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月丙寅,始皇崩於沙丘平臺。
7월 병인일, 시황이 沙丘의 平臺에서 세상을 떠났다.
丞相斯為上崩在外,恐諸公子及天下有變,乃祕之,不發喪。
승상 이사는 황제가 외지에서 서거했기 때문에, 아들들과 천하에 변란이 일으날까 두려워하여, 이를 비밀로 하고 喪을 알리지 않았다.
棺載轀涼車中,故幸宦者參乘,所至上食。
관을 轀涼車에 싣고, 전부터 총애를 받아온 환관을 參乘으로 삼아, 이르는 곳마다 황제에게 식사를 올리게 하였다.
百官奏事如故,宦者輒從轀涼車中可其奏事。
백관들도 예전과 같이 보고를 올리게 했는데, 환관이 그때마다 온량거 안에서 상주하는 일을 허락하였다.
獨子胡亥、趙高及所幸宦者五六人知上死。
아들 호해와 조고 및 총애받던 환관 5~6명만이 황제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趙高故嘗教胡亥書及獄律令法事,胡亥私幸之。
조고는 예전에 호해에게 글과 법률 등을 가르쳤으므로, 호해는 사적으로 조고를 좋아하였다.
▶ 發喪 : 사망을 알리다. 부고를 내다.
▶ 轀輬車 : 고대에 평안하게 누워 쉬는 수레를 뜻하였으나, 나중에 棺을 싣는 것으로 바뀌었다.
▶ 參乘: 陪乘. (윗사람을 모시고)함께 타다.
▶ 可其奏事 : 상주하는 일을 윤허하다.
▶ 趙高 : 秦나라의 환관이자 정치가로,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환관이라고 말해진다.
시황제를 따라 여행하던 중 시황제가 병사하자, 승상 이사와 짜고 조서를 거짓 꾸며,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장군 몽염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또 시황제의 우둔한 막내아들 호해를 2세황제로 삼아 마음대로 조종하였다.
高乃與公子胡亥、丞相斯陰謀破去始皇所封書賜公子扶蘇者,而更詐為丞相斯受始皇遺詔沙丘,立子胡亥為太子。
조고는 이에 공자 호해·승상 이사와 음모를 꾸미되, 시황이 공자 扶蘇에게 내린 편지를 뜯고, 이를 승상 이사가 沙丘에서 시황의 유언을 받은 것으로 거짓으로 고쳐서, 아들 胡亥를 태자로 옹립하였다.
更為書賜公子扶蘇、蒙恬,數以罪,賜死。
고친 편지를 공자 부소·蒙恬에게 보내서, 그들의 죄목을 열거하고 자결을 명령하였다.
語具在李斯傳中。
이 일은 모두 李斯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行,遂從井陘抵九原。
일행이 가다가 마침내 井陘을 지나 久原에 닿았다.
會暑,上轀車臭,乃詔從官令車載一石鮑魚,以亂其臭。
마침 여름이라, 황제의 온량거에서 시신이 썩는 냄새가 나자, 侍從官에게 절인 생선 1석을 싣도록 명령하여, 그 냄새를 구분 못하게 하였다.
▶ 始皇所封書賜公子扶蘇者: 始皇所封書를 수식하는 말이 그 뒤에 오며, 끝에 者를 두어 名詞化하는 용법이다.
▶ 數以罪 : 죄를 열거하다.
▶ 賜死 : 자결하도록 명을 내리다.
▶ 李斯傳中 : 史記 권87 李斯列傳
▶ 會 : 마침.
▶ 鮑魚 : 소금에 절인 생선.
行從直道至咸陽,發喪。
일행은 直道를 따라 함양에 도착하고, 喪을 알렸다.
太子胡亥襲位,為二世皇帝。
태자 호해가 제위를 이어받아 2세황제가 되었다.
九月,葬始皇酈山。
이해 9월에 시황을 酈山에 안장하였다.
始皇初即位,穿治酈山,及并天下,天下徒送詣七十餘萬人,穿三泉,下銅而致槨,宮觀百官奇器珍怪徙臧滿之。
진시황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여산에 무덤을 파는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전국에서 이송되어 온 70여만의 죄수들로 묘를 깊이 팠고, 外棺에 이르도록 구리 용액을 부었고, 궁궐과 백관의 모습과 진기한 기물과 보물 괴석들을 옮겨와서 가득 채웠다.
▶ 直道 : 도로명. 진시황 35년에 몽염이 九原을 지나 雲陽까지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직도를 만들었다.
▶ 穿: (구멍을)뚫다.
▶ 三泉 : 三重泉. 아주 깊이 파는 것을 말한다.
▶ 下銅 : 구리 용액으로 공간을 메우다.
▶ 臧 : 藏과 같다. 감추다. 간수하다.
令匠作機弩矢,有所穿近者輒射之。
匠人을 시켜 화살이 발사되는 기계장치를 만들게 하여, 도굴하려고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발사되도록 하였다.
以水銀為百川江河大海,機相灌輸,上具天文,下具地理。
수은으로 온갖 하천과 강과 바다를 만들어서, 기계장치로 계속 흐르도록 하였으며, 천장에는 천문도를 갖추고 바닥에는 지도를 갖추었다.
以人魚膏為燭,度不滅者久之。
人魚기름으로 촛불을 만들어 오래도록 꺼지지 않게 하였다.
▶ 機弩矢 : 화살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계장치.
▶ 人魚 : 도룡뇽. 일설에는 고래라고도 한다.
▶ 膏 : 기름.
二世曰:
「先帝後宮非有子者,出焉不宜。」
2세황제가 말하였다.
“선제의 후궁으로 자식이 없는 자를, 궁궐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되겠다.”
皆令從死,死者甚眾。
영을 내려 모두 순장시키니 죽은 자가 아주 많았다.
葬既已下,或言工匠為機,臧皆知之,臧重即泄。
장례가 끝나고 나자 어떤 자가 말하기를,
‘장인들이 기계장치를 만들었으며, 묘에 보관한 보물을 모두 알고 있고, 보관한 물건이 귀중하므로 누설될 터입니다.’라고 하였다.
大事畢,已臧,閉中羨,下外羨門,盡閉工匠臧者,無復出者。
성대한 장례가 끝나고 보물을 모두 매장한 후, 묘로 가는 중간 문을 폐쇄하고 바깥문도 닫아서, 匠人과 보물 보관자를 모두 폐쇄하니, 다시 나오는 자가 없었다.
樹草木以象山。
묘 위에 초목을 심어 산처럼 만들었다.
▶ 從死 : 殉葬을 말한다.
▶ 羨門: 묘의 문. 羨은 무덤으로 통하는 길. 墓道
二世皇帝元年,年二十一。
2세황제 원년(기원전209년), 2세황제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趙高為郎中令,任用事。
趙高를 郎中令으로 삼아서 조정의 대권을 맡겼다.
二世下詔,增始皇寢廟犧牲及山川百祀之禮。
2세가 조서를 내려 시황제의 寢廟에 바치는 犧牲과 산천에 올리는 모든 제사의 예물을 늘리게 하였다.
令群臣議尊始皇廟。
신하들에게 명하여 시황제의 묘호를 추존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 任用事 : 대권을 장악하다.
▶ 寢廟 : 묘에는 앞과 뒤의 건물을 구분하여 지었는데, 뒤의 건물을 寢, 앞의 건물을 廟라고 하며 종묘 전체를 침묘라고 부른다.
寢이란 사는 사람의 거처를 말하는 것으로 궁궐의 寢殿이나 私家의 침실을 뜻하며, 묘는 조상의 신위와 영정을 봉안하고 四時祭를 봉행하는 곳이며 의관이나 궤장 등은 침에 보관한다.
▶ 犧牲 : 제사용으로 사용되는 가축.
群臣皆頓首言曰:
신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古者天子七廟,諸侯五,大夫三,雖萬世世不軼毀。
“옛날에 천자는 七廟, 제후는 五廟, 대부는 三廟를 두어 만세토록 훼손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今始皇為極廟,四海之內皆獻貢職,增犧牲,禮咸備,毋以加。
지금 始皇의 사당은 極廟로 전국에서 모두 공물을 바치고, 犧牲을 늘려 모든 예물을 다 갖추고 있는 까닭에 더할 것이 없습니다.
先王廟或在西雍,或在咸陽。
선왕의 사당은 西雍에도 있고 함양에도 있습니다.
天子儀當獨奉酌祠始皇廟。
천자는 예법에 따라 응당 시황제의 사당에만 직접 술을 올려야 합니다.
自襄公已下軼毀。
襄公 이하의 묘는 헐어 없애야 합니다.
所置凡七廟。
모두 7묘를 설치해야 합니다.
群臣以禮進祠,以尊始皇廟為帝者祖廟。
신하들에게 예에 따라서 제사를 올리게 하고, 시황제의 사당을 높여 천자의 祖廟로 높이십시오.
皇帝復自稱『朕』。」
황제께서는 다시 자신을 朕이라 칭하십시오.”
▶ 七廟 : 祖廟. 옛 제도에 천자의 조묘는 7대조까지 제사를 올리게 되어 있었다.
▶ 軼毀 : 훼손되다.
▶ 極廟 : 至高無上한 묘. 진시황 27년에 信宮을 渭南에 짓고, 얼마 뒤에는 궁의 모양이 하늘의 끝을 형상하였다고 하여 또다시 極廟라고 이름을 고쳤다.
▶ 貢職 : 공물.
二世與趙高謀曰:
「朕年少,初即位,黔首未集附。
先帝巡行郡縣,以示彊,威服海內。
今晏然不巡行,即見弱,毋以臣畜天下。」
2세황제가 조고와 의논하며 말하였다.
“짐이 나이가 어리고 막 즉위한 터라, 백성들이 아직 복종하지 않고 있소.
선제께서는 군현을 순시하며 강함을 과시하시어 위세로 천하를 복종시켰소.
지금 편안히 순행하지 않으면 약함을 보여 천하를 다스릴 길이 없을 터이오.”
春,二世東行郡縣,李斯從。
이듬해 봄에 2세황제가 동쪽으로 군현을 순시하러 나섰고, 李斯가 陪從하였다.
到碣石,并海,南至會稽,而盡刻始皇所立刻石,石旁著大臣從者名,以章先帝成功盛德焉:
갈석산에 이른 뒤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회계에 이르러서, 시황제가 세운 비석에 모두 글자를 새기고, 비석 옆면에는 陪從한 대신들의 이름을 나타내어, 선제의 공적과 성덕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 集附 : 복종하다.
▶ 晏然 : 편안하다. 평온하다.
▶ 臣畜 : 통치하다.
▶ 著 : 부착하다. 덧붙여 새기다.
▶ 章 : 명백하게 하다. 분명히 드러내다.
皇帝曰:
「金石刻盡始皇帝所為也。
今襲號而金石刻辭不稱始皇帝,其於久遠也如後嗣為之者,不稱成功盛德。」
2세황제가 말하였다.
“금석에 새긴 것은 모두 시황제께서 하신 일들이오.
지금 황제라는 호칭을 이어받고도 금석에다 시황제를 칭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마치 후대 자손이 한 것처럼 되어, 시황제의 공적과 성덕에 걸맞지 않을 터이오.”
丞相臣斯、臣去疾、御史大夫臣德昧死言:
「臣請具刻詔書刻石,因明白矣。
臣昧死請。」
승상 이사와 풍거질,어사대부 德이 죽음을 무릅쓰며 청하였다.
“신들은 황제의 조서를 비석에다 모두 새겨서, 그 연유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길 청하옵니다.
신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청하옵니다.”
制曰:
「可。」
2세황제는 명령하였다.
“그렇게 하시오.”
遂至遼東而還。
이어 2세황제가 요동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於是二世乃遵用趙高,申法令。
이때 2세황제는 趙高의 건의를 따라 법령을 공표하였다.
乃陰與趙高謀曰:
「大臣不服,官吏尚彊,及諸公子必與我爭,為之柰何?」
그리고는 은밀히 조고와 상의하였다.
“대신들은 복종하지 않고, 관리들은 아직 세력이 강하며, 공자들은 기필코 나와 권력을 다투려 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遵用 : 건의를 따르다.
▶ 申 : 申明. 공표하다.
▶ 諸公子 : 진시황제의 아들들.
高曰:
趙高가 말하였다.
「臣固願言而未敢也。
“신이 본래 말씀을 드리고자 하였으나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先帝之大臣,皆天下累世名貴人也,積功勞世以相傳久矣。
선제 때의 대신은 모두 천하에 대대로 명성을 떨친 귀인들로서, 쌓은 공로가 대대로 전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今高素小賤,陛下幸稱舉,令在上位,管中事。
지금 臣 조고는 본래 비천한 몸이었으나, 폐하께서 발탁하시어 높이 써 주신 덕에, 궁중의 일을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大臣鞅鞅,特以貌從臣,其心實不服。
대신들은 이를 불만스럽게 여겨, 단지 겉으로 복종하고 그들의 마음속으로는 실제로 복종하지 않습니다.
今上出,不因此時案郡縣守尉有罪者誅之,上以振威天下,下以除去上生平所不可者。
지금 황제께서 순시하면서, 이때를 이용하여 郡守와 縣尉들 중 죄를 지은 자를 가려내어 처벌하시어, 위로는 천하에 위엄을 떨치시고 아래로는 황제께서 평소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을 제거하지 않으십니까.
今時不師文而決於武力,願陛下遂從時毋疑,即群臣不及謀。
지금은 문치를 본받지 말고 무력으로 결정해야 하니, 원하옵건대 폐하께서 時勢를 따르시되 의심하지 않으시면, 신하들도 미처 모의하지 못할 터입니다.
明主收舉餘民,賤者貴之,貧者富之,遠者近之,則上下集而國安矣。」
영명한 군주는 버려진 인재를 모아 기용하고, 천한 자를 귀하게 만들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만들며, 멀리 있는 자를 가까이 오게 만드니, 上下가 단결되어 나라가 편안해집니다.
▶ 累世 : 대대로.
▶ 稱舉 : 발탁하다. 보살피다.
▶ 中事 : 궁중의 일을 관리하다.
▶ 鞅鞅 : 怏怏과 같다. 불만스러운 모양.
▶ 師文 : 文治를 중시하다.
二世曰:
「善。」
2세황제가 말하였다.
“좋다.”
乃行誅大臣及諸公子,以罪過連逮少近官三郎,無得立者,而六公子戮死於杜。
이에 대신과 공자들을 주살하였으며, 그 죄명을 심지어 近臣과 三郎까지 연좌시켜 체포하니, 제대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자가 없었으며, 여섯 공자는 杜縣에서 피살되었다.
公子將閭昆弟三人囚於內宮,議其罪獨後。
공자 將閭 삼형제는 내궁에 가두었다가, 나중에 그 죄를 따로 다스렸다.
二世使使令將閭曰:
「公子不臣,罪當死,吏致法焉。」
2세황제가 사신을 보내 장려에게 말하였다.
“公子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하니, 형리가 형을 집행할 터이다.”
▶ 近官 : 近臣.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신하.
▶ 三郎 : 中郎, 外郎, 散郎을 말한다.
▶ 將閭 : 진나라의 황족으로 시황제의 아들이다.
▶ 不臣 :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다.
▶ 致法 : 죄를 다스려 벌을 주다.
將閭曰:
「闕廷之禮,吾未嘗敢不從賓贊也;
廊廟之位,吾未嘗敢失節也;
受命應對,吾未嘗敢失辭也。
何謂不臣?
願聞罪而死。」
장려가 말하였다.
“궁중의 儀禮에서 나는 감히 賓贊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적이 없다.
조정의 지위에서도 나는 감히 예절을 잃은 적이 없다.
명령을 받고 응대할 때도, 나는 감히 말을 실수한 적이 없다.
어째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무슨 죄인지 알고나 죽겠다.”
使者曰:
「臣不得與謀,奉書從事。」
使者가 말하였다.
“신은 논의할 수 없으며, 조서를 받들어 일을 처리할 뿐입니다.”
將閭乃仰天大呼天者三,曰:
「天乎!吾無罪!」
장려는 이에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
▶ 闕廷 : 궁정.
▶ 賓贊 : 의례를 집행하는 관리.
▶ 廊廟 : 朝廷.
▶ 節 : 예절.
▶ 失辭 : 失言.
昆弟三人皆流涕拔劍自殺。
형제 세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검을 뽑아 자살하였다.
宗室振恐。
종실은 두려움에 떨었다.
群臣諫者以為誹謗,大吏持祿取容,黔首振恐。
신하들이 간언하면 비방으로 간주되었고, 고관들은 녹봉을 지키려고 비위를 맞췄고,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다.
▶ 宗室 : 皇族.
▶ 取容 : 비위를 맞추다. 영합하다.
四月,二世還至咸陽,曰:
4월에, 2세황제가 함양으로 돌아와서 말하였다.
「先帝為咸陽朝廷小,故營阿房宮為室堂。
“선제께서 함양의 조정이 좁다고 여기셔서, 아방궁을 방과 거실로 건축하셨다.
未就,會上崩,罷其作者,復土酈山。
완공되기 전에 마침 선제께서 崩御하시니, 공사를 중단하고 여산에서 復土 작업을 하였다.
酈山事大畢,今釋阿房宮弗就,則是章先帝舉事過也。」
여산의 일이 모두 끝났는데, 아방궁 공사를 놓아두고 준공하지 않는 것은 선제께서 벌이신 일을 잘못이라고 밝히는 것이 된다.”
復作阿房宮。
이에 다시 아방궁을 짓기 시작하였다.
▶ 室堂 : 방과 거실.
▶ 未就 : 준공하지 못하다.
▶ 罷其作者,復土酈山 : 아방궁을 건축하는 것을 중지하고 인력을 여산으로 보내 진시황릉을 수리하였다.
▶ 復土 : 봉분을 만드는 작업을 함.
▶ 大畢 : 전부 완공하다.
外撫四夷,如始皇計。
밖으로 사방의 이민족들을 다독거리는 일은 시황제의 계획과 같았다.
盡徵其材士五萬人為屯衛咸陽,令教射狗馬禽獸。
건장한 병사 5만 명을 징집하여 함양에 주둔시켜 지키게 하고, 활쏘기와 군견,군마, 금수를 훈련시키게 하였다.
當食者多,度不足,下調郡縣轉輸菽粟芻稿,皆令自齎糧食,咸陽三百里內不得食其穀。
먹어야 할 사람은 많은데 식량이 부족하다고 여겨, 군현에 식량과 사료의 징발을 명하여 운송하도록 하되, 운반하는 인부들은 모두 식량을 각자 휴대하여 오도록 하고, 함양 300리 이내에서 나는 곡식은 먹지 못하게 하였다.
用法益刻深。
법의 집행이 갈수록 가혹하고 엄격해졌다.
▶ 材士 : 건장한 병사.
▶ 下調郡縣 : 각 군현에서 징발토록 명하다.
▶ 轉輸 : 운송하다.
▶ 菽粟 : 식량. 콩과 좁살.
▶ 芻稿 : 사료. 꼴과 볏집.
▶ 刻深 : 가혹하고 엄격하다.
七月,戍卒陳勝等反故荊地,為「張楚」。
이해 7월, 변방의 수비병으로 가던 陳勝 등이 옛 荊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 이름을‘張楚’라 칭하였다.
勝自立為楚王,居陳,遣諸將徇地。
진승은 스스로 楚王에 즉위하고 陳縣에 머물면서, 장수들을 보내 점령지를 순행하게 하였다.
山東郡縣少年苦秦吏,皆殺其守尉令丞反,以應陳涉,相立為侯王,合從西鄉,名為伐秦,不可勝數也。
山東군현의 젊은이들은 진나라의 관리들에게 고초를 당하다가, 郡守, 郡尉, 縣令, 縣丞을 모두 죽이고, 陳涉(진승)에 호응하고 서로 제후왕이 되어 합종하여 서쪽으로 향하며, 진나라를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 戍卒 : 변방의 수비병.
▶ 陳涉 : 陳勝. 陽城사람으로 字는 涉이다. 秦나라 말기의 농민 출신으로 戍卒로 가던 중 봉기하여 농민 반란을 주도하였다. 2세황제 원년(기원전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일으켜 ‘張楚’를 건국하였다. <史記 권48. 陳涉世家>
▶ 張楚 : 張大楚. 陳勝은 농민정권을 세우고자 국호를 <張楚>라 하였다. 張은 초나라의 세력을 확대한다는 뜻.
▶ 徇 : 점령지역을 군사를 거느리고 순행하다.
▶ 山東 : 關東.
▶ 鄕 : 向과 같다. 향하다.
謁者使東方來,以反者聞二世。
山東에 사신으로 갔던 謁者가 돌아와서 반란이 일어났음을 2세황제에게 보고하였다.
二世怒,下吏。
2세황제는 노하여 알자를 법관에게 넘겼다.
後使者至,上問,對曰:
「群盜,郡守尉方逐捕,今盡得,不足憂。」
그 후 使者가 와서 황제가 물으니 대답하였다.
“도적떼에 불과하며 군의 守.尉가 추적하여 지금 잡아들였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上悅。
2세황제가 기뻐하였다.
武臣自立為趙王,魏咎為魏王,田儋為齊王。
武臣은 스스로 趙王이 되었고, 魏咎는 魏王이 되었으며, 田儋은 齊王이 되었다.
沛公起沛。項梁舉兵會稽郡。
沛公 劉邦이 沛縣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項梁은 회계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 謁者 : 내빈을 접대하고 군주에게 보고를 담당하는 직책.
▶ 下吏 : 법관에게 넘기다.
▶ 武臣 : 秦나라 말 陳출신으로 陳勝이 왕을 칭한 뒤 장군에 임명되자 張耳와 陳餘를 左右校尉로 삼고, 병사 3천을 이끌고 북쪽으로 趙땅을 공략한 뒤 邯鄲으로 진격하여 스스로 趙王이 되었다
▶ 魏咎 : 진나라 말기의 인물로, 전국 시대 위나라의 왕족이며 진나라 말기에 위나라를 재건해 왕이 되었다. 장한의 공격을 받아 자결하였다.
▶ 田儋 : 田氏의 종친으로 秦나라 말기에 아우 田榮,田橫과 더불어 현지의 縣令을 죽이고 제나라 왕이 되었다.
▶ 沛公 : 漢나라 高祖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칭호. 劉邦.
▶ 項梁 : 진나라 말기의 반란군 지도자로 項羽의 숙부이다.
二年冬,陳涉所遣周章等將西至戲,兵數十萬。
2세황제 2년(기원전208년)겨울, 진섭이 파견한 周章등은 서쪽으로 진격해 戲水에 이르렀을 무렵 병력의 수가 10만이었다.
二世大驚,與群臣謀曰:
「柰何?」
2세황제가 크게 놀라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겠소?”
少府章邯曰:
「盜已至,眾彊,今發近縣不及矣。
酈山徒多,請赦之,授兵以擊之。」
少府 章邯이 대답하였다.
“도적이 이미 이른데다 수도 많고 강하니, 지금 가까운 현에서 징발하여서는 제시간에 대지 못합니다.
酈山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많으니, 사면하여 무기를 주어 도적떼를 공격하게 하십시오.”
▶ 周章 : 周文. 진섭의 部將. 진나라 군대에게 패배하여 河南省 澠池에서 자살하였다
▶ 章邯 : 秦나라 말기의 장수로 陳勝과 吳廣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宦官 趙高의 박해를 받아 項羽에게 투항하였다. 기원전 205년 劉邦의 漢나라 군대와 전투하여 패하고 자살하였다.
▶ 發近縣 : 근처의 군현에서 병력을 징발하다.
▶ 不及 : 미치지 못하다. 제시간에 댈 수 없다.
二世乃大赦天下,使章邯將,擊破周章軍而走,遂殺章曹陽。
2세는 곧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장한에게 장수가 되게 하여 周章의 군대를 격파하게 하니, 주장이 달아났으나 마침내 曹陽에서 그를 죽였다.
二世益遣長史司馬欣、董翳佐章邯擊盜,殺陳勝城父,破項梁定陶,滅魏咎臨濟。
2세황제는 長史 司馬欣과 董翳를 증파하여, 장한이 도적을 공격하는 것을 돕게 하니, 진승을 城父에서 죽이고, 항량을 定陶에서 격파했으며, 위구를 臨濟에서 죽였다.
楚地盜名將已死,章邯乃北渡河,擊趙王歇等於鉅鹿。
楚 땅의 도적의 名將이 죽자, 장한은 곧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조왕 歇등을 巨鹿에서 공격하였다.
▶ 益遣 : 증파하다.
趙高說二世曰:
「先帝臨制天下久,故群臣不敢為非,進邪說。
今陛下富於春秋,初即位,柰何與公卿廷決事?
事即有誤,示群臣短也。
天子稱朕,固不聞聲。」
趙高가 2세황제를 설득하였다.
“선제께서 즉위하여 천하를 다스린 지 오래되었기에, 신하들이 감히 잘못된 짓을 하거나 그릇된 말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이제 막 즉위한 터인데, 어찌 공경들과 더불어 國事를 결정하시겠습니까?
일 처리에 過誤가 있으면 신하들에게 약점만 보이게 됩니다.
천자가 짐이라고 칭하는 것은, 본래 목소리를 들을 뿐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於是二世常居禁中,與高決諸事。
이에 2세황제는 늘 깊은 궁중에 거처하면서 조고와 모든 일을 결정하였다.
其後公卿希得朝見,盜賊益多,而關中卒發東擊盜者毋已。
그 후로 공경들이 황제를 뵐 기회는 드물어졌고 도적들이 더욱 많아지니, 관중의 병사들을 징발하여 동쪽 도적들을 쳐야 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 邪說 : 그릇된 주장.
▶ 富於春秋 : 나이가 어리다. 젊다. 春秋는 나이. 富는 어리다.
▶ 廷决事 : 조정에서 대사를 결정하다.
▶ 短 : 약점.
▶ 天子稱朕 : 朕은 秦始皇 이전에는 단순히 ‘나’ 혹은 ‘나의’라는 뜻이었으나 朕에는徵兆라는 뜻이 있어 조고가 고의로 곡해한 것이다.
-천자가 존귀한 까닭은 다만 폐하의 목소리만을 들을 뿐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으므로 호칭을 朕이라 하는 것입니다. (天子所以貴者,但以聞聲,群臣莫得見其面) <사기 권 87. 이사열전>
▶ 禁中 : 깊은 궁중. 궐내.
▶ 希 : 稀와 같다. 적다. 드물다.
右丞相去疾、左丞相斯、將軍馮劫進諫曰:
「關東群盜并起,秦發兵誅擊,所殺亡甚眾,然猶不止。
盜多,皆以戌漕轉作事苦,賦稅大也。
請且止阿房宮作者,減省四邊戍轉。」
우승상 馮去疾, 좌승상 李斯, 장군 馮劫이 나아가 간언하였다.
“관동 일대에서 도적떼가 일시에 일어남에, 진나라가 병사를 징발하여 토벌하여 아주 많은 수를 죽였습니다만,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도적이 많아지는 것은 戍자리와 운송, 노역 등이 힘들고 세금이 많기 때문입니다.
청하옵건대 아방궁 축조를 잠시 멈추시고, 사방 변경의 수자리와 물자 수송을 줄이십시오.”
▶ 戍 : 수자리. 변방을 지키는일.
▶ 漕轉 : 운송. 漕는 수로 운송이며 轉은 육로 운송이다.
▶ 作 : 노동하다. 힘 드는 일을 하다.
▶ 減省 : 줄이다. 감소하다.
二世曰:
2세황제가 말하였다.
「吾聞之韓子曰:
『堯舜采椽不刮,茅茨不翦,飯土塯,啜土形,雖監門之養,不觳於此。
禹鑿龍門,通大夏,決河亭水,放之海,身自持筑臿,脛毋毛,臣虜之勞不烈於此矣。』
“내가 듣자하니 韓非가 말하기를,
‘堯舜은 다듬지 않은 참나무를 서까래로 하고, 지붕을 띠풀로 이고 다듬지 않았으며, 질그릇에 밥과 물을 담아 먹고 마셨으니, 문지기의 삶도 그보다는 누추하지 않을 터이다.
우임금은 龍門山을 뚫어 大夏로 통하게 하여 막힌 황하의 물길을 터서 바다로 흐르게 했는데, 몸소 가래와 방망이를 들고 일하느라 정강이 털이 다 닳아 없어졌으니, 노예의 노고도 이보다 혹독하지는 않았을 터이다.’라고 하였다.
凡所為貴有天下者,得肆意極欲,主重明法,下不敢為非,以制御海內矣。
그래서 천하를 얻어 귀하게 된 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다. 군주가 엄중히 법을 밝히면 아랫사람이 감히 그릇된 짓을 못하므로, 천하를 통치할 수 있었다.
▶ 韓子 : 韓非. 인용된 문장은 韓非子 五蠹에 실려 있다. 기원전 233년 荀子 문하에서 함께 배웠던 이사가 질투하여 꾸민 음모에 휘말려 투옥당했고, 결국 음독자살하였다.
▶ 堯舜采椽不刮 : 이 문장은 韓非子 五蠹를 인용한 문장이다.
“堯之王天下也,茅茨不翦,采椽不斲,糲粢之食,藜藿之羹,冬日麑裘,夏日葛衣,雖監門之服養,不虧於此矣. : 요임금이 천하의 왕이 되자 지붕을 띠풀로 이고도 다듬지 않았으며, 서까래는 참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썼으며, 거친 기장밥과 아욱국을 질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토기에 국을 담아 먹었으며, 겨울에는 사슴 갖옷을 입고 여름에는 갈포로 만든 옷을 입었으니 문지기의 삶이라도 이렇게 누추하지 않았을 것이다.”<韓非子 五蠹>
▶ 采椽不刮 : 다듬지 않은 참나무를 서까래로 쓰다. 采는 참나무, 椽은 서까래, 刮은 깎다.
▶ 茅茨不翦 : 지붕을 이은 띠풀을 다듬지 않다. 茅茨는 짚 이엉. 翦은 (가위로)자르다.
▶ 飯土塯 : 질그릇에 밥을 담아먹다. 土塯는 土簋. 진흙으로 만든 원형 식기.
▶ 啜土刑 : 진흙으로 만든 국그릇에 국을 담아 먹다. 刑은 鉶과 통용된다.
▶ 監門 : 문지기.
▶ 觳 : 누추하다.
▶ 鑿 : 구멍을 파다.뚫다.
▶ 亭水 : 고인 물. 亭은停과 같다.
▶ 筑 : 방망이.
▶ 臿 : 가래.
▶ 脛 : 정강이.
▶ 臣虜 : 노예.
▶ 烈 : 심하다. 혹독하다.
▶ 所為 : 所以와 같다. 그래서.
▶ 制御 : 통치하다.
夫虞、夏之主,貴為天子,親處窮苦之實,以徇百姓,尚何於法?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자의 귀한 몸이었는데, 직접 궁핍하고 고단한 현실에 처하여 백성들에게 몸을 바쳤으니, 오히려 무엇을 본받겠는가?
朕尊萬乘,毋其實,吾欲造千乘之駕,萬乘之屬,充吾號名。
짐은 존귀하여 萬乘이라 하지만 실제가 없으니, 나는 千乘의 수레를 만들고 萬乘의 군대를 만들어, 나의 호칭과 걸맞게 하려고 한다.
且先帝起諸侯,兼天下,天下已定,外攘四夷以安邊竟,作宮室以章得意,而君觀先帝功業有緒。
게다가 선제께서는 제후의 신분에서 일어나 천하를 병합하고, 천하를 평정하신 다음에 밖으로 사방의 이민족을 물리쳐 변방을 안정시켰고, 궁실을 지어 그 뜻을 내보이셨으니, 그대들도 선제의 功業에 차례가 있음을 보았을 터이다.
今朕即位二年之閒,群盜并起,君不能禁,又欲罷先帝之所為,是上毋以報先帝,次不為朕盡忠力,何以在位?」
지금 짐이 즉위한 후 2년 사이에 도적떼가 일제히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대들은 막지 못했으며, 또 선제께서 하신 일을 없애려 하니, 이는 무엇보다 선제에 대한 보답이 아니며, 다음으로는 짐에 대한 충성과 힘을 다하지 못하는 것인데, 어째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 徇 : 殉과 같다. ~에 몸을 바치다.
▶ 尚何于法 : 오히려 무엇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法은 본받다.
▶ 萬乘 : 周나라 때의 天子는 자기 직할영토에서 1만 대의 병거를 갖추어야 하는 제도가 있었으므로 만승은 천자의 호칭이 되었다. 千乘은 병거 1,000대를 갖출 수 있는 제후라는 뜻이다.
▶ 攘 : 물리치다.배척하다.
▶ 竟 : 境과 같다.
下去疾、斯、劫吏,案責他罪。
풍거질·이사·풍겁을 獄吏에게 넘겨 그들을 심문하고 여죄를 추궁하였다.
去疾、劫曰:
「將相不辱。」
自殺。
풍거질과 풍겁이
“장수와 재상은 모욕당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하며 자살하였다.
斯卒囚,就五刑。
이사는 결국 옥에 갇혔다가 五刑을 받았다.
▶ 斯卒囚 : 李斯는 이 난국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간언하는 글을 올리지만, 이사를 시기한 趙高는 이를 불충으로 몰아 황제 호해를 분노케 하고, 정권을 독차지한다.
환관 조고가 정권을 잡자 이사는 조고의 참소로 투옥되어, 그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며 三族이 몰살되었다. <사기 권87. 李斯列傳>
▶ 五刑 : 옛날 중국의 다섯 가지 형벌로 살갗에 먹물 넣기(墨刑), 코 베기(劓刑), 발뒤꿈치 베기(刖刑), 불알 까기(宮刑), 죽이기(大辟)를 말한다.
三年,章邯等將其卒圍鉅鹿,楚上將軍項羽將楚卒往救鉅鹿。
2세황제 3년(기원전207년), 章邯 등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鉅鹿을 포위하니, 초의 上將軍 項羽가 초의 군사를 거느리고 거록으로 가서 구원하였다.
冬,趙高為丞相,竟案李斯殺之。
겨울, 조고가 승상이 되어 끝내 사건을 꾸며 이사를 죽였다.
夏,章邯等戰數卻,二世使人讓邯,邯恐,使長史欣請事。
여름, 장한 등이 전투에서 여러 차례 후퇴하자, 2세황제가 사신을 보내 장한을 꾸짖으니, 장한이 두려워 長史 司馬欣을 보내 下命을 청하였다.
趙高弗見,又弗信。
조고는 만나주지 않았고 또 믿지도 않았다.
欣恐,亡去,高使人捕追不及。
사마흔이 두려워서 도망치자, 조고가 사람을 시켜 쫓아가 체포하게 했으나, 잡지 못하였다.
▶ 竟 : 끝내.
▶ 讓 : 꾸짖다.
▶ 請事 : 정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청하다.
欣見邯曰:
「趙高用事於中,將軍有功亦誅,無功亦誅。」
司馬欣은 장한을 만나 말하였다.
“조고가 조정에서 정권을 잡고 있으니 장군은 공을 세워도 죽고, 공이 없어도 죽을 터입니다.”
項羽急擊秦軍,虜王離,邯等遂以兵降諸侯。
항우가 진나라의 군대를 急襲하여 王離를 포로로 잡으니, 장한 등이 병사를 이끌고 제후 편에 투항하였다.
八月己亥,趙高欲為亂,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
8월 기해일, 조고는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듣지 않을까 염려되자, 먼저 시험을 해보려고, 2세황제에게 사슴을 가져다 바치면서 말하였다.
“말입니다.”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為馬。」
2세황제가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잘못 본 것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 하다니.”
問左右,左右或默,或言馬以阿順趙高。
하고는 좌우에 물으니, 입을 다문 자도 있고, 말이라며 조고에게 아부하는 자도 있었다.
或言鹿,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사슴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으나,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은밀히 법을 적용하여 중상하였다.
後群臣皆畏高。
이후로 대신들은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였다.
▶ 阿順 : 아부 순종하다. 자기의 뜻을 굽혀서 순종하다.
▶ 中 : 中傷하다.헐뜯다.
※指鹿爲馬(지록위마)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高前數言
「關東盜毋能為也」.
이전에 조고는 수시로 말하였다.
“관동의 도적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터이다.”
及項羽虜秦將王離等鉅鹿下而前,章邯等軍數卻,上書請益助.
항우가 진나라의 장수 王離 등을 거록성에서 사로잡고 진격해오자, 章邯 등의 군대는 여러 차례 후퇴하면서 상서하여 원군을 청하였다.
燕、趙、齊、楚、韓、魏皆立為王,自關以東,大氐盡畔秦吏應諸侯,諸侯咸率其眾西鄉。
燕·趙·齊·楚·韓·魏는 모두 스스로 왕을 칭하고, 함곡관 동쪽부터는 대체로 모두 진나라의 관리를 배반하고 제후들에게 호응하였고, 제후들은 모두 자신들의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였다.
沛公將數萬人已屠武關,使人私於高,高恐二世怒,誅及其身,乃謝病不朝見。
패공 유방은 수만 명을 이끌고 武關에서 살육하고, 사람을 보내 조고와 내통하니, 조고는 2세가 노하여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고,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 毋能為 : 일을 성사시키기 불가능하다.
▶ 大氐 : 대체로. 대개. 氐는抵와 같다.
▶ 私 : 비밀리에 접촉하다.
二世夢白虎齧其左驂馬,殺之,心不樂,怪問占夢。
2세황제는 꿈을 꾸기를, 白虎가 자신의 수레 왼쪽 곁말을 물어뜯기에, 백호를 죽여서, 마음이 언짢았고, 괴이하여 해몽하게 하였다.
卜曰:
「涇水為祟。」
점쟁이가 말하였다.
“涇水의 水神이 훼방을 놓고 있다.”
二世乃齋於望夷宮,欲祠涇,沈四白馬。
2세황제는 곧 望夷宮에서 재계하고, 경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白馬 네 마리를 경수에 던져 넣었다.
使使責讓高以盜賊事。
그리고 사자를 보내어 조고에게 도적과 가까이 지낸 일을 책망하였다.
高懼,乃陰與其婿咸陽令閻樂、其弟趙成謀曰:
「上不聽諫,今事急,欲歸禍於吾宗。
吾欲易置上,更立公子嬰。
子嬰仁儉,百姓皆載其言。」
조고가 겁이 나서 사위인 咸陽令 閻樂, 아우 趙成과 의논하며 말하였다.
“황제가 간언을 듣지 않더니 이제 일이 급해지니까, 그 화를 우리 집안으로 돌리려 한다.
내가 황제를 바꾸어 공자 嬰을 옹립하겠다.
子嬰은 인자하고 겸손하여 백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를 터이다.”
▶ 齧 : 물다. 깨물다.
▶ 左驂馬 : 수레 좌측 바깥쪽의 곁말.
▶ 為祟 : (귀신이)뒤에서 장난치다. 훼방을 놓다.
▶ 望夷宮 : 진나라의 궁 이름. 長陵의 서북쪽에 있는데, 涇水가에 임하여 궁을 지어서 北夷를 바라보게 하였다.
▶ 閻樂 : 조고의 사위.
▶ 趙成 : 조고의 동생.
▶ 易置上 : 황제를 다시 세우다. 황제를 대신하다.
▶ 儉 :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다. 검소하다.
▶ 載 : 떠받들다. 戴
使郎中令為內應,詐為有大賊,令樂召吏發卒,追劫樂母置高舍。
조고는 낭중령을 시켜 내응하게 하고, 거짓으로 큰 도적이 들었다고 하며, 염락에게 관리를 소집하고 군사를 일으키게 하며, 염락의 모친을 겁박하여 조고의 집에 인질로 가두었다.
遣樂將吏卒千餘人至望夷宮殿門,縛衛令仆射,曰:
「賊入此,何不止?」
염락에게 관리와 병졸 천 명을 이끌고 망이궁의 궁전 문 앞으로 보내니, 衛令과 僕射를 포박하고 말하였다.
“도적이 여기까지 침입했거늘 어찌 막지 않았느냐?”
衛令曰:
「周廬設卒甚謹,安得賊敢入宮?」
衛令이 대답하였다.
“숙소를 설치하여 병사들이 삼엄하게 지켰는데, 어떻게 도적이 궁에 침입하였단 말이오?”
樂遂斬衛令,直將吏入,行射,郎宦者大驚,或走或格,格者輒死,死者數十人。
염락이 위령을 참수하고, 곧바로 장수들을 이끌고 궁내로 들어가 마구 활을 쏘며 다니자, 낭관과 환관이 크게 놀라서 어떤 자는 도망치고, 어떤 자는 맞서 싸웠으나, 맞서는 대로 죽이니 죽은 자가 수십 명에 이르렀다.
▶ 內應 : 내통하다. 안에서 호응하다.
▶ 衛令仆射 : 衛尉는 秦나라의 관직으로, 궁문을 호위하는 둔병을 관장하며, 그 속관에 令이 있으며, 伏射는 대신이다.
▶ 周廬 : 궁궐을 경호하는 군사가 교대하면서 자던 곳.
▶ 格 : 격투하다. 맞서 싸우다.
郎中令與樂俱入,射上幄坐幃。
낭중령과 염락이 함께 안으로 들어가서, 휘장으로 가려진 황제의 자리에 활을 쏘았다.
二世怒,召左右,左右皆惶擾不鬬。
2세황제가 노하여 측근을 불렀으나, 측근은 모두 당황하고 소란하여 싸우지 못하였다.
旁有宦者一人,侍不敢去。
곁에 있던 환관 하나가 시종하며 감히 달아나지 못하였다.
二世入內,謂曰:
「公何不蚤告我?
乃至於此!」
2세황제가 안으로 들어가 물었다.
“너는 어째서 일찍이 내게 말해주지 않았느냐?
그래서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宦者曰:
「臣不敢言,故得全。
使臣蚤言,皆已誅,安得至今?」
환관이 대답하였다.
“신이 감히 말씀드리지 않았기에 목숨을 보전하셨습니다.
신이 일찍이 말씀드렸으면 모두 벌써 죽임을 당했을 터이지 어찌 지금까지 무사했겠습니까?”
▶ 幄坐 : 사방이 휘장으로 둘러쳐진 황제가 있는 자리를 말한다.
▶ 幃 : 장막.
▶ 惶擾 : 당황하고 혼란하다. 당황하여 떠들썩하다.
▶ 蚤 : 早와 통용된다. 일찍.
閻樂前即二世數曰:
「足下驕恣,誅殺無道,天下共畔足下,足下其自為計。」
염락이 2세황제 앞으로 다가가 죄상을 열거하며 말하였다.
“足下는 교만 방자하여 무도하게 사람을 죽여서, 천하가 모두 족하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니, 족하는 스스로 계획을 말하시오.”
二世曰:
「丞相可得見否?」
2세황제가 말하였다.
“승상을 만날 수 있겠는가?”
樂曰:
「不可。」
염락이 말하였다.
“안 되오.”
二世曰:
「吾願得一郡為王。」
2세황제가 말하였다.
“나는 하나의 군을 얻어 왕이 되고자 하오.”
弗許。
허락하지 않았다.
又曰:
「願為萬戶侯。」
또 말하였다.
萬戶의 諸侯가 되길 원하오.”
弗許。
허락하지 않았다.
曰:
「願與妻子為黔首,比諸公子。」
또 말하였다.
“처자식과 함께 백성이 되어 공자들과 함께 하고 싶소.”
閻樂曰:
「臣受命於丞相,為天下誅足下,足下雖多言,臣不敢報。」
염락이 말하였다.
“신은 승상의 명령을 받들어 천하를 위해 족하를 죽이려 하니, 족하가 비록 여러 말을 하여도 신은 감히 보고할 수 없소.”
麾其兵進。
병졸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하였다.
二世自殺。
2세황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即 : 접근하다. 다가가다.
▶ 數 : 열거하다.
▶ 足下 : 귀하. 옛날에 상대방을 높이 부르는 말. 여기서는 황제를 낮추어 부른 말이다.
▶ 自為計 : 스스로 ~할 것을 생각해 보다.
▶ 比 : 나란히 하다.
▶ 麾 : 지휘하다.
閻樂歸報趙高,趙高乃悉召諸大臣公子,告以誅二世之狀。
염락이 돌아와 조고에게 보고하니, 조고는 大臣들과 공자들을 모두 불러서 2세황제를 죽인 정황을 알렸다.
曰:
「秦故王國,始皇君天下,故稱帝。
今六國復自立,秦地益小,乃以空名為帝,不可。
宜為王如故,便。」
그리고는 말하였다.
“진나라는 본래 제후국이었으나, 시황이 천하에 군림하자 稱帝하였소.
지금 6국이 다시 자립하고, 진나라의 땅은 더욱 작아졌으니, 이제 헛되이 황제로 칭하는 것은 가당치 않소.
마땅히 이전처럼 왕이라 부르는 것이 옳겠소.”
立二世之兄子公子嬰為秦王。
2세황제의 형의 아들 공자 嬰을 진왕으로 세웠다.
以黔首葬二世杜南宜春苑中。
평민의 禮式으로 杜縣 남쪽의 宜春苑에 2세황제를 장사지냈다.
令子嬰齋,當廟見,受王璽。
조고는 자영을 시켜, 齋戒한 후 종묘에서 참배하고 옥새를 받들도록 하였다.
▶ 故 : 본래. 종전.
▶ 君天下 : 천하를 통치하다.
▶ 以黔首葬 : 평민의 장례의식으로 매장하다.
▶ 子嬰 : 중국 통일 후 진나라의 제3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조고는 황제에 맞는 적임자를 찾았고, 그 적임자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시황제의 황태자 부소의 장남 子嬰이었다. (혹은 호해의 형이라고도 한다).
嬴子嬰은 장수들과 협조하여 조고를 죽일 계획을 세웠고, 즉위식 전에 은밀히 자객을 보내어 조고와 그 가문을 몰살시켰다.
황제가 아니라 진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王位에 오른 지 46일 만에 劉邦에게 투항했지만, 뒤이어 咸陽에 入城한 項羽에게 살해되었다.
▶ 宜春苑 : 진나라 때 離宮의 하나였던 의춘궁의 동쪽에 있었던 동산.
▶ 齋戒 : 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심신을 깨끗이 함
▶ 廟見 : 선조의 사당에 참배하다.
齋五日,子嬰與其子二人謀曰:
「丞相高殺二世望夷宮,恐群臣誅之,乃詳以義立我。
我聞趙高乃與楚約,滅秦宗室而王關中。
今使我齋見廟,此欲因廟中殺我。
我稱病不行,丞相必自來,來則殺之。」
재계 후 닷새째 자영은 두 아들과 의논하며 말하였다.
“승상 조고가 망이궁에서 2세황제를 죽이고, 신하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고, 대의를 가장하여 나를 왕으로 세웠다.
내가 듣자 하니 조고가 초나라와 약조해 진나라의 종실을 없애고 關中의 왕이 되려고 한다.
지금 내게 재계하고 종묘에 참배하게 하니, 이를 기회로 종묘에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다.
내가 병을 구실로 가지 않으면, 승상이 틀림없이 스스로 올 테니, 오는 즉시 그를 죽여라.”
高使人請子嬰數輩,子嬰不行,高果自往,曰:
「宗廟重事,王柰何不行?」
조고가 사람을 보내 자영을 여러 차례 청했으나 자영이 가지 않자, 조고는 과연 자신이 와서 말하였다.
“종묘의 대사인데 왕께서 어찌하여 가지 않습니까?”
子嬰遂刺殺高於齋宮,三族高家以徇咸陽。
자영이 마침내 조고를 齋宮에서 찔러 죽이고, 조고의 삼족을 멸한 다음, 함양 저자거리에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 詳 : 佯과 통한다. 가장하다.
▶ 數輩 : 여러 차례.
▶ 宗廟重事 : 국가의 大事.
▶ 三族 : 삼족을 멸하다.
子嬰為秦王四十六日,楚將沛公破秦軍入武關,遂至霸上,使人約降子嬰。
子嬰이 진왕이 된 지 46일째에 초나라의 장수 沛公이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무관에 진입하여, 마침내 覇上에 이르러 자영에게 사람을 보내 투항을 권유하였다.
子嬰即系頸以組,白馬素車,奉天子璽符,降軹道旁。
자영은 곧 인끈을 목에 감고서,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나와, 천자의 옥새와 부절을 받들고, 軹道부근에서 항복하였다.
沛公遂入咸陽,封宮室府庫,還軍霸上。
패공이 드디어 함양에 입성하여 궁실의 창고를 봉쇄하고, 군대를 다시 패상으로 물렸다.
居月餘,諸侯兵至,項籍為從長,殺子嬰及秦諸公子宗族。
한 달여가 지나자 제후들의 병력이 이르렀으며, 項籍은 합종의 우두머리로서 자영과 진나라의 공자 및 왕족들을 죽였다.
遂屠咸陽,燒其宮室,虜其子女,收其珍寶貨財,諸侯共分之。
이어 咸陽城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우고 자녀들을 포로로 잡았으며, 진기한 보물과 재물들을 거두어 제후들과 나누었다.
▶ 沛公 : 劉邦.
▶ 約降 : 투항을 권유하다.
▶ 系頸以組 : 고대 군주가 항복하는 예절. 組는 인끈을 말하며 오색의 실을 사이사이 섞어 짜서 옥새를 묶어서 허리에 띠는 것이다. 係頸은 항복하여 자살하고 싶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沛公이 霸上에 도달하니, 秦나라 왕 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軹道의 옆에서 항복하였다.
장수들이 죽이기를 청하자, 패공이 말하기를, “처음에 懷王께서 나를 보낸 것은 진실로 내가 너끈히 관용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사람이 이미 항복했으니,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고 바로 옥리에게 넘겼다.”<資治通鑑綱目>
▶ 軹道 : 雍州 萬年縣동북쪽.
▶ 項籍 : 項羽.
▶ 從長 : 합종의 우두머리. 즉 제후의 盟主를 말한다.
滅秦之後,各分其地為三,名曰雍王、塞王、翟王,號曰三秦。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셋으로 나누고, 雍王· 塞王· 翟王을 명하고 三秦이라 불렀다.
項羽為西楚霸王,主命分天下王諸侯,秦竟滅矣。
항우가 西楚覇王이 되어, 천하를 분할하고 제후왕을 봉하는 일을 주관하니, 진나라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後五年,天下定於漢。
그 뒤 5년, 천하는 漢나라에 의하여 평정되었다.
▶ 其地 : 원래의 秦나라 땅.
▶ 主命 : 주관하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秦之先伯翳,嘗有勳於唐虞之際,受土賜姓。
“진나라의 선조 伯翳는 일찍이 요순시대에 공훈이 있어서 封地와 姓을 하사받았다.
及殷夏之閒微散。
이후 하나라와 은나라에 이르러 쇠퇴하여 흩어졌다,
至周之衰,秦興,邑于西垂。
주나라가 쇠퇴함에, 진나라가 일어나 서쪽 변경에 도읍하였다.
自繆公以來,稍蠶食諸侯,竟成始皇。
秦繆公이래 차츰 제후들을 잠식하였고, 결국 시황이 완성하였다.
始皇自以為功過五帝,地廣三王,而羞與之侔。
시황은 자신의 공적은 五帝를 뛰어넘고, 땅은 三王보다 넓다며, 이들과 함께 비교되는 것조차 수치스러워하였다.
善哉乎賈生推言之也!
훌륭하도다! 賈生의 평론이여.
曰:
가생은 <過秦論>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 柏翳 : 伯益을 말한다. 백익은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백예(伯翳,柏翳,伯鷖), 大費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舜임금은 그에게 嬴氏성을 하사하였다.
▶ 唐虞 : 唐堯와 虞舜. 陶唐氏 堯와 有虞氏 舜을 말한다.
▶ 微散 : 쇠락하다.
▶ 垂 : 陲와 같다. 邊境.
▶ 羞與之侔 : 비교되는 것이 수치스럽다.
▶ 侔 : 가지런하다.같다
▶ 賈生 : 賈誼. 前漢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洛陽사람으로 나이 20여 세에 漢文帝에게 발탁되어 博士가 되고, 다시 1년 만에 太中大夫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대신들의 참소로 長沙王의 태부로 좌천되었다. 秦나라 때부터 내려온 율령·관제·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전한의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하였다.
漢文帝 4년(기원전 176년)에 湘水를 건너다 屈原을 추모하고, 비분강개의 뜻을 담은 弔屈原賦를 지어 상수에 띄웠다.
<사기 권 84. 屈原賈生列傳>
秦并兼諸侯山東三十餘郡,繕津關,據險塞,修甲兵而守之。
진나라는 제후들을 병탄하고 山東에 30여 郡을 설치하여 나루터와 關門을 수리하고, 험준한 요새를 거점으로 무기를 정비하고 그곳을 굳게 지켰다.
然陳涉以戍卒散亂之眾數百,奮臂大呼,不用弓戟之兵,鉏櫌白梃,望屋而食,橫行天下。
그러나 陳涉이 흩어져 있는 戍卒의 무리 수백 명을 모아, 팔을 걷어붙이고 고함을 지르며, 활과 창 같은 무기 대신 호미와 몽둥이 따위의 농기구를 들고 아무 데서나 식사하며 천하를 橫行하였다.
秦人阻險不守,關梁不闔,長戟不刺,彊弩不射。
진나라 군대는 험준한 요새를 갖고도 지키지 않았고, 관문과 교량을 봉쇄하지 않았고, 긴 창으로 적을 찌르지도 않았고, 강력한 활을 쏘지도 않았다.
楚師深入,戰於鴻門,曾無藩籬之艱。
초나라 군대가 깊숙이 쳐들어오니 鴻門에서 싸웠지만, 뜻밖에 울타리조차 되지 못하였다.
----여기서부터는 사마천이 인용한 賈誼의 과진론이다
▶ 三十餘郡 : 진시황제가 6국을 통일한 후 천하를 36개 군으로 나누었다.
▶ 繕 : 수리하다.
▶ 津關 : 나루터와 關門.
▶ 甲兵 : 갑옷과 병기. 통상적으로 무기를 말한다.
▶ 險塞 : 요새.
▶ 戍卒 : 변방을 지키는 사병.수자리를 서러 가던 농민.
▶ 奮臂 : (격앙되어)팔을 치켜들다. 팔뚝을 걷어붙임.
▶ 鉏櫌白梃 : 호미, 곰방메, 흰 몽둥이 등의 농기구를 말한다.
▶ 望屋而食 : 집이 보이면 가서 먹는다. 군량이 없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얻어먹었음을 말한다.
▶ 阻險 : 길이 막히고 험난함.
▶ 關梁不闔 : 관문과 교량을 봉쇄하지 않다. 闔은 문을 닫다.
▶ 楚師 : 초나라 군대. 진승의 군대를 말한다. 진승은 나라 이름을 장초라 하였다.
▶ 曾 : 뜻밖에. 의외로.
▶ 藩籬 : 울타리. 담.
於是山東大擾,諸侯并起,豪俊相立。
이에 산동이 크게 시끄러워지고 제후들이 일제히 일어났으며, 호걸들이 각자 자립하였다.
秦使章邯將而東征,章邯因以三軍之眾要市於外,以謀其上。
진나라는 章邯을 장수로 삼고 동방을 정벌하게 했으나, 장한은 이것을 틈타서 삼군의 병력으로 외부의 제후들과 거래하여, 황제에게 모반하였다.
群臣之不信,可見於此矣。
신하들이 미덥지 않았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子嬰立,遂不寤。
자영이 즉위했으나 끝내 깨닫지 못하였다.
藉使子嬰有庸主之材,僅得中佐,山東雖亂,秦之地可全而有,宗廟之祀未當絕也。
만약 자영에게 평범한 군주의 재능이 있고, 겨우 중간 정도의 보좌할 신하라도 얻었으면, 비록 산동이 혼란에 빠졌더라도, 진나라는 영토를 보전할 수 있었고, 종묘 제사 또한 끊어지지 않았을 터이다.
▶ 擾 : 어지럽다. 시끄럽다.
▶ 要市於外 : 외부의 제후들과 거래하다. 要는 왕래하다. 市는 매매하다.
▶ 不信 : 충실하지 못하다.
▶ 寤 : 悟와 같다. 깨닫다.
▶ 藉使 : 만약.
▶ 中佐 : 중간 정도 보좌할 신하.
秦地被山帶河以為固,四塞之國也。
진나라는 영토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을 끼고 있어서, 사방이 要塞인 나라이다.
自繆公以來,至於秦王,二十餘君,常為諸侯雄。
繆公으로부터 진시황에 이르기까지 20여 명의 군주는 늘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豈世世賢哉?
어찌 대대로 현명하였겠는가?
其勢居然也。
그 지리적 형세가 그러하였다.
且天下嘗同心并力而攻秦矣。
더구나 천하가 일찍이 同心協力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當此之世,賢智并列,良將行其師,賢相通其謀,然困於阻險而不能進,秦乃延入戰而為之開關,百萬之徒逃北而遂壞。
그때를 당하여서,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즐비하여, 뛰어난 장수가 각국의 군사를 지휘했고, 유능한 재상이 그 계책을 서로 통하였지만 험준한 지세에 막혀 진격할 수 없었으며, 진나라가 이들을 맞아들여 싸우려고 관문을 열자, 백 만의 연합군 병사가 패주하다 무너지고 말았다.
豈勇力智慧不足哉?
어찌 勇力과 智慧가 부족해서였겠는가?
形不利,勢不便也。
지형이 불리하고 지세가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 被山 : 산으로 가로막히다.
▶ 帶河 : 강으로 에워싸이다.
▶ 四塞 : 사방이 모두 요새이다.
▶ 勢居 : 지리적 위치.
▶ 延 : 영접하다.
▶ 逃北 : 패주하다.
▶ 壞 : 붕괴하다.
秦小邑并大城,守險塞而軍,高壘毋戰,閉關據阨,荷戟而守之。
진나라는 작은 읍의 군대를 큰 성과 합치고, 험준한 요새를 지키며 주둔하고, 보루를 높이 쌓고 싸우지 않으면서, 관문을 닫고 요충지를 거점으로 삼아, 무기를 걸머진 채 방비하였다.
諸侯起於匹夫,以利合,非有素王之行也。
제후들은 한갓 범인으로 일어나서, 이익으로 합쳐진 자들이지, 素王의 덕행을 갖춘 자가 없었다.
其交未親,其下未附,名為亡秦,其實利之也。
제후들의 교분은 친하지도 않았고, 부하들도 따르지 않았으며, 진나라의 멸망을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었다.
彼見秦阻之難犯也,必退師。
저들이 진나라의 험난한 요새를 침범하기 어려움을 알았으면, 틀림없이 군대를 퇴각시켰을 터이다.
安土息民,以待其敝,收弱扶罷,以令大國之君,不患不得意於海內。
나라를 안정시키며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다른 나라들이 쇠퇴하기를 기다려서, 약소한 나라를 거두고 지쳐 있는 나라를 도와서, 대국의 군주로 호령하였더라면, 천하에 뜻을 얻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貴為天子,富有天下,而身為禽者,其救敗非也。
천자가 되어 고귀해지고 천하를 소유하여 부유해졌는데도, 몸이 사로잡힌 것은 패망에서 구해내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 阨 : 험준한 곳. 요충지.
▶ 荷 : 어깨에 메다.
▶ 素王 : 王位는 없지만 왕으로서의 德을 갖춘 사람.
▶ 息民 : 백성을 평안하게 하다.
▶ 敝 : 쇠미해지다.
▶ 救敗 : 패망에서 구해내다.
秦王足己不問,遂過而不變。
진시황은 자신에게 만족하여 남에게 묻지도 않았고, 이리하여 잘못을 범하여도 고치지 않았다.
二世受之,因而不改,暴虐以重禍。
2세황제는 그것을 답습하며 고치지 않고 포악하게 굴어 재난을 가중시켰다.
子嬰孤立無親,危弱無輔。
子嬰은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위태롭고 약했으며 보필할 신하가 없었다.
三主惑而終身不悟,亡不亦宜乎?
세 군주가 미혹되고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으니, 멸망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當此時也,世非無深慮知化之士也,然所以不敢盡忠拂過者,秦俗多忌諱之禁,忠言未卒於口而身為戮沒矣。
그 당시, 세상에 깊게 생각하여 시세의 변화를 아는 선비가 없지는 않았으나, 감히 나서 충성을 다해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던 것은 진나라의 습속에 꺼리고 피하여야 할 금기가 많아서, 충성스러운 간언을 하는 자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 足己不問 : 교만하고 자만하여 타인에게 가르침을 청하지 않다.
▶ 遂 : 계속하다.
▶ 因 : 답습하다. 구습을 그대로 따르다.
▶ 重禍 : 재난을 가중하다.
▶ 三主 : 진시황, 이세 황제, 공자 嬰을 말한다.
▶ 知化 : 형세의 변화를 알다.
▶ 拂過 : 잘못을 바로잡다.
▶ 未卒於口 : 말이 다 끝나지 않다.
故使天下之士,傾耳而聽,重足而立,拑口而不言。
그래서 천하의 선비들에게 귀를 기울여 듣게만 하고, 발은 모은 채 입을 닫고 말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是以三主失道,忠臣不敢諫,智士不敢謀,天下已亂,姦不上聞,豈不哀哉!
이로 인해 세 군주가 길을 잃어도 충신은 감히 직언하지 않고, 지혜로운 선비는 감히 계책을 내지 않으니, 천하가 어지러워도 간악한 일이 황제에게 알려지지 못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先王知雍蔽之傷國也,故置公卿大夫士,以飾法設刑,而天下治。
先王은 언로를 막는 것이 나라를 망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공경과 대부와 士를 두어 법령을 정비하고, 형벌을 정해 천하를 다스린 것이다.
其彊也,禁暴誅亂而天下服。
나라가 강할 때는 포악함을 막고 난을 토벌하여 천하를 복종시켰다.
其弱也,五伯征而諸侯從。
나라가 약할 때는 五伯이 정벌하니 제후가 순종하였다.
其削也,內守外附而社稷存。
나라가 삭감되었을 때는 안으로는 지키고 밖으로는 남에 덧붙어서 사직을 보존하였다.
▶ 重足而立 : (두려워서) 꼼짝달싹 못하고 서 있다.
▶ 拑口 : 입을 다물다.
▶ 失道 : 길을 잃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
▶ 雍蔽 : 막히다. 통하지 않다. 上下의 정황이 불통되다. 雍은 壅과 통용된다.
▶ 五伯 : 五覇. 春秋時代의 다섯 사람의 패자. 일반적으로 齊桓公·晉文公·楚莊王·吳夫差·越句踐을 말한다. 吳나라와 越나라를 除外하고 宋襄公·秦穆公을 더하기도 한다.
故秦之盛也,繁法嚴刑而天下振;
及其衰也,百姓怨望而海內畔矣。
그래서 진나라가 강성했을 때는 법령이 번잡하고 형벌이 엄격하여 천하를 떨게 하였지만, 쇠약해지자 백성이 원망하고 천하가 배반하였다.
故周五序得其道,而千餘歲不絕。
주나라는 다섯 작위의 제도가 합당한 도리를 얻었으므로, 천여 년 왕조가 끊이지 않았다.
秦本末并失,故不長久。
그러나 진나라는 본말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였다.
由此觀之,安危之統相去遠矣。
이렇게 볼 때 安定과 危機의 원리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野諺曰
「前事之不忘,後事之師也」。
시골 속담에 이르기를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뒷날의 스승이다.’라고 하였다.
是以君子為國,觀之上古,驗之當世,參以人事,察盛衰之理,審權勢之宜,去就有序,變化有時,故曠日長久而社稷安矣。
이로써 군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고 시대를 자세히 살펴 당대에 증험해 보았고, 또 인간사를 고찰하여 성쇠의 이치를 관찰하며, 권세가 적당한지를 세심히 살펴서, 거취에 순서를 두고 변화에 시기를 맞춘 덕분에, 오래도록 계승되고 사직이 안정되었던 것이다.
▶ 五序 : 5등급 작위의 순서. 公·侯·伯·子·男의 작위의 순서.
▶ 統 : 기강.근본.
▶ 本末 : 국가의 기본 방침과 통치 수단. 근본과 말단
▶ 野諺 : 통속적인 속담. 시골 속담.
▶ 参 : 비교하여 검증하다. 고찰하고 검사하다.
秦孝公據殽函之固,擁雍州之地,君臣固守而窺周室,有席卷天下,包舉宇內,囊括四海之意,并吞八荒之心。
秦孝公은 殽山과 函谷關의 험준함에 雄據하여 雍州땅을 지키면서, 군주와 신하가 굳게 지키고 周왕실을 엿보았으니, 천하를 석권하고 보자기로 싸듯 온 세상을 모두 차지하고, 四海를 주머니 속에 쓸어 넣어 천하를 병탄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當是時,商君佐之,內立法度,務耕織,修守戰之備,外連衡而鬬諸侯,於是秦人拱手而取西河之外。
이 당시商鞅이 진효공을 보좌하여 안으로는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였고, 농사와 길쌈에 힘쓰게 하였고, 수비와 공격을 준비하였으며, 밖으로는 연형책을 써서 諸侯들을 싸우게 하였으므로, 이에 秦나라 군주는 팔짱을 끼고 西河 밖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 秦孝公 : 전국시대의 진나라의 제후. 獻公의 아들로 이름은 渠梁이다. 21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즉위하였으며, 魏나라에서 온 商鞅을 등용하여 국정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에 힘을 기울여 전국시대의 覇主로 인정받았으며 咸陽으로 도읍을 옮겼다.
▶ 窺 : 엿보다.
▶ 周室 : 주나라 왕실.
▶ 囊括四海 :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다. 천하를 통일하다.
▶ 八荒 : 팔방의 멀고 너른 범위. 온 세상을 말한다.
▶ 商君 : 商鞅. 기원전 359년 상앙은 秦나라 변법의 책임자로 발탁되었고 부국강병의 계책을 세워 保守派(儒家)와 투쟁하면서 刑法·가족법·토지법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후일 秦帝國 성립의 기반을 세웠다.
▶ 連衡 : 連橫.
▶ 鬬諸侯 : 제후 간에 전쟁하게 하다.
▶ 拱手而取 : 팔짱을 끼고 취하다. 힘들이지 않고 차지한다는 뜻.
孝公既沒,惠王、武王蒙故業,因遺冊,南兼漢中,西舉巴、蜀,東割膏腴之地,收要害之郡。
孝公이 죽은 뒤에 惠文王,武王 등은 진효공의 遺業을 계승하고 물려준 계책을 좇아남쪽으로는 漢中을 병탄하고 서쪽으로는 巴·蜀을 빼앗았고, 동쪽으로는 기름진 땅을 빼앗고 요충지가 되는 郡을 거두어들였다.
諸侯恐懼,會盟而謀弱秦,不愛珍器重寶肥美之地,以致天下之士,合從締交,相與為一。
제후들은 두려워하며 서로 會盟하여, 진나라의 세력을 弱化시키려 모의하였다.
진기한 기물, 귀중한 보물과 기름진 땅을 아끼지 않으며 천하의 인재를 불러서 합종의 교분을 맺고,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 蒙 : 받다. 계승하다.
▶ 冊 : 策과 같다. 책략.
▶ 膏腴之地 : 기름진 땅.
▶ 弱秦 : 진나라를 약하게 하다.
▶ 愛 : 내놓기를 아까워하다.
▶ 相與 : 서로 연합하다.
當是時,齊有孟嘗,趙有平原,楚有春申,魏有信陵。
당시 齊나라에는 孟嘗君이 있었고 趙나라에는 平原君이 있었으며, 楚나라에는 春申君이 있었고 魏나라에는 信陵君이 있었다.
此四君者,皆明知而忠信,寬厚而愛人,尊賢重士,約從離衡,并韓、魏、燕、楚、齊、趙、宋、衛、中山之眾。
이 네 공자는 모두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충성스럽고 미더웠으며, 관대하고 후덕하여 백성을 사랑하였고, 어진 이를 존경하며 선비들을 중히 여겨서, 合從策을 맺고 連衡策을 깨뜨려, 韓·魏·燕·楚·齊·趙·宋·衛·中山의 군사를 연합하였다.
▶ 齊有孟嘗 : 전국4공자. 제나라의 孟嘗君 田文, 趙나라의 平原君 趙勝, 魏나라의 信陵君 魏無忌, 楚나라의 春申君 黃歇을 전국 4공자로 칭하였으며, 전국 칠웅 간의 외교활동으로 강국 秦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활약을 했었다.
▶ 約從離衡 : 서로 합종의 약속을 하고 연횡책을 흐트리다.
於是六國之士有寧越、徐尚、蘇秦、杜赫之屬為之謀,齊明、周最、陳軫、昭滑、樓緩、翟景、蘇厲、樂毅之徒通其意,吳起、孫臏、帶佗、兒良、王廖、田忌、廉頗、趙奢之朋制其兵。
이에 6국의 인재 중에 寗越·徐尙·蘇秦·杜赫 등이 그 계책을 만들었고, 齊明·周最·陳軫·召滑·樓緩·翟景·蘇厲·樂毅의 무리가 각국의 의견을 소통시켰으며, 吳起·孫臏·帶陀·兒良·王廖·田忌·廉頗·趙奢의 무리가 군대를 통솔하였다.
常以十倍之地,百萬之眾,叩關而攻秦。
그들은 진나라보다 열 배가 되는 땅과 백만 대군으로 함곡관을 쳐서 진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秦人開關延敵,九國之師逡巡遁逃而不敢進。
진나라가 관문을 열고 적을 끌어들이니, 9개국의 군대는 주저하다가 도망치며 감히 진격하지 못하였다.
秦無亡矢遺鏃之費,而天下諸侯已困矣。
진나라는 화살 하나, 화살촉 하나 허비하지 않았는데, 천하 제후들을 곤경에 빠졌다.
於是從散約解,爭割地而奉秦。
이리하여 합종의 약속은 瓦解되었고, 앞을 다투어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쳤다.
秦有餘力而制其敝,追亡逐北,伏尸百萬,流血漂鹵。
진나라는 남은 힘으로 피폐해진 세력을 제압하고, 패배하여 도망가는 적들을 추격하여 죽이니, 엎어진 시신이 백만을 헤아리고 흐르는 피에 방패가 떠다닐 정도였다.
因利乘便,宰割天下,分裂河山,彊國請服,弱國入朝。
진나라는 이익과 편리에 따라, 천하를 마음대로 자르고 산하를 쪼개니, 강국은 복종을 청하고 약한 나라는 조회하였다.
延及孝文王、莊襄王,享國日淺,國家無事。
뒤를 이은 孝文王·莊襄王에 이르러서는 재위기간이 짧았던 탓에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 叩關 : 함곡관을 치다. 叩는 두드리다. 치다.
▶ 逡巡 : 주저하다.
▶ 遁逃 : 달아나다.
▶ 九國 : 韓·魏·燕·楚·齊·趙·宋·衛·中山
▶ 鏃 : 화살촉.
▶ 追亡逐北 : =追逐亡北.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다.
▶ 鹵 : (큰) 방패.
▶ 享國 : 제왕의 재위 년수.
及至秦王,續六世之餘烈,振長策而御宇內,吞二周而亡諸侯,履至尊而制六合,執棰拊以鞭笞天下,威振四海。
진시황에 이르러서는 6대의 유업을 계승하여 긴 채찍을 휘둘러 말을 몰듯 천하를 제압하여, 東周와 西周를 병탄하고 제후들을 멸망시켜 지존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통제했는데, 곤봉과 칼자루를 쥐고 천하를 매질하니, 그 위세가 사해를 떨게 하였다.
▶ 六世 : 孝公,惠文王,武王,昭襄王,孝文王,莊襄王을 말한다.
▶ 長策 : 긴 채찍.
▶ 御 : 통치하다. 지배하다.
▶ 履 : 올라서다.
▶ 六合 : 천하. 천·지·동·서·남·북
▶ 棰拊 : 刑具를 말한다. 棰는 곤봉. 拊는 칼자루.
▶ 鞭笞 : 채찍 또는 곤장으로 때리다. 즉, 통치하다.
南取百越之地,以為桂林、象郡,百越之君俛首系頸,委命下吏。
남쪽으로 百越의 땅을 취해 桂林郡과 象郡으로 삼으니, 백월의 군주는 머리를 숙이고 목에 인끈을 걸고 나와 관리에게 목숨을 맡겼다.
乃使蒙恬北筑長城而守藩籬,卻匈奴七百餘里,胡人不敢南下而牧馬,士不敢彎弓而報怨。
이어 蒙恬으로 하여금 북쪽에 장성을 쌓아 변방을 지키게 하여, 흉노를 7백여 리 밖으로 몰아내니, 흉노족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서 말을 방목하지 못했고, 6국의 병사들은 감히 활을 당겨 원한을 갚으려 들지 못하였다.
▶ 百越 : 장강 이남의 저장성 부근에서 베트남 지방에 살던 여러 민족의 총칭. 於越 ·閩越(東越) ·甌越 ·南越 ·楊越 ·山越 ·駱越 등이 알려져 있다.
▶ 俛(부) : 俯와 같다. 숙이다.
▶ 系頸 : 고대 군주의 항복 예절. 옥새를 묶는 인끈을 목에 묶다. 항복하며 자살하고 싶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 委命 : 목숨을 맡기다.
▶ 藩籬 : 울타리. 변방.
▶ 士 : 6국의 병사.
於是廢先王之道,焚百家之言,以愚黔首。
이에 先王의 治道를 버리고 百家의 서적을 불태워, 백성에게 愚民政策을 시행하였다.
墮名城,殺豪俊,收天下之兵聚之咸陽,銷鋒鑄鐻,以為金人十二,以弱黔首之民。
이름난 성을 부수고 호걸들을 죽였으며, 천하의 병기를 함양으로 거두어들인 뒤 이를 녹여서 종을 만들고, 金人 12개를 주조함으로써 백성을 약화시켰다.
然後斬華為城,因河為津,據億丈之城,臨不測之谿以為固。
그런 후, 華山을 깎아 성을 만들어 황하를 나루터로 삼게 되었으며, 억 丈이나 되는 城에 의지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골짜기를 굽어보며 나라의 堅固함으로 삼았다.
良將勁弩守要害之處,信臣精卒陳利兵而誰何,天下以定。
뛰어난 장수와 강력한 쇠뇌로 요충지를 지키고, 미더운 신하와 정예병이 날카로운 병기를 들고 檢問하자, 천하가 이로써 안정되었다.
秦王之心,自以為關中之固,金城千里,子孫帝王萬世之業也。
진시황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關中의 견고함이 천 리에 이르는 철옹성 같으므로, 제왕의 업이 자손만대로 전해지리라 여겼다.
▶ 百家之言 : 각 학파의 서적.
▶ 堕 : 무너뜨리다. 부수다.
▶ 銷鋒鑄鐻: 진시황은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에 모으고, 녹여서 종과 종틀을 주조해 다시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鐻는 종틀. 종을 매다는 틀이다. 鍾은 고대 악기를 말한다.
▶ 金人: 고대 중국에서 청동과 금동으로 제작한 인물상
▶ 斬華 : 화산에 오르다. 즉 화산에 웅거하여 지키다.
▶ 津 : 성의 해자. 수로.
▶ 誰何 : 누구냐고 물어보다.
▶ 金城 : 철옹성. 아주 견고함을 말한다.
秦王既沒,餘威振於殊俗。
秦始皇이 죽은 뒤에 그 남은 위세가 풍속이 다른 곳까지 떨쳤다.
陳涉,罋牖繩樞之子,甿隸之人,而遷徙之徒,才能不及中人,非有仲尼、墨翟之賢,陶朱、猗頓之富,躡足行伍之閒,而倔起什伯之中,率罷散之卒,將數百之眾,而轉攻秦。
陳涉은 가난한 집 자식으로 고용살이하는 농민이 되어, 수자리에 징발된 무리였으니, 재능은 보통 사람에도 못 미쳤고, 공자나 묵자의 현명함도 없고, 陶朱나 猗頓처럼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병졸의 隊伍에 참여하여 갑자기 농민의 대열에서 일어나서, 지쳐 흩어졌던 병사들을 이끌고 數百의 무리를 거느리고 방향을 바꾸어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斬木為兵,揭竿為旗,天下雲集響應,贏糧而景從,山東豪俊遂并起而亡秦族矣。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 장대를 깃발로 삼으니, 천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호응하여, 양식을 짊어지고 그림자처럼 따랐으며, 산동의 호걸들이 함께 일어나서 진나라 종족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렀다.
▶ 殊俗 : 풍속이 다르다.
▶ 罋牖繩樞 : 깨어진 항아리 주둥이로 들창으로 하고 새끼줄로 문을 달았음. 가난한 집을 한다. 牖는 들창. 창. 樞는 지도리. 繩樞는 거적문.
▶ 甿隸 : 고용살이하는 농민.
▶ 遷徙之徒 : 수자리에 징발된 무리.
▶ 中人 : 재능이 중간급인 자. 즉 보통사람.
▶ 陶朱 : 越王 句踐의 신하였던 范蠡. 재산을 모으는 재주가 있어 많은 재산을 모아 부호의 표본으로 일컬어짐. 貨殖의 재능에 뛰어나 세 번 千金을 모았다고 한다. 陶朱公의 준말.
▶ 猗頓 : 춘추시대 노나라의 대부호. 猗氏라는 고을에서 재산을 일으켰기 때문에 의돈으로 불린다.
▶ 躡足 : 발을 들여놓다. 참여하다.
▶ 倔起 : 몸을 일으킴. 입신출세하다.
▶ 什伯 : 고대의 군대 편제. 什은10명, 伯은100명이다.
▶ 揭竿為旗 : 장대를 높이 들고 일어나다. 민중 봉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 雲集響應 : 많은 사람이 각지에서 구름같이 몰려와 호응하다.
▶ 贏 : 짊어지다.
▶ 景從 : 그림자처럼 늘 붙어서 따라다니다. 景은影과 같다.
且夫天下非小弱也,雍州之地,殽函之固自若也。
그러나 진나라의 천하는 작아지지도 약해지지도 않았으며, 옹주의 땅과 효산과 함곡관의 견고함도 이전과 같았다.
陳涉之位,非尊於齊、楚、燕、趙、韓、魏、宋、衛、中山之君;
鉏櫌棘矜,非錟於句戟長鎩也;
適戍之眾,非抗於九國之師;
深謀遠慮,行軍用兵之道,非及鄉時之士也。
진섭의 지위는 齊·楚·燕·趙·韓·魏·宋·衛·中山의 군주들보다 존귀하지 않았고,
호미와 작대기, 괭이자루와 창자루는 갈고리 창이나 긴 창보다 날카롭지도 않았다.
수자리에 유배 가던 무리들은 9국의 군대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면밀한 謀策, 원대한 思慮, 行軍과 用兵의 방도가 접때의 謀士들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然而成敗異變,功業相反也。
그러나 성패는 이변이었고, 공적은 서로 반대로 나타났다.
試使山東之國與陳涉度長絜大,比權量力,則不可同年而語矣。
시험 삼아 산동의 나라들과 진섭의 장단과 대소를 가늠하고, 권세와 역량을 비교해 보면, 함께 취급하여 논할 수는 없을 터이다.
▶ 自若 : 옛날과 같음.
▶ 鉏櫌棘矜 : 호미와 작대기. 괭이자루와 창자루. 농민 봉기의 무기를 말한다.
▶ 錟 : 날카롭다.
▶ 句戟 : 올가미가 있는 창. 미늘창.
▶ 長鎩 : 긴 창.
▶ 適戍 : 죄를 지어 변방에 수자리로 유배가다. 適은謫과 같다.
▶ 深謀遠慮 :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생각이 원대하다.
▶ 鄉時 : 이전.종전.
▶ 度長絜大 : 길이와 크기를 가늠하다. 絜은 헤아리다. 비교하다.
▶ 同年而語 : 함께 논하다. 함께 취급하여 이야기하다.
然秦以區區之地,千乘之權,招八州而朝同列,百有餘年矣。
그러나 진나라는 보잘것없는 땅과 千乘의 권력을 가지고, 8개 州를 빼앗아 동등한 6개국의 제후들이 조회하게 한 지 100여 년이었다.
然後以六合為家,殽函為宮,一夫作難而七廟墮,身死人手,為天下笑者,何也?
그런 다음 천하를 한 국가로 만들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으로 삼았는데, 한낱 필부가 난을 일으키자, 황제의 사당이 무너지고 군주가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어째서인가?
仁義不施而攻守之勢異也。
인의를 베풀지 않았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 區區之地 : 땅이 매우 적음. 진나라는 雍州에서 시작되었다.
▶ 千乘之權 : 제후의 권력. 제후는 천승의 수레를 가진다. 고문관지에는 萬乘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승은 천자의 권력.
▶ 招 : 들어 올리다. 공격해서 빼앗다.
▶ 八州 : 옛날 전국이 9주로 나뉘었는데 진나라를 제외하면 8주가 된다.
▶ 朝同列 : 지위가 동등한 6개국의 제후를 신하로 만들다. 同列은 6개국의 제후를 말한다.
▶ 六合 : 천지와 사방. 천하.
▶ 一夫 : 陳勝을 말한다.
▶ 作難 : 난을 일으키다.
▶ 七廟 : 천자의 사당. 천자는 선조를 7대까지 제사지냈다.
▶ 身死人手 : 秦王 자영이 항우에게 살해되었음을 말한다.
▶ 攻守之勢 : 진나라의 통치방식이 처음에는 공격적이었지만, 통일 후에는 수비적인 지위가 되었음을 말한다.
秦并海內,兼諸侯,南面稱帝,以養四海,天下之士斐然鄉風,若是者何也?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들을 병탄하고 나서, 남면하여 황제를 칭하며 사해를 통치하자, 천하의 인재들이 순종하여 진나라에 귀순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曰:
近古之無王者久矣。
대답은 이러하다.
‘근래에 옛날의 왕다운 왕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周室卑微,五霸既歿,令不行於天下,是以諸侯力政,彊侵弱,眾暴寡,兵革不休,士民罷敝。
주왕실이 미약했고 五霸는 이미 죽어서, 천자의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제후는 무력으로 서로를 정벌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략하고 대국은 소국을 모질게 구니, 전쟁이 쉴 날이 없어 군사와 백성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今秦南面而王天下,是上有天子也。
지금 진시황이 남면하여 왕 노릇을 하니, 이는 위에 천자가 있는 것이었다.
既元元之民冀得安其性命,莫不虛心而仰上,當此之時,守威定功,安危之本在於此矣。
즉 선량한 백성들은 생명의 안전을 바라고, 마음을 비우고 황제를 우러러보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때에는 위엄을 지키고 공훈을 정해야 하는 것으로 안위의 근본이 여기에 달려있었다.
▶ 南面 : 제위에 오름을 말한다. 옛날 군주는 조정에서 북쪽에 앉아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였다.
▶ 斐然 : 복종하는 모양. 斐는靡와 통한다. 한 쪽으로 쏠리다.
▶ 鄕風 : 귀순하다.
▶ 力政 : 무력으로 정벌하다. 政은 征과 통용된다.
▶ 既 : 즉.
▶ 元元 : 가련한 모습. 元元之民은 선량한 백성.
▶ 冀 : 바라다.희망하다.
▶ 性命 : 목숨. 생명.
秦王懷貪鄙之心,行自奮之智,不信功臣,不親士民,廢王道,立私權,禁文書而酷刑法,先詐力而後仁義,以暴虐為天下始。
진시황은 탐욕스럽고 비루한 마음을 품었으므로, 단지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려 하고, 공신들을 믿지 않고, 선비와 백성을 친애하지 않고, 왕도를 폐지하고 사사로운 권위를 세우고, 서적 등을 금하고, 형법을 가혹하게 적용하고, 거짓과 威力을 앞세우고, 인의는 뒤로 밀쳐둔 채, 포악함을 천하를 다스리는 전제로 삼았다.
夫并兼者高詐力,安定者貴順權,此言取與守不同術也。
무릇 천하를 통일할 때는 거짓과 위력을 중시하고,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는 순종과 권도를 귀하게 여기니, 이는 천하를 얻을 때와 지킬 때의 통치술이 다르다는 말이다.
▶ 文書 : 詩, 書 등의 옛 서적.
▶ 酷刑法 : 형법을 엄격하게 하다.
▶ 順權 : 권력의 변화에 순응함. 임기응변하다.
秦離戰國而王天下,其道不易,其政不改,是其所以取之守之者[無]異也。
진나라는 전국시대를 거쳐 천하의 왕이 되었음에도, 방침을 바꾸지 않았고 정치를 개혁하지도 않았으니, 천하를 얻는 방법과 천하를 지키는 방법에 다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孤獨而有之,故其亡可立而待。
홀로 고립된 채 천하를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그 멸망을 서서 기다린 것이다.
借使秦王計上世之事,并殷周之跡,以制御其政,後雖有淫驕之主而未有傾危之患也。
만약에 진시황이 지난 세대의 일을 헤아리고, 은나라와 주나라의 자취를 받아들여 자신의 정책을 실행하였다면, 이후 비록 방탕하고 교만한 군주가 있을지라도 나라가 기울고 위태로워지는 환난을 없었을 터이다.
故三王之建天下,名號顯美,功業長久。
그런 까닭에 三王은 나라를 세움에, 그 명성이 아름답게 드러났고, 그 功業은 長久하였다.
▶ 離 : 거치다. 겪다.
▶ 借使 : 만약.
▶ 淫驕 : 교만하고 방탕무도하다.
▶ 三王 : 하나라 우임금, 상나라의 탕왕, 주나라의 문·무왕을 말한다.
今秦二世立,天下莫不引領而觀其政。
지금 2세황제가 즉위하자, 천하가 목을 길게 빼고 그 정책을 지켜보지 않는 자가 없었다.
夫寒者利裋褐而饑者甘糟糠,天下之嗷嗷,新主之資也。
추위에 떠는 자에게는 누더기도 보탬이 되고, 굶주린 자에게는 술지게미와 쌀겨도 달콤하기 마련이므로, 천하 백성들이 아이고 하고 우는 것이 새 군주의 믿을 바가 된다.
此言勞民之易為仁也。
이것은 고달픈 백성들에게는 어진 정치를 베풀기 쉽다는 말이다.
▶ 引領 : 목을 길게 빼다.
▶ 裋褐 : 해지고 짧은 옷.
▶ 糟糠 : 술지게미와 쌀겨. 변변치 못한 음식.
▶ 嗷嗷(오오) : 슬피 우는 소리. 아이고 아이고.
▶ 資 : ~에 의지하다. 구실로 삼다.
鄉使二世有庸主之行,而任忠賢,臣主一心而憂海內之患,縞素而正先帝之過,裂地分民以封功臣之後,建國立君以禮天下,虛囹圉而免刑戮,除去收帑汙穢之罪,使各反其鄉里,發倉廩,散財幣,以振孤獨窮困之士,輕賦少事,以佐百姓之急,約法省刑以持其後,使天下之人皆得自新,更節修行,各慎其身,塞萬民之望,而以威德與天下,天下集矣。
만약 2세황제가 평범한 군주의 덕행으로 충직하고 현명한 사람을 임용하고, 신하와 君主가 한마음으로 천하의 患難을 염려하고, 喪中에 素服을 입고 선제의 허물을 바로잡고, 땅을 백성에게 나누어주어 功臣의 후손에게 封土하고, 제후국을 세워 군주를 옹립해 천하를 예로 다스리고, 사면령을 내려 감옥을 비우고, 형벌을 면제하여 죄를 연좌시키는 더러운 형벌을 폐지하여 각자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창고와 곳간을 열어 재물과 돈을 나누어주어 의지할 곳 없는 고아와 홀아비 및 곤궁한 선비들을 구제하고, 세금을 가볍게 하고 勞役을 줄여 백성의 긴급한 곤란을 도와주고, 법령을 간소화하고 형벌을 덜어 죄인이 훗날의 기회를 얻게 하고, 천하의 백성이 모두 스스로 새로워짐으로써 절조를 바꾸고 품행을 수양하여, 각자 몸가짐을 삼가게 하여, 모든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위엄과 덕으로 천하 사람들을 대했더라면, 천하 사람이 모두 편안하였을 터이다.
▶ 鄉使 : 만약.
▶ 縞素 : 素服. 흰빛의 상복.
▶ 囹圉 : 囹圄로 된 곳도 있다. 감옥.
▶ 刑戮 : 형벌을 주다.
▶ 收帑 : 收孥와 같다. 죄를 저지르면 처자식이 연좌되어 관노가 되는 제도.
▶ 汙穢 : 더럽다. 불결하다.
▶ 振 : 賑과 같다. 구휼하다. 구제하다.
▶ 少事 : 노역을 줄이다.
▶ 約法 : 법령을 간소화하다.
▶ 更節 : 절조를 바꾸다.
▶ 修行 : 품행을 수양하다.
▶ 塞 : 만족시키다.
即四海之內,皆讙各自安樂其處,唯恐有變,雖有狡猾之民,無離上之心,則不軌之臣無以飾其智,而暴亂之姦止矣。
그리하여 천하의 到處가 기뻐하여, 각자의 처한 자리에서 평안히 생업을 즐기며 오직 변란이 일어날까 걱정하면, 설령 교활한 백성이 있더라도 군주를 배신할 마음이 없을 터이고, 모반을 꾀하는 신하도 간사함을 감출 길이 없을 터이며, 사납고 어지러운 음모도 그쳤을 터이다.
二世不行此術,而重之以無道,壞宗廟與民,更始作阿房宮,繁刑嚴誅,吏治刻深,賞罰不當,賦斂無度,天下多事,吏弗能紀,百姓困窮而主弗收恤。
2세황제는 이와 같은 통치 방법을 실행하지 않고, 포악무도한 짓을 거듭하면서 종묘와 백성에게 해를 끼쳐서 아방궁을 다시 짓고, 형벌을 번잡하게 만들어 사형을 가혹하게 하였다. 관리가 일함에 가혹함이 심하고 상벌은 부당하고 세금은 절도가 없었으니, 천하에 事故는 많으나 관리들이 다스리지 못하였고, 백성은 곤궁한데 군주는 구휼하지 않았다.
▶ 智 : 지모. 간사한 지혜.
▶ 紀 : 다스리다. 관리하다.
然後姦偽并起,而上下相遁,蒙罪者眾,刑戮相望於道,而天下苦之。
그 후 간사함과 거짓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위아래가 서로 欺瞞하고, 죄를 덮어쓰는 자들이 많아져서, 형벌을 받은 자들이 길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할 정도로 넘쳐나니, 천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였다.
自君卿以下至于眾庶,人懷自危之心,親處窮苦之實,咸不安其位,故易動也。
君侯와 公卿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자신을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을 품게 되고, 몸소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실정에서 처하니, 모두 자리에 불안을 느꼈으므로 쉽게 동요될 수밖에 없었다.
是以陳涉不用湯武之賢,不藉公侯之尊,奮臂於大澤而天下響應者,其民危也。
그래서 진섭이 상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과 같은 현명함을 갖추지 않았고, 公侯와 같은 존귀한 신분을 빌리지도 않았으면서도, 大澤에서 팔을 걷어붙이니 천하가 호응했던 것은 그 백성이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 遁 : 기만하다.속이다.
▶ 用 : 갖추다. 구비하다.
▶ 湯武 : 상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
▶ 藉 : 빌리다.
故先王見始終之變,知存亡之機,是以牧民之道,務在安之而已。
그러므로 선왕은 일의 始終의 변화를 보고, 존망의 기미를 알아차려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백성을 편안히 하는 데 힘쓸 뿐이었다.
天下雖有逆行之臣,必無響應之助矣。
비록 천하에 역행하는 신하가 있을지라도, 절대로 이에 호응하여 도움을 주는 자가 없었을 터이다.
故曰
「安民可與行義,而危民易與為非」,此之謂也。
그래서 이르기를‘
안정된 백성은 더불어 의를 행할 만하고, 위기에 처한 백성은 더불어 나쁜 짓을 하기 쉽다.’라고 하였으니 이런 말이다.
貴為天子,富有天下,身不免於戮殺者,正傾非也。
귀하기를 천자이고, 부유하기를 천하를 가지고도, 그 몸이 죽음을 면치 못하였으니,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是二世之過也。
이것이 2세황제의 過失이다.
▶ 牧民 : 백성을 다스리다.
▶ 正傾 : 이미 기울어진 것을 바로 잡다.
---여기까지가 사마천이 인용한 賈誼의 過秦論이다
襄公立,享國十二年。
秦襄公이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初為西畤。
처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西畤를 만들었다.
葬西垂。
西垂에 장사지냈다.
生文公。
文公을 낳았다.
----<이후는 사마천이 진나라의 역사기록을 마친 후, 자신의 평론에 賈誼의 산문인 過秦論 全文을 기록하고, 秦襄公이후의 군주와 국사를 간추린 것이다>
▶ 襄公 :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莊公의 둘째 아들이다.
양공 7년 西戎의 犬戎과 申侯가 함께 周王室을 공격하여 酈山아래에서 幽王을 살해하니 西周가 멸망하였다.
양공이 군대를 이끌고 주나라를 구해 平王을 호송하여 東遷하는 데 공을 세우니, 주나라에서 秦岐 서쪽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진나라가 附庸國에서 제후국이 되었다.
▶ 享國 : 군주의 재위 기간
▶ 西畤 : 西縣에 있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 畤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
文公立,居西垂宮。
문공이 즉위하여 西垂宮에 거처하였다.
五十年死,葬西垂。
재위 50년 만에 죽으니 서수에 장사지냈다.
生靜公。
靜公을 낳았다.
▶ 文公 : 춘추시대 秦나라의 제2대 군주. 襄公의 아들이다.
재위할 때 처음으로 史官을 설치해 국사를 기록하게 했는데, 백성들 가운데 교화된 사람이 많았다.
16년 戎을 정벌해 승리하고 영토를 岐까지 넓혔으며, 周나라의 남은 백성을 거두었다. 20년 처음으로 죄를 지으면 三族을 誅戮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재위는 50년이고, 시호는 文이다.
靜公不享國而死。生憲公。
정공은 즉위하지 못한 채 죽었다. 獻公을 낳았다.
▶ 靜公 : 진문공 48년(기원전 718년), 문공의 태자가 죽으니 靜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靜公의 맏아들이 태자가 되었으니, 즉 문공의 손자로 憲公(寧公)이 된다.
憲公享國十二年,居西新邑。
헌공은 12년간 재위했고 西新邑에 거처하였다.
死,葬衙。
죽어서 衙땅에 묻혔다.
生武公、德公、出子。
武公·德公·出子를 낳았다.
▶ 憲公 : 寧公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 사기의 영공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진 문공의 손자. 靜公의 아들. 출자·무공·덕공의 아버지이다.
진문공이 오래 살아서 재위 50년에 죽었는데, 정공이 뒤를 잇지 못하고 먼저 죽었으므로 그 뒤를 이었다. 헌공은 열 살에 즉위하여 재위 12년 만에 죽었으며 西山에 장사 지냈다.
出子享國六年,居西陵。
출자는 6년간 재위하였으며 西陵에 거처하였다.
庶長弗忌、威累、參父三人,率賊賊出子鄙衍,葬衙。
庶長 弗忌·威累·參父 세 사람이 자객을 이끌고 가서 鄙衍에서 출자를 시해하였고, 衙땅에 장사지냈다.
武公立。
武公이 즉위하였다.
▶ 出子 : 憲公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인 武公이 태자가 되었다.
무공의 동생은 德公과 出子가 있었는데, 헌공이 죽자 大庶長 弗忌, 威壘, 三父가 태자를 폐위하고, 出子를 군주로 옹립하였다.
出子 6년(기원전 698년), 삼보 등이 출자를 살해하였다.
출자는 다섯 살에 즉위하여 재위 6년 만에 살해되었다.
▶ 庶長 : 군사를 지휘하는 관직. 일설에는 大庶長과 威壘는 관직이며, 弗忌와 三父는 사람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다.
▶ 三父 : 춘추시대 秦나라 大夫에 임명되었다.
진헌공이 죽자 大庶長 弗忌와 함께 태자를 폐하고 出子를 세웠다.
6년이 지난 뒤 다시 사람을 시켜 출자를 죽이고 태자를 복위시켰으니, 그가 秦武公이다.
무공 3년에 무공은 출자를 죽인 죄를 씌워 삼보의 三族을 誅戮하였다.
▶ 率賊賊 : 자객을 이끌고 가서 살해하다. 賊賊은 앞의 賊은 자객, 뒤의 賊은 살해하다.
武公享國二十年。
무공은 12년간 재위하였다.
居平陽封宮。
平陽의 封宮에 거처하였다.
葬宣陽聚東南。
宣陽聚의 동남쪽에 묻혔다.
三庶長伏其罪。
세 명의 庶長이 처벌되었다.
德公立。
德公이 즉위하였다.
▶ 武公 : 文公의 손자이다.
寧公(또는 憲公)이 죽자 大庶長 三父 등이 태자 무공을 폐하고 동생 出子를 군주로 삼았다.
6년 뒤 삼보가 다시 출자를 살해하고 무공을 세웠다.
무공 3년 뒤 삼보 등을 誅殺하였다. 10년 邽와 冀戎을 정벌하여 처음에 縣制를 실시해 획득한 땅을 다스렸다. 나중에 다시 杜와 鄭 두 땅을 침략해 점거하고, 小虢을 멸망시켰다. 20년 동안 재위하고 죽었다. 처음으로 殉葬을 실시해 따라 죽은 이가 66명이었다. 시호는 武이다.
▶ 三庶長伏其罪 : 무공3 년에 무공은 출자를 죽인 죄를 씌워 삼보의 三族을 誅戮하였다.
德公享國二年。
덕공은 2년간 재위하였다.
居雍大鄭宮。
雍邑의 大鄭宮에 거처하였다.
生宣公、成公、繆公。
宣公·成公·繆公을 낳았다.
葬陽。
陽에 묻혔다.
初伏,以御蠱。
처음으로 복날을 정해 독충의 재앙을 다스렸다.
▶ 秦德公 : 秦武公의 동생이다.
平陽에서 雍으로 遷都했고, 국토를 더욱 넓혀 후대 자손들이 동쪽으로 龍門의 黃河에서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였다. 재위는 2년이고, 시호는 德이다. 宣公,成公,繆公을 낳았다.
▶ 初伏 : 처음으로 복날을 정하다. 三伏은 한여름인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에 있는 初伏·中伏·末伏의 三庚日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 以御蠱 : 진덕공은 鄜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소,돼지,양 삼백 마리를 바쳤다. 또 伏祠를 건립했으며, 사방의 성문에 개의 사지를 찢어 걸어놓고 독충의 재앙을 방지하였다. <사기 권 28. 封禪書>
宣公享國十二年。
선공은 12년간 재위하였다.
居陽宮。
陽宮에 거처하였다.
葬陽。
陽땅에 묻혔다.
初志閏月。
처음으로 윤달을 기록하였다.
▶ 宣公 : 진 덕공의 장자. 진성공과 진목공의 형으로 12년간 재위하였다.
선공은 아들을 아홉이나 두었지만, 모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선공의 동생인 성공成公이 왕위에 올랐다.
▶ 志 : 기록하다.
成公享國四年,居雍之宮。
성공은 4년간 재위하면서 옹읍의 궁에 거처하였다.
葬陽。
陽땅에 묻혔다.
齊伐山戎、孤竹。
齊桓公이 山戎과 孤竹을 정벌하였다.
▶ 成公 : 진덕공의 아들. 진선공의 동생. 秦穆公의 형. 성공은 아들 일곱을 두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동생인 繆公을 옹립하였다.
▶ 齊桓公 : 춘추시대 제나라의 15대 군주로 이름은 소백.
襄公의 동생. 여러 제후를 모아 동맹을 맺어 覇者가 되었다.
▶ 山戎 : 燕·齊·魯 3국 사이에 위치한 이민족 부락 연맹.
繆公享國三十九年。
목공은 39년간 재위하였다.
天子致霸。
천자가 목공이 覇主가 되었음을 치하하였다.
葬雍。
雍縣에 묻혔다.
繆公學著人。
목공은 시종에게도 배웠다.
生康公。
康公을 낳았다.
▶ 繆公 : 秦穆公 嬴任好.
繆은 穆으로도 쓴다. 이름은 任好이고, 秦德公의 셋째 아들이며, 春秋五覇의 한 사람이다.
재위기간 동안 어진 인재를 힘써 구해 百里奚과 蹇叔 등을 등용해 謀臣으로 삼았고,올바른 정치에 전력을 기울여 국세가 날로 강해졌다.
▶ 天子致霸 : 목공 37년(기원전 623년), 秦나라는 융왕을 토벌하고 12개의 나라를 토벌해 국토를 늘리어 영토를 천 리로 개척하니 마침내 서융 지역의 패주가 되었다.
주나라 천자가 召公 過를 보내 목공에게 金鼓를 선물하여 축하의 뜻을 표하였다.
▶ 著人 : 守衛.侍衛. 著는 뜰을 말한다.
康公享國十二年。
康公은 12년간 재위하였다.
居雍高寢。
옹읍의 高寢에 거처하였다.
葬竘社。
竘社에 묻혔다.
生共公。
共公을 낳았다.
▶ 康公 : 이름은 罃이며 穆公의 아들이다.
재위할 때 晉襄公의 동생 雍이 秦나라에 있었는데, 양공이 죽자 晉나라가 처음에는 그를 군주로 삼으려고 하여 사신을 秦나라에 보내 옹을 맞으려 하자, 秦나라가 호송해 주었으나 晉나라에서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여, 양공의 아들 夷皐를 세우고 진나라 군대를 令狐에서 공격해 격파하였다.
화가 난 강공이 원한을 씻고자 해마다 전쟁을 벌였다. 12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康이다. 강공은 재위 12년 만에 죽고, 아들 共公이 즉위하였다.
共公享國五年,居雍高寢。
共公은 5년간 재위하면서 옹읍의 고침에 거처하였다.
葬康公南。
아버지 康公무덤의 남쪽에 묻혔다.
生桓公。
桓公을 낳았다.
▶ 共公 : 秦나라의 군주로 진강공의 아들이며, 이름은 기록에 따라서 嬴和,嬴貑라고도 한다.
공공은 재위 5년 만에 죽고, 아들 桓公이 즉위하였다.
桓公享國二十七年。
환공은 27년간 재위하였다.
居雍太寢。
옹읍의 太寢에 거처하였다.
葬義裏丘北。
義裏언덕 북쪽에 묻혔다.
生景公。
景公을 낳았다.
▶ 桓公 : 성은 嬴,씨는 秦이며 이름은 榮이다.
진공공의 아들이다.
재위 27년 만에 죽고 아들 景公이 즉위하였다.
景公享國四十年。
景公은 40년간 재위하였다.
居雍高寢,葬丘裏南。
옹읍의 고침에 거처하였고, 丘里남쪽에 묻혔다.
生畢公。
畢公을 낳았다.
▶ 景公 : 桓公의 아들이다.
환공의 장례를 천자의 예로 행하였다.
재위 40년 만에 죽고 아들 㻫公(哀公)이 즉위하였다.
畢公享國三十六年。
필공은 36년간 재위하였다.
葬車裏北。
車裏북쪽에 묻혔다.
生夷公。
夷公을 낳았다.
▶ 필공 : 秦哀公이라고도 한다. 秦康公)의 현손이다.
31년 吳나라가 楚나라를 깨뜨리고 郢으로 들어오자, 초나라의 대부 申包胥가 진나라에 와서 구원을 요청하면서 이레 낮밤을 울었다. 애공이 이에 장군에게 병거 5백 乘을 이끌고 가서 초나라를 구하게 하여 오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이에 楚昭王이 다시 자리를 되찾았다. 36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哀이다. 태자 夷公이 일찍 죽어 즉위하지 못했고, 이공의 아들이 즉위하여 惠公이 되었다.
夷公不享國。
夷公은 즉위하지 못하였다.
死,葬左宮。
죽어서 左宮에 묻혔다.
生惠公。
惠公을 낳았다.
▶ 夷公 : 태자 夷公이 일찍 죽어 즉위하지 못했고, 이공의 아들이 즉위하여 惠公이 되었다.
惠公享國十年。
惠公은 10년간 재위하였다.
葬車里。
車里에 묻혔다.
生悼公。
悼公을 낳았다.
▶ 惠公 : 秦哀公의 손자. 秦夷公의 아들.
훗날에 惠公이란 시호가 또 있으므로 前惠公이라고도 한다.
재위 10년 만에 죽고, 아들 悼公이 즉위하였다.
悼公享國十五年。
悼公은 15년 재위하였다.
葬僖公西。
僖公의 서쪽에 묻혔다.
城雍。
옹읍에 성을 축조하였다.
生剌龔公。
刺龔公을 낳았다.
▶ 秦悼公 : 진혜공의 아들. 진혜공이 재위 10년(기원전491년)에 죽으니, 아들인 영반(진도공)이 뒤를 이었다.
剌龔公享國三十四年。
剌龔公은 34년간 재위하였다.
葬入里。
入里에 묻혔다.
生躁公、懷公。
躁公과 懷公을 낳았다.
其十年,彗星見。
10년째 되던 해에 彗星이 나타났다.
▶ 剌龔公 : 厲共公. 秦悼公의 아들로 시호가 기록에 따라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사기 진본기에는 厲共公,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秦剌龔公, 史記正義에서는 秦利龔公, 후한서 西羌傳에는 秦厲公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공공 34년(기원전 443년), 일식이 있었다. 여공공이 죽자, 아들 躁公이 즉위하였다.
躁公享國十四年。
躁公은 14년간 재위하였다.
居受寢。
受寢에 거처하였다.
葬悼公南。
悼公의 남쪽에 묻혔다.
其元年,彗星見。
조공 원년에 혜성이 나타났다.
▶ 躁公 : 진 여공공의 아들. 秦懷公의 형이다.
史記索隱에는 秦趮公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공 14년(기원전429년), 조공이 죽으니, 그 아우 懷公이 즉위하였다.
懷公從晉來。
懷公이 晉나라에서 돌아왔다.
享國四年。
4년간 재위하였다.
葬櫟圉氏。
櫟의 圉氏에 묻혔다.
生靈公。
靈公을 낳았다.
諸臣圍懷公,懷公自殺。
신하들이 회공을 포위하니, 회공은 자살하였다.
▶ 懷公 : 躁公의 아우이다. 조공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회공4년(기원전 425), 庶長 鼂가 대신들과 규합하여 회공을 포위하였다. 회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공의 태자 昭子는 일찍 죽었기 때문에, 대신들이 태자 소자의 아들을 옹립했으니, 그가 곧 靈公이다. 따라서 영공은 회공의 손자이다.
肅靈公,昭子子也。
肅靈公은 昭子의 아들이다.
居涇陽。
涇陽에 거처하였다.
享國十年。葬悼公西。生簡公。
10년간 재위했고, 悼公의 서쪽에 묻혔다. 簡公을 낳았다.
▶ 靈公 : 秦靈公. 肅靈公.
춘추시대 秦나라의 군주로, 懷公의 태자 昭子의 아들이다.
즉 회공의 손자이다.
簡公從晉來。
簡公이 晉나라에서 돌아왔다.
享國十五年。
15년간 재위하였다.
葬僖公西。生惠公。
僖公의 서쪽에 묻혔다. 惠公을 낳았다.
其七年。百姓初帶劍。
즉위한 지 7년째 백관들이 처음으로 칼을 찼다.
▶ 簡公 : 秦懷公의 아들. 秦昭子의 동생.
진영공보다 나이가 어리고 진헌공보다 나이가 많아 즉위하였다. 靈公이 죽었으나 그 아들 獻公이 즉위하지 못하고 영공의 막내 숙부 悼子가 즉위했으니 그가 곧 簡公이다.
▶ 百姓初帶劍: 簡公 6년(기원전 409년), 관리에게 처음으로 칼을 차게 하였다. 여기에서 百姓은 百官, 귀족을 말한다.
惠公享國十三年。
惠公은 13년간 재위하였다.
葬陵圉。生出公。
陵圉에 묻혔다. 出公을 낳았다.
▶ 惠公 : 秦后惠公. 진간공의 아들.
선조에 진혜공이 한 사람 더 있어서 後惠公이라고 불린다.
후혜공 13년(기원전 387년), 蜀의 남정을 쳐서 차지하였다.
이때 위나라가 진나라를 쳐서 魏에게 많은 포로가 잡혔다. 후혜공이 죽고 그 아들 출공이 즉위하였다.
出公享國二年。
出公은 2년간 재위하였다.
出公自殺,葬雍。
출공은 자살하여 옹읍에 묻혔다.
▶ 出公 : 出子. 秦少主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2년(기원전386년~기원전385년)동안 재위하였다. 즉위 시 2살로 그의 어머니가 친정하였으며 환관과 외척을 중용하였다.
出子 2년(기원전 385년), 庶長 菌改가 靈公의 아들 獻公을 河西에서 맞이해 옹립하였다. 출자와 그의 어머니를 죽여 깊은 연못에 버렸다.
獻公享國二十三年。
獻公은 23년간 재위하였다.
葬囂圉。生孝公。
囂圉에 묻혔다. 孝公을 낳았다.
▶ 獻公 : 元王, 元献公.
헌공은 靈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기원전 412년(영공13년) 영공이 죽었을 때 종조부인 悼子가 簡公으로 즉위하였다.
영공은 魏나라에 빼앗긴 河西지역에 머물렀고, 진나라 군주의 지위는 그 뒤로도 간공의 아들 惠公과 손자 出子에게 이어졌다. 기원전 385년 秦나라 庶長 菌改가 出公과 그의 모친을 죽이고 하서에 머무르고 있던 헌공을 맞이하면서 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헌공 때에 진나라가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하면서 이른바 ‘全國七雄’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孝公享國二十四年。
효공은 24년간 재위하였다.
葬弟圉。
弟圉에 묻혔다.
生惠文王。
惠文王을 낳았다.
其十三年,始都咸陽。
즉위 13년, 처음으로 咸陽에 도읍하였다.
▶ 孝公 : 전국시대 진나라의 왕(재위 기원전361~기원전338).
獻公의 아들로 이름은 渠梁이다. 21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즉위, 魏나라에서 온 商鞅을 등용하여 국정을 개혁하고, 이로부터 富國强兵에 힘을 기울여, 즉위 10년에는 위나라 安邑을 공략하였다.
효공 13년 咸陽에 성읍을 조성하고 도읍을 옮겼다.
惠文王享國二十七年。
惠文王은 27년간 재위하였다.
葬公陵。生悼武王。
公陵에 묻혔다. 悼武王을 낳았다.
▶ 惠文王 : 惠文君, 秦惠王, 秦惠文王이라고도 한다.
성은 嬴, 이름은 駟이다. 孝公의 아들이며, 武王과 昭襄王의 아버지이다.
기원전 324년, 주나라 천자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전국시대의 군주들이 왕을 칭하여, 진나라도 처음으로 왕을 칭하게 되었으며, 惠王, 秦惠文王이라고도 한다.
張儀를 등용하고 주변의 나라들을 공략하여 진나라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秦本紀에서는 왕호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惠文君으로 부르고 있다.
悼武王享國四年,葬永陵。
悼武王은 4년간 재위했으며, 永陵에 묻혔다.
▶ 悼武王 : 성은 嬴, 이름은 蕩이다. 시호는 武王이다.
‘秦始皇本紀’에서는 悼武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惠文王의 아들이며, 昭襄王의 이복형이다.
昭襄王享國五十六年。
昭襄王은 56년간 재위하였다.
葬茝陽。生孝文王。
茝陽에 묻혔다. 孝文王을 낳았다.
▶ 昭襄王 : 성은 嬴, 이름은 則이며, 稷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昭襄王이며, 昭王이라고도 부른다.
주변국을 복속시키고 영토를 확장해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孝文王享國一年。
孝文王은 1년간 재위하였다.
葬壽陵。生莊襄王。
壽陵에 묻혔다.莊襄王을 낳았다.
▶ 孝文王 : 성은 嬴, 이름은 柱이다. 시호는 孝文王이며,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安國君으로 불렸다.
昭襄王의 아들이며, 생모는 소양왕의 후궁인 八子 唐氏이다. 기원전 267년 위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소양왕의 맏아들 悼太子가 죽자, 기원전 265년에 태자로 봉해졌다. 기원전 251년 가을에 아버지 소양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莊襄王享國三年。
莊襄王은 3년간 재위하였다.
葬茝陽。
茝陽에 묻혔다.
生始皇帝。呂不韋相。
시황제를 낳았다. 呂不韋가 상국이 되었다.
▶ 莊襄王 : 孝文王인 安國君의 둘째 아들로 성은 嬴, 이름은 異人이다. 진시황제 政의 아버지이다.
처음에 인질로 趙 나라에 가서 궁핍하게 살았는데, 呂不韋가 奇貨可居라 하면서 발탁하고, 華陽夫人과 陽泉君에게 소개한 뒤 귀국시켜 태자로 올리고, 이름도 子楚로 고쳤다.
즉위한 뒤 여불위를 相國에 기용하였고, 東周君을 없애고 蒙驁 등을 시켜 韓·趙·魏를 정벌해 成皐와 太原,上黨 등 30여 성을 빼앗았다.
처음으로 三川과 태원 두 郡을 설치하였다. 4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莊襄이다.
獻公立七年,初行為市。
헌공 7년(기원전 378년),처음으로 시장을 열었다.
十年,為戶籍相伍。
10년(기원전 375년), 戶口를 등록하여, 5戶를 1伍로 삼았다.
孝公立十六年。時桃李冬華。
효공이 즉위하고 16년(기원전 346년), 복숭아와 자두가 겨울에 꽃을 피웠다.
惠文王生十九年而立。
혜문왕은 19세에 즉위하였다.
立二年,初行錢。
즉위 2년(기원전 336년), 처음으로 화폐를 발행하였다.
有新生嬰兒曰「秦且王」。
갓난아기가
“진나라는 곧 왕을 칭할 터이다.”라고 말하였다.
悼武王生十九年而立。
도무왕은 19세에 즉위하였다.
立三年,渭水赤三日。
즉위 3년(기원전 309년), 위수의 물빛이 사흘 동안 붉었다.
昭襄王生十九年而立。
소양왕은 19세에 즉위하였다.
立四年,初為田開阡陌。
즉위 4년(기원전 248년), 처음으로 논밭 사이의 경계를 개척하였다.
孝文王生五十三年而立。
효문왕은 53세에 즉위하였다.
▶ 市 : 시장.
▶ 伍 : 고대에는 다섯 가구를 ‘伍’라고 하였다.
▶ 華 : 花와 같다. 꽃이 피다.
▶ 且 : 장차.
▶ 阡陌 : 논밭의 두렁. 논밭길. 井田制를 폐지한 것이다. 남북으로 난 길을 阡이라 하고 동서로 난 길을 陌이라 한다.
井田制는 토지의 한 구역을 ‘井’자로 9등분하여 8호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있는 한 구역은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토지제도였다.
莊襄王生三十二年而立。
장양왕은 32세에 즉위하였다.
立二年,取太原地。
즉위 2년(기원전 248년), 조나라의 太原지역을 빼앗았다.
莊襄王元年,大赦,修先王功臣,施德厚骨肉,布惠於民。
장양왕 원년(기원전 249년), 대대적으로 사면하고, 先王 때의 功臣을 표창하였고, 덕을 베풀어 골육들을 후대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東周與諸侯謀秦,秦使相國不韋誅之,盡入其國。
東周가 제후들과 진나라를 해치려 하자, 진나라는 상국 여불위를 보내어 토벌하고, 동주를 편입시켰다.
秦不絕其祀,以陽人地賜周君,奉其祭祀。
진나라는 東周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陽人땅을 周의 君主에게 주어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 修 : 추천하다.
▶ 骨肉 : (부모·형제·자매 등)혈육. 육친.
▶ 盡入其國 : 서주가 멸망하고 7년 뒤 秦莊襄王이 동주를 멸망시켰다.
▶ 陽人 : 陽人聚. 地名.
始皇享國三十七年。
시황제는37년간 재위하였다.
葬酈邑。
酈邑에 묻혔다.
生二世皇帝。
2세황제를 낳았다.
始皇生十三年而立。
시황제는 13세에 즉위하였다.
二世皇帝享國三年。
2세황제는 3년간 재위하였다.
葬宜春。
宜春에 묻혔다.
趙高為丞相安武侯。
趙高는 승상이 되어 安武侯에 봉해졌다.
二世生十二年而立。
2세황제는 12세에 즉위하였다.
▶ 二世生十二年而立 : 위의 글에서는 “2세황제 원년(기원전209년)에 2세황제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라고 기록하였다. 사마천이 헷갈리게 하는 대목.
右秦襄公至二世,六百一十歲。
이상은 秦襄公에서 2세에 이르기까지 610년간의 일이다.
▶ 右 : 고대에는 문자를 세로로 쓰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에 ‘右’라고 하였으며 ‘위’와 같은 뜻이다.
▶ 六百一十歲 : 秦本紀에서는 진양공부터 2세황제까지 576년이며, 年表에는 진양공부터 2세황제까지 561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은 秦襄公 이후의 君主와 國事를 간추린 것이다>
孝明皇帝十七年十月十五日乙丑,曰:
漢孝明皇帝 17년(서기 74년) 10월 15일 을축일에 班固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班固의 評論>
사마천은 진나라의 역사기록을 마친 후, 자신의 평론과 賈誼의 산문인 過秦論 全文을 기록한 후 진나라의 역사를 요약하여 秦始皇本紀를 끝마쳤다.
아래 내용은 사마천의 후대에, 漢書를 편집한 班固의 평론을 추가한 내용이다.
▶ 孝明皇帝 : 漢顯宗 孝明皇帝 劉莊(28년~ 75년)은 후한의 제2대 황제(재위: 57년~ 75년)로 자는 子麗이다.
광무제의 아들로 본래 이름은 劉陽이었으나 황태자로 책봉되면서 유장으로 고쳤다.
▶ 曰 : 班固가 한 말이다.
한 효명황제가, 진나라 이세황제가 천하를 망하게 한 득실에 대하여, 가의와 사마천의 평가를 물은 것에 대하여, 반고가 답변하였다.
周歷已移,仁不代母。
“주나라의 수명은 이미 지나갔으니, 漢나라의 仁德이 周나라를 대신할 수는 없다.
秦直其位,呂政殘虐。
秦나라가 마침 그 자리를 대신하였으나, 呂政(진시황)은 잔인하고 포학하였다.
然以諸侯十三,并兼天下,極情縱欲,養育宗親。
그리하여 13세에 제후왕이 되어 천하를 병탄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종친을 양육하였다.
三十七年,兵無所不加,制作政令,施於後王。
37년 동안 가는 곳마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政令을 만들어 후대 왕들에게 전하였다.
蓋得聖人之威,河神授圖,據狼、狐,蹈參、伐,佐政驅除,距之稱始皇。
대체로 聖人의 위엄을 얻고 물의 신으로부터 河圖를 손에 넣고, 狼星과 狐星에 의지하고 參星과 伐星을 따랐기 때문에, 여정은 별의 기운을 받아 제후들을 물리치고 시황이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 歷 : 수명.운세.
▶ 仁不代母 : 한나라가 주나라를 직접 대체할 수 없다. 五行에서 周나라는 木德에 속하고 漢나라는 火德에 속하여 木生火이므로, 주나라가 한나라의 어머니가 되니 아들이 어머니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秦直其位 : 진나라가 木德과 火德의 사이에서 제왕의 지위를 마침 대신하였다. 直은 値와 같다. 마침의 뜻.
▶ 呂政 : 秦始皇 嬴政을 말한다. 여정은 呂不韋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영정을 비하한 것이다.
▶ 諸侯十三 : 진시황이 13세에 제후왕이 되었다.
▶ 宗親 : 임금의 친족.
▶ 河神 : 河伯. 고대 전설상의 물의 신으로 본명은 馮夷이다. 황하를 건너다 홍수로 빠져 죽은 뒤 天帝에 의해 河神에 봉해졌다.
▶ 河神授圖 : 河圖는 伏羲氏때 황하에서 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팔괘의 근원이 되는 그림으로 제왕이 받으면 길조로 여겼다.
▶ 狼,狐 : 狼星과 弧宿. 형태가 활 모양으로 활을 상징한다.<사기 권25. 律書 二十八舍>
▶ 參,伐 : 參宿와 罰宿(伐星). 斬殺과 정벌의 일을 주관한다.<사기 권25. 律書 二十八舍>
▶ 距 : 이르다.
始皇既歿,胡亥極愚,酈山未畢,復作阿房,以遂前策。
시황이 죽고 나자, 胡亥가 극히 어리석어 酈山능묘의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아방궁을 지어 선왕의 계획을 완수하였다.
云「凡所為貴有天下者,肆意極欲,大臣至欲罷先君所為」。
말하기를,
“천하를 얻어 귀하게 된 자는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 내키는 대로 다 할 수 있는데, 대신들이 선왕께서 이룬 바를 없애려 한다.”라고 하였다.
誅斯、去疾,任用趙高。
그리고는 李斯와 馮去疾을 죽이고 趙高를 기용하였다.
▶ 遂 : 실현하다.
痛哉言乎!
참으로 가슴 아픈 말이다!
人頭畜鳴。
사람의 머리가 짐승 소리를 내었다.
不威不伐惡,不篤不虛亡,距之不得留,殘虐以促期,雖居形便之國,猶不得存。
위세가 없었더라면 그의 죄악을 정벌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죄악이 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파멸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황제의 자리를 지키지도 못하고 잔혹하고 포학한 통치로 멸망을 재촉했으니, 비록 지세가 유리한 나라를 차지했지만, 그래도 보존할 수가 없었다.
▶ 威 : 위세.
▶ 篤 : 중하다. 깊다.
▶ 促 : 단축하다. 재촉하다.
子嬰度次得嗣,冠玉冠,佩華紱,車黃屋,從百司,謁七廟。
子嬰은 순서를 뛰어넘어 왕위를 계승하여, 玉冠을 쓰고 옥새를 매단 아름다운 인끈을 차고, 제왕의 수레에 타고 백관을 거느리고 七廟를 참배하였다.
小人乘非位,莫不怳忽失守,偷安日日,獨能長念卻慮,父子作權,近取於戶牖之閒,竟誅猾臣,為君討賊。
소인배라면 감당 못할 자리에 올라 어리둥절하지 않은 적이 없어, 마음을 주체치 못하고 날마다 구차하게 안일만 추구했으나, 홀로 깊이 생각하고 우려를 없애고 부자가 계략을 꾸미어, 가까운 齋宮에서 마침내 교활한 간신 조고를 죽이니, 선왕을 위해 역적을 토벌한 것이었다.
▶ 子嬰度次得嗣 : 子嬰은 통일 후 진나라의 제3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조고는 황제에 맞는 적임자를 찾았고, 그 적임자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시황제의 황태자 부소의 장남 子嬰이었다(혹은 호해의 형이라고도 한다).
▶ 紱 : 인끈. 옥새를 묶은 비단 끈.
▶ 黄屋 : 제왕이 타는 수레. 천자의 수레는 누런 비단으로 덮개와 속을 만든다.
▶ 怳忽 : 어리둥절하다.
▶ 偷 : 구차하다. 그날그날 살아가다.
▶ 卻 : 却. 제거하다.
▶ 戶牖 : 문과 창. 문.
▶ 竟誅猾臣 : 자영이 마침내 조고를 齋宮에서 찔러 죽이고 조고의 삼족을 멸하였다.
高死之後,賓婚未得盡相勞,餐未及下咽,酒未及濡脣,楚兵已屠關中,真人翔霸上,素車嬰組,奉其符璽,以歸帝者。
조고가 죽은 뒤 빈객과 친속이 서로의 위로하지도 못하고, 잔치 음식이 미처 목구멍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술이 미처 입술을 적시기도 전에, 초나라 군대가 관중을 도륙하고 高祖가 霸上으로 나아가니, 자영은 흰 수레에 인끈을 목에 감은 채 황제의 符節과 玉璽를 받들어 새로운 황제에게 돌려주었다.
鄭伯茅旌鸞刀,嚴王退舍。
이는 춘추시대에 鄭伯이 두 손에 제사용 禮器인 茅旌과 鸞刀를 받들어 초장왕을 맞이하자, 초장왕이 군사를 뒤로 물린 것과 같았다.
河決不可復壅,魚爛不可復全。
강물이 터지면 다시 막을 수 없고, 물고기가 문드러지면 온전하게 되돌릴 수 없다.
▶ 賓婚 : 빈객과 친속.
▶ 濡 : 적시다.
▶ 真人 : 帝王. 한 고조 유방을 말한다.
▶ 素車嬰組 : 組는 인끈을 말하며 오색의 실을 사이사이 섞어 짜서 옥새를 묶어서 허리에 띠는 것이다. “沛公이 霸上에 도달하니 秦나라 왕 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軹道의 옆에서 항복하였다.”<사기 본기 권06. 진시황본기>
▶ 鄭伯 : 정나라의 군주. <春秋> 魯宣公 12년(기원전 597년) 봄에 楚王이 鄭나라를 침범하여 그 수도를 함락하자, 鄭伯이 옷을 벗어 윗몸을 드러낸 채 양을 끌고 가서 초장왕을 맞이하였다. 이에 초장왕은 30리를 물러나 鄭나라에 화평을 허락하였다. <춘추좌씨전 노선공 12년>
▶ 茅旌鸞刀 : 모두 종묘의 제사에 사용하는 禮器이다. 鸞刀는 宗廟제사에 올릴 짐승을 죽이는 데 쓰는 칼이다.
▶ 嚴王 : 초나라 莊王. 한 명제 劉莊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莊을 嚴으로 쓴 것이다.
▶ 壅 : 막다.
▶ 爛 : 문드러지다.
賈誼、司馬遷曰:
「向使嬰有庸主之才,僅得中佐,山東雖亂,秦之地可全而有,宗廟之祀未當絕也。」
가의와 사마천은 말하였다.
‘만약 자영에게 평범한 군주의 재능이 있고, 단지 중간 정도 보좌할 신하를 얻었다면, 비록 山東이 혼란에 빠졌더라도, 진나라의 영토를 보전하고 종묘 제사 또한 끊어지지 않았을 터이다.’
秦之積衰,天下土崩瓦解,雖有周旦之材,無所復陳其巧,而以責一日之孤,誤哉!
진나라의 쇠락이 오래 쌓였으니, 천하는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풀리는 것이었다.
비록 周公 旦의 재주가 있을지라도, 다시 그 지략을 펼칠 수 없었을 터이니, 이것으로 재위기간이 짧은 子嬰을 나무라는 것은 잘못된 일이로다!
▶ 賈誼,司馬遷曰 : 賈誼의 過秦論을 사마천이 인용하였음을 말한다.
▶ 僅 : 단지. 다만.
▶ 中佐 : 중간 정도 보좌할 신하.
▶ 周旦 : 周公 旦.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다. 성은 姬, 이름은 旦.
시호는 文公이다. 周公이라고 한다. 그의 형인 무왕을 보좌하였고, 무왕 사후 그의 어린 아들인 성왕을 보좌하고 주나라 건국 이후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 陳 : 펼치다.
▶ 一日之孤 : 子嬰을 말한다. 在位기간이 짧은 天子라는 뜻이다.
俗傳秦始皇起罪惡,胡亥極,得其理矣。
세간에 전하는 바,
‘진시황은 죄악을 일으켰고 호해는 죄악이 극에 이르렀다.’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다.
復責小子,云秦地可全,所謂不通時變者也。
다시 子嬰을 나무라며 진나라의 영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시세의 변화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다.
紀季以酅,春秋不名。
紀나라의 紀季가 酅邑을 제나라에 바친 일을 <春秋>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吾讀秦紀,至於子嬰車裂趙高,未嘗不健其決,憐其志。
내가 秦始皇本紀를 읽다가 자영이 趙高를 거열형에 처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결단을 용감하다고 여기며 그의 의지를 가련히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嬰死生之義備矣。
자영은 생사의 대의를 갖추었다.”
▶ 小子 : 子嬰을 말한다.
▶ 紀季 : 기나라 군주의 막내동생.
“가을에 紀季가 酅邑을 가지고 齊나라로 들어오니, 紀國이 이때부터 비로소 齊나라의 附庸國이 되었다. <춘추좌씨전 장공 3년>
기계가 제나라에 항복한 것은 종묘를 보존하기 위해 부득이한 것이었으므로, 군주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 秦紀 : <秦始皇本紀>
2022.1.23. 고안자 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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