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顔淵 第十二(논어집주 안연 제십이) 第二十章

耽古樓主 2023. 3. 1. 01:45

▣ 第二十章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子張이 물었다.
“선비가 어떠하여야 그를 達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
(바로) ‘어떠하여야라고 해석하면 까지 해석한 셈이 된다

達者,德孚於人而行無不得之謂。
이란 자신의 이 남에게 믿어져서 행함에 얻지 못함이 없는 것을 이른다.

達者謂德孚於人而行無不得을 도치한 것

 

子曰:
「何哉,爾所謂達者?」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인가? 네가 말하는 達이란 것이.”

子張務外,夫子蓋已知其發問之意。

子張은 외면을 힘썼으니, 夫子가 아마도 이미 그의 發問한 뜻을 아셨다.


故反詰之,將以發其病而藥之也。
그러므로 反問해서 장차 그 병통을 드러내어 치료해주려고 하셨다.

=

藥之: 명사에 를 붙여 동사화한다

 

子張對曰:
「在邦必聞,在家必聞。」

子張이 대답하였다.
“(제후의)나라에 있어도 틀림없이 명예가 드러나 알려지며, (대부)집안에 있어도 틀림없이 명예가 드러나 알려지는 것입니다.”

言名譽著聞也。
명예가 드러남을 말한다.

 

子曰:
「是聞也,非達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聞與達相似而不同,乃誠偽之所以分,學者不可不審也。

은 서로 비슷하나 같지 않으니, 바로 의 분별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故夫子既明辨之,下文又詳言之。
그러므로 夫子께서 분명하게 분별하시고 아래 글에 더욱 상세히 말씀하셨다.

:더욱

 

夫達也者,質直而好義,察言而觀色,慮以下人。
在邦必達,在家必達。
達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자신을 낮추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후의 나라에 있어도 틀림없이 達이 되며, 대부의 집안에 있어도 틀림없이 達이 된다.
質直=(盡己之心)(以實之行)
下人=下己於人

內主忠信, 而所行合宜,審於接物而卑以自牧,皆自修於內,不求人知之事。

안으로 忠信을 위주로 하고 행하는 바가 []에 합하며 남을 대하는 데에 살펴보고 겸손함으로써 자신을 기름은, 다 자신을 안에서 닦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일이다.

接物=對人

自牧,自修 : 뒤에 타동사가 오면 자신이 되어 그 타동사의 목적어가 된다

不求人知之事: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일이다.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일이 아니다.(=非求人知之事)


然德修於己而人信之,則所行自無窒礙矣。
그러나 이 자기에게 닦아져서 남들이 믿는다면 행하는 바에 저절로 막힘이 없게 된다.

 

夫聞也者,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
在邦必聞,在家必聞。」

聞이란 얼굴빛은 仁을 취하나 행실은 말과 어긋나고, 仁人으로 자처하여 꺼리지 않는 것이다.
제후의 나라에 있어도 틀림없이 명예가 드러나며, 집안에 있어도 틀림없이 명예가 드러난다.”
:疑憚

善其顏色以取於仁,而行實背之,又自以為是而無所忌憚。

얼굴빛을 좋게 하여 을 취하되 행실은 실제의 덕에 위배되며, 또 스스로 이것을 옳다고 여겨 忌憚하는 바가 없다.


此不務實而專務求名者,故虛譽雖隆而實德則病矣。

이것은 실제를 힘쓰지 않고 오로지 이름을 구하는 것만 힘쓰는 자이다. 그러므로 헛된 명예가 비록 높으나 실제 은 병든 것이다.


程子曰:
「學者須是務實,不要近名。
有意近名,大本已失。
更學何事?

為名而學,則是偽也。
今之學者,大抵為名, 為名與為利雖清濁不同,然其利心則一也。」

程子가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모름지기 실제를 힘써야 하고, 명예에 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명예를 구함에 뜻이 있으면 큰 근본을 이미 잃는다.

다시 무슨 일을 배우겠는가?

명예를 위하여 배운다면 이것은 거짓이다.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대부분 명예를 위하니, 명예를 위함과 이익을 위함은 비록 이 같지 않으나 利己心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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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要近名=不欲求名

 

尹氏曰:
「子張之學,病在乎不務實。
故孔子告之,皆篤實之事,充乎內而發乎外者也。
當時門人親受聖人之教,而差失有如此者,況後世乎?」

尹氏가 말하였다.

子張學問의 병통은 실제를 힘쓰지 않음에 있었다.

그러므로 孔子가 말씀해 주신 것은 다 실제에 독실히 하는 일이니, 내면에 충만되면 외면에 발로되는 것이었다.

당시에 門人들은 직접 聖人의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잘못됨이 이와 같음이 있었으니, 하물며 후세에 (私淑하는 자에)있어서이겠는가?”

私淑 親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