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王 劉濞는 前漢의 제후왕으로 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함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劉濞가 高祖 12년(기원전 195) 吳王에 봉해졌으며 封國에 있으면서 망명객들을 모으고 鑄錢과 製鹽을 대대적으로 시행하면서 세금을 걷지 않는 등 爲民策으로 세력을 불렸다.
漢文帝 때 유비의 아들 劉賢이 천자를 알현하고 황태자 劉啟와 함께 술을 마시며 雙六놀이를 하다가, 황태자에게 죽임을 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어 병을 핑계로 조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漢景帝 때 晁錯의 건의로 봉국을 삭감당하자, 조조를 誅戮한다는 명분으로 楚와 趙, 膠西, 膠東 등 제후국들과 함께 吳楚七國의 난을 일으켰으나, 漢의 周亞夫 등에게 패퇴하였다.
東越로 달아났다가 동월왕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吳王濞者,高帝兄劉仲之子也。
吳王 劉濞는 漢高帝의 형인 劉仲의 아들이다.
高帝已定天下七年,立劉仲為代王。
高帝가 천하를 평정하고 7년, 유중을 代王에 봉하였다.
而匈奴攻代,劉仲不能堅守,棄國亡,閒行走雒陽,自歸天子。
匈奴가 代를 공격하자 유중은 굳게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버리고 달아남에, 사잇길로 달려 雒陽에 가서 천자에게 자수하였다.
天子為骨肉故,不忍致法,廢以為郃陽侯。
高帝는 혈육인 까닭에 차마 법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위를 폐하고 郃陽侯로 낮추었다.
高帝十一年秋,淮南王英布反,東并荊地,劫其國兵,西度淮,擊楚,高帝自將往誅之。
高帝 11년(서기전 196년) 가을, 淮南王 英布가 배반하여, 동쪽으로 荊 땅을 병합하고 荊의 군사를 빼앗은 후, 서쪽으로 淮水를 건너 楚를 공격하자, 高帝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劉仲子沛侯濞年二十,有氣力,以騎將從破布軍蘄西,會甀,布走。
유중의 아들 沛侯 劉濞는 나이가 20이었는데, 기력이 있으매 기마부대 장군으로 종군하여 영포의 군대를 蘄縣의 서쪽 會甀에서 격파하니, 영포는 달아났다.
荊王劉賈為布所殺,無後。
荊王 劉賈가 영포에게 죽임을 당하되, 후사가 없었다.
上患吳、會稽輕悍,無壯王以填之,諸子少,乃立濞於沛為吳王,王三郡五十三城。
高帝는 吳와 會稽의 사람들이 민첩하고 사나워 걱정하였으나 이들을 제압할 힘 있는 왕이 없음을 근심하였다.
아들들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유비를 沛 땅에 오왕으로 삼고 3郡 53城을 다스리게 하였다.
▶ 高帝 : 漢高祖. 劉邦.
▶ 劉仲 : 代頃王 劉喜. 한 高祖의 작은형이다. 자는 仲이며, 시호는 頃이다. 高帝가 흉노와 싸워 백등산 포위전에서 곤궁에 처했다가 겨우 빠져나오고서, 高帝 7년(기원전 200년)에 대왕으로 봉하였다. 漢書의 <高帝紀>에는 高帝 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 閒行 : 間行과 같다. 사잇길로 감.
▶ 自歸 : 자수하다.
▶ 郃陽 : 高帝가 삼진을 정복하고 수도를 합양의 약양현으로 옮겼으며 高帝가 중국을 통일하고 장안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 기능하였다.
▶ 高帝十一年 : 한 高祖 11년. 기원전 196년.
▶ 淮南王 英布 : 黥布. 項羽에게 귀의하였으나 楚漢 전쟁 중에 漢이 설득하자 漢으로 귀순하였다. 淮南王에 봉해졌고, 유방 따라 垓下 전투에서 項羽를 격파하였다.
▶ 並 : 병탄하다. 합병하다.
▶ 將 : 거느리다.
▶ 荊王 劉賈 : 高帝의 종형으로 형왕을 지냈으며 영포의 반란에서 전사하였다. 영포는 동쪽으로 荊을 치니, 형왕 劉賈는 달아나다가 富陵에서 죽었다. 영포는 그의 군대를 모두 빼앗아 이끌고 회수를 건너 초를 쳤다. <사기열전 권91. 黥布열전>
▶ 後 : 後嗣. 계승자.
▶ 填 : 鎮과 통하여 제압하다.
▶ 三郡 : 東陽郡, 鄣郡, 吳郡.
已拜受印,高帝召濞相之,謂曰:
「若狀有反相。」
인수를 받고 난 뒤에 高帝가 劉濞를 불러 관상을 보고 말하였다.
“너의 형상에 모반의 상이 있구나.”
心獨悔,業已拜,因拊其背,告曰:
「漢後五十年東南有亂者,豈若邪?
然天下同姓為一家也,慎無反!」
내심 후회하였으나 이미 임명하였으매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하였다.
“漢을 세운 후 50년이 지나도록 동남쪽에서 난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설마 너이겠느냐?
천하는 모두 劉氏 一家이니, 절대로 모반하지 말라!”
濞頓首曰:
「不敢。」
劉濞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郡國諸侯各務自拊循其民。
漢惠帝, 高后 때에 이르러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매, 郡國의 제후는 각기 자기 백성을 위로하는 데 힘썼다.
吳有豫章郡銅山,濞則招致天下亡命者盜鑄錢,煮海水為鹽,以故無賦,國用富饒。
吳의 豫章郡에 구리 광산이 있었는데, 劉濞가 천하의 망명자들을 불러 모아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니, 세금을 걷지 않아도 나라의 재정은 풍족하였다.
▶ 相 : 관상을 相面.
▶ 拊 : 가볍게 두드리다. 어루만지다.
▶ 慎 : 절대로. 반드시.
▶ 孝惠 : 漢惠帝 劉盈. 전한의 제2대 황제로 高祖의 맏아들이다.
▶ 高後 : 한 高祖 劉邦의 皇后 呂雉.
▶ 拊循 : 撫循과 통한다. 위로하다. 위무하다.
孝文時,吳太子入見,得侍皇太子飲博。
孝文帝 때 吳 太子 劉賢이 朝見함에, 황태자 劉啟를 모시고 술을 마시며 雙六놀이를 하였다.
吳太子師傅皆楚人,輕悍,又素驕,博,爭道,不恭,皇太子引博局提吳太子,殺之。
吳 태자의 스승들은 모두 楚 출신으로 경박하고 사나웠으며, 吳 태자 자신도 천성이 교만하여, 쌍륙을 노는 데 규칙을 다툼이 공손하지 않으매, 황태자가 쌍륙판을 吳 태자에게 집어던져 죽였다.
於是遣其喪歸葬。
그리하여 吳 태자의 시신을 돌려보내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至吳,吳王慍曰:
「天下同宗,死長安即葬長安,何必來葬為!」
시신이 吳에 당도하자, 오왕 劉濞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천하가 모두 같은 劉氏의 집안인데 長安에서 죽었으면 장안에서 장례를 지내야지 무엇 때문에 꼭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게 하는가!”
復遣喪之長安葬。
태자의 시신을 다시 장안으로 보내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吳王由此稍失藩臣之禮,稱病不朝。
오왕이 그 일로 인하여 점차 藩臣의 예를 지키지 않았고, 병을 핑계 삼아 入朝하지 않았다.
京師知其以子故稱病不朝,驗問實不病,諸吳使來,輒系責治之。
경사에서는 그가 자식이 죽은 일 때문에 병을 핑계로 입조하지 않음을 알고, 조사해보니 사실 병이 아니었으매, 吳에서 사자들이 올 때마다 붙잡아 문책하였다.
吳王恐,為謀滋甚。
오왕이 두려워하여 더욱 심하게 모의하였다.
及後使人為秋請,上復責問吳使者,使者對曰:
「王實不病,漢系治使者數輩,以故遂稱病。
훗날, 사람을 보내 秋請함에 황제가 다시 吳 사자를 문책하니, 吳 사자가 대답하였다.
“오왕이 실제로 병들지 않았으며, 漢 조정에서 吳의 사신 여럿을 붙잡아두고 문책하매, 두려워서 稱病하게 되었습니다.
且夫『察見淵中魚,不祥』。
무릇 ‘연못 속의 고기를 살핌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今王始詐病,及覺,見責急,愈益閉,恐上誅之,計乃無聊。
지금 왕이 처음에는 거짓으로 병이라고 하였으나, 발각되어 심하게 문책을 받자 더욱 움츠리면서 황제께서 죽일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꾀를 내었습니다.
唯上棄之而與更始。」
황제께서 옛일을 잊으시고 吳王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허여하시기 바랍니다.”
▶ 孝文 : 漢孝文帝. 文帝. 劉恆.
▶ 吳太子 : 吳王 劉濞의 태자. 劉賢.
▶ 皇太子 : 文帝의 태자. 훗날 漢景帝가 된다. 劉啟.
▶ 博 : 고대 일종의 도박. 雙六.
▶ 爭道 : 규칙 때문에 싸움을 벌이다.
▶ 博局 : 쌍륙판.
▶ 提 : 던져서 때리다.
▶ 慍 : 화를 내다.
▶ 稍 : 점차.
▶ 藩臣 : 封地를 하사받은 제후국의 왕.
▶ 驗問 : 신문하다. 취조하다.
▶ 系 : 구금하다.
▶ 責治 : 따져 물어 처벌하다.
▶ 滋甚 : 더욱 심함.
▶ 秋請 : 고대에 제후가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 察見淵中魚,不祥 : 연못 속의 고기를 살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즉, 황제가 신하의 사생활을 살피는 것은 좋지 않으며 내란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뜻.
한비자에는 “知淵中之魚者不祥”이라고 하였다. <韓非子·說林上>
열자 설부편에는 “察見淵魚者不祥,智料隱匿者有殃.: ‘연못 속의 물고기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상서롭지 못하고 지혜로 감추어진 것까지 헤아려 낼 수 있는 사람은 재앙을 만난다.”라고 하였다.<列子 說符篇>
▶ 閉 : 감추다.
▶ 無聊 :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열없음.
▶ 更始 : 처음부터 다시하다.
於是天子乃赦吳使者歸之,而賜吳王几杖,老,不朝。
이에 천자는 곧 吳 사자들을 사면하여 돌려보내고, 오왕에게는 几杖을 하사하며 연로하였으매 입조하지 않게 하였다.
吳得釋其罪,謀亦益解。
오왕이 죄를 사면받으매, 모반할 생각도 한층 풀어졌다.
然其居國以銅鹽故,百姓無賦。
그런데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구리와 소금 때문에 백성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지.
卒踐更,輒與平賈。
병역을 대신함에는 항상 代役金을 공정한 가격으로 주었다.
歲時存問茂材,賞賜閭里。
歲時에 재능이 우수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일반 백성에게도 상을 내렸다.
佗郡國吏欲來捕亡人者,訟共禁弗予。
다른 郡國에서 관리가 와서 도망자를 체포하고자 해도 그들을 감싸며 넘겨주지 않았다.
如此者四十餘年,以故能使其眾。
이렇게 하기 40여 년, 그 때문에 그 나라의 백성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 賜几杖 : 고대에는 늙어서 벼슬을 물러나는 重臣에게 임금이 案席과 지팡이를 내려주었다.
▶ 解 : 懈와 통하여 느슨해지다.
▶ 踐更 : 부역을 대신하는 사람에게 금전을 주는 제도.
▶ 平賈 : 공평한 가격. 賈는 價와 통한다.
▶ 存問 : 위문.
▶ 茂才 : 풍부한 재능을 가진 사람.
▶ 閭里 : 평민을 말한다.
▶ 佗 : 他와 통한다.
▶ 訟 : 감싸주다. 비호하다. 訟은 용납할 ‘용’.
▶ 使 : 지배하다. 마음대로 부리다.
晁錯為太子家令,得幸太子,數從容言吳過可削。
晁錯가 太子家令이 되어 황태자의 총애를 받자, 자주 태자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吳에 지은 죄가 있으니 봉지를 삭감해야 한다고 하였다.
數上書說孝文帝,文帝寬,不忍罰,以此吳日益橫。
자주 文帝에게 상서하여 권하였으나, 문제는 천성이 관대하매 차마 벌주지 못하자, 이 때문에 吳王은 날로 더욱 제멋대로였다.
及孝景帝即位,錯為御史大夫,說上曰:
「昔高帝初定天下,昆弟少,諸子弱,大封同姓,故王孽子悼惠王王齊七十餘城,庶弟元王王楚四十餘城,兄子濞王吳五十餘城:
封三庶孽,分天下半。
孝景帝가 즉위하고 晁錯가 御史大夫가 되자 황제에게 아뢰었다.
“옛날에 高帝께서 비로소 천하를 평정하심에, 형제는 적고 자제들은 어려서 同姓인 劉氏를 대거 제후왕으로 봉하였으매, 庶子인 悼惠王 劉肥는 齊 70여 城의 왕이 되었고, 庶弟인 元王 劉交는 楚 40여 성의 왕이 되었으며, 형의 아들인 劉濞는 吳 50여 성의 왕이 되었습니다.
세 庶孽을 왕에 봉함으로써, 천하의 반을 나누어주셨습니다.
今吳王前有太子之郄,詐稱病不朝,於古法當誅,文帝弗忍,因賜几杖。
지금 吳王은 황제께서 예전에 태자가 맞아 죽은 嫌惡를 갖고, 거짓으로 稱病하고 입조하지 않으매, 옛 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지만, 문제께서 차마 벌하지 못하시고 几杖을 하사하셨습니다.
德至厚,當改過自新。
은덕이 지극히 두터웠으니, 마땅히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져야 하였습니다.
乃益驕溢,即山鑄錢,煮海水為鹽,誘天下亡人,謀作亂。
그럼에도 더욱 교만함이 넘쳐서, 광산에서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천하의 도망자들을 유인하여, 반란을 도모합니다.
今削之亦反,不削之亦反。
그러하니 봉지를 삭감해도 모반할 터이며 삭감하지 않아도 모반할 터입니다.
削之,其反亟,禍小;
不削,反遲,禍大。」
삭감하면 반란은 앞당겨지겠지만 재앙은 작을 터이고,
삭감하지 않으면 반란은 늦겠지만 재앙은 클 터입니다.”
三年冬,楚王朝,晁錯因言楚王戊往年為薄太后服,私姦服舍,請誅之。
경제 3년(기원전 154년) 겨울, 楚王이 입조하자 조조는 이 기회에 초왕 劉戊가 왕년에 薄太后의 喪을 당하여, 상가에서 몰래 간음한 죄를 물어, 죽이기를 주청하였다.
詔赦,罰削東海郡。
경제가 詔書를 내려 사면하였으나 벌로써 東海郡을 삭감하였다.
因削吳之豫章郡、會稽郡。
이어 吳의 예장군, 회계군을 삭감하였다.
及前二年趙王有罪,削其河閒郡。
또 2년 전에 趙王 劉遂에게 죄가 있었으매 趙의 河間郡을 삭감하였다.
膠西王卬以賣爵有姦,削其六縣。
膠西王 劉卬이 賣爵에 부정이 있었으매, 그의 여섯 개 縣을 삭감하였다.
▶ 晁錯 : 文帝 때 후일 景帝가 된 太子의 舍人으로 있다가 家令이 되어 태자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나, 각박한 성품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景帝가 즉위하자, 內史에 임명되고 자주 景帝와 독대하여 자신의 계책을 실현하였으며, 御史大夫가 되자 제후의 세력이 너무 강성하여 장차 나라의 큰 우환이 될까 우려하여 제후의 봉지를 삭감하자고 주장하여 吳․楚 등 7국이 조조를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史記列傳] 권101 袁盎鼂錯列傳 ②鼂錯
▶ 得幸 : 총애를 받다.
▶ 從容 : 조용히, 여유있게. (慫恿= 꼬드기다. 교사하다. 부추기다. 충동질하다. 종용하다. 권하다.)
▶ 削 : 封地를 삭감하다.
▶ 橫 : 교만하다.
▶ 昆弟 : 어머니가 같은 형제
▶ 孽子 : 庶孽. 첩의 아들.
▶ 庶弟 :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
▶ 悼惠王 : 劉肥. 高祖 劉邦의 맏서자이다. 그 어머니는 다른 집안 출신의 첩실로 曹氏이다.
▶ 元王 : 劉交. 漢高祖 劉邦의 이복동생으로 모친은 太上皇後 李氏이다.
▶ 郄 : 隙과 통하여 틈, 사이가 나빠지다.
▶ 三年 : 景帝 3년. 기원전 154년.
▶ 楚王 : 劉戊. 楚夷王 劉程의 아들이다. 文帝 6기원전 174 王位를 이어받았다.
▶ 往年 : 지난해.
▶ 薄太后 : 劉邦의 후궁. 文帝의 생모.
▶ 服 : 喪中.
▶ 服舍 : 상중에 머무는 가옥.
▶ 趙王 : 劉遂. 조유왕 유우의 아들로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고 문제가 황제가 되면서, 여록을 대신하여 趙王이 되었다.
▶ 膠西王 卬 : 劉卬. 高祖의 손자이며 悼惠王 劉肥의 아들이다.
▶ 賣爵 : 漢 때 財政 救濟策의 하나로 작위를 파는 제도.
漢廷臣方議削吳。
漢 조정의 신하들이 바야흐로 吳의 봉지를 삭감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吳王濞恐削地無已,因以此發謀,欲舉事。
오왕 劉濞는 削地가 한정이 없을까 염려하다가, 이를 계기로 모의를 나타내고 거사하려 하였다.
念諸侯無足與計謀者,聞膠西王勇,好氣,喜兵,諸齊皆憚畏,於是乃使中大夫應高誂膠西王。
제후 중에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자가 없음을 염려하다가, 膠西王 劉卬이 용맹하고 血氣를 좋아하고 용병을 좋아하여 齊 지역 제후가 모두 두려워함을 듣고, 中大夫 應高를 사자로 보내어 교서왕을 회유하였다.
無文書,口報曰:
「吳王不肖,有宿夕之憂,不敢自外,使喻其驩心。」
응고는 서신도 없이 口頭로 보고하였다.
“오왕이 불초하여 조만간 닥쳐올 우환을 걱정하매, 감히 남에게 말하지 않고 오왕의 명백한 호의를 전하게 하였습니다.”
王曰:
「何以教之?」
膠西王 유앙이 말하였다.
“무엇을 가르쳐주시겠소?”
高曰:
「今者主上興於姦,飾於邪臣,好小善,聽讒賊,擅變更律令,侵奪諸侯之地,徵求滋多,誅罰良善,日以益甚。
응고가 말하였다.
“지금 主上께서 간신을 등용하고 사악한 신하에게 가려져서, 눈앞의 이익을 좋아하시며 讒言을 들으셔서, 제멋대로 법령을 고치고 제후의 봉지를 침탈하며, 봉국에 徵求함이 갈수록 많아지고, 선량한 사람을 죽이고 벌함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里語有之,『舐糠及米』。
俗諺에 ‘쌀겨를 핥다 보면 쌀알까지 먹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吳與膠西,知名諸侯也,一時見察,恐不得安肆矣。
오와 교서는 이름이 알려진 제후이지만, 하루아침에 조정의 사찰을 당하여 안녕과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 無已 : 끝이 없음. 그침이 없음.
▶ 舉事 : 반란을 일으키다.
▶ 好氣 : 혈기를 좋아함.
▶ 諸齊 : 齊 悼惠王 劉肥가 죽자 文帝는 齊를 劉肥의 일곱 아들에게 분봉하였으며, 齊王 劉將閭, 濟北王 劉志, 濟南王 劉辟光, 菑川王 劉賢, 城陽王 劉章, 膠西王 劉卬, 膠東王 劉雄渠를 세웠다. 이들을 일컬어 諸齊라 한다.
▶ 誂 : 유혹하다.
▶ 宿夕 : 하룻밤. 짧은 시간.
▶ 喻 : 명백하다.
▶ 驩心 : 歡心, 好意.
▶ 飾 : 修飾. 가리다. 기만하다.
▶ 里語 : 속언. 속담. =俚諺
▶ 舐糠及米 :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말한다. 조정에서 봉지를 삭감하다 보면 봉국까지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뜻.
▶ 肆 : 자유.
吳王身有內病,不能朝請二十餘年,嘗患見疑,無以自白,今脅肩累足,猶懼不見釋。
오왕은 몸에 속병이 있어 입조하지 못한 지 20여 년, 항상 의심받음을 염려하나 자신을 해명할 방법이 없어서, 어깨를 움츠리고 발을 멈추고 조심하는데, 그래도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竊聞大王以爵事有適,所聞諸侯削地,罪不至此,此恐不得削地而已。」
삼가 듣건대 대왕께서는 賣爵의 일로 문책받았다고 하고, 제후들도 削地된다고 하는 바, 罪過는 이런 징벌에 해당하지 않는 데도, 이런 징벌이 削地함에 그치지 않으리라 걱정됩니다.”
王曰:
「然,有之。
子將柰何?」
교서왕이 말하였다.
“그렇소. 그런 일이 있었소.
그대의 말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오?”
高曰:
「同惡相助,同好相留,同情相成,同欲相趨,同利相死。
今吳王自以為與大王同憂,願因時循理,棄軀以除患害於天下,億亦可乎?」
응고가 대답하였다.
“증오가 같은 자는 서로 돕고, 기호가 같은 자는 서로 붙들어 머무르며, 뜻이 같은 자는 서로 완성해 주며, 욕구가 같은 자는 서로 재촉하며, 이익이 같은 자는 죽음을 함께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오왕은 自身이 大王과 같은 근심을 한다고 여기고, 시기를 틈타고 사리에 순응하여 몸을 던져 천하를 위하여 근심거리를 제거하기를 원하니, 생각해보면 또한 옳지 않습니까?”
王瞿然駭曰:
「寡人何敢如是?
今主上雖急,固有死耳,安得不戴?」
교서왕은 두려워하고 놀라 말하였다.
“과인이 어찌 감히 그렇게 하겠소?
지금 主上께서 비록 핍박이 급하나, 과인이 본래 죽을죄를 지었으니 어찌 그를 받들지 않을 수 있겠소?”
高曰:
「御史大夫晁錯,熒惑天子,侵奪諸侯,蔽忠塞賢,朝廷疾怨,諸侯皆有倍畔之意,人事極矣。
응고가 말하였다.
“어사대부 조조가 천자를 미혹하고 제후를 봉지를 침탈하며 충신을 가리고 賢士를 막고 있으매, 조정의 신하가 증오와 원망을 품었고 제후는 모두 배반의 뜻을 가졌으니, 인신으로서 임금을 섬김에 極點에 이르렀습니다.
彗星出,蝗蟲數起,此萬世一時,而愁勞聖人之所以起也。
혜성이 출현하고, 메뚜기의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니, 이것은 萬世에 한 번 있는 기회로서, 근심하며 고생하는 이때가 聖人이 출현해야 할 때입니다.
故吳王欲內以晁錯為討,外隨大王後車,彷徉天下,所鄉者降,所指者下,天下莫敢不服。
그래서 오왕이 대내적으로 鼂錯의 토벌을 구실로 삼고, 대외적으로 대왕의 병거를 따르며 천하를 배회하고자 합니다. 향하는 곳마다 항복시키고 가리키는 곳마다 함락시키매 천하에 감히 불복하는 자가 없을 터입니다.
大王誠幸而許之一言,則吳王率楚王略函谷關,守滎陽敖倉之粟,距漢兵。
대왕께서 다행히 한 마디로 허락하시면, 오왕이 초왕을 이끌고 函谷關을 공략하고, 滎陽 敖倉의 양곡을 지켜 漢軍에 항거하겠습니다.
治次舍,須大王。
군영을 설치하고 대왕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大王有幸而臨之,則天下可并,兩主分割,不亦可乎?」
대왕께서 다행히 군영에 왕림하신다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으매, 두 군주께서 천하를 나누어 가지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王曰:
「善。」
교서왕이 말하였다.
“좋소.”
高歸報吳王,吳王猶恐其不與,乃身自為使,使於膠西,面結之。
응고가 돌아가서 오왕에게 보고하니, 오왕은 그래도 교서왕이 참여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자신이 직접 사자가 되어 교서로 가서 교서왕과 대면하고 맹약을 맺었다.
▶ 脅肩累足 : 무서워 어깨를 움츠리고 발을 멈추다, 두려워 움츠리다.
▶ 適 : 謫과 통한다. 문책받다. 좌천되다.
▶ 億 : 臆과 통한다. 예측하다.
▶ 瞿然 : 깜짝 놀라는 모양.
▶ 滎惑 : 미혹하다. 현혹하다.
▶ 疾怨 : 미워하고 원망함.
▶ 倍畔 : 背叛과 통한다.
▶ 愁勞 : 걱정하며 고생함. 즉 사회의 형세가 어려움을 말함.
▶ 彷徉 : 배회하다.
▶ 鄉 : 向과 통하여 대면하다.
▶ 誠 : 만약.
▶ 敖倉 : 秦 때 敖山(:現 河南省 滎陽) 북쪽에 설치하였던 곡식창고인 敖倉을 이르는데 뒤에는 창고의 범칭으로 쓰였다.
▶ 次舍 : 軍營. 군대가 주둔하는 장소.
▶ 須 : 기다리다.
▶ 面結 : 대면하고 맹약을 체결하다.
膠西群臣或聞王謀,諫曰:
「承一帝,至樂也。
교서의 신하 누군가가 왕이 모반함을 알고 간하였다.
“한 사람의 황제를 섬기는 것은 지극히 편한 일입니다.
今大王與吳西鄉,弟令事成,兩主分爭,患乃始結。
지금 대왕께서 吳와 함께 서쪽으로 진격하여, 설사 대업을 성공하더라도, 두 군주가 갈라져 다툴 터이니 근심거리는 여기에서 비로소 맺어질 터입니다.
諸侯之地不足為漢郡什二,而為畔逆以憂太后,非長策也。」
제후의 영토는 漢나라 郡의 10분의 2도 안 되는데도, 모반하시어 太后를 근심하게 만듦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王弗聽。
교서왕이 듣지 않았다.
遂發使約齊、菑川、膠東、濟南、濟北,皆許諾,而曰
「城陽景王有義,攻諸呂,勿與,事定分之耳」。
이어 齊, 菑川, 膠東, 濟南, 濟北 등에 연합하자고 사신을 보내니 모두 허락하며 말하였다.
“城陽의 景王은 義氣가 있으며 呂氏들을 공격하였으니, 그는 참여시키지 말고 일이 성사된 후 땅을 나누어 주자.”
諸侯既新削罰,振恐,多怨晁錯。
제후는 근래에 봉지를 삭감하는 징벌을 당하였으매, 모두 두려워하여 晁錯에 원한을 품은 자가 많았다.
及削吳會稽、豫章郡書至,則吳王先起兵,膠西正月丙午誅漢吏二千石以下,膠東、菑川、濟南、楚、趙亦然,遂發兵西。
吳에 회계·예장군을 삭감한다는 문서가 도착하자 곧 오왕이 먼저 군사를 일으켰다.
膠西王은 正月 丙午日에 漢에서 파견한 二千石 이하의 관리들을 죽였고, 교동·치천·제남·초· 趙王 역시 그렇게 하고, 군대를 일으켜 西進하였다.
▶ 承 : 섬기다.
▶ 第令 : ~ 일지라도
▶ 什二 : 2/10.
▶ 城陽景王 : 형제인 城陽王 劉章을 말한다.
▶ 諸呂 : 여씨 일족.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이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 振恐 : =震恐. 질겁하다. 떨면서 무서워함. 振은 震과 통한다.
▶ 丙午 : 23일.
齊王後悔,飲藥自殺,畔約。
제왕 劉將閭는 후회하고 약을 마시고 자살함으로써 맹약을 어겼다.
濟北王城壞未完,其郎中令劫守其王,不得發兵。
제북왕은 성이 무너져 완공하지 못하였는데, 그의 郎中令이 왕을 협박하며 지키매 군사를 일으킬 수 없었다.
膠西為渠率,膠東、菑川、濟南共攻圍臨菑。
교서왕을 수령으로 하여 膠東王, 菑川王, 濟南王이 함께 臨菑를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趙王遂亦反,陰使匈奴與連兵。
趙王 劉遂도 역시 모반하여 은밀히 사자를 흉노로 보내어 그 군대와 연합하려고 하였다.
七國之發也,吳王悉其士卒,下令國中曰:
7국이 군사를 일으킴에, 오왕이 자신의 병사들을 모두 소집하고 온 나라에 명령하였다.
「寡人年六十二,身自將。
“과인은 나이가 62세인데 몸소 장수가 되었다.
少子年十四,亦為士卒先。
막내아들은 14세인데 역시 병졸이 되어 선봉에 섰다.
諸年上與寡人比,下與少子等者,皆發。」
위로 과인과 같은 나이에서부터 아래로 막내아들과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어나라.”
發二十餘萬人。
20여 만 명을 동원하였다.
南使閩越、東越,東越亦發兵從。
남쪽으로 閩越과 東越에 사자를 보냈는데, 동월도 역시 出兵하여 오왕을 뒤따랐다.
▶ 齊王 : 劉將閭.
▶ 完 : 완공. 준공.
▶ 劫守 :협박하며 지키다.
▶ 渠率 : 首領.
▶ 趙王遂 : 趙王 劉遂
▶ 陰 : 은밀히. 비밀리에.
▶ 悉 : 모두.
▶ 比 : 같다.
▶ 閩越 : 漢 때 지금의 福建省 지방에 있던 야만족의 나라.
▶ 東越 : 지금의 福建, 浙江 일대에 있던 나라.
孝景帝三年正月甲子,初起兵於廣陵。
효경제 3년(기원전 154년) 정월 甲子日에 吳가 먼저 廣陵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西涉淮,因并楚兵。
서쪽으로 淮水를 건너 楚軍와 합쳤다.
發使遺諸侯書曰:
제후에게 사신에게 글을 보내어 일렀다.
「吳王劉濞敬問膠西王、膠東王、菑川王、濟南王、趙王、楚王、淮南王、衡山王、廬江王、故長沙王子:幸教寡人!
“오왕 劉濞는 교서왕, 교동왕, 치천왕, 제남왕, 趙王, 초왕, 회남왕, 형산왕, 여강왕, 故 長沙王의 왕자께 삼가 여쭈오니,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以漢有賊臣,無功天下,侵奪諸侯地,使吏劾系訊治,以僇辱之為故,不以諸侯人君禮遇劉氏骨肉,絕先帝功臣,進任姦宄,詿亂天下,欲危社稷。
漢 조정에 불충한 신하가 있어서, 천하에 공로도 없으면서 제후의 영토를 침탈하고, 관리를 시켜 탄핵과 구속과 심문과 처벌을 자행하여 제후를 모욕함을 능사로 삼고, 제후왕을 유씨의 골육으로 예우하지 않아서 先帝 때의 공신을 버리고, 악당들을 천거하고 임용하여 천하를 미혹시키고 어지럽히며 사직에 危害를 가하려 합니다.
陛下多病志失,不能省察。
폐하께서는 병이 많으셔서 神志를 잃는 적이 많아서, 政情을 잘 살피지 못합니다.
欲舉兵誅之,謹聞教。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주살하고자 함에, 삼가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敝國雖狹,地方三千里;
人雖少,精兵可具五十萬。
저희 吳가 비록 협소하지만 땅이 사방 3천리이고,
백성이 비록 적기는 하지만 精兵 50만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寡人素事南越三十餘年,其王君皆不辭分其卒以隨寡人,又可得三十餘萬。
과인이 평소 南越과 사귀기 30여 년, 그 군주들이 모두 군사를 나누어 과인을 따르기를 거절하지 않으니 또 30여 만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寡人雖不肖,願以身從諸王。
과인이 비록 불초하지만, 이 한 몸 바쳐서 왕들을 따르려 합니다.
越直長沙者,因王子定長沙以北,西走蜀、漢中。
남월과 장사의 접경 지역은 장사왕의 왕자를 따라 장사 이북의 땅을 평정하고, 속히 서쪽으로 蜀, 漢中으로 진격하십시오.
告越、楚王、淮南三王,與寡人西面;
齊諸王與趙王定河閒、河內,或入臨晉關,或與寡人會雒陽;
燕王、趙王固與胡王有約,燕王北定代、雲中,摶胡眾入蕭關,走長安,匡正天子,以安高廟。
남월, 초왕, 淮南 三王께 알리니, 과인과 함께 서쪽으로 진격하시고,
齊 지역의 왕들과 趙王은 河間, 河內를 평정하시고 臨晉關으로 들어가시거나 낙양에서 과인과 합류해주시고,
燕王, 趙王은 본래 흉노의 왕과 맹약이 있었으니, 연왕께서는 북쪽에서 代·雲中을 평정하고 흉노의 군대를 통솔하여 蕭關으로 들어가서 장안으로 진격하여, 천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황실을 안정시켜 주십시오.
願王勉之。
왕들께서는 힘쓰시기 바랍니다.
楚元王子、淮南三王或不沐洗十餘年,怨入骨髓,欲一有所出之久矣,寡人未得諸王之意,未敢聽。
楚元王의 왕자와 회남 三王은 목욕조차 잊기 10여 년,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한번 풀고자 한 지가 오래되었으며, 과인도 왕들의 뜻을 알지 못하여 감히 명령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今諸王茍能存亡繼絕,振弱伐暴,以安劉氏,社稷之所願也。
지금 왕들께서 망하는 나라를 존립하고 끊어진 후사를 잇게 하고, 약자를 구원하고 횡포한 자를 주벌하여 유씨를 안정시킨다면, 이것은 사직이 바라는 바입니다.
敝國雖貧,寡人節衣食之用,積金錢,彊兵革,聚穀食,夜以繼日,三十餘年矣。
저희 吳가 비록 가난하지만, 과인이 衣食의 비용을 절약하고, 돈을 저축하고, 무기를 갖추며, 식량을 모으며 밤으로써 낮을 잇기 30여 년이었습니다.
凡為此,願諸王勉用之。
모두 이번 거사를 위함이니, 원컨대 왕들께서는 힘써 이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能斬捕大將者,賜金五千斤,封萬戶;
列將,三千斤,封五千戶;
裨將,二千斤,封二千戶;
二千石,千斤,封千戶;
千石,五百斤,封五百戶:皆為列侯。
능히 대장군을 죽이거나 사로잡는 사람에게는 황금 5천 근을 하사하고 萬戶의 땅에 봉하고,
일반 장군은 황금 3천 근과 5천 호의 땅에 봉하고,
裨將은 황금 2천 근과 2천 호의 땅에 봉하고,
2천 石의 관리는 황금 1천 근과 1천 호의 땅에 봉하고,
1千 石의 관리는 황금 5백 근과 5백 호의 땅에 봉하고,
모두 列侯로 삼겠습니다.
其以軍若城邑降者,卒萬人,邑萬戶,如得大將;
人戶五千,如得列將;
人戶三千,如得裨將;
人戶千,如得二千石;
其小吏皆以差次受爵金。
군대 혹은 성읍을 이끌고 투항하는 자로서 군졸이 만 명, 읍이 만 호이면, 大將을 얻음과 같이,
군사가 5천 명, 읍이 5천 호이면 일반 장군을 얻음과 같이,
군사가 3천 명, 읍이 3천 호이면 비장을 얻음과 같이,
군사가 1천 명, 읍이 1천 호이면 2천 석의 관리를 얻음과 같이 대우할 터이며,
그보다 하급 관리가 투항해오면 모두 등급에 따라 작위와 상금을 줄 터입니다.
佗封賜皆倍軍法。
기타 封爵과 賞賜도 모두 漢의 軍法보다 두 배로 하겠습니다.
其有故爵邑者,更益勿因。
원래 작위와 식읍이 있는 자는 다시 더 보태어 원상태로 두지 않겠습니다.
願諸王明以令士大夫,弗敢欺也。
왕들께서는 분명하게 사대부들에게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은 감히 속이지 않을 터입니다.
寡人金錢在天下者往往而有,非必取於吳,諸王日夜用之弗能盡。
과인의 돈은 천하의 到處에 있으매, 꼭 吳에서 가져올 필요는 없으며, 왕들께서 밤낮으로 써도 다 쓰지 못합니다.
有當賜者告寡人,寡人且往遺之。
賞賜의 해당자를 과인에게 알려주시면, 과인이 곧장 달려가서 포상하겠습니다.
敬以聞。」
삼가 알려드립니다.”
七國反書聞天子,天子乃遣太尉條侯周亞夫將三十六將軍,往擊吳楚;
遣曲周侯酈寄擊趙;
將軍欒布擊齊;
大將軍竇嬰屯滎陽,監齊趙兵。
7국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서신이 천자에게 보고되자, 천자는 太尉 條侯 周亞夫에게 36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吳楚를 치게 하고,
曲周侯 酈寄를 보내 趙를 치게 하고,
장군 欒布에게 齊를 치게 하고,
大將軍 竇嬰을 형양에 주둔시켜 齊와 趙軍를 감시하게 하였다.
▶ 淮南王, 衡山王, 廬江王 : 淮南王 劉安. 衡山王 劉勃, 廬江王 劉賜.
▶ 長沙王子 : 長沙王 吳芮의 후손들. 서자들로 왕으로 봉해지지 않고 열후로 봉해져서 불만을 가졌다.
▶ 賊臣 : 불충한 신하.
▶ 劾 : 彈劾.
▶ 訊 : 심문.
▶ 僇辱 : 侮辱하다.
▶ 故 : 能事.
▶ 姦宄 : 악당. 악인.
▶ 詿亂 : 미혹시켜 어지러움.
▶ 南越 : 秦 말에서 漢 초에 걸쳐 廣東, 廣西 및 베트남 지역에 독립하였던 나라. 당시 남월왕은 趙佗였다.
▶ 辭 : 거절하다.
▶ 直 : 서로 접하다.
▶ 淮南三王 : 淮南王, 衡山王, 廬江王. 이들은 회남 厲王 劉長의 아들이며, 여왕 유장이 죽자 문제가 회남을 셋으로 나누어 회남 삼왕으로 봉하였다.
▶ 燕王 : 劉定國.
▶ 摶 : 통솔하다. 摶은 오로지 ‘전’.
▶ 匡正 : 잘못을 바로잡다.
▶ 高廟 : 漢高祖 劉邦의 사당.
▶ 楚元王 : 楚 元王 劉交. 高祖의 동생으로 자는 游이다.
▶ 楚元王子 : 楚元王 劉交의 아들인 劉禮, 劉富 등이며 실제로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왕 유비가 이들 이름을 인용하여 도발한 것이다.
▶ 振弱 : 약자를 구원하다. 振은 구원하다.
▶ 列將 : 일반 장군.
▶ 裨將 : 副將. 대장을 돕는 장군.
▶ 若 : 若은 단어나 구 혹은 단문을 이어주며 선택 관계를 나타낸다. “아니면” “혹은” <허사 若참조>
▶ 差次 : 등급별 순서.
▶ 故爵邑 : 원래 가지고 있는 작위와 봉토.
▶ 因 : 1. (전례에) 따르다. (옛 것을) 그대로 좇다. 답습하다. 이어받다.
2. 의거하다. 근거하다. 의지하다.
▶ 條侯周亞夫 : 沛郡 사람으로 西漢의 武將이자 군사가, 정치가이다. 周勃의 차남으로 부친의 작위를 이어받아 絳侯가 되었다. 벼슬은 河內郡守, 車騎將軍, 太尉, 丞相 등을 역임하였다. 吳楚七國의 난 때 군사를 이끌고 3개월 만에 반군을 평정하였다. 한경제 때 억울하게 반란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史記 권57. 絳侯周勃世家>
▶ 曲周侯酈寄 : 酈商의 아들로 자는 況이다. 역기는 반란에 가담한 趙王 유수를 쳐서 수도 邯鄲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趙王은 일곱 달을 항전하였고, 齊를 구원하고 돌아오던 길인 난포가 합류하여 한단을 함락시켰다. <史記 권95 樊酈滕灌列傳>
▶ 欒布 : 梁 사람으로 양왕 彭越이 왕이 되기 전에 친분이 있었다. 한문제 때 燕의 재상이 되었으며 장군에까지 이르렀다.<史記 권100 季布欒布列傳>
▶ 竇嬰 : 文帝 竇皇后의 조카이다. 文帝 때 吳相이 되었는데, 병으로 사직하였다. 景帝가 즉위하자 詹事가 되었다.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大將軍이 되어 滎陽을 지키면서 齊와 趙의 병사들을 감시하였다. 7國이 격파되자 魏其侯에 봉해졌다.<史記 권101 袁盎鼂錯列傳>
吳楚反書聞,兵未發,竇嬰未行,言故吳相袁盎。
吳·楚의 반란 문서가 보고되었으되 출병하기 전에, 竇嬰이 출발하기 전에 吳승상이었던 袁盎을 천거하였다.
盎時家居,詔召入見。
원앙은 한가하게 지내다가 황제의 부름을 받고 入朝하였다.
上方與晁錯調兵笇軍食,上問袁盎曰:
「君嘗為吳相,知吳臣田祿伯為人乎?
今吳楚反,於公何如?」
황제가 바야흐로 조조와 함께 군대와 군량을 계산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원앙에게 물었다.
“그대는 과거에 吳의 승상을 지냈는데, 吳의 신하 田祿伯의 爲人을 알고 있소?
지금 吳楚가 모반함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對曰:
「不足憂也,今破矣。」
원앙이 대답하였다.
“걱정할 가치가 없으며 바로 격파할 수 있습니다.”
上曰:
「吳王即山鑄錢,煮海水為鹽,誘天下豪桀,白頭舉事。
若此,其計不百全,豈發乎?
何以言其無能為也?」
황제가 말하였다.
“오왕이 鑛山에서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며, 천하의 호걸을 유인하여 백발이 다 되어 난을 일으켰소.
이러하니, 그의 계책이 완벽하지 않다면, 어찌 發兵하였겠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이 무능하다고 말하는가?”
袁盎對曰:
「吳有銅鹽利則有之,安得豪桀而誘之!
誠令吳得豪桀,亦且輔王為義,不反矣。
吳所誘皆無賴子弟,亡命鑄錢姦人,故相率以反。」
원앙이 대답하였다.
“吳가 구리와 소금을 가짐은 사실이지만, 어찌 천하의 호걸을 유인하여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가령 진실로 吳가 천하의 호걸을 얻었으면, 우선 왕을 보좌함을 義로 삼지, 모반하지 않을 터입니다.
吳가 유인한 자들은 모두 무뢰배들로서 도망 다니며 鑄錢하는 간교한 무리이매, 서로 이끌어 모반하였습니다.”
晁錯曰:
「袁盎策之善。」
조조가 말하였다.
“원앙의 분석이 옳습니다.”
上問曰:
「計安出?」
황제가 물었다.
“계책을 어떻게 내겠소?”
盎對曰:
「願屏左右。」
원앙이 대답하였다.
“좌우를 물리쳐주시기 바랍니다.”
上屏人,獨錯在。
황제가 사람들을 물렸고 조조 혼자 남아 있었다.
盎曰:
「臣所言,人臣不得知也。」
원앙이 다시 말하였다.
“신이 드릴 말씀은 신하된 자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乃屏錯。
이에 조조도 물리쳤다.
錯趨避東廂,恨甚。
조조가 종종걸음쳐서 東廂으로 물러가면서 깊이 원한을 품었다.
上卒問盎,盎對曰:
「吳楚相遺書,曰
『高帝王子弟各有分地,今賊臣晁錯擅適過諸侯,削奪之地』。
故以反為名,西共誅晁錯,復故地而罷。
方今計獨斬晁錯,發使赦吳楚七國,復其故削地,則兵可無血刃而俱罷。」
황제가 마침내 원앙에게 묻자 원앙이 대답하였다.
“吳楚가 서로 주고받은 글에 이르기를,
‘高帝께서 자제들을 왕으로 삼아 각각 영토를 나누어주었는데, 지금 賊臣 조조는 제멋대로 제후를 처벌하여 봉지를 삭탈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造反의 명분으로 삼으매, 서진하여 함께 조조를 주벌하고, 옛 땅을 회복하면 철군할 터입니다.
현재의 계책으로는 다만 조조를 참하고 사신을 보내어 吳楚 등 七國을 사면하고, 그들이 예전에 삭감당한 땅을 회복시키면, 군대가 칼날에 피를 묻힘이 없이 전쟁을 모두 끝낼 수 있습니다.”
於是上嘿然良久,曰:
「顧誠何如,吾不愛一人以謝天下。」
이에 황제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있다가 말하였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내가 한 사람을 아끼려고 天下人을 거부하지 않겠다.”
盎曰:
「臣愚計無出此,願上孰計之。」
원앙이 말하였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사오니 황제께서 숙고하시길 바랍니다.”
乃拜盎為太常,吳王弟子德侯為宗正。
이에 원앙을 太常에 임명하고 오왕 동생의 아들 德侯를 宗正으로 삼았다.
盎裝治行。
원앙은 비밀리에 행장을 준비하였다.
後十餘日,上使中尉召錯,紿載行東市。
10여 일 후 황제가 中尉를 시켜 조조를 불렀고, 중위는 조조를 속여 수레에 태워 동쪽 시장을 巡行하였다.
錯衣朝衣斬東市。
조조는 官服 차림으로 동쪽 시장에서 피살되었다.
▶ 袁盎 : 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晁錯를 주살할 것을 간청하여 제후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太常이 되고, 吳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에 楚 재상이 되었다. <史記 권101 袁盎鼂錯列傳.
▶ 家居 : 閑居.
▶ 調兵笇軍食 : 군대와 군량을 계산하다. 調는 계산, 笇= 筭= 算 계산하다.
▶ 田祿伯 : 吳는 반란을 결정하고 田祿伯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전록백은 자신에게 5만 군사를 따로 주어 회남, 장사를 거두어들이고 무관에서 호응하도록 제안하였다. 그러나 吳 태자가 군권을 나누어주는 것을 반대하여 전록백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屏左右 : 좌우의 사람을 물러가게 하다.
▶ 罷 : 전쟁을 끝내다.
▶ 默然 :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한 모습
▶ 謝 : =辭. 거절하다.
▶ 孰計 : 심사숙고하다. 孰은 熟과 통한다.
▶ 德侯 : 劉通. 高帝의 형 대경왕의 손자이다. 오왕 유비가 제후왕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유통은 宗正에 임명되어 반란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오왕에게 보내졌다.
▶ 裝 : 비밀리에.
▶ 紿 : 속이다. 기만하다.
▶ 朝衣 : 조회 시 입는 예복.
則遣袁盎奉宗廟,宗正輔親戚,使告吳如盎策。
원앙은 종묘를 받드는 태상의 신분으로, 덕후는 황족을 보좌하는 종정의 신분으로 원앙의 계책대로 오에 사신으로 보내어 고하게 하였다.
至吳,吳楚兵已攻梁壁矣。
그들이 吳에 당도하자 吳楚의 군사들이 이미 梁의 군루를 공격하고 있었다.
宗正以親故,先入見,諭吳王使拜受詔。
종정이 오왕과 친척이매 먼저 들어가서 오왕을 접견하고, 오왕에게 분부하기를, 절하고 조서를 받으라고 하였다.
吳王聞袁盎來,亦知其欲說己,笑而應曰:
「我已為東帝,尚何誰拜?」
오왕은 원앙이 왔음을 듣자, 역시 자신을 설득하려 함을 알고 웃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東帝가 되었는데, 도리어 누구에게 절해야 하는가?”
不肯見盎而留之軍中,欲劫使將。
원앙을 만나지 않고, 軍中에 머무르게 한 다음, 위협하여 장수로 삼으려고 하였다.
盎不肯,使人圍守,且殺之,盎得夜出,步亡去,走梁軍,遂歸報。
원앙이 거절하자 부하들을 시켜 포위하여 지키게 하고 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원앙은 야밤을 틈타 탈출하여 걸어서 도망하여 梁의 군영으로 갔고, 장안으로 돌아가서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條侯將乘六乘傳,會兵滎陽。
條侯 周亞夫가 여섯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형양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과 합류하려 하였다.
至雒陽,見劇孟,喜曰:
「七國反,吾乘傳至此,不自意全。
又以為諸侯已得劇孟,劇孟今無動。
吾據滎陽,以東無足憂者。」
그가 낙양에 이르러 劇孟을 만나자 기뻐하며 말하였다.
“칠국이 造反하여 내가 六乘傳을 타고 이곳에 옴에, 내가 무사하게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소.
또 제후가 이미 그대를 데려갔으리라 여겼는데, 그대는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았구려.
내가 형양에 주둔해도 형양 동쪽으로는 근심할 만한 인물은 없겠소.”
▶ 梁 : 漢의 봉국. 양왕 劉武는 문제의 막내아들이다.
▶ 壁 : 軍壘.
▶ 諭 : 알리다. 분부하다.
▶ 東帝 : 동쪽의 황제.
▶ 盎得夜出 : 이 부분은 원앙조조열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史記列傳] 권101 袁盎鼂錯列傳
▶ 六乘傳 : 말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 고대 역참에서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수레.
▶ 劇孟 : 前漢의 俠客. 周亞夫 장군이 그를 좋아하였고 魯의 朱家처럼 몰래 남을 도와주었으며,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조문객의 수레 천여 대가 모여들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집에는 10金의 재산도 없었다 한다.<사기 권124. 游俠列傳>
李白의 梁甫吟에 “吳楚弄兵無劇孟,亞夫咍爾爲徒勞( 吳楚七國이 劇孟없이 군사를 일으키니, 周亞夫는 헛된 일을 하였다고 반란군을 비웃었도다.”) 라는 표현이 있다.
劇孟은 漢의 俠客으로 吳楚가 漢에 造反하여 周亞夫가 이를 진압하러 가던 중에 河南에서 劇孟을 얻고는, ‘吳楚가 천하를 얻고자 다투면서도 극맹을 찾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라고 지적하며, ‘이제는 적을 수중에 얻은 거나 다를 바 없다.’라고 기뻐하였다.
▶ 不自意全 : 안전하게 도착하리라 생각하지 못함. 全은 안전.
至淮陽,問父絳侯故客鄧都尉曰:
「策安出?」
주아부가 淮陽에 도착하여 부친인 絳侯의 옛날 門客이었던 鄧都尉에게 물었다.
“계책을 어떻게 내어야 합니까?”
客曰:
「吳兵銳甚,難與爭鋒。
문객이 답하였다.
“吳軍은 매우 精銳하므로 더불어 승부를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楚兵輕,不能久。
楚軍은 경무장하였으매 오래 버티지 못할 터입니다.
方今為將軍計,莫若引兵東北壁昌邑,以梁委吳,吳必盡銳攻之。
지금 장군을 위한 계책으로는 군사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進軍하여 昌邑에서 軍壘를 쌓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梁을 吳에게 내버려 두면 吳는 필시 정예 부대를 총동원하여 梁을 공격할 터입니다.
將軍深溝高壘,使輕兵絕淮泗口,塞吳馕道。
장군은 도랑을 깊게 파고 군루를 높게 쌓고 날랜 병사를 淮泗口를 끊어서 吳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하십시오.
彼吳梁相敝而糧食竭,乃以全彊制其罷極,破吳必矣。」
吳와 梁이 모두 지치고 군량은 고갈될 때, 온전하고 강한 군대로 극도로 지친 군대를 제압하면 吳를 깨뜨림은 틀림없겠습니다.”
條侯曰:
「善。」
조후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從其策,遂堅壁昌邑南,輕兵絕吳馕道。
그 계책을 따라 창읍 남쪽에 군루를 굳게 쌓고, 날랜 병사를 보내어 吳의 糧道를 차단하였다.
▶ 爭鋒 : 교전하다. 승부를 다투다.
▶ 壁 : 군루를 쌓고 수비를 하다.
▶ 莫若 : ~하는 것이 낫다.
▶ 淮泗口 : 淮水와 泗水의 어귀. 泗水가 남쪽으로 흘러 淮水로 유입되므로 “淮泗口”라 한 것이다. 지금의 淮安州의 북쪽.
▶ 塞 : 가로막다.
▶ 饟道 : 식량 수송로.
▶ 堅壁 : 군루를 견고히 수비하다.
吳王之初發也,吳臣田祿伯為大將軍。
오왕이 처음 發兵할 때 吳의 신하 田祿伯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田祿伯曰:
「兵屯聚而西,無佗奇道,難以就功。
臣願得五萬人,別循江淮而上,收淮南、長沙,入武關,與大王會,此亦一奇也。」
전록백이 말하였다.
“군대가 모여서 西進함에, 다른 특이한 방도가 없으면 공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신이 5만 명의 군사를 얻어서, 따로 長江, 淮水를 따라 북상하면서 淮南과 長沙를 점령하고 武關에 입성하여 대왕과 합류하고자 합니다.
이 또한 하나의 奇策입니다.”
吳王太子諫曰:
「王以反為名,此兵難以藉人,藉人亦且反王,柰何?
오왕의 태자가 간하였다.
“父王께서는 반란을 명분으로 삼았으니, 이런 군대를 남에게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맡긴 사람이 또 왕을 배반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且擅兵而別,多佗利害,未可知也,徒自損耳。」
또 군대를 마음대로 부리며 단독으로 행동함에는, 다른 이해관계가 많아서 방도를 미리 알지 못하매, 헛되이 스스로 손해만 보고 말겠습니다.”
吳王即不許田祿伯。
오왕이 이에 전록백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吳少將桓將軍說王曰:
吳의 젊은 장수 桓將軍이 오왕에게 아뢰었다.
「吳多步兵,步兵利險;
漢多車騎,車騎利平地。
“吳에는 보병이 많고 보병은 險地에 유리합니다.
漢에는 車騎가 많고 車騎는 평지에 이롭습니다.
願大王所過城邑不下,直棄去,疾西據雒陽武庫,食敖倉粟,阻山河之險以令諸侯,雖毋入關,天下固已定矣。
대왕께서는 지나는 성읍을 함락하지 않고 곧장 내버려 두고 나가시어, 서쪽으로 달려가서 낙양의 무기고를 점거하시고, 오창의 곡식을 군량을 먹으며, 산하의 험난함을 의지하여 제후를 호령시기 바랍니다. 비록 關中에 들지 못하더라도, 천하는 진실로 이미 평정되었다 하겠습니다.
即大王徐行,留下城邑,漢軍車騎至,馳入梁楚之郊,事敗矣。」
만약 대왕께서 천천히 進軍하시며 성읍을 공략하는데 지체하면, 漢軍의 車騎가 도착하여 梁과 楚의 교외로 들이닥치면 대사는 실패할 터입니다.”
吳王問諸老將,老將曰:
「此少年推鋒之計可耳,安知大慮乎!」
오왕이 老將들에게 물었더니 노장들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젊은이가 앞을 다투는 계책을 옳다고 함에 불과하니, 그가 어찌 원대한 계책을 알겠습니까!”
於是王不用桓將軍計。
그래서 오왕이 환장군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았다.
吳王專并將其兵,未度淮,諸賓客皆得為將、校尉、候、司馬,獨周丘不得用。
오왕이 전권을 가지고 군사를 모아 거느리고 아직 회수를 건너기 전에, 賓客들이 모두 장군, 校尉, 候, 司馬 등에 임명되었으나, 周丘가 홀로 임용되지 못하였다.
周丘者,下邳人,亡命吳,酤酒無行,吳王濞薄之,弗任。
주구는 下邳 사람으로 吳로 망명하였는데, 술을 좋아하고 품행이 나쁘매, 오왕이 그를 멸시하여 임용하지 않았다.
周丘上謁,說王曰:
「臣以無能,不得待罪行閒。
臣非敢求有所將,願得王一漢節,必有以報王。」
주구가 왕을 알현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신은 무능하여 군중에 있으면서 직책을 맡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감히 군대를 거느리기를 요구하지 않고, 대왕에게 漢의 符節 하나를 얻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대왕께 보답하겠습니다.”
▶ 發 : 반란을 일으키다.
▶ 屯聚 : 떼 지어 모이다.
▶ 就功 : 성공하다.
▶ 藉 : 借와 통한다. 위탁하다. 맡기다. 藉는 빌릴 ‘차’.
▶ 擅兵 : 병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다.
▶ 徒 : 단지.
▶ 少將 : 나이가 어린 장군.
▶ 車騎 : 전차와 騎兵.
▶ 阻 : 의거하다.
▶ 即 : 만약.
▶ 留 : 체류.
▶ 專 : 독단으로 결정하다. 專斷.
▶ 酤酒 : 술 마시기를 좋아하다.
▶ 薄 : 업신여기다.
▶ 待罪 : 고대에 관리가 자기 직책을 맡음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 行閒 : 軍隊中.
▶ 節 : 符節.
王乃予之。
이에 오왕이 부절 하나를 구하여 주었다.
周丘得節,夜馳入下邳。
주구가 부절을 얻고 밤이 되자 하비로 달려갔다.
下邳時聞吳反,皆城守。
이때 하비에서 吳가 造反하였음을 듣고 모두 성을 지키고 있었다.
至傳舍,召令。
주구가 객사에 도착하고 현령을 불렀다.
令入戶,使從者以罪斬令。
현령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주구가 시종을 시켜 죄명을 대고 현령을 참수하였다.
遂召昆弟所善豪吏告曰:
「吳反兵且至,至,屠下邳不過食頃。
今先下,家室必完,能者封侯矣。」
이어서 형제들과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영향력 있는 관리들을 불러 말하였다.
“吳의 反軍이 곧 당도할 터인데, 도착하면 하비를 도륙함에 밥 한 끼 먹는 시간도 안 걸릴 터이다.
지금 앞장서서 항복하면 집안과 식솔을 필시 보전하고, 능력 있는 자는 열후에 봉해질 터이다.”
出乃相告,下邳皆下。
그 사람들이 나가서 서로 알리니 하비 사람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周丘一夜得三萬人,使人報吳王,遂將其兵北略城邑。
주구가 하룻밤에 3만 명을 얻고, 사람을 보내 오왕에게 보고하고, 그 군대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성읍을 공략하였다.
比至城陽,兵十餘萬,破城陽中尉軍。
城陽에 도착하자 병사가 10여 만이었고 성양의 中尉軍을 격파하였다.
聞吳王敗走,自度無與共成功,即引兵歸下邳。
오왕이 패주했음을 듣고, 더불어 성공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곧 군대를 이끌고 하비로 돌아갔다.
未至,疽發背死。
하비에 도착하기 전에 등에 악성 종기가 나서 죽었다.
▶ 傳舍 : 객사.
▶ 食頃 : 한 끼의 음식을 먹을 만한 시간.
▶ 比 : ~ 이르러.
▶ 度 : 추측하다. 헤아리다.
▶ 疽 : 등창. 악창.
二月中,吳王兵既破,敗走,於是天子制詔將軍曰:
2월 중순에 吳軍이 무너져 패주하니, 이에 천자는 장군들에게 칙명을 내렸다.
「蓋聞為善者天報之以福;
為非者天報之以殃。
“듣건대 착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며,
그릇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준다고 하였다.
高皇帝親表功德,建立諸侯,幽王、悼惠王絕無後,孝文皇帝哀憐加惠,王幽王子遂、悼惠王子卬等,令奉其先王宗廟,為漢藩國,德配天地,明并日月。
高皇帝께서 친히 공덕을 표창하여 제후를 세우셨고, 幽王·悼惠王은 후사가 끊기매 문제께서 가엽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유왕의 아들 遂, 도혜왕의 아들 卬 등을 제후왕으로 세워, 선왕의 종묘를 받들게 하고 漢의 藩國으로 삼으셨으니, 은덕은 천지와 견주고 광명이 日月과 같이 빛난다.
吳王濞倍德反義,誘受天下亡命罪人,亂天下幣,稱病不朝二十餘年,有司數請濞罪,孝文皇帝寬之,欲其改行為善。
今乃與楚王戊、趙王遂、膠西王卬、濟南王辟光、菑川王賢、膠東王雄渠約從反,為逆無道,起兵以危宗廟,賊殺大臣及漢使者,迫劫萬民,夭殺無罪,燒殘民家,掘其丘冢,甚為暴虐。
오왕 劉濞가 은덕을 배반하고 도의를 위반하여, 천하에 도망 다니는 죄인들을 유인하여 천하의 화폐 질서를 어지럽히고, 병들었다고 칭하고 입조하지 않기 20여 년이었다.
有司가 자주 유비의 죄를 다스리자고 청하였으나, 효문황제께서 너그러이 대하시며, 그가 행실을 고치고 善을 행하기를 바라셨다.
지금 결국에는 楚王 戊, 趙王 遂, 膠西王 卬, 濟南王 辟光, 菑川王 賢, 膠東王 雄渠 등과 맹약하고 모반하여 대역무도한 짓을 행하고 군사를 일으켜 종묘에 위해를 가하고, 대신과 한의 使者를 학살하였으며, 萬民을 협박하고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였으며, 민가를 불태우고 분묘를 파헤치는 등 매우 포악하였다.
今卬等又重逆無道,燒宗廟,鹵御物,朕甚痛之。
지금 교서왕 卬 등은 대역무도한 짓을 거듭 행하여, 종묘를 불태우고 종묘의 황실 기물을 노략질하니 짐은 심히 痛恨하고 있다.
朕素服避正殿,將軍其勸士大夫擊反虜。
짐은 흰옷을 입고 正殿을 피하여 있으니, 장군들은 부하들을 독려하여 叛敵을 공격하라.
擊反虜者,深入多殺為功,斬首捕虜比三百石以上者皆殺之,無有所置。
반적을 공격하는 자는 적군 깊이 들어가서 많이 죽임을 공로로 삼으니, 목을 베고 사로잡음에 3백석 이상의 신분을 가진 자는 모두 죽여 놓아 주지 말라.
敢有議詔及不如詔者,皆要斬。」
감히 이 조서에 대하여 의논하거나 조서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腰斬刑에 처할 터이다.”
▶ 制詔 : 황제의 칙명.
▶ 表 : 표창하다.
▶ 幽王 : 劉友. 漢高帝의 여섯 번 째 아들. 처음에 淮陽王에 봉해졌으며 후에 趙王이 되었으며 여후에 의하여 幽禁되어 굶어 죽었으므로 시호를 幽王이라 하였다. 漢文帝가 그의 맏아들 劉遂를 趙王으로 봉하였다.
▶ 悼惠王絕無後 : 悼惠王 劉肥가 죽은 후 아들 劉襄이 이어 받았으며 다시 손자 劉則이 이어받아 유칙이 죽은 후 봉국이 해제되었다.
▶ 藩國 : 황제가 분봉한 제후국.▶ 有司 : 관리. 벼슬아치.
▶ 迫劫 : 협박.
▶ 夭殺 : 마구잡이로 죽이다. 함부로 죽이다.
▶ 丘冢 : 墳墓. 무덤.
▶ 鹵 : 노략질하다.
▶ 素服避殿 : 고대의 제왕들은 비상사태가 생기면 소복을 입고 偏殿에서 정무를 보았다.
▶ 士大夫 : 장군의 부하를 말한다.
▶ 置 : 놓아주다.
▶ 要斬 : 腰斬. 고대에 허리를 베어 죽이던 형벌. 要는 腰와 통한다.
初,吳王之度淮,與楚王遂西敗棘壁,乘勝前,銳甚。
처음에 오왕이 회수를 건너 초왕 유수와 西進하여 棘壁을 쳐부수고 승세를 타고 전진할 때는 기세가 매우 날카로웠다.
梁孝王恐,遣六將軍擊吳,又敗梁兩將,士卒皆還走梁。
梁孝王이 두려워하여 여섯 명의 장군을 보내어 吳를 공격하였으며, 또 吳가 양의 두 장군을 擊敗시키자 사졸들이 모두 梁으로 도망쳐 왔다.
梁數使使報條侯求救,條侯不許。
梁은 여러 차례 條侯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으나 조후는 허락하지 않았다.
又使使惡條侯於上,上使人告條侯救梁,復守便宜不行。
또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조후를 비난하자, 황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후에게 梁을 구하라고 꾸짖었으나, 조후는 자기의 유리한 바를 견지하며 구원하러 가지 않았다.
梁使韓安國及楚死事相弟張羽為將軍,乃得頗敗吳兵。
梁은 韓安國과 楚王이 죽인 楚 승상의 동생 張羽를 장군으로 삼아 吳軍을 어느 정도 꺾을 수 있었다.
吳兵欲西,梁城守堅,不敢西,即走條侯軍,會下邑。
吳軍이 西進하려 하였으나 梁城의 수비가 견고하여 감히 西進하지 못하였고, 조후의 軍으로달려가서 下邑에서 會戰하게 되었다.
欲戰,條侯壁,不肯戰。
싸우려고 하였으나 조후가 성벽을 굳게 지키며 싸우려 하지 않았다.
吳糧絕,卒饑,數挑戰,遂夜奔條侯壁,驚東南。
吳는 군량이 떨어져 병사들이 굶주리자 자주 싸움을 걸다가, 마침내 夜陰을 틈타 조후의 성벽을 기습하여 동남쪽에서 소란을 피웠다.
條侯使備西北,果從西北入。
조후는 서북쪽을 수비하게 하니 과연 吳軍은 서북쪽에서 침입해왔다.
吳大敗,士卒多饑死,乃畔散。
吳가 大敗하고 병사는 대부분 餓死하고 남은 叛徒는 潰散하였다.
於是吳王乃與其麾下壯士數千人夜亡去,度江走丹徒,保東越。
이에 오왕이 휘하의 장사 수천 명과 함께 밤을 틈타 도망쳐서 장강을 건너 丹陽으로 달아나 東越의 보호를 받았다.
東越兵可萬餘人,乃使人收聚亡卒。
동월의 병사가 대략 만여 명은 되었고, 사람을 시켜 도망한 병사를 모으게 하였다.
漢使人以利啗東越,東越即紿吳王,吳王出勞軍,即使人鏦殺吳王,盛其頭,馳傳以聞。
漢이 사신을 보내어 이익으로써 동월을 유혹하니, 동월왕이 오왕을 속이고 오왕이 나가서 군사를 위로할 때 사람을 시켜 오왕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의 머리를 그릇에 담아 역마를 달려 漢에 보고하였다.
吳王子子華、子駒亡走閩越。
吳의 왕자 子華와 子駒는 閩越로 도망하였다.
吳王之棄其軍亡也,軍遂潰,往往稍降太尉、梁軍。
왕자들이 군대를 버리고 도망가자 군대는 마침내 무너져 잇따라 太尉나 梁軍에 투항하였다.
楚王戊軍敗,自殺。
초왕 劉戊는 군대가 패하자 자살하였다.
三王之圍齊臨菑也,三月不能下。
교서, 교동, 치천 등 세 왕이 齊의 임치를 포위하였으나 3개월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漢兵至,膠西、膠東、菑川王各引兵歸。
漢軍이 도착하자 교서, 교동, 치천의 왕은 각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膠西王乃袒跣,席槁,飲水,謝太后。
膠西王은 이에 웃통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 맨발로 멍석 위에 앉아 물을 마시며 모친 왕태후에게 사죄하였다.
王太子德曰:
「漢兵遠,臣觀之已罷,可襲,願收大王餘兵擊之,擊之不勝,乃逃入海,未晚也。」
교서왕의 태자 劉德이 말하였다.
“漢軍이 멀리서 왔으매, 제가 살펴보니 이미 지쳐 있어 습격해볼 만합니다. 원컨대 대왕의 남은 병사를 거두어 공격하십시오. 쳐서 이기지 못하면 그때 도망쳐서 바다로 들어가셔도 늦지 않겠습니다.”
王曰:
「吾士卒皆已壞,不可發用。」弗聽。
교서왕이 대답하기를,
“나의 병사들은 모두 이미 무너져서 다시 일으켜 쓸 수가 없다.”
하며 듣지 않았다.
漢將弓高侯穨當遺王書曰:
「奉詔誅不義,降者赦其罪,復故;
不降者滅之。
王何處,須以從事。」
漢將 弓高侯 頹當이 교서왕에게 서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황제의 조칙을 받들어 불의한 자를 주벌하고, 항복하는 자는 그 죄를 사면하고 옛 지위를 회복시킬 터이고,
항복하지 않는 자는 죽여 없앨 터입니다.
왕은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회답을 기다려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王肉袒叩頭漢軍壁,謁曰:
「臣卬奉法不謹,驚駭百姓,乃苦將軍遠道至于窮國,敢請菹醢之罪。」
교서왕이 윗도리를 벗어 상체를 드러내고 머리를 조아리며 漢 군영에 아뢰었다.
“신 유앙은 법을 받듦에 삼가지 않았으매, 백성을 놀라게 하고 장군을 수고롭게 하여 궁벽한 나라까지 먼 길을 오시게 하였습니다. 감히 청하오니, 죽여 육젓을 담그는 형벌을 내리십시오.”
▶ 梁孝王 : 梁 孝王 劉武는 竇太后의 막내아들이다.
▶ 惡 : 헐뜯다. 비방하다.
▶ 便宜 : 즉 나라의 유리한 점을 생각함. 앞의 등都尉와의 대화에서 양을 吳가 공격하도록 내버려두라고 조언을 받은 바 있다.
▶ 韓安國 : 전한 梁나라 成安 사람. 자는 長孺다. 일찍이 田生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梁孝王을 섬겨 中大夫가 되었다.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이끌고 吳兵을 격파하여 명성을 얻었다.<史記 권108. 韓長孺列傳>
▶ 頗 : 다소. 어느 정도.
▶ 奔 : 奔襲. 기습하다.
▶ 麾下 : 부하.
▶ 可 : 대략.
▶ 啗(담) : 꾀다. 유혹하다.
▶ 鏦殺 : 창으로 찔러 죽이다.
▶ 稍 : 잇따라. 끊임없이.
▶ 三王 : 膠西王 劉卬, 菑川王 劉賢, 濟南王 劉辟光을 말한다.
▶ 漢兵至 : 漢 欒布 등의 군대가 와서 세 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 膠西王 卬 : 劉卬. 高祖의 손자이며 悼惠王 劉肥의 아들이다.
▶ 袒跣 : 윗도리를 벗고 신을 벗음. 고대의 죄를 청하는 방식. 袒은 웃통을 몸의 일부를 드러내다.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席稿 : 볏짚 위에 앉다. 稿는 볏짚. 고대의 죄를 청하는 방식.
▶ 太后 : 王太后. 膠西王의 모친.
▶ 壞 : 무너져서 흩어짐. 싸움에 패하여 뿔뿔이 흩어지다.
▶ 弓高侯 頹當 : 韓頹當. 韓王 信의 아들로, 漢王이 기원전 200년에 흉노로 달아나 頹當城에서 낳았기에 그 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다. 문제 때 형의 아들 한영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漢에 투항하여 문제 16년(기원전 164년)에 弓高侯에 봉해졌다. 오초칠국의 난에서는 주아부의 명령을 받고 장수들과 함께 경기병으로 오·초의 양도를 끊는 작전에 참여하였고, 齊를 포위하고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교서왕 유앙을 꾸짖어 자결하게 하였다.
▶ 菹醢 : 고대의 혹독한 형벌의 하나로, 사람을 죽여 肉醬을 만드는 형벌.
弓高侯執金鼓見之,曰:
「王苦軍事,願聞王發兵狀。」
궁고후는 金鼓를 잡고 교서왕을 만나서 말하였다.
“왕은 이번 전투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왕이 發兵한 정황을 듣고 싶습니다.”
王頓首膝行對曰:
「今者,晁錯天子用事臣,變更高皇帝法令,侵奪諸侯地。
卬等以為不義,恐其敗亂天下,七國發兵,且以誅錯。
今聞錯已誅,卬等謹以罷兵歸。」
교서왕이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으로 기어가서 대답하였다.
“현재 조조는 천자께서 정권을 맡긴 신하였는데 高祖 황제의 법령을 변경하여 제후의 영지를 침탈하였습니다.
유앙 등은 그것이 不義라고 여기고 그가 천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하여 칠국이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주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들으니 조조가 이미 주살되었다고 하매, 유앙 등은 삼가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습니다.”
將軍曰:
「王茍以錯不善,何不以聞?
乃未有詔虎符,擅發兵擊義國。
以此觀之,意非欲誅錯也。」
장군이 말하였다.
“왕이 진실로 조조가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면, 어찌하여 황제께 아뢰지 않았습니까?
조서와 虎符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병사를 일으켜 의로운 나라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왕의 뜻은 조조를 주살하려 함이 아닙니다.”
乃出詔書為王讀之。
그러고는 황제의 조서를 꺼내어 교서왕에게 읽어주었다.
讀之訖,曰:
「王其自圖。」
읽기를 마치고 말하였다.
“왕은 스스로 생각하여 처신하시오.”
王曰:
「如卬等死有餘罪。」
교서왕이 말하였다.
“유앙과 같은 자는 죽어도 남은 죄가 있습니다.”
遂自殺。
마침내 자살하였다.
太后、太子皆死。
태후와 태자도 모두 죽었다.
膠東、菑川、濟南王皆死,國除,納于漢。
교동왕, 치천왕, 제남왕도 모두 죽고, 봉국은 해제되어 漢 조정에 편입되었다.
酈將軍圍趙十月而下之,趙王自殺。
酈寄 장군의 군대가 趙의 도성을 포위한 지 10달 만에 함락하니 趙王이 자살하였다.
濟北王以劫故,得不誅,徙王菑川。
제북왕은 협박당하였다고 여겨져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봉국을 치천왕으로 옮겼다.
初,吳王首反,并將楚兵,連齊趙。
처음에 오왕이 반란의 首長으로 楚軍을 우울러 통솔하고 齊 및 趙와 연합하였다.
正月起兵,三月皆破,獨趙後下。
정월에 起兵하여 3월에 모두 무너지고, 趙만이 후에 함락되었다.
復置元王少子平陸侯禮為楚王,續元王後。
다시 楚元王의 막내아들 平陸侯 劉禮를 楚王으로 삼아 원왕의 뒤를 잇게 하였다.
徙汝南王非王吳故地,為江都王。
汝南王 劉非를 옮겨 吳의 옛 땅에 왕으로 삼고 江都王이라 하였다.
▶ 金鼓 : 군대의 징과 북. 전진할 때는 북을 치며 후퇴할 때는 징을 침.
▶ 膝行 : 무릎으로 걷다. 복종의 의사 표시.
▶ 茍 : 만약.
▶ 虎符 : 구리로 범 模樣을 본떠 만든 徵兵의 標識
▶ 訖 : 다하다. 완료하다.
▶ 酈將軍 : 酈寄가 趙를 공격하여 7개월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는데, 난포가 돌아와 병력을 합치고 물을 끌어다가 城에 주입하니 趙王이 마침내 자살하였다.
太史公曰:
吳王之王,由父省也。
태사공은 말한다.
“吳王 劉濞가 왕으로 봉해짐은 그 아버지의 허물에 緣由한다.
能薄賦斂,使其眾,以擅山海利。
오왕이 조세를 적게 거두고 백성을 부릴 수 있었음은 광산과 바다의 이익을 마음대로 취하였기 때문이었다.
逆亂之萌,自其子興。
逆亂의 싹은 그의 아들로부터 일어났다.
爭技發難,卒亡其本;
親越謀宗,竟以夷隕。
잡기를 다투다가 병란이 일어나 마침내 그 근본을 망쳤고,
越族을 가까이하며 宗室을 도모하다가 결국 이로 인하여 멸망하였다.
晁錯為國遠慮,禍反近身。
晁錯는 국가를 위하여 深謀遠慮하였으나 재앙이 도리어 자기 신상에 다가왔다.
袁盎權說,初寵後辱。
袁盎은 임기응변과 유세를 잘하여 처음에는 총애를 받았으나 최후에는 치욕을 당하였다.
故古者諸侯地不過百里,山海不以封。
그래서 옛날에 제후의 땅은 백리를 넘지 않았고, 산과 바다에는 제후를 봉하지 않았다.
「毋親夷狄,以疏其屬」,蓋謂吳邪?
‘오랑캐를 가까이하여 친족을 소원하게 하지 말라.’라 하니, 대체로 吳王을 이름일까?
「毋為權首,反受其咎」,豈盎、錯邪?
‘권모술수에 앞장서지 마라, 오히려 재앙을 받는다.’라 하니, 원앙이나 조조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 省 : 허물. 강등되고 유배된 일. 劉濞의 아버지 劉仲은 高帝와 사촌형제인 까닭에 흉노의 공격에 나라를 버리고 도주한 것을 文帝가 차마 법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위를 폐하고 郃陽侯로 강등하였었다.
▶ 薄賦斂 : 조세를 적게 거둠.
▶ 爭技 : 吳태자 유현과 文帝의 황태자 유계가 쌍륙놀이를 하다가, 황태자가 쌍륙판을 吳태자에게 던져 죽게 하였었다.
▶ 越 : 越人. 오왕 劉濞는 남쪽의 閩越, 東越 등과 가깝게 지냈었다.
▶ 宗 : 同宗. 同姓.
▶ 夷隕 : 멸망하다. 夷는 멸하다.
▶ 權說 : 임기응변에 능하고 유세를 잘하다.
▶ 毋親夷狄 : <逸周書>에서 나온 말이다. 夷는 고대 동방의 부족이며, 狄은 고대 북방 민족으로 타 부족을 경멸하는 호칭이다.
<逸周書>는 先秦시기의 史籍으로 본래의 명칭은 <周書>이다. 원본은 산실되고 남은 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일주서>라고 한다.
▶ 毋為權首 : <逸周書>에서 나온 말이다. 權首는 주모자, 咎는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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