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十五章
子貢曰:
「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子貢이 말하였다.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으며, 富裕하되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며, 부유하면서도 禮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因病與藥하는 공자의 모습.
諂,卑屈也。驕,矜肆也。
諂은 자신을 낮추고 굽히는 것이요, 驕는 자랑하고 放肆한 것이다.
常人溺於貧富之中,而不知所以自守,故必有二者之病。
常人은 貧富에 빠져서 자신을 지킬 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두 가지의 병통이 있게 된다.
無諂無驕,則知自守矣,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다면 자신을 지킬 줄을 안 것이나, 貧富의 밖에 超越하지는 못한 것이다.
凡曰可者,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무릇 可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대로 可하나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樂則心廣體胖而忘其貧,好禮則安處善,樂循理,亦不自知其富矣。
도를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고 몸이 펴져서 자신이 가난함을 잊고, 禮를 좋아한다면 善에 處함을 편안히 여기고 理致를 따르기를 즐거워해서 또한 자연히 자신이 부유한 줄도 알지 못한다.
子貢貨殖,蓋先貧後富,而嘗用力於自守者,故以此為問。而夫子答之如此,蓋許其所已能,而勉其所未至也。
子貢은 재화를 증식하였으니, 먼저는 가난하였고 뒤에는 부유해서 항상 스스로 志操를 지키는 데에 힘을 쓴 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질문하자, 夫子께서 대답하시기를 이와 같게 하셔서, 대개 그가 이미 능한 것을 許與하고,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게 하셨다.>
▶嘗:常의 뜻이다.
子貢曰:
「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
子貢이 말하였다.
“《詩經》에 ‘切斷하고 나서 갈아내며, 쪼고 나서 광을 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듯합니다.”
▶如: 글자 수를 맞추는 글자
詩衛風淇澳之篇,言治骨角者,既切之而復磋之;治玉石者,既琢之而復磨之;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
詩는 《詩經》〈衛風 淇奧篇〉의 내용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자는 절단한 뒤에 다시 그것을 갈고, 玉과 寶石을 다루는 자는 쪼은 후에 다시 그것을 磨光하니, 다룸이 이미 精微한데도 더욱 그 精微함을 추구함을 말하였다.
子貢自以無諂無驕為至矣,聞夫子之言,又知義理之無窮,雖有得焉,而未可遽自足也,故引是詩以明之。
子貢은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夫子의 말씀을 듣고는 또 義理가 無窮하여 비록 터득함이 있으나 대번에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詩를 인용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밝힌 것이다.
▶師弟의 대화가 擧一隅以三隅反의 경지이다
子曰:
「賜也,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賜는 비로소 더불어 詩를 말할 만하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자 올 것을 아는구나.”
往者,其所已言者。來者,其所未言者。
往이란 그가 이미 말해준 것이요, 來란 그가 아직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愚按:此章問答,其淺深高下,固不待辨說而明矣。
내가 생각건대, 이 章의 問答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辯說이 필요 없이 분명하다.
然不切則磋無所施,不琢則磨無所措。
그러나 절단하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데가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광을 내는 것을 둘 데가 없다.
故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
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비록 小成에 안주하여 道의 極致에 나아가는 것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虛遠한 데에 달려서 자기 몸에 간절한 실제 병통을 살피지 않아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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