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七章
顏淵死,顏路請子之車以為之槨。
顔淵이 죽자 顔路가 孔子의 수레를 팔아 외관〔槨〕을 만들 것을 청하였다.
顏路,淵之父,名無繇。
顔路는 顔回의 아버지이니, 이름은 無繇이다.
少孔子六歲,孔子始教而受學焉。
孔子보다 6세가 적고, 孔子께서 처음 가르칠 적에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공자는 17세에 맹의자를 처음으로 제자로 받았다
槨,外棺也。
槨은 外棺이다.
請為槨,欲賣車以買槨也。
請為槨이란 수레를 팔아 槨을 사려고 한 것이다.
子曰:
「才不才,亦各言其子也。
鯉也死,有棺而無槨。
吾不徒行以為之槨。以吾從大夫之後,不可徒行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 또한 각각 자기의 아들이라 말할 것이다.
<내 아들> 鯉가 죽었을 때 棺만 있었고 槨은 없었다.
내가 도보로 다니면서 槨을 만들어주지 못함은, 내가 大夫의 뒤를 따름에 도보로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鯉,孔子之子伯魚也,先孔子卒。
鯉는 孔子의 아들 伯魚인데 孔子보다 먼저 죽었다.
言鯉之才雖不及顏淵,然己與顏路以父視之,則皆子也。
鯉의 재주가 비록 顔淵에게 미치지 못하나, 자기와 顔路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자식이라고 말씀하셨다.
孔子時已致仕,尚從大夫之列,言後,謙辭。
孔子가 이때 이미 致仕[벼슬을 내놓음]하였으나 아직도 大夫의 班列을 따랐는데, 뒤라고 말씀한 것은 겸사이다.
胡氏曰:
「孔子遇舊館人之喪,嘗脫驂以賻之矣。
今乃不許顏路之請,何邪?
葬可以無槨,驂可以脫而復求,大夫不可以徒行,命車不可以與人而鬻諸市也。
且為所識窮乏者得我,而勉強以副其意,豈誠心與直道哉?
或者以為君子行禮,視吾之有無而已。
夫君子之用財,視義之可否豈獨視有無而已哉?」
胡氏가 말하였다.
“孔子께서 옛 여관 주인의 喪을 만나자, 일찍이 참마(驂馬)[곁말]를 벗겨서 부의를 하셨다.
그런데 지금 顔路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이번 초상에는 외관이 없어도 되고 곁말은 벗겼다가 다시 구할 수도 있으며, 大夫는 걸어 다닐 수 없고, <임금께서 하사한> 命車는 남에게 주어서 시장에 팔게 할 수 없다.
또 내가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나의 은덕을 고맙게 여기도록 하고자 억지로 그 뜻에 부응한다면, 어찌 진실된 마음이겠으며 바른 도리이겠는가?
혹자(蘇軾)는 말하기를 ‘君子는 禮를 행함에 자신의 家勢에 있고 없음을 살펴볼 뿐이다.’하였다.
그러나 君子가 재물을 씀에는 義理의 옳고 그름을 보는 것이니, 어찌 다만 있고 없음만을 볼 뿐이겠는가?”
▶驂馬: 수레 양옆에 갖추는 말. 앞서가는 말은 服馬이고 복마가 지치면 참마와 교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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