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篇은 30世家 중 24번째 편으로 前漢高祖 劉邦의 장수이었으며, 蕭何를 이은 相國 曹參에 대한 전기이다.
曹參은 전한의 군인이자 개국 공신으로, 자는 敬伯이다. 원래 진나라의 옥리였으나, 고조 유방의 거병 시에 뜻을 같이하였다. 한신과 더불어 군사면에서 활약을 하였다. 진나라와 항우를 공략하여 한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후에는 공신서열 2위 平陽侯로 책봉되었고 경포의 반란 등을 평정하였다. 고조가 죽은 뒤 肅何의 추천으로 相國이 되어 惠帝를 보필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韓信과 함께 魏를 평정하고, 趙를 격파하고, 齊를 함락함으로써 마침내 楚를 약하게 만들었다. 蕭何를 이어 相國이 되었으나 제도를 바꾸지도 개혁하지도 않으니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曹參이 자기 공과 능력을 자랑하지 않음을 칭송하여 제24편 ‘曹相國世家’를 지었다.”
라고 하였다.
平陽侯曹參者,沛人也。
平陽侯曹參은 沛縣사람이다.
秦時為沛獄掾,而蕭何為主吏,居縣為豪吏矣。
秦나라 때 조참은 패현의 獄掾이었, 蕭何는 主吏로 일했는데, 그들은 縣에서 명망 있는 관리였다.
▶ 掾: 하급관리
▶ 蕭何: 패현의 말단 관리였으나 나중에 고조 유방의 재상이 되었다. 한나라 유방과 楚 항우의 싸움에서는 관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했으므로, 고조가 즉위할 때 논공행상에서 으뜸가는 공신이라 하여 酇侯로 봉해졌다.
▶ 主吏: 패현 현령의 관리.
▶ 豪吏: 명망이 있는 관리. 권세가의 관리.
高祖為沛公而初起也,參以中涓從。
고조가 沛公이 되어 처음 봉기함에, 조참은 中涓의 신분으로 고조를 따랐다.
將擊胡陵、方與,攻秦監公軍,大破之。
조참은 군대를 이끌고 胡陵·方與를 공격하여 진나라 監公의 군을 쳐서 대파하였다.
東下薛,擊泗水守軍薛郭西。
동쪽으로 薛縣을 함락시켰고 泗水郡군수의 군대를 설현 외성의 서쪽에서 공격하였다.
復攻胡陵,取之。
그 후 다시 호릉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徙守方與。
조참이 군대를 이끌고 이동하여 방여를 지켰다.
方與反為魏,擊之。
방여가 배반하여 魏가 되자 방여를 공격하였다.
豐反為魏,攻之。
豐읍도 배반하여 위가 되자 풍읍을 공격하였다.
賜爵七大夫。
패공은 조참에게 七大夫의 작위를 내렸다.
擊秦司馬夷軍碭東,破之,取碭、狐父、祁善置。
조참은 碭현의 동쪽에서 秦나라 司馬夷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탕현·狐父·祁현의 善置를 탈취하였다.
又攻下邑以西,至虞,擊章邯車騎。
또 下邑 서쪽 지방을 공격하여 虞현에 이르러 章邯의 기병을 공격하였다.
攻爰戚及亢父,先登。
爰戚과 亢父를 공격할 때는 제일 먼저 성루에 올랐다.
遷為五大夫。
조참은 五大夫로 승진하였다.
▶ 中涓: 황제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 궁궐의 청소를 담당했던 사람. 中은 禁中, 涓은 청결을 뜻함.
▶ 郭: 외성.
▶ 魏: 魏王魏咎.
▶ 章邯: 秦나라 말기 장수로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조고의 박해를 받아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五大夫: 한나라 때 군공에 따라 수여하는 20등급의 작위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작위.
▶ 遷: 승진하다.
北救阿,擊章邯軍,陷陳,追至濮陽。
북쪽으로 東阿를 구원하고 장한의 군대를 공격하여 陳縣을 함락하고 濮陽까지 추격하였다.
攻定陶,取臨濟。
定陶를 공격하고 臨濟를 탈취하였다.
南救雍丘。
남쪽으로 雍丘를 구원하였다.
擊李由軍,破之,殺李由,虜秦候一人。
李由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겨 이유를 죽이고, 진나라의 候 一人을 포로로 잡았다.
秦將章邯破殺項梁也,沛公與項羽引而東。
秦將 장한이 項梁을 이기고 죽이자 패공은 項羽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왔다.
楚懷王以沛公為碭郡長,將碭郡兵。
楚懷王은 패공을 碭郡의 郡長으로 삼아 탕군의 군대를 이끌게 하였다.
於是乃封參為執帛,號曰建成君。
이에 조참을 執帛으로 봉했고 建成君이라 불렀다.
遷為戚公,屬碭郡。
그후 조참을 戚현의 현령으로 승진시키고 탕군을 그에게 소속시켰다.
▶ 楚懷王: 초회왕 熊心. 초회왕 熊槐의 손자. 기원전209년 項梁이 거병하고 옹립하여 楚王이 되고, 盱臺에 도읍을 정하였다. 항량이 죽고 진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彭城으로 천도하였다.
▶ 李由: 秦나라의 장군으로 승상 李斯의 맏아들.
其後從攻東郡尉軍,破之成武南。
그 후 조참은 패공을 따라 東郡郡尉의 군대를 공격하여 成武의 남쪽에서 승리하였다.
擊王離軍成陽南,復攻之杠裏,大破之。
王離의 군대를 成陽 남쪽에서 공격하고 다시 杠裏에서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追北,西至開封,擊趙賁軍,破之,圍趙賁開封城中。
패주병을 추격하여 서쪽으로 開封에 이르러 趙賁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기고 조분을 개봉성에서 포위하였다.
西擊將楊熊軍於曲遇,破之,虜秦司馬及御史各一人。
서쪽으로 공격하여 秦將 楊熊의 군대를 曲遇에서 이기고 진나라의 司馬와 御史를 각각 한 명씩 포로로 잡았다.
遷為執珪。
조참은 執珪로 승진하였다.
▶ 王離: 秦의 명장 王翦의 손자로 鉅鹿의 싸움에서 항우에게 사로잡혔다.
▶ 追北: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從攻陽武,下軒轅、緱氏,絕河津,還擊趙賁軍尸北,破之。
패공을 따라 陽武를 공격하여 軒轅·緱氏를 함락하고, 황하 나루터를 끊어 놓고 군사을 돌려 조분의 군대를 공격하여 尸鄕북쪽에서 이겼다.
從南攻犨,與南陽守齮戰陽城郭東,陷陳,取宛,虜齮,盡定南陽郡。
패공을 따라 남쪽으로 犨읍을 공격했고, 陽城의 외성 동쪽에서 南陽군수 呂齮와 전투를 벌여 전투대열을 무너뜨리고 宛城을 탈취하여 여의를 포로로 잡음으로써 南陽郡을 남김없이 평정하였다.
從西攻武關、峣關,取之。
패공을 따라 서쪽으로 武關·嶢關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前攻秦軍藍田南,又夜擊其北,秦軍大破,遂至咸陽,滅秦。
먼저 秦軍을 藍田의 남쪽에서 공격하고, 다시 밤에 그 북쪽을 공격하여 진군을 대파하여 마침내 咸陽에 이르러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 陳: 陣과 같다. 교전시의 전투 대열.
項羽至,以沛公為漢王。
항우가 관중에 도착하여 패공을 漢王에 봉하였다.
漢王封參為建成侯。
한왕은 조참을 建成侯에 봉하였다.
從至漢中,遷為將軍。
조참은 한왕을 따라서 關中에 이르자 將軍으로 승진하였다.
從還定三秦,初攻下辯、故道、雍、斄。
한왕을 따라 군대를 돌려 三秦을 평정하고 처음으로 下辯·故道·雍·斄현을 공격하였다.
擊章平軍於好畤南,破之,圍好畤,取壤鄉。
章平의 군대를 好畤 남쪽에서 공격하여 이기고, 호치를 포위해 壤鄕을 탈취하였다.
擊三秦軍壤東及高櫟,破之。
양향의 동쪽과 高櫟 일대에서 三秦의 군대를 쳐서 이겼다.
復圍章平,章平出好畤走。
다시 장평을 포위하자 장평은 호치를 나와 달아났다.
因擊趙賁、內史保軍,破之。
이어 조분과 그의 內史 保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겼다.
東取咸陽,更名曰新城。
동쪽으로 함양을 탈취하여 新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三秦: 항우가 秦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각기 나누어 셋으로 만들어 분봉하고 雍王, 塞王, 翟王이라 이름하고는 三秦이라 불렀다. 〈秦始皇本紀〉
▶ 食邑: 국가에서 공신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 采邑이라고도 한다.
參將兵守景陵二十日,三秦使章平等攻參,參出擊,大破之。
조참이 군대를 이끌고 20일 동안 景陵을 지키자, 三秦은 장평 등에게 조참을 공격하도록 하였고, 조참이 출격하여 대파하였다.
賜食邑於寧秦。
한왕은 寧秦을 조참에게 食邑으로 하사하였다.
參以將軍引兵圍章邯於廢丘。
조참은 장군의 신분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廢丘에서 장한을 포위하였다.
以中尉從漢王出臨晉關。
또 中尉의 신분으로 한왕을 따라 臨晉關을 나왔다.
至河內,下修武,渡圍津,東擊龍且、項他定陶,破之。
河內에 이르러 修武를 점령하고, 圍津에서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龍且와 項他를 定陶에서 공격하여 이겼다.
東取碭、蕭、彭城。
동쪽으로 碭현·蕭현·彭城을 탈취하였다.
▶ 龍且: 楚項羽의 막하 장수. 齊의 전영이 장한과의 싸움에 지고 동아로 달아남에, 용저는 사마로서 무신군 항량, 전영과 함께 동아를 구원하였다. 한왕 원년(기원전206년), 漢將 조참이 圍나루를 건너오자 項他와 함께 정도에서 맞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史記列傳]권94田儋列傳>
擊項籍軍,漢軍大敗走。
項籍의 군대를 공격했으나 漢軍이 대패하여 달아났다.
參以中尉圍取雍丘。
조참은 중위의 신분으로 雍丘를 포위하여 탈취하였다.
王武反於[外]黃 程處反於燕,往擊,盡破之。
漢將 王武가 外黃에서 배반하고, 程處가 燕에서 배반하자 조참이 가서 공격하여 모조리 쳐부수었다.
柱天侯反於衍氏,又進破取衍氏。
柱天侯가 衍氏에서 배반하자 조참이 다시 나가 연지를 쳐부수고 탈취하였다.
擊羽嬰於昆陽,追至葉。
昆陽에서 羽嬰을 공격하고 추격하여 葉까지 이르렀다.
還攻武彊,因至滎陽。
군대를 돌려 武彊을 공격한 다음 滎陽에 이르렀다.
參自漢中為將軍中尉,從擊諸侯,及項羽敗,還至滎陽,凡二歲。
조참은 한중에서부터 장군과 중위가 되어 한왕을 따라 제후들을 공격하다가 항우에게 패하여 다시 형양으로 돌아오니 모두 2년이 걸렸다.
高祖三[二]年,拜為假左丞相,入屯兵關中。
고조2년(기원전205년)에 조참을 임시 左丞相으로 임명하여 關中으로 들어가 주둔하게 하였다.
月餘,魏王豹反,以假左丞相別與韓信東攻魏將軍孫遬軍東張,大破之。
한 달여 지나 魏王 豹가 배반하자, 조참은 임시 좌승상의 신분으로 韓信의 군대와 별도로 동쪽으로 魏將 孫遫의 군대를 東張에서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因攻安邑,得魏將王襄。
이어 安邑을 공격하여 魏將 王襄을 포로로 잡았다.
擊魏王於曲陽,追至武垣,生得魏王豹。
曲陽에서 魏王을 공격하여 武垣까지 뒤쫓아 위왕 표를 생포하였다.
取平陽,得魏王母妻子,盡定魏地,凡五十二城。
平陽을 탈취하여 위왕의 어머니와 처자들을 잡고 魏 땅을 모두 평정하니 총 52 城이었다.
▶ 假: 임시.
▶ 魏王豹: 기원전205년 유방에 의해 대원수로 임명되어 6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彭城대전을 치렀으나 漢나라가 항우에게 크게 패하고 위표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 본국 魏로 돌아가 유방을 배신하고 유방이 보낸 사신 酈食其의 설득도 받아들이지 않다가, 韓信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여 滎陽으로 끌려갔다. <史記권90魏豹彭越列傳>
賜食邑平陽。
한왕은 조참에게 平陽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因從韓信擊趙相國夏說軍於鄔東,大破之,斬夏說。
이어 한신을 따라 趙의 相國 夏說의 군대를 鄔의 동쪽에서 공격하여 대파하고 하열의 목을 베었다.
韓信與故常山王張耳引兵下井陘,擊成安君,而令參還圍趙別將戚將軍於鄔城中。
한신은 옛 常山王 張耳와 함께 병사를 이끌고 井陘에 이르러 成安君을 공격하고, 조참에게 명령하기를, 돌아와서 趙의 別將 戚장군의 군대를 鄔城에서 포위하라 하였다.
戚將軍出走,追斬之。
척장군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자 조참이 추격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乃引兵詣敖倉漢王之所。
이어 조참은 병사를 이끌고 敖倉의 한왕의 처소로 갔다.
▶ 별장: 주력부대와 작전을 함께하는 부대의 장수. 配合主力军作战的部队将领
韓信已破趙,為相國,東擊齊。
한신이 趙를 격파한 후 상국이 되어 동쪽으로 齊를 공격하였다.
參以右丞相屬韓信,攻破齊歷下軍,遂取臨菑。
조참이 우승상의 신분으로 한신에게 소속되어 齊 歷下의 군대를 공격하여 쳐부수고 이어 臨菑를 탈취하였다.
還定濟北郡,攻著、漯陰、平原、鬲、盧。
군대를 돌려 濟北郡을 평정하고, 著·漯陰·鬲·盧를 공격하였다.
已而從韓信擊龍且軍於上假密,大破之,斬龍且,虜其將軍周蘭。
끝나자, 한신을 따라 上假密에서 용저의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한 다음 용저의 목을 베고 그의 장군 周蘭을 사로잡았다.
定齊,凡得七十餘縣。
齊를 평정하고 총 70현을 획득하였다.
得故齊王田廣相田光,其守相許章,及故齊膠東將軍田既。
옛 齊왕 田廣의 丞相 田光, 그의 대리 승상 許章과 옛 齊의 膠東將軍 田旣를 사로잡았다
韓信為齊王,引兵詣陳,與漢王共破項羽,而參留平齊未服者。
한신은 齊王이 되어 병사를 이끌고 陳현에 이르러 한왕과 함께 항우를 쳐부수었고, 조참은 齊에 머무르며 항복하지 않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 守相: 대리승상.
項籍已死,天下定,漢王為皇帝,韓信徙為楚王,齊為郡。
項籍이 죽고 천하가 평정되자 한왕이 황제가 되었으며, 한신은 楚王으로 옮겨졌고 齊는 郡이 되었다.
參歸漢相印。
조참은 漢丞相의 인수를 반환하였다.
高帝以長子肥為齊王,而以參為齊相國。
고제는 장자 劉肥를 齊王으로 봉하며, 조참을 齊의 상국으로 임명하였다.
以高祖六年賜爵列侯,與諸侯剖符,世世勿絕。
고조6년(기원전201년)에 열후의 작위를 내리면서, 제후에게 쪼갠 부절을 주어 대대로 끊이지 않게 하였다.
食邑平陽萬六百三十戶,號曰平陽侯,除前所食邑。
평양 10,630호를 조참의 식읍으로 주고 평양후로 부르며 전에 봉하였던 식읍은 회수하였다.
▶ 徙: 전임하다.
▶ 長子肥: 齊悼惠王 劉肥. 고조 유방의 서얼 장자.
▶ 剖符: 부절을 쪼개다. 符節은 구리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符信. 직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져서 信標로 사용하였다.
以齊相國擊陳豨將張春軍,破之。
조참은 齊相國의 신분으로 陳豨의 장수 張春의 군대를 쳐부수었다.
黥布反,參以齊相國從悼惠王將兵車騎十二萬人,與高祖會擊黥布軍,大破之。
黥布가 배반하자, 조참은 齊相國의 신분으로 悼惠王 劉肥를 따라 기병과 보병 20만을 이끌고 고조와 합세하여 경포의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南至蘄,還定竹邑、相、蕭、留。
남쪽으로 蘄현에 이르렀고, 회군하여 竹邑·相현·蕭현·留현을 평정하였다.
參功:
凡下二國,縣一百二十二;
得王二人,相三人,將軍六人,大莫敖、郡守、司馬、候、御史各一人。
조참의 공적은 이러하다.
총 2개의 제후국과 현 122개를 함락하였고,
제후왕 2명, 제후국 승상 3명, 장군 6명과 大莫敖·郡守·司馬·軍侯·御史 각 1명을 포로로 잡았다.
孝惠帝元年,除諸侯相國法,更以參為齊丞相。
惠帝 원년(기원전194년), 제후국에 상국을 두는 법령이 폐지되자 조참을 齊丞相으로 바꾸었다.
參之相齊,齊七十城。
조참이 齊의 승상일 때 齊에 70 성읍이 있었다.
天下初定,悼惠王富於春秋,參盡召長老諸生,問所以安集百姓,如齊故[俗]諸儒以百數言人人殊,參未知所定。
천하가 막 평정되었고 悼惠王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조참은 長老와 유생들을 모두 불러서 백성을 편안하게 방법을 물었으나, 齊의 풍속을 따르는 백 명이나 되는 유생의 말이 사람마다 달라서 조참은 결정할 바를 몰랐다.
▶ 富於春秋: 나이가 어리다. 富는 어리다는 뜻.
▶ 諸生: 여러 儒生
▶ 安集: 편안하게 하다. 안정시키다.
▶ 如: 而. 그러나.(역접) 허사 如 참조
▶ 殊: 다르다.
聞膠西有蓋公,善治黃老言,使人厚幣請之。
膠西에 蓋公이란 사람이 黃老學說에 정통하므로, 사람을 보내 후한 예물로 초청하였다.
既見蓋公,蓋公為言治道貴清靜而民自定,推此類具言之。
합공을 만나니 합공이 조참에게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는 淸淨無爲를 중시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안정된다고 하면서, 이런 유형을 확장하여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參於是避正堂,舍蓋公焉。
조참은 이에 正堂을 양보하여 합공을 거주하도록 하였다.
其治要用黃老術,故相齊九年,齊國安集,大稱賢相。
그 치세의 요체로 황로학술을 채택하였으므로, 齊의 승상으로 9년이 되자 齊나라가 안정되었고, 현명한 승상을 크게 칭찬하였다.
▶ 蓋公: 漢나라 초기의 학자이며 膠西사람으로 黃老學에 조예가 깊었다. 蓋公은 성명이 아니고 公은 그에 대한 존칭으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蓋’은 姓이나 地名으로 쓰이면 ‘합’으로 읽는다. <史記列傳권80樂毅列傳>
▶ 黄老言: 黄帝와 老子의 학설. 道家의 학설
▶ 淸淨: 清凈無爲. 맑고 고요하며 인위적으로 행함도 없다. 노자는 無爲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자연히 올바르게 된다고 하였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즉 객관적인 법칙에 따르는 것이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무위는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 舍: 묵다.
▶ 黃老術: 黃老學派의 학설. 황로학파는 전국시대와 漢나라 때에 성행했던 도가 사상의 한 유파로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묵가·명가·법가 등의 사상을 흡수하여 淸淨無爲의 정치사상을 내세웠으며, 노자의 道개념을 발전시켜 氣一元論의 철학적 전통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惠帝二年,蕭何卒。
혜제2년(기원전193년)에 蕭何가 죽었다.
參聞之,告舍人趣治行:
「吾將入相」。
조참이 소식을 듣고 舍人에게 行裝을 꾸리라고 재촉하였다.
“내가 입조하여 상국이 될 터이다.”
居無何,使者果召參。
얼마 있지 않아, 사신이 과연 조참을 召喚하였다.
參去,屬其後相曰:
「以齊獄市為寄,慎勿擾也。」
조참이 떠나면서 그의 후임 승상에게 부탁하였다.
“齊의 감옥과 시장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신중하여야 하며 교란시켜서는 안 되오.”
後相曰:
「治無大於此者乎?」
후임 승상이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에 이보다 중대한 것이 없습니까?”
參曰:
「不然。
夫獄市者,所以并容也,今君擾之,姦人安所容也?
吾是以先之。」
조참이 말하였다.
“그렇지는 않소.
감옥과 시장이란 모든 것을 용납하는 곳인데, 그대가 그곳을 교란시키면 간악한 자들을 어느 곳이 용납하겠소?
이 때문에 나는 이 일을 우선시하오.”
▶ 趣: 促과 통용된다. 재촉하다.
▶ 屬: 嘱과 같다. 부탁하다.
▶ 獄市: 감옥과 시장.
▶ 寄: 기탁하다.
參始微時,與蕭何善;及為將相,有卻。
조참이 처음에 미천하였을 때는 소하와 사이가 좋았으나 각자 장수와 승상이 되자 틈이 벌어졌다.
至何且死,所推賢唯參。
소하가 죽으면서 賢人이라 추천한 사람은 조참이 유일하였다.
參代何為漢相國,舉事無所變更,一遵蕭何約束。
조참이 소하의 뒤를 이어 한상국이 됨에, 모든 일은 변경이 없었고 한결같이 소하가 제정한 법령을 준수하였다.
▶ 郤: 틈.
▶ 約束: 규칙. 법도.
擇郡國吏木詘於文辭,重厚長者,即召除為丞相史。
조참은 郡國(直轄의 郡과 封建의 國)의 관리로서 질박하고 文辭에 어눌한 자, 중후한 長者를 선택하고 불러들여 승상부의 관리로 임명하였다.
吏之言文刻深,欲務聲名者,輒斥去之。
관리로서 말과 문장이 각박하고 聲名을 힘쓰는 자는 보는대로 물리쳐 내보냈다.
日夜飲醇酒。
밤낮으로 좋은 술을 마시기만 하였다.
卿大夫已下吏及賓客見參不事事,來者皆欲有言。
卿과 대부 이하 관리와 빈객은 조참이 정사를 돌보지 않음을 보고, 오는 사람마다 모두 한 마디씩 말하려 하였다.
至者,參輒飲以醇酒,閒之,欲有所言,復飲之,醉而後去,終莫得開說,以為常。
사람이 옴에, 조참은 그때마다 좋은 술을 마시게 했고, 틈을 보아 말하려 하면 다시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한 뒤 돌려보내니, 끝내 말을 꺼내지 못하였으며, 늘 이러했다.
▶ 木詘: 질박하고 말과 글에 어눌함.
▶ 長者: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
▶ 除: 임명하다.
▶ 言文刻深: 언어와 문자가 가혹하고 사소한 일에 자잘하다.
▶ 醇酒: 無灰酒. 고급 술.
[無灰酒]
석회(石灰)를 조금도 넣지 않은 술.
옛날에는 술이 시지 않도록 술에 석회를 조금 넣었는데, 이런 술을 마시면 담(痰)이 몰린다고 하여 병 치료에 쓰는 술은 반드시 무회주를 썼다고 한다.
相舍後園近吏舍,吏舍日飲歌呼。
상국의 집 후원은 관리의 숙사와 가까웠는데, 관리들은 숙사에서 하루 종일 마시고 노래를 불러대었다.
從吏惡之,無如之何,乃請參游園中,聞吏醉歌呼,從吏幸相國召按之。
조참의 수행 관리가 이를 싫어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고, 이에 조참을 청하여 후원을 거닐며 관리들이 취하여 노래 부름을 듣게 하여, 상국이 그들을 불러 제지하기를 바랐다.
乃反取酒張坐飲,亦歌呼與相應和。
그러나 도리어 술을 가져다 술자리를 벌여 마시고, 역시 노래를 부르고 떠들어대며 맞장구쳤다.
▶ 從吏: 수행 관리.
▶ 幸: 희망하다.
▶ 按: 제지하다.
▶ 張坐: 술자리를 벌이다. 坐는 座와 같다.
參見人之有細過,專掩匿覆蓋之,府中無事。
조참은 남들의 자잘한 잘못을 보면 반드시 掩匿覆蓋(감추어주고 덮어줌)하니 승상부는 평안 무사하였다.
參子窋為中大夫。
조참의 아들 曹窋이 中大夫가 되었다.
惠帝怪相國不治事,以為
「豈少朕與」?
乃謂窋曰:
「若歸,試私從容問而父曰:
『高帝新棄群臣,帝富於春秋,君為相,日飲,無所請事,何以憂天下乎?』
然無言吾告若也。」
혜제는 상국 조참이 정사를 돌보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기고 ‘어째서 짐을 경시하는가?’라고 생각하여 조줄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집으로 돌아가거든 남모르게 조용히 아버지께 물어보시오.
‘高帝께서 신하들과 이별하신 지 얼마 안 되었고, 황제는 어린데 아버님은 상국이 되어 날마다 술만 마시고 주청하는 일이 없으니, 무엇으로 국가 대사를 근심하십니까?’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 覆蓋: 덮다.
▶ 窋: 曹窋. 조참의 아들
▶ 富: 어리다.
窋既洗沐歸,窋侍,自從其所諫參。 조줄이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가, 적당한 때를 틈타서 조참에게 간언하였다. 參怒,而笞窋二百,曰: 「趣入侍,天下事非若所當言也。」 조참이 성을 내며 조줄에게 볼기 200대를 때리고 말하였다. “얼른 입궁하여 황제를 모셔라. 천하의 일은 네가 말할 바가 아니다.” 至朝時,惠帝讓參曰: 「與窋胡治乎? 乃者我使諫君也。」 조회 때 혜제가 조참을 나무랐다. “조줄을 어찌 그렇게 혼냈습니까? 지난번 일은 내가 시켜서 그대에게 간한 것이오.” 參免冠謝曰: 「陛下自察聖武孰與高帝?」 조참이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자신을 살펴보시기에, 聖德과 武勇으로 고제와 필적한다고 여기십니까?” |
▶ 洗沐: 휴가. 한나라 때 관리는 5일에 한 번 목욕하고 쉬었다.
▶ 乃者: 지난날. 이전. 허사 者 참조
▶ 免冠: 모자를 벗다. 사죄의 표시.
▶ 孰與: =孰若
1.어찌 …와 같으랴 2. 어떻게 필적할 수 있으랴 3.도저히 필적할 수 없다
上曰:
「朕乃安敢望先帝乎!」
혜제가 말하였다.
“짐이 어찌 감히 선제를 넘보겠소!”
曰:
「陛下觀臣能孰與蕭何賢?」
조참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신을 보시기에 능력에 있어서 신과 소하 중 누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上曰:
「君似不及也。」
혜제가 말하였다.
“그대가 미치지 못할 듯하오.”
參曰:
「陛下言之是也。
且高帝與蕭何定天下,法令既明,今陛下垂拱,參等守職,遵而勿失,不亦可乎?」
조참이 말하였다.
“폐하의 말씀하심이 옳습니다.
게다가 고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하여 법령도 이미 분명하므로, 이제 폐하께서는 팔짱을 끼고 계시고 조참 등은 직분을 지키면서 법령에 준수하며 빠진 것이 없도록만 하는 것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惠帝曰:
「善。君休矣!」
혜제가 말하였다.
“좋소.
그대의 말이 훌륭하오!”
▶ 垂拱: 垂衣拱手.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다, 하지 아니하고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두다.
參為漢相國,出入三年。
조참이 한나라의 상국이 되어 대략 3년이 되었다.
卒,謚懿侯。
조참이 죽으니 시호를 懿侯라 하였다.
子窋代侯。
아들 조줄이 侯의 작위를 이었다.
百姓歌之曰:
「蕭何為法,顜若畫一;
曹參代之,守而勿失。
載其清凈,民以寧一。」
백성이 노래하였다.
“소하가 법을 만드니 분명하고 한결같았네.
조참이 대를 이어 지켜가며 잃지 않았네.
청정무위의 정책으로 행하니 백성이 하나 같이 편안하네.”
▶ 出入:
出进。往来。支出与收入。劳逸;作息。指所估计之数可能或上或下,接近而并不等同。谓或出或入,有相似处,亦有相异处。谓弯曲,不平直。犹言上报下达。谓朝廷内外。指出将入相。谓涉猎广博,融会贯通。或进或出。比喻变化无定。指女子嫁者与未嫁者。特指呼吸。
▶ 顜: 명확하다. 바르다.
▶ 畫一: 한결같다. 畫은 그을 획.
▶ 載: 행하다.
▶ 淸淨: 清凈無爲. 맑고 고요하며 인위적으로 행함도 없다. 노자는 無爲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고요하게 있으면 자연히 올바르게 된다고 하였다. 무위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즉 객관적인 법칙에 따르는 것이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무위는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平陽侯窋,高后時為御史大夫。
平陽侯 曹窋은 고후 때 어사대부가 되었다.
孝文帝立,免為侯。
문제가 즉위하자 면직되어 侯가 되었다.
立二十九年卒,謚為靜侯。
즉위 29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靜侯라 하였다.
子奇代侯,立七年卒,謚為簡侯。
아들 曹奇가 대를 이어 후가 되어 7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簡侯라 하였다.
子時代侯。
아들 曹時가 대를 이어 후가 되었다.
時尚平陽公主,生子襄。
조시는 平陽公主를 아내로 맞아 아들 曹襄을 낳았다.
時病癘,歸國。
조시는 역병에 걸려 봉국으로 돌아갔다.
立二十三年卒,謚夷侯。子襄代侯。
조시는 후가 된 지23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夷侯라 하였다. 아들 조양이 대를 이어 후가 되었다.
襄尚衛長公主,生子宗。
조양은 衛長公主를 아내로 맞아 아들 曹宗을 낳았다.
立十六年卒,謚為共侯。子宗代侯。
조종이 후가 된 지 16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共侯라 하였다. 아들 조종이 대를 이어 후가 되었다.
征和二年中,宗坐太子死,國除。
征和 2년(기원전91년)에 조종은 무제의 태자의 일에 연루되어 죽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 尚: 신분·지위가 높은 상대와 결혼하다.
▶ 癘: 역병. 전염병.
▶ 征和: 漢武帝의 10번 째 年號. 기원전92년부터 기원전89년까지 사용되었다.
▶ 宗坐太子死: 太子는 戾太子 劉據를 말한다. 유거는 武思皇后 衛氏소생이다. 征和 2년(기원전91년), 당시 武帝를 저주한다는 유언비어가 있자 江充이 戾太子를 압박하고자 저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태자궁에서 많이 나왔다고 무고하였다. 이에 戾太子는 황제가 도성에 없는 틈을 타 궁중 수비병을 동원하여 江充을 살해하였다. 이를 태자의 반란이라고 여긴 무제가 군대를 보내 체포하려 하자 戾太子는 虢州로 도망갔으나 죄를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결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그의 처자식과 수많은 사람이 처형되었다. <漢書>
太史公曰:
曹相國參攻城野戰之功所以能多若此者,以與淮陰侯俱。
及信已滅,而列侯成功,唯獨參擅其名。
參為漢相國,清靜極言合道。
然百姓離秦之酷後,參與休息無為,故天下俱稱其美矣。
태사공은 말한다.
“상국 조참이 성을 공격하는 야전에서의 공이 이처럼 많을 수 있는 까닭은 회음후 한신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한신이 멸망한 후 전공으로 열후에 봉해진 사람들 중 유독 조참만이 가장 두드러졌다.
조참이 한상국이 되자 청정무위야말로 도가의 학설과 가장 부합된다고 여겼다.
더욱이 백성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를 당한 후, 조참이 백성을 쉬게 하고 억지로 일을 만들지 않으니 천하가 모두 그의 미덕을 칭송하였다.”
▶ 離: 罹와 통용된다. 만나다. 당하다.
'史記 > 世家'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世家56-陳丞相世家(진승상세가) (1) | 2023.07.11 |
---|---|
世家55-留侯世家(유후세가) (1) | 2023.07.10 |
世家53-蕭相國世家(소상국세가) (0) | 2023.07.08 |
世家52-齊悼惠王世家(제도혜왕세가) (0) | 2023.07.08 |
世家51-荊燕世家(형연세가) (0) | 2023.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