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30世家 중 26번째 편으로 前漢高祖劉邦의 공신인 陳平에 대한 전기이다.
陳平은 한나라의 공신으로 처음에는 항우를 섬겼으나 후에 유방을 도와서 한나라 통일에 공을 세웠다. 그는 계략에 뛰어나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이 쫓겨나게 모략을 꾸몄고, 항우 휘하의 대장군으로 실력자로 평가받았던 종리매에 대한 신임을 잃게 하였다. 유방의 신임을 받아 고향의 戶牖侯에 임명되었으며, 그 후 曲逆侯로 승진하였고, 相國 曹參이 죽은 후에는 左丞相이 되어, 여씨의 난 때 周勃과 함께 이를 평정한 후 유방의 아들 文帝를 옹립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여섯 가지 기발한 계책을 사용하니 제후들이 모두 한나라에 복종하였다. 呂氏들을 토벌한 것은 陳平이 주모한 것으로 끝내 종묘사직을 안정시켰다. 이에 제26편 ‘陳丞相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술하였다.
陳丞相平者,陽武戶牖鄉人也。
승상 陳平은 陽武戶 牖鄕사람이다.
少時家貧,好讀書,有田三十畝,獨與兄伯居。
젊어서 집이 가난하였고, 독서를 좋아했고, 30畝의 밭이 있었는데 단지 형인 陳伯과 함께 살았다.
伯常耕田,縱平使游學。
진백은 늘 농사를 지으며 진평에게 마음껏 돌아다니며 공부하게 하였다.
平為人長[大]美色。
진평은 키가 크고 잘 생겼다.
人或謂陳平曰:
「貧何食而肥若是?」
사람들이 간혹 진평에게 말하였다.
“가난한데 뭘 먹고 그렇게 살이 쪘나?”
其嫂嫉平之不視家生產,曰:
「亦食糠覈耳。
有叔如此,不如無有。」
그의 형수는 진평이 집안의 생계를 돌보지 않자 화가 나서 말하였다.
“쌀겨나 먹을 수밖에 없어.
시동생이라는 게 저 모양이니 없는 것만 못해.”
伯聞之,逐其婦而棄之。
진백이 이 말을 듣고 자기 아내를 내쫓아 버렸다.
▶ 嫂嫉: 형수.
▶ 糠核: 겨와 보리 싸라기. 조악한 음식을 비유.
及平長,可娶妻,富人莫肯與者,貧者平亦恥之。
진평이 장성하여 장가들려 하였는데 부잣집에서는 그에게 딸을 주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집은 진평 역시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久之,戶牖富人有張負,張負女孫五嫁而夫輒死,人莫敢娶。
한참 후 戶牖에 張負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장부의 손녀딸은 다섯 번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번번이 죽으니, 감히 아내로 맞이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平欲得之。
진평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였다.
邑中有喪,平貧,侍喪,以先往後罷為助。
당시 마을에 초상이 나서 가난한 진평이 장례를 돕게 되었는데, 먼저 가서 늦게 돌아오는 방법으로 도움을 주었다.
張負既見之喪所,獨視偉平,平亦以故後去。
張負가 상가에서 진평을 본 후 특히 풍채가 좋은 진평을 눈여겨보았으며, 진평 역시 일부러 늦게 상가를 떠났다.
負隨平至其家,家乃負郭窮巷,以獘席為門,然門外多有長者車轍。
장부가 진평을 따라 그의 집에 가보니 집은 성벽을 등진 뒷골목에 있었고, 다 헤진 돗자리로 문으로 삼고 있었지만 문밖에는 귀인들이 다녀간 수레바퀴 자국이 많았다.
▶ 負: 등지다.
▶ 窮巷: 陋巷. 뒷골목.
▶ 長者: 고귀한 사람의 호칭.
張負歸,謂其子仲曰:
「吾欲以女孫予陳平。」
장부가 돌아와 그의 아들 張仲에게 말하였다.
“내가 손녀를 진평에게 주려고 한다.”
張仲曰:
「平貧不事事,一縣中盡笑其所為,獨柰何予女乎?」
장중이 말하였다.
“진평은 가난하고 일도 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의 행위를 비웃는데 어찌 딸을 주겠습니까?”
負曰:
「人固有好美如陳平而長貧賤者乎?」
장부가 말하였다.
“사람 중에 본래 진평처럼 잘생기고도, 오래 가난하고 천하게 지낸 사람이 있더냐?”
卒與女。
기어이 손녀를 주었다.
為平貧,乃假貸幣以聘,予酒肉之資以內婦。
진평은 가난했기 때문에 폐백을 빌려 청혼하고, 술이며 고기 살 돈을 주어 아내를 맞이하였다.
負誡其孫曰:
「毋以貧故,事人不謹。
事兄伯如事父,事嫂如母。」
장부는 손녀에게 말하였다.
“가난하다고 사람을 섬김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그 형님 진백은 아버지 모시듯 하고, 그 형수는 어머니처럼 섬겨라.”
平既娶張氏女,齎用益饒,游道日廣。
진평은 장씨 딸을 아내로 맞은 후 쓸 돈이 넉넉해져 교유 범위가 갈수록 넓어졌다.
▶ 獨: 獨은 반문의 어기를 나타내면서 일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조차도 …한데” “어째서 …인가” 허사 獨 참조
▶ 假貸: 빌려주다. 빌리다
▶ 聘: 장가들다.
▶ 內婦: 아내를 맞아들이다. 内는納과 같다.
▶ 齎用: 資用. 자금
裏中社,平為宰,分肉食甚均。
마을에 제사가 있어 진평이 宰가 되어 고기와 밥을 나눔이 매우 공평하였다.
父老曰:
「善,陳孺子之為宰!」
동네 어른들이 말하였다.
“진씨 젊은이가 宰노릇을 잘하는구나!”
平曰:
「嗟乎,使平得宰天下,亦如是肉矣!」
진평이 말하였다.
“아, 이 진평에게 천하를 주재하게 해도 고기 나누듯 잘할 텐데!”
▶ 裏: 里. 秦나라 때 25가구를 里라고 하였다.
▶ 社: 토지신에게 제사지내다.
▶ 宰: 제사 때 고기를 베어 나누어주는 것을 담당하는 사람.
陳涉起而王陳,使周市略定魏地,立魏咎為魏王,與秦軍相攻於臨濟。
陳涉이 봉기하여 陳에서 왕을 칭하며 周市에게 魏땅을 평정하게 하고, 魏咎를 魏王으로 세워 臨濟에서 秦軍과 싸우게 하였다.
陳平固已前謝其兄伯,從少年往事魏王咎於臨濟。
진평은 본래 그의 형 진백과 작별하고 소년들을 따라 임제로 가서 魏王咎를 모셨다.
魏王以為太仆。
위왕이 그를 太僕으로 삼았다.
說魏王不聽,人或讒之,陳平亡去。
진평이 위왕에게 유세했으나 듣지 않았고, 누군가가 그를 헐뜯어서 진평은 도망쳤다.
▶ 周市(주불): 秦나라 말기 魏 사람으로 陳勝과 吳廣의 난 때 장수였다. 진승은 장수였던 周市에게 옛 魏 지역을 탈취하라고 명령하였다. 魏 지역을 장악한 주불은 자신에게 왕위를 제안하는 말을 듣지 않고 魏咎를 추대하여 魏왕으로 삼아 魏를 부활시켰다.
久之,項羽略地至河上,陳平往歸之,從入破秦,賜平爵卿。
오랜 후 項羽가 각지를 공략하여 황하 부근에 이르자 진평은 그에게 가서 의탁하였고, 그를 따라 관중으로 들어가 秦나라를 쳐부수자, 진평에게 卿의 작위를 내렸다.
項羽之東王彭城也,漢王還定三秦而東,殷王反楚。
항우는 동쪽으로 가서 彭城에서 왕을 칭하였으며, 한왕은 회군하여 삼진을 평정하고 동쪽으로 진군했는데 殷王이 楚를 배반하였다.
項羽乃以平為信武君,將魏王咎客在楚者以往,擊降殷王而還。
항우는 이에 진평을 信武君으로 임명하여, 楚에 있던 위왕 구의 막료들을 이끌고 가게 하니, 진평은 은왕을 쳐서 항복시키고 돌아왔다.
項王使項悍拜平為都尉,賜金二十溢。
항왕은 項悍을 보내 진평을 都尉에 임명하고 황금 20溢을 내리게 하였다.
▶ 殷王: 항우는 분봉시 趙의 장수 司馬卬을 殷王으로 삼아 朝歌에 도읍하게 했었다.
▶ 溢: 鎰과 통한다. 鎰은 20냥 또는24냥이다.
居無何,漢王攻下殷王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漢王이 殷王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項王怒,將誅定殷者將吏。
항왕은 노하여 지난번 은을 평정했던 장수와 관리들을 죽이려 하였다.
陳平懼誅,乃封其金與印,使使歸項王,而平身閒行杖劍亡。
진평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항왕이 하사한 황금과 도장을 싸서 사람을 보내 항왕에게 돌려주고, 칼 한 자루를 찬 채 혼자 샛길로 도망쳤다.
渡河,船人見其美丈夫獨行,疑其亡將,要中當有金玉寶器,目之,欲殺平。
황하를 건너는데, 뱃사공이 잘생긴 사내가 혼자 여행함을 보고, 도망하는 장수라고 의심하고, 허리춤에 의당 金玉寶器가 있으리라 여기고, 눈여겨보며 진평을 죽이려 하였다.
平恐,乃解衣躶而佐刺船,船人知其無有,乃止。
진평이 두려운 나머지 옷을 벗고 알몸으로 노 젓는 일을 거들었으므로 사공은 그가 가진 것이 없음을 알고 생각을 접었다.
▶ 杖: 가지다.
▶ 要: 腰와 같다. 허리.
▶ 刺: 배를 젖다.
平遂至修武降漢,因魏無知求見漢王,漢王召入。
진평이 마침내 修武에 이르러 한나라에 투항하였고 魏無知를 통해 한왕을 만나길 청하자 한왕이 불러들였다.
是時萬石君奮為漢王中涓,受平謁,入見平。
이때 萬石君 石奮이 한왕의 中涓이었는데, 진평의 명함을 받고는, 진평을 데리고 들어가 한왕을 알현하게 하였다.
平等七人俱進,賜食。
진평 등 일곱 사람이 함께 들어갔는데 한왕이 음식을 내렸다.
王曰:
「罷,就舍矣。」
한왕이 말하였다.
“먹고 난 후 숙소로 가서 쉬도록 하라.”
平曰:
「臣為事來,所言不可以過今日。」
진평이 말하였다.
“신은 일 때문에 왔으므로, 드려야 할 말은 오늘을 넘겨선 안 됩니다.”
▶ 漢王: 漢高祖 유방.
▶ 萬石君奮: 萬石君 石奮. 趙 멸망 후 온현으로 이주하여 열다섯 살의 나이로 말단 벼슬아치가 되어 고조 유방을 섬겼다. 경제 때에는 구경의 반열에 올랐는데 景帝가 석분을 萬石君이라 호칭하여 萬石君石奮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史記列傳]권103. 萬石張叔列傳
▶ 謁: 명함.
於是漢王與語而說之,問曰:
「子之居楚何官?」
이에 한왕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는 기뻐하면서 물었다.
“그대는 楚에서 어떤 관직에 있었는가?”
曰:
「為都尉。」
진평이 대답하였다.
“도위였습니다.”
是日乃拜平為都尉,使為參乘,典護軍。
한왕은 그날 진평을 도위에 임명하고 參乘하게 하여 護軍을 주관하게 하였다.
諸將盡讙,曰:
「大王一日得楚之亡卒,未知其高下,而即與同載,反使監護軍長者!」
장수들이 모두 아우성치며 말하였다.
“대왕께서 오늘 하루 만에 楚의 도망병을 얻어 그 능력의 高下도 모른 채, 즉각 함께 수레에 타게 하고, 게다가 軍長을 감독하게 하시다니요!”
漢王聞之,愈益幸平。
한왕이 그런 말을 듣자 진평을 더욱 총애하였다.
▶ 参乘: 수레를 탈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은 왼쪽, 마부는 중앙, 모시는 사람이 오른쪽에 타는데, 이를 參乘이라 한다.
▶ 典: 주관하다.
▶ 讙: 시끄럽다.
▶ 監護軍長者: 장군들을 감독하다.
遂與東伐項王。
이어 진평을 데리고 동쪽으로 항왕을 토벌하였다.
至彭城,為楚所敗。
팽성에 이르러 楚에게 패하였다.
引而還,收散兵至滎陽,以平為亞將,屬於韓王信,軍廣武。
한왕이軍를 이끌고 돌아오면서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하여 滎陽에 이르러 진평을 亞將으로 임명하여 韓王 韓信에게 예속시켜 廣武에 주둔하게 하였다.
▶ 亞將: 副將.
絳侯、灌嬰等咸讒陳平曰:
絳侯, 灌嬰등이 모두 진평을 헐뜯으며 말하였다.
「平雖美丈夫,如冠玉耳,其中未必有也。
“진평이 비록 美丈夫이지만, 冠玉과 같을 뿐, 그 속에는 틀림없이 아무것도 없을 터입니다.
臣聞平居家時,盜其嫂;
事魏不容,亡歸楚;
歸楚不中,又亡歸漢。
신들이 듣기에 진평이 집에 있을 때 그 형수와 사통하였으며,
魏를 섬겼으나 허용되지 않자 도망하여 楚에 귀순하였고,
楚에 귀순하여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도망쳐 한나라에 귀순하였습니다.
今日大王尊官之,令護軍。
그런데 오늘 대왕께서 높은 관직을 주시고 군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臣聞平受諸將金,金多者得善處,金少者得惡處。
신이 듣기에 진평은 장수들에게 금을 받았는데, 금을 많이 준 사람은 선처하고 금을 적게 준 사람은 나쁜 대우를 했다고 합니다.
平,反覆亂臣也,願王察之。」
진평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亂臣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잘 살피십시오!”
▶ 絳侯: 周勃.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漢高祖 때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후에 呂氏一族이 난을 일으키자, 陳平과 더불어 여씨를 평정하고, 文帝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사기 권57. 絳侯周勃世家>
▶ 灌嬰: 전한 초기 睡陽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비단을 파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장군이 되어 齊를 평정하고, 항우를 무찔러 고조6년(기원전201년)潁陰侯에 봉해졌다. <史記列傳권95樊酈滕灌列傳>
▶ 咸: 모두.
▶ 亂臣: 나라의 政治를 어지럽게 하는 역신
漢王疑之,召讓魏無知。
한왕이 진평을 의심하여 진평을 천거한 魏無知를 불러 꾸짖었다.
無知曰:
「臣所言者,能也;陛下所問者,行也。
今有尾生、孝己之行而無益處於勝負之數,陛下何暇用之乎?
楚漢相距,臣進奇謀之士,顧其計誠足以利國家不耳。
且盜嫂受金又何足疑乎?」
위무지가 말하였다.
“신이 드린 말씀은 능력이고, 폐하께서 물으신 것은 행실입니다.
지금 그에게 尾生이나 孝己와 같은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승부의 명운에 처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니, 폐하께서는 어느 겨를에 그런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楚와 한이 서로 맞섬에, 신은 기발한 꾀를 가진 인재를 추천하였사오니, 생각건대 그 계책이 참으로 나라를 이롭게 하는지 아닌지일 뿐입니다.
형수와 사통하거나 금을 받았다고까지 의심할 일이겠습니까?”
▶ 讓: 꾸짖다.
▶ 數: 운명. 命運.
▶ 尾生: 魯 사람 미생은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여자가 오지 않으니 물이 자꾸 불어 오르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죽었다.
▶ 孝己: 殷나라 고종의 아들로 계모의 핍박을 만나 근심하고 괴로워하다 죽었다.
▶ 不: 否와 통용된다. 아니다.
▶ 且: 且는 부사로서 “…조차도”의 의미로 쓰인다. 때로는 且猶 2자로 연용된다. 허사 且 참조
漢王召讓平曰:
「先生事魏不中,遂事楚而去,今又從吾游,信者固多心乎?」
한왕이 진평을 불러 나무랐다.
“선생은 위왕을 섬기다가 마음이 맞지 않자 초왕을 섬기러 갔고, 지금은 또 나를 따라 다니니, 신의 있는 사람은 원래 여러 가지 마음을 품는가?”
平曰:
「臣事魏王,魏王不能用臣說,故去事項王。
項王不能信人,其所任愛,非諸項即妻之昆弟,雖有奇士不能用,平乃去楚。
聞漢王之能用人,故歸大王。
臣躶身來,不受金無以為資。
誠臣計畫有可采者,顧[願]大王用之;
使無可用者,金具在,請封輸官,得請骸骨。」
진평이 대답하였다.
“신이 위왕을 섬겼지만 위왕은 신의 건의를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서 항왕을 섬겼습니다.
항왕은 남을 믿지 못했고, 자기가 믿고 아끼는 사람이라고는 항씨 아니면 처가의 형제이니, 비록 비범한 인재가 있더라도 기용하지 못하기에 제가 楚를 떠난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 한왕께서 사람을 잘 쓰신다고 하기에 대왕께 귀순하였습니다.
신은 맨몸으로 왔기에 금전을 받지 않으면 쓸 돈이 없었습니다.
만약 신의 계책에 채용할 만한 것이 있으면 대왕께서 채용하시고,
만약 채용할 만한 것이 없으면, 금전은 모두 그대로 있으니 봉인하여 관청으로 보내고 저는 사직하게 해주십시오.”
▶ 請骸骨: 사직을 청함.
漢王乃謝,厚賜,拜為護軍中尉,盡護諸將。 한왕이 이에 사과하고 후하게 상주고, 護軍中尉에 임명하여 장수들 감독에 盡力하게 하였다. 諸將乃不敢復言。 장수들은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
其後,楚急攻,絕漢甬道,圍漢王於滎陽城。
그 후 楚가 급하게 공격하여 漢의 식량 보급로를 끊고 滎陽城에서 한왕을 포위하였다.
久之,漢王患之,請割滎陽以西以和。
오래되니 한왕이 이 상황을 걱정하며 형양 서쪽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요청하였다.
項王不聽。
항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漢王謂陳平曰:
「天下紛紛,何時定乎?」
한왕이 진평에게 말하였다.
“천하가 어지러운데 언제나 안정되겠소?”
▶ 甬道: 양쪽에 담을 쌓은 길을 말하며 식량 운송로로 사용하였다.
陳平曰:
진평이 말하였다.
「項王為人,恭敬愛人,士之廉節好禮者多歸之。
“항왕은 爲人이 사람을 공경하고 사랑하니, 청렴하고 절개 있으며 예를 좋아하는 선비 중에 그에게 귀순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至於行功爵邑,重之,士亦以此不附。
論功行賞을 하여 封爵함에는 인색하니 선비들 역시 이 때문에 귀순하지 않았습니다.
今大王慢而少禮,士廉節者不來;
然大王能饒人以爵邑,士之頑鈍嗜利無恥者亦多歸漢。
지금 대왕께서는 오만하고 예의를 輕視하니,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이 오지 않으나, 대왕께서 봉작함에 아낌없이 내리시니, 우둔하고 이익을 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비들이 많이 한나라로 귀순하였습니다.
誠各去其兩短,襲其兩長,天下指麾則定矣。
만약 양자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신다면 천하는 손만 휘저어도 안정될 터입니다.
然大王恣侮人,不能得廉節之士。
그러나 대왕께서는 멋대로 남을 모욕하기 때문에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을 얻을 수 없습니다.
顧楚有可亂者,彼項王骨鯁之臣亞父、鐘離眛、龍且、周殷之屬,不過數人耳。
생각해보건대 楚에도 어지러워질 수 있는 요소가 있으니, 저 항왕의 강직한 신하들이라면 亞父·鍾離昧·龍且·周殷 等屬으로 數人에 지나지 않습니다.
大王誠能出捐數萬斤金,行反閒,閒其君臣,以疑其心,項王為人意忌信讒,必內相誅。
대왕께서 수만 근의 금을 내놓으셔서, 이간책으로 군신을 갈라놓아 마음을 의심하게 하면, 항왕의 爲人이 시기하고 의심이 많고 헐뜯는 말을 믿으므로, 틀림없이 내부에서 서로를 죽이게 될 터입니다.
漢因舉兵而攻之,破楚必矣。」
한나라는 그것을 틈타서軍를 일으켜 공격하면 楚를 쳐부숨은 틀림없을 터입니다.”
漢王以為然,乃出黃金四萬斤,與陳平,恣所為,不問其出入。
한왕이 옳다고 여겨 황금 4만 근을 내어 진평에게 주면서 마음대로 쓰게 하고 그 돈의 출납에 대하여는 묻지 않았다.
▶ 重: 인색하다.
▶ 頑鈍: 우둔하다.
▶ 骨鯁之臣: 骨骾之臣.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말한다. 骨鯁: 생선의 뼈. 강직함을 비유함.
▶ 亞父: 항우의 군사고문인 范增의 존칭. 항우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여 ‘亞父’라 불렀다. <范增論
▶ 鐘離眛: 楚 項羽의 장수가 되었지만 평소 韓信과 친하였다. 종리매는 지략과 병법에 뛰어나 유방의 진영을 괴롭혔으며, 유방은 종리매와 벌인 전투에서 가슴에 활을 맞은 일이 있어 高祖 유방이 체포하려고 하였는데 한신을 위하여 자결하였다.
▶ 龍且: 楚 項羽의 막하 장수. 齊 전영이 장한과의 싸움에 지고 동아로 달아났을 때, 용저는 사마로서 무신군 항량, 전영과 함께 동아를 구원하였다. 한왕 원년(기원전206년), 한나라 장군 조참이 圍나루를 건너오자 項他와 정도에서 맞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史記列傳]권94田儋列傳>
▶ 周殷: 楚의 大司馬. 劉賈가 壽春을 포위하여 楚의 大司馬인 周殷을 유인하자, 주은이 楚를 배반하고 九江의軍를 다 동원해서 黥布를 맞이하여, 城父를 도륙하고, 유고를 따라 제와 양의 제후들이 모두 해하에 대대적으로 모여들었다.
▶ 反閒: 反間. 이간시키다.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다.
▶ 意忌: 의심하고 꺼림.
陳平既多以金縱反閒於楚軍,宣言諸將鐘離眛等為項王將,功多矣,然而終不得裂地而王,欲與漢為一,以滅項氏而分王其地。
진평이 많은 황금으로 楚軍에 반간계를 쓰기를,
종리매 등의 장수들이 항왕의 장수가 되어 공이 많은데도, 항왕이 끝내 땅을 떼어 왕으로 봉하지 않으니, 한왕과 한 통속이 되어 항씨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왕이 되려 한다고 말을 퍼뜨렸다.
項羽果意不信鐘離眛等。
항우가 과연 마음속으로 종리매 등을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項王既疑之,使使至漢。
항왕은 의심이 들자, 한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漢王為太牢具,舉進。
한왕은 太牢의 음식을 마련하여 푸짐하게 내놓았다.
見楚使,即詳驚曰:
「吾以為亞父使,乃項王使!」
楚의 사신을 만나자 짐짓 놀란 척하였다.
“나는 아보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항왕의 사신이구나!”
復持去,更以惡草具進楚使。
음식을 다시 들고 나가서 맛없는 채소류 음식으로 바꾸어 楚의 사신에게 내놓았다.
楚使歸,具以報項王。
楚의 사신이 돌아와 항왕에게 구체적으로 보고하였다.
項王果大疑亞父。
항왕은 과연 아보를 크게 의심하였다.
亞父欲急攻下滎陽城,項王不信,不肯聽。
아보는 급히 형양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려 했으나 항왕은 믿지 않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亞父聞項王疑之,乃怒曰:
「天下事大定矣,君王自為之!
願請骸骨歸!」
아보는 항왕이 자신을 의심함을 알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천하 대사가 정해졌으니 군왕이 스스로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청합니다!”
歸未至彭城,疽發背而死。
아보가 길을 떠나 팽성에 이르기도 전에 등에 악성 종기가 나서 죽고 말았다.
▶ 宣言: 떠벌리다.
▶ 太牢: 太牢의 음식. 牛‧羊‧豕의 三牲을 모두 사용한 요리. 또는 牛‧羊‧豕 중에서 쇠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 具: 음식.
▶ 詳: 佯과 통용되어 가장하다.
▶ 草具: 거칠고 맛없는 음식.
▶ 疽: 등창. 악성 종기.
陳平乃夜出女子二千人滎陽城東門,楚因擊之,陳平乃與漢王從城西門夜出去。
진평이 밤중에 여자 2천 명을 형양성 동쪽 문으로 내보내니, 楚가 그들을 공격하였고 그 틈에 진평과 한왕이 성의 西門을 통해 밤중에 빠져나갔다.
遂入關,收散兵復東。
한왕은 이렇게 관중으로 들어가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여 다시 東進하였다.
其明年,淮陰侯破齊,自立為齊王,使使言之漢王。
그 이듬해(기원전203년)에 淮陰侯가 齊를 격파하고 스스로 齊王이 되어 사신을 보내 한왕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漢王大怒而罵,陳平躡漢王。
한왕이 크게 노하여 욕하자 진평이 슬며시 한왕의 발을 밟았다.
漢王亦悟,乃厚遇齊使,使張子房卒立信為齊王。
한왕도 깨달은 바가 있어 齊의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장자방을 보내 한신을 결국 제왕으로 세웠다.
封平以戶牖鄉。用其奇計策,卒滅楚。
한왕은 진평에게 戶牖鄕을 봉하고 그의 기묘한 계책을 써서 마침내 楚를 멸망시켰다.
常以護軍中尉從定燕王臧荼。
진평은 일찍이 호군중위의 신분으로 燕王臧荼를 평정하는 데 종사하기도 하였다.
▶ 躡: 밟다.
▶ 燕王臧荼: 항우의 열여덟 제후왕 중 하나로 燕왕. 한왕5년(기원전202년)겨울에 고조가 항우를 격파한 후 노관을 別將으로 삼아 劉賈와 함께 臨江王共尉를 격파하였다. 7월에 돌아와 고조를 따라 燕王藏荼를 공격하자 장도가 항복하였다. <사기 권93韓信盧綰列傳>
漢六年,人有上書告楚王韓信反。
한고조6년(기원전201년)에 누군가가 글을 올려 고하기를, 楚王 한신이 모반했다고 하였다.
高帝問諸將,諸將曰:
「亟發兵阬豎子耳。」
고제가 장수들에게 묻자 장수들이 말하였다.
“서둘러 軍隊를 보내 그 풋내기를 파묻어야 합니다!”
高帝默然。
고제는 말이 없었다.
問陳平,平固辭謝,曰:
「諸將云何?」
진평에게 묻자 진평은 한사코 말하기를 사양하다가 말하였다.
“장수들은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上具告之。
고제가 자세히 말해주었다.
陳平曰:
「人之上書言信反,有知之者乎?」
진평이 물었다.
“누군가가 글을 올려 한신의 모반을 고하였는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曰:
「未有。」
고제가 말하였다.
“없소.”
曰:
「信知之乎?」
진평이 물었다.
“한신은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曰:
「不知。」
고제가 말하였다.
“모르오.”
▶ 楚王韓信: 淮陰侯 韓信. 高帝 6년에 어떤 자가 楚王 韓信이 모반한다고 고발하자, 고제가 陳平의 계책을 사용하여 거짓으로 雲夢에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들을 陳땅에 모이게 하여 한신을 사로잡고 동생 유교를 초왕으로 삼아 彭城에 도읍하게 하였다. <史記列傳권92淮陰侯列傳>
▶ 豎子: 풋내기. 새파란 놈
陳平曰:
「陛下精兵孰與楚?」
진평이 물었다.
“폐하의 정예병은 楚와 비교해서 누가 더 낫습니까?”
上曰:
「不能過。」
고제가 대답하였다.
“楚를 능가하지 못하오.”
平曰:
「陛下將用兵有能過韓信者乎?」
진평이 물었다.
“폐하의 장수 중에 용병에서 韓信을 능가하는 자가 있습니까?”
上曰:
「莫及也。」
고제가 대답하였다.
“그에게 미치치 못하오.”
平曰:
「今兵不如楚精,而將不能及,而舉兵攻之,是趣之戰也,竊為陛下危之。」
진평이 말하였다.
“지금 軍도 楚의 정예병만 못하고, 장수도 한신에 미치지 못하는데, 軍士를 일으켜 그를 공격함은 싸움을 재촉하는 것이니, 생각건대 폐하에게 위험합니다.”
上曰:
「為之柰何?」
고제가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 趣: 促과 통용된다. 재촉하다.
平曰:
「古者天子巡狩,會諸侯。
南方有雲夢,陛下弟出偽游雲夢,會諸侯於陳。
陳,楚之西界,信聞天子以好出游,其勢必無事而郊迎謁。
謁,而陛下因禽之,此特一力士之事耳。」
이에 진평이 말하였다.
“옛날에 천자가 巡狩를 나가서 제후를 만났습니다.
남방에 雲夢이 있는데, 폐하께서 다만 나가시되 거짓으로 운몽으로 시찰간다고 하고, 陳에서 제후들을 모으십시오.
陳은 楚의 서쪽 경계인데 한신은 천자께서 즐겁게 유람 나왔음을 알면, 그 형세상 사고가 없으리라 여기고, 필시 교외에서 맞아 알현할 터입니다.
알현할 때 폐하께서 그 틈에 잡으면 되므로, 이 일은 단지 力士 한 사람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 雲夢: 楚의 큰 연못 七澤 중의 하나.
▶ 弟: 第와 통용된다. 다만. 단지.
▶ 禽: 擒과 같다.
高帝以為然,乃發使告諸侯會陳,
「吾將南游雲夢」。
고제가 옳다고 여겨 사신을 제후에게 보내 진에 모이라고 고하였다.
“내가 남쪽으로 운몽에 유람하겠다.”
上因隨以行。
고제는 준비되자 곧 출발하였다.
行未至陳,楚王信果郊迎道中。
일행이 陳에 닿지 못하였는데, 초왕 한신이 과연 교외의 길에서 맞이하였다.
高帝豫具武士,見信至,即執縛之,載後車。
고제는 미리 무사를 준비시켰다가 한신이 도착함을 보고 즉각 묶어서 뒤따르는 수레에 태웠다.
信呼曰:
「天下已定,我固當烹!」
한신이 외쳤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를 당연히 삶겠지!”
高帝顧謂信曰:
「若毋聲!
而反,明矣!」
고제가 한신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너는 아무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모반함은 분명하다!”
武士反接之。
무사들이 한신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었다.
遂會諸侯于陳,盡定楚地。
그리하여 고제는 진에서 제후들과 회합하고 楚를을 완전히 평정하였다.
還至雒陽,赦信以為淮陰侯,而與功臣剖符定封。
돌아오다가 雒陽에 이르러 한신을 사면하여 淮陰侯에 봉하고, 공신들에게 符節을 나누어 주며 封地를 정해주었다.
▶ 豫: 預와 통용된다. 사전에. 미리.
▶ 固: 당연히. 허사 固 참조
▶ 反接: 反接縛手. 北結. 北接 등뒤로 결박함
於是與平剖符,世世勿絕,為戶牖侯。
이에 진평에게도 부절을 쪼개어 주어 대대손손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戶牖侯로 임명하였다.
平辭曰:
「此非臣之功也。」
진평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신의 공이 아닙니다.”
上曰:
「吾用先生謀計,戰勝剋敵,非功而何?」
고제가 말하였다.
“내가 선생의 계책을 사용하여 전쟁에 이기고 적을 무찔렀는데 공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오?”
平曰:
「非魏無知臣安得進?」
진평이 말하였다.
“위무지가 아니었으면 신이 어찌 仕進(벼슬길에 들어섬)하였겠습니까?”
上曰:
「若子可謂不背本矣。」
고제가 말하였다.
“그대야말로 근본을 잊지 않는다고 이를 만하오!”
乃復賞魏無知。
이에 위무지에게도 상을 내렸다.
▶ 剖符: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背本: 근본을 잊다.
其明年,以護軍中尉從攻反者韓王信於代。
그 이듬해에 호군중위의 신분으로 隨從하여, 모반한 韓王 信을 代에서 공격하였다.
卒至平城,為匈奴所圍,七日不得食。
졸지에 平城에 이르렀고 흉노에게 포위당해 7일 동안 식량을 구하지 못하였다.
高帝用陳平奇計,使單于閼氏,圍以得開。
고제가 진평의 기발한 계책을 써서 單于의 閼氏에게 사람을 보내어 포위를 풀 수 있었다.
高帝既出,其計祕,世莫得聞。
고제가 탈출하자 그 계책을 비밀에 부치니, 세인은 알 수 없었다.
▶ 卒: 猝과 통용된다. 돌연히. 갑자기.
▶ 反韓王信: 韓王韓信은 淮陰侯韓信과 同名異人이다. 漢나라의 고조 유방에 의해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을 하려고 한 것에 오해를 받자, 흉노의軍를 이끌고 漢나라의 변경을 쳐들어왔다. <사기 권93韓信盧綰列傳>
▶ 高帝用陳平奇計: 漢高祖가 직접 軍를 인솔하고 흉노의 묵돌선우를 공격했다가 平城 인근의 白登山에서 흉노의 40만 대군에게 7일 동안이나 포위를 당하는 곤경에 빠졌다. 이때 陳平이 계책을 내어 單于의 부인 閼氏에게 후한 뇌물을 써서 겨우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사기 권93. 韓信盧綰列傳> <사기 권95. 樊酈滕灌列傳>
▶ 閼氏: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의 부인의 칭호.
高帝南過曲逆,上其城,望見其屋室甚大,曰:
「壯哉縣!
吾行天下,獨見洛陽與是耳。」
고제가 남쪽으로 가다 曲逆에 들러 성루에 올라 집들이 아주 큼을 보고 말하였다.
“고을이 정말 장관이로구나!
내가 천하를 다녔지만, 오직 눈에 띄는 것은 낙양과 이곳뿐이로구나.”
顧問御史曰:
「曲逆戶口幾何?」
고제가 고개를 돌려 어사에게 물었다.
“곡역의 호구가 몇인가?”
對曰:
「始秦時三萬餘戶,閒者兵數起,多亡匿,今見五千戶。」
어사가 대답하였다.
“처음 秦나라 때는 3만 호가 넘었지만, 근래 전쟁이 여러 차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도망하고 숨어버려 지금 현재 5천 호입니다.”
於是乃詔御史,更以陳平為曲逆侯,盡食之,除前所食戶牖。
이에 어사에게 조서를 내려 진평을 曲逆侯로 바꾸어 봉하고 곡역 전체를 식읍으로 주고 앞서 봉했던 호유향 식읍은 취소하였다.
▶ 閒者: 근래
▶ 詔: 천자의 명령. 詔書.
其後常以護軍中尉從攻陳豨及黥布。
그 후에도 진평은 늘 호군중위의 신분으로 고제를 따라 陳豨와 黥布를 토벌하였다.
凡六出奇計,輒益邑,凡六益封。
모두 여섯 번 기발한 계책을 낼 때마다 봉읍이 더 늘었고, 모두 여섯 차례 더 봉해졌다.
奇計或頗祕,世莫能聞也。
기발한 계책 가운데 어떤 것은 아주 비밀에 부쳐졌으므로, 世人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高帝從破布軍還,病創,徐行至長安。
고제가 경포의 軍을 격파하고 돌아오는데 상처가 병이 되어 천천히 장안에 이르렀다.
燕王盧綰反,上使樊噲以相國將兵攻之。
燕王盧綰이 배반하자 고제는 樊噲에게 相國의 신분으로 軍을 거느리고 공격하게 하였다.
既行,人有短惡噲者。
번쾌가 이미 떠났는데 누군가 번쾌의 단점을 들추어 악평하였다.
高帝怒曰:
「噲見吾病,乃冀我死也。」
고제가 노하여 말하였다.
“번쾌는 내가 병난 것을 보고 내가 죽기를 바란단 말인가.”
用陳平謀而召絳侯周勃受詔床下,曰:
「陳平亟馳傳載勃代噲將,平至軍中即斬噲頭!」
진평의 계책을 써서 絳侯 周勃을 병상으로 불러 조서를 내렸다.
“진평은 서둘러 주발을 역참의 수레에 태우고 달려가서 번쾌를 대신하여 군을 이끌게 하고, 진평은 군중에 도착하면 즉시 번쾌의 목을 베어라!”
▶ 燕王盧綰: 盧綰은 沛國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高帝 12년(기원전195년)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史記列傳권93韓信盧綰列傳>
▶ 樊噲: 沛縣 출신으로 원래 개고기를 파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劉邦이 군사를 일으킬 때 무장으로서 용맹을 떨쳐 공을 세웠다. 유방과 항우의 鴻門의 연회에서 유방이 項羽에게 살해될 위기에서 극적으로 유방을 구해내었다. 유방이 즉위한 뒤 左丞相, 相國이 되었으며 그 후 여러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舞陽侯로 봉해졌다. 번쾌는 呂后의 여동생 呂嬃를 아내로 맞이해 아들 伉을 낳았기 때문에 다른 장군들에 비해 고조와 가장 가까웠다. <史記列傳권95樊酈滕灌列傳>
▶ 人有短惡噲者: 어떤 사람이 번쾌가 呂氏와 작당한다고 비방하였는데 즉, 황제가 갑자기 붕어하면 번쾌가 軍를 이끌고 戚氏와 趙王如意의 일족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史記列傳권95樊酈滕灌列傳>
▶ 冀: 바라다.
▶ 馳傳: 역참 마차를 급히 보내다.
▶ 絳侯: 周勃. 전한 초기의 무장이자, 유방의 부하이다. 패현 사람으로 유방 궐기 후 함께하여 진나라 정벌에 공을 세워서 絳侯에 봉하여졌다.
二人既受詔,馳傳未至軍,行計之曰:
「樊噲,帝之故人也,功多,且又乃呂后弟呂媭之夫,有親且貴,帝以忿怒故,欲斬之,則恐後悔。
寧囚而致上,上自誅之。」
두 사람이 조서를 받고 나서, 역참의 수레를 타고 갔는데 군중에 이르기 전에 도중에 계획을 세웠다.
“번쾌는 황제의 오랜 친구로서 戰功도 많고, 또 여후의 여동생 呂嬃의 남편으로 황제의 친인척이자 귀한 몸이니, 황제께서 한순간 화가 나서 목을 베려 하지만 아마 후회하실 터이오.
차라리 그를 묶어 황제께 보내 황제께서 친히 죽이게 합시다.”
未至軍,為壇,以節召樊噲。
군중에 이르기 전에 단을 만들어 부절로써 번쾌를 소환하였다.
噲受詔,即反接載檻車,傳詣長安,而令絳侯勃代將,將兵定燕反縣。
번쾌가 조서를 받자, 두 손을 뒤로 묶어 죄수용 수레에 실어 장안으로 보냈으며, 강후 주발에게 장수를 대신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燕의 배반한 현들을 평정하게 하였다.
▶ 呂后: 前漢의 시조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 弟: 여동생.
▶ 呂須: 여후의 여동생.
▶ 節: 符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平行聞高帝崩,平恐呂太后及呂媭讒怒,乃馳傳先去。
진평이 돌아오는 길에 고제가 붕어하였음을 알고, 여태후가 呂嬃의 참언을 듣고 화를 낼까 두려워 수레를 몰아 먼저 갔다.
逢使者詔平與灌嬰屯於滎陽。
도중에 사자를 만났는데, 진평과 관영이 형양에 주둔하라는 명령이었다.
平受詔,立復馳至宮,哭甚哀,因奏事喪前。
진평이 조서를 받고, 즉시 수레를 달려 궁으로 가서 매우 애통하게 곡을 하면서, 고제의 영전에서 그간의 일을 여후에게 아뢰었다.
呂太后哀之,曰:
「君勞,出休矣。」
여태후가 진평을 가엽게 여기며 말하였다.
“그대는 수고했으니 나가서 쉬시오.”
平畏讒之就,因固請得宿衛中。
진평은 자신에 대한 참소가 올까 두려워하고 궁정에서 숙위하겠다고 간곡히 요청하였다.
太后乃以為郎中令,曰:
「傅教孝惠。」
여태후는 이에 그를 낭중령에 임명하면서 말하였다.
“혜제를 잘 보좌하도록 하시오.”
是後呂媭讒乃不得行。
이후 여수의 참소는 실행되될 수 없었다.
樊噲至,則赦復爵邑。
번쾌는 장안에 이르러 사면을 받고 작위와 봉읍을 회복하였다.
▶ 宿衛: 궁궐을 호위하기 위해 숙직을 하는 警衛
▶ 傅: 보좌하다.
▶ 孝惠: 漢惠帝 劉盈. 전한의 제2대 황제. 高祖의 맏아들이다. 처음 태자가 되었을 때 고조가 너무 착해 빠졌다고 여겨 폐위하고 戚夫人이 낳은 아들 趙王 如意를 세우려 하였으나 대신들과 張良의 계책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孝惠帝六年,相國曹參卒,以安國侯王陵為右丞相,陳平為左丞相。
효혜제6년(기원전189년)에 相國 曹參이 죽자, 安國侯 王陵을 우승상으로 진평을 좌승상으로 임명하였다.
▶ 曹參: 전한의 개국 공신으로, 자는 敬伯이다. 원래 진나라의 옥리였으나, 고조 유방의 거병시에 뜻을 같이하였다. 한신과 더불어 군사면에서 활약을 하였다. 진나라와 항우를 공략하여 한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후에는 공신서열 2번째, 平陽侯로 책봉되었고 경포의 반란 등을 평정하였다. 고조가 죽은 뒤 肅何의 추천으로 相國이 되어 惠帝를 보필하였다. <史記世家권54. 曹相國世家>
▶ 王陵: 유방이 패현에서 일어나자 사람 수천 명을 모아 귀의하여 유방을 따라 각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高祖 6년(기원전201년) 安國侯에 봉해졌다. 右丞相이 되었다. 直言을 잘했다
王陵者,故沛人,始為縣豪,高祖微時,兄事陵。
왕릉은 원래 沛縣사람으로 처음에는 현의 豪族이었는데 고조가 보잘것없던 시절에 왕릉을 형님으로 섬겼다.
陵少文,任氣,好直言。
왕릉은 교양이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직언하기를 좋아하였다.
及高祖起沛,入至咸陽,陵亦自聚黨數千人,居南陽,不肯從沛公。
고조가 패현에서 봉기해 함양에 진입했을 때, 왕릉도 스스로 무리 수천을 모아 남양을 차지하고 패공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及漢王之還攻項籍,陵乃以兵屬漢。
한왕이 회군하여 항적을 공격하자 왕릉은 비로소 군사를 한나라에 예속시켰다.
項羽取陵母置軍中,陵使至,則東鄉坐陵母,欲以招陵。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잡아 군영에 두었는데, 왕릉의 사신이 도착하자 왕릉의 어머니를 동쪽 상석에 앉게 하여 왕릉을 招降하려 하였다.
▶ 縣豪: 현의 호족.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
▶ 文: 문화적 소양. 교양.
▶ 東鄉: 동쪽을 향하다. 존중의 표시. 鄕은 向과 통용된다. 고대에 조회를 할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동쪽에 섰다.
陵母既私送使者,泣曰:
「為老妾語陵,謹事漢王。
漢王,長者也,無以老妾故,持二心。
妾以死送使者。」
왕릉의 어머니는 몰래 사람을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늙은이를 위하여 왕릉에게 한왕을 잘 모시라고 전해주시오.
한왕은 중후하고 덕이 있는 분이니, 이 늙은이 때문에 두 마음을 품을 까닭이 없소.
이 늙은이는 죽음으로 사자를 보내리다.”
遂伏劍而死。
칼에 엎어져 자결하였다.
項王怒,烹陵母。
항왕이 노하여 왕릉의 어머니를 삶아 죽였다.
陵卒從漢王定天下。
왕릉은 끝까지 한왕을 따르며 천하를 평정하였다.
以善雍齒,雍齒,高帝之仇,而陵本無意從高帝,以故晚封,為安國侯。
왕릉은 雍齒와 사이가 좋았으나 옹치가 고제의 원수였고, 왕릉도 당초 고제를 따를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뒤늦게 安國侯에 봉해졌다.
▶ 長者: 충후하고 덕이 있는 사람.
▶ 伏劍: 칼로 자살하다. 칼 위에 엎드려 죽음.
▶ 雍齒: 項羽의 부하 장수로 劉邦을 여러 번 곤경에 빠뜨려 유방이 가장 미워했는데 항우가 쫓겨 자살한 뒤 항복하였다. 張良이 유방에게 공신들의 모반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가장 미워하던 옹치부터 벼슬에 봉해 주어야 한다고 하여 什方侯에 봉하였다.
安國侯既為右丞相,二歲,孝惠帝崩。
안국후 왕릉이 右丞相이 된 지 2년 만에 惠帝가 세상을 떠났다.
高后欲立諸呂為王,問王陵,王陵曰:
「不可。」
고후가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여 왕릉에게 물었더니 왕릉은 말하였다.
“안 됩니다.”
問陳平,陳平曰:
「可。」
진평에게 물었더니 말하였다.
“됩니다.”
呂太后怒,乃詳遷陵為帝太傅,實不用陵。
여후가 화가 나서 왕릉을 황제의 태부로 옮기듯이 하였지만 실제로는 왕릉을 기용하지 않았다.
陵怒,謝疾免,杜門竟不朝請,七年而卒。
왕릉은 화가 나서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두문불출하며 끝내 조회에 나오지 않다가7년 만에 죽었다.
▶ 問王陵: 태후가 황제를 칭하고 권한을 행사하면서 여씨 일족을 왕으로 삼으려는 일을 의논하려고 우승상 王陵에게 물었다. 왕릉이 대답하였다.
“고제께서 백마를 죽여 대신들에게 맹서하시기를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공격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지금 여씨를 왕으로 삼음은 서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태후는 불쾌하였다. 좌승상 진평과 강후 주발에게 물었다. 주발 등이 대답하였다.
“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유씨 자제들을 왕으로 삼으셨듯이, 지금 태후께서 황제를 대행하시니 형제와 여씨들을 왕으로 못 삼을 까닭은 없습니다.”
태후는 기뻐했고 조회는 끝났다. <[史記本紀]권09. 呂太后本紀>
▶ 詳: 가장하다.
▶ 朝請: 황제를 알현하다. 한나라 때 제후들이 봄과 가을에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陵之免丞相,呂太后乃徙平為右丞相,以辟陽侯審食其為左丞相。
왕릉이 승상에서 면직되자 여후는 곧 진평을 우승상으로 옮기고 辟陽侯 審食其를 좌승상으로 임명하였다.
左丞相不治,常給事於中。
좌승상은 일을 처리할 장소를 설치하지 않아 늘 궁중에서 직무를 담당하였다.
▶ 徙: 전임시키다.
▶ 辟陽侯審食其: 審食其. 劉邦과 동향인으로, 漢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어 辟陽侯에 봉해졌다. 여후가 聽政을 하자 좌승상에 임명되었으며, 詔令의 출납을 장악하여 공경대신들이 모두 그를 통해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로 인해 심이기와 여후를 내연의 관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文帝때 淮南厲王劉長에게 피살되었다.
▶ 給事: 직무를 담당하다
食其亦沛人。
審食其역시 패현 사람이다.
漢王之敗彭城西,楚取太上皇、呂后為質,食其以舍人侍呂后。
한왕이 팽성에서 패하여 서쪽으로 갔을 때 楚가 한왕의 아버지와 여후를 인질로 잡았는데 심이기가 가신의 신분으로 여후를 모셨다.
其後從破項籍為侯,幸於呂太后。
그 후 한왕을 따라 항적을 격파하여 侯에 봉해졌고, 여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及為相,居中,百官皆因決事。
좌승상이 되어 궁중에 거주하게 되자 백관들이 모두 그를 통해 정사를 결정하였다.
呂媭常以前陳平為高帝謀執樊噲,數讒曰:
「陳平為相非治事,日飲醇酒,戲婦女。」
呂嬃는 늘 전에 진평이 고제에게 번쾌를 잡을 계책을 냈던 일로 여러 차례 참소하였다.
“진평이 승상이 되어서 정무를 돌보지 않고 날마다 좋은 술이나 마시고 부녀자를 희롱합니다.”
陳平聞,日益甚。
진평이 알고 날로 더 심하게 행동하였다.
呂太后聞之,私獨喜。
여태후가 그 사실을 듣고 남몰래 혼자 기뻐하였다.
面質呂媭於陳平曰:
「鄙語曰『兒婦人口不可用』,顧君與我何如耳。
無畏呂媭之讒也。」
여수가 있는 자리에서 진평에게 말하였다.
“속담에 ‘어린애와 부녀자의 입은 믿을 수 없다.’라고 했으니 그대가 나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볼 뿐이요.
여수의 참언은 두려워하지 마시오.”
呂太后立諸呂為王,陳平偽聽之。
여태후가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자 진평은 짐짓 거기에 따르는 척 하였다.
及呂太后崩,平與太尉勃合謀,卒誅諸呂,立孝文皇帝,陳平本謀也。
여태후가 붕어하자 진평은 태위 주발과 함께 모의하여 끝내 여씨들을 죽이고 효문제를 옹립하니 진평이 주모자였다.
審食其免相。
심이기가 승상에서 면직되었다.
▶ 孝文皇帝: 전한의 제5대 황제인 漢文帝 劉恒. 高祖劉邦의 넷째 아들로 처음에 代王에 책봉되어 中都에 도읍했다가 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太尉周勃과 승상 陳平등 중신의 옹립으로 제위에 올랐다.
孝文帝立,以為太尉勃親以兵誅呂氏,功多;
陳平欲讓勃尊位,乃謝病。
문제가 즉위한 후 태위 周勃이 몸소 병사를 동원하여 여씨들을 죽인 공이 많다고 여겼고, 진평은 주발에게 존귀한 지위를 양보하고 병을 핑계로 사직하려 하였다.
孝文帝初立,怪平病,問之。
문제가 막 즉위하고, 진평이 병을 핑계 댐이 괴이하여 진평에게 물었다.
平曰:
「高祖時,勃功不如臣平。
及誅諸呂,臣功亦不如勃。
願以右丞相讓勃。」
진평이 대답하였다.
“고조 때 주발의 공은 신 진평만 못했습니다.
여씨들을 죽인 일에서 신의 공 역시 주발만 못했습니다.
원하옵건대 우승상의 직위를 주발에게 양보하고자 합니다.”
於是孝文帝乃以絳侯勃為右丞相,位次第一;
平徙為左丞相,位次第二。
이에 효문제는 강후 주발을 우승상에게 임명하니 서열 첫 번째였고, 진평을 좌승상으로 옮기니 서열 두 번째였다.
賜平金千斤,益封三千戶。
진평에게 금 1천근을 하사하고 식읍 3천호를 더 봉해주었다.
▶ 太尉勃: 絳侯 周勃. 前漢의 명신. 시호는 武侯公. 漢高祖 때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후에 呂氏一族이 난을 일으키자, 陳平과 더불어 여씨를 평정하고, 文帝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사기 세가 권57. 絳侯周勃世家>
▶ 謝病: 병을 구실삼아 사직하다.
居頃之,孝文皇帝既益明習國家事,朝而問右丞相勃曰:
「天下一歲決獄幾何?」
얼마 후 문제는 이미 모든 국가 대사에 점차 익숙해지니,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말하였다.
“나라에서 1년 동안 소송사건을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나 되오?”
勃謝曰:
「不知。」
주발이 사죄하며 말하였다.
“모릅니다.”
問:
「天下一歲錢穀出入幾何?」
문제가 또 물었다.
“나라에 1년 동안 들어오고 나가는 돈과 곡식이 얼마나 됩니까?”
勃又謝不知,汗出沾背,愧不能對。
주발은 또 모른다고 사죄하되,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
於是上亦問左丞相平。
이에 문제가 또 좌승상 진평에게 물었다.
平曰:
「有主者。」
진평이 대답하였다.
“주관하는 관리가 있습니다.”
上曰:
「主者謂誰?」
문제가 물었다.
“주관하는 관리란 누구를 말하는가?”
平曰:
「陛下即問決獄,責廷尉;
問錢穀,責治粟內史。」
진평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소송사건 판결은 정위에게 물으시면 되고, 돈이나 곡식에 대해서는 治粟內史에게 물으시면 됩니다.”
上曰:
「茍各有主者,而君所主者何事也?」
문제가 물었다.
“정말 각자 주관하는 관리가 있다면 그대가 주관하는 일은 무엇이오?”
平謝曰:
「主臣!
陛下不知其駑下,使待罪宰相。
宰相者,上佐天子理陰陽,順四時,下育萬物之宜,外鎮撫四夷諸侯,內親附百姓,使卿大夫各得任其職焉。」
진평은 사죄하며 말하였다.
“황공하옵니다!
폐하께서 신이 재능이 모자람을 모르시고 재상이라는 직책에 앉히셨습니다.
재상이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여 음양을 다스리고 四時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만물을 알맞게 기르고, 밖으로는 사방 소수민족과 제후들을 어루만지며, 안으로 백성들을 가까이하여 화목하게 하며, 경대부로 하여금 각자 맡은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 責: 문의하다.
▶ 茍: 참으로. 진실로.
▶ 主臣: 황공하옵니다. 황송함을 표시하는 말.
▶ 駑下: 재능이 모자라 남에게 뒤떨어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駑은 둔한 말. 무능하다.
▶ 待罪: 죄를 기다리다. 관리가 자기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겸손하게 이른 말.
孝文帝乃稱善。
문제가 이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右丞相大慚,出而讓陳平曰:
「君獨不素教我對!」
우승상 주발은 크게 부끄러워 조정에서 나오자 진평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그대는 어째서 평소 나에게 그런 대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소?”
陳平笑曰:
「君居其位,不知其任邪?
且陛下即問長安中盜賊數,君欲彊對邪?」
진평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임무를 몰랐단 말이오?
만약 폐하께서 장안의 도둑들 숫자를 물으면 그대는 억지로 대답하려고 했소?”
於是絳侯自知其能不如平遠矣。
이에 강후는 자신이 능력이 진평에 훨씬 못 미침을 알았다.
居頃之,絳侯謝病請免相,陳平專為一丞相。
얼마 후 강후가 병을 핑계로 승상직 사퇴를 청하니, 진평 만이 유일한 승상이 되었다.
孝文帝二年,丞相陳平卒,謚為獻侯。
문제2년(기원전178년)에 승상 진평이 죽었고, 시호를 獻侯라 하였다.
子共侯買代侯。二年卒,子簡侯恢代侯。
아들 共侯 陳買가 후의 작위를 이었다가 2년 만에 죽고, 아들 簡侯 陳恢가 후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二十三年卒,子何代侯。
23년 뒤, 간후가 죽고 아들 陳何가 후의 작위를 이었다.
二十三年,何坐略人妻,棄市,國除。
23년 뒤 진하가 남의 아내를 강탈한 죄로 사형을 당함으로써 봉국이 폐지되었다.
始陳平曰:
「我多陰謀,是道家之所禁。
吾世即廢,亦已矣,終不能復起,以吾多陰禍也。」
당초에 진평이 말하였다.
“내게 은밀한 계책이 많았는데 道家에서 금하는 것들이었다.
나의 후대가 폐출된다면 그것으로 끝이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터이니, 내게 남모르는 화근이 많기 때문이다.”
然其後曾孫陳掌以衛氏親貴戚,願得續封陳氏,然終不得。
그러나 그의 증손 陳掌이 衛氏와 친인척으로 귀해져서 진씨의 봉호를 이어가기를 바랐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 陰禍: 은밀히 쌓인 화근.
太史公曰:
陳丞相平少時,本好黃帝、老子之術。
方其割肉俎上之時,其意固已遠矣。
傾側擾攘楚魏之閒,卒歸高帝。
常出奇計,救紛糾之難,振國家之患。
及呂后時,事多故矣,然平竟自脫,定宗廟,以榮名終,稱賢相,豈不善始善終哉!
非知謀孰能當此者乎?
태사공은 말한다.
“승상 진평은 젊었을 때 본래 황제·노자의 학설을 좋아하였다.
그가 일찍이 도마 위의 제사 고기를 나눌 때부터 그의 포부가 이미 원대하였다.
그 후 楚와 魏 사이를 방황하다가 마침내 고제에게로 귀순하였다.
늘 기발한 계책을 내서 번잡한 어려움을 풀고 나라의 환난을 털어냈다.
여후 때에 이르러 국사에 변고가 많았으나, 진평은 결국 자기 힘으로 벗어나 종묘를 안정시키고 榮名으로 생을 마쳐서 현명한 재상이라 칭송되니, 어찌 처음이 좋고 끝도 좋았지 않았는가!
지혜와 모략이 아니고 무엇이 이것을 감당하겠는가?”
▶ 俎: 도마.
▶ 傾側擾攘: 방황하는 모습.
▶ 振: 구해내다.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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