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논어 자한
산을 쌓는 일에 비유하면 흙 한 삼태기만큼을 끝맺지 못하고 그만두었더라도 나는 그만둔 것이다. 땅을 고르는 일에 비유하면 비록 흙 한 삼태기만을 부었어도 진척이 있었다면 나는 나아간 것이다.
如는 則처럼 가정을 나타내는 표지로 자주 쓰이는 한자입니다. 則과 더불어 가정 표현을 대표하는 접속사이자 부사라 할 수 있지요. 우리말로는 흔히 '만약 ~한다면' 정도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설문해자』에 나오는 如의 초기 뜻은 '따르다'였습니다. 여기에서 확장돼 나온 '~와 같다'가 如의 기본 뜻을 이룹니다. 물론 서술어로 쓰일 때 얘기입니다.
為政以德譬如北辰. -논어 위정
도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 같다.
-如의 기본 뜻이 어떤 조건에서 가정을 나타내는 말로 전환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가정을 나타내려면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인지 헷갈리는 것을 사실'같이' 제시해야 합니다. 또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같이' 전제해야 하지요. 그래서 '같다'는 뜻의 如는 ' 같다면'이란 가정의 의미로 쉽게 전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말의 '~면, ~라면' 같은 어미가 없는 한문은 가정의 대상을 문장의 앞에 두고, 그에 대한 결과를 뒤에 두는 것만으로 가정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어울려 如가 문장 앞에 놓이면 '~같다면, ~한다면'으로 가정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如와 발음이 비슷한 若과 而 역시 如와 같은 방식으로 가정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풀이도 '만약 ~한다면'으로 같지요.
다만 而는 '~와', '~하고(서)', '~한 후에', '~하지만'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므로 如로 대치할 수 있는 자리에 쓰였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쓰여야 가정의 의미를 나타낼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연습
▶如曰, 子欲無言, 即是言了. -육구연
만약 그대가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말을 한 것이다.
-了: 동작이 끝났음을 알리는 조사.
▶食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사기 관안열전
곡식 창고가 넉넉하면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안다.
-의미 관계만으로 而가 가정의 의미를 나타낸 예이다.
▶質的張而弓矢至焉, 林木茂而. -순자 권학
과녁을 펼치면 화살이 그곳에 이르고 숲에 나무가 빽빽하면 도끼가 그곳에 이른다.
▶善氣迎人, 親如弟兄. 惡氣迎人, 害於戈兵. -관자 심술 하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맞이하면 형제보다 가까워지고, 나쁜 마음으로 사람을 맞이하면 무기보다 해로워진다.
-如가 전치사로 쓰여서 '보다'의 의미를 나타낸 예이다. 뒤 구절에서 於(~보다)가 놓인 자리에 앞 구절에는 如가 쓰였다. 如의 전치사 쓰임을 몰랐더라도 문맥을 통한 추정이 가능하다.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맹자 고자 상
사람이 닭이나 개를 놓치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을 놓아버리면 찾을 줄 모른다.
-人有雞犬放을 풀이하면 '사람이 닭이나 개의 놓침이 있으면'이나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바꾸면 '사람이 닭이나 개를 놓치면'이 된다.
-앞 구절에서 則이 놓인 자리에 뒤 구절에서는 而가 쓰였다. 而가 則의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논어 술이
부유함이 만약 구해질 수 있다면 비록 채찍 잡는 천한 일이라 하더라도 나 역시 맡겠지만 만약 구해질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길을 따르겠다.
-執鞭之士는 채찍 잡는 천한 일을 가리키는데 이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그 일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시장의 문지기, 제후 행렬의 길잡이, 마부 등으로 견해가 갈린다.
-뒤 구절에 如가 놓인 자리에 앞 구절에서 而가 쓰였다. 而가 如의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자 한문 공부 > 한번은 한문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 (0) | 2024.07.20 |
---|---|
문장 속 의미로 나타내는 假定 (0) | 2024.07.20 |
가정을 나타내는 則(卽) (1) | 2024.07.19 |
乎와 호응하는 관용 표현 (0) | 2024.07.19 |
의문의 관용 표현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