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

한문의 허사(虛詞) 尤

耽古樓主 2022. 12. 25. 05:36
한문의 허사(虛詞)
는 상고 시대에는 오직 명사와 동사로서만 쓰였다.
周易 卦爻辭에는 이 글자가 없다.
詩經에는 이 글자가 세 차례 나오는데 명사가 아닌 동사로 쓰이고 있다. 尙書에서도 세 차례 나오는데 역시 虛詞로는 쓰이지는 않았다.
論語 憲問篇에서는 不怨天不尤人[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이라는 구절에서 책하다, 탓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이고 있다.
左傳에서는 이 글자가 10여 차례 나오고 있는데, 거의 명사와 동사로 쓰이고,
오직 昭公28조에서만 尤物[뛰어난 인물이나 물건]”이라는 단어에서 형용사로 쓰이고 있다.
더욱 우자가 부사로 쓰인 것은 아마도 시대 이후로써, 孟子》 《荀子후기, 墨子( 經說上劍尤早라고 보이는데 이 誤字로서 예문으로 쓰기에는 적합치 않다.) 에서는 모두 이와 같은 용법이 없다.
는 부사로서 현대 중국어의 尤其[특히, 더욱]의 뜻으로 쓰였다. 당나라 시대 사람들이 주로 썼다.

 

 

蒼本好書, 無所不觀, 無所不通, 而尤善律歷. 史記 張丞相列傳

장창은 본래 책을 좋아하여, 안 본 책이 없었고 이해 못 할 바가 없었다. 특히 음악과 역법에 능통했다.

 

關中富商大賈, 大抵盡諸田: 田嗇, 田蘭, 韋家, 栗氏, 安陵, 杜杜氏, 亦巨萬. 此其章章尤異者也. 史記 貨殖列傳

관중의 부유한 상인과 대상인은, 대체로 전씨 일족었는데, 전장과 전란 등이 그들이다. 그 밖에 위가와 율씨 및 안릉과 두릉 양 지역의 두씨도 또한 거만의 부를 지녔다. 이들은 부호 중에서도 두드러진 사람들이었다.

故諸侯失國者皆是被臣逐之, 悉非其君自出, 仲尼尤其不能自安. 左傳 襄公14年經 乙未, 衛侯出奔齊正義

그러므로 제후 중 나라를 잃은 자는 모두 신하들에 의하여 축출당했다. 모두 다가 군주 스스로가 떠난 것이 아니다. 공자는 더욱 이러한 현상에 만족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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