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58-梁孝王世家(양효왕세가)

耽古樓主 2023. 7. 12. 02:55

이 篇은 30世家 중 28번째 편으로 前漢 景帝의 친동생인 梁孝王 劉武에 관한 전기이다.
梁孝王 劉武는 竇太后의 막내아들이며 代王·淮陽王을 역임했고 최종적으로는 梁王이었다. 전한 문제의 둘째 아들이며 전한 경제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황제인 景帝의 황태제 자리를 노렸으나 이를 좌절시킨 원앙을 암살해 위기에 몰렸으며, 어머니 두태후와 누나 관도장공주의 도움으로 모면했으나 형과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하였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오초7국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황실의 제후국 중 梁만이 대항하였다. 梁孝王 劉武는 두태후의 총애를 믿고 공로를 뽐내다가 화를 입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오초7국의 난을 막은 공로를 칭송하여 제28편 ‘梁孝王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술하였다.

世家58-梁孝王世家(양효왕세가)

 

梁孝王武者,孝文皇帝子也,而與孝景帝同母。
梁孝王劉武는 효문황제의 아들이고 효경제와 어머니가 같다.

母,竇太后也。
어머니는 태후이다.

▶ 竇太后: 竇姬. 竇猗房. 漢文帝 劉恆의 처이며 景帝의 어머니이다. 두태후 슬하에 자녀로는 장남 漢景帝劉啟, 차남 梁孝王劉武, 長女로 館陶長公主劉嫖가 있었다.

世家58-梁孝王世家(양효왕세가)

 



孝文帝凡四男:長子曰太子,是為孝景帝;次子武;次子參;次子勝。
문제에게는 모두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태자로 景帝이고둘째아들은 劉武셋째아들은 劉參넷째아들 劉勝이었다.

孝文帝即位二年,以武為代王,以參為太原王,以勝為梁王。
문제 즉위2(기원전178)에 유무를 代王유참을 太原王유승을 梁王에 봉하였다.

二歲,徙代王為淮陽王。
2년 뒤에 代王유무를 淮陽王으로 옮겼다.

以代盡與太原王,號曰代王。
를 모두 태원왕 유참에게 주어 代王이라고 불렀다.

參立十七年,孝文後二年卒,謚為孝王。
유참이 즉위17년인 효문제 후원2(기원전162)에 죽자 시호를 孝王이라 하였다.

子登嗣立,是為代共王。
효왕의 아들 劉登이 뒤를 이으니 그가 代共王이다.

立二十九年,元光二年卒。
대공왕은 즉위29년인 무제 원광2(기원전133)에 죽었다.

子義立,是為代王。
공왕의 아들 劉義가 즉위하니 그가 代王이다.

十九年,漢廣關,以常山為限,而徙代王王清河。
19년이 지난 후 한나라가 변경의 요새를 확장하여 常山을 경계로 삼으면서 대왕을 淸河왕으로 옮겼다.

清河王徙以元鼎三年也。
淸河王이 옮긴 때는 武帝元鼎 3(기원전114)이다.

▶ 次子勝: 劉勝. 孝文本紀, 漢書文帝紀에는 劉揖으로 기록되어 있다.
▶ 孝文後二年: 한 문제의 後元 2년. 기원전162년.
▶ 元光二年: 기원전133년. 元光은 漢武帝의 두 번째 연호로 기원전134년부터 기원전129년까지 사용했었다.
▶ 廣關: 변경의 요새를 확장하다.
▶ 限: 경계.
▶ 元鼎三年: 기원전114년. 元鼎은 한 무제의 다섯 번째 연호로 기원전116년부터 기원전111년까지 사용했었다.

初,武為淮陽王十年,而梁王勝卒,謚為梁懷王。
처음 劉武가 淮陽王으로 봉해진 지 10년에 양왕 劉勝이 죽었고 시호는 梁懷王이었다.

懷王最少子,愛幸異於他子。
양회왕 劉勝은 문제의 막내아들로 다른 아들에 비해 더 사랑을 받았었다.

其明年,徙淮陽王武為梁王。
그 이듬해에 회양왕 유무를 옮기니 梁王이 되었다.

梁王之初王梁,孝文帝之十二年也。
양왕이 처음 를 다스린 것은 문제12(기원전168)이었다.

梁王自初王通歷已十一年矣。
양왕이 처음 왕으로 봉해진 지 통산11년이 지난 뒤였다.

▶ 通歷: 연대를 통산함.


梁王十四年,入朝。
양왕14(기원전165)에 입조하였다.

十七年,十八年,比年入朝,留,其明年,乃之國。
17, 18년에도 연달아 입조하여 수도에 머물렀다가 그다음 해에 봉국으로 돌아갔다.

二十一年,入朝。
21년에 또 입조하였다.

二十二年,孝文帝崩。
22년에 문제가 붕어하였다.

二十四年,入朝。
24년에 입조하였다.

二十五年,復入朝。
25년에 다시 입조하였다.

是時上未置太子也。
당시 景帝가 아직 태자를 정하지 않고 있었다.

上與梁王燕飲,嘗從容言曰:
「千秋萬歲後傳於王。」
경제가 양왕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권한 적이 있었다.
내가 죽은 후에는 양왕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

王辭謝。
양왕이 사양하였다.

雖知非至言,然心內喜。
양왕은 비록 진심의 말이 아님을 알았지만 속으로는 기뻤다.

太后亦然。
태후 또한 그러하였다.

▶ 比年: 매년.
▶ 燕飲: 연회를 베풀다. 燕은 宴과 통용된다.
▶ 從容: 慫恿과 통한다. 종용하다. 권하다.
▶ 千秋萬歲後: 황제가 죽은 후. 군주가 자신의 죽음을 꺼리어 표현하는 말.
▶ 至言: 진심으로 한 말.

其春,吳楚齊趙七國反。
이해 봄에 趙 등 7국이 배반하였다.

吳楚先擊梁棘壁,殺數萬人。
와 가 먼저 의 棘壁을 공격하여 수만 명을 죽였다.

梁孝王城守睢陽,而使韓安國、張羽等為大將軍,以距吳楚。
양효왕은 睢陽城을 지키면서 韓安國과 張羽등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와 을 막아냈다.

吳楚以梁為限,不敢過而西,與太尉亞夫等相距三月。
와 는 가 가로막고 있어서 감히 서쪽으로 넘어 오지 못하고태위 周亞夫 등과 3개월을 대치하였다.

吳楚破,而梁所破殺虜略與漢中分。
와 가 격파되었고이 죽이거나 포로로 잡은 자가 대략 한나라와 대등하였다.

▶ 吳楚齊趙七國反: 吳楚七國의 난. 景帝치세인 기원전154년 한나라의 제후국 吳왕 劉濞가 주축이 되어 楚왕 劉戊, 趙왕 劉遂, 濟南王劉辟光, 菑川王劉賢, 膠西王劉卬, 膠東王劉雄渠와 함께 전한 중앙 정부에 일으킨 반란이다.
▶ 城守: 성을 근거지로 방어하다.
▶ 距: 拒와 통용된다. 방어하다.
▶ 限: 가로막히다.
▶ 相距: 서로 대치하다.
▶ 略: 대략.
▶ 中分: 대등하다. 절반.

世家58-梁孝王世家(양효왕세가)



明年,漢立太子。
이듬해(기원전153한나라가 태자를 세웠다.

其後梁最親,有功,又為大國,居天下膏腴地。
그 후 은 황제와 가장 친하였고 전공이 있어 大國이 되었으며 천하의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地北界泰山,西至高陽,四十餘城,皆多大縣。
봉지는 북쪽으로 태산을 경계로 하고서쪽으로 高陽에 이르렀는데, 40여 은 모두 대부분 큰 이었다.

▶ 明年, 漢立太子: 경제4년(기원전153년)여름, 劉榮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史記本紀권11. 孝景本紀>

 

孝王,竇太后少子也,愛之,賞賜不可勝道。
양효왕은 두 태후의 막내아들로 총애를 받아서 하사받은 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於是孝王筑東苑,方三百餘里。
그리하여 효왕은 東苑을 지었는데 사방 300여 리이었다.

廣睢陽城七十里。
睢陽城을 70리로 넓혔다.

大治宮室,為複道,自宮連屬於平臺三十餘里。
궁전을 크게 지어 複道를 만들었는데 궁전에서 平臺까지 30여 리 이어져 있었다.

得賜天子旌旗,出從千乘萬騎。
천자가 하사한 깃발을 앞세우고 나서면 수많은 수레와 말이 그 뒤를 따랐다.

東西馳獵,擬於天子。
동서로 치달으며 사냥에 나서면 그 위세가 천자와 같았다.

出言蹕,入言警。
궁전을 나갈 때는 통행을 차단하였고 들어갈 때는 경비가 삼엄하였다.

▶ 孝王: 梁孝王劉武. 竇太后의 막내아들이며 代王, 淮陽王을 역임했고 최종적으로는 梁王이 되었다. 전한 문제의 둘째아들이며 전한 경제의 친동생으로 오초칠국의 난 진압에서 큰 공을 세웠다.
▶ 複道: 구름다리. 天橋
▶ 連屬: 잇닿다.
▶ 千乘萬騎: 수많은 수레와 人馬. 고대에 수레 한 대에 네 마리의 말을 맨 것을 乘이라 하고 한 필의 말에 한 사람이 탄 것을 騎라 하였다.
▶ 拟: 비기다. 견주다.
▶ 蹕: 제왕이 행차할 때, 통행을 금하여 길을 치우는 일.
▶ 警: 경비. 경계.

招延四方豪桀,自山以東游說之士。
梁孝王은 사방의 호걸을 불러 모았는데산동의 유세객들이었다.

莫不畢至,齊人羊勝、公孫詭、鄒陽之屬。
끊임없이 귀순하니齊 사람 羊勝·公孫詭·鄒陽의 무리이었다.

公孫詭多奇邪計,初見王,賜千金,官至中尉,梁號之曰公孫將軍,梁多作兵器弩弓矛數十萬,而府庫金錢且百巨萬,珠玉寶器多於京師。
공손궤에게 기이하고 황당한 계책이 많아서양효왕을 처음 만나 천금을 하사받고,
관직이 中尉에 이르니 에서는 그를 공손장군으로 불렀다에는 쇠뇌와 창 등의 병기를 많이 만들어 수십만 개나 되었고府庫의 금전은 거의 백억이었으며 珠玉寶器가 京師보다 많았다.

▶ 招延: 초치하다. 불러 모으다.
▶ 桀: 杰과 통용된다.
▶ 山以東: 山은 崤山으로 山東은 崤山의 동쪽. 효산은 河南省 洛寧縣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 鄒陽: 前漢齊郡臨淄사람으로 景帝때 吳王劉濞를 섬겼다. 오왕이 한나라에 반란을 획책하자 景帝의 동생 梁孝王의 문객이 되었다가 羊勝 등의 참소로 투옥되었는데, 간곡한 상소문을 올려 석방되었다. 후에 양효왕에게 上客의 대우를 받았다. <史記列傳권83魯仲連鄒陽列傳>
▶ 且: 且는 부사로서 사람이나 사물이 어느 시점에 근접한 것을 나타낸다. “머지않아” “거의” 허사 참조
▶ 百巨萬: 억만. 巨萬은 1억.

二十九年十月,梁孝王入朝。
梁孝王29(기원전150경제7) 10월에 梁孝王이 入朝하였다.

景帝使使持節乘輿駟馬,迎梁王於關下。
경제는 사신을 파견하여 부절을 가지고 황제가 타는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관문 앞에서 梁王을 맞이하게 하였다.

既朝,上疏因留,以太后親故。
梁孝王은 조회를 마치자 도성에 머무르겠고 上疏했는데태후가 친애하였기 때문이었다.

王入則侍景帝同輦,出則同車游獵,射禽獸上林中。
梁王이 입궁함에 경제와 같은 수레에 앉았고출궁함에 같은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가 上林苑에서 禽獸를 사냥하였다.

梁之侍中、郎、謁者著籍引出入天子殿門,與漢宦官無異。
의 侍中·郎官·謁者 등은 이름을 등록하여 천자가 다니는 궁문으로 출입을 이끄니 조정의 관원과 다름이 없었다.

▶ 節: 符節. 사신의 증표.
▶ 乘輿: 황제가 타는 수레.
▶ 駟馬: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
▶ 輦: 가마. 황제가 타는 수레.
▶ 上林: 上林苑. 秦나라와 漢나라 황제가 사냥을 하던 곳. 지금의 陝西省藍田縣서쪽.
▶ 著籍: 명부에 등록하다.

 

十一月,上廢栗太子,竇太后心欲以孝王為後嗣。
11월에 경제가 栗太子를 폐위하니두 태후는 마음속으로 효왕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大臣及袁盎等有所關說於景帝,竇太后義格,亦遂不復言以梁王為嗣事由此。
대신들과 袁盎 등이 경제에게 저지하도록 간하자두태후의 의견은 막혔고양왕을 후계자로 삼자는 일은 이로써 더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以事秘,世莫知。

이 일은 비밀에 붙여져 世人은 알지 못하였다.

乃辭歸國。
梁孝王은 작별인사를 올리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 廢栗太子: 율태자를 폐하다. 율태자는 景帝의 맏아들인 劉榮으로 栗姬의 소생으로 율태자라고 칭하였다. 경제7년(기원전150년)겨울, 栗太子 劉榮을 폐하여 臨江王으로 삼았다. <史記本紀권11. 孝景本紀>
▶ 關說: 충고하여 제지하다.
▶ 義格: 방해를 받다. 格: 막다. 가로막다

其夏四月,上立膠東王為太子。
이해 여름 4월에 경제가 膠東王을 태자로 삼았다.

梁王怨袁盎及議臣,乃與羊勝、公孫詭之屬陰使人刺殺袁盎及他議臣十餘人。
양왕은 원앙과 후계를 논의한 신하를 원망하여양승과 공손궤 등의 무리와 함께 몰래 사람을 보내어 원왕과 후사를 논의한 대신 10여 명을 찔러 죽였다.

逐其賊,未得也。
그 살인범을 추적했지만 잡지 못하였다.

▶ 膠東王: 劉徹. 景帝의 아들 형제 중의 중간이다. 어머니는 王太后이다. 경제4년(기원전153년)에 황제의 아들로서 膠東王에 봉해졌다. 경제7년(기원전150년)에 栗太子가 폐위되어 臨江王이 되자 교동왕 유철이 태자가 되었다. 경제가 16년 만에 붕어하고 태자가 즉위하니 그가 武帝이다.
▶ 袁盎: 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晁錯를 주살할 것을 간청하여 제후들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太常이 되고, 吳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에 楚의 재상이 되었다. 그 후 梁孝王을 황제의 후사로 결정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렸다가 安陵의 郭門 밖에서 梁孝王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史記列傳]권101袁盎鼂錯列傳>
▶ 陰: 몰래.

 

 

於是天子意梁王,逐賊,果梁使之。
이에 천자는 양왕을 의심하여 살인범을 추적하니 과연 양왕이 시킨 일이었다.

乃遣使冠蓋相望於道,覆按梁,捕公孫詭、羊勝。
이에 冠蓋相望於道(冠蓋가 길에서 보일 정도로 사신이 끊임없이 왕래함)하여 을 반복하여 조사하여 공손궤와 양승을 체포하였다.

公孫詭、羊勝匿王後宮。
공손궤와 양승은 양왕의 후궁에 숨어 있었다.

使者責二千石急,梁相軒丘豹及內史韓安國進諫王,王乃令勝、詭皆自殺,出之。
사신이 이천석의 관원들을 거세게 다그치자의 相 軒丘豹와 內史 韓安國이 양왕에게 간하였고양왕은 양승과 공손궤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그들을 넘겨주었다.

上由此怨望於梁王。
경제는 이 일로 양왕을 원망하게 되었다.

梁王恐,乃使韓安國因長公主謝罪太后,然后得釋。
양왕은 두려워하여한안국을 시켜 長公主를 통해서 두 태후에게 사죄하고 나서야 용서를 받았다.

▶ 意: 의심하다.
▶ 冠蓋相望於道: 사신들이 길에서 끊임없이 왕래하다. 冠蓋는 관모와 수레 덮개.
▶ 覆按: 반복하여 검증하고 심사하다.
▶ 二千石: 관리의 녹봉 등급.
▶ 長公主: 황제의 누이. 문제의 장녀인 館陶公主 劉嫖.

 

上怒稍解,因上書請朝。
경제의 화가 조금 풀리자 양효왕은 글을 올려 조회를 청하였다.

既至關,茅蘭說王,使乘布車,從兩騎入,匿於長公主園。
관문에 이르자 茅蘭이 양왕에게 권하기를삼베로 만든 수레를 타고 두 명의 기병만 데리고 들어가서 장공주의 화원에 숨어 있으라고 하였다.

漢使使迎王,王已入關,車騎盡居外,不知王處。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양왕을 맞이했으나왕은 이미 관문으로 들어왔고수레와 말은 모두 관문 밖에 있는데 양효왕의 소재는 알 수 없었다.

太后泣曰:
「帝殺吾子!」

두 태후가 울면서 말하였다.
황제가 내 아들을 죽였구나!”

景帝憂恐。
경제는 걱정하고 두려워하였다.

於是梁王伏斧質於闕下,謝罪,然後太后、景帝大喜,相泣,復如故。
이 때 梁王이 斧質의 형구를 짊어지고 궁문 아래에서 엎드려 사죄한 후에야 두태후와 경제가 크게 기뻐하며 울었고 다시 예전과 같이 지냈다.

悉召王從官入關。
양왕의 시종관을 모두 불러 관문을 들어오게 하였다.

然景帝益疏王,不同車輦矣。
그러나 경제는 양왕을 점점 멀리하여 같은 수레와 가마를 함께 타지 않았다.

▶ 說: 권하여 말하다.
▶ 伏斧質: 벌을 받을 형구를 짊어지고 엎드림. 斧質은 刑具. 斧鉞의 형과 椹質의 형을 말한다.
▶ 闕下: 궁궐. 여기서는 궁문을 말한다.

 

三十五年冬,復朝。上疏欲留,上弗許。
梁孝王35(기원전144겨울에 다시 입조하여도성에 머물기를 상소하였으나 경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歸國,意忽忽不樂。
봉국으로 돌아갔으나 마음이 서운해져 편치 않았다.

北獵良山,有獻牛,足出背上,孝王惡之。
북쪽 양산으로 사냥을 나갔더니 누군가 소를 바쳤는데 발이 등 위쪽에 달려있어서 양효왕이 싫어하였다.

六月中,病熱,六日卒,謚曰孝王。
6월 중순에 열병에 걸려 엿새 만에 죽으니 시호를 孝王이라 하였다.

▶ 忽忽: 실의한 모양. 서운하다.

 

 

孝王慈孝,每聞太后病,口不能食,居不安寢,常欲留長安侍太后。
梁孝王은 모친에게 효성이 있어서두태후가 병들었음을 들을 때마다 먹지도 못하고 편히 잠자지 못하여 늘 장안에 머무르면서 태후를 모시고자 하였다.

太后亦愛之。
태후 역시 그를 사랑하였다.

及聞梁王薨,竇太后哭極哀,不食,曰:
「帝果殺吾子!」

양왕이 죽었다는 소식에 두태후는 곡을 하며 지극히 애통해하며 먹지도 않으며 말하였다.
황제가 과연 내 아들을 죽였구나!”

景帝哀懼,不知所為。
경제는 슬프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與長公主計之,乃分梁為五國,盡立孝王男五人為王,女五人皆食湯沐邑。
장공주와 상의하여 을 다섯 나라로 나누고효왕의 다섯 아들 모두를 왕으로 봉하고 딸 다섯에게도 모두 湯沐邑을 봉지로 주었다.

於是奏之太后,太后乃說,為帝加壹湌 。
이에 태후에게 상주하자 태후는 그제야 기뻐서 경제를 칭찬하며 음식을 한 번 더 먹었다.

▶ 慈孝: 웃어른을 잘 섬기고 공경하다.
▶ 竇太后: 竇姬. 竇猗房. 漢 文帝 劉恆의 처이며 景帝의 어머니이다. 두태후 슬하에 자녀로는 장남 漢景帝 劉啟, 차남 梁孝王 劉武, 長女로 館陶長公主 劉嫖가 있었다.
▶ 薨: 고대에는 제후의 죽음을 훙이라 하였다.
▶ 湯沐邑: 周나라 때 생긴 제도로 제후의 사유 영지를 하사하여 그 읍의 수입으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목욕재계하는 비용을 충당하게 한 것이다.
▶ 湌: 음식. 먹다.

 

 

梁孝王長子買為梁王,是為共王;
子明為濟川王;

子彭離為濟東王;
子定為山陽王;

子不識為濟陰王。
梁孝王의 큰아들 劉買가 양왕이 되니 그가 共王이고,
아들 劉明은 濟川王,

아들 劉彭離는 濟東王,
아들 劉定은 山陽王,

아들 劉不識은 濟陰王에 봉하였다.

孝王未死時,財以巨萬計,不可勝數。
梁孝王이 죽기 전에 재산이 억만을 헤아리나계산할 수 없었다.

及死,藏府餘黃金尚四十餘萬斤,他財物稱是。
梁孝王이 죽은 후 창고에 남은 황금이 40여 만근이었고다른 재물들도 이와 대등하였다.

▶ 藏府: 관청의 창고.
▶ 稱: 걸맞다. 부합하다.

 

梁共王三年,景帝崩。
梁共王 3(기원전 141)에 경제가 세상을 떠났다.

共王立七年卒,子襄立,是為平王。
공왕은 재위 7년 만에 죽고 아들 劉襄이 즉위하니 그가 平王이다.



梁平王襄十四年,母曰陳太后。
양 평왕 劉襄 14(기원전 123), 평왕의 어머니는 태후라 하였다.

共王母曰李太后。李太后,親平王之大母也。
공왕의 어머니는 이 李太后라 하였는데 이 태후는 평왕의 친할머니였다.

而平王之后姓任,曰任王后。
평왕의 왕후는 성이 이어서 임 왕후라 불렀다.

任王后甚有寵於平王襄。
임왕후는 평왕 유양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初,孝王在時,有罍樽,直千金。
당초 효왕 재위 시에 罍樽이라는 술잔이 있었는데 가치가 천금이었다.

孝王誡後世,善保罍樽,無得以與人。
효왕이 후손들에게 훈계하기를 뇌준을 잘 보존하여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었다.

任王后聞而欲得罍樽。
임왕후가 이를 알고 뇌준을 갖고 싶어 하였다.

平王大母李太后曰:
「先王有命,無得以罍樽與人。
他物雖百巨萬,猶自恣也。」

평왕의 할머니 이태후가 말하였다.
선왕께서 명하시길 뇌준을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였다.
다른 물건들은 백억이 나가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任王后絕欲得之。
임왕후는 그것을 몹시 갖고 싶어졌다.

平王襄直使人開府取罍樽,賜任王后。
평왕 유양은 곧장 사람을 시켜 창고를 열고 뇌준을 갖고 오게 해서 임왕후에게 하사하였다.

▶ 罍樽: 옛날에 사용하던 술잔. 모양이 단지와 비슷하며 표면에 雷雲紋이 새겨져 있다.
▶ 直千金: 천금의 가치. 直는 値와 같다.
▶ 自恣: 제멋대로 하다.
▶ 絶: 몹시. 매우.
▶ 直: 곧장.

 

太后大怒,漢使者來,欲自言,平王襄及任王后遮止,閉門,李太后與爭門,措指,遂不得見漢使者。
이태후가 크게 노하여 조정의 사신이 오자직접 이 일을 하소연하려 했으나평왕 유양과 임왕후가 그녀를 제지하려고 문을 잠그니이 태후와 서로 문을 두고 다투다가손가락이 문에 끼었고끝내 조정의 사신을 만나지 못하였다.

李太后亦私與食官長及郎中尹霸等士通亂,而王與任王后以此使人風止李太后,李太后內有淫行,亦已。
이태후는 또한 몰래 食官長과 郎中 尹霸 등과 간통한 적이 있었는데왕과 임왕후는 이 일을 가지고 사람을 보내 이태후에게 넌지시 흘려 제지하자이태후는 음행이 있어서 그만두었다.

後病薨。

그 후 이태후가 병으로 죽었다.

病時,任后未嘗請病;薨,又不持喪。
병들었을 때 임왕후는 문병하지 않았고죽은 뒤 상례도 갖추지 않았다.

▶ 措指: 손가락이 문에 끼다. 措은 잡다. 끼우다.
▶ 風: 諷과 통용된다. 풍자하다. 암시하거나 권유하다.
▶ 請病: 병문안하다.
▶ 持喪: 상중에 있다. 상복을 입고 효를 다하다.

 

元朔中,睢陽人類犴反者,人有辱其父,而與淮陽太守客出同車。
한무제 元朔연간에 睢陽사람으로 類犴反이라는 자가 있었는데그 아버지를 욕보인 자가 회양 태수의 문객과 같은 수레를 타고 외출하였다.

太守客出下車,類犴反殺其仇於車上而去。
태수의 문객이 수레를 내리자 유안반은 원수를 수레 위에서 죽이고 도망쳤다.

淮陽太守怒,以讓梁二千石。
회양태수는 노하여 의 2천석 관리를 꾸짖었다.

二千石以下求反甚急,執反親戚。
이천석 이하의 관리들은 유안반을 급히 체포하고 유안반의 친척을 잡아들였다.

▶ 元朔: 한 무제의 세 번째 기원전128~123년.
▶ 讓: 책망하다. 꾸짖다.
▶ 二千石: 관리의 녹봉 등급
▶ 執: 붙잡다. 체포하다.

 

 

反知國陰事,乃上變事,具告知王與大母爭樽狀。
유안반이 의 비밀스러운 일을 알고 조정에 변고를 보고했는데양평왕과 왕의 할머니가 뇌준을 두고 다툰 일은 상세히 고하였다.

時丞相以下見知之,欲以傷梁長吏,其書聞天子。
당시 승상 이하에 알려진 일이므로이로써 의 고위 관리들에게 타격을 주려 하였고이 문서가 천자에게 전해졌다.

天子下吏驗問,有之。
천자는 관리에게 내려 조사하여 심문하니그러한 사건이 있었다.

公卿請廢襄為庶人。
공경들이 양평왕 유양을 서인으로 폐출하자고 청하였다.

▶ 陰事: 비밀스러운 일. 양평왕 유양과 이태후가 뇌준을 두고 다툰 일을 말한다.
▶ 上變事: 조정에 변고를 보고하다.
▶ 樽: 罍樽. 옛날에 사용하던 값비싼 술잔.
▶ 見知: 알려지다.

 

天子曰:
「李太后有淫行,而梁王襄無良師傅,故陷不義。」

천자가 말하였다.
이태후에게 淫行이 있었고양왕 유양은 좋은 스승이 없어 의롭지 못한 일에 빠졌다.”

乃削梁八城,梟任王后首于市。
이에 의 여덟 성을 삭감하고 임왕후의 머리를 베어 저자에 내걸었다.

梁餘尚有十城。
에는 아직 열 개의 성이 남아 있었다.

襄立三十九年卒,謚為平王。
유양은 재위39년 만에 죽었고 시호는 평왕이다.

子無傷立為梁王也。
아들 劉無傷이 양왕으로 즉위하였다.

▶ 梟市: 죄인의 머리를 베어 저자에 달아 놓는 일.

 

濟川王明者,梁孝王子,以桓邑侯孝景中六年為濟川王。
濟川王劉明은 梁孝王의 아들인데 桓邑侯로서 경제 중원6(기원전144)에 제천왕에 봉해졌다.

七歲,坐射殺其中尉,漢有司請誅,天子弗忍誅,廢明為庶人。
7년 후 그의 중위를 사살한 죄에 연좌되어 의 有司가 제천왕을 죽이자고 청하였는데 천자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유명을 폐출하여 평민으로 삼았다.

遷房陵,地入于漢為郡。
유명을 房陵으로 좌천시키고 그의 봉지는 에 귀속되어 군현이 되었다.

▶ 孝景中六年: 한 경제의 첫 번째 연호. 태자를 세웠기 때문에 改元한 것이다.
▶ 坐: 죄에 대하여 벌을 받다. 연좌되다
▶ 有司: 담당 관리.

 

濟東王彭離者,梁孝王子,以孝景中六年為濟東王。
濟東王 劉彭離는 梁孝王의 아들로 경제 중원6(기원전144)에 제동왕에 봉해졌다.

二十九年,彭離驕悍,無人君禮,昏暮私與其奴、亡命少年數十人行剽殺人,取財物以為好。
29년 후 유팽리는 교만하고 사나워 군주의 예의를 상실하고저녁 무렵 그의 노복과 떠돌이 소년 수십 명과 함께 다니며 사람을 겁박하며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짓을 즐겼다.

所殺發覺者百餘人,國皆知之,莫敢夜行。
죽임을 당하여 발각된 사람이 100여 명이었고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를 알고 밤에 감히 다니지 못하였다.

所殺者子上書言。
피살자의 아들이 글을 올려 이를 고발하였다.

漢有司請誅,上不忍,廢以為庶人,遷上庸,地入于漢,為大河郡。
의 유사가 죽이기를 청했으나 천자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평민으로 폐출시켜 上庸으로 좌천시키고 그의 땅은 에 귀속되어 大河郡이 되었다.

▶ 行剽: 다니며 겁박하다.

 

山陽哀王定者,梁孝王子,以孝景中六年為山陽王。
山陽哀王 劉定은 梁孝王의 아들로 경제 중원6(기원전144)에 山陽王에 봉해졌다.

九年卒,無子,國除,地入于漢,為山陽郡。
재위9년 만에 죽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으며 봉지는 에 귀속되어 山陽郡이 되었다.

濟陰哀王不識者,梁孝王子,以孝景中六年為濟陰王。
濟陰哀王 劉不識은 梁孝王의 아들로 경제 중원6(기원전144)에 濟陰王에 봉해졌다.

一歲卒,無子,國除,地入于漢,為濟陰郡。
재위1년 만에 죽었으며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고 봉지는 에 귀속되어 濟陰郡이 되었다.

 

太史公曰:
梁孝王雖以親愛之故,王膏腴之地,然會漢家隆盛,百姓殷富,故能植其財貨,廣宮室,車服擬於天子。
然亦僭矣。
태사공은 말한다.
梁孝王은 비록 모친의 총애를 받은 까닭에 기름진 땅에서 왕 노릇을 했지만漢 종실이 융성한 때를 만나 백성이 부유하여 재물을 늘리고 궁전을 확장하여수레와 의복이 천자에 比肩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분수에 넘쳤다.”

▶ 會: 만나다. 마주치다.
▶ 殷富: 부유하다. 풍성하고 넉넉하다.
▶ 植: 殖과 통용된다. 증식하다. 늘리다.
▶ 僭: 참람하다. 분수에 지나치게 행동하다.

 

褚先生曰:
褚先生은 말한다.

臣為郎時,聞之於宮殿中老郎吏好事者稱道之也。
신이 郎官일 때 궁전의 늙은 好事家 낭관이 梁孝王을 칭찬함을 들었다.

竊以為令梁孝王怨望,欲為不善者,事從中生。
삼가 생각하기를梁孝王이 원망하여 좋지 않은 일을 하게 한 것은일이 궁중에서 야기된 것이다.

今太后,女主也,以愛少子故,欲令梁王為太子。
당시 두태후가 여자 군주로서 작은 아들을 총애한 까닭에 양왕을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大臣不時正言其不可狀,阿意治小,私說意以受賞賜,非忠臣也。
대신들이 제때에 不可한 상황을 바르게 말하지 않고뜻을 굽혀 순종하여 대단치 않은 일로 만들고사사로이 태후의 환심을 얻어 상을 받았으니 충신이 아니었다.

齊如魏其侯竇嬰之正言也,何以有後禍?
魏其侯 竇嬰이 바른게 말함과 같았더라면 무엇 때문에 후환이 있었겠는가?

▶ 褚先生: 褚少孫. 前漢의 史學家로 사마천의<사기>를 보충하였다.
▶ 郎: 郎官. 황제를 호위하는 관리.
▶ 好事者: 好事家.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 稱道: 칭찬하여 말함. 찬양하다.
▶ 欲為不善: 제위를 계승하려고 도모한 것을 말한다.
▶ 中: 宮中
▶ 時: 제때에. 곧바로.
▶ 正言: 사실대로 바르게 말함.
▶ 阿意: 사람의 뜻을 굽히다. 아첨하여 따르다.
▶ 治小: 대단치 않은 일로 만들다.
▶ 齊: 같다.
▶ 魏其侯竇嬰: 竇嬰. 文帝의 황후인 竇皇后의 조카로 오초칠국의 난 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형양을 지키며 齊 趙의 병사를 감독하였다. 오초칠국의 난이 평정된 후 魏其侯로 임명되었다.
<史記列傳권107. 魏其武安侯列傳>

 

景帝與王燕見,侍太后飲,景帝曰:
「千秋萬歲之後傳王。」

경제와 梁孝王이 한가할 때 만나 두태후를 모시고 술을 마시면서 경제가 말하였다.
내가 죽은 후에 양왕에게 보위를 물려주겠다.”


太后喜說。
두태후가 기뻐하였다.

竇嬰在前,據地言曰:
「漢法之約,傳子適孫,今帝何以得傳弟,擅亂高帝約乎!」

두영이 앞에 있다가 바닥에 엎드려 말하였다.
의 법에 규정하기를제위는 아들이나 적손에게 전하는데 지금 황제께서는 어찌하여 동생에게 전하여 마음대로 高帝의 규약을 어지럽히십니까?”


於是景帝默然無聲。
이에 경제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太后意不說。
태후는 속으로 언짢았다.

▶ 燕見: 황제가 한가로울 때 찾아 뵘. 燕은 宴과 통하여 편안하고 한가롭다는 뜻
▶ 千秋之後: 死後.
▶ 据地: 땅에 머리를 조아림.
▶ 適孫: 嫡長孫. 適은 嫡과 같다. 정처 소생의 자식.

故成王與小弱弟立樹下,取一桐葉以與之,曰:
「吾用封汝。」

옛날 周成王이 어린 동생과 나무아래에 서 있다가 오동잎 하나를 따주며 말하였다.
내가 이것으로 너를 봉하노라.”

周公聞之,進見曰:
「天王封弟,甚善。」

周公이 듣고 알현하며 말하였다.
천자가 동생을 봉하니 아주 잘하였습니다.”

成王曰:
「吾直與戲耳。」

성왕이 말하였다.
나는 단지 그와 장난하였을 뿐입니다.”

周公曰:
「人主無過舉,不當有戲言,言之必行之。」

주공이 말하였다.
군주에게 잘못된 행동이 없어야 하고농담이 있어서도 안 되니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於是乃封小弟以應縣。
이에 어린 동생을 應縣에 봉하였다.

是後成王沒齒不敢有戲言,言必行之。
이후 성왕은 평생 감히 농담하지 않았고 말을 하면 반드시 실행하였다.

▶ 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 주무왕의 아들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성왕이 어렸으므로 무왕의 아우 周公旦이 攝政하였다.
▶ 小弱弟: 어린 동생. 唐叔虞를 말한다. 唐叔姬虞. 성은 姬이고, 자는 子於(: 子于)이다. 周武王의 아들이자 周成王의 아우이다. 周公이 唐을 멸망시킨 후에 당의 땅을 叔虞에게 하사하여 당숙우로 불리게 되었으며, 周나라 諸侯國인 晉의 始祖가 되었다. <史記世家권39. 晉世家>
▶ 周公: 周公 旦. 周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형인 주무왕이 죽자 아들인 성왕이 어렸으므로 周公旦이 攝政하였다.
▶ 直: 단지.
▶ 過舉: 잘못된 행동. 부적절한 행동.
▶ 戲言: 농담. 장난삼아 하는 말.
▶ 沒齒: 평생.

 

 

《孝經》曰:
「非法不言,非道不行。」

<孝經>에서 일렀다.
법도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도덕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此聖人之法言也。
이는 聖人의 격언이다.

今主上不宜出好言於梁王。
당시 경제는 梁孝王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였다.

梁王上有太后之重,驕蹇日久,數聞景帝好言,千秋萬世之後傳王,而實不行。
양왕은 위로 태후의 총애를 받아 오만함이 날이 갈수록 더했고數次 경제의 듣기 좋은 말을 들어 왔으나경제가 죽은 뒤 梁孝王에게 제위를 전하겠다는 말은 실행되지 않았다.

▶ 非法不言,非道不行.: 법도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도덕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孝經卿大夫章>
▶ 法言: 格言.
▶ 驕蹇: 오만하다. 오만하고 방자하다.
▶ 數: 여러 차례.

 

又諸侯王朝見天子,漢法凡當四見耳。
또 제후왕이 천자에게 朝見함에한의 제도에 따르면 모두 네 번 알현할 뿐이었다.

始到,入小見;
到正月朔旦,奉皮薦璧玉賀正月,法見;
後三日,為王置酒,賜金錢財物;
後二日,復入小見,辭去。
처음 도성에 도착하면 입궁하여 小見을 한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사슴가죽 받침에 싼 璧玉을 바쳐 정월을 축하하고 예의에 따라 조현한다.
사흘 뒤 제후왕을 위해 주연을 베풀고 천자가 금전과 재물을 하사한다.
이틀 뒤 다시 입궁하여 小見을 하며 인사하고 떠난다.

凡留長安不過二十日。
장안에 머무는 기간은 모두 20일에 불과하다.

▶ 朝: 알현하다. 朝見하다.
▶ 朝見: 朝請. 고대에 제후들이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 小見: 燕見. 황제가 한가로울 때 찾아 뵘.
▶ 朔旦: 초하루 아침.
▶ 皮薦: 가죽 깔개.
▶ 法見: 예의 제도에 의한 정식 朝見.

 

 

小見者,燕見於禁門內,飲於省中,非士人所得入也。
小見이란 천자가 한가할 때 궁문 안에서 만나 궁중에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士人은 들어갈 수 있는 바가 아니다.

今梁王西朝,因留,且半歲。
당시 양왕은 서쪽으로 가서 입조하여 머무르기를 거의 반년이었다.

入與人主同輦,出與同車。
궁중에 들어가서 천자와 같은 가마를 탔고 외출할 때도 같은 수레를 탔다.

示風以大言而實不與,令出怨言,謀畔逆,乃隨而憂之,不亦遠乎!

또 허풍으로 큰소리치고 실제로는 제위를 주지 않아서원망의 말을 나오게 하였고 반역을 도모하게 만든 다음 그것을 걱정하니사리에 어긋나지 않는가!

非大賢人,不知退讓。
크게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는 退讓을 모르는 법이다.

▶ 禁門: 皇宮의 문.
▶ 省: 궁중.
▶ 士: 일반 관리 또는 서생.
▶ 大言: 제위를 계승하겠다는 말을 말한다.
▶ 畔: 叛과 통용된다.

 

 

今漢之儀法,朝見賀正月者,常一王與四侯俱朝見,十餘歲一至。
지금 한의 儀禮法정월을 축하하기 위해 알현함은 통상 왕 한 명과 제후 네 명이 함께 조현하며 10여 년에 한 번이다.

今梁王常比年入朝見,久留。
당시 양왕은 항상 매년 朝見하여 오래도록 머물렀다.

鄙語曰

「驕子不孝」,非惡言也。
속담에 이르기를 버릇없는 자식은 불효한다.’라고 하는데 잘못된 말이 아니다.

故諸侯王當為置良師傅,相忠言之士,如汲黯、韓長孺等,敢直言極諫,安得有患害!
그러므로 제후왕에게는 좋은 스승을 두고 충언하는 선비를 으로 삼아야 하나니汲黯과 韓長孺 등은 과감하게 直言하고 極諫하였으니 어찌 걱정과 피해가 있었겠는가!

▶ 比年: 매년.
▶ 鄙語: 俗語
▶ 汲黯: 前漢의 관료로 자는 長儒이며 濮陽縣사람이다. 漢나라 景帝와 武帝때 太子洗馬와 主爵都尉등을 지냈다. 그는 황제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黃老之道와 무위의 정치를 주장했으나 황제에게 받아들이지 않자, 회양태수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史記列傳권120. 汲鄭列傳>
▶ 韓長孺: 韓安國. 梁 成安출신으로 字는 長孺이다. 漢武帝때 御史大夫가 되었으며, 사람됨이 忠厚하고 지략이 있으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상당했는데, 그가 추천한 사람들은 모두 廉士였다. <史記列傳권108. 韓長孺列傳>

蓋聞梁王西入朝,謁竇太后,燕見,與景帝俱侍坐於太后前,語言私說。
대략 듣자하니양왕은 서쪽으로 가서 입조하고 두태후를 알현했는데 한가할 때 만나면 경제와 함께 태후 앞에 앉아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太后謂帝曰:
「吾聞殷道親親,周道尊尊,其義一也。
安車大駕,用梁孝王為寄。」

두태후가 경제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은나라의 제도는 친족을 사랑하는 것이고주나라의 제도는 선조를 존경하라는 것이라고 하는데그 뜻은 한 가지일 터이오.
내가 죽으면 梁孝王을 부탁하오.”


景帝跪席舉身曰:
「諾。」
경제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몸을 일으켜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語言私說: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다. 기뻐서 속마음을 털어놓다. 說은 悅과 같다.
▶ 親親: 친족을 사랑하다. 친한 사람을 친애하다.
▶ 尊尊: 선조를 존경하다. 높은 사람을 높이다.
▶ 安車大駕: 죽다. 百年之後. 安車는 앉아서 타고 가는 수레. 大駕는 제왕이 외출할 때 타는 수레.
▶ 跪席舉身: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일으키다.

 

罷酒出,帝召袁盎諸大臣通經術者曰:
「太后言如是,何謂也?」

술자리가 끝나고 경제가 원앙 등 경전에 통달한 대신들을 불러 말하였다.
태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오?”


皆對曰:
「太后意欲立梁王為帝太子。」

모두 대답하였다.
태후는 마음속으로 양왕을 황제의 태자로 세우려 합니다.”

帝問其狀,袁盎等曰:

황제가 그 근거를 물으니 원앙 등이 말하였다.

「殷道親親者,立弟。
은나라의 제도에 친족을 사랑함은 동생에게 제위를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周道尊尊者,立子。
주나라의 제도에 선조를 존경함은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殷道質,質者法天,親其所親,故立弟。
은나라의 전통은 질박인데 질박은 천연을 본받음이니친한 사람을 친애하므로 동생에게 제위를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周道文,文者法地,尊者敬也,敬其本始,故立長子。
주나라의 전통은 화려함인데화려함은 땅을 본받음이고 높임은 공경함이니공경을 본원으로 삼는 까닭에 장자에게 제위를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周道,太子死,立適孫。
주나라의 제도에는 태자가 죽으면 적손을 세웠습니다.

殷道。太子死,立其弟。」
은나라의 제도에는 태자가 죽으면 그 동생을 세웠습니다.”

▶ 袁盎: 漢景帝가 즉위한 후에 吳楚七國의 반란이 일어나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晁錯를 주살할 것을 간청하여 제후들의 원망을 잠재웠다. 그 공으로 太常이 되고, 吳에 사신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한 후에 楚 재상이 되었다. 그후 梁孝王을 황제의 후사로 결정하는 일을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렸다가 安陵의 郭門밖에서 梁孝王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列傳권101. 袁盎鼂錯列傳>

▶ 狀:사실에 의한 근거(根據)
▶ 經術;經學. 유학의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
▶ 質: 질박하다. 소박하다.
▶ 法: 본받다.
▶ 本始: 本原.

 

 

帝曰:
「於公何如?」

경제가 물었다.
공들의 생각은 어떻소?”

皆對曰:

모두들 대답하였다.

「方今漢家法周,周道不得立弟,當立子。
지금 한나라는 주나라 제도를 본받고 있고 주나라 제도는 동생을 세울 수 없고 응당 아들을 세워야 합니다.

故春秋所以非宋宣公。
그래서 <春秋>에서 宋宣公을 비난한 까닭입니다.

宋宣公死,不立子而與弟。
송선공이 죽으며 아들을 세우지 않고 왕위를 동생에게 주었습니다.

弟受國死,復反之與兄之子。
동생이 나라를 받고 죽자 다시 형 선공의 아들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弟之子爭之,以為我當代父後,即刺殺兄子。
동생의 아들 이 자리를 다투어 자신이 당연히 아버지 뒤를 이어야 한다며 형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以故國亂,禍不絕。
이 때문에 나라가 혼란하고 화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故春秋曰

『君子大居正,宋之禍宣公為之』。
그래서 <춘추>에서 일렀습니다.

군자는 정상적인 법도를 준수함을 중시한다의 화는 선공이 지었다.’

臣請見太后白之。」
신 등이 태후를 뵙고 이 도리를 아뢰겠습니다.”

▶ 非: 책망하다. 꾸짖다.
▶ 宋宣公: 춘추시대 宋의 13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力이다. 송무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임종 시에 태자 與夷가 있음에도 아우 和에게 양위하였다.
<史記世家권38. 宋微子世家>
▶ 弟受國死: 宋穆公. 춘추시대 宋의 제14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和이다. 12대 송무공의 아들이며 13대 송선공의 아우로, 형이 임종 시에 군위를 맡겨 세 번 사양하고 즉위하였다. 재위9년 만에 죽었고, 임종 시에 대사마 공보를 불러 자신의 아들( 후의 송장공) 대신 형의 아들( 후의 송상공)에게 양위하도록 하였다.
▶ 弟之子爭之: 宋宣公이 자신의 아들 與夷에게 군주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아우 穆公(: 和)에게 물려주었는데, 훗날 목공이 다시 여이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자 목공의 아들 莊公馮은 자신이 차지해야 할 군주 자리를 빼앗긴 것에 분격하여 여이를 쳐죽이고 말았다. <春秋公羊傳 隱公3년>
▶ 反: 返과 같다. 되돌리다.
▶ 子大居正: 正道를 지킴을 훌륭하게 여기다. <春秋公羊傳 隱公3년>
▶ 白: 아뢰다. 말씀드려 알리다.

 

 

袁盎等入見太后:
「太后言欲立梁王,梁王即終,欲誰立?」

원앙 등이 입궁해 태후를 뵙고 말하였다.
태후께서 양왕을 세우고 싶다고 하셨다는데양왕이 죽는다면 누구를 세우려 하십니까?”


太后曰:
「吾復立帝子。」

태후가 말하였다.
나는 다시 황제의 아들을 세우겠소.”

袁盎等以宋宣公不立正,生禍,禍亂後五世不絕,小不忍害大義狀報太后。
원앙 등은 송선공이 적장자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화란이 발생하여 뒤로 5대 동안 끊이질 않았다면서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대의를 해친다고 태후에게 근거를 아뢰었다.

太后乃解說,即使梁王歸就國。
이에 태후가 이해하고 기뻐하며 곧바로 양왕에게 봉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 即: 만약. 가설접속사 허사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卽

한문의 허사(虛詞) 卽 即은 크게 나누어 네 가지 용법이 있다. 형용사, 부사, 전치사 그리고 접속사적 용법이 그것이다. 형용사적 용법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即자의 주요 용

koahn.tistory.com

▶ 不立正: 적장자로 세우지 않다. 송선공은 임종 시에 태자 與夷가 있음에도 아우 和에게 양위하였다.

而梁王聞其義出於袁盎諸大臣所,怨望,使人來殺袁盎。
그러나 양왕은 그 건의가 원앙과 대신들에게서 나왔음을 알고원망하여 사람을 보내 원앙을 죽이게 하였다.

袁盎顧之曰:
「我所謂袁將軍者也,公得毋誤乎?」

원앙이 고개를 돌려 자객에게 말하였다.
내가 소위 원장군이다그대가 사람을 잘못 안 것 아닌가?”


刺者曰:
「是矣!」

자객이 말하였다.
맞다!”

刺之,置其劍,劍著身。
찌르고 칼을 그대로 두어 칼이 몸에 박혀 있었다.

視其劍,新治。
그 칼을 조사해보니 새로 만든 것이었다.

問長安中削厲工,工曰:
「梁郎某子來治此劍。」

장안의 칼을 만들거나 가는 匠人을 심문했더니 장인이 말하였다.
의 낭관 아무개가 이 칼을 제작하러 왔었습니다.”

以此知而發覺之,發使者捕逐之。
이로써 일이 발각되었고사람을 보내 살인범을 잡아들였다.

獨梁王所欲殺大臣十餘人,文吏窮本之,謀反端頗見。
양왕이 죽이려던 대신들만 10여 명인데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그 주모자를 규명하니 모반의 단서가 상당히 드러났다.

▶ 義: 議와 통용된다. 건의.
▶ 得毋: 아니냐?
▶ 置: 버리다. 그대로 두다.
▶ 著: 부착하다.
▶ 削厲工: 칼을 제작하거나 연마하는 匠人.
▶ 文吏: 법을 집행하는 관리.
▶ 窮本: 근본을 다하다. 근본을 규명하다.
▶ 見: 現과 같다. 드러나다.

 

 

太后不食,日夜泣不止。
두 태후는 먹지도 않고 밤낮으로 울며 그치지 않았다.

景帝甚憂之,問公卿大臣,大臣以為遣經術吏往治之,乃可解。
경제가 몹시 걱정하여 공경대신에게 물었더니대신들은 경전에 능한 관리를 보내 처리하면 풀리겠다고 말하였다.

於是遣田叔、呂季主往治之。
이에 田叔과 呂季主를 보내 사건을 처리하게 하였다.

此二人皆通經術,知大禮。
이 두 사람은 모두 경전을 통달하고 大禮를 잘 알았다.

來還,至霸昌廄,取火悉燒梁之反辭,但空手來對景帝。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覇昌廏에 이르러 양왕의 모반 문서를 모두 태우고단지 빈손으로 돌아와 황제를 뵈었다.

▶ 田叔: 趙王張敖를 섬겨 낭중이 되었으며, 조왕 장오의 모반 사건으로 조왕이 체포되고 孟舒등과 함께 漢나라에 자발적으로 압송되었으나 고조 유방이 조왕의 신하들을 높이 평가해 전숙을 漢中郡守로 기용하였다. 文帝때 면직되었으며, 景帝때 梁孝王劉武가 袁盎을 암살한 사건의 조사관에 임명되었으며 경제가 이 사건의 조언을 현명하게 여겨 魯의 승상으로 삼았다. <史記列傳권104. 田叔列傳>
▶ 大禮: “예가 아니면 천지의 신을 절도에 맞게 섬길 수 없고, 예가 아니면 君臣‧上下‧長幼의 순서를 분별할 수 없고, 예가 아니면 남녀‧부자‧형제‧혼인‧친족 간의 親疏의 관계를 구별할 수 없다.”<孔子家語>
▶ 覇昌廏: 霸昌觀의 마구간

 

 

景帝曰:
「何如?」

경제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가?”

對曰:
「言梁王不知也。
造為之者,獨其幸臣羊勝、公孫詭之屬為之耳。
謹以伏誅死,梁王無恙也。」

대답하였다.
양왕은 몰랐다고 합니다.
일을 꾸민 자는 단지 양왕의 총신인 양승과 공손궤 무리일 뿐입니다.
삼가 법대로 그들을 죽였고 양왕은 무사합니다.”


景帝喜說,曰:
「急趨謁太后。」

경제는 아주 기뻐하며 말하였다.
급히 가서 태후를 뵙겠다.”

太后聞之,立起坐湌,氣平復。
태후가 듣고 즉시 일어나 앉아 식사하고 기운을 되찾았다.

故曰,不通經術知古今之大禮,不可以為三公及左右近臣。
그래서 말하기를 경전에 통달하지 못하고 고금의 大禮를 알지 못하면 삼공이나 좌우의 근신이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少見之人,如從管中闚天也。
식견이 좁은 사람은 대롱을 통해 하늘을 엿봄과 같다.”

▶ 伏誅: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함.
▶ 無恙: 평안무사하다. 탈이 없다.
▶ 從管中闚天: 대롱을 통하여 하늘을 엿보다.

 



'史記 > 世家'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世家60-三王世家(삼왕세가)  (0) 2023.07.14
世家59-五宗世家(5종세가)  (1) 2023.07.12
世家57-絳侯世家(강후세가)  (0) 2023.07.11
世家56-陳丞相世家(진승상세가)  (1) 2023.07.11
世家55-留侯世家(유후세가)  (1)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