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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 第五章 子張問行。 子張이 行動하는 법을 물었다. 猶問達之意也。 達함을 물은 뜻과 같다. 子曰: 「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里行乎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忠信하고 행실이 篤敬[篤實하고 조심함]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세할 수 있거니와 말이 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篤敬하지 못하면 州里라 하더라도 행세할 수 있겠는가? ▶忠: 盡己之心 ▶信: 以榁之行 ▶篤:凡事詳審而不輕發(매사를 자세히 살펴서 가볍게 일어나지 않음) ▶敬:戒愼恐懼(조심하고 두려워함) 子張意在得行於外,故夫子反於身而言之,猶答干祿問達之意也。 子張의 뜻은 밖에서 행세함을 얻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자신에게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말씀하셨으니, 干祿과 問達에 답한 뜻과 같다. 篤,厚也。 篤은..
▣ 第六章 子曰: 「直哉史魚! 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하다, 史魚여! 나라에 道가 있어도 살대같이 곧으며, 나라에 道가 없어도 살대같이 곧도다.” 史,官名。 史는 官名이다. ▶史官名因以爲姓 魚,衛大夫,名鰌。 魚는 衛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鰌이다. 如矢,言直也。 如矢란 곧음을 말한다. 史魚自以不能進賢退不肖,既死猶以屍諫,故夫子稱其直。 史魚는 스스로 어진 이(蘧伯玉)를 등용하고 不肖한 이(彌子瑕)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하여, 죽고 나서도 尸身으로써 君主에게 간하였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의 정직함을 칭찬하셨다. 事見家語。 이 사실은 《家語》에 보인다. 君子哉蘧伯玉! 邦有道,則仕;邦無道,則可卷而懷之。」 君子답다. 蘧伯玉이여! 나라에 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道가 없으면 거두어..
시(尸)는 시동(尸童)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선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조상 핏줄을 이은 어린아이를 신위(神位)에 올려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영혼이 어린아이에게 접신(接神)해 그 아이의 입을 통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때 신위에 앉는 아이를 시동, 그가 앉는 자리를 시위(尸位)라고 일컬었다. 소(素)는 맹탕이란 뜻을 갖는데 소찬(素饌)은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반찬을 말한다. 이에 반해 소찬(素餐)은 공짜로 먹는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시위소찬(尸位素餐)은 영문도 모르고 신위라는 높은 자리에 앉은 어린아이가 공짜로 마음껏 먹고 마신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이렇다 할 실력도 없으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서는 나라의 녹(祿)..
우리 國祖[국조] 荊棘[형극]을 開除[개진]하시고 政敎[정교]를 베푸신 뒤로 綿延[면연]함이 거의 五千年[오천년]에 미치는 그 동안 興廢[흥폐]의 故[고]가 어찌 한두 번이리요마는 실상은 한 族類[족류]로서의 代承[대승]이요 혹 外寇[외구]의 侵奪[침탈]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地域[지역]이 一區[일구]에 그쳐 桓解古胤[환해고윤]의 내려오는 統緖[통서]는 언제나 儼然[엄연]하였나니 우리 몸소 당한바 變亂[변란]이야말로 史上[사상]에서 보지 못하던 初有[초유]의 慘[참]이라. 光武[광무] 乙巳[을사]로 비롯하여 丁未[정미]를 지나 隆熙[융희] 庚戌[경술]에 와서 드디어 言語[언어] 끊기니 그 慘[참]됨은 오히려 둘째라 奇恥[기치]와 大辱[대욕]이 이에 極[극]함을 무엇으로 견준다 하리요. 이러한 가운데 一..
1. 정의 소과 우속(牛屬)에 속하는 동물. 2. 요약문 소는 소과 牛屬에 속하는 동물이다. 인류 역사의 기록에서는 의식을 거행할 때의 희생물로 소가 처음 등장하며, 이후에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役用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 고유 품종인 한우도 역용종으로서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영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통시대에는 농업생산력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에서 소의 도살을 금지하기도 했고 농가에서는 生口라 하여 식구의 일원으로 소중하게 다루었다. 농기계가 역용 소들의 역할을 대신 하면서 현재는 식용 육우와 우유생산용 젖소 두 종류가 주를 이루고 있다. 3. 개설 학명은 Bos taurus이다. 소의 명칭은 우리말로는 수소·암소·송아지 등으로 불리지만 한자어로는 더욱 복잡하고 상세하다. 즉 수소..
이 편은 12본기의 마지막 편으로 前漢의 제7대 황제인 武帝 劉徹에 관한 기록이다. 武帝는 16세 때 아버지 景帝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으며, 유학자 동중서의 의견을 수렴하여 유학을 국가의 이념이자 학문으로 삼아 다스렸다. 또한 文帝와 景帝의 유업을 이어받아 대내적으로는 정치와 경제 개혁을 실행하고, 대외적으로는 군사를 이용하여 강토를 개척하는 등 재위 54년 동안에 前漢의 군사·정치·경제·문화의 전성시대를 이룩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漢나라가 건국되어 5대를 지나면서 무제 建元연간에 흥성해졌다. 밖으로는 夷狄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법제를 정비하였으며, 封禪의 의식을 행하고 역법을 고치고 복색을 바꾸었다. 이에 제12편 ‘今上本紀’를 지었다.”라고 하였는데 이편에서는 사마천이 기록한 무제의 치적..
1.정의 喪中에 있는 상제나 服人이 입는 예복. 2.내용 상복을 엄숙하게 갖추어 입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은 사람을 예로써 보내기 위한 산 사람들의 예의 표현방법이다. 상복을 입는 것을 성복(成服)한다고 하는데, 초종(初終) · 습(襲) · 소렴(小殮) · 대렴(大殮)이 끝난 다음날 성복한다. 성복은 상복을 입어야 할 유복자(有服者)들이 각기 해당되는 상복을 입는 것으로서, 죽은 사람에 대한 유복자들의 친소원근(親疎遠近)과 존비(尊卑)의 신분에 따라서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 등 다섯가지의 상복, 즉 오복(五服)을 입는 것이다. 고대 우리 나라의 상복에 대한 기록은 『三國志』 (東夷傳) 高麗條와 『隋書』 百濟..
不名一錢은 자기 명의로 돈이 한 푼도 없이 몹시 가난함을 말한다.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이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의 고사가 있다. 에서 등통의 일을 알아 보자. 漢孝文帝(기원전 180~157) 때 총애를 받은 신하로 鄧通이 있었다. 등통은 蜀郡의 南安 사람으로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는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황제가 타는 배의 선장이었다. 어느 날, 효문제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효문제는 하늘에 오르려 했으나 오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배를 젓는 어떤 선장이 자기의 등을 밀어주어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효문제는 잠에서 깨어난 뒤, 꿈에서 자신을 밀어준 그 뱃사공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등통의 모습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 선장의 모습과 같..
1. 來歷불두화(佛頭花)는 ‘부처의 머리와 같은 꽃’이라는 뜻이다. 꽃의 모양이 마치 짧은 머리카락이 꼬부라져 나발형(螺髮形)을 이루고 있는 불상의 머리를 닮은 것 같고, 또 언뜻 보기에 흰 꽃이 탐스럽게 모여 달린 모습이 부처의 혜안처럼 둥글고 환하여 붙여진 이름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보다 깊은 뜻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현화식물(顯花植物)은 꽃을 피워서 씨를 맺고 그 씨앗으로 하여금 자손을 퍼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식물에 따라 제각기 달라서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기도 하고, 소나무처럼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을 따로 만들기도 하며, 장미꽃처럼 한 꽃송이에 암술과 수술을 함께 만들기도 하지만, 모두 암수 두 개의 성을 가지고 곤충이나 혹은 바람의 힘을 빌려 수분..
滕文公章句 下篇의 記事입니다. 법 범(範), 나 아(我), 달릴 치(馳), 몰 구(驅)의 네 글자를 씁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陳代라는 맹자의 제자가 맹자에게 권하기를, 작은 節義를 굽혀서라도 제후를 만나 큰 뜻을 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晉의 대부 趙簡子의 수레꾼이었던 王良의 일을 말해줍니다. 언젠가 조간자가 왕량을 시켜서 자신이 귀여워하는 嬖奚(폐해)의 수레를 몰아 사냥하도록 하였습니다. 왕량이 모는 수레를 타고 나간 폐해는 날이 저물도록 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폐해가 돌아와서 "왕량은 천하의 몹쓸 수레꾼입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왕량은 다시 한번 수레를 몰아보겠다고 청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폐해가 아침나절에 벌써 열 마리의 짐승을 잡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