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伯 第八
凡二十一章
모두 21장이다
第一章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民無得而稱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泰伯은 아마도 지극한 德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세 번 天下를 <굳이>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德을 칭송할 수 없게 하였구나!”
▶后稷 후 10대---古公亶父(太王)-季歷(王季)-昌(文)-發(武)
▶泰伯(季歷의 큰형)-상나라 공격을 반대함. 오나라 태조가 됨. 고공단보가 병들었을 때 약을 캐러 간다고 하고 도망함.
▶三以天下讓: 태백과 중옹이 도망하자, 계력이 태백을 불렀으나, 고공단보의 장례에도 오지 않고, 제사에도 오지 않으니 3번 예를 피하였다고 하는 말.
生事之以禮(부모를 섬기지 않고 도망감)-1讓
死葬之以禮(부모 죽음에도 예를 피함)-2讓
祭之以禮(부모 제사에도 예를 피함 )-3讓
▶仲雍(季歷의 仲兄)- 춘추7현의 한 사람
泰伯,周大王之長子。
泰伯은 周나라 大王의 長子이다.
至德,謂德之至極,無以復加者也。
至德은 德이 지극하여 다시 더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三讓,謂固遜也。
三讓이란 굳이 사양함을 말한다.
無得而稱,其遜隱微,無跡可見也。
無得而稱란 태백의 遜讓은 은미하여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蓋大王三子:長泰伯,次仲雍,次季歷。
大王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長子는 泰伯, 次子는 중옹仲雍, 三子는 季歷이다.
大王之時,商道寖衰,而周日強大。
大王 때에 商나라의 정치는 점차 쇠약해지고 周나라는 날로 강대해졌다.
季歷又生子昌,有聖德。
또 季歷이 아들 昌을 낳았는데 聖德이 있었다.
大王因有翦商之志,而泰伯不從,大王遂欲傳位季歷以及昌。
大王은 이로 인하여 商나라를 칠 생각이 있었는데 泰伯이 따르지 않으니, 大王은 마침내 王位를 季歷에게 전하여 昌에게 미치게 하고자 하였다.
泰伯知之,即與仲雍逃之荊蠻。
泰伯은 이것을 알고 곧 仲雍과 함께 荊蠻으로 도망하였다.
▶逃之: 逃而之 도망하여 갔다
於是大王乃立季歷,傳國至昌,而三分天下有其二,是為文王。
이에 大王은 마침내 季歷에게 나라를 물려주어 昌에게 이르러서는 天下의 3분의 2를 소유하니, 이가 바로 文王이다.
文王崩,子發立,遂克商而有天下,是為武王。
文王이 죽고 아들 發이 즉위하여 마침내 商나라를 <征伐하여> 이기고 天下를 소유하니, 이가 바로 武王이다.
夫以泰伯之德,當商周之際,固足以朝諸侯有天下矣,乃棄不取而又泯其跡焉,則其德之至極為何如哉!
泰伯의 德으로, 商나라와 周나라의 교체시기를 당하여 진실로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天下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침내 이것을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그 사양한 자취마저 泯滅하였으니, 그 德의 지극함이 어떠한가?
蓋其心即夷齊扣馬之心,而事之難處有甚焉者,宜夫子之歎息而讚美之也。
그 마음은 바로 伯夷와 叔齊가 <武王의> 말고삐를 잡고 商나라 征伐을 諫하던 심정이지만, 일의 난처함은 그보다 더 심하였으니, 夫子께서 탄식하고 찬미하심은 당연하다 하겠다.
泰伯不從,事見春秋傳。
泰伯이 大王의 뜻에 따르지 않은 사실은 《春秋左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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