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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조선-김만중(金萬重)

구글서생 2023. 5. 16.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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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김만중(金萬重)

 

김태준(金台俊)
생몰 연대 미상. 평론가. 성대(城大) 조선문학과 졸업. 점차 극좌적인 평론 활동을 하다 6·25 전에 월북.

저서에 「조선소설사」, 「고려가사 주해」, 「조선한문학사」, 「조선가요집성」, 「청구영언」 등이 있음.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요, 서석(瑞石) 김만기(金萬基)의 아우로 전국에 관절(冠絶)한 명가에 태어났다.

본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인조 15년 생, 현종 6년 진사로 문과에 급제한 후 관력(官歷)은 대제학에서 판서에까지 이르렀으나 숙종 15년 숙종께서 민비를 폐하고 장희빈으로 중전을 삼으려고 할 때에 소론(疏論)하다가 죄를 얻어 남해(南海)에 귀양가서 숙종 18년에 몰(歿)하였다.

 

그런데 서포의 위대한 성격과 학식을 성취케 한 배면에는 맹자나 율곡의 어머니에게 떨어지지 않는 현철한 대부인 윤씨(尹氏)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수 없고 특히 윤씨는 이 김만중이라는 유복동을 기르고 가르치는 데 고심한 일화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西浦集」先妣 윤씨 행장).

 

현모의 밑에 반드시 현자가 있는 법이라. 서포도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자기가 유복자의 몸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함을 종신 통한한 일로 여기고 어머니 윤씨를 시봉(侍奉)하기에 전력을 다하여 어머님의 좋아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경도하였다.

어머님이 고사패설(古史稗說)과 기문벽서(奇聞僻書)를 좋아하시므로 그는 잠시도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님을 위하여 글을 읽어 드리거나 이야기를 하여 드리거나 하였다. 그래서 효자로 정려(旌閭)1)까지 하고 시를 문효공(文孝公)이라고까지 했다(「三官記」, 「松泉筆譚」).

1)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들이 살던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

 

서포는 남해의 배소(配所)에 있어서 어머니가 병에 누우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룻밤에 「구운몽(九雲夢)」을 지어 보내서 이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구운몽의 대지(大旨)는 공명부귀를 일장춘몽에 돌려서 그 대부인의 걱정을 풀어 드리자는 것이다(「三官記」,「松泉筆譚」,「五洲衍文」)

 

「구운몽」의 대략은 이러하다.

 

형산(衡山) 연화봉(蓮花峰)에 숨어 있는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스승의 명으로 동정 용왕(洞庭龍王)에게 사자로 가다가 도중에 8선녀를 만나 유연한 정을 통하고 돌아온 후로 선불(禪佛)의 학(學)이 진취되지 아니하니 대사가 대노해서 성진과 8선녀를 지옥에 보냈더니 염왕(閻王)이 연석(憐惜)히 여겨 특히 용서하고 극락세계로 보내었다.

성진은 그날 회남(惟南) 양처사(楊處士) 부인의 해산에 당하여 재정환발(才情渙發)2)한 양소유(楊少游)로 환생하여 간 곳마다 반화절류(攀花折柳)를 희롱하여 8선녀의 후신으로 인간 각처에 헤쳐 난 화주(華州) 진채봉(秦彩鳳), 낙양(洛楊) 명기 계섬월(桂蟾月), 강북(江北) 명기 적경홍(狄驚鴻), 경사(京師) 정소저(鄭小姐)와 및 그의 시비(侍婢) 춘운(春雲), 황매(皇妹) 난양공주(蘭陽公主), 토번자객(吐蕃刺客) 심조연, 용녀(龍女) 백능파(白凌波)를 취하고 소년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하북(河北) 삼진토번(三鎭吐蕃)의 난을 평정하니 천자가 부마로 연왕(燕王)을 봉하시어 소유는 부귀공명과 일세 향락을 마음대로 하다가 소유와 8부인은 호승(胡僧)의 설법에 돈오(頓悟)하여 다시 옛날의 8선녀가 되어 극락세계로 돌아갔다.

2)환발(渙發):소칙 또는 칙명을 널리 알림, 여기서는 사방에 널리 알려진다는 뜻.

 

서포는 그의 종손 춘택(春澤)의 말에 의하면 조선 한글로써 많은 소설을 썼다 한다. 그는 조선 사람이 한문자로 시를 읊고 문을 짓는 것은 ‘앵무새소리(鸚鵡之言)’와 같다고 하였다(「서포만필」).

확실히 탁견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적에도 최만리 같은 자가 반대하였거니와 정음을 ‘언문’, ‘언역’, 한문을 ‘진서(眞書)’라고 하던 주객전도의 누견(陋見)을 깨뜨리고 남음이 있다.

 

그는 「구운몽」 밖에도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쓴 것까지는 춘택의 말에 의하여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소설에 대해서 종래에 소설을 천시하던 유와 동일(同日)에 논할 수 없는 이견을 가졌다.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말하였으되 여항(閭巷)에 설서가(說書家)가 있어서 삼국사를 말할새 현덕(玄德)이 졌다고 하면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으며 조조가 패했다고 하면 통쾌작약하나니 이것이 나씨(羅氏) 「연의(衍義)」의 권여(權輿)3)인지 알 수 없다.

3)권여(權輿):사물의 시작.

 

이제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온공(溫公)의 「통감」 같은 것으로는 읍체(泣沸)할 자 없으니 이것이 통속소설을 쓰는 이유라.”(「서포만필」)

 

이는 문예의 가치와 및 그 대중적 효과를 명백히 말함이요, 종래에 학자 샌님들이 소설을 맹목적으로 배척하던 데에 비하면 실로 천양의 차가 있다. 그는 또 정송강(鄭松江)이 지은 <사미인곡〉과 그의 김청음 한역시(金淸陰 漢譯詩)를 별책에 등사하여 두고 굴원(屈原)의 「이소(離疏)」와 필적할 것이라 해서 서명을 「언소(諺騷)」라고 하였다 한다(「北軒雜說」).

 

언문이란 원래 사군자(士君子)가 일고(一顧)도 하지 않던바 아무리 장편 걸작일지라도 언소라고까지 명명한 것은 선인의 한문 짓는 것을 ‘앵무새소리'라고 한 것과 아울러 탁월한 견해의 하나다. 그는 정치가라기보다 문학자로서 생명이 있다. 유고로는 시집 5권, 문집 3권 총 2책, 「서포만필」 등이 있다.

 

그의 한시는 오고장편(五古長篇) 특히 악부가곡(樂府歌曲)에 능하고 〈무산고(巫山高)〉, 〈연연편(燕燕篇)〉, 〈월녀행(越女行)〉, 〈채상행(採桑行)〉, 〈비파행(琵琶行)〉, 〈왕소군(王昭君)〉, 〈두견제(杜鵑啼)〉, 〈오첩곡 (烏捷曲)〉등 감상적인 싯구가 많다. 「만필」은 조선 소품 중의 백미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은 「서포집」에 서(序)하되

“공은 기다리지 않고 몸소 이룸이요, 비록 잡스런 재예라도 정통한 마음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독담 동이(同異)의 사이에 나오는 것만 있고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패관소설의 담천조룡(談天彫龍)5)이 역력히 관천(貫穿)치 않은 것이 없다.”(편집자 역)

4)독담:귓바퀴.

5)담천조룡(談天彫龍): 맑은 하늘에 용을 새기는 것처럼 문장을 아름답게 꾸밈.

6)관천(貫穿): 꿰뚫음. 학문에 널리 통함.

 

이 역시 지기(知己)의 언(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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