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帝曰義帝無後。
황제가 義帝에게 後嗣가 없다고 언급하였다.
齊王韓信習楚風俗,徙為楚王,都下邳。
齊王 韓信이 초나라의 풍속을 잘 알므로, 옮겨서 楚王으로 봉하니 下邳에 도읍하였다.
立建成侯彭越為梁王,都定陶。
建成侯 彭越은 梁王으로 봉하고 定陶를 도읍으로 정하였다.
故韓王信為韓王,都陽翟。
옛 한왕 信을 韓王으로 삼고 陽翟을 도읍으로 정하였다.
徙衡山王吳芮為長沙王,都臨湘。
衡山王 吳芮를 長沙王으로 옮기고 臨湘을 도읍으로 정하였다.
番君之將梅鋗有功,從入武關,故德番君。
番君의 장수 梅鋗이 武關에 진입할 때 공을 세웠으므로, 番君으로 삼아 치하하였다.
淮南王布、燕王臧荼、趙王敖皆如故。
회남왕 경포, 연왕 장도, 조왕 장오는 모두 전과 같게 하였다.
▶ 習 : 상세히 알다.
▶ 德 : 은혜에 감사하다.
▶ 韓王信 : 韓王 韓信. 성은 姬, 씨는 韓, 이름은 信이다.
전국시대 韓襄王의 후손으로, 漢나라의 고조 유방에 의해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 하려고 한 것에 오해를 받자, 흉노의 군대를 이끌고 漢나라의 변경을 쳐들어왔다. <史記권93 韓信盧綰列傳>
▶ 番君 : 番阳令
▶ 如故 : 종전과 같이.
天下大定。
천하가 크게 평정되었다.
高祖都雒陽,諸侯皆臣屬。
고조는 낙양에 도읍하였고, 제후들이 모두 신하를 칭하며 복종하였다.
故臨江王驩為項羽叛漢,令盧綰、劉賈圍之,不下。
이전의 臨江王 共驩은 항우를 위해서 한나라에 반역하였으므로, 盧綰·劉賈에게 포위하게 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數月而降,殺之雒陽。
몇 달 뒤 항복하자 낙양에서 공환을 죽였다.
▶ 臣屬 : 신하를 칭하며 복종하다.
▶ 共驩 : 共尉. 2대 臨江王. 초대 임강왕 공오의 아들이다.
五月,兵皆罷歸家。
5월, 군대를 모두 해산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諸侯子在關中者復之十二歲, 其歸者復之六歲,食之一歲。
제후의 자제로 관중에 남아 있는 자에게는 12년간 부역을 면제해주고, 봉국으로 돌아간 자에게는 6년간 부역을 면제해주고 1년 동안 먹여주기로 하였다.
▶ 罷 : 돌려보내다.
▶ 復 :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다.
▶ 歲 : 年.
▶ 食 : 부양하다. 먹이다.
高祖置酒雒陽南宮。高祖曰:
「列侯諸將無敢隱朕,皆言其情。
吾所以有天下者何?
項氏之所以失天下者何?」
고조가 낙양의 南宮에서 술자리를 베풀며 말하였다.
“열후들과 장수들은 짐을 속이지 말고 모두 眞情을 말하라.
내가 천하를 차지한 까닭이 무엇인가?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은 무엇인가?”
高起、王陵對曰:
「陛下慢而侮人,項羽仁而愛人。
然陛下使人攻城略地,所降下者因以予之, 與天下同利也。
項羽妒賢嫉能,有功者害之,賢者疑之,戰勝而不予人功,得地而不予人利,此所以失天下也。」
高起·王陵이 대답하였다.
“폐하는 오만하셔서 사람을 업신여기지만, 항우는 어질어서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폐하는 사람을 시켜 성과 땅을 공략하게 하여, 항복시키면 성과 땅을 그에게 나누어 주며, 천하와 함께 이익을 함께 하셨습니다.
항우는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자를 질투하여, 공을 세우면 해치고 어진 자는 의심하며, 싸워 승리해도 그 사람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땅을 빼앗아도 다른 사람에게 그 이익을 나누어주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 隱朕 : 나를 속이다.
▶ 情 : 진정.
▶ 慢 : 업신여기다.
▶ 妒賢嫉能 :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다.
▶ 害 : 질투하다.시기하다.
高祖曰:
「公知其一,未知其二。
夫運籌策帷帳之中,決勝於千里之外,吾不如子房。
鎮國家,撫百姓,給餽馕,不絕糧道,吾不如蕭何。
連百萬之軍,戰必勝,攻必取,吾不如韓信。
此三者,皆人傑也,吾能用之,此吾所以取天下也。
項羽有一范增而不能用,此其所以為我擒也。」
고조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 리 밖의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나는 子房(장량)만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로하고, 군량을 공급하고 식량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蕭何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운용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일은 내가 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인데, 내가 그들을 기용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
항우에게는 范增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마저 기용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내게 사로잡힌 까닭이다.”
▶ 籌策 : 계책.
▶ 帷帳 : 군막. 幕府.
▶ 子房 : 장량. 자방은 장량의 자.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진나라의 옛 땅인 관중으로 정하고자 한 유경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 餽馕 : 군량과 급료.
▶ 蕭何 : 유방의 재상.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싸움에서는 관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하였다.
▶ 韓信 : 한나라의 대장군. 淮陰侯 韓信.
高祖欲長都雒陽,齊人劉敬說,乃留侯勸上入都關中,高祖是日駕,入都關中。
고조가 오랫동안 낙양에 도읍하려고 했는데, 齊나라 출신 劉敬이 권하고 留侯(장량)가 고조에게 관중으로 들어가서 도읍하기를 권하자, 고조는 그날로 어가를 몰아 관중으로 들어가서 도읍을 정하였다.
六月,大赦天下。
6월, 천하에 大赦免을 내렸다.
▶ 長 : 장시간. 오랫동안.
▶ 劉敬 : 齊나라 출신으로 본래의 姓은 婁인데 漢高祖때 長安으로 도읍을 정할 것을 주장하여 고조가 이를 받아들이고 劉氏성을 하사하여 劉敬이라 불리고 奉春君에 봉해졌다.<사기열전 권99. 劉敬·叔孫通列傳>
十月,燕王臧荼反,攻下代地。
10월, 燕王 臧荼가 반란을 일으켜 代 땅을 공격하였다.
高祖自將擊之,得燕王臧荼。
고조가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여 연왕 장도를 사로잡았다.
即立太尉盧綰為燕王。
즉시 太尉 盧綰을 燕王으로 임명하였다.
使丞相噲將兵攻代。
승상 樊噲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代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 臧荼 : 항우의 열여덟 제후왕 중 하나로 연나라 왕
▶ 盧綰 : 沛國 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史記 권93 韓信盧綰列傳>
其秋,利幾反,高祖自將兵擊之,利幾走。
이해 가을, 利幾가 모반하여 고조가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자 이기가 달아났다.
利幾者,項氏之將。
이기는 항우의 장수였다.
項氏敗,利幾為陳公,不隨項羽,亡降高祖,高祖侯之潁川。
항우가 패할 때 利幾는 陳縣令이었는데 항우를 따르지 않고, 고조에게 도망쳐와서 투항하니, 고조가 潁川候에 봉하였다.
高祖至雒陽,舉通侯籍召之,而利幾恐,故反。
고조가 낙양에 이르러 명부에 있는 通侯들을 모두 소집하자, 이기가 두려워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利幾 : 초나라의 장수. 황제가 낙양에 이르러 通侯를 모두 불렀는데, 이기는 자신이 項羽의 장수로 있었던 것 때문에 두려워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通侯籍 : 일반 제후의 명부. 通侯는 列侯를 말한다. 王子가 봉해져 왕이나 侯가 된 경우는 諸侯라 이르고, 성씨가 다른 신하들이 공을 세워 봉해진 경우는 列侯 또는 徹侯라 하였다.
뒷날 武帝 劉徹의 이름을 피하여 通侯라고 하였다.
六年,高祖五日一朝太公,如家人父子禮。
고조 6년(기원전201년), 고조는 5일에 한 번씩 太公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평민들의 부자지간의 예절과 같았다.
太公家令說太公曰:
「天無二日,土無二王。
今高祖雖子,人主也;太公雖父,人臣也。
柰何令人主拜人臣!
如此,則威重不行。」
태공의 가신이 태공에게 설득하였다.
“하늘에는 해가 둘일 수 없고, 나라에는 왕이 둘일 수 없습니다.
지금 고조가 비록 자식이지만 군주이고, 태공께서는 비록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신하입니다.
어찌 군주에게 신하를 알현하게 하십니까!
이렇게 하면 황제의 위엄이 서지 않습니다.”
▶ 太公 : 태공은 유방의 아버지로 劉煓이라고 전해진다.
▶ 家令 : 집안일을 돌보는 관리.
▶ 天無二日 : 하늘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禮記 坊記篇에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으며 집안에는 두 주인이 없고 높은 것에 두 윗사람이 없는 것은 백성에게 군신의 분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天無二日,土無二王,家無二主,尊無二上,示民有君臣之別也。」<禮記 坊記篇>)
▶ 威重 : 위엄.
後高祖朝,太公擁篲,迎門卻行。
그 후 고조가 알현하러 오자 태공은 빗자루를 든 채 문 앞에서 맞이하면서 뒷걸음을 쳤다.
高祖大驚,下扶太公。
고조가 깜짝 놀라 어가에서 내려 태공을 부축하였다.
太公曰:
「帝,人主也,柰何以我亂天下法!」
태공이 말하였다.
“황제는 군주이거늘 어찌 제가 천하의 법도를 어지럽히겠소이까!”
於是高祖乃尊太公為太上皇。
이에 고조는 태공을 太上皇으로 높였다.
心善家令言,賜金五百斤。
마음속으로 가신의 말을 훌륭하다고 여기고, 황금500근을 하사하였다.
▶ 篲(수) : 빗자루.
▶ 迎門 : 집의 정면 입구. 마중하다.
▶ 卻行 : 却行. 뒷걸음질 치다.
▶ 善 : 훌륭하다고 생각하다. 높이 평가하다.
十二月,人有上變事告楚王信謀反,上問左右,左右爭欲擊之。
12월, 어떤 자가 상서하여 모반 사건을 보고하면서, 楚王 韓信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하였다. 황제가 좌우 대신에게 물으니 좌우 대신들은 다투어 한신을 토벌하겠다고 하였다.
用陳平計,乃偽遊雲夢,會諸侯於陳,楚王信迎,即因執之。
고조는 陳平의 계책을 써서 雲夢澤에 유람하는 척하여, 陳縣에서 제후들을 불러 모았으며, 초왕 한신이 맞이하러 나오자 바로 그를 체포하였다.
是日,大赦天下。
그날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 上變事 : 楚王 韓信이 처음 초나라에 가서 縣邑을 순행할 적에 병력을 진열하고 출입하니,한신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글을 올려 고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 楚王信 : 韓信. 기원전206년 유방이 項羽에게 漢王으로 봉해지자 漢中으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한신은 한왕에게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툴 것을 건의하였다.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제압하면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齊王에 이어 楚王이 되었다.
반란을 꾀하다가 회음후로 격하되었다가, 여태후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족되었다. <사기열전 권92. 회음후열전>
▶ 用陳平計 : 진평의 계책. 高帝 6年에 어떤 자가 楚王 韓信이 모반한다고 고발하자, 황제가 陳平에게 물으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옛날 천자가 巡狩하여 제후들을 모았으니, 폐하께서 다만 나가서 거짓으로 雲夢에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들을 陳땅에 모이게 하시면 한신은 천자가 나와 유람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 형세상 틀림없이 교외에서 맞이하여 배알할 터이니, 폐하께서 이때 사로잡으신다면 이는 다만 한 力士의 일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通鑑節要 卷五>
▶ 執 : 체포하다.
▶ 大赦天下 : 12월에 황제가陳땅에서 제후들과 만나고 楚王 韓信을 체포해 돌아왔는데, 낙양에 이르러 사면해주고 淮陰侯로 삼았다.
田肯賀,因說高祖曰:
田肯이 축하를 올리고 고조에게 권하였다.
「陛下得韓信,又治秦中。
“폐하께서는 한신을 체포하셨고 또 關中에 도읍을 정하셨습니다.
秦,形勝之國,帶河山之險,縣隔千里,持戟百萬,秦得百二焉。
진나라는 지리적 형세가 유리한 나라로, 물과 산의 險阻를 띠처럼 두르고 있고, 關東과는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가 백만이므로, 진나라는 100분의 2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地勢便利,其以下兵於諸侯,譬猶居高屋之上建瓴水也。
지세가 유리하여, 관동의 제후들에게 군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마치 높은 지붕 위에서 물병의 물을 아래로 쏟는 것처럼 쉬웠습니다.
夫齊,東有瑯邪、即墨之饒,南有泰山之固,西有濁河之限,北有勃海之利。
그리고 제나라 지역은 동쪽으로 琅邪와 卽墨의 비옥함이 있고, 남쪽으로는 태산의 견고함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濁河의 경계가 있고, 북쪽으로 渤海의 이점이 있습니다.
地方二千里,持戟百萬,縣隔千里之外,齊得十二焉。
땅은 사방 2천 리에 군사가 백만이나 되고,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으므로, 제나라는 10분의 2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故此東西秦也。
그러므로 東秦, 西秦이라 합니다.
非親子弟,莫可使王齊矣。」
가까운 子弟가 아니면 제나라에 왕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高祖曰:
「善。」
황제가 말하였다.
“그 말이 옳다.”
賜黃金五百斤。
황금 500근을 하사하였다.
▶ 田肯 : 서한 초기의 大夫.
▶ 治 : 도읍하다. 所都之處曰治。【前漢·田儋傳】更王膠東,治卽墨。【註】治,謂都之也。
▶ 形勝 : 지세가 뛰어나다. 형세가 뛰어나고 유리하다.
▶ 縣隔 : 멀리 떨어져 있다. 가로막혀 격리되다.
▶ 持戟 : 창을 잡은 병사. 군사.
▶ 百二 : 2/100. 백만 대군에 맞서 2만의 군사로 막을 수 있다는 뜻.
▶ 居高屋之上建瓴水 : 높은 지붕 위에서 물병의 물을 아래로 쏟는 것처럼 쉽다. 建은 뒤엎는다. 瓴(령)은 물을 담은 병. 물병의 물을 아래로 쏟는다는 뜻으로 형세가 쉬움을 말한다.
▶ 建 : 覆,倾倒 [topple over]。如:建瓴(建瓴水的简省。倾倒瓶中之水,形成居高临下的形势)
▶ 瑯琊,卽墨 : 두 현은 바다와 가까워서 재화가 나오는 곳이다.
▶ 固 : 험요하다. 험준하고 중요하다.
▶ 濁河之限 : 河水(황하)가 혼탁하기 때문에 濁河라고 하였고, 이 濁河를 건너면 바로 趙나라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限界라고 한 것이다.
▶ 勃海之利 : 勃海에는 어물과 소금의 이로움이 있다.
▶ 十二 : 2/10. 백 만 대군에 맞서 20만의 군사로 막을 수 있다는 뜻.
▶ 東西秦也 : 제나라 지역의 형세가 뛰어난 것이 진나라 지역과 대등함을 말한 것이다.
後十餘日,封韓信為淮陰侯,分其地為二國。
10여 일 후 한신을 淮陰侯에 봉하고, 초나라 땅을 두 나라로 나누었다.
高祖曰將軍劉賈數有功,以為荊王,王淮東。
고조가 말하기를, ‘장군 劉賈가 여러 차례 공로를 세웠으므로 荊王으로 삼고, 회수의 동쪽을 다스리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弟交為楚王,王淮西。
아무 劉交를 楚王으로 삼아 회하 서쪽을 다스리게 하였다.
子肥為齊王,王七十餘城,民能齊言者皆屬齊。
아들 劉肥를 齊王으로 삼아, 70여 성을 다스리게 하고, 제나라의 방언을 할 수 있는 백성은 모두 제 땅에 귀속시켰다.
乃論功,與諸列侯剖符行封。
그리고 공적을 논하여 열후들에게 부절을 쪼개 주며 封侯하였다.
徙韓王信太原。
韓王 信을 太原으로 옮겼다.
▶ 劉賈 : 고조 유방의 從兄.
▶ 劉交 : 劉太公의 넷째 아들이다.
漢高祖 劉邦의 이복동생으로 모친은 太上皇後 李氏이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에 楚王이 되었고, 사후의 시호는 元王이다.
▶ 劉肥 : 고조 劉邦의 맏서자이다. 齊 悼惠王에 봉해졌다.
▶ 齊言 : 제나라의 方言.
▶ 剖符 :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韓王信 : 기원전201년 봄에 高祖는 韓王 信처럼 재능과 용맹이 있는 사람이 북쪽으로는 鞏과 洛에 가깝고, 남쪽으로는 宛과 葉에 가까우며, 동쪽으로는 淮陽이 있어서 모두 천하의 사나운 군대만 있는 곳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조서를 내려 韓王 信을 太原 북쪽으로 옮겨 흉노를 막도록 하고, 晉陽에 도읍하게 하였다. <사기열전 권93. 韓信盧綰列傳>
韓王 信은 史記 권92 淮陰侯列傳에서의 淮陰侯 韓信과 同名異人으로 같은 시기에 살았으므로 혼동되고 있어 회음후 한신과 구별하기 위해 韓王 信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七年,匈奴攻韓王信馬邑,信因與謀反太原。
한고조 7년(기원전200년), 흉노가 馬邑에서 韓王 信을 공격하자, 한왕 신은 흉노와 함께 太原에서 반란을 도모하였다.
白土曼丘臣、王黃立故趙將趙利為王以反,高祖自往擊之。
흉노의 부장 白土城의 曼丘臣·王黃이 옛 조나라의 장수였던 趙利를 왕으로 옹립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가 몸소 가서 공격하였다.
會天寒,士卒墮指者什二三,遂至平城。
마침 겨울이라 병사들 열에 두셋이 손가락이 얼어서 떨어져 나가자, 결국 平城으로 물러났다.
匈奴圍我平城,七日而後罷去。
흉노는 한나라를 평성에서 포위하였다가, 7일 뒤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令樊噲止定代地。
번쾌에게 代 땅에 남아 평정하게 하였다.
立兄劉仲為代王。
형인 劉仲을 代王으로 삼았다.
▶ 馬邑 : 지금의 山西省 朔縣 서북쪽.
▶ 韓王信 : 韓王 韓信. 성은 姬, 씨는 韓, 이름은 信이다.
전국시대 韓나라 襄王의 후손으로, 漢나라의 고조 유방에 의해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을 하려고 한 것에 오해를 받자, 흉노의 군대를 이끌고 漢나라의 변경을 쳐들어왔다. <史記 권93 韓信盧綰列傳>
▶ 墮 : 떨어지다.
▶ 什二三 : 2/10~3/10. 열 명 중 두세 명.
▶ 樊噲 : 沛縣출신으로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劉邦이 군사를 일으킬 때 무장으로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유방과 항우의 鴻門의 연회에서 유방이 項羽에게 살해될 위기에서 극적으로 유방을 구해내었다. 유방이 즉위한 뒤 左丞相, 相國이 되었으며 그 후 여러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舞陽侯로 봉해졌다.
▶ 劉仲 : 代頃王 劉喜. 한 고조의 작은형이다. 자는 仲이며, 시호는 頃이다. 고제가 흉노와 싸워 백등산 포위전에서 곤궁에 처하였다. 겨우 빠져나오고서, 고제 7년(기원전200년)에 대나라 왕에 봉해졌다. 漢書의 <高帝紀>에는 고제 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二月,高祖自平城過趙、雒陽,至長安。
2월, 고조는 평성에서 출발하여 조나라와 낙양을 지나 장안으로 돌아왔다.
長樂宮成,丞相已下徙治長安。
長樂宮이 완공되자 승상 이하 관리들을 이주시켜 장안을 다스리게 하였다.
▶ 長樂宮 : 西漢의 궁전. 장락궁은 漢나라 고조가 모후를 받들기 위하여 세운 궁전이므로 東宮이라고도 한다.
▶ 已下 : 以下.
八年,高祖東擊韓王信餘反寇於東垣。
한고조 8년(기원전199년), 고조는 동쪽으로 한왕 신의 남은 반란군을 東垣에서 공격하였다.
蕭丞相營作未央宮,立東闕、北闕、前殿、武庫、太倉。
승상 蕭何가 未央宮을 축조하였는데, 東闕·北闕·前殿·武庫·太倉을 지었다.
高祖還,見宮闕壯甚,怒,謂蕭何曰:
「天下匈匈苦戰數歲,成敗未可知,是何治宮室過度也?」
고조가 돌아와서 궁궐이 매우 웅장함을 보고 화를 내며 소하에게 말하였다.
“천하가 흉흉하여 몇 년 동안 힘들게 싸웠고 성패를 아직 알 수 없는데, 어찌해서 이렇게 궁실을 지나치게 지을 수 있단 말인가?”
蕭何曰:
「天下方未定,故可因遂就宮室。
且夫天子四海為家,非壯麗無以重威,且無令後世有以加也。」
소하가 대답하였다.
“천하가 지금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회에 궁실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또 천자는 천하를 집으로 삼으니 장엄하지 않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습니다.
다만 후세에는 이보다 넘어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高祖乃說。
고조가 이에 기뻐하였다.
▶ 蕭何 : 유방의 재상.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싸움에서는 관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하였다.
▶ 營作 : 축조하다.
▶ 未央宮 : 한나라 고조 때 만든 궁전으로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 서북쪽에 있었다. 유방이 항우와의 천하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한나라를 세워 황제로 등극하자, 승상 소하가 수도 長安에 건립한 왕궁이다.
▶ 闕 : 황궁의 양쪽에 있는 망루.
▶ 太倉 : 도읍의 양식 창고.
▶ 就 : 건축하다.
▶ 加 : 초과하다.
▶ 說 : 悦과 같다.
高祖之東垣,過柏人,趙相貫高等謀弒高祖,高祖心動,因不留。
고조가 동원으로 가다가 柏人을 지나게 됨에, 조나라 정승 貫高 등이 고조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는데, 고조는 가슴이 두근거려 머물지 않았다.
代王劉仲棄國亡,自歸雒陽,廢以為合陽侯。
代王 劉仲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하였고, 스스로 낙양으로 와서 자수했기에 그를 폐위하고 合陽侯로 삼았다.
▶ 貫高等謀 : 貫高의 사건.
貫高는 漢나라 때 趙王 張敖의 정승으로 高祖가 趙나라에 들렀을 때 조왕을 모욕하자, 관고가 이를 분하게 여겨 고조가 묵고 있던 柏人縣의 집 뒷간 벽 속에다 사람을 숨겨두고 고조가 지나기를 기다리다가 시해하도록 음모를 꾸몄던 일을 가리킨다.(고조 8년 : 기원전 199년)
이 음모가 발각되었으나, 고조는 관고를 용서해주었는데,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고조 9년 : 기원전198년) <史記列傳 권89. 張耳陳餘列傳>
▶ 柏人 : 옛날의 地名. 지금의 河北省 柏鄕縣 부근이다.
▶ 劉仲 : 한 고조의 작은 형이다. 고제 7년(기원전 200년)에 대나라 왕으로 봉했었다.
고제 7년(기원전200년) 12월에 흉노의 침입을 받자 봉국을 버리고 낙양으로 달아났다.
▶ 自歸 : 자수하다.
九年,趙相貫高等事發覺,夷三族。
한고조 9년(기원전198년), 조나라의 승상 貫高 등의 사건이 발각되어 삼족을 멸하였다.
廢趙王敖為宣平侯。
趙王 張敖를 폐하여 宣平侯로 낮추었다.
是歲,徙貴族楚昭、屈、景、懷、齊田氏關中。
이해 귀족인 초나라의 昭·屈·景·懷씨와 제나라의 田씨를 관중으로 이주시켰다.
▶ 夷 : 멸하다
▶ 三族 : 부모, 형제. 처자.
▶ 趙王張敖 : 조나라 왕 張耳의 아들 張敖.
한왕5년(기원전202년) 장이가 죽자 아들 張敖가 그 뒤를 이어 조왕에 올랐다. 한 고조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조왕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 昭,屈,景 : 三閭大夫는 楚나라의 벼슬 이름으로, 초나라의 國姓이며 왕족인 屈,景,昭의 세 성씨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직이었다.
未央宮成。
未央宮이 완공되었다.
高祖大朝諸侯群臣,置酒未央前殿。
고조는 제후들과 군신들을 대거 소집하여 미앙궁 前殿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高祖奉玉卮,起為太上皇壽,曰:
「始大人常以臣無賴,不能治產業,不如仲力。
今某之業所就孰與仲多?」
고조가 옥 술잔을 받쳐 들고 일어나 태상황에게 祝壽를 올리며 말하였다.
“처음 대인께서는 늘 제가 무뢰하여 생업을 꾸려가지 못하고, 노력도 둘째 형님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이룬 업적과 둘째 형님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습니까?”
殿上群臣皆呼萬歲,大笑為樂。
대전의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부르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 卮 : 고대의 술잔.
▶ 仲 : 둘째 형. 劉仲.
▶ 力 : 노력.
▶ 孰與 : ~와 비교하여.
十年十月,淮南王黥布、梁王彭越、燕王盧綰、荊王劉賈、楚王劉交、齊王劉肥、長沙王吳芮皆來朝長樂宮。
한고조 10년(기원전197년) 10월, 淮南王 黥布·梁王 彭越·燕王 盧綰·荊王 劉賈·楚王 劉交·齊王 劉肥·長沙王 吳芮가 모두 장락궁으로 와서 알현하였다.
春夏無事。
봄과 여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 長樂宮 : 西漢의 궁전. 장락궁은 漢나라 고조가 모후를 받들기 위하여 세운 궁전이므로 東宮이라고도 한다.
▶ 朝 : 朝見. 제후가 천자를 배알하다.
七月,太上皇崩櫟陽宮。
7월, 태상황이 櫟陽宮에서 세상을 떠났다.
楚王、梁王皆來送葬。
초왕 유교와 양왕 팽월이 와서 장례를 치렀다.
赦櫟陽囚。更命酈邑曰新豐。
역양의 죄수들을 사면하고 酈邑을 新豐으로 이름을 바꿨다.
▶ 太上皇 : 고조 유방의 아버지.
▶ 更命 : 改名하다.
▶ 新豐 : 지금의 陝西省 臨潼縣지역을 가리킨다. 漢高祖가 부친이 고향 豐沛를 그리워하자 長安부근에 풍패와 같은 도시를 만들고 풍패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八月,趙相國陳豨反代地。
8월, 조나라의 相國 陳豨가 代 땅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上曰:
「豨嘗為吾使,甚有信。
代地吾所急也,故封豨為列侯,以相國守代,今乃與王黃等劫掠代地!
代地吏民非有罪也。其赦代吏民。」
고조가 말하였다.
“陳豨는 일찍이 나를 위해 일할 때 아주 믿음이 있었다.
대 땅은 나한테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진희를 열후에 봉하고 상국으로서 代를 지키게 하였는데, 지금 뜻밖에도 왕황 등과 代 땅을 강탈하려 하는구나!
대 땅의 관리와 백성은 죄가 없다.
대의 관리와 백성을 사면하라.”
▶ 陳豨 :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漢 高祖 劉邦을 따라 燕王 藏荼를 평정하여 陽夏侯에 봉해졌다.
고조7년(기원전200년)에 代의 相國이 되어 趙,代의 군사를 관할하였다.
고조10년(기원전197년) 韓信과 모반하여 王黃,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
고조12년 겨울(기원전196년) 한나라의 진압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기열전 권93. 韓信盧綰列傳>
▶ 急 : 중요하다.
▶ 乃 : 뜻밖에도.
九月,上自東往擊之。
9월, 고제가 몸소 동쪽으로 진군하여 진희를 공격하였다.
至邯鄲,上喜曰:
「豨不南據邯鄲而阻漳水,吾知其無能為也。」
邯鄲에 이르러 고조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진희가 남쪽 한단을 점거하지 않고 漳水를 방어하고 있으니 그가 큰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겠다.”
聞豨將皆故賈人也,上曰:
「吾知所以與之。」
진희의 부장들이 대개 이전에 장사꾼이었다는 말을 듣자 고제가 말하였다.
“내가 이들을 상대할 방법을 알았다.”
乃多以金啗豨將,豨將多降者。
이에 많은 황금으로 진희의 장수들을 유혹하니, 진희의 장수에 투항하는 자가 많았다.
▶ 賈人 : 상인.
▶ 金啗 : 뇌물을 주어 유혹하다. 啗은 꾀다.
十一年,高祖在邯鄲誅豨等未畢,豨將侯敞將萬餘人游行,王黃軍曲逆,張春渡河擊聊城。
한고조 11년(기원전196년), 고조가 한단에서 진희 등에 대한 토벌을 끝내지 못했는데, 진희의 부장 侯敞이 1만여 명을 이끌고 유격전을 벌였고, 왕황은 曲逆에 주둔했고, 張春은 황하를 건너 聊城을 공격하였다.
漢使將軍郭蒙與齊將擊,大破之。
한나라는 장군 郭蒙에게 제나라의 장수와 함께 공격하게 하여 그들을 대파하였다.
太尉周勃道太原入,定代地。
태위 周勃은 태원의 길로 들어가 대 땅을 평정하였다.
至馬邑,馬邑不下,即攻殘之。
마읍으로 갔는데 마읍이 항복하지 않자 바로 공격하여 섬멸하였다.
▶ 畢 : 끝내다.
▶ 游行 : 유격전.
▶ 勃) : 周勃.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沛縣사람으로 고조에 봉사하여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 殘 : 멸하다. 때려부수다.
豨將趙利守東垣,高祖攻之,不下。
진희의 부장 趙利가 지키는 東垣을 고조가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月餘,卒罵高祖,高祖怒。
한 달 넘게 진희의 병사들이 고조에게 욕설을 퍼붓자 고조가 노하였다.
城降,令出罵者斬之,不罵者原之。
동원성이 항복하자, 욕을 한 자들을 찾아내서 목을 베고, 욕하지 않은 자들은 너그럽게 용서하게 명령하였다.
於是乃分趙山北,立子恒以為代王,都晉陽。
그리고는 조나라의 상산 북쪽을 나누어 아들 劉恒을 代王으로 세워 晉陽에 도읍하게 하였다.
▶ 原 : 너그럽게 용서하다.
▶ 趙山北 : 代는 常山 북쪽에 있고, 조나라가 상산 남쪽에 있어 다스리기에 거리가 멀었으므로, 아들 恒을 세워서 代王으로 삼고 中都에 도읍하게 하니, 대와 雁門이 모두 대에 속하게 되었다.
春,淮陰侯韓信謀反關中,夷三族。
봄, 회음후 한신이 관중에서 모반하자 그의 삼족을 멸하였다.
▶ 淮陰侯韓信 : 한신은 해하전투에서 항우를 제압하면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齊王에 이어 楚王이 되었으나 한 고조에게 미움을 받아 반란을 꾀하다가 회음후로 격하되었으며, 여태후의 모함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족되었다.<사기열전 권92.淮陰侯列傳>
▶ 夷 : 멸하다.
夏,梁王彭越謀反,廢遷蜀;復欲反,遂夷三族。
이해 여름에 양왕 彭越이 모반하자, 폐위하고 蜀으로 유배하였다. 다시 반역을 꾀하자 마침내 삼족을 멸하였다.
立子恢為梁王,子友為淮陽王。
고조의 아들 劉恢를 梁王으로 세우고, 아들 劉友를 淮陽王으로 삼았다.
▶ 彭越 : 진나라 山陽 昌邑 출신으로 도적이었다. 字는 仲이다.
진나라 말기 각지에서 봉기하여 군웅들이 할거하자, 스스로 봉기하여 군사를 일으켜 楚나라 項羽의 군사가 되었다.
항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켜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한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초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병사를 인솔해 垓下에서 項羽를 격멸하고 梁王에 봉해졌다.
陳豨가 代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병을 핑계 대며 유방의 징병을 거절하였다.
이유로 여태후의 모함을 받아 유방에게 죽임을 당하였다.<사기열전 권90. 魏豹彭越列傳>
▶ 子恢 : 劉恢. 趙共王 劉恢. 전한 고제의 아들로, 고제11년(기원전196년)양왕 팽월이 제거된 후 그 후임으로 양나라에 봉해졌다.
▶ 子友為淮陽王 : 劉友.漢 高帝의 여섯 번째 아들. 처음에 淮陽王에 봉해졌으며 후에 趙王이 되었다. 여후에 의해 幽禁되어 굶어 죽었으므로 시호를 幽王이라 하였다.
秋七月,淮南王黥布反,東并荊王劉賈地,北渡淮,楚王交走入薛。
가을 7월, 회남왕 경포가 반란을 일으켜 동쪽으로 형왕 유고의 봉지를 합병하고, 북쪽으로 淮水를 건너자 초왕 劉交가 薛縣으로 도망쳐왔다.
高祖自往擊之。
고조가 직접 가서 공격하였다.
立子長為淮南王。
아들 劉長을 회남왕으로 세웠다.
▶ 黥布反 : 경포는 항우에 의해 九江王에 봉해졌으나 楚漢전쟁 중에 한나라가 설득하자 한나라로 귀순하였다.
淮南王에 봉해졌고, 유방을 따라 垓下전투에서 항우를 격파하였다.
漢나라가 세워진 뒤 韓信과 彭越 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다.
강남으로 달아났다가 長沙王에게 유인되어 誅殺당하였다.<사기열전 권91.경포열전>
▶ 楚王交 : 劉交. 자는 游고, 시호는 元이며, 漢高祖 劉邦의 배다른 동생이다.
유방을 따라 반란을 일으켰고, 入關한 뒤 文信君에 봉해졌으며, 유방을 따라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고조가 즉위하자 楚王) 봉해졌다.
▶ 立子長為淮南王 : 淮南 厲王 劉長. 한 고조의 서얼 막내였으며, 漢 文帝와는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지간이다.
十二年,十月,高祖已擊布軍會甀,布走,令別將追之。
한고조 12년(기원전195년) 10월, 고조가 黥布의 군대를 會甀에서 격파한 후, 경포가 달아나자 별장에게 그를 추격하게 하였다.
高祖還歸,過沛,留。
고조가 장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패현을 들러 머물렀다.
置酒沛宮,悉召故人父老子弟縱酒,發沛中兒得百二十人,教之歌。
沛宮에서 연회를 베풀었으니, 옛 친구·부로·자제들을 모두 불러 함께 마음껏 마시고, 패현의 아이 120명을 선발하여 노래를 가르쳤다.
酒酣,高祖擊筑,自為歌詩曰: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鄉,
安得猛士兮守四方!」
술이 거나해지자 고조는 筑을 타며 직접 노래를 지어 불렀다.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아 오르도다.
천하에 위엄을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도다.
어찌하면 용사를 얻어 천하를 지킬까!”
▶ 縱酒 : 술을 마구 마시다.
▶ 酣 : 거나하게 취하다.
▶ 筑 : 축은 争과 같은 모양과 구조에 가늘고 긴 봉 모양의 몸체 위에 5줄의 현을 달아 죽편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다.
▶ 歌詩曰 : 지어 부른 노래는 大風歌 또는 大風曲이라고 전해진다.
▶ 大風起兮雲飛揚 : 漢高祖의 군사가 가는 곳마다 秦나라의 城이 무너지는 것이 마치 큰 바람에 구름이 흩어지는 듯함을 비유한 것이다.
▶ 海內 : 중화족이 사는 땅을 말한다. 東夷,西戎,北狄,南蠻을 四海라 하고, 중화족이 사는 그 가운데 땅을 海內라 한 것이다.
▶ 安 : 어찌.
令兒皆和習之。
아이들에게 모두 따라 부르게 하였다.
高祖乃起舞,慷慨傷懷,泣數行下。
고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데 감정이 북받치고 회한에 젖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
謂沛父兄曰:
「游子悲故鄉。
吾雖都關中,萬歲後吾魂魄猶樂思沛。
且朕自沛公以誅暴逆,遂有天下,其以沛為朕湯沐邑,復其民,世世無有所與。」
고조가 패현의 부형들에게 말하였다.
“나그네는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입니다.
내 비록 관중에 도읍을 정했지만 만 년이 지나도 내 혼백은 여전히 패현을 좋아하고 그리워할 것이오.
또한 내가 패공으로서 출발하여 포악한 역도들을 토벌하여 마침내 천하를 가졌으니, 패현을 나의 湯沐邑으로 삼아 모든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여 대대로 세금과 부역이 없게 하겠소.”
▶ 和習 : 따라 부르다.
▶ 游子 : 나그네. 방랑자.
▶ 悲 : 그리워하다.
▶ 湯沐邑 : 周나라 때 생긴 제도로 제후의 사유 영지를 하사하여 그 읍의 수입으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비용(목욕재계하는 비용)을 충당하게 한 것이다.
▶ 復 :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다.
沛父兄諸母故人日樂飲極驩,道舊故為笑樂。
패현의 부형과 아주머니들, 옛 친구들과 날마다 즐겁고 유쾌하게 마시면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고 즐거워하였다.
十餘日,高祖欲去,沛父兄固請留高祖。
10여 일이 지나 고조가 떠나려 하자 패현의 부형들은 한사코 고조에게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
高祖曰:
「吾人眾多,父兄不能給。」乃去。
고조가 말하기를, “내 일행이 너무 많아 부형들이 비용을 댈 수 없을 터이오.”라며 떠났다.
沛中空縣皆之邑西獻。
패현 사람들은 패현을 텅 비워놓고 모두 읍 서쪽으로 가서 예물을 바쳤다.
高祖復留止,張飲三日。
고조가 다시 머물며 장막을 치고 사흘을 더 마셨다.
沛父兄皆頓首曰:
「沛幸得復,豐未復,唯陛下哀憐之。」
폐현의 부형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패현은 다행히 세금과 부역이 면제되었지만 豐邑은 그렇지 못했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 諸母 : 고모뻘 되는 여러 아주머니.
▶ 道舊故 :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다.
▶ 獻 : 예물을 바치다.
▶ 張 : 장막을 치다.
▶ 頓首 : 머리를 조아리다.
▶ 唯 : 희망하다.바라건대.
▶ 哀憐 : 가엾게 여기다. 哀怜,怜悯。
高祖曰:
「豐吾所生長,極不忘耳,吾特為其以雍齒故反我為魏。」
고조가 말하였다.
“풍읍은 내가 태어난 곳이니 제일 잊을 수 없는 곳이지만, 나는 단지 풍읍이 雍齒를 따르고 나를 배신해 위나라를 도왔기 때문이오.”
沛父兄固請,乃并復豐,比沛。
패현의 부형들이 한사코 간청하자, 패현처럼 풍읍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주었다.
於是拜沛侯劉濞為吳王。
이에 沛侯 劉濞를 吳王으로 삼았다.
▶ 特 : 다만.
▶ 雍齒 : 項羽의 부하 장수. 劉邦을 여러 번 곤경에 빠뜨렸으며, 魏나라 주불이 투항을 권유하자 곧 패공을 배반하고 위나라를 위해 풍읍을 지켰다.
▶ 劉濞 : 한 고조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뒷날 기원전154년에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하는 것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漢將別擊布軍洮水南北,皆大破之,追得斬布鄱陽。
한나라의 장수들이 따로 경포의 군대를 洮水 남쪽과 북쪽에서 공격하여 모두 대파하고, 경포를 추격하여 鄱陽에서 죽였다.
樊噲別將兵定代,斬陳豨當城。
번쾌는 따로 병사를 거느리고 代를 평정하고 진희를 當城에서 죽였다.
十一月,高祖自布軍至長安。
11월, 고조가 경포의 군대를 토벌하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十二月,高祖曰:
「秦始皇帝、楚隱王陳涉、魏安釐王、齊緡王、趙悼襄王皆絕無後,予守冢各十家,秦皇帝二十家,魏公子無忌五家。」
12월, 고조가 말하였다.
“秦始皇帝 · 楚隱王 陳涉 · 魏安釐王 · 齊緡王 · 趙悼襄王은 모두 그 후손이 끊어졌으니 각각 묘지기로 10호를 주고, 진시황제에게는 20호, 魏公子 無忌에게는 5호를 주어라.”
赦代地吏民為陳豨、趙利所劫掠者,皆赦之。
陳豨·趙利에게 위협당하여 약탈한 대 땅의 관리와 백성을 모두 사면하였다.
▶ 絕無後 : 자손이 끊겨 후손이 없다.
▶ 守冢 : 묘지기.
陳豨降將言豨反時,燕王盧綰使人之豨所,與陰謀。
투항한 진희의 부장이 진희가 반역할 때 燕王 盧綰이 진희에게 사람을 보내 함께 음모를 꾸몄다고 말하였다.
上使辟陽侯迎綰,綰稱病。
고조는 辟陽侯 審食其를 보내 노관을 소환했으나 노관은 병을 핑계 삼아 오지 않았다.
辟陽侯歸,具言綰反有端矣。
벽양후가 돌아와서 노관에게 모반의 단서가 있다는 사실을 상세히 아뢰었다.
二月,使樊噲、周勃將兵擊燕王綰,赦燕吏民與反者。
2월, 고조는樊噲와 周勃에게 군사를 이끌고 연왕 노관을 공격하게 하고, 반란에 가담한 연의 관리와 백성은 사면하였다.
立皇子建為燕王。
아들 劉建을 연왕으로 삼았다.
▶ 盧綰 : 沛國 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高帝 12년(기원전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 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
<史記列傳 권93 韓信盧綰列傳>
▶ 端 : 단서. 실마리.
▶ 劉建 : 고조의 8남으로, 고조15년(기원전196년)에 연왕 노관이 모반을 일으키고 흉노로 달아나자 이듬해에 후임 연왕으로 즉위하였다.
高祖擊布時,為流矢所中,行道病。
고조가 경포를 토벌할 때 날아온 화살에 맞았는데, 돌아오는 중에 병이 났다.
病甚,呂后迎良醫,醫入見,高祖問醫,醫曰:
「病可治。」
병이 심해지자 여후가 名醫를 불렀는데, 의원이 들어와 알현하자 고조가 의원에게 병세를 물었다. 의원이 말하였다.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於是高祖嫚罵之曰:
「吾以布衣提三尺劍取天下,此非天命乎?
命乃在天,雖扁鵲何益!」
그러자 고조는 깔보고 욕하였다.
“나는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석 자의 검을 차고 천하를 얻었으니, 이는 천명이 아니겠는가?
명은 하늘에 달렸거늘 扁鵲이라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遂不使治病,賜金五十斤罷之。
끝내 병을 치료하게 하지 않고 황금 50근을 내리고 물러가게 하였다.
▶ 流矢 : 빗나간 화살. 난 데 없이 날아온 화살.
▶ 嫚罵 : 깔보고 욕하다.
▶ 布衣 : 보잘것없는 신분. 평민.
▶ 誰 : 설령~하더라도.
▶ 扁鵲 : 전국시대 뛰어난 의사로 성은 秦이고 이름은 越人이며 渤海사람이다.<史記列傳 권105. 扁鵲倉公列傳>
已而呂后問:
「陛下百歲後,蕭相國即死,令誰代之?」
머지않아 呂后가 물었다.
“폐하가 돌아가신 뒤 만약 상국 蕭何가 죽으면 누구로 그를 대신해야 합니까?”
上曰:
「曹參可。」
고조가 대답하였다.
“曹參이면 될 터이오.”
問其次,上曰:
「王陵可。
然陵少憨,陳平可以助之。
陳平智有餘,然難以獨任。
周勃重厚少文,然安劉氏者必勃也,可令為太尉。」
조참 다음을 묻자 고조가 대답하였다.
“王陵이면 될 터이오.
그러나 왕릉이 다소 고지식하니 陳平이 도우면 될 터이오.
진평은 지혜가 남아돌지만 혼자 맡기는 어렵소.
周勃이 중후하고 글재주가 모자라지만 유씨 집안을 안정시킬 사람은 분명 주발일 터이니 太尉로 삼으면 될 것이오.”
呂后復問其次,上曰:
「此後亦非而所知也。」
여후가 다시 그 다음 사람을 묻자 고조가 말하였다.
“그 다음은 당신이 알 바 아니오.”
▶ 已而 : 그 후. 머지않아.
▶ 呂后 : 呂稚. 고조 劉邦의 황후. 자는 娥姁이며, 高后로도 불린다.
▶ 百歲後 : 죽은 뒤. 百歲後는 百歲之後로 지체 높은 사람이 죽은 뒤의 뜻.
▶ 即 : 만약.
▶ 少 : 약간.
▶ 憨 : 우둔하지만 강직하다.
▶ 少文 : 글재주가 모자라다.
▶ 而 : 당신.너.
盧綰與數千騎居塞下候伺,幸上病愈自入謝。
노관이 수천 騎 함께 변경에서 기회를 노리며, 고조가 병이 나으면 직접 들어가 사죄하기를 바랐다.
▶ 盧綰 : 沛國 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高帝 12년(기원전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 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
<史記列傳 권93. 韓信盧綰列傳>
▶ 候伺 : 기회를 노리다.
▶ 幸 : 희망하다.
四月甲辰,高祖崩長樂宮。
4월 甲辰日, 고조가 장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四日不發喪。
4일이 지나도록 발상하지 않았다.
呂后與審食其謀曰:
「諸將與帝為編戶民,今北面為臣,此常怏怏,今乃事少主,非盡族是,天下不安。」
여후와 審食其가 의논하였다.
“장수들은 황제와 같이 다 평민의 출신으로, 지금 北面하여 신하가 되었지만 늘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이제 어린 군주를 섬기게 되었으니 그들을 멸족하지 않으면 천하가 불안할 터이오.”
▶ 審食其 : 劉邦과 동향인으로 漢)라의 개국공신이 되어 辟陽侯에 봉해졌다.
高帝가 붕어하자 여후와 함께 發喪을 막고 공신들을 제거할 것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여후가 聽政하자 좌승상에 임명되었으며, 詔令의 출납을 장악하여 공경대신들이 모두 그를 통해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로 인해 심이기와 여후를 내연의 관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文帝때 淮南 厲王 劉長에게 피살되었다.
▶ 編戶民 : 호적에 등기되어 있는 평민.
▶ 怏怏 : 불만스러운 모양.
▶ 少主 : 유방의 아들인 劉盈을 말한다. 漢 惠帝에 즉위하였다.
人或聞之,語酈將軍。
어떤 자가 이 말을 듣고 酈商장군에게 알렸다.
酈將軍往見審食其,曰:
「吾聞帝已崩,四日不發喪,欲誅諸將。
誠如此,天下危矣。
陳平、灌嬰將十萬守滎陽,樊噲、周勃將二十萬定燕、代,此聞帝崩,諸將皆誅,必連兵還鄉以攻關中。
大臣內叛,諸侯外反,亡可翹足而待也。」
역상 장군이 심이기를 만나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황제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나흘이 지나도록 發喪하지 않고, 장수들을 죽이려 한다고 하오.
진실로 그렇게 한다면 천하가 위태롭소.
진평과 관영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양을 지키고 있고, 번쾌와 주발은 20만 대군으로 燕·代를 평정했는데, 이들이 황제가 세상을 떠났고 장수들을 모두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틀림없이 군대를 연합해 돌아와 관중을 공격할 터이오.
대신들은 안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제후들은 밖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소.”
審食其入言之,乃以丁未發喪,大赦天下。
심이기가 궁으로 들어가 여후에게 말하니, 정미일에 발상하고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 酈將軍 : 酈商. 酈食其의 아우이다.
진 이세황제 원년(기원전209년) 진승·오광이 봉기할 당시에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느리고 있다가, 형 역이기가 유방에게 속해 陳留를 함락하자 자신도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長沙 공격에서 가장 먼저 성에 올라 信成君의 작호를 받았고, 유방을 따라 관중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공을 세웠으며 별군을 거느리고 한중을 평정하였다. <사기열전 권95. 樊酈滕灌列傳>
▶ 語 : 알리다.
▶ 誠 : 만약.
▶ 翹足而待 : 발돋움하여 기다리다. 일이 곧 발생하다.
盧綰聞高祖崩,遂亡入匈奴。
노관은 고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흉노로 도망쳤다.
丙寅,葬。
丙寅日에 장례를 치렀다.
己巳,立太子,至太上皇廟。
己巳日에 태자 劉盈을 황제로 옹립하여 태상황묘에 이르렀다.
群臣皆曰:
「高祖起微細,撥亂世反之正,平定天下,為漢太祖,功最高。」
신하들이 모두 말하였다.
“고조께서 미천한 신분으로 일어나시어 난세를 다스려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셨기에 한나라의 태조가 되셨으니 그 공이 가장 높습니다.”
上尊號為高皇帝。
존호를 올리기를 高皇帝라 하였다.
太子襲號為皇帝,孝惠帝也。
태자가 황제의 호칭을 이어받으니 그가 孝惠帝이다.
令郡國諸侯各立高祖廟,以歲時祠。
郡國의 제후들에게 각자 高祖의 사당을 세워 매년 때맞추어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 微細 : 미천한 신분. 평민을 말한다.
▶ 撥亂世反之正 : 난세를 다스려 정상으로 회복시키게 하다.
撥은 다스리다.
反之正 정상으로 회복하다.
▶ 孝惠帝 : 前漢의 제2대 황제.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어머니는 高皇后 呂氏이다.
▶ 以歲時祠 : 매년 때맞추어 제사를 지내다.
及孝惠五年,思高祖之悲樂沛,以沛宮為高祖原廟。
효혜제 5년(기원전190년)에 고조가 패현을 그리워하고 좋아했던 일을 생각하여, 沛宮을 고조의 原廟로 삼았다.
高祖所教歌兒百二十人,皆令為吹樂,後有缺,輒補之。
고조가 노래를 가르쳤던 아이들 120명에게 모두 연주와 노래를 하게 했으며, 나중에 인원이 모자라면 즉시 보충하게 하였다.
▶ 原廟 : 다시 지은 사당.
高帝八男:
長庶齊悼惠王肥;
次孝惠,呂后子;
次戚夫人子趙隱王如意;
次代王恒,已立為孝文帝,薄太后子;
次梁王恢,呂太后時徙為趙共王;
次淮陽王友,呂太后時徙為趙幽王;
次淮南厲王長;次燕王建。
고제는 아들이 여덟 명이었다.
장남은 庶子인 齊 悼惠王 劉肥이고,
둘째는 여후의 아들 효혜황제이다.
셋째는 戚夫人의 아들인 趙隱王 劉如意이다.
넷째는 代王 劉恒으로 훗날 孝文皇帝로 즉위했으며, 薄太后의 소생이다.
다섯째 梁王 劉恢는 여태후가 집정할 때 趙共王으로 옮겨졌다.
여섯째 淮陽王 劉友는 여태후가 집정할 때 趙幽王으로 옮겨졌다.
일곱째 淮南 厲王 劉長,
여덟 째는 燕王 劉建이다.
▶ 長庶 : 맏서자. 齊悼惠王 劉肥.
고조 劉邦의 맏서자이다. 어머니는 다른 집안 출신의 첩실로 曹氏이다.
▶ 孝惠呂后子 : 한나라의 2대 황제인 효혜황제는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어머니는 高皇后 呂氏이다
▶ 戚夫人 : 高祖의 첩으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고조가 생전에 척부인과 아들인 조왕 여의를 총애하였다. 고조가 죽자 여후가 조왕 如意를 독살하고 戚夫人을 투옥한 뒤 手足을 모두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 넣었으며, 벙어리 약을 먹여 변소에 던져두었다. 그런 뒤 인간돼지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기 본기 권9. 여태후본기>
▶ 薄太后 : 古祖 劉邦의 후궁. 文帝 劉恒의 생모.
▶ 梁王恢 : 劉恢. 趙共王 劉恢. 전한 고제의 아들로 고제11년(기원전196년) 양나라 왕 팽월이 제거된 후 그 후임으로 양나라에 봉해졌다.
▶ 淮陽王友 : 劉友. 漢高帝의 여섯 번째 아들.
처음에 淮陽王에 봉해졌다가 후에 趙王이 되었으며, 여후에 의해 幽禁되어 굶어 죽었으므로 시호를 幽王이라 하였다.
▶ 淮南厲王長 : 회남 여왕 劉長은 한 고조의 7남으로, 漢文帝와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지간이다. 高帝 11년(기원전196년),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고, 유장은 영포를 대신하여 회남왕에 봉해졌다.
▶ 燕王建 : 劉建.
고조의 8남으로 고조15년(기원전196년)에 연왕 노관이 모반을 일으키고 흉노로 달아나자 이듬해에 후임 연왕으로 즉위하였다.
太史公曰:
太史公은 말한다.
夏之政忠。
“夏나라의 정치는 충직하였다.
忠之敝,小人以野,故殷人承之以敬。
충직함의 폐해는 백성이 低俗해지므로 殷나라는 공경함으로 이어받았다.
敬之敝,小人以鬼,故周人承之以文。
공경함의 폐해는 백성이 귀신을 숭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周나라는 禮儀로 이어받았다.
文之敝,小人以僿,故救僿莫若以忠。
예의의 폐해는 백성이 무성의해지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 무성의함을 구하는 길은 충후함 만한 것이 없었다.
三王之道若循環,終而復始。
하·은·주 三代의 치국의 도는 마치 돌고 도는 것 같다가 결국에는 다시 시작되었다.
周秦之閒,可謂文敝矣。
周나라에서 진나라에 이르기까지는 예의로 인한 폐해였다고 할 수 있다.
秦政不改,反酷刑法,豈不繆乎?
진나라는 이를 고치지 않고 가혹한 형법으로 정치를 했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故漢興,承敝易變,使人不倦,得天統矣。
그래서 한나라가 일어나 그 폐단의 정치를 이어받았으나, 改變으로 백성을 피곤하지 않게 하고 하늘의 도리에 부합하게 하였다.
朝以十月。
매년 10월 제후들이 황제에게 조현하였다.
車服黃屋左纛。
車服제도에 따라 황제의 수레를 타고 좌측 깃발을 달았다.
葬長陵。
고조 유방은 장릉에 안장되었다.”
▶ 忠 : 충직하고 온후하다. 성실하다.
▶ 敝 : 弊와 같다. 폐해.
▶ 小人 : 백성.
▶ 野 : 상스럽다. 저속하다.
▶ 僿(사) : 무성의하다. 불성실하다.
▶ 天統 : 자연의 도리.
▶ 黃屋左纛 : 천자가 타는 수레와 깃발.
천자의 수레는 누런 비단으로 덮개와 속을 만든다. 纛은 들소의 꼬리로 만들며 황제의 수레의 가로댄 나무 왼쪽 위에 이것을 매단다.
▶ 長陵 : 한 고조의 능. 지금의 섬서성 함양시 동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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