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同散異

척당불기(倜儻不羈)

耽古樓主 2023. 3. 15. 04:24

 글자

[倜척]대범하다

[儻당]소탈하다

[羈]구속하다. 얽매다

 

 意義

‘큰 뜻과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漢나라許愼의 ‘說文解字’를 보면 ‘은 倜儻, 不羈다. 높고 큰 모양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疎脫하고 豪放하여 구속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倜儻의 유래

우선 倜儻이란 단어의 유래는 司馬遷의 報任少卿書에 나온다.

[漢詩와 漢文] -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任安에게 보내는 答書 報任少卿書 또는 報任安書는 漢의 사학가인 司馬遷이 친구인 任安에게 보낸 편지이다. 任安은 漢武帝 때 益州刺史와 北軍使者護軍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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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결을 하지 않고 사서를 쓰는 것은 척당했던 사람들을 본받고자 한다고 나타내고 있다. 아래는 원문 일부.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어찌 스스로 몸이 묶여 감옥 안에 갇힌 채 치욕 속으로 스스로 빠지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저 천한 노복이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고통을 감내하고 더러운 치욕 속에서 구차하게 살면서도 사양하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비루(鄙陋)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면 후세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러이 여겨서입니다.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마멸된 인물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았지만 오로지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상한 인물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문왕(文王: 서백 창)은 구금된 뒤에 주역(周易)을 연역했고 공자(孔子)는 곤경에 빠지셨을 때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屈原放逐 乃賦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굴원(屈原)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먼 후에 《국어》를 편찬했으며 손빈은 다리가 잘린 뒤에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가 촉으로 쫓겨난 뒤에 《여람(여씨춘추)》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史記에서 척당 또는 불기의 사용례

司馬遷의 史記에서는 ‘不羈’란 ‘재주와 지식이 높고 원대하여 가히 묶어 둘 수 없음’을 말한다

‘탁월하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倜儻’이라는 말을 列傳에 등장하는 인물을 묘사할 때 즐겨 썼다.

 

倜儻不羈의 유래

中國二十四史중 하나인, 晉書의 원탐전에 나온다.

晉袁耽字彦道 陳郡陽夏人
진(晉)나라 원탐(袁耽)의 자(字)는 언도(彦道)이니,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이다.

少有才氣 倜儻不羈 爲士類所稱
어려서 부터 재기(才氣)가 있고, 뜻이 컸으며 기개가 있어 남의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선비들의 일컫는 바가 되었다.

桓溫少時游于博徒 資産俱盡 尙有負進 思自報之方 莫知所出
환온(桓溫)이 젊었을 때 노름꾼 틈에서 놀다가,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으나, 오히려 노름 밑천은 있어서, 스스로 없앤 돈을 찾을 방도를 생각했으나,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欲求濟於耽而耽在艱
그래서 구제할 방도를 원탐에게 요구하려 했으나, 원탐은 상중(喪中)에 있었다.,

試以告焉 耽略無難色 遂變服懷布帽 隨溫與債主戱
이에 시험 삼아 말했더니, 원탐은 어려워하는 빛도 없이, 드디어 상복을 벗고 변장한 다음 베로 만든 모자를 품속에 지니고, 환온을 따라서 채권자와 노름을 하러 갔다.

耽素有藝名 債主聞之 而不相識 謂之曰
원탐은 본래 재주꾼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상대편 채권자도 그런 말은 들은 바 있지만, 서로 얼굴은 알지 못했다. 이에 상대편 채권자가 말하기를,

卿當不辦作袁彦道也
"그대는 응당 원언도가 분장한 것이 아니겠지요."라고 했다

遂就局
드디어 판을 벌였다.

俄頃十萬一賭 直上百萬 耽投馬絶叫 耽布帽擲地曰
"조금 지나자 10만 량의 판을 벌이다가, 곧 백만 냥으로 올렸는데, 원탐은 주사위의 패를 던지면서 크게 부르짖고, 베모자를 땅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竟識袁彦道不
"이제 마침내 원언도를 알겠느냐?" 라고 했으니,

其通脫如此
그의 소탈하기가 이와 같았다.

仕爲從事中郞
벼슬하여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다.

척당불기 휘호

삼국사기 광개토대왕과 척당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제18 고구려본기 제6 광개토왕 편의 내용이다.

 

廣開土王, 諱談徳, 故國壤王之子. 生而雄偉, 有倜儻之志. 故國壤王三年立為太子, 九年王薨, 太子即位.
광개토왕의 諱는 談德이고 故國壤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씩씩하고 뛰어나며 척당의 뜻이 있었다. 고국양왕 3년에 태자로 책립되었고, 9년에 왕이 서거하여 태자가 즉위하였다.’

 

2023.3.15. --古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