鞅이라 불렸다. 진 효공이 죽자 그에게 증오를 품고 있는 태자 영사가 즉위하자, 영사가 상앙의 변법을 반대하는 반대파들을 모아 상앙을 탄핵했고, 상앙은 반역자가 되어 거열형에 처해진다. <史記 卷68商君列傳>
▶ 平權衡: 도량형을 통일하다. 權衡은 저울. 무게를 달다.
▶ 決裂阡陌: 논밭 사이의 길을 열다. 阡陌가로 세로로 난논밭 길.
▶ 車裂: 車裂刑. 옛날 죄인의 四肢를 다섯 대의 수레에 나누어 묶고 찢어 죽이던 酷刑.
楚地方數千里,持戟百萬,白起率數萬之師以與楚戰,一戰舉鄢郢以燒夷陵,再戰南并蜀漢。
楚의 땅은 사방 수천 리이고, 무장한 병사가 백만인데, 백기는 수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楚와 싸움에, 한 번 싸워서 언과 영을 점거하고 夷陵을 불태웠으며, 두 번 싸워서 남쪽으로 촉과 漢中을 병합하였습니다.
又越韓、魏而攻彊趙,北阬馬服,誅屠四十餘萬之衆,盡之于長平之下,流血成川,沸聲若雷,遂入圍邯鄲,使秦有帝業。
또 韓、魏를 넘어서 강성한 趙를 공격하여 북으로 마복군 조괄을 생매장하고, 40여 만의 병사를 도륙하여 장평에서 섬멸하였습니다.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고 울부짖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마침내 한단 땅을 포위하여 秦이 帝業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楚、趙天下之彊國而秦之仇敵也,自是之後,楚、趙皆懾伏不敢攻秦者,白起之勢也。
楚와 趙는 천하의 강국으로 秦의 원수이었으나, 그 이후 楚와 趙는 모두 두려워 순종하고 감히 秦을 공격하지 못함은 백기의 위세 때문이었습니다.
身所服者七十餘城,功已成矣,而遂賜劍死於杜郵。
몸소 항복받은 바가 70여 성이었으나 공을 이루고 나자, 마침내 劍을 하사하니 杜郵에서 죽었습니다.
▶ 白起: 전국시대 秦의 장군이다. 王翦과 더불어 전국시대 秦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秦 昭王때 趙, 魏, 韓, 楚 등을 공격하여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秦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범수가 참언하여 昭王이 검을 보내 자결을 명하니 두우에서 자살하였다.
▶ 持戟: 창을 든 병사.
▶ 北阬馬服: 秦과 趙 사이의 장평대전에서 馬服子 趙括과 趙軍 40여 만을 생매장하였다. 阬은坑과 같으며 생매장하다.
▶ 懾伏: =慑服. 겁나게 하여 굴복시키다. 두려워서 순종하다.
吳起為楚悼王立法,卑減大臣之威重,罷無能,廢無用,損不急之官,塞私門之請,一楚國之俗,禁游客之民,精耕戰之士,南收楊越,北并陳、蔡,破橫散從,使馳說之士無所開其口,禁朋黨以勵百姓,定楚國之政,兵震天下,威服諸侯。
오기는 楚悼王을 위해 법령을 제정하였고, 대신들의 권력을 약화시켰고, 무능한 자를 파면하고, 쓸모없는 자리를 없앴으며, 긴급하지 않은 관직을 줄였고, 사사로운 청탁을 막았으며, 楚의 풍속을 통일시켰고, 백성들이 유랑함을 금지하고, 농사를 짓고 전투하는 병사를 훈련하여 남쪽으로 楊州와 越을 손에 넣고, 북쪽으로 陳과 蔡를 병합하고, 연횡을 깨뜨리고 합종을 흩뜨려서, 종횡가가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붕당을 금지하고 백성을 격려하여, 楚의 정치를 안정시키고, 병사는 천하를 떨게 했으며 위세는 제후를 복종시켰습니다.
功已成矣,而卒枝解。
공적을 이루고 나자, 마침내 사지가 찢겼습니다.
▶ 吳起: 吳子로 불리우며, 전국시대 軍事 지도자이며 정치가였다. 魏의 사람으로 魯, 魏, 楚를 섬겼다. 魏에서 그는 많은 큰 전투를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후에 楚로 도주하여 悼王에 의해 相國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楚에서 봉건 혁명을 이끌어 楚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혁명이 楚의 귀족을 노하게 하여 楚悼王이 죽은 뒤 대신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吳子兵法이 있다. <史記 卷65孫子吳起列傳>
▶ 卑減: 약화시키다.
▶ 私門: 개인의 집이나 가문. 호족과 귀족들을 말한다.
▶ 馳說之士: 분주히 유세하러 왕래하는 사람들. 종횡가.
▶ 枝解: =支解. 고대의 형벌로 팔, 다리를 찢어 죽이는 형벌.
大夫種為越王深謀遠計,免會稽之危,以亡為存,因辱為榮,墾草入邑,辟地殖穀,率四方之士,專上下之力,輔句踐之賢,報夫差之讎,卒擒勁吳。
대부 文種은 월왕을 위해 깊은 꾀와 원대한 계획을 세워 會稽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여,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키고 치욕을 영예로 돌렸으며, 황무지를 일구어 고을로 만들고, 외진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증산하고, 사방의 선비를 통솔하여 위, 아래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구천의 현명함을 보좌하여 부차에게 원수를 갚고 마침내 강력했던 吳軍을 사로잡았습니다.
令越成霸。
그리고 越의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功已彰而信矣,句踐終負而殺之。
그 공적이 뚜렷하여 믿음을 얻었으나 구천은 끝내 그를 저버리고 죽였습니다.
此四子者,功成不去,禍至於此。
이 네 사람은 공을 이루고도 떠나지 않았기에 화가 거기에 이른 것입니다.
此所謂信而不能詘,往而不能返者也。
이것이 소위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을 모르며, 나아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范蠡知之,超然辟世,長為陶朱公。
范蠡는 이를 알고 초연하게 세상을 벗어나 오래도록 陶朱公으로 살았습니다.
▶ 大夫種:文種. 춘추시대 越의 관료 겸 정치가로, 字는 子禽이다. 범려와 함께 구천을 보좌하여 吳를 멸망시킴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越의 승상을 지내다가 기원전472년 구천왕에게 모반역모 관련 혐의로 구천의 노여움을 사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陶朱公: 范蠡의 自號. 范蠡는 춘추전국시대 越의 군인 겸 정치가이며, 자는 少伯이다. 楚 초기 가장 유명한 정치가, 軍略家, 경제학자였으나 越王 구천을 섬기고 구천을 춘추오패에 설 수 있기까지 기여한 공로가 가장 크다. 대업이 달성되어 득의양양한 월왕 구천을 보고 越을 탈출하여 이름을 바꾸고 장사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범려의 이름을 들은 齊는 범려에게 相國 자리를 권유하지만, 범려는 고명이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고 재차 도망간다. 齊에서 도망한 범려는 趙로 와서 현재 산동성 도현으로 거처를 옮기고 陶朱公이라고 자칭했다
君獨不觀夫博者乎?
상국은 도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或欲大投,或欲分功,此皆君之所明知也。
어떤 사람은 크게 걸고, 어떤 사람은 나누어서 거는데 이는 모두 상국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今君相秦,計不下席,謀不出廊廟,坐制諸侯,利施三川,以實宜陽,決羊腸之險,塞太行之道,又斬范、中行之涂,六國不得合從,棧道千里,通於蜀漢,使天下皆畏秦,秦之欲得矣,君之功極矣,此亦秦之分功之時也。
지금 상국은 秦의 相國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략을 세우며, 조정을 나오지 않고 책략을 세워 앉은 채로 제후를 제압하며, 三川일대를 도모한 위세로 宜陽을 튼튼하게 하고, 양의 창자 같은 험지를 끊어 태행산의 길을 막고, 또 范氏와 中行氏의 길을 끊어 산동의 여섯 나라의 합종을 막고, 천 리나 되는 棧道를 놓아 촉 땅과 한중 땅을 통하게 하여, 천하가 모두 秦을 두려워하니 秦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고, 상국의 공적은 극에 달했으니, 지금은 또한 秦이 나누어 걸어야 할 때입니다.
▶ 博: 도박.
▶ 大投: 노름 돈을 크게 걸다.
▶ 分功: 노름 돈을 나눠서 걸다.
▶ 廊廟: 朝廷을 말한다.
▶ 范中行: 范氏와 中行氏. 秦의 조정의 실권을 가진 제후가 아닌 세력 있는 가문을 六卿이라 하였으며, 范氏, 中行氏, 智氏, 韓氏, 魏氏, 趙氏를 육경이라 불렀다.
▶ 棧道: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듯이 하여 낸 길
如是而不退,則商君、白公、吳起、大夫種是也。
이 같은 상황에도 물러나지 않으면, 商君、白公、吳起、大夫種이 이것입니다.
吾聞之,
『鑒於水者見面之容,鑒於人者知吉與凶』。
제가 듣기에,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書曰『成功之下,不可久處』。
고서에 이르기를,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四子之禍,君何居焉?
네 사람이 재앙을 입었는데 상국께서는 어찌 머물고 계십니까?
君何不以此時歸相印,讓賢者而授之,退而巖居川觀,必有伯夷之廉,長為應侯。
상국께서는 어찌 이 기회에 相國의 관인을 돌려줘서 어진 사람에게 넘겨주고, 물러나 바위 밑에 살며 시내를 구경하며 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하면 틀림없이 伯夷의 청렴함을 가지며 오래도록 응후로 남겠습니다.
▶ 商君, 白公, 吳起, 大夫種: 앞에서 설명한 인물들로 공을 세우고 죽임을 당한 인물들이다. 상군은 商鞅, 백공은 白起, 대부종은 文種을 말한다.
▶ 鑒: 거울.
▶ 書: 逸周書를 말한다. 일주서는 원본이 없어지고 남은 편들로 구성된 周書를 말한다.
▶ 成功之下,不可久處: 성공한 곳에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자연히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많아 화를 당하게 되니 오래 머물지 말라는 뜻이다. <成功者退, 成功者去>
世世稱孤,而有許由、延陵季子之讓,喬松之壽,孰與以禍終哉?
대대로 稱孤하며 許由나 延陵季子의 겸양을 가지며, 왕자 喬나 赤松子처럼 장수할 수 있는데, 화를 입고 생을 마침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即君何居焉?
상국께서는 어느 쪽을 택하려 하십니까?
忍不能自離,疑不能自決,必有四子之禍矣。
차마 스스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면, 필시 네 사람과 같은 재앙이 있을 터입니다.
《易》曰
『亢龍有悔』,
此言上而不能下,信而不能詘,往而不能自返者也。
주역에서 말하였습니다.
‘끝까지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올 줄 모르고, 펼 줄만 알고 굽힐 줄을 모르며,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願君孰計之!」
상국께서는 이것을 숙려하십시오.
▶ 稱孤: 스스로 왕이라 칭함.
▶ 許由 : 중국 고대의 隱者. 架空의 인물로, 여기서는 堯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중국 最古의 隱者라고 할 수 있다.
▶ 延陵季子: 季札. 계찰은 춘추시대 吳王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다. 延陵에 봉해져 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이를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 喬松:전설 속의 신선인 王子喬와 赤松子를 말한다.
▶ 亢龍有悔: 역경의 건괘에 나오는 말로 극히 높은 지위에 있으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하게 된다는 뜻으로 오만해짐을 경계하는 말이다.
應侯曰:
「善。
吾聞『欲而不知止[足],失其所以欲;
有而不知足止,失其所以有』。
先生幸教,睢敬受命。」
응후가 말하였다.
“알겠소.
나도 듣기에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것을 잃고,
가지고도 그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을 잃는다.’라고 했소.
선생께서 다행히 가르침을 주셨으니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소.”
於是乃延入坐,為上客。
이에 채택을 안으로 맞아들이고 상객으로 삼았다.
後數日,入朝,言於秦昭王曰:
「客新有從山東來者曰蔡澤,其人辯士,明於三王之事,五伯之業,世俗之變,足以寄秦國之政。
臣之見人甚衆,莫及,臣不如也。
臣敢以聞。」
며칠 후, 범수가 입조하여 秦昭王에게 말하였다.
“빈객이 산동에서 새로 와서 채택이라 하는데, 爲人이 辯士로서 삼왕의 일, 오패의 업, 세속의 변화에 밝으니 秦의 정치를 맡기기에 충분합니다.
신이 사람을 만나봄이 매우 많으나, 그만한 사람은 없었으며, 신조차 그만 못합니다.
신이 감히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秦昭王召見,與語,大說之,拜為客卿。
秦昭王은 채택을 불러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매우 기뻐하며 客卿에 임명하였다.
應侯因謝病請歸相印。
응후가 병을 핑계로 相國의 관인을 돌려주고자 청하였다.
昭王彊起應侯,應侯遂稱病甐。
昭王이 억지로 응후를 머물게 했으나, 응후가 마침내 병이 위독하다고 말하였다.
范睢免相,昭王新說蔡澤計畫,遂拜為秦相,東收周室。
범수가 相國에서 면직되자 秦昭王은 새로이 채택의 계획을 듣고 기뻐하며 마침내 그를 秦의 相國에 임명하고, 동쪽으로 주나라 왕실을 손에 넣었다.
▶ 病甐: 병이 위독하다.
蔡澤相秦數月,人或惡之,懼誅,乃謝病歸相印,號為綱成君。
채택이 秦의 相國이 되고 몇 달, 누군가 그를 모함하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고여 병을 핑계로 相國의 관인을 반납하니 그를 綱成君이라 불렀다.
居秦十餘年,事昭王、孝文王、莊襄王。
秦에 십여 년을 머물며 昭王、孝文王、莊襄王을 섬겼다.
卒事始皇帝,為秦使於燕,三年而燕使太子丹入質於秦。
마침내 始皇帝를 섬기며 燕에 秦의 사자로 가서, 3년 후에 燕이 太子 丹을 秦에 인질로 보내게 하였다.
▶ 太子丹: 춘추전국시대 燕의 마지막 태자. 秦始皇이 六國을 병합할 야욕이 있음을 알고 자객 荊軻를 시켜 始皇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다.
▶ 入質: 인질로 보냄. 볼모로 잡힘.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韓子稱
「長袖善舞,多錢善賈」,信哉是言也!
韓非子가 일컫기를,
“옷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밑천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라고 했으니,
믿을 만하도다. 이 말이여!
范睢、蔡澤世所謂一切辯士,然游說諸侯至白首無所遇者,非計策之拙,所為說力少也。
范睢、蔡澤은 세상의 소위 一切辯士였으나, 제후에게 유세하여 백발이 되도록 알아주는 자를 만나지 못했으니,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의 효과가 적었기 때문이다.
及二人羈旅入秦,繼踵取卿相,垂功於天下者,固彊弱之勢異也。
두 사람의 나그네가 秦에 들어가서 연달아 卿相의 자리를 얻어 천하에 공적을 드리움은, 실로 강약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然士亦有偶合,賢者多如此二子,不得盡意,豈可勝道哉!
그러므로 선비에게는 역시 때를 만남이 중요하니, 이 두 사람 같은 현자가 많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는 못하니, 어찌 이루 말하겠는가!
然二子不困緦惡能激乎?
그러나 두 사람도 곤궁에 빠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어찌 분발할 수 있었겠는가?
▶ 長袖善舞,多錢善賈: 韓非子의 [五蠹]에 나오는 말로 잘 다스려진 나라와 강한 나라는 일하기가 쉽고 약하고 어지러운 나라는 일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賈는 장사.
▶ 一切辯士: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자재로 유세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 羈旅: 객지에 머물러 있는 나그네.
▶ 說力: 유세의 효과.
▶ 激: 奮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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