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信( ? ~ 기원전 196년)은 前漢의 장군이자 제후이다.
회음현 출신으로 유방의 부하로 있을 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漢初三傑 중 하나로 꼽히며, 蕭何가 國士無雙이라고 일컬은 명장이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項羽에게 漢王으로 봉해지자 漢中으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韓信은 漢王에게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툴 것을 건의하였다.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제압하면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제왕에 이어 초왕이 되었으나 반란을 꾀하다가 회음후로 격하되었다가 여태후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족되었다.
회음후열전에서 나오는 一飯千金, 胯下之辱, 兎死狗烹 등이 유명한 고사성어이다.
淮陰侯韓信者,淮陰人也。
淮陰侯 韓信은 淮陰 사람이다.
始為布衣時,貧無行,不得推擇為吏,又不能治生商賈,常從人寄食飲,人多厭之者,常數從其下鄉南昌亭長寄食,數月,亭長妻患之,乃晨炊蓐食。
당초 평민이었을 때 가난하고 품행이 단정하지 않아서 추천을 받아 관리가 되지 못하였고, 또 장사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도 없어서 늘 남을 따라다니며 의지하여 먹고 사니,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고, 下鄕의 南昌마을 亭長의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먹었다.
몇 달 후 정장의 아내가 韓信을 미워하여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부자리에서 먹었다.
食時信往,不為具食。
식사시간에 韓信이 갔으나 밥을 준비하지 않았다.
信亦知其意,怒,竟絕去。
韓信도 그 뜻을 알고 화가 나서 마침내 가지 않았다.
信釣於城下,諸母漂,有一母見信饑,飯信,竟漂數十日。
韓信이 성 아래에서 낚시함에, 아낙네들이 빨래하다가 한 아낙이 韓信이 굶주림을 보고 밥을 먹여주었는데, 빨래 일을 마치도록 수십 일 동안이었다.
信喜,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
韓信이 기뻐하며 빨래하는 아낙에게 말하였다.
“내 반드시 부인께 크게 보답하겠소.”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吾哀王孫而進食,豈望報乎!」
아낙네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대장부가 자신을 먹이지 못하여 내가 王孫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었는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
▶ 布衣 : 평민백성.
▶ 無行 : 품행이 나쁘다.
▶ 推擇 :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추천하다.
▶ 治生商賈 :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다. 商賈는 장사꾼.
▶ 晨炊蓐食 : 아침밥을 이부자리 안에서 식사하다. 蓐은 방석.
▶ 漂母 : 빨래하는 아낙네. 漂는 빨래하다.
▶ 竟漂 : 빨래가 끝나다. 竟은 끝내다.
▶ 王孫 : 公子.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경칭. 秦이 6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봉건제도를 폐하니, 6국 귀족의 후예들이 대부분 평민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을 公子, 또는 王孫이라고 높여서 칭한 것이다.
▶ 自食 : 스스로 살아가다.
▶ 一飯千金 : 韓信이 漂母에게 한 끼니의 밥을 얻어먹고 후에 千金을 주어 그 은혜를 갚은 일. 一飯之恩이라고도 한다.
陶淵明은 ‘乞食’ 시에서 이를 인용하였다.
感子漂母惠,愧我非韓才。:
빨래하는 아낙네 같은 당신의 은혜 고마우나 내가 韓信 같은 인재 아니라 부끄럽구려.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曰:
「若雖長大,好帶刀劍,中情怯耳。」
회음의 백정인 젊은이로 韓信을 멸시하는 자가 말하였다.
“네가 비록 長大하고 도검을 차기를 좋아하나 속마음은 겁쟁이일 뿐이다.”
眾辱之曰:
「信能死,刺我;
不能死,出我袴下。」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며 말하였다.
“네가 죽을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라.”
於是信孰視之,俛出袴下,蒲伏。
이에 韓信이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몸을 굽혀 가랑이 밑으로 기었다.
一市人皆笑信,以為怯。
모든 시장 사람들이 韓信을 비웃으며 겁쟁이라 여겼다.
▶ 屠 : 백정.
▶ 中情 : 내심.
▶ 衆辱 : 사람들 앞에서 모욕하다.
▶ 能死 :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다.
▶ 袴 : 胯와 통하여 사타구니. 두 다리의 사이.
▶ 俛出 : 굽혀서 나오다. 俛는 숙일 ‘부’.
▶ 蒲伏 : 匍匐과 같음. 기다.
及項梁渡淮,信杖劍從之,居戲下,無所知名。
項梁이 淮水를 건너자 韓信은 칼을 차고 그를 따랐는데, 휘하에 있을 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項梁敗,又屬項羽,羽以為郎中。
項梁이 敗戰하자 다시 項羽에게 귀속하였으며, 항우는 그를 郎中에 임명하였다.
數以策干項羽,羽不用。
여러 차례 항우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는 채용하지 않았다.
漢王之入蜀,信亡楚歸漢,未得知名,為連敖。
漢王이 蜀에 들어오자 韓信은 楚에서 도망쳐서 漢으로 귀의하였으나 명성이 알려지지 못했기에 連敖가 되었다.
坐法當斬,其輩十三人皆已斬,次至信,信乃仰視,適見滕公,曰:
「上不欲就天下乎?
何為斬壯士!」
죄를 저지르고 참수에 해당하여, 同輩 13명이 이미 참수되고 韓信의 차례가 됨에, 韓信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다가 滕公을 발견하고 말하였다.
“왕께서는 천하를 취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십니까!”
滕公奇其言,壯其貌,釋而不斬。
등공은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고 그 모습을 장하게 여겨서, 풀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與語,大說之。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기뻐하였다.
言於上,上拜以為治粟都尉,上未之奇也。
漢王에게 추천하니 漢王은 韓信을 治粟都尉로 임명하였으나, 왕은 그를 뛰어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信數與蕭何語,何奇之。
韓信은 자주 蕭何와 대화하였으므로 소하는 그를 뛰어나다고 여겼다.
至南鄭,諸將行道亡者數十人,信度何等已數言上,上不我用,即亡。
南鄭에 도착하자, 장수로서 행군 중에 도망한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韓信이 판단하기를, 소하 등이 여러 차례 漢王에게 추천하였으나, 임금이 등용하지 않는다 하여 이내 도망쳤다.
何聞信亡,不及以聞,自追之。
소하가 韓信이 도망쳤음을 알았으나, 왕에게 알리지 못하고 직접 韓信을 쫓아갔다.
人有言上曰:
「丞相何亡。」
어떤 자가 왕에게 말하였다.
“승상 소하가 도망쳤습니다.”
上大怒,如失左右手。
왕이 크게 화를 내며 마치 좌우의 손을 잃은 듯하였다.
居一二日,何來謁上,上且怒且喜,罵何曰:
「若亡,何也?」
하루 이틀이 지나 소하가 와서 왕을 배알하니, 왕은 화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소하를 꾸짖었다.
“그대가 도망함은 무엇 때문인가?”
何曰:
「臣不敢亡也,臣追亡者。」
소하가 대답하였다.
“신이 감히 달아난 것이 아니라, 신은 달아난 자를 쫓아갔습니다.”
上曰:
「若所追者誰何?」
왕이 말하였다.
“그대가 뒤쫓은 자는 누구인가?”
曰:
「韓信也。」
대답하였다.
“韓信입니다.”
上復罵曰:
「諸將亡者以十數,公無所追;追信,詐也。」
왕이 다시 꾸짖었다.
“장수 중에 달아난 자가 수십 명인데, 공은 쫓음이 없었소. 韓信을 쫓아갔다고 함은 거짓말이오.”
何曰:
「諸將易得耳。
至如信者,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無所事信;
必欲爭天下,非信無所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
소하가 대답하였다.
“장수는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韓信과 같은 사람은, 나라의 선비로 견줄 짝이 없습니다.
왕께서 꼭 오래도록 漢中에서 왕 노릇을 하시려면 韓信을 쓸 일이 없겠지만, 기어이 천하를 다투려 하시면 韓信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계획할 자가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어떤 계책을 결정하시느냐일 뿐입니다.”
王曰:
「吾亦欲東耳,安能郁郁久居此乎?」
漢王이 말하였다.
“나 또한 동쪽으로 가고 싶소. 어찌 답답하게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겠소?”
何曰:
「王計必欲東,能用信,信即留;
不能用,信終亡耳。」
소하가 말하였다.
“왕의 계획이 기어이 동쪽으로 감이라면 韓信을 중용할 터이고, 그러면 韓信은 머무를 터입니다.
중용하지 않는다면 韓信은 결국 달아날 터입니다.”
王曰:
「吾為公以為將。」
왕이 말하였다.
“공의 낯을 보아 장군으로 삼겠소.”
何曰:
「雖為將,信必不留。」
소하가 말하였다.
“비록 장군으로 삼는다고 해도 韓信은 필시 머무르지 않을 터입니다.”
王曰:
「以為大將。」
왕이 말하였다.
“대장으로 삼겠소.”
何曰:
「幸甚。」
소하가 말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於是王欲召信拜之。
이에 왕은 韓信을 불러 대장으로 임명하고자 하였다.
何曰:
「王素慢無禮,今拜大將如呼小兒耳,此乃信所以去也。
王必欲拜之,擇良日,齋戒,設壇場,具禮,乃可耳。」
소하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평소 오만하고 무례하셔서, 지금 대장을 임명하기를 어린아이를 부르듯이 하시니, 이것이 바로 韓信이 떠난 이유입니다.
왕께서 꼭 그를 임명하시려면, 좋은 날을 골라 齋戒하시고, 壇과 마당을 마련하고 예를 갖추어야만 가능하겠습니다.”
王許之。
왕이 허락하였다.
諸將皆喜,人人各自以為得大將。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며, 저마다 자신이 대장이 될 터이라고 여겼다.
至拜大將,乃韓信也,一軍皆驚。
대장을 임명함에 이르자, 바로 韓信인지라 온 군대가 모두 놀랐다.
信拜禮畢,上坐。
韓信이 임명의 예를 마치자 漢王이 坐定하였다.
王曰:
「丞相數言將軍,將軍何以教寡人計策?」
漢王이 물었다.
“丞相이 자주 장군을 추천하였는데 장군은 무엇으로 과인에게 계책을 가르치겠소?”
信謝,因問王曰:
「今東鄉爭權天下,豈非項王邪?」
韓信이 謝恩하고 왕에게 물었다.
“지금 동쪽을 향해 천하의 대권을 다툴 자는 項王이 아니겠습니까?”
漢王曰:
「然。」
漢王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曰:
「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
韓信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자신을 헤아리매, 용맹하고 사납고 인자하고 강함에 項王과 비교하여 누가 더 낫습니까?”
漢王默然良久,曰:
「不如也。」
漢王이 침묵하기 오래더니 말하였다.
“내가 못하오.”
信再拜賀曰:
「惟信亦為大王不如也。
韓信이 두 번 절하고 찬성하며 말하였다.
“신 또한 대왕께서 못하다고 여깁니다.
然臣嘗事之,請言項王之為人也。
그러나 신은 그를 섬긴 적이 있으니 項王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項王喑噁叱,千人皆廢,然不能任屬賢將,此特匹夫之勇耳。
項王이 진노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면 천 사람이 모두 엎드리지만, 재능있는 장수를 믿고 맡기지 못하니, 이것은 단지 필부의 용맹일 뿐입니다.
項王見人恭敬慈愛,言語嘔嘔,人有疾病,涕泣分食飲,至使人有功當封爵者,印刓敝,忍不能予,此所謂婦人之仁也。
項王이 사람을 대함에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씨도 온화하고, 병든 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주지만, 부리는 사람에 戰功이 있어 마땅히 봉작할 자에 이르러서는, 인장이 닳아 망가져도 차마 주지 못하니,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자함입니다.
項王雖霸天下而臣諸侯,不居關中而都彭城。
項王이 비록 천하의 패자가 되어 제후를 신하로 삼았지만, 關中에 머무르지 않고 彭城에 도읍하였습니다.
有背義帝之約,而以親愛王,諸侯不平。
더욱이 義帝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친애하는 사람을 왕에 봉하매 제후가 공평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諸侯之見項王遷逐義帝置江南,亦皆歸逐其主而自王善地。
제후는 項王이 의제를 쫓아내어 江南에 둠을 보고, 또한 모두 봉국으로 돌아가서 그 군주를 쫓아내고 자신들이 좋은 땅의 왕이 되었습니다.
項王所過無不殘滅者,天下多怨,百姓不親附,特劫於威彊耳。
項王이 지나간 곳에 잔인하게 멸하지 않음이 없으매, 천하에 원망하는 자가 많고, 백성이 가깝게 따르지 않으나, 다만 위력에 위협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名雖為霸,實失天下心。
명성은 비록 패자라고 하나 사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었습니다.
故曰其彊易弱。
그러므로 그의 강함은 쉽게 약화한다고 말합니다.
今大王誠能反其道:
任天下武勇,何所不誅!
以天下城邑封功臣,何所不服!
以義兵從思東歸之士,何所不散!
그러니 대왕께서 진실로 그의 방법과 반대로 하여,
천하를 용맹한 자에게 맡기신다면 누구를 주벌하지 못하겠습니까!
천하의 城邑을 功臣에게 봉한다면 누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義兵으로써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병사를 따르게 한다면, 누구를 흩어버리지 못하겠습니까!
且三秦王為秦將,將秦子弟數歲矣,所殺亡不可勝計,又欺其眾降諸侯,至新安,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唯獨邯、欣、翳得脫,秦父兄怨此三人,痛入骨髓。
또 三秦의 왕은 원래 秦의 장군으로, 秦의 자제를 거느린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죽고 달아난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게다가 그 병사들을 속여 제후에게 항복하고 新安으로 왔는데, 項王은 秦에서 항복한 병졸 20여 만을 속여서 구덩이에 묻어 죽였습니다.
오직 章邯·司馬欣·董翳만이 빠져나오니, 秦의 부모 형제들이 이 세 사람을 원망하여 원통함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今楚彊以威王此三人,秦民莫愛也。
그런데도 楚가 억지로 위력에 의지하여 이 세 사람을 왕으로 삼으니, 秦 백성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大王之入武關,秋豪無所害,除秦苛法,與秦民約,法三章耳,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
대왕께서 武關에 들어가셔서 털끝 같은 해침도 없었고, 秦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秦 백성에게 三章의 법만을 두겠다고 약속하시매, 秦 백성에 대왕께서 秦의 왕이 됨을 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於諸侯之約,大王當王關中,關中民咸知之。
제후의 약속에 따라, 대왕께서 관중의 왕이 되어야 함을 관중의 백성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大王失職入漢中,秦民無不恨者。
대왕께서 직책을 잃고 한중으로 들어가시매, 진의 백성에 한스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今大王舉而東,三秦可傳檄而定也。」
그러므로 대왕께서 擧兵하여 동쪽으로 가신다면, 三秦은 격문을 전하여 평정할 수 있습니다.”
於是漢王大喜,自以為得信晚。
이에 漢王이 크게 기뻐하여, 스스로 韓信을 얻음이 늦었다고 생각하였다.
遂聽信計,部署諸將所擊。
마침내 韓信의 계책을 좇아 장수들이 공격할 곳을 정하였다.
▶ 項梁 : 項羽의 숙부
▶ 戲下 : 장군의 지휘 아래. 戲는 麾와 같으며 대장기를 말한다.
▶ 連敖 : 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직책.
▶ 坐法 :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다.
▶ 滕公 : 夏侯嬰. 前漢 高祖의 개국공신.
▶ 上 : 漢王 劉邦을 말한다. 당시에는 아직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王이라 칭함이 옳다.
▶ 治粟都尉 : 군량미를 관리하는 직책.
▶ 蕭何 : ?~기원전 193년. 秦 말기에서 전한 초기에 걸쳐 활약한 정치가이다. 유방의 참모로서 그가 천하를 얻도록 도왔으며, 전한의 초대 상국을 지냈다. 韓信, 장량과 함께 한의 三傑로 꼽힌다.
▶ 至南鄭 :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항우에게 漢王에 봉해져 도성인 남정에 이름. 항우는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까 의심하여 유방을 漢王으로 삼아 파, 촉, 한중의 왕이 되게 하고 南鄭을 도읍으로 삼게 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 度 : 추측하다. 짐작하다.
▶ 以十數: 十의 단위로 셈하다. 數十이라는 뜻.
▶ 國士無雙 : 국가의 걸출한 인물로 나라에서 겨룰만한 인물이 없다. 국가의 비범한 선비이어서 둘도 없음.
▶ 顧 : 다만.
▶ 郁郁 : 답답하다. 우울하다.
▶ 幸甚 : 매우 다행이다.
▶ 素慢 : 줄곧 오만함. 素는 줄곧. 본래부터.
▶ 齋戒 :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일 을 할 때,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不淨을 피함.
▶ 壇場 : 장수로 임명하는 장소를 말한다. 壇은 제단.
▶ 謝 : 겸손하게 사양하다.
▶ 鄉 : 向과 같다.
▶ 良久 : 아주 오랫동안.
▶ 賀 : 찬성하다. 칭찬하다.
▶ 喑噁 : 가슴에 화가 가득차다. 暗噁叱咤 : 크게 소리치며 나무람.
▶ 廢 : 엎드리다. 감히 움직이지 않다.
▶ 嘔嘔 : 온화한 모습.
▶ 刓敝(완폐) : 刓은 모서리가 닳아서 망가진 것이다. 封爵하는 印章을 비록 새겨놓았으나 손으로 만지작거려 모서리가 닳아도 차마 주지 못함.
▶ 有背義帝之約 : 기원전 206년 2월에 항우가 西楚霸王에 등극하여 공이 있는 장수들을 천하에 분봉할 때 먼저 관중을 장악한 이를 關中王으로 삼겠다던 楚懷王의 약속을 저버리고 유방을 巴, 蜀에 봉하여 漢王으로 삼았다.
有는 又로 쓰이는데, 이에는 부사적 용법과 접속사적 용법이 있다. ‘또한’, ‘더욱이’ 허사 有 참조
▶ 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 : 項羽가 제후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함곡관에 들어갈 즈음이다.
이전에 제후의 관리와 군사들이 부역과 수자리를 위해 관중을 지나갈 때 秦 사람들이 몹시 형편없게 대접하였으므로, 秦軍이 楚에 항복하자 제후의 軍吏가 기세등등하여 모욕을 주며 노예처럼 부려먹으니, 秦의 관리와 군사들이 대부분 원망을 품고 몰래 서로 수군거렸다.
항우가 ‘이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니 관중에 이르면 반드시 위태롭겠다.’라고 생각하고, 밤에 습격하여 20여만 명을 新安의 성 남쪽에 생매장하였다.
그리고 章邯 및 長史 司馬欣, 都尉 董翳만 데리고 秦으로 들어갔다.
▶ 王此三人 : 기원전 206년 2월에 항우가 西楚霸王에 등극하여 공이 있는 장수들을 천하에 분봉할 때 먼저 관중을 장악한 이를 關中王으로 삼겠다던 楚懷王의 약속을 저버리고 유방을 巴, 蜀에 봉하여 漢王으로 삼았다. 이어서 관중 지역을 셋으로 나누어 秦의 降將을 분봉하였는데, 章邯은 雍王으로 咸陽 以西 지역에 봉하여 廢丘에 도읍하도록 하고, 司馬欣은 塞王으로 咸陽 以東 지역에 봉하여 櫟陽에 도읍하도록 하고, 董翳는 翟王으로 上郡에 봉하여 高奴에 도읍하도록 하였다.
▶ 法三章 : 三章은 세 조항의 법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벌에 해당시킴을 말하며, 유방이 秦軍을 격파하고 咸陽에 들어가서 지방의 父老와 三章의 법만 약속하고 그 밖의 모든 秦의 악법을 폐지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말한다.
▶ 失職 : 封地와 關中王의 직위를 받지 못했음을 말한다.
▶ 傳檄 : 격문을 돌리다.
八月,漢王舉兵東出陳倉,定三秦。
漢王 원년(기원전 206년) 8월에 漢王이 거병하여 동쪽 陳倉에 나아가 三秦을 평정하였다.
漢二年,出關,收魏、河南,韓、殷王皆降。
漢王 2년에 出關하여 魏와 河南 땅을 점령하니, 韓王과 殷王이 모두 항복하였다.
合齊、趙共擊楚。
齊와 趙가 합세하여 楚를 공격하였다.
四月,至彭城,漢兵敗散而還。
4월에 팽성에 도착하였으나, 漢軍이 패하여 흩어져서 돌아왔다.
信復收兵與漢王會滎陽,復擊破楚京、索之閒,以故楚兵卒不能西。
韓信이 다시 병사를 모아 漢王과 滎陽에서 합류하여 다시 초의 군대를 京과 索 사이에서 격파하매, 楚軍이 마침내 서쪽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漢之敗卻彭城,塞王欣、翟王翳亡漢降楚,齊、趙亦反漢與楚和。
漢이 팽성에서 패해 퇴각하자, 塞王 사마흔과 翟王 동예가 漢에서 도망쳐 초에 항복하니. 齊、趙 또한 漢을 배신하고 楚와 화친하였다.
六月,魏王豹謁歸視親疾,至國,即絕河關反漢,與楚約和。
6월에는 魏王 豹가 漢王을 배알하고, 어머니의 문병을 핑계로 귀국한 뒤, 즉시 河關을 폐쇄하고 漢을 배반하고 楚와 화친을 맺었다.
漢王使酈生說豹,不下。
漢王이 酈生을 시켜 위왕 표를 달랬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其八月,以信為左丞相,擊魏。
그해 8월 漢王이 韓信을 좌승상으로 삼아 魏를 공격하였다.
魏王盛兵蒲阪,塞臨晉,信乃益為疑兵,陳船欲度臨晉,而伏兵從夏陽以木罌缻渡軍,襲安邑。
위왕이 蒲坂에서 군대를 강화하고 臨晉을 막으니, 韓信은 군사를 늘린 것처럼 疑兵을 꾸미고, 배를 전개하여 임진에서 황하를 건너는 듯이 하고, 복병이 夏陽에서 나오자 木罌缻로 군사를 건너게 하여 安邑을 습격하였다.
魏王豹驚,引兵迎信,信遂虜豹,定魏為河東郡。
魏王 豹가 놀라서 군사를 이끌고 韓信을 맞아 싸웠지만, 韓信이 마침내 위왕 표를 사로잡고, 위를 평정하여 河東郡으로 만들었다.
漢王遣張耳與信俱,引兵東,北擊趙、代。
漢王이 張耳를 보내 韓信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진격하여 趙와 代를 치게 하였다.
後九月,破代兵,禽夏說閼與。
그해 윤 9월에 代軍을 격파하고 閼與에서 재상 夏說을 사로잡았다.
信之下魏破代,漢輒使人收其精兵,詣滎陽以距楚。
韓信이 위를 항복시키고 대를 격파하자 漢王이 즉시 사자를 보내 그의 정예병을 이끌고 형양으로 가서 楚와 대치하게 하였다.
信與張耳以兵數萬,欲東下井陘擊趙。
韓信이 張耳와 함께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井陘에서 동쪽으로 내려와 趙를 치려고 하였다.
趙王、成安君陳餘聞漢且襲之也,聚兵井陘口,號稱二十萬。
趙王 歇과 成安君 陳餘는 漢이 곧 습격한다고 듣고 군사를 井陘 어귀에 집결시켰는데, 일컫기를 20만이라고 하였다.
廣武君李左車說成安君曰:
「聞漢將韓信涉西河,虜魏王,禽夏說,新喋血閼與,今乃輔以張耳,議欲下趙,此乘勝而去國遠鬬,其鋒不可當。
廣武君 李左車가 성안군을 설득하였다.
“듣기에 漢將 韓信은 西河를 건너서 위왕 표를 사로잡고, 夏說을 사로잡아, 최근에 閼與를 피로 물들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張耳의 도움을 받아 조를 함락하려고 의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승세를 타고 고국을 떠난 원정으로 그 예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臣聞千里餽糧,士有饑色,樵蘇後爨,師不宿飽。
신이 듣건대 ‘천리 밖에서 군량을 보내면 병사들에게 굶주린 빛이 돌고,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 밥을 지으면 군사들이 오랫동안 배부르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今井陘之道,車不得方軌,騎不得成列,行數百里,其勢糧食必在其後。
지금 井陘의 길은 수레가 竝行할 수 없으며, 기병도 열을 짓지 못하는데 이런 길이 수백 리나 이어지니, 형세상 군량은 필시 그 후방에 있을 터입니다.
願足下假臣奇兵三萬人,從閒道絕其輜重;
足下深溝高壘,堅營勿與戰。
귀하께서 신에게 기병 3만 명을 빌려주십시오.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輜重을 끊을 터이니, 귀하께서는 도랑을 깊게 하고 보루를 높이 어 진영을 굳히며 싸우지 마십시오.
彼前不得鬬,退不得還,吾奇兵絕其後,使野無所掠,不至十日,而兩將之頭可致於戲下。
저들은 전진해서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하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을 때, 우리 奇兵이 그 後尾를 끊고, 들판에서 적이 약탈할 먹거리를 없애면, 열흘도 못 되어서 두 장군의 수급을 휘하에 바칠 수 있습니다.
願君留意臣之計。
군께서는 신의 계책에 유의해주십시오.
否,必為二子所禽矣。」
아니라면, 필시 두 장군에게 사로잡힐 터입니다.”
▶ 定三秦 : 기원전 206년,劉邦이 韓信의 계책을 써서 몰래 陳倉으로 가서 함양의 章邯, 색왕 司馬欣, 척왕 董翳를 항복시켰다.
▶ 關 : 函谷關。
▶ 魏王 豹 : 기원전 205년 유방에 의해 대원수로 임명되어 6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彭城 대전을 치렀으나 漢이 항우에게 크게 패하고 위표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 본국 魏로 돌아가 유방을 배신하고 유방이 보낸 사신 酈食其의 설득도 받아들이지 않다가, 韓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滎陽으로 끌려갔다.<史記 권90 魏豹彭越列傳>
▶ 木罌缻(목앵부) : 나무로 만든 물장군( 배가 불룩하고 목 좁은 아가리가 있는 질그릇 ).
▶ 禽 : 擒과 같다. 사로잡다.
▶ 閼與 : 지금의 山西省 和順의 서쪽.
▶ 기원전 204년에 漢의 韓信이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趙를 공격하니, 趙王 歇과 成安君 陳餘가 이 말을 듣고 대군을 井陘에 집결시켰다.
▶ 張耳, 陳餘 : 진여가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齊王 田榮과 함께 張耳를 공격하자 張耳는 劉邦에게 투항하였고, 진여는 趙王 헐을 도와 趙王으로 세웠으나 전한의 장수 韓信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史記 권89 張耳陳餘列傳>
▶ 井陘 : 河北省 남서부의 현.
▶ 喋血(첩혈) : 피투성이가 되다. 유혈이 낭자하다. 喋:재잘거리다. 피가 흘러내리는 모양
▶ 樵蘇後爨 : 천 리 멀리 양식을 수송해 가면 병사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고, 나무를 하고 풀을 벤 뒤에 밥을 지어서 먹는다면 병사들이 오랫동안 배부르지 못한다.<三略直解 上卷 上略>
나무 섶을 채취함을 ‘樵’라 하고, 풀을 벰을 ‘蘇’라 한다. 爨은 불을 때어 밥을 짓다.
▶ 不得方軌에서 方은 ‘竝行하다’의 뜻이니 수레바퀴를 병행하지 못함. 두 대의 수레가 다니지 못함.
▶ 間道 : 샛길. 지름길.
▶ 輜重 : 군수물자. 여기서는 군량미를 수송함을 말한다.
▶ 深溝高壘 : 깊은 도랑과 높은 보루, 견고한 방어 시설
成安君,儒者也,常稱義兵不用詐謀奇計,曰:
「吾聞兵法十則圍之,倍則戰。
성안군은 儒生이어서 언제나 義兵을 일컬으며 詐謀나 奇計을 쓰지 않았으므로 말하였다.
“내 들으니, 병법에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고 하오.
今韓信兵號數萬,其實不過數千。
지금 韓信의 병력이 수만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천에 지나지 않소.
能千里而襲我,亦已罷極。
천 리를 와서 우리를 공격하니, 벌써 아주 지쳤을 터이오.
今如此避而不擊,後有大者,何以加之!
지금 이러한데 적을 피하고 치지 않고 나중에 大軍이 쳐들어오면, 무엇으로 싸우겠소!
則諸侯謂吾怯,而輕來伐我。」
그렇게 되면 제후가 우리를 겁쟁이로 여기고 쉽게 쳐들어올 터이오.”
不聽廣武君策,廣武君策不用。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 않았으므로, 광무군의 계책은 쓰이지 않았다.
韓信使人閒視,知其不用,還報,則大喜,乃敢引兵遂下。
韓信이 사람을 시켜 염탐하게 하였더니, 광무군의 계책을 쓰지 않음을 알고 돌아와 보고하므로, 크게 기뻐하며 군대를 이끌고 서슴지 않고 井陘의 좁은 길로 내려갔다.
未至井陘口三十里,止舍。
정형 어귀에서 30리 못 미치는 곳에 멈추고 휴식하였다.
夜半傳發,選輕騎二千人,人持一赤幟,從閒道萆山而望趙軍,誡曰:
「趙見我走,必空壁逐我,若疾入趙壁,拔趙幟,立漢赤幟。」
한밤중에 전령을 내리기를, 輕騎兵 2천 명을 선발하고 사람마다 붉은 깃발 한 개씩을 가지고 샛길을 따라가서 산속에 은폐하고, 趙의 군영을 바라보게 하고, 경계하였다.
“趙는 우리가 달아남을 보면 필시 壘壁을 비우고 우리를 쫓을 터이니, 너희는 재빨리 趙의 壘壁에 들어가 趙의 깃발을 뽑아버리고 漢의 붉은 깃발을 세워라.”
令其裨將傳飱,曰:
「今日破趙會食!」
裨將들에게 명하여 주먹밥을 나누어주게 하고 말하였다.
“오늘 조군을 격파하고 회식하겠다!”
諸將皆莫信,詳應曰:
「諾。」
장수들이 모두 믿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응답하였다.
“알겠습니다.”
謂軍吏曰:
「趙已先據便地為壁,且彼未見吾大將旗鼓,未肯擊前行,恐吾至阻險而還。」
軍吏에게 말하였다.
“趙는 유리한 땅을 先占하여 성채를 구축했으며, 또 저들은 우리의 大將旗와 북을 보기 전에는 우리의 선봉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阻險한 곳에 도착하여 돌아가 버릴까 염려할 터이다.”
信乃使萬人先行,出,背水陳。
韓信이 이에 만 명을 먼저 보내되 정형 어귀로 나가서 背水陣을 치게 하였다.
趙軍望見而大笑。
趙軍이 바라보고 크게 비웃었다.
平旦,信建大將之旗鼓,鼓行出井陘口,趙開壁擊之,大戰良久。
새벽에 韓信이 大將의 旗과 북을 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 어귀로 나가니, 趙軍이 壘壁을 열고 공격하였으며, 크게 접전하기 오래되었다.
於是信、張耳詳棄鼓旗,走水上軍。
이때 韓信과 張耳가 거짓으로 북과 깃발을 버리고 강가의 진지로 달아났다.
水上軍開入之,復疾戰。
강가의 진지에서 문을 열어 들이고 다시 격렬하게 싸웠다.
趙果空壁爭漢鼓旗,逐韓信、張耳。
趙는 과연 壘壁을 비워놓고, 漢의 북과 깃발을 다투어 차지하고, 韓信과 張耳를 뒤쫓았다.
韓信、張耳已入水上軍,軍皆殊死戰,不可敗。
韓信과 張耳가 이미 강가의 진지로 들어옴에 군사들이 모두 필사적으로 싸웠으므로 패퇴시키지 못하였다.
信所出奇兵二千騎,共候趙空壁逐利,則馳入趙壁,皆拔趙旗,立漢赤幟二千。
韓信이 보냈던 奇兵 2천 騎는 趙가 壘壁을 비우고 전리품을 쫓음을 엿보아, 趙의 壘壁으로 달려 들어가서 趙의 깃발을 다 뽑아버리고 漢의 붉은 깃발 2천 개를 세웠다.
趙軍已不勝,不能得信等,欲還歸壁,壁皆漢赤幟,而大驚,以為漢皆已得趙王將矣,兵遂亂,遁走,趙將雖斬之,不能禁也。
趙軍이 이기지 못하고 韓信 등을 사로잡지도 못하자, 壘壁으로 돌아가려고 함에, 성벽에 모두 漢의 赤旗가 꽂혀 있자 매우 놀라서 漢이 이미 趙王의 장군을 모두 사로잡았다고 생각하여, 軍이 혼란에 빠져 도망쳐 달아났다. 趙將들이 비록 그들을 참수하였지만 금할 수가 없었다.
於是漢兵夾擊,大破虜趙軍,斬成安君泜水上,禽趙王歇。
이에 漢軍이 협공하여 趙軍를 대파하여 병사를 사로잡았고, 泜水에서 성안군을 斬하고, 趙王 헐을 사로잡았다.
信乃令軍中毋殺廣武君,有能生得者購千金。
韓信이 이에 군중에 명령하기를 廣武君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사로잡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걸겠다고 하였다.
於是有縛廣武君而致戲下者,信乃解其縛,東鄉坐,西鄉對,師事之。
그러자 광무군을 결박해 휘하로 끌고 오는 자가 있었으며, 韓信이 그의 결박을 풀어주고 동쪽을 향해 앉게 한 뒤에, 서쪽을 향해 마주하여 스승으로 모셨다.
諸將效首虜,畢賀,因問信曰:
「兵法右倍山陵,前左水澤,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曰破趙會食,臣等不服。
然竟以勝,此何術也?」
장수들이 首級과 포로를 바치며 賀禮를 마치고 韓信에게 물었다.
“병법에 오른쪽과 뒤에는 산과 언덕을 두고, 앞과 왼쪽에는 물과 못을 두라 하였는데, 이번에 장군께서는 저희에게 오히려 배수진 명령하시고, 조를 격파하고 회식하자고 말씀하셨으니, 저희는 心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겼으니 이것은 어떤 전술입니까?”
信曰:
「此在兵法,顧諸君不察耳。
韓信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병법에 있는 것인데 단지 그대들이 살피지 못하였을 뿐이오.
兵法不曰 『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
병법에서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고, 망할 땅에 놓인 뒤에야 보존된다.’라고 말하지 않았소?
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此所謂『驅市人而戰之』,其勢非置之死地,使人人自為戰;
今予之生地,皆走,寧尚可得而用之乎!」
또 내가 평소 어루만지고 따르게 하여 얻은 병사가 아니니, 이른바 ‘시장 사람을 몰아다가 싸우게 함’이오. 형세상 그들을 死地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해 싸우도록 하지 않고, 生地에 두어 모두 달아났으면, 어찌 그들을 쓸 수 있었겠소!”
諸將皆服曰:
「善。
非臣所及也。」
장수들이 모두 탄복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저희가 미칠 바가 아닙니다.”
▶ 十則圍之,倍則戰 : 우리 군대가 적보다 10배가 많으면 4면에서 완전히 포위하여 적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우리 군대가 적보다 갑절이 많으면 나누어 두 부대로 만들어서, 한 부대는 적의 전면을 막고 한 부대는 적의 후면을 충돌하며, 혹은 왼쪽에서 습격하고 혹은 오른쪽에서 엄습하는 것이다. <손자병법: 孫子·謀攻>
▶ 罷 : 疲와 통하여 고달프다. 지치다.
▶ 閒視 : = 間視. 엿보다. 몰래 엿듣다.
▶ 萆(비) : 蔽와 통하여 은폐하다.
▶ 空壁 : 전군이 진영을 떠나다.
▶ 裨將 : 副將.
▶ 今日破趙會食 : 오늘 趙軍을 격파하고 회식하겠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을 쉽게 성취하려는 의욕을 과시하는 말이다.
▶ 詳 : 假裝。거짓.
▶ 殊死 : 1.목을 베어 죽임. 2.어떤 뜻을 이루기 爲하여 죽음을 覺悟함.
▶ 陳 : 陣과 같다.
▶ 背水陣 : 물을 등지고 陣을 친다는 뜻으로, 물러설 곳이 없으니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韓信이 강을 등지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서지 못하고 힘을 다해 싸우게 해서 趙의 군사를 물리친 데서 유래하였다.
▶ 平旦 : 새벽, 동이 틀 때.
▶ 逐利 : 전리품을 쫓다.
▶ 遁走 : 도망쳐 달아남.
▶ 廣武君 : 趙의 謀士 李左車. 名將 李牧의 손자이며, 조헐을 보좌해 趙王으로 옹립하고 광무군에 봉해졌다.
▶ 購 : 현상금을 걸고 구하다.
▶ 東鄉坐,西鄉對,師事之. : 東向하여 앉혀 스승으로 섬긴다는 뜻으로, 고대에는 동쪽을 上方, 尊位로 여겼으므로 스승을 높여 받듦을 이른다. 鄕은 向과 같다.
▶ 效 : 바치다.
▶ 首虜 : 싸움터에서 베어 얻은 적의 머리와 포로.
▶ 右倍山陵, 前左水澤 : 오른쪽과 뒤에는 산과 구릉을 두고 앞과 왼쪽에는 水澤을 두는 것으로, 병법에서 전투할 때 선택하는 기본적인 지형이다. <孫子·行軍篇>
▶ 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 : 死地에 빠진 뒤에 살고 망할 땅에 놓인 뒤에 보존된다는 뜻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하여 필사의 각오를 다져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이른다. <投之亡地然後存,陷之死地然後生.><孫子·九地篇>
▶ 素 : 평소.
▶ 拊循 : 어루만져 따르게 하다. 즉, 평소에 훈련시켜 지휘에 따르게 한다는 뜻.
▶ 士大夫 : 여기서는 일반 장수와 병사를 말한다.
於是信問廣武君曰:
「仆欲北攻燕,東伐齊,何若而有功?」
이에 韓信이 광무군에게 물었다.
“제가 북쪽으로 연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제를 정벌하려는데, 어떻게 하여 공을 세우겠습니까?”
廣武君辭謝曰:
「臣聞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
今臣敗亡之虜,何足以權大事乎!」
광무군이 사양하였다.
“신이 듣건대 ‘패배한 군대의 장수는 용맹에 관하여 말해서는 안 되고, 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보존하는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은 패망한 나라의 포로인데 어찌 큰일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信曰:
「仆聞之,百里奚居虞而虞亡,在秦而秦霸,非愚於虞而智於秦也,用與不用,聽與不聽也。
韓信이 말하였다.
“제가 알기로는, 百里奚가 虞에 있을 때 우가 망하였고, 秦에 있을 때 秦이 覇者가 되었으나, 백리해가 우에 있을 때는 어리석었다가 秦에 있을 때는 지혜로웠기 때문이 아니며, 등용함과 등용하지 않음, 의견을 좇음과 좇지 않음 때문입니다.
誠令成安君聽足下計,若信者亦已為禽矣。
만약 성안군이 선생의 계책을 따랐더라면 저와 같은 사람은 벌써 사로잡혔을 터입니다.
以不用足下,故信得侍耳。」
선생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因固問曰:
「仆委心歸計,願足下勿辭。」
고집스레 부탁하였다.
“제가 마음을 맡겨 선생의 계책을 따르려 하니, 선생은 사양하지 마십시오.”
廣武君曰:
「臣聞智者千慮,必有一失;
愚者千慮,必有一得。
광무군이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지혜로운 자도 천 번 생각하여 한 번 실수할 때가 있고, 어리석은 자도 천 번 생각하다가 한 번은 적중할 때가 있다.’라고 합니다.
故曰 『狂夫之言,聖人擇焉』。
그래서 ‘미치광이의 말도 聖人은 채택한다.’라고 합니다.
顧恐臣計未必足用,願效愚忠。
신의 계책이 아마 꼭 쓰이지는 못하겠지만, 나름의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夫成安君有百戰百勝之計,一旦而失之,軍敗鄗下,身死泜上。
무릇 成安君에게 백전백승의 계책이 있었는데도, 하루아침에 실수를 범하여 군대가 鄗에서 격파되고 자신은 泜水에서 죽었습니다.
今將軍涉西河,虜魏王,禽夏說閼與,一舉而下井陘,不終朝破趙二十萬眾,誅成安君。
그리하여 장군께서는 서하를 건너 위왕 표를 사로잡았고, 하열을 알여에서 사로잡으며, 단번에 정형을 내려와서 아침나절에 趙軍 20만을 깨뜨리고, 성안군을 죽였습니다.
名聞海內,威震天下,農夫莫不輟耕釋耒,褕衣甘食,傾耳以待命者。
명성이 세상에 퍼지고 위엄을 천하에 떨치니, 농부들이 농사를 멈추고 쟁기를 내려놓은 채 아름다운 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귀를 기울여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若此,將軍之所長也。
이와 같은 것은 장군의 장점입니다.
然而眾勞卒罷,其實難用。
그러나 백성은 피로하고 병졸들은 지쳐서 실로 쓰기 어렵습니다.
今將軍欲舉倦獘之兵,頓之燕堅城之下,欲戰恐久力不能拔,情見勢屈,曠日糧竭,而弱燕不服,齊必距境以自彊也。
지금 장군께서는 지치고 피폐한 군사를 동원하여 갑자기 연나라의 견고한 성으로 쳐들어가려 하지만, 싸우려고 해도 오래 걸리고 힘은 함락할 수 없으며, 실정을 보이고 기세가 꺾여 허송세월하다가 군량미가 바닥나서, 약한 연이 항복하지 않으면 제는 반드시 국경에서 버티며 자신을 강화할 터입니다.
燕齊相持而不下,則劉項之權未有所分也。
燕과 齊가 서로 버티며 항복하지 않으면, 劉氏와 項氏의 권위는 구분되지 않겠습니다.
若此者,將軍所短也。
이와 같은 것은 장군의 단점입니다.
臣愚,竊以為亦過矣。
신은 어리석지만, 삼가 燕과 齊를 공격함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故善用兵者不以短擊長,而以長擊短。」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단점으로 적의 장점을 치지 않고, 장점으로 적의 단점을 치기 때문입니다.”
韓信曰:
「然則何由?」
韓信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습니까?”
廣武君對曰:
「方今為將軍計,莫如案甲休兵,鎮趙撫其孤,百里之內,牛酒日至,以饗士大夫醳兵,北首燕路,而後遣辯士奉咫尺之書,暴其所長於燕,燕必不敢不聽從。
광무군이 대답하였다.
“지금 장군을 위한 계책은 싸움을 멈추고 군대를 휴식시키며, 趙를 진정시키고 전쟁고아들을 어루만지며, 1백리 안의 땅에서 쇠고기와 술을 날마다 조달하여 사대부들을 대접하고 군사들에게 술을 먹인 뒤, 북쪽 燕으로 가는 길을 향하면서, 辯士를 보내되 짧은 편지를 받들게 하여 장군의 장점을 燕에 알린다면 연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燕已從,使諠言者東告齊,齊必從風而服,雖有智者,亦不知為齊計矣。
연이 聽從하고 나면 변사를 동쪽으로 보내 齊에 알리면, 제는 필시 소문만 듣고도 복종할 터이며, 비록 슬기로운 자가 있더라도 제를 위한 계책을 알지 못할 터입니다.
如是,則天下事皆可圖也。
이렇게만 한다면 천하의 일을 다 도모할 수 있습니다.
兵固有先聲而後實者,此之謂也。」
병법에 固有한 ‘먼저 소리를 높이고 뒤에 실행함’은 이것을 말합니다.”
▶ 仆 : 저. 소인. 자기를 낮추어 말함.
▶ 何若 : 어떻게.
▶ 辭謝 : 완곡한 말로 사과하다.
▶ 敗軍之將,不可以言勇 : 싸움에 진 장수는 용맹을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한 사람은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구하게 변명하지 않는다는 말.
▶ 權 : 권력. 여기서는 협의함을 말한다.
▶ 百里奚 : 虞나라 출신으로 자는 井伯이며 宛 사람이다. 우나라가 멸망하자 唐晉의 포로가 되어 소를 길렀으며 秦穆公은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는 양가죽 다섯 장으로 그의 몸값을 치르고 데려와서 재상으로 삼았다.<사기 권5 진본기>
▶ 誠 : 만약.
▶ 委心歸計 : 마음을 기울이고 들어 계책을 따르다.
▶ 智者千慮,必有一失 : =千慮一失. 현인도 많은 생각 중 한 가지쯤은 잘못된 것이 있음.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 속에는 간혹 쓸 만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 愚忠 : 맹목적인 충성.
▶ 輟耕 : 경작하던 손을 멈추다. 농사를 그만두다.
▶ 釋耒 : 쟁기를 내려놓다. 耒는 쟁기.
▶ 褕衣 : 아름다운 옷.
▶ 甘食 : 음식을 맛있게 먹음.
▶ 情見勢屈 : 사실이 폭로되어 힘을 잃다 見은 現과 같아 드러내다.
▶ 曠日 : 허송세월하다.
▶ 案甲休兵 : 전쟁을 멈추다. 군대를 주둔하여 병사들을 쉬게 한다는 뜻. 甲은 갑옷. 兵은 무기.
▶ 饗 : 향응을 베풀다. 잔치를 베풀어 손님을 초대하다.
▶ 醳兵 : 술과 음식으로 병사를 위로하다. 醳은 술에 취하다.
▶ 首 : 향하다.
▶ 咫尺之書 : 짧은 편지. 8寸을 咫라 하니, 咫尺은 편지의 길이를 말한다.
▶ 諠言者 : 辯士. 말솜씨가 아주 능란한 자. 諠(훤): 떠들썩하다
韓信曰:
「善。」
韓信이 말하였다.
“좋소.”
從其策,發使使燕,燕從風而靡。
그의 계책을 따라 사자를 燕에 보내니 연은 바람에 휩쓸리듯 하였다.
乃遣使報漢,因請立張耳為趙王,以鎮撫其國。
이에 사자를 보내 漢에 보고하고, 이로 인하여 張耳를 세워 趙王으로 삼아 그 나라를 진무하자고 奏請하였다.
漢王許之,乃立張耳為趙王。
漢王이 허락하고 張耳를 세워 趙王으로 삼았다.
▶ 從風而靡 : 靡는 따르는 것이고 눕는 것으로, 동쪽에서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져 서쪽으로 눕고, 서쪽에서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져 동쪽으로 누워, 바람이 부는 대로 풀이 쓰러지는 것을 말한다. 즉, 항복하는 것을 말함이다.
▶ 鎮撫 : 난리를 평정하고 민심을 가라앉히다.
楚數使奇兵渡河擊趙,趙王耳、韓信往來救趙,因行定趙城邑,發兵詣漢。
楚가 자주 奇兵을 보내어 황하를 건너 趙를 공격하니, 趙王 張耳와 韓信이 오가면서 趙를 구원했으며, 그 기회에 가는 곳마다 趙의 성읍을 안정시켰으며, 병사를 징발하여 漢으로 보냈다.
楚方急圍漢王於滎陽,漢王南出,之宛、葉閒,得黥布,走入成皋,楚又復急圍之。
楚가 급습하여 漢王을 형양에서 포위함에, 漢王이 남쪽으로 탈출하여 宛·葉의 사이로 가서 黥布를 만나고 成皐로 달려 들어가니, 楚가 또다시 成皋를 급습하고 포위하였다.
六月,漢王出成皋,東渡河,獨與滕公俱,從張耳軍修武。
漢王 3년 6월에 漢王이 成皋에서 도망쳐 나와 동쪽으로 황하를 건너서 오직 滕公과 함께 張耳의 軍士를 따라 修武로 갔다.
至,宿傳舍。
수무에 도착하여 驛館에서 묵었다.
晨自稱漢使,馳入趙壁。
새벽에 漢의 사자라고 칭하면서 말을 달려 趙의 성벽으로 들어갔다.
張耳、韓信未起,即其臥內上奪其印符,以麾召諸將,易置之。
장이와 韓信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의 침실로 들어가서 왕이 그들의 인수와 부절을 빼앗고 大將旗를 가지고 장군들을 소집하고 배치를 바꾸었다.
信、耳起,乃知漢王來,大驚。
韓信과 張耳가 일어나서 漢王이 왔음을 알고 매우 놀랐다.
漢王奪兩人軍,即令張耳備守趙地。
漢王이 두 사람의 군대를 빼앗아 張耳에게 명령하여 조 땅을 지키게 하였다.
拜韓信為相國,收趙兵未發者擊齊。
韓信을 相國에 임명하고, 趙軍에 아직도 징발되지 않은 자를 거두어 齊를 공격하였다.
信引兵東,未渡平原,聞漢王使酈食其已說下齊,韓信欲止。
韓信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進軍하다가 아직 平原津을 건너기 전인데, 漢王이 酈食其를 보내어 설득하여 이미 齊의 항복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으므로, 韓信은 멈추려고 하였다.
范陽辯士蒯通說信曰:
「將軍受詔擊齊,而漢獨發閒使下齊,寧有詔止將軍乎?
何以得毋行也!
且酈生一士,伏軾掉三寸之舌,下齊七十餘城,將軍將數萬眾,歲餘乃下趙五十餘,為將數歲,反不如一豎儒之功乎?」
이때 范陽의 辯士 蒯通이 韓信을 설득하였다.
“장군이 왕의 조서를 받고 제를 공격함에, 漢王이 홀로 밀사를 보내 제를 항복시켰으나, 조서로 장군을 멈추게 함이 있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진군하지 않겠습니까?
또 酈生은 일개 변사로 수레에 기대어 세 치 혀를 놀려서, 齊의 70여 성을 항복시켰는데 장군께서는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1년여 동안에 겨우 趙의 50여 성을 항복시켰을 뿐입니다.
장군이 되신 지 여러 해인데, 도리어 일개 풋내기 儒者의 공보다도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於是信然之,從其計,遂渡河。
이에 韓信이 옳다고 여기고 그의 계책에 따라서 마침내 황하를 건넜다.
齊已聽酈生,即留縱酒,罷備漢守御。
齊는 이미 酈生을 청종하였으므로, 그를 머물게 하고 주연을 벌이며, 漢에 대비한 수비를 罷하고 있었다.
信因襲齊歷下軍,遂至臨菑。
韓信이 이 틈에 齊의 歷下軍을 습격하고, 마침내 臨菑에 이르렀다.
齊王田廣以酈生賣己,乃亨之,而走高密,使使之楚請救。
齊王 田廣은 酈生이 자기를 팔았다고 여겨 삶아 죽이고, 高密로 달아나서 楚에 사자를 보내서 구원을 청하였다.
韓信已定臨菑,遂東追廣至高密西。
韓信은 임치를 평정하고 이어 전광을 동쪽으로 추격하여 고밀 서쪽에 이르렀다.
楚亦使龍且將,號稱二十萬,救齊。
楚도 龍且를 장군으로 삼아 20만 대군이라 칭하며 제를 구원하였다.
▶ 奇兵 : 적을 기습하는 군대.
▶ 行定 : 趙를 구원하는 도중에 백성을 안정시키다.
▶ 黥布 : 楚를 배반한 경포가 군대를 일으켜 楚를 치자, 楚將 龍且가 경포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경포가 漢으로 도망갔는데 楚의 項伯이 구강의 군사를 다 거두어들이고 경포의 처자도 죽이자 마침내 경포가 자신의 무리를 수습하여 漢에 귀순하였다.
▶ 成臯 : 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지형이 험고하여 전략적으로 요충지였다.
▶ 滕公 : 夏侯嬰. 前漢 高祖의 개국공신.
▶ 傳舍 : 驛館.
▶ 蒯通 : 漢의 劉邦과 楚의 項羽가 천하를 다투던 시절 韓信의 策士로 본명은 蒯徹이다.
▶ 獨 : 단지. 오직.
▶ 閒使 : =間使. 密使.
▶ 酈食其 : 秦 말기 劉邦의 참모이자 세객. 유방을 도와 齊를 달래어 70여 성을 항복하도록 하였다. 이름은 食其(이기)이며, 酈生이라고도 불린다.
▶ 伏軾 : 수레에 기댐. 伏은 기대는 것이고, 軾은 수레 앞턱의 횡목
▶ 三寸之舌 : 세 치의 혀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른다.
▶ 豎儒 : 풋내기 儒者. 식견이 없는 유생.
▶ 罷 : 중지하다.
▶ 守御 : 방어하다. 수비하다.
▶ 亨 : 烹과 같다. 삶다.
齊王廣、龍且并軍與信戰,未合。
齊王 田廣과 龍且가 군사를 합하여 韓信과 싸움에, 아직 교전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용저를 설득하였다.
人或說龍且曰:
「漢兵遠鬬窮戰,其鋒不可當。
“漢軍은 멀리 와서 사력을 다해 싸우니 그 예봉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齊、楚自居其地戰,兵易敗散。
제와 초는 자기 땅에서 싸우기 때문에 병사들이 패하여 흩어지기 쉽습니다.
不如深壁,令齊王使其信臣招所亡城,亡城聞其王在,楚來救,必反漢。
성벽을 굳게 하고 齊王에게 심복을 보내어 齊가 잃어버린 성을 招降함이 낫겠습니다. 齊가 잃은 성에서는 자기 왕이 건재하고 楚가 구원하러 왔음을 알면 틀림없이 漢을 배반할 터입니다.
漢兵二千里客居,齊城皆反之,其勢無所得食,可無戰而降也。」
漢軍은 2천 리 객지에 있어서 齊의 城들이 모두 배반하면 형세상 식량을 얻을 방법이 없으니,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겠습니다.”
龍且曰:
용저가 말하였다.
「吾平生知韓信為人,易與耳。
“내 평소 韓信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데, 상대하기가 쉽다.
且夫救齊不戰而降之,吾何功?
齊를 구원함에 싸우지 않고 韓信을 항복시킨다면 내게 무슨 공이 있겠는가?
今戰而勝之,齊之半可得,何為止!」
그러나 싸워서 승리하면 齊의 절반은 얻을 수 있으니 어찌 멈추겠는가!”
遂戰,與信夾濰水陳。
그리하여 싸우려고 韓信과 濰水를 끼고 진을 쳤다.
韓信乃夜令人為萬餘囊,滿盛沙,壅水上流,引軍半渡,擊龍且,詳不勝,還走。
韓信이 밤에 사람을 시켜 만여 개의 주머니를 만들어 모래를 가득 채워서 유수의 상류를 막게 하고, 군대를 이끌고 반쯤 건너가서 용저를 공격하다가 거짓으로 못 이기는 척하고 돌아서서 달아났다.
龍且果喜曰:
「固知信怯也。」
용저가 과연 기뻐하였다.
“원래 韓信이 겁쟁이임을 알고 있었다.”
遂追信渡水。
韓信을 뒤쫓아서 濰水를 건너기 시작하였다.
信使人決壅囊,水大至。
韓信이 사람을 보내어 막았던 모래주머니를 터니 물이 크게 쏟아져 내려왔다.
龍且軍大半不得渡,即急擊,殺龍且。
용저의 군사는 태반이 건너지 못하였고, 韓信이 급히 공격하여 용저를 죽였다.
龍且水東軍散走,齊王廣亡去。
용저의 유수 동쪽에 남아 있던 군사들은 흩어져 달아나고 제왕 전광도 도망하였다.
信遂追北至城陽,皆虜楚卒。
韓信은 달아나는 적을 뒤쫓아 城陽에 이르러 초의 군사를 모두 사로잡았다.
▶ 田廣 : ? ~ 기원전 204년. 초한전쟁기 齊의 왕이다. 전국 시대 齊의 왕족이자, 제왕 齊王 田榮의 아들이다.
▶ 龍且 : 楚 項羽의 막하 장수.
▶ 未合 : 아직 교전하지 않다.
▶ 窮戰 : 전력을 다하는 전투.
▶ 濰水 : 琅邪郡 箕屋山 동북쪽에서 나와 臺昌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 追北 :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漢四年,遂皆降平齊。
漢王 4년(기원전 203년), 마침내 齊를 모두 항복시켜 평정하였다.
使人言漢王曰:
「齊偽詐多變,反覆之國也,南邊楚,不為假王以鎮之,其勢不定。
願為假王便。」
韓信이 사람을 보내 漢王에게 말하였다.
“齊는 거짓과 속임수가 많고 변화가 많아 자주 번복하는 나라이며, 남쪽으로는 楚와 변경을 이루니, 임시 왕을 세워서 鎭定하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지 않겠습니다.
신을 임시 왕으로 삼아주시면 편하겠습니다.”
當是時,楚方急圍漢王於滎陽,韓信使者至,發書,漢王大怒,罵曰:
「吾困於此,旦暮望若來佐我,乃欲自立為王!」
이때 楚가 막 형양에서 漢王을 긴급히 포위하고 있었으므로, 韓信의 사자가 옴에 편지를 보더니, 漢王이 크게 성을 내며 꾸짖었다.
“내가 여기서 곤경에 빠져 아침저녁으로 네가 와서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는데, 스스로 왕이 된단 말인가!”
張良、陳平躡漢王足,因附耳語曰:
「漢方不利,寧能禁信之王乎?
不如因而立,善遇之,使自為守。
不然,變生。」
張良과 陳平이 漢王의 발을 밟고 인하여 귓가에 대고 말하였다.
“漢은 지금 불리하오니 어찌 韓信이 왕이 됨을 금할 수 있습니까?
이 기회에 왕으로 세우고 잘 대우하여, 스스로 齊를 지키게 함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란이 생기겠습니다.”
漢王亦悟,因復罵曰:
「大丈夫定諸侯,即為真王耳,何以假為!」
漢王도 깨닫고, 인하여 다시 꾸짖으며 말하였다.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어찌 임시로 된다는 말이냐!”
乃遣張良往立信為齊王,徵其兵擊楚。
그리고는 장량을 보내어 韓信을 齊王으로 세우고 그의 군대를 징발하여 楚를 공격하였다.
楚已亡龍且,項王恐,使盱眙人武涉往說齊王信曰:
「天下共苦秦久矣,相與力擊秦。
楚가 龍且을 잃자, 項王은 두려워하여 盱眙 출신 武涉을 齊王 韓信에게 보내어 설득하였다.
“천하가 함께 秦에 시달린 지 오래되어 서로 힘을 합하여 진을 공격하였습니다.
秦已破,計功割地,分土而王之,以休士卒。
진이 무너지매,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고 나눈 땅에 왕을 봉해 병사들을 쉬게 하였습니다.
今漢王復興兵而東,侵人之分,奪人之地,已破三秦,引兵出關,收諸侯之兵以東擊楚,其意非盡吞天下者不休,其不知厭足如是甚也。
그런데 漢王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東進하여 남의 땅을 침범하여 땅을 빼앗았으며, 이미 三秦을 깨뜨리고 군대를 이끌고 출관하여 제후의 군대를 거두어 동쪽으로 楚를 공격하고 있으니, 그의 뜻은 천하를 삼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터이니, 그가 만족할 줄 모름이 이렇게 심합니다.
且漢王不可必,身居項王掌握中數矣,項王憐而活之,然得脫,輒倍約,復擊項王,其不可親信如此。
또 漢王은 기필하지 못할 자로, 몸이 項王의 손에 있음이 여러 번임에도, 項王이 가엾게 여겨 살려주었으나, 위기를 벗어나면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다시 項王을 공격했으니, 그를 親信할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今足下雖自以與漢王為厚交,為之盡力用兵,終為之所禽矣。
그런데도 족하께서는 비록 자신이 漢王과 깊은 교제라고 여기고 그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용병하지만, 끝내는 그에게 포로가 되고 말 터입니다.
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以項王尚存也。
족하께서 잠시 現今에 이르럴 수 있음은 項王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當今二王之事,權在足下。
지금 두 왕의 일에서 저울추는 족하에게 있습니다.
足下右投則漢王勝,左投則項王勝。
족하께서 추를 오른쪽으로 옮기면 漢王이 이기고, 왼쪽으로 옮기면 項王이 이깁니다.
項王今日亡,則次取足下。
項王이 오늘 망하면 다음에는 족하를 없앨 터입니다.
足下與項王有故,何不反漢與楚連和,參分天下王之?
족하는 項王과 옛 교분이 있으신데, 왜 漢을 배반하고 楚와 연합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왕이 되지 않으십니까?
今釋此時,而自必於漢以擊楚,且為智者固若此乎!」
그런데도 이 기회를 놓치고, 기어이 漢에 자신을 맡겨 楚를 치고자 하니, 지혜로운 자가 진실로 이렇게 하겠습니까!”
韓信謝曰:
韓信이 거절하였다.
「臣事項王,官不過郎中,位不過執戟,言不聽,畫不用,故倍楚而歸漢。
“제가 項王을 섬김에, 벼슬은 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도 창잡이에 불과했으며, 말을 해도 청종하지 않고, 계책도 채용하지 않았으므로 楚를 배반하고 漢에 귀순하였습니다.
漢王授我上將軍印,予我數萬眾,解衣衣我,推食食我,言聽計用,故吾得以至於此。
漢王은 나에게 上將軍의 印綬를 주었고, 나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었으며,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혀주었고, 밥을 밀어서 나에게 먹였으며, 말은 청종하고 계책은 채용하였으므로, 내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夫人深親信我,我倍之不祥,雖死不易。
대저 남이 깊이 나를 親信하는데 내가 배반함은 상서롭지 못하니, 비록 죽을지라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幸為信謝項王!」
나를 위하여 項王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기 바라오!”
武涉已去,齊人蒯通知天下權在韓信,欲為奇策而感動之,以相人說韓信曰:
「仆嘗受相人之術。」
武涉이 떠난 후 齊 사람 蒯通이 천하의 권력이 韓信에게 있음을 알고, 기이한 계책으로 감동시키고 싶어서, 관상으로 韓信을 설득하였다.
“제가 관상의 기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韓信曰:
「先生相人何如?」
韓信이 말하였다.
“선생이 관상술은 어떤 것입니까?”
對曰:
「貴賤在於骨法,憂喜在於容色,成敗在於決斷,以此參之,萬不失一。」
괴통이 대답하였다.
“貴賤은 골상에 달려 있고, 걱정과 기쁨은 얼굴색에 달려 있으며, 成敗는 결단에 달려 있으니, 이것을 참고하면 만의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韓信曰:
「善。
先生相寡人何如?」
韓信이 말하였다.
“좋소.
선생이 과인의 관상을 보니 어떠하오?”
對曰:
「願少閒。」
대답하였다. “잠시 사람들을 물리쳐주십시오.”
信曰:
「左右去矣。」
韓信이 말하였다.
“측근은 물러가라.”
通曰:
「相君之面,不過封侯,又危不安。
相君之背,貴乃不可言。」
괴통이 말하였다.
“장군의 얼굴을 보면 제후의 상에 불과하며, 게다가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장군의 등을 보면 귀하기가 형언할 수 없습니다.”
韓信曰:
「何謂也?」
韓信이 말하였다.
“무엇을 말하오?”
▶ 假王 : 임시 왕. 왕의 임시 대리인.
▶ 發書 : 편지를 열어보다.
▶ 附耳語 : 남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는 말.
▶ 變生 : 變故가 발생함. 韓信이 漢을 배반함을 말한다.
▶ 武涉 : 秦 말기의 策士. 東海郡 盱台 출신으로 항우를 섬겼으며, 초한전쟁시 항우의 명령을 받고 괴철보다 앞서서 천하삼분지계를 주장하며 韓信이 독립하도록 유혹하여 이이제이로 유방과 韓信을 모두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다.
▶ 厭足 : 만족하다.
▶ 必 : 신임하다. 서로 믿다.
▶ 倍 : 파기하다. 배반하여 버리다.
▶ 厚交 : 두터운 교제.
▶ 須臾 : 잠시. 얼마 안 있어.
▶ 權 : 저울추.
▶ 執戟 : 창잡이. 郎中은 숙직하며 창을 잡고 지키는 직책이다.
▶ 畫 : 계책.
▶ 解衣衣我,推食食我 : 解衣推食. 推食解衣라고도 한다. 옷을 벗어 주고 밥을 나누어 준다는 뜻으로, 남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推食食我 중에 뒤의 食는 飼로 읽는다.
▶ 言聽計用 : 남의 計策을 깊이 믿어서 그를 따라 하자는 대로 함.
▶ 幸 : 희망하다.
▶ 蒯通 : 韓信의 策士로 본명은 蒯徹이다
▶ 奇策 : 기이한 계책.
▶ 仆 : 저. 소인. 자기를 낮추어 말함.
▶ 相人 : 관상가.
▶ 骨法 : 骨相. 골격.
▶ 參 : 참고하다. 고찰하다.
▶ 願少閒 : 잠시 주위의 사람을 물리치다. 閒은 間. 틈. 기회.
▶ 相君之面 : 韓信이 漢王을 바라보고 있음을 말한다.
▶ 相君之背 : 漢王을 배반함을 말한다. 즉, 漢王을 배반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蒯通曰:
「天下初發難也,俊雄豪桀建號壹呼,天下之士雲合霧集,魚鱗襍遝,熛至風起。
괴통이 말하였다.
“천하가 처음 병란을 일으켰을 때는, 영웅호걸이 名號를 建立하고 한번 소리치자, 천하의 선비들이 구름과 안개처럼 몰려들고 물고기 비늘처럼 북적거리고 불똥처럼 이르고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當此之時,憂在亡秦而已。
당시에는 걱정은 秦을 멸망시킴뿐이었습니다.
今楚漢分爭,使天下無罪之人肝膽涂地,父子暴骸骨於中野,不可勝數。
그런데 楚와 漢으로 나뉘어 다투자, 천하의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를 땅에 바르고, 父子의 해골이 들판에 버려짐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楚人起彭城,轉鬬逐北,至於滎陽,乘利席卷,威震天下。
楚 사람 항우가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서 전투하며 적을 쫓다가 滎陽에 이르러, 승세를 타고 席卷하자 위세가 천하를 진동하였습니다.
然兵困於京、索之閒,迫西山而不能進者,三年於此矣。
그러나 군사가 京과 索 사이에서 곤경에 빠지고 西山에 다다라서 전진할 수 없음이 지금까지 3년이 됩니다.
漢王將數十萬之眾,距鞏、雒,阻山河之險,一日數戰,無尺寸之功,折北不救,敗滎陽,傷成皋,遂走宛、葉之閒,此所謂智勇俱困者也。
漢王은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鞏과 雒 사이에서 항거하며, 山河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하루에 몇 차례 싸웠지만 조그만 공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挫折하고 敗北해도 救援이 없어 형양에서 패하였고, 成皋에서 군사를 잃었고, 마침내 宛과 葉 사이로 달아났으니. 이것이 이른바 ‘지혜로운 자와 용맹한 자가 함께 곤란함’입니다.
夫銳氣挫於險塞,而糧食竭於內府,百姓罷極怨望,容容無所倚。
무릇 날카로운 기세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 양식은 창고에서 바닥나고, 백성은 피폐함이 극심하여 원망하니 민심이 동요되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以臣料之,其勢非天下之賢聖固不能息天下之禍。
제가 생각하기에, 그 형세상 천하의 성현이 아니면 진실로 천하의 재앙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當今兩主之命縣於足下。
지금 두 군주의 운명은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足下為漢則漢勝,與楚則楚勝。
족하께서 漢을 위하면 漢이 이기고, 楚와 동맹하면 楚가 이길 터입니다.
臣願披腹心,輸肝膽,效愚計,恐足下不能用也。
신은 속마음을 터놓고 간과 쓸개를 쏟아 어리석은 계책을 바치려 하지만, 족하께서 채용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誠能聽臣之計,莫若兩利而俱存之,參分天下,鼎足而居,其勢莫敢先動。
진실로 족하께서 저의 계책을 청종하시면, 양측을 이롭게 하고 존속시키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의 다리처럼 버티면, 그 형세상 감히 먼저 움직이는 자가 없겠습니다.
夫以足下之賢聖,有甲兵之眾,據彊齊,從燕、趙,出空虛之地而制其後,因民之欲,西鄉為百姓請命,則天下風走而響應矣,孰敢不聽!
현명한 족하께서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齊를 점거하여 燕、趙를 따르게 하고, 주인이 없는 땅으로 나아가 한과 초의 후방을 제압하고, 백성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진격해서 백성을 위하여 聽命하면, 천하가 바람처럼 달려와서 메아리처럼 호응할 터이니, 누가 감히 족하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邦大弱彊,以立諸侯,諸侯已立,天下服聽而歸德於齊。
큰 나라는 分封하고 강한 나라를 약화함으로써 제후를 세우시매, 제후를 세우고 나면 천하가 복종하며 은덕을 齊에 돌릴 터입니다.
案齊之故,有膠、泗之地,懷諸侯以德,深拱揖讓,則天下之君王相率而朝於齊矣。
齊의 本然을 감안하여 膠와 泗의 땅을 보유하고, 덕으로써 제후를 따르게 하고 팔짱을 끼고 편안히 있으면서 揖讓하면, 천하의 군왕이 서로 백성을 거느리고 齊에 입조할 터입니다.
蓋聞天與弗取,反受其咎;
時至不行,反受其殃。
대체로 듣건대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때가 왔을 때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願足下孰慮之。」
족하께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魚鱗雜遝 : =魚鱗雜沓. 물고기의 비늘처럼 빽빽함. 魚鱗은 물고기의 비늘. 雜沓은 북적거림. 빽빽함.
▶ 熛 : 불꽃. 불똥.
▶ 尺寸 : 적고 사소한 것.
▶ 折北 : 패배하다. 折은 좌절.
▶ 內府 : 창고. 곳간.
▶ 容容 : 동요하다.
▶ 輸 : 헌납하다.
▶ 鼎足而居 : 三足鼎立. 세 나라가 세력 균형을 이루면서 대립하다.
▶ 西鄉 : 서쪽으로 진격해 두 나라가 전쟁을 끝내게 하다. 鄉은 向과 같다.
▶ 請命 : 1. (남을 대신하여) 살려 달라고 빌다. 2. 下命을 청하다. (=请示)
▶ 邦大弱彊 : 큰 나라를 나누고 강한 나라를 약하게 하다.
▶ 深拱 : 敛手安居,无为而治。팔짱을 끼고 편안히 거처함
▶ 揖讓 ; 읍하며 사양함. 謙讓의 표시.
▶ 蓋聞 : 듣는 바로는. 듣건대 ~이라 한다.
▶ 天與弗取,反受其咎 :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행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
※ 때를 얻으면 태만하지 말라. 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하늘이 주는데도 이를 받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재앙이 된다. (得時無怠,時不再來,天予不取,反為之災.) 범려가 월왕 구천에게 간한 말<國語·越語>
韓信曰:
「漢王遇我甚厚,載我以其車,衣我以其衣,食我以其食。
吾聞之,乘人之車者載人之患,衣人之衣者懷人之憂,食人之食者死人之事,吾豈可以鄉利倍義乎!」
韓信이 말하였다.
“漢王이 나를 대우함이 아주 후하여, 그의 수레로 나를 태웠고, 그의 옷으로 나를 입혀주며, 그의 음식으로 나를 먹여주었소.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 사람의 근심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 사람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서 죽는다.’라고 합니다.
내 어찌 이로움을 향하여 의리를 배반할 수 있겠소!.
蒯生曰:
「足下自以為善漢王,欲建萬世之業,臣竊以為誤矣。
괴통이 말하였다.
“족하께서는 스스로 漢王과 善交라고 여기고 만세의 공업을 세우려고 하시지만, 신은 삼가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始常山王、成安君為布衣時,相與為刎頸之交,後爭張黶、陳澤之事,二人相怨。
처음에 常山王 張耳와 成安君 陳餘가 평민이었을 때는 서로 刎頸之交이었는데, 후에 張黶과 陳澤의 일로 다투어 두 사람은 서로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常山王背項王,奉項嬰頭而竄,逃歸於漢王。
상산왕은 項王을 배반하고 項嬰의 수급을 들고 달아나 漢王에게 귀순하였습니다.
漢王借兵而東下,殺成安君泜水之南,頭足異處,卒為天下笑。
漢王이 상산왕에게 군대를 빌려주어 동쪽으로 내려가서 성안군을 泜水 남쪽에서 죽이니, 머리와 다리가 따로 있어서,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此二人相與,天下至驩也。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천하의 지극한 사귐이었습니다.
然而卒相禽者,何也?
그러나 마침내 서로 사로잡으려 함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人心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今足下欲行忠信以交於漢王,必不能固於二君之相與也,而事多大於張黶、陳澤。
지금 족하께서 충성과 신의를 행하여 漢王과 친교를 맺으려 하지만, 아무래도 상산왕과 성안군의 친밀함보다 공고하다고 할 수 없으며, 틀어진 일은 張黶、陳澤보다 많고 큽니다.
故臣以為足下必漢王之不危己,亦誤矣。
그래서 신이 생각하기에, 족하께서 漢王이 족하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리라고 기필함도 잘못입니다.
大夫種、范蠡存亡越,霸句踐,立功成名而身死亡。
大夫 文種과 范蠡는 망해가는 越을 존속시키고 越王 句踐을 覇者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명성을 떨쳤지만, 몸은 사망하였습니다.
野獸已盡而獵狗亨。
들짐승이 다하면 사냥개를 삶습니다.
夫以交友言之,則不如張耳之與成安君者也;
以忠信言之,則不過大夫種、范蠡之於句踐也。
교분으로 말하면 張耳가 성안군과 친함만 못하며, 忠信으로 말하면 대부 문종과 범려가 구천을 따름만 못합니다.
此二人者,足以觀矣。
이 두 사람의 일은 거울로 삼기에 족합니다.
願足下深慮之。
족하께서는 이것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且臣聞勇略震主者身危,而功蓋天下者不賞。
또 신이 알기로 ‘용기와 지략으로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뒤덮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臣請言大王功略:
足下涉西河,虜魏王,禽夏說,引兵下井陘,誅成安君,徇趙,脅燕,定齊,南摧楚人之兵二十萬,東殺龍且,西鄉以報,此所謂功無二於天下,而略不世出者也。
신이 대왕의 공과 지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족하께서는 西河를 건너가서 魏王을 사로잡고 夏說을 사로잡으셨으며, 군대를 이끌고 정형을 내려가서 성안군을 죽이고 조를 항복시키셨으며, 연을 위협하고 제를 평정하셨고, 남쪽으로 가서 楚軍 20만을 꺾으셨으며, 동쪽으로 진격하여 용저를 죽였고, 서쪽으로 향하여 漢王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不世出임.’입니다.
今足下戴震主之威,挾不賞之功,歸楚,楚人不信;歸漢,漢人震恐:
足下欲持是安歸乎?
그러므로 족하께서는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머리에 이고, 상을 주지 않을 정도의 공로를 옆구리에 끼었으니, 楚에 귀순하면 項王이 믿지 않을 터이고, 漢에 귀순하면 漢王이 떨며 두려워할 터입니다.
족하께서 이런 것을 가지고 어디로 귀순하려 하십니까?
夫勢在人臣之位而有震主之威,名高天下,竊為足下危之。」
권세로는 신하의 위치에 있으나 군주를 떨게 하는 위엄이 있고, 명성은 천하에 드높으니, 삼가 족하가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韓信謝曰:
「先生且休矣,吾將念之。」
韓信이 사례하며 말하였다.
“선생은 잠시 쉬시오. 나도 그것을 고려해보겠소.”
後數日,蒯通復說曰:
「夫聽者事之候也,計者事之機也,聽過計失而能久安者,鮮矣。
며칠 뒤에 괴통이 다시 韓信을 설득하였다.
“무릇 말을 들음은 일의 조짐이고, 계획은 일의 관건입니다.
듣기에 잘못이 있거나 계획을 실수하고도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는 자는 드뭅니다.
聽不失一二者,不可亂以言;
計不失本末者,不可紛以辭。
진언을 듣고 한둘의 실수하지 않는 자를 말로써 어지럽히지 못하고,
계획에 본말을 잃지 않는 자를 교묘한 말로써 어지럽히지 못합니다.
夫隨廝養之役者,失萬乘之權;
守儋石之祿者,闕卿相之位。
비천한 역할을 따르는 자는 天子가 될 권위를 잃고,
한두 섬의 봉록을 지키는 자는 卿相의 지위를 놓칩니다.
故知者決之斷也,疑者事之害也,審豪氂之小計,遺天下之大數,智誠知之,決弗敢行者,百事之禍也。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결정하기를 자르듯이 하는데, 의심은 일에 해가 되니, 털끝처럼 자잘한 계교를 살피느라 천하의 큰 운수를 잃어버려서, 지혜로는 진실로 알지만 결단하여 감행하지 못함이 모든 일의 재앙입니다.
▶ 刎頸之交 :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우정 또는 그런 벗’이라는 뜻으로 生死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을 말한다. 刎頸은 목을 찌름 <史記 권89 張耳陳餘列傳>
▶ 張黶陳澤之事 : 張耳와 진여는 秦과의 거록전투에서 진여로 인하여 장염과 진택이 전사한 것으로 서로 말다툼을 하게 되어 진여가 제왕 田榮에게 떠나서 둘 사이가 깨졌다.<史記 권89 張耳陳餘列傳>
▶ 必 : 반드시 믿음. 期必함
▶ 大夫種 范蠡 : 대부 종은 文種으로 춘추 시대 월나라의 관료 겸 정치가이며 범려와 함께 구천을 보좌하여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끝끝내 구천의 의심을 사 숙청되었다. <史記 越王勾踐世家>
▶ 野獸已盡而獵狗亨 : 兎死狗烹.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의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 范蠡之於句踐也: 於의 動詞的 용법으로 다음의 뜻이 있다
1. 기대다, 의지하다(依支--)
2. 따르다
3. 가다
4. 있다, 존재하다(存在--)
▶ 勇略震主者身危 而功蓋天下者不賞 :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군주를 두렵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이 커서 천하제일인 자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용맹과 지략이 군주보다 뛰어나고 공로가 큰 자는 결국 제거됨을 이른다.
▶ 不世出 : 좀처럼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만큼 뛰어남
▶ 候 : 징후. 징조.
▶ 機 : 관건.
▶ 聽過 : 의견을 듣고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다.
▶ 計失 : 고려한 문제의 결정을 실수하다.
▶ 本末 : 처음과 끝. 本末倒置 : 본말이 전도되다. 처음과 끝이 뒤바뀜.
▶ 隨 : 따르다. 순종하다.
▶ 廝養之役 :비천한 일. 허드렛일.
▶ 萬乘之權 : 천자의 권위.
▶ 儋石之祿 : 한두 섬의 녹이라는 뜻으로, 적은 봉급. 얼마 안 되는 俸祿.
▶ 豪氂 : 터럭의 끝부분. 아주 작은 일.
故曰『猛虎之猶豫,不若蜂蠆之致螫;
騏驥之跼躅,不如駑馬之安步;
孟賁之狐疑,不如庸夫之必至也;
雖有舜禹之智,吟而不言,不如瘖聾之指麾也』。
옛말에 이르기를, ‘맹호의 머뭇거림이 벌이나 전갈이 쏨만 못하며,
준마의 주춤거림이 둔한 말이 천천히 감만 못하며,
孟賁의 의심은 凡夫가 꼭 이루려 함만 못하다.
비록 舜·禹의 지혜가 있더라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발짓함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此言貴能行之。
이것은 실행할 수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夫功者難成而易敗,時者難得而易失也。
무릇 공을 이루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를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時乎時,不再來。
때여, 때여, 두 번 오지 않습니다.
願足下詳察之。」
족하께서 자세히 살피십시오.”
韓信猶豫不忍倍漢,又自以為功多,漢終不奪我齊,遂謝蒯通。
韓信은 망설이면서 차마 漢을 배반하지 못하다가, 그러나 자신에게 공이 많다고 여겨서, 漢이 끝내 자신의 齊를 빼앗지 않으리라 생각하여, 마침내 괴통의 말을 거절하였다.
蒯通說不聽,已詳狂為巫。
괴통은 자신의 말을 청종하지 않자,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 封債(봉채) : (벌, 전갈 따위의) 독충.
▶ 螫(석) : 쏘다.
▶ 騏驥 : 준마. 천리마.
▶ 跼躅 :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 駑馬 : 둔한 말. 걸음이 느린 말.
※ 麒麟老劣駑馬 : 기린도 늙으면 느린 말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영웅호걸도 늙으면 보통 사람만도 못함을 이르는 말.
▶ 孟賁 ; 戰國時代 齊의 勇士로 맨손으로 쇠뿔을 뽑았다고 한다.
▶ 狐疑 : 여우와 같은 의심. 狐疑不決은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 指麾 : 손으로 의사를 표시하다.
▶ 功者難成而易敗,時者難得而易失 : 공은 이루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는 뜻으로, 성공하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좋은 기회는 다시 얻기 어려움을 이른다.
▶ 時乎時,不再來 :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음을 이른다.
漢王之困固陵,用張良計,召齊王信,遂將兵會垓下。
漢王이 固陵에서 곤경에 처하자 장량의 계책을 써서 齊王 韓信을 불렀으며, 韓信이 군대를 이끌고 垓下에서 합류하였다.
項羽已破,高祖襲奪齊王軍。
항우가 무너지자 高祖가 제왕 韓信의 군대를 습격해서 빼앗았다.
漢五年正月,徙齊王信為楚王,都下邳。
漢王 5년 정월에 제왕 韓信을 옮겨 楚王으로 삼고 下邳에 도읍하게 하였다.
信至國,召所從食漂母,賜千金。
韓信이 封國에 도착하여 예전에 자신에게 밥을 먹여준 漂母을 불러 천금을 하사하였다.
及下鄉南昌亭長,賜百錢,曰:
「公,小人也,為德不卒。」
下鄕의 南昌亭長에게도 100錢을 하사하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소인이다. 은덕을 베풀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召辱己之少年令出胯下者以為楚中尉。
자기를 욕보이던 소년으로,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한 자를 불러 楚의 中尉로 삼았다.
告諸將相曰:
「此壯士也。
方辱我時,我寧不能殺之邪?
殺之無名,故忍而就於此。」
장군과 재상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장사다.
나를 욕보일 때 내가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임에 명분이 없었으므로 참아서 여기까지 왔다.”
項王亡將鐘離眛家在伊廬,素與信善。
項王의 亡命 장수 鐘離眛의 집이 伊廬에 있었는데 평소 韓信과 사이가 좋았다.
項王死後,亡歸信。
項王이 죽은 뒤에 도망쳐 韓信에게 귀순하였다.
漢王怨眛,聞其在楚,詔楚捕眛。
漢王이 종리매에게 원한이 가졌으므로, 그가 楚에 있음을 알고 楚에 조서를 내려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하였다.
信初之國,行縣邑,陳兵出入。
韓信은 봉국에 처음으로 왔기 때문에 縣邑을 순시할 때 병사를 포진하고 드나들었다.
漢六年,人有上書告楚王信反。
漢高祖 6년(기원전 201년)에 누군가 上書하여 楚王 韓信이 모반했다고 고하였다.
高帝以陳平計,天子巡狩會諸侯,南方有雲夢,發使告諸侯會陳:
「吾將游雲夢。」
高帝가 陳平의 계책을 써서 천자가 巡狩하면서 제후와 남쪽의 雲夢 회동하기로 하고, 사자를 보내어 제후에게 알리기를 陳縣에 모이라고 하였다.
“내가 운몽으로 순행하겠다.”
實欲襲信,信弗知。
실은 韓信을 습격하려 함이었지만 韓信은 알지 못하였다.
高祖且至楚,信欲發兵反,自度無罪,欲謁上,恐見禽。
高祖가 곧 楚에 도착함에, 韓信은 군사를 일으켜 모반하고 싶었다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하여 황제를 뵈려고 하였으나 사로잡힐까 두려웠다.
人或說信曰:
「斬眛謁上,上必喜,無患。」
누군가 韓信에게 말하였다.
“종리매를 참수하고 황제를 뵙는다면, 황제께서는 필시 기뻐하실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信見眛計事。眛曰:
「漢所以不擊取楚,以眛在公所。
若欲捕我以自媚於漢,吾今日死,公亦隨手亡矣。」
韓信이 종리매를 만나서 일을 의논하자 종리매가 말하였다.
“漢이 楚를 공격해 빼앗지 않는 까닭은 내가 공에게 있기 때문이오.
나를 체포하여 한에 아첨하고 싶다면 나는 오늘 죽을 것이나, 公도 즉시 죽을 터이오.”
乃罵信曰:
「公非長者!」
그리고는 韓信을 꾸짖었다.
“공은 長者가 아니오!”
卒自剄。
마침내 自剄하였다.
信持其首,謁高祖於陳。
韓信이 그의 수급을 가지고 陳縣에서 高祖를 알현하였다.
上令武士縛信,載後車。
임금이 무사를 시켜 韓信을 결박하고 뒷수레에 태웠다.
信曰:
「果若人言,
『狡兔死,良狗亨;
高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我固當亨!」
韓信이 말하였다.
“과연 사람들이 말한 대로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다하면 훌륭한 활도 치워버린다.
적국을 무너지면 謀臣을 죽인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진실로 烹殺에 해당하는구나!”
上曰:
「人告公反。」
임금이 말하였다.
“누군가가 공이 모반하였다고 고하였다.”
遂械系信。
마침내 韓信에게 형구를 채웠다.
至雒陽,赦信罪,以為淮陰侯。
낙양에 도착하여 韓信의 죄를 사면하고 淮陰侯로 삼았다.
▶ 召齊王信 : 漢이 楚를 추격하여 固陵에 이르러서 韓信과 함께 楚를 공격하기로 약속하였는데 韓信은 오지 않았다.
▶ 高祖襲奪齊王軍 : 漢王이 돌아와 定陶에 이르러서 齊王 韓信의 성벽으로 달려 들어가 그의 병력을 빼앗았다.
▶ 至國 : 도성에 이르다. 下邳를 말한다.
▶ 鐘離眛 : 楚 項羽의 장수가 되었지만 평소 韓信과 친하였다. 종리매는 지략과 병법에 뛰어나 유방의 진영을 괴롭혔으며, 유방은 종리매와 벌인 전투에서 가슴에 활을 맞은 일이 있어 高祖 유방이 체포하려고 한 것이다.
▶ 行 : 순시.
▶ 高帝 : 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02년 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한 후 前漢을 세우고 초대 황제에 올랐으므로 고제라고 한 것이다.
▶ 陳平計 : 진평의 계책. 高帝 6年에 어떤 자가 楚王 韓信이 모반한다고 고발하자, 황제가 陳平에게 물으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옛날 천자가 巡狩하여 제후를 모았으니, 폐하께서 다만 나가서 거짓으로 雲夢에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를 陳 땅에 모이게 하시면 韓信은 천자가 나와 유람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 형세상 반드시 교외에서 맞이하여 배알할 터이니, 폐하께서 이때 사로잡으신다면 이는 다만 한 力士의 일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通鑑節要 卷之五>
▶ 雲夢 : 楚 나라의 큰 연못 七澤 중의 하나.
▶ 自媚 : 남의 환심을 사려고 스스로 아첨함.
▶ 隨手 : 뒤를 이어. 즉시
▶ 長者 :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
▶ 兎死狗烹 :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춘추시대 越나라 재상 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齊에 은거한 범려가 문종을 염려하여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하였으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자결하고 말았다. <史記 권41. 越王句踐世家〉
▶ 械系 : 범인에게 형구를 채우다.
信知漢王畏惡其能,常稱病不朝從。
韓信은 高祖가 자기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함을 알았으므로 늘 병을 핑계로 조현하지 않고 수행하지도 않았다.
信由此日夜怨望,居常鞅鞅,羞與絳、灌等列。
韓信이 이로부터 밤낮으로 원망하며 늘 불만을 품고 지내며, 絳侯나 灌嬰 등과 같은 반열임을 부끄럽게 여겼다.
信嘗過樊將軍噲,噲跪拜送迎,言稱臣,曰:
「大王乃肯臨臣!」
韓信이 樊將軍 噲의 집에 들른 적이 있는데, 번쾌가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마중하고 배웅하되, 稱臣하며 말하였다.
“대왕께서 기꺼이 신의 집에 왕림하셨습니다!”
信出門,笑曰:
「生乃與噲等為伍!」
韓信이 문을 나오며 비웃었다.
“내가 살아서 번쾌 등과 같은 반열이 되었구나!”
上常從容與信言諸將能不,各有差。
高祖는 늘 여유롭게 韓信과 함께 장수들이 유능한지 아닌지를 논하며 등급을 매기고는 하였다.
上問曰:
「如我能將幾何?」
高祖가 물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소?”
信曰:
「陛下不過能將十萬。」
韓信이 말하였다.
“폐하는 불과 10만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上曰:
「於君何如?」
高祖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소?”
曰:
「臣多多而益善耳。」
韓信이 말하였다.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뿐입니다.”
上笑曰:
「多多益善,何為為我禽?」
高祖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소?”
信曰:
「陛下不能將兵,而善將將,此乃言之所以為陛下禽也。
韓信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병사를 거느림에는 능하지 못하시지만, 장수를 잘 거느리시니, 이것이 바로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且陛下所謂天授,非人力也。」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내림’이므로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陳豨拜為鉅鹿守,辭於淮陰侯。
陳豨가 鉅鹿의 郡守로 임명되자 회음후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淮陰侯挈其手,辟左右與之步於庭,仰天嘆曰:
「子可與言乎?
欲與子有言也。」
회음후가 그의 손을 잡고 좌우를 물리친 뒤에 그와 함께 뜰을 거닐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그대와 말해도 되겠지?
그대에게 말할 것이 있소.”
豨曰:
「唯將軍令之。」
진희가 말하였다.
“예, 장군께서는 명령만 하십시오.”
淮陰侯曰:
「公之所居,天下精兵處也;
而公,陛下之信幸臣也。
人言公之畔,陛下必不信;
再至,陛下乃疑矣;三至,必怒而自將。
吾為公從中起,天下可圖也。」
회음후가 말하였다.
“그대가 부임하는 곳은 천하의 정예병이 있는 곳이오.
그리고 그대는 폐하께서 신임하는 총신이오.
누군가 그대가 모반했다고 말하더라도 폐하께서는 필시 믿지 않을 터이오.
두 번에 이르러면 폐하께서 의심하실 테고, 세 번에 이르러면 필시 스스로 장군이 될 터이네.
내가 그대를 위해 중앙에서 일어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터이오.”
陳豨素知其能也,信之,曰:
「謹奉教!」
진희는 평소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믿고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 鞅鞅 : 「怏怏」과 통하여 섭섭하여 앙심을 품은 모양을 말한다.
▶ 絳灌 : 漢高祖 때의 公卿인 絳侯 周勃과 灌嬰을 지칭하는 말.
▶ 周勃 : 전한 초기의 무장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이다.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秦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 灌嬰 : 전한 초기 雎陽 사람. 젊었을 때는 비단이나 명주를 파는 일로 업을 삼았다. 秦 말 전쟁 중에 中涓으로 劉邦을 따라 碭에서 일어나서 入關한 뒤 執珪란 작위가 내려지고 昌文侯로 불렸다
▶ 樊將軍噲 : 樊噲. 漢 高祖 때의 공신. 유방의 거병 뒤 무장으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유방이 즉위한 뒤 좌승상·상국이 되고 그 뒤 여러 반란을 평정하였다.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유방의 거병 뒤에는 그를 따라 무장으로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 從容 : 여유롭다.
▶ 多多益善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 陳豨 : 漢의 개국공신으로 高帝를 따라 燕王 藏荼를 평정하여 陽夏侯에 봉해졌다. 고제 10년(기원전 197년)에 代의 相國이 되어 趙, 代의 군사를 관할하였다. 韓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 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
▶ 辟 : 물리치다.
▶ 畔 : 叛과 통하여 모반하다. 배반하다.
漢十年,陳豨果反。
漢 高祖 10년에 진희가 과연 모반하였다.
上自將而往,信病不從。
高祖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정벌하러 가니, 韓信이 병을 핑계삼고 따라가지 않았다.
陰使人至豨所,曰:
「弟舉兵,吾從此助公。」
몰래 진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마음 놓고 군사를 일으키시오. 내가 여기서 공을 돕겠소.”
信乃謀與家臣夜詐詔赦諸官徒奴,欲發以襲呂后、太子。
이에 韓信이 가신과 모의하여 밤중에 거짓 조서를 내려 모든 관아의 죄인과 노예를 사면하고, 이들을 동원하여 呂后와 太子를 습격하려고 하였다.
部署已定,待豨報。
부서를 정한 후에 진희의 회답을 기다렸다.
其舍人得罪於信,信囚,欲殺之。
이때 그의 家臣이 韓信에게 죄를 지어 韓信이 가두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舍人弟上變,告信欲反狀於呂后。
그 가신의 아우가 변고를 상주하여, 韓信이 모반하려는 상황을 여후에게 고하였다.
呂后欲召,恐其黨不就,乃與蕭相國謀,詐令人從上所來,言豨已得死,列侯群臣皆賀。
여후가 韓信을 부르고 싶었으나 그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므로, 蕭相國과 모의하기를, 사람을 시켜 高祖가 있는 곳에서 왔다고 가장하여 한신에게 말하게 하였다.
‘진희가 이미 죽어서 열후와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고 있습니다.’
相國紿信曰:
「雖疾,彊入賀。」
상국이 韓信을 속여서 말하였다.
“비록 병중이지만, 억지로라도 들어와서 축하하시오.”
信入,呂后使武士縛信,斬之長樂鐘室。
韓信이 입궁하자 여후가 무사를 시켜 韓信을 포박하고 長樂宮 鍾室에서 참수하였다.
信方斬,曰:
「吾悔不用蒯通之計,
乃為兒女子所詐,豈非天哉!」
韓信이 참수될 때 말하였다.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음이 후회스럽다.
아녀자에게 속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
遂夷信三族。
결국 韓信의 三族을 멸하였다.
高祖已從豨軍來,至,見信死,且喜且憐之,問:
「信死亦何言?」
高祖가 진희의 토벌에서 돌아와 궁에 도착하여 韓信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기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여 물었다.
“韓信이 죽을 때 무엇이라고 했소?”
呂后曰:
「信言恨不用蒯通計。」
여후가 말하였다.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음이 한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高祖曰:
「是齊辯士也。」
高祖가 말하였다.
“그는 齊의 辯士요.”
乃詔齊捕蒯通。
이에 齊에 조서를 내려 괴통을 체포하였다.
蒯通至,上曰:
「若教淮陰侯反乎?」
괴통이 잡혀오자 高祖가 물었다.
“네가 회음후에게 모반하라고 가르쳤는가?”
對曰:
「然,臣固教之。
豎子不用臣之策,故令自夷於此。
如彼豎子用臣之計,陛下安得而夷之乎!」
괴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신이 확실히 그를 가르쳤습니다.
못난 자식이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아 이 지경으로 자신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못난 자식이 신의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 어찌 그를 체포하여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上怒曰:
「亨之。」
高祖가 노하여 말하였다.
“저자를 삶아 죽여라.”
通曰:
「嗟乎,冤哉亨也!」
괴통이 말하였다.
“아 ! 팽살을 당하다니 원통하구나!”
上曰:
「若教韓信反,何冤?」
高祖가 말하였다.
“네가 韓信을 모반하도록 가르쳐놓고 무엇이 원통하다는 말이냐?”
對曰:
「秦之綱絕而維弛,山東大擾,異姓并起,英俊烏集。
괴통이 대답하였다.
“秦의 기강이 해이해지자 山東이 크게 소란하였고, 異姓이 아울러 일어나고 영웅준걸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秦失其鹿,天下共逐之,於是高材疾足者先得焉。
秦이 帝位를 잃자, 천하가 함께 그것을 쫓아가서 재주가 좋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차지할 상황이었습니다.
蹠之狗吠堯,堯非不仁,狗因吠非其主。
盜跖의 개가 堯임금을 보고 짖음은 요임금이 어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니면 짖기 때문입니다.
當是時,臣唯獨知韓信,非知陛下也。
당시 신은 오직 韓信만 알았지 폐하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且天下銳精持鋒欲為陛下所為者甚眾,顧力不能耳。
게다가 천하에는 칼끝을 날카롭게 갈고 폐하께서 하신 것을 자기도 하려는 자가 매우 많으나, 다만 역부족일 뿐입니다.
又可盡亨之邪?」
그들을 모두 삶아 죽임이 옳겠습니까?”
高帝曰:
「置之。」
高祖가 말하였다.
“그를 놓아주어라.”
乃釋通之罪。
이에 괴통의 죄를 용서하였다.
▶ 弟 : 오로지. 주저하지 않고.
▶ 諸官徒奴 : 여러 관아의 죄인들과 노예. 죄를 지어 노역하는 자를 徒라고 하고, 죄를 짓고 관청에 몰수된 자를 奴라고 한다.
▶ 呂后 : 前漢의 시조 高祖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 上變 : 반역을 고발하는 글을 올림
▶ 黨 : 倘과 통하여 만일. 혹시
▶ 蕭何 : ?~기원전 193년. 유방의 참모로서 그가 천하를 얻도록 도왔으며, 전한의 초대 상국을 지냈다. 韓信을 유방에게 천거하여 韓信이 대장군으로 기용되었었다. 韓信, 장량과 함께 한의 三傑로 꼽힌다.
▶ 紿 : 속이다. 기만하다.
▶ 夷 : 멸하다.
▶ 豎子 : 풋내기, 못난 자식.
▶ 自夷 : 자멸하다.
▶ 異姓并起 : 山東 6國의 제후를 말한다.
▶ 秦失其鹿 : 秦은 그 제위를 잃다. 鹿은 사슴. 사슴을 帝位로 비유하였다. <六韜>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사슴을 쫓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 蹠之狗吠堯 : 盜跖의 개가 堯임금을 보고 짖다. 선악에 관계없이 주인을 위해 충성을 한다는 뜻. 盜跖은 秦의 大盜.
▶ 置 : 석방하다.
太史公曰:
吾如淮陰,淮陰人為余言,韓信雖為布衣時,其志與眾異。
其母死,貧無以葬,然乃行營高敞地,令其旁可置萬家。
余視其母冢,良然。
假令韓信學道謙讓,不伐己功,不矜其能,則庶幾哉,於漢家勳可以比周、召、太公之徒,後世血食矣。
不務出此,而天下已集,乃謀畔逆,夷滅宗族,不亦宜乎!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淮陰에 갔을 때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였다.
‘韓信이 비록 평민이었을 때도 그 뜻이 여느 사람과 달랐다.
그의 어머니가 죽음에, 가난해서 장례도 치를 수 없었으나 크고 넓은 땅을 구하여 무덤을 만드니, 그 곁에 만 호의 집이 들어설 수 있게 하였다.’
내가 그 어머니의 무덤을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가령 韓信이 道를 배워 겸양해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지 않았다면, 漢에 대한 공훈은 거의 周公, 召公, 太公의 무리에 견주어져 후세에 제사를 받았을 터이다.
여기로 나가려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되자 반역을 꾀했으니 종족을 다 멸함도 마땅하지 않은가!”
▶ 如 : 가다. 이르다.
▶ 行營 : 모색하다. 구하다.
▶ 高敞地 : 크고 넓은 땅.
▶ 冢 : 무덤.
▶ 不伐己功,不矜其能 :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지 않다.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한 것이다.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이 자기의 것이 되고, 자신의 우쭐댐을 버리기에 언제까지고 존경을 받게 된다.(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老子 道德經 제22장>
▶ 庶幾 : 거의 비슷하다. 바라건대.
▶ 周召太公 : 周公 旦과 召公 奭. 姜太公. 周나라의 창업 공신.
▶ 血食 :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 피 묻은 산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낸데서 비롯되어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 集 : 輯과 통하여 안정되다. 합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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