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57-絳侯世家(강후세가)

耽古樓主 2023. 7. 11. 07:44


이篇은 30世家 중 27번째 편으로 漢나라 초기의 명장인 周勃과 주발의 아들 周亞夫에 대한 合傳이다.
周勃은 고조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할 때 고조를 따라 천하 평정의 공을 세우고, 絳侯에 봉하여졌다. 후에 呂氏一族이 난을 일으키자, 陳平과 더불어 여씨를 평정하고 文帝를 옹립하여 한나라 왕실을 안정시켰다.
周勃의 아들인 周亞夫는 승상을 역임했으며 文帝 6년(기원전158년)에 河內太守로 있다가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어 條侯로 봉해졌다. 景帝 前元 3년(기원전154년)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太尉로서 七國의 난을 평정하였다. 吳王을 죽인 뒤 丞相이 되었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여씨 일족이 방종하여 황실을 약화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周勃이 권모술수를 써서 여씨 일족을 제거하였다. 吳楚의 반란 때 周亞夫는 昌邑에 주둔하며 齊와 趙의 길을 막았고, 梁을 고의로 구원하지 않았다. 이에 제27편 ‘絳侯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술하였다.

世家47-絳侯世家(강후세가)

絳侯周勃者,沛人也。
絳侯周勃은 沛縣사람이다.

其先卷人,徙沛。
그의 선조는 卷縣사람인데 패현으로 이주하였다.

勃以織薄曲為生,常為人吹簫給喪事,材官引彊。
주발은 누에 채반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는데초상이 나면 늘 사람들을 위해 피리를 불어주다가 강한 활을 쏘는 材官이 되었다.

▶ 先: 先祖.
▶ 薄曲: 누에발. 누에 채반. 薄은 箔과 같다. 발, 채반.
▶ 材官: 용감하고 힘이 센 병사로 이루어진 부대.
▶ 引强: 강한 활을 당기다.

 

高祖之為沛公初起,勃以中涓從攻胡陵,下方與。
高祖가 沛公을 칭하며 막 봉기하자 주발은 中涓의 신분으로 고조를 따라서 胡陵을 공격하고 方與를 함락시켰다.

方與反,與戰,卻適。
방여가 배반하니 그들과 교전하여 반란군을 물리쳤다.

攻豐。擊秦軍碭東。
그후 豐邑을 공격하고 碭郡동쪽에서 秦軍을 공격하였다.

還軍留及蕭。復攻碭,破之。
군대를 留縣과 蕭縣으로 돌려 다시 탕군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下下邑,先登。
下邑을 함락할 때는 가장 먼저 성 위에 올랐다.

賜爵五大夫。

고조가 五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攻蒙、虞,取之。
蒙城과 虞城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 中涓: 侍從官.
▶ 卻適: 적을 물리치다. 適은 敵과 통용된다.
▶ 登: 성벽에 오르다.

▶ 五大夫: 진나라의 등작제 9등작. 전국 때 진나라가 군공에 따라 수여하는 20 등급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작위로서 세읍(稅邑) 300호를 받아 조세를 거둘 수 있고 죄를 짓게 될 경우 사면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오대부부터 군사지휘권을 부여했다.

 

擊章邯車騎,殿。
章邯의 전차병과 기병을 공격할 때는 후위부대에 섰다.


定魏地。
魏 땅을 평정하였다.

攻爰戚、東緡,以往至栗,取之。
爰戚과 東緡을 공격하고 곧장 현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였다.

攻齧桑,先登。擊秦軍阿下,破之。
齧桑을 공격할 때는 가장 먼저 성 위에 올랐다東阿城 아래에서 秦軍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追至濮陽,下甄城。
濮陽까지 뒤쫓아 甄城을 함락시켰다.

攻都關、定陶,襲取宛朐,得單父令。
都關과 定陶를 공격하고 宛朐를 기습하여 점령하고 單父의 현령을 사로 잡았다.

夜襲取臨濟,攻張,以前至卷,破之。
밤에 臨濟를 기습하여 점령하고張縣을 공격하고선봉에 서서 卷縣에 이르러 그곳을 격파하였다.

擊李由軍雍丘下。
雍丘城 아래에서 李由의 을 공격하였다.

攻開封,先至城下為多。
開封을 공격할 때는 주발이 먼저 성 아래에 이르러 전공을 많았다.

後章邯破殺項梁,沛公與項羽引兵東如碭。
그 후 장한이 項梁을 격파하고 죽이니패공과 項羽는 병사들을 이끌고 동쪽 탕군으로 돌아갔다.

自初起沛還至碭,一歲二月。
처음 패현에서 봉기하여 탕군으로 돌아올 때까지 일 년 두 달이 걸렸다.

▶ 章邯(장한): 秦나라 말기의 장수로 陳勝과 吳廣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그 후 宦官趙高의 박해를 받아 項羽에게 투항하였다.
▶ 殿: 하등급의 공. 후위부대.
▶ 令: 縣令.
▶ 李由: 秦나라의 장군으로 승상 李斯의 맏아들.
▶ 多: 전공이 많다.

 

 

楚懷王封沛公號安武侯,為碭郡長。
楚懷王은 패공을 安武侯에 봉하고 탕군의 郡長에 임명하였다.

沛公拜勃為虎賁令,以令從沛公定魏地。
패공은 주발을 虎賁令에 임명했으며주발은 호분령의 신분으로 패공을 따라 땅을 평정하였다.

攻東郡尉於城武,破之。
城武에서 東郡郡尉의 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擊王離軍,破之。

秦將 王離의 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攻長社,先登。
長社를 공격할 때 주발이 제일 먼저 성 위에 올랐다.

攻潁陽、緱氏,絕河津。
潁陽과 緱氏를 공격하여 황하 나루를 끊었다.

擊趙賁軍尸北。
尸鄕 북쪽에서 趙賁의 을 공격하였다.

南攻南陽守齮,破武關、峣關。
남쪽으로 南陽군수 呂齮를 공격하고 武關과 嶢關을 격파하였다.

破秦軍於藍田,至咸陽,滅秦。
藍田에서 秦軍을 격파하고 咸陽에 이르러 왕조를 멸망시켰다.

▶ 楚懷王: 웅심. 楚懷王熊心. 초회왕 熊槐의 손자. 기원전209년 項梁이 거병하고 옹립하여 楚王이 되었다.

 

項羽至,以沛公為漢王。
항우가 함양에 이르러 패공을 漢王에 봉하였다.

漢王賜勃爵為威武侯。
한왕은 주발에게 威武侯의 작위를 내렸다.

從入漢中,拜為將軍。
주발이 한왕을 따라서 漢中으로 진입하자 주발을 장군에 임명하였다.

還定三秦,至秦,賜食邑懷德。
주발이 회군하여 三秦을 평정하고 땅에 이르자 한왕은 懷德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攻槐裏、好畤,最。
槐里와 好畤공격에서도 공이 가장 많았다.

擊趙賁、內史保於咸陽,最。
함양에서 조분과 內史保를 공격할 때에도 공이 가장 많았다.


北攻漆。

북으로 漆縣을 공격하였다.

擊章平、姚卬軍。
章平과 姚卬을 공격하였다.

西定汧。

서쪽으로 汧縣을 평정하였다.

還下郿、頻陽。
돌아와 郿城과 頻陽을 함락시켰다.

圍章邯廢丘。

廢丘에서 章邯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破西丞。
西縣 縣丞을 격파하였다.

擊盜巴軍,破之。

盜巴의 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攻上邽。
上邽를 공격하였다.

東守峣關。

동쪽으로 가서 嶢關을 지켰다.

轉擊項籍。
을 돌려 항적을 공격하였다.

攻曲逆,最。
曲逆을 공격할 때에도 공이 가장 많았다.

還守敖倉,追項籍。
돌아와 敖倉을 지키다가 항적을 추격하였다.

籍已死,因東定楚地泗川[水]、東海郡,凡得二十二縣。
항우가 죽은 후 승세를 타고 동쪽으로 楚 땅인 泗水와 東海 두 을 평정하고 모두 22현을 점령하였다.

▶ 食邑: 封地.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
▶ 最: 최고의 공.
▶ 丞: 縣丞.
▶ 曲逆: 지명으로 漢書에는 曲遇로 기록되어 있다.

 

 

還守雒陽、櫟陽,賜與潁陽[陰]侯共食鐘離。
돌아와 雒陽과 櫟陽을 수비하여 鍾離縣을 潁陰侯 灌嬰과 공유하는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以將軍從高帝反者燕王臧荼,破之易下。
장군의 신분으로 고조를 따라가서 반란을 일으킨 燕王 臧荼를 易縣성 아래에서 격파하였다.

所將卒當馳道為多。
주발이 거느린 군사들이 馳道에서 반군을 방어하여 공로가 가장 컸다.

賜爵列侯,剖符世世勿絕。
고조는 주발에게 열후의 작위를 하사하고 부절을 쪼개어 주어 작위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食絳八千一百八十戶,號絳侯。
의 8,180호를 식읍으로 삼게 하여 絳侯라고 불렀다.

▶ 潁陰侯: 灌嬰. 秦나라 말기 劉邦의 시종관으로 전공을 세워 執珪의 작위에 오르고 昌文侯로 불렸다. 장군으로 齊를 평정하고, 항우를 무찔러 고조6년(기원전201년)潁陰侯에 봉해졌다. 그 후 呂后가 죽은 뒤 周勃, 陳平 등과 함께 여씨 일족을 주살하였다. <史記列傳]권95樊酈滕灌列傳>
▶ 燕王臧荼: 항우의 열여덟 제후왕 중 하나로 燕왕.
▶ 當: 적군을 방어하다.
▶ 馳道: 군왕의 거마가 다닐 수 있도록 정비 된 큰길을 지칭한다.
▶ 列侯: 왕의 아들이 봉해져 왕이나 侯가 된 경우는 諸侯라 이르고, 성씨가 다른 신하들이 공을 세워 봉해진 경우는 列侯 또는 徹侯라 하였다.
▶ 剖符: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信標로 사용하였다.
▶ 食絳: 絳縣을 식읍으로 삼게 하다.

以將軍從高帝擊反韓王信於代,降下霍人。
장군의 신분으로 고제를 따라가서반란을 일으킨 韓王信을 에서 토벌하고 霍人縣을 항복시켰다.

以前至武泉,擊胡騎,破之武泉北。
선봉에 서서 武泉에 이르러 흉노의 기병을 공격하여 무천 북쪽에서 격파하였다.

轉攻韓信軍銅鞮,破之。
군대를 돌려서 한왕 신의 을 銅鞮에서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還,降太原六城。
회군할 때 太原郡의 여섯 개의 성을 항복시켰다.

擊韓信胡騎晉陽下,破之,下晉陽。
晉陽城 아래에서 한왕 신과 흉노의 기병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진양성을 함락시켰다.

後擊韓信軍於硰石,破之,追北八十里。
그 후 硰石에서 한왕 신의 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패잔병을 80리 추격하였다.

還攻樓煩三城,因擊胡騎平城下,所將卒當馳道為多。
돌아와 樓煩의 3을 공격하고승세를 타고 平城 아래에서 흉노의 기병을 공격하니그가 거느린 병사들이 치도에서 흉노를 방어하는데 공이 가장 많았다.


勃遷為太尉。
주발은 太尉로 승진하였다.

▶ 韓王信: 韓王 韓信은 淮陰侯韓信과 同名異人이다. 漢나라의 고조 유방에 의해 韓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와 화친하려고 함이 오해를 받자, 흉노의 軍을 이끌고 漢나라의 변경으로 쳐들어왔다. <사기 권93韓信盧綰列傳>
▶ 追北: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 遷: 승진하다.

 

擊陳豨,屠馬邑。
주발은 陳豨를 공격하여 馬邑을 도륙하였다.

所將卒斬豨將軍乘馬絺。
그가 이끄는 군사들이 진희의 장군 乘馬絺를 베어 죽였다.

擊韓信、陳豨、趙利軍於樓煩,破之。
누번에서 한왕 韓王 信·陳豨·趙利의 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得豨將宋最、鴈門守圂。
진희의 部將宋最와 雁門郡의 군수 을 사로잡았다.

因轉攻得雲中守遬、丞相箕肆、將勳。
승세를 타고 공격하여 雲中郡의 군수 ·승상 箕肆·장군 을 사로잡았다.

定鴈門郡十七縣,雲中郡十二縣。
안문군의17현과 운중군의 12현을 평정하였다.

因復擊豨靈丘,破之,斬豨,得豨丞相程縱、將軍陳武、都尉高肆。
다시 승세를 타고 靈丘에서 진희를 격파하여 진희를 베어 죽이고 진희의 승상 程縱장군 陳武都尉高肆를 사로잡았다.

定代郡九縣。
代郡의 9현을 평정하였다.

▶ 陳豨: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漢高祖 劉邦을 따라 燕王 藏荼를 평정하여 陽夏侯에 봉해졌다. 고조7년(기원전200년)에 代의 相國이 되어 趙·代의 군사를 관할하였다. 고조10년(기원전197년)韓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曼丘臣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 <史記列傳권93韓信盧綰列傳>
▶ 屠: 도륙하다. 무참하게 마구 죽임.
▶ 乘馬絺: 인명. 乘馬가 姓이다.

 

燕王盧綰反,勃以相國代樊噲將,擊下薊,得綰大將抵、丞相偃、守陘、太尉弱、御史大夫施,屠渾都。
燕王盧綰이 배반하자주발은 상국의 신분으로 樊噲대신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여 薊縣을 함락시켰고노관의 대장 승상 군수 태위 과 어사대부 를 사로잡고 渾都城을 도륙하였다.

破綰軍上蘭,復擊破綰軍沮陽。
上蘭에서 노관의 을 격파했고다시 沮陽에서 노관의 을 격파하였다.

追至長城,定上谷十二縣,右北平十六縣,遼西、遼東二十九縣,漁陽二十二縣。
長城까지 추격하니 上谷郡의 12右北平郡의 16遼西와 遼東의 29漁陽郡의 22현을 평정하였다.

最從高帝得相國一人,丞相二人,將軍、二千石各三人;別破軍二,下城三,定郡五,縣七十九,得丞相、大將各一人。
고조를 따라서 출정하여 도합 상국 1승상 2장군과 2千石 관리 각 3명을 사로잡았고별도로 2개 부대를 격파하고 3개의 성을 함락시켰고 5군과 79현을 평정했으며 승상과 대장 각1명을 사로잡았다.

▶ 盧綰: 沛國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高帝 12년(기원전195)에 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진희를 공격하고, 흉노와 연대하려는 진희의 계획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흉노와의 연대를 도왔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흉노로 도망하였다. 흉노가 東胡盧王으로 삼았으나 1년여 만에 흉노에서 죽었다. <史記列傳권93. 韓信盧綰列傳>
▶ 最: 총계.
▶ 二千石: 당시 漢나라 제도는 관리가 받는 祿俸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관리의 등급을 정했는데 二千石은 中二千石·二千石·比二千石의 3대 등급이었다.

 

勃為人木彊敦厚,高帝以為可屬大事。
주발은 사람됨이 소박하고 강직하며 돈후하여 고제는 큰일을 맡길 만하다고 여겼다.

勃不好文學,每召諸生說士,東鄉坐而責之:
「趣為我語。」

주발은 문장과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서 매번 유생과 유세객들을 접견할 때는 동쪽을 향해 앉아서 그들에게 요구하였다.
내게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하시오!”

其椎少文如此。
그의 순박하고 글재주가 없기가 이와 같았다.

▶ 木彊: 소박하고 강직하다.
▶ 屬: 부탁하다.
▶ 文學: 文章과 學問.
▶ 說士: 유세객.
▶ 鄕: 向과 같다. 향하다.
▶ 趣: 促과 통용된다. 재촉하다.
▶ 椎: 질박하다. 순박하다.
▶ 少文: 글재주가 부족하다.

勃既定燕而歸,高祖已崩矣,以列侯事孝惠帝。
주발이 을 평정하고 돌아오니 고조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열후의 신분으로 惠帝를 섬겼다.

孝惠帝六年,置太尉官,以勃為太尉。
혜제6(기원전189)에 太尉의 관직을 설치하여 주발을 태위로 임명하였다.

十歲,高后崩。
10년 후 呂后가 붕어하였다.

呂祿以趙王為漢上將軍,呂產以呂王為漢相國,秉漢權,欲危劉氏。
呂祿은 趙王의 신분으로 의 上將軍이었고呂産은 呂王의 신분으로 의 相國이니그들이 의 권력을 장악해서 유씨를 위태롭게 하려 하였다.

勃為太尉,不得入軍門。
주발은 태위인데도 軍門에 들어갈 수 없었다.

陳平為丞相,不得任事。
陳平은 승상인데도 정사를 처리할 수 없었다.

於是勃與平謀,卒誅諸呂而立孝文皇帝。
이에 주발은 진평과 모의해 마침내 여씨들을 죽이고 孝文皇帝를 옹립하였다.

其語在呂后、孝文事中。
이 일은 <呂太后本紀>와 <孝文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 惠帝: 漢高祖 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고조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盈이 혜제로 즉위하였다.
▶ 秉: 장악하다.
▶ 任事: 정사를 처리하다.
▶ 其語在呂后、孝文事中: <呂太后本紀>와 <孝文本紀>.
[史記本紀]권09. 呂太后本紀

 

文帝既立,以勃為右丞相,賜金五千斤,食邑萬戶。
文帝 즉위 후 주발을 右丞相으로 임명하고 황금 5천근과 식읍 1만 호를 하사하였다.

居月餘,人或說勃曰:
「君既誅諸呂,立代王,威震天下,而君受厚賞,處尊位,以寵,久之即禍及身矣。」

한 달여 지난 뒤에 누군가가 주발에게 권하였다.
그대가 여씨 일족을 죽인 후 代王을 천자로 옹립하여 위세가 천하를 떨게 하였고그대는 후한 상을 받고 존귀한 자리에 올라 총애를 얻었으나이것이 오래가면 재난이 그대 몸에 미칠 터입니다.”


勃懼,亦自危,乃謝請歸相印。
주발은 두려워하였고또 자신도 위험하다고 여겨사직하고 승상의 도장을 반환하겠다고 청하였다.

上許之。
문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 立代王: 代王이었던 劉恒을 황제로 옹립하다. 즉, 文帝.
▶ 謝: 사직하다.

 

 

歲餘,丞相平卒,上復以勃為丞相。
일 년여 지난 후 승상 진평이 죽자 문제는 다시 주발을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十餘月,上曰:
「前日吾詔列侯就國,或未能行,丞相吾所重,其率先之。」

열 달 남짓 뒤에 문제가 말하였다.
지난번 내가 열후에게 봉지로 돌아가라고 조서를 내렸는데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이 있소승상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 솔선하여 봉지로 돌아가시오.”


乃免相就國。
이에 승상을 사직하고 봉지로 돌아갔다.

▶ 就國: 封地로 가다. 國은 封地.

 

歲餘,每河東守尉行縣至絳,絳侯勃自畏恐誅,常被甲,令家人持兵以見之。
일 년 남짓 지나 河東郡의 군수와 군위가 현을 순시하다가 絳縣에 이를 때마다 강후 주발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며 항상 갑옷을 입고 집안사람들에게도 무기를 지니고 그들을 만나라고 명하였다.

其後人有上書告勃欲反,下廷尉。
그 후 누군가가 글을 올려 주발이 반역을 꾀한다고 고하자문제는 廷尉에게 처리토록 하였다.

廷尉下其事長安,逮捕勃治之。
정위는 그 일을 장안의 관리에게 교부하여 주발을 체포하여 심리토록 하였다.

勃恐,不知置辭。

주발은 겁이 나서 어떻게 답변해야 좋을지 몰랐다.

吏稍侵辱之。
옥리가 갈수록 주발을 모욕하였다.

勃以千金與獄吏,獄吏乃書牘背示之,曰

「以公主為證」。
주발은 천금을 옥리에게 주었더니 옥리가 목간의 뒷면에다 글을 써서 주발에게 보여주었다.
공주를 증인으로 세우시오.”

公主者,孝文帝女也,勃太子勝之尚之,故獄吏教引為證。
공주란 문제의 딸로 주발의 맏아들 勝之가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옥리가 공주를 끌어다 증인으로 세우라고 가르친 것이다.

▶ 行縣: 군수와 군위가 각 현을 순시하다. 行은 순시하다.
▶ 被: 披와 같다. 입다.
▶ 廷尉: 獄事를 다스릴 때에 반드시 조정에 물어 사람들과 함께 다스리는 관직.
▶ 下: 교부하다.
▶ 治: 審理하다.
▶ 稍: 점점.
▶ 牘: 서찰. 木簡. 글씨를 쓰는 나뭇조각.
▶ 尚: 신분·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다.

 

 

勃之益封受賜,盡以予薄昭。
주발은 추가로 하사받았던 봉지를 모두 박태후의 동생인 薄昭에게 주었었다.

及系急,薄昭為言薄太后,太后亦以為無反事。
소송사건이 급박해지자 박소가 태후에게 주발을 위해 사정을 말했고박태후 역시 반란 사실은 없다고 여겼다.

文帝朝,太后以冒絮提文帝,曰:
「絳侯綰皇帝璽,將兵於北軍,不以此時反,今居一小縣,顧欲反邪!」

문제가 알현하자 태후는 두건을 문제에게 던지며 말하였다.
강후는 황제의 옥새를 매고 북군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을 때도 반역하지 않았는데지금 작은 현 하나를 가졌는데 오히려 반란을 꾀했겠습니까!”


文帝既見絳侯獄辭,乃謝曰:
「吏[事]方驗而出之。」

문제는 강후의 판결서를 보았기에 곧 사죄하며 말하였다.
관리들이 바로 증거를 살펴서 석방할 터입니다.”


於是使使持節赦絳侯,復爵邑。
그리고는 使者를 시켜 부절을 가지고 가서 강후를 사면하고 작위와 봉읍을 회복시켰다.

絳侯既出,曰:
「吾嘗將百萬軍,然安知獄吏之貴乎!」
강후가 감옥에서 나온 후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백만 대군을 거느렸지만 옥리가 이렇게 대단한 줄 어찌 알았으랴!”

▶ 系: 구금하다. 수감하다.
▶ 薄昭: 박태후의 동생.
▶ 薄太后: 고조 劉邦의 후궁. 文帝의 생모
▶ 冒絮: 두건.
▶ 提: 던지다.
▶ 綰: 매다. 걸다.
▶ 顧: 도리어.
▶ 驗: 조사하여 증명하다. 검증.
▶ 節: 符節.
▶ 獄辭: 소송사건의 판결서.

 

絳侯復就國。
강후는 다시 봉국으로 돌아갔다.


孝文帝十一年卒,謚為武侯。
주발은 문제11(기원전169)에 죽어 시호를 武侯라 하였다.

子勝之代侯。
아들 周勝之가 작위를 계승하였다.

六歲,尚公主,不相中,坐殺人,國除。
6년 뒤에 공주를 아내로 맞았지만 서로 뜻이 맞지 않고살인에 연루되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絕一歲,文帝乃擇絳侯勃子賢者河內守亞夫,封為條侯,續絳侯後。
작위가 중단된 지 일 년 후 문제는 강후 주발의 아들 중 현능한 河內군수 周亞夫를 선발하여 條侯에 봉하고 강후의 작위를 잇게 하였다.

▶ 相中: 서로 맞다.
▶ 坐: 죄에 대하여 벌을 받다. 연좌되다.
▶ 絕: 작위가 중단되다.

 

條侯亞夫自未侯為河內守時,許負相之,曰:
「君後三歲而侯。

侯八歲為將相,持國秉,貴重矣,於人臣無兩。
其後九歲而君餓死。」
조후 주아부가 열후가 되기 전 하내군수였을 때 許負가 그의 관상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는 3년 후에 후의 작위를 받겠다.

후가 된 후 8년 뒤 將相이 되고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니그 존귀함이 신하로서 둘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9년 뒤에 그대는 굶어 죽을 터이다.”

亞夫笑曰:
「臣之兄已代父侯矣,有如卒,子當代,亞夫何說侯乎?
然既已貴如負言,又何說餓死?
指示我。」
주아부가 웃으며 말하였다.
신의 형이 이미 아버님의 후의 작위를 이었고만약 형이 돌아가시더라도 당연히 그 아들이 계승할 터인데제가 어찌 후가 됨을 기뻐하겠소?
그런데 그대의 말처럼 부귀해진다고 해놓고 또 굶어 죽는다니 무슨 말이오?
내게 잘 가르쳐주시오.”

▶ 條侯亞夫: 周亞夫. 沛郡사람으로 西漢의 武將이자 군사가, 정치가이다. 周勃의 차남으로 부친의 작위를 이어받아 絳侯가 되었다. 河內郡守, 車騎將軍, 太尉, 丞相등을 역임하였다. 吳楚七國의 난 때 군사를 이끌고3개월 만에 반군을 평정하였다. 한 경제 때 억울하게 반란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 許負: 字는 莫負. 서한 초기 저명한 여자 관상가. 温縣令 許望의 딸.
▶ 秉: 柄과 통용된다. 권력.
▶ 有如: 만약.
▶ 然既: 그러나 이왕
▶ 負言: 許負의 말.

 

 

許負指其口曰:
「有從理入口,此餓死法也。」

허부는 주아부의 입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세로선이 입까지 내려와 있는데이것이 굶어 죽을 입니다.”


居三歲,其兄絳侯勝之有罪,孝文帝擇絳侯子賢者,皆推亞夫,乃封亞夫為條侯,續絳侯後。
그로부터 3년 뒤에 그의 형 강후 勝之가 죄를 지었고문제는 강후의 아들 중 현능한 자를 선발하자 모두들 주아부를 추천하여 주아부를 조후에 봉하고 강후의 작위를 잇게 하였다.

▶ 從理: 縱紋. 세로무늬.
▶ 法: 面相. 얼굴 생김새.

文帝之後六年,匈奴大入邊。
문제 後元 6(기원전158)에 흉노가 대거 변경을 침입하였다.

乃以宗正劉禮為將軍,軍霸上;
祝茲侯徐厲為將軍,軍棘門;
以河內守亞夫為將軍,軍細柳:以備胡。
이에 宗正 劉禮를 장군으로 삼아 霸上에 주둔하고,
祝玆侯 徐厲를 장군으로 삼아 棘門에 주둔하고고,
하내군수 주아부를 장군으로 삼아 細柳에 주둔하여 흉노를 방비하게 하였다.

上自勞軍。
문제가 친히 을 위로하러 갔다.

至霸上及棘門軍,直馳入,將以下騎送迎。
패상과 극문의 군영에 이르러서곧장 말을 달려 들어가니 장군 이하 모두가 말을 타고 나와 맞이하였다.

已而之細柳軍,軍士吏被甲,銳兵刃,彀弓弩,持滿。
그 후 세류의 군영에 이르자 관리와 병사들이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병기를 들고 화살에 활을 잔뜩 당겨놓고 있었다.

天子先驅至,不得入。
천자의 선발대가 도착했으나 들어갈 수 없었다.

▶ 後六年: 文帝後元 6년(기원전158년). 문제17년(기원전163년)을 後元원년으로 개원하였다.
▶ 劉禮: 楚文王. 초원왕 劉交의 아들. 종정을 맡고 있다가, 경제가 즉위하면서 형제들과 함께 작위를 받아 平陸侯에 봉해졌다. 초왕의 작위를 이은 조카 유무가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다 패배하고 자결했기에 景帝는 다시 楚元王의 막내 아들 平陸侯 劉禮를 楚왕으로 삼아 원왕의 뒤를 잇게 하였다. 재위 3년 만에 죽었고, 시호를 文이라 하였다.
▶ 彀弓弩: 활을 당기다. 彀는 당길‘구’

 

 

先驅曰:
「天子且至!」

선발대가 말하였다.
천자께서 곧 도착하신다!”

軍門都尉曰:
「將軍令曰『軍中聞將軍令,不聞天子之詔』。」

軍門의 도위가 말하였다.
장군께서 명령하시기를 軍中에서는 장군의 명령을 듣을 뿐천자의 조서라도 듣지 않는다.’라고 하셨소.”


居無何,上至,又不得入。
얼마 후 문제가 도착했으나 역시 들어갈 수 없었다.

於是上乃使使持節詔將軍:
「吾欲入勞軍。」

이에 문제는 사신을 시켜 부절을 갖고 가서 장군에게 명령하였다.
짐이 들어가 을 위로하려 한다.”

亞夫乃傳言開壁門。
주아부는 그때서야 군영의 문을 열라고 전하였다.

壁門士吏謂從屬車騎曰:
「將軍約,軍中不得驅馳。」

軍門을 지키는 군관이 황제를 따르는 車騎(병거와 기마)에게 말하였다.
장군의 규율에는 군중에서 말을 달릴 수 없습니다.”


於是天子乃按轡徐行。
이에 천자가 말고삐를 쥐고 천천히 걸어갔다.

至營,將軍亞夫持兵揖曰:
「介胄之士不拜,請以軍禮見。」
군영에 이르자 장군 주아부가 무기를 든 채 읍하면서 말하였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는 큰절을 하지 않는 법이니 軍禮로 뵙겠습니다.”

▶ 壁: 軍壘.
▶ 約: 규약. 규정.
▶ 按轡: 말의 고삐를 당기다.
▶ 介胄: 갑옷과 투구.

 

 

天子為動,改容式車。
천자는 감동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수레의 횡목을 잡고 경의를 표하였다.

使人稱謝:
「皇帝敬勞將軍。」。
사람을 보내 치사하였다.

황제께서 삼가 장군을 위로하는 바이오.”

成禮而去
예를 마치고 군영을 떠났다.

既出軍門,群臣皆驚。
군문을 나오고 나자 신하들이 모두 놀랐다.

文帝曰:
「嗟乎,此真將軍矣!

曩者霸上、棘門軍,若兒戲耳,其將固可襲而虜也。
至於亞夫,可得而犯邪!」
문제가 말하였다.

그야말로 진정한 장군이로다!
지난번 패상과 극문의 은 아이들 장난과 같았으니그곳의 장수들은 기습하여 사로잡을 수 있겠다.
그러나 주아부는 범할 수 있겠는가!”


稱善者久之。

칭찬하기를 오래 하였다.

月餘,三軍皆罷。

문제는 한 달 남짓 후에 삼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乃拜亞夫為中尉。
그리고는 주아부를 中尉에 임명하였다.

▶ 式: 軾으로 수레 앞턱의 횡목. 수레 앞의 횡목에 의지하여 경의를 표하다
▶ 曩(낭): 전에. 종전.
▶ 中尉: 수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관리.

 

孝文且崩時,誡太子曰:
「即有緩急,周亞夫真可任將兵。」

효문제가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태자에게 훈계하였다.
위급한 일이 있으면주아부에게 참으로 을 거느리게 맡길 수 있을 터이다.”


文帝崩,拜亞夫為車騎將軍。
문제가 세상을 떠나자 景帝는 주아부를 車騎將軍에 임명하였다.

▶ 即: 만일. 만약.
▶ 緩急: 위급한 일.

 

 

孝景三年,吳楚反。
孝景帝 3(기원전154)에 와 가 배반하였다.

亞夫以中尉為太尉,東擊吳楚。
주아부는 중위로서 太尉의 직무를 대행하여 동으로 와 를 공격하였다.

因自請上曰:
「楚兵剽輕,難與爭鋒。

願以梁委之,絕其糧道,乃可制。」
주아부가 직접 경제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楚軍은 날래고 날렵하여 맞서 싸우기 어렵습니다.
을 포기하고 저들의 糧道를 끊도록 하십시오그러면 제압할 수 있겠습니다.”

上許之。
경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 景帝: 前漢의 제6대 황제로, 文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孝文皇后이다. 晁錯의 계책을 써서 諸侯王들의 封地를 삭감하였으며, 자주 법령을 바꾸고 제후왕의 세력을 억압했기 때문에 경제3년(기원전154년)에 吳와 楚 등 7국이 난을 일으켰다.
▶ 吳楚反: 吳楚七國의 반란
▶ 剽輕: 용맹하고 날렵하다.
▶ 委: 포기하다. 위임하다
▶ 饟道: 식량 수송로.

 

太尉既會兵滎陽,吳方攻梁,梁急,請救。
태위 주아부가 滎陽에서 군사들과 합류함에가 막 를 공격하여 이 위급해지자 구원을 요청하였다.

太尉引兵東北走昌邑,深壁而守。
태위 주아부가 병사들을 이끌고 동북쪽 昌邑으로 달려가 深壁(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음)하고 수비하였다.

梁日使使請太尉,太尉守便宜,不肯往。
가 날마다 사신을 보내 태위에게 요청했으나 태위는 유리한 점을 지키며 구하러 가지 않았다.

梁上書言景帝,景帝使使詔救梁。
가 글을 올려 경제에게 보고하자 경제는 사신을 보내 을 구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 梁: 梁. 梁孝王劉武. 竇太后의 막내아들. 劉武. 대왕, 회양왕을 역임했고 최종적으로는 양왕이다. 전한 문제의 둘째 아들이며 전한 경제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 深壁: 성벽을 높이 쌓다. 방어를 강화하다.
▶ 便宜: 유리하다. 즉, 나라의 유리한 점을 생각함. 주아부는 梁을 吳가 공격하도록 내버려두라고 조언을 받은 바 있었다.

 

 

太尉不奉詔,堅壁不出,而使輕騎兵弓高侯等絕吳楚兵後食道。
태위는 조서를 받들지 않고 보루를 굳게 지키면서 출병하지 않았으며輕騎兵을 이끄는 弓高侯 등에게 ·楚軍의 후방 糧道를 끊게 하였다.

吳兵乏糧,饑,數欲挑戰,終不出。
吳軍은 식량이 부족하여 굶주리자 몇 번이고 싸움을 걸어왔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夜,軍中驚,內相攻擊擾亂,至於太尉帳下。
밤에 軍中이 다급하였는데아군끼리 공격하는 소란이 일어나 태위의 군막까지 알려졌다.

太尉終臥不起。

그러나 태위는 끝내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頃之,復定。
잠시 뒤 다시 안정되었다.

後吳奔壁東南陬,太尉使備西北。
그 후 吳軍이 보루 동남쪽 귀퉁이를 습격했는데태위는 서북쪽을 방비하게 하였다.

已而其精兵果奔西北,不得入。
잠시 후 의 정예병이 과연 서북쪽을 공격해왔으나 침입하지 못하였다.

吳兵既餓,乃引而去。
吳軍은 이미 굶주려있어 병사들을 이끌고 철수하였다.

太尉出精兵追擊,大破之。
태위는 정예병으로 추격하여 吳軍을 대파하였다.

▶ 弓高侯: 韓頹當. 韓王 信의 아들로, 한왕이 기원전200년에 흉노로 달아나 頹當城에서 낳았기에 그 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다. <史記列傳권106. 吳王濞列傳>
▶ 食道: 식량 보급로.
▶ 陬: 구석. 모퉁이.
▶ 奔: 奔襲. 기습하다.
▶ 引: 물러나다.

 

吳王濞棄其軍,而與壯士數千人亡走,保於江南丹徒。
오왕 劉濞는 자신의 을 포기하고 壯士 수천 명과 도주하여 장강 남쪽 丹陽의 무리에서 유지하였다.

漢兵因乘勝,遂盡虜之,降其兵,購吳王千金。
漢軍은 승세를 몰아 반란군을 모조리 사로잡고 그 병사들을 투항시키고 오왕에게 천금을 懸賞하였다.

月餘,越人斬吳王頭以告。
한 달 남짓 후에 나라 사람이 오왕의 머리를 베어가지고 보고하였다.

凡相攻守三月,而吳楚破平。
모두 서로 석 달 동안 攻守 끝에 오초의 반란은 깨지고 평정되었다.

於是諸將乃以太尉計謀為是。
이에 장수들은 태위의 계책이 옳았다고 여겼다.

由此梁孝王與太尉有卻。
이 일로 인하여 梁孝王과 태위는 사이가 벌어졌다.

▶ 吳王濞: 吳王 劉濞. 前漢의 제후왕으로 漢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하는 것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史記列傳권106. 吳王濞列傳(오왕비열전: 吳王 劉濞>
▶ 保於江南丹徒: 오왕은 곧 그 휘하의 장사 수천 명과 함께 밤을 틈타 도망쳐 장강을 건너 丹陽으로 달아나 東越의 보호를 받았다.
▶ 購: 현상금을 걸고 찾다
▶ 越人斬吳王頭以告: 동월왕은 오왕을 속여 오왕이 나가서 군사를 위로할 때 사람을 시켜 창으로 오왕을 찔러 죽이고 그 머리를 그릇에 담아 속도가 빠른 역마 편으로 한나라 황제에게 올렸다. <史記列傳권106. 吳王濞列傳>
▶ 郤: 틈. 원한.

 

歸,復置太尉官。
주아부가 돌아오자 다시 太尉官을 설치하였다.

五歲,遷為丞相,景帝甚重之。
5년 뒤 승상으로 승진하니 경제가 매우 중시하였다.

景帝廢栗太子,丞相固爭之,不得。
경제가 栗太子를 폐하려 하자 승상은 한사코 반대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景帝由此疏之。
경제가 이 때문에 주아부를 멀리하였다.

而梁孝王每朝,常與太后言條侯之短。
또한 양효왕은 입조할 때마다 늘 태후에게 조후의 단점을 말하곤 하였다.

▶ 栗太子: 景帝의 맏아들인 劉榮. 栗姬의 소생으로 율태자라고 칭하였다. 태자였으나 폐위되어 임강민왕이 되었고, 종묘의 영역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로 경제에게 소환되었을 때 중위부로 가서 심문을 받았는데, 중위 질도가 매우 엄하게 꾸짖자 두려워하여 자결하였다.

 

竇太后曰:
「皇后兄王信可侯也。」

두 태후가 말하였다.
왕 황후의 오라비 王信이 후로 봉할 만하오.”

景帝讓曰:
「始南皮、章武侯先帝不侯,及臣即位乃侯之。
信未得封也。」

경제는 사양하며 말하였다.
당초 南皮侯와 章武侯는 선제께서 후로 삼지 않으셨고신이 즉위하고서야 그들을 후로 봉했습니다.

왕신은 아직 후로 봉할 수 없습니다.”

竇太后曰:
「人主各以時行耳。

自竇長君在時,竟不得侯,死後乃[封]其子彭祖顧得侯。
吾甚恨之。

帝趣侯信也!」
두 태후가 말하였다.
군주는 각기 때에 따라 일을 처리할 뿐입니다.

나의 오빠 竇長君은 생전에 끝내 후가 되지 못하고 죽은 뒤 그의 아들 竇彭祖가 도리어 후가 되었지요.
나는 그 일이 매우 한스럽습니다.

황제께서는 서둘러 왕신을 후로 삼으세요.”

▶ 皇后兄王信: 경제의 王娡의 오빠이다. 경제가 제후로 삼으려고 했다가 주아부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주아부가 죽은 뒤인 中元 5년(기원전145년)에서야 蓋侯에 봉해졌다
▶ 竇太后: 竇姬. 竇猗房. 漢文帝劉恆의 처이며 景帝의 어머니이다. 代王劉恒은 漢나라의 5대 皇帝: 문제가 되어 代에서 장안으로 돌아왔다. 슬하에 자녀로는 장남 漢景帝劉啟, 차남 梁孝王劉武, 長女로 館陶長公主劉嫖가 있었다.
▶ 南皮: 두태후의 오빠 竇長君이 죽은 후 경제가 두장군의 아들 竇彭祖를 남피후에 봉하였다.
▶ 章武侯: 두태후의 동생 竇廣國은 경제가 장무후로 봉하였다.
▶ 竇長君: 竇建. 文帝竇皇后의 오빠이다.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하여 남에게 팔려갔다. 누이가 황후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上書하여 돌아와 동생 竇廣國과 함께 田宅을 하사받았다.

 

 

景帝曰:
「請得與丞相議之。」

경제가 말하였다.
승상과 상의하도록 해주십시오.”

丞相議之,亞夫曰:
「高皇帝約『非劉氏不得王,非有功不得侯。
不如約,天下共擊之』。
今信雖皇后兄,無功,侯之,非約也。」

승상 주아부와 상의하자 주아부가 말하였다.
고황제께서 규율을 정하시기를, ‘유씨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고공이 없으면 후가 될 수 없다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천하가 함께 그를 공격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왕신은 황후의 오라비이기는 하지만 공이 없으니 그를 후로 삼음은 규정이 아닙니다.”


景帝默然而止。
경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이 일을 중지하였다.


其後匈奴王[唯]徐盧等五人降,景帝欲侯之以勸後。
그 뒤흉노왕 唯徐盧 등 다섯 사람이 항복해오자경제는 이들을 후로 삼아 뒷사람을 고무하려 하였다.

丞相亞夫曰:
「彼背其主降陛下,陛下侯之,則何以責人臣不守節者乎?」

승상 주아부가 말하였다.
저들은 군주를 배반하고 폐하께 항복했는데도 폐하께서 후로 삼으신다면절개를 지키지 않은 신하들을 무엇으로 꾸짖겠습니까?”


景帝曰:
「丞相議不可用。」

경제가 말하였다.
승상의 건의는 받아들일 수 없소.”

乃悉封[唯]徐盧等為列侯。
곧 唯徐盧등을 모두 열후로 삼았다.

亞夫因謝病。

주아부는 이로 인해 병을 구실로 사직하였다.

景帝中三年,以病免相。
경제 中元 3(기원전147주아부는 병을 이유로 승상에서 면직되었다.

▶ 默然: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한 모습
▶ 唯徐盧: 본래 흉노의 왕이었으나 景帝 때 한나라에 투항하여 中元 3년(기원전147년)에 容城侯로 봉해졌다.
▶ 勸: 고무하다.
▶ 中三年: 漢景帝中元 3년. 경제 재위 시에 2차례 개원을 하였으므로 前元, 中元, 後元으로 구분된다.

 

頃之,景帝居禁中,召條侯,賜食。
얼마 후 경제가 궁중에서 조후 주아부를 불러서 음식을 내렸다.

獨置大胾,無切肉,又不置櫡。
자리에는 큰 고기 덩어리 하나만 놓고 잘게 썬 고기나 젓가락 또한 놓지 않았다.

條侯心不平,顧謂尚席取櫡。
조후는 마음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겨 尙席을 돌아보고 젓가락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景帝視而笑曰:
「此不足君所乎?」

경제가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자리가 그대가 있을 곳이 못되오?”

條侯免冠謝。

조후는 모자를 벗고 사죄하였다.

上起,條侯因趨出。
경제가 일어나라고 하니 조후는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景帝以目送之,曰:
「此怏怏者非少主臣也!」
경제가 눈으로 전송하며 말하였다.

저렇게 불만이 많은 자는 어린 군주의 신하가 될 수 없다!”

▶ 頃之: 오래지 않아.
▶ 禁中: 궁중.
▶ 胾: 고깃덩이. 크게 썬 고깃덩어리.
▶ 尚席: 관직명. 장막을 관장하는 관리.
▶ 怏怏: 즐겁지 않은 모양. 불만스럽다.
▶ 少主: 어린 군주. 태자 劉徹을 말하며 주아부는 유철을 태자로 세움에 반대했었다. 유철은 후일의 한무제이다.

 

居無何,條侯子為父買工官尚方甲楯五百被可以葬者。
얼마 후 조후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장례에 사용할 工官 尙方에게서 5백 개의 갑옷과 방패를 사들였다.

取庸苦之,不予錢。
운반하는 고용인들이 고생을 했으나 돈을 주지 않았다.

庸知其盜買縣官器,怒而上變告子,事連汙條侯。
고용인들은 그것이 천자의 기물을 몰래 사들인 것임을 알고 화가 나서 조후의 아들을 황제에게 반란죄로 고발했고이 일은 조후에까지 연루되었다.

書既聞上,上下吏。
상서가 경제에게까지 전해지자 경제가 담당 관리에게 조사토록 하였다.

吏簿責條侯,條侯不對。
관리가 문서를 가지고 조후에게 따졌으나 조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景帝罵之曰:
「吾不用也。」

경제가 욕하였다.
나는 너를 쓰지 않겠다.”

召詣廷尉。
주아부를 정위에게 넘겼다.

▶ 工官: 일상용 그릇과 무기를 제작하는 관서의 공인.
▶ 尚方: 황실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관서.
▶ 被: 数量詞. 개. 件.
▶ 取庸: 운반하는 고용인. 庸은佣과 같다. 품팔이꾼.
▶ 縣官: 朝廷. 皇帝. 縣의 우두머리라는 뜻. 여기서는 國庫를 말한다.
▶ 簿: 문서.
▶ 詣: ~에 이르다.

 

 

廷尉責曰:
「君侯欲反邪?」

정위가 문책하였다.
그대가 배반하려 했소?”

亞夫曰:
「臣所買器,乃葬器也,何謂反邪?」

주아부가 말하였다.
신이 사들인 기물들은 순장용인데 어찌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吏曰:
「君侯縱不反地上,即欲反地下耳。」

옥리가 말하였다.
그대가 지상에서는 배반하지 않았지만 지하에서 배반하려고 했군!”

吏侵之益急。
옥리의 핍박은 갈수록 심해졌다.

初,吏捕條侯,條侯欲自殺,夫人止之,以故不得死,遂入廷尉。
당초 옥리가 조후를 체포함에 조후는 자살하려고 했으나부인이 말리는 바람에 죽지 못하고 정위에게 넘겨졌다.

因不食五日,嘔血而死。

주아부는 이로 인해 닷새 동안을 먹지 않다가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

國除。
봉국은 폐지되었다.

絕一歲,景帝乃更封絳侯勃他子堅為平曲侯,續絳侯後。
작위가 끊어진 지 일 년 뒤에 경제는 강후 주발의 다른 아들인 周堅을 平曲侯로 바꾸어 봉해 강후의 뒤를 잇게 하였다.

十九年卒,謚為共侯。
19년 뒤그가 죽자 共侯라는 시호를 내렸다.

子建德代侯,十三年,為太子太傅。
아들 周建德이 후의 작위를 이었고, 13년 뒤 太子太傅가 되었다.

坐酎金不善,元鼎五年,有罪,國除。
그가 바친 酎金의 품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元鼎 5(기원전112유죄판결을 받았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 酎金: 한나라 때 종묘의 제사 때 제후들이 매년 황제에게 바치는 貢金.
▶ 元鼎: 漢武帝의 다섯 번째 연호. 기원전116 ~기원전111년 동안 사용하였다.

 

條侯果餓死。
조후 주아부는 과연 굶어 죽었다.

死後,景帝乃封王信為蓋侯。
죽은 뒤에 경제는 王信을 蓋侯에 봉하였다.

▶ 條侯果餓死: 앞에서 관상가 許負가 주아부에게 굶어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 王信: 경제의 황후인 王娡의 오빠. 경제가 제후로 삼으려고 했다가 주아부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주아부가 죽은 뒤인 中元 5년(기원전145년)에서야 蓋侯에 봉했다

 

太史公曰:
絳侯周勃始為布衣時,鄙樸人也,才能不過凡庸。
及從高祖定天下,在將相位,諸呂欲作亂,勃匡國家難,復之乎正。
雖伊尹、周公,何以加哉!
亞夫之用兵,持威重,執堅刃,穰苴曷有加焉!
足己而不學,守節不遜,終以窮困。悲夫!
태사공은 말한다.
강후 주발이 원래 평민이었을 때는 천하고 순박한 사람이었으며재능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지 못하였다.
고조를 따라서 천하를 평정할 때 장상의 지위에 있었고여씨 일족이 난을 일으키려 하자 주발은 나라의 환난을 구하고 조정을 정상으로 회복하였다.
伊尹이나 周公이라도 어찌 그보다 낫겠는가!
주아부의 용병은 위엄이 있고 장중하여 굳건함을 지녔으니 司馬穰苴라도 어찌 그보다 낫겠는가!
자신에게 만족하며 배우지 않았고 절개를 지켰지만 불손하여 끝내 곤궁하였으니 슬프도다!”

▶ 凡庸: 평범하다.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람.
▶ 匡: 구하다.
▶ 伊尹: 商나라를 개국한 湯王의 재상으로 尹은 관명인 尹正의 尹이고 이름은 摯이다. 阿衡의 관직을 맡고 탕왕을 보좌하여 하나라 桀王을 정벌하고 商나라를 개국하였으며, 탕왕의 손자인 太甲이 즉위한 다음 무도한 짓을 자행하자 추방하였다가 다시 왕위에 복위시키고 자신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史記本紀권03. 殷本紀>
▶ 周公旦: 周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주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무왕의 아우 周公旦이 攝政하였다. <史記世家권33. 魯周公世家>
▶ 堅刃: 강인하다.
▶ 穰苴: 司馬穰苴. 춘추시대 齊의 장군으로, 성은 嬀, 씨는 田, 이름은 穰苴이다<田穰苴>. 晏嬰이 경공의 신임을 얻어 재상의 지위에 올라 사마양저를 추천하여 등용된 후 齊의 번영에 공적을 올리자 景公이 대사마로 임명하였으며, 이때 司馬씨로 칭하여 사마양저라 불리었다. 사마씨를 칭하기 전의 씨인 田을 붙여 전양저로 불리기도 한다. 병법서 <사마법>의 저자로 田完의 후예이다. <史記列傳권64司馬穰苴列傳>
▶ 曷: 어찌.
▶ 守節: 율태자의 폐위를 반대하고, 왕태후의 오빠 王信을 侯에 봉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흉노의 왕 유서려를 후에 봉함을 반대한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