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本紀

본기9. 呂太后本紀(여태후본기)

耽古樓主 2023. 2. 10. 04:09

이篇은 漢나라의 태조 劉邦의 부인인 呂氏에 대한 기록이다.
呂太后는 유방이 죽은 뒤 혜제가 즉위하자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유방의 寵妃인 戚夫人의 수족을 자르고 변소에 가두어 人彘(인간돼지)라고 부르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다.
혜제가 죽자 어린 황제의 섭정으로서 劉氏만을 侯王으로 책봉하라는 유방의 遺訓을 어기고 그녀의 일족 9명을 王侯로 책봉하였는데, 이것이 유씨 옹호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여후가 죽자 여씨 誅滅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여씨의 난이며, 여씨 정권이 붕괴하고 고조의 차남 劉恒이 文帝로 즉위하였다.

여태후

 

呂太后者,高祖微時妃也,生孝惠帝、女魯元太后。
呂太后는 고조가 미천하던 때의 아내로 孝惠帝와 딸 魯元太后를 낳았다.

及高祖為漢王,得定陶戚姬,愛幸,生趙隱王如意。
고조가 漢王이 되었을 때 定陶에서 戚夫人을 얻어 총애하여趙隱王 如意를 낳았다.

孝惠為人仁弱,高祖以為不類我,常欲廢太子,立戚姬子如意,如意類我。
효혜제 劉盈은 사람이 어질고 軟弱하였하므로고조는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여기고늘 태자를 폐위하고 척희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는데여의는 자기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 呂后 : 前漢의 시조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고조 사후에 황태후·태황태후가 되었고, 여후·여태후 등으로도 불린다.
▶ 微時 : 지위가 낮아 미천하던 때.
▶ 妃 : 아내. 배우자.
▶ 孝惠帝 : 惠帝.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 魯元太后 : 魯元公主 劉樂. 한 고조 유방의 딸. 노원태후는 諡號이다.
▶ 類 : 닮다.
▶ 戚姬 : 高祖의 첩으로 趙王 如意를 낳았다. 고조가 생전에 척부인과 아들인 조왕 여의를 총애하였다.
▶ 趙隱王如意 : 한 고조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다.
기원전198년, 조왕 장오가 조나라 재상 관고의 황제 암살 모의에 연루돼 선평후로 강등되자, 여의는 열 살의 나이에 趙王으로 봉해졌다. 고조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였고 여후에 의해 독살되었다.

 

 

戚姬幸,常從上之關東,日夜啼泣,欲立其子代太子。
척희는 총애를 받아 늘 고조를 따라 관동으로 갔는데밤낮으로 울면서 자기 아들을 유영 대신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呂后年長,常留守,希見上,益疏。
여후는 나이가 많아 늘 집을 지켰으니고조를 만나는 일이 드물어 점점 소원해졌다.

如意立為趙王後,幾代太子者數矣,賴大臣爭之,及留侯策,太子得毋廢。
여의는 趙王이 된 이후 거의 유영 대신 태자가 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으며대신들의 간쟁과 유후의 계책 덕분에 태자 유영은 폐위를 면하였다.

▶ 希 : 稀와 같다. 드물다.
▶ 幾 : 거의. 하마터면.
▶ 賴 : 의지하다. 힘입다.
▶ 爭 : 간쟁하다. 직간하다.
▶ 留侯策 : 張良의 계책.
한고조 12년(기원전195년) 고조가 태자 유영을 폐하고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 劉盈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呂后為人剛毅,佐高祖定天下,所誅大臣多呂后力。
여후는 사람이 강직하고 굳세어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도왔고대신들을 숙청하는 데 여후의 힘이 컸다.

呂后兄二人,皆為將。
여후에게 오빠가 둘이었는데 모두 장수가 되었다.

長兄周呂侯死事,封其子呂臺為酈侯,子產為交侯;
次兄呂釋之為建成侯。
큰오빠 周呂侯 呂澤이 전사하여 그의 아들 呂臺(呂台)는 酈侯에 봉해졌고아들 呂産은 交侯에 봉해졌다.
작은 오빠 呂釋之는 建成侯가 되었다.

▶ 剛毅 : 강직하여 굴하지 않다. 의지가 굳다.
▶ 所誅大臣 : 韓信,黥布,彭越을 죽인 일을 말한다.
▶ 周呂侯 : 呂澤. 여후의 오빠. 이름은 澤이고 周呂는 책봉된 읍의 이름이다.
▶ 死事 : 전사하다.
▶ 呂臺 : 呂肅王 呂台. 전한의 異姓 제후왕으로, 한 고제의 외척 여씨 일족이며 여나라의 첫 왕이다. 여태후의 오빠 呂澤의 장자로, 아버지가 장수로서 공이 있고 전사하여 동생 여산과 함께 작위를 받아 鄜侯(부후)에 봉해졌다
▶ 子產 : 呂産. 여태후의 오빠인 여택의 아들.
▶ 呂釋之 : 고황후의 작은 오빠로 처음 고제가 거병하였을 때부터 객으로서 종군해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206년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지면서 豐·沛로 돌아가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 여선왕을 모셨다. 고제6년(기원전201년) 고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建成侯에 봉해졌다.



高祖十二年四月甲辰,崩長樂宮,太子襲號為帝。
고조 12(기원전195) 4월 갑진일고조가 장락궁에서 세상을 떠나자 태자 劉盈이 칭호를 이어받아 황제로 즉위하였다.

是時高祖八子:
長男肥,孝惠兄也,異母,肥為齊王;
餘皆孝惠弟,戚姬子如意為趙王,薄夫人子恒為代王,諸姬子子恢為梁王,子友為淮陽王,子長為淮南王,子建為燕王。
당시 고조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이 있었는데,
장남 劉肥는 혜제의 형으로 어머니가 달랐으며 齊王이 되었고나머지는 모두 혜제의 동생으로서척희의 아들 如意는 趙王이 되었고薄夫人의 아들 劉恒은 代王이 되었으며여러 비빈의 아들 중 劉恢는 梁王이 되었으며劉友는 淮陽王劉長은 淮南王劉建은 燕王에 봉해졌다.

高祖弟交為楚王,兄子濞為吳王。
고조의 동생 劉交는 楚王이 되었으며고조의 형의 아들인 劉濞는 吳王에 봉해졌다.

非劉氏功臣番君吳芮子臣為長沙王。
유씨가 아닌 공신으로는 番君 吳芮의 아들 吳臣이 長沙王에 봉해졌다.

▶ 太子 : 孝惠. 한나라의2대 황제인 효혜황제는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어머니는 高皇后 呂氏이다
▶ 長男肥 : 齊悼惠王 劉肥. 고조 劉邦의 맏서자이다. 어머니는 다른 집안 출신의 첩실로 曹氏이다.
▶ 如意 : 한 고조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다.
▶ 薄夫人子恒 : 박태후는 고조 劉邦의 후궁으로 文帝 劉恒의 생모이다.
▶ 子恢 : 梁王恢. 劉恢. 고조의 아들로 고제 11년(기원전196년) 양왕 팽월이 제거된 후 그 후임으로 양나라에 봉해졌다.
▶ 子友 : 劉友. 고조의 여섯 번째 아들. 처음에 淮陽王에 봉해졌으며 후에 趙王이 되었다. 여후에 의해 幽禁되어 굶어 죽었으므로 시호를 幽王이라 하였다.
▶ 子長 : 淮南 厲王 劉長. 고조의 7남으로, 漢文帝와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지간이다. 高帝 11년(기원전196년),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고, 유장은 영포를 대신하여 회남왕에 봉해졌다.
▶ 子建 : 劉建. 고조의 8남으로, 고조 15년(기원전196년)에 연왕 노관이 모반을 일으키고 흉노로 달아나자 이듬해에 후임 연왕으로 즉위하였다.
▶ 高祖弟交 : 고조의 동생 劉交. 劉太公의 넷째 아들이다. 高祖 劉邦의 이복동생으로 모친은 太上皇後 李氏이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에 楚王이 되었고, 사후에 시호는 元王이다.
▶ 兄子濞 : 형의 아들 유비.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고조 12년(기원전195) 吳王에 봉해졌다.
▶ 吳芮 : 원래 鄱陽의 현령으로 이 일대에서 인심을 얻어 鄱君이라 불렸다.
나중에 百粤을 이끌고 項羽를 따라 함곡관에 들어간 공으로 衡山王에 봉해졌다. <資治通鑑綱目제2권>
또 張良의 소개로 劉邦을 만나 楚나라를 멸하는데 큰 공을 세워 長沙王에 봉해졌다.

 

呂后最怨戚夫人及其子趙王,乃令永巷囚戚夫人,而召趙王。
여후는 척부인과 그녀의 아들 趙王 如意에게 극도의 원한을 품고척부인을 永巷에 감금하게 하고 조왕을 소환하였다.

使者三反,趙相建平侯周昌謂使者曰:
「高帝屬臣趙王,趙王年少。
竊聞太后怨戚夫人,欲召趙王并誅之,臣不敢遣王。王且亦病,不能奉詔。」
사자가 여러 번 갔으나 그냥 돌아왔으며조나라의 승상 建平侯 周昌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고제께서 내게 趙王을 부탁하였는데 조왕은 나이가 어리다.
내가 듣건대 태후께서 척부인에게 원한이 있어 조왕을 소환하여 함께 죽이려 한다니나는 감히 조왕을 보낼 수 없다.
또 왕께서는 병이 있어 조서를 받들 수 없다.”

▶ 永巷 : 궁녀들의 거처.
▶ 反 : 返과 같다.
▶ 建平侯周昌 : 漢나라 沛縣사람으로 周苛의 從弟이다.
秦나라 때 泗水의 말단관리였다가 劉邦을 따라 패현에서 봉기하여 진나라를 격파하여 中尉가 되었다. 內史로 敖倉을 견고하게 방어하여 御史大夫가 되고, 項羽를 격파하였다.
유방이 제위에 오르고 6년(기원전201) 汾陰侯에 봉해졌다.
사람됨이 고집이 세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말을 더듬었다.
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如意를 세우려고 하자 한사코 이를 막았다.
呂后가 趙王을 독살하자 병이라 하여 入朝하지 않았다. <史記列傳 권96 張丞相列傳>
▶ 屬(촉) : 부탁하다.

 

呂后大怒,乃使人召趙相。
여후가 대노하여 사람을 보내 정승 주창을 소환하였다.

趙相徵至長安,乃使人復召趙王。
주창이 장안으로 불려 들어오자 곧 사람을 보내 다시 조왕을 소환하였다.

王來,未到。
조왕이 출발하여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다.

孝惠帝慈仁,知太后怒,自迎趙王霸上,與入宮,自挾與趙王起居飲食。
효혜제는 인자하였으므로태후가 화난 것을 알고 몸소 나가 조왕을 霸上에서 맞이하여 함께 궁으로 들어왔고친히 조왕과 함께 기거하며 먹고 자고 하였다.

太后欲殺之,不得閒。
태후가 조왕을 죽이려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孝惠元年十二月,帝晨出射。
효혜제 원년(기원전194) 12효혜제는 아침 일찍 활을 쏘러 나갔다.

趙王少,不能蚤起。
조왕은 나이가 어려 일찍 일어날 수 없었다.

太后聞其獨居,使人持酖飲之。
태후가 조왕이 혼자 있음을 듣고사람을 시켜 鴆酒를 가지고 가서 마시게 하였다.

犁明,孝惠還,趙王已死。
날이 밝을 무렵 혜제가 돌아왔을 때조왕 여의는 이미 죽어 있었다.

於是乃徙淮陽王友為趙王。
이에 淮陽王 劉友를 趙王으로 옮겼다.

▶ 自挾 : 친히 동반하다.
▶ 閒 : 기회. 틈.
▶ 酖 : 鴆(짐새‘짐’)과 통하여 毒酒. 마시면 죽는 독주인 짐주(짐새의 깃을 술에 담근 독주)
▶ 犁明 : 동틀 무렵. 犁는 黎와 통용된다.

 

夏,詔賜酈侯父追謚為令武侯。
여름조서를 내려서 酈侯의 부친 呂澤에게 令武侯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太后遂斷戚夫人手足,去眼,煇耳,飲瘖藥,使居廁中,命曰「人彘」。
태후는 마침내 戚夫人의 손발을 자르고눈알을 뽑고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고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인 뒤돼지우리에서 살게 하고는,‘사람돼지(人彘)’라 부르게 하였다.

居數日,乃召孝惠帝觀人彘。
며칠 후 태후는 효혜제를 불러서 人彘를 보게 하였다.

孝惠見,問,乃知其戚夫人,乃大哭,因病,歲餘不能起。
효혜제가 보고 사람들에게 묻고서야 그것이 척부인임을 알고는 크게 소리내어 울었고이 때문에 병이 나서 1년여 동안 일어나지 못하였다.

使人請太后曰:
「此非人所為。
臣為太后子,終不能治天下。」
혜제가 사람을 보내 태후를 뵙기를 청하고 말하였다.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천하를 끝까지 다스릴 수 없습니다.”

孝惠以此日飲為淫樂,不聽政,故有病也。
효혜제는 이것 때문에 날마다 술과 쾌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이 때문에 병이 났다.

▶ 酈侯 : 여후의 큰오빠 周呂侯 呂澤이 전사하여 그의 아들 呂台를 酈侯에 봉하였다.
▶ 煇耳 : 煇는 熏과 통용된다.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 넣다.
▶ 瘖藥 : 벙어리가 되는 약. 瘖(음)은 벙어리.
▶ 廁 : 돼지우리.
▶ 彘 : 돼지.

 

二年,楚元王、齊悼惠王皆來朝。
혜제 2(기원전193), 楚元王 劉交와 齊悼惠王 劉肥가 모두 입조하였다.

十月,孝惠與齊王燕飲太后前,孝惠以為齊王兄,置上坐,如家人之禮。
10월에 혜제와 齊王 劉肥는 여태후가 자리한 연회에 참석하였는데혜제는 齊王이 자신의 형이 되기 때문에 집안의 예를 따라 상석에 앉혔다.

太后怒,乃令酌兩卮酖,置前,令齊王起為壽。
여후가 노하여 鴆酒 두 잔을 따르게 해서 앞에다 놓고 제왕에게 일어나 축수를 올리게 하였다.

齊王起,孝惠亦起,取卮欲俱為壽。
제왕이 일어나자 혜제도 따라 일어나서 잔을 들고 함께 축수를 올리려 하였다.

太后乃恐,自起泛孝惠卮。
여태후가 두려워하였고일어나서 혜제의 술잔을 엎어버렸다.

齊王怪之,因不敢飲,詳醉去。
제왕이 괴상하게 여겨 감히 마시지 못하고 취한 척하며 자리를 떠났다.

問,知其酖,齊王恐,自以為不得脫長安,憂。
주위에 물어보아 그것이 독주였음을 알자제왕은 두려워하며 자신이 장안을 벗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 楚元王 : 劉交. 고조의 이복동생으로 유방이 황제가 된 후에 楚王이 되었고, 사후에 시호가 元王이다.
▶ 齊悼惠王 : 劉肥. 劉邦의 맏서자이다. 그 어머니는 다른 집안 출신의 첩실로 曹氏라 하였다.
▶ 燕飲 : 연회를 베풀다. 燕은 宴과 통한다.
▶ 卮 : 술잔.
▶ 為壽 : 축수하다. 오래 살기를 빌다.
▶ 泛(봉) : 엎다.
▶ 詳 : 佯과 통용된다. 가장하다.

 

齊內史士說王曰:
「太后獨有孝惠與魯元公主。
今王有七十餘城,而公主乃食數城。
王誠以一郡上太后,為公主湯沐邑,太后必喜,王必無憂。」
나라 內史 士가 제왕에게 권하였다.
태후에게는 혜제와 노원공주뿐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70여 을 가지고 계시지만공주는 몇 개의 성을 식읍으로 갖고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만약 군 하나를 태후께 바쳐 공주의 湯沐邑으로 삼으면 태후가 틀림없이 기뻐하실 터이고왕께도 틀림없이 우환이 없을 터입니다.”

▶ 食 : 食邑.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한 고을.
: 만약. 허사 을 참조하라

 

 

한문의 허사(虛詞) 誠

한문의 허사(虛詞) 誠 誠은 일반적으로 부사로 쓰이며, “진정으로” “확실히”의 뜻으로 쓰인다. (1) 誠은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로 쓰일 때 그 앞에 놓여 강조나 긍정을 나타낸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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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湯沐邑 : 周나라 때 생긴 제도로 제후의 사유 영지를 하사하여 그 읍의 수입으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비용(목욕재계하는 비용)을 충당하게 한 것이다.

 

於是齊王乃上城陽之郡,尊公主為王太后。
이에 제왕은 여후에게 城陽郡을 바치고 공주를 王太后로 높여 불렀다.

呂后喜,許之。
여후가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乃置酒齊邸,樂飲,罷,歸齊王。
제왕의 관저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즐겁게 마시고 술자리가 끝나자 제왕을 봉지로 돌려보냈다.

三年,方筑長安城,四年就半,五年六年城就。
혜제 3(기원전192), 비로소 장안성을 축조했는데, 4년이 되자 절반을 지었고 5~6년 만에 장안성이 완공되었다.

諸侯來會。十月朝賀。
제후들이 와서 조회하였으니, 10월 입조하여 하례하였다.

▶ 尊公主為王太后 : 제왕 劉肥와 노원공주는 어머니가 다른 남매인데, 어머니의 예로 태후로 불렀기 때문에 여후가 기뻐한 것이다.
▶ 齊邸 : 장안에 있는 齊王의 관저를 말한다.

 

七年秋八月戊寅,孝惠帝崩。
혜제 7(기원전188가을 8월 무인일효혜제가 세상을 떠났다.

發喪,太后哭,泣不下。
발상할 때 태후는 곡만 하고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留侯子張辟彊為侍中,年十五,謂丞相曰:
「太后獨有孝惠,今崩,哭不悲,君知其解乎?」
留侯의 아들 張辟彊이 겨우 열다섯 살에 侍中으로 있었는데 승상 陳平에게 물었다.
태후께 아들은 오직 혜제뿐이시고지금 붕어하셨는데도 곡만 하시고 슬퍼하지 않으시는데 군께서는 그 까닭을 아십니까?”

丞相曰:
「何解?」
승상이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辟彊曰:
「帝毋壯子,太后畏君等。
君今請拜呂臺、呂產、呂祿為將,將兵居南北軍,及諸呂皆入宮,居中用事,如此則太后心安,君等幸得脫禍矣。」
벽강이 말하였다.
황제께 장성한 아들이 없으니 태후께서는 군 등을 두려워하십니다.
군께서 지금 呂台·呂産·呂祿을 장군으로 삼아 南軍과 北軍을 이끌게 하고 여씨 일족을 모두 궁으로 들어오게 하여 궁중에 머물게 하고 정권을 맡기자고 청하시면태후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군 등도 요행히 화를 면할 수 있을 터입니다.”

▶ 泣 : 눈물.
▶ 丞相 : 당시 좌승상이었던 陳平을 말한다.
▶ 解 : 원인. 까닭.
▶ 南北軍 : 未央宮을 지키는 군대를 남군이라 하고, 長樂宮을 지키는 군대를 북군이라 불렀다.
▶ 用事 : 국사를 주관하다. 정권을 잡다.

 

丞相乃如辟彊計。
승상이 장벽강의 계책대로 하였다.

太后說,其哭乃哀。
태후가 기뻐하였고그의 통곡도 슬퍼졌다.

呂氏權由此起。
여씨의 권력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乃大赦天下。
곧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九月辛丑,葬。
9월 신축일혜제를 안장하였다.

太子即位為帝,謁高廟。
태자가 즉위하여 황제가 되어 고조 사당에 拜謁하였다.

元年,號令一出太后。
少帝 원년(기원전187), 법령과 명령이 모두 태후로부터 나왔다.

▶ 如 : ~에 따르다.
▶ 說 : 悦과 같다.
▶ 謁 : 알현하다. 예식을 거행하다.
▶ 號令 : 명령과 법령.

 

太后稱制,議欲立諸呂為王,問右丞相王陵。
태후가 황제를 칭하고 권한을 행사하면서여씨 일족을 왕으로 삼으려는 일을 의논하려고 우승상 王陵에게 물었다.

王陵曰:
「高帝刑白馬盟曰
『非劉氏而王,天下共擊之』。
今王呂氏,非約也。」
왕릉이 대답하였다.
고제께서 백마를 죽여 대신들에게 맹서하시기를,
유씨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공격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씨를 왕으로 삼는 것은 서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太后不說。
태후가 기뻐하지 않았다.

問左丞相陳平、絳侯周勃。
좌승상 진평과 강후 주발에게 물었다.

勃等對曰:
「高帝定天下,王子弟,今太后稱制,王昆弟諸呂,無所不可。」
주발 등이 대답하였다.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자제들을 왕으로 삼으셨듯이지금 태후께서 황제를 대행하시니 형제와 여씨들을 왕으로 못 삼을 까닭이 없습니다.”

太后喜,罷朝。
태후는 기뻐했고 조회는 끝났다.

▶ 稱制 :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명령을 내려 시행하다.
▶ 王陵 : 유방이 패현에서 일어나자 수천 명을 모아 귀의하여 유방을 따라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高祖 6년(기원전201) 安國侯에 봉해졌다가 右丞相이 되었다. 直言을 잘하였다.
▶ 刑白馬盟 : 백마를 죽여 이로써 맹세하다. 刑은 죽이다.
▶ 王 : 왕을 칭하다.
▶ 王呂氏 : 여씨를 왕으로 삼다.
▶ 昆弟 : 형제.

 

王陵讓陳平、絳侯曰:
「始與高帝啑血盟,諸君不在邪?
今高帝崩,太后女主,欲王呂氏,諸君從欲阿意背約,何面目見高帝地下?」
왕릉이 진평과 주발을 꾸짖었다.
처음 고제와 피를 바르며 맹서할 때 그대들은 없었소?
지금 고제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태후가 여자 임금으로 여씨들을 왕으로 삼으려 하는데그대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여후의 욕심에 영합하니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고제를 뵙겠소?”

陳平、絳侯曰:
「於今面折廷爭,臣不如君;
夫全社稷,定劉氏之後,君亦不如臣。」
진평과 강후가 말하였다.
지금 대놓고 반박하고 조정에서 논쟁하는 일이라면 이 그대만 못하지만사직을 보전하고 유씨 후손이 안정되게 하는 데는 그대가 만 못할 터이오.”

王陵無以應之。
왕릉이 대꾸하지 못하였다.

▶ 讓 : 꾸짖다.
▶ 啑血(삽혈) : 피를 바르다.
▶ 從 : 내버려두다. 방임하다.
▶ 阿 : 영합하다.
▶ 面折廷爭 : 임금에게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함. 廷爭은 조정에서 간하여 다투다.

 

 

十一月,太后欲廢王陵,乃拜為帝太傅,奪之相權。
11여태후가 王陵을 파면하려고 황제의 太傅로 임명하여 우승상의 권한을 빼앗았다.

王陵遂病免歸。
왕릉은 이에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乃以左丞相平為右丞相,以辟陽侯審食其為左丞相。
이에 좌승상 진평을 우승상에 임명하고 辟陽侯 審食其를 좌승상에 임명하였다.

左丞相不治事,令監宮中,如郎中令。
좌승상은 정무를 보지 못하게 하고 궁중 일만 감독하도록 하자 그 직책이 낭중령과 같았다.

食其故得幸太后,常用事,公卿皆因而決事。
심이기는 예전에 태후의 총애를 받았으므로늘 권력을 행사하였고공경들도 모두 그를 통해 정무를 결정하였다.

乃追尊酈侯父為悼武王,欲以王諸呂為漸。
여태후가 酈侯의 부친 여택을 悼武王으로 추존하였으며이로써 여씨들을 왕으로 삼기 시작하려 하였다.

▶ 不治事 : 좌승상의 업무를 관계하지 않다.
▶ 故 : 종전.
▶ 食其故得幸太后 : 고조 유방이 기원전205년 팽성(彭城)에서 패배했을 때 유방의 가족인 太公과 呂后를 호송하다가 함께 사로잡혀 인질이 되었는데, 이 일로 인해 여후의 신임을 받았다.
▶ 漸 : 시작하다. 발단하다.

 

四月,太后欲侯諸呂,乃先封高祖之功臣郎中令無擇為博城侯。
이듬해 4태후는 여씨들을 제후로 삼으려고먼저 고조의 공신 낭중령 馮無擇을 博城侯에 봉하였다.

魯元公主薨,賜謚為魯元太后。
노원공주가 죽자 노원태후라는 諡號를 내렸다.

子偃為魯王。
노원공주의 아들 張偃을 魯王에 봉하였다.

魯王父,宣平侯張敖也。
노왕의 아버지는 宣平侯 張敖이다.

封齊悼惠王子章為朱虛侯,以呂祿女妻之。
제도혜왕의 아들 劉章을 朱虛侯에 봉하여 여록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齊丞相壽為平定侯。少府延為梧侯。
제나라의 정승 齊壽를 平定侯에 봉하고少府 陽成延은 梧侯로 삼았다.

乃封呂種為沛侯,呂平為扶柳侯,張買為南宮侯。
이어 呂種을 沛侯呂平을 扶柳侯,張買를 南宮侯에 봉하였다.

▶ 侯諸呂 : 여씨 일족을 侯로 봉하다.
▶ 薨 : 薨逝하다 .임금이나 왕족 등을 높이어 그의 죽음을 이르는 말.
▶ 謚 : 諡號. 帝王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追贈하는 칭호.
▶ 張敖 : 조나라 왕 張耳의 아들. 한왕 5년(기원전202년) 장이가 죽자 장이의 아들 張敖가 그 뒤를 이어 조왕에 올랐다. 한 고조의 장녀인 魯元公主가 조왕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조나라의 승상 貫高 등의 사건이 발각되어 宣平侯로 강등되었었다.

 

太后欲王呂氏,先立孝惠後宮子彊為淮陽王,子不疑為常山王,子山為襄城侯,子朝為軹侯,子武為壺關侯。
태후는 여씨를 왕으로 삼기 위해 먼저 혜제의 후궁 소생 劉彊을 회양왕劉不疑를 常山王劉山을 襄城后劉朝를 軹侯劉武를 壺關侯에 봉하였다.

太后風大臣,大臣請立酈侯呂臺為呂王,太后許之。
태후가 대신들에게 암시하자 대신들은 酈侯 呂台를 呂王으로 봉하자고 청했고,태후는 이를 허락하였다.

▶ 後宮子 : 궁중의 일반 妃嬪소생의 아들.
▶ 風 : 諷과 통용된다. 암시하다.

 

建成康侯釋之卒,嗣子有罪,廢,立其弟呂祿為胡陵侯,續康侯後。
建成康侯 呂釋之가 죽자 자리를 계승할 아들은 죄를 지어 폐하고동생 呂祿을 胡陵侯로 삼아 康侯 여석지의 뒤를 잇게 하였다.

二年,常山王薨,以其弟襄城侯山為常山王,更名義。
여후 2(기원전186), 상산왕 유불의가 죽자 그 동생 襄城侯 劉山을 상산왕으로 봉하고 이름을 劉義로 바꾸었다.

十一月,呂王臺薨,謚為肅王,太子嘉代立為王。
11呂王 여태가 죽자 시호를 肅王이라고 하고그의 아들 呂嘉를 왕으로 봉하였다.

▶ 嗣子 : 후계자. 嫡長子.
▶ 續 : 계승하다.

 

三年,無事。
여후 3(기원전185), 아무 일도 없었다.

四年,封呂媭為臨光侯,呂他為俞侯,呂更始為贅其侯,呂忿為呂城侯,及諸侯丞相五人。
여후 4(기원전184), 여태후의 여동생 呂嬃를 臨光侯呂他를 兪侯呂更始를 贅其侯呂忿을 呂城侯에 봉하고또 제후왕의 정승 다섯 사람을 封候하였다.

▶ 呂嬃 : 여태후의 여동생으로 번쾌의 아내이다.

 

宣平侯女為孝惠皇后時,無子,詳為有身,取美人子名之,殺其母,立所名子為太子。
선평후 張敖의 딸이 孝惠皇后로 있을 때 아들이 없어 임신한 척하며 妃嬪의 아들을 데려다 자기 아들이라 하며 생모를 죽이고 그 아이를 태자로 세웠다.

孝惠崩,太子立為帝。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帝壯,或聞其母死,非真皇后子,乃出言曰:
「后安能殺吾母而名我?
我未壯,壯即為變。」
少帝가 장성하여 누군가에게서 그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이 황후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황후가 어떻게 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아들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직 덜 컸지만 장성하면 즉시 변란을 일으킬 것이다.”

▶ 美人 : 妃嬪. 제왕의 첩.
▶ 名之 : 자기 아들이라고 일컫다.

 

太后聞而患之,恐其為亂,乃幽之永卷中,言帝病甚,左右莫得見。
태후가 이 말을 듣고 걱정하며그가 난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永巷에 가두고 황제의 병이 심하다고 말하니측근들이 황제를 만날 수 없었다.

太后曰:
「凡有天下治為萬民命者,蓋之如天,容之如地,上有歡心以安百姓,百姓欣然以事其上,歡欣交通而天下治。
今皇帝病久不已,乃失惑惛亂,不能繼嗣奉宗廟祭祀,不可屬天下,其代之。」
태후가 말하였다.
무릇 천하를 소유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자는 하늘처럼 만물을 덮어주고땅처럼 만물을 감싸 안아야 하며황제가 기쁜 마음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면 백성은 기꺼이 황제를 섬기게 되니 서로 기쁜 마음으로 소통하여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지금 황제가 병이 오래되어 낫지 않고 정신이 미혹되고 혼미하여 종묘의 제사를 받들 수가 없어 천하를 맡길 수 없으니 누군가 대신해야 할 것이다.”

▶ 患 : 걱정하다.
▶ 幽 : 유폐하다.연금하다.
▶ 永卷 : 영항에 가두다. 永巷은 죄를 지은 궁녀를 가두는 방.
▶ 歡欣 : 매우 기뻐하다.
▶ 失惑 : 정신이상. 정신이 비정상적이다.
▶ 惛亂 : 정신이 혼미하다.

 

群臣皆頓首言:
「皇太后為天下齊民計所以安宗廟社稷甚深,群臣頓首奉詔。」
신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황태후께서 천하 백성을 위한 계획으로 종묘사직을 안정함이 이렇게 깊으시니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려 조서를 받들겠습니다.”

帝廢位,太后幽殺之。
황제를 폐위하고태후는 몰래 그를 죽였다.

五月丙辰,立常山王義為帝,更名曰弘。
5월 병진일상산왕 劉義를 황제로 세우고 이름을 劉弘으로 바꾸었다.

不稱元年者,以太后制天下事也。
元年이라고 칭하지 않은 것은 태후가 천하의 政事를 專制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以軹侯朝為常山王。
軹侯 劉朝를 상산왕에 봉하였다.

置太尉官,絳侯勃為太尉。
태위라는 관직을 설치하고강후 周勃을 태위로 삼았다.

▶ 齊民 : 평민. 齊는 동등하다.

五年八月,淮陽王薨,以弟壺關侯武為淮陽王。
여후 5(기원전183) 8회양왕 劉强이 죽자 그 동생 壺關侯 劉武를 회양왕으로 삼았다.

六年十月,太后曰呂王嘉居處驕恣,廢之,以肅王臺弟呂產為呂王。
여후 6(기원전182) 10태후가呂王 呂嘉가 평소의 처신이 교만하고 방자하다.’라고 하면서 그를 폐위하고肅王 呂台의 동생 呂產을 呂王에 봉하였다.

夏,赦天下。
여름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封齊悼惠王子興居為東牟侯。
제도혜왕의 아들 劉興居를 東牟侯에 봉하였다.

▶ 居處 : 평소의 처신.
▶ 驕恣 : 교만 방자하다.
▶ 呂臺(呂台) : 呂肅王 呂台. 전한의 異姓제후왕으로 한 고제의 외척 여씨 일족이며 呂나라의 첫 왕이다. 여태후의 오빠 呂澤의 장자로, 아버지가 장수로서 공이 있고 전사하여 동생 呂產과 함께 작위를 받아 鄜侯에 봉해졌다
▶ 呂産 : 여태후의 오빠인 여택의 아들.
▶ 劉興居 : 고제 유방의 손자이자 제도혜왕 유비의 아들이다.

 

七年正月,太后召趙王友。
여후 7(기원전181정월,태후가 趙王 劉友를 소환하였다.

友以諸呂女為受后,弗愛,愛他姬,諸呂女妒,怒去,讒之於太后,誣以罪過,曰:
「呂氏安得王!
太后百歲後,吾必擊之」。
유우는 여씨의 딸을 왕후로 삼았으나 사랑하지 않고 다른 희첩을 사랑하였으므로여씨 딸이 질투하여 화가 나서 태후에게 가서 헐뜯으며 유우의 죄과를 무함하였다.
여씨가 어찌 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태후가 죽은 뒤에는 내가 틀림없이 혼내 줄 터이다.”

太后怒,以故召趙王。
태후가 노하여 이를 빌미로 조왕을 소환한 것이다.

趙王至,置邸不見,令衛圍守之,弗與食。
조왕이 도착하자 관저에 두고 만나지 않은 채 호위병에게 명해 지키게 하면서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 趙王友 : 劉友. 고조의 여섯 번째 아들.
처음에 淮陽王에 봉해졌고, 후에 趙王이 되었으며 여후에 의해 幽禁되어 굶어 죽었으므로 시호를 幽王이라 하였다.
▶ 百歲後 : 죽은 뒤.

 

其群臣或竊饋,輒捕論之,趙王餓,乃歌曰:
「諸呂用事兮劉氏危,迫脅王侯兮彊授我妃。
我妃既妒兮誣我以惡,讒女亂國兮上曾不寤。
我無忠臣兮何故棄國?自決中野兮蒼天舉直!
于嗟不可悔兮寧蚤自財。為王而餓死兮誰者憐之!
呂氏絕理兮託天報仇。」
조왕의 신하 중 누군가가 몰래 먹을 갖다 주면그때마다 붙잡혀 처벌받았으며조왕은 굶주린 채 노래를 불렀다.
여씨들이 정권을 잡으니 유씨가 위태롭네왕과 제후를 협박하여 강제로 내게 왕비를 주었네.
내 왕비가 질투하여 내게 죄가 있다고 모함했네모함하는 여자가 나라를 어지럽히거늘 의외로 황제는 깨닫지 못하네.
내게는 충신이 없는가어찌 나라를 버리는가들판에서 목숨을 끊어 하늘이 바로 알게 하리라!
후회스럽네차라리 일찍 자결할 것을왕이 굶어 죽으니 누가 불쌍히 여길까!
여씨가 천하의 이치를 끊으니 하늘이 대신 복수해주리.”

丁丑,趙王幽死,以民禮葬之長安民冢次。
정축일에 조왕이 감금된 채 굶어죽으니평민의 예로 장안성 백성 무덤 옆에 안장하였다.

▶ 竊饋 : 몰래 음식물을 보내다.
▶ 論 : 죄를 따지다.
▶ 讒女 : 참소한 여자. 조왕의 왕후를 말한다.
: 의외로.

[한문의 허사] - 한문의 허사(虛詞) 曾(거듭)

 

한문의 허사(虛詞) 曾(거듭)

한문의 허사(虛詞) 曾(거듭) “曾”은 두 가지 별개의 글자로 쓰인다. ① “曾일찍증”은 [céng]으로 읽으며 “嘗”[일찍이 이전에]자와 용법이 같다. 과거에 모종의 행위나 정황이 있었음을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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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舉直 : 공정하게 하다.
▶ 于嗟 : 감탄사.
▶ 自財 : 자살하다. 財는 裁와 통용된다.
▶ 次 : 옆.

 

己丑,日食,晝晦。
기축일일식이 있어 대낮에도 어두웠다.

太后惡之,心不樂,乃謂左右曰:
「此為我也。」
태후는 이를 불길하게 여겨 마음이 편치 않아서 측근에게 말하였다.
이는 나 때문이다.”

▶ 晦 : 어둡다.
▶ 惡 : 불길하다.

 

二月,徙梁王恢為趙王。
2梁王 劉恢를 趙王으로 옮겼다.

呂王產徙為梁王,梁王不之國,為帝太傅。
呂王 呂產을 양왕으로 옮겼으나 양왕 여산은 封國으로 가지 않고 황제 유흥의 태부가 되었다.

立皇子平昌侯太為呂王。
혜제의 아들 평창후 劉太를 呂王으로 봉하였다.

更名梁曰呂,呂曰濟川。
양나라를 나라로 개명하고원래의 나라는 濟川으로 개명하였다.

太后女弟呂媭有女為營陵侯劉澤妻,澤為大將軍。
태후의 여동생 呂媭의 딸이 있었는데 營陵侯 劉澤의 아내가 되었으며유택은 당시 대장군이었다.

太后王諸呂,恐即崩後劉將軍為害,乃以劉澤為瑯邪王,以慰其心。
태후는 여씨들을 왕으로 봉했지만 자신이 죽은 뒤 유택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유택을 瑯邪王으로 삼아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 梁王恢 : 劉恢. 趙 共王 劉恢. 전한 고제의 아들로, 고제11년(기원전196년)양나라 왕 팽월이 제거된 후 그 후임으로 양나라에 봉해졌었다.
▶ 皇子平昌侯太 : 혜제의 아들 劉太. 제천왕으로 봉해졌다. 여씨세력을 타도한 후 고황후가 속여서 혜제의 아들인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하여 혜제의 친아들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 營陵侯劉澤 : <한서>에서는 고제의 재종형제라고 한다. 한왕 3년(기원전204년)에 낭중이 되었고, 고제 11년(기원전196년)진희의 난 진압에서 진희의 장수 王黃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營陵侯에 봉해졌다.

 

梁王恢之徙王趙,心懷不樂。
양왕 유회는 趙王으로 옮긴 후 마음속으로는 즐겁지 않았다.

太后以呂產女為趙王后。
여태후는 呂產의 딸을 조왕 유회의 왕후로 삼았다.

王后從官皆諸呂,擅權,微伺趙王,趙王不得自恣。
왕후를 수행한 관원들은 모두 여씨들로 권력을 휘두르며 조왕을 몰래 감시했기 때문에 조왕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王有所愛姬,王后使人酖殺之。
조왕에게 총애하는 희첩이 있었지만왕후가 사람을 시켜 독주를 먹여 죽였다.

王乃為歌詩四章,令樂人歌之。
조왕은 이에 4장으로 된 노래 가사를 지어 악공에게 부르게 하였다.

王悲,六月即自殺。
조왕은 슬퍼하다가 6월에 자살하였다.

太后聞之,以為王用婦人棄宗廟禮,廢其嗣。
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조왕이 부인 때문에 종묘에 대한 예를 저버렸다고 여기고그의 후대 왕위 계승을 폐지하였다.

▶ 微伺 : 몰래 감시하다.
▶ 自恣 : 제멋대로 하다.
▶ 用 : ~때문에.
▶ 廢其嗣 : 후대의 왕위 계승권을 폐지하다.

 

宣平侯張敖卒,以子偃為魯王,敖賜謚為魯元王。
선평후 張敖가 죽자 그 아들 장언을 노왕으로 삼고 장오에게 魯元王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秋,太后使使告代王,欲徙王趙。
가을태후가 사신을 보내 代王 劉恒에게 趙王으로 옮길 것이라고 하였다.

代王謝,願守代邊。
代王은 사양하며 대 지역 변경을 지키길 원한다고 하였다.

▶ 劉恒 : 高祖 劉邦의 넷째 아들로 처음에 代王에 책봉되어 中都에 도읍하였다. 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太尉 周勃과 승상 陳平등 중신의 옹립으로 文帝가 되었다.

 

太傅產、丞相平等言,武信侯呂祿上侯,位次第一,請立為趙王。
太傅 呂產과 승상 진평 등이 여태후에게 말하기를,
무신후 呂祿은 上侯이며 열후 중 제1순위이니 조왕으로 삼으시길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太后許之,追尊祿父康侯為趙昭王。
태후가 이를 허락하고 여록의 아버지 강후를 趙昭王으로 추존하였다.

九月,燕靈王建薨,有美人子,太后使人殺之,無後,國除。
9연의 靈王 劉建이 죽고 희첩 소생의 아들이 있었는데태후가 사람을 보내 죽이니 후사가 끊어져 봉국이 취소되었다.

八年十月,立呂肅王子東平侯呂通為燕王,封通弟呂莊為東平侯。
여후 8(기원전180) 10呂肅王의 아들 東平侯 呂通을 연왕으로 세우고여통의 동생 呂莊을 동평후에 봉하였다.

▶ 呂産과呂祿 : 呂産은 여태후의 오빠인 여택의 아들이며, 呂祿)은 여태후의 작은 오빠 여석지의 아들이다.
▶ 劉建 : 전한 고조의 8남으로, 고조 15년(기원전196년)에 연왕 노관이 모반을 일으켰다가 흉노로 달아나자 이듬해에 후임 연왕으로 즉위하였다. 재위15년 만에 죽어 시호를 靈이라 하였다. 당시는 여태후가 칭제할 때인데, 유씨 왕들을 제거하고 여씨를 왕으로 세우고 있었다.유건에게는 첩이 낳은 아들이 있었으나, 이 때문에 태황태후에게 살해당해 유건의 후사는 끊겼고 연왕으로는 여후의 오빠 여택의 손자이며 여태의 아들인 여통이 책봉되었다.
▶ 國除 : 封國을 취소하다.

 

三月中,呂后祓,還過軹道,見物如蒼犬,據高后掖,忽弗復見。
3월 중순여태후가 祓祭를 지내고 돌아오다 軹道를 지날 때푸른 개처럼 생긴 괴물이 고후의 겨드랑이를 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卜之,云趙王如意為祟。
점을 치니 조왕 劉如意의 귀신이 재앙을 내린 것이라 하였다.

高后遂病掖傷。
고후는 겨드랑이 상처로 인하여 병을 얻게 되었다.

▶ 祓 : 재난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일종의 제사.
▶ 軹道 : 지금의 하남성 濟源縣 경내에 있었던 고대의 도로.
▶ 據 : 부딪치다.
▶ 掖 : 腋과 같다. 겨드랑이.
▶ 趙王如意 : 趙隱王 劉如意. 한 고조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인데, 고조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해 독살되었다.
▶ 為祟(위수) : 작수(作祟). 귀신이 양화를 입히다.
祟는 귀신이 사람에게 재앙을 입히다.

 

高后為外孫魯元王偃年少,蚤失父母,孤弱,乃封張敖前姬兩子,侈為新都侯,壽為樂昌侯,以輔魯元王偃。
여태후는 외손자 魯元王 張偃이 나이가 어리고 일찍 부모를 잃어서외롭고 나약하다고 여기고장오의 예전 희첩 소생의 두 아들 중 張侈를 新都侯張壽를 樂昌侯에 봉하여 노원왕 장언을 보좌하게 하였다.

及封中大謁者張釋為建陵侯,呂榮為祝茲侯。
또 中大謁者 張釋을 建陵侯呂榮을 祝玆侯에 봉하였다.

諸中宦者令丞皆為關內侯,食邑五百戶。
환관 중에서 이나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關內侯로 봉하고 食邑 500호를 내렸다.

▶ 張偃 : 여태후가 세운 이성 제후왕으로, 고황후 사후 여씨가 몰락하면서 왕위를 잃었으나 홀로 죽음을 면하였다. 할아버지는 조경왕 장이이며, 아버지는 선평무후 장오이고 어머니는 노원공주다.
▶ 食邑 :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

 

七月中,高后病甚,乃令趙王呂祿為上將軍,軍北軍;呂王產居南軍。
7월 중순고후의 병세가 심해지자 趙王 呂祿을 상장군으로 삼아 북군을 통솔하게 하고呂王 呂產은 남군을 통솔하게 하였다.

呂太后誡產、祿曰:
「高帝已定天下,與大臣約,曰
『非劉氏王者,天下共擊之』。
今呂氏王,大臣弗平。
我即崩,帝年少,大臣恐為變。
必據兵衛宮,慎毋送喪,毋為人所制。」
여태후가 여산과 여록에게 훈계하였다.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신 후 대신들과 맹서하시기를,
유씨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그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여씨들이 왕이 되었으니 대신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터이다.
내가 죽으면 황제가 어려서 대신들이 아마 변란을 일으킬 터이다.
반드시 군대를 장악하여 황궁을 호위하고부디 내 상여를 배웅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하지 않도록 하라.”

▶ 軍北軍 : 북군을 통솔하다. 軍은 통솔하다.
▶ 慎 : 부디.

 

辛巳高后崩遺詔賜諸侯王各千金將相列侯郎吏皆以秩賜金
신사일, 여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遺詔에 따라 제후왕들에게 각각 황금 1천근과 將相 列侯  郎吏에게는 모두 등급에 따라 황금을 하사하였다.

大赦天下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以呂王產為相國以呂祿女為帝后
여왕 여산을 상국으로, 여록의 딸을 황후로 삼았다.

▶ 遺詔 : (황제가 죽기 전에 남긴)조서.
▶ 秩 : 등급. 순서.

 

高后已葬以左丞相審食其為帝太傅
고후의 장례를 마치자 좌승상 審食其를 황제의 태부로 삼았다.

▶ 審食其 : 유방과 동향인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어 辟陽侯에 봉해졌다. 여후가 聽政 하자 좌승상에 임명되었으며, 조령의 출납을 장악하여 공경대신들이 모두 그를 통해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로 인해 심이기와 여후를 내연의 관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문제 때 淮南厲王 劉長에게 피살되었다.

 

朱虛侯劉章有氣力東牟侯興居其弟也
朱虛侯 劉章은 기백과 능력이 있었으며, 東牟侯 劉興居는 그의 동생이었다.

皆齊哀王弟居長安
모두 齊哀王 유양의 동생으로 장안에 거주하고 있었다.

當是時諸呂用事擅權欲為亂畏高帝故大臣絳灌等未敢發
당시 여씨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며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고제의 옛 대신인 絳侯 周勃 灌嬰 등이 두려워 감히 실행하지 못하였다.

朱虛侯婦呂祿女陰知其謀
주허후의 부인은 여록의 딸이었으므로 주허후는 그 음모를 은밀히 알게 되었다.

恐見誅乃陰令人告其兄齊王欲令發兵西誅諸呂而立
이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은밀히 사람을 보내 형인 제애왕 유양에게 알리고, 군대를 서쪽으로 출동시켜 여씨들을 없애고 유양을 帝位에 옹립하려 하였다.

朱虛侯欲從中與大臣為應
주허후는 궁에서 대신들과 내응하려 하였다.

齊王欲發兵其相弗聽
제왕이 병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그의 정승 소평이 복종하지 않았다.

▶ 朱虛侯劉章 : 齊 悼惠王의 아들 劉章. 朱虛侯에 봉해졌으며 여록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齊悼惠王은 유비를 말하며 고조 유방의 맏서자이다.
▶ 有氣力 : 기개가 있고 용기와 힘이 있다.
▶ 劉興居 : 고조의 손자로 제도혜왕 유비의 아들이며, 제애왕 유양과 성양경왕 유장의 아우다.
▶ 齊哀王 : 劉襄. 고조의 손자로 제나라 왕이며, 부친은 고조의 서장자인 제도혜왕 유비이다. 황실의 장손이고 여씨 정권 타도에 많은 공이 있어, 황제 자리를 두고 문제와 겨루었다.
▶ 見誅 : 피살당하다.
▶ 為應 : 內應하다. 남몰래 적과 통하다.

 

八月丙午齊王欲使人誅相相召平乃反舉兵欲圍王王因殺其相遂發兵東詐奪瑯邪王兵并將之而西
8월 병오일, 齊王이 사람을 시켜 정승을 죽이려 하자, 정승 召平이 반란하여 병사를 일으켜 왕궁을 포위하려 하였으나, 제왕은 이 틈에 승상을 죽이고 군대를 동쪽으로 보내 속임수로 낭야왕 유택의 군대를 빼앗고, 그 군대와 함께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語在齊王語中
이 일은齊悼惠王世家에 기록되어 있다.

▶ 召平 : 전한 때의 齊相. 여후가 죽은 뒤 齊王 劉襄이 군대를 보내 서쪽으로 京師로 들어가 여씨일족을 주륙하려 하였다. 소평이 군사를 일으켜 들어가 왕궁을 지키자 魏勃이 대신 병사를 이끌겠다고 요청하였다. 이에 그를 믿었는데 위발이 병사로 相府를 포위하자 자살하였다.<사기 세가 권52. 제도혜왕세가>
▶ 詐奪瑯邪王兵 : 제왕 유양은 낭야왕에게 여씨들이 난을 일으켜 토벌코자 한다며 낭야왕을 만나 억류하고 낭야국의 병력을 모두 징발하였다.
▶ 并 : 같이. 합해서.
▶ 齊王語 : <齊悼惠王世家:사기 세가 권 52.> 를 말한다.

 

齊王乃遺諸侯王書曰
齊王은 이에 제후왕들에게 書信을 보내 알렸다.

高帝平定天下王諸子弟悼惠王王齊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子弟들을 왕으로 봉하셨고 도혜왕은 제나라의 왕이 되었다.

悼惠王薨孝惠帝使留侯良立臣為齊王
도혜왕이 세상을 떠나시자, 혜제께서는 유후 장량을 보내 을 제왕으로 삼으셨다.

孝惠崩高后用事春秋高聽諸呂擅廢帝更立又比殺三趙王滅梁燕以王諸呂分齊為四
혜제께서 세상을 떠나고 고후가 정권을 잡았으나 나이가 많아 여씨들의 말을 듣고 멋대로 황제를 폐위하고 바꾸었으며,  趙王 셋을 잇달아 죽이고, ··나라를 멸하고 여씨들을 왕에 앉혔으며, 제나라를 넷으로 나누었다.

忠臣進諫上惑亂弗聽
충신들이 간언했으나 태후는 미혹되어 듣지 않았다.

▶ 春秋高 : 나이가 많다.
▶ 比 : 잇닿다.
▶ 三趙王 : 유여의, 유우, 유회.
▶ 惑亂 : 미혹시키다. 혼란시키다.

 

今高后崩而帝春秋富未能治天下固恃大臣諸侯
지금 고후가 세상을 떠났으나 황제는 나이가 어려 천하를 다스릴 수 없으니, 당연히 대신과 제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而諸呂又擅自尊官聚兵嚴威劫列侯忠臣矯制以令天下宗廟所以危
그러나 여씨들은 또다시 멋대로 자신들의 관직을 높이고, 군대를 모아 위세를 부리며, 열후와 충신들을 협박하고, 황제의 명을 詐稱하여 천하를 호령하니, 종묘가 이 때문에 위태롭다.

寡人率兵入誅不當為王者。」
이에 과인은 군사를 이끌고 入京하여 부당하게 왕이 된 자를 죽일 터이다.”

▶ 春秋富 : 나이가 어리다. 富는‘어리다’.
▶ 威 : 위세.
▶ 矯制 : 황제의 명을 사칭하다.

 

漢聞之相國呂產等乃遣潁陰侯灌嬰將兵擊之
한나라의 조정에서 이를 듣고 相國 呂產 등이 곧 潁陰侯 灌嬰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灌嬰至滎陽乃謀曰
諸呂權兵關中欲危劉氏而自立
今我破齊還報此益呂氏之資也。」
관영이 형양에 이르러 장수들과 상의하며 말하였다.
여씨들이 관중의 병권을 장악하고 유씨를 위태롭게 하여 보위에 오르려 한다.
지금 우리가 제나라를 깨뜨리고 돌아가 보고한다면, 이는 여씨의 밑천을 더해주는 것이다.”

乃留屯滎陽使使諭齊王及諸侯與連和以待呂氏變共誅之
그러고는 형양에 머물러 주둔하면서 사신을 보내 제왕과 제후들에게 서로 연합하여 여씨가 난을 일으키길 기다렸다가 함께 주멸하자고 권유하였다.

齊王聞之乃還兵西界待約
제왕은 이 말을 듣고 군대를 돌려 서쪽 境界에서 약속을 기다렸다.

▶ 漢 : 한나라의 조정.
▶ 權兵 : 군권을 장악하다.

 

呂祿呂產欲發亂關中內憚絳侯朱虛等外畏齊楚兵又恐灌嬰畔之欲待灌嬰兵與齊合而發猶豫未決
여록과 여산이 관중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안으로는 강후 주발과 주허후 유장 등이 꺼려지고, 밖으로는 제나라와 초나라의 군대가 두렵고, 또 관영이 배신할까 염려하여, 관영의 군대가 제나라의 군대를 교전하기를 기다렸다가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고, 미루어 결정하지 못하였다.

當是時濟川王太淮陽王武常山王朝名為少帝弟及魯元王呂后外孫皆年少未之國居長安
당시 濟川王 劉太, 淮陽王 劉武, 常山王 劉朝는 명목상 少帝 유흥의 동생들이었고, 魯元王 張偃은 여후의 외손이었지만 모두 나이가 어려 封國으로 가지 않고 장안에 거주하고 있었다.

趙王祿梁王產各將兵居南北軍皆呂氏之人
조왕 여록과 양왕 여산은 각각 군사를 이끌고 남군과 북군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 여씨 일족이었다.

列侯群臣莫自堅其命
열후와 신하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 畔 : 叛과 통용된다. 배반하다.
▶ 合 : 교전하다.
▶ 自堅 : 스스로를 지키다.

 

太尉絳侯勃不得入軍中主兵
태위 강후 周勃은 군영으로 들어가 군대를 부릴 수 없었다.

曲周侯酈商老病其子寄與呂祿善
曲周侯 酈商은 늙어 병들었고, 그의 아들 酈寄가 여록과 친한 사이였다.

絳侯乃與丞相陳平謀使人劫酈商
이에 강후 주발은 승상 진평과 모의하여 사람을 역상에게 보내 협박하게 하였다.

令其子寄往紿說呂祿曰
高帝與呂后共定天下劉氏所立九王呂氏所立三王皆大臣之議事已布告諸侯諸侯皆以為宜
今太后崩帝少而足下佩趙王印不急之國守藩乃為上將將兵留此為大臣諸侯所疑
足下何不歸印以兵屬太尉
請梁王歸相國印與大臣盟而之國齊兵必罷大臣得安足下高枕而王千里此萬世之利也。」
그리고 역상의 아들 역기가 가서 여록을 속여 설득하게 하였다.
고제께서 여후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시고 유씨로 세운 왕이 아홉이고, 여씨로 세운 왕은 셋이니, 모두 대신들과 논의한 것으로 이를 제후들에게 알리자 제후들은 모두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태후께서 세상을 뜨시고 황제는 어리신데 족하께서는 趙王의 인수를 차고 있으면서, 서둘러 封國인 조나라로 가서 藩國이 되지 않고, 상장군이 되어 군대를 이곳에 머물러 두니, 대신과 제후들에게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족하께서는 어찌하여 관인을 반환하여 군대를 태위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입니까?
양왕 여산도 상국의 도장을 반환하고 대신들과 맹서하고 봉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하였으니, 제나라는 분명 군대를 거두고 대신들도 안심할 터이며, 족하께서도 베개를 높여 편히 자면서 천 리의 땅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터이니, 이야말로 만세토록 이로운 일입니다.”

▶ 酈寄 : 酈商의 아들로 자는 況이다.
고후8년, 고후가 죽었을 때 대신들은 전횡을 일삼던 여록·여산 등 여씨 일족을 주멸하려 하였다. 마침내 제왕이 거병하였고 여록 등은 관영을 보내 유양을 치게 하였으나 관영과 유양은 서로 모의하고 싸우지 않았다.
이때 태위 주발과 승상 진평이 역기의 아버지 역상을 협박하니, 평소 여록과 친분이 있었던 역기는 여록에게 봉국으로 갈 것을 권하였다.
여록은 역기의 말을 옳게 여겼고, 자주 사냥을 나갔다.
이에 주발은 역기와 전객 유갈을 여록에게 보내 황명을 사칭하여 북군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가도록 하였다.
여록은 역기 등의 말대로 하였고, 결국 궁궐은 대신들이 장악하였다.
여산은 살해당하였고, 여록을 포함한 여씨 일족은 모두 주살되었다.
<史記列傳 권95 樊酈滕灌列傳>
▶ 使人劫酈商 : 酈寄의 아버지 酈商을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 여록에게 가서 설득하지 않으면 장차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劫은 협박하여 인질로 삼는다는 뜻.
▶ 紿 : 기만하다.속이다.
▶ 藩 : 울타리. 즉 제후왕의 封國을 말한다.

 

呂祿信然其計欲歸將印以兵屬太尉
여록은 역기의 계책을 옳다고 믿고 장군의 도장을 반환하고 병권을 태위에게 돌려주고자 하였다.

使人報呂產及諸呂老人或以為便或曰不便計猶豫未有所決
이에 사람을 보내 여산과 여씨 장로들에게 알리니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좋지 않다고 하여, 계획을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呂祿信酈寄時與出游獵
여록은 역기를 신임하여 자주 그와 사냥을 나갔다.

過其姑呂媭媭大怒
若為將而棄軍呂氏今無處矣。」
여록의 고모 呂媭의 집을 방문하자 여수가 대노하며 말하였다.
네가 장군의 신분으로 병권을 버렸으니 이제 여씨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다.”

乃悉出珠玉寶器散堂下
毋為他人守也
그리고는 珠玉 寶器를 마당에 팽개치며 말하였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겠다.”

▶ 信然 : 믿다.
▶ 便 : 적합하다.
▶ 過 : 방문하다.
▶ 守 : 요구하다. 毋為他人守也는 毋為他人所守也로 해석하였다.

 

 

左丞相食其免。
좌승상 심이기가 면직되었다.

八月庚申旦,平陽侯窋行御史大夫事,見相國產計事。
8월 경신일 아침, 어사대부의 직무를 맡은 평양후 조줄이 상국 여산을 만나서 정사를 논의하였다.

郎中令賈壽使從齊來,因數產曰:
「王不蚤之國,今雖欲行,尚可得邪?」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낭중령 賈壽가 돌아와 기회를 틈타 여산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일찍이 봉국으로 가지 않았으니 비록 지금 가려 한들 갈 수 있겠소이까?”

具以灌嬰與齊楚合從,欲誅諸呂告產,乃趣產急入宮。
그리고는 관영이 제나라 및 초나라와 합종하여, 여씨들을 주멸하려 한다는 사실을 여산에게 상세히 고하면서 여산에게 급히 입궁하라고 재촉하였다.

▶ 曹窋 : 고조의 공신 趙參의 아들. 여태후 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고, 고후가 세상을 떠나자 조줄은 대신들과 함께 呂祿 등을 없애는 일에 동조하지 않았다.
▶ 賈壽 : 고후 8년, 태위 주발은 세도를 부리던 여씨 가문을 타도할 요량으로 여록·여산으로 하여금 봉국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였다. 여산이 망설이는 사이 8월에, 낭중령 가수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는 여산을 말리는 한편 조정의 대신들이 여씨를 숙청하려 한다고 알려주었다. 여산은 급히 궁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결국 유장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 合從 : 연합하다.從은 縱과 같다.
▶ 趣 : 재촉하다.

 

 

平陽侯頗聞其語,乃馳告丞相、太尉。
평양후 조줄이 이 말을 대충 듣고 바로 달려가 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에게 고하였다.

太尉欲入北軍,不得入。
태위 주발이 북군의 진영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襄平侯通尚符節。
이때 襄平侯 紀通이 부절을 관리하고 있었다.

乃令持節矯內太尉北軍。
符節을 주어 태위 주발을 북군에 들이도록 황제의 명령을 사칭하게 하였다.

太尉復令酈寄與典客劉揭先說呂祿曰:
「帝使太尉守北軍,欲足下之國,急歸將印辭去,不然,禍且起。」
태위는 또 역기와 典客 劉揭에게 명하여 우선 여록을 이렇게 회유토록 하였다.
황제께서 태위는 북군을 지키고 족하는 封國으로 가길 바라니, 서둘러 인수를 반납하고 떠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화를 당하겠습니다.”

▶ 頗 : 자못, 대충.
▶ 紀通 : 전사한 아버지 紀成의 공적을 추념하여, 고제 8년 개국공신 서열 66위로 襄平侯에 봉해졌다.
▶ 尚 : 주관하다.
▶ 符節 : 使臣의 증표.
▶ 矯 : 황제의 명이라 사칭하다.
▶ 内 : 들어가게 하다.
▶ 典客 : 귀화한 이민족을 관할하는 관리.

 

呂祿以為酈兄不欺己,遂解印屬典客,而以兵授太尉。
여록은 酈兄(역기)이 자신을 속이지 않으리라 여기고, 장군의 인수를 풀어 전객 유갈에게 건네주고 병권을 태위 주발에게 넘겨주었다.

太尉將之入軍門,行令軍中曰:
「為呂氏右袒,為劉氏左袒。」
태위가 印綬를 가지고 북군의 군문으로 들어가서 군중에 명령을 내렸다.
여씨를 따를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를 따를 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

軍中皆左袒為劉氏。
군사들은 모두 유씨를 위해 左袒하였다.

太尉行至,將軍呂祿亦已解上將印去,太尉遂將北軍。
태위가 당도할 무렵 여록 장군도 역시 상장군의 인수를 풀어놓고 군영을 떠나니, 태위는 마침내 북군을 통솔하게 되었다.

▶ 酈兄 : 酈寄는 酈商의 아들로 字가 況이며 呂祿과 친하게 지냈다.
▶ 將 : 가지다.
▶ 袒 : 웃통을 벗다. 어깨를 드러내다. 복종,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行至 : 도착하려 할 때.

 

然尚有南軍。
그러나 아직 남군이 남아 있었다.

平陽侯聞之,以呂產謀告丞相平,丞相平乃召朱虛侯佐太尉。
평양후 조줄이 이 소식을 듣고 여산의 음모를 승상 진평에서 고하자, 승상은 바로 주허후 유장을 불러 태위 주발을 돕게 하였다.

太尉令朱虛侯監軍門。
태위는 주허후 유장에게 군문을 감독하게 하였다.

令平陽侯告衛尉:
「毋入相國產殿門。」
평양후 조줄에게 명하여 衛尉에게
상국 여산을 궁전 문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라.”고 고하도록 하였다.

呂產不知呂祿已去北軍,乃入未央宮,欲為亂,殿門弗得入,裴回往來。
여산은 여록이 이미 북군을 떠났음을 모른 채 未央宮으로 들어가서 변란을 일으키고자 했는데 궁궐 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리저리 배회하였다.

平陽侯恐弗勝,馳語太尉。
평양후 조줄은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할까 두려워 태위에게 달려가 보고하였다.

太尉尚恐不勝諸呂,未敢訟言誅之,乃遣朱虛侯謂曰:
「急入宮衛帝。」
태위 역시 여씨들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감히 그를 토벌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였으며, 곧 주허후 유장을 보내며
서둘러 입궁하여 황제를 호위하라.”라고 하였다.

▶ 南軍 : 未央宮을 지키는 군대를 남군이라 하고, 長樂宮을 지키는 군대를 북군이라 불렀다.
▶ 入 : 진입하게 하다.
▶ 裴回 : 徘徊와 같다.
▶ 訟言 : 공개적으로 말하다.

 

朱虛侯請卒,太尉予卒千餘人。
주허후가 군사를 요청하자 태위는 병졸 천여 명을 주었다.

入未央宮門,遂見產廷中。
주허후가 미앙궁 궁문으로 들어가는데 여산이 궁안에 있음을 보았다.

日餔時,遂擊產。
저녁 무렵 마침내 여산을 공격하였다.

產走,天風大起,以故其從官亂,莫敢鬬。
여산이 달아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여산을 따르던 관리들이 혼란에 빠져 감히 싸우지 못하였다.

逐產,殺之郎中府吏廁中。
주허후가 여산을 뒤쫓아 낭중령 관부의 측간에서 죽였다.

▶ 請卒 : 군사를 요청하다.
▶ 日餔 : 저녁 무렵. 餔는 申時에 먹는 밥.
▶ 以故 : 이 때문에.

 

朱虛侯已殺產,帝命謁者持節勞朱虛侯。
주허후 劉章 呂產을 죽이자, 황제가 謁者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주허후를 위로하게 하였다.

朱虛侯欲奪節信,謁者不肯,朱虛侯則從與載,因節信馳走,斬長樂衛尉呂更始。
주허후가 부절을 빼앗으려 하자 謁者가 응하지 않으니, 주허후가 곧 알자를 수레에 태우고 부절을 보여주며 말을 치달려 장락궁의 衛尉 呂更始를 참수하였다.

還,馳入北軍,報太尉。
그런 후 수레를 돌려 북군으로 말을 달려 태위에게 보고하였다.

太尉起,拜賀朱虛侯曰:
「所患獨呂產,今已誅,天下定矣。」
태위가 일어나 주허후에게 賀禮하며 말하였다.
염려한 것은 여산뿐이었는데 이제 이미 죽였으니 천하가 평정되었소이다.”

遂遣人分部悉捕諸呂男女,無少長皆斬之。
이어 사람들을 조를 나누어 보내 여씨의 남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목을 베었다.

▶ 朱虛侯 : 제 도혜왕의 아들 유장.
▶ 勞 : 위로하다.
▶ 因 : 의지하다.
▶ 拜賀 : 축하드리다.
▶ 分部 : 조를 나누다.

 

 

辛酉,捕斬呂祿,而笞殺呂媭。
신유일, 여록을 잡아 참수하고 여수는 笞刑으로 죽였다.

使人誅燕王呂通,而廢魯王偃。
사람을 보내 燕王 呂通을 죽이고, 魯王 張偃을 폐위하였다.

壬戌,以帝太傅食其復為左丞相。
임술일, 황제의 태부 심이기를 다시 좌승상으로 임명하였다.

戊辰,徙濟川王王梁,立趙幽王子遂為趙王。
무진일, 濟川王 梁王으로 옮기고, 趙幽王의 아들 劉遂를 조왕에 봉하였다.

遣朱虛侯章以誅諸呂氏事告齊王,令罷兵。
주허후 유장을 보내 여씨들을 죽인 일을 제왕 유양에게 보고하고 군사를 철수시키게 하였다.

灌嬰兵亦罷滎陽而歸。
관영의 군대도 형양에서 철수하여 도성으로 돌아왔다.

▶ 呂媭 : 여태후의 여동생.
▶ 笞 : 때리다. 매질하다. 笞刑.
▶ 呂通 : 여후의 오빠 여택의 손자이며 여태의 아들이다.
▶ 張偃 : 여태후가 세운 이성 제후왕으로, 고황후 사후 여씨가 몰락하면서 왕위를 잃었으나 홀로 죽음을 면하였다. 할아버지는 조경왕 장이이며, 아버지는 선평무후 장오이고 어머니는 노원공주다.

 

 

諸大臣相與陰謀曰:
「少帝及梁、淮陽、常山王,皆非真孝惠子也。
呂后以計詐名他人子,殺其母,養後宮,令孝惠子之,立以為後,及諸王,以彊呂氏。
今皆已夷滅諸呂,而置所立,即長用事,吾屬無類矣。
不如視諸王最賢者立之。」
조정의 대신들은 은밀히 서로 계략을 꾸몄다.
少帝를 비롯하여 梁王 劉太, 淮陽王 劉武, 常山王 劉朝는 모두 혜제의 친아들들이 아니다.
여후가 계략을 꾸며 다른 사람의 자식을 황제의 아들로 사칭하고, 이들의 생모를 죽이고, 후궁에서 기르게 해서 혜제의 아들로 삼거나 후계자로 세우고 왕들로 봉해 여씨의 세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 여씨들을 전부 없앴지만 그들이 세운 자들은 아직 남아 있으니 그들이 자라서 정권을 잡으면 우리는 멸족될 터이다.
지금 제후왕을 비교하여 가장 현명한 자를 황제로 옹립하는 편이 나을 터이다.”

▶ 陰謀 : 비밀리에 계략을 꾸미다.
▶ 吾屬 : 우리들.
▶ 無類 : 하나도 남기지 않음. 滅族하다.

 

 

或言
「齊悼惠王高帝長子,今其適子為齊王,推本言之,高帝適長孫,可立也」。
누군가 말했다.
제 도혜왕 유비는 고제의 맏아들이고 지금 그의 適子 齊王이니 근본으로 말하자면 고제의 適長孫이니 황제로 옹립할 만합니다.”

大臣皆曰:
「呂氏以外家惡而幾危宗廟,亂功臣今齊王母家駟,駟鈞,惡人也。
即立齊王,則復為呂氏。」
그러자 대신들이 모두 말했다.
여씨들은 외척으로서 악행을 저질러 종묘를 위태롭게 할 뻔했고, 공신들을 어지럽혔으며 지금 齊王 유양의 외가는 駟氏인데, 駟鈞이란 자는 포악한 자이다.
만약 제왕을 황제로 옹립하면 다시 여씨의 천하처럼 될 터이다.”

欲立淮南王,以為少,母家又惡。
회남왕을 세우고자 했으나 나이가 어리고 외가 역시 좋지 않았다.

▶ 適 : 嫡과 같다. 본처.
▶ 外家 : 외척. 외가나 처가의 일족.
▶ 駟鈞 : 제애왕 유양의 장인. 제애왕은 사균·낭중령 축오·중위 위발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여씨 일족이 제나라에 감시역으로 파견한 승상 소평을 축출하고 사균을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여씨 일쪽이 주살된 후 조정의 대신들은 다음 황제를 누구로 할지 논의하였는데, 제애왕의 외척 사균이 포악하니 여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애왕 대신 대왕 유항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乃曰:
「代王方今高帝見子,最長,仁孝寬厚。
太后家薄氏謹良。
且立長故順,以仁孝聞於天下,便。」
이에 대신들이 말했다.
代王 유항은 현존하는 고제의 아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데다 인자하고 효성스럽고 너그럽습니다.
태후의 집안인 박씨도 신중하고 선량합니다.
또 장자를 옹립하는 것이 순리에 맞고, 대왕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움으로 천하에 알려져 있으니 황제로 적합합니다.”

乃相與共陰使人召代王。
이에 함께 은밀히 사신을 보내어 대왕을 불러오게 하였다.

代王使人辭謝。
대왕은 사람을 보내 사양한다고 말하였다.

再反,然後乘六乘傳。
다시 사람을 보낸 다음에야 여섯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입경했다.

後九月晦日己酉,至長安,舍代邸。
윤달 9월 그믐날인 기유일, 장안에 이르러 代王의 관저에 머물렀다.

大臣皆往謁,奉天子璽上代王,共尊立為天子。
대신들이 모두 가서 알현하며, 천자의 옥새를 대왕에게 바치고, 모두 추대하여 천자로 옹립하였다.

代王數讓,群臣固請,然後聽。
대왕은 몇 차례 사양했지만, 신하들이 한사코 간청한 연후에 받아들였다.

▶ 見子 : 현존하는 아들. 見은 現과 같다.
▶ 六乘傳 : 말 여섯 마리가 끄는 수레. 고대 역참에서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수레.
▶ 後九月 : 윤달9월.
▶ 晦日 : 그믐날.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

 

東牟侯興居曰:
「誅呂氏吾無功,請得除宮。」
東牟侯 劉興居가 말했다.
여씨들을 주살할 때 나는 공이 없었으니 궁중의 청소나 하게 해주십시오.”

乃與太仆汝陰侯滕公入宮,前謂少帝曰:
「足下非劉氏,不當立。」
이에 太僕으로 있는 汝陰侯 滕公과 함께 입궁하여 少帝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족하는 유씨가 아니니 천자의 자리에 있을 수 없소.”

乃顧麾左右執戟者掊兵罷去。
이어 소제 좌우에서 창을 들고 호위하고 있는 衛士들을 둘러보며 지휘하기를, 무기를 내려놓고 떠나라고 했다.

有數人不肯去兵,宦者令張澤諭告,亦去兵。
몇 사람이 무기를 버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宦者令 張澤이 정황을 설명하자 역시 무기를 내려놓았다.

滕公乃召乘輿車載少帝出。
등공은 천자의 수레를 불러 소제를 태우고 궁궐을 나섰다.

少帝曰:
「欲將我安之乎?」
소제가 물었다.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것이오?”


滕公曰
「出就舍。」
등공이 대답했다.
궐 밖으로 나가서 살아야 합니다.”

舍少府。
소제를 少府에서 살게 했다.

▶ 劉興居 : 고제의 손자로 제 도혜왕 유비의 아들.
▶ 除宮 : 황궁을 깨끗이 정리하다. 즉, 여씨 잔당을 제거한다는 뜻.
▶ 汝陰侯滕公 : 夏侯嬰.
▶ 麾 : 揮와 같다. 여기서는 손을 휘두르다는 뜻.
▶ 掊兵 : 무기를 내려놓다.
▶ 將 : 데려가다.

 

乃奉天子法駕,迎代王於邸。
이어 천자가 타는 法駕를 받들어 代王 유항을 관저에서 영접했다.

報曰:
「宮謹除。」
이어 대왕에게 보고했다.
궁은 삼가 掃除되었나이다.”

代王即夕入未央宮。
대왕 유항은 그날 저녁 미앙궁으로 들어갔다.

有謁者十人持戟衛端門,曰:
「天子在也,足下何為者而入?」
알자 열 명이 창을 들고 궁문을 지키다가 물었다.
천자가 안에 계신데, 족하는 무엇하는 사람이기에 들어가려 하십니까?”

代王乃謂太尉。
대왕은 바로 태위에게 알렸다.

太尉往諭,謁者十人皆掊兵而去。
태위 주발이 가서 설명하자 열 명의 알자는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떠났다.

代王遂入而聽政。
대왕이 마침내 입궁하여 정무를 처리하였다.

夜,有司分部誅滅梁、淮陽、常山王及少帝於邸。
그날 밤 담당 관리들을 나누어 양왕, 회양왕, 상산왕과 소제를 그들의 관저에서 죽였다.

代王立為天子。
대왕 유항이 천자에 즉위하였다.

二十三年崩,謚為孝文皇帝。
재위 23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시호를 孝文皇帝라고 했다.

▶ 法駕 : 천자가 타는 수레.
▶ 即夕 : 그날 저녁.
▶ 端門 : 정문.
▶ 聽政 : 정무를 처리하다.
▶ 有司 : 담당관리.
▶ 孝文皇帝 : 文帝. 前漢의 5대 황제 劉恒, 시호가 孝文皇帝이다.


太史公曰:
孝惠皇帝、高后之時,黎民得離戰國之苦,君臣俱欲休息乎無為,故惠帝垂拱,高后女主稱制,政不出房戶,天下晏然。
刑罰罕用,罪人是希。
民務稼穡,衣食滋殖。
태사공은 말한다.
효혜황제와 여태후 재위 시에는 백성들은 戰國時代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군주와 신하는 모두 無爲의 정치를 하면서 편히 쉬고자 한 까닭에 혜제는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여태후가 여자 군주로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하여 모든 정치가 방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천하는 평안 무사했다.
형벌이 드물게 적용되어 죄인도 드물었다.
백성들은 농사에 힘을 쓰니 입고 먹는 것이 날로 풍족해졌다.”

▶ 無為 : 無爲而治. 道家의 철학사상으로 인위를 가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맡겨 천하를 다스리다. 즉,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다스리다.
▶ 垂拱 :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다.
▶ 晏然 : 평온하다.평안 무사하다.
▶ 稼穡 : 곡식농사.씨를 뿌리는 것을 稼라 하고 수확하는 것을 穡이라 한다.
▶ 滋殖 : 번식하다. 증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