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

한문의 허사(虛詞) 于

耽古樓主 2022. 12. 2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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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의 허사(虛詞)
于時 이때
于是 그리하여
于是乎 그리하여
于是焉 그리하여
于是乃 그리하여()
于是遂 그리하여
於此 이에


자와 는 본래 별개의 글자였지만, 허사로 쓰이면서부터 이 두 글자의 용법상의 차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古書에서는 자보다는 자를 더 많이 썼는데, 西周 시기 이후에 자가 나타나 쓰이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가 자를 겸하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 두 글자의 용법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이 자를 자로 바꿔놓아야 더 잘 보인다.


이 글자는, 일반적으로
介詞로 쓰이지만 그 용법이 매우 신축적이다.
접속사(連詞),
語氣詞,
助詞,
감탄사로도 쓰이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또한 ()자를 포함하는 構成的 多音節語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于是그래서]와 같은 다음절어는 連詞로서 현대 중국어에서도 쓰이고 있지만, 古書 중에 보이는 于是는 다른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이에 관하여는 후단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1. 單音節語어로서의 ()
(1) () ~ 에 있어서로 해석할 수 있다.

시간,

장소,

지위,

의지 등을 표시한다.

 

” “에서” [시간이나 장소를 나타냄]

子擊磬于衛. 論語 憲問

공자가 위나라에서 석경을 쳤다.

 

及餓死于申亥之家, 爲天下笑. 史記 楚世家

후에 신해의 집에서 굶어 죽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子于是日哭, 則不歌. 論語 述而

공자께서는 어느 날에 곡을 하면 (그 날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때로는 ()자는 ~~에서로 해석하는 것보다 ~에 즈음하여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于威, 宣之際, 孟子, 荀卿之列咸遵夫子之業而潤色之. 史記 儒林列傳

제나라의 위왕, 선왕 시대에 즈음하여, 맹자와 순경(순자)의 대열은 모두 공자의 학설을 준봉하여 더욱 발전시켰다.

 

()는 어떤 지위가 이전의 것에 비하여 달라진 것을 나타낼 때 쓰인다. “에 대하여로 해석한다.

 

吾三分四軍與諸侯之銳以逆來者, 于我未病, 楚不能矣.左傳 襄公9

우리는 우리의 4개 군을 3개 군단으로 나누어, 제후들의 정예 부대들과 더불어 쳐들어오는 초군을 맞이하면, 우리는 피로하지 않았는데 대하여 초군은 피로하여 싸우지 못할 것이다.

 

且矯魏王令奪晉鄙兵以救趙, 于趙則有功矣, 于魏則未爲忠臣也.史記 信陵君傳

게다가 위나라 왕의 명령을 속이고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에 대해서는 공로가 되겠지만, 위나라에 대하여는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는 생각, 의향, 취지를 나타낸다.

 

客有觀津人朱英謂春申君曰: “人皆以楚爲强而君用之弱, 其于英不然.”史記 春申君列傳

빈객 중에는 관진 사람으로 주영이란 자가 있었다. 그가 춘신군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지난 날에는 초나라가 강했었는데 군께서 정치를 하고 나서부터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于是始皇問李信: “吾欲攻取荊, 于將軍度用幾何人而足?” 史記 王翦列傳

이리하여 진시황이 이신에게 물었다: “나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병탄하고자 한다. 장군의 생각에 군대가 얼마나 필요한가?”

 

¶ “今吳楚反, 于公何如?” 對曰: “不足憂也.”史記 吳王濞列傳

지금 오나라와 초나라가 모반을 했는데, 그대의 생각에 이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봅니까?” 원앙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상기 생각, 의향, 취지의 자의 의미로 해석할 수 없으며, 차라리 해석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혹자는 각도를 달리하여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2) () 에 대하여를 뜻한다.

☞① 동작의 대상,

심리작용 및

양자 사이의 관계를 나타냄

 

동작의 대상

 

子曰: 始吾于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于人也, 聽其言而觀其行, 于予與, 改是. 論語 公冶長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었는데, 이제는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다시 그 사람의 행실을 관찰하게 되었다. 재여 때문에 이것을 고치게 되었다.”

 

: “我于辭命, 則不能也.” 孟子 公孫丑上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말에 있어서는 잘 못한다.”

 

于官屬掾吏, 務掩過揚善.漢書 丙吉傳

하급 관리들에게는 오직 과오를 덮어주고 선행을 표창해주어야 한다.

 

심리작용

吾何快于是? 孟子 梁惠王上

내 어찌 그것에 대하여 통쾌하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吾甚慚于盟子. 孟子 公孫丑下

나는 맹자에게 참으로 부끄럽다.

 

양자 사이의 관계

麒麟之于走獸, 鳳凰之于飛鳥, 泰山之于丘垤, 河海之于行潦, 類也. 聖人之于民, 亦類也. 孟子 公孫丑上

기린과 달리는 짐승, 봉황과 나는 새, 태산과 개미집, 하해와 장마 빗줄기가 모두 같은 종류이다. 성인과 백성도 역시 같은 종류이다.

 

且今時越之于泰, 猶郡縣也.史記 張儀列傳

게다가 현재 월국과 태국과의 관계는 마치 군현 관계와 같다.

 

(3) () 으로부터” “을 기점으로 라는 의미로 쓰인다.

今燕虐其民, 王往而征之, 民以爲將拯己于水火之中也. 孟子 梁惠王下

이제 연나라가 자기 나라 백성을 학대하거늘, 왕이 가서 정복하니, 연나라 백성들은 왕을 장차 자기들을 물과 불로부터 건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逢蒙學射於羿. 孟子 離婁下

봉몽이 예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다.

 

(4) () 에게를 뜻하며, 이는 동작의 접수자를 표시한다.

使狐偃將上軍, 讓于狐毛 而佐之 左傳 僖公27

호언으로 하여금 상군을 거느리게 하자, 그는 형인 호모에게 양보하고 형을 도왔다

 

上與梁王燕飮, 嘗從容言曰: “千秋萬歲後, 傳于王.”史記 梁孝王世家

일찍이 황제는 연회 때에 양효왕에게 슬며시 이렇게 말했다: “짐이 죽은 후 재위를 그대에게 전해주리라.”

東方朔割炙于細君. 漢書 揚雄傳 解嘲

동방삭은 고깃덩어리를 잘라 그의 부인에게 주었다.

 

(5) () 으로써를 뜻한다.

人無于水監, 當于民監. 尙書 酒誥

통치자는 물로써 거울을 삼지 말고 사람으로써 거울을 삼아야 한다.

 

慈於戰則勝, 以守則固. 韓非子 解老篇

자애는 전쟁으로 쓰면 곧 승리하고, 방어용으로 쓰면 견고해진다.

 

薊丘之植, 植于汶篁.史記 樂毅列傳 報燕惠王書

제나라의 汶篁薊丘에 이식되었습니다.

 

(6) ()는 피동문에서 동작의 주체를 표시하는 전치사로 쓰여 에게 당하다를 뜻한다.

禦人以口給, 屢憎于人. 論語 公冶長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으면,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게 된다.

 

內困于父母, 外困于諸侯. 國語 晉語2

안으로는 부모에게 곤액을 입고, 밖으로는 제후에게 곤액을 당하다.

 

然而兵破于陳涉, 地奪于劉氏.漢書 賈誼傳

그러나 군대는 진섭에게 격파당하고, 땅은 유씨에게 빼앗김을 당했다.

 

(7) ()는 비교를 표시하는 전치사로 쓰여 에 비하여를 뜻한다.

今吳不如過, 而越大于少康. 左傳 哀公元年

이제 우리 오나라는 나라만 같지 못하고, 월나라는 소강보다 강대합니다.

 

王如知此, 則無望民之多于隣國也. 孟子 梁惠王上

왕께서 그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기를 바라지 마소서.

 

于舜之功, 二十之一也. 左傳 文公18

순임금의 공적에 비교한다면, 20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차별적 비교문에서의 에 비하여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에 견주어로 번역한다.

 

每自比于管仲樂毅. 三國志 諸葛亮傳

늘 스스로 管仲樂毅에 견주었다.

 

(8) ()  중에” “ 가운데를 뜻한다.

吳王與晉定公爭長. 吳王曰: “于周室, 我爲長.” 晉定公曰: “于姬姓, 我爲伯.” 史記 吳世家

오왕 부차와 진정공이 회맹 중에 삽혈(喢血) 경쟁을 벌렸다. 오왕이 말했다: “주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장노이다.” 진정공이 말했다: “희씨 성 중에서는 내가 가장 맏이이다.”

 

儒者所謂中國者, 于天下乃八十分居其一分耳. 史記 孟荀列傳

유자가 말하는 중국이란, 천하 가운데 8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居: 차지하다

 

(9) ()는 또한 자를 뜻하며, “을 위해로 번역한다.

齊使管仲平戎于周. 史記 齊太公世家

제환공이 관중으로 하여금 주나라 왕실을 위해 융을 치도록 했다.

 

唯玆臣屬, 汝其于予治!孟子 萬章上

너는 나에게 와서 나를 위해 이 신하들을 다스려라!

 

(10) () 에 의거하여의 의미로 사용된다.

于諸侯之約, 大王當王關中. 史記 韓信列傳

제후들의 협의에 의거하여, 대왕께서 관중 지방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11) ()는 형용사 등의 단어 밑에 쓰는 경우,  현대 중국어로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부득이 번역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이거나,  심지어는 어순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荊國有餘于地而不足于民. 墨子 公輸篇

초나라는 땅은 넓지만, 백성의 수는 많지 않은 곳이다.

 

難于持久. 資治通鑑 赤壁之戰

장기간 견뎌내기가 어렵다.

 

(12) ()는 상고 시대에는 간혹 병렬접속사로 쓰였다. “” “의 뜻이다.

時惟爾初, 不克敬于和, 則無我怨. 尙書 多方

네가 시작할 당시, 공경과 화목이 없었으므로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號泣于昊天于父母. 孟子 萬章上

하늘과 부모를 향해서 울었다.

 

(13) 는 오로 읽으며, 감탄사로서 독립적으로 쓰인다. 탄식, 찬탄을 의미한다. 이 글자는 자로 대용할 수 없다.

! 穆淸廟! 詩經 周頌 淸廟

아아, 그윽하고 청정한 묘당이여!

 

! 皇武王! 詩經 周頌 武

아아, 빛나고 성대한 무왕이여!

 

! 鑠皇師! 詩經 周頌 酌

아아, 아름다운 임금님의 군대여!

 

위에서 든 於穆淸廟등 세 가지 예문은 모두 자와 나머지 세 개 글자를 합친 네 글자를 연속해서 읽어야 하는데, 이것은 운율과 박자에 맞추기 위함이다. 이러한 독법을 樂讀이라고 부른다.

 

皐陶曰: “! 在知人, 在安民.” 史記 夏本紀

고요가 말했다: “, 사람을 알아보면, 백성이 편안해집니다.”

 

僉曰: “! 鯀哉!” 尙書 堯傳

모두 다 말했다: “아아, 커다란 물고기 이다!”

 

2. ()자와 결합된 多音節語

지금까지는 단음절어로서의 ()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이하에서는 ()와 다른 글자가 결합된 다음절어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글자와 발음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용법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1) 于時(於時)는 세 가지 용법이 있다.

두 가지는 시간 및 장소 부사용법이고, 나머지 하나는 접속사 용법이다.

이 때에” “당시

이 곳에서” “여기

그리하여” “” “바로의 의미를 가진다.

 

접속사로서 그리하여” “” “바로의 뜻으로 쓰인 예

我其夙夜, 畏天之威, 于時保之. 詩經 周頌 我將

나는 밤낮, 하늘의 위엄을 경외하여, 바로 천명을 길이 보전하리라.

 

我求懿德, 肆于時夏.

아름다운 덕만을 구하신다. 그리하여 온 나라에 베푸신다.

상기 두 가지 예문은 于時가 접속사(連詞)로 쓰인 예이다.

 

장소 부사로서 이곳에서” “여기의 의미로 쓰인 예

京師之野, 于時處處, 于時廬旅, 于時言言, 于時語語. 詩經 大雅 公劉

경사의 교외, 이 곳에 살 곳을 정하셨도다. 여기 머물러 살며, 여기에서 서로 말하고, 여기에서 서로 얘기하셨다.

 

시간 부사로서 당시” “이때에의 뜻으로 쓰인 예

諸葛瑾弟亮及從弟誕幷有盛名, 各在一國. 于時以爲蜀得其龍, 吳得其虎, 魏得其狗.世說新語 品藻篇

제갈근과 그 동생 및 그 사촌 은 모두 명성이 높았는데, 모두 각 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유비는 용을 얻었고, 손권은 호랑이를 얻었으며, 위나라는 개를 얻었다고 말했다.

 

王武子被責, 移第邶邙下. 于時人多地貴. 世說新語 汰侈

왕무자 왕제가 배척을 당하여, 패망산 밑으로 이사갔다. 당시 사람이 많아서 땅값이 비쌌다.

 

于時朝野歡娛, 池台鐘鼓.庾信 哀江南賦

이때 관리들은 상하 모두 쾌락만을 추구했다. 연못을 파고 대를 세우며, 종을 울리고 북을 쳤다.

 

(2) 于是(於是)  접속사로서 그리하여의 뜻과  시간 부사로서 당시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하여라는 뜻의 連詞적 용법

孔子旣合葬于防, : “吾聞之: ‘古也墓而不墳’. 今丘也, 東西南北之人也, 不可以弗識也.” 于是封之, 崇四尺.禮記 檀弓上

공자가 이미 부모를 ()’ 땅에 합장한 뒤에 말씀하기를, “내가 들으니, 옛날에는 무덤을 만들어도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한다. 이제 구는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니, 표지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봉분을 만드니 높이가 4척이었다.

 

丕鄭許諾. 于是殺奚齊, 卓子及驪姬, 而請君于秦。《國語 晉語2

비정이 허락했다. 그리하여 해제 탁자 그리고 여희를 죽이고, 진공자를 임금에 세우도록 진나라에 요청했다.

 

景公說, 大戒于國, 出舍于郊, 于是始興發補不足. 孟子 梁惠王下

제경공이 큰 기쁨을 온 나라에 알리고, 자신은 교외로 나가 주재하면서, 나아가 창고문을 열고 양식과 돈을 꺼내어 생활이 곤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시에” “이때에라는 뜻의 시간 부사적 용법

于是羊舌職死矣. 晉侯曰: “孰可以代之?” 對曰 : “赤也可.” 左傳 襄公3

이때 양설직이 죽었으므로, 진후가 말하기를: “누가 그를 대신할 만한가?”라고 했는데, 답하여 말하기를: “적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及衛州吁立, 將修先君之怨于鄭, 而求寵於諸侯, 以和其民. 使告於宋曰: “君若伐鄭, 以除君害, 君爲主. 敝邑以賦與陳蔡從, 則衛國之願也.” 宋人許之. 於是 陳蔡方睦於衛, 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 左傳 襄公3

그러나 위나라 주우가 왕이 되자, 은공 2년에 정나라에게 정벌을 당한 선군의 원한을 갚음으로써, 제후들에게 인기를 얻고, 그 백성들을 온화하게 하고자 했다. 그래서 송나라 상공에 고하게 하기를: “당신이 만약 정나라를 쳐서, 당신의 해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당신이 주장이 되십시오. 우리 나라도 군대로써 진나라와 채나라와 더불어 종군하는 것이, 우리 위나라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송나라 사람이 이를 허락했다. 이 때에, 진나라와 채나라는 마침 위나라와 화목했으므로, 송나라 상공과 진나라 환공과 채나라 사람과 위나라 사람은 정나라를 정벌했다.

 

西伯陰行善, 諸侯皆來決平. 于是虞, 芮之人有獄不能決, 乃如周.史記 周本紀

서백이 조용히 선행을 실천하자 제후들은 모두 그에게 와서 공정한 판결을 청했다. 이때 우와 예의 사람들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송사가 발생하여 주를 찾아왔다.

 

(3) ()是乎, ()是焉, ()是乃(), ()是遂는 모두 ()[이렇게 그리하여]와 같다.

夫州吁弑其君, 而虐用其民. 於是乎不務令德, 而欲以亂成, 必不免矣.

대저 위나라 州吁는 그의 임금을 죽이고, 그 백성들을 학대하면서 부리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덕을 힘써 닦지 않고, 어지러움으로써 성공하고자 하니, 반드시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申人, 鄫人召西戎以伐周, 周于是乎亡. 國語 晉語1

신나라와 증나라는 서융을 끌어들여서 서주를 공격하도록 했다. 이에 서주는 멸망했다.

 

秋水時至, 百川灌河, 涇流之大, 兩涘渚崖之間不辯牛馬. 於是焉河伯欣然自喜, 以天下之美爲盡在己, 順流而東行, 至於北海. 東面而視, 不見水端. 於是焉河伯始旋其面目, 望洋向若而歎. 莊子 秋水篇

가을이 되면,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본 줄기는 커서, 양편 물가의 거리가 상대편에 있는 소나 말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황하의 신은 기뻐하며,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이 자신에게 갖춰졌다고 생각하고,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북해에 도착했다.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하의 신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돌려, 북해의 신을 우러러 보고 탄식했다.

 

王公則不足於上, 庶人則凍餒嬴瘠於下, 於是焉桀紂群居 而盜贼擊奪以危上矣. 荀子 正論篇

임금과 공후는 위에서 부족한 것을 괴로워 하고, 서인들은 아래에서 추위에 떨고 굶주려 여위어 가니, 이것은 이나 와 같은 폭군과 함께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도적들이 서로 싸우고 빼앗아 윗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于是乃使百工菅求之野, 得說于傅險中. 史記 殷本紀

武丁이 밤에 꿈속에서 열이라는 이름의 성인을 만났다. 꿈에서 본 성인의 모습을 신하들과 백관들 중에서 찾아보았으나 모두 아니었다. 이에 백관들을 시켜 재야에서 찾게 하니 마침내 傅險에서 을 찾아내었다.

 

薄太后母亦前死, 葬櫟陽北, 于是乃追尊薄父爲靈文侯.史記 外戚世家

박태후의 모친 역시 일찍 죽었다. 역양 땅의 북쪽에 장사 지내고, 나아가 박태후의 부친을 영문후로 추존했다.

 

布大喜過望, 于是乃使人入九江.史記 黥布列傳

경포는 그에게 거는 기대에 대하여 매우 기뻐하면서, 바로 구강에 사자를 들여보냈다.

 

殷之太師, 少師乃持其祭樂器奔周, 周武王于是遂率諸侯伐紂. 史記 殷本紀

은나라의 악사장과 부악사장은 바로 은왕실의 제사용 악기를 챙겨서 휴대하고 주나라로 도주했다. 주무왕은 이에 제후들을 이끌고 주왕을 정벌했다.

 

相如曰: “王必無人, 臣愿奉璧往. 使城入趙而璧留秦; 城不入, 臣請完璧歸趙.” 趙王于是遂遣相如奉璧西入秦.史記 藺相如列傳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 마땅한 사람이 없으시면, 신이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겠습니다. 이 조나라로 들어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두고,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은 화씨벽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조나라로 돌아올 것을 책임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조나라 왕은 마침내 인상여를 파견하여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于是焉, 于是乃, 于是遂, , 의 여섯 개 단어는 모두 于是라는 뜻의 부사 내지는 접속사들이다. 그렇다면, 于是焉,于是乃, 于是遂는 모두 동의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된다.

또한 于是2음절 접속사인데 이것은 하나씩의 單音 同義語가 겹쳐있는 구조이다.

이렇게 보면 이 多音節語들은 모두 같은 뜻의 동의어를 세 번씩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4) 六朝시대 사람들은 多音節語 접속사인 於此를 많이 썼다.

庾仲初作揚都賦, 以呈庾亮. 亮以親族之懷, 大為其名價, : “可三二京, 三都.” 于此人人競寫, 都下紙為之貴. 世說新語 文學

유중초가 양도부라는 를 써서 유량에게 보여주었다. 유량은 단지 족벌지간이라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말했다: “二京賦)에 견줄 수 있는 三京이요, 三都賦에 견줄 수 있는 四都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이 를 필사했는데이로 인하여 경도의 종이 값이 치솟았다. 태부 사안이 말했다: “말도 안된다. 쓸데없는 짓을 되풀이하다니! 도처에 모방이요, 짜임새 또한 형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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