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219-楊脩捷對(양수첩대)

耽古樓主 2023. 4. 8. 06:44

蒙求(몽구) 楊脩捷對(양수첩대)

by 耽古書生

楊脩捷對- 楊脩는 응대가 민첩하였다. 

 

後漢楊脩字德祖 太尉震玄孫.
後漢 楊脩의 字 德祖이니, 太尉 楊震의 玄孫이다.

好學有俊才, 爲丞相曹操主簿.
학문을 좋아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었는데, 丞相 曹操의 主簿가 되었다.

操平漢中, 欲因討劉備, 而不得進, 欲守之又難爲功.
조조가 漢中을 평정하고 나서 유비를 토벌하려 했으나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지키고 있자니 또 공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操出敎 唯曰雞肋而已 外曹莫能曉.
이때 조조가 명령을 내리는데 오직 ‘雞肋’이라고만 말하니 외부의 관리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脩獨曰
夫雞肋食之則無所得 弃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
양수가 홀로 말하였다.
“대체로 계륵이란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다.
公의 돌아갈 계획이 결정되었구나.”

操於此廻師 脩之幾決多有此類.
조조는 이때 군사를 돌렸는데, 양수가 조짐으로 판단하는 데 이런 종류의 일이 많았다.
幾決:明察隱微而決斷
: 幾微

又嘗出行 籌操有問外事 乃逆爲答記 敕守舍兒 若有令出 依次通之.
또 한번은 양수가 외출할 때, 조조가 밖의 일에 관하여 물을 것임을 알고, 미리 대답할 말을 기록하여 집을 지키는 아이에게 만일 명령이 오면 차서대로 대답하라고 시켰다.
:미리, 사전에

旣而果然.
지나고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操怪其速 廉之知狀忌脩 後因事殺之.
조조는 그가 빠르게 아는 것을 괴이히 여겨, 그 일을 조사하여 상황을 알고는 양수를 꺼려하였고, 그 뒤에 일로 인해서 죽여 버렸다.
:. 조사하다, 고찰하다, 시찰하다 inspect

語林曰
<語林>에 일렀다.

脩至江南 讀曹娥碑 碑背有八字 曰 黃絹幼婦外孫齏臼.
양수가 江南에 이르러서 曹娥碑를 읽어보니, 비석의 뒷면에 여덟 글자가 있는데, ‘黃絹幼婦 外孫齏臼’이었다.

操不解 問脩曰
卿知否.
조조는 풀지 못하고 양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는가?”

脩曰
知之.
양수가 대답하였다.
"압니다."

操曰
且勿言. 待朕思之.
조조가 말하였다.
"우선 말하지 말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라."

行三十里乃得之 令脩解.
30리를 가서 비로소 깨달은 조조가 양수에게 해석하게 하였다.

脩曰
黃絹色絲 色絲絶字.
幼婦少女 少女妙字.
外孫女子 女子好字.
齏臼受辛 受辛辭字.
양수가 말하였다.
“黃絹은 色絲이니, 色絲는 ‘絶’字이요,
幼婦는 少女이니, 少女는 ‘妙’字입니다.
外孫은 女子이니, 女子는 ‘好’字이요,
齏臼는 쓴 것(辛)을 찧는 것(臼)인즉, 受辛은 ‘辭’字입니다.”

操曰
一如朕意.
조조가 말하였다.
“하나같이 나의 뜻과 같도다.”

俗云
有智無智 挍三十里.
세속에서 말하기를,
‘지혜가 있고 없는 것이, 30리의 차이이다.’라고 하였다.

 

[註解]
後漢- 후한서<열전> 44의 기사. 語林의 일화는 世說新語》〈捷悟篇에도 있음.
漢中- 의 이름. 나라에서 처음 설치했다. 지금의 陝西省 남쪽과 湖北省 서북쪽임.
外曹- 여기의 는 일을 처리하는 곳.
鷄肋- 닭의 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