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116-西南夷列傳(서남이열전)

耽古樓主 2023. 9. 30. 09:33

 

西南夷列傳은 중국의 서남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 민족인 西南夷의 위치와 풍속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으며漢武帝에 이르러 이들을 평정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 가운데 비교적 큰 것이 夜郞·滇이었다이들 민족의 발전은 다 같지 않았으나그 가운데 滇이 한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발달되었다.
이들은 남월과 인도로 왕래하고 있었는데무제 때 唐蒙을 야랑에 파견하자 야랑은 漢에 예속되어 이곳에 군을 두게 되었다.
또 司馬相如를 보내 이곳을 의 촉군에 편입시켜 서남 지방이 모두 漢의 수중에 들어왔다.
사마천은 이 西南夷를 정벌하여 많은 나라가 멸망당하였는데 오직 만이 다시 漢王의 총애를 받았다고 평하였다.

西南夷君長以什數,夜郎最大;
其西靡莫之屬以什數,滇最大;
自滇以北君長以什數,邛都最大:
此皆魋結,耕田,有邑聚。
西南夷의 君長은 수십 명인데그중 夜郎의 세력이 가장 컸다.
야랑의 서쪽에 靡莫 부족이 수십인데 그중 의 세력이 가장 컸다.
으로부터 북쪽의 군장이 수십 명인데 그중 邛都가 세력이 가장 컸다.
이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밭을 경작하면서 작은 과 촌락을 이루었다.

其外西自同師以東,北至楪榆,名為巂、昆明,皆編發,隨畜遷徙,毋常處,毋君長,地方可數千里。
그들 이외의 지방으로 서쪽 변두리는 同師 以東이고북쪽 변두리는 楪楡까지 이르는데그 명칭은 와 昆明이다.
모두 머리를 길게 땋고 가축을 방목하면서 옮겨 다녔는데 일정한 거처도 군장도 없었고 땅은 사방 대략 수천 리였다.

自冄以東北,君長以什數,徙、筰都最大;
自筰以東北,君長以什數,冄駹最大。
에서부터 동북쪽에 군장이 수십 명인데 그중 와 筰都의 세력이 가장 컸다.
작도에서부터 동북쪽에 군장이 수십 명인데 그중 冉駹의 세력이 가장 컸다.

其俗或士箸,或移徙,在蜀之西。
그들의 풍속은 정착하여 사는 백성이 있기도 하고옮겨 사는 백성이 있기도 하였는데모두 의 서쪽에 있었다.

自冄駹以東北,君長以什數,白馬最大,皆氐類也。
염방으로부터 동북쪽에 군장이 수십 명인데 그중 白馬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모두 氐族과 같은 무리였다.

此皆巴蜀西南外蠻夷也。
이들은 모두 巴郡과 蜀郡의 서남쪽 바깥에 사는 蠻夷들이었다.

▶ 西南夷 : 중국의 서남 각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 민족
▶ 君長 : 부락의 수령.
▶ 什 : 十과 통한다.
▶ 數 : 계산하다. 헤아리다.
▶ 夜郎 : 고대 부족명. 지금의 貴州省 서부 일대.
▶ 靡莫 : 고대 서남지역의 소수 민족명. 지금의 운남성 심전 일대.
▶ 滇 : 고대 부족명. 지금의 운남성 동부 滇池 부근.
▶ 邛都 : 고대 부족명. 지금의 사천성 西昌市 동남 일대
▶ 魋結 : 상투. 椎髻(魋結)은 한 줌으로 묶은 상투의 모양이 椎와 같은 것이다.
▶ 同師 : 고대 나라 이름으로 지금의 운남성 怒江과 灡凔江 사이.
▶ 楪楡 : 지명. 지금의 운남 大理縣 동북.
▶ 巂 : 고대 부족명.
▶ 昆明 : 고대 부족명.
▶ 編發 : 編은 辫과 통한다. 머리를 길게 땋음.
▶ 毋常處 :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곳이 없음.
▶ 自冄 : 冄은 嶲의 오류.
▶ 徙 : 고대 부족명.
▶ 筰都 : 고대 부족명.
▶ 冄駹 : 冉駹. 고대부족명.
▶ 土箸 : 土箸. 토착하다. 정착하다. 箸는 著과 통한다.
▶ 白馬 : 고대 부족명.
▶ 氐類 : 氐族과 같은 무리.
▶ 蠻夷 : 남방의 미개한 민족이라는 의미로 南蠻을 말한다. 南蠻은 중국 역사에서 남쪽에 사는 오랑캐를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蠻夷라는 표현으로 오랑캐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東夷·西戎·南蠻·北狄으로 불렀다.

始楚威王時,使將軍莊蹻將兵循江上,略巴、黔中以西。
처음에 楚威王 때 장군 莊蹻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장강을 따라 올라가 파군과 黔中의 서쪽 지방을 공격하였다.

莊蹻者,故楚莊王苗裔也。
장교는 원래 楚莊王의 먼 후손이다.

蹻至滇池,地方三百里,旁平地,肥饒數千里,以兵威定屬楚。
장교가 滇池에 이르니 땅이 사방 3백리로서 주변의 평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 수천 리에 달하였는데장교가 兵威로 평정하여 에 귀속시켰다.

欲歸報,會秦擊奪楚巴、黔中郡,道塞不通,因還,
以其眾王滇,變服,從其俗,以長之。
로 돌아가서 이 정황을 보고하려고 하였으나이 의 파군과 검중군을 공격하여 탈취하는 바람에 길이 막혀 통행할 수 없었으며그 때문에 滇池로 되돌아왔다.
그의 군대를 거느리고 의 이 되자복식을 바꾸고 그들의 습속을 따라서 우두머리가 되었다.

秦時常頞略通五尺道,諸此國頗置吏焉。
秦 때 常頞이 대략 五尺의 道路를 개통시키고이곳의 나라들에 관리를 둠이 자못 많았다.

十餘歲,秦滅。
10여 년 지난 뒤에 이 멸망하였다.

及漢興,皆棄此國而開蜀故徼。
이 흥기하자 이곳의 나라들을 포기하고 촉군의 옛 변경을 關門으로 삼았다.

巴蜀民或竊出商賈,取其筰馬、僰僮、髦牛,以此巴蜀殷富。
파촉의 백성 중에 간혹 몰래 나와 장사하였는데 筰都의 말僰國의 노비와 야크를 가져왔기 때문에 파군과 촉군이 특별히 부유해졌다.

▶ 楚威王 : 楚중국 楚의 제36대 재위: 기원전 339년 ~ 기원전 329년이다. 이름은 商이다.
▶ 江 : 長江.
▶ 略 : 공격하여 빼앗다.
▶ 苗裔 : 후대의 자손.
▶ 擊奪 : 공격하여 탈취하다.
▶ 其眾 : 莊蹻의 大軍.
▶ 王滇 : 滇에서 왕을 칭하다.
▶ 五尺道 : 도로명. 秦이 통일 후 만든 도로로 四川과 曲靖을 연결하는 도로로 棧道의 너비가 五尺이었다.
▶ 開 : 關이라야 옳다
▶ 徼 : 변경.
▶ 商賈 : 장사하다.
▶ 筰馬 : 筰都의 말.
▶ 僰僮 : 고대 부족인 僰人의 노비.
▶ 髦牛모우 : 야크. 인도 들소.
▶ 殷富 : 특별히 부유해지다.

建元六年,大行王恢擊東越,東越殺王郢以報。
한무제 建元 6(기원전 135)에 大行 王恢가 東越을 공격하자 동월은 왕인 을 죽이고 에 이 사실을 알렸다.

恢因兵威使番陽令唐蒙風指曉南越。
왕회는 兵威에 의지하여 番陽令 唐蒙을 보내 출병한 뜻을 南越에 넌지시 알리도록 하였다.

南越食蒙蜀枸醬,蒙問所從來,曰
「道西北牂柯,牂柯江廣數里,出番禺城下」。
남월이 당몽에게 촉군에서 산출되는 枸醬을 먹였고당몽이 그것이 온 곳을 물으니대답하였다.
서북쪽의 牂柯에서 가져온 것으로 장가강은 넓이가 몇 리나 되며 番禺城에서 나옵니다.”

蒙歸至長安,問蜀賈人,賈人曰:
당몽이 長安으로 돌아와서 촉의 商人에게 물으니 상인이 대답하였다.

「獨蜀出枸醬,多持竊出市夜郎。
오직 촉에서만 구장이 나는데 대부분 몰래 가지고 나와 夜郞에서 팝니다.

夜郎者,臨牂柯江,江廣百餘步,足以行船。
야랑은 장가강 가에 있는데 강폭이 1백여 이고 배가 다닐 수 있습니다.

南越以財物役屬夜郎,西至同師,然亦不能臣使也。」
남월이 재물로써 야랑을 복속시키고 서쪽으로 同師에 이르고 있으나야랑을 신하로 부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蒙乃上書說上曰:
이에 당몽이 上書하여 권하였다.

「南越王黃屋左纛,地東西萬餘里,名為外臣,實一州主也。
남월왕이 黃屋을 타고 左纛을 달고 있으며땅은 동서로 만여 리나 되니 명목상 의 外臣이지만실제로는 한 의 주인입니다.

今以長沙、豫章往,水道多絕,難行。
지금 長沙와 豫章에서 남월로 간다면 물길이 대부분 끊겨 가기가 어렵습니다.

竊聞夜郎所有精兵,可得十餘萬,浮船牂柯江,出其不意,此制越一奇也。
삼가 듣건대야랑이 가진 精兵이 대략 10여 만이라고 하니장가강에서 배를 띄워 불시에 공격함이 남월을 제압하는 한 가지 기이한 계책입니다.

誠以漢之彊,巴蜀之饒,通夜郎道,為置吏,易甚。」
만약 의 강대함과 파촉의 풍요함으로 야랑으로 가는 길을 개통하면그곳에 관리를 둠이 아주 쉽겠습니다.”

上許之。
漢武帝가 허락하였다.

乃拜蒙為郎中將,將千人,食重萬餘人,從巴蜀筰關入,遂見夜郎侯多同。
이에 당몽을 郎中將으로 임명하니, 1천 명의 군사와 양식과 군수품을 수송하는 만여 명을 거느리고 파촉의 筰關을 통하여 야랑으로 들어가서 夜郎侯 多同을 만났다.

蒙厚賜,喻以威德,約為置吏,使其子為令。
당몽은 다동에게 재물을 후하게 주고 위세와 은덕으로 깨우쳐서 관리를 두기로 약속하였으매그의 아들을 현령으로 삼았다.

夜郎旁小邑皆貪漢繒帛,以為漢道險,終不能有也,乃且聽蒙約。
야랑 주변의 작은 읍들이 모두 의 비단과 명주를 탐내었는데에서 오는 길이 험난하여 마지막에는 가지지 못하리라 여기고곧 당몽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還報,乃以為犍為郡。
당몽이 돌아와서 보고하니야랑을 犍爲郡으로 삼았다.

發巴蜀卒治道,自僰道指牂柯江。
파촉의 군사를 징발하여 길을 닦게 하였는데僰道에서 장가강으로 통하였다.

蜀人司馬相如亦言西夷邛、筰可置郡。
촉의 사람 司馬相如도 황제에게 말하기를西夷의 과 에 을 설치할 만하다고 하였다.

使相如以郎中將往喻,皆如南夷,為置一都尉,十餘縣,屬蜀。
사마상여를 郎中將으로 임명하여 그곳에 가서 백성을 깨우치고 모든 것을 南夷와 같게 하니한 명의 都尉와 10여 개의 을 설치하고 蜀郡에 예속시켰다.

▶ 建元 : 漢武帝의 첫 번째 연호.
▶ 因 : 빙자하다. 의지하다.
▶ 風曉 : 넌지시 알려주다. 風은 諷과 통한다.
▶ 指 : 旨와 통한다. 뜻. 출병한 뜻을 말한다.
▶ 食 : 먹이다.
▶ 枸醬 : 음료. 枸는 나무에 붙어서 자라며 그 열매가 뽕나무 열매처럼 생겼고, 익었을 때에 正靑色을 띄고 길이가 2, 3치인데 꿀에 담가두었다가 먹으면 매운 향기가 나서 五臟을 조화롭게 한다
▶ 道 : ~에서, ~부터.
▶ 牂柯 : 고대의 강 이름. 牂柯는 배를 묶을 때 쓰는 말뚝이다. 楚가 夜郞을 정벌하고 且蘭에 이르러서 연안에 나무를 박아 배를 묶어두었는데, 이로 인하여 牂柯이라 이름하였다
▶ 廣 : 넓이. 너비.
▶ 賈人 : 商人.(商은 行商, 賈는 붙박이 商人)
▶ 市 : 매매하다.
▶ 役属 : 복속하다.
▶ 臣使 : 신하로 부리다.
▶ 說上 : 황제에게 유세하다.
▶ 黃屋左纛 : 천자가 타는 수레와 깃발. 천자의 수레는 누런 비단으로 덮개와 속을 만든다. 纛은 들소의 꼬리로 만들며 황제의 수레의 가로 댄 나무 왼쪽 위에 이것을 매단다.
▶ 誠 : 만약.
▶ 食重 : 식량과 군수품. 粮食和辎重
▶ 入 : 夜郎으로 진입함.
▶ 威德 : 위세와 은덕.
▶ 令 : 縣令.
▶ 犍爲郡 : 무제가 西南夷를 정복하고 세운 군 중 하나로 옛 夜郞國이다. 건원 6년(기원전 135년)에 설치했다
▶ 指 : 통하다. 通向
▶ 相如 : 司馬相如. 武帝 때 中郎將이 되어 愼ㆍ夜郎에 부임하였고 그 후 茂陵에서 살았다. 그의 辭賦는 화려함으로 유명하다.

當是時,巴蜀四郡通西南夷道,戍轉相馕。
이때 廣漢漢中 등의 四郡에서는 西南夷로 가는 도로를 개통하려고수자리 병사를 돌려 군량과 물자를 운송하였다.

數歲,道不通,士罷餓離溼死者甚眾;
西南夷又數反,發兵興擊,秏費無功。
여러 해가 지나도 도로가 개통되지 않았고군사는 지치고 굶주리며 습기를 만나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西南夷 또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키매군대를 보내 공격을 실행하였으나 비용을 소모하였을 뿐 성과가 없었다.

上患之,使公孫弘往視問焉。
황제가 이 일을 걱정하여 公孫弘을 보내 巡視하고 물어보게 하였다.

還對,言其不便。
공손홍이 돌아와 황제에게 보고하면서 그 불리함을 말하였다.

及弘為御史大夫,是時方筑朔方以據河逐胡,弘因數言西南夷害,可且罷,專力事匈奴。
공손홍이 御史大夫가 되자이때 한창 朔方郡에 성벽을 修筑하고 황하에 의지하여 흉노를 축출하려고 했으매공손홍이 이로 인하여 누차 西南夷의 개발에 대한 폐해를 말하며개발을 잠시 멈추고 역량을 집중하여 흉노를 처리하자고 말하였다.

上罷西夷,獨置南夷夜郎兩縣一都尉,稍令犍為自葆就。
황제가 西夷의 개발을 중지하고오직 南夷의 야랑 두 현에 1都尉만을 두고점차 犍爲郡으로 하여금 스스로 보전하여 군현을 이루도록 하였다.

▶ 四郡 : 巴郡, 蜀郡, 廣漢郡, 漢中郡.
▶ 戍 : 수자리. 변방을 지키는 병사.
▶ 馕 : 饢. 軍糧.
▶ 罷 : 疲와 통하여 고달프다.
▶ 離 : 罹라 통하여 만나다. 걸리다
▶ 數 : 누차. 자주.
▶ 興擊 : 공격을 감행하다.
▶ 公孫弘 : 평진후 공손홍. 漢武帝때 內史·御史大夫를 역임하였으며, 기원전 124년 丞相이 되고 平津侯에 봉해졌다.<사기 권112.平津侯主父列傳>
▶ 不便 : 불리하다.
▶ 河 : 黄河.
▶ 逐胡 : 흉노를 축출하다.
▶ 因 : ~에 기인하여
▶ 且 : 잠시,
▶ 稍 : 점차.
▶ 葆 : 保와 통하여 보존하다.
▶ 就 : 성취하다.

 

及元狩元年,博望侯張騫使大夏來,言
居大夏時見蜀布、邛竹杖,使問所從來,曰「從東南身毒國,可數千里,得蜀賈人市」。
或聞邛西可二千里有身毒國。
元狩 원년(기원전 122)에 博望侯 張騫이 大夏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였다.
대하에 있을 때 의 베와 의 竹杖을 보고사람을 시켜 물건의 내력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동남쪽 身毒國에서 가져왔는데 대략 수천 리나 되지만 촉의 상인에게서 샀다.’라고 하였고어떤 이는 의 서쪽으로 대략 2천 리쯤에 신독국이 있다고 하였다.

騫因盛言大夏在漢西南,慕中國,患匈奴隔其道,誠通蜀,身毒國道便近,有利無害。
장건이 이 때문에 칭찬하여 말하기를大夏는 의 서남쪽에 있으며 중국을 仰慕하나 흉노가 중원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으매만약 촉과 통하게 하면 신독국으로 가는 길이 편리하고 가까워 에 이익이 되지 손해는 없겠다고 하였다.

於是天子乃令王然于、柏始昌、呂越人等,使閒出西夷西,指求身毒國。
이에 황제가 王然于柏始昌呂越人 등에게 영을 내려 西夷의 서쪽 지름길로 나가서 신독국으로 통하는 길을 찾게 하였다.

至滇,滇王嘗羌乃留,為求道西十餘輩。
그들이 에 도착하자 滇王 嘗羌이 억류하고그들 대신 길을 찾으러 서쪽으로 보낸 사람이 10여 무리였다.

歲餘,皆閉昆明,莫能通身毒國。
1년 남짓 지나도록 그들은 모두 昆明에서 막혀 신독국과 통할 수 없었다.

滇王與漢使者言曰:
「漢孰與我大?」
전왕이 의 사신과 말하였다.
과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及夜郎侯亦然。
夜郞侯 역시 그렇게 물었었다.

以道不通故,各自以為一州主,不知漢廣大。
도로가 통하지 않는 까닭에 각자 1의 주인이라고 여기고의 광대함을 알지 못한 까닭이었다.

使者還,因盛言滇大國,足事親附。
사신이 장안으로 돌아와서 힘주어 말하기를은 큰 나라이니 에 친근하게 따르도록 처리할 만하다고 하였다.

天子注意焉。
황제가 그 말에 주의하였다.

及至南越反,上使馳義侯因犍為發南夷兵。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漢武帝는 馳義侯에게 건위군을 통하여 南夷의 군대를 징발하게 하였다.

且蘭君恐遠行,旁國虜其老弱,乃與其眾反,殺使者及犍為太守。
且蘭의 군주는 군대가 멀리 가면 주변의 나라들이 그의 노약자를 잡아갈까 두려워하여자신의 군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의 사신과 犍為태수를 죽였다.

漢乃發巴蜀罪人嘗擊南越者八校尉擊破之。
은 이에 파촉의 죄인으로 종군하는 자와 남월을 공격한 적이 있는 여덟 校尉를 동원하여 且蘭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 元狩 : 漢武帝의 네 번째 연호. 기원전 122년.
▶ 張騫 : 元朔 6년 (기원전 123년). 張騫이 대장군을 따라 출병하였을 때, 예전에 大夏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랫동안 흉노에게 억류되어 嚮導하매, 물과 풀이 풍부한 곳을 알고 있어서 군사들은 기갈을 면할 수가 있었다. 또 앞서 먼 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공로를 인정받아 장건을 博望侯에 봉하였다.<사기 권111.위장군표기열전>
▶ 大夏 : 서역 지방의 나라 이름.
▶ 使問 : 사람을 보내 묻다.
▶ 可 : 대략.
▶ 身毒国 : 고대 중국인이 인도 지방을 부른 명칭. 중원 대륙의 북방과 서역지방에 걸쳐 있었던 나라로 漢 초기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漢 후기에 광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다섯 제후국으로 나뉘어졌다. <漢書>에는 天篤, <後漢書>에는 天竺으로 표기되어 있다.
▶ 市 : 사고 팔다.
▶ 盛言 : 極力 말함. 강조하여 말함
▶ 隔 : 막히다. 가로막혀 격리되다.
▶ 誠 : 만약.
▶ 閒 : 지름길. 빠른 길.
▶ 皆閉昆明 : 모두 곤명에게 막히다. 柏始昌과 呂越人 등 일 년에 십여 무리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대하에 가려고 하였으나 모두 곤명에게 막혀서 피살되고 재물은 빼앗겼으며 끝내 대하와 소통할 수 없었다. 昆明은 지금의 嶲州 남쪽에 있었다.
▶ 孰與 : ~와 비교하여.
▶ 然 : 이와 같음.
▶ 南越反 : 漢武帝 元鼎 5년(기원전 112년), 재상 呂嘉가 권력을 장악하고 한에 入朝하려는 왕과 王母를 살해하였으며, 또한 漢의 사신까지도 죽인 뒤 興의 異腹兄인 趙建德을 옹립하여 漢에 대항하였다.<사기 권113. 남월열전>
▶ 上 : 漢武帝.
▶ 因 : ~을 통하다. ~에 의지하다.
▶ 且蘭(저란/차란) : 전국시대부터 漢 초기의 小國으로 나중에 縣이 되어 牂柯郡에 속하였다. 지금의 貴州省 都勻 ·福泉· 黃平 일대이다.
▶ 旁國 : 이웃 나라.

會越已破,漢八校尉不下,即引兵還,行誅頭蘭。
그즈음 남월이 이미 격파되매의 여덟 校尉는 남하하지 않고즉각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다가 頭蘭을 주멸하였다.

頭蘭,常隔滇道者也。
두란은 항상 이 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던 나라였다.

已平頭蘭,遂平南夷為牂柯郡。
두란을 평정한 뒤에 남이를 평정하여 牂柯郡을 설치하였다.

夜郎侯始倚南越,南越已滅,會還誅反者,夜郎遂入朝。
야랑후가 처음에 남월에 의지하였는데남월이 이미 멸망하고 그때 漢軍이 돌아와 반역자를 죽이니야랑후도 입조하였다.

上以為夜郎王。
황제가 夜郎王으로 삼았다.

南越破後,及漢誅且蘭、邛君,并殺筰侯,冄駹皆振恐,請臣置吏。
남월이 격파한 후 이 且蘭과 의 군주를 죽이고 아울러 筰侯를 죽이니과 이 모두 두려워 떨며稱臣할 터이니 의 관리를 배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乃以邛都為越巂郡,筰都為沈犁郡,冄駹為汶山郡,廣漢西白馬為武都郡。
이에 邛都에 越嶲郡을 설치하고 筰都에 沈犁郡을 설치하고염과 방에 汶山郡을 설치하고廣漢의 서쪽에 白馬에 武都郡을 설치하였다.

上使王然于以越破及誅南夷兵威風喻滇王入朝。
황제가 王然于를 사신으로 보내 南越을 멸망시키고 南夷의 군장을 주살한 兵勢를 이용하여 滇王에게 입조하도록 넌지시 권고하였다.

滇王者,其眾數萬人,其旁東北有勞寖、靡莫,皆同姓相扶,未肯聽。
전왕은 그의 군대가 수만 명이고그 주변의 동북쪽에 勞浸靡莫이 있어서 모두 同姓으로 서로 의지했기 때문에 권고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勞寖、靡莫數侵犯使者吏卒。
勞寖靡莫이 여러 차례 의 사자관리군졸을 침범하였다.

▶ 會 : 때마침.
▶ 不下 : 장가강 남쪽으로 내려가 남월을 공격하지 않다.
▶ 行誅 : 행군 중에 주멸하다.
▶ 頭蘭 : 사기색은에 “두란은 且蘭이다.”라고 하였다.
▶ 汶山郡 : 汶山郡은 기원전 111년에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蜀郡 岷江.
▶ 越破 : 南越을 멸망시키다.
▶ 風諭 : 넌지시 타이르다.
▶ 勞寖, 靡莫(노침, 미막) : 西南夷의 옛 나라 이름. 두 나라는 滇王과 同姓이다.

元封二年,天子發巴蜀兵擊滅勞寖、靡莫,以兵臨滇。
元封 2(기원전 109)에 천자가 파촉의 군사를 일으켜 노침미막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그 군대로 을 공격하였다.

滇王始首善,以故弗誅。
滇王은 처음부터 과 친선에 앞장섰으므로주살하지 않았다.

滇王離難西南夷,舉國降,請置吏入朝。
전왕은 西夷에서 탈퇴하고 나라를 들어 투항하고官吏의 配置와 入朝를 요청하였다.

於是以為益州郡,賜滇王王印,復長其民。
이에 그곳에 益州郡을 설치하고 전왕에게 王印을 하사하니다시 그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西南夷君長以百數,獨夜郎、滇受王印。
西南夷의 군장은 수백 명이었지만 오직 夜郎이 王印을 받았다.

滇小邑,最寵焉。
은 작은 읍이였지만 으로부터 최고의 총애를 받았다.

▶ 元封 : 漢武帝의 여섯 번째 연호.
▶ 臨 : 공격하다
▶ 首善 : 善意를 가지고 시작하다.
▶ 滇 :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경 중국 운남성 곤명호 부근에서 농경생활을 한 西南夷의 하나로 본래 楚 莊王의 아우 莊滇이 이곳에 나라를 세우니, 昆明의 서쪽에 있으며 지역이 천여 리쯤 되었다. 기원전 109년 漢武帝가 四川·운남 방면을 정벌하였을 때 漢 편을 들었기 때문에 滇王에게 王印을 주었다.
▶ 滇王离难西南夷 : 《汉书·西南夷传》作“滇王离西夷”此句中“难”与“南”当是衍文。“滇王离西夷”言滇王离开西夷,向东奉侍汉朝。“难”과 “南”은 衍文이므로 해석하지 말라
▶ 舉國 : 전국.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楚之先豈有天祿哉?
의 선조가 어찌하여 하늘의 복록을 받았는가?

在周為文王師,封楚。
나라 때 초의 선조 鬻熊이 文王의 스승이 되매에 봉하였다.

及周之衰,地稱五千里。
주나라가 쇠미할 때 의 땅이 5천 리라고 일컬었다.

秦滅諸候,唯楚苗裔尚有滇王。
이 제후를 멸망시켰지만오직 의 먼 후손에 여전히 滇王이 있었다.

漢誅西南夷,國多滅矣,唯滇復為寵王。
이 西南夷를 誅罰하매 많은 나라가 멸망하였는데만이 다시 漢王에게 총애를 받았다.

然南夷之端,見枸醬番禺,大夏杖、邛竹。
그러나 南夷 정벌의 발단은 番禺에서 枸醬을 보고大夏에서 邛竹杖을 보았기 때문이다.

西夷后揃,剽分二方,卒為七郡。
西夷가 나중에 분할되어 서쪽과 남쪽으로 나누어졌고마침내 일곱 개의 이 되었다.”

▶ 先 : 先祖.
▶ 天祿 : 하늘이 주신 福綠.
▶ 在周為文王師 : 주문왕 때 季連의 먼 후손을 鬻熊이라 하였으며, 육웅의 아들은 문왕을 섬겼으며 요절하였다.(周文王之時,季連之苗裔曰鬻熊。鬻熊子事文王,蚤卒.) <사기 권40. 초세가>
楚武王은 “나의 선조 육웅은 문왕의 스승이었으며 요절하였다.(吾先鬻熊,文王之師也,蚤終.)”라고 하였다.<사기 권 40. 楚世家>
▶ 粥熊 : 鬻子. 이름은 熊이다. 주나라 文王의 스승으로 楚의 先祖이며 저서로는 육자 22편이 있다.
▶ 揃 : 분할하다.
▶ 剽分二方 : 두 곳으로 나뉘어졌다. 西夷가 나중에 나뉘고 몰리고 쫓겨 마침내는 흩어져 西와 南 두 지방으로 나뉘어 각기 郡縣에 속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 七郡 : 犍爲郡, 牂柯郡, 越嶲郡, 益州郡, 武都郡, 沈犂郡, 汶山郡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