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55-留侯世家(유후세가)

耽古樓主 2023. 7. 10. 03:01

이篇은 30世家 중 25번째 편으로 前漢 高祖 劉邦의 策士인 張良에 대한 전기이다.
張良의 字는 子房이며 시호는 文成公이다. 博浪沙에서 秦始皇을 습격했으나 실패하고 下邳에 은신하고 있을 때 黃石公으로부터 <太公兵法書>를 물려받았다. 陳勝·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會'에서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策士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秦나라의 故地인 關中으로 정하고자 한 劉敬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蕭何와 함께 책략에 뛰어나 한나라 창업에 힘써서 그 공으로 留侯에 책봉되었다. 韓信·蕭何와 더불어 漢初三傑로 일컬어진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군대의 장막 안에서 책략을 구사하여 무형의 것으로 승리를 거둠은 張良이 그 일을 꾸몄으며 슬기로웠다는 이름도 없었고, 용맹스러웠다는 공적도 없었으며, 어려운 일은 쉬운 일로 해결하고 사소한 일을 행하여 큰일을 이루었다. 이에 제25편 ‘留侯世家’를 지었다.”
라고 하였다.

世家55-留侯世家(유후세가)

 

留侯張良者,其先韓人也。
留侯張良은 그 선조가 韓 사람이다.

大父開地,相韓昭侯、宣惠王、襄哀王。
할아버지 開地는 의 昭侯宣惠王襄哀王때 을 지냈다.

父平,相釐王、悼惠王。
아버지 은 釐王과 悼惠王때 을 지냈다.

悼惠王二十三年,平卒。
도혜왕23(기원전250)에 이 죽었다.

卒二十歲,秦滅韓。
아버지가 죽은 지 20년 뒤 나라가 을 멸망시켰다.

良年少,未宦事韓。
장량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에서 벼슬하지 않았다.

韓破,良家僮三百人,弟死不葬,悉以家財求客刺秦王,為韓報仇,以大父、父五世相韓故。
이 멸망할 때 장량의 집에는 노복이 300이었다동생이 죽었지만 장례도 치르지 않고 집안의 재산을 모두 털어 자객을 구해 진왕을 찔러 을 위해 복수하려 하였으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韓王 5대에 걸쳐 國相을 지냈기 때문이었다.

▶ 大父: 祖父
▶ 韓昭侯, 宣惠王, 襄哀王, 釐王, 悼惠王: 三晋분립 후의 한나라의 6대~10대.

 

良嘗學禮淮陽。
장량은 일찍이 淮陽에서 禮法을 배웠다.

東見倉海君。
동방으로 가서 倉海君을 만났다.

得力士,為鐵椎重百二十斤。
力士를 얻고, 120근 나가는 철퇴를 만들었다.

秦皇帝東游,良與客狙擊秦皇帝博浪沙中,誤中副車。
진황제가 동쪽으로 순시를 나옴에장량과 자객은 진황제를 博浪沙에서 저격했으나잘못하여 뒤따르는 수레를 맞추었다.

秦皇帝大怒,大索天下,求賊甚急,為張良故也。
진시황은 크게 화가 나서 전국을 대대적으로 수색하며 자객을 아주 급하게 찾았는데장량 때문이었다.

良乃更名姓,亡匿下邳。
이에 장량은 이름과 성을 바꾸고 도망쳐 下邳에 숨었다.

▶ 倉海君: 秦나라 때 東夷의 君長. 기원전218년 장량이 창해군에게서 大力士를 얻어 秦始皇을 철퇴로 저격하였다.
▶ 鐵椎(철추): 철퇴.
▶ 副車: 황제를 수행하는 수레.
▶ 為張良故也: 진시황29년(기원전218년), 시황이 동쪽을 순시하였다. 陽武縣의 博狼沙에 이르렀을 때 도적의 습격을 받고 놀랐다. 도적을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하자 이에 전국에 열흘 동안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렸다. <史記本紀06. 秦始皇本紀>

 

 

본기6. 秦始皇本紀2(진시황본기2)

七月丙寅,始皇崩於沙丘平臺。 7월 병인일, 시황이 沙丘의 平臺에서 세상을 떠났다. 丞相斯為上崩在外,恐諸公子及天下有變,乃祕之,不發喪。 승상 이사는 황제가 외지에서 서거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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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嘗閒從容步游下邳圯上,有一老父,衣褐,至良所,直墮其履圯下,顧謂良曰:
「孺子,下取履!」
장량이 한가하여 하비의 다리 위를 한가로이 거닌 적이 있는데한 노인이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장량에게 다가오더니자신의 신발을 다리 밑으로 곧장 던져버리고는 장량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젊은이내려가서 신발을 가져와라!”

良鄂然,欲毆之。
장량이 놀라서 그를 때려주고 싶었다.

為其老,彊忍,下取履。
그가 노인인지라 억지로 참고 내려가서 신발을 가져왔다.

父曰:
「履我!」
노인이 말하였다.
내게 신겨라!”

良業為取履,因長跪履之。
장량은 이미 신발을 주워온지라몸을 꼿꼿이 세운 채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겼다.

父以足受,笑而去。
노인은 발을 뻗어 신발을 신고는 웃으며 가버렸다.

良殊大驚,隨目之。
장량은 매우 놀라 떠나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父去里所,復還,曰:
「孺子可教矣。
後五日平明,與我會此。」
노인이 1리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말하였다.
젊은이가 가르칠 만하구나.
닷새 뒤 새벽에 여기에서 나와 만나자.”

▶ 從容: 여유가 있다. 한가롭다.
▶ 圯: 다리. 흙다리.
▶ 鄂: 놀라다. 愕과 통용된다.
▶ 業: 이미. 허사 참조
▶ 长跪: 윗몸을 꼿꼿이 세우고 무릎을 꿇다.
▶ 平明: 새벽. 해가 돋아 밝아올 무렵

 

 

良因怪之,跪曰:
「諾。」
장량이 괴이하게 여기며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五日平明,良往。
닷새 뒤 새벽장량이 그곳으로 갔다.

父已先在,怒曰:
「與老人期,後,何也?」
노인이 먼저 와 있다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늙은이와 약속해놓고 늦게 오니 무엇 때문이냐?”

去,曰:
「後五日早會。」
자리를 뜨면서 말하였다.
닷새 뒤 일찍 만나자.”

五日雞鳴,良往。
닷새 뒤에는 닭이 울 무렵 장량이 그곳으로 갔다.

父又先在,復怒曰:
「後,何也?」
노인이 또 먼저 와 있다가 다시 화를 내었다.
또 늦었으니 어쩐 일이냐?”

去,曰:
「後五日復早來。」
떠나면서 말하였다.
닷새 뒤 다시 일찍 오너라.”

五日,良夜未半往。
닷새 뒤 장량은 밤이 반도 지나기 전에 그곳으로 갔다.

有頃,父亦來,喜曰:
「當如是。」
잠시 후 노인도 그곳으로 와서 기뻐하며 말하였다.
마땅히 그래야지.”

出一編書,曰:
「讀此則為王者師矣。
後十年興。
十三年孺子見我濟北,穀城山下黃石即我矣。」
책 한 권을 내놓으며 말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 왕의 스승이 될 터이다.
10년 후에는 뜻을 이룰 터이다.
13년 뒤에 네가 濟水 북쪽에서 나를 만날 터인데穀城山 아래의 누런 돌이 바로 나이니라.”


遂去,無他言,不復見。
그리고 떠났는데 다른 말은 없었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旦日視其書,乃太公兵法也。
날이 밝아 그 책을 보았더니 바로 <太公兵法>이었다.

良因異之,常習誦讀之。
장량은 그 책을 기이하게 여겨 늘 익히고 誦讀하였다.

▶ 有頃: 잠시.
▶ 太公兵法: 姜太公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병서.

 

 

居下邳,為任俠。
장량이 하비에 머물 때는 협객을 자처하였다.

項伯常殺人,從良匿。
項伯이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장량을 따르며 숨어 지냈다.

▶ 常: 일찍이.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常

한문의 허사(虛詞) 常 常常항상 常는 형용사로서 명사 앞에 쓰이고, 부사로서 동사 앞에 쓰인다. (1) 常는 형용사로 쓰여 항상 변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불변의” “일정한” ¶ 天有常道矣, 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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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項伯: 秦나라 말기 下相사람. 項羽의 숙부로, 이름은 纏이고, 伯은 자다. 살인을 저질렀을 때 張良이 구해주었다.

後十年,陳涉等起兵,良亦聚少年百餘人。
10년후 기원전209陳涉 등이 起兵하자장량 역시 젊은이 100여 명을 모았다.

景駒自立為楚假王,在留。
景駒가 의 임시 왕으로 자립하고 留縣에 있었다.

良欲往從之,道還沛公。
장량이 가서 그를 따르려 하였는데도중에 뜻하지 않게 沛公을 만났다.

沛公將數千人,略地下邳西,遂屬焉。
패공은 수천 명을 거느리고 하비 서쪽 땅을 공격하여 마침내 복속시켰다.

沛公拜良為廄將。
패공은 장량을 廐將으로 임명하였다.

良數以太公兵法說沛公,沛公善之,常用其策。
장량이 자주 <태공병법>으로 패공에게 설득하자패공이 그것을 좋아하여 늘 그 계책을 채용하였다.

良為他人者,皆不省。
장량은 다른 사람에게 시도해 보았으나모두 깨닫지 못하였다.

良曰:
「沛公殆天授。」
장량이 말하였다.
패공은 아마도 하늘이 내리신 듯하다.”

故遂從之,不去見景駒。
그런 까닭에 패공을 따르기로 하고 경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 景駒: 楚의 왕족. 秦嘉등이 景駒를 楚의 假王으로 세워 張楚의 맥을 이으려 하였다. 그러나 項梁에게 彭城에서 패하면서 병사들이 대부분이 투항하였고, 景駒는 梁땅으로 달아나 그 곳에서 죽었다.
: 의외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 ‘의외로’, ‘뜻하지 않게
▶ 廄將: 군마를 관장하는 관리.



及沛公之薛,見項梁。
패공이 薛邑으로 가서 項梁을 만났다.

項梁立楚懷王。
항량은 楚 懷王을 옹립하였다.

良乃說項梁曰:
「君已立楚後,而韓諸公子橫陽君成賢,可立為王,益樹黨。」
장량이 항량에게 유세하였다.
군께서 이미 의 후예를 세우셨으니의 공자들 중 橫陽君 韓成이 현명하여 왕으로 세울 만하니동맹 세력을 늘리십시오.”

項梁使良求韓成,立以為韓王。
항량이 장량에게 한성을 찾도록 하여 그를 韓王으로 세웠다.

以良為韓申徒,與韓王將千餘人西略韓地,得數城,秦輒復取之,往來為游兵潁川。
장량을 의 司徒로 임명하고韓王과 함께 천여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옛 의 땅을 공략하여 여러 성을 얻었으나진나라가 곧 다시 탈취하여韓軍은 潁川일대를 오가며 유격전을 벌였다.

▶ 項梁: 항우의 숙부. 陳勝과 吳廣이 농민 봉기를 일으켰을 때 조카 項羽와 함깨 吳中에서 會稽郡守 殷通을 죽이고 거병하였다.
▶ 立楚後: 楚懷王 熊心. 초회왕 熊槐의 손자. 기원전209년 項梁이 거병하고 옹립하여 楚王이 되고 盱臺에 도읍을 정하였다.
▶ 申徒: 1. 即司徒。官名。申,通 "司"。 2.复姓。申,通"司"。殷商时有申徒狄。
▶ 游兵: 유격대. 유격작전.

沛公之從雒陽南出轘轅,良引兵從沛公,下韓十餘城,擊破楊熊軍。
패공이 雒陽에서 남쪽에서 轘轅山으로 나아감에장량은 군대를 이끌고 패공을 따랐으며 의 10여성을 함락시하고 楊熊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沛公乃令韓王成留守陽翟,與良俱南,攻下宛,西入武關。
패공은 이에 韓王 한성에게 남아서 陽翟을 지키게 하고장량과 함께 南進하여 을 함락하고 서쪽으로 武關에 진입하였다.

沛公欲以兵二萬人擊秦嶢下軍,良說曰:
「秦兵尚彊,未可輕。
臣聞其將屠者子,賈豎易動以利。
願沛公且留壁,使人先行,為五萬人具食,益為張旗幟諸山上,為疑兵,令酈食其持重寶啗秦將。」
패공이 2만의 병력으로 진나라의 嶢關軍을 공격하려 하자장량이 설득하였다.
진나라의 군대가 아직 강하여 경시해선 안 됩니다.
신이 듣기에 요관의 장수는 백정의 자식이라 하니장사꾼은 이익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원컨대 패공께서는 잠시 군영에 머무르시되사람을 먼저 보내 5만 명의 식량을 구비하고모든 산 위에 깃발을 더 세워 疑兵으로 삼으시고酈食其에게 귀중한 보물을 지참하여 진나라의 장수를 매수하게 명령하십시오.”

▶ 陽翟: 韓나라의 도읍. 지금의 河南省禹縣.
▶ 賈豎: 商人을 비하하는 말. 장사치.
▶ 壁: 軍營.
▶ 啖: 유인하다. 꾀다.
▶ 疑兵: 적의 눈을 속이는 가짜 군사.
▶ 酈食其: 酈生. 秦나라 말기의 인물로 처음에는 고양의 술꾼(高陽酒徒)이었으나 劉邦을 도와 齊를 달래어 70여 성을 항복하도록 하였다. 이름은 食其이며, 酈生이라고도 불린다. <史記列傳권97酈生陸賈列傳>

秦將果畔,欲連和俱西襲咸陽,沛公欲聽之。
秦將이 과연 진나라를 배반하였고패공과 연합하여 함께 西進하여 함양을 습격하자고 하자 패공이 이 말을 들으려 하였다.

良曰:
「此獨其將欲叛耳,恐士卒不從。
不從必危,不如因其解擊之。」
장량이 말하였다.
이번에 단지 그 장수가 배반하려 할 뿐군사들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따르지 않는다면 위태로울 수밖에 없으니그들이 태만해지는 틈을 타서 공격함이 낫겠습니다.”

沛公乃引兵擊秦軍,大破之。
패공이 이에 군사를 이끌고 秦軍을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遂[逐]北至藍田,再戰,秦兵竟敗。
패잔병을 쫓아 藍田에 이르러 다시 싸우니 秦軍이 결국 패배하였다.

遂至咸陽,秦王子嬰降沛公。
마침내 함양에 이르니 진왕 子嬰이 패공에게 항복하였다.

▶ 畔: 叛과 통용된다. 배반하다.
▶ 解: 懈와 같다. 태만하다.
▶ 逐北: 追北.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 秦王子嬰: 통일 후 진나라의 제3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조고는 황제에 맞는 적임자를 찾았고, 그 적임자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시황제의 황태자 부소의 장남 子嬰 혹은 호해의 형이라고도 한다.
한 원년(기원전206년) 10월, 패공의 군대가 마침내 제후보다 앞서 覇上에 이르렀다. 秦왕 子嬰이 흰말이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인끈을 목에 감고서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봉하여 軹道의 옆에서 항복하였다.

沛公入秦宮,宮室帷帳狗馬重寶婦女以千數,意欲留居之。
패공이 진나라의 궁궐로 들어가서 궁실·휘장···귀중한 보물·부녀자 등이 지천으로 많음을 보고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였다.

樊噲諫沛公出舍,沛公不聽。
樊噲가 패공에게 궁궐 밖으로 나가자고 간했으나 패공은 듣지 않았다.

良曰:
「夫秦為無道,故沛公得至此。
夫為天下除殘賊,宜縞素為資。
今始入秦,即安其樂,此所謂『助桀為虐』。
且『忠言逆耳利於行,毒藥苦口利於病』,
願沛公聽樊噲言。」
장량이 말하였다.
무릇 진나라가 無道했기 때문에 패공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모름지기 천하를 위해 殘賊을 없애려면 마땅히 검소함이 밑천입니다.
지금 진나라에 들어오자마자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신다면 이것이 소위 이 포악한 짓을 하도록 도움입니다.
또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고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 ’라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패공께서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沛公乃還軍霸上。
패공이 이에 霸上으로 군대를 돌렸다.

▶ 縞素: 素服. 검소함을 비유한 것이다.
▶ 資: 밑천. ~에 의지하다.
▶ 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桀王.

項羽至鴻門下,欲擊沛公,項伯乃夜馳入沛公軍,私見張良,欲與俱去。
항우가 鴻門아래에 이르러 패공을 공격하려 하자항백이 밤중에 패공의 군영으로 달려가서 사사로이 장량을 만나서 함께 떠나려고 하였다.

良曰:
「臣為韓王送沛公,今事有急,亡去不義。」
장량이 말하였다.
신은 韓王을 위해 패공을 보내려 하고 있는데지금 사태가 급하다고 도망가 버림은 不義이오.”

乃具以語沛公。
이에 장량이 패공에게 모든 정황을 알렸다.

沛公大驚,曰:
「為將奈何?」
패공이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良曰:
「沛公誠欲倍項羽邪?」
장량이 물었다.
패공께서는 정말 항우를 배반할 작정이십니까?”

沛公曰:
「鯫生教我距關無內諸侯,秦地可盡王,故聽之。」
패공이 말하였다.
천박하고 무지한 것들이 내게함곡관을 막고 제후들을 들이지 않으면진나라의 땅을 모두 다스릴 수 있다고 하기에내가 그 말을 따랐지.”

▶ 項伯乃夜馳入: 項伯은 項羽의 숙부로, 이름은 纏이고, 伯은 자다. 살인을 저질렀을 때 張良이 구해주었다. 項羽를 따라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고, 楚 左令尹이 되었다. 劉邦이 咸陽에 들어온 뒤 范增의 계책에 따라 鴻門宴에서 項莊이 劍舞를 추면서 劉邦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가 전날 밤에 이 사실을 장량에게 알려주고, 당일 항장과 함께 춤을 추면서 몸으로 막아 유방이 달아나도록 도왔다. 고조7년(기원전200년) 射陽侯에 봉해지고, 유씨 성을 받았다. [史記本紀]권07. 項羽本紀
▶ 倍: 背와 통용된다. 배반하다.
▶ 邪: 어조사. 耶와 같다.
▶ 鯫生: 천박하고 무지한 사람. 소인.
▶ 距: 拒와 통용된다. 방어하다. 막다.
▶ 内: 納과 같다. 받아들이다.

良曰:
「沛公自度能卻項羽乎?」
장량이 말했다.
패공께서 자신을 가늠하시기에 항우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沛公默然良久,曰:
「固不能也。今為奈何?」
패공은 한참 말이 없다가 말했다.
원래 불가능하오.
그러니 어찌하면 되겠소?”

良乃固要項伯。
장량은 이에 한사코 항백을 만나게 했다.

項伯見沛公。
항백이 패공을 만났다.

沛公與飲為壽,結賓婚。
패공은 항백과 함께 장수를 빌며 술을 마시고 혼사를 약속했다.

令項伯具言沛公不敢倍項羽,所以距關者,備他盜也。
패공이 항백에게 시키기를패공이 감히 항우를 배반하지 않을 것임과 함곡관을 지킨 까닭은 다른 도적을 방비함이었다고 상세히 말하라고 했다.

及見項羽後解,語在項羽事中。
항우를 만난 후 화해한 이야기는 항우본기(項羽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 度: 헤아리다.
▶ 良久: 아주 오랫동안.
語在項羽事中: 史記本紀07. 項羽本紀

 

 

본기7. 項羽本紀2(항우본기2)

漢之元年四月,諸侯罷戲下,各就國。 漢 원년(기원전206년) 4월, 제후들이 휘하 군사를 철수하여 각자의 封國으로 떠났다. 項王出之國,使人徙義帝,曰: 「古之帝者地方千里,必居上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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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元年正月,沛公為漢王,王巴蜀。
한왕 원년(기원전206)정월패공은 漢王이 되어 巴蜀을 다스리게 되었다.

漢王賜良金百鎰,珠二斗,良具以獻項伯。
한왕은 장량에게 황금 1백 과 진주 2말을 하사했는데 장량은 모두 항백에게 바쳤다.

漢王亦因令良厚遺項伯,使請漢中地。
한왕은 또 장량에게 명령하기를후한 예물을 항백에게 갖다 주고 漢中땅을 달라고 청하게 하라고 하였다.

項王乃許之,遂得漢中地。
항왕이 이를 허락하자 마침내 한중 땅을 얻게 되었다.

漢王之國,良送至襃中,遣良歸韓。
한왕이 자신의 봉국으로 감에 장량이 배웅하여 褒中에 이르자장량을 나라로 돌려보냈다.

良因說漢王曰:
「王何不燒絕所過棧道,示天下無還心,以固項王意。」
장량이 이에 한왕에게 권하여 말하였다.
왕께서는 어째서 지나온 棧道를 불태워 끊어서 천하 사람들에게 돌아올 마음이 없음을 보여항왕의 마음을 굳히지 않으십니까?”

乃使良還。
이에 장량을 한나라로 돌려보냈다.

行,燒絕棧道。
한왕은 행군하면서 지나온 잔도를 불태워 끊어버렸다.

▶ 王巴蜀: 파촉 땅을 다스리다. 王은 통치하다. 왕 노릇을 하다.
▶ 溢: 鎰과 통한다. 鎰은 20냥 또는 24냥이다. 고대 황금의 계량 단위로 1斤 또는 1鎰을 一金이라 하였다.
▶ 漢中: 陝西省남서쪽. 沛公劉邦이 項羽로부터 책봉되어 漢王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 項王: 項羽. 이름은 籍이고, 자는 羽이다. 秦나라 말기의 농민봉기 지도자이자 項梁의 조카이다. 진나라가 망하자 자립하여 西楚霸王이 되었다.
▶ 棧道: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은 길.



良至韓,韓王成以良從漢王故,項王不遣成之國,從與俱東。
장량이 에 이르자장량이 漢王을 따랐다는 이유로항왕은 韓王成을 으로 보내지 않고자신과 함께 동쪽으로 갔다.

良說項王曰:
「漢王燒絕棧道,無還心矣。」
장량이 項王을 설득하여 말하였다.
한왕이 잔도를 태워 끊어버림은 돌아올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乃以齊王田榮反,書告項王。
장량은 또 齊王 田榮의 모반을 항왕에게 글을 올려 보고하였다.

項王以此無西憂漢心,而發兵北擊齊。
항왕이 이로 인해 서쪽 한왕에 대한 걱정 없이 군대를 징발하여 북쪽으로 를 쳤다.

項王竟不肯遣韓王,乃以為侯,又殺之彭城。
항왕은 마침내 韓王을 보내지 않고 로 낮추었다가 彭城에서 죽여버렸다.

良亡,間行歸漢王,漢王亦已還定三秦矣。
장량은 달아나서 샛길로 漢王에게 돌아갔는데한왕 역시 관중으로 돌아와 三秦을 평정한 뒤였다.

復以良為成信侯,從東擊楚。
한왕은 다시 장량을 成信侯에 봉하고 동쪽으로 를 공격하는 데 따르게 하였다.

▶ 間行: 사잇길로 가다.



至彭城,漢敗而還。
팽성에 이르러 한은 패하여 돌아오게 되었다.

至下邑,漢王下馬踞鞍而問曰:
「吾欲捐關以東等棄之,誰可與共功者?」
下邑에 이르자 한왕은 말에서 내려 말안장에 기댄 채 물었다.
내가 함곡관 동쪽 지역을 포기하려 하는데 누구와 함께 공을 세울 수 있겠는가?”

良進曰:
「九江王黥布,楚梟將,與項王有郄;
彭越與齊王田榮反梁地:此兩人可急使。
而漢王之將獨韓信可屬大事,當一面。
即欲捐之,捐之此三人,則楚可破也。」
장량이 進言하였다.
九江王 黥布는 의 용맹한 장수였으나 항왕과 사이가 벌어져 있고,
팽월은 제왕 전영과 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이 두 사람은 급히 쓸 수 있습니다.
한왕의 장수로는 오직 韓信에게 큰일을 부탁할 수 있으며 한 방면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땅을 포기하신다면 이 세 사람에게 내놓아야만 를 격파할 수 있을 터입니다.”

▶ 捐: 버리다. 내놓다.
▶ 梟將: 용맹한 장수.
▶ 郄: 틈. 틈새. 隙과 통용된다.

漢王乃遣隨何說九江王布,而使人連彭越。
한왕이 이에 隨何를 보내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게 하고사람을 보내 팽월과도 연락하였다.

及魏王豹反,使韓信將兵擊之,因舉燕、代、齊、趙。
魏王豹가 반란을 일으키자 한신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를 치게 했고그 기세를 몰아 를 점령시켰다.

然卒破楚者,此三人力也。
그리고 마침내 를 격파한 것은 이 세 사람의 힘이었다.

▶ 隨何: 진나라 말기, 전한 초기의 유생. 한왕 漢王 劉邦의 신하로, 한왕이 서초패왕 항우와 팽성 전투에서 참패하고 도망했을 때 謁者의 직책에 있었다.
▶ 黥布: 본명이 英布이며, 前漢六安六縣사람으로 법을 어겨 黥刑을 당해 黥布로 불렸다. 항우를 따라 入關한 뒤 九江王에 봉해졌으며, 항우의 명령에 따라 衡山王吳芮와 함께 초 楚 懷王義帝를 죽였다. 楚漢전쟁 중에 한나라 隨何가 그를 설득하자 한나라로 귀순하였다. <사기 권91. 黥布列傳>

張良多病,未嘗特將也,常為畫策,時時從漢王。
장량은 병이 많아 혼자 군대를 이끈 적은 없고늘 계책을 내면서 때때로 한왕을 수행하였다.

▶ 特: 홀로.
▶ 畫策: 劃策하다. 계획을 세우다.

漢三年,項羽急圍漢王滎陽,漢王恐憂,與酈食其謀橈楚權。
한왕3(기원전204)에 항우가 滎陽에서 급히 한왕을 포위하자한왕은 두려워하고 걱정하여 酈食其와 함께 의 세력을 약화시킬 계책을 모의하였다.

食其曰:
「昔湯伐桀,封其後於杞。
武王伐紂,封其後於宋。
今秦失德棄義,侵伐諸侯社稷,滅六國之後,使無立錐之地。
陛下誠能復立六國後世,畢已受印,此其君臣百姓必皆戴陛下之德,莫不鄉風慕義,願為臣妾。
德義已行,陛下南鄉稱霸,楚必斂衽而朝。」
역이기가 말하였다.
옛날 왕은 하나라의 을 토벌하고 그 후손을 나라에 봉했습니다.
周武王은 상나라 왕을 정벌하고 그 후손을 나라에 봉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덕을 잃고 도의를 저버린 채 제후의 사직을 침략하여 6국의 후손을 끊어 송곳 하나 세울 땅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6국의 후세들을 다시 세워폐하의 信印을 받게 하면그 군신과 백성이 반드시 모두 폐하의 은덕을 느낄 터이고폐하의 풍모와 의리를 흠모하여 폐하의 臣民이 되기를 원할 터입니다.
덕치와 도의가 시행되어 폐하께서 남면하여 패자를 칭하시면 는 틀림없이 옷깃을 여미고 조회할 터입니다.”

漢王曰:
「善。趣刻印,先生因行佩之矣。」
한왕이 말하였다.
좋소.
서둘러 도장을 새겨서선생이 그것을 휴대하고 출발하시오.”

▶ 酈食其: 酈生. 劉邦을 도와 齊를 달래어70여 성을 항복하도록 하였다. <史記列傳권97酈生陸賈列傳>
▶ 橈(요, 뇨): 약화시키다.
▶ 無立錐之地: 송곳 하나 꽂을 자리도 없다. 매우 빈곤하다.
▶ 六國: 韓, 魏, 燕, 趙, 齊, 楚.
▶ 鄉風: 귀순하다. 복종하다.
▶ 臣妾: 노예. 노예는 남자를 臣이라 하고 여자를 妾이라 한다. 여기서는 臣民을 말한다. 관원과 백성.
▶ 斂衽: 斂襟. 옷깃을 여미다. 경의를 표하다.
▶ 趣: 促과 통용된다. 재촉하다.

食其未行,張良從外來謁。
酈食其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장량이 밖에서 돌아와 한왕을 알현하였다.

漢王方食,曰:
「子房前!
客有為我計橈楚權者。」
한왕이 마침 식사하다가 말하였다.
子房이리 오시오!
빈객에 나를 위해 의 세력을 약하게 만들 계책을 낸 자가 있었소.”

其以酈生語告,曰:
「於子房何如?」
역생의 말을 장량에게 일러주고 물었다.
자방이 보기에는 어떻소?”

良曰:
「誰為陛下畫此計者?
陛下事去矣。」
장량이 대답하였다.
누가 폐하께 그런 계책을 냈습니까?
폐하의 大事는 끝장입니다.”

▶ 食其: 酈食其. 酈生.
▶ 子房: 張良의 字
▶ 橈(요, 뇨): 약화시키다.

漢王曰:
「何哉?」
한왕이 말하였다.
어째서인가?”

張良對曰:
「臣請藉前箸為大王籌之。」
장량이 대답했다.
청컨대 앞에 있는 젓가락을 빌려 대왕을 위해 형세를 따져보게 해주십시오.”

曰:
「昔者湯伐桀而封其後於杞者,度能制桀之死命也。
今陛下能制項籍之死命乎?」
말하였다.
옛날 탕왕이 걸왕을 토벌하고 그 후손을 기()나라에 봉함은()왕의 목숨을 통제할 수 있다고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항적의 목숨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其不可一也。
武王伐紂封其後於宋者,度能得紂之頭也。
今陛下能得項籍之頭乎?」
안 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이 주()왕을 정벌하고 그 후손을 송나라에 봉함은 주()의 머리를 얻을 수 있다고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항적의 머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했다.
할 수 없지.”

「其不可二也。
武王入殷,表商容之閭,釋箕子之拘,封比干之墓。
今陛下能封聖人之墓,表賢者之閭,式智者之門乎?」
두 번째 안 되는 이유입니다.
周武王이 은나라에 들어가서 상용(商容)의 마을을 표창하고기자(箕子)를 감옥에서 석방했으며비간(比干)의 무덤에 봉분을 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성인의 무덤에 봉분을 하거나현자의 마을 문에 그 덕행을 표창하거나지자(智者)의 집 문 앞을 지나며 경의를 표할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 請藉前箸: 請借前箸. 밥을 먹고 있는 젓가락을 빌려 이것을 사용해서 계책을 설명하려고한 것이다. 藉는 빌리다. <통감절요4권>
▶ 籌: 계책. 형세를 따지다.
▶ 湯伐桀: 하나라 17대 걸왕의 정치가 포악해지고 민심을 잃어 商나라의 湯王에 의해 멸망되었다. 탕은 하나라의 후손을 제후에 봉했고, 周나라 때에 후손들이 杞에 봉해졌다. <史記本紀권03. 殷本紀>
▶ 武王伐紂封其後於宋者: 微子. 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紂王의 이복형으로 이름은 啟이다. 은나라가 멸망한 뒤에 周成王이 미자를 宋의 제후로 封하였다.
▶ 武王入殷: 주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벌하고 은나라에 들어가서 商容의 마을을 표창하고, 箕子를 감옥에서 석방했으며, 比干의 무덤에 봉토를 하였다.
▶ 商容: 商나라 紂王때의 樂官이자 大夫. 주왕에게 직간하다가 쫓겨났다. 周의 武王이 은나라를 이기고 상용의 집 앞을 지나며 경의를 표하였다. <史記本紀권04. 周本紀>
▶ 表: 표창하다.
▶ 閭: 고대 마을의 단위.
▶ 箕子: 殷나라 紂王의 숙부. 주 周 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紂를 죽인 뒤에 구금되었던 箕子를 석방하였다. <史記本紀권04. 周本紀>
▶ 封: 봉분하다.
▶ 比干: 殷나라 紂王의 숙부. 주왕의 음란함을 간한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엿다. 비간은 箕子와 微子와 아울러 은나라의 三仁으로 꼽힌다.
▶ 式: 軾과 통용된다. 수레 앞의 횡목에 의지하여 경의를 표하다.

「其不可三也。
發鉅橋之粟,散鹿臺之錢,以賜貧窮。
今陛下能散府庫以賜貧窮乎?」
장량이 말하였다.
안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鉅橋의 곡식을 풀었고 鹿臺의 돈을 풀어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창고를 열어 돈과 식량을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실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其不可四矣。
殷事已畢,偃革為軒,倒置干戈,覆以虎皮,以示天下不復用兵。
今陛下能偃武行文,不復用兵乎?」
안 되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은나라를 치는 일이 끝난 후 주무왕은 전차를 없애서 수레로 바꾸고무기를 거꾸로 하여 창고 속에 넣고 호랑이 가죽을 덮음으로써 다시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천하에 보여주었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무력을 버리고 文治를 시행하며 다시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 鉅橋: 紂왕 때의 곡식 창고 소재지.
▶ 鹿臺: 은나라의 도읍지의 높은 臺.
▶ 偃: 정지하다. 폐지하다.
▶ 革: 전차. 兵車.

「其不可五矣。
休馬華山之陽,示以無所為。
今陛下能休馬無所用乎?」
안 되는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전쟁 때 동원되었던 말을 華山 남쪽에 풀어놓고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말을 풀어놓고 사용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其不可六矣。
放牛桃林之陰,以示不復輸積。
今陛下能放牛不復輸積乎?」
그것이 안 되는 여섯 번째 이유입니다.
주무왕은 군용 물자를 운반하는 소를 桃林 북쪽에 풀어놓고 다시는 군수품 운송에 쓰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소를 풀어놓고 다시는 군수품을 운반하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까?”

曰:
「未能也。」
한왕이 말하였다.
할 수 없지.”

「其不可七矣。
且天下游士離其親戚,棄墳墓,去故舊,從陛下游者,徒欲日夜望咫尺之地。
今復六國,立韓、魏、燕、趙、齊、楚之後,天下游士各歸事其主,從其親戚,反其故舊墳墓,陛下與誰取天下乎?
그것이 안 되는 일곱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천하의 유세가가 그 친척을 떠나 조상의 분묘를 버려두고 옛 친구를 떠나 폐하를 따라 떠도는 것은 그저 밤낮으로 아주 작은 땅이라도 얻기를 바라서입니다.
지금 6국을 회복하여 의 후손을 세우면 천하의 유세가는 각자 돌아가 그의 주인을 섬기면서 그 친척을 따르고 그의 친구와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터인데폐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천하를 차지하시렵니까?

其不可八矣。
이것이 안 되는 여덟 번째 이유입니다.

且夫楚唯無彊,六國立者復橈而從之,陛下焉得而臣之?
또 지금은 만 강성하지 않으면 되지만세운 6국이 다시 쇠약해져서 를 따른다면폐하께서 어떻게 그들을 신하로 삼으실 수 있겠습니까?

誠用客之謀,陛下事去矣。」
그 객의 계책을 정말 채용하신다면 폐하의 대사는 끝장입니다.”

漢王輟食吐哺,罵曰:
「豎儒,幾敗而公事!」
한왕이 먹던 음식을 뱉어내면서 욕을 해댔다.
못난 유생놈 때문에 하마터면 대사를 망칠 뻔했군!”

令趣銷印。
하며 서둘러 도장을 녹이게 하였다.

▶ 橈: 약화시키다.
▶ 輟: 중지하다.
▶ 哺: 입에 씹고 있는 음식물.
▶ 罵: 욕하다.
▶ 豎儒: 식견이 없는 유생. 못난 선비.

漢四年,韓信破齊而欲自立為齊王,漢王怒。
한왕4(기원전203)에 한신이 를 격파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자한왕이 대노하였다.

張良說漢王,漢王使良授齊王信印,語在淮陰事中。
장량이 한왕을 설득하자 한왕은 장량을 시켜 한신에게 齊王의 도장을 주었는데이 일은 <淮陰侯列傳>에 기록 되어있다.

▶ 語在淮陰事中: 장량이 한신을 대우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왕을 설득하여 한신을 齊王으로 세웠다.

 

 

其秋,漢王追楚至陽夏南,戰不利而壁固陵,諸侯期不至。
그해 가을에 한왕이 楚軍를 추격하여 陽夏 남쪽에 이르렀으나전세가 불리하여 固陵에 영루를 쌓았으며 제후들이 약속한 날짜에 오지 않았다.

良說漢王,漢王用其計,諸侯皆至。
장량이 한왕에게 계책을 올려 한왕이 그 계책을 쓰자 제후들이 모두 왔다.

語在項籍事中。
이 일은 <項羽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 壁: 영루를 견고히 하다.
▶ 期: 회합하는 날짜를 약속하다
▶ 語在項籍事中: 장량과 진평이 한왕을 설득하기를

“한나라가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제후도 모두 따르게 되었습니다. 楚軍은 지쳐 있고 식량도 다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楚를 멸망시키려는 때로 이 기회를 틈타 취하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놓아주고 치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를 일러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근심을 남기는 것’이라 합니다.”
라고 하여 한왕이 이를 따랐다. <사기 본기07. 항우본기>

 

 

본기7. 項羽本紀2(항우본기2)

漢之元年四月,諸侯罷戲下,各就國。 漢 원년(기원전206년) 4월, 제후들이 휘하 군사를 철수하여 각자의 封國으로 떠났다. 項王出之國,使人徙義帝,曰: 「古之帝者地方千里,必居上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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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六年正月,封功臣。
한왕6(기원전201)정월에 공신들을 봉하였다.

良未嘗有戰鬬功,高帝曰:
「運籌策帷帳中,決勝千里外,子房功也。
自擇齊三萬戶。」
장량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적이 없었는데고제가 말하였다.
장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지음은 자방의 공이다.
스스로 齊 땅에서 3만 호를 고르라.”

良曰:
「始臣起下邳,與上會留,此天以臣授陛下。
陛下用臣計,幸而時中,臣願封留足矣,不敢當三萬戶。」
장량이 말하였다.
처음 신이 下邳에서 일어나 주상과 현에서 만났는데이는 하늘이 신을 폐하께 주심입니다.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쓰셨고다행히 시기가 적중했으니 신은 留侯에 봉해지는 것으로 만족하오며 3만 호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乃封張良為留侯,與蕭何等俱封。
이에 장량을 유후에 봉했는데 蕭何 등과 함께 봉해졌다.

▶ 籌策: 계획. 계책.

[六年]上已封大功臣二十餘人,其餘日夜爭功不決,未得行封。
한왕6(기원전201)에 주상이 이미 주요 공신 20여 명은 봉했지만그 나머지는 밤낮으로 공을 다투어 결정을 하지 못하여 봉할 수가 없었다.


上在雒陽南宮,從複道望見諸將往往相與坐沙中語。
주상이 낙양의 南宮에서구름다리 위에서 장수들이 종종 서로 모여 모래밭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上曰:
「此何語?」
주상이 장량에게 물었다.
저들이 무슨 말들을 하는가?”

▶ 複道: 구름다리. 天橋.

留侯曰:
「陛下不知乎?
此謀反耳。」
유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모르고 계셨습니까?
저들은 반란을 꾀하고 있습니다.”

上曰:
「天下屬安定,何故反乎?」
주상이 물었다.
천하가 막 안정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단 말이오?”

留侯曰:
「陛下起布衣,以此屬取天下,今陛下為天子,而所封皆蕭、曹故人所親愛,而所誅者皆生平所仇怨。
今軍吏計功,以天下不足遍封,此屬畏陛下不能盡封,恐又見疑平生過失及誅,故即相聚謀反耳。」
유후가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布衣로 봉기하시어 저 무리를 데리고 천하를 취했는데지금 폐하께서 천자가 되시어 봉한 자들은 모두 소하·조참 같은 親愛하는 친구들이고죽인 자들은 모두 평소에 원한이 있었던 자들입니다.
지금 軍吏들이 공을 따져보니 천하의 땅을 가지고도 두루 봉하기에 부족하므로저 무리는 폐하께서 다 봉하여 주지 못할까 걱정되고또 평소의 잘못으로 의심받아 죽임에 이를까 두려운 까닭에서로 모여서 謀反할 뿐입니다.”

▶ 屬(촉): 마침. 막. 허사 () 참조
▶ 此屬: 저 무리들. 屬(속)은 무리.

 

 

한문의 허사(虛詞) 屬(촉)

한문의 허사(虛詞) 屬(촉) 屬適때마침 屬은 ① “屬무리 속”자와 ② “屬이을 촉”자의 두 가지 글자로 쓰인다. “屬무리속”자로서의 虛詞 용법은 이미 “속” 편에서 살펴보았다. “屬이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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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乃憂曰:
「為之奈何?」
주상이 이에 걱정이 되어 말하였다.
이를 어찌하면 되겠는가?”

留侯曰:
「上平生所憎,群臣所共知,誰最甚者?」
유후는 물었다.
주상께서 평소 미워하고신하들이 다 아는 자로서누가 가장 심합니까?”

上曰:
「雍齒與我故,數嘗窘辱我。
我欲殺之,為其功多,故不忍。」
주상이 말하였다.
雍齒가 나와 묵은 원한이 있는데여러 차례 나를 곤욕스럽게 만든 적이 있소.
내가 그를 죽이고 싶지만그에게 공로가 많으므로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소.”

留侯曰:
「今急先封雍齒以示群臣,群臣見雍齒封,則人人自堅矣。」
유후가 말하였다.
지금 서둘러서 옹치를 먼저 봉하여 신하들에게 보이시면신하들이 옹치를 冊封함을 보고저마다 자신을 굳게 지킬 터입니다.”

於是上乃置酒,封雍齒為什方侯,而急趣丞相、御史定功行封。
이에 주상은 술자리를 베풀고 옹치를 什方侯에 봉하고 급히 승상·어사를 재촉해 논공행상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群臣罷酒,皆喜曰:
「雍齒尚為侯,我屬無患矣。」
신하들은 술자리가 끝나자 모두 기뻐하며 말하였다.
옹치조차 에 봉해졌으니 우리들은 걱정없다.”

▶ 雍齒: 項羽의 부하 장수로 劉邦을 여러 번 곤경에 빠뜨려 유방이 가장 미워했는데 항우가 쫓겨 자살한 뒤 항복하였다. 張良이 유방에게 공신들의 모반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가장 미워하던 옹치부터 벼슬에 봉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 故: 故怨. 묵은 원한.

劉敬說高帝曰:
「都關中。」
劉敬이 고제를 설득하였다.
關中에 도읍하십시오.”

上疑之。
주상이 이를 의심하였다.

左右大臣皆山東人,多勸上都雒陽:
「雒陽東有成皋,西有殽黽,倍河,向伊雒,其固亦足恃。」
측근과 대신이 모두 산동 사람이라서낙양에 도읍하자고 권하는 사람이 많았다.
낙양 동쪽에 成皐가 있고서쪽에 崤山과 澠池가 있으며황하를 등지고 伊水와 雒水를 마주하고 있어 그 險固함이 충분히 믿을 만합니다.”

▶ 劉敬: 齊 출신으로 본래의 姓은 婁인데 漢高祖때 長安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하여 고조가 이를 받아들이고 劉氏성을 하사하여 劉敬이라 불리고 奉春君에 봉해졌다. <사기열전 권99. 劉敬·叔孫通列傳>
▶ 關中: 關中平原은 북쪽의 蕭關, 동쪽의 函谷關, 남쪽의 武關, 서쪽의 大散關 사이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주나라와 진나라의 발상지이다. 현재의 중국 산시성 중부와 허난성 서단을 포함한다.
▶ 恃: 믿다.

留侯曰:
「雒陽雖有此固,其中小,不過數百里,田地薄,四面受敵,此非用武之國也。
夫關中左殽函,右隴蜀,沃野千里,南有巴蜀之饒,北有胡苑之利,阻三面而守,獨以一面東制諸侯。
諸侯安定,河渭漕輓天下,西給京師;
諸侯有變,順流而下,足以委輸。
此所謂金城千里,天府之國也,劉敬說是也。」
유후가 말하였다.
낙양에 비록 그러한 견고함이 있지만그 중심 지역은 협소하여 수백 리에 불과하며땅은 척박하고 사면으로 적을 상대해야 하니 전쟁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 관중은 동쪽으로 효산과 함곡관이 있고서쪽으로 隴山과 蜀山이 있으며중심지에는 기름진 땅이 천리이고남쪽으로 파촉의 풍요로움이 있으며북쪽으로 흉노의 초원지대의 이점이 있으며삼면의 험난함으로 굳게 지킬 수 있으므로 동쪽 한 쪽만 가지고도 제후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제후들이 안정되면 황하와 위수로 천하의 식량을 운송하여 서쪽으로 도읍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제후에게 변고가 있으면 물길을 따라 내려와 충분히 물자를 운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金城千里天府之國입니다.
유경의 말이 옳습니다.”

於是高帝即日駕,西都關中。
이에 고제는 卽日로 수레를 몰아 서쪽 관중에 도읍하였다.

▶ 苑: 방목지. 동물과 식물을 키우는 지방.
▶ 漕輓: 식량을 운송하다. 수로로 운송하는 것을 漕라고 하며 육로로 운송하는 것을 輓이라 한다.
▶ 委輸: 운송하다.
▶ 金城: 견고한 성.
▶ 天府: 땅이 비옥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 자연적으로 요새를 이룬 땅

留侯從入關。
유후도 따라서 관중으로 들어갔다.

留侯性多病,即道引不食穀,杜門不出歲餘。
유후는 천성적으로 병이 많아 導引術을 하면서 곡식을 먹지 않고 1년여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 導引: 도가의 養生術. 호흡과 운동으로 신선한 공기를 체내에 끌어넣어 모든 병을 물리치는 방법이다. 道引 중에는 곡식을 먹지 않는다.

 

上欲廢太子,立戚夫人子趙王如意。
주상이 태자를 폐위시키고 戚夫人의 아들 趙王 如意를 세우고자 하였다.

大臣多諫爭,未能得堅決者也。
대신에 다투어 간언하는 자가 많았지만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呂后恐,不知所為。
呂后가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人或謂呂后曰:
「留侯善畫計筴,上信用之。」
어떤 사람이 여후에게 말하였다.
유후는 계책을 잘 세우므로 주상께서 그를 신임하고 있습니다.”

呂后乃使建成侯呂澤劫留侯,曰:
「君常為上謀臣,今上欲易太子,君安得高枕而臥乎?」
여후는 이에 建成侯 呂澤을 시켜 유후를 겁박하게 하였다.
그대는 늘 주상의 모신이었고 지금 주상이 태자를 바꾸려 하시는데도어찌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하게 누워만 있소?”

▶ 太子: 漢高祖劉邦의 차남으로 이름은 劉盈이다. 훗날의 惠帝.
▶ 戚夫人: 戚姬. 高祖의 첩으로 趙王如意를 낳았다. 고조가 생전에 척부인과 아들인 조왕 여의를 총애하였다.
▶ 趙王: 趙隱王 如意. 漢高祖의 넷째 아들로 戚夫人의 소생이다. 기원전198년, 조왕 장오가 趙 재상 관고의 황제 암살 모의에 연루돼 선평후로 강등되자, 여의는 열 살의 나이에 조왕으로 봉해졌다. 고조가 죽은 후 呂后의 소생 劉盈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해 독살되었다.
▶ 呂后: 前漢의 시조 劉邦의 황후. 이름은 稚이며, 자는 娥姁, 高后로도 불린다. 유방이 죽은 뒤 실권을 잡았다. 고조 사후, 황태후·태황태후가 되어, 여후·여태후 등으로 불린다.
▶ 爭: 직간하다. 권고하다.
▶ 留侯策: 張良의 계책. 漢高祖12년(기원전195년) 고조가 태자 유영을 폐하고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 劉盈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 建成侯呂澤: 여태후의 오빠.



留侯曰:
「始上數在困急之中,幸用臣筴。
今天下安定,以愛欲易太子,骨肉之間,雖臣等百餘人何益。」
유후가 말하였다.
당초 주상께서 여러 차례 곤경과 위기 속에서도 다행히 신의 계책을 채용하셨습니다.
지금 천하가 안정되자 편애하여서 태자를 바꾸려 하심에골육간의 일이라 비록 신 같은 사람이 100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呂澤彊要曰:
「為我畫計。」
여택이 강요하며 말하였다.
나를 위해 계책을 세워 주시오.”

留侯曰:
「此難以口舌爭也。
顧上有不能致者,天下有四人。
四人者年老矣,皆以為上慢侮人,故逃匿山中,義不為漢臣。
然上高此四人。
今公誠能無愛金玉璧帛,令太子為書,卑辭安車,因使辯士固請,宜來。
來,以為客,時時從入朝,令上見之,則必異而問之。
問之,上知此四人賢,則一助也。」
유후가 말하였다.
이 일은 말로써 다투기가 어렵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상께서 모셔오지 못한 사람이 천하에 네 사람이 있습니다.
네 사람은 연로한데모두가 주상께서 사람을 업신여긴다고 여겨서 산속으로 피해 은거하며 도의상 한나라 신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상께서는 이 네 분을 존경하고 계십니다.
지금 공께서 성의있게 금옥과 비단을 아끼지 말고태자에게 편지를 쓰게 하되 공손한 말로 하고편안한 수레를 준비하고말 잘하는 사람을 보내 간곡히 청한다면 의당 올 터입니다.
그들이 오시거든 손님으로 모시고수시로 태자를 따라 入朝하게 하여 주상께서 그들을 보시면 틀림없이 비범하게 여기셔서 그들에 대해 물으실 터입니다.
물어서 이 네 사람이 현명함을 알게 되면 곧 태자에게 도움이 될 터입니다.”

▶ 慢侮: 업신여기다. 얕보다.
▶ 安車: 앉아서 타고 가는 수레.
▶ 卑辭: 겸손한 말. 공손한 말.

於是呂后令呂澤使人奉太子書,卑辭厚禮,迎此四人。
이에 여후는 여택에게 명령하기를사람을 시켜 태자의 편지를 받들어 공손한 말과 후한 예물로 이 네 사람을 맞아들이게 하였다.

四人至,客建成侯所。
네 사람이 도착하자 건성후 여택의 집에 손님으로 모셨다.

▶ 迎此四人: 呂后가 張良의 계책을 써서 商山四皓를 불러 태자 劉盈의 빈객으로 삼으니, 결국 태자를 바꾸지 않게 되었다. 商山四皓는 秦나라 말기 진시황제의 학정을 피해 상산에 은둔했던 네 노인으로 東園公·夏黃公·綺里季·甪里先生을 이르는데, 나이가 80을 넘어 머리가 희었으므로 四皓라 칭하였다.

 

漢十一年,黥布反,上病,欲使太子將,往擊之。
한왕11(기원전196)에 黥布가 반란을 일으켰는데주상이 병중이라태자를 장수로 삼아 반란군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四人相謂曰:
「凡來者,將以存太子。
太子將兵,事危矣。」
네 사람은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온 까닭은 태자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태자께서 군대를 거느리면 사정이 위험해진다.”

▶ 黥布: 항우를 따라 入關한 뒤 九江王에 봉해졌으며, 楚漢전쟁 중에 한나라가 그를 설득하자 한나라로 귀순하였다. 漢나라가 선 뒤 韓信과 彭越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사기 권91. 黥布列傳>
▶ 四人: 商山四皓. 秦나라 말기 진시황제의 학정을 피해 상산에 은둔했던 네 노인으로 東園公·夏黃公·綺里季·甪里先生을 말한다.

乃說建成侯曰:
이에 건성후 여택을 설득하였다.

「太子將兵,有功則位不益太子;
無功還,則從此受禍矣。
태자께서 장수가 되면 공을 세워도 태자라는 지위로서는 유익하지 않고,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오면 그것으로 화를 입을 터이오.

且太子所與俱諸將,皆嘗與上定天下梟將也,今使太子將之,此無異使羊將狼也,皆不肯為盡力,其無功必矣。
또 태자와 함께할 장수들은 모두 주상과 함께 천하를 평정한 맹장들이라지금 태자가 그들을 통솔함은 양이 이리를 거느림과 다름없고모두 盡力하려 하지 않을 터이니전공이 없을 것은 뻔하오.

臣聞『母愛者子抱』,今戚夫人日夜待御,趙王如意常抱居前,上曰『終不使不肖子居愛子之上』,明乎其代太子位必矣。
신들이 듣기에 어미가 사랑을 받으면 그 자식도 귀여움을 받는다.’라고 하는데지금 척부인이 밤낮으로 주상을 모시고 조왕 여의는 늘 주상의 품에 안겨 있고주상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아무래도 불초한 자식을 사랑하는 자식 위에 둘 수 없다.’라고 하시니그가 태자의 보위를 대신할 것이 분명하오.

君何不急請呂后承間為上泣言:
『黥布,天下猛將也,善用兵,今諸將皆陛下故等夷,乃令太子將此屬,無異使羊將狼,莫肯為用,且使布聞之,則鼓行而西耳。
上雖病,彊載輜車,臥而護之,諸將不敢不盡力。
上雖苦,為妻子自彊。』」
그대는 어째서 서둘러 여후께 청하기를기회를 보아 주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게 하지 않습니까?
경포는 천하의 맹장으로 용병에 뛰어납니다지금 장수들은 모두 폐하의 옛 동료로서 태자에게 이들을 거느리게 하면양에게 이리를 거느리게 함과 다를 바 없어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을 터입니다또 경포가 들으면 북을 울리며 서쪽으로 쳐들어올 터입니다.
주상께서 비록 병중이긴 하지만 억지로라도 큰 수레를 타고 누워서라도 그들을 통솔하시면 장수들도 감히 盡力하지 않을 수 없을 터입니다.
주상께서는 힘드시더라도 처자식을 위해 친히 힘써 주십시오. ’”

▶ 母愛者子抱: 子以母貴,母以子貴. “嫡子를 세우기를 나이가 많음으로써 하고 어짊으로써 하지 않으며, 아들을 세우기를 귀함으로써 하고 나이로써 하지 않으니, 자식은 어미로 인해 귀해지고 어미는 자식으로 인해 귀해진다.” <春秋公羊傳 隱公 元年>
▶ 承間: 기회를 틈타다. 承은 乘과 통용된다.
▶ 等夷: 동료. 同輩.
▶ 輜車: 군수품을 운반하는 휘장을 두른 수레.
▶ 護: 통할하다. 호위하다.

於是呂澤立夜見呂后,呂后承間為上泣涕而言,如四人意。
이에 여택은 그날 밤에 여후를 만났고여후는 틈을 타서 주상에게 눈물을 흘리며 네 사람의 뜻대로 말하였다.

上曰:
「吾惟豎子固不足遣,而公自行耳。」
주상이 말하였다.
나도 본래 어린애를 보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늙은이가 직접 가겠소.”

於是上自將兵而東,群臣居守,皆送至灞上。
이에 주상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했고신하들은 남아서 지키게 하니모두 灞上까지 전송을 나왔다.

留侯病,自彊起,至曲郵,見上曰:
「臣宜從,病甚。

楚人剽疾,願上無與楚人爭鋒。」
유후는 병중이었으나 억지로 일어나 曲郵에 이르러 주상을 알현하고 말하였다.
신이 따라가야 마땅하나 병이 심합니다.
楚 사람들은 사납고 빠르니 주상께서는 楚 사람들과 정면으로 싸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因說上曰:
「令太子為將軍,監關中兵。」
이어 주상을 설득하였다.
태자를 장군으로 삼아 관중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옵소서.”

上曰:
「子房雖病,彊臥而傅太子。」
주상이 말하였다.
자방이 비록 병중이지만 누워서라도 태자를 보필하시오.”

是時叔孫通為太傅,留侯行少傅事。
이때 叔孫通은 太傅였고유후는 少傅를 맡고 있었다.

▶ 惟: 생각하다.
▶ 居守: 留守. 남아서 지키다.
▶ 叔孫通: 진나라 말기 전한 초기의 관료로 薛縣 사람이다. 처음에는 秦나라 二世皇帝를 섬겨 博士를 지내다가 위태로움을 알고 달아나 項梁과 項羽를 섬겼다가 劉邦에게 귀순하여 박사가 되고, 稷嗣君으로 불렸다.

漢十二年,上從擊破布軍歸,疾益甚,愈欲易太子。
한왕12(기원전195)에 주상이 경포의 군사를 쳐부수고 돌아와서 병이 더욱 심해지자 더욱더 태자를 바꾸려 하였다.

留侯諫,不聽,因疾不視事。
유후가 간했으니 듣지 않자 유후는 병을 핑계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叔孫太傅稱說引古今,以死爭太子。
太子太傅인 숙손통이 고금의 일을 인용하여 설득하며죽기로 태자를 다투었다.

上詳許之,猶欲易之。
주상이 윤허하는 척했으나 여전히 태자를 바꾸려 하였다.

及燕,置酒,太子侍。
연회를 열어 술자리가 마련됨에 태자가 주상을 시립하였다.

四人從太子,年皆八十有餘,鬚眉皓白,衣冠甚偉。
네 사람이 태자를 따랐는데나이는 모두 80이 넘었고수염과 눈썹이 희었으며 의관은 매우 위엄이 있있다.

上怪之,問曰:
「彼何為者?」
주상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저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四人前對,各言名姓,曰東園公,角里先生,綺里季,夏黃公。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 각자 성과 이름을 말하는데東園公甪里先生綺里季夏黃公이었다.

▶ 詳: 佯과 통용된다. ~인 체하다.
▶ 燕: 宴과 통용된다. 연회.



上乃大驚,曰:
「吾求公數歲,公辟逃我,今公何自從吾兒游乎?」
주상은 매우 놀라서 말하였다.
내가 공들을 몇 년 동안 찾았지만공들은 나를 피해 도망 다녔는데지금 공들은 어찌하여 내 아들과 교유하고 있는가?”

四人皆曰:
「陛下輕士善罵,臣等義不受辱,故恐而亡匿。
竊聞太子為人仁孝,恭敬愛士,天下莫不延頸欲為太子死者,故臣等來耳。」
네 사람이 모두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선비를 가볍게 여기시고 꾸짖기를 잘하시니신들의 道義상 모욕을 받을 수 없어 두려운 나머지 도망쳐 숨었던 것입니다.
삼가 듣자하니태자는 사람됨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선비를 공경하고 아끼므로천하 사람치고 목을 길게 뺀 채 태자를 위해 죽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기에신들이 왔을 뿐입니다.”

上曰:
「煩公幸卒調護太子。」
주상이 말하였다.
공들은 번거롭겠지만 태자를 끝까지 잘 지켜주기 바라오.”

▶ 辟: 避와 같다. 피하다.
▶ 延頸: 목을 길게 빼다.

四人為壽已畢,趨去。
네 사람이 축수를 마치고 종종걸음치며 떠났다.

上目送之,召戚夫人指示四人者曰:
「我欲易之,彼四人輔之,羽翼已成,難動矣。
呂后真而主矣。」
주상은 눈으로 그들을 떠나보내고는 척부인을 불러 네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태자를 바꾸고자 했으나저 네 사람이 태좌를 보좌하니 날개가 이미 완성되어 움직이기 어렵다.
여후가 진짜 그대의 주인이다.”

戚夫人泣,上曰:
「為我楚舞,吾為若楚歌。」
척부인이 눈물을 흘리자 주상이 말하였다.
나를 위해 楚舞를 추어라나도 그대를 위해 楚歌를 부르마.”

▶ 羽翼: 날개. 보좌하다.

歌曰:
「鴻鴈高飛,一舉千里。
羽翮已就,橫絕四海。
橫絕四海,當可奈何!
雖有矰繳,尚安所施!」
노래는 이러했다.
큰 기러기 높이 날아 단번에 천리를 날아가네.
날개가 이미 다 자라나 사해를 마음껏 오가는구나.
사해를 마음껏 오가니 어찌하겠는가!
주살이 있다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 翮: 새의 날개죽지.
▶ 矰繳: 가는 줄을 매단 주살. 오니와 시위를 잡아매고 쏘는 화살.

 

歌數闋,戚夫人噓唏流涕,上起去,罷酒。
연이어 몇 차례 노래를 부르니 척부인은 목메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으며주상이 일어나 자리를 뜨자 술자리는 끝났다.

竟不易太子者,留侯本招此四人之力也。
끝내 태자를 바꾸지 못함은 유후가 본래 이 네 사람을 부른 덕분이었다.

▶ 歌數闋: 여러 차례 노래를 부르다. 闋은 끝나다. 악곡을 세는 단위.
▶ 噓唏: 울면서 목메어 흐느끼는 소리.

 

留侯從上擊代,出奇計馬邑下,及立蕭何相國,所與上從容言天下事甚眾,非天下所以存亡,故不著。
유후가 주상을 따라 를 공격하고馬邑城아래에서 기이한 계책을 내고소하를 相國으로 세우게 하며주상과 함께 조용히 천하 대사를 논의함이 매우 많지만천하의 존망과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

留侯乃稱曰:
「家世相韓,及韓滅,不愛萬金之資,為韓報讐彊秦,天下振動。
今以三寸舌為帝者師,封萬戶,位列侯,此布衣之極,於良足矣。
願棄人間事,欲從赤松子游耳。」
유후는 늘 공언하였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韓相을 지냈으며이 멸망하자 만금의 가산을 아끼지 않고 을 위해 강력한 진나라에 복수하여 천하가 진동하였다.
지금 세 치의 혀로 帝王의 軍師가 되어 萬戶에 봉해지고지위는 열후에 올랐으니 이는 布衣의 지극함이니 나 장량은 만족한다.
人間事를 버리고 赤松子를 따라 노닐고 싶을 뿐이다.”

▶ 著: 저술하다.
▶ 報讐: 앙갚음.
▶ 赤松子: 전설 속의 仙人. <漢書> 顔師古의 注에, “적송자는 仙人의 號이다. 神農氏 때에 雨師였다. [赤松子仙人號也 神農時爲雨師]”라고 하였다. 음식으로 물을 먹고 옥으로 옷을 해 입은 적송자는 신농에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견디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金華山에 살다가 스스로 몸을 태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神仙傳>

乃學辟穀,道引輕身。
그리하여 辟穀을 배웠고 導引으로 몸을 가볍게 하였다.

會高帝崩,呂后德留侯,乃彊食之,曰:
「人生一世間,如白駒過隙,何至自苦如此乎!」
고제가 세상을 떠남에여후는 유후의 은덕에 감격하여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하면서 말하였다.
인간 한 세상은 白駒過隙(백마가 문틈을 지나감)과 같은데어째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留侯不得已,彊聽而食。
유후는 하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억지로 음식을 먹었다.

▶ 辟谷: 五穀과 火食을 피하는 양생술. 양생술은 오곡과 火食을 피하는 辟穀, 호흡을 통해 몸 안에 기를 충일케 하는 服氣, 몸의 屈伸을 통해 내공을 단련하는 導引, 남녀의 성적 결합을 통해 내공을 단련하는 房中, 식물성 약재를 취해 기를 북돋는 服餌의 다섯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養生五大要라고 한다.
▶ 白駒過隙: 빠른 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다.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의미.
莊子知北遊에는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빠른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지라 순식간에 지나갈 뿐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隙,忽然而已.”
라고 하였다.

後八年卒,謚為文成侯。
8년 후 유후가 죽으니 시호는 文成侯이다.

子不疑代侯。
아들 張不疑가 대를 이어 가 되었다.

子房始所見下邳圯上老父與太公書者,後十三年從高帝過濟北,果見穀城山下黃石,取而葆祠之。
張子房이 당초 하비 이교 위에서 노인을 만나 <太公兵法>을 받았으며,
13년 후 고제를 따라 濟北을 지나는데 과연 穀成山에서 黃石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보물처럼 제사를 지냈다.

留侯死,并葬黃石冢
유후가 죽자 黃石을 함께 안장하였다.

每上冢伏臘,祠黃石。
매년 여름과 겨울 성묘 때 黃石에 함께 제사를 지냈다.

 

留侯不疑,孝文帝五年坐不敬,國除。
유후 장불의가 효문제5(기원전175)에 불경죄로 인하여 봉국은 폐지되었다.

▶ 葆: 寶와 통용된다. 보물.
▶ 祠: 祭祀지내다.

▶ 上冢: 亦作 “上塚”。上坟,扫墓。성묘
▶ 伏臘: 삼복과 臘日(: 음력 섣달). 한나라 때 여름의 복날과 겨울의 납일을 명절로 정해 제사를 지냈다.

 

太史公曰:
學者多言無鬼神,然言有物。
至如留侯所見老父予書,亦可怪矣。
高祖離困者數矣,而留侯常有功力焉,豈可謂非天乎?
上曰:
「夫運籌筴帷帳之中,決勝千里外,吾不如子房。」
余以為其人計魁梧奇偉,至見其圖,狀貌如婦人好女。
蓋孔子曰:
「以貌取人,失之子羽。」
留侯亦云。
태사공은 말한다.
학자들에 귀신은 없다고 말하고 物象은 있다고 말하는 자가 많다.
유후가 만난 노인이 책을 준 일을 말하자면 역시 괴이하다 할 수 있다.
고조가 곤궁에 처한 일이 여러 차례였는데 유후가 늘 공을 세웠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주상이 말하기를
군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데는 내가 자방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나는 유후가 기골이 장대하고 인품이 기이하고 위대할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그의 초상화를 보니 용모가 부인이나 예쁜 여인 같았다.
공자가 말하기를
겉모습으로 사람을 취하다가 내가 子羽에게 잘못을 범하였다.’
라고 했으니유후 역시 그렇다고 하겠다.”

▶ 至如: ~으로 말하면.
▶ 離: 罹와 통용된다. 당하다.
▶ 以貌取人: 외모로 인재의 평가기준으로 하다. 공자의 제자 중 澹臺滅明은 字가 子羽이다. 공자보다 29세 아래로 얼굴이 아주 못생겼으나 인품이 고결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말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宰予에게 실수를 했고 얼굴로서 사람을 평가했다가 子羽에게 실수를 하였다.”라고 하였다.
<史記列傳권67仲尼弟子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