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州學記(원주학기)-李覯(이구)
皇帝二十有三年, 制詔州縣立學.
황제 즉위 23년, 州縣에 학교를 세우라는 칙명을 내리셨다.
▶ 皇帝(황제) : 宋나라 仁宗, 인종 23년은 慶曆 4년(1044)임.
惟時守令, 有哲有愚.
당시 태수와 현령에는 슬기로운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었다.
▶ 守令(수령) : 州縣의 태수와 현령,
有屈力殫慮, 祗順德意. 有假宮借師, 苟具文書.
힘과 생각을 다하여 삼가 큰 뜻을 따르는 사람도 있었고, 道觀을 빌어 학교라 하며 교사를 명의만 빌려서 구차히 문서만 갖추는 사람도 있었다.
▶ 屈力(굴력) : 힘을 다함. 屈은 다한다는 뜻으로 殫과 같음.
▶ 殫慮(탄려) : 생각을 다함. 殫은 盡과 같은 뜻.
▶ 祗(지) : 敬, 또는 謹의 뜻으로 '삼가'.
▶ 假宮借師(가궁차사) : 도교의 宮觀을 빌어 학교라 하고 교사의 지위를 명목상으로만 차지하고 있음. 이름만 학교일 뿐 학교라고 할 수 없는 상태를 설명하고 있음.
▶ 苟具文書(구구문서) : 구차스럽게 문서를 갖춤. 궁여지책으로 문서상으로만 학교처럼 꾸며놓음.
或連數城, 亡誦弦聲, 倡而不和, 敎尼不行.
혹 연달아 여러 성에서 글을 읽는 소리나 거문고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면, 천자의 주장에 지방관이 호응하지 않아 교육이 정지된 채 행하여지지 않기도 하였다.
▶ 數城(수성) : 여러 城邑.
▶ 亡誦絃聲(무송현성) : 책 외는 소리와 琴타는 소리가 없음. 琴書之樂이라 하여 옛날 선비는 책으로 공부를 하고, 음악으로 性情을 깨끗이 하였다.
▶ 倡而不和(창이불화) : 主唱하여도 응하지 않음. 倡은 唱의 뜻. 和는 應과 같은 뜻.
▶ 敎尼不行(교니불행) : 교화가 막혀 행해지지 않음. 尼는 止의 뜻.
三十有二年, 范陽祖君無擇, 知袁州, 始至進諸生, 知學宮闕狀.
32년에 范陽 사람 祖君 無擇이 袁州의 지사가 되어 처음 부임하자, 학생을 불러 보고 학교의 이지러진 상태임을 알았다.
▶ 三十有二年(삼십유이년) : 仁宗 32년, 至和 元年(:1054)에 해당된다.
▶ 祖君無擇(조군무택) : 조무택은 자를 擇之라 하며 范陽(지금의 河北省 고을 이름) 사람으로 당시의 名官이었다.
▶ 闕狀(궐상) : 이지러진 상태. 闕은 缺.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함.
大懼人材放失, 儒效闊疏, 無以稱上意旨.
인재를 放置하여 잃고, 儒學의 효과가 허술하여, 천자의 뜻에 부합하지 못함을 크게 걱정하였다.
▶ 大懼(대구) : 크게 두려워함.
▶ 闊疏(활소) : 어설프고 실제와 거리가 먼 것.
▶ 稱(칭) : 적합함.
通判潁川陣君侁, 聞而是之, 議以克合.
通判인 潁川의 陣君 侁이 그것을 옳게 여기어 의논하니, 의견이 들어맞았다.
▶ 通判(통판) : 判官을 말한다. 知府·知州와 함께 정사를 맡아 행하는 관리로 조정에 있을 때는 정사에 관여하고 조정 밖에서는 縣의 행정을 按察하며 軍에 있을 때는 군량의 일을 맡는다.
▶ 陳君侁(진군신) : 穎川(:지금의 河南省 고을 이름)사람 陳侁. 자는 復之.
▶ 克合(극합) : 뜻이 하나로 모아짐. 克은 能의 뜻.
相舊夫子廟, 陿隘不足改爲. 乃營治之東.
옛 夫子廟를 보았더니 너무 좁아서 개축하기에는 부적당하였으므로 官衙 동쪽에 새로 세우기로 하였다.
▶ 夫子(부자) : 孔子를 가리킴.
▶ 治(치) : 정사를 맡아보는 곳. 州의 廳舍.
厥土燥剛, 厥位面陽, 厥材孔良.
그 토지는 마르고 굳으며, 그 위치는 남향이고, 그 목재는 매우 좋은 것을 썼다.
▶ 燥剛(조강) : 건조하고 단단함.
▶ 面陽(면양) : 남쪽으로 향하고 있음.
▶ 孔(공) : 甚의 뜻으로 매우.
瓦甓黝堊丹漆, 擧以法故, 殿堂室房廡門, 各得其度.
瓦甓은 검은칠·흰칠·붉은칠·옻칠이 모두 옛 법식을 따랐고, 殿閣의 堂과 방과 행랑채와 문들이 각기 법도에 맞았다.
▶ 瓦甓(와벽) : 기와·벽돌.
▶ 黝堊丹漆(유악단칠) : 검은칠·흰칠·붉은칠·옻칠.
▶ 法故(고) : 옛 법식을 따름.
▶ 殿(전) : 殿閣.
▶ 堂(당) : 집의 중심이 되는 대청에 해당되는 곳.
▶ 廡(무) : 행랑채.
生師有舍, 庖廩有次, 百爾器備.
학생과 스승은 宿舍를 갖게 되고, 부엌과 쌀 창고에 次序가 있고, 갖가지 기구가 갖추어졌다.
▶ 生師(생사) : 학생과 선생.
▶ 庖廩(포름) : 부엌과 쌀광.
▶ 百爾(백이) : 갖가지. 爾는 별 뜻 없이 형용의 조사로 쓰였음.
幷手偕作. 工善吏勤, 晨夜展力, 越明年成, 舍菜且有日.
손을 모아 공사를 하니, 일꾼은 일을 잘하고 관리는 부지런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힘써서, 이듬해 完成을 보고 舍菜의 禮를 지낼 날짜도 받아놓았다.
▶ 幷手偕作(병수해작) : 손을 모아 함께 만듦.
▶ 舍菜(사채) : 옛날 학교에서 채소를 놓고 지내는 孔子의 제사, 釋菜 또는 菜라고도 한다.
▶ 且有日(차유일) : 날짜를 받아놓음. 얼마 남지 않았음.
旴江李覯諗于衆曰:
旴江의 나 李覯는 대중에게 고하는 바이다.
▶ 諗(심) : 여러 사람에게 고함. 원래는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간한다는 뜻.
'웃' 및 '윗' 은 명사 '위' 에 맞추어 '윗' 으로 통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래위의 대립이 없는 단어에 대해서는 '웃' 을 붙입니다. '웃어른'에 대립하는 '아랫어른'은 없으므로 '윗어른'이 아니라 '웃어른'으로 표기함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
“惟四代之學, 考諸經可見已.
“虞·夏·殷·周의 학교 교육은 경전을 통해 알 뿐이다.
▶ 四代之學(사대지학) : 虞·夏·商·周의 네 왕조의 학문.
▶ 諸經(제경) : 詩·書·易·春秋·禮·樂의 여러 경전
秦以山西, 鏖六國, 欲帝萬世.
秦은 산서 지방을 근거로 하여 韓·魏·燕·趙·齊·楚의 6국을 멸망시키고 萬世토록 황제가 되고자 하였다.
▶ 山西(산서) : 秦이 일어났던 곳. 崤山 서쪽을 山西, 동쪽을 山東이라 한다.
▶ 鏖(오) : 모조리 무찔러 죽임.
▶ 六國(육국) : 전국시대 秦에게 멸망당한 韓·魏·燕·趙·齊·楚의 여섯 나라.
劉氏一呼, 而關門不守, 武夫健將, 賣降恐後, 何耶? 詩書之道廢, 人唯見利而不聞義焉耳.
劉邦이 한바탕 소리치자, 秦軍은 函谷의 관문을 지키지 못하여, 무사와 용장이 남에게 뒤질세라 항복하고 말았으니 왜 그랬던가? 그것은 《詩經》·《書經》의 도의가 끊어져 사람들이 오로지 이익만 보고 義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劉氏(유씨) : 漢 高祖가 된 劉邦을 가리킨다.
▶ 武夫健將(무부건장) : 병사와 용맹한 장수.
▶ 賣降(매항) : 장사치가 이익을 위하여 물건을 팔 듯, 목숨을 아끼고 이익을 얻기 위하여 항복함을 말한다.
▶ 詩書之道廢(시서지도폐) : 시황제는 6국을 멸한 뒤, 法家인 李斯의 제안을 받아들여 詩·書 등의 경전은 물론 백가의 서를 불사르고, 儒者들을 생매장하여[焚書坑儒], 공맹의 仁義의 도를 폐하였다.
孝武乘豊富, 世祖出戎行, 皆孶孶學術, 俗化之厚, 延于靈獻.
漢 武帝는 전대의 풍부한 재력을 이용하고, 光武帝는 전쟁을 통하여 제위에 오르셨는데 두 분 모두 학술에 힘쓰매, 풍속과 교화의 돈후함이 靈帝·獻帝까지 이어졌다.
▶ 孝武(효무) : 漢의 武帝. 文帝·景帝의 뒤를 이었다.
▶ 世祖(세조) : 後漢의 光武帝. 전한 景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劉秀. 王莽이 세운 新을 멸하고 후한을 일으켰다.
▶ 出我行(출융행) : 軍陣의 행렬에서 몸을 일으킴.
▶ 孶孶(자자) : 부지런히 힘쓰을 말함.
▶ 俗化(속화) : 俗은 풍속. 化는 교화.
▶ 靈獻(영헌) : 靈帝와 獻帝.
草茅危言者, 折首而不悔; 功烈震主者, 聞命而釋兵, 群雄相視, 不敢去臣位, 尙數十年, 敎道之結人心如此.
草茅에서 바른말을 하는 자는 목이 잘리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공훈이 군주를 진동시킬 만한 실력자도 君命을 들으면 군사를 풀고, 영웅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감히 신하의 지위를 떠나지 못함이 수십 년 계속된 것은. 道義를 가르침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결속하였기 때문이었다.
▶ 草茅(초모) : 草莽之臣,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 危言(위언) : 直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바른말.
▶ 功烈震主(공렬진주) : 곧 공로를 떨치어 군주를 놀라게 한 사람. 후한 말의 梟雄 董卓·袁紹·曹操 등을 말함.
今代遭聖神, 爾袁得賢君, 俾爾由庠序, 踐古人之迹.
지금의 시대는 성스럽고 신령스런 천자를 만났고, 또 그대의 袁州는 현명한 군자인 조무택을 얻었으매, 그대들에게 학교를 통하여 옛 성인의 발자취를 배우게 할 터이다.
▶ 聖神(성신) : 仁宗 황제를 극찬한 말. 《맹자》 盡心 하편에 위대하여 사람을 감화시킴을 聖이라 하고, 성스러워 헤아릴 수 없음을 神이라 한다[大而化之謂之聖, 聖而不可謂之神]'고 하였다.
▶ 爾袁(이원) : 너 袁州. 그대 원주 사람들. 爾는 汝와 같은 뜻.
▶ 賢君(현군) : 원주의 태수 祖無擇을 가리킴.
▶ 俾(비) : 使와 같은 뜻으로 ‘하여금’
▶ 庠序(상서) : 향리의 학교 이름. 殷代에는 序라 하였고, 周代에는 庠이라 하였다.
天下治則譚禮樂以陶吾民, 一有不幸, 尤當仗大節, 爲臣死忠; 爲子死孝, 使人有所賴, 且有所法, 是惟朝家敎學之意.
천하가 잘 다스려질 때는 禮와 樂을 담론하여 우리 원주의 백성을 훈도하고, 어쩌다 불행이 닥치면 더욱 큰 절의를 지켜 신하로서 죽음으로 충성하고 자식으로 죽음으로 효도하여, 사람들이 의지할 것을 지니며 또 본받을 것을 지니게 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조정이 백성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뜻이다.
▶ 譚(담) : 談과 같은 뜻으로 얘기함.
▶ 陶(도) : 질그릇을 만들 듯이 사람을 훈도함.
▶ 仗(장) : 倚의 뜻으로 기대다. 의지하다.
▶ 大節 : 큰 절조
▶ 朝家(조가) : 조정을 가리킨다.
若其弄筆墨, 以徼利達而已, 豈徒二三子之羞, 抑亦爲國者之憂.”
만약 筆墨을 놀려, 이익과 榮達을 구할 뿐이라면, 어찌 그대들 몇 사람만의 수치이겠는가? 도리어 그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걱정거리인 것이다.”
▶ 徼利達(요리달) : 이익과 영달을 구함. 微는 求의 뜻.
해설
袁州는 江西省에 속해 있는 고을로 지금의 宜春縣이다.
당나라 天寶 5년, 태수 房琯이 공자묘를 성 북문밖에 세워 교육에 힘쓴 것이 원주 학교의 시초였다.
그 후 송나라 仁宗 때, 각 州縣에 학교를 세우라는 황제의 조칙에 의해 학교가 세워짐으로써, 다시 교육이 크게 일어났다. 인종의 皇祐 5년, 태수 祖無擇이 이제까지의 학교가 너무 궁색함을 살펴보고, 원주 廳舍 동쪽에 새로이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원주의 주학이다. 그 주학이 낙성된 후, 李觀가 학교 교육의 뜻을 밝히면서 올바른 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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