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118-淮南衡山列傳(회남형산열전)

耽古樓主 2023. 10. 6. 09:09

 

본 편은 회남 淮南 厲王 劉長과 그의 아들인 淮南王 劉安衡山王 劉賜의 合傳이다.
이들이 劉氏의 제후왕으로 世家에 기록되어야 하지만 吳王濞列傳과 마찬가지로 열전에 기록된 것은 반역의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1. 淮南 厲王 劉長

 

회남 여왕 유장은 高祖의 서얼 막내였으며漢文帝와는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지간이다高帝 11년(기원전 196년),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고유장은 영포를 대신하여 회남왕에 봉해졌다
유장은 장성하여 솥을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셌으며문제가 즉위한 후 유장은 자신이 문제와 가장 친밀한 황족임을 들먹여 교만해지고 법을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회남 여왕 23년(기원전 174년), 유장은 柴奇 등과 반란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었는데文帝는 유장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봉국을 빼앗고 蜀郡으로 유배시켰다
유장은 유배 가는 도중에 굶어 죽었다. 유장의 시호를 厲王이라 하였으며 유장의 아들인 劉安이 淮南王을 이어 받았다.

 

淮南厲王長者,高祖少子也,其母故趙王張敖美人。
淮南 厲王 劉長은 漢高祖 유방의 막내아들이며그의 어머니는 본래 趙王 張敖의 美人이었다.

高祖八年,從東垣過趙,趙王獻之美人。
漢 高祖 8(기원전 199)에 高祖가 東垣에서 돌아오면서 를 지날 때 趙王이 그 미인을 바쳤다.

厲王母得幸焉,有身。
여왕의 어머니가 高祖의 총애를 받아 임신하였다.

趙王敖弗敢內宮,為筑外宮而捨之。
趙王 장오는 감히 그녀를 궁궐로 들이지 못하고外宮을 지어 그곳에 머물도록 하였다.

及貫高等謀反柏人事發覺,并逮治王,盡收捕王母兄弟美人,系之河內。
貫高 등이 모반하여 柏人에서 高祖를 죽이려고 한 일이 발각되자趙王도 체포하여 治罪하였고趙王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과 첩들도 모두 체포하여 河內에 구금하였다.

厲王母亦系,告吏曰:
「得幸上,有身。」
厲王의 어머니 역시 구금되어 獄吏에게 말하였다.
황제의 총애를 받아 임신하였습니다.”

吏以聞上,上方怒趙王,未理厲王母。
옥리가 황제에게 아뢰니황제가 한창 趙王에게 화가 나 있어서 여왕 어머니의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厲王母弟趙兼因辟陽侯言呂后,呂后妒,弗肯白,辟陽侯不彊爭。
여왕 어머니의 동생인 趙兼이 辟陽侯 審食其를 통하여 呂后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呂后가 질투하여 高祖에게 아뢰려 하지 않았고벽양후도 애써 간하지 않았다.

及厲王母已生厲王,恚,即自殺。
厲王의 어머니가 여왕을 낳고 나서 원망하며 자살하였다.

吏奉厲王詣上,上悔,令呂后母之,而葬厲王母真定。
옥리가 厲王을 받들어 황제에게 바치니황제가 후회하며 呂后에게 그를 양육하게 하고여왕의 어머니를 眞定에 장사지냈다.

真定,厲王母之家在焉,父世縣也。
진정은 여왕 어머니의 생가가 있고 조상 대대로 살던 이다.

▶ 趙王張敖 : 趙王 張耳의 아들 張敖. 漢王 5년(기원전 202년) 張耳가 죽자 張耳의 아들 張敖가 그 뒤를 이어 趙王에 올랐다. 高祖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趙王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 美人 : 漢 때 妃嬪의 칭호. 제왕의 첩.
▶ 有身 : 임신.
▶ 内 : 納과 같다. 들이다. 받아들이다.
▶ 貫高等謀反 : 貫高의 사건. 貫高는 漢 때 趙王 張敖의 정승인데, 高祖가 趙에 들렀을 때 趙王을 모욕하자, 관고가 이를 분하게 여겨 高祖가 묵고 있던 柏人縣의 집 뒷간 벽 속에다 사람을 숨겨두고 高祖가 지나기를 기다려 시해의 음모를 꾸민 일을 가리킨다. (高祖 8년:기원전 199년)
이 음모가 발각되었고 高祖가 관고를 용서하였으나, 자살하고 말았다.(高祖 9년:기원전 198년) <사기 권8. 高祖본기>
▶ 柏人 : 옛날의 地名. 지금의 河北省 柏鄕縣 부근이다.
▶ 系 : 구금하다.
▶ 辟陽侯 : 審食其( ? ~ 기원전 177년). 劉邦과 동향인으로, 漢의 개국공신이 되어 辟陽侯에 봉해졌다. 高帝가 붕어하자 여후와 함께 發喪을 막고 공신들을 제거할 것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여후가 聽政을 하자 좌승상에 임명되었으며, 詔令의 출납을 장악하여 공경대신들이 모두 그를 통하여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로 인하여 심이기와 여후를 내연의 관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文帝 때 淮南 厲王 劉長에게 피살되었다.
▶ 白 : 아뢰다.
▶ 爭 : 간하다.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다.
▶ 恚 : 분노하다. 원망하다.
▶ 父世 : 아버지 대 이상의 대대손손.

高祖十一年七月,淮南王黥布反,立子長為淮南王,王黥布故地,凡四郡。
高祖 11(기원전 196) 7회남왕 黥布가 반란을 일으키자高祖는 자신의 아들 劉長을 회남왕으로 삼아 黥布의 옛 땅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모두 4이었다.

上自將兵擊滅布,厲王遂即位。
황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黥布를 공격하여 무찌르자 厲王이 즉위하였다.


厲王蚤失母,常附呂后,孝惠、呂后時以故得幸無患害,而常心怨辟陽侯,弗敢發。
厲王은 일찍 어머니를 잃어 항상 呂后에게 의지하였으며孝惠帝·呂后 시절에 여후의 총애를 얻었던 까닭에 정치적인 재앙이 없었으나늘 마음속으로 벽양후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 감히 나타내지는 않았다.

及孝文帝初即位,淮南王自以為最親,驕蹇,數不奉法。
孝文帝가 갓 즉위하자 회남왕은 자신이 황제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고 교만하여 자주 법을 지키지 않았다.

上以親故,常寬赦之。
황제가 형제의 親情때문에 항상 관대하게 용서하였다.

三年,入朝。甚橫。
孝文帝 3(기원전 177)에 여왕이 입조하였는데더욱 제멋대로였다.

從上入苑囿獵,與上同車,常謂上「大兄」。
황제를 따라 苑囿에서 사냥함에 황제와 함께 수레를 탔고늘 황제에게 '큰형님'이라고 불렀다.

厲王有材力,力能扛鼎,乃往請辟陽侯。
여왕에게 재주와 힘이 있었으니힘은 솥을 어깨에 멜 수 있었는데이에 벽양후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辟陽侯出見之,即自袖鐵椎椎辟陽侯,令從者魏敬剄之。
벽양후 심이기가 그를 만나러 나오자 즉시 소매에서 철추를 꺼내 벽양후를 후려치고隨從하던 魏敬에게 명령하여 그의 목을 찔렀다.

厲王乃馳走闕下,肉袒謝曰:
그러고는 厲王이 대궐로 말을 달려가서 웃통을 벗고 사죄하였다.

「臣母不當坐趙事,其時辟陽侯力能得之呂后,弗爭,罪一也。
신의 어머니는 부당히 趙王의 사건에 연루되었는데그때 벽양후의 능력은 여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힘써 간하지 않았음이 그의 죄 하나입니다.

趙王如意子母無罪,呂後殺之,辟陽侯弗爭,罪二也。
趙王 如意의 모자에게 죄가 없는데 여후가 죽임에벽양후가 힘써 힘써 간하지 않았음이 그의 죄 둘입니다.

呂后王諸呂,欲以危劉氏,辟陽侯弗爭,罪三也。
여후가 呂氏들을 왕으로 봉하여 劉氏천하를 위태롭게 함에벽양후가 힘써 간하지 않았음이 그의 죄 셋입니다.

臣謹為天下誅賊臣辟陽侯,報母之仇,謹伏闕下請罪。」
신이 삼가 천하를 위하여 社稷을 危害하는 奸臣 벽양후를 주살하여 어머니의 원수를 갚았으니삼가 대궐에 엎드려 죄를 청합니다.”

孝文傷其志,為親故,弗治,赦厲王。
孝文帝는 그의 뜻을 가엾게 여기고 형제의 親情때문에 처벌하지 않고 여왕을 사면하였다.

當是時,薄太后及太子諸大臣皆憚厲王,厲王以此歸國益驕恣,不用漢法,出入稱警蹕,稱制,自為法令,擬於天子。
당시 문제의 생모 薄太后太子대신들이 모두 여왕을 꺼렸으매여왕은 이 때문에 봉국으로 돌아가더니 더욱 오만방자해져서 의 법을 따르지 않으니출입함에 황제처럼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고稱制하고스스로 법령을 만들어 마치 황제처럼 행동하였다.

▶ 黥布 : 본명이 英布이나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하여 黥布로 불렸다. 漢이 선 뒤 韓信과 彭越 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高祖11년(기원전 196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다.
강남으로 달아났다가 長沙王에게 유인되어 誅殺되었다.<사기 권91. 黥布열전>
▶ 四郡 : 九江·衡山·廬江·豫章郡으로 회남왕의 봉지이다.
▶ 蚤 : 早와 통하여 일찍.
▶ 孝文帝 : 漢孝文帝. 文帝. 劉恆.
▶ 驕蹇 : 오만하고 방자하다. 蹇:교만하다
▶ 苑囿 : 고대에 왕후귀족이 수렵을 통하여 武를 단련하기 위하여 넓은 지역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새나 짐승을 서식시키는 장소로 황제의 사냥터로 활용되었다.
▶ 扛鼎 : 솥을 들어 올리다. 즉, 힘이 매우 세다는 뜻.
▶ 鐵椎 : 철퇴.
▶ 剄 : 칼로 목을 베다.
▶ 闕下 : 궁궐의 아래. 朝廷을 말한다.
▶ 肉袒 :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趙王如意子母無罪 : 戚夫人은 高祖의 첩으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高祖가 생전에 척부인과 아들인 趙王 여의를 총애하였다. 高祖가 죽자 여후가 趙王 여의를 독살하고 戚夫人을 투옥한 뒤 手足을 모두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 넣었으며, 벙어리 약을 먹여 변소에 던져두었다. 그런 뒤 인간돼지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惠帝 원년:기원전 194년<사기 권9. 여태후본기>
▶ 賊臣 : 불충한 신하.
▶ 薄太后 : 古祖 劉邦의 후궁. 文帝의 생모.
▶ 憚 : 꺼리다.
▶ 警蹕 : 황제가 거동할 때 경계하여 사람의 통행을 금함을 말한다.
▶ 制 : 황제의 명령을 말하며, 황제가 직접 임석하여 그 의논을 보고 가부를 결단함이다.

六年,令男子但等七十人與棘蒲侯柴武太子奇謀,以輂車四十乘反谷口,令人使閩越、匈奴。
孝文帝 6(기원전 174)에 男子 但 등 70명과 棘蒲侯 柴武의 태자 에게 명령하여 모의하고 큰 수레 40을 가지고 谷口에서 반란을 일으키고閩越·匈奴에 사신을 보냈다.

事覺,治之,使使召淮南王。
조정이 이 일을 발각하고 모반자를 治罪하고자사신을 보내 회남왕을 소환하였다.

淮南王至長安。
회남왕이 長安에 도착하였다.

「丞相臣張倉、典客臣馮敬、行御史大夫事宗正臣逸、廷尉臣賀、備盜賊中尉臣福昧死言:
(조정대신들이 상주문을 올렸다.)
丞相 臣 張倉·典客 臣 馮敬·行御史大夫事 宗正 臣 逸·廷尉 臣 公孫賀·備盜賊中尉 臣 福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淮南王長廢先帝法,不聽天子詔,居處無度,為黃屋蓋乘輿,出入擬於天子,擅為法令,不用漢法。
회남왕 劉長은 先帝의 법을 폐하고천자의 조칙을 聽從하지 않고거처함에 법도가 없고黄屋蓋를 乘用 수레로 삼고출입에 천자를 모방하고법령을 제멋대로 제정하고의 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及所置吏,以其郎中春為丞相,聚收漢諸侯人及有罪亡者,匿與居,為治家室,賜其財物爵祿田宅,爵或至關內侯,奉以二千石,所不當得,欲以有為。
관리를 배치함에 자신의 郎中인 을 승상으로 삼고과 제후국의 사람을 거두어들여 죄를 짓고 도망한 자들에 미쳐 숨겨주어 살게 하였고그들을 위하여 집을 마련해주고 재물·작위·봉록·田地·택지를 하사하여어떤 자는 작위가 關內侯에 이르고 어떤 자는 봉록이 2천석에 이르니해서는 안 될 일로써 모반하려 하였습니다.

大夫但、士五開章等七十人與棘蒲侯太子奇謀反,欲以危宗廟社稷。
大夫 但士伍 開章 등 70명이 극포후의 태자 柴奇와 함께 모반하여 종묘와 사직에 위해를 가하려 하였습니다.

使開章陰告長,與謀使閩越及匈奴發其兵。
開章을 보내어 은밀히 유장에게 보고하고상의하기를 민월과 흉노를 시켜 그들의 군사를 동원하게 하였습니다.

開章之淮南見長,長數與坐語飲食,為家室娶婦,以二千石俸奉之。
개장이 회남에 가서 유장을 만났고유장은 누차 면담하고 연회를 가졌으며그를 위하여 집과 아내를 마련해주고, 2천석의 봉록을 주었습니다.

開章使人告但,已言之王。
개장이 사람을 보내어 대부 에게 알리니모든 일을 이미 회남왕과 妥協하였습니다.

春使使報但等。
승상 이 사신을 보내어 但 등에게 통보하였습니다.

吏覺知,使長安尉奇等往捕開章。
조정의 관리가 발각하고장안 縣尉 奇 등에게 가서 개장을 체포하게 하였습니다.

長匿不予,與故中尉蕑忌謀,殺以閉口。
유장이 그를 숨기고 넘겨주지 않았으며예전의 中尉였던 蕑忌와 모의하여 개장을 죽여서 입을 막았습니다.

為棺槨衣衾,葬之肥陵邑,謾吏曰『不知安在』。
棺槨과 상복과 이불을 갖추어서 肥陵邑에 개장을 매장하고 나서거짓으로 관리에게 말하기를,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라고 하였습니다.

又詳聚土,樹表其上,曰『開章死,埋此下』。
또 거짓으로 분묘를 만들고그 위에 표지를 세워 개장이 죽어 이곳에 묻다.’라고 하였습니다.

及長身自賊殺無罪者一人;
令吏論殺無罪者六人;
為亡命棄市罪詐捕命者以除罪;
擅罪人,罪人無告劾,系治城旦舂以上十四人;
赦免罪人,死罪十八人,城旦舂以下五十八人;
賜人爵關內侯以下九十四人。
뿐만 아니라유장은 몸소 죄 없는 한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고,
관리를 시켜 죄 없는 여섯 사람을 논죄하여 죽였습니다.
棄市에 처할 도망자를 숨겨주고체포 명령이 내린 자를 挾雜하여 죄를 면해주었습니다.
제멋대로 사람에게 罪名를 주니 죄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었으며그 죄인들 가운데 城旦舂 이상이 14명이었고,
사면한 죄인 중 죽을죄에 해당하는 자가 18명이었으며 城旦舂 이하가 58명이었습니다.
작위를 내림에 관내후 이하가 94명이었습니다.

前日長病,陛下憂苦之,使使者賜書、棗脯。
얼마 전 유장이 병을 앓음에폐하께서 근심하셔서 사신을 보내 서신과 棗脯를 하사하셨습니다.

長不欲受賜,不肯見拜使者。
유장은 하사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사자를 拜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南海民處廬江界中者反,淮南吏卒擊之。
廬江郡 내에 사는 南海의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자 회남군의 관리와 병사들이 토벌하였습니다.

陛下以淮南民貧苦,遣使者賜長帛五千匹,以賜吏卒勞苦者。
폐하께서 회남 백성의 빈곤과 고통을 救恤하고자사자를 보내 유장에게 비단 5천 필을 하사하시어 관리와 군사 중 노고가 많은 자에게 하사토록 하셨습니다.

長不欲受賜,謾言曰『無勞苦者』。
유장은 하사품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거짓으로 수고한 관리가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南海民王織上書獻璧皇帝,忌擅燔其書,不以聞。
남해 백성 王織이 上書하여 황제에게 벽옥을 바치려고 하니간기가 제멋대로 그 글을 불태워 없애고 上奏하지 않았습니다.

吏請召治忌,長不遣,謾言曰『忌病』。
관리가 간기를 소환하여 치죄하기를 청하였니유장이 보내지 않고 거짓으로 간기는 病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春又請長,願入見,長怒曰
『女欲離我自附漢』。
또 승상 이 入朝하기를 유장에게 청하니 유장은 화를 내며 말하기를, ‘당신은 내 곁을 떠나 漢 조정에 붙기를 원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長當棄市,臣請論如法。」
유장은 응당 棄市에 처해야 하오니신들은 법대로 다스리기를 청합니다.”

制曰:
「朕不忍致法於王,其與列侯二千石議。」
황제가 명령하였다.
짐은 차마 회남왕에게 법대로 制裁할 수 없으니열후와 2천 석의 관리들과 의논하시오.”

「臣倉、臣敬、臣逸、臣福、臣賀昧死言:
臣 倉·臣 敬·臣 逸·臣 福·臣 賀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臣謹與列侯吏二千石臣嬰等四十三人議,皆曰『長不奉法度,不聽天子詔,乃陰聚徒黨及謀反者,厚養亡命,欲以有為』。
신들은 삼가 열후와 2천 석의 관리臣 嬰 등 43명과 논의하였는데모두 말하기를 유장은 법도를 받들지 않고천자의 조칙을 따르지 않고은밀히 徒黨과 모반자를 모으고죄를 짓고 도망자를 후하게 대우함으로써 반역을 도모했다.’라고 하였습니다.

臣等議論如法。」
신 등은 법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의결하였습니다.”

制曰:
「朕不忍致法於王,其赦長死罪,廢勿王。」
황제가 다시 명령하였다.
짐은 차마 회남왕에게 법대로 制裁할 수 없으니유장의 죽을죄를 사면하고 왕위를 폐하라!”

「臣倉等昧死言:
臣 倉 등이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長有大死罪,陛下不忍致法,幸赦,廢勿王。
유장에게 큰 죽을죄가 있는데도 폐하께서는 차마 법대로 다스리지 못하고은덕을 베푸시어 사면하고 왕위를 폐하도록 하셨습니다.

臣請處蜀郡嚴道邛郵,遣其子母從居,縣為筑蓋家室,皆廩食給薪菜鹽豉炊食器席蓐。
신들은 유장을 蜀郡 嚴道縣의 邛崃山 郵亭으로 유배 보내고그의 아들과 희첩을 함께 보내어 기거하도록 하고엄도현에는 그들을 위한 집을 새로 장만하고그들 모두에게 양식을 주게 하며땔나무채소소금된장 그리고 취사도구와 침구를 주게 하십시오.

臣等昧死請,請布告天下。」
신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청하옵건대 이 일을 천하에 널리 알리시기를 바랍니다.”

制曰:
「計食長給肉日五斤,酒二斗。
令故美人才人得幸者十人從居。
他可。」
황제가 명령하였다.
유장에게 고기는 하루에 다섯 근술은 두 말을 주어라.
예전의 미인과 첩 중에 총애를 입은 10명을 따라가서 살게 하라.
기타는 아뢴 대로 처리하라.

盡誅所與謀者。
회남왕과 함께 모반한 자는 모두 죽였다.

於是乃遣淮南王,載以輜車,令縣以次傳。
이에 회남왕을 유배 보냈는데 그를 輜車에 태우고 현에 명령하여 그를 차례로 호송하였다.

是時袁盎諫上曰:
이때 袁盎이 황제에게 간언하였다.

「上素驕淮南王,弗為置嚴傅相,以故至此。
황제께서 평소에 교만한 회남왕에게 엄한 太傅와 승상을 배치하지 않았으매그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且淮南王為人剛,今暴摧折之。
또한 회남왕의 사람됨이 강직한데 이제 갑자기 그의 기를 꺾어버렸습니다.

臣恐卒逢霧露病死。
신은 졸지에 감기에 걸려 죽을까 걱정이 됩니다.

陛下為有殺弟之名,柰何!」
폐하께서 아우를 죽였다는 오명을 쓰게 될 터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上曰:
「吾特苦之耳,今復之。」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짐은 다만 고생시키려 할 뿐멀지 않아 복위시키겠소.”

縣傳淮南王者皆不敢發車封。
현의 회남왕을 호송하는 자들이 모두 감히 수레에 봉한 문을 열지 못하였다.

淮南王乃謂侍者曰:
「誰謂乃公勇者?
吾安能勇!
吾以驕故不聞吾過至此。
人生一世閒,安能邑邑如此!」
회남왕이 이에 侍者에게 말하였다.
누가 나를 용감한 사람이라고 했는가?
내가 어찌 용감하다고 하겠는가!
내가 교만하였던 까닭에 나의 허물을 듣지 않으매 이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어찌 이렇게 답답하게 살겠는가!”

乃不食死。
하고는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至雍,雍令發封,以死聞。
에 당도함에 옹현의 현령이 봉함을 열어보고회남왕의 죽음을 아뢰었다.

上哭甚悲,謂袁盎曰:
「吾不聽公言,卒亡淮南王。」
황제가 통곡하기를 매우 슬프게 하고 袁盎에게 말하였다.
짐이 공의 말을 듣지 않아결국 회남왕을 죽였구나.”

盎曰:
「不可柰何,願陛下自寬。」
원앙이 말하였다.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폐하 스스로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십시오.”

上曰:
「為之柰何?」
황제가 말하였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盎曰:
「獨斬丞相、御史以謝天下乃可。」
원앙이 대답하였다.
오로지 승상과 어사를 참수하여 천하에 사죄하시면 됩니다.”

上即令丞相、御史逮考諸縣傳送淮南王不發封餽侍者,皆棄市。
황제가 즉시 승상과 어사에게 명령하여 각 현에서 회남왕을 호송하면서 수레의 봉인한 문을 열지 않은 자와 음식 시중을 든 자를 잡아들여 고문하고 모두 棄市하였다.

乃以列侯葬淮南王於雍,守冢三十戶。
그리고 열후의 예의로써 회남왕을 에 장례를 지내고민가 30를 두어 무덤을 지키고 제사지내게 하였다.

▶ 男子 : 漢때 관직을 얻지 못한 성년의 호칭.
▶ 棘蒲侯柴武太子 : 柴奇를 말한다. 한 문제 6년(기원전 174년), 극포후 시무의 태자 柴奇가 회남 여왕 유장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柴武는 혹은 陳武라고도 하며 秦 말에서 전한 초기의 무장으로 전한 高帝의 개국 공신이다.
▶ 輂車 : 짐 싣는 대형 마차.
▶ 昧 : 무릅쓰다.
▶ 黄屋蓋 : 황제가 타는 黃屋. 고대에 천자의 수레는 누런 비단으로 덮개와 속을 만들었다.
▶ 乘輿 : 제왕이 타는 수레
▶ 漢法 : 漢 조정의 법률.
▶ 丞相 : 제후국의 승상을 말한다.
▶ 奉 : 供给
▶ 士五 : 죄를 지어 관작을 잃은 자. 有罪失官爵者
▶ 棺槨 : 內棺과 外槨.
▶ 衾 : 入棺할 때 시체 위에 덮는 이불.
▶ 謾 : 속이다.
▶ 詳 : 佯과 통하여 가장하다.
▶ 表 : 표지.
▶ 賊殺 : 잔인하게 죽임.
▶ 亡命棄市罪 : 사형의 판결을 받고 국외로 도망간 자들.
▶ 棄市 : 사형. 옛날의 형벌로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여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
▶ 告劾 : 죄상을 고발하다. 억울함을 호소하다.
▶ 城旦 : 秦漢 시기 남자에 대한 형벌로 낮에는 오랑캐를 방비하고, 밤에는 長城을 쌓기를 4년 동안 하게 하는 형벌.
▶ 舂 : 漢 때 여자에게 쌀을 찧게 하는 형벌로 4년이 刑期였다.
▶ 棗脯 : 말린 대추를 설탕에 절인 것.
▶ 璧 : 고대의 玉器. 둥글넓적하며 중앙에 둥근 구멍이 있음.
▶ 燔 : 태우다.
▶ 女 : 汝와 같다. 너. 당신.
▶ 當 : 판결하다. 상당하는 형벌에 처하다.
▶ 制 : 황제의 명령.
▶ 昧 : 무릅쓰다.
▶ 廪食 : 관청에서 양식을 공급하다.
▶ 蓐 : 멍석.
▶ 輜車 : 군수품을 운반하는 휘장을 두른 수레.
▶ 袁盎 : 呂後 집정 시에 呂祿의 家臣이었지만 漢文帝가 즉위한 후에 그 형 袁噲가 천거하여 中郎이 되었다. <사기 권101.원앙조조열전>
▶ 傅 : 스승. 제왕이나 왕자를 보좌하는 직.
▶ 相 : 제후국의 승상.
▶ 暴 : 갑자기.
▶ 摧折 : 꺽다. 좌절시키다.
▶ 卒 : 돌연.
▶ 逢霧露 : 감기에 걸리다.
▶ 特 : 오직. 다만.
▶ 今 : 곧. 멀지않아.
▶ 復 : 되돌리다.
▶ 邑邑 : 悒悒과 같다. 우울하다. 근심하여 마음이 답답하다.
▶ 餽 : 음식을 보내다.
▶ 棄市 : 사형. 옛날의 형벌로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여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
▶ 冢 : 무덤.

孝文八年,上憐淮南王,淮南王有子四人,皆七八歲,乃封子安為阜陵侯,子勃為安陽侯,子賜為陽周侯,子良為東成侯。
효문제 8(기원전 172), 황제가 회남왕을 불쌍하게 여겨 모두 일곱 또는 여덟 살에 불과한 회남왕의 아들 4명을 로 봉하였는데劉安을 阜陵侯劉勃을 安陽侯劉賜를 陽周侯劉良을 東城侯로 각각 봉하였다.

孝文十二年,民有作歌歌淮南厲王曰:
「一尺布,尚可縫;
一斗粟,尚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
孝文帝 12(기원전 168)에 백성이 회남 여왕을 노래로 지어 불렀다.
한 자의 베도 꿰매어 함께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네.
형제 두 사람은 서로 용납하지 못했네.”

上聞之,乃嘆曰:
「堯舜放逐骨肉,周公殺管蔡,天下稱聖。
何者?
不以私害公。
天下豈以我為貪淮南王地邪?」
황제가 그 노래를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임금과 임금은 골육을 내쫒았고周公은 동생 管叔과 蔡叔을 죽였지만천하 사람들이 聖人이라고 칭송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사적인 일로써 공적인 것을 손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어찌하여 짐이 회남왕의 땅을 탐냈다고 말하는가?”

乃徙城陽王王淮南故地,而追尊謚淮南王為厲王,置園復如諸侯儀。
그리하여 城陽王 劉喜를 회남의 옛 땅으로 옮겨 왕으로 삼았고회남왕을 추존하여 시호를 내려 厲王이라 하고陵園을 만들어 제후와 의례를 같게 하였다.

孝文十六年,徙淮南王喜復故城陽。
孝文帝 16(기원전 164)에 회남왕 劉喜를 다시 예전의 성양으로 옮겼다.

上憐淮南厲王廢法不軌,自使失國蚤死,乃立其三子:
阜陵侯安為淮南王,安陽侯勃為衡山王,陽周侯賜為廬江王,皆復得厲王時地,參分之。
황제가 회남 여왕이 의 법을 폐하고 법도를 따르지 않다가 스스로 나라를 잃고 일찍 죽었음을 불쌍하게 여겨 그의 세 아들을 즉위시켜,
부릉후 劉安을 淮南王안양후 劉勃을 衡山王양주후 劉賜를 廬江王으로 봉하니회남 淮南 厲王 때의 땅을 얻어서 셋으로 나누었다.

東城侯良前薨,無後也。
東陽侯 劉良은 그 전에 죽었고 후손이 없었다.

孝景三年,吳楚七國反,吳使者至淮南,淮南王欲發兵應之。
孝景帝 3(기원전 154)에 吳楚 등 七國이 造反하고吳王의 사자가 회남에 도착하자회남왕 劉安도 군사를 일으켜 그들과 호응하려고 하였다.

其相曰:
「大王必欲發兵應吳,臣願為將。」
회남의 승상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꼭 군사를 일으켜 에 호응하려고 하시면신이 장수가 되기를 원합니다.”

王乃屬相兵。
왕이 군사를 승상에게 맡겼다.

淮南相已將兵,因城守,不聽王而為漢;
漢亦使曲城侯將兵救淮南:
淮南以故得完。
회남의 승상이 장수가 되자 성을 굳게 지키기만 할 뿐회남왕의 명을 따르지 않고 을 도왔다.
漢 역시 曲城侯 蟲捷에게 군사를 이끌고 회남을 구원하게 하였다.
회남은 이런 까닭에 나라를 온전히 보존할 수가 있었다.

吳使者至廬江,廬江王弗應,而往來使越。
의 사자가 여강에 도착하였으나여강왕 劉賜는 호응하지 않고 도리어 사자를 에 파견하여 왕래하였다.

吳使者至衡山,衡山王堅守無二心。
의 사자가 荊山에 도착하였으나형산왕 劉勃은 성을 굳게 지키며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孝景四年,吳楚已破,衡山王朝,上以為貞信,乃勞苦之曰:
「南方卑溼。」
孝景帝 4(기원전 153)에 吳楚가 패하고 나서 형산왕 劉勃이 입조하니 황제는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다고 여겨 노고를 위로하였다.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하다지.”

徙衡山王王濟北,所以褒之。
형산왕을 옮겨 濟北의 왕으로 삼음은 그를 포상함이었다.

及薨,遂賜謚為貞王。
형산왕이 죽자 시호를 내려 貞王이라 하였다.

廬江王邊越,數使使相交,故徙為衡山王,王江北。
여강왕의 변경이 이라서 누차 사자를 보내 서로 通交하매형산왕으로 옮겨 江北을 다스리게 하였다.

淮南王如故。
회남왕 劉安은 이전과 같게 하였다.

▶ 一尺布,尚可縫 : 尺布斗粟. 한 자의 베, 한 말의 곡식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뜻으로, 형제간의 軋轢을 비유한 말.
이백의 箜篌謠의 시에도 이를 인용하였다.
▶ 堯舜放逐骨肉 : 요임금은 자신의 장남을 죽였고, 순임금은 이복동생인 象을 추방하였다. <孟子·萬章上>
▶ 周公殺管蔡 : 管蔡는 周武王의 아우인 管叔과 蔡叔이다. 무왕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여 周公이 섭정하니,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성왕을 해칠 것이라고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성왕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두려워하여 다시 紂의 아들 武庚과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공에 의하여 토벌되었다. 주공이 관숙과 채숙을 처형하고 지은 시가 시경 鴟梟이다.
▶ 謚 : 死後 추봉하는 칭호.
▶ 園 : 陵園.
▶ 不軌 : 법도를 지키지 않다.
▶ 吳楚七國反 : 오초칠국의 난은 前漢 景帝 3년(기원전 154년) 漢의 제후국 吳의 왕 劉濞가 주축이 되어 楚王 劉成, 趙王 劉遂, 濟南王 劉辟光, 菑川王 劉賢, 膠西王 劉卬, 膠東王 劉雄渠가 전한 중앙 정부에 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사기 권106. 吳王濞列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列傳권106.吳王濞列傳(오왕비열전)

吳王 劉濞는 前漢의 제후왕으로 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함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劉濞가 高祖 12년(기원전 195) 吳王에 봉해졌으며 封國에 있으

koahn.tistory.com

▶ 屬 : 부탁하다.

 

 

 

2. 淮南王 劉安

 


淮南王 劉安은 漢高祖의 증손이며 淮南 厲王인 劉長의 아들이다
독서와 거문고를 좋아했으며 즉위 후 백성들을 잘 다스려 명망이 높았다많은 文士를 초치하여 ‘淮南子’를 짓게 하였으며 회남자는 內篇 21편과 外篇을 만들고 中篇 8권에서 道家의 煙丹藥法을 써 藝文을 즐기던 武帝가 상을 주고 秘藏했다.

유안은 田蚡에게 회유되어 모반을 꾀하다가 俉被가 고발하였으매무제가 대노하여 宗正을 시켜 탄핵할 때 자살했다.

淮南王安為人好讀書鼓琴,不喜弋獵狗馬馳騁,亦欲以行陰德拊循百姓,流譽天下。
회남왕 劉安은 사람됨이 독서와 鼓琴을 좋아하고사냥과 말 달림을 즐기지 않았고또 음덕을 베풀어 백성을 위로하며 자신의 명성을 천하에 알리려고 하였다.

時時怨望厲王死,時欲畔逆,未有因也。
때때로 淮南 厲王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그때마다 반역하려 하였으나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及建元二年,淮南王入朝。
建元 2(기원전 139)이 되자 회남왕 유안이 입조하였다.

素善武安侯,武安侯時為太尉,乃逆王霸上,與王語曰:
「方今上無太子,大王親高皇帝孫,行仁義,天下莫不聞。
即宮車一日晏駕,非大王當誰立者!」
평소 武安侯 田蚡과 친하였고武安侯는 당시 太尉였는데회남왕을 覇上에서 영접하며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황제께는 태자가 없는데 대왕께서는 高祖 황제의 親孫으로인의를 행하시어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궁중의 수레가 어느 날 늦게 멍에를 올리면대왕이 아니면 누가 마땅히 즉위할 사람이겠습니까!”

淮南王大喜,厚遺武安侯金財物。
회남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무안후에게 돈과 재물을 후하게 주었다.

陰結賓客,拊循百姓,為畔逆事。
회남왕이 은밀히 빈객들과 結交하고 백성을 위로하면서 반역의 일을 도모하였다.

建元六年,彗星見,淮南王心怪之。
건원 6(기원전 135)에 혜성이 나타나자 회남왕은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겼다.

或說王曰:
「先吳軍起時,彗星出長數尺,然尚流血千里。
今彗星長竟天,天下兵當大起。」
어떤 사람이 왕에게 권하였다.
이전에 吳軍이 일어났을 때 혜성이 나타나 길이가 몇 자에 불과하였으나 그래도 피가 천 리에 흘렀습니다.
지금은 혜성의 길이가 하늘 끝까지 이르니천하의 군사들이 마땅히 크게 일어나겠습니다.”

王心以為上無太子,天下有變,諸侯并爭,愈益治器械攻戰具,積金錢賂遺郡國諸侯游士奇材。
회남왕은 내심 황제에게 태자가 없기 때문에천하에 변란이 발생하면 제후가 서로 다투리라 여겨서더욱더 무기와 공격용 기구를 손질하고돈을 모아서 郡守·제후왕·유세객·奇材에게 뇌물로 보냈다.

諸辨士為方略者,妄作妖言,諂諛王,王喜,多賜金錢,而謀反滋甚。
辯士들이 모략을 꾸미는 자가 되어 妄靈되이 요사스러운 말을 지어 회남왕에게 아첨하니왕이 기뻐하여 금전을 하사함이 많았으니모반이 더욱 심해졌다.

▶ 弋獵 : 사냥. 弋은 날짐승, 獵은 들짐승의 사냥. 弋은 주살.
▶ 馳騁 : 말을 타고 빨리 달리다.
▶ 陰德 : 남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덕행.
▶ 拊循 : 위로하다. 위무하다.
▶ 畔 : 叛과 통한다.
▶ 因 : 기회.
▶ 武安侯 : 田蚡. 長陵 사람으로 景帝의 王皇后 王娡와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처음에 諸曹郞이 되고, 경제 말년에 총애를 받기 시작하였다. 외척의 신분으로 武帝의 총애를 받아 太尉를 지냈고, 武安侯에 봉해진 뒤 太尉를 거쳐 丞相이 되었다.<사기 권107.魏其武安侯列傳>
▶ 逆 : 마중하다.
▶ 宮車一日晏駕 : 궁의 수레가 아침에 늦게 나간다 함은 왕이 조회에 늦는다는 의미로 제왕이 붕어했다는 뜻.
▶ 陰結 : 은밀히 교제함.
▶ 尚 : 그래도, 여전히.
▶ 愈益 : 더욱더.
▶ 游士 : 유세하는 사람.
▶ 辨士 : 아주 능란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
▶ 放略 : 계책. 일을 꾸미다.
▶ 妖言 : 요사스러운 말.

淮南王有女陵,慧,有口辯。
회남왕에게 딸이 있어 劉陵이라 하였는데 총명하고 말재간이 있었다.

王愛陵,常多予金錢,為中诇長安,約結上左右。
회남왕이 유릉을 사랑하여 항상 금전을 많이 주며장안에서 조정을 염탐하게 하고 황제의 측근들과 교제하도록 하였다.

元朔三年,上賜淮南王几杖,不朝。
元朔 3(기원전 126), 황제가 회남왕에게 安席과 지팡이를 하사하고朝見하지 않음을 허락하였다.

淮南王王后荼,王愛幸之。
회남왕의 왕후는 인데 왕이 총애하였다.

王后生太子遷,遷取王皇太后外孫修成君女為妃。
왕후가 태자 劉遷을 낳았고유천은 王皇太后의 외손인 修成君의 딸을 로 삼았다.

王謀為反具,畏太子妃知而內泄事,乃與太子謀,令詐弗愛,三月不同席。
왕은 반역의 도구 제조를 계획함에태자비가 알고 조정에 거사를 누설할까 염려하여태자와 짜고 거짓으로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석 달 동안 한 방에 거처하지 않았다.

王乃詳為怒太子,閉太子使與妃同內三月,太子終不近妃。
이에 왕이 태자에게 화난 척하며태자를 유폐하되 태자비와 한 방에 있게 하기 3태자는 끝내 태자비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妃求去,王乃上書謝歸去之。
태자비가 친정으로 가기를 청하매왕이 上書하여 사죄하고 돌려보냈다.

王后荼、太子遷及女陵得愛幸王,擅國權,侵奪民田宅,妄致系人。
왕후 는 태자 유천과 딸 유릉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나라의 권력을 專擅하여 백성의 밭과 집을 侵奪하고 사람들을 함부로 가두었다.

元朔五年,太子學用劍,自以為人莫及,聞郎中雷被巧,乃召與戲。
원삭 5(기원전 124)에 태자 劉遷이 검술을 배움에자신에게 미칠 자가 없다고 여겼으매郎中 雷被가 검술이 뛰어남을 듣고이에 불러서 함께 겨루었다.

被一再辭讓,誤中太子。
뇌피가 한두 차례 사양하다가 실수하여 태자를 맞추었다.

太子怒,被恐。
태자가 노하자 뇌피는 두려워하였다.

此時有欲從軍者輒詣京師,被即願奮擊匈奴。
당시 종군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때마다 장안으로 가매뇌피가 즉각 흉노를 奮擊하기를 원하였다.

太子遷數惡被於王,王使郎中令斥免,欲以禁后,被遂亡至長安,上書自明。
태자 천이 數次 왕에게 뇌피를 헐뜯으니왕이 郎中令에게 뇌피를 파면하게 하여 이후에 금하려고 하매뇌피가 도망하여 장안에 가서 상서하여 자신을 천명하였다.

詔下其事廷尉、河南。
조서로 명령하기를그 사건을 廷尉와 河南郡에 내리게 하였다.

河南治,逮淮南太子,王、王后計欲無遣太子,遂發兵反,計猶豫,十餘日未定。
하남군에서 치죄하여 회남 태자를 체포하려고 하자왕과 왕후는 계략을 써서 태자를 보내지 않고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계획이 예정보다 늦어져 10여 일 동안 지체되었다.

會有詔,即訊太子。
마침 조서가 당도하여 즉각 태자를 소환하였다.

當是時,淮南相怒壽春丞留太子逮不遣,劾不敬。
당시 회남의 승상은 壽春縣의 縣丞이 태자 체포명령을 묵혀두고 보내지 않음에 노하여 불경죄로 탄핵하였다.

王以請相,相弗聽。
회남왕은 승상에게 선처를 부탁하였으나 승상이 듣지 않았다.

王使人上書告相,事下廷尉治。
왕이 사람을 시켜서 上書하여 승상을 고발하니사건을 廷尉에게 내려 치죄하게 하였다.

蹤跡連王,王使人候伺漢公卿,公卿請逮捕治王。
사건의 증거가 회남왕에게 연루되자회남왕이 사람을 시켜 漢 公卿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여공경들이 왕을 체포하여 치죄하자고 주청함을 알았다.

王恐事發,太子遷謀曰:
「漢使即逮王,王令人衣衛士衣,持戟居庭中,王旁有非是,則刺殺之,臣亦使人刺殺淮南中尉,乃舉兵,未晚。」
왕이 사건이 발각될까 두려워하자 태자 유천이 모책을 올렸다.
한의 사자가 만약 부왕을 체포하려고 하면부왕께서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호위병의 옷을 입고 창을 들고 정원에 있다가왕의 곁에 시비가 생기면 즉시 사신을 찔러 죽이시고신도 사람을 시켜 회남의 중위를 찔러 죽이고 나서 군사를 일으켜도 늦지 않겠습니다.”

是時上不許公卿請,而遣漢中尉宏即訊驗王。
이때 황제가 공경의 주청을 허락하지 않고의 중위 殷宏을 파견하여 즉각 회남왕을 심문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王聞漢使來,即如太子謀計。
회남왕은 의 사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즉시 태자의 계책대로 따르려 하였다.

漢中尉至,王視其顏色和,訊王以斥雷被事耳,王自度無何,不發。
의 중위가 도착함에회남왕은 사신의 안색이 온화함을 보았고왕을 심문함에 뇌피를 파면한 일뿐이었으매왕은 스스로 아무 일도 없다고 추측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中尉還,以聞。
중위가 돌아가서 조사한 바를 보고하였다.

公卿治者曰:
「淮南王安擁閼奮擊匈奴者雷被等,廢格明詔,當棄市。」
공경 중에 치죄하자는 자들이 말하였다.
회남왕 유안은 힘써 흉노를 물리치려는 사람 뇌피 등을 가로막았고천자의 명확한 조서를 저지하였으니 棄市에 해당합니다.”

詔弗許。
황제가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公卿請廢勿王,詔弗許。
공경들이 회남왕을 폐위하자고 청하였으나 황제가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公卿請削五縣,詔削二縣。
공경들이 5개 현을 삭탈하자고 청하였으나 황제가 조서를 내려 2개 현을 삭감하였다.

使中尉宏赦淮南王罪,罰以削地。
중위 을 시켜 회남왕의 죄를 사면하고영지를 삭감함으로써 벌주게 하였다.

中尉入淮南界,宣言赦王。
중위가 회남의 국경으로 들어가서 회남왕을 사면한다고 선포하였다.

王初聞漢公卿請誅之,未知得削地,聞漢使來,恐其捕之,乃與太子謀刺之如前計。
회남왕은 처음에 의 공경들이 자신을 주살하자고 청하였음을 들었으나봉지를 삭탈함은 알지 못하였으매의 사신이 온다는 말을 듣자 체포될까 두려워하여이전의 계획과 같이 사신을 찔러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及中尉至,即賀王,王以故不發。
중위가 도착하여 즉시 회남왕에게 치하하자 회남왕은 이로 인하여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其後自傷曰:
「吾行仁義見削,甚恥之。」
그 후 스스로 상심하여 말하였다.
내가 인의를 행했다가 봉지를 삭탈당하니 심히 부끄럽구나.”

然淮南王削地之后,其為反謀益甚。
그러나 회남왕은 봉지를 삭탈당한 뒤에도 반란을 도모함이 더욱 심해졌다.

諸使道從長安來,為妄妖言,言上無男,漢不治,即喜;
即言漢廷治,有男,王怒,以為妄言,非也。
장안에서 사신들이 와서 망령되고 요사스럽게 말하였으니황제에게는 아들이 없고 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하면 회남왕이 곧 기뻐하였으며만일 의 조정이 잘 다스려지고 아들이 있다고 하면회남왕은 노하여 妄言이라며 틀렸다고 하였다.

王日夜與伍被、左吳等案輿地圖,部署兵所從入。
왕이 밤낮으로 伍被左吳 등과 더불어 지도를 살펴보면서 進入할 곳에 軍士를 배치하였다.

王曰:
「上無太子,宮車即晏駕,廷臣必徵膠東王,不即常山王,諸侯并爭,吾可以無備乎!
且吾高祖孫,親行仁義,陛下遇我厚,吾能忍之;
萬世之後,吾寧能北面臣事豎子乎!」
왕이 말하였다.
황제에게 태자가 없으니 만약 붕어하면조정의 신하들은 반드시 膠東王이나 그렇지 않으면 常山王을 부를 터이고제후도 서로 다툴 터이니 과인이 어찌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나는 高祖의 손자로 친히 인의를 행하였고폐하께서 나를 후하게 대우하여 과인이 참을 수 있었지만,
황제가 죽은 후에도 어찌 北面하는 신하가 되어 어린 아이를 섬기겠는가!”

王坐東宮,召伍被與謀,曰:
「將軍上。」
회남왕이 東宮에 앉아서 伍被를 불러 함께 모의하였다.
將軍은 오르시오.”

被悵然曰:
「上寬赦大王,王復安得此亡國之語乎!
오피가 언짢아하며 말하였다.
황제께서 관대하게 대왕을 용서하셨는데대왕은 어찌 다시 이러한 망국의 말씀을 하십니까!

臣聞子胥諫吳王,吳王不用,乃曰『臣今見麋鹿游姑蘇之臺也』。
신이 듣기에옛날에 伍子胥가 吳王 夫差에게 간언함에 오왕이 듣지 않자 말하기를, ‘신은 이제 사슴들이 姑蘇臺에서 노님을 보게 될 터입니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今臣亦見宮中生荊棘,露霑衣也。」
이제 신도 역시 회남국의 궁중에 가시나무가 자라고이슬이 옷을 적심을 보게 될 터입니다.”

王怒,系伍被父母,囚之三月。
회남왕이 노하여 오피의 부모를 잡아 석 달 동안을 가두었다.

復召曰:
「將軍許寡人乎?」
다시 오피를 불러 말하였다.
장군은 과인의 말을 허락하겠는가?”

被曰:
「不,直來為大王畫耳。
오피가 대답하였다.
못합니다.
신이 온 까닭은 대왕을 위하여 劃策하기 위함입니다.

臣聞聰者聽於無聲,明者見於未形,故聖人萬舉萬全。
신이 듣건대 귀가 밝은 자는 소리가 없는 곳에서도 들으며눈이 밝은 자는 형태가 없는 데서 본다고 합니다그러므로 성인은 온갖 擧止에 만전을 기합니다.

昔文王一動而功顯于千世,列為三代,此所謂因天心以動作者也,故海內不期而隨。
옛날 文王이 한 번 움직여 공이 千世에 드러났고三代의 반열에 올랐습니다이것이 이른바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천하 사람이 기약하지 않았지만 그를 隨從하였습니다.

此千歲之可見者。
이것은 천 년 전의 일이매 史實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夫百年之秦,近世之吳楚,亦足以喻國家之存亡矣。
또 백 년 전의 과 근세의 ·에서 역시 나라의 존망을 깨닫기에 충분합니다.

臣不敢避子胥之誅,願大王毋為吳王之聽。
신은 감히 伍子胥의 죽음을 피하지 못하오나대왕께서는 吳王 夫差의 廳諫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詗(형) : 염탐하다.
▶ 几杖 : 국가에 유공한 늙은 대신에게 내려 주던 几:안석와 지팡이.
▶ 不朝 : 당시 유안이 54세이었으므로 입조하여 황제를 알현함을 면제하였다.
▶ 取 : 娶. 장가들다.
▶ 妄致系人 : 사람들을 함부로 잡아들이다. 妄은 함부로 하며 법을 지키지 않다.
▶ 元朔五年 : 기원전 124년. 元朔은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
▶ 戲 : 겨루다.
▶ 京師 : 수도. 장안.
▶ 奮擊 : 힘내어 싸우다.
▶ 斥免 : 파면하다.
▶ 丞 : 縣丞. 현의 정승.
▶ 候伺 : 정찰하다.
▶ 訊驗 : 심문하여 조사함.
▶ 擁閼 : 가로막다.
▶ 廢格 : 조령의 집행을 저지하다.
▶ 傷 : 哀傷. 비통해하다.
▶ 伍被 : 전한 중기의 관료로 楚 사람이다. 회남왕 유안을 섬겼다. 재능으로 회남중랑을 지냈고, 회남왕이 불러 모은 빼어난 선비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왕이 모반을 꾀하려는 낌새가 있자 은밀히 간하였고, 왕이 장군을 맡으라 하자 반란 자체를 망국의 길이라며 반대하였다.
▶ 案 : 정밀히 관찰하다.
▶ 輿地圖 : 지도.
▶ 部署 : 배치. 안배.
▶ 萬世之後 : 후세. 황제의 죽음 이후를 가리킨다.
▶ 豎子 : 풋내기. 새파란 놈.
▶ 悵然 : 언짢다. 서운하고 섭섭하다.
▶ 將軍 : 漢 때 천자는 조정에 장군을 두지만, 제후는 권한이 없었으므로 장군이라고 부름은 회남왕의 반역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 子胥諫吳王 : 吳 합려의 뒤를 이어 아들 부차가 왕이 되며, 태재가 된 간신 백비의 말만 듣고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게 되었다. 결국 백비가 오자서를 모함하여 부차가 오자서를 자결하도록 칼을 내리니 오자서는 한탄하며 자결한다. 부차는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담아 강에 버렸다. <사기 권66. 伍子胥列傳>
▶ 麋鹿 : 고라니와 사슴.
▶ 姑蘇之臺 : 姑蘇臺. 吳王 夫差가 西施를 위하여 쌓았다는 姑蘇山 위에 있는 臺로 姑胥臺라고도 한다.
▶ 文王一動 : 주나라 文王은 商나라 紂王을 토벌하기 위하여 기산에서 풍읍으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한다. <사기 권4. 주본기周本紀>
▶ 三王 : 중국 古代의 세 임금. 곧 夏의 禹王과 殷의 湯王과 周의 文王<또는 武王>을 일컫는 말
▶ 可見 : ~을 알 수 있다.
▶ 喻 : 깨닫다.

 

昔秦絕聖人之道,殺術士,燔詩書,棄禮義,尚詐力,任刑罰,轉負海之粟致之西河。
옛날 은 성현의 도리를 끊고유생들을 죽이고, <詩經>과 <書經>을 불태우고예의를 버렸고속임수와 폭력을 숭상하고형벌에 의지하여 나라를 다스리고해변에서 나는 곡식을 운송하여 西河로 보냈습니다.

當是之時,男子疾耕不足於糟糠,女子紡績不足於蓋形。
당시에 남자들은 애써 농사를 지어도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얻어먹기에 부족하였으며여자들은 밤낮으로 베를 짰지만 제 몸조차 가릴 수 없었습니다.

遣蒙恬筑長城,東西數千里,暴兵露師常數十萬,死者不可勝數,僵尸千里,流血頃畝,百姓力竭,欲為亂者十家而五。
蒙恬을 파견하여 長城을 쌓으니 동서로 수천 리였고햇볕을 쐬고 밤이슬을 맞는 군대는 항상 수십만이었고죽은 자는 헤아릴 수 없었고시체가 천 리에 널렸고피가 흘러 논밭을 적셨고백성은 힘이 다하매반란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열 집에 다섯 집이었습니다.

又使徐福入海求神異物,還為偽辭曰:
또 徐福을 시켜 바다로 가서 신선과 奇異한 물건을 찾음에서복이 돌아와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臣見海中大神,言曰:「汝西皇之使邪?」
제가 바다의 大神을 만났는데
네가 서쪽 땅 황제의 사신이냐?’라고 묻기에

臣答曰:
「然。」
제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汝何求?」
무엇을 구하느냐?’
라고 묻기에

曰:
「願請延年益壽藥。」
수명을 연장시키는 仙藥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神曰:
「汝秦王之禮薄,得觀而不得取。」
海神이 말하기를,
너희 왕의 예물이 너무 하매 약을 볼 수는 있으나 가지지는 못할 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即從臣東南至蓬萊山,見芝成宮闕,有使者銅色而龍形,光上照天。
곧 저를 데리고 동남쪽으로 가서 蓬萊山에 도착하니靈芝로 이루어진 궁궐이 보였고使者가 있었는데 구릿빛에 용의 모습을 하였으며광채가 위로 하늘에 비치었습니다.

於是臣再拜問曰:
「宜何資以獻?」
그래서 제가 再拜하고
어떤 예물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묻자,

海神曰:
「以令名男子若振女與百工之事,即得之矣。」』
海神이 말하기를
좋은 집안의 사내아이 또는 계집아이 그리고 百工의 기예를 바치면약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秦皇帝大說,遣振男女三千人,資之五穀種種百工而行。
秦皇帝가 매우 기뻐하며 童男童女 3천 명을 보내고 오곡의 각종 씨앗과 百工을 제공하였습니다.

徐福得平原廣澤,止王不來。
서복은 넓은 들을 찾아내고그곳에 머물러 왕 노릇을 하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於是百姓悲痛相思,欲為亂者十家而六。
그래서 백성은 (잡혀간 친척을비통하게 생각하매난을 일으키려는 자가 열 집에 여섯 집이었습니다.

又使尉佗踰五嶺攻百越。
또 尉佗를 시켜 五嶺을 넘어 百越을 공격하였습니다.

尉佗知中國勞極,止王不來,使人上書,求女無夫家者三萬人,以為士卒衣補。
위타는 中原의 피로가 지극함을 알고남월에 머물러 왕 노릇을 하며 돌아오지 않고사람을 보내어 글을 올리고媤家가 없는 부녀 3만 명을 요구하여 士卒의 옷을 꿰매게 하려 하였습니다.

秦皇帝可其萬五千人。
秦皇帝가 그중 1만 5천 명을 보내라고 裁可하였습니다.

於是百姓離心瓦解,欲為亂者十家而七。
그래서 백성의 마음이 離散함이 土崩瓦解와 같아서난을 일으키려는 자가 열 집에 일곱 집이었습니다.

客謂高皇帝曰:
『時可矣。』
빈객이 高皇帝에게 말하기를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니,

高皇帝曰:
『待之,聖人當起東南閒。』
高皇帝께서 말하기를
기다려라성인이 장차 동남쪽에서 일어날 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不一年,陳勝吳廣發矣。
1년이 되지 않아 陳勝과 吳廣이 發兵하였습니다.

高皇始於豐沛,一倡天下不期而響應者不可勝數也。
高皇帝께서 豐邑 沛縣에서 거사하여 唱導하니천하 사람이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호응하는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此所謂蹈瑕候閒,因秦之亡而動者也。
이것이 소위 약점을 이용하여 틈을 엿봄이니이 망함을 틈타 거사하였습니다.

百姓願之,若旱之望雨,故起於行陳之中而立為天子,功高三王,德傳無窮。
백성이 원하기를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이 하였으매그런 까닭에 行軍 중에서 일어나 즉위하여 천자가 되셨으니 功業은 三王보다 높고은덕을 전하기를 무궁하였습니다.

今大王見高皇帝得天下之易也,獨不觀近世之吳楚乎?
지금 대왕께서 高皇帝께서 천하를 얻었음이 쉬움만 보시고유독 근래의 오와 의 사례는 관찰하지 않으십니까?

夫吳王賜號為劉氏祭酒,復不朝,王四郡之眾,地方數千里,內鑄消銅以為錢,東煑海水以為鹽,上取江陵木以為船,一船之載當中國數十兩車,國富民眾。
무릇 吳王 劉濞는 를 하사받아 劉氏의 祭酒가 되어 다시 입조하지 않아도 되었고, 4의 백성을 다스리고 영토가 사방 수천 리나 되었고안으로는 구리를 주조하여 돈을 만들고동쪽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었고위로는 江陵의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는데배 한 척의 적재량은 중국의 수레 수십 에 해당하며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이 많았습니다.

行珠玉金帛賂諸侯宗室大臣,獨竇氏不與。
珠玉과 황금과 비단을 나누어 제후와 종실의 대신들에게 뇌물로 주었으나유독 외척인 竇氏에게는 주지 않았습니다.

計定謀成,舉兵而西。
반란의 계책이 정해지고 모의가 이루어지자 군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갔습니다.

破於大梁,敗於狐父,奔走而東,至於丹徒,越人禽之,身死絕祀,為天下笑。
大梁에서 패배하고 狐父에서 敗散하여 달아나서 동쪽 丹徒에 이르자의 사람들이 그를 사로잡아 자신은 죽고 제사는 끊겨 천하가 비웃는 바 되었습니다.

夫以吳越之眾不能成功者何?
무릇 와 의 많은 군대로도 성공할 수 없었음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誠逆天道而不知時也。
진실로 하늘의 도를 역행하고시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方今大王之兵眾不能十分吳楚之一,天下安寧有萬倍於秦之時,願大王從臣之計。
지금 대왕의 병력은 吳楚를 10으로 나눈 것의 1도 되지 못하며천하는 秦 때보다 만 배나 안정되어 있으니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大王不從臣之計,今見大王事必不成而語先泄也。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으신다면이제 대왕의 대사는 반드시 실패하고 말이 먼저 누설됨을 보게 될 터입니다.

臣聞微子過故國而悲,於是作麥秀之歌,是痛紂之不用王子比干也。
신이 듣기로는 微子가 고국을 지나다가 슬퍼하여 麥秀之歌를 지었다고 하는데이것은 紂王이 왕자 比干의 간언을 채용하지 않았음을 슬퍼한 것입니다.

故孟子曰
『紂貴為天子,死曾不若匹夫』。
그래서 孟子에 일렀습니다.
紂王의 존귀함이 천자이나 죽어서는 匹夫만도 못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是紂先自絕於天下久矣,非死之日而天下去之。
紂王 자신이 먼저 천하 사람을 버린 지 오래된 것이지그가 죽은 날에 천하사람이 그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今臣亦竊悲大王棄千乘之君,必且賜絕命之書,為群臣先,死於東宮也。」
이제 신도 역시 삼가 대왕께서 千乘의 군주를 포기하심을 슬퍼하오니곧 조정에서 틀림없이 목숨을 끊으라는 글을 내리실 테니대왕 자신을 신하들보다 앞세우고 東宮에서 죽으십시오.”

於是氣怨結而不揚,涕滿匡而橫流,即起,歷階而去。
이에 오피의 氣候에 원한이 맺혀 얼굴색이 침울해지고눈물이 눈언저리에 가득하여 안면에 흘러내리더나곧바로 일어나 계단을 한 걸음씩 밟으며 물러갔다.

▶ 術士 : 儒生.
▶ 燔詩書 : 진시황의 焚書坑儒를 말한다.
▶ 轉 : 운송하다.
▶ 負海之粟 : 해변에서 나는 곡식.
▶ 暴兵露師 : 군대가 비바람에 노출됨. 暴은 노출되다.
▶ 僵尸 : 썩지 않고 굳어진 송장.
▶ 頃畝 : 100畝를 1頃으로 하므로 많은 농토를 말한다.
▶ 為亂 : ‘為’는 실사로서 ‘행하다.’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爲

한문의 허사(虛詞) 爲 之爲 구조조사 爲乎 의문어기 爲也 금지어기 爲哉 의문어기 필자는 이 글자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만 한문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래 “爲행할 위”자와

koahn.tistory.com

▶ 十家而五 : 而는 이치상으로 앞뒤의 내용이 이어짐을 나타낸다. “곧” “이에”
‘열 집에 다섯 집’, ‘열 집이면 곧 다섯 집’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而

한문의 허사(虛詞) 而 而已 ~일 따름이다 而後 ~한 연후에 而는 2인칭 대명사로서 爾자 및 汝자와 통한다. 또한 접속사로서 그 용법이 매우 다양하며, 그 뜻 또한 매우 신축적이다. (1) 而는 주어와

koahn.tistory.com

​▶ 徐福 : <史記 권6. 秦始皇本紀>에는 徐市로 기록되어 있다. 秦 때의 方士로 秦始皇의 명을 받들고 불로초를 찾아 선남선녀 3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 西皇 : 서쪽 땅의 황제.
▶ 芝 : 영지버섯. 먹으면 장생불사한다는 자주색의 靈芝.
▶ 令名男子 : 良家의 童男.
▶ 若 : 若은 단어나 구 혹은 단문을 이어주며 선택 관계를 나타낸다. “아니면” “혹은”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若

한문의 허사(虛詞) 若 若乃 ~의경우는 若其 가령 若苟 만약 若使 가령 若或 만일 若猶 만일 若萬一 만일 若干 약간 “若”은 그 용법이 대단히 많다. ① 상고 시대에는 “順”자를 의미했다. 《左

koahn.tistory.com

¶ 若從踐土, 若從宋, 亦唯命. 《左傳 昭公13年》
○ 천토의 맹약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송나라를 따를 것인가는, 오직 여기 진나라에서의 명령에 달려 있습니다.
¶ 以萬人若一郡降者, 封萬戶. 《漢書 高帝紀》
○ 일만 명 혹은 일개 군을 이끌고 투항해 오는 자는, 그를 만호후에 봉해주었다.
¶ 灌夫奮曰: “願取吳王若將軍頭以報父之仇.” 《史記 竇嬰田蚠傳》
○ 관부가 분연히 말했다: “오왕의 목 아니면 그 대장의 머리를 취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 振女 : 童女. 어린 계집아이. 振은 侲과 통한다.
▶ 百工 : 온갖 匠人.
▶ 尉他 : 趙佗. 南越의 초대 왕으로, 秦의 항산군 眞定縣 사람이다. 秦 말기의 혼란기에 南海郡尉를 대행한 龍川縣令이었는데 남해군과 그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秦의 멸망과 함께 계림·상의 2군을 합쳐 南越國을 창건하고 武王이라 칭하였다.<사기 권113. 남월열전>
▶ 五嶺 : 大庾嶺, 越城嶺, 騎田嶺, 萌渚嶺, 都龐嶺을 말한다.
▶ 中國 : 中原을 말한다.
▶ 女無夫家 : 시집가지 않은 여자.
▶ 高皇帝 : 漢高祖 劉邦.
▶ 蹈瑕候閒 : 약점을 이용하여 틈을 엿보다. 蹈는 이용하다. 瑕는 빈틈. 閒 빈틈.
▶ 行 : 군사를 편성하는 隊伍.
▶ 吳王 : 오왕 吳王 劉濞는 前漢의 제후왕으로 한 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하는 것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사기 권106.吳王濞列傳>
▶ 祭酒 : 중국 고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는 일을 담당한 연장자. 좨주로 읽는다.
▶ 消 : 銷와 통한다. 금속을 녹이다.
▶ 兩 : 輛과 통한다. 수레의 수를 세는 단위.
▶ 竇氏 : 문제의 황후는 竇황후로 두씨는 외척을 말한다.
▶ 禽 : 擒과 같다. 사로잡히다.
▶ 絕祀 : 제사가 끊어짐. 즉 나라가 망했다는 뜻.
▶ 吳越之眾 :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동월이 오왕의 반란에 참여하였으므로 오월의 군대라고 한 것이다. <사기 권114. 동월열전>
▶ 微子 : 중국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의 이복형으로서 상이 멸망한 뒤에 주성왕이 宋에 봉하였다. 비간, 기자와 함께 상 말기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꼽힌다.
<漢書 伍被傳>과 <사기 권38. 宋微子世家>에 “箕子‘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미자가 아닌 기자의 麥秀之詩로 보아야 한다.
麥秀之歌는 箕子가 고국 殷나라가 망한 뒤 황폐해진 궁궐에 보리와 기장만 무성함을 보고 한탄하며 불렀다는 노래로 나라가 망함을 한탄한 노래의 의미로 쓰인다.
“보리 잘 되어 이삭 빼어났네, 벼와 기장 자라 올라 우거졌구나! 저 교활한 紂王이여, 나와는 가까이 지내지 못했구나!(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史記 권38.宋微子世家>
▶ 比干 : 紂王의 숙부,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심장을 가르는 형벌로 죽임을 당하였다.<사기 권3. 殷本紀>
▶ 死曾不若匹夫: “曾”은 “뜻밖에, 의외로”라는 뜻의 부사로 쓰인다. 말하는 사람이 불가능하거나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발생했음을 나타내어 놀람, 감탄, 비난 따위의 어감을 품고 있다. <한문의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曾(거듭)

한문의 허사(虛詞) 曾(거듭) “曾”은 두 가지 별개의 글자로 쓰인다. ① “曾일찍증”은 [céng]으로 읽으며 “嘗”[일찍이 이전에]자와 용법이 같다. 과거에 모종의 행위나 정황이 있었음을 표시

koahn.tistory.com

▶ 千乘之君 : 제후를 말한다. 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로 周나라 때 전시에 天子는 萬乘을, 諸侯는 千乘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 怨結 : 원한의 응어리.
▶ 匡 : 眶과 통한다. 眼眶. 눈가. 눈언저리.

王有孽子不害,最長,王弗愛,王、王后、太子皆不以為子兄數。
회남왕의 庶子 不害는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왕은 사랑하지 않았고왕과 왕후 그리고 태자가 모두 자식이나 형으로 여기지 않았다.

不害有子建,材高有氣,常怨望太子不省其父;
又怨時諸侯皆得分子弟為侯,而淮南獨二子,一為太子,建父獨不得為侯。
유불해에게 아들 이 있었는데 재능이 뛰어나고 기개가 있었으나항상 태자 劉遷이 그의 아버지를 찾아보지 않음을 원망하였다.
또 당시 제후는 자제들에게 봉지를 나누어 주고 로 삼았는데회남왕에게 오직 두 아들이 있는데도 한 명만 태자로 삼고유독 유건의 아버지만 후로 봉하지 않음을 원망하였다.

建陰結交,欲告敗太子,以其父代之。
유건이 은밀히 사람들과 결탁하여 태자를 몰아내고 그ᄋힹ 아버지가 대신하게 하려고 하였다.

太子知之,數捕系而榜笞建。
태자가 그 사실을 알고 유건을 여러 차례 잡아 가두고 매질하였다.

建具知太子之謀欲殺漢中尉,即使所善壽春莊芷以元朔六年上書於天子曰:
유건은 태자가 모의하여 의 中尉를 죽이려 하였음을 다 알고 있었으매즉각 잘 지내던 壽春縣의 莊芷를 시켜 원삭 6(기원전 123)에 천자에게 上書하여 아뢰었다.

「毒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데 이롭습니다.

今淮南王孫建,材能高,淮南王王后荼、荼子太子遷常疾害建。
지금 회남왕의 손자인 유건은 재능이 뛰어나지만회남왕의 왕후 와 의 아들인 태자 劉遷이 항상 유건을 시기하여 해치려고 합니다.

建父不害無罪,擅數捕系,欲殺之。
유건의 아비 유불해에게 죄가 없는데도멋대로 누차 잡아서 가두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今建在,可徵問,具知淮南陰事。」
지금 유건이 살아있으니 불러 심문하실 수 있으며그는 회남왕의 은밀한 일을 다 알고 있습니다.”

書聞,上以其事下廷尉,廷尉下河南治。
上奏文을 아뢰자황제가 그 사건을 廷尉에게 내렸고정위는 하남군의 官府에서 심리하도록 하였다.

是時故辟陽侯孫審卿善丞相公孫弘,怨淮南厲王殺其大父,乃深購淮南事於弘,弘乃疑淮南有畔逆計謀,深窮治其獄。
이때 옛 벽양후 審食其의 손자인 審卿은 승상 公孫弘과 친하였는데淮南 厲王이 그의 祖父를 죽였음에 원한을 품고 있었고이에 공손홍에게 회남왕의 사건을 깊이 음해하매공손홍이 이에 회남왕에게 반란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여 그 獄事를 철저히 규명하도록 하였다.

河南治建,辭引淮南太子及黨與。
河南郡府에서 유건을 심문하자 그의 말이 회남 태자와 그 朋黨에까지 파급되었다.

淮南王患之,欲發,問伍被曰:
「漢廷治亂?」
회남왕이 이를 근심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오피에게 물었다.
의 조정은 治世이오아니면 亂世이오?”

伍被曰:
「天下治。」
오피가 대답하였다.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王意不說,謂伍被曰:
「公何以言天下治也?」
회남왕은 내심 불쾌하여 오피에게 물었다.
공은 무슨 근거로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고 말하는가?”

被曰:
「被竊觀朝廷之政,君臣之義,父子之親,夫婦之別,長幼之序,皆得其理,上之舉錯遵古之道,風俗紀綱未有所缺也。
오피가 대답하였다.
제가 삼가 조정의 정치를 살펴보니 君臣之義父子之親夫婦之別長幼之序가 모두 그 도리를 얻었고황제가 일을 처리함도 옛날의 도리를 준수하며풍속과 기강에 缺失이 없습니다.

重裝富賈,周流天下,道無不通,故交易之道行。
많은 화물을 가득 실은 부유한 상인들이 천하를 두루 다니고길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매 교역의 도리가 행하여집니다.

南越賓服,羌僰入獻,東甌入降,廣長榆,開朔方,匈奴折翅傷翼,失援不振。
남월이 복종하고과 은 입조하여 조공을 바치고東甌가 들어와 항복하였으며長楡의 변방을 개척하고朔方郡을 開創하니匈奴는 날개가 부러지고 하여 지원자를 잃으매 힘을 떨치지 못합니다.

雖未及古太平之時,然猶為治也。」
비록 고대의 태평 시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그래도 잘 다스려진다고 하겠습니다.”

王怒,被謝死罪。
회남왕이 노하자 오피는 죽을죄라며 사죄하였다.

王又謂被曰:
「山東即有兵,漢必使大將軍將而制山東,公以為大將軍何如人也?」
회남왕이 또 오피에게 말하였다.
山東에서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은 필시 대장군 衛靑을 장수로 삼아 산동을 제압할 터인데공은 대장군 위청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被曰:
「被所善者黃義,從大將軍擊匈奴,還,告被曰:
『大將軍遇士大夫有禮,於士卒有恩,眾皆樂為之用。

騎上下山若蜚,材干絕人。』
오피가 대답하였다.
저와 잘 지내는 黃義가 대장군을 따라 흉노를 친 적이 있는데돌아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대장군은 사대부를 대우함에 예의가 있고사졸에게는 은덕이 있으매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쓰임을 좋아합니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르내림이 나는 듯하고材木이 남보다 뛰어납니다.’

▶ 孽子 : 庶子.
▶ 數 : 숫자.
▶ 氣 : 意氣. 의지와 기개.
▶ 省 : 안부를 묻다.
▶ 榜 : 매질하다. 채찍질하다.
▶ 笞 : (채찍이나 곤장 따위로) 때리다. 매질하다.
▶ 元朔六年 : 기원전 123년. 원삭은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
▶ 陰事 : 은밀한 일.
▶ 大父 : 祖父.
▶ 購 : 構이어야 한다. 옭다. 음해하다
▶ 深窮 : 죄상을 철저히 규명하다. 窮은 끝까지 밝혀내다.
▶ 獄 : 獄事. 살인 반역등의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일.
▶ 舉錯 : 일을 처리함. 錯는 措와 통하여 처리하다. 조처하다.
▶ 賓服 : 복종하다.
▶ 羌僰 : 羌과 僰. 부족명.
▶ 東甌入降 : 東越은 東甌라고도 하며, 閩越國 無諸의 후손인 郢이 東甌·南越 등의 주변 국가를 침범하여 漢武帝가 군사를 동원하여 민월을 공격하자, 영의 동생 餘善이 영을 죽이고 漢에 항복하였다.<사기 권114. 東越列傳>
▶ 衛靑 : 前漢의 將帥. 곽거병과 함께 무제 때 흉노를 일곱 차례나 물리쳐 관직이 大司馬‧大將軍에 이르렀다.<사기 권11. 衛將軍驃騎列傳>
▶ 蜚 : 飛와 같다.
▶ 材干絕人 :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다. 材干: 才干(재능). 재목

被以為材能如此,數將習兵,未易當也。
제가 생각하기에 재능이 이와 같고여러 차례 군사를 훈련하였으니 쉽게 당하지 못할 터입니다.

及謁者曹梁使長安來,言大將軍號令明,當敵勇敢,常為士卒先。
또 謁者인 曹梁이 장안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말하기를대장군 위청은 호령이 분명하고 적을 당함에 용감하여 항상 사졸의 앞장이 되고,

休舍,穿井未通,須士卒盡得水,乃敢飲。
휴식하며 住宿함에우물을 파서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반드시 사졸이 물을 다 마신 뒤 마시고,

軍罷,卒盡已度河,乃度。
군대가 철수함에는 사졸이 강을 건넌 후에야 건너고,

皇太后所賜金帛,盡以賜軍吏。
황태후가 하사한 금전과 비단은 모두 軍吏에게 준다고 합니다.

雖古名將弗過也。」
비록 옛날의 이름난 명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보다 낫지는 않을 터입니다.”

王默然。
회남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淮南王見建已徵治,恐國陰事且覺,欲發,被又以為難,乃復問被曰:
「公以為吳興兵是邪非也?」
회남왕은 劉建이 불려가 심문을 받고 있어서나라의 은밀한 일이 곧 발각될까 걱정하였으매發兵하고 싶었으나 오피가 또 성사되기 어렵다고 말하자다시 오피에게 물었다.
공은 의 興兵이 옳다고 생각하오옳지 않다고 생각하오?”

被曰:
「以為非也。
오피가 대답하였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吳王至富貴也,舉事不當,身死丹徒,頭足異處,子孫無遺類。
吳王 劉濞는 지극히 부유하고 존귀하였으나 舉事가 부당하였으매몸은 丹徒에서 죽고머리와 발은 居處를 달리하고자손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臣聞吳王悔之甚。
신이 듣기로 오왕이 몹시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願王孰慮之,無為吳王之所悔。」
왕께서 이것을 깊이 살피시어오왕이 후회한 일을 행함이 없기 바랍니다.”

王曰:
회남왕이 말하였다.
「男子之所死者一言耳。
대장부의 죽음은 한마디로 그만이오.

且吳何知反,漢將一日過成皋者四十餘人。
더구나 오왕이 반란의 방법을 어찌 알았겠소漢將으로 하루에 成皐의 요새를 통과하는 자가 40여 명이오.

今我令樓緩先要成皋之口,周被下潁川兵塞轘轅、伊闕之道,陳定發南陽兵守武關。
이제 내가 樓緩을 시켜 먼저 成皋의 입구를 가로막고周被를 시켜 穎川郡의 군대를 거느리고 轘轅과 伊闕의 길을 막고陳定을 시켜 南陽의 군사를 일으켜 武關을 지키겠소.

河南太守獨有雒陽耳,何足憂。
하남 태수가 홀로 雒陽에 있을 뿐이니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然此北尚有臨晉關、河東、上黨與河內、趙國。
그러나 이들 북쪽에는 아직도 臨晉關河東上黨과 河內 그리고 가 있소.

人言曰
『絕成皋之口,天下不通』。
사람들이 말하기를
成皋의 입구를 끊으면 천하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했소.

據三川之險,招山東之兵,舉事如此,公以為何如?」
이곳 三川의 險阻에 의지하여 산동의 군사를 부름이니 거사가 이와 같다면 공은 어떻게 생각하오?”

被曰:
「臣見其禍,未見其福也。」
오피가 대답하였다.
신에게 그 는 보이지만 그 은 보이지 않습니다.”

王曰:
「左吳、趙賢、朱驕如皆以為有福,什事九成,公獨以為有禍無福,何也?」
회남왕이 말하였다.
左吳趙賢朱驕如는 모두 복이 있어서 열 일에 아홉은 성공한다고 말하는데공만이 홀로 화만 있고 복이 없다고 여김은 무엇 때문이오?”

被曰:
「大王之群臣近幸素能使眾者,皆前系詔獄,餘無可用者。」
오피가 대답하였다.
대왕의 가까이서 총애받던 신하 중 평소 군사를 잘 부리던 자들은 모두 이전의 조서의 罪案에 걸려 있으며그 나머지는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王曰:
「陳勝、無立錐之地,千人之聚,起於大澤,奮臂大呼而天下響應,西至於戲而兵百二十萬。
회남왕이 말하였다.
陳勝과 吳廣은 송곳 꽂을 땅이 없이 천 명의 무리를 모아 大澤에서 일어나서팔을 휘두르며 크게 호령하자 천하가 호응하였고서쪽으로 戱水에 이르자 군사가 120만 명이나 되었소.

今吾國雖小,然而勝兵者可得十餘萬,非直適戍之眾,釠鑿棘矜也,公何以言有禍無福?」
지금 우리나라가 비록 작으나 군사로 뽑을 수 있는 자가 10여 만이고이들은 유배된 수자리의 무리도 아니고 쇠뇌와 창 자루를 가졌는데공은 무엇을 근거로 화만 있고 복은 없다고 말하오?”

被曰:
「往者秦為無道,殘賊天下。
오피가 대답하였다.
예전에 은 포학무도하여 천하의 백성을 잔인하게 해쳤습니다.

興萬乘之駕,作阿房之宮,收太半之賦,發閭左之戍,父不寧子,兄不便弟,政苛刑峻,天下熬然若焦,民皆引領而望,傾耳而聽,悲號仰天,叩心而怨上,故陳勝大呼,天下響應。
만승의 수레를 동원하여 阿房宮을 짓고백성의 수입 대부분을 세금으로 거두고빈민가의 백성을 징발하여 변방을 지키게 하매아버지는 자식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형은 동생을 안심하게 하지 못하였고정치는 가혹하고 형벌은 준엄하매천하는 마치 불에 탄 듯 바싹 졸여졌고백성은 모두 목을 길게 빼고서 갈망하며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고비통해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고가슴을 치며 황제를 원망했기 때문에 陳勝이 크게 호령하자 천하가 호응하였습니다.

當今陛下臨制天下,一齊海內,汎愛蒸庶,布德施惠。
지금 폐하께서는 조정에 군림하여 천하를 다스림에해내를 통일하고널리 백성을 사랑하고 은덕과 은혜를 널리 베푸십니다.

口雖未言,聲疾雷霆,令雖未出,化馳如神,心有所懷,威動萬里,下之應上,猶影響也。
비록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소리가 세찬 천둥처럼 빠르게 전해지고비록 詔令이 내리기 전이어도 신이 돕는 듯이 교화가 신속히 이루어지고마음속에 품은 바가 있으면 위엄이 만 리를 움직이며백성이 황제에 호응하는 것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았습니다.

而大將軍材能不特章邯、楊熊也。
그리고 대장군 위청의 재능은 章邯이나 楊熊의 짝이 아닙니다.

大王以陳勝、吳廣諭之,被以為過矣。」
대왕께서는 陳勝과 吳廣으로 비유하시지만저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王曰:
「茍如公言,不可徼幸邪?」
회남왕이 물었다.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僥倖으로 성공할 수 없소?”

被曰:
「被有愚計。」
오피가 대답하였다.
저에게 어리석은 계책이 있습니다.”

王曰:
「柰何?」
회남왕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오?”

被曰:
「當今諸侯無異心,百姓無怨氣。
오피가 대답하였다.
지금 제후는 다른 마음이 없고 백성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朔方之郡田地廣,水草美,民徙者不足以實其地。
삭방군의 농토는 넓으며 강물과 초목은 아름다우나이주하는 백성이 그 땅을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臣之愚計,可偽為丞相御史請書,徙郡國豪桀任俠及有耐罪以上,赦令除其罪,產五十萬以上者,皆徙其家屬朔方之郡,益發甲卒,急其會日。
신의 어리석은 계책이란 승상과 어사대부가 주청하는 문서를 위조하여의 호걸任俠 耐罪 이상의 죄인을 옮기고사면령으로 그들의 죄를 해제하고재산이 50만 전 이상인 자는 모두 그 가속을 삭방군으로 옮기고군사를 더 징발하되 그들의 모이는 날을 재촉합니다.

又偽為左右都司空上林中都官詔獄 逮諸侯太子幸臣。
또 左右都司空上林中都官의 詔獄 문서를 위조하여 제후의 태자와 황제가 총애하는 신하들을 체포합니다.

如此則民怨,諸侯懼,即使辯武隨而說之,儻可徼幸什得一乎?」
그와 같으면 백성은 황제를 원망하고 제후는 두려워할 터이니곧 변사를 시켜 때를 맞추어 그들을 설득한다면 혹시 요행으로 열에 하나는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王曰:
「此可也。
雖然,吾以為不至若此。」
회남왕이 말하였다.
좋소.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오.”

於是王乃令官奴入宮,作皇帝璽,丞相、御史、大將軍、軍吏、中二千石、都官令、丞印,及旁近郡太守、都尉印,漢使節法冠,欲如伍被計。
이에 회남왕은 官奴를 궁궐에 들여보내 황제의 옥새승상·어사·대장군·軍吏·中二千石·都官令·의 印章가까운 의 태수·都尉의 인장의 使節이 사용하는 冠帽를 만들게 하여오피의 계획대로 하려고 하였다.

使人偽得罪而西,事大將軍、丞相;
一日發兵,使人即刺殺大將軍青,而說丞相下之,如發蒙耳。
사람을 시켜 죄를 지은 척하고 서쪽 장안으로 가서 대장군과 승상을 섬기고,
어느 날 군대를 일으킬 때사람을 시켜 즉각 대장군 위청을 찔러 죽이고승상을 설득하여 항복하게 함이 덮개를 열 듯이 쉽다고 생각하였다.

▶ 度 : 渡와 같다. 강을 건너다.
▶ 默然 :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한 모습.
▶ 要 : 가로막다.
▶ 三川 : 伊水, 洛水, 黄河를 말한다.
▶ 勝兵者 : 승리할 수 있는 군대.
▶ 適戍 : 죄를 지어 변방에서 수자리를 하다. 適은 謫과 같다.
▶ 釠鑿 : 나무로 만든 쇠뇌.
▶ 棘矜 : 戟柄. 창 자루. 矜은 창 자루 ‘근’.
▶ 發閭左之戍 : 빈민가 백성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다. 閭左는 빈민가를 말한다. 秦 때 가난한 백성에게 부역을 면제하여 주며 마을 왼쪽에서 살도록 하였다.
▶ 傾耳而聽 : 귀를 기울여 듣다.
▶ 熬然若焦 : 백성이 시달림을 받았다는 뜻. 熬然은 바싹 졸이다. 焦는 타다.
▶ 叩心 : 주먹으로 가슴을 치다.
▶ 蒸 : 백성. 많다.
▶ 雷霆 : 세찬 천둥소리.
▶ 化馳如神 : 신의 힘이 돕는 것처럼 교화가 신속히 진행되다.
▶ 猶影響 :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목소리에 응하는 메아리와 같다. 響은 메아리.
▶ 不特 : ~뿐만 아니라. 짝이 아니다. 비교할 바가 아니다
▶ 章邯 : 秦 말기의 장수로 陳勝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項羽에게 투항하였다. 기원전 205년 유방의 한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자살하였다.<사기 권7. 項羽본기>
▶ 楊熊 : 秦의 장군.
▶ 諭 : 喻와 같다. 깨우치다. 알리다.
▶ 茍 : 만약. 진실로
▶ 耐罪 : 내는 耏와 통한다. 고대에 구레나룻을 깎는 형벌 또는 2년 이상의 형.
▶ 會日 : 모이는 날. 즉, 삭방군으로 옮겨 가는 날.
▶ 辨武 : 辯士. 말솜씨가 아주 능란한 사람.
▶ 儻 : 혹시.
▶ 法冠 : 漢의 사절과 법관이 쓰는 官帽.
▶ 發蒙 : 덮개를 젖혀서 연다는 뜻으로, 매우 쉬움을 말한다.

 

王欲發國中兵,恐其相、二千石不聽。
회남왕은 나라 안의 군사를 일으키고 싶었지만相國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이 따르지 않을 까 염려하였다.

王乃與伍被謀,先殺相、二千石;
偽失火宮中,相、二千石救火,至即殺之。
이에 왕은 오피와 모의하기를먼저 相國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을 죽이되,
거짓으로 궁중에 불이 났다고 하여 相國과 2천석 녹봉의 관리들이 불을 끄러 오면 즉시 죽이기로 하였다.

計未決,又欲令人衣求盜衣,持羽檄,從東方來,呼曰「南越兵入界」,欲因以發兵。
이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였으며또 사람들을 시켜 도둑 잡는 사졸의 옷을 입고긴급 檄文을 가지고 동쪽으로부터 와서 남월의 군대가 국경을 침입하였다.”라고 외쳐서이를 구실로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다.

乃使人至廬江、會稽為求盜,未發。
이에 사람들에게 廬江과 會稽에 가서 도둑 잡는 사졸로 가장하게 하였으나 군사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王問伍被曰:
「吾舉兵西鄉,諸侯必有應我者;
即無應,柰何?」
회남왕이 오피에게 물었다.
과인이 거병하여 서쪽으로 進軍하면 제후에 틀림없이 호응하는 자가 있을 터이오.
만약 호응이 없으면 어찌해야 하겠소?”

被曰:
「南收衡山以擊廬江,有尋陽之船,守下雉之城,結九江之浦,絕豫章之口,彊弩臨江而守,以禁南郡之下,東收江都、會稽,南通勁越,屈彊江淮閒,猶可得延歲月之壽。」
오피가 대답하였다.
남쪽으로는 衡山을 빼앗고 廬江을 치고尋陽의 배를 점유하고 下雉의 성을 지키고九江의 포구를 가로막아 豫章의 입구를 차단하고뛰어난 사수에게 長江을 지키게 하여 南郡의 군사들이 남하함을 막고동쪽으로는 江都와 회계를 공격하여 거두고남쪽으로는 강한 南越과 교류하고長江과 淮水 사이에서 강약을 조절하면 그나마 시일의 길이를 늘일 수 있을 터입니다.”

王曰:
「善,無以易此。
急則走越耳。」
회남왕이 말하였다.
좋소이 계책을 대체할 것은 없소.
사태가 다급하면 남월로 달아나면 그만이오.”

於是廷尉以王孫建辭連淮南王太子遷聞。
이때 廷尉는 회남왕의 손자 유건의 말에 따라 회남왕의 태자 유천이 역모에 연루되었음을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上遣廷尉監因拜淮南中尉,逮捕太子。
황제가 廷尉監을 파견하여 회남의 중위를 만남을 기회로 태자를 체포하게 하였다.

至淮南,淮南王聞,與太子謀召相、二千石,欲殺而發兵。
정위감이 회남에 도착하자 회남왕이 소식을 듣고 태자와 모의하여 相國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을 불러서 죽이고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다.

召相,相至;
內史以出為解。
相國을 부르자 相國은 도착하였지만
內史는 출타 중이라 하고 빠져나갔다.

中尉曰:
「臣受詔使,不得見王。」
중위가 말하였다.
신은 조서를 가진 사신을 영접하매왕을 뵐 수가 없습니다.”

王念獨殺相而內史中尉不來,無益也,即罷相。
회남왕이 생각하기를비록 相國만 죽여도 내사나 중위가 오지 않는다면 무익하다고 생각하여 곧 相國을 놓아주었다.

王猶豫,計未決。
회남왕이 주저하면서 계획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太子念所坐者謀刺漢中尉,所與謀者已死,以為口絕,乃謂王曰:
「群臣可用者皆前系,今無足與舉事者。
王以非時發,恐無功,臣願會逮。」
태자는 자신이 연좌된 죄는 의 중위를 죽이려고 모의함이라고 생각하고함께 모의하였던 자가 이미 죽어서입을 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왕에게 말하였다.
신하들 가운데 쓸 만한 자는 이전에 모두 체포되고지금은 함께 거사할만한 자가 없습니다.
부왕께서 때가 아닌데도 發兵하여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우니제가 체포당하겠습니다.”

王亦偷欲休,即許太子。
왕도 역시 암암리에 거사를 멈추고 싶었으매 곧 태자의 청을 허락하였다.

太子即自剄,不殊。
태자가 곧바로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죽지는 않았다.

伍被自詣吏,因告與淮南王謀反,反蹤跡具如此。
오피가 스스로 관리를 찾아가서 회남왕과 함께 모반하였음을 고발하고모반한 정황을 모두 갖추어 이러이러하다고 말하였다.

吏因捕太子、王后,圍王宮,盡求捕王所與謀反賓客在國中者,索得反具以聞。
관리가 인하여 태자와 왕후를 체포하고 왕궁을 포위하여왕이 함께 반역을 모의한 빈객으로 나라 안에 있는 자를 모조리 체포하고반역의 器具를 찾아내어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上下公卿治,所連引與淮南王謀反列侯二千石豪傑數千人,皆以罪輕重受誅。
황제가 공경에게 사건을 내려 다스리게 하고회남왕과 모반에 연좌되었다고 나온 열후, 2천석 녹봉의 관리호걸 수천 명이 모두 죄의 경중에 따라서 처벌받았다.

衡山王賜,淮南王弟也,當坐收,有司請逮捕衡山王。
衡山王 劉賜는 회남왕의 동생으로 같은 죄로 판결받아 응당 체포해야 하였으매담당 관리가 형산왕을 체포하기를 청하였다.

天子曰:
「諸侯各以其國為本,不當相坐。
與諸侯王列侯會肄丞相諸侯議。」
황제가 말하였다.
제후는 각기 자기 나라로써 근본을 삼으니 서로 연좌됨은 부당하다.
제후왕열후와 함께 승상에게 가서 제후의 일을 의논하라.”

趙王彭祖、列侯臣讓等四十三人議,皆曰:
「淮南王安甚大逆無道,謀反明白,當伏誅。」
趙王 彭祖와 열후 曹讓 등 43명이 논의하였는데모두 말하였다.
회남왕 유안은 심히 대역무도하고 모반함이 명백하니 죽임이 마땅합니다.”

膠西王臣端議曰:
「淮南王安廢法行邪,懷詐偽心,以亂天下,熒惑百姓,倍畔宗廟,妄作妖言。
膠西王 劉端이 말하였다.
회남왕 유안은 함부로 법을 폐지하고 邪惡을 행하였으며 거짓된 마음을 품어천하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시키고 종묘를 배반하고망령되이 요사스러운 말을 퍼뜨렸습니다.

春秋曰
『臣無將,將而誅』。
<春秋>에 이르기를 신하는 모반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니만일 모반할 마음을 품었으면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安罪重於將,謀反形已定。
유안의 죄는 모반의 마음을 품은 것보다 무겁고모반의 態勢가 이미 정해진 형국입니다.

臣端所見其書節印圖及他逆無道事驗明白,甚大逆無道,當伏其法。
臣 端이 본 바로는 문서·부절·인장·지도와 그 밖의 대역무도한 일의 증거가 명백하고대역무도함이 심하니 마땅히 그를 법에 따라 사형하여야 합니다.

而論國吏二百石以上及比者,宗室近幸臣不在法中者,不能相教,當皆免官削爵為士伍,毋得宦為吏。
또 나라의 관리로서 봉록이 2백 석 이상인 자이와 비등한 자종실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서 법에 저촉되지 않은 자도 서로 가르치지 못하였으면마땅히 免官하고 작위를 삭탈하여 사졸로 삼아서다시는 벼슬하여 관리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其非吏,他贖死金二斤八兩。
관리가 아닌 기타의 죄인은 贖死金으로 금 2근 8량을 바쳐야 합니다.

以章臣安之罪,使天下明知臣子之道,毋敢復有邪僻倍畔之意。」
이로써 유안의 죄를 알려 천하 사람에게 신하의 도리를 분명히 알게 하여감히 다시는 사악한 모반의 마음을 갖지 말게 해야 합니다.”

丞相弘、廷尉湯等以聞,天子使宗正以符節治王。
승상 정위 湯 등이 이것을 보고하니천자가 宗正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회남왕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未至,淮南王安自剄殺。
종정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회남왕 유안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王后荼、太子遷諸所與謀反者皆族。
왕후 태자 유천모반에 가담하였던 자는 모두 멸족하였다.

天子以伍被雅辭多引漢之美,欲勿誅。
천자는 오피의 평소 言辭에 의 善政을 인용함이 많았으매 죽이지 않고 싶었다.

廷尉湯曰:
「被首為王畫反謀,被罪無赦。」
정위 장탕이 말하였다.
오피가 주모자로서 회남왕의 모반을 劃策하였으매오피의 죄를 용서하시면 안 됩니다.”

遂誅被。
이에 오피를 죽였다.

國除為九江郡。
봉국은 해제되어 九江郡이 되었다.

▶ 相國 : 宰相.
▶ 二千石 : 이천석의 녹봉을 받는 大臣.
▶ 求盗 : 도적을 추적하여 체포하는 사졸.
▶ 羽檄 : 새의 깃털을 꽂아 至急의 뜻을 나타내던 檄文.
▶ 東方 : <漢書·淮南王傳>에서는 ‘南方’으로 되어 있다. 南越은 남쪽에 있으므로 남방으로 함이 옳다.
▶ 鄉 : 向과 같다. 조정으로 향하다.
▶ 結 : 가로막다.
▶ 屈强 : 세력의 강약을 조절하다.
▶ 因拜 : 만나는 기회를 틈타다.
▶ 受詔使 : 황제가 파견한 사신을 영접하다.
▶ 坐 : 죄에 대하여 벌을 받다. 연좌되다
▶ 非時 : 시기에 적합하지 않다.
▶ 會逮 : 자진하여 체포당하다.
▶ 偷 : 슬그머니. 남몰래.
▶ 不殊 : 죽지 않다.
▶ 會肄 : 모여서 상의하다.
▶ 列侯臣讓 : 平陽侯 曹襄.
▶ 伏誅 : 사형집행을 받다.
▶ 熒惑 : 미혹하다. 현혹하다.
▶ 倍畔 : 背叛과 통한다.
▶ 臣無將 將而誅 : <春秋公羊傳 莊公 三十二年> “君親無將 將而誅焉.: 군주나 부모에게는 위해하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위해할 마음을 품었다면 죽여야 한다.”
▶ 驗 : 증거.
▶ 不在法中 : 모반에 참여하지 않아 법을 어기지 않음.
▶ 士伍 : 사병.
▶ 贖死金 : 사형을 면하기 위하여 바치는 돈.
▶ 章 : 彰과 같다. 분명히 드러내다.
▶ 邪僻 :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 宗正 : 관직명. 황제의 친족과 외척 등의 일을 관리하는 관직.
▶ 雅辞 : 정직한 말. 규범적인 말. 평소의 말
▶ 引 : 인용하여 열거하다. 끌어대다.



3. 衡山王 劉賜

 

衡山王 劉賜는 회남 여왕 유장의 셋째 아들로 廬江王과 衡山王을 지냈다.
漢文帝는 동생인 회남 여왕을 죽였다는 비난이 두려워 淮南國을 셋으로 나누어 劉長의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왕으로 삼았다劉安이 淮南王이 되고劉勃은 衡山王이 되었으며劉賜가 廬江王이 되었다.
景帝 3년(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면서 여강왕 유사는 이에 가담하지 않아 유발의 옛 제후국인 형산국을 이어 받아 형산왕이 되었다.
武帝 元狩 원년(서기전 122년형산왕 유사의 寵姬 徐來가 태자 劉爽을 모함해 태자를 폐위하고 동생 劉孝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자 유상은 아버지와 동생이 逆謀를 꾀한다고 고발하여 조정에서 형산왕 유사를 심문하려 하자 자살하였다.

 

衡山王賜,王后乘舒生子三人,長男爽為太子,次男孝,次女無采。
형산왕 劉賜의 왕후 乘舒이 낳은 자식이 셋인데장남 劉爽은 태자가 되었고차남은 劉孝이며 셋째인 딸은 劉無采이다.

又姬徐來生子男女四人,美人厥姬生子二人。
또 첩인 徐來가 낳은 자식은 아들딸 넷이었고美人 闕姬가 낳은 아들은 둘이었다.

衡山王、淮南王兄弟相責望禮節,閒不相能。
형산왕과 회남왕은 형제였으나 서로 예절을 책망하여 사이가 벌어져 화목하지 못하였다.

衡山王聞淮南王作為畔逆反具,亦心結賓客以應之,恐為所并。
형산왕은 회남왕이 모반에 사용할 반역의 도구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역시 마음속으로 빈객들과 결탁하여 그에 호응함은 그에게 병합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元光六年,衡山王入朝,其謁者衛慶有方術,欲上書事天子,王怒,故劾慶死罪,彊榜服之。
元光 6(기원전 129)에 형산왕이 입조함에그의 알자인 衛慶에게 방술이 있어서 上書하여 천자를 섬기려고 하자형산왕이 노하여 고의로 위경에게 죽을죄가 있다고 탄핵하고嚴酷하게 매질하여 죄를 시인하게 하였다.

衡山內史以為非是,卻其獄。
형산의 內史가 옳지 않다고 여기고그 소송사건을 却下하였다.

王使人上書告內史,內史治,言王不直。
형산왕은 사람을 보내 上書하여 내사를 고발하매내사는 조사를 받으면서 형산왕이 정직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王又數侵奪人田,壞人冢以為田。
형산왕은 또 누차 남의 밭을 빼앗고남의 무덤을 파헤쳐 전답으로 만들었다.

有司請逮治衡山王。
담당 관리가 형산왕을 체포하여 죄를 다스리자고 청하였다.

天子不許,為置吏二百石以上。
천자가 허락하지 않고다만 2백석 이상의 관리를 조정에서 직접 배치하였다.

衡山王以此恚,與奚慈、張廣昌謀,求能為兵法候星氣者,日夜從容王密謀反事。
형산왕은 이 때문에 분노하여 奚慈와 張廣昌과 모의하고 병법에 능하고 천문 기상에 능한 자를 구하였으며밤낮으로 형산왕에게 은밀히 모반의 일을 선동하였다.

王后乘舒死,立徐來為王后。
왕후 乘舒가 죽자 徐來를 왕후로 세웠다.

厥姬俱幸。
厥姬도 함께 총애를 받았다.

兩人相妒,厥姬乃惡王后徐來於太子曰:
「徐來使婢蠱道殺太子母。」
서래와 궐희는 서로 질투하였으며궐희가 왕후 서래를 험담하여 태자에게 말했다.
서래가 계집종을 시켜 저주하는 邪術로 태자의 모친을 죽였습니다.”

太子心怨徐來。
태자가 마음속으로 왕후인 서래를 원망했다.

徐來兄至衡山,太子與飲,以刃刺傷王后兄。
서래의 오빠가 형산에 옴에 태자가 함께 술을 마시다가 황후의 오빠를 칼로 찔러 상처를 입혔다.

王后怨怒,數毀惡太子於王。
왕후가 원한을 품고 노여워하여 여러 차례 왕에게 태자를 악담하였다.

太子女弟無采,嫁棄歸,與奴姦,又與客姦。
태자의 누이동생인 無采는 시집갔다가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와서 종과 간통을 하고또 빈객과도 간통하였다.

太子數讓無采,無采怒,不與太子通。
태자는 누차 무채를 꾸짖자 무채는 화가 나서 태자와 왕래하지 않았다.

王后聞之,即善遇無采。
왕후가 그 사실을 알고 곧 무채를 잘 대해주었다.

無采及中兄孝少失母,附王后,王后以計愛之,與共毀太子,王以故數擊笞太子。
무채와 둘째 오빠 유효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서 왕후를 따랐으며왕후는 계략적으로 그들을 아끼는 척하면서 그들과 함께 태자를 헐뜯었으매형산왕이 그 때문에 여러 차례 태자를 매질하였다.

元朔四年中,人有賊傷王后假母者,王疑太子使人傷之,笞太子。
원삭 4(기원전 125)에 누군가 왕후의 계모를 찔러 다치게 하자형산왕은 태자가 사람을 시켜 그녀를 다치게 하였다고 의심하고 태자를 매질하였다.

後王病,太子時稱病不侍。
훗날 형산왕이 병들자 태자는 늘 칭병하며 시중들지 않았다.

孝王后、無采惡太子:
「太子實不病,自言病,有喜色。」
유효와 왕후 徐來유무채 모두가 태자를 헐뜯었다.
태자는 실제로 병들지 않았고자신이 병이 났다고 말하지만얼굴에 喜色을 띠고 있습니다.”

王大怒,欲廢太子,立其弟孝。
형산왕은 크게 노하여 태자를 폐하고 그의 동생 유효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王后知王決廢太子,又欲并廢孝。
왕후는 왕이 태자를 폐하기로 결심하였음을 알고 유효도 함께 폐하려고 하였다.

王后有侍者,善舞,王幸之,王后欲令侍者與孝亂以汙之,欲并廢兄弟而立其子廣代太子。
왕후에게 시녀가 있어 춤을 잘 추었으매 형산왕이 그녀를 총애하자왕후는 시녀에게 명령하여 유효와 私通하여 그의 행실을 더럽힘으로써형제를 함께 폐하고 자신의 아들인 을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太子爽知之,念后數惡己無已時,欲與亂以止其口。
태자 유상이 이를 알고 왕후가 누차 자신을 헐뜯고 멈출 때가 없으리라 생각하여그녀와 亂行하여 그 입을 막으려 하였다.

王后飲,太子前為壽,因據王后股,求與王后臥。
왕후가 술을 마심에태자가 祝壽한다고 다가가서 왕후의 넓적다리에 앉으면서 왕후와 동침하기를 요구하였다.

王后怒,以告王。
왕후는 노하여 이를 왕에게 고하였다.

王乃召,欲縛而笞之。
이에 왕이 그를 불러 결박하고 매질하려고 하였다.

太子知王常欲廢己立其弟孝,乃謂王曰:
「孝與王御者姦,無采與奴姦,王彊食,請上書。」
태자는 왕이 늘 자신을 폐하고 동생인 유효를 태자로 세우려 함을 알고 있었으매 왕에게 말하였다.
유효는 왕의 시녀와 간통하였고무채는 종과 간통을 하였으니왕께서는 정신차리고 식사를 잘하시고조정에 상서하시기를 청합니다.”

即倍王去。
즉시 왕을 등지고 나가버렸다.

王使人止之,莫能禁,乃自駕追捕太子。
왕이 사람을 시켜 제지하였으나막을 수 있는 자가 없어서직접 수레를 몰고 뒤쫓아가서 태자를 붙잡았다.

太子妄惡言,王械系太子宮中。
태자가 함부로 惡談하자 왕은 족쇄와 수갑을 채워 태자를 궁중에 가두었다.

孝日益親幸。
유효는 날이 갈수록 왕의 친밀함과 총애를 받았다.

王奇孝材能,乃佩之王印,號曰將軍,令居外宅,多給金錢,招致賓客。
왕은 유효의 재능을 기특하게 여겨 왕의 인수를 차게 하고 장군이라고 불렀으며궁궐 밖의 저택에 살게 하고 금전을 많이 주어 빈객을 불러 모으게 하였다.

賓客來者,微知淮南、衡山有逆計,日夜從容勸之。
빈객으로 오는 자들은 회남왕과 형산왕의 역모를 암암리에 알고 있어서밤낮으로 권하도록 종용하였다.

王乃使孝客江都人救赫、陳喜作輣車鏃矢,刻天子璽,將相軍吏印。
형산왕은 이에 유효의 빈객인 江都 사람 救赫과 陳喜를 시켜 輣車와 鏃矢를 만들고천자의 옥새와 將相과 軍吏의 인장을 새기게 하였다.

王日夜求壯士如周丘等,數稱引吳楚反時計畫,以約束。
왕은 밤낮으로 周丘 등과 같은 壯士를 구하여 吳楚가 造反할 때의 계획을 자주 칭찬하며 예를 들고그것을 자기계획의 규범으로 삼았다.

衡山王非敢效淮南王求即天子位,畏淮南起并其國,以為淮南已西,發兵定江淮之閒而有之,望如是。
형산왕은 감히 회남왕을 본받아 천자로 즉위함을 추구하지 않았으며단지 회남이 起兵하여 그의 나라를 병탄할까 두려워하였을 뿐이매회남왕이 서쪽으로 進軍하고 나서 자신도 군사를 일으켜 長江과 淮水의 사이를 평정하고 그 땅을 차지할 계획이었으니그가 기대하였던 것은 이와 같았다.

▶ 美人 : 왕비와 궁녀의 명칭 중의 하나.
▶ 閒 : 소원하다.
▶ 能 : 화목하다.
▶ 元光六年 : 기원전 129년. 元光은 漢武帝의 두 번째 연호이다.
▶ 方術 : 醫術·占星·占 등의 기술.
▶ 强榜服之 : 매질하여 자기의 죄를 시인하게 하다.
▶ 卻其獄 :그 사건을 접수하지 않다. 獄은 소송사건.
▶ 不直 : 이치에 닿지 않다.
▶ 恚 : 분노하다.
▶ 候星氣 : 천문 기상을 관측하여 길흉을 점치다.
▶ 從容 : 慫慂. 부추키다.
▶ 婢 : 계집종.
▶ 蠱道 : 저주하는 사술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방법.
▶ 讓 : 꾸짖다.
▶ 通 : 왕래하다.
▶ 假母 : 계모. 서모.
▶ 亂 : 남녀가 남몰래 서로 정을 통함.
▶ 為壽 : 장수를 축하하며 술을 권하다.
▶ 股 : 넓적다리.
▶ 御者 : 회남왕의 시녀를 말한다.
▶ 彊食 : 정신 차려서 식사를 잘하다.
▶ 妄惡言 : 함부로 욕하다.
▶ 械系 : 형구를 채우다. 족쇄와 수갑을 채워 감금하다.
▶ 微知 : 암암리에 알다. 기미를 알다.
▶ 輣車 : 고대에 망루가 있는 전차.
▶ 鏃矢 : 쇠로 만든 화살촉.
▶ 約束 : 단속하다.

元朔五年秋,衡山王當朝,六年過淮南,淮南王乃昆弟語,除前卻,約束反具。
원삭 5(기원전 124가을에 형산왕이 입조함에 원삭 6년에 회남에 들렀는데회남왕이 형제간의 우애를 말하면서 예전의 악감정을 버리고 반역의 준비를 약속하였다.

衡山王即上書謝病,上賜書不朝。
형산왕은 곧 상서하여 병을 핑계로 입조할 수 없다고 하니황제가 조서를 내려 입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元朔六年中,衡山王使人上書請廢太子爽,立孝為太子。
원삭 6(기원전 123), 형산왕이 사람을 시켜 상서하여 태자 劉爽을 폐하고 劉孝를 태자로 세우기를 청하였다.

爽聞,即使所善白嬴之長安上書,言孝作輣車鏃矢,與王御者姦,欲以敗孝。
태자 유상이 알고 즉시 친하게 지내던 白嬴을 장안으로 보내어 상서하여 유효가 輣車와 鏃矢를 만들고 왕의 시녀와 간통하였다고 고발하여 유효를 꺾으려고 하였다.

白嬴至長安,未及上書,吏捕嬴,以淮南事系。
백영이 장안에 도착하여 미처 상서하기도 전에 관리가 백영을 체포하고 회남의 모반사건으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王聞爽使白嬴上書,恐言國陰事,即上書反告太子爽所為不道棄市罪事。
형산왕은 유상이 백영을 시켜 상서함을 알고 나라의 비밀스러운 일을 말할까 두려워하고곧 상서하여 도리어 태자 유상의 행위가 무도하여 棄市의 죄에 해당한다고 고발하였다.

事下沛郡治。ㅁ
황제가 사건을 沛郡에 내려 조사하게 하였다.

元狩元年冬,有司公卿下沛郡求捕所與淮南謀反者未得,得陳喜於衡山王子孝家。
元狩 원년(기원전 122겨울에 담당 관리와 공경이 패군에 명령하여 회남왕과 함께 모반한 자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못하였고陳喜를 형산왕의 아들 劉孝의 집에서 체포하였다.

吏劾孝首匿喜。
관리는 유효가 진희를 숨긴 반역의 우두머리라고 탄핵하였다.

孝以為陳喜雅數與王計謀反,恐其發之,聞律先自告除其罪,又疑太子使白嬴上書發其事,即先自告,告所與謀反者救赫、陳喜等。
유효는 진희가 평소 여러 차례 형산왕과 함께 모반을 계획하였다고 여기고그가 그 일을 발설할까 두려워하였고율령의 규정에 일에 앞서 자수하면 그 죄를 면제한다고 들었고또 태자가 백영을 시켜 상서하여 모반한 일을 발설할 터이라고 의심하여먼저 자수하고 함께 모반에 참여한 救赫과 陳喜 등을 고발하였다.

廷尉治驗,公卿請逮捕衡山王治之。
廷尉는 증거를 조사하였고공경대신은 형산왕을 체포하여 치죄하기를 황제에게 청하였다.

天子曰:
「勿捕。」
황제가 말하였다.
체포하지 말라.”

遣中尉安、大行息即問王,王具以情實對。
中尉 司馬安과 大行令 李息을 보내 형산왕을 심문하게 하니형산왕은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대답하였다.

吏皆圍王宮而守之。
관리가 왕궁을 모두 포위하여 지켰다.

中尉大行還,以聞,公卿請遣宗正、大行與沛郡雜治王。
중위와 대행령이 조정으로 돌아와 보고하니공경들은 종정과 대행령을 파견하여 패군의 관리들과 공동으로 형산왕의 죄를 다스리자고 주청하였다.

王聞,即自剄殺。
형산왕이 알고 곧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孝先自告反,除其罪;
坐與王御婢姦,棄市。
유효는 먼저 자수하여 모반을 고하였으매 그 죄는 면하여 주었으나,
부왕의 시녀와 간통한 일에 연루되어 棄市되었다.

王后徐來亦坐蠱殺前王后乘舒,及太子爽坐王告不孝,皆棄市。
왕후 서래 역시 이전 왕후 乘舒를 저주하는 사술로 죽였음에 저촉되었고태자 유상은 부왕을 고발한 불효에 저촉되어 모두 棄市되었다.

諸與衡山王謀反者皆族。
형산왕과 모반한 자는 모두 멸족당하였다.

國除為衡山郡。
봉국은 해제되어 衡山郡이 되었다.

▶ 元朔五年 : 기원전 124년. 元朔은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
▶ 昆弟 : 형제.
▶ 郤 : 隙과 통용된다. 틈. 서로의 악감정을 말한다.
▶ 約束 : 約定하다.
▶ 元狩元年 : 漢武帝 元狩 원년이며 원삭 칠년이다.
이해 겨울 10월에 뿔이 하나 달린 짐승이 잡혔는데, 이것을 기린으로 보았으며 상서로운 일이라고 하여 연호를 元狩로 바꾸었다.
▶ 雅 : 평소.
▶ 先自告 : 앞서서 자수함.
▶ 情實 : 실제의 상황.
▶ 雜 : 공동.
▶ 棄市 : 사형. 옛날의 형벌로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여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詩》之所謂
「戎狄是膺,荊舒是懲」,信哉是言也。
“<詩經>의 소위 戎狄은 무찌르고 荊舒는 응징한다.’는 믿을 만하구나이말이여!

淮南、衡山親為骨肉,疆土千里,列為諸侯,不務遵蕃臣職以承輔天子,而專挾邪僻之計,謀為畔逆,仍父子再亡國,各不終其身,為天下笑。
淮南王과 燕山王의 친근함은 骨肉으로 영토가 사방 천 리이고제후의 반열에 올랐으나藩臣의 직무를 준수하여 황제를 보좌하는 데 힘쓰지 않고오로지 사악한 계책을 마음에 품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매父子가 두 차례나 나라를 멸망시키고 각기 제 명대로 살지 못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此非獨王過也,亦其俗薄,臣下漸靡使然也。
이것은 왕만의 잘못은 아니며역시 그곳의 풍속이 천박하고 신하들이 점차 물들어 그렇게 만들었다.

夫荊楚彊勇輕悍,好作亂,乃自古記之矣。
무릇 荊楚의 사람은 강하고 용맹스럽고 날쌔고 사나워 作亂을 좋아하였음은 예로부터 그것을 기록하였다.”

▶ 戎狄是膺,荊舒是懲 : 詩經 魯頌에 나오는 시이다. “烝徒增增、戎狄是膺。荊舒是懲、則莫我敢承。: 많은 보병들 끝이 없고, 서융과 북적을 무찌르고 남쪽의 형과 서를 응징하여 아무도 우리를 당할 자 없네.”<詩經·頌·魯頌·閟宮>
戎은 서쪽 이민족, 狄은 북쪽 이민족. 膺은 공격하다. 荊은 楚의 본래 이름. 舒는 楚와 동맹국이다.
▶ 舒 : 楚와 동맹을 맺은 舒庸, 舒鳩, 舒蓼 등을 말한다.
▶ 親為骨肉 : 骨肉至亲. 피를 나눈 육친.
▶ 藩臣 : 封地를 하사받은 제후국의 왕. 蕃은 藩과 통한다.
▶ 專挾 : 오로지 마음에 품다.
▶ 邪僻 : 邪辟. 사사스럽고 편벽함.
▶ 仍 : 답습하다. 따르다.
▶ 俗薄 : 풍속이 천박함.
▶ 漸靡 : 차츰 영향을 준다는 뜻. 漸은 점차 물들다. 靡는 摩와 통한다. 어루만지다.
▶ 荊楚 : 楚. 나라가 荊山에서 건국했기에 주나라 때 楚의 별명이었다. 漢 초기에 회남국과 형산국이 춘추시대의 楚 땅에 있었다.
▶ 悍 : 사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