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허생전(許生傳)-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耽古樓主 2023. 3. 18. 22:42

許生居墨積洞.

허생은 묵적골에 살았다.

 

直抵南山下 井上有古杏樹 柴扉向樹而開 草屋數間 不蔽風雨.

곧장 남산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然許生好讀書 妻爲人縫刺以糊口.

그러나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므로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一日妻甚饑 泣曰

子平生不赴擧 讀書何爲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許生笑曰
吾讀書未熟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妻曰
不有工乎

처가 말하기를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生曰

工未素學奈何

허생이 이르기를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妻曰

不有商乎

처가 이르기를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生曰

商無本錢奈何

허생이 이르기를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其妻恚且罵曰

晝夜讀書 只學奈何

不工不商 何不盜賊

처는 왈칵 성을 내며 꾸짖기를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은 어찌 못 하시나요?”

 

許生掩卷起曰

惜乎

吾讀書本期十年 今七年矣

出門而去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며 이르기를
“아깝다.
내가 당초 글 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이로다.”

하고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無相識者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直之雲從街 問市中人曰

漢陽中誰最富

바로 운종가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묻기를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有道卞氏者 遂訪其家

변씨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許生長揖曰

吾家貧 欲有所小試 願從君借萬金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을 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卞氏曰

立與萬金

변씨는 말하기를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客竟不謝而去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子弟賓客 視許生丐者也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絲絛穗拔 革屨跟顚 笠挫袍煤 鼻流淸涕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客旣去 皆大驚曰

大人知客乎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크게 놀라서 묻기를
“대인은 저이를 아시나요?”


不知也

이르기를

“모르지”

 

今一朝 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人 而不問其姓名何也

“아니, 오늘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卞氏曰

此非爾所知.

凡有求於人者 必廣張志意 先耀信義 然顔色媿屈 言辭重複

彼客衣屨雖弊 辭簡而視傲 辭簡而視傲 容無怍色 不待物而自足者也.

彼其所試術不小 吾亦有所試於客.

不與則已 旣與之萬金 問姓名何爲

변씨가 이르기를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그만이지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 하겠느냐?”

 

於是許生旣得萬金 不復還家.

허생은 만 냥을 얻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았다.


以爲安城畿湖之交 三南之綰口 遂止居焉.

생각하기를, ‘저 안성은 기ㆍ호의 접경이요, 삼남의 어귀이다.’하고는,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棗栗柹梨柑榴橘柚之屬 皆以倍直居之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을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許生榷菓 而國中無以讌祀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居頃之 諸賈之獲倍直於許生者 反輸十倍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許生喟然嘆曰

以萬金傾之 短國淺深矣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며 이르기를.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以刀鏄布帛綿入濟州 收馬鬉鬣曰

居數年 國人不裹頭矣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이르기를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居頃之 網巾價至十倍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許生問老篙師曰

海外豈有空島可以居者乎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묻기를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篙師曰

有之.

常漂風直西行三日夜 泊一空島.
計在沙門長崎之間.
花木自開 菓蓏自熟 麋鹿成群 游魚不驚.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과 장기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 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許生大喜曰

爾能導我 富貴共之.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르기를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라고 말하니,

 

篙師從之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遂御風東南 入其島.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들어갔다.

 

許生登高而望 悵然曰

地不滿千里 惡能有爲

土肥泉甘 只可作富家翁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하기를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篙師曰
島空無人 尙誰與居

사공이 이르기를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許生曰
德者人所歸也

尙恐不德 何患無人

허생이 이르기를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느냐?”

 

是時邊山群盜數千.

州郡發卒逐捕 不能得 然群盜亦不敢出剽掠 方饑困.

이때, 변산에 수천의 군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許生入賊中說其魁帥曰
千人掠千金 所分幾何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어 이르기를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人一兩耳

이르기를

“일 인당 한 냥이지요.”

 

許生曰

爾有妻乎

허생이 이르기를

“모두 아내가 있소?”

 

群盜曰

군도들이 이르기를

“없소.”

 

爾有田乎

이르기를

“논밭이 있소?”

 

群盜笑曰
有田有妻 何苦爲盜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許生曰

審若是也 何不娶妻樹屋 買牛耕田.

生無盜賊之名 而居有妻室之樂 行無逐捕之患 而長享衣食之饒乎

허생이 이르기를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饒足을 누릴 텐데.”

 

群盜曰

豈不願如此

但無錢耳

군도가 이르기를

“아니, 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許生笑曰

爾爲盜何患無錢

吾能爲汝辦之

明日視海上風旗紅者 皆錢船也 恣汝取去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수 있소.

내일 보시오, 바다에 나와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許生約群盜 旣去 群盜皆笑其狂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다.

 

及明日 至海上 許生載錢三十萬.

이튿날이 되어,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皆大驚羅拜曰

唯將軍令

모두들 대경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許生曰

惟力負去

허생이 이르기를

“힘을 생각하여 지고 가거라.”


於是群盜 爭負錢 人不過百金

이에 군도들이 다투어 돈을 질머졌으나,사람마다 백금을 넘지 못했다

 

許生曰

爾等力不足以擧百金 何能爲盜

今爾等雖欲爲平民 名在賊簿 無可往矣.
吾在此俟汝各持百金而去 人一婦一牛來.

허생이 이르기를
“이제 너희들이 힘이 부족하여 백금도 들 수 없으니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사람마다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群盜曰諾 皆散去

군도들은 ‘좋다’고 하고 모두 흩어져 갔다.


許生自具二千人一歲之食以待之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及群盜至 無後者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고, 뒤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遂俱載入其空島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許生榷盜而國中無警矣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於是伐樹爲屋 編竹爲籬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地氣旣全 百種碩茂 不菑不畬 一莖九穗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두 해씩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留三年之儲 餘悉舟載往糶長崎島

3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로 가져가서 팔았다.


長崎者 日本屬州 戶三十一萬

장기라는 곳은 일본의 속주이니 삼십만여 호가 된다

 

方大饑 遂賑之 獲銀百萬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許生歎曰

今吾已小試矣

허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하고,


於是悉召男女二千人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았다.

 

令之曰

吾始與汝等入此島 先富之 然後別造文字 刱製衣冠.

地小德薄 吾今去矣.

兒生執匙敎以右手
一日之長 讓之先食.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다.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게 가르치라.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悉焚他船曰

莫往則莫來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이르기를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하고

 

投銀五十萬於海中曰 :
海枯有得者 百萬無所容於國中 况小島乎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이르기를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라고 했다.

 


有知書者載與俱出曰
爲絶禍於此島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며 이르기를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於是遍行國中 賑施與貧無告者

이리하여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銀尙餘十萬曰

此可以報卞氏

그러고도 여전히 은이 십만 냥이 남아 이르기를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往見卞氏曰

君記我乎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이르기를

“나를 알아보시겠소?”

 

卞氏驚曰

子之容色 不少瘳 得無敗萬金乎

변씨는 놀라 말하기를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許生笑曰

以財粹面 君輩事耳

萬金何肥於道哉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일 뿐이오.
만 냥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소?”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
吾不耐一朝之饑 未竟讀書 慙君萬金

이리하여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고 이르기를

“내가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 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卞氏大驚 起拜辭謝 願受什一之利

변씨는 크게 놀라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許生大怒曰

君何以賈竪視我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이르기를“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拂衣而去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卞氏潛踵之 望見客向南山下入小屋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가니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有老嫗 井上澣 卞氏問曰

彼小屋誰家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물어 이르기를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嫗曰

許生員宅

貧而好讀書 一朝出門不返者已五年 獨有妻在 祭其去日

늙은 할미가 이르기를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卞氏始知客乃姓許 歎息而歸.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明日悉持其銀往遺之 許生辭曰

我欲富也 棄百萬而取十萬乎

吾從今得君而活矣

君數視我計口送糧 度身授布

一生如此足矣

孰肯以財勞神

이튿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고 이르기를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그 누가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卞氏說許生百端 竟不可奈何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卞氏自是度許生匱乏 輒身自往遺之

변씨는 그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를 헤아려 즉각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許生欣然受之 或有加則不悅曰
君奈何遺我災也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이르기를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하였고,

 

以酒往則益大喜 相與酌至醉.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旣數歲 情好日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嘗從容言五歲中 何以致百萬

어느 날 변씨가

“5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보았다.


許生曰

此易知耳.

朝鮮舟不通外國 車不行域中 故百物生于其中 消于其中.

夫千金小財也 未足以盡物 然析而十之百金 十亦足以致十物.

物輕則易轉 故一貨雖絀 九貨伸之 此常利之道 小人之賈也.

夫萬金足以盡物 故在車專車 在船專船 在邑專邑 如網之有罟 括物而數之.

陸之產萬 潛停其一 水之族萬 潛停其一 醫之材萬 潛停其一 一貨潛藏 百賈涸 此賊民之道也.

後世有司者 如有用我道 必病其國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에게는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卞氏曰

初子何以知吾出萬金而來吾求也

변씨가 이르기를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許生曰

不必君與我也

能有萬金者 莫不與也.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 然命則在天 吾何能知之.

故能用我者 有福者也 必富益富 天所命也 安得不與.

旣得萬金 憑其福而行 故動輒有成 若吾私自與 則成敗亦未可知也.

허생이 이르기를
“당신이 내게 꼭 빌려 준다고는 할 수 없지요.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卞氏曰

方今士大夫欲雪南漢之恥 此志士扼脆奮智之秋也

以子之才 何自苦沉冥以沒世耶

변씨가 이르기를
“지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이야말로 뜻있는 선비가 약한 것을 붙잡아 주고 지혜를 떨칠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許生曰

古來沉冥者何限
趙聖期拙修齋可使敵國 而老死布褐 柳馨遠磻溪居士 足繼軍食 而逍遙海曲

今之謀國政者 可知已

吾善賈者也 其銀足以市九王之頭 然投之海中而來者 無所可用故耳.

허생이 이르기를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졸수재 조성기 같은 분은 적국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 거사 유형원 같은 분은 군량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卞氏喟然太息而去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卞氏本與李政丞浣善

변씨는 본래 이완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李公時爲御營大將 嘗與言委巷閭閻之中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

이완이 당시 어영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위항이나 여염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卞氏爲言許生 李公大驚曰

奇哉

眞有是否
其名云何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하고 묻는 것이었다.

 

卞氏曰

小人與居三年 竟不識其名

변씨가 이르기를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李公曰

此異人

與君俱往

이공이 이르기를
“그인 이인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夜公屛騶徒 獨與卞氏俱步至許生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卞氏止公立門外 獨先入 見許生具道李公所以來者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許生若不聞者曰

輒解君所佩壺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이르기를
“당신이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했다.

 

相與歡飮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 許生不應 旣夜深 許生曰可召客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지자
허생이 이르기를 “손님을 불러도 좋습니다” 하니

 

李公入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왔다.

 

許生安坐不起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李公無所措躬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 許生揮手曰

夜短語長 聽之太遲

汝今何官

이 대장은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휘저으며 이르기를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大將

이르기를

“대장이오.”

 

許生曰

然則汝乃國之信臣

我當薦臥龍先生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

허생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 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선생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

難矣

願得其次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고 이르기를
“어렵습니다.
제이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許生曰

我未學第二義

허생이 이르기를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하고 허생은 외면했으나


固問之 許生曰

明將士以朝鮮有舊恩 其子孫多脫身東來 流離惸鰥 汝能請于朝 出宗室女遍嫁之 奪勳戚權貴家 以處之乎

이 대장이 굳게 물으니 허생이 이르기를
“명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보내고, 훈척 권귀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
難矣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르기를

“어렵습니다.”고 했다.

 

許生曰

此亦難彼亦難 何事可能

有最易者 汝能之乎

허생이 이르기를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李公曰

願聞之

이공이 이르기를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許生曰

夫欲聲大義於天下 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未之有也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 未有能成者也

今滿洲遽而主天下 自以不親於中國 而朝鮮率先他國而服 彼所信也.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如唐元故事 商賈出入不禁 彼必喜其見親而許之.
妙選國中之子弟 薙髮胡服 其君子往赴賓擧 其小人遠商江南 覘其虛實 結其豪傑 天下可圖而國恥可雪.
若求朱氏而不得率天下諸侯 薦人於天 進可爲大國師 退不失伯舅之國矣

허생이 이르기를
“무릇, 천하에 대의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되지 않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한 일이 없다.
지금 만주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나라, 원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李公憮然曰

士大夫皆謹守禮法誰肯薙髮胡服乎

이공이 무안하여 이르기를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許生大叱曰

所謂士大夫 是何等也.

產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樊於期 欲報私怨而不惜其頭 武靈王 欲强其國而不恥胡服.
乃今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

吾始三言 汝無一可得而能者 自謂信臣 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허생은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을 당한 사람의 옷이요,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스스로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하고

 

左右顧索釖欲刺之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公大驚而起

躍出後牖疾走歸

이 대장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明日復往 已空室而去矣.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2023.3.19 古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