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河東節度使柳公綽 在公卿間 最名有家法 《溫公》〈家範〉
唐나라 河東節度使 柳公綽은 公卿간에 가법이 있기로 이름이 났다.
【集解】
公綽 字子寬
公綽은 字가 子寬이다.
中門東有小齋 自非朝謁之日 每平旦 輒出至小齋 諸子仲郢皆束帶 晨省於中門之北.
中門 동쪽에 작은 방이 있었는데, 자신이 조회에 알현하는 날이 아니면 平旦[이른 새벽]마다 나가 작은 방에 이르거든, 아들들과 仲郢은 모두 띠를 묶고 중문 북쪽에서 새벽 문안을 올렸다.
公綽決私事 接賓客 與弟公權及群從弟 再會食 自旦至莫 不離小齋.
柳公綽은 사사로운 일을 결정하거나 빈객을 접대하고, 아우인 公權 및 여러 從弟과 하루에 두 번 모여 식사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방을 떠나지 않았다.
燭至則命一人子弟 執經史 躬讀一過訖 乃講議居官治家之法 或論文 或聽琴 至人定鍾然後 歸寢.
촛불이 이르면 한 사람의 자제에게 명하여 經書와 史書를 잡게 하고, 몸소 읽어서 한번 마치고 나서, 居官와 治家의 법을 강론하고 의논하며, 혹은 문장을 논하고 혹은 거문고 타기를 듣다가, 人定의 종소리가 이른 뒤에야 침실로 돌아갔다.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 凡二十餘年 未嘗一日變易
아들들이 다시 중문의 북쪽에서 저녁 문안을 드렸는바, 무릇 20여 년에 하루라도 바꾼 적이 없었다.
【集說】
陳氏曰
仲郢 節度之子 字諭蒙 公權 節度之弟 字誠懸.
陳氏가 말하였다.
“仲郢은 節度使의 아들이니, 字는 諭蒙이요, 公權은 節度使의 아우이니, 字는 誠懸이다.”
其遇飢歲 則諸子皆蔬食 曰
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 以學業未成 不聽食肉 吾不敢忘也
흉년을 만나면 아들들이 모두 거친 밥을 먹었는데, 柳公綽은 말하였다.
“옛날 우리 형제들은 先君께서 丹州刺史가 되셨을 때 모셨는데, 학업이 성취되지 않았다 하여 食肉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나는 감히 이것을 잊지 못한다.”
【增註】
曰 節度言也.
曰은 節度使의 말이다.
聽 猶許也.
聽은 許와 같다.
姑姊妹姪 有孤嫠者 雖疏遠 必爲擇婿嫁之 皆用刻木粧奩 纈文絹 爲資裝.
고모와 자매와 조카에 고아나 과부가 있으면 비록 소원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위하여 사윗감을 가려 시집보내었는데, 모두 나무를 조각한 화장경대와 매듭무늬의 비단을 사용하여 資裝[혼수품]으로 삼았다.
常言
必待資裝備 何如嫁不失時?
柳公綽은 항상 말하기였다.
“반드시 資裝을 具備하기를 기다림이 어찌 때를 놓치지 않고 시집가는 것만 하겠는가?”
【集說】
陳氏曰
姪謂兄弟之女.
孤無父者 嫠無夫者.
鏡臺也.
文絹 繫絹染爲文者.
陳氏가 말하였다.
“姪은 형제의 딸을 이른다.
孤는 아버지가 없는 자요, 嫠는 남편이 없는 자이다.
奩은 경대이다.
纈文絹은 깁을 매어 물들여 무늬를 만든 것이다.”
及公綽卒 仲郢 一遵其法 事公權 如事公綽.
公綽이 별세하자, 仲郢은 한결같이 그 법을 따라 公權을 섬기되, 公綽을 섬기듯이 하였다.
非甚病 見公權 未嘗不束帶.
심한 병이 아니면 公權을 뵈올 적에 띠를 묶지 않은 적이 없었다.
爲京兆尹鹽鐵使 出遇公權於通衢 必下馬端笏立 候公權過 乃上馬 公權莫歸 必束帶迎候於馬首.
仲郢이 京兆尹과 鹽鐵使가 되어 외출하다가 公權을 通衢에서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笏을 단정히 하고 서서 公權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말에 올랐으며, 公權이 늦게 돌아오면, 반드시 띠를 묶고 말머리에서 마중하였다.
公權屢以爲言 仲郢終不以官達 有小改.
公權이 자주 말하였으나, 仲郢은 끝내 관직이 顯達함에도 조금도 고침이 없었다.
【增註】
其 指節度也.
其는 節度使[公綽]를 가리킨다.
已上 言家法之在外者
이상은 가법이 밖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公綽 妻韓氏 相國休之曾孫 家法 嚴肅儉約 爲搢紳家楷範.
公綽의 아내 韓氏는 相國 韓休의 曾孫인데, 가법이 엄숙하고 검약하여, 搢紳家[사대부 집안]의 모범이 되었다.
歸柳氏三年 無少長 未嘗見其啓齒 常衣絹素 不用綾羅錦繡.
柳氏에게 시집온 지 3년, 젊은이와 어른 할 것 없이 그가 이를 드러내고 웃음을 본 적이 없었으며, 항상 흰 깁의 옷을 입고, 綾羅錦繡를 사용하지 않았다.
每歸覲 不乘金碧輿 祗乘竹兜子 二靑衣步屣以隨.
매양 친정에 돌아가 뵐 때마다 金碧輿를 타지 않고 다만 竹兜子를 타고서 두 靑衣[하녀]를 걸려 따르게 할 뿐이었다.
常命粉苦參黃連熊膽 和爲丸 賜諸子 每永夜習學 含之 以資勤苦.
항상 명령하여 苦參·黃連·熊膽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서 환약을 짓게 한 다음 여러 아들에게 나누어주어, 매양 긴 밤에 학업을 익힐 때마다 이것을 물어 勤苦함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集說】
陳氏曰
搢紳 搢笏垂紳也.
楷範 猶言法式.
婦人謂嫁曰歸.
啓齒 笑也.
歸覲 歸寧父母也.
金碧輿 唐時命婦所乘者 竹兜子 竹轎子.
資 助也.
此 言家法之在內者
陳氏가 말하였다.
“搢紳은 홀을 꽂고 띠를 드리움이다.
楷範은 法式이란 말과 같다.
부인이 시집감을 歸라 한다.
啓齒[이를 엶]는 웃음이다.
歸覲은 돌아가 친정 부모에게 문안 드림이다.
金碧輿는 唐나라 때에 命婦가 타던 것이요, 竹兜子는 대나무로 만든 轎子[가마]이다. 資는 도움이다.
이는 가법이 안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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