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增論(범증론)-蘇軾(소식)
漢用陳平計, 間疏楚君臣. 項羽疑范增與漢有私, 銷奪其權.
漢이 陳平의 계책을 써서 楚의 君臣을 이간하니, 項羽는 范增이 漢과 私通한다고 의심하고 그의 권한을 조금씩 빼앗았다.
▶ 陳平 : 漢 高祖 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게 한 策士. 項羽의 군대가 범증의 도움으로 한 고조의 군대를 포위했을 때, 항우의 사자가 찾아왔다. 이때 진평의 계책을 따라, 그 사자 앞에서 굉장한 음식을 장만하다가 "亞父(范增의 별칭)께서 보낸 사자가 아니고, 항우의 사자입니까?"하고 물어보고는 형편없는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 사자는 돌아가 항우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여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고조와 내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진평의 계책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 間疏(간소) : 사이가 멀어지게 하다. 이간질하다.
▶ 楚君臣(초군신) : 초나라의 임금과 신하. 곧 항우와 범증을 가리킴.
▶ 范增(범증) : 초나라 항우의 軍師. 항우가 그를 존경하여 亞父라고 불렀다.
▶ 銷奪(초탈) : 조금씩 뺏다.
增大怒曰: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賜骸骨歸卒伍.”
범증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천하를 다투는 일은 대체로 결정되었다.
임금께서 멋대로 해보시라!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물러가서 졸개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오!"
▶ 賜骸骨(사해골) :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늙도록 살다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함.
▶ 歸卒伍 : 졸개로 돌아가다. 곧 평민으로 돌아가다.
未至彭城, 疽發背死.
彭城에 채 못가서 등창이 나서 죽어버렸다.
▶ 彭城(팽성) : 지금의 江蘇省 銅山縣 근처. 항우의 居城이 그곳에 있었다.
▶ 疽發背(저발배) : 큰 부스럼이 등에 나다. 등창이 나다.
蘇子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增之去善矣.
범증이 떠남은 잘한 것이다.
不去羽必殺增, 獨恨其不蚤耳.
떠나지 않았다면 항우는 필시 범증을 죽였을 터이매. 오직 떠나기를 늦었음을 한할 따름이다.
▶ 不蚤 : 이르지 않다. 蚤는 早와 같은 뜻.
然則當以何事去?
그렇다면 어떤 일을 이유로 떠나야만 했을까?
增勸羽殺沛公, 羽不聽, 終以此失天下, 當於是去邪?
범증이 항우에게 沛公을 죽이라고 권했을 적에 항우가 말을 듣지 않아 끝내는 이 때문에 천하를 잃었으니, 마땅히 그때 떠났어야만 했을까?
▶ 沛公 : 한 고조를 가리킴. 황제가 되기 전에는 패공이라 불렀다. 鴻門宴 때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권하였다.
曰: 否.
아니다!
增之欲殺沛公, 人臣之分也, 羽之不殺, 猶有君人之度也, 增曷爲以此去哉?
범증이 유방을 죽이려 함은 신하된 사람의 본분이고, 항우가 죽이지 않음은 그나마 임금으로서의 도량이 있었으매, 범증이 어찌 이 때문에 떠나겠는가?
▶ 人臣之分(인신지분) : 신하로서의 본분. 항우의 신하로서 장차 천하를 다투게 될 상대이니 유방을 죽이라 한 것이다.
▶ 君人之度(군인지도) : 임금된 사람으로서의 도량.
『易』曰:
‘知幾其神乎!’
《역경》에 일렀다
"기미를 앎은 神靈의 작용이다.“
▶ 易(역) : 《역경》 象傳 下에 보이는 말.
▶ 幾(기) : 빌미, 기미, 어떤 일의 근본 징후.
▶ 神(신) : 신 같은 마음의 작용. 미묘한 정신적 작용.
『詩』曰:
‘相彼雨雪, 先集維霰.’
《시경》에 일렀다.
"저 눈이 내리는 걸 보라. 먼저 습기가 모여 싸락눈으로 내린다.”
▶ 詩(시) : 《시경》 小雅 弁 시에 보이는 구절.
▶ 先集(선집) : 먼저 습기가 모여서 얼다.
▶ 霰(산) : 싸락눈, 아직 눈꽃을 완전히 형성치 못한 처음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 내리는 눈.
增之去, 當於羽殺卿子冠軍時也.
범증이 떠남은 항우가 卿子冠軍을 죽일 때가 합당하다.
▶ 卿子冠軍(경자관군) : 楚나라 의제의 장군 宋義. 처음에 秦나라에 대항하는 세력은 초나라 임금의 자손을 임금으로 모셔 그를 의제라 부르고 명분을 내세웠다. 이때 송의가 上將, 항우는 次將이었으며, 송의를 존경하여 '경자관군'이라 불렀다. 그러나, 뒤에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자신이 상장으로 올랐다.
陳涉之得民也, 以項燕ㆍ扶蘇, 項氏之興也, 以立楚懷王孫心, 而諸侯叛之也, 以弑義帝.
陳涉이 백성의 지지를 얻음은 項燕과 扶蘇 때문이고, 項氏가 흥기함은 楚懷王의 손자 心을 옹립하였기 때문이고, 제후가 항우를 배반함은 의제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 陳涉(진섭) : 吳廣과 함께 秦나라에 반기를 들어 진왕 타도의 선봉이 되었던 사람. 본시 평민 출신이었고, 결국은 패하여 죽고 말았다.
▶ 項燕 : 항우의 할아버지. 초나라의 장군.
▶ 扶蘇(부소) : 秦始皇의 태자 이름. 진섭은 처음에 군사를 일으키면서, 이들 두 사람이 지도자라고 거짓 명분을 내세워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 項氏(항씨) : 항우는 숙부인 項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항씨'라 합쳐 부른다.
▶ 楚懷王孫心(초회왕손심) : 초나라 회왕의 손자 心. 전국시대 말엽에 초나라 회왕은 秦나라에 갔다가 붙잡혀 거기에서 객사하였다. 그래서 초나라는 특히 진나라에 대한 원한이 컸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기 위하여 범증은 항량에게 권하여 회왕의 손자 심을 임금으로 내세워, 그를 義帝라 부르게 되었다.
▶ 弑義帝 : 항우는 秦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의제를 湖南省 長沙로 옮겨놓았다가 암살하였다.
且義帝之立, 增爲謀主矣. 義帝之存亡, 豈獨爲楚之盛衰?
게다가 의제의 즉위에 범증이 주모자였으매, 의제의 存亡이 어찌 초나라의 성쇠만을 뜻하겠는가?
▶ 謀主(모주) : 주모자.
▶ 獨爲(독위) : 오직 ~만을 나타내다. 오직 ~과만 관계가 있다.
亦增之所與同禍福也, 未有義帝亡而增獨能久存者也.
범증도 더불어 화복을 함께하였으니, 의제가 죽고 범증만 오래 살 수 없는 처지였다.
▶ 所與同禍福(소여동화복) : 함께하며 화와 복을 동시에 받.
羽之殺卿子冠軍也, 是弑義帝之兆也. 其弑義帝, 則疑增之本也, 豈必待陳平哉?
항우가 卿子冠軍을 죽임은 의제를 죽이려는 前兆이었고, 의제를 죽임은 범증을 의심하는 뿌리였으매. 어찌 꼭 진평이 계책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겠는가?
▶ 兆(조) : 징조·전조·조짐.
▶ 本(본) : 근본·뿌리·근원
物必先腐也而後, 蟲生之; 人必先疑也而後, 讒入之.
물건이 항상 먼저 썩고 나서 벌레가 거기에 생기고, 사람은 항상 먼저 의심하고 나서 모함이 먹혀든다.
▶ 讒(참) : 讒害. 모함.
陳平雖智, 安能間無疑之主哉?
진평이 비록 지혜로워도 어찌 의심이 없는 임금을 이간질할 수 있었겠는가?
吾嘗論, 義帝天下之賢主也.
나는 언젠가 의제가 천하의 현명한 임금이었음을 논평하였다.
獨遣沛公入關而不遣項羽, 識卿子冠軍於稠人之中, 而擢以爲上將, 不賢而能如是乎?
오직 유방만을 보내어 函谷關에 들어가게 하고 항우는 보내지 않았으며, 卿子冠軍 송의를 사람들 가운데서 알아보고 上將으로 발탁했던 사람이니, 현명하지 않다면 그럴 수 있었겠는가?
▶ 遣沛公人關(견패공입관) : 패공 유방을 보내어 函谷關으로 들어가게 하다. 본시는 항우가 먼저 함곡관으로 들어가 秦나라 咸陽을 공격하겠다고 나섰으나, 의제는 항우가 난폭하여 민심을 잃을 거라 생각하고 너그러운 패공을 시켜 먼저 함양을 공격하게 하였다《史記》高祖本紀.
함곡관을 거쳐 들어가야만 동남쪽으로부터 진나라 함양으로 갈 수가 있다.
▶ 稠人(조인) : 많은 사람. 빽빽한 사람들.
羽旣矯殺卿子冠軍, 義帝必不能堪. 非羽弑帝, 則帝殺羽, 不待智者而後知也.
항우가 卿子冠軍을 속여서 죽임에, 의제가 결코 참지 못하여, 항우가 의제를 죽이지 않았다면 의제가 항우를 죽였을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 矯殺(교살) : 속여 죽이다. 항우는 군중에서 경자관군 송의를 죽이고는, 그가 齊나라와 내통하고 반란을 꾀했기 때문에 의제의 명을 받아 송의를 죽였다고 거짓말했다고 한다.
▶ 不能堪(불능감) : 참지 못하다. 감내하지 못하다.
增始勸項梁立義帝, 諸侯以此服從. 中道而弑之, 非增之意也.
범증이 처음에 項梁에게 권하여 의제를 옹립하자 제후가 그 때문에 복종하게 되었으매, 중도에 그를 죽임은 범증의 뜻이 아니었다.
夫豈獨非其意, 將必力爭而不聽也.
어찌 그의 뜻이 아닐 뿐이겠는가? 필시 힘써 爭論하였으나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 터이다.
▶ 力爭(역쟁) : 힘써 다투다.
不用其言, 而殺其所立, 羽之疑增, 必自此始矣.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가 옹립한 임금을 죽였으니, 항우가 범증을 의심함은 필시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이다.
方羽殺卿子冠軍, 增與羽比肩而事義帝, 君臣之分, 未定也.
항우가 卿子冠軍을 죽일 적에 범증은 항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의제를 섬기매, (항우와 범증 사이에는) 君臣의 구분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었다.
▶ 君臣之分(군신지분) : 임금과 신하의 구분. 그때는 항우도 아직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우와 범증 사이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었다.
爲增計者, 力能誅羽則誅之, 不能則去之, 豈不毅然大丈夫也哉.
범증을 위한 계책으로는, 역량으로 항우를 죽일 수 있다면 항우를 죽이고, 불가능하면 떠남이 꿋꿋한 대장부가 됨이 아니겠는가?
▶ 毅然 : 꿋꿋한 모양. 굳센 모양.
增年已七十, 合則留, 不合則去, 不以此時明去就之分, 而欲依羽以成功名, 陋矣.
범증의 나이 이미 70이매, 뜻이 맞으면 남아 있고 맞지 않는다면 떠나야만 하였는데, 그때 거취의 분별을 명백히 하지 않고, 항우에 의지하여 공명을 이루려 하였으니, 비루하다.
▶ 去就之分(거취지분) : 거취의 分界. 벼슬자리에 나아가고 떠나는 분별.
雖然增高帝之所畏也, 增不去, 項羽不亡.
비록 그러하나 범증은 高帝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매, 범증이 떠나지 않았다면 항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嗚呼! 增亦人傑也哉!”
아아! 범증은 역시 人傑이었다.
해설
소식이 지은 〈鼂錯論〉·〈留侯論〉·〈荀卿論〉 등 여러 편의 인물론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의 자료는 《史記》項羽에서 나왔다.
소식은 범증을 한나라 고조도 두려워했던 위대한 인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가 항우를 섬긴 태도에는 약간 불만을 지녔던 듯하다.
그래서 특히 범증이 끝내는 한나라 陳平의 계책으로 항우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 뒤에야, 항우 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사실을 중심으로 범증을 비판하고 있다. 곧, 범증이 항우 곁을 떠나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별로 큰 문제가 아닌 듯한데도, 소식의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느끼게 함은 그의 문장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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