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子路 第十三(논어집주 자로 제십삼) 第十四章

구글서생 2023. 3. 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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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十四章

冉子退朝。
冉子가 조정에서 물러 나왔다.

子曰:
「何晏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늦었는가?”

對曰:
「有政。」

대답하였다.
“國政이 있어서였습니다.”

子曰:
「其事也。
如有政,雖不吾以,吾其與聞之。」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대부의 집안일이다. 만일 國政이었다면 비록 나를 써주지는 않으나, 내가 아마도 참여하여 들었을 터이다.”

冉有時為季氏宰。

염유가 당시에 季氏家臣으로 있었다.


朝,季氏之私朝也。

季氏가 사사로이 조회 받는 곳이다.


晏,晚也。

은 늦음이다.


政,國政。

國政이요


事,家事。

는 집안일家事이다.


以,用也。

는 등용하는 것이다.


禮:大夫雖不治事,猶得與聞國政。

大夫는 비록 정사를 다스리지 않더라도 國政에 참여하여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是時季氏專魯,其於國政,蓋有不與同列議於公朝,而獨與家臣謀於私室者。

이때 季氏나라를 專斷하여 國政에 대해 同列들과 公朝에서 의논하지 않고 혼자서 家臣들과 자기의 私室에서 도모함이 있었다.


故夫子為不知者而言,此必季氏之家事耳。

若是國政,我嘗為大夫,雖不見用,猶當與聞。今既不聞,則是非國政也。

그러므로 夫子께서 모르는 체하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반드시 季氏의 집안일일 뿐이다.

만일 그것이 국정이었다면 나는 일찍이 大夫였으니, 지금은 비록 등용되지 못하여도 마땅히 참여하여 들었을 터이다.

이제 이미 듣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국정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語意與魏徵獻陵之對略相似。

말씀한 뜻이 魏徵獻陵 대답과 대략 서로 비슷하다.


其所以正名分,抑季氏,而教冉有之意深矣。
그 명분을 바로잡아서 季氏를 억제시키고 冉有를 가르치신 뜻이 깊다.

 

魏徵獻陵之對 : 唐太宗이 부인인 文德皇后가 죽자, 昭陵이라 하고 정원에 높은 층대를 만든 다음 날마다 올라가 昭陵을 바라보았다. 하루는 魏徵을 데리고 층대에 올라가 昭陵을 가리키며 보이느냐고 묻자, 魏徵은 눈이 아물거려 보이지 않는다고 계속 대답하였다. 이에 太宗이 앞의 昭陵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하자, 魏徵昭陵은 벌써 보았습니다. 은 폐하께서 母后獻陵을 바라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였다. 이에 太宗은 눈물을 삼키고 층대를 헐어냈다. 여기서는 孔子께서 이미 내용을 알고 계시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셨음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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