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三十六章
或曰:
「以德報怨,何如?」
혹자가 말하였다.
“德[恩德]으로써 원한을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
或人所稱,今見老子書。
혹인이 말한 것은 지금 《老子》 책에 보인다.
德,謂恩惠也。
德은 은혜를 말한다.
子曰:
「何以報德?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으로 恩德에 보답하겠는가?
言於其所怨,既以德報之矣;則人之有德於我者,又將何以報之乎?
그가 원한을 받는 자에게 恩德으로써 갚았다면, 나에게 德이 있는 자에게는 또 무엇으로 갚겠는가 하고 말씀하였다.
以直報怨,以德報德。」
정직함으로써 원한을 갚고, 恩德으로써 恩德을 갚아야 한다.”
於其所怨者,愛憎取捨,一以至公而無私,所謂直也。
원한으로 여기는 자에게 사랑과 미움, 취하고 버림을 한결같이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으로써 하는 것이 이른바 정직이다.
於其所德者,則必以德報之,不可忘也。
그를 恩德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恩德으로써 갚아 주고 잊지 않아야 한다.
或人之言,可謂厚矣。
혹자의 말은 厚德하다고 이를 만하다.
然以聖人之言觀之,則見其出於有意之私,而怨德之報皆不得其平也。
그러나 聖人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도가 있는 私心에서 나와서 원한과 은덕에 대한 보답이 모두 공평함을 얻지 못함을 알 수 있다.
▶見: 可以見
必如夫子之言,然後二者之報各得其所。
반드시 夫子의 말씀과 같이 한 뒤에야 두 가지의 보답이 각기 제 자리를 얻게 된다.
然怨有不讎,而德無不報,則又未嘗不厚也。
그러나 원한에는 원수로 여기지 않음이 있고, 은덕에는 갚지 않음이 없다면, 이것도 厚德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此章之言,明白簡約,而其指意曲折反覆。
이 章의 말씀은 명백하고 간략하면서도 그 뜻은 曲折이 있고 반복된다.
如造化之簡易易知,而微妙無窮,學者所宜詳玩也。
마치 천지조화가 簡易함을 알기는 쉽지만 미묘한 진리가 무궁한 것과 같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자세히 玩味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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