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金台俊)
생몰 연대 미상. 평론가, 성대(城大) 조선문학과 졸업. 점차 극좌적인 평론 활동을 하다 6·25 전에 월북.
저서에 「조선소설사」, 「고려가사 주해」, 「조선한문학사」, 「조선가요집성」, 「청구영언」등이 있음.
부용 호는 운초(雲楚)니 연천(淵泉) 김판서 이양(履陽)의 권애(眷愛)를 받은 성천(成川)의 명기(名妓)다.
그는 시명(詩名)이 높으니 그가
“별(別)하니 사(思)라”
운운하는 기형적인 싯구를 지어 세상에 회자되고 있거니와 〈부용당청우시(芙蓉堂聽雨詩)〉에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명주는 일천 곡(斛)이니,
갈마들인 수량이 유리쟁반에 그득하이
개개의 둥근 모양이
수선화의 아홉 번 굴린 붉은색이라네” (편집자역)1)
1)“明珠一千斛 遞量琉璃盤 箇箇團圓樣 水仙九轉丹”
연천 김이양은 안동인(安東人)이요 정조 때에 문과에 급제해서 판서(判書), 봉조하(奉朝賀)까지 지낸 분이다.
▶봉조하(奉朝賀)는 조선시대 전직 고위관리를 예우하기 위해 품계에 따라 일정한 녹봉(祿俸)을 주도록 만든 벼슬로서 일종의 명예직(名譽職)이다.
운초는 만년에 몸을 완전히 연천에게 의탁하였다. 그가 연천을 만(輓)한 시에
“도(道)는 인연이 아닌 공경함이니
이미 정해진 인연을 쇠하기 전에 어찌 좋지 않으리
꿈은 오히려 편안함을 말해 주고
삶 역시 생사(生死)의 정해짐을 모르리
물가 달빛에 배는 둥실 떠 있고
산방엔 술이 익고 새는 오래도록 우는데
연자루의 눈물을 누가 알리오
정원엔 꽃이 피기 시작하고 두견이 우니 깜짝 놀라네” (편집자 역)
그는 일시 여류시인으로 명성이 높은지라, 동국(東國) 최대의 귀재라고 하는 신위(申緯)까지도 평양 기생 琅玕이 그린 묵죽(墨竹)에 발(跋)을 쓰되,
“운초 낭간 두 여사는
시화로 패강 서쪽에 이름이 높다
구슬이 튀는 듯 금속이 우는 듯
천천히 말하며
이슬은 흐느끼는 듯 안개는 우는 듯 성정(性情)을 묘사하는 듯하다
연명(淵明)은 삼생(三生)을 덕(德)으로 짝하고
소산(蘇山) 일파는 팽성에 있구나
재주와 이름의 고하(高下)를 논하지 말라
내 이들 규수의 문집에 놀라느니라”(편집자 역)
그의 유저(遺著)로 「부용당시집 (일명 운초집)」이 간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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