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468-梁鴻五噫(양홍오희)

구글서생 2023. 3. 3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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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 梁鴻五噫(양홍오희)

by 古岸子

梁鴻五噫- 梁鴻의 다섯 가지 슬픔에 관한 노래를 지었다. 

 

後漢梁鴻受業大學.
後漢梁鴻大學에서 공부하였다.

 

家貧尙節介 博覽不爲章句.

집이 가난한데도 절개를 숭상하고, 널리 책을 읽었으나 문장을 짓는 것은 일삼지 않았다.

 

歸鄕里 埶家慕其高節 多欲女之 鴻並不娶.

고향으로 돌아가니, 權勢家에서 그의 높은 절개를 사모하여 그에게 딸을 주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양홍은 모두 장가들지 않았다.

▶埶: 재주, 형세, 권세

 

後娶孟氏 隱覇陵山中 以耕織爲業.

뒤에 孟氏를 맞아 覇陵의 산속에 숨어 살며 농사와 길쌈을 職業으로 삼았다.

 

詠詩書 彈琴以自娛.

詩書를 읊조리고 거문고를 탐으로써 스스로 즐겼다.

 

因東出關過京師 作五噫之歌.

동쪽으로 關門을 나서서 京師를 지나다가 五噫의 노래를 지었다.

 

陟彼北芒兮噫.

顧覽帝京兮噫.

宮室崔嵬兮噫.

人之劬勞兮噫.

遼遼未央兮噫.

그 노래에 말하였다.
北芒山에 오르니 아아! 슬프도다.

황제의 계신 도읍을 돌아다보니 아아! 슬프도다.

宮室이 높고 크니 아아! 슬프도다.

사람들이 일하여 피로함이여. 아아! 슬프도다.

넓고 멀어 아직 다하지 않음이여! 아아! 슬프다

未央: 未尽未已没有完结

 

肅宗聞而非之 求鴻不得

肅宗이 이것을 듣고 조정을 비방하였다 하여, 양홍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乃易姓名. 居齊魯之間 遂至吳 依大家皐伯通居廡下. 爲人賃舂.

양홍은 이에 姓名을 고치고 ·의 사이에 살다가, 나라에 가서 富豪 皐伯通에게 의지하여 행랑채에 살며, 방아품을 팔았다.

 

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

양홍이 집에 돌아가면, 매양 그의 아내가 밥을 차려서 감히 양홍의 앞에서 쳐다보지 못하고, 擧案齊眉하였다.

擧案齊眉: =荊釵布裙. 成語

 

伯通異之曰

彼傭能使其妻敬之如此 非凡人也.

고백통이 기이하게 여겨 말하였다.
저 품팔이가 그의 처에게 이처럼 공경하게 하니, 凡人이 아니로다.”

 

乃舍之於家.

이에 자기 집에 살게 하였다.

 

鴻潛閉著書十餘篇.

양홍은 은거하며 나오지 않고 책을 10저술하였다.

潛閉:隐居不出

 

卒於吳.

오나라에서 하였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73 逸民篇의 기사임.

北邙- 지금의 河南省 洛陽縣 북쪽에 있는 邙山. 나라 이후로 유명한 墓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묘지의 뜻으로 쓰임.
皐伯通- 나라 사람. 어진 행실이 있어서 豪家가 되었다. 梁鴻이 그 아내와 함께 그의 집에서 살면서 삯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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