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漢나라의 제1대 황제인 高祖 劉邦의 역사적 기록이다. 유방은 진나라 말기에 군사를 일으켜 秦王의 항복을 받았으며,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하였다.
劉邦의 字는 季이며 江蘇省 豊邑의 농민으로 태어났다.
한때 도둑의 두목이 되었다가 秦始皇이 죽은 다음 해에 군사를 일으켰고, 項羽 등과 합세하여 咸陽을 점령하고 漢王이 되었다.
그 후 항우를 멸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長安에 도읍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項羽는 포학하였으나, 漢王은 공을 세우고 덕을 베풀었다. 한왕은 巴蜀과 漢中에서 發奮하여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三秦을 평정하였다. 항우를 죽이고 제왕의 업을 이루어 천하가 안정되자 제도를 개혁하고 풍속을 바꾸었다. 이에 제8편 高祖本紀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高祖, 沛豐邑中陽裏人, 姓劉氏, 字季.
高祖는 沛縣 豐邑 中陽裏 사람으로, 성은 劉氏이고 자는 季이다.
父曰太公, 母曰劉媼.
아버지는 太公이며 어머니는 劉媼이다.
其先劉媼嘗息大澤之陂, 夢與神遇.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유온이 큰 연못가에서 쉰 적이 있는데, 꿈에서 神을 만났다.
是時雷電晦冥, 太公往視, 則見蛟龍於其上.
이때 천둥이 치고 번갯불이 번쩍이다가 어두컴컴해지므로, 태공이 가서 보니 蛟龍이 유온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已而有身, 遂產高祖.
머지않아 임신이 되어 마침내 고조를 낳았다.
▶ 高祖 : 사마천 당시에는 황제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大逆罪에 해당하였으므로 劉邦이라고 기록하지 못하고 高祖, 劉季, 沛公, 漢王, 高帝, 高皇帝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高祖는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의 사후 追尊된 廟號이다.
▶ 太公, 媪 : 고대에 나이든 남자와 여자에 대한 존칭. 할아버지, 할머니의 뜻. 태공은 유방의 아버지로 劉煓이라고 전해진다.
▶ 其先 : 그 이전에
▶ 陂(피) : 물가.
▶ 雷電晦冥 : 천둥·번개가 치고 어두컴컴해지다.
▶ 已而 : 머지않아. 허사 已 참조
▶ 蛟龍 : 전설상의 뿔 없는 용으로 교룡이 구름과 비를 얻으면 못 속에 숨어있지 않고 昇天하며, 교룡이 난폭하게 날뛰면 홍수가 난다고 한다.
▶ 有身 : 임신하다.
高祖為人, 隆準而龍顏, 美須髯, 左股有七十二黑子.
고조의 생김새는 콧날이 오똑한 것이 용의 얼굴 같았으며, 멋진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가졌고, 왼쪽 넓적다리에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仁而愛人, 喜施, 意豁如也.
인자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마음은 활달하였다.
常有大度, 不事家人生產作業.
늘 큰 도량을 갖고 있어 집안의 생산 작업을 돌보지 않았다.
▶ 隆準 : 오똑한 코.
▶ 龍顏 : 용처럼 생긴 얼굴 생김새. 후세에 황제에게 아첨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左股 : 왼쪽 넓적다리.
▶ 黑子 : 검은 점.
▶ 豁如 : 탁 트여 있다. 도량이 넓다.
▶ 家人 : 집안 식구. 자기 집안사람.
及壯, 試為吏, 為泗水亭長, 廷中吏無所不狎侮, 好酒及色.
장년이 되어 시험을 쳐서 관리로서 泗水亭의 亭長이 되니, 관아의 관리들을 함부로 대하였고, 酒色을 밝혔다.
常從王媼·武負貰酒, 醉臥, 武負·王媼見其上常有龍, 怪之.
늘 王媼과 武負의 술집에 가서 외상술을 마셨으며, 술에 취하면 드러누우니, 무부와 왕온이 그의 몸에 늘 용의 모습이 서리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겼다.
高祖每酤留飲, 酒讎數倍.
고조가 매양 술을 마시는 날에는 술이 몇 배나 더 팔렸다.
及見怪, 歲竟, 此兩家常折券棄責.
이런 괴이한 일을 보게 되자, 연말이면 그 두 술집은 늘 외상장부를 찢어버렸다.
高祖常繇咸陽, 縱觀, 觀秦皇帝, 喟然太息曰:
“嗟乎, 大丈夫當如此也!”
고조는 일찍이 함양에서 부역하였는데 볼 기회가 주어져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아, 대장부라면 응당 저래야 할 터이다!”
▶ 廷 : 관서.
▶ 狎侮 : 업신여기다. 멸시하다.
▶ 色 : 여색.
▶ 貰酒 : 외상술. 외상술을 마시다
▶ 酤 : 술을 팔다.
▶ 讎 : 팔다. 주다.
▶ 歲竟 : 연말. 세모.
▶ 折券棄責 : 채권을 포기하여 장부를 찢다. 責는 債와 같다. 責는 빚 ‘채’.
▶ 常 : 일찍이.
▶ 繇 : 徭役. 役事.
▶ 縱觀 : 마음대로 보다. 관람하게 하다.
▶ 秦皇帝 : 秦始皇帝.
▶ 喟然 :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함.
單父人呂公善沛令,避仇從之客,因家沛焉。
單父(선보)사람 呂公은 패현 현령과 사이가 좋았는데, 원수를 피해 현령의 빈객이 되어 패현에 머물렀다.
沛中豪桀吏 聞令有重客,皆往賀。
패현의 호걸들과 관리들은 현령에게 귀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축하하러 갔다.
蕭何為主吏,主進,令諸大夫曰:
「進不滿千錢 坐之堂下。」
그때 패현의 主吏이었던 蕭何는 여공을 위해 들어오는 진상품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대부들에게 말하였다.
“예물이 천 錢 이하인 사람은 堂下에 앉으시오.”
高祖為亭長,素易諸吏,乃紿為謁曰 「賀錢萬」,實不持一錢。
亭長이었던 고조는 관아의 아전들을 평소에 업신여겼으므로, 거짓으로 명함에 ‘하례금 1만 전’이라고 써넣었으나, 사실은 한 푼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謁入,呂公大驚,起,迎之門。
명함이 전해지자 여공이 깜짝 놀라, 일어나 문에서 맞이하였다.
▶ 家沛 : 패현에 정착하다.
▶ 重客 : 귀빈.
▶ 桀 : 杰과 같다.
▶ 蕭何 : 패현의 말단 관리였으나 나중에 고조 유방의 재상이 되었다.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싸움에서 관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했으므로, 고조가 즉위할 때 논공행상에서 으뜸가는 공신이라 하여 찬후로 봉해졌다.
▶ 大夫 : 빈객의 존칭.
▶ 主 : 주관하다.
▶ 進 : 선물. 進은 선사하다 ‘신’.
▶ 素 : 평소.
▶ 易 : 경시하다. 가벼이 보다.
▶ 紿 : 기만하다. 속이다.
▶ 謁 : 명첩. 명함.
呂公者,好相人,見高祖狀貌,因重敬之,引入坐。
여공이란 사람은 사람들의 관상 보기를 좋아하였는데, 고조의 용모를 살펴보고 더욱 극진히 공경하며 그를 안내하여 좌석에 앉게 하였다.
蕭何曰:
「劉季固多大言,少成事。」
소하가 말하였다.
“劉季는 원래 큰소리를 자주 치지만, 이루어지는 일은 드뭅니다.”
高祖因狎侮諸客,遂坐上坐,無所詘。
고조가 손님들을 무시하며 상좌에 앉아, 겸손의 기색이 없었다.
酒闌,呂公因目固留高祖。
술자리가 끝나갈 즈음, 여공은 고조에게 눈짓해서 남아 있도록 하였다.
高祖竟酒,後。
고조는 술자리를 마치고, 뒤쳐져 남았다.
▶ 詘 : 겸손하게 사양하다. 굽히다.
▶ 相人 : 관상을 보다.
▶ 酒闌 : 술자리가 끝나다. 闌은 다하다.
呂公曰:
「臣少好相人,相人多矣,無如季相,願季自愛.
臣有息女,願為季箕帚妾。」
여공이 말하였다.
“저는 어려서부터 남의 관상을 보기를 좋아하여, 수많은 사람의 관상을 보았으나, 공과 같은 상을 본 적이 없었으니, 원컨대 공은 자중자애하시오.
저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청소나 하는 첩으로 삼아 주었으면 하오.”
酒罷.
술자리가 끝났다.
呂媼怒呂公曰:
「公始常欲奇此女,與貴人。
沛令善公,求之不與,何自妄許與劉季?」
여공의 부인이 화를 내며 여공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예전부터 늘 우리 딸이 뛰어나다고 하면서 귀인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셨소.
沛縣의 현령은 당신과 친한데 그가 청한 혼사는 허락하지 않고, 어찌하여 함부로 劉季에게 주기로 허락하였소?”
呂公曰:
「此非兒女子所知也。」
呂公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아녀자가 알 바가 아니오.”
卒與劉季。
끝내 딸을 유계에게 주었다.
呂公女乃呂后也,生孝惠帝、魯元公主。
여공의 딸이 곧 呂太后로서, 孝惠帝와 魯元公主를 낳았다.
▶ 自愛 :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다.
▶ 息女 : 친딸. 女息
▶ 箕帚妾 : 겸손한 말로 처첩을 말한다. 箕帚(기추)는 쓰레받기와 비.
▶ 奇此女 : 딸이 남보다 뛰어나다.
▶ 妄 : 마음대로 하다.
▶ 兒女子 : 아녀자. 여자의 낮춤말.
▶ 卒 : 끝내.
▶ 呂后 : 呂稚. 후일의 고조 劉邦의 황후. 자는 娥姁며, 高后로도 불린다.
▶ 孝惠帝 : 劉盈. 한나라의 제2대 황제가 된다.
한고조 유방의 차남으로 어머니 고황후 여씨의 그늘에 가려 불운한 황제로 지냈다.
▶ 魯元公主 : 유방의 장녀이자 혜제의 누나.
高祖為亭長時,常告歸之田。
고조가 亭長으로 있을 때 휴가를 내고 고향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呂后與兩子居田中耨,有一老父過請飲,呂后因餔之。
여후와 두 아이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지나다가 물을 청하자 여후가 먹을 것을 대접하였다.
老父相呂后曰:
「夫人天下貴人。」
노인이 여후의 관상을 보더니 말하였다.
“부인은 天下貴人의 상입니다.”
令相兩子,見孝惠,曰:
「夫人所以貴者,乃此男也。」
두 아이의 관상을 보게 하자, 孝惠帝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부인이 귀하게 됨은 바로 이 사내아이 때문입니다.”
相魯元,亦皆貴。
노원공주의 관상을 보고도 귀하게 될 상이라고 하였다.
▶ 兩子 : 두 아이. 고대에는 아들과 딸을 모두 子라고 하였다.
▶ 常 : 언제나. 늘.
▶ 告 : 휴가를 얻다. 휴가를 신청하다.
▶ 耨 : 김매다.
▶ 餔 : 哺와 같다. 먹이다.
老父已去,高祖適從旁舍來,呂后具言
“客有過,相我子母 皆大貴。”
노인이 간 후에 유방이 마침 이웃집에서 나왔고, 여후는 자세히 말하였다.
“길손이 지나다가 나와 아이들의 관상을 보고 모두 크게 귀해지겠다고 하였습니다.”
高祖問,曰:
「未遠。」
고조가 물으니 여후가 말하였다.
“멀리는 가지 못했을 터입니다.”
乃追及,問老父。
그러자 유방이 쫓아가서 노인에게 물었다.
老父曰:
「鄉者夫人嬰兒皆似君,君相貴不可言。」
“조금 전 부인과 아이들이 모두 당신을 닮았고, 당신의 상은 말할 수 없이 귀합니다.”
高祖乃謝曰:
「誠如父言,不敢忘德。」
고조가 곧 사례하며 말하였다.
“정녕 노인장의 말씀대로라면, 감히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及高祖貴,遂不知老父處。
유방이 귀하게 되었을 때, 끝내 그 노인의 행방을 알지 못하였다.
▶ 適 : 마침.
▶ 旁舍 : 이웃집.
▶ 具 : 모두.
▶ 誠 : 과연. 사실이라면.
▶ 追及 : 따라잡다.
▶ 鄉者 : 방금. 지금 막.
高祖爲亭長, 乃以竹皮爲冠, 令求盜之薛治之, 時時冠之, 及貴常冠.
고조가 정장이었을 때 대나무 껍질로 모자를 만들고, 求盜를 薛縣으로 보내어 다스리게 하면서 항상 그것을 썼는데, 귀하게 되어서도 늘 그것을 썼다.
所謂劉氏冠乃是也.
이른바 劉氏冠이 곧 이것이다.
高祖以亭長爲縣送徒酈山, 徒多道亡, 自度比至皆亡之.
고조는 정장으로서 현을 위하여 죄수들을 酈山으로 호송하였는데, 죄수들에 도중에 도망가는 자가 많아서, 도착할 무렵엔 모두 도망하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到豐西澤中, 止飮, 夜乃解縱所送徒, 曰
「公等皆去 吾亦從此逝矣.」
풍읍 西澤에 이르러 행렬을 멈추게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는, 밤이 되자 호송하던 죄수들을 풀어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떠나라. 나 또한 여기서 떠날 터이다.”
徒中壯士願從者十餘人。
죄수 중 壯士로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10여 명이었다.
高祖被酒,夜徑澤中,令一人行前。
고조는 술에 취하여 밤중에 늪지의 좁은 길을 가면서 한 사람을 앞장세웠다.
▶ 求盗 : 도적을 추적하여 체포하는 사졸.
▶ 常冠 : 늘 모자를 쓰다.
▶ 劉氏冠 : 유방이 정장 시절에 썼던 죽피관.
▶ 度(탁) : 헤아리다. 예측하다.
▶ 比至 : (여산에) 도착할 때쯤.
▶ 解縱 : 풀어주다.
▶ 逝 : 가다. 도망하다.
▶ 被酒 : 술에 취하다.
行前者還報曰:
「前有大蛇當徑,願還。」
앞서가던 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니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高祖醉,曰:
「壯士行,何畏!」
고조가 술에 취해 말하였다.
“장사가 가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乃前,拔劍擊斬蛇。
이에 앞으로 가더니 칼을 뽑아 뱀을 베어 죽였다.
蛇遂分為兩,徑開。
뱀은 두 동강이 났고 길이 열렸다.
行數里,醉,因臥。
몇 리를 가다가 취기를 이기지 못해 누워버렸다.
後人來至蛇所,有一老嫗夜哭。
뒤따라오던 사람이 뱀이 있던 곳에 가니, 한 노파가 한밤중에 통곡하고 있었다.
▶ 當徑 : 길을 막다. 徑은 좁은 길.
▶ 老嫗 : 할멈. 노파.
人問何哭,嫗曰:
「人殺吾子,故哭之。」
그 사람이 왜 우느냐고 묻자 노파가 말하였다.
“어떤 자가 내 아들을 죽였기에 울고 있소.”
人曰:
「嫗子何為見殺?」
그 사람이 물었다.
“노파의 아들은 어째서 죽임을 당하였소?”
嫗曰:
「吾,白帝子也,化為蛇,當道,今為赤帝子斬之,故哭。」
노파가 말하였다.
“내 아들은 白帝의 아들로, 뱀으로 변신하여 길을 막고 있었는데, 赤帝의 아들이 베어 죽였으니 울고 있소.”
人乃以嫗為不誠,欲告之,嫗因忽不見。
그 사람은 노파가 허황한 말을 한다고 여겨 鞫問하려 하자, 노파는 홀연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後人至,高祖覺。
뒤에 오던 사람이 도착하니 고조가 술에서 깨었다.
後人告高祖,高祖乃心獨喜,自負。
뒤에 오던 사람이 고조에게 이를 고하자, 고조는 속으로 혼자 기뻐하며 自負하게 되었다.
諸從者日益畏之。
따르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고조를 두려워하였다.
▶ 見殺 : 피살당하다.
▶ 白帝 : 五天帝의 하나. 서쪽을 지배하는 신.
▶ 赤帝 : 五天帝의 하나. 남쪽을 지배하는 신.
▶ 告(국) : 국문하다(鞠問ㆍ鞫問--)
▶ 覺(교) : (잠에서)깨다.
秦始皇帝常曰
「東南有天子氣」.
진시황제는 늘 말하였다.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於是因東游以厭之。
그리하여 동방을 巡視하여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였다.
高祖即自疑,亡匿,隱於芒、碭山澤巖石之閒。
고조는 자신의 기운이라 짐작하고 도망하여 芒山과 碭山의 늪지 깊은 골짜기에 숨었다.
呂后與人俱求,常得之。
여후는 사람들과 함께 고조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찾아내었다.
高祖怪問之。
고조가 괴상하게 여겨 물었다.
呂后曰:
「季所居上常有雲氣,故從往常得季。」
여후가 대답하였다.
“당신 있는 곳에는 늘 구름 같은 기운이 있어서, 그것을 따라가면 언제나 당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高祖心喜。
고조가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沛中子弟或聞之,多欲附者矣。
패현의 젊은이들이 혹 이런 이야기를 듣고, 따르려는 자가 많았다.
▶ 厭(엽) : 누르다. 억제하다. 厭은 누를 ‘엽’.
▶ 亡匿 : 도망가서 숨다.
▶ 求 : 찾다.
秦二世元年秋,陳勝等起蘄,至陳而王,號為「張楚」。
진 2세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가을, 陳勝등이 蘄縣에서 봉기하여, 陳縣에서 왕이 되고 國號를 張楚라 칭하였다.
諸郡縣皆多殺其長吏以應陳涉。
여러 군현에서 모두 고급관리들을 죽이고 陳涉에게 호응하였다.
沛令恐,欲以沛應涉。
패현 현령도 겁이 나서 패현의 백성들과 함께 진섭에게 호응하고자 하였다.
掾、主吏蕭何、曹參乃曰:
「君為秦吏,今欲背之,率沛子弟,恐不聽。
願君召諸亡在外者,可得數百人,因劫眾,眾不敢不聽。」
獄掾과 主吏벼슬에 있던 蕭何와 曹參이 이에 말하였다.
“현령께서는 진나라의 관리로서, 지금 진나라를 배반하고 패현의 젊은이들을 이끌려 하나, 아마 따르지 않을 터입니다.
현령께서 도망하여 외지에 있는 사람들을 소집하면 수백 명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그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겁박하면 사람들이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터입니다.”
乃令樊噲召劉季。
이에 현령은 樊噲에게 劉季(劉邦)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劉季之眾已數十百人矣。
유계의 무리는 이미 백 명쯤 되었다.
▶ 陳勝 : 陳涉. 陽城사람으로 字가 涉이다.
秦나라 말기의 농민 출신으로 戍卒로 가던 중 봉기하여 농민 반란을 주도하였다.
2세황제 원년(기원전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일으켜 張楚를 건국하였다. <史記 권48. 陳涉世家>
▶ 張楚 : 張大楚. 陳勝은 농민정권을 세우고자 국호를 <張楚>라 하였다. 張은 초나라의 세력을 확대한다는 뜻.
▶ 起 : 군사를 일으키다. 봉기하다.
▶ 王 : 왕이라 칭함.
▶ 長吏 : 고급관리.
▶ 數十百人 : 수십 명 또는 일백 명.
於是樊噲從劉季來。
이에 樊噲가 劉季(劉邦)를 모셔왔다.
沛令後悔,恐其有變,乃閉城城守,欲誅蕭、曹。
패현령은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서 후회하고, 성문을 닫고 성을 지키면서 蕭何와 曹参을 죽이려 하였다.
蕭、曹恐,踰城保劉季。
소하와 조참이 두려워하고, 성을 넘어 유계에게 몸을 맡겼다.
劉季乃書帛射城上,謂沛父老曰:
「天下苦秦久矣。
今父老雖為沛令守,諸侯并起,今屠沛。
沛今共誅令,擇子弟可立者立之,以應諸侯,則家室完。
不然,父子俱屠,無為也。」
유계는 곧 비단에 글을 쓰고, 城으로 활로 쏘아 보내어 패현의 父老에게 일렀다.
“천하가 진나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부로들이 비록 패현령을 위해 성을 지키고 있으나, 제후들이 함께 일어나서 곧 패현을 도륙할 터입니다.
패현 사람들이 지금 함께 현령을 죽이고, 젊은이 중에서 우두머리를 골라 세워서 제후에 호응하면 집안을 보전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가 모두 도륙당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터입니다.”
父老乃率子弟共殺沛令,開城門迎劉季,欲以為沛令。
부로들이 곧 子弟들을 이끌고 함께 패현령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 유계를 맞아들였고, 패현의 현령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 樊噲 : 沛縣출신으로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劉邦이 군사를 일으킬 때 무장으로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 曹参 : 원래 진나라의 獄吏였으나, 고조 유방의 擧兵時에 뜻을 같이하였다. 한신과 더불어 군사방면에서 활약하였다.
▶ 逾 : 넘다. 지나가다.
▶ 保 : 의지하여 따르다.
▶ 書帛 : 비단에 편지를 쓰다.
▶ 完 : 보전하다.
▶ 無爲 :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다.
劉季曰:
「天下方擾,諸侯并起,今置將不善,壹敗涂地。
吾非敢自愛,恐能薄,不能完父兄子弟。
此大事,願更相推擇可者。」
유계가 말하였다.
“천하가 바야흐로 소란하여, 제후가 너 나 할 것 없이 起兵하는데, 지금 무능한 자를 장수로 삼으면, 단 한 번의 패배로 참살을 당할 터이요.
내가 감히 자신을 아껴서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하여 부형과 자제를 지키지 못할까 염려합니다.
이는 大事이니, 다시 함께 可當한 사람을 推擇하시기 바랍니다.”
蕭、曹等皆文吏,自愛,恐事不就,後秦種族其家,盡讓劉季。
소하와 조참 등은 모두 文官이라 몸을 사리며, 擧事를 성취하지 못하면 나중에 진나라가 집안을 멸족할까 두려워하고, 모두 유계에게 양보하였다.
▶ 擾 : 어지럽다.
▶ 壹敗涂地 : 한 번의 패배로 간과 뇌가 흙에 범벅이 되다. 慘殺을 당하다.
▶ 更 : 다시.
▶ 相 : 함께.
▶ 推擇 : 인재를 가려 뽑다.
▶ 不就 : 성공하지 못하다.
▶ 種族其家 : 온 집안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斬刑당하다.
諸父老皆曰:
「平生所聞劉季諸珍怪,當貴,且卜筮之,莫如劉季最吉。」
부로들이 모두 말하였다.
“평소 듣기에 그대에게는 기이한 일들이 있다고 들었으니 귀한 사람이 틀림없고, 또 점을 쳐보니 그대만큼 길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소.”
於是劉季數讓。
이에 유계가 몇 차례 사양하였다.
眾莫敢為,乃立季為沛公。
아무도 감히 하려는 자가 없어서, 유계를 沛公으로 세웠다.
祠黃帝,祭蚩尤於沛庭,而釁鼓旗,幟皆赤。
유계는 패현의 뜰에서 黃帝와 蚩尤에게 제사 지내고, 가축의 피를 북과 깃발에 바르는 의식을 행하였는데, 군대의 깃발은 모두 붉은색이었다.
由所殺蛇白帝子,殺者赤帝子,故上赤。
전에 죽인 뱀이 白帝의 아들이고, 그를 죽인 사람이 赤帝의 아들이기 때문에 붉은색을 숭상한 것이다.
於是少年豪吏如蕭、曹、樊噲等皆為收沛子弟二三千人,攻胡陵、方與,還守豐。
이에 소하 · 조참· 번쾌 등과 같은 젊고 걸출한 아전들이 패현의 젊은이 2~3천을 거두어 胡陵과 方與를 공격하고 돌아와 풍읍을 지켰다.
▶ 平生 : 평소. 우리말의 平生은 한문으로 生平이다.
▶ 卜筮 : 점을 치다. 龜甲과 蓍草로써 점을 치다.
▶ 釁鼓旗 : 가축의 피를 북과 깃발에 발라 신에게 제사지내다.
▶ 上 : 尚과 같다. 숭상하다.
秦二世二年,陳涉之將周章軍西至戲而還。
진 2세황제 2년(기원전208년), 진섭의 部將인 周章의 군대가 서쪽 戲水까지 갔다가 돌아갔다.
燕、趙、齊、魏皆自立為王。
燕 · 趙 · 齊 · 魏나라가 모두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項氏起吳。
항량과 항우는 吳縣에서 起兵하였다.
秦泗川監平將兵圍豐,二日,出與戰,破之。
진나라의 泗川郡監 平이 병사를 거느리고 풍읍을 포위하고 이틀이 되어, 패공이 출전하여 쳐부수었다.
命雍齒守豐,引兵之薛。
패공은 雍齒에게 명하여 풍읍을 지키게 하고, 薛縣으로 進軍하였다.
泗州守壯敗於薛,走至戚,沛公左司馬得泗川守壯,殺之。
泗川郡守 壯이 설현에서 패하여 戚縣으로 달아나니, 패공의 左司馬 曹無傷이 사천군수 壯을 붙잡아 죽였다.
▶ 周章 : 周文. 진섭의 部將. 2세황제 2년(기원전208년) 겨울, 진섭이 파견한 周章 등은 서쪽으로 진격해 戲水에 이르렀을 때 병력 수가 10만에 이르렀다.
주장은 진나라 장한의 군대에 패하여 河南省 澠池에서 자살하였다.
▶ 燕 · 趙 · 齊 · 魏 : 진 2세황제 2년(기원전208년) 8월에 韓廣은 스스로 燕王이 되었으며, 武臣은 趙王, 魏咎는 魏王, 田儋은 齊王이 되었다. <사기본기 권06. 진시황본기>
▶ 項氏 : 항량과 항우.
沛公還軍亢父,至方與,未戰。
패공은 亢父로 군대를 물려 方與에 이르기까지 전투가 없었다.
陳王使魏人周市略地。
陳王은 魏나라의 周市에게 풍읍을 탈취하도록 했다.
周市使人謂雍齒曰:
「豐,故梁徙也。
今魏地已定者數十城。
齒今下魏,魏以齒為侯守豐。
不下,且屠豐。」
주불은 옹치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풍읍은 옛날 梁(:魏)나라가 천도한 곳이다.
지금 魏나라의 땅으로 평정된 곳이 數十城이다.
雍齒네가 지금 위나라에 투항하면 위나라는 너를 후에 봉하고 풍읍을 지키게 하겠다.
투항하지 않으면 장차 풍읍을 도륙할 터이다.”
▶ 略地 : 풍읍을 탈취하다.
▶ 周市 : 秦나라 말기 魏나라 사람으로 陳勝과 吳廣의 난 때 장수였다.
진승은 장수였던 周市에게 옛 위나라 지역을 탈취하라고 명령했다.
위나라 지역을 장악한 주불은 자신에게 왕위를 제안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듣지 않고, 위구를 추대하여 위나라 왕으로 삼아 위를 부활시켰다.
▶ 下 : 투항하다.
▶ 且 : 장차.
雍齒雅不欲屬沛公,及魏招之,即反為魏守豐。
雍齒는 본래 패공에 귀속되고 싶지 않았는데, 魏나라가 투항을 권유하자, 곧 패공을 배반하고 위나라를 위해 풍읍을 지켰다.
沛公引兵攻豐,不能取。
패공이 병사를 이끌고 풍읍을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沛公病,還之沛。
패공이 병이 나서 패현으로 돌아갔다.
沛公怨雍齒與豐子弟叛之,聞東陽甯君、秦嘉立景駒為假王,在留,乃往從之,欲請兵以攻豐。
패공은 雍齒가 풍읍의 젊은이들과 함께 배반한 것을 원망하여, 東陽縣의 寧君과 秦嘉가 景駒를 초나라의 임시 왕으로 삼고, 留縣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구에게 가서 따르며 군사를 얻어서 풍읍을 공격하려 하였다.
▶ 雅 : 본래부터. 줄곧.
▶ 假王 : 임시 왕. 왕의 임시 대리인
是時秦將章邯從陳,別將司馬夷將兵北定楚地,屠相,至碭。
이때 秦將 章邯은 진왕(진섭)을 추격하고, 별장 司馬夷는 병사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초 땅을 평정하고, 相縣을 도륙한 뒤 碭縣에 이르렀다.
東陽甯君、沛公引兵西,與戰蕭西,不利。
동양현의 甯君과 패공은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蕭縣서쪽에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還收兵聚留,引兵攻碭,三日乃取碭。
留縣으로 돌아와서 군사를 수습한 후, 진군하여 탕현을 공략하였는데, 3일 만에 탕현을 함락하였다.
因收碭兵,得五六千人。
그리하여 탕현의 군사를 거두니, 5~6천의 군사를 얻었다.
攻下邑,拔之。還軍豐。
下邑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풍읍으로 회군하였다.
聞項梁在薛,從騎百餘往見之。
항량이 薛縣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100여 騎를 이끌고 가서 항량을 만났다.
項梁益沛公卒五千人,五大夫將十人。
항량은 패공에게 병사 5천과 五大部 將帥 10명을 보태주었다.
沛公還,引兵攻豐。
패공이 돌아와 병사를 이끌고 풍읍을 공격하였다.
▶ 章邯 : 진나라 말기 진나라 장수로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別將 : 주력부대와 작전을 함께하는 부대의 장수.
▶ 從騎 : 기병을 이끌다.
▶ 五大夫將 : 오대부급의 장수.
從項梁月餘,項羽已拔襄城還。
패공이 項梁을 따른 지 한 달여, 항우는 이미 襄城을 함락시키고 돌아왔다.
項梁盡召別將居薛。
항량은 별장들을 모두 설현으로 소집하였다.
聞陳王定死,因立楚後懷王孫心為楚王,治盱臺。
陳王(진승)이 확실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초나라의 후손 회왕의 손자인 熊心을 楚王으로 옹립하고 盱臺에 도읍을 정하였다.
項梁號武信君。
항량을 武信君이라 불렀다.
居數月,北攻亢父,救東阿,破秦軍。
몇 달 뒤 북쪽으로 亢父를 공격하여 東阿를 구원하고 秦軍을 무찔렀다.
齊軍歸,楚獨追北,使沛公、項羽別攻城陽,屠之。
齊軍이 돌아가자 楚軍이 홀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였고, 패공과 항우에게는 별도로 성양을 공격하게 하여 도륙하였다.
軍濮陽之東,與秦軍戰,破之。
濮陽동쪽에 주둔하며 秦軍과 싸워 격파하였다.
▶ 定死 : 확실히 죽다. 定은 확실히.
▶ 楚後懷王孫心 : 초회왕의 손자 웅심. 姓은 芈, 氏는 熊, 이름은 心으로 芈心 혹은 熊心이라고 불린다.
戰國時代 말기 秦나라에 抑留되어 죽은 楚懷王의 후손이다. 楚나라의 멸망 이후에 羊을 키우며 숨어 지냈는데, 기원전208년 項梁과 項羽가 楚나라를 다시 세우고 懷王으로 옹립하였다.
▶ 治盱臺 : 우대에 도읍을 정하다. 盱臺는 盱台라고도 한다. 治는 도읍을 정하다.
▶ 居數月,북공항보 : 몇 달 뒤, 항량은 병사를 이끌고 亢父를 공격하고, 제나라의 田榮과 司馬龍且의 군대와 함께 東阿를 구원하러 나서 秦軍을 동아에서 대파하였다.
▶ 東阿 : 전국시대 제나라의 땅. 지금의 山東省 陽谷縣 동북쪽의 阿城鎭.
▶ 追北 :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 軍 : 주둔하다.
秦軍復振,守濮陽,環水。
秦軍이 다시 兵勢를 회복하여, 濮陽을 지키고 해자를 팠다.
楚軍去而攻定陶,定陶未下。
초군은 철군하여 定陶를 공략했으나 정도를 함락하지 못하였다.
沛公與項羽西略地至雍丘之下,與秦軍戰,大破之,斬李由。
패공은 항우와 서쪽 땅을 공략하며 雍丘에 이르러 진군과 싸워 대파하고 李斯의 아들 李由를 참하였다.
還攻外黃,外黃未下。
군대를 돌려 外黃을 공격하였 외황은 함락되지 않았다.
▶ 復振 : 세력을 회복하다.
▶ 環水 : 성 주위에 해자를 파서 물을 둘러 방어하다.
項梁再破秦軍,有驕色。
항량은 두 차례 진군을 이기자 교만한 기색을 드러냈다.
宋義諫,不聽。
宋義가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秦益章邯兵,夜銜枚擊項梁,大破之定陶,項梁死。
진나라는 장한에게 병력을 증원하고, 밤에 병사와 말에게 하무를 물리고, 항량을 공격하여 定陶에서 대파하니, 항량은 전사하였다.
沛公與項羽方攻陳留,聞項梁死,引兵與呂將軍俱東。
패공과 항우가 막 陳留를 공격하고 있다가 항량의 죽음을 듣자, 병사를 이끌고 呂臣장군과 함께 동쪽으로 진군하였다.
呂臣軍彭城東,項羽軍彭城西,沛公軍碭。
여신은 팽성 동쪽, 항우는 팽성 서쪽, 패공은 탕현에 주둔하였다.
▶ 宋義 : 초나라 懷王의 신하. 卿子冠軍이라 불렸다.
진나라 말기 초나라 사람으로 項梁을 따라 기병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기원전207년 진나라의 章邯) 황하를 건너 조나라를 공격하여 鉅鹿을 포위하자 楚懷王은 宋義를 上將軍으로 삼고 항우를 次將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 銜枚 : (행군할 때 떠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하무(젓가락 모양의 나무)를 입에 물리다.
▶ 東 : 동쪽으로 진군하다.
▶ 呂臣 : 진승의 알자를 지낸 장군. 항량의 본대가 패배하자 항우와 패공은 呂臣의 군대와 합류해 진류에서 동쪽 팽성으로 퇴각한다.
章邯已破項梁軍,則以為楚地兵不足憂,乃渡河,北擊趙,大破之。
장한은 항량의 군대를 격파한 뒤 초 땅의 군대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황하를 건너 북쪽으로 조나라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當是之時,趙歇為王,秦將王離圍之鉅鹿城,此所謂河北之軍也。
그 당시 조나라는 趙歇이 왕이었는데, 진나라의 장수 王離가 巨鹿城에서 포위하니, 이들이 이른바 河北軍이었다.
▶ 不足 : ~할 가치가 없다.
▶ 章邯 : 진나라 말기 진나라 장수로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趙歇 : 진나라 말기 조나라의 왕족이며, 재건된 조나라의 왕으로 옹립되었다.
▶ 王離 : 秦나라의 명장 王翦의 손자로 鉅鹿의 싸움에서 항우에게 사로잡혔다.
秦二世三年,楚懷王見項梁軍破,恐,徙盱臺都彭城,并呂臣、項羽軍自將之。
진 2세황제 3년(기원전207년), 초회왕은 항량의 군대가 패하자 두려워하여, 盱臺에서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여신과 항우의 군대를 합류시켜 몸소 통솔하였다.
以沛公為碭郡長,封為武安侯,將碭郡兵。
패공을 탕군의 郡長으로 삼고 武安侯에 봉하여, 탕군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였다.
封項羽為長安侯,號為魯公。
항우는 長安侯에 봉하고 魯公이라고 불렀다.
呂臣為司徒,其父呂青為令尹。
여신은 司徒로 삼고 그의 아버지 呂靑은 令尹이 되었다.
▶ 懷王 : 초회왕 熊心. 초회왕 熊槐의 손자.
기원전209년 項梁이 거병하고 옹립하여 楚王이 되고, 盱臺에 도읍을 정하였다.
항량이 죽고 진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彭城으로 천도하였다.
▶ 楚懷王見項梁軍破 : 초나라 군대가 정도에서 패전한 후 초회왕은 두려워하여 盱臺에서 彭城으로 옮기고 항우와 여신의 군대를 합류시켜 몸소 통솔하였다. 여신을 司徒로 삼고, 그의 아버지 呂靑을 令尹에 임명하였다. 패공을 碭郡의 郡長으로 삼고 武安侯에 봉해 碭郡의 군대를 이끌게 하였다.
▶ 盱臺 : 진나라에서 설치한 현으로 처음에는 盱台였으나 뒤에 盱眙가 되었다.
▶ 并 : 합류시키다.
趙數請救,懷王乃以宋義為上將軍,項羽為次將,范增為末將,北救趙。
조나라에서 몇 차례 구원을 요청하자, 회왕은 송의를 상장군에 임명하고, 항우를 차장으로 삼고 범증을 말장으로 삼아, 북쪽으로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令沛公西略地入關。
패공에게는 서쪽을 공략하여 함곡관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與諸將約,先入定關中者王之。
그러면서 장수들과 약조하기를, 먼저 들어가 관중을 평정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 王之 : 왕으로 삼다. 즉, 관중을 통치하도록 하다.
當是時,秦兵彊,常乘勝逐北,諸將莫利先入關。
당시 秦兵은 强盛한 데다 항상 승세를 타고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는 터이라, 장수들이 관중으로 먼저 들어가는 것에 이롭지 않았다.
獨項羽怨秦破項梁軍,奮,願與沛公西入關。
항우만이 진나라가 항량의 군대를 무찌른 일을 원망하고, 發奮하여 패공과 함께 서쪽 함곡관으로 들어가길 원하였다.
懷王諸老將皆曰:
회왕의 원로 장수들이 모두 말하였다.
「項羽為人彊悍猾賊。
“항우는 사람됨이 강하고 사나우며 교활하고 간악합니다.
項羽嘗攻襄城,襄城無遺類,皆阬之,諸所過無不殘滅。
항우가 일찍이 襄城을 공격하였을 때 양성에는 남아난 것이 없도록 모두 생매장하였고, 항우가 지나간 곳에는 살아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且楚數進取,前陳王、項梁皆敗。
또 초나라가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전에 陳王과 항량이 모두 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不如更遣長者扶義而西,告諭秦父兄。
차라리 다시 덕이 있는 사람을 보내 인의를 베풀며 서쪽으로 진군하면서, 진나라의 부형들을 타이르는 것만 못합니다.
秦父兄苦其主久矣,今誠得長者往,毋侵暴,宜可下。
진나라의 부형들은 그들의 군주에게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했기 때문에 지금 진실로 덕이 있는 사람이 가서 포악하게 굴지 않는다면 응당 항복할 터입니다.
今項羽彊悍,今不可遣。
항우처럼 사나운 자를 지금 보내서는 안 됩니다.
獨沛公素寬大長者,可遣。」
오직 패공처럼 평소 관대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 彊悍 : 강하고 사납다.
▶ 猾賊 : 교활하고 간악하다.
▶ 無遺類 : 하나도 남겨놓지 않다.
▶ 阬 : 생매장하다.
▶ 諸所過 :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지나간 곳.
▶ 殘滅 : 모조리 죽이다. 몰살시키다.
▶ 且 : 또.
▶ 進取 : 진격하다. 공격하다.
▶ 長者 : 寬厚하고 仁德이 있는 사람.
▶ 扶義 : 仁義를 베풀 생각을 가지다.
▶ 告諭 : 일반에 널리 알림. 알려 주다.
▶ 侵暴 : 포악하게 행동함.
▶ 宜 : 마땅하다. 응당.
▶ 下 : 항복시키다.
卒不許項羽,而遣沛公西略地,收陳王、項梁散卒。
마침내 항우를 허락하지 않고 패공을 보내어 서쪽을 공략하게 하니, 진왕과 항량의 패잔병을 수습하였다.
乃道碭至成陽,與杠裏秦軍夾壁,破[秦]二軍。
이어 탕현을 따라 成陽에 이르러 杠里의 진군과 대치하며 진나라와 위나라의 두 군대를 격파하였다.
楚軍出兵擊王離,大破之。
楚軍도 출병하여 王離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 散卒 : 패잔병.
▶ 道 : 거치다.경유하다.
▶ 夾壁 : 대치하다. 壁은 陣營.
沛公引兵西,遇彭越昌邑,因與俱攻秦軍,戰不利。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다가, 昌邑에서 팽월과 만나 함께 秦軍을 공격했으나, 전세는 불리하였다.
還至栗,遇剛武侯,奪其軍,可四千餘人,并之。
철수하여 栗縣에 이르러 剛武侯를 만나서 그의 군사 4천여 명을 빼앗아서 아울렀다.
與魏將皇欣、魏申徒武蒲之軍并攻昌邑,昌邑未拔。西過高陽。
위나라의 장수 皇欣,申徒武蒲의 군사와 함께 창읍을 공격했으나, 창읍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서진하여 高陽을 거쳐서 갔다.
▶ 彭越 : 진나라 山陽 昌邑 출신으로 도적이었다.
字는 仲이다. 진나라 말기 각지에서 봉기하여 군웅들이 할거하자 스스로 봉기하여 군사를 일으켜 楚나라 項羽의 군사가 되었다. 하지만 항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켜 유방에게 귀순하여, 한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초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 可 : 대략.
▶ 申徒武蒲 : 인명. 신도는 春秋時代 초나라의 관직명이었으나 후손이 관직명을 성으로 삼았다. 司徒와 같다.
酈食其[為]監門,曰:
「諸將過此者多,吾視沛公大人長者。」
酈食其가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장수들이 이곳을 지나간 자가 많았지만, 내가 보기에 패공이 대인이고 덕이 있는 분이시오.”
乃求見說沛公。
그리고는 패공을 만나 유세하고자 하였다.
沛公方踞床,使兩女子洗足。
패공은 그때 침상에 걸터앉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고 있었다.
酈生不拜,長揖,曰:
「足下必欲誅無道秦,不宜踞見長者。」
酈生이 절을 하지 않고,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하였다.
“족하께서 꼭 무도한 진나라를 토벌하고자 하면, 걸터앉아서 덕이 있는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於是沛公起,攝衣謝之,延上坐。
이에 패공은 일어나서 옷깃을 여미며 사죄하고 상석으로 이끌었다.
食其說沛公襲陳留,得秦積粟。
역이기는 패공에게 진류를 습격하여 진나라가 쌓아 놓은 식량을 취하라고 권하였다.
乃以酈食其為廣野君,酈商為將,將陳留兵,與偕攻開封,開封未拔。
이에 역이기를 廣野君으로 삼고 酈商을 장수로 삼아 진류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開封을 공격했으나, 개봉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 酈食其 : 酈生. 秦나라 말기의 인물로 처음에는 고양의 술꾼(高陽酒徒)이었으나 劉邦을 도와 齊나라를 달래어 70여 성을 항복하게 하였다. 이름은 食其이며, 酈生이라고도 불린다. <史記列傳 권97 酈生陸賈列傳>
▶ 監門 : 문지기
▶ 大人 : 德行이 고상한 사람.
▶ 踞床 : 침상의 가에 걸터앉다. 매우 예의 없는 자세를 말한다.
▶ 長揖 : 두 손을 마주 잡고 높이 들어서 허리를 굽히는 禮.
▶ 足下 : 옛날에 상대방을 높이 부르는 말.
▶ 攝衣 : 의복을 단정히 하다.
▶ 延 : 이끌다. 초청하다.
▶ 偕 : 함께.
▶ 陳留 : 留는 鄭나라의 고을인데, 뒤에 陳나라에서 병합하였으므로, 陳留라고 한다.
▶ 酈商 : 역이기의 동생.
西與秦將楊熊戰白馬,又戰曲遇東,大破之。
서쪽으로 진군하여 白馬에서 秦將 楊熊과 교전하고, 또 曲遇 동쪽에서 싸워 대파하였다.
楊熊走之滎陽,二世使使者斬以徇。
楊熊이 滎陽으로 달아나자 진 2세황제가 사신을 보내 참수하여 도성에 내걸었다.
南攻潁陽,屠之。
패공은 남쪽으로 潁陽을 공격하여 도륙하였다.
因張良遂略韓地轘轅。
張良과 함께 韓나라의 땅 轘轅을 공략하였다.
▶ 徇 :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보이다.
▶ 楊熊 : 진나라의 장수.
當是時,趙別將司馬卬方欲渡河入關,沛公乃北攻平陰,絕河津。
당시 조나라의 별장 司馬卬이 막 황하를 건너 함곡관에 진입하려고 하니, 패공은 북쪽으로 平陰을 공략하여 황하 나루를 막았다.
南,戰雒陽東,軍不利,還至陽城,收軍中馬騎,與南陽守齮戰犨東,破之。
또 남쪽으로 진군하여 낙양 동쪽에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陽城으로 회군하고 군중의 기병을 모아 남양태수 呂齮와 犨縣 동쪽에서 싸워 격파하였다.
略南陽郡,南陽守齮走,保城守宛。
남양군을 공략하자 남양태수 呂齮는 달아나 宛城을 굳게 지켰다.
沛公引兵過而西。
패공이 병사를 이끌고 완성을 지나쳐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張良諫曰:
「沛公雖欲急入關,秦兵尚眾,距險。
今不下宛,宛從後擊,彊秦在前,此危道也。」
장량이 간하였다.
“패공께서 비록 서둘러 함곡관으로 진입하려 하시지만, 秦兵이 여전히 많고 험준한 곳에 의지하여 저항하고 있습니다.
지금 완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완성이 뒤에서 공격하고 강력한 진나라가 앞에서 버티게 되니, 이는 위험한 방법입니다.”
於是沛公乃夜引兵從他道還,更旗幟,黎明,圍宛城三匝。
이에 패공은 그날 밤으로 병사를 이끌고, 다른 길로 돌아와 깃발을 바꾸고 동이 틀 무렵, 완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南陽守欲自剄。
남양태수가 自刎하려고 하였다.
▶ 距險 :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저항하다.
▶ 三匝 : 여러 겹으로 둘러싸다.
▶ 自剄 : 자결하다.
其舍人陳恢曰:
「死未晚也。」
남양태수의 舍人 陳恢가 말하였다.
“나중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乃踰城見沛公,曰:
그리고는 성을 넘어가 패공을 뵙고 말하였다.
「臣聞足下約,先入咸陽者王之。
“신은 족하께서 함양에 먼저 진입하는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今足下留守宛。
지금 족하께서는 이곳에 머물며 완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宛,大郡之都也,連城數十,人民眾,積蓄多,吏人自以為降必死,故皆堅守乘城。
완성은 큰 군의 도성으로, 수십 개의 성이 연이어 있어서 인구도 많고 식량도 많이 비축되어 있사온데, 관리와 백성이 항복하면 필시 죽으리라 여기기 때문에 모두 성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今足下盡日止攻,士死傷者必多;
引兵去宛,宛必隨足下後:
足下前則失咸陽之約,後又有彊宛之患。
지금 족하께서 종일 이곳에 머물며 공격하면, 死傷하는 군사가 틀림없이 많을 터이고,
군사를 이끌고 완성을 떠나시면, 완성은 틀림없이 족하를 추격할 터입니다.
족하께서 전자를 따르면 함양의 약속을 놓치게 되고, 후자를 따르면 완성의 强軍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為足下計,莫若約降,封其守,因使止守,引其甲卒與之西。
족하를 위해 계책으로는, 항복을 약속받은 뒤 완성 태수로 봉하여 이곳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족하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시는 것이 최상입니다.
諸城未下者,聞聲爭開門而待,足下通行無所累。」
아직 함락되지 않은 城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성문을 열고 기다릴 터이고, 족하의 통행에도 걱정이 없겠습니다.”
▶ 舍人 : 시종, 식객의 통칭.
▶ 陳恢 : 진나라 남양군 군수 呂齮의 舍人.
▶ 乘城 : 성을 지키다.
▶ 盡日 : 종일. 진종일.
▶ 止攻 : 머물러 성을 공격하다.
▶ 隨足下後 : 족하의 뒤를 추격하다.
▶ 莫若 : ~하는 것만 못하다.
▶ 封其守 : 군수로 봉하여 주다.
▶ 止守 : 남아서 지키다.
▶ 累 : 누를 끼치다. 걱정하다.
沛公曰:
「善。」
패공이 말하였다.
“좋다.”
乃以宛守為殷侯,封陳恢千戶。
곧 완성의 태수를 殷侯로 삼고, 陳恢에게 1천 戶를 봉하였다.
引兵西,無不下者。
군사를 이끌고 서진하니 과연 항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至丹水,高武侯鰓、襄侯王陵降西陵。
丹水에 이르니 高武侯 새(鰓)와 襄侯 王陵이 西陵에서 투항하였다.
還攻胡陽,遇番君別將梅鋗,與皆,降析、酈。
패공이 회군하여 胡陽을 공략하고 番君의 별장 梅鋗을 만나 함께 析縣과 酈縣을 항복시켰다.
遣魏人甯昌使秦,使者未來。
위나라 사람 寧昌을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사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是時章邯已以軍降項羽於趙矣。
이때 장한은 이미 조나라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初,項羽與宋義北救趙,及項羽殺宋義,代為上將軍,諸將黥布皆屬,破秦將王離軍,降章邯,諸侯皆附。
당초 항우는 송의와 함께 북쪽으로 조나라를 구원하러 나섰는데, 항우가 송의를 죽이고 대신해서 상장군이 되고, 黥布 등 장수들이 모두 항우에게 귀속되어 秦將 王離의 군대를 격파하고 장한을 항복시키니, 제후들이 모두 항우에게 歸附하였다.
及趙高已殺二世,使人來,欲約分王關中。
조고가 2세황제를 시해하고는 사신을 보내어, 관중을 나누어 통치하자고 약조하려 하였다.
沛公以為詐,乃用張良計,使酈生、陸賈往說秦將,啗以利,因襲攻武關,破之。
패공은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였으니, 역생과 陸賈를 보내 秦將을 설득하고 뇌물을 주어 유혹한 다음 武關을 습격하여 쳐부수었다.
又與秦軍戰於藍田南,益張疑兵旗幟,諸所過毋得掠鹵,秦人喜,秦軍解,因大破之。
또 秦軍과 籃田남쪽에서 싸웠는데, 疑兵과 깃발을 늘리고 지나는 곳마다 약탈하지 못하도록 하니, 진나라 백성들은 기뻐했고 진나라의 군사들은 해이해져서, 대파할 수 있었다.
又戰其北,大破之。乘勝,遂破之。
또 남전 북쪽에서도 싸워 진군을 대파하고 승세를 타고 뒤이어 무찔렀다.
▶ 啗以利 : 뇌물을 주어 유혹하다. 啗은 먹이다.
▶ 張 : 걸다. 매달다.
▶ 掠鹵 : 약탈하다.
▶ 憙 : 喜와 같다.
▶ 解 : 懈와 같다. 태만하다. 게으르다.
漢元年十月,沛公兵遂先諸侯至霸上。
한 원년(기원전206년) 10월, 패공의 군대가 마침내 제후들에 앞서 覇上에 당도하였다.
秦王子嬰素車白馬,系頸以組,封皇帝璽符節,降軹道旁。
秦王 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軹道의 옆에서 항복하였다.
諸將或言誅秦王。
將帥들 중 누군가 秦王을 죽이자고 말하였다.
沛公曰:
「始懷王遣我,固以能寬容;
且人已服降,又殺之,不祥。」
패공이 말하였다.
“처음 회왕께서 나를 보내니, 실로 내가 관용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진왕이 이미 항복을 했는데도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乃以秦王屬吏,遂西入咸陽。
이에 진왕을 獄吏에게 맡기고, 이어 서쪽으로 향하여 함양에 입성하였다.
欲止宮休舍,樊噲、張良諫,乃封秦重寶財物府庫,還軍霸上。
궁중에 머물며 편히 쉬려고 하는데, 번쾌와 장량이 간하니, 진나라의 보물과 재물 창고를 봉한 뒤 패상으로 철군하였다.
▶ 漢元年 : 한 고조 원년(206년).
劉邦은 항우에 의해 기원전206년 漢中에 좌천되어 漢王으로 봉해졌다.
당시 천하가 통일되지 않아 각 제후국에 자신들의 紀元이 있었다.
▶ 秦王子嬰 : 통일 후 진나라의 제3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조고가 황제에 맞는 적임자를 찾았고, 그 적임자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시황제의 황태자 부소의 장남 子嬰이었다(혹은 호해의 형이라고도 한다).
▶ 系頸以組 : 고대 군주가 항복하는 예절이다.
組는 인끈을 말하며 오색의 실을 사이사이 섞어 짜서 옥새를 묶어서 허리에 띠는 것이다.
係頸(목에 묶다)은 항복을 하여 자살하고 싶다고 보인 것이다.
“沛公이 霸上에 도달하니 秦나라 왕 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軹道의 옆에서 항복하였다. 장수들이 죽이기를 청하자, 패공이 말하기를, “처음에 懷王께서 나를 보낸 것은 진실로 내가 너끈히 관용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사람이 이미 항복을 했으니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고 바로 옥리에게 넘겼다.”<資治通鑑綱目>
▶ 軹道 : 雍州 萬年縣 동북쪽.
▶ 屬吏 : 주관하는 관리에게 처리하도록 넘김. 屬(촉)은 부탁하다. 교부하다.
▶ 止宮休舍 : 궁중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다.
▶ 府庫 : 곳집. 창고.
召諸縣父老豪桀曰:
回軍한 후 모든 縣의 父老와 豪傑들을 불러 말하였다.
「父老苦秦苛法久矣,誹謗者族,偶語者棄市。
“부로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지 오래되었으며, 비방하는 자들은 멸족하였고, 私的으로 불평하는 자들은 저잣거리에서 처형당했습니다.
吾與諸侯約,先入關者王之,吾當王關中。
내가 제후들과 약속함에,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왕이 되기로 하였으니, 내가 당연히 관중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與父老約,法三章耳:
부로들과 약속하나니, 법은 세 조항일 뿐입니다.
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남을 상하게 한 자와 도둑질 한 자는 상응하는 죄를 묻겠습니다.
餘悉除去秦法。
나머지 진나라의 법은 모두 없애겠습니다.
諸吏人皆案堵如故。
관리와 백성들은 모두 전처럼 편안하게 지내면 됩니다.
凡吾所以來,為父老除害,非有所侵暴,無恐!
요컨대 내가 온 것은 父老들을 위해 해로움을 없애는 것이지, 포악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마시오!
且吾所以還軍霸上,待諸侯至而定約束耳。」
또 내가 패상으로 군사를 돌리는 까닭은 제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약속을 확정하려는 것일 뿐이오.”
▶ 苛法 : 가혹한 법령.
▶ 族 : 멸족하다.
▶ 偶語 : 사적으로 대화하다. 불평하다.
▶ 棄市 :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여 그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다.
▶ 法三章 : 三章은 세 조항의 법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벌에 해당시킴을 말하며, 유방이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咸陽에 들어가서 지방의 父老들과 三章의 법만 약속하고 그 밖의 모든 진나라의 악법을 폐지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한 것을 말한다.
▶ 抵罪 : 죄를 지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다.
▶ 案堵 : 安堵와 같다. 사는 곳에서 평안히 지내다. 마음을 놓다.
▶ 凡 : 요컨대. 한마디로 말하면.
▶ 定約束 : 규약을 제정하다.
乃使人與秦吏行縣鄉邑,告諭之。
이어 사람을 시켜 진나라의 관리와 함께 縣·鄉·邑을 순시하며 이를 널리 알리게 하였다.
秦人大喜,爭持牛羊酒食獻饗軍士。
진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앞을 다투어 牛羊酒食을 가지고 와서 군사들에게 대접하려 하였다.
沛公又讓不受,曰:
「倉粟多,非乏,不欲費人。」
패공은 또 사양하고 받지 않으며 말하였다.
“창고의 양식이 많아 부족함이 없으니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소.”
人又益喜,唯恐沛公不為秦王。
백성들이 더욱 기뻐하며, 패공이 秦王이 되지 못할까만 걱정하였다.
▶ 告諭 : 일반에게 널리 알리다.
▶ 饗 : 술과 음식을 대접하다.
▶ 費人 : 남에게 돈을 쓰게 하다. 폐를 끼치다.
或說沛公曰:
「秦富十倍天下,地形彊。
今聞章邯降項羽,項羽乃號為雍王,王關中。
今則來,沛公恐不得有此。
可急使兵守函谷關,無內諸侯軍,稍徵關中兵以自益,距之。」
누군가 패공에게 권하였다.
“진나라의 부유함은 천하의 열 배나 되고 지형은 견고합니다.
지금 듣자 하니 장한이 항우에게 항복하고, 항우는 그를 雍王이라 부르며 관중의 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지금 만약 그들이 온다면 패공께서는 이곳을 차지하지 못할 터입니다.
서둘러 병사를 보내 함곡관을 지켜 諸侯軍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관중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우리의 병력에 보태서 그들을 막으십시오.”
沛公然其計,從之。
패공은 그 계책을 옳다고 여겨 그대로 따랐다.
▶ 十倍天下 : 천하의 10배.
▶ 則 : 만약.
▶ 無內諸侯軍 : 제후군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 内는 納과 같다. 받아들이다.
▶ 稍 : 점점.
▶ 自益 : 자신의 병력을 더하다.
十一月中,項羽果率諸侯兵西,欲入關,關門閉。
11월 중순, 항우가 과연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함곡관을 진입하려 했으나 관문이 닫혀 있었다.
聞沛公已定關中,大怒,使黥布等攻破函谷關。
패공이 이미 관중을 평정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黥布 등에게 함곡관을 쳐부수도록 했다.
十二月中,遂至戲。
12월 중순에 마침내 戲水에 이르렀다.
沛公左司馬曹無傷聞項王怒,欲攻沛公,使人言項羽曰:
「沛公欲王關中,令子嬰為相,珍寶盡有之。」
패공의 左司馬 曹無傷은 항왕이 노하여 패공을 공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항우에게 고하였다.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되려고 子嬰을 재상으로 삼고 진귀한 보물들을 모두 다 차지하려 합니다.”
欲以求封。
조무상은 이런 말로 작위를 받고자 하였다.
亞父勸項羽擊沛公。
亞父(범증)가 항우에게 패공을 공격하라고 권하였다.
方饗士,旦日合戰。
이에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날이 새면 교전하고자 했다.
是時項羽兵四十萬,號百萬。
이때 항우의 병력은 40만인데 1백만이라 했다.
沛公兵十萬,號二十萬,力不敵。
패공의 병력은 10만인데 20만이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會項伯欲活張良,夜往見良,因以文諭項羽,項羽乃止。
마침 항백이 장량을 살리려고 밤에 장량을 만나러 갔고, 이로 인해 장량이 항우를 설득하여 항우가 공격을 중지했다.
沛公從百餘騎,驅之鴻門,見謝項羽。
패공은 100여 기를 데리고 홍문으로 말을 몰아 항우를 만나 사죄했다.
項羽曰:
「此沛公左司馬曹無傷言之。
不然,籍何以生此!」
항우가 말했다.
“이 일은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말한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항적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겠소!”
沛公以樊噲、張良故,得解歸。
패공은 번쾌와 장량의 도움으로 벗어나 돌아올 수 있었다.
歸,立誅曹無傷。
돌아오자마자 조무상을 죽였다.
▶ 亞父 : 항우의 군사고문인 范增의 존칭.
항우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여 ‘亞父’라 불렀다. 鴻門에서 項羽가 劉邦을 불러 잔치를 벌였을 때, 范增은 항우의 삼촌 項莊을 사주하여 술자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엿보아 유방을 찔러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 번쾌가 이를 알고 뛰어 들어와 큰소리치는 바람에 유방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 旦日 : 내일. 다음 날.
▶ 合戰 : 교전하다.
▶ 項羽兵四十萬 : 당시 항우의 병사는 40만 명으로 新豐의 鴻門에 있었고, 패공의 병사는 10만 명으로 패상에 주둔하고 있었다. <사기 본기 권07.항우본기>
▶ 會 : 마침.
▶ 驅 : 말을 몰다.
▶ 解 : 벗어나다. 탈출하다.
項羽遂西,屠燒咸陽秦宮室,所過無不殘破。
항우가 이어 서쪽으로 가서 함양의 진나라 궁실을 도륙하고 불태우니, 가는 곳마다 파괴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秦人大失望,然恐,不敢不服耳。
진나라 백성들은 크게 실망했으나, 두려워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残破 : 파괴되어 황폐하다.
項羽使人還報懷王。
항우가 사람을 보내 회왕에게 보고하였다.
懷王曰:
「如約。」
초회왕이 말하였다.
“약속대로 하라.”
項羽怨懷王不肯令與沛公俱西入關,而北救趙,後天下約。
항우는 회왕이 패공과 함께 서진하여 함곡관에 들어가게 명령하지 않고, 북쪽으로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는 바람에, 천하의 약속에 뒤처졌다고 원망하였다.
乃曰:
「懷王者,吾家項梁所立耳,非有功伐,何以得主約!
本定天下,諸將及籍也。」
이에 말하였다.
“회왕이란 우리 집안 항량 숙부께서 세운 사람일 뿐이니,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맹약을 주도할 수 있단 말인가!
본래 천하를 평정한 것은 장수들과 나 항적이다.”
乃詳尊懷王為義帝,實不用其命。
그리고는 짐짓 회왕을 義帝로 높였으나 실제로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 報 :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바라다.
▶ 如約 : 초 회왕이 먼저 관중을 정벌하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였었다.
▶ 功伐 : 공로.
▶ 主約 : 맹약을 주관하다.
▶ 詳 : 佯과 통하여 가장하다.
▶ 義帝 : 명의상의 황제를 말한다. 초회왕 熊心. 초회왕 熊槐의 손자.
기원전209년 項梁이 거병하고 옹립하여 楚王이 되고, 盱臺에 도읍을 정하였다. 항량이 죽고 진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彭城으로 천도했었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 항우에게 살해되었다.
正月,項羽自立為西楚霸王,王梁、楚地九郡,都彭城。
정월, 항우가 스스로 西楚覇王에 즉위하여 梁과 楚의 땅인 아홉 郡을 통치하며 팽성에 도읍하였다.
負約,更立沛公為漢王,王巴、蜀、漢中,都南鄭。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패공을 漢王으로 바꾸어 파·촉·한중을 다스리게 하고 남정을 도읍으로 정하였다.
三分關中,立秦三將:
章邯為雍王,都廢丘;
司馬欣為塞王,都櫟陽;
董翳為翟王,都高奴。
관중을 셋으로 나누어 진나라의 세 장수를 봉하니,
章邯을 雍王으로 삼아 廢丘를 도읍으로 정하고,
司馬欣을 塞王으로 삼아 역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董翳는 翟王으로 삼아 高奴를 도읍으로 정하였다.
▶ 都 : 수도로 정하다. 도읍을 정하다.
▶ 負約 : 약속을 어기다.
▶ 三分 : 항우가 秦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각기 나누어 셋으로 만들어 분봉하고 雍王,塞王,翟王이라 이름하고는 三秦이라 불렀다.
항왕은 章邯을 雍王으로 임명해 함양 서쪽을 다스리게 했고, 廢丘에 도읍하게 하였다.
長史 사마흔은 전에 역양의 옥연으로 있었으며, 일찍이 항량에게 덕을 베푼 적이 있었으므로, 塞王으로 삼아 함양의 동쪽에서 황하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리게 하고 역양에 도읍하게 하였다.
동예는 翟王으로 삼아 上郡을 다스리게 하고 高奴에 도읍하게 하였다.
楚將瑕丘申陽為河南王,都洛陽。
초나라의 장수 瑕丘의 申陽은 河南王으로 삼아 洛陽에 도읍하게 하였다.
趙將司馬卬為殷王,都朝歌。
조나라의 장수 司馬卬을 殷王으로 삼아 朝歌에 도읍하게 하였다.
趙王歇徙王代。
趙王 歇은 代를 다스리게 하였다.
趙相張耳為常山王,都襄國。
조나라 재상 張耳는 常山王으로 삼아 襄國에 도읍하게 하였다.
當陽君黥布為九江王,都六。
當陽君 黥布를 九江王으로 삼아 六峴에 도읍하게 하였다.
懷王柱國共敖為臨江王,都江陵。
회왕의 柱國 共敖를 臨江王으로 삼아 江陵에 도읍하게 하였다.
番君吳芮為衡山王,都邾。
番君吳芮를 衡山王으로 삼아 邾邑에 도읍하게 하였다.
燕將臧荼為燕王,都薊。
연나라의 장수 臧荼를 燕王으로 삼아 薊縣에 도읍하게 하였다.
故燕王韓廣徙王遼東。
전에 연왕이었던 韓廣은 遼東으로 옮겨 왕으로 삼았다.
廣不聽,臧荼攻殺之無終。
韓廣이 따르지 않자 臧荼가 그를 공격하여 無終에서 죽였다.
封成安君陳餘河閒三縣,居南皮。
成安君 陳餘에게는 河閒의 세 縣을 봉하여 南皮에 머물게 하였다.
封梅鋗十萬戶。
매현(梅鋗)은 10만 호의 후에 봉하였다.
▶ 申陽 : 설군 瑕丘사람으로 조나라 장이의 총신이었다.
▶ 徙 : 전임하다.
▶ 韓廣 : 한광은 遼東王으로 봉국이 옮겨졌고,장도가 한광을 대신해 연나라의 왕이 되었다.
기원전206년 장도가 연나라로 돌아와 한광을 요동으로 몰아내려 하자, 한광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근거지였던 무종에서 장도에게 공격을 받아 죽었다
四月,兵罷戲下,諸侯各就國。
4월(기원전206년), 제후들이 휘하 군대를 철수하여 각자의 封國으로 떠났다.
漢王之國,項王使卒三萬人從,楚與諸侯之慕從者數萬人,從杜南入蝕中。
한왕이 봉국으로 갈 때 항왕은 병사 3만을 따르게 했는데, 초나라와 제후 중에서도 존경하여 따르는 자가 수만 명이었으며, 杜縣 남쪽을 따라 蝕 땅으로 들어갔다.
去輒燒絕棧道,以備諸侯盜兵襲之,亦示項羽無東意。
군대가 지날 때마다 棧道를 불태워 끊어버림으로써 제후와 도적의 습격을 방비하였고, 또 항우에게 동쪽으로 갈 뜻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至南鄭,諸將及士卒多道亡歸,士卒皆歌思東歸。
南鄭에 도착할 무렵에 도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장수와 병사들이 많았는데, 병사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며 동쪽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였다.
▶ 戲下 : 대장군의 깃발 아래. 戲는 麾와 통한다. 일설에는 戲下를 戲水옆이라고도 한다.
▶ 就國 : 자신의 봉국으로 떠나다.
▶ 慕從者 : 존경하여 추종하는 사람들.
▶ 輒 : 문득, 갑자기.
▶ 棧道 :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은 길.
韓信說漢王曰:
韓信이 한왕에게 권하였다.
「項羽王諸將之有功者,而王獨居南鄭,是遷也。
“항우가 장수 중 공을 세운 사람은 왕으로 봉하고 대왕만 南鄭에 머물게 하니, 좌천한 것입니다.
軍吏士卒皆山東之人也,日夜跂而望歸,及其鋒而用之,可以有大功。
우리 군의 장교와 병사는 모두 山東 출신으로 낮이나 밤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발돋움하며 바라고 있으니, 이런 날카로운 기세를 활용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다.
天下已定,人皆自寧,不可復用。
천하가 안정되고 사람들이 모두 안녕을 찾으면 다시 활용할 수 없습니다.
不如決策東鄉,爭權天下。」
계책을 마련하여 동쪽으로 가서 천하의 패권을 쟁취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 韓信 :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기원전206년 유방이 項羽에게 漢王으로 봉해지자 漢中으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한신은 한왕에게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툴 것을 건의하였다.
▶ 遷 : 유배하다.
▶ 跂 : 발돋움하다
▶ 鋒 : 날카로운 기세.
▶ 東鄉 : 동쪽으로 진군하다. 鄉은 向과 통한다.
項羽出關,使人徙義帝。曰:
「古之帝者地方千里,必居上游。」
항우는 함곡관을 나서며, 사람을 보내 의제를 옮기게 하고 말하였다.
“옛날 제왕의 땅은 사방 천 리에 지나지 않았고 반드시 강의 상류에 기거했습니다.”
乃使使徙義帝長沙郴縣,趣義帝行.
그리고는 사신을 보내 義帝를 長沙의 郴縣으로 옮기게 하고 의제의 행차를 재촉하였다.
群臣稍倍叛之,乃陰令衡山王、臨江王擊之,殺義帝江南。
신하들이 점차 의제를 배반하자, 은밀히 衡山王과 臨江王에게 의제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여 강남에서 의제를 죽였다.
▶ 出關 : 함곡관을 나오다.
▶ 地方千里 : 땅이 사방 천리이다. 여기서는 땅이 넓지 않았음을 말한다.
▶ 上游 : 강의 상류.
▶ 趣 : 재촉하다.
▶ 稍 : 점점.
▶ 倍叛 : 背叛과 같다.
項羽怨田榮,立齊將田都為齊王。
항우는 田榮에게 원한이 있어서, 제나라의 장수 田都를 齊王으로 세웠다.
田榮怒,因自立為齊王,殺田都而反楚;
予彭越將軍印,令反梁地。
전영이 노하여 스스로 齊王이 되어 전도를 죽이고 초나라를 배반하였으며, 팽월에게 장군의 印綬를 주어 梁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楚令蕭公角擊彭越,彭越大破之。
초나라는 蕭公 角에게 팽월을 공격하게 했으나, 팽월이 그를 대파하였다.
陳餘怨項羽之弗王己也,令夏說說田榮,請兵擊張耳。
陳餘는 항우가 자신을 왕에 봉하지 않음에 원한을 품고, 夏說에게 전영을 설득하여 군대를 요청하고 張耳를 공격하게 하였다.
▶ 項羽怨田榮 : 진나라와 초나라가 거록성에서 전투할 때, 항량이 조나라와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조나라와 제나라가 지원하지 않았고, 결국 초나라가 패하여 장한에게 항량이 죽은 일이 있었다.
▶ 田榮怒 : 田榮은 항우가 제왕 田市을 膠東으로 옮기고, 제나라의 장수 田都를 제왕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제왕 전불을 교동으로 보내려 하지 않고 제나라를 점거한 뒤 반란을 일으켜 田都를 맞이하여 싸웠다.
전도는 초나라로 도망쳤다. 제왕 전불은 항왕이 두려워 교동으로 도망가 봉국에 따랐다. 전영이 화가 나서 전불을 추격하여 即墨에서 죽였다.
▶ 彭越 : 項羽의 군사가 되었으나, 항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반란을 일으켜 유방에게 귀순하였고, 한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초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史記列傳 권90. 魏豹彭越列傳>
▶ 陳餘怨項羽 : 항우의 分封에 불만을 품은 진여는 마침 비슷한 불만을 품은 田榮이 스스로 제나라 왕이 되어 진여에게 군사적 지원을 해 주자, 남피에서 군사를 모아 장이를 습격하여 패주시켰다.<사기열전 권89. 張耳陳餘列傳>
齊予陳餘兵,擊破常山王張耳,張耳亡歸漢。
제나라가 진여에게 병사를 주자 常山王 張耳를 격파하였고, 장이는 한왕에게로 도망쳐 귀순하였다.
迎趙王歇於代,復立為趙王。
진여는 조왕 헐을 代에서 맞이하여 다시 趙王으로 세웠다.
趙王因立陳餘為代王。
조왕은 그로 인해 진여를 代王으로 삼았다.
項羽大怒,北擊齊。
항우는 대노하여 북진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 陳餘 : 진여가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齊王 田榮과 함께 장이를 공격하자 장이는 劉邦에게 투항했고, 진여는趙王 헐을 도와 조나라 왕으로 세웠으나 전한의 장수 한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사기 권89. 張耳陳餘列傳>
八月,漢王用韓信之計,從故道還,襲雍王章邯。
8월, 한왕이 한신의 계책을 썼으니, 옛길을 따라 돌아가서 雍王 章邯을 습격하였다.
邯迎擊漢陳倉,雍兵敗,還走;
止戰好畤,又復敗,走廢丘。
장한은 陳倉에서 漢나라를 맞아 공격했으나, 옹왕 장한의 군대가 패하여 도주하였고,
好畤에 머물러 다시 싸웠지만, 또 패하여 폐구로 달아났다.
漢王遂定雍地。
한왕이 마침내 옹 지역을 평정하였다.
東至咸陽,引兵圍雍王廢丘,而遣諸將略定隴西、北地、上郡。
동진하여 함양에 이르렀고, 병사를 이끌고 폐구에서 옹왕을 포위하고 장수들을 보내 隴西·北地·上郡을 공략하여 평정하였다.
令將軍薛歐、王吸出武關,因王陵兵南陽,以迎太公、呂後於沛。
장군 薛歐·王吸에게 무관을 나가서 南陽의 王陵의 군대를 빌려서 태공과 여후를 패현에서 모셔오게 하였다.
楚聞之,發兵距之陽夏,不得前。
초나라가 소문을 듣고 군사를 보내 陽夏에서 막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令故吳令鄭昌為韓王,距漢兵。
전에 吳縣令이었던 鄭昌을 韓王으로 삼아 漢軍을 막았다.
二年,漢王東略地,塞王欣、翟王翳、河南王申陽皆降。
한왕 2년(기원전205년), 한왕이 동쪽 지역을 공략하자, 塞王 사마흔, 翟王 동예, 河南王 신양이 모두 투항하였다.
韓王昌不聽,使韓信擊破之。
韓王 정창이 말을 듣지 않자 韓信에게 쳐부수게 하였다.
於是置隴西、北地、上郡、渭南、河上、中地郡;關外置河南郡。
이에 隴西·北地·上郡·渭南·河上·中地의 郡을 두었으며, 함곡관 밖에는 河南郡을 설치하였다.
更立韓太尉信為韓王。
다시 韓太尉 信을 韓王으로 세웠다.
諸將以萬人若以一郡降者,封萬戶。
장군으로서 1만의 병사를 바치거나, 혹은 郡 하나를 바치고 투항하는 자는 萬戶侯에 봉하였다.
繕治河上塞。
河上郡의 요새를 수리하였다.
諸故秦苑囿園池,皆令人得田之,正月,虜雍王弟章平。
이전 진나라의 苑囿와 园地를 모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짓게 하였고, 정월에 옹왕의 아우 章平을 사로잡았다.
大赦罪人。
죄수들을 대사면하였다.
▶ 若 : 혹은. 만약.
▶ 繕治 : 수리하다.
▶ 苑囿园地 : 황제가 노닐거나 사냥을 하기 위한 곳으로 식물과 동물을 기르는 곳.
漢王之出關至陜,撫關外父老,還,張耳來見,漢王厚遇之。
한왕은 武關을 나와 陝縣에 이르러 관 밖의 부로들을 위로하고 돌아왔으며, 張耳가 와서 알현하자 한왕은 후하게 대우하였다.
▶ 撫 : 위로하다.
▶ 厚遇 : 후대하다.
二月,令除秦社稷,更立漢社稷。
2월, 진나라의 社稷壇을 폐기하고 한나라의 사직단을 다시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 除 : 폐기하다.
▶ 社稷 : 土神과 穀神을 제사하던 祭壇.
三月,漢王從臨晉渡,魏王豹將兵從。
3월, 한왕이 臨晉에서 황하를 건너자 魏王 豹가 군사를 이끌고 따랐다.
下河內,虜殷王,置河內郡。
河內를 함락시키고 殷王 사마앙을 포로로 잡은 뒤 하내군을 설치하였다.
南渡平陰津,至雒陽。
남쪽으로 平陰津을 건너 낙양에 이르렀다.
新城三老董公遮說漢王以義帝死故。
新城의 三老 董公이 한왕을 가로막고 의제가 죽은 연유를 말하였다.
漢王聞之,袒而大哭。
한왕이 이를 듣고 왼쪽 어깨를 드러낸 채 크게 통곡하였다.
遂為義帝發喪,臨三日。
마침내 의제를 위하여 喪을 발표하고 사흘 동안 곡을 하였다.
▶ 三老 : 백성의 교화를 담당하는 鄉官.
▶ 袒 : 웃통을 벗다. 왼쪽 어깨를 드러내다.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 發喪 : 부고를 내다. 초상난 것을 발표하다.
▶ 臨 : 곡하다. 울며 조의를 표하다.
發使者告諸侯曰:
「天下共立義帝,北面事之。
今項羽放殺義帝於江南,大逆無道。
寡人親為發喪,諸侯皆縞素。
悉發關內兵,收三河士,南浮江漢以下,願從諸侯王擊楚之殺義帝者。」
한왕은 사신을 보내 제후들에게 고하였다.
“천하 제후들이 함께 의제를 옹립하여 북면하여 섬겼다.
지금 항우가 멋대로 義帝를 강남에서 살해하였으니 大逆無道한 짓이다.
과인이 몸소 발상하였으니 제후들은 모두 소복을 입으라.
관중의 병사를 모두 동원하고 三河의 군사를 거두어 장강과 한수를 따라 남하하니, 제후왕들은 나를 따라 초나라에서 의제를 죽인 자를 공격하기 원하노라.”
▶ 北面 : 초 회왕의 신하로 칭하였음을 말한다.
▶ 事 : 섬기다.
▶ 縞素 : 소복. 흰빛의 상복.
▶ 三河 : 河南郡,河內郡,河東郡을 말한다.
是時項王北擊齊,田榮與戰城陽。
당시 항왕은 북진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田榮과 城陽에서 교전하였다.
田榮敗,走平原,平原民殺之。
전영이 패하여 평원으로 달아나자 평원의 백성들이 그를 죽였다.
齊皆降楚。
제나라가 모두 초나라에 항복하였다.
楚因焚燒其城郭,系虜其子女。
초나라는 제나라 성곽을 불사르고 자녀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齊人叛之。
이에 제나라의 백성들이 초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田榮弟橫立榮子廣為齊王,齊王反楚城陽。
전영의 동생 전횡이 전영의 아들 전광을 제왕으로 세우고, 제왕 전광은 성양에서 초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項羽雖聞漢東,既已連齊兵,欲遂破之而擊漢。
항우는 비록 한나라가 동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齊軍과 잇따라 싸우고 있어서, 이들을 격파한 뒤 한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漢王以故得劫五諸侯兵,遂入彭城。
한왕은 이런 까닭에 다섯 제후의 군대를 겁박하여 마침내 팽성에 입성하였다.
▶ 田榮 : 狄縣출신으로 옛 齊나라 왕족 田氏의 宗族이다.
항우의 분봉에서 소외되자 불만을 품고 같이 불만을 품은 조나라의 陳餘와 손을 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고, 제왕으로 임명된 전도를 공격해 초나라로 쫓아냈다.
항우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자 기원전205년 제왕 전영의 군대는 패하여 平原으로 달아났고, 평원 사람들이 전영을 살해하였다. <사기열전 권094. 田儋列傳>
▶ 系虜 : 포로로 잡다.
▶ 東 : 동진하다.
▶ 既已 : 이미. 벌써.
▶ 以故 : 이 때문에.
▶ 五諸侯 : 常山王 張耳, 河南王 申陽, 韓王 鄭昌, 魏王 魏豹, 殷王 司馬卬.
項羽聞之,乃引兵去齊,從魯出胡陵,至蕭,與漢大戰彭城靈壁東睢水上,大破漢軍,多殺士卒,睢水為之不流。
항우가 이를 듣고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떠나 魯縣에서 호릉으로 나와 蕭縣에 이르러, 漢軍과 彭城과 靈壁 동쪽의 睢水가에서 크게 싸워서, 한 군을 대파하였는데, 병사들을 많이 죽여서 수수가 그 때문에 흐르지 못하였다.
乃取漢王父母妻子於沛,置之軍中以為質。
이어 한왕의 부모와 처를 패현에서 붙잡아 군중에 인질로 잡아 두었다.
當是時,諸侯見楚彊漢敗,還皆去漢復為楚。
당시 제후들은 초나라가 강성하여 한나라를 패퇴시키는 것을 보고, 모두 한나라를 떠나 다시 초나라를 도왔다.
塞王欣亡入楚。
塞王 사마흔이 초나라로 도망쳐왔다.
▶ 睢水 : 陳留縣의 서쪽 蒗蕩渠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沛郡의 相縣을 지난다.
▶ 質 : 인질.
▶ 漢王父母妻子 : 太公과 呂后. 유방의 아버지와 유방의 부인
▶ 為楚 : 초나라를 돕다.
呂后兄周呂侯為漢將兵,居下邑。
여후의 오빠 周呂侯는 한왕을 위해 병사를 거느리고 下邑에 주둔하고 있었다.
漢王從之,稍收士卒,軍碭。
한왕이 그에게 가서 의탁하고, 차츰 군사를 收拾하며 碭縣에 주둔하였다.
漢王乃西過梁地,至虞。
그후 한왕은 서진하여 양 땅을 지나 虞縣에 이르렀다.
使謁者隨何之九江王布所,曰:
「公能令布舉兵叛楚,項羽必留擊之。
得留數月,吾取天下必矣。」
謁者 隨何를 구강왕 黥布가 있는 곳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능히 경포가 舉兵하여 초나라를 배반하게 만들면, 항우는 틀림없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경포를 공격할 터이다.
몇 달 동안만 머무르게 만들면, 내가 천하를 얻는 것이 확실하리라.”
隨何往說九江王布,布果背楚。
수하가 가서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니, 경포는 과연 초나라를 배반하였다.
楚使龍且往擊之。
초나라는 龍且를 보내 경포를 공격하였다.
▶ 周呂侯 : 여후의 오빠. 이름은 澤이고 周呂는 책봉된 읍의 이름이다.
▶ 謁者 : 군주에게 보고를 담당하는 자.
▶ 隨何 : 진나라 말기 전한 초기의 유생. 漢王 劉邦의 신하로 한왕이 서초패왕 항우와 팽성 전투에서 참패하고 도망했을 때 謁者의 직책에 있었다.
▶ 黥布 : 본명이 英布이며, 前漢 六安 六縣사람으로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해 경포黥布로 불렸다.
항우를 따라 入關한 뒤 九江王에 봉해졌으며,항우의 명령에 따라 衡山王 吳芮와 함께 楚懷王 義帝를 죽였다. 楚漢전쟁 중에 한나라 隨何가 그를 설득하자 한나라로 귀순하였다. <사기 권91. 黥布列傳>
▶ 龍且 : 楚나라 項羽의 막하 장수.
漢王之敗彭城而西,行使人求家室,家室亦亡,不相得。
한왕이 彭城에서 패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사람을 보내 가족을 찾았으나, 가족 역시 도망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敗後乃獨得孝惠,六月,立為太子,大赦罪人。
패전 후에 아들 孝惠만을 찾아서, 6월에 효혜를 태자로 세우고 죄수들을 널리 赦免하였다.
令太子守櫟陽,諸侯子在關中者皆集櫟陽為衛。
태자에게 櫟陽을 지키게 하고, 제후의 자제로서 관중에 있는 자들을 모두 역양으로 불러서 지키게 하였다.
引水灌廢丘,廢丘降,章邯自殺。
물을 끌어다가 廢丘에 흐르게 하니 폐구는 항복하고 章邯은 자살하였다.
更名廢丘為槐里。
폐구를 槐里로 이름을 바꾸었다.
於是令祠官祀天地四方上帝山川,以時祀之。
이에 祭祀官에게 天地·四方·上帝·山川에 제사지내라고 명하고, 이후로는 때에 맞추어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興關內卒乘塞。
관중 내의 군사를 일으켜 변방 요새를 지키게 하였다.
▶ 孝惠 : 유방의 아들인 劉盈. 후에 漢惠帝로 즉위한다.
▶ 廢丘 : 周나라 때 太丘이며 懿王이 도읍한 곳이다. 秦나라가 폐지하고자 하여 폐구라고 이름을 고쳤으며 漢나라 扶風 槐里縣이다. 항우가 章邯을 雍王으로 삼고, 咸陽 서쪽 廢丘에 도읍하게 했었다.
▶ 章邯 : 秦나라 말기의 장수로 陳勝과 吳廣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宦官 趙高의 迫害를 받아 項羽에게 투항하였다. 기원전205년 劉邦의 漢나라 군대와 싸워서 패하고 자살하였다.
▶ 乘塞 : 변방의 요새를 지키다.
是時九江王布與龍且戰,不勝,與隨何閒行歸漢。
이때 구강왕 경포는 龍且와 싸워 이기지 못하자, 隨何와 함께 샛길을 이용하여 한나라에 귀순하였다.
漢王稍收士卒,與諸將及關中卒益出,是以兵大振滎陽,破楚京、索閒。
한왕은 차츰 병사들을 모으고 장수들과 관중의 병사를 더 보태어 출정하니, 軍勢가 형양에 크게 떨쳤고, 京邑과 索邑 사이에서 초나라를 격파하였다.
▶ 與隨何閒行歸漢 : 몇 개월의 전쟁 후 용저가 회남을 공격하여 영포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영포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한나라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초왕에게 잡혀 살해될까 두려워하여, 샛길을 이용하여 수하와 함께 한나라에 귀순하였다. <사기 권91. 黥布列傳>
三年,魏王豹謁歸視親疾,至即絕河津,反為楚。
한왕 3년(기원전204년),魏王 豹가 한왕을 拜謁하고 어머니의 문병을 핑계로 귀국하자, 즉시 황하 나루를 폐쇄하고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漢王使酈生說豹,豹不聽。
한왕이 酈生을 보내 위왕 표를 설득했으나, 듣지 않았다.
漢王遣將軍韓信擊,大破之,虜豹。
한왕은 장군 韓信을 보내 공격하여 대파하고 豹를 사로잡았다.
遂定魏地,置三郡,曰河東、太原、上黨。
마침내 魏나라 땅이 평정되었고, 세 개의 군을 설치하니 河東·太原·上黨이다.
漢王乃令張耳與韓信遂東下井陘擊趙,斬陳餘、趙王歇。
其明年,立張耳為趙王。
한왕은 이어 장이와 한신에게 동쪽으로 진격하여 井陘으로 내려와서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니, 진여와 조왕 헐의 목을 베었다.
이듬해 장이를 趙王으로 세웠다.
▶ 魏王 豹 : 기원전205년 유방에 의해 대원수로 임명되어 6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彭城대전을 치렀으나, 漢나라가 항우에게 크게 패하고 위표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 본국 魏나라로 돌아가 유방을 배신하고, 유방이 보낸 사신 酈食其의 설득도 받아들이지 않다가, 韓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滎陽으로 끌려갔다. <史記권90 魏豹彭越列傳>
▶ 韓信 : 淮陰侯 韓信. 前漢의 장군이자 제후이다.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기원전206년 유방이 項羽에 의하여 漢王으로 봉해지자 漢中으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한신은 한왕에게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투자고 건의하였다. <사기 권92 淮陰侯列傳>
▶ 井陘 : 河北省 남서부의 현.
▶ 張耳,陳餘 : 진여가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齊王 田榮과 함께 張耳를 공격하자, 장이는 劉邦에게 투항했고, 진여는 趙王헐을 도와 조나라 왕으로 세웠으나 전한의 장수 한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史記권89 張耳陳餘列傳>
漢王軍滎陽南,筑甬道屬之河,以取敖倉。
한왕은 형양 남쪽에 주둔하면서 황하로 통하는 甬道를 쌓아 敖倉의 양식을 가져왔다.
與項羽相距歲餘。
이렇게 항우와 1년 넘게 대치하였다.
項羽數侵奪漢甬道,漢軍乏食,遂圍漢王。
항우가 여러 차례 한나라의 용도를 침공하여 식량을 빼앗으니, 한군은 식량이 부족하였고, 마침내 한왕을 포위하였다.
漢王請和,割滎陽以西者為漢。
한왕이 강화를 청하며 滎陽 서쪽을 한나라 땅으로 떼어달라고 하였다.
項王不聽。
항왕은 듣지 않았다.
漢王患之,乃用陳平之計,予陳平金四萬斤,以閒疏楚君臣。
한왕이 이것을 걱정하여, 진평의 계책을 이용하였으니, 진평에게 금 4만 근을 주고 초나라의 君臣을 離間하여 멀어지게 하였다.
於是項羽乃疑亞父。
이리하여 항우는 亞父를 의심하게 되었다.
亞父是時勸項羽遂下滎陽,及其見疑,乃怒,辭老,願賜骸骨歸卒伍,未至彭城而死。
아보는 그때 항우에게 형양을 필히 함락하자고 권했었는데, 자신이 의심받게 되자 화가 나서, 나이를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백성으로 늙어죽기를 원했으나, 길을 떠나 팽성에 이르기도 전에 죽었다.
▶ 築甬道 : 甬道를 쌓다. 甬道는 운송하는 군량을 적이 빼앗는 것을 막고자, 길의 양쪽 가에 담장을 쌓아서 군량 보급로로 사용하는 것이다.
▶ 屬 : 이어지다.
▶ 閒 : 離間. 항왕과 범증의 관계를 이간시키려 하다.
▶ 亞父 : 范增. 항우의 책사로 칠순의 나이에도 지략과 비범함을 갖추고 있었으며, 유방이 장차 항우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항우가 호응하지 않아 결국 실패하였다.
오히려 한나라 陳平의 反間計로 유방과 내통한다는 오해를 받고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병으로 죽었다.
▶ 見疑 : 의심을 받다.
▶ 賜骸骨 : 관리가 연로함을 이유로 퇴직을 요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해골이 고향에 돌아가 장사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乞骸骨'이라고도 한다.
▶ 歸卒伍 : 고향으로 돌아가 일반백성이 되다.
漢軍絕食,乃夜出女子東門二千餘人,被甲,楚因四面擊之。
한군의 식량이 다 떨어지자, 한왕은 밤중에 여자 2천여 명에게 갑옷을 입히고 동문으로 나가게 하니, 楚軍이 사방에서 이들을 공격하였다.
將軍紀信乃乘王駕,詐為漢王,誑楚,楚皆呼萬歲,之城東觀,以故漢王得與數十騎出西門遁。
장군 紀信이 한왕의 수레를 타고 한왕으로 가장하여 초군을 속이니, 초군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며 성 동쪽으로 와서 구경하였고, 이 사이에 한왕은 수십 騎를 이끌고 西門을 나와 달아났다.
令御史大夫周苛、魏豹、樅公守滎陽。
한왕은 어사대부 周苛·魏豹·樅公에게 형향을 지키게 하였다.
諸將卒不能從者,盡在城中。
從軍할 수 없는 장수와 병사는 모두 성안에 남아 있었다.
周苛、樅公相謂曰:
「反國之王,難與守城。」
因殺魏豹。
주가와 종공이 서로 말하였다.
“나라를 배반한 왕과는 함께 성을 지키기 어렵다.”라고 하며 魏豹를 죽였다.
▶ 絕食 : 식량이 떨어지다.
▶ 被 : 披와 같다. (옷을) 입다.
▶ 誑 : 속이다.
▶ 遁 : 달아나다.
▶ 魏豹 : 기원전205년 유방에 의해 대원수로 임명되어 6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彭城대전을 치렀으나, 漢나라가 항우에게 크게 패하고, 위표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 본국 魏나라로 돌아가 유방을 배신하고 유방이 보낸 사신 酈食其의 설득도 받아들이지 않다가, 韓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滎陽으로 끌려갔다. 형양에서 유방의 명령으로 楚나라 군대를 방어하고 있었는데 같이 있던 漢나라 장수들이 그가 자주 배신하여 믿을 수 없다고 여겨 周苛가 그를 죽였다. <사기 권90. 魏豹彭越列傳>
▶ 周苛 : 전한 泗水 沛縣 사람. 劉邦을 따라 內史가 되고, 御史大夫로 옮겼다.
초한전쟁 때 魏豹,樅公과 함께 滎陽을 지켰다. 초나라가 형양을 포위하자 위표가 일찍이 한나라에 배반하였다 하고 위표를 살해하였다.
나중에 項羽가 형양을 함락하자 포로로 잡혔다.
항우가 항복을 권하면서 上將軍으로 임명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항복하지 않아 烹死되었다.
漢王之出滎陽入關,收兵欲復東。
한왕은 형양을 나와 관중으로 들어가서, 병사를 수습하여 다시 동쪽으로 나가려 하였다.
袁生說漢王曰:
袁生이 한왕에게 권하였다.
「漢與楚相距滎陽數歲,漢常困。
“한나라와 초나라가 형양에서 대치하기 몇 년인데, 한나라는 늘 곤궁했습니다.
願君王出武關,項羽必引兵南走,王深壁,令滎陽成皋閒且得休。
바라옵건대 군왕께서 무관을 나가시면 항우가 틀림없이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갈 터이니, 왕께서는 보루를 높이 쌓고 滎陽과 成皋 일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명하십시오.
使韓信等輯河北趙地,連燕齊,君王乃復走滎陽,未晚也。
한신 등에게는 趙나라 땅을 안정시키고 연나라·제나라와 연합하게 하고, 군왕께서 다시 형양으로 가셔도 늦지 않겠습니다.
如此,則楚所備者多,力分,漢得休,復與之戰,破楚必矣。」
이렇게 하면, 초나라는 지켜야 할 곳이 많아서 힘이 분산되고, 한나라는 휴식을 얻으니, 다시 싸워서 초나라를 깨뜨리는 것은 확실하겠습니다.”
漢王從其計,出軍宛葉閒,與黥布行收兵。
한왕은 그 계책을 따라 완현과 섭현 지역을 나와서 경포와 함께 행군하며 군사를 모았다.
▶ 深壁 : 성벽을 높이 쌓다. 壁은 진영. 보루.
▶ 且 : 잠시. 우선. 머뭇거리다.
▶ 輯 : 모으다.
▶ 連 : 연결하다.
▶ 行收兵 : 행진하면서 군사를 모으다.
項羽聞漢王在宛,果引兵南。
항우는 한왕이 완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병사를 이끌고 남하하였다.
漢王堅壁不與戰。
한왕은 堡壘를 견고히 지키고 싸우지 않았다.
是時彭越渡睢水,與項聲、薛公戰下邳,彭越大破楚軍。
이때 팽월이 睢水를 건너서 項聲·薛公과 下邳에서 싸웠고, 팽월이 초군을 대파하였다.
項羽乃引兵東擊彭越。
항우는 이에 군사를 이끌고 동진하여 팽월을 공격하였다.
漢王亦引兵北軍成皋。
한왕도 역시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成皋에 주둔하였다.
項羽已破走彭越,聞漢王復軍成皋,乃復引兵西,拔滎陽,誅周苛、樅公,而虜韓王信,遂圍成皋。
항우는 팽월을 무찔러 쫓아버리고 나서, 한왕이 성고에 다시 주둔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다시 병사를 이끌고 서진하여 형양을 함락하고, 周苛·樅公을 죽이고, 韓王 信을 포로로 잡고 이어서 성고를 포위하였다.
▶ 堅壁 : 군루를 견고히 지키다.
▶ 破走彭越 : 격파하여 쫓아내다.
漢王跳,獨與滕公共車出成皋玉門,北渡河,馳宿修武。
한왕은 성고에서 달아나 滕公 하후영과 수레를 같이 타고 成皋의 玉門으로 탈출하여,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말을 달려 修武에 묵었다.
自稱使者,晨馳入張耳、韓信壁,而奪之軍。
한왕은 자신을 사신이라 칭하면서, 새벽에 말을 몰아 장이와 한신의 성벽 안에 들어가 그들의 군대를 빼앗았다.
乃使張耳北益收兵趙地,使韓信東擊齊。
그리고는 장이를 북쪽으로 보내 趙땅에서 병사들을 더 모으게 하고, 한신에게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漢王得韓信軍,則復振。
한왕은 韓信의 군대를 얻자 다시 사기가 올랐다.
引兵臨河,南饗軍小修武南,欲復戰。
병사를 이끌고 황하에 이르러 남쪽으로 가서 小修武의 남쪽에 주둔하며 다시 초나라와 싸우고자 하였다.
▶ 跳 : 도망하다.
▶ 滕公 : 夏侯嬰. 前漢 고조의 개국공신.
▶ 共車 : 수레에 같이 타다.
▶ 自稱使者 : 한왕은 새벽에 자신을 한나라 사자라고 칭하면서 말을 달려 조나라의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의 침실로 들어가 그들의 인수와 부절을 빼앗고 휘하의 장군들을 소집해 직책을 바꾸어 놓았다. <사기 권92. 淮陰侯列傳>
▶ 饗 : 向
郎中鄭忠乃說止漢王,使高壘深塹,勿與戰。
낭중 鄭忠이 한왕에게 중지하도록 권하면서, 군루를 높이 쌓고 참호를 깊게 판 후 싸우지 말라고 하였다.
漢王聽其計,使盧綰、劉賈將卒二萬人,騎數百,渡白馬津,入楚地,與彭越復擊破楚軍燕郭西,遂復下梁地十餘城。
한왕은 그 계책을 따랐으니, 盧綰과 劉賈에게 병사 2만, 기병 수백을 이끌고 백마진을 건너서 초나라 땅으로 들어가게 하고, 팽월을 도와 燕縣 성곽 서쪽에서 다시 초군을 치게 하니, 마침내 양 땅 10여 城을 다시 함락하였다.
▶ 高壘 : 성채를 높이 쌓다.
▶ 深塹 : 참호를 깊이 파다.
▶ 盧綰 : 전한 초기 沛縣사람. 劉邦과 같은 동네 같은 날 태어났다. 유방을 따라 병사를 일으켜 한나라가 들어서자 將軍이 되었다.
▶ 劉賈 : 한왕 유방의 사촌 형으로, 형왕을 지냈으며 영포의 반란에서 전사하였다.
淮陰已受命東,未渡平原。
淮陰侯 韓信이 명을 받고 동진하여 平原津을 아직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漢王使酈生往說齊王田廣,廣叛楚,與漢和,共擊項羽。
한왕은 酈生을 齊王 田廣에게 보내 설득하기를, 전광이 초나라를 배신하고 한나라와 강화하여 함께 항우를 공격하자고 하였다.
韓信用蒯通計,遂襲破齊。
한신은 蒯通의 계책을 써서, 제나라를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齊王烹酈生,東走高密。
齊王은 역생을 삶아 죽이고, 동쪽 高密로 달아났다.
▶ 用蒯通計 : 괴통의 계책을 쓰다.
괴통은 漢나라의 劉邦과 楚나라의 項羽가 천하를 다투던 시절 韓信의 策士로 본명은 蒯徹이다. 회음후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다가 아직 平原津을 건너기 전에 한왕이 酈食其를 파견해 이미 제나라를 설득하여 항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으므로 한신은 齊에 대한 공격을 멈추려고 하였다.
괴통이 이를 반대하며 초나라를 공격하기로 하고 황하를 건너 역하의 제나라 군대를 습격하였다. <사기 권92 회음후열전>
▶ 齊王烹酈生 : 齊王 田廣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고 여기고, 그를 삶아 죽이고, 高密로 달아나 초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사기 권92 회음후열전>
▶ 烹 : 삶다. 고대의 삶아서 죽이는 혹형
項羽聞韓信已舉河北兵破齊、趙,且欲擊楚,則使龍且、周蘭往擊之。
항우는 한신이 이미 河北兵을 일으켜 제·조나라를 격파하였고, 또 초나라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龍且·周蘭을 보내 한신을 치게 하였다.
韓信與戰,騎將灌嬰擊,大破楚軍,殺龍且。
한신이 이들과 교전하는데, 騎將 灌嬰이 출격하여 초군을 대파하고 용저를 죽였다.
齊王廣奔彭越。
제왕 전광은 팽월에게 도망쳤다.
當此時,彭越將兵居梁地,往來苦楚兵,絕其糧食。
이때 팽월은 군대를 梁지역에 주둔시키고, 오가며 楚軍을 괴롭히며 식량 운반로를 끊었다.
▶ 周蘭 : 초나라의 장수. 유수 전투에서 亞將으로 참전하였다. 관영에게 사로잡혔으며, 이후 관영이 서초의 수도권을 휩쓸 때 아장으로 싸워서 또 사로잡혔다.
四年,項羽乃謂海春侯大司馬曹咎曰:
「謹守成皋。
若漢挑戰,慎勿與戰,無令得東而已。
我十五日必定梁地,復從將軍。」
한왕 4년(기원전203년), 항우는 海春侯 大司馬 曹咎에게 말하였다.
“成皋를 잘 지켜라.
만약 한나라가 도전해 오더라도 부디 맞서 싸우지 말고, 동쪽으로 오지 못하게만 하라.
내가 15일 이내에 틀림없이 양 지역을 평정하고 다시 장군과 합류하겠다.”
乃行擊陳留、外黃、睢陽,下之。
그리고는 진군하면서 陳留·外黃·睢陽을 쳐서 함락하였다.
▶ 曹咎 : 秦나라 때 獄掾을 지냈는데, 사마흔과 함께 항량을 숨겨준 일로 항우의 신임을 받아 海春侯에 봉해지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 謹守 : 신중하게 지키다. 조심하여 지키다.
▶ 成臯 : 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지형이 험고하여 전략적으로 요충지였다.
▶ 慎 : 부디. 절대로.
漢果數挑楚軍,楚軍不出,使人辱之五六日,大司馬怒,度兵汜水。
漢軍이 과연 楚軍에게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초군이 나오지 않았으나, 사람을 보내 대엿새 욕설을 퍼붓자, 대사마가 화를 내고 병사를 이끌고 汜水를 건넜다.
士卒半渡,漢擊之,大破楚軍,盡得楚國金玉貨賂。
군사들이 반쯤 건넜을 때 한군이 공격하여 초군을 대파하고, 초나라의 금은보화와 재물을 모조리 노획하였다.
大司馬咎、長史欣皆自剄汜水上。
대사마 조구, 장사 사마흔은 모두 汜水에서 自刎하였다.
項羽至睢陽,聞海春侯破,乃引兵還。
항우가 睢陽에 이르러서 해춘후 조구의 패전 소식을 듣고,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漢軍方圍鐘離眛於滎陽東,項羽至,盡走險阻。
한군은 그때 형양 동쪽에서 鍾離眛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항우가 도착하자 모두 험준한 곳으로 달아났다.
▶ 汜水 : 지금의 成皐城 동쪽에 있는 강.
▶ 貨賂 : 재물.
▶ 鐘離眛 : 楚나라 項羽의 장수로 지략과 병법에 뛰어나 유방의 진영을 괴롭혔다.
▶ 險阻 : 험준하다. 산이 높고 길이 험하다.
韓信已破齊,使人言曰:
「齊邊楚,權輕,不為假王,恐不能安齊。」
한신이 제나라를 쳐부수고 나서, 사자를 보내 한왕에게 말하였다.
“제나라는 초나라와 변경을 맞대고 있고 저의 권한이 약하기 때문에 임시 왕으로 삼지 않으면, 제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漢王欲攻之。
한왕이 한신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留侯曰:
「不如因而立之,使自為守。」
留侯(장량)가 말하였다.
“이 기회에 한신을 임시 왕으로 세워서, 스스로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乃遣張良操印綬立韓信為齊王。
이에 장량에게 印綬를 주어 보내고 한신을 齊王으로 삼았다.
▶ 韓信 : 회음후 한신.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漢初三傑 중 하나로 꼽히며, 蕭何가 國士無雙이라고 칭찬한 명장이다.
장군이 된 한신이 초한전쟁 중에 제나라를 정벌하고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였으며 이로 인해 한왕 유방과 알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사기 권92, 淮陰侯列傳>
▶ 假王 : 임시 왕. 왕의 임시 대리인.
▶ 留侯 : 張良. 字는 子房. 시호 文成公.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會'에서 유방이 위기를 벗어나게 하였다.
▶ 印綬 : 官印. 綬는 官印을 몸에 차기 위한 끈.
項羽聞龍且軍破,則恐,使盱臺人武涉往說韓信。
항우는 용저의 군대가 패하였다는 소식에 두려워하고, 盱臺 사람인 武涉을 보내 한신을 설득하였다.
韓信不聽。
한신은 듣지 않았다.
▶ 武涉 : 진나라 말기의 策士.
東海郡 盱台출신으로 항우를 섬겼으며, 초한전쟁 때 항우의 명령을 받고 괴철보다 앞서서 천하삼분지계를 주장하며 한신이 독립하도록 유혹하고, 以夷制夷로 유방과 한신을 모두 제거하려고 시도했으나, 한신은 한왕의 은혜를 배반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楚漢久相持未決,丁壯苦軍旅,老弱罷轉馕。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서로 대치했으나 승부가 나지 않자, 장정들은 군대생활이 괴로웠고 노약자들은 식량 운반에 지쳤다.
漢王項羽相與臨廣武之閒而語。
한왕과 항우는 廣武山 골짜기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項羽欲與漢王獨身挑戰。
항우가 한왕과 單身으로 싸우자고 도전하였다.
漢王數項羽曰:
한왕은 항우의 죄상을 열거하며 말하였다.
「始與項羽俱受命懷王,曰先入定關中者王之,項羽負約,王我於蜀漢,罪一。
“처음 항우 너와 함께 懷王의 명을 받으며, 관중에 먼저 입관하여 평정하는 자가 왕이 되기로 했으나, 항우 너는 약속을 어기고 나를 촉한의 왕이 되게 한 것이 너의 첫 번째 죄이다.
秦項羽矯殺卿子冠軍而自尊,罪二。
진나라 항우 너는 왕명이라 속여서 卿子冠軍 宋義를 죽이고 상장군이 된 것이 너의 두 번째 죄이다.
項羽已救趙,當還報,而擅劫諸侯兵入關,罪三。
항우 너는 조나라를 구원하고 돌아와 보고해야 하거늘, 제멋대로 제후들을 겁박하여 함곡관에 들인 것이 세 번째 죄이다.
懷王約入秦無暴掠,項羽燒秦宮室,掘始皇帝冢,私收其財物,罪四。
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 폭력과 약탈을 하지 말라 했거늘, 항우 너는 진나라의 궁실에 불을 지르고 시황제의 무덤을 도굴하여 사사로이 그 재물을 거두어 간 것이 네 번째 죄이다.
又彊殺秦降王子嬰,罪五。
또 항복한 秦王 子嬰을 함부로 죽인 것이 다섯 번째 죄이다.
▶ 未决 : 승부가 나지 않다.
▶ 軍旅 : 군대.
▶ 罷轉馕 : 식량 운반에 지지다. 罷는疲와 통용된다. 육로로 운반하는 것을 轉이라 한다.
▶ 廣武之閒 : 광무산의 골짜기. 閒은 골짜기 澗.
▶ 數 : 죄상을 열거하다.
▶ 矯 : 왕의 명령이라고 사칭하다.
▶ 卿子冠軍 : 초나라의 송의. 卿子는 公子라는 뜻이고, 冠軍은 上將軍이라는 뜻으로, 楚 懷王이 송의를 높여 부른 칭호이다.
초 회왕이 전열을 정비한 다음 宋義를 상장군으로, 항우를 次將으로, 范增을 末將으로 임명하여 북으로 나아가 趙나라를 구원하게 하였으나,송의가 형세를 관망하느라 진격하지 않자 항우가 화가 나서 송의를 죽였다.
▶ 自尊 : 스스로 존귀하게 됨. 즉,항우가 송의를 죽이고 상장군이 되었음을 말한다.
▶ 王子嬰 : 진왕 자영. 통일 후 진나라의 제3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詐阬秦子弟新安二十萬,王其將,罪六。
진나라의 젊은이 20만을 新安에서 속여서 생매장하고, 그 장수를 왕으로 삼은 것이 여섯 번째 죄이다.
項羽皆王諸將善地,而徙逐故主,令臣下爭叛逆,罪七。
항우 너는 너의 장수들은 모두 좋은 땅에 왕으로 삼고, 옛 군주들을 내쫓아 신하들이 다투어 반역하게 하였으니 일곱 번째 죄이다.
項羽出逐義帝彭城,自都之,奪韓王地,并王梁楚,多自予,罪八。
항우 너는 義帝를 팽성으로 내쫓고 너의 도읍으로 삼고, 韓王의 땅을 빼앗고, 양과 초를 병합하여 다스리며 많은 것을 자신이 차지하였으니 여덟 번째 죄이다.
項羽使人陰弒義帝江南,罪九。
항우 너는 사람을 시켜 남몰래 강남에서 의제를 시해하였으니 아홉 번째 죄이다.
夫為人臣而弒其主,殺已降,為政不平,主約不信,天下所不容,大逆無道,罪十也。
신하된 자가 자신의 군주를 시해하고, 항복한 사람을 죽이고, 정치가 불공평하고, 약속을 주관함에 신의가 없으므로 천하가 용납할 수 없어서, 大逆無道하니 열 번째 죄이다.
吾以義兵從諸侯誅殘賊,使刑餘罪人擊殺項羽,何苦乃與公挑戰!」
내가 義兵을 가지고 제후들을 따라 仁義를 저버린 도적을 토벌함에, 너에게 형벌을 받은 죄인에게 너를 공격하게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힘들게 그대와 싸우겠는가!”
▶ 王其將 : 그 장수를 왕으로 삼다. 章邯과 司馬欣을 말한다.
▶ 故主 : 옛 군주. 田市, 趙歇, 韓廣 등을 말한다.
▶ 殘賊: 孟子曰:“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
▶ 刑餘罪人 : 형벌을 받은 죄인들.
項羽大怒,伏弩射中漢王。
항우가 대노하였고, 매복한 궁수가 쇠뇌를 쏘아 한왕을 명중시켰다.
漢王傷匈,乃捫足曰:
「虜中吾指!」
한왕은 가슴에 부상하였으나, 발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저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었구나!”
漢王病創臥,張良彊請漢王起行勞軍,以安士卒,毋令楚乘勝於漢。
한왕은 상처 때문에 앓아누웠는데, 장량이 한왕에게 강력히 청하기를, 병석에서 일어나 군영을 돌며 병사들을 위로하며 안심시켜서, 초나라가 승세를 타고 한나라에 이길 수 없게 하라고 하였다.
漢王出行軍,病甚,因馳入成皋。
한왕이 나가 군영을 도니 병이 더 심해졌고, 이 때문에 成皋로 달려 들어갔다.
▶ 伏弩 : 매복한 궁수.
▶ 匈 : 胸과 같다.
▶ 捫(문) : 어루만지다. 가슴을 다쳤는데 발을 문지른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다.
▶ 虜 : 종놈. 강도. 상대방을 경멸하는 말.
▶ 行勞 : 순시하며 병사들을 위로하다.
病愈,西入關,至櫟陽,存問父老,置酒,梟故塞王欣頭櫟陽市。
한왕은 병이 낫자 서쪽 관중으로 들어가서 櫟陽에 이르러, 父老들을 위문하며 술자리를 베풀고, 塞王이었던 司馬欣의 머리를 櫟陽 저잣거리에 효수하였다.
留四日,復如軍,軍廣武。
역양에서 4일 동안 머무르고, 軍中으로 돌아와 광무에 주둔하였다.
關中兵益出。
관중에는 병력이 더욱 늘었다.
▶ 存問父老 : 안부를 묻다. 위문하다. 父老는 노인. 어르신.
▶ 置酒 : 주연을 베풀다.
▶ 梟 : 梟首.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다는 처형.
▶ 如 : 가다.
當此時,彭越將兵居梁地,往來苦楚兵,絕其糧食。
당시 彭越은 병사를 이끌고 梁 땅에 주둔한 채, 오가며 楚軍을 괴롭히며 군량 수송을 끊었다.
田橫往從之。
田橫이 팽월에게 가서 의지하였다.
項羽數擊彭越等,齊王信又進擊楚。
항우가 여러 차례 彭城 등을 공격했으며, 齊王 한신 또한 출병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項羽恐,乃與漢王約,中分天下,割鴻溝而西者為漢,鴻溝而東者為楚。
항우가 두려워하며 한왕과 약속하였으니, 천하를 정확하게 둘로 나누고, 홍구의 서쪽은 한나라의 땅이 되었고, 홍구의 동쪽은 초나라의 땅이 되었다.
項王歸漢王父母妻子,軍中皆呼萬歲,乃歸而別去。
항왕이 한왕의 부모와 처자를 돌려보내자 漢軍은 모두 만세를 불렀으며, 곧 각자의 군대를 철수하여 떠났다.
▶ 彭越 : 진나라 山陽 昌邑출신으로 도적이었다. 字는 仲이다.
진나라 말기 각지에서 봉기하여 군웅들이 할거하자 스스로 봉기하여 군사를 일으켜 楚 項羽의 군사가 되었다. 항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에게 귀순하고 한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초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병사를 인솔해 垓下에서 項羽를 격멸하고 梁王에 봉해졌다.
▶ 田橫 : 秦나라 말기 田儋, 田榮과 함께 秦나라에 반기를 들고 齊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형제 셋이 돌아가면서 제나라 왕이 되었으나 초한전쟁으로 인하여 전담과 전영이 죽었고, 전횡은 漢의 劉邦이 천하를 평정하자 賓客 5백여 명과 섬에 숨어 살다가, 유방의 부름을 받고 洛陽으로 가던 중 수치스러움에 자결하였다.
▶ 鴻溝 : 중국 河南省 開封府의 지명.
項羽와 劉邦이 이를 경계로 하여, 서쪽은 漢나라의 땅으로, 동쪽은 楚나라의 땅으로 하기로 약속하였다.
項羽解而東歸。
항우가 군대를 풀어 동쪽으로 돌아갔다.
漢王欲引而西歸,用留侯、陳平計,乃進兵追項羽,至陽夏南止軍,與齊王信、建成侯彭越期會而擊楚軍。
한왕도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張良과 陳平의 계책을 썼으니, 진군하여 항우를 뒤쫓다가 陽夏 남쪽에서 진군을 멈추고 제왕 한신, 建成侯 팽월과 회합하여 초군을 치기로 하였다.
至固陵,不會。
固陵에 이르도록 한신과 팽월의 군대가 회합에 오지 않았다.
楚擊漢軍,大破之。
초나라가 한군을 공격하여 大破하였다.
▶ 留侯陳平計 : 장량과 진평이 한왕을 설득하기를
“한나라가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제후도 모두 따르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은 지쳐 있고 식량도 다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로 이 기회를 틈타 취하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놓아주고 치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를 일러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근심을 남기는 것’이라 합니다.”라고 하였고, 한왕이 이를 따랐다.<사기 본기 07.항우본기>
▶ 留侯 : 張良. 자는 子房.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會'에서 유방이 위기를 벗어나게 하였다.
▶ 陳平 : 처음에는 項羽를 섬겼으나, 이후 劉邦의 진영으로 옮겨가 漢나라 통일에 공을 세웠다. 그는 계략에 뛰어나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이 쫓겨나게 모략을 꾸몄고, 항우 휘하의 대장군으로 실력자로 평가받던 종리매에 대한 신임을 잃게 하였다.
▶ 期會 : 회합하는 날짜를 약속하다.
漢王復入壁,深塹而守之。
한왕이 다시 성으로 들어가 참호를 깊이 파고 굳게 지켰다.
用張良計,於是韓信、彭越皆往。
장량의 계책을 쓰자 한신과 팽월이 모두 왔다.
及劉賈入楚地,圍壽春,漢王敗碧陵,乃使使者召大司馬周殷舉九江兵而迎武王,行屠城父,隨劉賈、齊梁諸侯皆大會垓下。
유고가 초 땅으로 들어가 壽春을 포위했으나 한왕은 고릉에서 패했으므로, 이에 사신을 보내 대사마 周殷을 불러 구강의 군대를 동원하여 무왕 경포를 맞아들이고 城父를 도륙하니, 유고를 따라 제와 양의 제후들이 모두 해하에 대대적으로 모여들었다.
立武王布為淮南王。
무왕 경포를 회남왕으로 임명하였다.
▶ 深塹 : 참호를 깊이 파다.
▶ 用張良計 : 장량이 한왕에게 권하기를 “군왕께서 그들과 천하를 함께 나눈다면 당장 오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군왕께서는 진현 동쪽에서 바닷가에 이르는 땅을 모두 한신에게 주고, 수양 이북에서 곡성까지는 팽월에게 주어 각자 자신들을 위해 싸우게 하면 초나라를 물리치는 일은 쉬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사기 본기 권07. 항우본기>
▶ 周殷 : 劉賈가 壽春을 포위하여 초나라의 大司馬인 周殷을 유인하자, 주은이 초나라를 배반하고 九江의 군대를 다 동원해서 黥布를 맞았으니, 모두 회합하게 되었다.
五年,高祖與諸侯兵共擊楚軍,與項羽決勝垓下。
한왕 5년(기원전202년), 고조가 제후군과 함께 초군을 공격하여 垓下에서 항우와 승부를 결하였다.
淮陰侯將三十萬自當之,孔將軍居左,費將軍居右,皇帝在後,絳侯、柴將軍在皇帝後。
회음후 한신이 30만을 이끌고 직접 맞섰으며, 孔將軍은 그 왼쪽에, 費將軍은 그 오른쪽에 진을 쳤으며, 황제는 뒤에, 絳侯 주발과 柴將軍은 황제의 뒤에 위치하였다.
項羽之卒可十萬。
항우의 병사는 10만 가량이었다.
淮陰先合,不利,卻。
회음후가 먼저 교전하였으나 불리하여 물러났다.
孔將軍、費將軍縱,楚兵不利,淮陰侯復乘之,大敗垓下。
공장군과 비장군이 협공하여 초군이 불리해지자, 회음후가 그 틈을 타고 해하에서 초군을 대파하였다.
▶ 高祖 : 劉邦을 말한다. 자는季이고, 廟號는 원래 太祖인데 司馬遷이 史記에서 高祖라 칭한 뒤로 통칭이 되었다.
사마천은 유방이 황제가 되기 전에는 漢王으로, 황제가 된 뒤에는 高祖로 표현하였다.
여기서는 황제가 되기 전인데도 고조라고 기술하였다.
▶ 垓下 :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결전을 벌인 곳으로 지금의 安徽省 靈壁縣부근의 지명이다.
▶ 當之 : 초나라 군대와 맞서다.
▶ 皇帝 : 劉邦을 말한다.
▶ 合 : 교전하다.
項羽卒聞漢軍之楚歌,以為漢盡得楚地,項羽乃敗而走,是以兵大敗。
항우의 병사들은 한군이 부르는 楚나라 노래를 듣고 한나라가 초나라의 땅을 다 차지한 줄 알았느데, 항우가 패하여 달아나니 이 때문에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使騎將灌嬰追殺項羽東城,斬首八萬,遂略定楚地。
騎將 灌嬰에게 추격하게 하여 東城에서 항우를 죽이고, 8만의 목을 베어 마침내 초 땅을 평정하였다.
魯為楚堅守不下。
魯縣이 초나라를 위하여 굳게 지켜 함락하지 못하였다.
漢王引諸侯兵北,示魯父老項羽頭,魯乃降。
한왕이 제후군을 이끌고 북진하여 노현의 父老들에게 항우의 머리를 보이자 노현이 이내 항복하였다.
遂以魯公號葬項羽穀城。
이에 항우를 魯公으로 봉하여 穀城에 장사를 지냈다.
還至定陶,馳入齊王壁,奪其軍。
定陶로 돌아와서 齊王 한신의 郡樓로 달려 들어가서 그의 군대를 빼앗았다.
▶ 楚歌 : 四面楚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형편을 이르는 말. 초나라 항우가 사면을 둘러싼 한나라 군사 쪽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랫소리를 듣고 초나라 군사가 이미 항복한 줄 알고 놀랐다는 데서 유래한다. 楚歌는 초나라 사람의 노래를 부른 것이다. 吳나라의 노래, 越나라의 노래를 읊는다는 말과 같다. 九江의 군대가 漢나라로 귀속되었기 때문에 초나라 노랫소리가 많았던 것이다.
▶ 以魯公号 : 노공이라는 칭호로 봉하다. 당초 초 회왕이 항우를 처음으로 魯公에 봉하였었다.
正月,諸侯及將相相與共請尊漢王為皇帝。
정월, 제후와 장상들이 공동으로 한왕을 황제로 추대하길 청하였다.
漢王曰:
「吾聞帝賢者有也,空言虛語,非所守也,吾不敢當帝位。」
한왕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황제는 어진 자가 가지는 것이라 했으며, 공허한 말로 지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나는 황제 자리를 감당할 수 없소.”
▶ 相與共 : 공동으로.
群臣皆曰:
「大王起微細,誅暴逆,平定四海,有功者輒裂地而封為王侯。
大王不尊號,皆疑不信。
臣等以死守之。」
군신들이 모두 말하였다.
“대왕께서 미천한 평민에서 일어나 포악한 역도를 토벌하고 천하를 평정하시었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땅을 분배하고 왕후로 봉하셨습니다.
대왕께 황제의 존호를 받들지 않으면, 모두가 믿지 않고 의심할 터입니다.
신들은 죽음으로 이를 지켜낼 터입니다.”
漢王三讓,不得已,曰:
「諸君必以為便,便國家。」
한왕이 세 번 사양하고 어쩔 수 없어 말하였다.
“그대들이 여기기에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이 국가에 유리하다면, 내가 즉위하겠소.”
甲午,乃即皇帝位汜水之陽。
2월 갑오일, 한왕이 氾水 북쪽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 微細 : 미천한 신분. 평민을 말한다.
▶ 裂地 : 땅을 분배하다.
▶ 汜水之陽 : 범수의 북쪽.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을 陽이라고 한다.
▶ 諸君必以為便,便國家: 所謂「留白」,是一種「由於感情複雜,一時說不清楚,或是說清楚了反倒不如不說清楚的好,而有意留下空白,讓接受者盡情發揮想像力和理解力加以填補」(譚永祥,一九九二:四五),從而獲致表意婉轉含蓄、耐人尋味效果的語言表達策略。上述劉邦所說的「諸君必以為便便國家……」,是一句沒有說完的話,他只說了一個假設條件:「假設大家認為我做皇帝有利於國家。」在此條件下的推論結果:「我就做皇帝」這一句,就沒有說出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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