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同散異

炯言挑筆帖序(형언도필첩서)-朴趾源(박지원)

耽古樓主 2023. 3. 20. 04:17

炯言挑筆帖序(형언도필첩서)-朴趾源(박지원)

 

雖小技有所忘,然後能成,而况大道乎.
비록 작은 기술도 망각이 있고 난 뒤에야 성취되는데 하물며 大道임에랴!

崔興孝通國之善書者也.
최흥효는 나라를 통틀어 서예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甞赴擧書卷, 得一字, 類王羲之坐視, 終日忍不能捨, 懷卷而歸, 是可謂得失不存於心耳.
일찍이 과거를 보며 시권을 쓰다 한 글자를 얻었는데, 왕희지와 유사하여 앉아서 종일토록 보다가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시권을 품고서 돌아왔으니 득실이 마음에 있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李澄幼登樓而習畵 家失其所在, 三日乃得.
이징은 어려서 누각에 올라 그림을 익혔는데 집에선 그가 있는 곳을 잃어버렸다가, 사흘 만에 찾았다.

父怒而笞之, 泣引淚而成鳥, 此可謂忘榮辱於畵者也.
아버지가 화가나서 매질하니 울면서 눈물을 끌어 새를 그렸으니, 영예와 욕됨을 그림에 잊었다고 할 만하다.

 

鶴山守通國之善歌者也.
학산수는 나라를 통틀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

入山肄,每一闋, 拾沙投屐,滿屐乃歸.
산에 들어가 익히다가 매번 한 곡이 끝나면,모래를 모아 나막신에 던져 나막신이 가득 차서야 돌아왔다.

甞遇盜將殺之,倚風而歌,群盜莫不感激泣下者,此所謂死生不入於心.
도적을 만나 죽이려 했을 때 바람 따라 노래하자, 도적떼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사생이 마음에 闖入되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吾始聞之歎曰:

“夫大道散久矣, 吾未見好賢如好色者也.

彼以爲技足以易其生, 噫! 朝聞道夕死可也.”

내가 처음에 그것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큰 도가 흩어진 지 오래라 나는 어진 이를 좋아하길 여자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저들은 기술로 족히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여겼으니, 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괜찮다는 것이로다."

 

桃隱書『炯菴叢言』凡十三則爲一卷, 屬余叙之.

도은이 『형암총언』 13칙을 써서 한 권으로 만들고 나에게 서문을 써주길 부탁했다.

 

夫二子專用心於內者歟?

도은과 형암 두 사람은 마음을 내면에만 전용하는 자인가?

 

夫二子游於藝者歟?

두 사람은 재주에서 노니는 자인가?

 

將二子忘死生榮辱之分, 而至此其工也, 豈非過歟?

아니면 두 사람은 사생과 영욕의 분수를 잊고 기교에 이르렀으니, 어찌 지나친 게 아니겠는가.

 

若二子之能有忘, 願相忘於道德也.

만약 두 사람이 잊는다는 걸 할 수 있다면, 도와 덕에서 서로 잊고 살기를 바란다.

 

-『燕巖集』

▶崔興孝: 조선 世宗 때의 명필로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李澄: 선조 14년(1581) 유명한 화가였던 宗室 鶴林正 李慶胤의 서자로 태어났다. 圖畵署 畵員이 되었으며, 산수화에 뛰어났다고 한다.

▶鶴山守: 성명은 未詳이다. 守는 宗親府의 정4품 벼슬이다.

▶相忘於道德也: 『莊子』 「大宗師」에, 물고기들이 샘물이 말라붙는 바람에 졸지에 육지에 처하여 서로 습기를 호흡하고 입의 거품으로 서로의 몸을 축여 주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相忘於江湖)’이 낫다고 하였다.

연암은 이와 같이 유교의 禮樂과 仁義를 모두 잊어버릴 것을 역설한 『莊子』의 一節을 변용하여, 도리어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라’는 공자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하는 일 외에 다른 모든 일을 잊어버리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연암 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